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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풍·총풍 수사 연내 마무리 될 듯/李會晟씨 긴급체포 안팎

    ◎金潤煥 의원 등 개인비리 정치인 ‘법대로’ 처리 전망 검찰이 10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會晟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전격체포,금명간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함에 따라 ‘세풍’‘총풍’수사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대선과 관련된 두 사건의 수사를 연내 마무리짓겠다고 공언해 왔다. 검찰은 이같은 계획 아래 두 사건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李씨에 대해 광범위하게 증거자료를 수집해왔으며,조사와 신병처리 시기를 저울질한 끝에 이날 李씨를 전격체포했다. 李씨는 지난해 11월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의 주선으로 H증권 李모사장으로부터 30억원을 거둬들이는 등 20개 기업으로부터 150억원의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하는데 직·간접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초 미국에 도피중인 李 전 차장이 귀국하면 李씨를 소환할 계획이었으나 세풍 사건부터 먼저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李씨 체포라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李씨 체포에 따라 대선 당시 한나라당 선거기획본부장을 지냈던 徐相穆 의원도어떤 형태로든 연내 사법처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개인비리 혐의가 제기되고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법대로’진행될 전망이다.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제출돼있는 한나라당 黃珞周 의원 등과 공천헌금으로 3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金潤煥 의원 등에 대해서도 사법처리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李씨는 그동안 세풍과 관련된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해왔으나 검찰은 참고인 및 주변 조사를 통해 李씨가 모금에 직접 개입한 증거를 확보,사법처리에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검찰은 李씨를 일단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신병을 확보한 뒤 곧바로 총풍사건에 대한 보강 수사에 돌입한다는 수순을 세우고 있다. 서울지검 공안1부는 ‘총풍 3인방’ 가운데 핵심인 韓成基씨가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李씨와 통화한 내역을 정밀 분석하고 있다.
  • 주민증 위·변조 ARS로 확인

    ◎행자부,발급일자·분실여부 등 즉시 안내 행정자치부는 날로 심각해 지는 위·변조 주민등록증을 이용한 범죄를 막기 위해 주민등록증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화자동응답시스템(ARS)을 10일부터 개설키로 했다.확인절차는 대상 주민의 주민등록번호 13자리와 주민증 발급일자 8자리를 누르면 된다.발급일자가 98년 12월7일이면 19981207이다.확인 번호를 누르면 주민증의 분실여부,발급일자가 맞는 지 여부 등을 음성으로 안내받을 수 있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위·변조한 주민등록증을 이용한 범죄는 날로 늘고 있고 수법도 더욱 지능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남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휴대전화에 가입한 뒤 수천만원어치의 국제전화를 공짜로 사용하는가 하면,장기매매를 허위 주민증으로 버젓이 하는 경우도 있다.또 위조된 주민증으로 여권을 다른 사람 명의로 발급받아 해외로 도피하기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지검 강력부(朴泰奎 부장검사)는 지난달 27일 실업자 등에게 장기를 팔도록 알선해주고 거액을 챙긴 孫강식(35)·朱상호씨(28) 등 3명을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조사 결과,이 브로커들은 병원에서 장기매매 방지를 위해 장기 제공자가 환자의 친·인척이고 보호자의 동의가 있을 때만 수술해주는 사실을 알고 환자와 보호자 주민등록증을 위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경찰은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2개월 동안 주민등록증 위·변조 행위를 특별단속,195건에 230명을 붙잡아 121명을 구속했다. 신분위장과 도피를 위해 위·변조하는 등 위·변조가 170건으로 제일 많았다.주민등록증 발급 담당 공무원이 주민카드 원부에 있는 얼굴사진과 신청자의 얼굴을 제대로 대조하지 않고 허위로 발급한 경우가 11건,채무불이행 확보수단으로 사용된 경우가 14건 등이었다. 다른 사람 명의를 도용해 가입한 휴대전화로 다량의 국제전화를 공짜로 사용한 사건도 있었다. 특히 남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휴대전화에 가입한 뒤 3일 동안 5,900만원어치의 국제전화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위조한 주민증으로 남의 예금과 적금을 털어가는 지능범들도 있다. 범인들은 자기 사진을 붙인남의 주민증을 은행 창구에 제시,“통장과 도장을 분실했다”며 개설된 계좌를 확인한 뒤 통장을 재발급받거나 현금카드를 만드는 수법으로 예금을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감독원은 이때문에 최근에 각 은행에 ‘주민등록증 위·변조 예금인출에 대한 사고예방 유의사항’이라는 공문을 보내 통장 개설은행에서만 통장 재발급을 해줄 것 등을 지시했다. 그러나 은행 직원들은 “확인과정이 길어져 예금주가 화를 낼 경우 서비스 차원에서 확인절차없이 통장을 재발급해주기도 하고 주민증을 제시하고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하면 알려줄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탈세·외화도피 신고하세요/인터넷·전화·팩스로 접수

    국내에서 조성된 음성·탈루소득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 및 외화도피에 관한 신고접수 창구’가 4일부터 개설·운영된다. 인터넷,PC통신,수신자부담 제보전화,FAX를 이용해 접수가 가능하다. 국세청은 이를 위해 현재 국제조세국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의 정보교환 및 국제조세에 대한 안내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embers.iworld.net/ntaint2/)에 ‘국제거래 관련 탈세 및 외화도피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부분을 추가해 온라인상태에서 직접 제보가 가능하도록 했다. 수신자 부담 전용전화 080­720­3300을 이용해도 된다.
  • 정부수립 초기의 문화교육정책(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

    ◎최남선·이광수 저서 학원서 축출/“친일파 작품 교과서 게재 안돼” 각도 학무국장 결의/중등 국사·문장독본 등 5권 교육부서도 판금처분 “해방이 도둑처럼 왔다”는 함석헌의 말은 일제 식민통치 아래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이겠으나 독립을 위해 각고의 투쟁을 했던 인사들에게는 모욕적인 비난일 수 있다. 감옥에서 광복절 이튿날 풀려난 김상훈(金尙勳)과 같은 시인이 맞았던 해방과,바로 그 시각 서울 근방 B29를 막는 방비공사용 자갈을 채취하는 양주군 진건면 사릉리앞 개울에 나갔다가 근로보국대에 동원됐던 사람 상당수가 안 나오고 감독하는 일군 병사도 보이지 않자 웬일이냐고 궁금해 하던중 어제 일본이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춘원 이광수(李光洙)가 맞았던 해방은 다를 수 밖에 없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이 김상훈에게는 역사적인 필연의 승리였지만 이광수에게는 도둑같이 몰래 찾아온 악몽이었을 것이다.이럴 때 보통사람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춘원과는 다른 입장이었으나,역시 낙향해 있던 철원에서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고 해방 이튿날 서울로 달려왔던 이태준에게도 해방은 도둑처럼 왔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소가 열 필이 와서 끌어도 이광수는 이 자리를 안떠날 것이오”라며 해방의 충격을 낙향생활로 완충지대를 삼으려 했다.겉보기로는 농사꾼같은 은둔생활 이었으나 미구에 닥칠 환란을 예견코 그는 재산보호를 위해 아내와 협의 이혼(1946월 5월31일)했는데,반민법이 그렇게 허망하게 허물어질 줄은 아마 예측하지 못했던 것같다. 이 기간중 춘원은 끊임없이 글을 썼지만 친일에 대한 참회보다 자신이 관여했던 민족운동을 부각시키는데에 초점을 맞췄다.그 많은 글중 판매금지 논란으로 사회적인 쟁점이 된 소설이 바로 ‘꿈’과 ‘문장독본’이었다. 십여년 전에 쓰다가 버려두었던 것을 해방이후 뒤늦게 완성시킨 ‘꿈’은 낙산사의 승려 ‘조신’이 허혼자가 있는 태수의 딸 월례와 애정의 도피행각을 떠나 15년간 2남2녀를 두고 잘 살다가 그녀의 약혼자에게 잡혀 사형당하려는 찰라 깨고 보니 꿈이었다는 ‘삼국유사’의 설화를 풀어 쓴 이야기다.이 꿈으로 조신이 쾌락의 허망을 깨닫고 고승이 됐다는 사족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인데,춘원 자신이 아마 당시의 역사적 격변속에서 조신으로 둔갑하고 싶었을 것이다.친일의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 고결한 민족지사로 되살아나고 싶었던 그의 ‘꿈’은 그러나 1947년 6월 발간 즉시 문학가동맹에 의해 판매금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탄원서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정당한 비판이 되레 인기를 상승시킨다는 한국적인 저질의 문화풍토에 걸맞게 베스트셀러로 부각하고 만다.서글픈 해방이 되려는 역사적 다람쥐바퀴였다.그러나 정부수립후인 1948년 10월4일,각도 학무국장회의에서 최남선 이광수의 저서는 학원에서 축출할 것을 결의했고,이어 나흘뒤 안호상(安浩相) 문교장관은 이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그 목록은 ●최남선의 ‘중등국사’ ‘국민조선역사’ ‘성인 교육국사독본’외 4권,이광수의 ‘문장독본’ 등이다. ‘문장독본’은 원래는 1937년 3월 홍지출판사에서 소품을 모아 낸 작품집인데,광복 직후 교재 빈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사회적인 물의가 일어나자 교육부에서 판매금지처분을 내리게 된 것이다.이 사건은 한국정부 수립 직후 친일파의 저서는 교재나 교과서에 실릴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밝혀준 사례로,관제금지가 아닌 국민의 여론에 의한 판금으로 기록될만 하다. 그러나 곧 정부의 문화교육정책이 바뀌어 1953년 3월20일 ‘문장독본’은 청록사에서 재출간됐으며 당시의 허기진 학생층에 파고 들어 문학관을 변질시키는 작용을 했다.
  • 일부 의원들의 질의 말투를 보며(박갑천 칼럼)

    말투에는 사람됨이 어린다.만무방들 몫다툼 말투와 법도있는 안방 고부간의 말투가 어찌 같겠는가.직업성도 나타난다.도떼기시장과 학교강단 같은.그뿐만이 아니다.말투에는 그 사회의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다.그것은 북녘의 방송을 들으면서도 느낄수 있는 일이다.남녘의 귓전으로는 무언지 모르게 거부반응이 와닿는 부자연스러운 소리.하기야 남녘도‘대한늬우스’시절의 이런저런 소식 전달하는 소리는 그런 유형이었다. 일부 국회의원의 대정부 질의 말투를 들으면서 위화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질의를 연설로 착각하는 듯한 태도부터 그렇다.‘선거구민용’이라는 말도 나온다.그건 그래도 나은 편.어떤 경우는 “이것이 의사당에서 내는 소리야!”라는 듯이 기묘한 억양과 가성을 배앝는다.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연극성’일 뿐이다.더러 흥분해야 할 대목이 없다고야 할 수 없겠지만 말투만은 답변하는 사람들같이 대화형식의 ‘정상적’인 것이었으면 한다. 그런 말투다 보니 문책성 질의에서 듣기 거북해지는 표현도 나온다.그래야만 금배지의 권위가서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지만 국민도 이제는 자유당시절의 의식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권위도 조작된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에서 발산된 것이라야겠다는 뜻이다. 디즈레일리 전기를 쓴 프라우드는 그런 사례를 적절한 예화를 곁들여 전하고 있다.­런던극장에 여배우들이 모였다.그들은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중 누구와 결혼하고 싶은가를 화제에 올렸다.거기 있는 모든 여배우가 디즈레일리를 꼽았다.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만이 글래드스턴쪽을 선택한다.“어머,웬일이야”하면서 모두가 의아해하자 그 여배우는 말한다.“왜들 이래.나는 글래드스턴과 결혼한 다음 디즈레일리와 사랑의 도피행을 하려고 해.그때의 글래드스턴 얼굴좀 볼까 하고”­.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특히 여자문제에 엄격했고 돈문제에 깨끗하게 처신하면서 ‘내면의 권위’를 지켜나간 것이 디즈레일리 인기의 본질이었다고 프라우드는 평가한다. 질의 하나에도 그런 내면의 권위는 나타나는 법이다.야릇하고 괴상한 말투에서 국민은 무엇을 느끼겠는가.국회는 말투의민주화부터 이뤄야겠다.다음 (101장)을 재담·기지를 쓰자는 말로 받아들여보자. “말은 착하고 부드럽게 하라.악기를 치면 부드러운 소리가 나듯이 말을 하면 몸에 시비가 붙지 않으리라”
  • 도둑 누명 초등생 자살/李慶衡 논설위원(外言內言)

    휴대폰 도둑누명을 쓴 초등학생이 자살한 사건은 우리의 교육현장이 얼마나 황폐한가를 실감케 해준다.게다가 이 학생의 담임교사가 제자의 죽음에 책임을 느껴 음독자살까지 기도했다는 보도는 더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번 사건은 두가지 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하나는 문제의 단서인 어떤 교사의 휴대폰 분실이 지난 9월에 일어났고 그 후 2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결과는 학생의 자살로 끝났다는 사실이다.이는 일선 교육현장에 학생신상문제 처리의 메커니즘이 전혀 없거나 설령 있다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도둑취급을 받으면서까지 살 필요가 없다”는 초등학생의 유서에도 나타났듯이 ‘도둑취급’이라는 학생신상문제가 두달간이라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았다.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비극적인 종말을 초래했다. 다른 하나는 자기 학급학생의 자살에 담임선생님이 자책감에 못이겨 자살을 기도했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고 인성교육까지도 맡고 있는일선 교사가 문제해결을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현실도피방식으로 추구했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특히 제자들의 사고방식에도 심대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번 사건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책감을 표시하고 초등학생이 자신의 결백을 자살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오늘날의 삭막한 교육현장을 보여준 것이다.초등학생의 자살과 담임교사의 자살기도 문제는 결코 “오죽했으면 자살까지…”라는 식의 정서적 문제로 보아서는 안된다.그것은 결코 건강한 교육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패배의식을 더욱 확산시킬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황폐화된 일선 교육현장을 어떻게 하면 신뢰와 대화가 넘치는 곳으로 복원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학생과 교사가 수업 이외의 시간에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하며,동시에 교사가 학생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상담기술과 자질을 빠른 시대변화에 걸맞게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 민주열사 열전:15/前 서울대생 朴鍾哲(정직한 역사 되찾기)

    ◎5공 정권연장 야욕 꺾은 ‘民主불씨’/‘체육관선거’ 잡음 없애려 시국사범 검거령/‘남영동’으로 연행당해 물고문 도중 질식사/6·10항쟁 도화선… 4개월후 전모 밝혀져 1987년 1월14일 만 21세의 대학생 朴鍾哲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5공 독재정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고문살인이었다. 철권통치로 국민을 억압해온 5공은 여느 때처럼 국민을 속이려 했으나 1987년 역사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정권의 안위와 관련된 시국사건에서 반체제 인사에 대한 가혹한 고문을 자행했다. 그런 군사정권에게도 박종철의 죽음은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층 더 예기치 않았던 것은 박종철의 죽음이 일으킨 역사적 파장이었다. 내각제 및 직선제 개헌론이 심각하게 대두되는 가운데 5공은 87년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체육관’ 선거로 치뤄 정권을 연장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86년 말 경찰 수뇌들은 운동권 수배자들을 전원 검거하라고 강력 지시했다.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5과 2계는 87년 1월초 서울대 언어학과 3년생인 박종철이 서울대 민민투위원으로서 서울대 민추위 사건의 중요 수배자인 朴鍾雲을 은닉하고 연계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 박종철을 연행 수사하여 박종운 등 민민투 지하 중앙조직원들을 검거할 계획을 세운다. 1월14일 아침 7시20분경 조한경 강진규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등 대공 소속 경찰들은 신림동 하숙집을 급습해 박종철을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로 연행,신문했다. 10시40분경 신문장소를 옮겨 박종운의 소재를 대라고 박종철을 닥달하였으나 모른다고 하자 조한경 등은 박종철의 가슴과 다리를 때리고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물이 가득 채워진 조사실 안의 욕조 앞으로 데리고 갔다. 이들은 조사실 안의 수건으로 박종철의 양손과 발목을 결박하고 나서 반금곤 황정웅이 각각 겨드랑이를 잡고 등을 누른 상태에서 강진규가 욕조안에 들어가 양손으로 박종철의 머리를 잡아 물 속으로 집어넣고 한참 후에 끌어내는 물고문을 반복했다. 이때도 박종철이 박종운의 소재를 모른다고 하자 더 혼내주라는 조한경의 지시에 이정호가 가세,결박된 박종철의 다리를 들어 올린 채 물 속에 머리를 집어넣는 고문을 가했다. 이때 박종철은 목부분이 욕조의 턱에 눌려 숨을 쉬지 못하게 되어 11시20분경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 30,40분 만에 저질러진 이 물고문 살인으로 결국 5공의 정권연장 야욕은 물건너가게 된다. 박종철의 물고문 질식사는 4개월 후에야 그 잔혹한 진상 전반이 파악되었지만 그의 죽음은 우여곡절 끝에 당시로선 극히 이례적으로 처음부터 일반에 알려졌다. 그간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시국사건으로 죽어갔으나 의문사란 말만 남기고 그대로 묻혀 버렸다. 그러나 박종철의 죽음은 경찰과 정권이 몇겹으로 세운 두꺼운 벽을 뚫고나와 ‘양지’로 향하는 묘한 힘을 발휘했다. 이 힘은 정통성없는 5공 정권의 취약한 근저를 흔들었다. 2월7일의 박종철 열사 국민추도회와 3월3일의 고문추방 대행진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5공은 각각 3만명,6만명의 전경들을 동원해야 했다. 결국 박종철의 죽음은 6·10 민주항쟁을 끌어내는 도화선이 되었고 궁지에 몰린 군사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할 수 밖에없었다. ‘제2의 김주열’로 불리기도 하는 박종철은 앳된 얼굴의 젊은이였지만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남달리 강했다. 그는 결코 다른 사람 때문에 재수없게 경찰에 불려가 조사받다가 고문사함으로써 우연히 역사의 무대에 떠오른 인물이 아니다. 대공 3부의 고문경찰들이 연행 직전 작성한 수사계획서는 박종철을 민민투의 중요 지도자로 지목하고 각종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검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에서 말단 공무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박종철은 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들어온 직후부터 동아리 가입과 농촌활동참여 등을 통해 현실 인식을 깊게 했다. 2학년 때 미국 문화원농성 지원 가두시위로 구류 5일을 살았으며 여름방학에는 안양공단 근처의 ‘닭장집’에 살면서 노동자로 취직하기도 했다. 86년 3학년때 언어학과 과회장에 뽑힌 박종철은 4월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가두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과거 전과 때문에 구속됐다. 그는 재판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7월15일 출소했다. 86년11월23일 81학번 사회학과의 동아리 선배로 민추위 사건에 지명수배된 박종운이 박종철의 하숙방에 찾아와 하룻밤을 묵은 뒤 떠난다. 87년 1월8일 박종운이 다른 동료와의 연락을 부탁하기 위해 다시 박종철 하숙방을 찾았다. 6일 뒤 박종철은 발가벗기고 손발이 묶인 채 박종운의 거처를 추궁하는 경찰들에게 물고문당하다 죽었다. □朴鍾哲 연보 1965년 4월:부산 출생 83년 2월:혜광고 졸업 84년 3월:서울대 언어학과 입학 86년 4월: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참가,구속 86년 7월:징역 10월·집행유예 2년으로 출소 87년 1월: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사 ◎구속 경찰관·유족들 지금은/5명 실형선고… 형기 마치고 출소/경찰청 산하단체 근무하다 해임도/유족들 배상금 2억여원 수령 고문 경찰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종철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된 경찰관 5명은 징역 3∼10년형을 선고받고 3년 만기에서 최고 7년3개월의 수형 후 가석방 등으로 현재 모두 출소했다. 올 6월 이들 중 3명이 규정을 어기고 경찰청 산하 단체에 근무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곧 해임됐다. 이정호씨와 강진규씨는 감옥에서 나온 뒤 경찰공제회에 들어가 일반직 4급으로,조한경씨는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 과장으로 근무했다. 이들과는 달리 범인도피 및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던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박처원 전 치안감 등 4명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한편 박종철의 유족은 89년 9명의 경찰관과 국가를 상대로 1억2,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95년 11월 “국가와 조씨 등 고문 경찰관 5명은 연대해 1억4,700만원을 배상하고 강씨 등 경찰수뇌 4명은 직무유기 및 범인도피의 책임을 지고 2,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유족은 국가로부터 이자를 포함한 손해배상금 2억4,000만원을 수령했다. 국가가 배상금 전액을 지급한 만큼 검찰은 직접적 책임이 있는 조씨 등에게 구상금청구 소송을 통해 배상금 일부를 받아내야 하나 최근 이들에 대한 재산 자력조사 결과 배상금 지급 능력이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부인이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꾸리거나 노점상으로 생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고문 밝혀지기까지/모든 수단 동원해 은폐 시도/3차 수사후 고문치사 확인/치안총수 등 경차 9명 구속/‘탁치니 억 쓰러져’ 유행어로 경찰과 5공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박종철의 고문치사를 은폐하려 했지만 결국 3차의 수사 끝에 치안총수를 포함 9명의 경찰이 구속됐다. 1월14일 물고문하던 경찰들은 박종철의 상태가 이상하자 즉시 인근 중앙대 용산병원 응급실에서 의사 오연상씨를 불러 응급처치를 간청했으나 이미 박종철은 숨진 뒤였다. 다급해진 경찰은 이날 오후 보호자와 이미 합의를 했다며 서울지검에 시신의 화장을 요청한다. 증거인멸을 위한 경찰의 이 요청은 거부됐다. 15일 석간신문에 조사받던 학생이 쇼크사했다는 기사가 나간다. 오후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변사사실을 공식 시인했으나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했으며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부연설명했다. 이날 밤 9시 안상수 검사 입회하에 행해진 부검에서 황적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1과장은 물고문 도중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것 같다는 부검소견을 피력한다. 강 치안본부장 등은 황 과장에게 심장마비사로 부검감정서를 써줄 것을 협박 회유하기 시작한다. 16일 가족들이 벽제에서 화장한 유골을 임진강에 뿌렸다. 이때 아버지 박정기씨는 “잘 가그레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고 해 국민들을 울렸다. 17일 사체를 첫 검안한 의사 오씨의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는 등 고문 시사 증언이 신문이 보도됐다. 결국 치안본부 특수대는 17일 수사에 착수 19일 고문사를 공식인정하면서 조한경 강진규 2인을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5월18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이 사실을 폭로하자 5월20일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등이 즉시 구속된다. 5월29일에는 범인 축소조작에 나선 박처원 치안감,유정방 경정,박원택 경정 등 3명이 범인도피죄로 구속됐다. 88년 1월15일 황적준 국과수 과장의 경찰 회유 메모가 보도되면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된다.
  • 국익논쟁/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서울광장)

    “210,000,000,000원.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외화도피금액. 부도덕한 기업인 최순영 회장을 국민의 이름으로 고발합니다” “저희 그룹 계열사인 신아원(주) 김종은 전사장이 저지른 일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해 머리숙여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며 참여연대가 한겨레신문에 게재한 광고에 대한 진상을 밝힙니다” 이렇게 시작된 참여연대측과 신동아그룹간의 광고전쟁은 최순영회장의 구속을 둘러싸고 치열한 접전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제 중반전을 넘어서 전황이 바뀌고 있다. 당초 고발 운운하던 신동아그룹은 한발 물러섰고 참여연대는 기세가 올랐다. 신동아그룹 부회장 박시언씨가 그 사건 수사를 주관하고 있는 서울지검3차장을 만나고 나오는 장면이 기자들에게 촬영되는가 하면 서울지검·대검 국정감사에서 검찰 간부들이 국회의원들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수사보류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당했다. ○외화유치 이유 수사 유보 210,000,000,000원. 하도 동그라미가 많아서 도대체 정확하게 그려 넣었는지 다시 세어봐야 할 정도로 많은 금액이다. 달러로 환산하면 1억6천만달러의 거액이다. 1만달러만 가져나가다가 걸려도 영락없이 구속되기 마련인 외화도피사범 처리기준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길이 없다. 문제는 검찰이 내세우는 수사보류의 변이다. 검찰은 지난 7월30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최회장의 혐의를 상당한 정도로 확인하면서도 “신동아측이 미국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사와 10억달러 유치협상이 진행중인 점을 고려,최회장에 대한 수사를 유보키로 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외화도피범을 외화유치 이유로 수사를 유보했다는 발표는 하나의 코미디라 할 만하다. 이 나라는 경제사정을 이유로 경제인의 비리를 봐주다가 거덜나지 않았던가. 좀더 검찰이 단호히 재벌기업의 정경유착과 비자금조성 행위,부실경영과 외화도피 행위를 엄단하였다면 이 지경까지 왔겠는가.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잘 산다는 말은 이미 이 땅의 진리가 된지 오래다. 따지고 보면 어디 외화도피가 신동아그룹만의 일이겠는가. 따라서 진정한 국가이익이란 신동아측이 도입하려는 10억달러를 국내에 반입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그 10억달러는 또 언제든지 외국으로 도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동아 최회장의 외화도피 혐의를 엄단함으로써 다시는 기업인이 그런 부도덕한 짓을 하고도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없도록 선례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익을 위한 일이다. 그 수사유보 발표로부터 두달이 지났다. 검찰은 언제까지 외화유치협상을 기다리며 봐주겠다는 것인가. 그 사이 신동아그룹측은 사력을 다해 증거를 인멸하고 로비를 벌이며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 최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살기위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검찰측이다. 그러한 시간을 벌어주는 것만으로 검찰은 직무유기이다. ○換亂극복 노력 국민에 배신 이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재벌왕국으로 불려왔다. 재벌은 법 위의 존재로 군림해온 것이다. 신동아그룹 최회장의 구속은 재벌개혁의 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 막대한 외화도피사범을 그대로 방면한 채 누구를 구속하고 벌할 수 있는가. 어느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최회장을 구속하지않는 것은 아이 돌반지까지 내던져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앞장섰던 4,000만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법의 실정,정의의 파탄,그 모든 개혁의 끝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한민국 검찰이 답해야 한다.
  • 금융종합과세와 경제정의(사설)

    정부가 오는 2000년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제를 부활키로 방침을 정한 것은 조세형평의 원칙에 따라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현상을 해소하고 금융거래 투명성을 높여 검은 돈거래를 막기 위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경제정의를 시현함으로써 경제개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국민의 정부의 강한 정책의지를 담은 것으로 볼수 있다. 실명제의 핵심인 금융종합과세는 지난 96년 처음 실시됐으나 지난해 11월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의 전면유보 주장을 정치권이 받아들임으로써 실시가 중단됐다. 이 제도는 실시되기 오래전부터 이른바 ‘가진 자’ 계층으로부터 심한 저항을 받았고 지난 연말에는 경제불황의 주인(主因)으로까지 매도당한 끝에 실시가 전면유보됐던 것이다. 정부는 금융종합과세를 유보하는 대신 상속·증여세를 회피할 수 있는 비실명채권을 판매하면 지하자금을 끌어내 실업대책재원으로 활용할 것으로 판단했으나 판매실적은 매우 저조했다. 채권금리가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높지 않은데다 이러한 비실명채권을 사지 않더라도 다른 차명거래 등으로 상속·증여소득을 숨기는 일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자소득세는 금융종합과세를 할때 최고 40%이던 것이 실시유보 조치에 따라 올 1월 20%,10월 22%로 절반가량 줄어듦으로써 고소득계층은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초기 고금리체제에서 엄청난 금융자산소득을 얻을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이자소득세가 15%에서 22%로 늘어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 이와함께 저소득·중산층의 근로소득세 부담도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됐던 것이다. 공평과세원칙이 무너진 것이다. IMF체제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특히 강조되는 선행조건의 하나가 국민 각계층간 고통분담의 형평성이다. 그럼에도 금융종합과세 유보는 불평등의 고통분담구조를 만들었고 서울 강남의 고소득층이 “이대로”를 외쳤다는 우스갯소리를 낳게 했다. 때문에 정부가 금융종합과세제를 부활,고소득 중과(重課)·저소득 감면의 조세원칙을 지키려는 정책방향은 앞으로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화합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종합과세가 다시 실시되면 금융소득자료가 세무당국에 통보되는데 따른 불안심리로 금융시장이 위축될 수 있으므로 거액조세포탈등 뚜렷한 범법사실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무조사를 삼가야 할 것이다. 이밖에 국내자금의 해외도피를 막는 등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갖가지 보완책을 마련토록 당부한다.
  • 검찰 보강수사 방향/총격요청 3인방 배후 중점 추적

    ◎정치권 진상 은폐기도 여부도 ‘총풍(銃風)·세풍(稅風)사건’이 金大中 대통령의 철저한 진상규명 지시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특히 金대통령이 배후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강조한 만큼 수사의 발걸음은 한결 빨라질 전망이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총풍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계속 수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큰 고비는 지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국세청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모금사건인 ‘세풍사건’ 역시 핵심인물인 李碩熙 전 국세청차장의 해외도피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었다. 朴舜用 서울지검장은 4일 출근과 동시에 ‘총풍사건’을 수사해온 李廷洙 1차장과 洪景植 공안1부장,사건 담당 검사들을 불러 金대통령의 지시를 설명한 뒤 “철저히 수사할 것”을 주문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노력해달라”는 金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분발을 촉구했다. 공안1부 수사팀은 이에따라 지금까지 수사해온 자료와 안기부로부터 넘겨 받은 자료등을 재검토하는 등 움직임이 부산해지고 있다. 검찰은 앞으로 재수사를 통해 ▲판문점 총격을 요청한 韓成基씨 등 3명과 주변 인물들의 공모 및 자금지원 여부 ▲權寧海 전 안기부장과 정치권의 공모에 의한 진상 은폐기도 여부 ▲韓씨­張震浩 진로그룹 회장­李會晟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등 수사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가려내야 한다. 검찰은 1차 수사 때와는 달리 ‘고문’주장,수사 중 변호인단의 피고인 접견,구속만기일이라는 수사 외적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어 여건은 훨씬 유리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보강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미 확보된 정황증거를 정리하면 조만간 배후가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裵在昱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구속도 이런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세풍사건은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李 전 차장­林采柱 전 국세청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이미 밝혀냈다. 따라서 앞으로 검찰의 수사는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인 李會晟씨의 개입사실을 입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그러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李 전 차장의 귀국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해 지금까지처럼 돈을 준 기업체 관계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하면 수사는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급행료서 압수품 착복까지/세관공무원 비리 유형

    ◎신속통관 빌미로 80만원 ‘꿀꺽’/밀수 적발 참깨 차량째 빼돌려/제보자 포상금 824만원 횡령 세무공무원의 비리유형이 공개된데 이어 이번에는 세관공무원들의 비리백태가 국정감사 현장에서 제시돼 충격을 주고 있다.한나라당 金在千 의원은 4일 관세청 지방본부세관에 대한 국회 재경위 국감에서 97년부터 올해 9월까지 관세청이 각종 비리와 관련해 세관원들을 징계한 건수가 모두 69건에 이른다고 밝혔다.金의원은 비리 수법도 금품수수에서 포상금 횡령까지 다양했다고 밝혔다.다음은 주요 비리행태. △김포세관 8급 柳모씨는 96년 장식용 마차를 신속히 통관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관세사 사무원으로부터 80만원을 받았다. △부산세관 감시국 趙모씨는 96년 밀반출하려다 압수된 참깨가 실린 차량을 통째로 빼돌리려다 적발됐다. △부산세관 수입1과 朴모씨는 94∼96년 수입금지 품목인 자기공명 전산화 단층촬영기(MRI)를 분해해 분산통관시키는 수법으로 불법수입을 알선하고 1억3천만원을 챙겼다. △서울세관 7급 黃모씨는 올해초 금괴밀수 사실이적발된 범인에게 적발사실을 사전 통보,도피를 도왔다. △김포세관 8급 李모씨는 지난해 골동품 중개인으로부터 30만원을 받고 해외반출이 금지된 고려청자 2점을 일본으로 밀반출하도록 도왔다. △서울세관 8급 鄭모씨는 관세사범 제보가 들어오면 다른 사람 명의로 제보자 확인증을 만들어 95년부터 12차례에 걸쳐 포상금 824만원을 횡령했다. △군산세관 강모씨는 참깨 밀수업자에게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줘 도피를 도왔고 부산세관 朴모씨와 蔡모씨는 참깨 밀수를 눈감아 주고 밀수업자로부터 1,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IMF이후 재산 해외도피 급증

    ◎올 8월까지 적발 작년 한해보다 많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은 지난해에 이어 올들어 국내재산을 해외로 이동시키거나,국내에 반입할 재산을 해외에 은닉하는 재산해외도피사범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부가 11일 한나라당 曺雄奎 의원(전국구)의 요청에 따라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재산해외도피사범 현황’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8개월간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은 사람은 총 26명으로 작년 한햇동안의 24명보다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법무부는 또 94년 이후 재산해외도피 혐의로 수사를 받은 사람은 총 92명으로 이중 43명은 기소되고,36명은 불기소처분을 받았으며 13명은 구체적인 혐의를 찾기 위해 관계기관으로 이송되거나 미해결사건으로 처리됐다고 밝혔다.
  • 공항 경찰이 외화 밀반출 묵인

    ◎鄭德珍씨측서 800만원 받고 검색 면제 서울지검 강력부(朴英洙 부장검사)는 9일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鄭德珍씨(57)의 외화밀반출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800만원을 받은 전 공항경찰대 출국반장 李鍾慶씨(40)를 수뢰후 부정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鄭씨와 鄭씨의 재산관리인 尹浩重씨(70·성남관광호텔 대표) 등 2명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재산국외도피)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밖에 鄭씨 소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집과 성남관광호텔 등에서 한차례에 판돈 30만∼50만원을 걸고 포커와 마작 등 도박을 한 金鐘旭씨(57·무직) 등 10명을 각각 벌금 200만∼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李씨는 鄭씨가 96년 2월부터 10월까지 15차례에 걸쳐 ‘환치기’ 수법으로 미화 455만달러를 필리핀 마닐라 등으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원투어여행사 서울사무소장 張모씨(36·구속)로부터 800만원을 받고 공항검색을 면제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 李會晟씨 ‘稅風’도 직접개입/사정당국 확인

    ◎이석희씨 중재로 기업서 50억 수수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인 李會晟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강제모금사건인 ‘세풍(稅風)사건’에도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李會晟씨는 지난해 대선 때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미국 도피중)의 중재로 H그룹으로부터 20억원,D그룹으로부터 20억원,또다른 D그룹으로부터 5억원,역시 또다른 D그룹으로부터 수억원 등을 직접 수수했다는 것이다. 李씨가 받은 선거자금은 검찰이 지난달 18일 세풍사건 중간수사 발표 때 밝힌 모금총액인 83억8,000만원의 절반이 넘는다. 검찰은 당시 林采柱 전 국세청장(구속기소)고 이 전 차장이 100여개 기업을 선정한 뒤 징세권을 무기로 임 전 청장이 61억8,000여만원, 이 전 차장이 나머지 28억원을 모금한 것으로 발표했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李會晟씨가 세풍사건에도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李총재에 대한 검찰의 직접조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이날 “안기부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관련자인 韓成基씨(구속)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李會晟씨의 세풍관련 사실을 포착했다”면서 “지금까지 수사결과 李會晟씨가 받은 선거자금은 50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李씨는 안기부의 수사사실을 눈치채고 지난달 11일 미국으로 출국했고 안기부는 한씨에 대한 송치 시한에 쫓겨 혐의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한씨의 신병을 검찰에 넘겼다”고 전했다.
  • 12·12 수사관련 美 도피/張基梧씨 귀국 금명소환/검찰

    서울지검 공안2부(申泰暎 부장검사)는 29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중지된 전 5공수여단장 張基梧씨가 지난 15일 미국에서 귀국함에 따라 張씨를 조만간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또 12·12사건과 관련,수사를 받다 미국으로 도피한 전 1공수여단장 朴熙道씨도 귀국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徐相穆 의원에 事前영장/검찰,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오늘 체포동의서 국회 제출/김윤환 의원은 추석연휴뒤 소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李明載 검사장)는 28일 국세청을 동원,대선자금 불법모금을 주도한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체포동의요구서를 발부받아 29일중으로 법무부를 거쳐 국회에 체포동의서를 제출키로 했다. 徐의원은 지난 해 11월 대선 직전 林采柱 전 국세청장(구속)과 李碩熙 전 차장(미국 도피중)을 통해 13개 기업들로부터 89억8,000만원을 불법 모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 차명계좌의 22억원중 대림으로부터 4억원이 입금된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이밖에 쌍용(2억원)과 대한전선(1억원)도 李전차장의 부탁에 따라 한나라당 후원회에 돈을 납부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한나라당 金潤煥 의원이 92년에 경북 구미시 P건설로부터 구미공단 부지 불하와 관련한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추석연휴 이후 소환 조사한 뒤 사법처리키로 했다. 검찰은 金의원이 구미공단과 구미시 관계자들에게 P건설에편의를 봐주도록 압력을 행사한 사실도 확인했다. 창원지검 특수부(朴埈模 부장검사)는 한일그룹이 95년 11월 마산시 양덕동의 공장부지 13만평을 주거 또는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하는 과정에서 정·관계에 로비를 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특히 이 지역 출신 한나라당 K모의원에게 대가성 자금이 전달됐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마산 한일합섬 관계자 10여명을 소환 조사했으며 이에 앞서 지난 12일 서울 모호텔에서 金重源 회장에 대해 출장 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지검 특수1부(朴相吉 부장검사)는 이날 姜祥日 전 청와대인사비서관 등 전·현직 공무원과 한국부동산신탁 직원 2∼3명이 경성측으로부터 각종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지명 수배했다. 한편 검찰은 李基澤 한나라당 전 총재권한대행에 대한 사법처리는 보류한 채 29일 경성 재수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 金潤煥 의원 비자금 10억∼30억/검찰

    ◎88년∼작년 10월 친척계좌로 관리/金 의원 계좌 곧 추적 대검찰청 중앙수사부(李明載 검사장)는 23일 경북 모건설업체로부터 4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金潤煥 의원이 조카인 申鎭澈 전 동신제약 사장을 통해 지난 88년 말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평균 10억∼30억여원의 비자금을 관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문제의 비자금 가운데 뇌물성 자금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또 金의원의 금융계좌에 대해서도 조만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추적에 나서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金의원에게 청탁과 함께 돈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일부 확보했다”면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 金의원의 금융계좌 추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金의원이 국유지 불하와 관련,업체들로부터 청탁을 받은 뒤 관계공무원들에게 압력을 넣었을 것으로 보고 金의원이 금품을 받은 92년 당시 경북도지사 K모,L모씨와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연루 여부도 조사중이다. 검찰은 이들의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金의원을 소환하기로 했다. 검찰은 국세청의 대선자금 불법모금과 관련,미국에 도피중인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이 신세계(2억원)와 삼양사(1억원)로부터 3억원을 모금한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검찰은 이 사건에 깊이 개입한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이 24일 오전 9시30분 검찰에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서울지검 특수1부(朴相吉 부장판사)는 오는 25일 경성 비리 재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韓銀,IMF 외환보고서 이의 제기

    ◎“87억달러 내부 유출 발표는 잠정치 잘못 인용” 한국은행은 23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2일 발표한 연차보고서와 관련,우리나라의 외환부문에 대해 IMF가 주장한 것은 사실과 달라 IMF에 이의 제기할 방침이다. 한은에 따르면 IMF는 ‘국제자본시장:동향,전망 및 주요 정책현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97년 한국의 국제수지표상 오차 및 누락금액을 -87억달러로 명시했다.또 이를 자본도피(Unrecorded Capital Flight)로 추정하면서 대규모 내부자본의 유출이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이에 대해 오차 및 누락금액인 -87억달러는 한은이 지난 2월 발표한 잠정치로,실사를 거쳐 지난 6월 97년 국제수지 확정결과를 발표하면서 -51억달러로 수정해 대외에 공표했으며 7월1일 IMF에도 통보했다고 밝혔다.아울러 오차 및 누락의 주요 원인인 수입대지급(은행이 수입대금을 대신 결제하는 것) 현황을 외국환은행을 대상으로 전면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병역기피 91명 명단 공개/해외체류 24·입대거부 67명/병무청

    ◎매년 공개… 부모 공직자땐 권고사직 조치 병무청은 22일 군입대를 거부한 채 외국에 머물고 있는 미귀국자 24명과 병역기피자 6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미귀국자 및 병역기피자 명단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93년(318명)과 97년(37명)에 이어 3번째다. 병무청은 국외여행 허가기간을 넘긴 미귀국자들을 형사고발하고 친권자 및 보증인에게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자진 귀국을 종용해 왔으나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아 명단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정당한 사유없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미귀국자 24명의 출국 목적으로는 유학이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친지방문 4명,전지훈련 1명이다.체류국은 미국 21명,캐나다 2명,일본 1명 등이다. 신체검사후 현역이나 공익근무 소집대상 보충역으로 편입돼 입영통지를 받고도 입대를 거부한 병역기피자 67명의 기피 원인으로는 무단기피가 58명으로 가장 많으며 나머지는 학생운동 4명,범죄도피 3명,가정불화 2명 등이다. 이들 미귀국자 및 병역기피자는 병역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처벌을 받으며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이들 병역법 위반자의 친권자 직업은 가수 김세레나(본명 김희숙)를 비롯,자영업 11명,농업 10명,상업 7명,회사원 5명,노동 5명,약사 1명,무직 18명,확인불가 7명,기타 26명 등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미귀국자 및 병역기피자 명단을 매년 언론에 공개하고 부모가 공직자일 경우 권고사직을 시키는 한편 귀국보증인이 과태료 미납시 해외여행 제한 및 융자대출,인허가업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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