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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주국경찰사’ 국내 첫 번역

    한 민간 사업가의 노력으로 ‘만주국경찰사’(이하 ‘경찰사’)가 국내 처음 번역됐다.‘경찰사’는 일본의 만주국 건국(1932년 중국 둥베이 지방) 10주년을 기념할 목적으로 만주국 치안부가 편찬한 일종의 식민통치 자료다. 건국 원년인 1932년 3월부터 40년 12월까지 9년간 만주국의 치안상황을 기록했다. 번역된 ‘경찰사’는 89년 10월 중국 ‘길림성공안청공안사연구실’이 치안부의 일본어 원본을 중국어로 비공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글로 옮긴 것이다. 국내 몇 안 되는 만주국 연구자들이 일본어 혹은 중국어 원문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던 ‘경찰사’ 번역에는 이상규(66)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 후원회’ 회장의 노력이 컸다. 이 회장은 96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후원회를 결성, 조선족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벌여왔다. 길림성공안사연구실의 일본어 원문 번역에 참여했던 사람 가운데 마침 이 회장이 장학금을 준 조선족 학생의 아버지가 있었고, 그가 보답 차 이 회장에게 비밀리에 중국어 번역본을 건넸다. 한국어 번역도 그가 직접 맡아 했다. 책에선 우리나라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중요한 기록들도 발견된다.32년 항일유격대가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산하에서 조직돼 이듬해 ‘동북인민혁명군’으로, 다시 36년에 ‘동북항일연합군’으로 발전해간 과정과 활동 동향이 비교적 상세히 소개돼 있다. 특히 38년까지 만주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항일부대인 ‘조선혁명군’이 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해서도 독자적 조직을 유지했다는 기록은 조선혁명군 성격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박사는 “독립운동사 문헌이 항일투쟁사적 관점에서 기록된 것들이 대부분인데,‘경찰사’는 지배세력이 항일세력을 제압해나간 정황을 기술했다는 점에서 신빙성 높은 자료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Seoul In] 서대문역사관 체험 프로그램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현장체험 프로그램인 ‘일요 상설 해설 투어’를 운영한다. 매주 일요일 오후 1시와 2시에 진행하며, 청소년들에게는 우리나라 근대 격동기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 가족나들이객에게는 특별한 주말을 안겨주는 좋은 기회이다. 서울KYC(청년연합회)에서 독립운동사 교육과 현장실습을 마친 자원봉사자가 전문 해설사로 배치된다. 문의와 예약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360-8590∼1, 서울KYC 2273-2276.
  • [부고] 북한연구가 김창순씨 별세

    [부고] 북한연구가 김창순씨 별세

    대표적인 1세대 북한 연구가인 김창순 북한연구소 이사장이 3일 오후 7시34분께 숙환으로 별세했다.88세. 고인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광복 후 북한에서 평북신보사와 평북인민보사 주필, 신의주 동방사회과학연구소장, 북조선기자동맹 창립중앙위원, 민주조선사 총무국장 등으로 언론계에 종사하다 1949년 평양특별검찰소에 의해 검거됐으나 이듬해 이송 중 탈출, 월남했다. 이후 북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내외문제연구소 초대 소장,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 북한연구소 이사장, 내외통신 이사장, 북한학회 부회장,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 한국통일문화진흥회의 부회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진용주씨와 딸 경희씨 등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발인은 5일 오전8시, 장지는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02)3010-2294
  • 서대문형무소 ‘역사교육 메카’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교육 메카’로

    한국 독립운동사의 성지로 알려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역사교육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 22일 서대문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때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은 서대문형무소를 역사관으로 꾸민 뒤 일본 청소년 수학여행단 등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역사관을 찾은 수학여행단은 헌화와 추모를 하고 올바른 역사의식과 한·일 관계를 정립하는 기회를 갖는다.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현장에서 체험하며 자국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를 익히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기업의 직원 연수 프로그램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기아자동차 직원은 지난 9월부터 70여차례 3000여명이 찾아 역사관에서 전문 도슨트(해설·안내인)들의 해설과 안내를 받으며 독립운동 배경과 진행과정, 역사적 의의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구 관계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되는 것은 그동안 한국독립운동사의 올바른 이해와 저변 확대를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도슨트들의 정확한 해설을 기초로 한 체험형 관람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대문형무소 체험 관련 정보는 역사관 홈페이지(www.sscmc.or.kr/culture2)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15일까지 서대문형무소예술제

    서대문구는 13일부터 15일까지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고 참여하는 ‘제7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예술제’를 연다고 12일 밝혔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보다 친밀한 공간으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행사이다. 13일 오후 7시에 서대문청소년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가수 이용복의 공연으로 개막행사가 열리고, 이어 영화 ‘다이하드4’를 상영한다.14일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되는 공연에서는 성악가 김동규, 가수 양희은을 비롯해 ‘거리에서’ ‘널 사랑하겠어’ 등의 히트곡을 낸 그룹 동물원, 사물광대, 비보이팀 맥시멈 크루 등이 출연한다. 뮤지컬 갈라콘서트팀은 맘마미아, 미스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토요일 밤의 열기 등 뮤지컬 주제곡을 들려준다. 예술제 마지막날인 15일에는 오후 2시부터 우리가족 신문만들기, 어린이예술경연대회 등 다양한 참여마당이 준비돼 있다.14일까지 문화체육과(330-1410), 서대문문화원(3217-1592)에 전화로 신청하면 참가할 수 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15일 독립기념관 개관20돌 김삼웅 관장

    15일 독립기념관 개관20돌 김삼웅 관장

    9일 오후 독립기념관(충남 천안시)은 23회(피랍자 23명 상징)의 종을 울렸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들의 무사귀환과 명복을 비는 뜻에서였다. 같은 날 폴란드 아우슈비츠국가기념관, 인도 네루기념관 등 4개국 5개 평화기념관 대표들과 ‘반침략 평화선언’을 했다. 지구상에서 더 이상 전쟁과 테러, 폭력과 인권유린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지난달 말 미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을 땐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3월엔 결의안을 무산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로비에 흔들리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과거를 기념하는 독립기념관이 현실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고 전시하는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현재화·미래화하고 있는 것이다. 김삼웅(65) 관장은 “유물 전시하고 관람객 안내나 하는 게 독립기념관 역할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15일 광복절이면 독립기념관이 개관 20주년을 맞는다. 김 관장 또한 9월이면 3년 임기를 꽉 채운다. 재임 기간 동안 김 관장은 ‘독립’을 재정의해왔다. 광복절을 맞아 그가 말하는 ‘독립’의 현재적 의미를 들어봤다. ●“통일 없인 독립도 없다” 취임 후 김 관장의 주된 관심사는 독립기념관 안팎의 ‘리모델링’이라 할 수 있다. 노후한 전시관을 현대적 기법으로 교체하고, 지역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3·1절 버스투어’와 ‘찾아가는 독립기념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역사용어 바로잡기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을사보호조약’을 ‘을사늑약’으로 바로잡았고, 독립운동가 상을 제정했다. 기념관 내 친일인사들의 물품을 철거했고, 비정상적 직원채용 관행을 바로잡아 노사갈등을 치유했다. 최하위를 달리던 정부 경영평가도 4단계 상승했다. 김 관장은 그러나 기념관 외형 개선보다 역할 재조정에 더 큰 방점을 찍었다.‘독립’과 ‘통일’의 연계작업이 대표적이다.‘민족주의 조선민족 반일투쟁’ 학술심포지엄 차 7월초 북한을 방문한 그는 조선혁명박물관과 자료교류협정을 맺었다. “남북이 가장 쉽게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게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는 거예요. 독립은 통합과 통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이번 달부터 나오는 신채호 전집도 북한 자료를 지원받아 출간합니다. 남북한 독립운동사 공동연구는 독립기념관이 통일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작은 역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가 통일을 중시하는 것은 “통일 없인 진정한 독립도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 관장은 “남북으로 쪼개진 절름발이식 국가체제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이 염원했던 독립과 상충된다.”면서 “21세기 세계화 파고 속에서 민족역량 강화와 자주권 수호는 통일된 민족국가로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2차 남북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일본의 독도침탈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을 지켜보면서 언제까지 남북이 서로 적대시만 할 겁니까. 이번 정상회담이 통일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통일을 위한 협력은 시대적 당위입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무장해제론” 김 관장은 최근 기세를 높이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의도나 배경을 잘 꿰뚫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강화와 평화헌법 개정 흐름이 커지고 있잖아요.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했고, 교육법을 개정해 정부가 직접 역사기술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칼을 가는데, 우리는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있는 겁니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에 일본이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김 관장은 ‘한국 사학계의 과도한 민족주의가 선진화를 가로막는다.´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논리에도 날을 세웠다. 그는 “그들이 선진국이라 말하는 미국이나 유럽은 역사적으로 더 이상 민족주의가 필요 없는 곳”이라면서 “반면 일본과 중국이 점점 더 보수화되는 아시아에서 민족주의는 생존과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김 관장의 민족주의 비판은 진보진영도 비켜가지 않았다. “북한을 적대시하는 보수적 민족주의가 외세지향적이라면, 진보주의자들의 탈민족주의 역시 우리 상황을 망각한 서구식 사고예요. 국제화시대에 민족주의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한국 현실을 망각한 관념론자들의 인식입니다.” ●9월로 3년 임기 끝나 개관 20년을 통과하는 독립기념관은 앞으로도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접근성 제고를 위해 전철역 개통을 추진하고 있고, 신세대 관람객의 발길을 붙들기 위해 서곡 지역에 복합문화타운 건설도 진행 중이다. 고질적인 연구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것도 시급하다. 하지만 이 일들을 김 관장 손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독립기념관 7대 관장이자 첫 번째 공모제 관장인 그는 오는 9월이면 3년 임기를 마친다.8대 관장부터는 정부의 경영평가를 거쳐 1년 단위로 임명된다. 김 관장은 연임 여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취임 당시 그는 몇몇 언론으로부터 자격시비에 시달린 바 있다. 독립유공자가 아니란 이유였다. 그는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조용해졌다. 별로 시비 걸 게 없었나 보다.”라며 웃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독립문 주변 1만㎡ ‘열린마당’ 조성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 주변에 1만㎡ 규모의 공원(조감도)이 조성된다. 서울시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운동가 위패가 있는 독립관, 순국선열 추념탑 등이 위치한 서대문 독립공원(전체 면적 11만㎡)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한 재조성 계획을 확정,12일 발표했다. 전체 계획은 설계디자인 현상공모 당선작인 애림조경기술사사무소(대표 강대균)의 ‘함께하는 생각’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이 당선작은 독립문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맞췄다. 우선 독립문 주변 노후·불량 건물 밀집지역 3792㎡를 포함한 약 1만㎡의 부지를 탁 트인 광장(독립마당)으로 만들어 독립문을 돋보이게 했다. 광장의 나무와 건축물이 14.3m인 독립문의 높이를 넘지 않도록 했다. 독립문과 3·1운동기념탑 사이에는 수경관(연못)과 잔잔한 분수를 조성하고 그 연결로들을 ‘흔적의 길’로 이름 붙여 조성하기로 했다.공원으로 진입할 때에는 3·1운동기념탑이, 나올 때에는 독립문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원 옆 아파트 단지와의 경계에는 외래 수목 대신 소나무를 심고 ‘일본식 조경’‘이란 비판을 받았던 독립관과 역사관 사이에는 전통 정원 양식 ‘생명의 숲’을 만들 계획이다. 또 독립문 좌우의 안산과 인왕산이 풍수지리상 ‘우백호’란 점을 감안해 흰 꽃이 피는 팥배나무, 배나무 등 고유 수종을 심기로 했다. 각종 계단 및 화단으로 조성된 복잡한 공간들을 평탄하게 바꿔 장애인과 노약자, 아이들의 이용이 쉽도록 했다. 또 연못, 분수 등을 조성해 걷기 좋은 길을 만든다. 공원의 바닥은 기품 있는 석재와 잔디 등으로 포장해 자연친화적인 공원의 모습을 만들기로 했다. 예산은 토지 보상비 175억원, 공사비 60억원 등 240억원이 책정됐다. 공원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도시공원위원회 심의, 전문가·독립운동 단체 자문 등을 거쳐 연말까지 기본·실시 설계를 마치고 내년 착공한다. 시는 2009년 8월 광복절에 맞춰 새 공원을 일반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시는 공원 재조성과 별도로 공원 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사적 324호)도 2009년 8월까지 독립운동사(史) 전시·교육의 메카로 새 단장하기로 하고, 낡은 옥사 보수, 전시시설 설계 개선, 조경·배수로 정비 등에 100억원을 투입기로 했다. 시는 80년 이상된 구 서울구치소와 서대문형무소 등의 일부가 지붕 붕괴와 균열의 위험까지 있어 보수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독립문 주변 1만㎡ ‘열린마당’ 조성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 주변에 1만㎡ 규모의 공원이 조성된다. 서울시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운동가 위패가 있는 독립관, 순국선열 추념탑 등이 위치한 서대문 독립공원(전체 면적 11만㎡)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한 재조성 계획을 확정,12일 발표했다. 전체 계획은 설계디자인 현상공모 당선작인 애림조경기술사사무소(대표 강대균)의 ‘함께하는 생각’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이 당선작은 독립문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맞췄다. 우선 독립문 주변 노후·불량 건물 밀집지역 3792㎡를 포함한 약 1만㎡의 부지를 탁 트인 광장(독립마당)으로 만들어 독립문을 돋보이게 했다. 광장의 나무와 건축물이 14.3m인 독립문의 높이를 넘지 않도록 했다. 독립문과 3·1운동기념탑 사이에는 수경관(연못)과 잔잔한 분수를 조성하고 그 연결로들을 ‘흔적의 길’로 이름 붙여 조성하기로 했다. 공원으로 진입할 때에는 3·1운동기념탑이, 나올 때에는 독립문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원 옆 아파트 단지와의 경계에는 외래 수목 대신 소나무를 심고 ‘일본식 조경’‘이란 비판을 받았던 독립관과 역사관 사이에는 전통 정원 양식 ‘생명의 숲’을 만들 계획이다. 또 독립문 좌우의 안산과 인왕산이 풍수지리상 ‘우백호’란 점을 감안해 흰 꽃이 피는 팥배나무, 배나무 등 고유 수종을 심기로 했다. 각종 계단 및 화단으로 조성된 복잡한 공간들을 평탄하게 바꿔 장애인과 노약자, 아이들의 이용이 쉽도록 했다. 또 연못, 분수 등을 조성해 걷기 좋은 길을 만든다. 공원의 바닥은 기품 있는 석재와 잔디 등으로 포장해 자연친화적인 공원의 모습을 만들기로 했다. 예산은 토지 보상비 175억원, 공사비 60억원 등 240억원이 책정됐다. 공원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도시공원위원회 심의, 전문가·독립운동 단체 자문 등을 거쳐 연말까지 기본·실시 설계를 마치고 내년 착공한다. 시는 2009년 8월 광복절에 맞춰 새 공원을 일반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시는 공원 재조성과 별도로 공원 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사적 324호)도 2009년 8월까지 독립운동사(史) 전시·교육의 메카로 새 단장하기로 하고, 낡은 옥사 보수, 전시시설 설계 개선, 조경·배수로 정비 등에 100억원을 투입기로 했다. 시는 80년 이상된 구 서울구치소와 서대문형무소 등의 일부가 지붕 붕괴와 균열의 위험까지 있어 보수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헤이그특사 100돌 학술 심포지엄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22일 오전 10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헤이그 한국특사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연다. 모스크바대 박종효 객원교수가 ‘헤이그 2차평화회의의 구한국 특사와 한·러관계’에 대해 발표하는 등 국내외 학자들이 10개의 주제를 발표한다.
  • 독립운동 담은 ‘김구 동영상’ 잔잔한 감동

    독립운동 담은 ‘김구 동영상’ 잔잔한 감동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를 담은 일명 ‘김구 동영상’이 네티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의 이 동영상에는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이봉창, 윤봉길 열사 등 독립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화면들이 담겨있다. 또 함께 삽입된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 등 당시의 대화 내용에서 열사들의 결연한 의지를 느낄수 있다. 이 동영상이 제작된 목적은 새 화폐 도안 인물로 김구 선생을 선정하기 위한 것. ‘김구 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 동영상을 네티즌들이 각종 UCC 사이트에 올리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가슴이 훈훈합니다.”(t10j21), “화폐에는 당연히 이런 인물이 올라야 하는데...”(lbj0320), “편안한 안식을 누리소서.”(ytpark504) 등의 댓글을 올리며 감동과 경의를 표했다. UCC사이트 엠엔캐스트(mncast.com)에 지난 12일 올려진 이 동영상은 2주간 1만 5000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송기인 진실·화해위원장,‘일제역사관 건립’ 1년치 월급 전액 기부

    송기인 신부(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가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는 ‘일제 강점기 민중생활 역사관’ 건립에 1년치 급여 전액을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2005년 12월 과거사 위원장으로 첫 임명된 뒤 1년 동안 받은 급여 9700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지난해 11월 말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당초 송 신부는 기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사관 건립 추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송 신부의 양해를 구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건립추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중생활 역사관은 독립운동사 중심으로 다뤄지던 근대사를 생활사의 영역으로 확대해 이 시기를 살아온 선조들의 삶을 후손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역사체험관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4일 총회를 열어 건립준비위원회(위원장 이이화)를 구성했으며, 송 신부도 위원으로 참여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유관순 열사 1심형량은 징역 5년

    1919년 5월9일 공주지방법원 법정. 재판장은 “피고 유관순, 징역 5년”이라고 선고했다. 3·1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인 유관순 열사의 1심 재판형량이 기록된 ‘병천(아우내)·동면계 형사사건부’가 25일 최초로 공개됐다. 병천·동면계 형사사건부는 충남 천안의 병천·동면 방면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지도자들의 체포사유와 재판결과를 간략하게 기록한 서류이다. 향토사학자 임명순씨가 몇년간 국가기록원의 서류를 조사한 끝에 찾아낸 형사사건부에는 공주지방법원이 유관순 열사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음이 분명하게 기록돼 있다. 당시 재판절차는 지방법원-복심법원-고등법원의 3심제도로 운영됐으며, 유관순 열사의 판결문은 징역 3년을 선고한 경성복심법원의 판결문만 남아 있어 1심 형량은 설왕설래했었다. 유관순 여사와 1년 가까이 복역한 어윤희씨는 “유관순 열사가 6년형을 받았다.”고 말한 반면 조병옥 박사의 동생 조병호씨는 “부친(조인원)이 유관순 열사와 함께 7년형을 받았다.”고 회고하는 등 관련자들의 증언도 일치하지 않았다. 이번 병천·동면계 형사사건부 발굴로 유관순 열사의 1심 재판형량은 징역 5년으로 바로잡히게 됐다. 임명순씨는 병천·동면계 형사사건부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에 대한 소고’를 27일 개최되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월례연구발표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연합뉴스
  • 서상돈·김광제 선생 흉상 제막

    서상돈·김광제 선생 흉상 제막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식이 21일 오전 10시 대구 엑스코에서 한명숙 국무총리 등 정부 관계 인사, 대구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한 총리는 축사에서 “국채보상운동은 국권침탈 시대에 민초들의 가슴에 뜨거운 애국의 불꽃을 지펴 겨레를 하나로 묶은 국민정신이었다.”면서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현재를 더욱 다잡아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것으로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전 11시 30분에는 대구시 중구 공평동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독립지사 서상돈(1850∼1913)·김광제(1866∼1920) 선생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두 지사는 국채보상운동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서상돈 선생이 발의하고 김광제 선생이 찬동해 국채보상운동의 횃불이 올랐다. 이어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가 캠페인을 적극 벌이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전 국민이 금연을 통해 의연금 등을 모아 국채 1300만원을 상환하려는 운동이 크게 일자 일제는 대한매일신보를 탄압, 국채보상운동을 중단시켰다.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은 IMF 환란 때 금모으기 운동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제막식에서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은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김광제·서상돈 선생의 후손들에게 ‘이달의 독립운동가’지정패와 기념품을 수여했다. 흉상은 조각가 이상일(대구가톨릭대)교수가 제작했으며, 서예가 백영일(대구예술대) 교수가 제자를 맡았다. 흉상의 높이는 68㎝, 폭은 51㎝로 실제 인물 크기의 1.2배이며 청동으로 제작됐다. 높이 10㎝의 받침대와 높이 110㎝, 가로 48㎝, 세로 42㎝의 오석 좌대 위에 올려져 있다. 또 이날 두 지사가 설립해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출판사 광문사(현 수창초교 후문)와 서상돈 선생 고택, 부인들이 패물을 처음 내놓은 장소인 대구 중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사무소 등 3곳에는 시민들이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념표석이 세워졌다. 한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추진위는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와 함께 100주년 기념우표 160만장을 발행해 만국우편연합 190여개 회원국에 배포했다. 또 국채보상운동을 소재로 한 오페라 ‘불의 혼’을 지난해 초연한데 이어 2월 구미,3월 서울에서 앙코르 공연을 갖는다. 기념학술토론회와 음악회와 전시회, 시 문학공연, 청소년 무대 공연, 금연 100주년 선포식 및 전국여성금연대회 등을 열어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를 되새겼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달구벌 구국정신으로 물들인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최대 사건 중 하나인 국채보상운동이 21일로 100주년을 맞는다. 이에 따라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인 대구시내 한복판 중구 동인동에 위치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비롯해 곳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김범일 대구시장 등 공동의장 3명)는 21일부터 28일까지 민·관 공동으로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우선 21일 대구엑스코에서 정부·유공 인사와 시민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갖는 것으로 기념사업을 시작한다. 또 같은 날 중구 공평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이 운동의 불씨를 댕긴 김광제·서상돈 선생의 흉상 제막식을 갖는 한편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와 함께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우표 160만장을 발행해 만국우편연합 190여개 회원국에 배포할 예정이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인 대구 중구 수창동 옛 광문사(현 수창초교 후문) 자리와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활동장소인 중구 진골목, 중구 서상돈 고택 등 3곳에 시민들이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표석을 설치한다. 이와 함께 국채보상운동을 집대성하는 5권의 자료집 1000부와 DVD 1만장,CD 5000장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교육자료로 제공할 계획이다.추진위는 또 국채보상운동을 소재로 한 오페라 ‘불의 혼’을 지난해 대구에서 초연한 데 이어 이달엔 구미,3월 서울에서 앙코르 공연한다. 특히 올해부터 국채보상운동의 숭고한 뜻을 후손들에게 알려줄 기념관·기념비 사업이 본격화된다. 총 60억원이 투입될 기념관 건립사업은 중앙정부가 재정을 지원, 연건평 700여평(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부근에 세워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대구소비자연맹은 오는 23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금연운동 100주년 선포식과 함께 전국 금연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는 여성금연포럼 및 한국금연운동협의회 등 금연 운동단체 관계자들이 참가,‘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금연운동 100주년’을 선포하고 시민들에게 금연을 권장한다. 대구소비자연맹은 또 21일부터 28일까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일원에서 국채보상운동 및 금연에 관한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중구보건소와 함께 금연상담실과 직·간접 흡연 체험실을 운영한다. 추진위 관계자는 “국채보상운동은 3·1운동의 의미를 능가하는 독립운동”이라며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현대적으로 실천하고 후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기념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대구 한찬규·김상화기자 cghan@seoul.co.kr
  • “대한매일신보 1905년 논설 ‘시일에 우방성대곡’ 필자는 신채호 아닌 박은식”

    단재 신채호가 썼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1905년 12월28자 대한매일신보 논설 ‘是日에 又放聲大哭(시일에 우방성대곡)’은 실제 필자가 백암 박은식임을 세밀히 고증한 주장이 제기됐다. 경북대 김주현 교수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30일 열리는 월례학술회의에서 이런 내용들을 담은 ‘신채호 문학의 자료발굴 및 원전확정 연구’를 발표한다. 김 교수가 이 논설의 필자를 단재가 아닌 제3의 인물로 간주하는 근거는 크게 세가지이다. 논설이 발표되던 무렵에 단재는 이 신문에 관여하지 않았고, 문체가 단재의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글에 나타난 사상 또한 단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필자를 추적한 결과 논설 게재 무렵 대한매일신보 주필은 박은식이었으며,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통감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단재가 대한매일신보에 입사한 날짜는 1907년 11월6일임을 밝혀냈다. 김 교수는 ‘시일에 우방성대곡’의 ‘청아일언(聽我一言)하시오.’ 등의 청유형 문체는 박은식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문체이자 자강과 자립에 대한 신념, 자녀교육 강조, 권력자 비판 등은 ‘백암 박은식전집’에 수록된 글에 자주 나타나는 사상이라고 지적했다.‘시일에 우방성대곡’은 장지연이 1905년 11월20일 황성신문에 발표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이 나온지 한달만에 비슷한 제목과 논조로 일본의 무단침탈을 통렬히 비판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해외 한인유산 4만8000점 DB화

    독립운동가의 일기·편지 등 세계 곳곳에 산재한 해외 한인의 유산 4만 8000여점이 데이터베이스(DB)로 관리된다. 또 이들 유산중 문화재급은 국가 예산을 들여 매입, 국내로 들여오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는 최근 국무조정실 주재로 외교통상부, 국가보훈처,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해외 한인 유산관리방안 대책회의’를 열어 이같은 방침을 정했다. DB로 관리되는 대상은 서재필 박사, 이준 열사 등 미국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일기·편지와 같은 기록물과 독립운동 사적지, 해외 이민사의 중요자료 등이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독립운동사, 이민사 등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한인 유산, 즉 유품과 자료 및 사적지가 세계에 흩어져 있어 관리가 미흡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관리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독립운동사, 인터넷에서 찾는다

    독립운동사, 인터넷에서 찾는다

    독립운동사를 인터넷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검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search.i815.or.kr)’ 사이트를 개설, 내년 1월2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25일 밝혔다. 이에 앞서 독립기념관은 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1999년부터 7차례에 걸쳐 한국독립운동사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이번에 개설된 독립운동사 사이트는 ‘전문포털’이라는 점에서 이용자들이 보다 손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는 독립기념관 홈페이지(www.i815.or.kr)의 한 메뉴(자료마당)로 독립운동사 정보를 제공해왔다. 사용자의 편리성을 감안해 통합검색 영역, 분야별 디렉토리 영역으로 구성하고, 화면 상단에는 주 메뉴, 좌측에는 하위 메뉴 등을 배치해 단 세 번의 클릭만으로 이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게 했다. 또 어려운 근대용어와 현대용어를 함께 확인해 검색할 수 있는 ‘근대용어 색인’ 기능과 ‘독립운동가 색인’ 기능을 구축, 활용도를 높였다. 제공되는 정보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일상을 기록한 자료, 독립신문을 비롯한 일제강점기하의 국내외 각종 신문 정보, 독립운동 유적지 정보 등 독립운동사와 관련한 자료 30여만건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왕산 허위선생 장손녀 만난다

    중앙아시아를 순방하고 있는 한명숙 국무총리가 구한말 항일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왕산 허위(1854∼1908)선생의 장손녀인 허로자(80) 할머니를 만난다. 한 총리를 수행하고 있는 정부 당국자는 22일 “한 총리가 마지막 방문국인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는 24일 저녁(현지시간) 타슈켄트에서 동포·교민·기업인 대표 만찬간담회에 허 할머니를 초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 할머니는 당초 초청 대상이 아니었으나 최근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간담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신문은 지난 8월 14·15,17일 세차례에 걸쳐 ‘왕산가의 독립운동사’란 특집기사를 연재하면서 구소련과 중국에서 100여년 동안 뿔뿔이 흩어져 살아온 후손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서대문 형무소의 1호 사형수였던 허위 선생의 네 아들은 만주와 연해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허 할머니는 허위 선생의 맏아들인 허학(1887∼1940)씨의 딸이다. 허 할머니는 연해주에서 태어난 11살 때인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때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해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 한 총리는 허 할머니가 특별초청 형식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키르기스스탄에서 살던 허위 선생의 두 손자이자 허 할머니의 사촌동생인 허 게오르기(62), 허 블라디슬라브(55)씨도 지난 7월 특별귀화한 바 있어 허 할머니도 같은 조치가 내려질지 주목된다. 한 총리는 2007년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을 앞두고 이뤄진 이번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방문에서 고려인 초청 간담회를 잇따라 갖는 등 동포 챙기기에 적극 나선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고려인 등 재외동포의 국내 방문 및 취업 기회 확대를 골자로 한 방문취업제 도입 계획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고려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양로원 건립 방침을 밝히는 등 법적·제도적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는 각각 10만명,20만명 남짓한 고려인이 살고 있다.아스타나(카자흐스탄) 연합뉴스
  • [왕산家의 독립운동사] (3) 허위·허겸의 죽음

    일제 헌병에게 체포당한 왕산 허위는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돼 의병탄압 최고 지휘자이던 헌병사령관 아카시 겐지로에게 신문을 받았다. 의병을 일으킨 목적을 설명하는 왕산의 목소리는 당당했다.“일본이 한국의 보호를 부르짖는 것은 입뿐이요, 실상은 한국을 멸할 흑심을 가졌다. 우리들이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멈추려 하듯 힘에 벅찬 의병을 일으킨 것이다.” 왕산은 또 일본 수사관이 의병활동에 앞장 선 자와 대장이 누구인지 추궁하자 “앞장선 자는 이토 히로부미고 대장은 나다.”라고 말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지목한 연유에 대해 왕산은 “이토 히로부미가 우리나라를 뒤엎지 않았더라면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즉 앞장 선 자가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고 누구인가.”라고 대답했다. 아카시는 왕산의 인품과 충성심에 감복해 왕산을 국사로 대우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왕산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청했지만, 허락이 나지 않았다. 결국 1908년 9월18일 왕산에 대해 사형이 선고됐고,10월21일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다. 서대문 형무소가 지어지고 최초의 사형 집행이었다. 형이 집행되기 전에 왜승이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읽으려고 하자, 왕산은 “충의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혹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어찌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 복을 얻겠는가.”라며 물리쳤다. 제자 박상진이 왕산의 시신을 수습해 뒷날 고향 선산인 구미 선영아래에 모셨다. 왕산이 숨진 뒤 왕산가는 탄압하는 일제를 피해 야반도주하듯 고향인 구미를 떠나 만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했다. 왕산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형 성산 허겸은 1912년 이상룡 등이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만주에 조직한 자치기관인 부민단에서 10여년간 일했다. 부민단은 동포들의 자활과 교육사업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으며, 성산은 남북만주와 노령을 무대로 활동하며 국내에 잠입했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성산은 출옥해 86세에 다시 만주로 가,1940년 90세를 일기로 주하현 하동에서 서거할 때까지 광복운동에 헌신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왕산家의 독립운동사] (2) 서울 진공작전

    러일전쟁 이후 일제는 침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왕산도 1905년 1월 일제 헌병대에 며칠 동안 구금됐다. 항일투쟁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일제는 같은 해 3월부터 4개월 동안 왕산을 다시 구금했다. 구금에서 풀려난 뒤 은거생활을 하던 왕산은 이해 9월 지금의 휴전선 일대인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 지방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킨다. 성산 허겸도 아우의 부대에 합류했다. 왕산은 경기도 이인영 의병부대와 강원도 서부 이은찬 부대 등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의병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전력을 극대화시켰다. 서로 연락을 이어가던 의병부대는 1907년 11월 하순쯤 왕산과 이인영 부대를 주축으로 의병 1만명을 모아 13도창의군을 조직,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했다. ●日 치열한 방해공작에 뜻 못이뤄 작전에 앞서 왕산은 서울주재 각국 영사관에 선언문을 보내 의병 항일전의 합법성을 공포했다. 그리고 1908년 1월27일 왕산은 선발대 300명을 거느리고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했다. 이 때 이인영이 친상을 당해 귀향을 했다.5000명 규모의 후발 본대도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서울진공계획이 노출돼 언론이 이미 두달 반 전부터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의 방해공작이 치열했던 것이다. 결국 수적·전략적으로 열세했던 왕산의 부대는 패했다. 실패 뒤 왕산은 연천에 머물며 전력을 다시 모으고 있었지만, 항간에는 왕산이 음독 자살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8년 2월13일자에서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의병장 허위씨는 파주 등지에서 약을 먹고 자처하였다더니 항설을 들은 즉 죽기는 고사하고 도당 4000∼5000명을 거느리고 가평 등지에 둔취하여 병졸을 연습한다더라.”라고 근황을 전했다. 기사처럼 사태가 수습된 뒤 왕산은 다시 임진강 근처에서 의병을 일으켜 유격전을 벌이며 일본군을 괴롭혔다. 이들은 일본군 진지를 기습해 통신을 마비시키고, 관공서를 습격하고 부일매국노를 처단했다. ●외교권 회복 등 30개조항 日에 요구도 1908년 2월부터 5월까지 왕산 부대는 왜군과 15차례의 교전을 벌였다. 왕산은 이 기간에 부하 박노천, 이기학을 서울로 보내 통감부에 외교권 회복, 통감부 철거, 이권침탈 중지 등을 골자로 하는 30여개의 요구조항을 내기도 했다. ■ 참고 서적 왕산 허위의 나라사랑과 의병전쟁(왕산허위 기념사업회 편), 아직도 내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허은 여사 구술집)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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