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참사 2주일 /실종자 인정사망 범위 최대논란
대구지하철 방화참사가 3일로 발생 2주일째를 맞았다.지하철 사고 사상 최대 희생자수를 기록한 이번 참사는 다시 한번 대형 안전사고에 대한 경보음을 울렸다.대구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7만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가는 등 애도행렬이 이어지고 있고 각계각층에서 유가족들을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도 밀물을 이루고 있다.1일부터 중앙특별지원단이 대구에 상주하면서 사고수습을 지원하고 있다.대구지하철 참사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과제와 당국의 대책,유가족의 목소리 등을 통해 사고수습 상황을 점검한다.
대구참사 수습의 최대 난제는 실종자 처리 문제다.당국과 유가족 모두 총론적인 입장에는 공감하고 있다.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들어가면 의견이 엇갈리면서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DNA추출 어려운 실종자 137명
실종신고자 중 미확인자가 286명이 되는 데서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북대 법의학팀이 DNA검사를 통해 신원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사체는 149구에 불과하다.따라서 137명은 흔적도 찾지 못해 영원히 실종자로남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수습된 사체 중 상당수가 사고 당시 섭씨 1000도가 넘는 고열로 인해 심하게 타버려 DNA추출이 불가능해 신원확인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실종자 가족들은 정황증거를 사망으로 인정하는 인정사망제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사고대책본부도 호적법 90조를 원용할 움직임이다.‘수난·화재·기타 사변으로 인해 사망한 자가 있는 경우 그를 조사한 관공서는 지체없이 사망자의 시·읍·면장에게 사망보고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다.실종자심사위를 구성한 뒤 이를 참고해 사망인정을 받도록 하겠다는 게 대책위의 복안이다.
1009명이 실종신고를 했던 95년의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경우 실종자심사위원회에서 삼풍 직원,입주업체 직원,유류품 또는 유실물이 발견된 자,목격자가 있는 자 등에 대해 잠정 사망으로 결정한 전례가 있다.
●휴대전화등 정황증거조차 없을수도
이에 따라 지원단과 대책본부는 조만간 실종자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주민증·학생증·수첩 등 본인 확인이 가능한 유류품 ▲전화통화나 휴대전화 위치 확인 여부 ▲폐쇄회로 등을 통해 당시 지하철을 이용했다는 정황 ▲평일 같은 시간대에 지하철을 이용한 출·퇴근기록 등을 검토해 사망을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이렇게 해도 정황증거가 없어 인정사망에서 탈락하는 실종자들의 처리는 여전히 문제로 남을 전망이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았거나 폐쇄회로 등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실종자 가족들은 법정다툼을 벌이겠다는 의사를 숨기지 않는다.이들은 대구시가 사고 다음날부터 물청소를 하는 등 현장보존을 하지 않아 많은 증거가 사라지거나 뒤섞여 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금 500억원 예상… 배분기준 논란
보상금 산정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보상금에는 정부지원금, 성금,위로금 등이 포함된다.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돼 최고 1억 2339억원까지 지급되는 정부지원금에는 대책본부와 유가족측이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성금의 처리가 불투명한 상태다.사망자와 부상자에게 어떤 비율로 배분하느냐는 것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성금을 전부 지급할 것인지도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400억원선인 성금은 5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지원단과 대책본부 일각에서는 너무 많은 보상금이 지급될 경우 앞으로 유사한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 보상금 산정에 어려움이 있다며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책임자 처벌·원인규명 과제… 검찰 재수사
사고 원인규명은 장기과제로 남을 가능성이 짙어보인다.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한 사람의 방화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지하철 사고의 구조적인 문제점 파악을 위한 전문가들의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다만 방화 사고 요인으로 현재까지 드러난 것은 위기상황에서 사령실 근무자와 기관사들의 위기대처능력 부족,안전의식 결여,화재에 취약한 전동차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정확한 발화 지점까지 오락가락하는 등 의문점이 수두룩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찰이 기관사 등 ‘피라미'들을 처벌하는 수준에 그칠 경우 책임소재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대구지검은 전담수사반에서 차장검사를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로 확대개편해 전면 재수사에나섰다.이는 여론을 감안한 조치로 수사의 칼끝이 지하철공사와 대구시 고위급 간부를 겨냥하고 있음을 뜻해 사법처리 수준이 주목되고 있다.
대구 한찬규 김상화기자cghan@
◆김중량 중앙특별지원단장
“유가족의 입장에서 한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수습을 위해 대구에 온 중앙특별지원단 김중량(金重養·사진·58)단장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유가족들의 아픔을 달래고 실종자 처리문제 등을 신속하게 해결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중앙지원단은 행정자치부와 법무부,보건복지부,경찰청 등 5개 부처의 국·과장급 5명 등 13명으로 구성돼 1일부터 대구에 상주하고 있다.
김 단장은 “유가족 문제해결,보상,실종자 가족처리,인정사망 등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또 “총리께서 중앙특별지원단이 실질적인 사고대책본부라고 생각하고 유가족·피해자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가장 관심을 끄는 실종자 처리와 관련,실종자 유가족측이 ‘인정사망 심사위’ 구성시 대책본부와 같은 수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김 단장은 “인정사망위 구성은 유가족대표와 협의해 결정하겠다.”면서 “총리께서 유가족들이 추천한 전문가를 절반 정도 참여시켜 빠른 시일내에 구성하도록 당부했다.”고 설명했다.특히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없도록 하기 위해 사고 당시 지하철 CCTV,휴대전화 위치추적 등 당시 정황증거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하철공사 등이 사건을 은폐·축소했다는 의혹에 대해 김 단장은 “대검찰청 주관으로 원점에서 수사를 다시 시작하는 등 한점의 의혹이 없도록 투명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시와 역할분담에 대해 김 단장은 “대구시는 기본적인 사고 수습업무를 맡고 모자라는 부분은 지원단이 해결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대화창구 일원화도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혔다.실종자유가족대책위가 요구하는 ‘장관급 이상의 지원단장’에 대해 “특별지원단이 대구시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관급이든 차관급이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대구황경근기자 kkhwang@
◆윤석기 실종자가족대책위원장
“실종자 가족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게 아닙니다.평소 건강한 생활인이었고,사고 시간대와 해당 구간에서 지하철을 타던 시민이면 실종자로 처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구지하철 사고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조직한 ‘실종자가족 대책위원회’의 윤석기(尹錫琪·사진·38·서울 강남구 도곡동) 위원장은 혼란을 겪고 있는 실종자 인정 범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실종자 범위를 포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희생자의 신원을 명확하게 가리기 힘들다는 이유로 억울한 경우가 단 한명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각종 재난을 관리하는 현행 법률에 문제가 있어 발생하는 공무원 사회의 ‘냄비 근성’을 이참에 뜯어고쳐 터무니없는 희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따라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이 국가 안전망 부실 때문에 침해당하는 경우에 대비한 ‘재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사고의 축소·은폐에만 급급하다며 조해녕 대구시장 중심의 사고대책본부 대신 중앙정부의 지휘가 필요하다는 강경입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관행과 현행 법률에 매달리고 몇몇 허위신고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억울한 죽음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차적으로는 실종자 인정사망 평가에 대책위가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함으로써 객관성을 높여야 합니다.”
윤위원장은 법률구조공단에 실종자 인정사망심사위원회의 구성과 보상문제 등에 대한 도움을 요청키로 했다.이번주중에 2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실종자 대책위와 함께 사고수습에 나설 계획이다.
외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던 그는 이번 사고로 처형(妻兄)을 잃었다.최근 출산한 부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처가쪽에 문제 해결에 나설 만한 가족이 없어 대책위에 참여하게 됐다.
대구 송한수기자 onek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