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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思秋期](3)독립

    흔히 여성들은 “기댈 어깨가 필요했다.”고 결혼 이유를 밝힌다.그들이 원한 남편은 아버지처럼 어려우면서도 따뜻하고,아낌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내 아버지처럼(물론 이것은 딸로서의 주관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지만) 어른답지도 못할 뿐 아니라,따뜻하지도 않은 남편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남편은 아버지가 아니므로. ‘부성’을 기대하며 결혼한 여성과 ‘모성’을 원한 남성의 결혼은 불행의 불씨를 안고 시작된 셈이다. 중년을 맞은 여성은 그제서야 ‘독립’을 바란다.아버지가 아닌 남편에게 너그러움과 사랑,보호를 원하던 그 긴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딸아, 직장 그만두지마” 한영선(56·서울 마포구 연남동)씨는 결혼하면서 교사직을 버렸던 것을 후회한다.“당시만해도 결혼한 여성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팔자가 드세거나,남편이 능력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나는 딸에게 직장은 절대로 그만두지 못하게 할 참이다.”한씨는 경제력이 바로 독립이라고 했다.“아무리 남편이 번 수입의 반은 아내에게 권리가 있다고 법적으로도 인정하고 있지만,직업없이 평등한 사고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같다.” 정혜란(47·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남편의 수입으로 경제적 어려움없이 살아왔지만 얼마전부터 꽃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남편이 ‘가족 벌어 먹이느라 힘들다’는 말을 할 때면 늘 자존심이 상했다.그러나 내가 일을 가지면서 열등감이 없어지니 남편의 말이 더이상 고깝지도 않다.”그는 여성들에게 일하기를 권했다.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새로운 자신감을 얻는 것이야말로 중년의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격려라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 나도 좋아해”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 겁니다.”라고 김선진(53·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씨는 말했다.좀 우습게 들리는 이 말은 결혼생활 28년동안 자신의 욕구를 숨기고 살아온 김씨에게는 ‘독립선언’이다.“남편이나 아이들은 나를 ‘좋은 음식은 못 먹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그동안의 ‘헌신과 희생’을 벗어던지기로 했다.자신에게 눈을 돌리는 여성들,이들은 기대지 않고 홀로 설 것을 원하기 시작했다.아직도 ‘독립선언’ 그 이후가 두려워 말하지 않는 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말하든,말하지 않든 중년의 여성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가치에 새롭게 눈뜨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평균 수명 80시대,중년은 결코 ‘이미 늦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남주 기자
  • “가고싶은 고국 땅이건만 ‘자수서’와 바꿀순 없었소”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씨

    ‘이승만 대통령의 장학생’에서 유신 치하의 망명객에 이어 5·6공화국의 ‘국사범’으로 아직도 일본을 떠돌고 있는 ‘통일운동가’. 그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은 정경모(79)씨다.10여년 전 민족주의자 고(故) 김구·여운형·장준하 등이 저승에서 나누는 대화 형식을 빌려 반민족행위자들을 통렬하게 꾸짖은 ‘찢겨진 산하’(거름 펴냄)로 국내에 알려진 그의 삶은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이승만 장학생' 에서 ‘국사범'으로 최근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해외 민주인사 한마당’ 행사에 송두율 교수 등과 함께 초청돼 귀국을 준비하다 ‘자수서’를 내라는 정부 제안에 “비굴한 형식을 거치느니 거부하겠다.”며 끝내 귀국을 포기해 화제가 됐다.초청인사 50명 중 입국을 거부한 두 사람이 정씨와 그의 부인이었다.일본 도쿄에서 작은 학숙(學塾)을 세워 제일교포 2세들과 일본인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다 건강이 안 좋아져 지금은 요코하마(橫濱)시 히요시(日吉)에 사는 그를 히요시역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준법서약서’ 안 써도 된다고 해서 관계자를 만났더니 자수서를 쓰라고 해.차라리 여기서 그대로 살다가 꺼졌으면 꺼졌지 그런 수모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내가 자수서를 쓰면 문익환 목사를 부인하고 나를 파괴하는 거야.” 정씨의 귀국을 막고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89년 문익환 목사와 방북해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고,그전에도 문 목사의 방북을 준비하러 평양에 갔었다.95년엔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와 함께 방북했다. “방북 당시 문 목사와 허담씨가 서명한 ‘4·2 공동성명’은 남북화해의 초석이었어.거기에 놀란 노태우 정권이 당황해 ‘남북기본합의서’(91년 12월)를 내놓았는데 ‘4·2성명’을 계승한 거야.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발표한 6·15 성명도 당시 성명에서 연유한 것이지.그런데 어찌 ‘실정법을 어긴 죄인임을 자인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자수서를 내미는가 말이야.” ●판문점 통역일로 문익환목사와 인연 그가 문익환 목사를 사주해 방북을 권유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문 목사와의 인연은 50년 전에 맺어졌다.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씨는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 미국 에모리대학으로 유학을 가 화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당시만 해도 환전이 불가능해 친분이 두터웠던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학비를 대주기도 하고 송금도 도와주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장면 주미 대사가 “당신 같은 사람은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조국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권유해 미국 국방부 직원이 돼 도쿄 극동군최고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유학파’로 같은 일을 하러온 문익환을 만났다.두 사람은 정전협정이 논의되던 판문점에서 통역장교로 함께 일했다. 통역일은 정씨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었다.좌익이 데모하는 게 보기 싫어 유학을 갈 정도의 보수적 학생이었던 정씨는 중국의 펑더화이 사령관 등을 만나면서 한반도 정세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비롯한 동북아 현대사 서적을 탐독하며 ‘미국의 정체’를 파악했다.그러던 정씨는 1970년 박정희 독재 정권에 환멸을느껴 일본으로 망명을 감행했다. 정씨에게 송두율 교수 입국이 오버랩되는 건 당연하다.송 교수를 둘러싼 파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인텔리티까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정원 능력을 과소평가한 거지.모든 자료를 다 갖고 있다가 증거를 들이미니 그때마다 시인할 수밖에.차라리 황장엽씨의 폭로 등 모든 것을 털고 귀국하는 게 나았을 거야.” 내친 김에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았다.“국정원의 입장은 이해해.하지만 실정법 위반 이전에 문 목사와 나의 방북 의미를 생각해야 돼.그리고 늙으면 고향에 묻히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고.자수서에 이름 석자 써넣으면 고국에 갈 수 있지만 살아온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잖아.” ●‘장길산' 일본어 번역 내년7월 마무리 화제를 바꿔 황석영씨의 소설 ‘장길산’의 일본어 번역에 대해서 물었다.황씨는 86년에 “제 작품 번역은 선생님 이외에는 해낼 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이미 ‘한씨 연대기’ 등을 통해 황씨에게 매료된 상태였고 ‘장길산’을 읽느라 전철역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선뜻 동의는 했지만,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일역 등으로 짬을 못내다가 밀입북했던 황씨가 귀국해 구속된 93년부터 ‘마음의 빚’에 눌려 번역을 시작했다.94년 1권 번역 출간에 이어 1년에 1권꼴로 9권을 번역한 상태다.내년 7월이면 완역한다.(정씨는 ‘장길산’ 일역 관련 일화 등을 최근 창비사가 낸 ‘황석영 문학의 세계’에 ‘황석영과 나’라는 글에서 밝혔다.)꼿꼿하게 원칙을 지켜온 삶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나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만해 한용운 선생 빼고 독립선언문 쓴 33인이 모두 넘어갔잖아.그런 지조를 지킨 ‘최후의 1인’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일제와 싸울 수 있지 않았겠어.” 인터뷰를 마칠 즈음 갑자기 비가 내렸다.댁까지 바래다드리겠다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는 평생 신념을 지키며 산 올곧음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요코하마 이종수특파원 vielee@
  • 지령 20000호에 부쳐 / 처음처럼 하겠습니다

    대한매일이 2003년 9월9일 지령 2만호를 기록합니다.지령 2만호를 맞는 이 아침,우리는 대한매일이 걸어 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고자 합니다. 솔직히 대한매일의 지난날은 영욕이 엇갈린 역사입니다.대한매일의 지령은 대한매일신보와 서울신문의 지령을 계승했습니다. 1904년 배설·양기탁·박은식·신채호 등 선각자들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언론학자들이 “가히 전설적인 신문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대한제국 말기 우리 민족의 구심점이었습니다.최초의 시민운동이라 할 애국적인 국채보상운동과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의 실질적인 본부 역할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확산시키고 민족의 입장을 대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국한문,한글,영문판(Korea Daily News) 세가지 신문을 동시에 발간했고 발행부수도 최고를 기록했습니다.당시 발행되던 다른 신문의 발행부수를 모두 합쳐도 대한매일신보의 발행부수(약 1만부) 절반에도 못미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한매일신보를 강탈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발간한 일제가 패망한 1945년,서울신문은 매일신보의 시설을 흡수해 창간되면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이어 받았습니다.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두사람(오세창 사장,권동진 고문)과 당시 문단의 원로이자 소설 ‘임꺽정’의 작가인 홍명희(고문) 등이 서울신문 창간에 참여했습니다. 서울신문은 1968년 모든 기사와 제목을 한글로 쓰기 시작했을 만큼 한글전용과 신문말 다듬기에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서울신문의 신문말다듬기를 통해 만들어진 새 말 가운데는 ‘사재기’등 요즘 널리 쓰이는 것이 많습니다.상업주의와 선정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어느 신문보다 재벌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데 과감했습니다.문화예술 활동 지원에도 앞장섰습니다.서울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비롯,애국선열 동상 15기를 건립했고,금이 간 보신각 종을 새로 만들어 제야의 종소리가 계속 울리게 했습니다.언론환경의 변화에 따라 컴퓨터 조판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것도 서울신문입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4·19때 성난 시위대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오욕의 역사도 지니고 있습니다.해방후의 좌우익 대립,군사독재 등을 거치면서 지면과 논조가 굴절되고 권언유착의 폐습에 물들었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한국 제도권 언론이 자의든 타의든 빠져들었던 곡필의 역사에서 선두에 섰던 적도 있습니다. 이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바탕으로 1998년 서울신문은 대한매일로 이름을 바꾸었고 2002년 사원들이 최대주주가 되는 민영화를 이룩해냄으로써 소유형태에 있어서도 완전한 독립언론으로 탈바꿈했습니다.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국민의 신문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민영화 이후 대한매일은 온건합리주의 개혁노선을 지향하며 민족문제와 남북 공동체 회복,인권,시민의 권리 신장,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진취적인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내년이면 창간 100주년을 맞는 대한매일은 이처럼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항상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지령 2만호를 맞는 이 아침에도 우리는 지난날을 교훈 삼아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옷깃을 여밉니다.초심으로 돌아가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정신을 되새기면서 시대정신을 이끄는 신문을 만들고자 합니다. 북한 핵 문제로 인해 6자회담이 열리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며 서구 열강들이 앞다퉈 아시아를 넘보던 100여년전의 상황과 매우 흡사합니다.대한매일은 대한매일신보가 그랬듯이 민족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아울러 새로운 시대의 동인을 먼저 읽고 사상의 자유로운 시장기능을 수행하면서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이 있는 신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무한경쟁의 신문시장에서 상업주의나 자사이기주의에 휩싸여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독자의 입장에서 뉴스를 판단하겠습니다.독자가 참여해 독자가 신문을 만드는 참신하고 도전적인 신문이 될 것입니다. 임영숙 주필 ysi@
  • 책 / 미국사의 전설,거짓말,날조된 신화들-리처드 솅크먼 지음

    미국의 초월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결국 중요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고 했지만,미국인의 역사 인식은 이와 사뭇 다르다.미국인들이 기억하는 역사적 지식은 상당 부분이 신화적인 것이다.시간이 흐르면서 객관적인 사실은 퇴색해 버리고 근거없는 신화는 계속 살아 남는다.‘자유의 종’ 이야기라든가 에이브러햄 링컨과 앤 루틀리지의 낭만적인 사랑에 관한 헛소문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요컨대 ‘미국식’ 신화는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화가 아니라,역사적 정통성의 부재와 침략과 정복의 역사를 은폐하기 위한 신화인 것이다. ‘미국사의 전설,거짓말,날조된 신화들’(리처드 솅크먼 지음.이종인 옮김,미래M&B 펴냄)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치부와 허점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미국 역사의 가면과 거품을 가차없이 벗겨낸다.에미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인 저자는 미국사에 드리워진 신화의 아우라를 특유의 우상파괴적인 글쓰기로 거둬낸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反민주주의자였다 미국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미국인들은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독립전쟁을 일으키고 헌법을 물려준 이 건국세대는 정치적 음모나 중상모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그런 만큼 건국의 아버지를 비판하는 역사가들은 백안시당한다.심지어 미국 서부 유타주의 모르몬교 지도자들은 헌법은 신의 영감을 받아 작성된 문서라고 가르치고 있다.유타에 살면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정치가들”이라고 부르면 그것은 필경 언쟁의 빌미가 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건국의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민주주의에 부정적이었다.미국의 독립선언문 서명자로 매디슨 행정부의 부통령을 지낸 엘브리지 게리는 이른바 게리맨더링의 효시가 된 인물.또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말 따로 행동 따로였으며 매관매직을 일삼았다.제퍼슨은 인권을 강력하게 옹호한 정치가이긴 했지만,자신이 민주주의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그는 평생 공화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화가들의 그림 또한 거짓 신화를 양산하는 데 한몫했다.‘잔인한 위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초상화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원래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콜럼버스가 살아 있을 때 제작된 초상화는 단 한 점도 없기 때문이다.미국 독립혁명 지도자 패트릭 헨리의 초상화는 그의 사후 16년이 지나 그려졌으며,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초상화는 신격화된 양상까지 보인다.19세기에 제작된 워싱턴의 흉상은 너무 이상화된 나머지 백악관에서는 한동안 ‘무명의 인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림으로 거짓 신화를 정당화 초상화 못지않게 왜곡된 것이 전쟁,특히 독립전쟁과 관련된 그림들이다.독일 화가 에마누엘 로이체의 ‘델러웨어 강을 가로지르는 워싱턴’이 그 두드러진 예.워싱턴이 델러웨어 강을 건넌 것은 사실이지만 그림에서 묘사된 것처럼 우아하면서도 감동적인 모습으로 건너지는 않았다.의회에서 아직 채택되지 않은 미국 국기가 배에서 휘날리는 것도 의문을 낳는다. 미국은 과연 인종의 용광로인가.미국은 초기 이민자들에게 대단한 텃세를 부렸다.19세기 초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들이 건너왔을 때 개신교 신자들은 “교황이 미국을 파괴하기 위해 피묻은 손을 뻗쳤다.”고 성토했고 필라델피아에서는 폭동을 일으켰다.나중에 남유럽이나 동유럽 사람들이 이민 왔을 때도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마치 범죄자 무리가 침범한 것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유서 깊은 뉴잉글랜드 가문 후손인 시인 토머스 베일리는 이렇게 한탄했다.“오,자유,하얀 여신이여! 저렇게 문을 마구 열어 놔둬도 되는 것입니까?” 흥미로운 것은 미국인들이 20세기 들어 비로소 미국을 용광로로 자각했다는 사실이다.그 전의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단일민족’으로 생각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당시 영국의 관습과 가치가 우세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문화도 그에 못지않은 영향을 끼쳤다.‘용광로’라는 말은 1908년까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1934년이 지나서야 웹스터 사전에 올랐다. 미국은 ‘호색의 역사’를 지닌 나라다.미국인은 식민지 시대의 청교도들이 매우 금욕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섹스에 관대했다.현대 미국인만큼 성적 부도덕을 허용하진 않았지만,외설추방운동을 편 개혁가앤서니 컴스톡 같은 도덕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폐쇄적이지도 않았다.매사추세츠주의 점잖은 마을인 콩코드에서 독립전쟁전 20년 사이에 태어난 아기의 3분의1이 사생아였다는 사실은 퍽 시사적이다. ●성관계에 관대했던 청교도들 청교도들은 섹스로부터 자녀를 지키려고 크게 노력하지도 않았다.약혼중인 남녀가 옷을 입은 채 한 침대에서 자는 ‘번들링(bundling)’ 관습은 종종 성관계로 이어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습은 널리 퍼졌다.아무튼 청교도는 1600년대에 미국에 정착한 다른 종교그룹들에 비해 도덕적 엄격함만 내세우는 편협한 종교집단은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잘 알려져 있듯이 역사에 대해 어둡다.때론 미국 헌법의 첫 10개 수정조항이 권리장전으로 공포된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다.그들은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좋은 ‘신화적인’ 것은 곧잘 기억한다.문제는 저자의 지적대로 “신화는 보호색이 너무 강해 지적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1만 1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제3폭탄 터뜨릴까 / 정대표 “국민뜻 전한것” 측근들 “잠시 숨고르기”

    24일 밤 서울 신당동 N 아파트에서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귀가하기를 기다리던 몇몇 기자들은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밤 12시쯤 취기 오른 얼굴로 집에 도착한 정 대표는 장대비 속에 서 있는 기자들이 안쓰러운 듯 “여기서 뭐해.들어가서 맥주나 한잔씩 하지.”라고 했다.정 대표는 지금까지 집을 공개하지 않았었다.처음 들어가본 42평 전세 아파트 내부는 고풍스러운 물건 몇 개가 눈에 띌 뿐 생각보다 평범했다. 부인은 늦은 밤임에도 싫은 기색 없이 캔맥주와 마른안주 등을 내왔다.정 대표는 거실 바닥에 둘러앉은 기자들에게 일일이 담배를 건네며 불을 붙여줬다. 기자들이 오전 ‘청와대 문책 인사’ 발언에 대해 물으려 하자,정 대표는 “에이,가만 있어봐.좀 천천히 하자.”라며 거실 탁자에 놓인 수석(水石)으로 한동안 화제를 돌렸다.“작고하신 모 의원이 43년 전 선물로 주신 건데 나한테는 보물 1호야.이걸 보고 있으면 시름이 사라져.”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기자들이 이런저런 ‘취재’를 거듭하자,정 대표는 “좀 잘해달라는 국민의 생각을전한 거지,누굴 찍어서 나가라고 한 것은 아니야.”라고 수위를 낮췄다.그러면서도 “나를 장사꾼이 돈받은 것처럼 취급하는데,그런 사람 아냐.”라고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마침 귀가한 둘째아들이 인사하자,정 대표는 “너 이리 와.”라며 옆에 앉혔다.“이놈이 24살인데,대학을 세 번이나 떨어졌어.큰놈은 33살이고 삼성에 다니는데 아직 장가를 못갔고…”라며 ‘평범한’ 가족사를 공개하기도 했다.딸은 결혼한 뒤 유학을 갔다고 설명했다.거실 한편에는 부모인 고 정일형·이태형 박사 사진과 가족 사진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기자들이 “아드님한테도 정치를 시킬 겁니까.”라고 묻자,정 대표는 “에이,얘는 안돼.”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25일 새벽 1시쯤 기자들을 배웅하면서 정 대표는 거실 벽에 ‘시인거(是人居)’라고 씌어진 서예 액자를 가리켰다.“이거 독립선언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 선생이 쓴 건데,여기에 사람이…,아니 사람다운 사람이 산다는 뜻이지.”라며 껄껄 웃었다. 정 대표는 이날 당에 출근해서도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청와대에 대한 추가적 강공은 자제했다.그러나 측근들은 “며칠 숨고르기를 하는 것일 뿐,개전(改悛)의 정이 안 보이면 결별밖에 없다.”고 말해 청와대에 대한 3차,4차 공격이 예비돼 있음을 강조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이달의 독립운동가’ 김경천장군

    국가보훈처는 만주지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김경천(1888∼1942) 장군을 이달(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서울 태생인 김경천 장군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제1사단에서 근무하던 중 2·8독립선언에 영향을 받아 1919년 2월 귀국한 뒤 그해 6월 만주로 망명했다.만주 안동현에서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한 그는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생활을 하면서 청천 지석규 장군 등과 함께 만주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 [길섶에서] 사랑과 이별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1969년 최고의 인기배우 부부가 이혼하면서 남긴 유행어다.이들의 이혼은 8쪽짜리 신문의 몇 면을 장식할 만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그러나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해는 못하겠다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사랑하는데 왜 이혼을 하나.그 무렵 우리사회 정서는 그랬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이제 이런 말을 했다가는 비웃음 사기 십상인 세태가 됐다.세계 2위의 이혼율을 기록하는 지경이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수식어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은 있다.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다.그런데도 자식이 결혼하면 따로 떨어져 산다.자칫 사랑에 금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한지붕 밑에서 지내다 보면 부모나 자식부부 모두 여러가지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는 건강할 때 얘기다.병약하면 자식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그래서 어버이들은 오늘도 다짐한다.절대 아프지 말자고.즐겁고 멋지게 살자고.노후 ‘독립선언’이 가슴을저민다. 김명서 논설위원
  •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하는 아내들 / K-1TV 아침마당 ‘어머니의 독립선언’ 방영

    한해 이혼 12만쌍,이혼율 세계2위,10년전 보다 7배나 늘어난 황혼 이혼…. KBS1 ‘아침마당’은 어버이날인 8일 ‘어머니의 독립선언’(CP 조명희·오전 8시30분)편에서 ‘위기의 한국가정’의 실상을 집중조명한다. 제작진은 위기의 원인을 ‘전통적인 아버지의 위상과 이에 도전하는 어머니의 위상 충돌’에서 찾는다.KBS 방송문화연구소가 지난달 말 전국의 성인남녀 1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실제 부부의 증언,전문패널의 토론 등으로 이를 확인시켜준다. 프로그램은 ‘가부장적 남편’과 ‘가사·육아분담’‘처가중심살이와 시부모 봉양’‘고개숙인 아버지’ 등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 구성한다. 첫 주제인 ‘가부장적인 남편’에서는 지난 1월 황혼 이혼 소송을 낸 김모씨 사례로 가부장적 남편의 실상과 문제점을 들여다본다. 두번째 ‘가사와 육아분담’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갈등의 원인으로 떠오르는 가사분담 문제를 다룬다.남편의 가사협조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아내는 전체의 30%인 반면,‘내 협조에 아내가 만족할 것’이라고 응답한 남성은 50%로 시각차가 현격하다. ‘처가중심살이와 시부모 봉양’은 젊은 맞벌이 부부가 육아문제의 해결책으로 선호하는 ‘아이는 장모님께’ 문제를 생각해본다.남편들은 육아문제로 장모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생활의 중심이 처가쪽으로 치우쳐 불만이라고 털어놓는다. 마지막 ‘고개숙인 아버지’에서는 퇴직과 함께 경제력이 상실되면서 부인의 구박을 받는 가장의 이야기다.퇴직가장 박모씨가 사회와 가정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남편들의 심정을 전한다. 제작진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부부갈등의 주요원인인 가사분담 문제나 경제문제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차이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남편의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하는 아내들의 반란이라는 시대적 대세를 수용하는 남편들의 열린 마음과 아내들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식약청 독립선언?/ 신임차장 복지부 출신 제동 국장급 4명중 내부승진 방침

    ‘독립선언(?)의 수순인가.’ 보건복지부 외청인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인사’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사표가 수리된 이형주 차장의 후임으로 김진수 기획관리관 등 식약청의 국장급 4명중 1명을 승진발령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같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14일 “후임 차장은 이번주내 다면평가를 거쳐 식약청 국장중 승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그동안 떠돌던 내부승진설확인해줬다. 식약청 차장(1급)은 청장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으로 볼 수 있지만,전임자들이 모두 복지부에서 내려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복지부 출신인 이 전 차장도 민주당 전문위원을 거쳐 옮겨왔고,전임자인 박정구 전 차장도 당시 복지부 보건자원국장을 지낸 뒤 차장으로 승진했었다. 때문에 복지부 내부에서는 식품의약품 안전본부에서 출발,지난 98년 2월 독립외청으로 발족한 식약청이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딴 살림’을 차리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성수기자 sskim@
  • [길섶에서] 자유의 파열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독립기념관 북쪽 유리전시실에는 길게 균열이 간 종이 보관돼 있다.1776년 7월4일 이 건물(당시 식민지의사당,지금의 인디펜던스 홀) 대회의실에서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기념으로 높게 울려퍼졌던 종이다.1839년 노예해방론자들에 의해 ‘자유의 종’이라고 명명됐던 이 종은 7년 후 조지 워싱턴 탄생일을 맞아 타종하다가 균열이 생기면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오늘날 자유의 종은 본래의 ‘법과 정의’ 대신 빗나간 애국심을 꼬집는 상징어로도 쓰인다. 미국은 오늘도 이라크 바그다드를 비롯한 전략 거점에 미사일과 포탄을 쏟아 부으면서 ‘이라크 해방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수백명에 이르는 민간인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포성까지도 자유의 종소리로 치부한다.하지만 유네스코를 동원해 세계 문화유산으로까지 편입시킨 자유의 종에서는 반전의 파열음만 내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우득정 논설위원
  • “3·1운동 기념관이 왜 필요없습니까”‘33인’ 이종일 선생 외증손자 기념관 추진 ‘또다른 3·1운동’

    “참 답답한 양반이셨죠.남작 작위를 주겠다는 제안도 마다하고 스스로 굶어죽는 길을 택하셨어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근린공원을 찾은 박인성(사진·66)씨는 착잡한 듯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100평 남짓한 소공원 한쪽에는 인쇄소 보성사(普成社)가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2001년 8월에 세웠다는 옥파(沃坡) 이종일(李鍾一) 선생의 동상이 쓸쓸하게 서 있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옥파 선생의 외증손자로 서울 장충동 3·1운동기념탑 건립을 주도하기도 한 박씨는 요즘 3·1운동기념관 설립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3·1운동은 비폭력평화운동의 기원이 된 세계사적 사건입니다.중국의 5·4운동,간디의 무저항비폭력운동도 그 뿌리는 3·1운동이에요.그런데 사람들은 왜 3·1운동기념관이 필요한지 이해를 못해요.” 박씨가 3·1운동기념사업에 뛰어든 것은 외증조부인 옥파 선생과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이다. 민족대표 33인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옥파 선생은 3·1운동 당시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의 사장으로 기미독립선언문과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의 인쇄·배포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선생은 이 일로 3년간 옥고를 치른 뒤에도 1922년 3월 제2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손수 ‘자주독립선언문’을 기초하다 발각돼 고초를 겪을 만큼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0년 전 돌아가신 박씨의 어머니 역시 3·1운동 당시 증조부를 대신해 경운동 집에서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다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증조부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어요.증조부는 절친했던 동지들이 변절하거나 망명길을 떠난 뒤에도 일제의 협박과 회유를 거부하고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자리인 죽첨정 1번지에서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고 하시더군요.이 얘기를 듣고 ‘증조부의 생애와 사상을 반드시 세상에 알리겠다.’는 결심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67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이후 7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미대 재학중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시사만화 그리기는어느새 그의 직업이 됐다.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중앙일보·부산일보 등에 만평과 4컷만화를 그렸다.하지만 그의 몸 속에 흐르는 ‘독립운동가’의 피는 순탄한 시사만화가의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79년 증조부가 남긴 비망록이 발견됐어요.증조부의 보성학교 제자였던 이병도·백낙준 박사와 함께 기념사업회를 꾸렸지요.그 뒤 기록 발굴과 생가 복원을 위해 전국 곳곳을 헤매다녔어요.당연히 본업은 뒷전일 수밖에요.” 박씨와 제자들의 노력으로 83년 4권짜리 ‘옥파전집’이 발간되고 같은 해 충남 태안 생가터에 기념관이 건립됐다. 2년 전에는 수송동에 동상도 세워졌다.하지만 박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박씨의 마지막 꿈은 서울 장충동에 3·1운동기념관을 세우고 이곳에 ‘3·1정신’을 계승한 ‘세계비폭력평화운동본부’를 설립·유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하고 쉬라지만 그럴 순 없지요.사실 친가쪽 둘째 할아버지가 33인중 한 사람이었다가 변절한 박희도(朴熙道)씨입니다.그 분의 잘못까지 속죄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멉니다.” 이세영기자 sylee@
  • [기고] 참여정부시대의 3·1정신

    “어떠한 나라든지 제가 스스로 망하는 것이지 남의 나라가 남의 나라를 망할 수 없는 것이요.(중략)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압박만 받지 아니하고자 할 뿐 아니라 행복의 증진도 받지 않고자 하느니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라.4000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언제까지든지 남의 노예가 될 것은 아니다.”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한용운(韓龍雲·1879∼1944) 선생이 법정에서 한 말씀의 일부이다. 숱한 외침을 극복하고 5000년 민족사를 이어 온 힘은 바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한용운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존의식이야말로 수많은 국난을 이겨내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정신적 에너지였으며,국가발전의 동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여든 네번째 3·1절을 맞는다. 우리는 지난해 월드컵대회 때 서울의 광화문과 시청앞,그리고 지방 곳곳의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됨을 느꼈다. 1919년 3월에도 이 땅은 민족자존을 위한 함성으로 뜨겁게 달구어졌었다.만세운동의 함성에는 지역·계층·종교·세대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오직 자주독립이라는 민족적 열망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민족에 대한 애착이요,자긍심이다. 돌이켜 보면 3·1운동은 선열들께서 민족자결주의의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여 이를 활용한 거사였다.이 때 표방된 민족통합과 국제평화,민주이념 등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소중히 간직해야 할 가치이다. 3·1정신은 첫째,민족 모두가 하나되어 조국독립을 외쳤던 대동단결의 정신에서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 3·1운동에서 드러난 민족통합의 정신이야말로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적 가치가 아닌가 싶다. 둘째,세계평화와 인도주의 정신을 들 수 있다. ‘독립선언서’에서는 “우리의 꿈은 결코 구원과 일시적인 감정으로써 타를 질축 배척함이 아니라 동양평화,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에 이바지한 데 있다.”라고 천명하였다.이러한 정의·인도·평화의 정신은 대립과 긴장,분열을 극복하고 인류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워주고 있다. 셋째,3·1운동의 결과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민주공화국의 기치를 내걸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민족사에 새겨놓음으로써 민주인권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집단적 갈등과 이기주의,가치관 혼란현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또한 국제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날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북한 핵문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당면한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국가건설에 주춧돌을 놓아 나갔으면 한다. 특히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대통합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국가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낼 수 있는 국민통합의 바탕 위에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지식문화강국 실현 등의 국정과제를 해결해갈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 맞는 3·1절에 즈음하여 선열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살려 민족자존을 지키고 나라의 부강도 기대할 수 있음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김 종 성
  • [씨줄날줄] ‘희망의 정부’

    정확히 18일 뒤면 새 정부가 탄생한다.노무현호(號)가 ‘수평·변화의 바다’로 힘찬 항해를 하는 것이다.5년 전인 1998년엔 김대중 대통령이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자축하며,국민 속으로 뛰어들었다.그의 대통령 취임은,파란의 정치생애가 가져다 준 피와 땀의 결실이었다.‘목포의 눈물’이 아니라 ‘동방의 아침의 나라’가 국회의사당 하늘에 울려 퍼졌다.비둘기가 날고,예포가 하늘을 갈랐다.한 인간의 승리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듯 국민의 정부도 기분 좋게 출발했다. 우리가 정부의 성격을 축약한 별칭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것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였다.문민정부.군 출신이 아닌 민간인 출신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라는 뜻이었다.5·16 이후 32년 동안 군부통치를 경험한 당시만 해도 상당한 정치적 의미가 들어 있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달 15일부터 지난 2일까지 새 정부의 명칭을 공모한 결과 4200여건 중 ‘희망의 정부’가 305건으로 가장 많았다.‘우리의 정부’(237건),‘열린 정부’(194건),‘참여 정부’(172건) 등으로 이어졌다.개혁정부,국민화합의 정부,국민주권 정부,서민 정부와 함께 초심의 정부,디딤돌 정부,늘 편한 정부,친구같은 정부 등 재미있는 것들도 있었다.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한데 모여진 것들이다.지난 정부들에 대한 실망의 반작용이기도 하면서.이름처럼만 하면 역대 어느 정부보다 훌륭한 정부가 될 것이 틀림없다.‘희망의 정부’만 해도 자신의 희망을 새 정부에 걸어 본다는 뜻이 아니겠는가.한 네티즌은 “학벌,지역,성 등에 차별 없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공모자가 많다고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일견 그럴싸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미 독립선언문 작성자로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국민이 통제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며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주문했다.‘국민이 대통령’이라는 국민주권시대를 주창한 노무현 정부의 정신과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살맛나고,신나는 정부가 한번 탄생했으면 하는 게 모두의 소망이리라.자,가자 변화가 있고,희망이 있는 나라로. 이건영 seouling@
  • EBS 12부작 ‘조지형의 미국사‘ 기획특강,역대 미국대통령 리더십 분석

    EBS는 12부작 연속 기획 특강 ‘조지형의 미국사를 통해 본 대통령의 리더십’을 3일부터 낸다.오는 20일까지 매주 월~목요일 오후10시에 방송된다.강의에 나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미국법제사를 전공했다. 조교수는 워싱턴,링컨,루즈벨트,레이건,클린턴 등 역대 미국 대통령과 그들의 리더십을 시대상황과 연관지어 분석한다.성공한 대통령의 리더십,개인적인 특성과 리더십의 상관관계,미국 정치사에 전통으로 남은 리더십,대통령과 국가통합 등 크게 4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1강 ‘대통령직의 탄생’에서는 본격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의 사례를 살피기에 앞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미국민에게 갖는 의미를 조명한다. 조교수는 미국인들에게 대통령선거전이 어떻게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역사를 더듬어 설명한다.군주제를 거부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제를 창안한 만큼 대통령직이란 미국 혁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독립선언서와 미국헌법을 통해 대통령제가 어떻게 생겨났으며,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직 수행이 정치·역사·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2강 ‘미국 건국의 아버지’(4일)에서는 후대의 귀감이 되고 있는 조지 워싱턴,3강 ‘자유의 제국’(5일)에서는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4강 ‘보통사람의 시대’(6일)에서는 앤드류 잭슨의 낭만적 입신출세기를 곁들인 리더십을 소개한다. 특강은 10일 ‘에이브러햄 링컨,위대한 해방자’,11일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혁신주의 대통령’,12일 ‘우드로 윌슨과 세계평화의 이상’,13일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뉴딜정책’,17일 ‘존 F 케네디와 뉴 프런티어’,18일 ‘리처드 닉슨과 한계의 시대’,19일 ‘로널드 레이건과 냉전체제의 종식’,20일 ‘21세기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빌 클린턴’으로 이어진다. 권의정 PD는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대통령의 리더십을 생각해보고자 했다.”면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미국 대통령 11명을 미국사에 접목시켜 올바른 리더십을 조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
  • 천주교인도 3·1운동 참여했다

    그동안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던 천주교인들이 이 운동에 적극 나섰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격문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국가보훈처가 최근 발간한 사료집 ‘3·1운동 독립선언서와 격문’은 1919년 3월21일 천주교 회원들이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장에게 보낸 ‘경통’(敬通)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면장과 면직원들에게 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천주교 회원들은 이 경통에서 “우리 2000만 동포로서 독립되기 위해 경성내 대개의 학생과 천주교인,노동자까지 모두 만세를 부르는데,단 송포면장이 만세를 부르지 아니하니 무슨 까닭인가,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큰 변을 당할 것이니 깊이 생각하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최기영 박사는 “교단이 아닌 교인들에 의해 작성된 점으로 미뤄 3·1운동 현장에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여한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가치가 높은 문서”라고 평가했다.국가보훈처는 “서울에서 배포된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모아 사료집으로 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사료집은 당시의 만세운동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씨줄날줄]서류 효도

    직장인들의 연말 정산 신고가 막바지로 치달으며 형제들 사이에서 ‘서류효도’(書類 孝道)가 한창이라고 한다.직장 생활을 하는 형제들이 주민등록도 따로 되어 있고 생활비를 보내지 않았던 부모를 연말 정산서에는 서로 부양 가족으로 신고하려 한다는 것이다.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공제액을 늘리기로 말하자면 부모님 부양만한 비방이 없다.65세가 넘으면 그냥 부양 가족이 아니라 경로자로 우대되어 공제액도 대폭 늘어난다.또 있다.노인들은 병원 의존도가 유난히 높고 심지어 보약까지 의료비는 몽땅 공제 대상이니 탐날 만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들을 싸잡아 야속하다고 얘기할 일은 아니다.요즘 부모들은결혼한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기를 거부한다지 않는가.아들이나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사느니 조금 외롭더라도 따로 살겠다는 것이다.우리의 가족 제도는극적인 마디마디를 거쳤다.전통적인 대가족제에서 벗어나 자녀들이 따로 살기를 바랐다.부모와 자녀 세대간 갈등기를 거친다.그리고 대가족제는 핵가족제로 해체되었다.이번엔 부모들이 독립선언을 하고 나선다.문제는 부모 세대의 독립이 암묵적으로 강요되었다는 데 있다.핵가족 시스템에서 겪는 정신적 소외감을 피해 독립 생활을 택한 것이다. 효도만큼 장려되고 강요된 사회적 덕목도 없다.그리고 효도의 지표는 부모들이 나이들거나 혹은 어떤 이유로 고통받을 때 어떻게 봉양해야 하는가로요약된다.칠십 백발이 되어서도 때때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재롱을 피웠다는 춘추전국시대 노래자(老萊子)며 생전의 업보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해낸다는 불교의 우란분경(盂蘭盆經)이 모두 그렇다.효는 덕목이면서 한편으론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복지 시스템이었던 까닭이다.경제력을 자녀에게 서서히 이양하는 대신 노후를 보장받는 제도적 장치였다. 부모 부양비를 소득 공제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도 부모 봉양을 권장하는 문화의 연장선일 것이다.연말 정산에 부모님의 생활비를 포함시키면서 한번쯤부모님의 삶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소득세 연말 정산을 하면서 부모와 자식간의 도리도 정산하자는 것이다.서류 효도를 실천하는 셈이다.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한번쯤 떠올렸던 얼굴들을 직접 찾아 볼 일이다.가족의 정을 쌈지에 꼬깃꼬깃 넣어 주자.한 해가 간다.아쉬움일랑 모두 털어버리고 또 한 해를보냈으면 좋겠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독립기념관 전시자료 또 도난

    독립기념관이 개관 이후 모두 5차례에 걸쳐 사료를 분실 및 도난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독립기념관측은 지난해 9월부터 제6전시관에 전시됐던 10원권 ‘전시 보국채권 1점’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최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18일 밝혔다.분실된 전시품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후 전쟁비용 충당을 위해 1943년 2월 발행한 10원권 전시 보국채권이다. 독립기념관의 자료 분실은 지난 96년 4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서재필 선생의 육성음반 분실과 지난 6월 국채영수증 2점에 이어 확인된 것만 이번이 5번째다. 도난 분실품은 지난 6월의 분실된 ‘대한인 국민총회 의무금 영수증’들과 마찬가지로 진품 전시에 적합하지 않은 아크릴 패널로 전시해 왔으며,독립기념관측은 도난사건이 발생하자 5장이 전시됐던 패널을 통째로 뜯어내 현장을 훼손했다. 이에 앞서 2000년 8월 구한말 의병장으로 ‘13도 의군 도총재’였던 의암 유인석 선생의 간찰(편지) 원본을 분실,이를 7개월 만인 지난해 3월 표구실에서 찾아내 보관 중이다.또 87년 7월에는 2·8독립선언을 주도한 김도연 선생의 회중시계를 도난 하루만에 찾았다.이 회중시계는 이곳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훔쳐간 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처벌이 두려워 반환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
  • 체첸반군 극장 인질극 원인과 전망 - 국제사회 관심끌기 전략

    모스크바 심장부에서 일어난 인질극은 체첸사태가 해결됐다고 공언하던 러시아 당국의 자존심을 산산이 무너뜨리고 세계의 이목을 다시 한번 체첸사태로 집중시키고 있다. ◆끝나지 않은 체첸 사태 인질범들은 이번 인질극의 목적이 체첸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을 철수시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러시아군의 체첸 점령 사태를 이슈로 재점화시켜 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모으려는 게 일차적 목표인 듯하다. 체첸 반군 지도자 모프사르 바라예프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번 인질극에서 인질범들은 1주일의 시한을 제시하고 체첸내 러시아군의 즉각적인 군사작전 중단과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94년부터 96년까지 1차 체첸전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낸 체첸공화국은 97년 1월 대선을 실시,러시아와의 평화협상을 이끌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 전 반군 사령관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그러나 이 자치정부는 얼마 안가 무정부 상태에 빠졌고 러시아와의 유혈충돌은 계속됐다. 이후 99년 모스크바의 연쇄 아파트 폭발사건을 계기로 러시아군은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지휘 아래 체첸 북부에 진입,대대적인 공세를 취하면서 분쟁은 격화됐다.이때 촉발된 2차 체첸전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 ◆계속되는 인권유린 지난해 11월 러시아와 체첸 대표가 처음으로 직접 대면,평화정착을 위한 협상을 벌이는 등 러시아 정부와 체첸 반군간 접촉이 이뤄졌지만 체첸사태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다.인구 80만명의 체첸은 이미 두 차례의 전쟁으로 6만여명의 사상자와 20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폐허로 변했다.체첸에서는 여전히 러시아군에 의한 강간·납치·살인이 자행되고 있다.국제인권단체 ‘헬싱키 인권연맹’은 최근 매달 80여명의 체첸 청년들이 러시아군에 납치,살해되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이후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과잉 공격과 인권유린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박은 크게 줄었다. 특히 미국은 체첸 지도부가 알카에다와 연루돼 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인정하고 러시아군의 대대적인 체첸반군 소탕작전을 묵인하고 있다. ◆사태 장기화 전망 러시아 당국은 일단 대화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극장 곳곳에 설치된 폭발물과 너무 많은 수의 인질 때문에 무력진압을 시도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그러나 체첸공화국의 독립이나 자치 요구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 러시아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협상의 여지가 많지 않아 협상 조건을 놓고 쌍방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등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일본·인도네시아 등 각국은 어떤 형태의 테러도 용납할 수 없다며 러시아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앞으로 제기될 국제 여론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사태가 장기화하면 체첸 내의 인권유린 실상이 부각돼 러시아에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이 쏟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질범들이 어느 정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시점에서 러시아 정부가 인질범들의 무사귀환을 보장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 ■체첸사태 주요일지◆91년 11월 구소련 육군장성 두다예프 체첸 독립선언 ◆94년 12월 러시아군 체첸 침공 ◆95년 6월 러시아 부뎬노프스크 병원서 인질극 100명 사망 ◆96년 1월 키즐야르 병원 인질극 78명 사망 ◆96년 8월 휴전.러군 11월 철수 ◆99년 8월 크렘린궁 주변 쇼핑몰 폭발 41명 부상 ◆99년 9월 다게스탄의 러장교 아파트 폭탄차량 돌진 64명 사망 ◆99년 9월 모스크바 아파트단지 폭발 93명 사망 ◆99년 10월 러군,테러 차단 빌미로 체첸 재진입 ◆2001년 8월 체첸반군,러 헬기 격추 118명 사망 ■체첸 어떤 나라 체첸 공화국은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 산맥 북단에 위치한 나라다.우리나라 경상북도만한 영토(1만 9000㎢)에 인구도 120만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나라지만 석유자원이 풍부하다.석유뿐 아니라 코카서스 지역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서도 러시아는 체첸의 독립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입장이다. 주민들 대부분이 독실한 이슬람(수니파) 교도들이라 중앙아시아 공화국들과 가까울 뿐 아니라 인근 터키,이란과도 친하며 현재도 강한 씨족사회를 형성하고 있을 만큼 민족정신이 강하다. 1859년 제정 러시아에 강제 편입된 이후 러시아인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갖고 살아왔다. 1932년 스탈린에 의해 언어·문화가 다른 잉구시인들과 체첸·잉구시 자치공화국으로 강제병합된 뒤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더 커졌으며,2차대전 당시 그로즈니 문턱까지 들어온 독일군에 협조할 정도였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시작되기 무섭게 소련군 공군 소장 출신인 조하르 두다예프를 중심으로 민족 주권운동이 일어났다.옛 소련 붕괴의 혼란기를 틈타 각 공화국이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91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된 두다예프는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포했고 92년 잉구시와도 결별했다. 내부 사정으로 정면 대응하지 못하던 러시아는 94년 12월 체첸에 전면공격을 가해 수도 그로즈니를 함락시키는 등 13개월간 전쟁을 벌여 양측을 합해 3만여명이 희생되기도 했다.97년 두다예프가 러시아군에 의해 암살된 뒤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
  • ‘9·11’ 1년… 美 초긴장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9·11 테러 1주년이 다가오면서 미국에 다시 테러경보가 내려졌다.뉴욕과 워싱턴 일대에는 지난 4월 중단된 전투기의 24시간 초계비행이 재개됐다.해외 미 공관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무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아시아 3개국의 대사관을 일시 폐쇄했다.미 해군은 알 카에다가 걸프만을 통과하는 유조선들에 대한 공격을 계획중이라는 첩보에 따라 이 지역을 지나는 선박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경고했다. ●고조되는 긴장감= 워싱턴 일대에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10일 승인할 예정인 이 계획안은 1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백악관과 국방부,의회,워싱턴 기념탑 등을 비행기 자살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스팅거 미사일 등을 배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4월 이후 테러경보가 내려졌을 때만 순회하던 전투기 초계비행도 6일부터는 24시간 뉴욕과 워싱턴 상공을 돌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은 앞서 뉴욕과 워싱턴 경찰,전기회사,교통당국 등에 경계령을 내렸다.FBI는 9·11 기념행사를 겨냥한 구체적이거나 신뢰할만한 내용이 아니지만 포괄적인 위협의 정보가 계속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1주년 행사뿐 아니라 10∼20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와 25∼29일 워싱턴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도 주의를 촉구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9·11 기념식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미국은 추가 테러공격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지금까지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고 덧붙였다.리처드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에 있는 대사관과 영사관,말레이시아·캄보디아 대사관이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신뢰할만하고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 폐쇄했다고 말했다.국무부는 아울러 전세계 미국인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잇따르는 테러공포= 1주년이 가까워지면서 알 카에다 공작원들의 통신연락이 부쩍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미 정보당국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도청한 통신과 인터넷 암호문에 “신의 메시지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은 이날 5시간 동안 비행기 출발이 지연됐다.한남성이 보안검색을 받지 않고 공항내로 진입하자 경찰이 터미널을 봉쇄 수색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남성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지난해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이 추락한 펜실베이니아 생크빌의 추모장소도 의심스런 물질이 담긴 아이스 박스가 발견돼 한때 패쇄됐다. 앞서 미 정보당국은 중동지역으로부터 워싱턴 기념탑과 국방부 청사,주요공공건물 등을 감시하는 내용을 찍은 비디오 테이프의 사본을 입수했다.테러공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되자 워싱턴 당국은 경찰 및 민간 보안요원들에게 경계를 한층 강화할 것을 시달했다.워싱턴포스트는 아프가니스탄 테러캠프에서 훈련받은 테러리스트들이 미숙하지만 개별적으로 위협적인 공격을 감행하려한다고 9일자로 보도했다. ●애도의 물결= 미 방송사들은 테러 장면의 방영을 자제하면서 테러 현장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터 인 ‘그라운드 제로’를 배경으로 추모 특집을 내보냈다.뉴욕경찰국은 당시 구조작업에 나섰다 숨진 뉴욕 경찰관 23명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워싱턴은 11일을 국민적 추모일로 선포하고 국방부에서 대통령과 희생자 유가족이 참석한 기념식을 갖는다. 뉴욕시는 희생자를 기리는 퍼레이드에 이어 현장에서 독립선언서와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희생자의 명단과 함께 낭독한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밤에 ‘영원의 불꽃’의 점화식을 갖는다.50개주도 각각 촛불 점화식 등 추모행사를 준비중이다. mip@
  • 美 ‘7·4테러’ 초비상

    미국 행정부가 독립기념일인 4일을 앞두고 경계강화에 들어갔다.미 전역이 축제준비에 들어간 가운데 테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CBS의 ‘국민과의 만남’에 출연,“축제기간에 경계해야 한다는 보고가 많이 있다.”며 “그래도 모든 미국인들이 축제를 즐기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뉴욕타임스도 “독립기념일이라는 정치적·문화적 중요성 때문에 추가 경계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미국민들도 테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지난달 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과반수가 독립기념일에 추가테러 공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12%는 테러 가능성이 ‘매우 크다.’,45%는 ‘어느 정도 있다.’고 대답했다.테러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응답자의 75%는 테러위협 때문에 워싱턴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를 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일단 미 연방 및 주 정부 산하 대테러기관들은 테러취약지역과시설물에 대해 워싱턴에 준하는 보안경계조치를 내렸다.미 전역에 산재한 핵시설물,대형 구조물과 아파트,경기장,대형 선박과 항공기,유조차 등에 대한 보안경비가 강화됐다.해외 미 외교공관들에는 불꽃놀이와 미국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알려진 곳에서의 기념행사는 자제하라는 주의가 내려졌다. 가장 경계가 강화되는 곳은 워싱턴이다.백악관,의사당,연방대법원,국무부,국방부,법무부,연방수사국(FBI),중앙정보부(CIA) 등 국가 주요기관이 운집해 있기 때문이다.또 독립기념일에 수십만명이 모인 가운데 퍼레이드,독립선언서 낭독식,독립기념 민속행사,대규모 야간 불꽃놀이 등이 실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축제 동안 백악관과 인근 공원의 출입은 완전 차단된다.또 국회의사당에서 워싱턴 기념탑,링컨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도 교통이 통제된다.축제가 열리는 국회의사당과 링컨 기념탑에 이르는 워싱턴 국립공원에는 20군데 특별 출입구가 설치되며 보안검색대와 함께 경찰요원만 2000명이 투입된다.워싱턴 외에 사람이 많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도 보안조치가 강화됐다.연방항공당국(FAA)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사우스 다코타주러슈모어산 국립추모관,세인트루이스의 게이트웨이 아치 등 3개 명소의 상공에 대해 일시적 비행제한조치를 내렸다.자유의 여신상은 오는 9월까지며 러슈모어산과 게이트웨이 아치는 2∼3일간 비행이 금지된다. 전경하기자 la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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