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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언론 “우리는 아사다 마오로 올림픽 유치하자”

    日언론 “우리는 아사다 마오로 올림픽 유치하자”

    ”우리는 아사다 마오로 도전하자.” 평창의 2018 올림픽 유치를 쓴 웃음으로 지켜봐야 했던 일본. 최근 한 일본 언론이 아사다 마오를 얼굴로 내세워 올림픽 유치에 나서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일본 최대 영자지 재팬 타임스는 10일 칼럼을 통해 “올림픽 유치를 노리는 도쿄는 새로운 경기장과 실현 가능한 계획과 더불어 김연아 같은 일본의 잠재력을 대표하는 신선한 얼굴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마디로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면에 나섰던 김연아를 벤치마킹 하자는 내용이다. 신문은 “김연아가 아름다운 외모와 유창한 영어로 IOC위원들에게 평창의 비전을 잘 설명해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올림픽 유치를 원하는 도쿄는 김연아와 같은 신선한 ‘대표 얼굴’을 내세워야 하는데 두차례나 세계챔피언이 된 아사다 마오가 떠오른다.”고 언급했다. 이 칼럼의 주된 내용은 2020 도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과거 인물들의 구세대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비판이다. 도쿄는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브라질에 완패해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큰 비판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도쿄 올림픽 유치위는 10분 간의 프로모션 비디오 제작비로 약 65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스티븐 스필버그에 제작을 맡기라는 언론의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꽃으로 된 세상엔 군복이 꽃과 가장 닮아”

    “꽃으로 된 세상엔 군복이 꽃과 가장 닮아”

    “소회요? 이제 겨우 국제무대에 데뷔한 거지요. 사실 비엔날레만 딱 하고 그치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베네치아비엔날레를 처음 접한 게 26살 때인데, 비엔날레 참가작이라고 해서 다 수준이 높은 것만도 아닙디다. 그때부터 비엔날레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데뷔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2일(현지시간) 오후 3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해변공원 카스텔로 자르디니 안에 자리 잡은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이용백(45) 작가는 의외로 덤덤했다. 담담한 그의 표정과 달리 한국관 인기는 무척 좋았다.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 테이트모던갤러리 등 유명 미술관 대표들과 이사회 멤버들이 줄줄이 다녀갔다. 여기엔 두 가지 힘이 작용했다. 첫째는 미국의 철학자 존 라이크만 컬럼비아대 교수다. 그는 한국관 전시 서문을 썼다. 여러 나라에서 공들이는 일급 이론가인 라이크만 교수가 한국관을 택했다는 얘기가 퍼지자 현대미술 관계자들이 ‘대체 어떤 전시길래’ 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다른 하나는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총감독인 비체 쿠리거가 제시한 ‘일루미네이션’이라는 큰 주제다. 일루미네이션에는 조명이라는 뜻도 있지만 쿠리거는 이를 애써 ‘Illumi-nation’으로 표기해 민족국가에 대한 재조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The Love is gone, but the Scar will heal)라는 제목 아래 에인절 솔저 시리즈, 피에타 시리즈 등으로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압축해낸 한국관 작가의 생각과 딱 들어맞는 셈이다. →설치 작품 ‘빨래’가 재밌다. -이탈리아에 와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베네치아에는 골목길마다 빨래를 널어놓은 곳이 많은데, 그걸 보고 참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인절 솔저에 쓰였던 군복을 빨래처럼 널어놔 쉬어 간다는 느낌이 나도록 하면 어떨까 싶었다. 다른 국가관들이 모두 자극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추구하길래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싶기도 했다. 참자, 조용히 가자라고 생각했다. →반응은 어떤가. -의외로 뜻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많아 기분 좋다. 독일 친구는 “다른 전시장에는 탱크를 가져다 놨던데 넌 평화를 널어놓았구나.” 하더라. 서양 사람들은 아무래도 1960년대 (미국에서 일었던 반전운동인) 플라워 무브먼트나 우드스탁 페스티벌 같은 것을 연상하는 것 같다. 서양 기자나 미술계 관계자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한다. →군복 명찰에 다른 작가들 이름이 들어가 있던데.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백남준 같은 유명 예술가도 있고 이번 한국관 커미셔너인 윤재갑도 있다. 친한 친구나 후배들 이름도 넣었다. 하하하. 우리나라 현대미술은 1990년대부터라고 본다. 그 이전에는 남의 것을 가져다 그냥 베낀 것이고. 그래서 전시 제목은 한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서구 주류 미술에 대한 추종과 사랑은 가고, 그로 인한 상처도 메워져야 하지 않나 싶다. 이런 맥락을 공유한다고 생각되는 작가들 이름을 골라서 넣었다. →피에타나 꽃을 쓴 것도 그런 맥락인가. 가치의 전복 같은. -그런 측면이 있다.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 도상은 정말 그간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그리고 꽃은 너무도 흔하고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현대미술이 가장 피하는 소재다. 거꾸로 이걸 써 보자 싶었다. 대신 모자(母子) 관계를 피하기 위해 거푸집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꽃을 가장 안 어울리는 군복에 집어넣었다. →군복에 꽃을 넣은 발상이 무척 새롭다. -군복의 얼룩 무늬만큼 환경친화적인 것도 없다. 사막 군복은 사막과 닮아 있고, 일반 군복은 숲과 닮아 있다. 꽃으로 된 세상이라면 군복이 꽃과 가장 닮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처음 시작이었다. 꽃과 군복, 평화 속에 숨겨진 전쟁, 화려함 속에 숨겨진 잔인함, 우리의 현대문명 등으로 에인절 솔저의 키워드가 확장된 거다. →흥행이 잘돼 기분 좋겠다. -미술 관련 책에서나 보던 (유명한) 분들을 어제오늘 참 많이 만났다. 대단한 행운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비엔날레 이후 어떤 작업을 계속 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 전시 구상은. -9월쯤 중국 베이징 갤러리핀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미술관급 갤러리인 데다 천장도 7m 정도 높이여서 규모를 키울 생각이다. 비엔날레 전시가 핵심만 추려냈다면 베이징 전시 때는 에인절 솔저를 구체관절인형 100개로 확장해 천장에 매달아 볼 생각이다. 컬처 월(Culture Wall) 작업도 생각 중이다. 베이징올림픽 때 가난한 빈민촌 풍경을 가린다고 벽을 세웠는데 실제 중국 당국이 그 벽에다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걸 보고 한국이 서울올림픽 때 하던 짓과 똑같구나 했는데, 일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도쿄올림픽 때도 그랬단다. 정치 권력의 그런 콤플렉스, 그게 이 전시 주제와도 통하는 것 같고 해서 한번 재밌게 표현해 볼 생각이다. →한국관 건물을 둘러싸고 말이 많은데 전시를 직접 해 보니 어떤가. -건물을 고쳐야 한다. 공간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베네치아비엔날레는 국가관 형식이기 때문에 국가 대항전 성격이 있다. 그래서 모든 작가들이 충격적인 뭔가를 내놓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전시 공간은 그런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천장은 너무 낮고 창을 크게 달아 바깥 빛이 다 들어온다. 나 같은 설치 작가도 애먹었는데 평면이나 그림을 하는 작가들은 어땠을까 싶다. 전시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기보다 전시하기 안 좋은 공간이다. 그렇다 보니 전시에 맞게 고치는 데만도 매번 1억원씩 쓴다고 하더라. 한국관이 처음 생긴 게 1995년이다. 그동안은 자리 잡는 데 치중했다면, 이제는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글 사진 베네치아(이탈리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도쿄 프리즘] 때늦은 현장방문 간 총리… 흔들리는 日 리더십

    [도쿄 프리즘] 때늦은 현장방문 간 총리… 흔들리는 日 리더십

    2003년 야당 시절의 민주당 대표였던 간 나오토 총리를 단독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다. 당시만 해도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가 굳건했다. 정권교체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결코 여당을 꿈꾸지 못할 만년 야당의 당 대표, 솔직히 그에게 품고 있던 이미지였다. 돌파하고 싸우며, 부서지고도 다시 일어서는 YS, DJ로 대표되는 한국의 야당 당수 같은 투쟁력이 결핍된 모습. 인터뷰 내내 든 인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세월이 흘러 총리의 자리에 오른 그는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 패전 이후 일본 최대의 위기다. 국난 극복의 과제가 던져졌다.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생명도 걸렸다. 그런데 신속하고 정교하고 일사불란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서방 언론들은 리더십의 실종이라며 야유를 보내고 있다. 뭘 하는지 궁금했던 간 총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지진 발생 열하루 만인 21일 재해지역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20 km 인근 지역을 시찰한다고 한다. 2003년의 정치 파트너 고이즈미가 지금 총리였다면 대재앙 발생 직후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 “우리는 국난을 이겨낼 수 있다.”고 외쳤을 것이란 상상을 해 본다. 잃어버린 20년, 오랜 경기침체 속에 일본은 생기를 잃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 가야마 리카는 월간지 문예춘추에서 일본을 ‘우울증에 걸린 나라’라고 표현했다. 그런 와중에 일어난 대재앙이다. 세계가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1945년 패전 후 19년 만에 경제부흥을 이루고 도쿄올림픽을 치른 저력의 열도, 일본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점쳐보고 있다.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퍼즐을 풀 실마리가 있다. 민영방송인 후지TV가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일본은 부흥할 수 있을까’라는 설문에 일본인의 94.6%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놀랍다. 끔찍한 재앙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본인의 희망에 총리는 어떻게 화답했던가. 국민 앞에 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총리. 원전을 둘러싼 일본 국민과 전세계의 공포와 불안에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총리. 열하루 만에 현장에 가는 총리다.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일본이라 총리의 역할이 크지 않다고 하지만 절체절명의 시대, 리더십은 국민을 희망의 길로 이끄는 중요한 길잡이다. 오죽하면 대지진 전 24%대였던 지지율이 20일 현재 35%까지 올라갔을까. 일본은 총리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하면 수명이 끝난 것으로 간주한다. 인정사정없이 무대에서 끌어내린다. 그런 그가 대지진 후 지지율이 올랐다. 국난 극복 과정에 총리를 바꾸는 혼란보다는 밉지만 맡겨보자는 뜻일 것이다. 1995년의 고베 대지진 때 오자토 사다토시 방재대신이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에서 직접 지휘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이 재해규모가 훨씬 큰 데도 현장에 내려가 책임을 다하는 각료는 한명도 없다. 용인(用人)이 잘못이라는 지적이 들린다. 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과 출신에 변리사 자격을 지닌 간 총리는 늘 ‘기술자’라는 낙인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원전과 시버트(방사선량 단위)에만 신경 쓴다는 비아냥도 있다. 우울증에 걸린 일본이 대재앙을 계기로 침체를 딛고 활기를 되찾을지는 일본 국민이 힘과 지혜를 모으는 데 달렸다. 하지만 그 힘과 지혜를 모으는 구심점은 역시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점을 역사는 말한다. 재해지역 시찰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 궁금하다. marry04@seoul.co.kr
  • [부고]‘한국 레슬링 대부’ 이상균 전 태릉선수촌장

    한국 레슬링의 대부 이상균 전 태릉선수촌장이 5일 별세했다. 80세.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7년 레슬링을 시작했다. 1949년 제30회 전국체육대회 주니어플라이급에서 우승하면서 경량급 최강자가 됐다. 한국전쟁 중 육군특무부대 문관으로 있다가 사고로 왼쪽손가락 3개가 잘렸지만 1951년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며 재기했다. 1954년 신흥대학(현 경희대)에 진학했으며,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 참가해 밴텀급 4위에 올랐다. 이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1964년 도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1966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장창선을 키워냈다. 1971년에는 특1급 국제심판이 됐다. 같은해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19 94년 제13대 태릉선수촌장에 임명됐다. 이런 공로로 체육부장관 표창과 서울시 문화상(체육부문), 미연방 스포츠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유족은 이용훈(신흥 이사), 이용재(과천시설관리공단 과장), 이용준(미국 거주)씨 등 3남 1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7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이천호국원이다. (02)3410-6917.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과학을 앞선 SF 소설들

    허버트 조지 웰스가 타임머신이라는 황당무계한 소재를 상상했을 때, 사람들은 터무니없다고 치부했다. 하지만 불과 10년 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이 황당한 상상력은 가능성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가 그러하다. 가상공간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1984년 발표된 소설의 배경은 사이버 스페이스이다. 컴퓨터나 인공지능 등 컴퓨터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었던 윌리엄 깁슨은 고물 타자기 한 대로 이 놀라온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소설은 지금 보아도 낯설기만 한 용어로 가득하다. 사람의 두뇌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사이버 스페이스로 들어가는 방식을 창안한 소설은 이후의 사이버펑크라는 SF소설의 하위 장르를 탄생시켰으며 소설뿐 아니라 음악, 영화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쥘 베른의 소설 ‘달세계 여행’에는 미국에서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약 100년 뒤인 1969년 미국의 암스트롱이 달나라 착륙에 성공한다. 쥘 베른의 상상력이 현실이 된 사례는 또 있다. 그의 소설 ‘해저 2만리’는 잠수함을 타고 해저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소설이 발표되었던 1870년에는 아직 잠수함이 발명되기 전이었다. 그로부터 84년 뒤인 1954년 세계 최초로 취항한 미국의 핵잠수함은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잠수함 이름인 노틸러스를 그대로 썼다. 이름뿐 아니라 소설 속 다른 아이디어도 상당부분 수용했다고 밝혔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의 일화도 있다. 영국 공군의 레이더 담당 교육장교로 근무하던 그는 최첨단의 통신 장비를 접하면서 기이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1945년 그는 공군 시절의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무선세계’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통신위성이 발사되었으며,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이 전 세계로 TV중계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소설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이기도 한 것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16강 프리뷰]네덜란드 - 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유럽 전통 강호였다. 1934년 이탈리아·1962년 칠레월드컵 준우승, 유로76 우승, 1964년 도쿄올림픽 은메달,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금메달에 빛난다. 그런데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됐다. 체코는 이후로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까지 오르는 등 강호의 면모를 이어갔지만 최근 1~2년 사이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 슬로바키아는 1998년 프랑스 대회부터 월드컵에 도전했다. 4수 끝에 남아공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앞서 유럽 예선에서 체코를 탈락시키고 당당하게 조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본선 조별리그에서 디펜딩챔피언 이탈리아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16강에 진출했다. 28일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8강 티켓을 놓고 한판 승부를 펼친다. 네덜란드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다. 역대 전적에서 2승1무7패로 뒤졌다. 1986년 마지막으로 친선 경기를 가졌을 때도 0-1로 졌다. 체코와는 네 차례 만나 1승2무1패를 거뒀지만 슬로바키아와는 처음 격돌한다. 슬로바키아는 플레이메이커 마레크 함시크(나폴리)를 중심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과시하는 팀이다. 이탈리아 격침의 일등공신 로베르트 비테크(앙카라 구주)도 돋보인다. 다만 조별리그 3경기에서 5골을 내주는 등 수비가 취약하다. 네덜란드는 로빈 판페르시(아스널)를 비롯해 클라스얀 휜텔라르(AC밀란), 디르크 카위트(리버풀),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테르 밀란) 등 득점포가 고르다는 게 장점. 부상을 당했던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까지 돌아와 사기가 올랐다. 슬로바키아가 상승세를 이어갈까, 아니면 네덜란드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 있을까. 28일 밤 11시에 결정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열린세상] 기로에 선 중국 노사관계/이문형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기로에 선 중국 노사관계/이문형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루이스 전환점(Lewis Turning Point). 요즘 중국 경제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용어 중 하나이다. 농촌의 저렴한 인력 활용이 어려워지면서 임금, 물가가 오르고 성장세는 둔화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일본에서 춘투(春鬪)가 성행하였고,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에서 노사분규가 극심하였듯,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도 노사분규로 극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근로자 연쇄자살과 노사분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회사가 있다. 폭스콘이다. 세계 500대 기업 중 하나인 타이완 홍하이(鴻海)정밀의 중국 현지법인으로 1988년 중국에 진출한 이래 11개 공장에서 80여만명의 근로자들을 채용하고 있다. 전형적인 EMS(전자위탁생산) 업체로 애플의 아이폰, 델 컴퓨터, 노키아 휴대전화 등을 생산하면서 매출액이 1996년 5억달러에서 2009년에는 640억달러로 급성장하였다. 중국 수출 성공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폭스콘의 선전(深?)공장에서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무려 13차례에 걸쳐 연쇄자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국 전역으로 노사분규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또한 폭스콘이 6월 한 달 동안 인상한 임금 폭은 지난 10년간 인상한 폭과 동일한 수준이며, 올 10월에는 또 다시 거의 두 배 수준의 임금인상을 약속하고 있다. 당연히 폭스콘의 파격적인 임금 인상 조치는 중국 전역에 임금 인상 러시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폭스콘의 독특한 노무관리 방식도 책임이 크지만 중국 노동환경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특성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타이완계 폭스콘, 일본계 혼다자동차, 한국계 성우하이텍 사례에서 보듯 지금 노사분규가 진행되고 있는 공장들은 대부분 외자기업들로, 고용 여건이나 임금 수준이 중국계 기업들에 비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외자기업들에만 노사분규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단순한 인금 문제만이 아닌 외자기업들의 독특한 고용 현실 때문이다. 주로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외자기업들은 소위 농민공들을 대거 고용하고 있다. 폭스콘은 선전의 두 곳 공장에 무려 42만명의 농민공들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 농민공은 모두 회사 내 기숙사에 집단 거주한다. 군대 내무반처럼 수십명이 한 방에서 기거하면서 하루 종일 집단생활을 한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폭스콘은 군대식 관리방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예 신입직원 선발시 군대식 집단 훈련을 통과한 인력만을 채용하기도 한다. 계획경제 하의 배고픈 시절을 겪으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어떠한 잔업도 마다하지 않던 농민공 1세대들과 풍요와 개인주의를 맛본 바링허우(80後)의 농민공 2세대들은 노동관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잔업수당보다는 여가를, 단체 기숙사보다는 혼자만의 공간을 갈구하는 20대들은 하루 15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병영식 내무반 생활에 염증이 나 있다. 따라서 근로조건 전반에 걸친 근본적 개혁 없이는 노사분규를 진정시키기가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중국 정부의 소득분배정책과 노조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신노동계약법도 노사분규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축된 수출 대신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 각급 지방정부들은 경쟁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있다. 전국의 31개 성·시 중 올해 들어 지금까지 17개 성·시가 최저 임금을 인상했으며, 후난성의 27.8%를 최고치로 전국 평균 인상률은 17%에 달한다. 근로자들의 연쇄자살 사태 등 저임금 바탕의 조립가공형 수출방식이 한계에 달하고 있음을 폭스콘 사태는 말해준다. 폭스콘 사태를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는 것도 우리 처지이다. 중국에 진출한 2만여개의 우리 기업들 대부분이 폭스콘과 유사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노무관리의 현대화와 함께 중국 진출 전략과 관리 전반에 걸쳐 철저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의 신노동계약법을 충분히 숙지해 사전에 노사분규를 예방함은 물론 저임에 의존한 성장모델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한다.
  • [한·일 100년 대기획]자존심 대결보단 상생의 촉매제로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이 시작된 지 100년이 흘렀다. 6·25전쟁과 태평양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선 한·일 양국은 아시아의 선두주자로서 여러 부문에서 경쟁하며 발전해왔다. 그 중에서도 스포츠는 두 나라 간 숙명적 경쟁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분야다. 나라를 강탈당한 대한제국의 아들 손기정은 일본의 마라톤 대표선수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하여 일본국의 금메달이자 한국인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계올림픽의 꽃인 마라톤 시상대에서 손기정은 동메달을 딴 남승룡과 함께 일본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고개를 떨굼으로써 일본의 한반도 찬탈에 대해 ‘침묵시위’를 벌였다. 광복 후에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 일본 선수에게만은 남다른 투혼을 발휘하였다. 언론은 앞다퉈 한·일전의 의미를 더욱 크게 부여했다. 한·일전은 종목을 막론하고,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국민 모두의 관심거리였다. 1970년대 프로복싱이 그랬고, 1980년대 한·일 축구 정기전은 도쿄 대첩이란 말을 남길 정도로 격렬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는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손기정의 한을 풀어주었다. 한·일 스포츠의 진검승부는 21세기 들어 인기스포츠인 축구와 야구에서도 계속됐다. 2002 FIFA월드컵에서는 한국이, 야구월드컵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일본이 조금씩 우세했다. 한·일 간 스포츠 경쟁의 백미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일본의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사건이었다. 한·일 양국은 스포츠를 활용한 국가발전전략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0여년 간의 격차를 두고 하계올림픽을 유치해 국가발전의 도약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같은 길을 걸었다. 일본은 2차 대전 패전국의 상처를 극복하고 1964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세계경제대국의 기틀을 다졌고, 한국은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 이룩한 한강의 기적을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극적으로 각인시켰다. 또한, 21세기 들어 한국은 올림픽과 함께 세계 최대 스포츠이벤트인 FIFA 월드컵을 아시아 최초로 일본과 공동개최하며 한국이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대표주자임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새로운 100년을 앞두고 스포츠가 한·일 관계에서 갖는 역할과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함에 따라, 양국은 지난 한 세기를 매듭짓고 상호발전적인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통해 국가정체성을 확인하고 국민이 하나로 결속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스포츠를 일본에 대한 국가자존심 경쟁의 차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 앞으로 100년은 스포츠가 경쟁보다는 평화와 상생의 촉매제가 되길 기대해 본다. 강준호 서울대 스포츠경영학 교수
  • [한·일 100년 대기획]‘닮은꼴’ 서울·도쿄올림픽

    [한·일 100년 대기획]‘닮은꼴’ 서울·도쿄올림픽

    아시아에서 첫 번째, 두 번째로 열린 1964년 도쿄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은 20여년의 격차가 있었지만 꼭 닮은꼴이었다. 국민을 열광시키며 열린 양국의 올림픽은 국제적 위상을 한껏 높이고, 세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양국 모두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안팎에서 유치한 올림픽은, 올림픽을 개최하면 경제가 발전하고 서양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환상과 풍요를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도쿄올림픽 참가국은 94개국으로 당시 사상 최대였다. 서울올림픽 역시 세계 167개국 중 160개국이 참여해 사상 최대의 국가 간 이벤트였다. 1984년 LA올림픽이 공산권 국가가 참여하지 않은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던 탓에 이념을 초월한 올림픽이라는 의미가 가중됐다.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금메달 16개, 은메달 5개, 동메달 8개 등 모두 29개 메달 획득해 미국, 소련, 독일에 이어 역대 최고의 성적인 4위를 했다. 서울올림픽에서 한국도 마찬가지.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역대 최고의 성적인 4위를 했다. ●올림픽을 통해 만들어낸 이미지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자 패전국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애초 194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된 뒤 24년 만에 재유치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었다. 패전 이후 일본 젊은이들은 국기인 ‘히노마루’와 국가인 ‘기미가요’ 등에 대해 혐오감까지 느꼈다. 하지만 올림픽 동안 메달 시상식에서 16차례 히노마루가 게양되고 기미가요가 연주되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맥아더와 치욕의 패전 사진을 찍었던 일왕도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복귀했다. 당시 일본 선수단은 ‘2위는 소용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했다. ‘동양의 마녀’라고 불리던 여자배구팀의 우승이 결정된 순간, 도쿄 내에서 전화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국민 통합이 이뤄졌다. 한국도 서울올림픽을 통해 일본 식민지였던 과거의 굴욕을 떨쳐내고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음을 세계에 자랑했다. 한국은 1981년 1인당 국민소득이 1719달러에 불과했으나 1988년에는 4040달러로 2.5배가 증가했다. 5공화국에서 유치했지만, 6공화국에서 개최하면서 독재국가라는 오명을 벗었다. 중국이나 일본의 속국으로 알려진 한국을 독자적이고 세련된 민족문화를 가진 나라로 인식하게 됐다. 올림픽 이후로 코리아는 몰라도 ‘서울’을 아는 세계인들이 많이 늘어났다. 세계화의 발판도 됐다. 동구 공산권에 서울올림픽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스포츠 외교로 수교국이 19개국 늘어난 148개국이 됐다. 소련,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7개 공산권과의 수교는 이후 ‘북방외교’의 성과로 이어졌다. ●도쿄·서울올림픽에 숨겨진 애증 코드 그러나 도쿄와 서울올림픽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양국의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였다. 두 나라의 해묵은 역사의 애증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1964년 10월10일 도쿄올림픽 개막식 성화봉송 최종 주자는 1945년 8월6일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사카이 요시노리라는 19세의 젊은이였다. 일본이 전쟁 도발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며, 새로운 형태의 파괴적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적인 국가임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된 연출이었다. 사카이는 175㎝에 63.5㎏으로 당시 일본인으로서 뛰어난 신체조건으로, 전후 일본의 부흥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요소였다. 올림픽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 유일한 경쟁상대였던 일본 나고야를 누르고 올림픽을 유치한 한국 역시 손기정옹을 성화봉송 최종주자 4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1936년 일제 강점기 시절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옹의 존재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일본의 역사적 죄악을 세계 곳곳에 널리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올림픽 경제효과

    올림픽은 경기 시설 등 사회 인프라 구축과 생산 유발, 관광수입 등으로 엄청난 경제 효과를 가져온다. 한국과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일 양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잿더미에서 역경을 딛고 경제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올림픽이 가져다준 유·무형의 경제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양국 모두 이른바 ‘올림픽 특수’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일본 전역은 곳곳이 모두 파괴됐다. 하지만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경제도약의 발판을 착실히 다졌다. 일본은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데 주력했다. 이와 더불어 제조업과 건설업·서비스업·통신시설 등도 고속성장했다. 소니·캐논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올림픽 마케팅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일본의 경제는 이후 1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0년간 세계경제성장률의 2배, 세계 수출증가율의 3배나 되는 고도 경제 성장을 경험하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기도 했다. 한국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다. 1950~53년 3년간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은 전 영토가 잿더미였다. 경제발전을 기약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고도성장을 경험한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통해 신흥공업국의 선두주자로 격상됐다. 한국 역시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공항, 고속도로, 지하철 등 사회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한국은 올림픽 개최로 총 26억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 올림픽으로 창출된 일자리도 33만 6000개에 달했다. 1980년대 내내 평균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한국은 마침내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대열에 당당히 진입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점프 코리아 2010-3대 스포츠이벤트] 한국 4연속 2위 지켜라

    [점프 코리아 2010-3대 스포츠이벤트] 한국 4연속 2위 지켜라

    “아시아 2위를 지켜라.”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는 새로운 세기에 중국 인민이 세계를 향해 5000년 문명을 보여줄 중요한 기회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세계적인 이벤트를 통해 중국의 발전 모멘텀을 이어가면서 ‘중화제국’의 굴기를 과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일단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리고 하나로 묶기 어렵다는 13억 중국인의 시선을 적어도 올림픽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통해 한데 쏠리게 했다. 상하이엑스포와 아울러 광저우아시안게임은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뒤 1년 반 만에 이를 점검해 보겠다는 의지가 확실하게 깔린 또 하나의 스포츠 이벤트다. 사실 아시아 무대는 이미 중국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누구일까. 2010년 11월12일부터 27일까지 16일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제16회 아시안게임은 2위 자리를 놓고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가 벌이는 ‘자존심 싸움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아시아의 제왕으로 자리잡은 1982년 뉴델리대회 이후부터 한국과 일본의 2위 다툼은 이어졌다. 한국은 1998년 방콕대회부터 2006년 도하대회까지 3개 대회 연속 2위를 지키고 있다. 일본은 연속 3위.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사회체육에 치중해 온 일본은 뉴델리대회에서 중국에 1위 자리를 넘겨준 뒤 칼을 빼들었다. 2위 자리마저 한국에 계속 밀리자 1990년대 후반 스포츠과학센터를 설립하고 엘리트스포츠 육성에 나섰다. 2001년에는 10년 후 올림픽 메달 숫자를 10개로 늘리겠다는 뜻의 ‘골드플랜’에 착수했다. 뿌리를 내린 사회체육을 통해 유망주를 발굴,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뉴델리대회(82년) 이전까지 도맡아 종합 1위에 올랐던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되찾겠다는 의지도 물론 담겨 있었다. 우선 일본의 대기업들이 유망주에 대한 투자에 발벗고 나섰다. 지원을 바탕으로 선수단의 예산을 3배 가까이 늘렸다. 그 결과 일본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 16개를 딴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베이징올림픽 때는 금메달 9개에 그치며 8위로 떨어지긴 했지만 기초종목인 수영과 육상, 체조에서 한번 다져진 상승세는 계속됐다. 더욱이 지난 도하대회에서는 한국과의 금메달 격차를 역대 대회 사상 최소인 8개 차이로 줄였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올해 광저우대회가 ‘2위 수성’의 최대 위기가 될 전망이다. 수영의 박태환(21·단국대)이 있다고는 하나 기초종목의 ‘메달농사’에서 고른 수확을 기대하기란 아직 시기상조다. 전초전이었던 지난해 12월 동아시아대회(홍콩)에서 한국은 5회 연속 종합 3위에 머물렀다. 원인은 역시 기초종목의 한계였다. 더욱이 메달밭으로 여겨졌던 유도와 레슬링, 양궁 등의 종목도 더 이상 ‘효자’로 남기 어렵게 됐다. 그동안 사격 등의 표적 종목과 태권도, 역도, 유도, 레슬링 등 계체 종목에서 주로 금메달을 땄고 야구와 핸드볼, 배드민턴, 탁구 등이 간간이 가세하면서 아시아 2위 자리를 힘겹게 지켜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금메달이 널려 있는 육상과 수영 등에서 획기적인 수확이 없는 한 아슬아슬한 ‘2위 줄타기’는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희망은 살아 있다. 매끄러운 세대교체의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홍콩동아시아대회 육상종목에서 첫 금메달을 딴 ‘장대소녀’ 임은지(21·부산 연제구청)와 남자 평영 100m·200m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수영의 최규웅(20·한국체대), 진종오(31·KT)의 뒤를 이을 이호림(여), 이대명(이상 22·한국체대) 등은 그 선봉에 설 것으로 보인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특파원 칼럼] 영화 ‘굿 바이’와 국가브랜드/박홍기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영화 ‘굿 바이’와 국가브랜드/박홍기 도쿄특파원

    일본 영화 ‘굿 바이(Good&Bye)’는 일본적이다. 원제는 ‘오쿠리비토’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보내는 사람’이다. 염습(殮襲)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납관사(納棺師)다. 오케스트라의 해체로 실직한 첼리스트가 납관사의 길을 걷는 흔치 않은 소재를 다룬 잔잔한 작품이다. 특히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이승에서 마지막 배웅을 해주는 ‘고결한’ 직업으로 납관사를 그렸다. 정성스럽게 고인을 씻기고 옷을 입힌 뒤 얼굴 화장까지 해 주는 세심한 의식을 지켜보던 주인공이 “따뜻한 애정이 넘치는 일”이라고 마음으로 말할 정도다. 일본 소시민들의 일상 생활이 그대로 드러남은 물론이다. 벚꽃이 핀 길 뒤편으로 멀리 보이는 눈이 남은 산 등의 풍경은 전형적인 일본화다. ‘굿 바이’는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일본 영화로서는 처음이다. 예상치 못했던 탓에 일본 열도가 흥분했다. 경합을 벌였던 레바논 전쟁의 학살 사건을 다룬 ‘바시르와 왈츠를’이나 프랑스 이민 가정의 교육 문제를 다룬 ‘더 클래스’와 같이 사회 고발성 짙은 영화도 아니었다. 죽음을 대하는 납관사를 매개로 사랑의 소중함을 일본적인 특성을 한껏 가미, 감동을 전한 영화일 뿐이다. ‘굿 바이’는 현재 일본에서 관객몰이 중이다. 지난 15일까지 456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아카데미상 수상이 한몫 톡톡히 했다. ‘굿 바이’는 일본다움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눈길을 끄는 데 비교적 수월했다. ‘일본의 것을 세계로’라는 국가브랜드 육성전략과도 맞아떨어졌다. 일본은 신일본양식을 뜻하는 ‘네오 재패네스크(Neo Japanesque)’를 내세우고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기술력을 새로운 양식으로 제품화하는 것이다. 앞으로 국가들의 기술력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다. 일본의 매력, 특성의 무기화다. 일본은 2003년 3월 총리 직속으로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설치했다. 국가 브랜드를 지적재산의 측면에서 접근했다. 지적재산이 될 수 있도록 발굴하고 키우려는 취지다. 기술과 문화·전통, 지역의 특성을 종합적·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목표는 관광입국과 산업 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의 강화다. 게다가 2006년 교육기본법의 개정을 통해 전통과 문화, 나라 사랑의 교육을 한층 강조하고 나섰다. 국수주의적인 성격도 짙지만 실질적인 사회 흐름의 반영이다. 국민 이미지의 개선 차원에서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친절 운동을 펼쳐 ‘친절한 나라’라는 인상을 정착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친절과 예의, 청결은 외국의 관광객들이 꼽는 우선순위에 들어간다. 자국의 제품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하다. 단적인 예이지만 주택가의 의류매장에 가보면 눈에 띄게 ‘일본제’라고 표시하고 있다. 가격도 비싸다. 수입품과의 차별화이다. 국가 브랜드는 유·무형,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조화를 이뤄나갈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국가평가기관인 ‘안홀트’가 발표한 2008년 국가브랜드 순위에서 일본은 5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33위다. 한국은 지난 1월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 첨단 기술·제품, 문화관광, 다문화·외국인, 글로벌 시민의식 등 5대 역점 분야를 제시했다. 바람직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것을 아끼고 감싸는 국민 개개인의 의식과 자긍심이다. 한국다운, 한국적인 것을 기초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예컨대 영어 교육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외친들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한 번쯤 자문해볼 필요도 있다. 국가브랜드가 명품이 되려면 국민 개개인과 국가가 같이 가야 한다. 박홍기 도쿄특파원 hkpark@seoul.co.kr
  • “그림 가치는 함께 나눌 때 더 빛나죠”

    “그림 한 점에 녹아 있는 소중한 가치는 모두가 함께 공유할 때 그 빛을 더욱 발합니다.” 40여년간 모아온 미술품 수천 점을 아낌없이 기증하는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70)씨는 말한다. 하씨는 1993년부터 6000점이 넘는 미술품을 국내에 기증했다. 명예관장으로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해 전북도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 영·호남 곳곳에서 그가 기증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이들 작품을 한데 묶어 ‘남도 벨트’라 부른다. 하씨는 1939년 일본 오사카에서 일용직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을 맞고서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부모는 일자리를 찾아 공사판을 떠돌았다. 어려운 형편에 명문 아키타 공고에 들어갔지만 졸업 이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시험조차 볼 수 없었다. 그림을 곧잘 그리던 하씨는 화가가 되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끝내 꿈을 접었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차별도, 시험도 없는 그림이 좋았는데 어머니가 ‘그림으로는 밥 벌이가 힘들다.’면서 물감이며 캔버스를 모두 불태워버렸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후 하씨는 무작정 도쿄로 가 1963년 가전제품 가게를 냈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컬러TV가 불티나게 팔렸다. 살림이 나아지면서 하씨는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화황(全和凰)과 조양규(曺良奎), 손아유(孫雅由) 등 재일교포 작가의 작품을 주로 수집해 온 하씨의 컬렉션은 ‘기도’와 ‘망향’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연결된다. 이주 노동자의 아들로 차별과 멸시를 이겨내야 했던 그의 삶이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셈이다. 하씨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 기도하는 정신이야말로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불행한 역사 속에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아픔을 그림으로 공감하고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shlim@seoul.co.kr
  • [정윤수의 종횡무진] ‘월드컵 깜짝도전’ 조 회장 이미지 쇄신용 아니길

    또 하나의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2010남아공 월드컵? 이미 그것은 격발된 탄환이다. 내년 초여름 남아공의 그라운드를 위해 전 세계의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이미 스타트라인을 박차고 나간 터다. 이젠 2018년과 2022년의 월드컵이 얘기되고 있는 것이다.3일 대한축구협회는 오는 2018년, 또는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지난 2일 국제축구연맹(FIFA)에 월드컵 유치 관심표명 양식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최소한의 조건만 살핀다면 2018년이나 2022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그리 뒤질 것은 없어 보인다. 최상의 인프라 및 경기시설, 최소 12개 이상의 국제 경기장, 첨단 방송 설비, 수송 및 숙박 등을 따져봐도 당장 내일이라도 개최할 수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인적, 물적 자원을 들여 치르고 또 그 이상의 파생 효과를 낳는 이 월드컵 유치전에 대한축구협회가 참여하게 된 까닭을 이 ‘인프라’만으로 짐작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동일 대륙 개최 불가’라는 기본적인 원칙이 아직은 어느 정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2018년이나 2022년의 월드컵 개최를 희망하는 나라는 주로 아시아 쪽에 몰려 있다. 2010년은 아프리카의 남아공에서 그리고 2014년은 남미의 브라질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따라서 2018년 월드컵은 미대륙 소속 국가에는 기회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2002년 이후로 16년 혹은 20년 만에 아시아 쪽으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 아시아 나라들 중에서 카타르와 인도네시아, 호주 그리고 일본 등이 유치 활동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다른 나라들의 인프라와 축구 문화에 비해 우리가 어느 정도 앞서고 있는 게 사실이고 일본의 경우 2016년 도쿄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이것이 성사될 경우 2018년 월드컵 개최는 어려워질 공산이 커진다. 따라서 우리로선 승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신중하게 살피면, ‘문제는 내부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그동안 축구협회가 월드컵 유치 계획에 대해 특별한 계획이나 비전을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밝히지 않아 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엄밀히 간수해야 할 비밀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직은 별다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고 추측해 볼 만하다. 평창은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의 꿈을 다시 피력했고 부산은 2020년 여름올림픽 개최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온몸으로 체험했다시피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일개 종목이나 단체의 업무가 아니라 한 나라의 엄청난 자원이 투여되는 ‘국가 기간 사업’이다.하지만 축구협회는 이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조금은 과장된 비전을 피력할 수도 있는 지난 1월의 회장 선거 과정에서도 당시 조중연 후보는 월드컵 유치에 대해 인상 깊은 정견을 앞세운 적이 있다. 일부의 우려대로 이런 유치 계획과 일정한 활동이 신임 조 회장의 이미지 강화나 현 명예회장이며 FIFA 부회장인 정몽준 전 회장의 영향력 유지 차원의 일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축구와 월드컵은 그런 차원보다 훨씬 고양된 세계이며 엄청난 에너지가 투여되는 일이다.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 영친왕 부부 유품 680여점 기증한 재일동포 하정웅씨

    │도쿄 박홍기특파원│“우연이었다.하지만 손이 떨릴 만큼 흥분됐다.”영친왕(1897∼1970)과 이방자(1901∼1989) 여사의 유품 680여점을 입수하는 과정에 대한 재일교포 하정웅(70)씨의 설명이다. 하씨는 지난 7월 이 여사의 결혼기념품으로 추정되는 일왕가의 1600년대 단도를 소유한 골동품상의 연락을 받고 진위를 가리던 중 “야마구치라면”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영상물 기획사를 경영하는 야마구치 다쿠지 사장은 이 여사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을 만큼 이 여사와 오랜 친분을 맺어왔던 터였다.하씨도 야마구치 사장과는 1982년 도쿄에서 열린 이 여사의 자선 작품전을 돕다 이 여사의 소개로 가깝게 지내왔다.하씨는 1974년 처음 고향인 전남 영암을 찾았다가 서울 낙선재에서 기거하던 이 여사를 처음 만난 이후 행사 등을 줄곧 후원해왔다. 전화통화에서 야마구치 사장의 대답은 “단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대신 “이 여사의 작품이 몇 점 있는데 구입하겠느냐.”고 제안했다.곧바로 야마구치 사장의 집을 찾았다.“그림을 사 가지고 나오려는데 ‘이것도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해서 보니까 포장지에서 곰팡이 냄새가 날 정도로 오래된 물건들이었지요.” 다름아닌 영친왕 부부의 유품이었다.영친왕이 1907년 12월 일본에 ‘유학’을 명분으로 강제로 끌려온 이후의 생활을 담은 사진,일상을 적은 수첩,고국에 보내려다 못 부친 한맺힌 편지와 받은 편지,손때가 묻은 서류뿐만 아니라 이 여사의 다큐멘터리 필름 등 무려 680점이 넘었다.이 여사가 별세하기 10년 전인 1979년부터 야마구치 사장에게 10여차례에 걸쳐 ‘맡겨놓은’ 것들이었다.“흥분할 수밖에 없었죠.평소 존경하던 이 여사의 드러나지 않은 유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게….” 유품은 지난 4일 강기홍 주일 한국문화원장을 통해 한국에 도착했다. 재일 이주노동자의 5남 중 장남인 하씨는 가난 속에서도 부모의 덕에 아키타 현립공업고교를 졸업했다.그러나 차별이라는 현실의 벽에 직장을 잡지 못하다 전자제품 판매사업에 뛰어들어 1964년 도쿄올림픽의 붐과 함께 ‘부자’가 됐다.그러면서 못이룬 화가의 꿈에 대한 보상처럼 가난한 동포들의 그림을 사 모았다.재일동포들의 삶과 당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이다.도쿄 근교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하씨의 자택 거실은 평생 미술품을 수집해온 덕분에 화랑 같았다.현재 부동산회사를 운영하는 하씨는 “내 자신,사(私)가 아닌 사회에 환원,공(公)에 바친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기증했다.”며 웃었다. hkpark@seoul.co.kr
  • [팍스 시니카 시대로-중국의 비상] “美 주도 국제질서 위협” VS “핵 해결 전략적 파트너”

    [팍스 시니카 시대로-중국의 비상] “美 주도 국제질서 위협” VS “핵 해결 전략적 파트너”

    중국의 성장세는 크든 작든 주변국에 영향을 미친다. 가장 위협을 느끼는 나라가 미국과 일본이다.‘세계 유일 강대국’으로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은 13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물량의 경제’로 추격하는 중국이 부담스럽다.‘아시아 제1의 경제대국’ 일본도 언젠가 그 자리를 중국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에게 ‘올림픽 이후 중국’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 경제·군사적 대결구도로 갈등 우려 차기 美 행정부, 對中 포용정책 펴야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은 중국의 급부상을 21세기 최대의 외교적 과제로 보고 있다. 경제적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위협으로 보는 시각과 극복해야 하는 도전으로 보는 시각이 공존한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성공적’인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베이징올림픽 그 자체보다는 베이징올림픽이 갖는 상징성이 중국과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을 중시하는 분위기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센터 소장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의 아시아정책 총괄 자문인 제프 베이더는 “중국은 베이징올림픽과 관련,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면서 “첫째는 국제사회에 지난 30년 동안 중국이 이룬 발전을 과시하고 공산당 일당 정치체제의 합법성을 인정받는 것이고, 둘째는 자국민들에게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목표는 달성했고, 첫번째 목표도 어느 정도 이뤘다는 평가다. 하지만 올림픽을 전후해 불거진 티베트 독립문제와 인터넷 통제, 인권 개선,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 등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것도 사실이다. 베이더는 “베이징올림픽으로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만을 국제사회에 제시했고,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경제력 등에 걸맞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면서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의 기준이 아닌 국제적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쳉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길 원한다.”면서 “하지만 이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는 “중국 정부나 중국 국민들은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제기된 환경과 인권, 소수민족과의 갈등,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들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에 경보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급부상을 바라보는 미국 내 시각은 나뉜다.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 관계에서 양국 관계가 갈등 내지는 대결국면으로 치달아 지정학적으로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을 인정하고, 중국을 책임있는 ‘글로벌 파워’로 포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략적 파트너로서 기후변화와 핵확산 등 국제적인 현안들에 선택적으로나마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관계협의회 회장은 최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미·중관계에 대해 증언하면서 일부가 제기하는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위협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하스 회장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과 경쟁분야가 다르고 두 자릿수 고도성장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인구는 중국의 자산인 동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스 회장은 미·중관계가 동맹관계가 될 수는 없지만 북한 핵 문제 등에서 보듯 사안별로 협력할 수 있는 선택적 파트너 관계를 고려할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연구소(CSIS) 선임 자문도 “중국의 부상은 분명 지정학적·외교적으로 미국에는 큰 도전”이라면서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양국관계가 지금은 경제에 집중돼 있지만 앞으로는 다른 분야들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정치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9·10월호 기고문에서 “중국의 성장과 글로벌 경제가 갖는 상호연관성은 국제 시스템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정책을 요구한다.”고 역설,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을 강조했다. 미국은 무엇보다도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평화로운 중국을 원한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건설적이고 책임있는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중국이 보다 투명하고 개방된 국가가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화로 부상한 핵물질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기후변화, 테러, 보호무역주의, 전염병 창궐, 마약 문제 등에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kmkim@seoul.co.kr ■ 소수민족·양극화 등 경고음 심각 ‘질적 경제대국’ 中 아직 갈길 멀어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에 대한 정치·경제 전망은 일단 ‘흐림’이다. 중국은 올림픽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한편 소수민족·인권·양극화·공해 등과 같은 심각한 정치·사회문제도 동시에 드러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 경제의 침체 탓에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정치의 비민주화, 경제의 불확실성 탓에 중국에 대해 “아직은 아니다.”라며 냉정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양적 경제대국’은 가능할지 몰라도 ‘질적 경제대국’의 길은 멀다는 얘기다. 후지무라 다카요시 다쿠쇼쿠대(국제학) 교수는 최근 ‘일·중, 성숙한 대인(大人) 관계로’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중국 일부에서는 도쿄올림픽 이후 일본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처럼 중국도 베이징올림픽 이후 고도성장을 계속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도쿄올림픽과 베이징올림픽은 놓여진 상황이 꽤 다르다.”고 중국의 희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도쿄올림픽은 일본이 경제성장을 시작한 직후였기에 20년 남짓 동안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무려 11.5%나 됐다. 근로자 급여는 79.2%나 늘어났고, 개인소비도 연평균 9.6%씩 증가했다. 반면 베이징올림픽은 1980년대의 개혁·개방에 따라 지금껏 연평균 9.8%의 성장률을 이룬 뒤 치러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 출발점이 다른 만큼 올림픽 이후의 잠재적 동력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중국의 최근 경제동향을 보면 주식시장의 거품 붕괴 조짐, 부동산 시장의 경색화, 제조업의 실적 부진, 생산비용의 상승 등의 내부요인과 함께 미국 경기의 후퇴에 따른 수출 감소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동아시아경제론) 교수는 “경제순환주기는 20∼30년이다. 반드시 조정기간을 거친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을 폈다. 또 “일본과 중국의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 경제발전 모델도 다르다. 간단히 말해 일본은 소수민족도, 민주화 문제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수출의존 구조인 데다 독자기업이 없기 때문에 생존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하다. 자칫 실수하면 심각한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물론 중국의 넓은 국토와 인구를 토대로 한 거대한 힘에 대한 경계감도 적지 않다. 따라서 세계로 도약할 중국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이마이 겐이치 아시아경제연구소 중국담당 주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의 속도가 둔화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할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일본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이 첨단 기술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국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존관계를 유지하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정치적인 개혁, 세계화의 수용 여부도 과제다. 거세진 내셔널리즘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정치학) 조교수는 “올림픽은 아시아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통과의례’라는 의미를 갖는 만큼 중국은 한걸음 내디뎠다.”면서 “노출된 국내 문제를 해결하고 국제적인 신뢰를 쌓고자 외교에 힘을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hkpark@seoul.co.kr
  • [Beijing 2008]한국수영 올림픽 도전史

    [Beijing 2008]한국수영 올림픽 도전史

    한국 수영의 진화는 ‘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한국 수영은 박태환이 등장할 때까지 세계 무대에서 변방에 불과했다. 1970년대 ‘아시아 물개’ 조오련이,1980년대 ‘아시아 인어’ 최윤희가 있었지만 아시아에서 최고였을 뿐 세계 무대와는 격차가 컸다. 1970·1974년 아시안게임 2회 연속 2관왕에 올랐던 조오련은 1972년 뮌헨올림픽 자유형 400m와 1500m에 도전했지만 모두 예선 탈락했다.1982년 3개,1986년 2개 등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를 휩쓸었던 최윤희도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배영 100m와 200m에서 모두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세계선수권도 마찬가지였다. 박태환에 앞서 결선에 오른 경우는 겨우 두 차례뿐이었다.1998년 남자 접영 200m에서 한규철이,2005년 여자 배영 50m에서 이남은이 결승에 올랐으나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한국 수영은 조금씩 도약했다.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19살로 서울대 1학년이었던 남유선이 여자 개인혼영 400m에서 한국의 올림픽 도전 사상 최초로 결승에 올라 7위를 기록했다. 중학교 3학년 나이로 이 대회에 나섰다가 부정출발로 실격의 아픔을 겪었던 박태환은 이때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한국 수영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박태환은 2006년 범태평양 수영 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내며 한국 수영 사상 처음으로 세계 규모 대회에서 메달을 수확했다. 이어 같은 해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올랐고,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400m 자유형에서 자신의 우상이었던 그랜트 해켓(호주)을 꺾고 금빛 물살을 갈라 세계를 경악케 했다. 박태환은 아시아 수영사도 새로 썼다. 동양인으로서는 72년 만에 올림픽 남자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과거 수영강국이었던 일본이 1932년 LA대회 자유형 1500m와 100m에서,1936년 베를린 대회 자유형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금맥이 끊어졌던 것. 드디어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마저 정복하며 이 종목에서 자신의 시대를 선언한 박태환에게 남은 과제는 세계 신기록 작성이다.3분41초86으로 자신의 최고 기록이자 아시아 신기록을 더 단축한 박태환은 ‘인간 어뢰’ 이언 소프(호주)가 2002년 작성한 3분40초08의 세계기록까지 1초78을 남겨 놨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착잡한 日…올림픽 계기 中내셔널리즘 경계

    |도쿄 박홍기특파원|8일 화려하게 개막한 제29회 중국 베이징올림픽이 일본에게는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아 보인다. 착잡하다. ‘한계에의 도전’이라는 올림픽의 의미를 넘어 밀려올 중국의 ‘힘’, 즉 ‘약진하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중국 스스로 ‘국가의 위상을 건 국제 이벤트’,‘30년에 걸친 개혁과 개방정책의 성과’라는 평가를 내렸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또 ‘100년의 꿈’을 내세우면서 19세기 아편전쟁 이래 닥친 오욕과 굴욕의 역사를 푸는 하나의 기회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중국이 참가하지 않은 데다 개회 6일째 핵실험을 실시, 세계를 온통 뒤흔들었던 과거사를 새삼 끄집어내기도 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을 비롯해 테러문제, 티베트 사건, 쓰촨 대지진, 성화 봉송과정에서의 내셔널리즘, 극심한 보도 통제, 음식의 안전성 논란, 빈부격차 등을 한껏 부각시켜 왔던 터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7일 사설에서 중국을 향해 올림픽에서 “진정한 국제 표준을 배우는 기회로 삼을 것”을 ‘충고’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에 맞춰 공항과 고속도로를 정비하고, 신설 지하철도 개통하는 등 철저한 하드웨어 준비에 대한 상황을 치켜세운 뒤 소프트웨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문은 “티베트 사건에서는 일당 독재국가의 한계를 드러냈다.”면서 “시민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 테러나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정치의 실시야말로 올림픽 정신과 맞먹는다.”고 비꼬았다. 아사히신문은 8일자 사설에서 “중국의 내셔널리즘이 (올림픽을 계기로)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발전의 원동력이 되면 다행이지만 자칫 지나치면 사회의 불안뿐만 아니라 주변국가나 국제사회까지 안심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올림픽 개최로 중국의 발전 속도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hkpark@seoul.co.kr
  • [굿모닝 베이징] 첨단 못 좇는 소프트웨어

    중국은 베이징올림픽 성공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장 건설 등에 모두 420억달러(약 42조원)를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2004년 아테네대회 때 150억달러의 세 배에 이른다. 물론 사회주의 특성상 믿을 만한 통계는 아니다. 한 중국 관계자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다. 이처럼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지은 메인 스타디움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 등의 위용을 보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하드웨어는 갖췄지만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에선 부족한 게 자주 보인다. 친황다오에서 열리는 남자 축구대표팀을 취재하기 위해 6일 지하철을 타고 베이징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은 2002년부터 77억달러를 들여 4개 노선을 추가, 편리했다. 첨단 터치식 이중 언어 발매기로 쉽게 티켓도 끊었다. 그러나 거대한 베이징역에 들어간 순간 당혹스러웠다. 공항, 경기장, 메인프레스센터(MPC) 등에서 넘쳐났던 그많던 자원봉사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안내판도 부실했다. 올림픽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곳이라 소외됐나 보다. 표를 보여주며 타는 곳을 물어봤지만 매점과 역 직원조차 엉뚱한 곳을 알려줬다. 친절하지도 않았다. 결국 역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좌석에 앉았다. 오후 1시50분 출발 예정이던 기차는 3분 먼저 떠났다. 지난 5일에는 사상 첫 남북한 혼합팀을 구성한 여자체조 선수들이 훈련하는 체육관을 찾아갔다. 택시기사에게 영어로 된 연습 일정표를 보여줬더니 엉뚱한 서우두체육관에 내려줬다. 서우두 체육학원과 헷갈려서다. 그런 경우야 우리나라에서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선 수십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땀을 흘리자 휴지도 건네주고, 시원한 생수도 갖다 줬다. 그러나 이 가운데 체육학원을 아는 이가 없었다. 택시 기사들도 몰랐다.5대의 택시를 보내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갖고 있던 지도에는 체육학원이 없었다. 겨우 다른 지도에서 보였다. 결국 1시간 가량 헤매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선수는 돌아간 뒤였다. 또 베이징시는 악명 높은 교통체증을 의식, 주요 도로를 최상의 수준으로 정비했다. 차량 짝·홀수제로 운행 차량도 줄였다. 그런데 막상 교통 상황은 예상보다 나빴다. 곳곳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서다. 진입로 등을 세밀하게 배치하지 않은 데다 사람과 자전거, 차량이 도로에서 공존하다 보니 병목 현상이 일어나서다. 어쨌든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화에 박차를 가했다. 중국도 이런저런 소프트웨어 면의 시행착오를 거쳐 국제화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친황다오(중국)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글로벌 시대]세계는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다/양창영 호서대교수·재외동포연구소장

    [글로벌 시대]세계는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다/양창영 호서대교수·재외동포연구소장

    거리에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로 넘쳐나는데 최악의 청년 실업난을 겪고 있다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세계도덕재무장운동(MRA)본부가 주최하는 세계 청년학생대회에 참석차 1965년 7월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당시 필자는 약 3개월 머무는 동안 30여개 도시의 학교와 산업시설들을 돌아보았다. 이 나라들은 이렇게 풍족하게 잘사는데 왜 우리는 가난하게 살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오던 중 일본에서 MRA 지도자로 일본 중의원 의장을 맡고 있던 지바 사부로 (千葉三郞) 선생을 만났다. 그 분은 패전 후 20년도 안 돼 1964년 도쿄올림픽을 열 수 있었고,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일본 동포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사실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세계를 알아야 일본이 잘살 수 있다.”고 세계화를 주장했다. 이때 일본정부는 많은 일본인들을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진출시켰으며, 이들 후손들이 일본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예와 같이 한국이 발전하려면 폐쇄적인 쇄국정책을 버리고 세계속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한국은 천연지하자원을 비롯한 부존자원은 부족하지만 인적자원은 충분하니 인력을 해외로 진출시켜 세계시장을 상대로 경쟁을 펼칠 때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얘기를 귀담아듣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이 보국하고,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날까지 나름대로 보다 많은 인력의 해외진출에 노력을 경주해 왔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의 수많은 노력들이 모여 700여만명의 해외동포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며,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놓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이제 이들 재외동포를 대한민국의 세계화, 글로벌화의 축으로 적극 활용,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면 세계속에서 한민족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육지면적의 0.07%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다. 거기에 5000만명이 살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문을 활짝 열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인과 더불어 지구촌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살아남는 것이 곧 위대한 한민족 시대를 개척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세계화 시대는 인적자원의 역량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렸던 재외동포의 역사는 애국에 불타는 열정과 불굴의 개척정신에서 출발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낯선 이국땅을 밟아야 했던 선조들이 있는가 하면 빈손으로 고국을 떠나 척박한 땅을 비옥한 토지로 바꾼 이도 있다. 혹독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 항상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철저한 신용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개척했고, 마침내 대한민국 영토 밖에서 가장 큰 경영성과를 창조한 한상(韓商)도 있다. 불굴의 의지와 창의적 발상으로 남다른 배려의 정신과 미래를 꿰뚫는 혜안을 갖고 자신에게는 인색할 정도로 검소하지만, 꼭 필요한 일에는 넉넉하고 후한 인심을 쓰는 해외 기업인도 있다. 무엇보다 ‘헝그리 정신과 도전정신’으로 표현되는 인생 철학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고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명언을 직접 실현해낸 대표적 한류의 성공모델도 있다.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도전과 개척의 뉴프런티어 정신을 갖고 눈을 세계로 돌려야 한다. 가슴은 항상 조국으로 향하되 넓은 세계를 무대로 근면·성실하게 일자리를 찾아 활동하면 성공할 수 있다. 양창영 호서대교수·재외동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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