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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대통령, 도쿄올림픽 결정 때 아베에 축하 서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8일 도쿄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축하 서신을 보냈다고 30일 교도통신이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박 대통령은 베트남 출장 중 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역사 문제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나 문화 등에서의 양국 교류는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의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측은 국제행사 개최를 축하했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레슬링 김현우·류한수 14년만에 금빛 뒤집기

    레슬링 김현우·류한수 14년만에 금빛 뒤집기

    후원사 모시기에 나선 한국레슬링이 14년 묵은 금맥을 캐냈다. 안한봉·박장순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따냈다. 대회 마지막 날 그레코로만형 74㎏급의 김현우(삼성생명)는 로만 블라소프(러시아)를 2-1로 물리치고, 66㎏급의 류한수(상무)는 이슬람-베카 알비예프(러시아)를 5-3으로 누르고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이후 첫 국제대회, 그것도 1999년 대회에서 김인섭 등이 3개의 금메달을 수확한 뒤 14년 만에 따낸 세계선수권 금메달이라 감격을 더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레슬링은 깊은 침체를 경험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연거푸 ‘노골드’에 그쳤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김현우의 ‘멍든 금메달’로 자존심을 되찾는가 싶었지만 30년 동안 한국 레슬링을 뒷바라지해 온 삼성이 지원을 중단하면서 대한레슬링협회는 후원사 모시기에 나섰다.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은 없지만 이번 쾌거가 기폭제가 되길 협회는 기대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충격요법으로 레슬링을 여름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탈락시키면서 국제레슬링연맹(FILA)이 규칙 개정에 나선 것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 두 감독과 협회는 체력과 지구력이 뛰어난 국내 선수들에게 규칙 개정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 부분을 집중 조련했는데 적중한 셈이다. 간판 김현우는 건재를 과시했고 스타도 발굴했다. 올림픽과 아시아선수권을 제패한 김현우는 세계선수권 정상을 처음 밟은 데 이어 내년 인천 아시안게임 정상에도 서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日유명 방송인, 도쿄올림픽 반대 표명 “마지막 1인 돼도 반대 계속”

    일본의 유명 방송인 쿠메 히로시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20일 일본 포털 라이브도어의 토픽뉴스가 전했다. 쿠메 히로시는 14일 TBS 라디오 ‘쿠메 히로시의 라디오입니다만’에서 위와 같은 발언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그는 “올림픽 개최지 결정 전 시행한 설문으로는 개최지 후보로는 도쿄가 최하위를 기록했었다. 뜻밖에 도쿄가 결정돼 놀랐다”면서 “내가 (도쿄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마지막 일본인이 돼도 반대를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어 그는 “일본은 지금 올림픽 유치보다 다른 할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 “오염된 물의 농도를 밝히는 것이나 미국에서 전문가를 데려오는 것 등은 모두 이후의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개최지 결정 전날 7일 방송에서도 “올림픽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면서도 “도쿄가 올림픽을 유치해 동북 부흥의 도움이 되거나 동일본 대진의 이재민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발언을 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올림픽 유치 비용과 개최에도 수천억 엔이 필요할 것을 거론하며 “수천억 엔의 돈을 쓰는 것이라면 부흥을 위해 모두 기부하는 것은 어떠냐. 그쪽이 상당한 용기와 힘을 줄 것”이라며 “올림픽을 도쿄에서 개최하는 것이 재해지에 용기를 주는 것과는 연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도쿄 만의 왁자지껄한 축제로 재해 수습에는 적극적으로 할 수 없다”고 매듭지었다. 한편 쿠메 히로시는 지난 동일본대지진 당시 개인 명의로 2억 엔을 기부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日 방사능올림픽?…유럽언론 ‘조롱 만평’ 봇물

    日 방사능올림픽?…유럽언론 ‘조롱 만평’ 봇물

    최근 일본 도쿄(東京)가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가운데 이를 풍자하는 유럽언론들의 만평이 잇달아 게재돼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불씨는 프랑스의 전문 주간지 ‘르 카나르 앙세네’가 당겼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신문은 마치 방사능에 피폭돼 돌연변이가 생긴듯 팔다리가 3개인 스모 선수의 모습을 그렸다. 특히 방호복을 입은 방송 사회자는 “훌륭하다. 후쿠시마(福島) 덕분에 스모가 올림픽 종목이 됐다” 며 조롱했다. 이같은 만평이 게재되자 일본정부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 만평은 동일본대지진으로 피해받은 사람들과 오염수 문제에 대해 사실과 다른 인식을 심어준다” 며 “프랑스주재 일본 대사관으로 통해 엄중 항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외무성 측도 공식논평을 통해 “(후쿠시마)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앞으로 이같은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프랑스 언론과 독일 언론 역시 일본의 2020 도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비아냥대는 만평들을 연이어 게재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日유명 女아나 성관계동영상 유출루머 일파만파

    日유명 女아나 성관계동영상 유출루머 일파만파

    일본 후지TV 아나운서 출신이자 2020도쿄올림픽유치위원회 소속의 타키가와 크리스텔(35)이 40분 분량의 개인 동영상 유출 루머에 휩싸였다. 타키가와 크리스텔은 프랑스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배우 오자와 유키요시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국적인 외모와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아온 그녀는 최근 2020도쿄올림픽유치위원회 소속으로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나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문제의 동영상이 최초로 언급된 시기는 지난 6월. 일본의 한 주간지가 타키가와 크리스텔의 성관계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있다고 보도했고, 타키가와 측은 단순한 스캔들로 치부해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열린 ICO총회에서의 최종 프레젠테이션이 주목을 받으면서 관련 루머가 또 다시 급부상 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 언론은 지난 6월 타키가와의 사적인 동영상이 있다는 내용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동영상이 유출됐다고 보도해 진위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D에 녹화된 이 동영상은 타키가와 크리스텔로 추정되는 여성의 성관계 장면을 담고 있다. 상대는 백인 남성이며 동영상 속 여성은 레이스로 장식한 속옷 뿐 아니라 나체 모습까지 모두 드러낸다. 장소는 호텔로 보이며, 카메라의 각도로 보아 호텔 천장에 설치해 몰래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영상 CD 표지에는 그녀가 뉴스를 진행하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여성이 옷을 모두 벗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자극적인 사진 등이 인쇄돼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인터넷 뉴스사이트 및 게시판을 중심으로 타키가와 크리스텔의 성관계 동영상 루머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동영상의 화질이 좋지 않아 얼굴 확인이 어렵지만, 최근 IOC총회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한 타키가와 크리스텔로 보인다.”면서 앞 다퉈 보도하고 있다. 중국의 한 언론은 “그녀가 지난 3월 후지TV 아나운서를 그만 둔 것이 동영상 유출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지적인 매력과 섹시한 매력을 동시에 갖춰 일본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서도 팬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사실로 밝혀진다면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타키가와 크리스텔 측은 지난 6월과 마찬가지로 현재까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도쿄올림픽 정식종목 잔류 레슬링 다시 ‘한국 메달밭’으로

    도쿄올림픽 정식종목 잔류 레슬링 다시 ‘한국 메달밭’으로

    레슬링이 7개월 만에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 지위를 되찾았다. 지난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대회 핵심종목(25개)에서 빠졌던 레슬링이 혁신의 일환으로 손질한 경기 규정은 훈련량이 월등한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IOC는 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어진 제125차 총회에서 도쿄 대회의 마지막 정식종목으로 레슬링을 선정했다. 레슬링은 유효표 95표 중 과반인 49표를 얻어 야구-소프트볼(24표)과 스쿼시(22표)를 가뿐히 제쳤다. 레슬링은 이로써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치러진 26개 종목 가운데 도쿄올림픽 핵심종목(25개)에서 유일하게 빠졌다가 골프, 7인제럭비에 이어 마지막으로 정식종목에 복귀, 근대올림픽에서 1900년 제2회 대회를 빼고 줄곧 잃지 않았던 정식종목의 지위를 지켰다. 결국 도쿄올림픽에선 3년 뒤 열릴 리우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런던올림픽 종목에 골프, 7인제럭비를 더한 28개 종목이 치러진다. IOC의 줄기찬 개혁 요구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레슬링은 국제레슬링연맹(FILA)의 수장을 교체했고 조직 개편과 규정 개정 등 전면 개혁에 나서 이번에 성과를 인정받았다. FILA가 지난 5월 임시총회에서 변경한 경기 방식이 먹혀들었다. 2분 3세트제를 3분 2라운드 결과 총점이 높은 선수가 이기는 제도로 9년 만에 돌아갔다. 패시브 벌칙을 적극적인 공격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바꾼 것도 좋은 평가를 낳았다. 이날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자축 행사를 연 대한레슬링협회 김학열 사무국장은 “과거 세트제는 풍부한 리그전으로 경험을 축적한 유럽 선수들에게 유리했다”며 “총점제 부활로 공격적으로 바뀌면서 투지력과 정신력에서 앞서고 많은 훈련 덕에 체력이 강한 우리 선수들에게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으로선 역대 올림픽에서 금과 은메달 11개씩에 동메달 13개를 안긴 효자종목을 잃지 않게 됐다. 라이벌 종목이 상대적으로 미적댄 것도 레슬링 잔류를 도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정식종목에서 제외된 야구와 소프트볼은 양대 기구를 통합하며 관심을 끌었지만 미국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끝내 버티면서 동력을 잃었다. 한 차례도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 스쿼시는 테니스와 배드민턴, 탁구 등 라켓 종목이 이미 셋이나 열리는 데다 관중이나 TV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미흡한 것이 감표 요인으로 지적됐다. 도쿄올림픽 핵심종목을 뺀 세 종목은 IOC가 앞으로도 28개 종목 이상을 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언제든 레슬링처럼 지위가 휘청일 수 있어 끊임없는 혁신 압박에 노출돼 있다. 한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의 김진선 위원장 등 6명의 대표단은 이날 IOC 총회에서 경기장 착공·완공 일정, 숙박, 마케팅 등 준비 상황을 프레젠테이션했다고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시차 없고 기후 비슷… 태극전사 메달 청신호

    2020년 도쿄올림픽은 태극 전사들에게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시차가 없고, 이동 거리가 짧은 데다 기후도 비슷해 체력과 컨디션 조절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수단의 먹을거리 조달도 수월하다는 이점도 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한국은 1960년 로마올림픽까지 4개 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따는 데 그쳤다. 그러나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장창선과 정신조가 각각 레슬링과 복싱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유도에서도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에 오른 한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금메달 13개로 선전했다. 1996년 애틀랜타(7개)와 2000년 시드니(8개), 2004년 아테네(9개) 올림픽을 뛰어넘는 좋은 성적을 내며 종합 7위에 올랐다.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대부분 본선에 자동 출전하는 만큼, 일본과 올림픽 출전을 다퉜던 종목의 본선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대회 전 훈련 캠프를 유치해 전력 향상과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2024년 올림픽 유치를 노리는 부산은 큰 부담을 안게 됐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잇따라 아시아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대륙별 안배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편 IOC 총회는 8일 밤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비롯한 25개 종목을 2020년 도쿄올림픽 핵심종목으로 최종 승인했다. 3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선 레슬링이 포함된 런던올림픽 종목에 골프, 7인제 럭비를 더해 28개 종목을 치른다. 도쿄 대회에서는 25개 핵심종목과 골프, 7인제 럭비외에 한 종목을 추가하는데 9일 새벽 야구-소프트볼, 스쿼시, 레슬링 중 하나가 낙점된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아베 “도쿄올림픽, 경제성장 기폭제로 삼겠다”

    아베 “도쿄올림픽, 경제성장 기폭제로 삼겠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기폭제로 삼아 15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을 불식시키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8일 오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후 기자회견을 열고 올림픽 개최의 변을 밝혔다. 아베 총리는 “모두가 힘을 합치면 꿈은 이뤄진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보여줄 수 있었다. 도쿄에 표를 준 IOC 위원과 도쿄를 응원한 전 세계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면서 “이제부터 실전이다. 도쿄를 선택한 것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이어 아베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을 딛고 부흥을 이뤄낸 일본의 모습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이번 도쿄 개최 결정에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최선의 길”이라면서 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이번 개최지 결정의 마지막 난관이 됐던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 문제에 대해서는 “건강에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베 총리는 역사 인식과 영유권 문제 등을 놓고 관계가 냉각된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대화를 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그는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국가”라면서 “어려운 문제는 있지만 의사소통을 계속해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한 2국 간 관계다. 전략적 호혜관계에 입각해 대국적인 관점에서 중국과 대화를 해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혐한 시위를 자제해 온 일본의 극우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은 이날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자 곧바로 시위를 재개했다. 이날 한인 상가가 밀집해 있는 신오쿠보 근처의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150명가량이 모여 낮 12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한국 학교를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재특회가 “다케시마를 독도라고 가르치는 학교 무상화 절대 반대”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 행진을 벌이는 동안 재특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인종차별 데모 금지”라고 외치는 등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도쿄도지사 ‘이슬람 비하’ 망언 터키 반발… IOC 조사 가능성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침략전쟁 부인 망언이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노세 나오키 도쿄도 지사가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전 과정에서 이슬람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노세 지사는 비난이 거세지자 뒤늦게 사과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는 등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됐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노세 지사는 30일 도쿄도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 이슬람권 사람들에게 오해를 부를 표현으로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전날 NHK는 이노세 지사가 지난 26일자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올림픽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터키를 겨냥, “이슬람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알라신뿐”이라며 “서로 싸움만 하고 있고 계급도 있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노세 지사는 또 ‘청소년 인구 비율이 높은 이스탄불이 유리하지 않으냐’는 기자의 지적에 “터키 사람들이 장수하고 싶다면 일본과 같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젊은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빨리 죽는다면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이노세 지사는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며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뉴욕타임스가 이를 반박하자 하루 만에 사과했다. 터키 정부는 “이노세 지사의 발언은 공정하지 않으며,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며 발끈했다. IOC는 이노세 지사에게 발언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어 IOC의 조사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IOC 행동강령 14조에는 올림픽 유치에 나선 도시는 경쟁도시와 비교하거나 상대방의 유치운동을 언급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쿄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 온 일본은 최대 장애를 맞게 됐다.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 경쟁은 도쿄와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이스탄불이 양자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노세 지사는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유신회 대표가 도쿄도 지사직을 사임하면서 후계자로 지목해 지난해 12월 선거에서 당선됐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CEO칼럼] 일본 공항정책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CEO칼럼] 일본 공항정책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 때론 극단적인 행동이 예기치 못한 손실을 초래하고, 다른 곳에서 생각지 못한 반사적 이익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인천국제공항이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자리매김했는데, 그 이면에 일본이 제공한 요인도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1964년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하네다 국제공항으로는 부족해 내륙에 나리타 국제공항을 건설했다. 보잉747 점보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 1본을 건설해 하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국위도 높였다. 국제항공 이용객이 많이 늘어나자 일본은 나리타 공항 제1 활주로와 나란히 제2 활주로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런데 공항 확장을 반대하는 지역단체, 야당 등 7개 집단이 제2 활주로 건설예정부지 중심부에 땅 23㎡(7평)를 공동 등기하고 결사적으로 반대, 공항건설은 30여년간 제자리를 맴돌았다. 많은 외국항공사가 도쿄노선 증편을 원했지만 활주로 능력 한계로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은 ‘투포트’ 정책으로 돌아서 오사카에 국제공항을 건설, 1993년에 개항했다. 문제는 지방공항에서 터졌다. 일본 지방자치단체장들이 1현(縣)1공항 정책을 표방하며 앞다퉈 공항을 건설했다. 1990년대 초에 센다이, 아오모리, 아키다, 니가타, 후쿠시마 등 지방 공항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지방에서 해외로 나가려면 국제선 전용 나리타 공항을 이용해야 하는데, 국내선 전용 하네다 공항을 거쳐 기차나 자동차로 나리타까지 이동하는 데 왕복 4~5시간이 더 걸렸다. 그러자 지자체장들이 앞다퉈 시간상 가까운 우리나라 김포국제공항과의 국제선 노선 개설을 원했다. 우리는 못 이기는 척 일본 운수성과 항공회담을 통해 합의해 줬다. 당시 일본 정부는 국내선은 전일본항공(ANA), 국제선은 일본항공(JAL)이 주로 운항토록 시장분리정책을 시행하면서도 단거리인 한국노선은 양사가 운항토록 했다. 하지만 김포와 일본 지방공항 간 여객 수요가 많지 않았고, 일본항공사들은 상대적으로 우리 항공사보다 비용이 높다 보니 우리 항공사들만 노선을 배분받아 일주일에 2~4회 정도 독점 운항했다. 김포공항은 급속히 포화됐고, 인천공항 건설을 앞당기게 하는 자극제가 됐다. 일본은 뒤늦게 나리타 공항 제2 활주로 건설 계획을 변경해 건설했다. 우리 항공사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나리타 공항 운항횟수를 늘렸다. 국제선을 주로 운항하는 JAL이 최근 파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을 보면, 극단적인 반대가 결국 상대에게 예기치 않은 반사적 이익을 주고 자국의 산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지방공항은 골칫덩어리다. 양양공항에는 국제선은 고사하고 국내선 정기편도 한 편 없다. 무안공항은 국적 항공사는 없고, 중국 항공사가 일주일에 6회 운항할 뿐이다. 그것도 활주로 길이 제약으로 160인승 정도의 항공기만 운항할 수 있다. 지방공항 개항 이후 수요 예측이 빗나가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비단 지방공항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김해·용인·의정부 경전철, 경인 아라뱃길 건설을 강조했던 전문가, 지자체나 관련 부처의 정책 결정자들 가운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공자는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잘못이라(過而不改 是謂過矣)”고 했다. 국가 차원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 많고, 추진 중인 사업도 많다. 하지만 재원은 한정돼 있고, 증세는 반대하면서 지역에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갈등을 일으키는 사례 또한 많다. 필요한 사업도 우선순위에 따라 차근차근 결정할 수 있도록 협조해 지역 갈등을 막아야 한다. 정치인들과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먼저 바꾸고 솔선수범했으면 한다.
  • 올림픽 생존 게임

    올림픽 생존 게임

    라파엘 마르티네티(스위스) 국제레슬링연맹(FILA) 회장이 결국 퇴진했다. 레슬링이 2020년 여름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탈락한 사실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가 공표하기 15분 전에야 알았을 정도로 손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에 책임을 지고서였다. 네나드 라로비치(세르비아) 이사가 직무대행으로 선출됐다. 17일까지 이어진 FILA 이사회는 오는 5월 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집행위와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총회까지 퇴출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 총력전을 펴기로 했다. 레슬링은 복귀를 노리는 야구와 소프트볼, 신규 진입을 벼르는 가라테, 우슈, 롤러스포츠, 스쿼시, 스포츠클라이밍, 웨이크보드와 경쟁해야 한다. 지금까지 올림픽 역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 종목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모아 봤다. ■야구-소프트볼 각각 1992년과 1996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지만 2005년과 2009년 IOC 총회에서 퇴출돼 야구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마지막으로 지난해 런던에 이어 3년 뒤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다. IOC는 최정상 기량의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하지 않는 데다 경기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TV 중계에 어울리지 않고 남녀평등에 위배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더불어 세계반도핑기구(WADA) 수준에 걸맞은 약물 검사도 요구했다. 지난 연말 국제야구연맹(IBAF)과 국제소프트볼연맹(ISF)을 통합한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출범하고 여느 구기종목처럼 남자는 야구, 여자는 소프트볼로 출전하게 한 것도 IOC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야구는 또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승부치기’ 시행에 들어갔고 그것마저 안 먹히면 7이닝 경기로 줄일 방침이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거 출전을 위해 올림픽 기간 6일 동안 ‘토너먼트’로 경기를 치르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현재 IOC는 양대 기구 통합에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선수 차출에 미온적이어서 재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양궁 1900년 파리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뒤 경기 방식이 통일되지 않아 1924년 퇴출됐다가 1972년 뮌헨올림픽을 통해 복귀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지만 1990년대 들어 흥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시 퇴출 압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여러 차례 경기 규칙을 바꾸며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이어왔다. 1984년 LA올림픽까지 양궁은 개인전만 열렸고 거리별로 36발씩 두 번의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매겼지만, 대회마다 규칙이 달라질 정도였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는 개인전을 세트제로 운영했으며, 연장전에 들어가면 마지막 한 발의 슛오프로 승부를 가리게 했다.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박진감이 커져 막판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국제양궁연맹(FITA)이 지난 2006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양궁월드컵도 양궁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높여 올림픽 잔류를 돕고 있다. ■럭비 양궁과 똑같이 1900년 정식종목이 됐다가 1924년을 끝으로 퇴출됐다. 그러나 국제럭비위원회(IRB)가 올림픽의 상업화를 비난하고 럭비의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하기 위해 자진해서 올림픽을 떠난 점이 달랐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도 럭비를 보급하기 위해선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꾸준히 재진입을 겨냥해 왔다. 결국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정식종목에 포함됐다. 남태평양의 피지와 사모아 등도 올림픽 메달을 노릴 수 있는 종목이라고 선전했고, 럭비 국가대표를 지낸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영향력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전통적인 15인제 대신 7인제 방식으로 열린다. 15인제는 전·후반 40분씩 열리는 데다 한 경기를 치르면 2~3일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종합대회에는 적합하지 않다. 7인제는 전·후반 7분씩이라 체력 부담이 적고, 스피드와 조직력, 두뇌 플레이가 필요하다. ■골프 1900년 파리대회에 첫선을 보이고 4년 뒤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회를 마지막으로 112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췄던 골프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복귀하는 감격을 누린다. 사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그 꿈을 이룰 수도 있었는데 애틀랜타올림픽조직위원회(ACOG)가 개최지로 고른 오거스타내셔널클럽의 회원이 한 명에 불과하고 여성 회원은 없는 등 인종과 남녀차별 이슈가 불거져 좌절됐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맞대결할 경기 방식이 없는 데다 널리 보급된 나라도 많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복싱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된 복싱은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에서 불법으로 간주돼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가 1920년 재진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IOC 내부에 늘 있었다. 레슬링과 마찬가지로 판정 시비가 잦고 소극적인 경기운영으로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이유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 올림픽에서도 KO 승부가 프로 복싱 못지않게 잦았는데 1982년 프로복서 김득구가 14회 KO패한 뒤 세상을 떠나면서 2년 뒤 로스앤젤레스올림픽부터 보호장구가 도입됐다. 지난해에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를 관장하는 국제복싱연맹(AIBA) 이사회가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남자 선수들이 보호장구(헤드기어)를 벗고 링에 오르도록 허용했다. 아마복싱에서도 사라진 KO 승부를 되살리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처음 문호를 개방한 여자와 주니어대회는 예외다. AIBA는 또 자체 프로리그인 APB 소속 선수들이 제한된 조건에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태권도 여름올림픽 종목 가운데 유도와 함께 아시아에서 시작된 종목.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종주국 한국이 메달을 독식하고, 판정 시비, 박진감 부재, 미디어노출 부족 등의 이유로 2005년부터 도마에 오르내렸다. 태권도는 이듬해부터 IOC가 요구하는 사항들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경기규칙을 개정했다. 특히 비디오 판독과 전자호구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도 1964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유도는 컬러도복을 도입하고 점수제도를 변경해 살아남았다. 런던올림픽에서 효과-유효-절반-한판 순이었던 점수제 등급이 너무 많다는 의견에 따라 ‘효과’를 없앴는데 되레 벌칙인 지도가 늘면서 재미가 반감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제유도연맹(IJF)은 다시 규정을 개정해 9월 1일까지 시험 운영한다. 그동안 한판승은 기술이 걸린 선수가 매트에 등으로 떨어져야 했지만 앞으로는 몸을 비틀어 떨어져도 기술이 정확하게 들어갔다고 판단되면 한판승을 주기로 했다. 누르기 판정 기준도 25초에서 20초로 줄였다. 또 정규시간 5분에 기술 점수가 같으면 곧바로 연장전에 들어갔던 것을 앞으로는 지도를 많이 받은 선수가 지는 것으로 바꾸었다. 더불어 연장전에서는 먼저 지도를 빼앗거나 기술 점수를 따내는 선수가 이긴다. ■배구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이벤트 경기로 처음 등장한 배구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 첫선을 보였다. 구기종목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배구는 1999년 랠리포인트 제도를 도입했다. TV 중계에 민감한 IOC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좀 더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전 15점 사이드아웃제에서는 서브권을 얻은 상태에서만 공격 성공이나 상대 범실이 득점으로 연결됐기 때문에 경기가 늘어지곤 했다. 25점 랠리포인트 제도에서는 서브권과 상관없이 상대 코트에 공을 떨어뜨리면 득점하게 돼 경기 시간이 줄게 됐다. 또 1998년 도입한 전문수비선수(리베로) 제도를 통해 공격수들의 수비 부담을 덜어준 것도 박진감을 높였다. ■하키 지난 12일 IOC 집행위원회에서 퇴출이 결정된 레슬링보다 단 3표가 모자라 벼랑 끝에서 살아남은 하키 역시 몇 년 전부터 잔류를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하키는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첫선을 보였다가 다음 스톡홀름대회에서 퇴출됐고, 1920년 앤트워프올림픽에 다시 등장했지만 국제기구가 없다는 이유로 1924년 파리 대회에서 제외됐다. 같은 해 국제하키연맹(FIH)이 출범했고 1980년부터 여자 종목도 생겼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 편중된 점은 언제든 다시 퇴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FIH가 인도에 휘둘린다는 지적을 뛰어넘어야 한다. 체육부 종합
  • ‘브라질 잔혹사’ 이번엔 끝내나

    ‘브라질 잔혹사’ 이번엔 끝내나

    8일(한국시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준결승에서 한국과 맞붙는 브라질은 지금껏 넘볼 수 없는 성역이었다. A대표팀(성인대표팀) 간 역대 전적 1승4패, 20세 이하(U20) 청소년대표팀 간 역대 전적에선 1승9패로 밀렸다. 한국과 브라질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이뤄졌다. 요코하마에서 열린 조별리그 C조 경기에서 0-4로 완패했다. 한국은 김정남(현 프로축구연맹 부회장)을 비롯해 정식 국가대표팀을 출전시켰지만, 브라질은 아마추어로 팀을 구성했다. 그래서 대한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 간 역대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 두 번째로 올림픽 축구 본선을 밟은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20골을 내줄 만큼 최약체였다. 전지훈련이나 정보수집, 전력분석 등은 사치스럽게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뒤 두 나라 A대표팀은 친선경기에서만 만났다. 그리고 한국이 딱 한 번 이겼다. 1999년 3월 28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후반 45분 김도훈(현 성남 코치)의 극적인 결승골로 승리했다. 당시 브라질대표팀에는 히바우두, 카푸, 콘세이상 등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던 터라 한국의 승리에 외신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U20 세계청소년대회에서는 6차례 맞붙었다. 1983년 멕시코대회 4강 신화를 달성한 박종환 사단의 준결승 상대가 브라질이었다. 1-2로 무릎을 꿇었다. 남북 단일팀이 출격한 1991년 포르투갈대회의 8강전 상대도 브라질이었다. 역시나 1-5로 졌다. 박주영(아스널)이 나선 2005년 네덜란드대회에선 0-2로, 기성용(셀틱)과 이청용(볼턴) 등이 출전한 2007년 캐나다대회에선 2-3으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공은 둥글다. 또한 징크스는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8강에서 7만여 관중의 광적인 응원과 심판 판정의 이점을 등에 업은 개최국 영국을 짓밟은 한국축구 대표팀에 새 역사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펠프스 19번째 메달… 신화는 쭉~

    금메달 1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27)가 올림픽의 역사를 새로 썼다.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그가 등장하는 경기 하나하나는 새로운 역사가 될 전망이다. 펠프스가 19번째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며 올림픽 통산 개인 최다 메달 신기록을 달성했다. 19개의 메달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종합 12위에 오른 네덜란드 선수단이 따낸 16개보다 많고, 그 중 15개의 금메달은 당시 종합 6위를 차지한 호주 선수단이 따낸 14개보다 하나 더 많은 것. 1일 런던 올림픽파크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수영 남자 계영 800m(4×200m) 결선에서 미국 대표팀의 마지막 영자로 나선 펠프스는 6분59초70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으며 대회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열린 접영 200m와 계영 400m(4×100m)에서는 모두 은메달에 그쳤다. 이로써 펠프스는 옛 소련의 체조선수 라리사 라티니니가 갖고 있던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을 새로 썼다. 라티니니는 1956년 멜버른올림픽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까지 금 9, 은 5, 동메달 4개 등 18개의 메달을 따냈는데 이를 펠프스가 48년 만에 넘어선 것. 펠프스는 이번 대회에서 7개 종목에 출전한다. 지난 29일 개인혼영 400m에서 4위에 머물며 황제의 아성이 흔들렸지만, 이미 이번 대회 3개의 메달을 수확했고 앞으로 접영 100m와 개인혼영 200m, 혼계영 400m를 남겨둬 최다 메달 기록을 21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아프간 두번째 메달 도전’ 태권도 니크파이… ‘카타르 첫 女 출전’ 사격 알하마드

    올림픽 메달은 가문의 영광을 넘어 조국의 영광이기도 하다. 특히 탈레반 정권 축출 후 쑥대밭이 된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메달리스트 로훌라 니크파이(25·태권도 58㎏급)와 이슬람국가인 카타르 사상 첫 여성 기수로 선정된 사격선수 바히야 알 하마드(19)에게는 14일 앞으로 다가온 런던올림픽 개막이 동포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좋은 기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후안 안토니오 라모스(스페인)를 누르고 동메달을 땄던 니크파이는 12일 AFP통신 인터뷰에서 “런던에서 다시 한 번 메달을 따 전쟁의 상흔으로 신음하는 조국에 평화를 안기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4년 전 그가 딴 메달은 아프가니스탄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래 72년 만에 얻어낸 첫 메달이었다. 동메달을 따기 전까지 최고의 성적은 1964년 도쿄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의 무함마드 이브라히미가 기록한 5위였다. 어릴 때부터 리샤오룽 영화에 심취한 니크파이는 10살 때 형을 따라 태권도장에 가면서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인 사범 민신학씨는 전쟁과 테러 위협, 선수 부족 등 악조건을 극복하고 니크파이를 메달리스트로 키워냈다. 그는 “아프간 역사상 누구도 메달을 따지 못했기에 정말 행복했다.”면서 “30여년간 전쟁으로 신음했던 조국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메달이었다.”고 돌아봤다. 이번 올림픽에 처음으로 여자 선수를 출전시키는 카타르는 개막식 기수로도 여성을 내세웠다. 카타르 선수 13명을 대표해 개막식에서 국기를 들고 입장하게 된 알 하마드는 지난해 아랍게임 소총 부문 2관왕을 차지하고 지난 3월 아랍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이번 대회에는 와일드카드를 받아 10m 공기소총에 출전한다. 알 하마드는 “기수로 선발돼 기쁘고 떨린다. 모든 카타르 여성이 이룬 역사적인 일”이라며 “큰 영광을 안은 만큼 올림픽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말고도 누르 알 말키(육상), 나다 아크라지(수영), 아야 마지디(탁구) 등 여자선수 4명이 출전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日열도가 들썩… 고교축구선수권 결승전 가보니

    日열도가 들썩… 고교축구선수권 결승전 가보니

    고교 축구 결승에 4만 관중이 몰렸다. 물론 국내 얘기가 아니다. 1월의 둘째주 월요일인 9일은 성인의 날로 일본인들은 사흘 연휴의 끝을 즐긴다. 특히 이날은 수많은 고교 축구대회 가운데 가장 명성이 높은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다. 이날 아침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었던 도쿄 국립경기장은 가족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등록선수 ‘89만’… ‘2만’ 한국과 대조 겨울답지 않은 영상 8도의 날씨 덕에 5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 좌석은 오후 1시가 되자 빈곳을 찾기 힘들었다. 공식 집계된 관중은 4만 3884명. 국가대표팀 경기도 아니고 아마추어 고교대회에 관중이 몰리는 모습은 부럽기만 했다. 4174여개의 고교 축구팀들이 지역예선을 거친 뒤 48개 본선 진출 팀이 지난달 30일부터 피말리는 혈전을 벌였다. 지바현 후나바시 시립고와 도쿄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미에현 요카이치 중앙공업고가 이날 결승에서 맞붙었다. 응원 열기는 대단했다. 치어리더들이 나왔고 브라스밴드, 응원도구가 동원돼 연고전을 연상케 하는 뜨거운 응원전을 벌였다. 흰색 유니폼의 요카이치 중앙공업고 응원단은 영화 ‘로키’의 주제 음악을, 푸른색 유니폼의 후나바시 시립고는 모교의 응원가로 맞섰다. ●결승전 유료입장도 3만 7000여명 국내의 이런 대회라면 공짜 손님이 다수겠지만 이 경기의 성인 입장권값은 3000엔(약 4만 5000원)인데도 유료 관중이 3만 7000명이나 들었다. 안내하던 일본축구협회 관계자는 등록된 선수만 89만명을 넘는다고 했다. 국내 고교축구는 137개팀에 등록된 선수가 2만 6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2009년부터 열리고 있는 대교 초중고리그의 왕중왕전 관중이 고작 3000여명이니 그 격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본에서 고교축구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국민성에 기인한다.”며 “일본인들은 프로보다 아마추어의 순수한 분위기를 더 좋아하고 선수들이 경기를 하며 느끼는 꿈과 투혼을 공유하려는 경향이 짙다.”고 풀이했다. 현지 방송과 신문들이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물론 스폰서들의 후원도 부러운 대목이다. 경기장 안에서 후지제록스, 코카콜라, 퓨마 등의 광고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광고·홍보·스폰서 프로경기 못지않아 유명 축구선수를 홍보대사(마스코트)로 위촉해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데 이번 대회에는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샬케04에서 활약하는 우치다 아스토(24)가 주인공이었다. 신문과 팸플릿, 경기장에 그의 사진이 도배됐다. 외모가 뛰어난 여고생을 뽑아 대회 홍보를 맡기는 방송사도 있었다. 지역 예선은 지역 방송이, 준결승부터는 니혼TV가 생중계했다. 이날 결승 시청률은 국내 K리그 시청률의 곱절인 6%로 낮 시간대 시청률치곤 높은 편이다. 후나바시 시립고가 연장 후반 10분에 터진 극적인 골로 2-1로 승리,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승팀에 주어지는 건 트로피밖에 없다. 학교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순수함을 높이 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우치다를 비롯해 히라야마, 나가모토, 하세베, 오쿠보 등을 배출한 자부심이 곁들여진다. 특혜라면 베스트 멤버로 11~18명을 뽑아 스위스나 독일 등으로 연수 보내는 정도다. 대한축구협회 이원재 홍보국장은 “순수하게 명예를 걸고 나서는 경기에 박수를 보내는 관중이 많아지는 날이 우리에게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알리를 처음 쓰러뜨렸고 간암에 끝내 쓰러졌다

    미국의 레전드 복서 조 프레이저가 극복하지 못한 것이 결국 두 개로 늘어났다. 하나는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무하마드 알리(69)의 그림자, 다른 하나는 자신의 간암이다. 전 헤비급 챔피언인 프레이저가 8일 67세로 사망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알리에 가려 2인자 취급을 받았지만 프레이저 역시 걸출한 복서였다. 전성기의 그는 주먹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인파이팅한다고 해서 ‘스모킹 조’라고 불렸다. 전광석화 같은 레프트 훅을 앞세워 화끈한 복싱을 구사했다. 1944년 1월 12일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남쪽의 작은 도시인 보퍼트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농장의 흑백텔레비전에서 복싱을 보며 꿈을 키웠다. 아마추어 시절엔 맞수가 없었다. 1962년부터 2년간 단 한 번만 졌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왼쪽 엄지손가락 부상에도 금메달을 따내 미국을 열광케 했다. 1965년 프로로 전향한 뒤에도 엄청난 펀치 파워로 명성을 얻었다. 1970년 세계권투협회(WBA) 챔피언 지미 엘리스에게 TKO승을 따내며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고, 1973년 1월까지 29승 무패를 달렸다. 특히 1971년 미국 뉴욕의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알리와 벌인 ‘세기의 대결’은 그의 복싱 인생의 최정점이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경기 중 하나인 이 경기에서 프레이저는 알리에게 첫 패배를 안겼다. 초반 아웃복싱의 알리에게 밀린 프레이저는 중반부터 치고 나갔다. 프레이저는 15라운드 승부 끝에 판정승했다. 그러나 1973년 조지 포먼에게 KO패를 당하며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고 1974년 알리와의 두 번째 대결에서는 12라운드 판정패를 당했다. 1975년 10월 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챔피언 알리에 도전, 세 번째 맞대결했지만 무참히 패배했다. 15라운드에서 프레이저의 한쪽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부어 오르자 트레이너가 수건을 던져 경기를 포기했다. 프레이저는 트레이너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37전 32승 4패(27KO)의 화려한 전적을 남긴 프레이저에게 패배를 안긴 것은 포먼과 알리뿐이었다. 1976년 은퇴한 프레이저는 1981년 복귀를 시도했지만 한 경기만을 치른 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은퇴 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프레이저는 필라델피아에서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며 조용한 삶을 꾸렸다. 자신을 ‘엉클 톰’, ‘고릴라’라고 부르며 조롱한 알리에 대해 수십년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말년에는 “알리의 모든 행동을 용서한다.”고 했다. 지난달 간암 판정을 받은 프레이저는 필라델피아의 호스피스 시설에서 투병했다. 그의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팬들은 “내 간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알리도 “간암과의 싸움에서 꼭 이기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프레이저는 인생이라는 링 위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알리 눕혔던 ‘전설의 복서’ 조 프레이저 위독

    무하마드 알리와의 세기의 대결로 유명한 ‘전설의 복서’ 조 프레이저(67)가 간암으로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6일 프레이저의 매니저 레슬리 울프의 말을 인용, “프레이저가 간암 진단을 받고 미국 필라델피아의 호스피스 시설에서 요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1964년 도쿄올림픽 복싱 헤비급 금메달리스트인 프레이저는 프로 전향 후 알리와의 3번에 걸친 ‘세기의 대결’로 유명한 복서다. 1971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복권된 알리와 챔피언 프레이저의 첫 번째 대결이 벌어졌다.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아웃복서였고 프레이저는 저돌적인 레프트 훅이 일품인 인파이터였다. 이날 경기 15라운드에서 프레이저가 왼손 훅으로 알리를 다운시키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는 명장면이다. 알리는 곧 일어났지만 심판진 전원이 프레이저의 손을 들어줬다. 3번 열린 프레이저·알리의 대결에서 프레이저가 승리한 것은 첫 번째 경기가 유일했다. 그가 패한 상대는 알리와 조지 포먼뿐이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女배구, 21일 19년만에 남북전

    여자배구가 제16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9년 만에 남북한 대결을 펼친다. 한국은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대회 8강 라운드에서 2연승, 일본에 이어 F조 2위를 확정했다. E조에 편성된 북한은 지난 19일 이란을 3-0으로 따돌리고 조 3위에 올라 한국과 4강 길목에서 만나게 됐다. 준결승 진출 티켓이 걸린 남북한 경기는 21일 오후 10시 타이완국립대체육관에서 열린다. 여자배구에서 남북 대결이 이뤄지는 것은 1992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린 NHK배 대회 이후 19년 만이다. 역대 전적은 한국이 5승2패로 앞선다. 한국은 1963년 도쿄올림픽 예선전과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북한에 각각 0-3으로 완패했으나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부터 5연승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북한은 국제배구연맹(FIVB) 랭킹 포인트가 없어 최하위인 111위에 랭크됐다. 한국(14위)과 기량 차가 크다. 김형실 대표팀 감독은 “공격력이 우수한 한국과 수비가 좋은 북한의 경기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영화프리뷰] ‘코쿠리코의 언덕에서’

    [영화프리뷰] ‘코쿠리코의 언덕에서’

     1963년 일본 요코하마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하숙집 코쿠리코. 이곳 살림은 열여섯 여고생 우미의 몫이다. 우미는 선원으로 일하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그리며 매일 아침 안전을 기원하는 깃발을 올린다.  때는 도쿄올림픽이 열리기 딱 1년 전. 낡은 것을 모조리 새롭게 바꾸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우미가 다니는 고등학교 고위층도 낡은 동아리 건물을 철거하려 한다. 우미는 학생신문 편집장 슌과 함께 역사와 추억이 깃든 동아리 건물 보존 운동에 나선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슌은 우연히 우미의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보고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확신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 지브리의 신작 ‘코쿠리코의 언덕에서’(사진)가 오는 29일 개봉한다. 지브리 팬이라면 불안할 수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 고로가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  2006년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은 고로와 지브리 스튜디오 모두에게 악몽이었다. 하야오 감독이 시사회 도중 문을 박차고 나갔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지브리의 독재자 하야오는 또 한번 아들에게 기회를 줬다. 완벽주의자인 그가 단지 후계자를 찾지 못해서, 혹은 아들이기 때문에 연출을 맡겼을 리는 없을 터.  ‘코쿠리코의 언덕에서’는 지브리인 동시에 지브리가 아니다. 지브리 작품으로는 드물게 사람만 나오는 영화의 프러덕션 디자인과 그림은 일본 가정식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지브리의 최대 강점인 인물 표정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늘 지브리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소녀 캐릭터는 물론 동아리 건물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에서는 장인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기대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환경, 생명, 자연과의 공존 등 시공간을 뛰어넘는 거대 담론을 판타지 형식으로 풀어내는 ‘지브리스러움’에 익숙했던 한국 팬에게 영화의 주제의식은 당황스럽다. 굴곡진 1940~50년대를 관통했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전하며 우미와 슌으로 대표되는 일본 베이비붐 세대에게 희망을 품고 새롭게 출발하라고 격려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집단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화려하게 세계무대에 컴백했다. 일본의 중장년층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일 터. 4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에게 지브리가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우미와 슌 사이에 얽힌 ‘출생의 비밀’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너무 착한, 혹은 계몽적인 드라마에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브리답지 않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女도 男도 아닌 나…金으로 내 존재 증명한다

    女도 男도 아닌 나…金으로 내 존재 증명한다

    여성과 남성의 운동 능력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동일한 근육을 키우기 위해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운동을 해야 한다. 신체 내 지방조직이 평균 10% 정도 많기 때문이다. 또 같은 근육량을 갖췄다 해도 동일 부피의 근육에서 내는 힘의 차이(남 7.0㎏/㎤, 여 6.3㎏/㎤)가 존재한다. 근육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육을 지탱하는 뼈의 밀도, 뼈와 뼈를 연결하는 관절의 견고성,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 등이 여성보다 남성이 높다. 남녀 성대결이 펼쳐지는 스포츠가 흔치 않은 이유다. 육상에서는 이를 악용하다 뒤늦게 적발된 사례도 있다. 1938년 여자 높이뛰기 세계신기록(1m 70)을 작성한 도라 라트엔(독일)은 나치 정권이 아예 성(性)을 바꿨다. 남성이었지만 곱상한 외모 덕분에 여성으로 출전이 가능했던 것. 하지만 그는 헤르만 라트엔이라는 남성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들통나고 말았다. 1964년 도쿄올림픽 여자 400m 계주에서 금메달, 100m에서 동메달을 딴 에바 클로부코프스카(폴란드)는 1967년 염색체 검사를 통해 남자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애초에 남녀의 구분 자체가 불분명한 성의 경계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하는 선수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카스터 세메냐(20)가 그 주인공이다. 세메냐는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세메냐는 여자 800m에서 1분 55초 45의 기록으로 2위를 2초 이상 따돌리는 압도적인 레이스로 금메달을 움켜쥐었다. 경기는 흡사 남녀대결을 연상케 했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로 질주하는 세메냐의 주법 또한 완벽하게 남자다웠다. 특히 세메냐는 중저음의 굵은 남자 목소리로 우승소감을 밝혀 ‘성 정체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곧바로 조사단을 구성, 10개월 가까이 규명에 나섰다.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의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남아공 의회 스포츠-레크리에이션 위원회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IAAF를 제소하겠다고 밝혔고, 칼레마 모틀란테 부통령까지 직접 나서 “성 판별 검사는 비인간적인 처사”라며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세메냐는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수용했을 뿐이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세메냐는 지난해 7월 IAAF의 출전허가를 받았고, 유럽육상대회 여자 800m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지난달 3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IAAF 다이아몬드리그에서 8위에 그쳤지만, 세메냐는 여전히 오는 27일 개막하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의 강력한 우승후보다. 세메냐는 “대구 대회에서 챔피언 자리를 지켜내겠다.”면서 “2연패를 달성하고자 많이 노력했고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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