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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관순열사 탄신 100주년 특별전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성 독립운동과 유관순 열사’ 특별기획전 개막식이 2일 오후 4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특별전시장에서 열린다. 7월14일까지 계속될 이 행사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와 활동을 재조명하고 독립운동사에서 여성운동의 위치를 돌아보고자 기획됐다.
  • 韓末 의병장 유인석 친필 유묵 최초 공개

    명성황후 시해사건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맹활약했던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의병장의 친필이 발굴, 공개됐다. 독립기념관(관장 李文遠)은 지금까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는 의암 유인석 의병장의 친필 유묵을 발굴했다고 24일 밝혔다. 공개된 친필은 가로 79㎝,세로 47.5㎝의 한지에 ‘大眼活胸 硬脊 健脚’이라는 세로로 쓴 8자 족자로,유인석 의병장의 평소 생활신조를 표현한 친필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친필은 지난 23일 독립기념관으로 초청받은 전 통문관(通文館) 대표 이겸노(93)옹으로부터 기증받았다. 강대덕(姜大德) 독립기념관 학예실장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병장 유인석은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의 문하에서수학하고 제천에서 학문을 연구하던 중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며 충주,단양,원주,영월,안동,문경 일대에서 대활약을 펼친 의병의 상징적 인물이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
  • 윤봉길의사 최후 사진 처음 공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1908∼1932)의사의 순국 장면이 담긴 사진과 당시 상황을 기록한 일제의 극비문서가 최초로 공개됐다. 일본 육군성은 윤 의사가 처형당한 다음해인 1933년 윤의사 처형 관련 극비문서철 ‘만밀대일기(滿密大日記)’를작성, 보관해왔다.국내 다큐멘터리 전문제작사인 더 채널의 김광만(金光萬·47)대표는 지난달 일본방위청 자료실에서 이 문서철을 발굴해 10일 공개했다. 이 문서철에는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 의거 8개월 후인1932년 12월 19일 일본 이시카와현 미고우시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윤 의사가 총살당하기 직전·직후의 모습과 총살장면 등 의사의 마지막 사진 3장이 들어있다.또 처형장 상황도 등 도면 4장과 윤 의사 처형에 대한 각종 기밀보고서가 담겨있다.그동안 윤 의사의 사진은 1932년 4월29일 거사 직후 체포되는 사진과 1946년 유해발굴 사진뿐이었다. 인하대 윤병석(尹炳奭·독립운동사)명예교수는 “이번 사진자료는 독립투사들의 순국 순간을 담은 사진으로는 처음공개되는 것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며 “윤의사를가마니 위에 무릎 꿇린 채 십자 모양의 나무 형틀에 네 곳이나 묶고서 이마를 관통시킨 처형 모습은 너무 끔찍하고약소국의 비애를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사진을 받아 본 윤 의사의 동생인 윤남의(尹南儀·86)옹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마지막순간을 사진으로 목격하니 참담하다.”며 “총살한 뒤 의사의 시신을 가네자와(金澤) 군인묘지 관리사무소 앞길에묻어 13년 동안이나 방치했다는 것에 다시금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40여 쪽의 ‘만밀대일기’에는 이밖에 형집행 명령안, 소송기록,사형집행보고서,백범 김구선생을 추적한 밀정들의보고서 등이 들어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정부출연硏 5개연구회 이사장후보들 ‘채널총가동’ 낙점 경쟁

    42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소속돼 있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기초·산업·공공기술연구회 등 5개 연구회 이사장의 임기가 오는 14일 만료됨에 따라 이사장 선임을 둘러싼물밑 경쟁이 치열하다.임기 3년의 각 연구회 이사장이 되기 위해 학계,경제계,전직 관료출신 인사들이 저마다 여러 채널을 가동하며 뛰는 분위기다. 이사장 선임은 위원회 이사와 연구원장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3명의 후보를 압축,이들 가운데서 총리가 최종 확정하는 절차를 밟는다.이에 따라 지난달 1일부터 이사장 후임 추천을 받은 각 연구회는 최근 각각 3명의 후보자를 최종 결정했다.총리의 낙점은 8일을 전후해 이뤄질 전망이다. 이사장 최종 후보로는 경제사회연구회의 경우 김세원 서울대 교수,문석남 전남대 명예교수,박상우 전북대 초빙교수가 올랐고 인문사회연구회는 김영진 현 이사장,김인수고려대 교수,박용옥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공공기술연구회 이사장 후보는 박병권 현 이사장,김훈철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오정무 한국에너지 기술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압축됐고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후보로는임제완 서울대 명예교수,신재인 원자력학회회장,정명세 (주)덕인 회장이 각각 올랐다. 산업기술연구회는 박규태 현 이사장,박원훈 과학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이춘식 (주)세양통신 상임기술고문으로 좁혀졌다. 최광숙기자 bori@
  • 백범학술원 초대원장 신용하교수

    백범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는 10일 서울 효창동 소재 협회 사무실에서 백범학술원 발족식을 갖고 초대 원장에 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선임했다. 백범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출범한 백범학술원은 주요사업으로 ▲백범 사상 및 독립·통일운동 연구 ▲임시정부 및 한민족 독립운동사 연구 ▲독립운동 관련 자료수집 및 보관 ▲독립운동 관련 연구서 출간,보급 ▲학술발표회 및 토론회 개최등을 주요사업으로 삼고 있다. 협회 부설기관으로 출발하는학술원은 내년 10월경 백범기념관이 정식으로 개관되면 기념관 산하 조직으로 흡수될 예정이다. 백범학술원 자문위원으로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를 선임했다. 또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김영모 한국기자협회장,김희곤(안동대)·윤경로(한성대)·한시준(단국대)교수,최기영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등이 운영위원으로 선임됐다. 정운현기자
  • ‘의병전쟁과 서대문형무소’ 학술행사

    서울 서대문구청은 2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3주년을맞아 ‘의병전쟁과 서대문형무소’를 주제로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현재 독립공원으로 불리는 구 서대문형무소에서 많은 항일애국지사 및 독재저항 민주화인사들이 옥고를 치렀다. 이날 독립공원내 지하강당에서 열린 행사에서 박성수 전 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운강 이강년 의병장과 서대문형무소’,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는 ‘한말 의병장 이인영과 서대문형무소’,그리고 이현희 성신여대 교수는 ‘허위의 의병투쟁과 서대문형무소’ 등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순국한 애국선열들의 항일투쟁 활동을 각각 발표했다. 주제발표에 이어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김호일 중앙대 교수,정제우 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정영희 인천시립대 교수 등이 참가했다.이날 행사에는 순국선열유족회 회원,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정운현기자
  • 독립군 中동북지역 대첩 기념식

    한국독립유공자협회(회장 김국주)는 2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한국독립군 중국동북지역 대첩 기념식및 강연회’를 갖고 한국 무장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대전 자령전투의 항일애국정신을 되새겼다. 김국주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청산리전투 등 중국 동북지역에서 거둔 3대 전투는 숫적으로나 장비면에서 일본군과 비교도 안되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뒀다”며 “이는우리민족의 굳건한 독립의지와 민족의 용기,한국인의 지혜때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경빈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일제강점기 민족해방투쟁 가운데 무력투쟁은 국권회복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첩경이었다”고 지적하고 “선열들의 항일정신을 이어받아 조국통일과 국력신장에 힘을 총집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행사에서는 김진홍 목사(두레공동체 대표)가 초청연사로 참석해 ‘독립운동정신과 민족의 미래’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김유길 광복회 부회장,김원웅(한나라당) 의원,김종성 국가보훈처 차장,석근영 광복군동지회 회장,김우전 광복회 이사를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퇴계 탄신 500주년 기념…삶과 사상 재조명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탄신 5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유교문화축제가 경북도와 안동시 주최로 다음달 5일부터 31일까지 27일동안 경북 안동시 일원에서 열린다. ‘새 천년,퇴계와의 대화’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퇴계 선생의 삶을 현대에서 재조명,유교의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려는 취지다. ◆사전행사=인터넷을 통한 상소문 짓기인 ‘인터넷 만인소경시대회’,‘초·중등부 서예경시대회’,‘도산12곡창작발표회’,‘판소리 퇴계 창작발표회’,‘여성서화대회’ 등이 지난 주말까지 열렸다.다음달 4일에는 도산별시 및 유가행렬이 도산서원에서 펼쳐진다. ◆개막제 및 본행사=다음달 5일 열리는 개막제는 오전 9시퇴계종택에서 퇴계 탄신을 알리는 고유제를 시작으로 서원에서는 오전 11시 숭모작헌례가 열린다.유교축제의 개막식은 오후 3시다.본 행사로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취푸(曲阜)예술단 초청공연이 열리고,연극 ‘퇴계선생 상소문’,하회선유줄불놀이 등이 국학진흥원과 강변행사장,하회마을 등지에서 펼쳐진다. ◆전시·영상 행사=유교사상과 문화를 소개하는 ‘유교주제관’과 퇴계선생의 일대기 및 학문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퇴계관’이 국학진흥원에 설치돼 행사기간 내내 운영된다. ◆국제학술행사=다음달 12일부터 13일까지 한국·중국·일본·베트남 등 유교문화권 11개국 56명의 학자가 참가,퇴계사상을 조명하는 ‘퇴계와 함께,미래를 향해’란 주제로 국학진흥원에서 열린다. ◆부대행사=정부인 안동장씨 추모여성서화대회(10.7),퇴계탄신기념국제무용제(10.8),초청연극 ‘차라리 봄도 꽃피지말아라’(10.12),창극 ‘흥부의 안동나들이’(10.20),무용‘천년의 춤’(10.21) 등이 계획돼 있다. 안동 한찬규기자 cghan@. ■“퇴계학맥이 독립운동 시발점”. ‘퇴계학맥의 독립운동’ 전시회가 26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안동대 박물관에서 열린다. 세계유교문화축제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이 전시회는 경북안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퇴계학맥의 독립운동을 소개하고있다. 개막식에서 안동대 박물관장 김희곤(金喜坤) 교수가 기념 강연을 통해 “한국 독립운동사의 시작은 의병항쟁이고 의병항쟁의 출발점은 1894년 안동에서 일어난 갑오의병”이라면서 “안동지역 독립운동이 한국독립운동의 출발점이요,발상지”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국가보훈처의 통계에 따르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인물은 모두 8,966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안동출신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250명으로 전체의 2.8%를 차지하고 있다”며 “1905년 이후 일제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끊은 인물 60여명 가운데 안동사람이 10명이나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안동의 의병항쟁을 이끈 주역은 보수를 넘어혁신을 지향한 유림들로 대부분 퇴계학통을 계승한 인물”이라며 “이같은 안동지역 독립운동을 유교문화의 결정체로 형상화 시키기 위해 안동구국기념관건립과 안동독립운동가 인명사전발간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동 한찬규기자
  • 독립기념관장 이문원씨

    정부는 6일 독립기념관 관장에 이문원(李文遠)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신임 이 관장은 3대에 걸친 독립유공자 집안 출신으로,지난 68년부터 중앙대 교수로 재임하였고,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비상임),광복회 회보 편집위원겸 논설위원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 관련단체에서 10여년간 활동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독립운동 러시아근거지 첫 확인

    러시아지역 최초의 한인마을이며 ‘13도의군’ 편성대회 장소로 추정되는 ‘지신허’를 비롯,러시아 극동지역의 한인독립운동 근거지 11곳의 위치[지도]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가보훈처는 31일 ‘러시아지역 독립운동사적지 발굴조사단'(단장 반병율 한국외대 교수)이 지난 7월 17일부터 20일간연해주와 아무르주,자바이칼주 등 러시아 3개주에 대한 현지조사를 통해 이같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특히 한일합방 직전인 1910년 6월 의병장 유인석장군과 홍범도 장군 등 항일의병 세력이 결집한 ‘13도의군'의 편성장소가 지신허이거나,여기에서 3∼4㎞ 떨어진 ‘자피거우’인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단은 이와 함께 시넬리코보 Ⅰ·Ⅱ,카자케비체바,니콜라예브카,블라디미르·알랙산도로브스코에,나홋카,다우지미,우지미,가이다막 등 모두 11개 한인마을의 위치를 찾아내 구한말 의병 및 독립운동단체,빨치산부대의 이동경로와 활동범위 등을 지도상에 표시할 수 있게 됐다.조사단은 또 초기 한인마을의 하나로 기록된 ‘동개터’가 현재의 나홋카임을 확인,국제적 무역항인 나홋카가 한인들에 의해 처음 개척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덧붙였다. 박찬구기자 ckpark@
  • [김삼웅 칼럼] 최익현과 ‘얼빠진’ 지식인들

    충남 청양에 모덕사(慕德寺)란 사당이 있다.해방후 환국한 백범이 임정요인을 이끌고 이곳을 찾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환국고유제(還國告由祭)를 지낸 곳이다. 고유제란 임정주석이 휘하 요인들과 함께 ‘정부가 조국땅에 돌아왔음’을 아뢰는 의식을 말한다.6·25전쟁후 피란지에서 서울로 환도한 국회의장 신익희도 국회의원들과모덕사를 찾아 ‘환도고유제’를 지냈다. 모덕사가 어떤 곳이기에 나라를 되찾은 임정 주석과 서울을 수복한 국회의장이 고유제를 지냈을까.“대한민국 28년(1947년)4월23일 후생 김구는 삼가 맑고 깨끗한 술을 따르고 향을 지피어 제사를 올리며 아뢰오니,춘추의 대의시며일월같이 높은 충절이었습니다”로 시작된 백범의 ‘환국고유제문’을 더 들어보자. “외로운 소자(小子)는 어렸을 때 스승의 가르침에 선생의 말씀을 받잡고 내내 잊지 못하였습니다.나라잃고 안팎의 난리속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선생의 위대한훈업에 격려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선생이시어!이제야 저의 힘을 다하여 산넘고 물건너서 여기선생의봉롱(封瓏)가까이 왔사옵고 산같이 높으신 뜻을 받들고 조촐한 차림으로 모시옵니다” ‘고유제문’의 주인공은 면암(勉庵) 최익현이다. 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키고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을사조약후 8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일으킨 의병대장,일본군에 체포돼 쓰시마(대마도)에 끌려가서도 단식으로 저항했던 지사,순국 뒤에 돌아와 묻힌 곳에 세운 사당이 바로 모덕사이다. 국적(國賊)을 포살한 안중근의사가 최후진술에서 “실로만고에 얻기 어려운 고금 제일의 우리 선생이다”,매천 황현은 “재상과 유림이 모두 한몸에 맺혀지니 해동(海東)천년에 공의 말만 있으리다”,중국의 원세개는 “굴원(屈原)과 개자추(介子推)를 합한 절의(節義)”라고 격찬했던 분이 면암선생 아닌가. 한말과 왜정시대에 자진(自盡)하거나 창의(倡義)한 분이많거늘 유독 면암의 사당에서 고유제를 지낸 까닭은 을사조약 후 전국 의병장의 9할이 그의 문도 출신이란 이유다. 이는 곧 “면암이 의병장을 낳고 의병장은 독립군을 낳고독립군은 항일투사를 낳고…” 독립운동사의 요람인 셈이다. 국민의 기억에서 멀어진 모덕사의 사연을 꺼낸 것은 면암을 지식인의 사표처럼 받들어온 우리 근대 지성 풍토가 너무나 크게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과거 행적으로 보아 ‘사회원로’로 대접받기 어려운 사람들까지 포함된 지식인들이 급조단체를 만들고 “옛 역사의 ‘낡은장부’를 뒤적이면서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는”운운하는시국성명을 발표했다.매명주의 속성의 지식인들은 탈세언론의 비호에 나서고,평양 8·15통일축전에 참석했던 또다른 지식인들은 돌출행위로 남남갈등을 촉발시킨다.이래저래 지금‘얼빠진 지식인’의 공해가 심각하다. 족벌언론의 탈세를 꾸짖고 색깔론 따위의 시대착오를 질책하고 남북화해를 기피하는 북측의 태도를 비판하면서,사회정의와 민족화합을 주도하는 것이 ‘원로’나 지식인의도리이고 책무이다.친일도,헌정파괴도,탈세도,곡필도,용공음해도 묻어두자는 무책임한 반지성의 목소리야말로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는”‘칼춤’이 아닐까. 진실을 밝히고 양심세력을 옹호하고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령일진대 칼 뺄 때와 붓 잡을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선악시비도 가리지 못하면서,먹구름 덮이면 단시론(單是論),햇볕들면 양비론,안개끼면 양시론을 펴는 허명의 군상들이 날뛴다.면암의 선비 정신을 아는가 모르는가. 위당 정인보는 왜정시대 다수 지식인들의 정신상태를 ‘얼빠진 상태’라 규정하면서 “얼을 남이 빼앗아가는 것이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잃는 것이라”지적했다. 그렇게 ‘얼빠진’지식인의 전통이 지금도 활개치는가. 김삼웅 주필 kimsu@
  • 향토사학자 추경화씨 “숨겨진 애국지사 찾아내 뿌듯”

    지난 15일 광복56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독립유공 포상자 111명 가운데는 이상수(李尙銖·애국장)선생·장학순(張學順·애족장)여사 등 2명이 포함돼 있었다.이상수 선생은 유명국 의병부대의 중군장 출신으로,1908년전후 경남 산청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돼12년형을 언도받고 옥중에서 순국한 의병장이며,장학순 여사는 1919년 3·1의거 당시 경남 남해 지방의 만세시위에참여했다가 일경에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순국선열들이다. 이들이 뒤늦게나마 포상을 받게된 데는 지역 향토사학자의 숨은 공로가 있다.주인공은 경남 진주에 살고 있는 추경화씨(秋慶和·50). 추씨는 경남지역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운데 관련자료 부족으로 독립유공 포상을 받지못한 인사들의 독립운동 자료를 찾아내 그동안 여러명이포상을 받도록 해왔다.이상수·장학순 선열 역시 그런사례다. 검정고시로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추씨는 각종 자료수집·관리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특히 독립운동사 분야에서는전문 연구자와 어깨를 겨룰만큼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자료를 자랑한다. 지난 95년에 펴낸‘항일투사 열전·1’은 부자·부부·형제 등 가문별 애국지사들의 면면을 꼼꼼히 엮어,애국선열 현창에 큰 기여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하동군의 의뢰를 받아‘하동지역 독립운동사’ 편찬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1929년 광주학생사건 당시 활동했던 한 여성애국지사(생존)를 찾아내기도 했다.추씨는 “경남일대의 항일운동사는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이 있다”면서 “향토의 자랑스런 역사를 힘닿는 데까지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외세지배·전쟁·분단…한국인 ‘恨’의 20세기

    ■20세기 한국의 야만/ 도서출판 일빛. 원로사학자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세기말인 지난해말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20세기를 ‘한(恨)의 세기’로 규정한 바 있다.그리고 ‘한’의 요체로 외세 지배와 분단을 꼽았다. 도서출판 일빛이 펴낸 ‘20세기 한국의 야만’은 부제 ‘평화와 인권의 21세기를 위하여’에서 보듯 지난 20세기가대다수 민중들에게 ‘한의 한 세기’였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돌이켜보면 지난 20세기는 인류의 물질문명이 극에달했던 시대이면서도 극단적인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폭력과 전쟁,대량 학살과 고문 등으로 얼룩진 유례없는 ‘폭력의 한 세기’이기도 했다.과학기술은 인류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일면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의 무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세기에는 크고 작은 전쟁과 혁명이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았다.이 과정에서 폭력은 전쟁과 혁명의 동반자였다.한나 아렌트는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는 폭력”이라며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규정한 바 있다. 20세기의 한국도 ‘폭력의 세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전반부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고난의 역사’를 감수해야 했으며,후반부 반세기는 이념갈등과 냉전의 와중에서 다시 그같은 역사를 되풀이 해야만 했다.실로가혹한 한 세기였다. 이 책은 제국주의·분단·전쟁·독재·자본의 폭력과 야만의 역사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를 다루고 있다.크게 나눠 제1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제2부는 ‘분단·전쟁·독재의 야만’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는 총7편의 글이 실려있다.지수걸(공주대 교수)은일제시대 대표적 악법인 치안유지법과 고등경찰제도가 독립운동가들과 식민지 조선인들을 탄압한 실태를,이정은(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3·1의거 당시 일제의 조선인 탄압실태를 살폈다.또 홍진희(역사를 생각하는 모임 회장·미림여고 교사)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실태를,김민영(군산대 교수)은 일제말기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실태및 전후보상 문제를 다뤘다.강정숙(정신대연구소 연구원)은일본군 성노예(정신대)문제를 여성운동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이밖에 정순훈(배재대 교수)은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위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최일출(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은 한국인 원폭피해 문제를 다루면서 피폭자들의 인권회복과 과오 재발방지 차원에서 전후보상 문제를 제기하였다. 제2부는 전후 1945년∼60년까지 국가형성과 6·25전쟁기,그리고 전후 반공이데올로기 체제 아래서 자행된 폭력과 학살문제를 다뤘다.강창일(제주4·3연구소장·배재대 교수)은 미 군정기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제주4·3사건’을,허만호(경북대 교수)는 6·25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문제를각각 국가폭력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또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는 ‘노근리사건’을 통해 한국전 당시 미국범죄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김동심(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은 해방후 미군이 이 땅에 진주한 이후 오늘까지의 미군범죄 55년사를 망라,미군이 이 땅에 남긴 고통과 상처와 한의 실체적 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있다. 이밖에정태영(건국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판 매카시즘 광란과 그 대표적인 희생 사례로 ‘조봉암사건’을 다루었으며,오유석(성공회대 연구교수)은 ‘피의 화요일’로 상징되는 이승만 정권의 ‘백색테러’의 야만성에 촛점을 맞췄다.학술전문서가 아닌,대중교양서로 만든 이 책은 각 사건의 전반적 개요,실상,의미 등을 소개하면서 독자의 추가적인 지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참고문헌도 곁들였다.1만3,800원.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매일 첫 발굴 항일독립운동사 2題

    ■단재 신채호선생 화장터 찾아냈다. [베이징·뤼순 김삼웅주필] 대한매일신보 창간 97주년을맞아 대한제국시대 본보의 주필을 역임한 민족주의 사학자단재 신채호선생의 시신을 불태운 화장터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중국 뤼순(旅順)시 용하서(龍河西)삼리교(三里橋)부근의옛 화장터가 그곳이다. 뤼순감옥에서 시내쪽으로 1Km지점 8천여평부지에 자리잡은 건물에 일제가 감옥전용으로 설치한 화장장이다.당시의 건물이 퇴락한 채 남아있다. 잡초가 무성한 한켠에 세워진 화장장 건물 2동은 지금 건축 자재를넣어두는 창고로 변했다. 기자를 이곳에 안내한 반무충(潘武忠)대련뤼순 감옥 연구원(52)은 최근까지 일제 말기에 화장장에서 일해온 사람(중국인)이 살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일제는 뤼순감옥에서 옥사하거나 처형한 항일지사들을 이곳에서 화장하였다고 전했다. 단재에 앞서 안중근의사는 뤼순감옥에 갇혔다가 1910년 3월26일 형이 집행되어 순국했다. 안의사의 유해는 형무소공동묘지에 매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상태이다.안의사가 순국하고 8년후인 1928년 단재선생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6년 2월18일 뇌일혈로 의식을 잃고 2월21일 오후 4시20분 의식불명으로 유언을 남기지 못한채 이국땅에서 옥사하였다. 향년 57세. 단재는 다음날 오전 11시 뤼순화장장에서 한줌 재로 변해달려간 부인 박자혜여사와 어린 아들 수범 그리고 동지 서세충(徐世忠)에 의해 고국으로 운구되었다. 박자혜 여사가 1936년 ‘조광’제4호에 쓴 ‘가신 임 단재의 영전에’는 남편을 이국의 화장터에서 불사른 당시의 애틋한 정경이 그대로 전한다.(다음은 글의 뒷 부문) “지난 2월18일 아침이었지요, 아이들을 밥해 먹여서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전보 한장이 왔습니다. 기가막힙니다. 무엇이라 하리까. 어쨌든 당신이 위급한 경우에 있다는 것이라 세상이 캄캄할 뿐이나 그저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어떻게 되든 간에 수범이를 데리고 그날로 당신을 만나려고 떠났습니다. 뤼순형무소에 닿기는 그 이튿날-2월19일 오후 세시 십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벌써 의식을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5년이나 그리던 아내와 자식이 곁에 온 줄도 모르고당신의 몸은 푸르뎅뎅하게 성난 시멘트 방바닥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지요. 나와 수범이는 울지도 못하고 목메인채로 곧 여관에 나와서 하룻밤을 앉아서 새우고, 그 이튿날 아홉시 되기를 기다려 다시 형무소에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고 면회를 거절하겠지요. 물론 비참한 광경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관리들의 고마운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세상을 아주 떠나려는 당신의 임종을 보지 못하는 모자(母子)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정말 당신은 2월21일 그날 오후 4시20분에 영영 가버리셨다고요. 당신의 괴로움과 분함과 설움과 원한을 담은 육체는 2월22일 오전 열 한시, 남의 나라 좁고 깨끗치 못한 화장터에서 작은 성냥 한 개비로 연기와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이여! 가신 영혼이나마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kimsu@. ■백암 박은식 서거 호외도 입수.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임정기관지 ‘독립신문의 주필과 사장에 이어 임정 제2대대통령을 역임한 백암 박은식선생의 부고를 알리는 독립신문 호외가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백암 선생은 대한매일신보 창간 직후인 1905년 본보의 주필을 역임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강제합병직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과 역사연구에 생애를 바쳤다. 기자는 허중전(許中田) ‘인민일보’주필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중 베이징에서 지인을 통해 ‘독립신문’의 호회를입수했다. 대한민국 7년(1927)11월2일자로 발행한 이 호외는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과 ‘독립신문’의 주필·사장을지낸 백암선생의 부음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 신문의 호외판형으로 앞면에 “전 임시 대통령 박은식 각하 서거”란 제목으로 “전 임시대통령 박은식각하께서 수월 전부터 노환으로 요양중에 계시다가 마츰내 약석(藥石)의 효(效)를 진(秦)치 못하야 작일 하오7시 상해 ○○의원에서 문득 서거하시니 향수가 67세시라.”란 부음 기사를 싣고 있다. 특히 이 호외에는 백암선생이 임종때에 남긴 ‘위촉(유언)’을 공개했다. 첫째, 독립운동을 하려면 먼져 전족적(全族的)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고 둘째, 독립운동을 최고운동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하여는 어떠한 수단방략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고 셋째, 독립운동은 오족(吾族)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운동동지간에는 애증친소의 별(別)이 없어야 된다는 우국충정의 유훈이 실렸다. 백암 선생의 서거를 맞은 임시정부는 최초로 장의를 국민장으로 할것임을 호외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장례날과 장지는 미처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호외를 발행했음이 드러났다. 임정은 11월4일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유해를 상하이 정안길로(靜安吉路)공동묘지 600번지에 안치하였다.(현재 동작동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안장) 백암 선생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독립신문’이 11월11일자 전면에 추모특집을 꾸민 것을 비롯 중국의 ‘중화보(中華報)’, ‘상해화보(上海畵報)’등에서 선생의 죽음을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애도해 마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이상재·권동진·김성수등이 ‘고 박은식씨 추도발기회’를 결성하고 동아일보에서는 ‘곡 백암 박부자(朴夫子)’란 사설을 싣기도 했다. 1946년 대한매일의 전신서울신문사에서 백암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하였으며, 현재 대한매일과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의 공동작업으로 박은식·양기탁전집이 준비되고 있다. kimsu@
  • [김삼웅 칼럼] ‘일왕의 음모’에 도사린 음모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둘러싸고 현해탄의 파고가 높아간다.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대만 등 과거일제 침략을 당한 많은 나라가 일본의 ‘신군국주의 교과서’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동북아 평화질서를 교란하는 일본의 처사에 분노가 치솟는다. 일본은 전후 미국의 핵우산 아래 급속히 경제성장을 이루는 한편 ‘전범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침략주의보수본류세력이 지금까지 일본사회를 지배해왔다. ‘도쿄재판’으로 A급전범 몇명이 처형됐지만 미국이 주도한 재판이고 그나마 미·일간의 유착으로 최소한에 그쳤다. 일본군국주의 만행이나 독일·프랑스 등과 비교할 때 형식적인 처리에 불과했다. 오늘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은 여기서 배태되고, 한국이 친일세력을 척결하지 못하여 수구세력이 득세한 것과 비슷하다. 흔히 일본의 이중성을 비판하여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제시되지만 일본의 이중성과 교활성은 ‘일왕의 음모’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일본 왕실은 은밀하게 우수한 인재를 골라 미국에 유학을보냈다. 패전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여 일본의 로비스트로 육성하려는 원려지계(遠慮之計)였다. 실제로 패전후 이들의 역할은 대단했다. 일본을 잘 모르는 미국은 이들의 자문으로 전후처리에 나섰다. 일왕(천황)제 유지, 전범처리최소화 등 일본의 명운에 크게 기여하고 전후 복구와 미·일동맹관계에도 역할을 했다. 전쟁을 준비하면서 적국에 간첩이 아닌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 그것도 왕실에서 은밀히 추진한 저들의 이중성과 교활함에 전율을 느낀다. 도쿄의 고서점가를 둘러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의 저력은고서점에서도 찾게 된다. 도쿄중심지의 최신건물에 진열된어마어마한 고서들, 분야별·국가별·전문서적을 갖추고 그것이 사업으로 번창하는, 일본독서층을 볼 때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1900년대 초기에 한국의 가축, 도로, 하천, 귀신, 무당…등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전문분야를 연구하고 출판하고 보존·유통하고 있다. 일제의 한국병탄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연구하고 준비하여 먹어삼킨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한국의 족보를 연구하는 사람이 수십명이라고 들었다. ‘족보’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저들의 한국연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치열하고 치밀하다. 우리는 어떤가. 사학자들은 너도 나도 독립운동사에 매달린다. 국가정통성에서 볼때 중요하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보다 몇십배 많은 친일파·매국노문제를 본격적으로, 필생의과제로 연구하는 학자는 드물다. 유학이라면 대부분 미국행이다. 서울대교수 64%가 해외유학출신이고 미국이 전체 유학파의 78.6%다. 미국으로 가야 출세가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군국주의는 누가 뭐래도 갈데까지 갈 것이다. 우리 정부의 군사교류 중단이나 문화개방연기, 일본함정입항불허 등 대책이나 국민의 규탄시위로 시정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김치 하나라도 ‘기무치’를 이기는 전략과 치밀함이다. 세계적 석학 앨빈 토플러가 정보통신 정책연구원의 의뢰로청와대에 제출한 ‘발전전략’에는 음미할 대목이 많다. “한국정부는 민간기업 및 대학과 공동으로 ‘바이어벤처펀드’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이 펀드를 통해 미국·유럽·중국지역의 최첨단 생명공학 신생업체 100곳을 선정, 한국과학자와 대학원생이 연구에 공동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투자해야 한다. 투자과정에서 일부 손실이 발생하겠지만 가장 진보된 지식영역에 한국을 진출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는 내용이다. ‘일왕의 음모’에 비교할 바 아니지만 정부나 기업, 민간단체들이 서둘러야 할 지적이다. 일제가 침략하던 100년전과 비교하여 지금 우리는 무엇이얼마나 변했는가. 국토는 여전히 두동강이고 정쟁에 날이저물고 수구언론은 족벌이해에 얽혀 사회정의와 민족문제를왜곡한다. 일본을 깊이 알자. ‘일왕의 음모’속에서 또 무엇이 ‘음모’되는가를. 김삼웅주필 kimsu@
  • 장세윤 성균관대 교수 “”독립기념관 예산·사업 독립을””

    지난 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을 계기로 민족·역사교육을 위해 국민성금을 모아 87년 개관한 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이 정부의 무관심과 과도한 인력·예산감축 등으로 인한 위상·역할축소로 제기능을 다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장세윤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최근 한국민족운동사학회가간행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27집에 기고한 ‘독립기념관의 자료수집 현황과 과제’라는 글에서 “국민적 사회교육기관인 독립기념관이 설립초기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못한채 극도로 위상이 축소됐다”고 지적했다.장 교수는 독립기념관 개관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독립기념관은 120만평의 부지와 세계적규모의 전시관 등 하드웨어는 국제적이나,자료수집·관리·전시 및 연구,대중화 작업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극도로 빈약하다는 것이다.이중 장 교수가 가장 크게 지적하는부분은 전문인력 부족이다.개관 당시 연구직은 정원 171명중 32명에 이르렀으나 그동안 8차례의 직제개편,구조조정으로 현재는 8명(독립운동사연구소4,전시부3,교육사업추진단1)뿐이다.독립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얘기가 나올때마다 연구소 폐쇄나 연구인력 축소가 제일 먼저 나온다”고 말했다. 예산축소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87년 개관 당시에는 자료수집비로 1억2,000여만원이 책정돼 있었으나,해마다 줄어 98년의 경우 1,960만원으로 연간 2,000∼3,000만원대 정도다.장 교수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성균관대 박물관의 99년도 유물구입비가 1억7,500만원이었다고 소개했다.한 현직연구원은 “규모는 국제적으로 세워놓고도 당국은 독립기념관을 마치 천안소재 지방기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면서“‘적자’ 운운하며 일반관공서식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기념관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웃 일본의 경우 지난 70년대 세계화 추진과정에서도쿄와 오사카에 국립역사민속박물관,세계민족학박물관을각각 건립하면서 직원의 절반 이상을 연구인력으로 구성하고, 지속적인 자료수집과 연구활동으로 학술적 성과는 물론일반국민 교육에도 큰 성과를 거둬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독립기념관의 경우 조직이 점차 관료화된데다 전문인력·예산부족으로 자료수집은 물론 소장자료에대한 정리(내용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예로87년 개관 당시 4만3,412점이던 소장자료가 개관 13년이 지난 작년말 현재 6만9,020점에 그치고 있다.소장자료중 독립운동가들의 수기·일기류 100여점은 아직 정리조차 제대로하지못한 상태다. 장 교수는 “현재의 인력·예산상태로는 기념관이 제기능을 다하기 어렵다”며 “위상제고와 함께 예산·사업계획편성의 자율권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한 역사학자는 “독립기념관은 국민통합적 기능을 가진 국가차원의 교육·전시기관인만큼 전문인력 주도의 문화공간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오늘의 눈] 日 왜곡 교과서 전시는 당연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사 왜곡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이독립기념관 주최로 15일 서울 광화문 갤러리와 독립기념관에서 동시에 개막됐다.매우 뜻깊은 행사다.전시물 중에는 문제가 된 검정본 8종 등 일본의 역사왜곡 실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들이 많다.1870년대의 교과서를 보면 임나일본부설등 역사왜곡이 오래전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행사는 당초 10일 개막될 예정이었다.그러나 관계당국이 “일본정부와 대화를 하는 중인데 괜히 국민들을 흥분시키기보다는 관망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만류’하는 바람에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독립기념관측은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고,독립기념관마저 이 일을 안하면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에게 할 도리가 아니며,우리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안타까운 일이다. 상대방이 있는 외교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나 매사를 그런 시각으로 접근하다 보면 자칫 국가위신을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독립기념관은 지난 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국민적 공분에서 태동됐다.온 국민의 참여로 4년여에 걸쳐모인 성금 500여억원을 토대로 87년 8월15일 문을 열었고 4개월 동안 400만명이 관람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개관 당시 연구직이 32명이었고 자료수집예산은 1억2,000여만원이었다.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연구직은 8명,자료구입예산은 1,960만원으로 줄어들었다.독립운동사를 연구하기에는 담당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반면 일본은 82년 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 주변국들의 비난을 무마한 뒤 최고액권인 1만엔짜리 지폐의 인물을 쇼토쿠 태자에서 제국주의침략이론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로 바꾸는 등 의뭉스러운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한반도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됐던 19세기 말을,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는 요즘에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대비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될수 있다.“거짓역사를 가르치는 나라는 망한다”지만 역사를 경시하는 나라도 어찌 흥할 리가 있겠는가. 김주혁 문화팀 차장 jhkm@
  • 국가보훈처, 美 첩보전략국 ‘냅코작전’자료집 출간

    일제말 미 첩보전략국(OSS)의 한반도 침투계획인 ‘냅코작전(Napko Project)’ 관련자료가 집대성돼 출간됐다. 국가보훈처는 최근 미국에서 새로 입수된 자료 등을 모아‘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시리즈 제24권으로 발행했다. 대모험을 꾀한다는 ‘nap’과 ‘Korea’를 합쳐 만든 용어로 보이는 ‘냅코작전’은 1944∼45년 당시 미국의 특수공작기관인 OSS가 잠수함과 낙하산으로 한반도에 특수요원을 침투시켜 정보수집,거점확보,태업 등의 활동을 벌이려했던 작전이다. 이는 중국에서 광복군과 협동해서 추진했던 ‘독수리작전’과 함께 OSS의 가장 대표적인 대일 특수작전으로 불리고 있다.이 작전은 미국이 태평양전쟁을 조속히 끝내기 위하여 추진한 것으로,재미한인들이 출기차게 요구한 한인 게릴라부대 창설요구와 그에 따른 특수부대 운용경험과 항일운동에 몸바치려는 미주지역의 애국동포들이 존재했기에가능한 것이었다. 재미한인들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직후 중국 중경의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과 결합하거나 아니면 재미한인만으로 독립적인 한인부대 또는 게릴라부대를 창설,대일특수전·정규전에 자신들을 투입시켜 달라고 미군당국에 끊임없이 요청했다.당시 미국은 CIA의 전신인 COI(정보조정국,1941년7월 창설)를 통해 중국에서 대일정보를 수집하는 계획을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승만(李承晩)을 통해한인들과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한편 냅코작전은 1944년 중반 이후 장석윤(張錫潤·97·전 내무장관·경기 일산)이 위스콘신주 맥코이 포로수용소에 들어가 한인공작원의 명단을 확보하고 대강의 계획을수립하면서 본격화됐다.이 작전에는 장석윤·유일한(柳一韓·유한양행 설립자) 등 재미한인 10명,김현일 등 한인포로 6명,박순동(朴順東) 등 학도병 출신 3명 등 총19명의한인요원들이 참가하였다.이번 자료집에는 학도병 출신 3인이 버마에서 일본군을 탈출,이 작전에 참가하는 과정을보여주는 자료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냅코작전에 참가한 한인들을 연령별로 보면 20대 3명,30대 8명,40대 6명,50대 2명 등이며,이들은 안정된 삶을 추구할 수 있음에도 위험한 임무에 자원했다.특히 재미한인출신 변일서(邊日曙)의 경우 대일전 참전을 위해 합의이혼을 했으며,이근성(李根成)은 공작원으로 침투하기 위해 미간의 사마귀 제거 성형수술을 받기도 했다.이들은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한 섬에서 3∼4개월간 유격훈련·무선훈련·폭파훈련 등은 물론 침투용 잠수정을 제작,가상훈련까지 마친 상태였다.그러나 아깝게도 일제의 패망으로 이들의한반도침투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자료집의 해제를 쓴 정병준(鄭秉峻)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이들이 실제 전쟁에서 미친 영향은 미미했으나,태평양전쟁 말기 재미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 찬란히 빛날 공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이들의 항일투쟁활동은 재미사학자 방선주(方善柱) 박사의 자료발굴로 90년대 들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이들 가운데 독립유공 포상을 받은 사람은 유일한 등 5명에 불과하다. 정운현기자 jwh59@. * 냅코작전 참여 장석윤은. ‘냅코작전’의 핵심인물로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장석윤(張錫潤·97·경기도 고양시 거주)전내무장관은 “원폭투하로 일본이 항복하면서 한반도침투계획이 수포로돌아갔다”고 아직도 아쉬워했다. 1904년 강원도 횡성 출생인 장씨는 1923년 도미,밴더빌트대에서 수학·지질학을 전공한 뒤 LA한인사회 등에서 활동했다. 1942년 5월 미 육군에 입대하여 미군 첩보전략국(OSS) 1기생으로 졸업한 장씨는 1944년 7월까지 중국,버마,인도전구(戰區)에서 이승만 박사와 중경 임시정부,미군 사이의 연락관을 지냈다. 이후 OSS가 추진한 ‘냅코작전’에 참가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각종 특수훈련을 받았으며,나중엔 교관으로 근무했다. 해방후 귀국,미24군단 G2(정보처)에서 3년간 근무한 그는 이승만 정권 하에서 내무부 치안국장,내무부장관을 거쳐3·4대 민의원을 역임했다.그와 함께 ‘냅코작전’에 참가했던 인사 가운데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작고)은 지난 95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으나 그는 아직 미포상 상태다. 그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9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조금 불편한 것 이외에는 건강도 좋은 편이다. 슬하에 딸만 넷을두었는데 심상필 홍익대 총장이 둘째,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세째사위다. 정운현기자
  • [발언대] 박차정의사 동상 6년만에 건립… 가슴 뿌듯

    3·1독립만세운동 82주년을 맞이한 올해 우리 부산시민은한껏 애국시민으로서의 자긍심과 부산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역사적 호재를 갖게 됐다.그것은 다름아니라우리 부산시민의 정성과 뜻을 한데 모아 그동안 추진해 왔던 부산의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인 박차정 의사의 동상건립이 완공, 3월 1일 금정문화회관 만남의 광장에서 그 역사적인 제막식을 거행한 것이다.전 시민이 함께 의사의 애국혼에 경의를 표하고 기쁨을 나누었다. 박차정 의사는 동래에서 태어나 일찍이 일신여학교(동래여고 전신)에서 신지식을 깨우치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저 머나먼 중국땅에서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 항일운동을 주도했다.박 의사는 무장항일투쟁(중국 강서성 곤륜산전투)의 선봉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중 부상을 입고 1944년 5월 27일 그토록 열망했던 조국광복과 일본의 패망을보지 못하고 순국했다.참으로 우리 부산의 자긍심이요 자랑이며,부산시민의 정신적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난 95년 유관순 열사와 같은 훈격인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해 여사의 공훈록이 발간됐다.같은 해에 박차정 의사 숭모회가 창립되었으니 여사의 동상건립 준비가 본격화된 이후 실로 6년만에 제막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부산 시민은 모두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하신 여사의 숭고한 애국혼과 위훈을 내고장 부산의 시민정신으로승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하겠다.또한 박 의사의 생가복원과기념관 건립 등 산적한 과제들도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우리 시민의 역량을 다시 한번 결집해야 하겠다.부산은일제의 대륙침략 병참기지로 그들의 수탈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던 곳으로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55주년 8·15광복절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광복기념관이 개관돼 독립운동사와 민족정기 선양의 산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이밖에 동래읍성지 내 마안산 정상에 우뚝선 부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과,구포대교 옆 구포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탑,어린이대공원 내 박재혁 의사동상 등 이미 많은 독립운동사적이 건립됐다.또한 ‘기장지역 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의 건립이 추진되고 있음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영원 부산보훈청 급여계장
  • “”해외 한국학자료 이전 사업 심혈””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그러나 해당 정부부처나 관련 학계를 뜯어봐도 별다른 알맹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간판만 내건 채 또 한 세기를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긴다.이런 와중에 예산당국과 국회의 박수를 받으며 새사업을 펼치는 정부기관이 있어 주목된다.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바로 그곳이다.청사 맞은편 산기슭에 흰눈이희끗한 가운데 봄소식이 기다려지는 13일 오후 과천 청사로이성무(李成茂·64)위원장을 찾아가 금년도 사업계획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올해 국편이 1946년 발족 이후 최대규모의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안다.주요사업의 구체적인 내용과 예산규모는? 크게 세가지 사업을 금년부터 장기계획으로 시작한다.우선 해외에 산재한 한국학 관련자료 이전사업을 5년계획으로 추진중이다.1차년도인 금년 예산은 10억원이다.또 10개년 계획으로 ‘승정원일기’ 전산화작업을 추진중이며 예산은 8억9,000만원을 확보했다.관련학계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남북한 역사학술회의 예산으로 2억4,000만원을 배정받았다.■해외한국학자료 이전사업은 중복작업으로 인한 예산·인력낭비라는 비판에 종지부를 찍는 대역사로 기대된다.이전자료의 내용과 대상지역은? 기본적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나자료가 집중된 미·일·중·러 등 4개국에 집중될 전망이다. 대상자료는 한국학 분야 가운데 독립운동사,이민사,각국과의교류사 등이 예상된다. ■해외 자료수집 관련,정부내 관련 기관과의 협조체제는 어떤가? 대통령령에 따르면 국편이 이 사업을 조정하도록 돼있다.지난해 정부내 9개 관련의 기관장회의와 실무자회의를신설,업무를 조정하고 있다.우선 각 기관이 독자적으로 해외에서 입수한 자료의 실태를 파악,목록 작성부터 협력해 나가고 있다.기관별 성격에 따라 특성에 맞게 자료 입수를 조정하며 필요하면 국편이 배정받은 예산을 각 기관에 나눠줄 계획이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예산당국과 국회로부터 박수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 전례없던 일이라 초창기 예산당국자를 이해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그러나 이 사업의 의의를 끈질기게설명한 결과 예산당국도 납득하고 ‘줄곳에 마땅히 (예산을)줬다’는 반응을 보였다.국회에서도 여야 모두 반대는 커녕 오히려 예산을 더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었다. 국편 발족 이후 최대규모의 예산을 확보한 셈이어서 보람과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승정원일기’ 전산화작업은 문화사적으로 어떤 의미를갖는가?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승정원에서 매일 그날의 주요 국사(國事)를 기록한 것으로 당시대의 원전자료다.‘실록’의 4배에 달하는 분량(2억4,250만자)으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기록이다.이미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도 신청했다.역사자료 전산화 차원을 넘어 우리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콘텐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 관련자료도 입수예정인 것으로 안다.어디서,어떤 자료가 얼마나 입수되나? 종교계 인사들이국내 탄압을 피해 독일,일본 등으로 내보내 보관해오던 자료를 영구 보관하기 위해 국편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컨테이너 1개 분량으로 금년중 들어올 계획이다.정리가끝나는대로 국내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남북한 역사학 교류사업은 어떻게 추진하며,현재 진척정도는? 북한 민화협을 통해 이같은 의사를 북한 역사학계에 전달했으며,북한 역사연구소와 당 역사연구소 소장 앞으로 각각 편지도 보냈다.학술교류 주제와 발표자는 국내 통사(通史)학회 회장들과 의견을 모아 선정하고 있다.‘북한관계 논저목록’을 금년중 CD롬으로 펴낼 계획이다.아직 북측에서 답변이 오지는 않았으나 중국 등 제3국에서 행사를 개최하는방안도 검토중이다. ■역사학자이자 공직자로서 연구활동 외에도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려움은 없나? 요즘은 나를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간다.청와대,감사원,지방도 수없이 다니며 특강을 했다.(26일에는 총리실 특강이예정돼 있다.)기본적으로 역사학자는 대중속에서 숨쉬고 또연구성과를 나눠야 한다고 본다.60이 넘으면서 대중용 역사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 이위원장 약력 △문학박사 △1937년 괴산 출생 △60년 서울대 사학과 졸업 △65년 서울대대학원 졸업 △75년 국민대교수 △81년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93년 〃 한국학대학원장 △96년 〃 대학원장 △98년 〃 부원장 △99년 국사편찬위원장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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