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독립운동사
    2026-09-21
    검색기록 지우기
  • 선거 연령
    2026-09-21
    검색기록 지우기
  • 관세 인상
    2026-09-21
    검색기록 지우기
  • 기초생활
    2026-09-21
    검색기록 지우기
  • 금융지원
    2026-09-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70
  • [WBC]‘당찬 세대’ 희망의 시대를 열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펼친 ‘위대한 도전’은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다섯 차례나 치러진 한·일전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는 새로운 한일 관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불행한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열등감이 아예 없는 젊은세대에게 일본은 더 이상 반드시 넘어야할 절대적인 대상이 아닌 상대화된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선수들은 오히려 일본선수들보다도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었고, TV를 지켜본 국민들도 다르지 않았다. 문화평론가인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이번 대회는 비장함이 있었다기 보다 선수들부터가 경기 자체를 즐기며 최선을 다했다는 게 이전과는 달랐던 것 같다. 시민들도 결승전에서 졌다고 비통함을 느끼기 보다, 한국이 잘 싸웠고 세계인을 상대로 수준높고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성숙해진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철학자 탁석산 박사는 과거와는 달라진 신세대 젊은이들의 특성에 주목했다. 그는 “평균 나이 26세로 세계청소년대회 우승 전력이 있는 선수들이 포진한 한국팀은 열등감이 없는 신세대”라면서 “경기를 해도 한·일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메이저리거에도 주눅들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팀 전체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일본은 야구가 국기이고, 자존심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면서 “이번 한일전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긴장했다는 것은 옛날보다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덧붙였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도 “경험의 축적과 세대교체로 과거보다 여유있게 대처하는 것 같다.”면서 “방송이나 쇼비즈니스에서 오히려 한·일전을 부각시키는 면이 있으나 시청자들도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문학평론가인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한국의 젊은 선수들은 최근 세계 야구 무대에서 베네수엘라, 멕시코, 쿠바, 미국 등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싸워서 이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굳이 과거의 한·일 특수 관계 속에서 일본만을 이겨야 한다는 식으로 얽매여있지 않다.”면서 “이미 세계가 우리의 무대이고, 우리의 수준이 세계 수준에 도달해있기 때문에 역사의식을 스포츠 등에 투사하는 방식은 이미 벗어났으며 이는 팬들도, 선수들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실력에 기반한 자신감은 사실 경제분야 등에서는 이미 일상화되었으나, 스포츠 부문에서도 뒤늦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씨는 “너무 자주 부딪치다보니 선수들이나, 관중이나, 또는 젊은이들이 서로 익숙해지고 친해졌다는 느낌이 있다.”면서 “한 대회에서 다섯 차례나 겨루다보니 상대를 무작정 적대시하기 보다는 서로 익숙해진 분위기가 연출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원로급 역사학자인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젊은 세대가 과거의 어두움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올림픽에서 1위를 했을 때 얼마나 많은 국민이 마음 속 깊이 눈물을 흘렸는지를 생각해 보면 야구는 물론이고 사회 각 부문에서 일단은 일본을 이겨야한다는 신념과 집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 서울신문 홍지민 강병철기자 icaru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역사자료 기증운동 펼치는 서경덕 한국홍보 전문가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역사자료 기증운동 펼치는 서경덕 한국홍보 전문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한다. 말 그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기에 더욱 거룩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난해 7월9일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동해와 독도를 알리는 전면광고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라는 헤드라인 아래 한반도 주변 지도와 함께 “지난 2000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로 불려 왔고, 동해에 위치한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한 달여 뒤인 8월25일 워싱턴포스트 A14면 전면에는 ‘역사왜곡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독도 관련 광고가 게재됐다.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삽입하고 독도에 관한 간략한 설명과 사진을 동시에 실어 독자들로 하여금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15년째 꾸준히 한국 알리기 앞장 누가 이런 일을 했을까. 정부? 아니다. 그저 순수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른바 한국 홍보전문가로 알려진 서경덕(35)씨. 그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15년째 한국 알리기에 꾸준히 앞장서 오고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유수의 언론에 독도, 동해, 위안부, 고구려 등의 광고를 실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씨와 함께 ‘한글 세계 전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 유명 박물관에 한국 영문책자 비치 및 한국어 서비스 유치, 파리 에펠탑 광장 8·15광복절 행사 기획, 세계 유명 대학 한국학 연구실 자료보내기 운동, 다이내믹 코리아 대학생 해외봉사단 기획 등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자 세계 200여 도시를 누비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 이미지를 알리는 일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독도 주연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의 기획 프로듀서로 참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 그는 독립기념관 홍보대사를 맡았다. 하여 이번에는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과 함께 ‘범국민 역사자료 기증운동’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오는 8월15일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료를 기증받아 새로운 역사자료를 발굴하고 올바른 역사교육과 독립운동사의 연구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했다. 불과 10여일 정도 지났지만 19세기 유럽에서 발간된 조선 지도 등 60여점을 기증 받았다. 이 가운데 김영준 KBS 자료 감정위원이 기증한 조선 지도는 1894년 프랑스 잡지 ‘르 페티(Le Petit)’에 실렸던 것으로 울릉도와 독도가 ‘우산도’라는 명칭으로 조선의 영해내에 표기돼 있는 소중한 자료다. 또한 김항회 대구화랑 대표가 기증한 항일 운동가 7인의 친필 서찰도 눈길을 끈다. 이 캠페인에는 독립운동가, 국회의원, 역사학자, 문화예술인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추진위원회를 구성,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순회하며 거리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8월15일까지 사료 기증받아 특별전 “역사자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고취로 나라사랑 정신을 다시금 함양하고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 사료를 안정적으로 보존하고 승계하고자 이번 일을 추진하게 됐지요. 기증된 자료는 특별기획전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번 캠페인을 펼치기에 앞서 ‘다케시마 날’을 제정한 일본 시마네현을 방문했다는 서씨는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서도 관련 자료의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이 가장 기본”이라면서 다양한 자료가 모아지기를 기대했다. 온라인(www.i815.or.kr)을 통한 기증의향서 접수도 동시에 진행한다. 그가 한국 홍보전문가로 나선 계기는 대학 재학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다닐 때였다. ‘한국이 경제대국’이라고 했지만 막상 한국을 잘 모르는 유럽인들을 만나면서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구로디지털단지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인 한국 홍보에 나섰다. 네티즌과 독지가들의 후원도 잇따랐다. 지난해 미 일간지 광고게재 때도 가수 김장훈과 10만여명의 네티즌들이 동참했다. 1974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성남고와 성균관대 조경학과를 나온 뒤 얼마 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홍보 전문가로 소문이 나서인지 요즘에는 여기저기 특강을 다니느라 바쁘다. km@seoul.co.kr
  • “민중이 역사 주체로 떠오른 3·1운동 세계 反제국주의 투쟁 선봉장 역할”

    “민중이 역사 주체로 떠오른 3·1운동 세계 反제국주의 투쟁 선봉장 역할”

    3·1운동 90주년을 앞두고 동아시아와 세계사의 맥락에서 3·1운동을 재평가하려는 학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전세계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극렬했던 시기에 일어난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높이 평가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라는 자각의 목소리가 드높다. 이와 함께 3·1운동을 기점으로 역사의 주체로 전면에 나선 민중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논의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범세계적 이상과 지향점 제시 김희곤 안동대 교수는 “3·1운동은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두주자로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범세계적인 이상과 지향점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새달 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하는 ‘3·1운동 90주년 기념 국제 학술강연회’를 앞두고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세계사적 의의를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세계 식민지 해방투쟁사에서 우뚝한 위상을 갖는다. 국가를 세우고 정부 조직을 구심점으로 삼아 무려 27년 가까이 투쟁한 사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3·1운동은 바로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내는 시점이자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세계 개조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나선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강연회에선 겅윈즈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이 ‘중국 근대사와 5·4운동의 역할’, 마쓰오 다카요시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1919년과 다이쇼 데모크라시’, 토머스 녹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 교수가 ‘윌슨의 이념과 세계질서’를 각각 발표한다. 한국근현대사학회가 2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3·1운동의 세계사적 맥락과 해외 한인사회’ 학술대회에서도 3·1운동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민족운동으로만 평가해선 안돼 3·1운동을 통해 부상한 ‘민중’에 대한 재평가도 주목을 끈다. 김희곤 교수는 “3·1운동은 전통적인 피지배계급이 아니라 민중이 새로운 국가와 정부조직체를 요구했고, 이에 맞춰 임시정부가 조직돼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공화정 체제가 등장했다.”면서 “구성원 거의 모두가 참가한 저항은 곧 민중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것이자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등이 2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3·1운동, 기억과 기념’학술대회에선 역사의 주체로서 역량을 보여준 민중의 부상과 그들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근대 시위 문화 등에 대해 토론한다. 주최측은 “그간 3·1운동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3·1운동 배경, 전개과정, 영향 등에 국한되어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오로지 하나의 결론, 즉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만 평가했던 점을 극복하고자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학술 심포지엄은 좌와 우, 남과 북이라는 권력 주체의 기억과 기념 방식, 대중적 상징성을 갖는 유관순 영웅 만들기의 역사, 역사 교육을 통해 재구성된 3·1운동의 기억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3·1운동의 기념이 관성화되고, 타성화되는 데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8독립선언 90주년 7일 도쿄서 기념식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자 재일 유학생들이 도쿄에서 독립을 선언,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2·8독립선언 제90주년 기념식이 7일 오전 11시 재일본 한국YMCA(이사장 김용성) 주관으로 도쿄 한국 YMCA에서 열린다. 기념식에는 정부대표로 김양 국가보훈처장을 비롯, 김영일 광복회장, 권철현 주일대사, 허맹도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중앙본부 부단장 등 주요 인사와 광복회원, 교민 등 2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2·8독립선언은 한국 학생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재일 유학생들이 임시로 결성한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최팔용, 송계백 선생 등 11명의 대표위원이 서명하고 유학생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919년 2월8일 도쿄 한복판에서 조국 독립을 세계 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2·8선언은 국내 3·1운동의 도화선이 됐으며, 1920년대 청년·학생의 항일투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기고] 2·8독립선언 정신으로 국민통합을/김양 국가보훈처장

    [기고] 2·8독립선언 정신으로 국민통합을/김양 국가보훈처장

    올해로 2·8독립선언 90주년을 맞는다. 우국충정에 불타는 젊은 재일 유학생들이 민족의 자주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해 침체의 늪에 빠져들어 가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우리 선열들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 2·8독립선언을 선포하기까지 오랜 기간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이 선언을 전후해 선포한 독립선언서에는 ‘대한독립선언서’, 겨레가 하나 돼 외쳤던 ‘3·1독립선언서’가 있다. 대한독립선언서는 음력 1918년(무오년) 11월에 선포했다고 해 ‘무오독립선언서’라고도 하며, 조선의 독립을 최초로 선언한 문건이다. 이는 직후에 이어진 2·8독립선언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2·8독립선언은 일명 ‘조선청년독립선언’이라고도 한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8년 1월 윌슨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1919년 2월8일 수백명의 도쿄 재일 유학생들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투쟁의 의지를 선언했다. 적국의 수도 한가운데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의 1인까지 영원한 혈전을 불사한다는 대일 항쟁의 자세를 밝혔다. 민족의 자주민임과 조선의 독립국임을 만방에 알린 젊은 학도들의 드높은 기상과 굽히지 않는 정신은 국권회복을 향한 애국청년들의 장쾌한 거사라 하겠다. 선열들은 독립선언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 침략 일본에 대한 항쟁의지, 그리고 평화와 국제정의, 민주주의에 대해 강경한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2·8독립운동 정신이야말로 세계화를 지향하는 오늘날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라 하겠다. 2·8독립운동은 거족적 3·1운동의 도화선이 됐으며, 학생 항일투쟁의 효시가 됐다.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도 됐다. 만주 일대에는 수많은 독립운동단체가 조직돼 무장항일투쟁이 본격화되기도 했다. 2·8선열들이 지녔던 그 투철한 민족자결의 정신과 평화공존의 이상이 오늘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특히 한·일간의 관계 속에서 다시 구현돼야 할 우리의 귀중한 정신적 유산이 되고 있다. 정부는 2·8독립운동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인 재일본 한국YMCA에 2·8독립선언기념실을 마련하고 지난해 현판식을 가졌다. 또한 2·8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조선기독교청년회관 자리인 도쿄의 니시간다 네거리에 기념비를 건립해 독립운동의 역사적 장소임을 알리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 전역에 분포한 독립운동사적지에 대한 보존·복원사업지원으로 현지 동포사회 결집과 화합의 구심점으로 활용해 나갈 것이다. 이번 세기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시기다. 지난 세기의 역사적 질곡에서 벗어나 민족통합과 국가발전의 새 시대를 이뤄내야 할 역사적 소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의 국가 목표가 ‘국권회복’과 ‘조국근대화’였다면 지금은 바로 통일된 세계중심국가, 선진일류국가 건설이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극복해야 할 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대내적으론 각계각층의 갈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대외적으론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 대립과 국제사회의 무한경쟁을 헤쳐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당면한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과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을 결속시켜 국민통합을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발전을 이뤄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선 국권을 회복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계승·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2·8선열들의 용기와 열정을 거울삼아 우리 내부의 불신과 갈등을 벗어버리고 선진일류국가 건설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야 하겠다. 김양 국가보훈처장
  • 한국 근대사 의미 재조명

    한국 근대사 의미 재조명

    올해는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0주기이다. 우리 근대사에 한 획을 그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기리는 행사들이 잇따라 펼쳐진다. 광복회의 건국훈장 반납의사 표명으로까지 이어진 건국 60주년 논란을 딛고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역사의 교훈을 되새김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3·1운동의 의미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조명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여러 단체에서 준비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3월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3·1운동과 1919년의 세계사적 의의’(가제)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 한·중·일과 미국·유럽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을 비교 분석하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베르사유 강화체제 등 세계사의 큰 흐름에서 3·1운동을 평가한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도 2월13, 14일 ‘3·1운동과 5·4운동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세계사적 시각에서 조명… 국제학술대회 잇따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4월13일을 전후해 임정 90주년 행사도 다채롭게 열린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국제학술세미나, 임시정부 사진전, 대중서적 발간 등을 준비 중이다. 이찬희 사무처장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확고히 알리는 행사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은 4월11일 중국측과 공동으로 중국 상하이 충칭에서 ‘중경시기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마련한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안중근(1879~1910)과 그의 동양평화론은 최근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주제다. 안중근의사숭모회는 기념일인 10월26일을 전후해 다양한 행사를 연다. 10월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가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비롯해 안중근의사 특별기획전, 연구총서 발간, 창작오페라 등을 준비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8월에 한·중·일 3국의 안중근연구자를 초청해 ‘안중근 의거와 독립운동’을 주제로 학술행사를 연다. 6월26일은 김구(1876~1949) 선생이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김구재단은 임시정부와 백범의 발자취를 좇는 영상물을 제작하는 한편 2005년부터 추진 중인 미국 브라운대 김구도서관 개설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10월에는 세계 석학을 초청해 ‘김구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백범기념관도 백범추모음악회와 특별테마전시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국권침탈 100주년 집중 조명 2010년은 한·일강제합병 100년이 되는 해다. 동북아재단은 한 해 앞서 한·일강제합병의 부당성을 집중 조명하는 3개년 사업을 시작한다. 6월22일 국권침탈 100주년과 관련해 역사갈등의 본질적 문제를 규명하는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어 2010년에는 역사화해를 통한 평화구축 모색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2011년 이 결과물을 국문과 영문, 일문 책자로 발간해 배포할 계획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수신사 시절 박영효 초상화 첫 공개

    수신사 시절 박영효 초상화 첫 공개

    1882년 일본에 수신사로 간 박영효(1861∼1939)의 초상화(그림)와 박영효가 일본에 도착해 맨 처음 태극기를 내걸었던 니시무라(西村)여관의 전경이 담긴 동판화가 5일 공개됐다. 이 자료는 한철호 동국대 교수가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1집에 기고한 논문 ‘우리나라 최초의 국기(박영효 태극기)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제작 국기의 원형 발견과 역사적 의의’에 소개됐다. 박영효의 초상화는 1883년 아사히(朝日)신문 오사카판 1월10일자에 게재된 것이다. 박영효의 사진은 여러 장 있지만 수신사 시절 박영효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한 교수는 “1874∼1875년 니시무라 여관의 전경이 담긴 동판화를 지난해 일본에서 발견했다.”면서 “박영효가 태극기를 내건 니시무라 여관의 당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니시무라 여관은 1931년 대대적인 수리를 거쳤으나 1945년 폭격으로 사라졌다. 동판화에는 당시 여관 앞 마당에 대형 깃대가 있으며, 이 깃대에 여관 이름이 적힌 깃발이 걸려 있다. 이밖에 한 교수는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으로 가는 도중 선상에서 태극기를 그린 일본 배 메이지마루(明治丸)호가 도쿄해양대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배는 1978년 일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학술플러스]

    ■ ‘독립운동과 교과서 서술’ 학술대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국민대 한국학연구소는 28일 국민대 본관 3층 학술회의장에서 ‘한국독립운동과 초·중등교과서의 서술’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한철호 동국대 교수 등 5명의 발표자가 초·중·고교 교과서에 나타난 독립운동 서술에 대해 살펴본다. ■ 덕수궁서 한·독 수교 기념 사진전 ●한·독 수교 125주년 기념 사진전이 27일부터 12월7일까지 서울 덕수궁에서 열린다.덕수궁의 정문인 대안문(현재의 대한문)을 비롯해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125점이 전시된다.사진 연구가인 정성길(77) 계명대 동산의료원 선교박물관 명예관장이 지난 30년간 수집해온 것들이다. ■ ‘문화유산과 국민신탁운동’ 심포지엄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유영구)이 주최하고 문화재청과 SC제일은행이 후원하는 ‘문화유산 보전과 국민신탁운동의 추진’ 심포지엄이 27일 서울 SC제일은행 제일지점연수원에서 열린다.문화유산을 보전하는 방안의 하나로 국민신탁운동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자리다.국민신탁운동은 기부나 위탁받은 재산을 활용,보전가치가 높고 훼손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매입해 보전관리하는 민간 운동을 말한다.
  • 항일 독립군 무덤 4기 中서 발견

    일제식민지 당시 남만주 일대에서 항일무장 독립운동을 벌이다 순국한 독립군의 무덤 4기가 중국 랴오닝(遼寧)성 지안(集安)에서 발견됐다.1925년 2월25일 벌어진 고마령 전투의 희생자로 추측된다. 고마령(古馬嶺) 전투는 일본의 평북 초산경찰서 경찰대가 압록강을 건너 고마령에서 독립군 참의부 2중대 본부를 급습해 벌어진 유혈 충돌이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독립군 측 간부 20여명이 희생된 ‘참극’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전투에서 순국한 주만참의부 참의장 백순(白淳), 최석순(崔碩淳) 선생은 2005년 국가보훈처에 의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지정된 바 있다. 지금까지 희생자들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덤을 발견한 사람은 남만주 일대 독립군 항일무장투쟁을 주제로 소설을 집필 중인 작가 최범산(필명·56)씨. 최씨는 지난 9월부터 고마령전투가 벌어진 지안시 고마령촌 일대를 3차례나 답사해 무덤 4개를 발견했다. 최씨는 “독립운동사료와 현지 주민의 증언, 제석이 놓인 무덤 형식으로 미뤄 고마령전투에서 희생된 참의부 독립군들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가족이 없었던 무연고 전사자들의 시신은 동네 주민들이 시신을 거둬 주변 야산에 매장했다는 85세 노인의 증언도 확보했다.”고 말했다.최씨는 “아직까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남만주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정부 또는 학술연구 차원의 체계적 조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이경원기자·연합뉴스 leekw@seoul.co.kr
  • 이봉창 의사 한때는 ‘모던보이’ 였다

    이봉창 의사 한때는 ‘모던보이’ 였다

    두 장의 사진이 있다.1932년1월 일본 도쿄 왕궁앞에서 히로히토 일왕 폭살을 시도하다 사형당한 이봉창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태극기 앞에서 폭탄을 양손에 들고 찍은 사진이다. 배경이나 구도는 똑같지만 한 장은 활짝 웃는 얼굴이고, 다른 한 장은 무표정한 얼굴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봉창 의사의 모습은 전자다. 하지만 후자가 진짜이고, 전자는 독립영웅의 결연한 이미지를 위해 누군가가 ‘창안´한 합성사진이라면?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너머북스)의 저자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전작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에서 새로운 백범일지 분석을 시도했던 배 연구원은 이번엔 박제된 독립투사 이봉창이 아닌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인간 이봉창의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삶의 진실에 초점을 맞췄다. 기노시타 쇼조는 이봉창의 일본 이름이다. 억지로 창씨 개명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봉창이 스스로 바꾼 이름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봉창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일제의 식민정책에 협조하며 근대문물의 혜택을 누린 ‘모던보이´였다. 차별에 대한 불만은 있었으나 반일 민족의식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다 1928년 히로히토 즉위식을 보려고 오사카에서 교토로 갔다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유치장에 갇힌 뒤 자의식에 극전 반전이 일어난다. 이후 상해로 건너간 이봉창은 백범 김구를 만나면서 독립투사로 변모한다. 하지만 이봉창이 도쿄로 돌아가 폭탄을 던지기까지 20일간의 기록은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재구성한 이봉창의 행적에는 술마시고, 영화보고, 유곽에 드나들고, 골프를 치며 소일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저자는 “독립운동의 영웅과 식민지적 근대를 상징하는 인간형인 ‘모던보이´는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이미지 같지만 이봉창의 삶은 그 두 가지가 한 인간을 통해 복합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런 문제의식을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950년대 달라이라마 형제 CIA 협조 中·티베트 관계 계속 껄끄럽게 한다”

    “1950년대 달라이라마 형제 CIA 협조 中·티베트 관계 계속 껄끄럽게 한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형제들이 1950년대 후반 미 중앙정보국(CIA)의 티베트 독립운동 지원에 관여한 것이 중국과 티베트 관계를 아직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 보도했다. CIA는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에 진주한 1950년 이후 티베트인들을 훈련시켜 무장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승려도 포함된 티베트인들은 무기와 무선 통신장비를 지급받아 티베트 지역에 공수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런 CIA의 독립운동 지원에 달라이 라마 형제가 깊숙이 개입됐었다는 것이다. 그의 형제 중 한 명인 길라오 손덥은 1955∼1956년 무장투쟁 격화로 티베트인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자 CIA가 탈출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주선했다. 손덥은 1957년 티베트인 6명을 사이판의 CIA 특수훈련장으로 보냈다. 티베트인들은 6개월간 훈련받은 뒤 모국에 투입돼 임무를 수행했다. 달라이 라마의 큰 형인 투브텐 노르부가 역시 사이판에서 통역을 맡았다. CIA가 훈련시킨 티베트 반군들은 1959년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피란할 때도 이동 경로를 미국에 수시로 보고했다. 티베트 무장세력들은 이후에도 계속 독립투쟁에 나섰지만 대부분 중국측에 잡히거나 죽고 1960년쯤 네팔 접경으로 후퇴했다. 미국은 1960년대 말 베트남전에 발이 묶이자 티베트 저항운동 지원을 중단했다. 신문은 티베트의 독립운동사와 달라이 라마 형제의 관련성이 중국과 티베트간 긴장관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측의 화해협상이 전혀 진전되고 있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건국 60·광복 63주년] 잇단 이의신청… 끝없는 친일논란

    [건국 60·광복 63주년] 잇단 이의신청… 끝없는 친일논란

    ■ 인명사전 4776명 중 118명 불복해 발간 연기 #1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지어 각지에 발송하고,10년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해 체포됐던 독립운동가 위암 장지연.1910년까지 언론인으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장지연은 이듬해부터 돌연 친일행적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한시를 게재했고,1914년부터 1918년까지 객원으로 있던 매일신보에 조선총독부의 시정(施政)을 미화하고 옹호하는 700여 편의 글을 발표한 행적 등이 밝혀져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념사업회측은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2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물산장려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민립대학 설립운동의 일환으로 중앙학원을 설립해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던 인촌 김성수. 그는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는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 또 임전대책협의회 간부이자 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일제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등 언론매체에 학도병의 참전 및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할 것을 촉구하는 글을 게재하고, 강연한 것으로 밝혀져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인촌기념사업회측은 친일명단 수록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대한민국은 올해로 광복 63주년을 맞았지만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숙제인 친일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편찬위)가 오는 29일 발간예정이던 친일문제연구총서(전17권) 중 1차분인 3권짜리 친일인명사전의 발행이 연기됐다.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 4776명 가운데 118명에 대한 이의신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의신청이 기각될 경우 각종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친일인명사전 발간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편찬위에 따르면 이의가 제기된 주요 인물은 만주군 중위 박정희, 무용가 최승희, 교육자 김성수, 언론인 장지연, 소설가 김동인, 아동문학가 이원수 등이다. 일제시기 군인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의 유족과 기념사업회 등은 “당시 군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친일이라고 할 수 있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편찬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이 선전포고했던 적군 소속 장교가 친일인사가 아니라는 것은 비상식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지식인으로 친일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당시에 그들이 썼던 글은 다 어쩔 수 없이 이름만 빌려준 것이며, 참전을 호소하는 강연은 일제가 써 준 것을 그대로 읽은 것일 뿐”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편찬위는 “수백편의 글에서 명의도용을 당하고 있었는데 이를 몰랐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는 입장이다. 편찬위 관계자는 “뜻하지 않은 피해자가 없도록 각 전문분과위원회, 상임위원회의 이중 검토를 통해 8월 중 이의제기 수용여부를 결론낼 것”이라고 말했다. 편찬위는 “실제로 일제하 판검사를 지낸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시국사건을 변론한 기록을 유족이 제출하고, 편찬위가 변론기록을 추가로 찾아내 친일인명사전 등재 대상에서 보류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건국 60주년 논쟁 가열 임정사업회 등 5개 단체 별도 행사 ‘갈라진 광복절’ 광복절인 15일 정부가 주최하는 건국 60주년 기념행사에 불참하기로 한 독립운동 관련 5개 단체가 별도의 광복절 기념 행사를 열기로 해 ‘건국 60주년’ 논쟁이 정점을 맞고 있다. 정치권도 건국 60주년 행사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논란은 광복절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독립유공자회·민족자주연맹·한민족운동단체연합·항일독립운동단체협의회 등 5개 단체는 15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대한민국 건국 89주년 학술회의-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이다’ 행사를 갖는다고 14일 밝혔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몰이해로 정부가 ‘건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반만년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였고,1948년 세워진 정부는 임시정부를 계승해 수립됐다.”면서 “임시정부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서 단절시키는 것은 엄연한 역사 왜곡”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도 독립선언일·독립인정일·정부수립일 중 독립선언일인 1776년 7월4일을 가장 중요시한다.”면서 “국내 대학들이 전문학교 시절부터 개교년(年)을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헌정회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건국 60년 주장은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말살하는 것으로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독립운동을 부정하면 결국 대한민국이 일제의 사생아라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사업추진기획단 우기종 단장은 “헌법적인 실체로서의 건국은 행정부에 입법부·사법부까지 갖춰진 1948년이 맞다.”고 반박했다. 한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은 이날 ‘건국절 변경’ 움직임에 대한 반대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15일 정부 기념행사에 당 대표가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야 3당 대표는 서울 용산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합동 참배하기로 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성명을 내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소수 친일보수세력과 야합해 8·15행사를 ‘건국 60주년기념행사’로 치르려는 반역사적인 음모를 자행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헌법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헌 행위이자, 불굴의 투지로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독립투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반민족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현경병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3명은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이미 공동발의했다. 현 의원은 “상하이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라면서 “48년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길회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친일사전 발간은 상식을 바로잡는 일”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입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실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조세열(51·경희대 겸임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의 이의신청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2001년 시작한 사전 발간 작업이 7년 남짓 만에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발간을 앞두고 친일인사의 유족이나 기념사업회 쪽의 이의신청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 총장은 “전체 4776명 가운데 이의신청은 118명밖에 되지 않고, 일제공훈록과 당시 사료 등 친일행적을 보여 주는 원문자료들을 충실히 확보했기 때문에 법정까지 가더라도 걱정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특히 만주군 중위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를 두고 벌어지는 정치적 논란에 대해 그는 “박정희는 극히 평범한 친일세력의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박근혜씨가 정계에 입문하기 훨씬 전인 1991년부터 이 문제를 다뤄 왔다.”고 잘라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의 후손이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후손의 신원을 철저히 숨기기 때문에 연좌제는 있을 수 없다.”면서 “국가 예산으로 기념사업에 나서거나 후손이나 연고자가 땅 찾기에 나설 때, 친일행위가 뚜렷한데 한 적이 없다고 강변할 때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후손을 대상으로 진상을 규명했다.”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박사님, 올해 여든하나이신데 아주 정정해 보이십니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더니)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짧은 생머리, 나이만큼 백발이 묻어났지만 주름살은 별로 없었고, 눈썹과 입술 화장이 잘 어울려 보였다. “여전히 얼굴이 고우십니다. 젊었을 땐 참 예쁘고 미인이었겠습니다.” “어이구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어릴 때 친척들한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잘생긴 언니와 오빠, 동생들과는 비교가 안됐지요. 미인이라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약간 홍조 띤 얼굴로 변한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결혼은 왜 안 하셨는지요?” 보통 같으면 증손자까지 봤을 법한 할머니에게 던진 질문 자체가 우스웠나 보다. “뭐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일을 시작하고, 그것에 파고들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 가고, 어디 (연애할) 틈이나 생겨야 말이지요. 호호.” 노(老) 박사의 웃음 짓는 모습은 해맑은 소녀의 그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하시는 일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젠 나이도 그렇고 쉬셔도 되는데 젊은이들보다도 정열이 더 뜨겁습니다.” 잠시 한숨을 쉰다.53년 동안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함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한우물을 팠다. 또한 해야 할 관련 숙제 역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인 듯하다. “더 늙기 전에, 총기가 사라지기 전에 선명하게, 뚜렷하게 규명해야 일들이 많이 있네요. 개인이 한다는 게 외롭고 어렵긴 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노 박사의 말과 표정이 경외스럽도록 다가온다. 문득 노 박사를 모델로 한 역사 추리소설(외규장각도서의 비밀)이 생각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게스트하우스.‘직지심경(直指心經·직지심체요절)’의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가 직지심경의 대모로 불리는 까닭은 1967년 파리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발견해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킨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최근 방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그래서인지 박 박사는 직지심경이나 외규장각도서 얘기는 하도 많이 해서 가급적 피해달라고 먼저 주문한다. 재불(在佛) 역사·서지학자인 그가 잠시 방한한 이유는 1985년 국내에서 발간했던 ‘조선조(朝鮮朝)의 의궤(儀軌)’ 증보판을 내기 위해서다. 이번 증보판은 300쪽 중 100쪽가량을 프랑스어로 썼다는 점이 눈여볼 대목. 그는 평소 프랑스인들이 병인양요를 거의 모른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증보판 앞 부분에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과 ‘왜 한국 사람들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하는지 등을 프랑스어로 자세히 언급한다. 또한 의궤의 내용과 그것이 프랑스로 가게 된 사연, 당시 프랑스 해군의 일기와 공문서 등도 새롭게 첨부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의 출간을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이번 증보판에는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행적을 어렵게 추적, 이른바 ‘작전루트’를 처음 공개할 예정이어서 중요한 역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병인양요와 의궤 반환문제로 프랑스 국영 3TV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방송사 간부한테 ‘프랑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때마침 한국학중앙연구원측의 도움으로 이번에 작업을 하게 된 것. 증보판은 한달 후쯤이면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흔적과 관련된 자료는 많이 있는지요. “프랑스가 1차 원정 왔을 때 일기를 보면 강화도의 문수산성과 적성산성 등을 왔다갔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2차 원정때의 군함, 당시 그림과 자료, 관청의 위치도 등을 종합해볼 때 황해도 연안까지 갔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행적을 찾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최초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볼 생각입니다. 현재 이 작업만 남아 있습니다.” 그는 방한에 앞서 당시 프랑스 로즈함대장의 후손을 만나 여러 번 설득 끝에 강화도 등에서 프랑스로 압수해간 ‘압수목록표’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이번 증보판 부록에 실린다). 그는 “로즈함대장의 후손은 할아버지를 영웅으로 알고 있으며 곧 ‘할아버지 전기’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프랑스인들은 병인양요나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달라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요. “도대체 그걸 왜 반환해야 하느냐고 묻는 프랑스인들이 많습니다. 이때마다 ‘만약 루이 14세의 왕실 행사를 자세히 기록한 유일한 문서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되묻지요. 그럼 프랑스인들은 당연히 찾아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50여년 동안 한국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대부분 스크랩해 놓을 만큼 자료 수집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 특히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 등에서 3·1운동 당시 한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영사관이 본국에 보낸 많은 공문서를 찾아냈다. 또 일제때 일본과 중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공관이 본국에 보낸 공문서 중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모은 자료 등을 합하면 무려 2000상자 1만 5000쪽 분량에 이른다. 이 귀중한 것들을 정리하고 책으로 펴내는 일이 그의 마지막 숙원사업. 파리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그만큼 많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어렵게 해왔습니다. “개인이 한다는 게 사실 엄두가 안 나지요. 국가에서는 (반응이)냉랭합니다. 아무튼 어렵게 자료들을 모았으니 그냥 놔둘 수도 없겠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박사의 자취도 추적했다. 파리 시내 서쪽 쇼토 거리에서 이들이 머물던 곳을 찾아냈고 2006년에 겨우 건물 현판 정도만 걸 수 있었다. 기념관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박 박사의 어릴 적 꿈은 유치원을 설립해 서구식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사대에 진학했지만 나중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방향을 틀었다. 대학 때는 손보기(사학자)·이두현(민속학자) 선생 등과 친하게 지냈다.6·25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유학을 택한 것은 평소 가톨릭 신자로 프랑스 출신 수녀들과 가깝게 지낸 덕분. 이후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한 뒤 파리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중 1979년 의궤를 찾아낸 직후 ‘비밀을 누설했다.’는 질책과 함께 파리국립도서관을 그만두었다. 이후 여러 파란곡절을 겪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고문서와 귀중한 자료들 속에 파묻혀 ‘여자의 일생’을 걷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8년 서울에서 5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사대 사회생활학과(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1955년 6·25 이후 민간 여성으로는 첫 프랑스 유학비자를 받고 떠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석·박사)한 뒤 1967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할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발견해 냈다. 이어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출품, 구텐베르크의 성경책보다 무려 73년이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1979년에는 조선 왕조의 의식에 관련된 세세한 기록문인 외규장각 도서 279권을 프랑스국립도서관 창고에서 발견, 한국에 알렸다. 이같은 공로로 대한민국훈장 동백장과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특별상 등을 받았다. 특히 1919∼1920년 사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던 청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현재는 파리 근교에서 살면서 한국 관련 각종 고서연구와 프랑스에서 본 한국의 3·1운동 등에 관한 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인쇄사’(프랑스어·스페인어·영어·한국어)가 있고, ‘한국의 무속사’‘한국의 역사’ 등을 프랑스어로 펴냈다.
  • 민족종교 항일운동 재평가한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맞서 저항운동을 벌였던 나라 안팎의 개인과 단체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 가운데 민족종교의 항일운동은 나라의 독립 때까지 치열하게 이어졌지만 그 실상은 일반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저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한중환)가 26일 오후2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서 여는 제5회 ‘민족종교 국제학술대회’는 이같은 점에 착안, 민족종교의 항일운동사를 제자리매김하자는 뜻을 모아 마련한 자리이다. 학술대회에선 일제강점기 각 민족종교의 계통별 항일운동(이경우 한국신종교학회 회장)을 짚고, 북간도에서의 청림교의 반일운동을 자세히 부각(허영길 옌볜박물관 근현대사연구실장)시킨다.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에 이어졌던 비밀결사의 종류와 항일운동을 지원했던 군자금 모금운동(성주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에 대한 발표도 있을 예정이다. 특히 3·1운동 1년 전인 1918년(무오년) 만주에서 민족종교 대종교가 자체적으로 발표한 ‘무오독립선언서’의 내용과 선언 추진 배경도 처음 공개된다. 여기에 일제에 대항해 2만여 명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에 큰 타격을 입힌 민족종교 청림교의 활약상도 구체적으로 발표된다. 김홍철 원광대 명예교수는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의 항일운동은 다양하게 전개됐지만 그동안 각 종교의 입장 차이와 적극적인 연구 소홀로 평가절하됐다.”며 “무저항 선언운동을 비롯해 교육운동, 산업활동, 혁신·계몽운동 등 종교별로 전개했던 항일 독립운동의 실상을 파악해 객관적으로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가자! 어린이 축제장으로”

    어린이날을 앞두고 주말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1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어린이날인 5일 서울대공원에서는 세계 각국의 타악기 100개를 관람객이 맘껏 두들겨 보고 즐길 수 있는 ‘세계북소리 특별전’이 준비된다. 곤충박물관에선 ‘수서생물특별기획전’이 펼쳐진다. 홍학 87마리가 군무를 펼치는 홍학드림쇼, 초대형 뱀과 함께 사진찍기,15개 나라의 민속공연 및 월드퍼레이드 등도 즐길 수 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꿈나무 축제’가 열린다. 오전 11시 대공원 정문광장에서 펼쳐지는 군악대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야외음악당에서는 비보이 공연과 마술쇼와 어린이 뮤지컬 ‘알라딘과 요술램프’를 즐길 수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와 씨앤한강랜드는 3일부터 12일까지 10일 동안 여의도 선착장 앞에서 ‘이색곤충전’을 연다. 3일 오후 4시와 7시 청계광장에선 눈 깜짝할 사이 연기자의 얼굴이 바뀌는 중국기예단의 변검공연과 여성 4인조 밸리댄스그룹 ‘JY’의 댄스공연이 이어진다.4일 오후 3시부터는 풍물놀이와 함께 우리 굿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진안증평굿이 펼쳐진다. 구로구는 3일 고척근린공원에서 어린이를 위한 대형 축제를 개최한다.▲인라인 비보이댄스 ▲중국기예단 ▲BMX 묘기 ▲키즈바운스 등을 즐길 수 있다. 또 움직이는 인형 만들기나 크레파스를 이용한 이색퍼즐 만들기 등 부모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가득하다. 서대문구도 5일 명지대 운동장에서 환상의 열기구, 소방차·경찰차 탑승 등 신나는 체험과 사물놀이, 요요공연, 민속놀이마당 등 어린이를 위한 놀이마당을 마련한다.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독립운동사를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나도 독립운동가’ 행사를 준비했다. 송파구도 5일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어린이 벼룩시장 ‘병아리떼 쫑쫑쫑’을 마련한다.5년째 이어온 이 행사는 수익금 전액을 장애어린이에게 지원한다. 양천구는 5일 신월동 계남공원에서 어린이풍물공연, 난타 및 마술공연, 어린이 합창단 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임시정부 90주년 행사를 국민축제로”

    “임시정부 90주년 행사를 국민축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는 2009년에 전국적으로 대규모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기념행사는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4월13일을 전후해 집중적으로 펼쳐진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서울신문사는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 대회의실에서 기념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한 협약식을 가졌다.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과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협약서에 서명하면서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나무인 임시정부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도록 힘을 합쳐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노진환 사장은 “민간 차원에서 임시정부의 얼을 기리는 사업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기념사업회에 감사드린다.”면서 “90주년 기념행사를 국민축제 차원으로 승화시켜 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해나가자.”고 말했다. 김자동 회장은 “대한매일신보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서울신문이 임시정부 기념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데 적임이라고 판단했다.”면서 “헌법에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문화했지만, 그동안은 말로만 계승한 것이 사실인 만큼 90주년 기념행사가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기념행사는 기념식을 비롯해 국제학술세미나, 독립군가 합창제, 제3세계독립영화제, 독립운동사 창작판소리 공연, 독립운동 미술전, 임시정부 사진전, 어린이를 위한 독립운동사 만화책 발간 등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명동학교 100년… 다시 본 ‘북간도 한인사회’

    명동학교 설립 100년을 기념해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과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한시준)가 24,25일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서 학술대회를 연다. 제목은 ‘북간도 명동촌 개척 및 명동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 북간도(현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에 명동촌과 명동학교가 세워진 것은 각각 1899년 2월과 1908년 4월이다. 북간도 지역 민족운동의 근거지이자 시인 윤동주와 영화감독 나운규, 고 문익환 목사가 동문 수학했던 명동학교는 김약연 등이 민족학교인 서전서숙의 정신 계승을 표방하며 명동촌 한인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북간도 간민회(墾民會)의 조직과 활동’이란 최봉룡 중국 다롄대 교수의 논문이다. 그간 간민회는 북간도 지역의 민족운동 단체로 일제의 방해와 탄압으로 해산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 교수는 간민회가 중국 지방정부의 보조기관 성격을 띠고 있었고, 해산 원인도 한인사회 내부의 반발과 갈등, 중국 지방정부의 자치정책 폐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김보희 숭실대 강사는 ‘북간도지역 한인의 노래’란 논문을 통해 북간도 지역 독립군가 중 상당수가 일본군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당시 한인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절절히 일본군가를 독립군가로 바꿔 불렀다는 설명이다. 김홍식 명지대 교수는 건축학과 풍수의 측면에서 북간도 한인들의 민가를 중국인 민가와 비교분석(‘북간도지역 한인의 주거생활’)하고, 김시덕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새로 발굴한 한인들의 각종 사진을 통해 당시 지역 사회의 내부풍경을 고찰(‘사진으로 보는 북간도 지역 한인의 민속’)한다.(041)560-0402.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단독]친일파 해부 임종국선생 ‘총서’ 구상 햇빛

    [단독]친일파 해부 임종국선생 ‘총서’ 구상 햇빛

    학계에서 말로만 회자되던 ‘친일문제 연구가’ 고 임종국 선생의 ‘친일파총서’ 발간계획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총서의 골격은 공동집필자 가운데 한 명이던 김승태 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이 최근 자료정리 도중 선생과 함께 작성한 ‘공동연구협약서’를 찾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증하면서 드러났다. ‘친일파총서’는 선생이 1989년 11월 폐기종으로 작고(당시 60세)하기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숙원사업이자,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친일파 연구의 집대성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총서의 이름은 선생의 사망 정황을 언급(“‘친일파총서’ 기획·집필 도중 세상을 떠났다”)할 때만 단편적으로 거론됐을 뿐, 총서의 실제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선생이 발간 작업을 미처 시작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서 총서의 구상도 함께 묻혀 버린 까닭이다. 선생이 남긴 숙제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이란 형식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연구소 또한 선생이 구상했던 발간계획을 확인하지 못한 채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분야별 모두 10권·친일인명사전 포함 김 전 실장에 따르면,1988년 당시 독립기념관 자료과장이던 그는 기독교의 친일문제를 다룬 논문을 쓰면서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이듬해 2월 그는 투병 중이던 선생으로부터 총서 공동집필을 제안받았다. 김 전 실장은 “건강악화로 혼자서 작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선생이 3월초 총서의 구상을 메모한 쪽지를 보여 줬고, 난 메모를 워드프로세서로 타이핑해 협약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작업의 방대함을 고려해 이명화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을 선생에게 소개했다. 협약서는 최종적으로 임종국, 김승태, 이명화 3인의 이름으로 작성됐다. 협약서를 보면, 총서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됐다. 총론(서명:‘외세영합과 친일파’)을 비롯해, 사상(‘사상침략과 친일파’)과 정치(‘정치침략과 친일파’),1∼4공화국의 친일파(‘해방 이후의 친일파’) 부문을 선생이 맡고, 동·서양종교(‘종교침략과 친일파 1∼2’)와 사회교육(‘사회교육침략과 친일파’) 부문을 김 전 실장이, 경제(‘자원침략과 친일파’)와 만주·중국(‘대륙침략과 친일파’) 및 문화(‘문화침략과 친일파’) 부문을 이 연구원이 전담했다. 또 총서에서 인용한 친일논설의 원문만 모은 자료집을 각 권마다 한 권씩 제작해 총 10권의 ‘친일논설전집’을 만들고,1만∼2만명의 친일파를 수록한 한 권 분량의 ‘친일인명·용어사전’ 편찬도 계획했다. 김 전 실장은 “선생은 이미 사전편찬을 목적으로 1만 5000여개의 인명카드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면서 “그 중 300여개의 기독교 인물카드를 종교 분야 집필에 활용하라며 건네 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선생은 자신이 정리한 자료와 쓴 글을 근간으로 보완작업을 진행하고, 종교와 대륙침략 등 새로 연구해야 할 분야는 김승태·이명화 두 사람이 맡았다. 자료는 서로 공유하되, 집필은 각자의 책임 하에 단독으로 진행키로 했다. ●선생 타계로 편찬작업 전면 중단 하지만 선생의 타계로 작업은 전면 중단됐고, 총서의 구상을 담은 협약서마저 사라지거나 자료더미에 묻히면서 총서는 이름으로만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은 “선생은 2∼3년 안에 한 권씩은 내자고 말했다.”면서 “다섯 권을 맡은 선생은 협약서 작성 당시만 해도 최소 10년은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선생의 뜻을 좇아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조세열 사무총장은 “친일청산 작업을 한층 앞당겼을 ‘친일파총서’가 제대로 출간되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지금이라도 소문만 무성하던 총서의 구체적 뼈대를 확인하게 돼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구소가 ‘친일파총서’의 구상을 모른 채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을 진행해 왔지만 둘의 내용은 큰 틀에서 흡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선생의 작업에서 ‘친일인명·용어사전’은 마지막 단계에서 편찬되는데 비해, 연구소의 경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필두로 작업을 이어간다.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은 오는 8월 출간될 예정이다. 조 총장은 “연구소의 총서 작업이 선생의 총서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후배로서 무척 안도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친일청산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몸부림쳤던 선생의 진면목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독립운동의 완결은 통일”

    “독립운동의 완결은 통일”

    “독립운동사 총서를 쓴다는 의지로 몸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조동걸(77) 국민대 명예교수가 최근 ‘한국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경인문화사)을 펴냈다. 독립기념관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2005년부터 기획, 총 60권으로 발간하는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 시리즈의 첫 책이다. 학문에의 의지는 무서운 병마저 잊게 했지만, 아픈 몸을 추스르기엔 의지만으론 벅찼다.20일 서울 방학동 자택에서 만난 조 교수는 인터뷰 중에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말은 더뎠고, 한 마디 뱉는 데도 한참을 생각했다. 살집이 넉넉했던 얼굴엔 광대뼈가 가팔랐다. 2004년초 위의 3분의2를 잘라내는 대수술 이후 그는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왔다. 뇌경색으로 우반신 마비가 왔고, 평지낙상으로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집 밖에선 지팡이를, 집안에선 보행기를 사용했다. 일주일에 세 번 병원에서 받는 운동치료가 요즘 그의 주요 일과다. ●독립운동사 연구 한계 극복 작업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 편찬은 모두 84명의 독립운동 전공자가 참여하는 대기획이다.‘한국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은 제1권 총론격에 해당한다. 조 교수의 말로 “지금까지 쓴 책에 번호를 붙인다면 20번째쯤 되는 책”이다. 위암 수술 후 퇴원한 2004년 가을부터 6개월간 강행군으로 써냈다. 병상에서 끝낸 원고는 애초 청탁 분량인 1500장을 훌쩍 넘겨 1900장에 이르렀다. 힘든 글쓰기를 견뎌낸 것은 이번 편찬 작업이 과거 독립운동사 연구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9년 ‘6월 사태’(반민특위 해체, 백범 김구 암살) 후 지하로 숨어들었던 독립운동사 연구는 이승만 정권 몰락 후 활기를 되찾았다.1960∼70년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독립운동사’ 5권과 원호처(현 보훈처) 산하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의 ‘독립운동사’ 10권으로 활기는 결실을 맺었다. 조 교수도 독립운동사편찬위에 참여해 책 편찬에 앞장섰다. 두 연구는 그러나 반쪽의 성과였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은 배제됐고, 유림과 양반 중심의 의병사에서 평민 의병의 활동은 과소평가됐다. 조 교수 책의 중심 메시지는 “독립운동 이념과 방략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분단과 대립은 남북이 상대방의 독립운동을 앞다퉈 격하시키도록 만들었고, 결국 북에서는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을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남에서는 김일성을 가짜라며 역사를 왜곡했다.”면서 “사상이 달랐다는 이유로 서로의 독립운동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가 “독립운동의 완결은 통일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평민 의병장 신돌석과 머슴 출신 의병장 안계홍의 활약상을 복원하는 것도 젊은 시절부터 그가 전국을 누비며 이름 없는 이들의 독립운동을 발굴해온 문제의식의 반영이다. ●“공세적 식민지근대화론 우려스럽다” 기능을 잃어가는 몸과 달리 조 교수의 시대 인식은 여전히 일관되게 살아있다.‘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과 민족주의 사학계와의 사상투쟁,‘교과서포럼’의 교과서 다시 쓰기 등 일련의 식민지근대화론 공세를 그는 우려했다. 조교수는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근대화의 기초를 다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실증사학의 주장 또한 역사의 이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참여정부의 과거청산 작업이 서툴렀지만 과거사위를 없애는 것은 잘못”이라며 대통령직 인수위의 과거사위 통폐합에도 반대했다. 인터뷰를 마치기까지 그는 담배를 세 대 피웠다. 수술 후 끊었던 담배를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입에 물기 시작했다. 그를 간호하던 부인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사망하면서부터다. 그는 “밤중에 자주 잠을 깬다.”고 했고 “깜깜한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 생각이 천만 갈래로 내달린다.”고 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한국의 대표적 독립운동사 연구자 평범한 사람들의 활약상 발굴·조명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사 연구자다.1969년 독립운동편찬위원회 참여를 시작으로 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해온 그는 유명인 중심의 독립운동 연구에서 벗어나 평범한 이들의 독립운동을 발굴·조명해 왔다. 투병 중인 상황에서도 그는 지금까지의 저술을 총 망라한 전집 작업을 하고 있다. 모두 18권 분량으로 올해 안에 출간될 예정이다.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연구소장, 백범 김구선생시해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 한국사학사학회 명예회장, 한·일역사공동위원회 한국측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국민훈장동백장, 성곡학술문화상, 제1회 독립기념관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