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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역사 인식의 준거는 1995년 8월15일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리들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한·일 관계를 가장 험악하게 만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지난 연말 의사당 부근인 도쿄 지요다구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난, 담화의 주역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로부터 1시간40분 동안 한일병탄 100년의 의미 및 평가, 양국 관계의 미래, 담화의 의의, 남북한 문제 등을 들었다. →한일병탄 100년의 해를 맞았다. 지난 100년간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지금보다 더 나은 한·일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1945년 일본은 패전을 선언했고, 한국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전후(戰後)에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 형식적으로는 식민지시대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역사적 전환의 의미가 크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의 바람직한 관계는. -긴 역사 속에서, 또한 이웃 나라로서 식민 36년을 포함해 깊은 반성을 전제로 지금부터 긴밀히 협력하고 신뢰관계를 쌓아 나가야만 한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공동체를 확립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당시 문화개방이 있었던 덕분에 서로 문화적인 체험이 가능하게 됐다. 친근감이나 신뢰감이 형성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깊이있게 협조해야 한다. →한·일 관계의 미래 100년을 위해서는. -미래는 열려 있다. 20세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이 반복됐지만 그런 전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에 유럽연합(EU), 미국이 각각 나름의 공동체를 구성했듯 아시아도 대응 차원에서 아시아대로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총리시절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더 이상 자기 나라만 잘 살면 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웃나라 없이는 자기 나라도 없다. 한국이 좋아지면 일본이 좋아지고, 일본이 좋아지면 한국이 좋아진다는 관계를 확실히 인식해야만 한다. 물론 역사, 독도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아직도 많지만 완전한 인식의 일치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역사인식의 한 획을 그은 무라야마 담화의 메시지는.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화,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자 사죄의 표명이다. 이 바탕 위에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서로 공생해 나아가자는 취지였다. 더 이상 절대로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역사관을 확실히 세우자는 의미에서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인 담화의 준수에 대한 평가는. -현 하토야마 총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도중에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든지,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의 사건도 일어났지만 기본 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철저히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일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담화를 둘러싼 일본 내의 비판적인 언동도 적지 않다. 지금도 무라야마 담화를 인정하지 않고, 옳지 않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언론, 출판자유의 나라인 만큼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본다. 부정적인 의견은 일본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8·30중의원) 선거를 보며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정권을 바꿀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일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라야마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총리의 새로운 담화의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 교수는 한일병합(무라야마 전 총리 표현) 100년을 맞아 이미 일본·한국, 일본·중국의 관계가 많이 바뀐 상태이므로 무라야마 담화에 새로운 비전을 더한 새 담화를 주장하고 있다. 좋은 의견이라고 본다. 하토야마 정권이 수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뭐라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토야마 총리를 취임 이후 만난 적도 없어서다. 덧붙인다면 한일병합조약은 역사적 배경으로 미뤄 ‘부당한 조약이다.’라는 사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일병탄 100년을 짚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일본의 이웃나라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6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일·북 간의 국교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어떤 형태로든 국교는 정상화돼야 한다. 납치문제나 핵문제 등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안들도 남아 있기는 하다. 다행히 6자회담이 있기 때문에 회담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과 북한의 국교가 체결되면 한반도의 통일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성의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병합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북한 간에도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 -한국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병합100주년을 맞아 관계전환에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실현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간의 대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 모두가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대중 대통령 재임당시 한국을 방문해 독립기념관을 찾았던 적이 있다. 한국인을 조그만 상자 안에 꿇어 앉히고 총으로 위협하는 모습의 밀랍인형들을 봤다. 일본군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역사적 사실이므로 추호도 부정할 수가 없다. 또 보여줘야만 한다. 과거의 반성과 사죄가 필요한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이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서로 문화를 공유했으면 한다. 이웃나라, 형제와 같은 나라인 만큼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이해해 나가길 희망한다. 양국의 발전을 위해, 미래를 위해서다. 친구로서 만나고 서로 인정하는 관계를 꼭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이와 함께 젊은이들이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기를 바란다. 글 사진 hkpark@seoul.co.kr ■ 무라야마 담화(1995년 8월15일) 요약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줬다. 나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친다.” ■ 근황은 근황은 아침 6시 일어나 체조·걷기 가끔 한국 역사드라마 즐겨 두툼한 외투 차림에 중절모를 쓴 무라야마 전 총리는 평범한 노신사였다. 중절모를 벗고 앉았을 때에야 호텔 직원도 알아본 듯했다. 8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눈을 덮을 정도의 짙은 눈썹은 여전했다. 인터뷰 내내 말투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건강의 비결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난하면 머리를 써야 하고, 손발을 써야 한다. 호사스러운 음식은 먹지 않지만 하루 세끼는 꼭 챙겨 먹는다.”고 덧붙였다. 또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걷고, 체조를 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차는 자전거다.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며 웃었다. 가끔씩 한국의 역사드라마를 보고 있다. “때때로 강연을 다니지만 시민으로서 조용히 살고 있다.”면서 “그러나 평화헌법 제9조(전쟁 포기·군사력 보유금지)를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고향인 규슈현 오이타에 생활하면서 한 달에 한두 차례 도쿄 요치야에 위치한 ‘일본·조선(북한) 국교촉진국민협회’에 들러 협회 사무국장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만나고 있다. ●약력 ▲86세, 규슈 오이타 출생 ▲1946년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 ▲1972년 중의원 첫 당선(사회당)~이후 8선 ▲1993년 사회당 위원장 ▲1994년 6월~1996년 1월 제81대 총리 ▲1996년 사민당 당수 ▲2000년 정계 은퇴 ▲현 사민당 명예당수
  • [메디컬 팁]

    IBC ‘올해의 의학자’로 선정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김영주 교수가 최근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에 의해 ‘올해의 의학자’로 선정됐다. 이대목동병원 모자센터를 운영 중인 김 교수는 국내 최초로 ‘르봐이예 분만’을 도입하는 등 국민건강 증진과 연구 실적을 인정받았다고 병원측은 밝혔다. 면역력 강화 기능식품 출시 ㈜KCF코리아는 표고버섯 균사체를 이용한 면역력 강화 기능식품 ‘AHCC’를 출시했다. ‘AHCC’는 표고버섯 균사체를 배양한 생체조절 물질로, 일본 도쿄대 연구진이 암환자의 면역력과 항암치료 효과를 높이는 보완요법으로 개발, 식약청으로부터 건강기능식품으로는 처음으로 면역기능을 인정받았다. 회사측은 “AHCC는 성인과 어린이, 노약자가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의 080-425-1129. 면역과민반응 개선제 출시 바이오신약 기업인 바이로메드는 면역 과민반응을 개선하는 건강기능식품 ‘알렉스’와 아토피용 보습제 ‘아토라떼’를 최근 출시했다. 회사측은 “알렉스는 다래 추출물을 이용한 천연제품으로, 혈중 면역글로블린E와 염증 물질의 생성을 억제, 알레르기 질환을 개선하는 효과로 식약청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알렉스와 아토라떼는 이 회사 온라인 쇼핑몰인 큐어몰(www.curemall.co.kr)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문의(02)2102-7200. 차기 아·태성의학 회장 선출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안태영 교수가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2차 아시아·태평양성의학회(APSSM) 국제 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011년 11월부터 2년. 외과 등 기금 전임의 신설 서울대병원은 새해부터 외부 펀드나 특별기금을 활용해 외과와 흉부외과, 재활의학과 등에 모두 4명의 ‘기금전임의’를 두기로 했다. 병원측은 의료진이 부족한 이들 진료과에 별도의 기금전임의를 둠으로써 의료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이와 함께 기존 임상전임의(유급)와 연수전임의(무급) 외에 연구전임의도 신설했다.
  •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완상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서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부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방한한다면 방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어야 한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일왕의 방안을 전제로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두 원로의 인터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강병철기자│ →한국(일본)에게 일본(한국)은 무엇인가. 한완상 전 부총리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수탈·차별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데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서구 열강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다.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일본과 한국은 무척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 식민지화했다. 반성해야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봐도 한국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 100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전 부총리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졌다. 늑약의 1조는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이다. 519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쳤다.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도 강요했다. 문화와 민족혼마저 빼앗는 통치를 시도했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100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와다 명예교수 단적인 예로 조선은 식민지였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말려들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죄다. 1945년 한국은 독립을 맞았지만 일본은 침략과 식민 지배에 사과하지 않았다. 역사 자체를 내동댕이쳤다.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역사를 잊고 살아오게 됐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이 현재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전 부총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 충격을 줬다. 씻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다. 백색(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황색(아시아)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사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됐다. 해방됐을 때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민담을 들었다. 백색·황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한국인의 성격 속에 내면화된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병합(와다 명예교수의 표현대로)한 사실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잊으려 했고, 실제 잊어버렸다. 그런 탓에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리고 싶어 한다. 한국을 병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의 생활 속에서는 별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은 분명하게 한국인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너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두 부류가 위안부와 강제 노동자다. 합리적으로 털고 가야 한다. 경제적 보상 이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시인 받아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직한 미래는 가능한가. 한 전 부총리 가능하다. 19~20세기는 서세(西勢)의시대였다. 19세기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 20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였다.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다. 동세의 기운을 정보기술(IT) 혁명이 활성화시키고 있다. 줄씨알(네티즌)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연대 강화도 쉬워졌다. 동세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과 한국, 중국까지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일간 평화 강화에 반하는 열악한 조건의 존재가 냉전벨트다.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해체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에 대한 대국적인 지원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쉬워질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정부가 함께 한반도 냉전 체제를 확실히 깨 21세기에 세계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는 선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다 명예교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 한국은 자국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지역적인 공동 번영, 공생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서도 한국은 중심에 서서 추진자, 대안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본도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는 게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국으로 대륙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지리적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감하게 말하면 한국과의 협력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일의 경쟁과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 전 부총리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 기술(CT) 분야는 일본과 격차가 없다. 서로 협력하며 경쟁할 수 있다. 협력 없는 경쟁은 금물이다. 21세기는 협력을 통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서로 먹고 먹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엇비슷한 수준의 IT, 동물 복제 등에서 강한 BT, 특히 한류로 대변되는 CT는 일본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제조업, 조선, 자동차 분야 등도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와다 명예교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이끌고 격려해야 한다. 뒤처진 부분은 서로 배우면서 따라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안 속에 경쟁, 협력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은 경쟁, 어떤 것은 협력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할 게 아니다. 조화시키며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와다 명예교수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도록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인내심을 갖고 말이다. 한국의 노력 덕에 일본에도 여러 변화가 가능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흘린 땀에 비해 일본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점도 알고 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만이 있는 줄도 잘 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놓아두고 미래로 나갈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더더욱 과거 문제를 인식하려고 힘써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부당한 조치들을, 최소한 독일이 연합국에 보여줬던 수준으로 시인했으면 좋겠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 일본이 왜 못하는지 안타깝다. 일본 지식인들의 말처럼 늘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좇는다면 적어도 독일 수준으로는 가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양국에는 이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한국 쪽에도 식민지는 한국을 근대화시킨 시기라고 긍정하는 일부 지식인·정치인들이 있다. 일본에도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우파들이 있다. 친일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의 냉전적 연대와 연계를 어떻게 성숙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것을 위해 한·일간 여러 차원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와다 명예교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과 조선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담화가 나온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병합을 강제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다. 담화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적잖게 훼손됐다. 그러나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역사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다. 병합은 한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에 의해 강제됐다. 따라서 ‘하토야마 담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병합 100년은 상징적으로 아주 좋은 계기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전 부총리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가 이룬 성취, 즉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문제는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 등 개인 중심적인 복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분단의 아픔, 억울함에 대해 체계화되고 설득력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지식을 획득하는 속도나 양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인터넷 시대에 새로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다 명예교수 젊은이들이 옛일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을 잊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연구,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역사란 건망증이 심하다. 방치해 두면 잊혀진다. 따라서 자국만이 아닌 넓은 범위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해 건망증을 방지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 젊은이들은 조상들이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0여년 전 중국 창춘(長春)에서 겪은 일인데 일본 청년이 위화관에서 인체실험인 마루타 전시를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다. 자기 조상들의 만행을 믿지 못해서다. 일본 교육이 문제다.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반인류 범죄인데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문받는 모형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양국 청년들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서로 용서해 주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충격)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도 앞장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한 전 부총리 일왕 초청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북·일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공동체에도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일왕의 가계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는다.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특히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했으면 한다. 대학생들과 자유로운 간담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일왕 초청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와다 명예교수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날 당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춘 휘호로 평화를 염원하는 글자를 썼었다. 마음이 깃든 휘호라고 본다. 천황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단 한국 방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적이어야 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다. 2010년은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기회의 해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병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 전 부총리 하토야마 정권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려면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방북 의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섰으면 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하토야마 정권의 노력은 긴요하다. 역사적인 성취를 하려면 대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부분이 식민지 청산문제다. 과감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보다 훨씬 평가받는 북·일 기본조약이 나오고, 하토야마 정권이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축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의 비핵화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는 실현돼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100년이 된 이때 피해를 입은 국가의 반쪽과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를 절차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포기와 국교 정상화 추진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측면에서 절호의 타이밍이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한 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다. 경제 원조를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교정상화 뒤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면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본다.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며 머지않은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전제는 모든 과정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북·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본이 6자회담 밖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권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납치문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한 前부총리는 1980년대 초까지 저항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도록 금서였던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사회과학자이면서 교육, 정치, 종교계 등을 넘나들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데다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등 2대 정권에서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한성대 등 3개 대학의 총장도 지냈다. 최근에는 언론, 논객, 시민과 대화한 내용을 묶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MB(이명박 대통령)까지 돌아보는 대담집 ‘우아한 패배’를 출간했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다.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 66년부터 도쿄대 강단에 섰다. 소련사와 북한 현대사가 전공이다. 1970~80년대 일본 지식인으로서 민주화 운동 때문에 투옥된 김대중·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씨 사형 선고와 관련, 교수 신분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만간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875~1904년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상·하권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틈나는 대로 대장금, 태왕사신기,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혁명 1991’, ‘역사로서 사회주의’, ‘조선전쟁’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 [한·일 100년 대기획] (1) 양국 석학에 듣는다

    [한·일 100년 대기획] (1) 양국 석학에 듣는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기자│2010년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광주민주운동 30주년,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이다. 특히 경인년은 한일병탄 100년의 해다. 서울신문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엇갈려 한 세기를 보낸 두 나라가 과거의 상흔을 씻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 가는 길을 닦는 연중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회로 두 나라의 원로인 한완상(왼쪽)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상 대담 형식으로 양국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점검한다.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경인년은 두 나라가 100년 전을 되돌아보고,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 해로 역사를 묻어두고서 바람직한 미래를 열기란 쉽지 않다.”면서 “올바른 역사적 성찰을 통한 한·일 간 성숙한 미래를 희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 부총리는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인 만큼 한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이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변화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전향적인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됐는가 등을 포함한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일왕의 방한 문제와 관련해 한 전 부총리는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며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한다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아키히토 천황(와다 교수의 표현)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로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hkpark@seoul.co.kr
  • 경전이 아닌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이야기

    경전이 아닌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이야기

    인류 출판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일까. 1930여개 언어로 출간됐으니 지구상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됐다고 볼 수 있다. 한 해 평균 4000만권이 팔려나가는 초대형 베스트셀러이자, 수 천년 동안 꾸준히 출간되는 최장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바로 성경(聖經)이다. ●서구의 역사·정치·문학 등 이해위한 필독서 그중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근본 경전이 구약성서다. 대략적으로 유대교도가 1700만명, 그리스도교도가 15억명, 이슬람교도가 10억명 정도 되니 세계 인구의 40%가 구약 성서의 가르침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적 믿음 아래 당연히 읽어야하는 경전인 셈이다. 허나 성경(聖經)을 기독교의 경전으로만 알고 외면하거나, 경전 자체만으로 읽는 것은 그 함의(含意)의 절반 이상을 놓치는 셈이다. 서구의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이뤄져있다. 그 중 헤브라이즘의 고갱이가 바로 구약성서에 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인류에 전해져온 모든 동·서 고전(古典)이 그러하듯 성경 역시 오늘의 문제, 내일의 비전을 연구, 탐구하도록 하는 역할을 떠맡고 있다. 이는 종교적 믿음을 떠나 서구의 역사, 정치, 윤리, 예술, 문학, 생활 습속 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구약성서를 읽어야함을 의미한다. ‘하룻밤에 읽는 구약성서’(이쿠다 사토시 지음, 오근영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는 신학이나 종교학의 관점이 아닌 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당대 역사 배경 영웅들 중심으로 풀어내 구약성서는 5권의 율법서, 12권의 역사서, 5권의 시가(詩歌), 5권의 대예언서, 12권의 소예언서 등 39권으로 구성돼있다. 이 책은 당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인물들과 영웅들을 중심으로 구약성서를 풀어나간다. 히브리어 성서는 이를 5권의 율법서(토라·모세 5경), 8권의 예언서(네비임), 시편, 욥기 등 기타 11권(케스빔) 등 24권으로 정리했다. 이 책의 미덕은 사람 냄새 나는 성서로 이해를 높였다는 점이다. 성서 속 짧은 한 두 줄로만 남은 박제화된 인물이 아닌 풍성한 스토리가 함께 설명된다. 각 장 끄트머리에는 ‘성서메모’를 남겨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재미있는 성서 읽기 상식이 덧붙여졌다. 복잡한 가계를 정리하는 계보도, 사건을 정리한 도표, 역사적 사건을 생생히 보여주는 성화 등이 이해를 돕는다. ●풍성한 스토리·성화·도표로 이해 도와 또한 구약 시대의 역사적, 정치적, 지리적 배경 등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성경이 인문학 서적의 반열에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저자 이쿠다 사토시 역시 종교인의 입장이 아닌, 과학자로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일본 도쿄대 의대를 졸업하고, 분자생물학을 연구한 의학박사로서 ‘유전자 기술과 클론’, ‘암과 DNA’ 등 유전자 연구 분야에 주요 저서를 갖고 있는 과학자다. ‘구약성서’와 함께 같은 저자가 쓴 ‘하룻밤에 읽는 신약성서’도 나왔다. 막달라 마리아가 전직 매춘부로 잘못 해석됐음을 지적하며 막달라 마리아를 명예회복시켜주고, 배신자로 악명높은 가리옷 유다를 새롭게 바라본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는, 유다의 배신 행위가 있어서 가능하다는 역설적 해석이다. 두 책 모두 제목과 달리 하룻밤에 읽어버리기에는 약간 버겁거나 아깝다. 꼭꼭 씹어서 읽을만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새 월화극 ‘공부의 신’, 캐스팅·제목 확정

    새 월화극 ‘공부의 신’, 캐스팅·제목 확정

    김수로, 배두나, 오윤아, 유승호 등이 캐스팅돼 화제를 모은 KBS 새 월화드라마의 제목이 ‘공부의 신’으로 확정됐다. 제작사인 드라마 하우스 측은 14일 “드라마의 원작만화인 ‘드래곤 사쿠라’의 작가와 장고를 거듭한 끝에 제목에 대한 협의를 마치고 ‘공부의 신’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전했다. 이 드라마는 삼류 고등학교인 병문고 학생들이 최고 명문대 특별반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담을 예정이다. ‘공부의 신’은 연기력을 겸비한 스타들이 총출동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천하대 합격을 위한 공부 테크닉을 전수하는 주인공 강석호 역은 안방극장에 첫 도전하는 김수로가, 정의파 영어 선생 한수정 역은 배두나가, 젊은 이사장 장마리 역은 오윤아가 맡았다. 명문대 특별 입시반에 들어가게 되는 병문고 오합지졸 학생 역을 맡은 스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국민 남동생’ 유승호가 반항아 황백현 역을 맡아 안방극장 주역으로 나서며 영화 ‘괴물’의 고아성이 김풀잎 역을, 티아라의 지연이 나현정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여기에 변희봉, 이병준, 심형탁과 개그맨 박휘순 그리고 아나운서 출신 연기자 임성민 등 명품조연이 가세한 ‘공부의 신’은 ‘천하무적 이평강’ 후속으로 내년 1월 4일 첫 방송된다. 한편 일본 미타 노리후사의 만화 ‘드래곤 사쿠라’는 일본에서 2005년 TBS 드라마로 제작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 도쿄대학 입시 수험생이 12%나 증가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만화 ‘입시 최강전설: 꼴찌, 동경대가다!’로 소개돼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동아시아 적조協 부산에 유치

    국립수산과학원은 내년에 발족할 예정인 동아시아 적조협의회 사무국을 부산 기장군 수산과학원에 유치했다고 26일 밝혔다.동아시아 적조협의회는 여름철 자주 발생하는 적조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04년 11월 제주도에서 한국, 중국, 일본 적조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적조전문가 협의체다. 올해는 지난 21~22일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개최돼 효율적인 적조문제 해결을 위해 사무국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다.초대 사무총장에는 수산과학원 전 해양환경부장인 김학균 박사가 선출됐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미디어환경’ 한·일 학술심포지엄

    동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소장 김무곤 신문방송학과교수)는 26일 교내 사회과학관에서 한국미디어경영학회와 함께 ‘변화하는 미디어환경과 텔레비전 시청자’를 주제로 한·일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일본 도쿄대 하시모토 요시아키 교수가 ‘일본의 디지털 네이티브는 텔레비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발표했다.
  • 서울·안산 등 4개도시 돔구장 건설 ‘잰걸음’

    서울·안산 등 4개도시 돔구장 건설 ‘잰걸음’

    프로야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서울과 안산, 대구, 광주 등 4개 도시가 추진하고 있는 돔구장 건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야구 인기를 등에 업고 돔구장을 지어 스포츠 산업 육성은 물론 생산유발 효과 등 지역경제 활성화도 꾀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3000억~40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보니 수익 창출 방안 마련과 특혜 논란, 주민 반대 등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돔구장 건설에 가장 먼저 불을 댕긴 것은 경기 안산시다. 지난 2007년 현대컨소시엄과 돔구장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지만 세계적인 금융 위기 등으로 사업을 중단했다가 올 초 다시 불을 지폈다. 한국야구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이 큰 힘이 됐다. 안산시는 4200억원을 들여 당초 시청사 부지였던 단원구 초지동 일대 20만㎡에 잠실야구장(3만석)보다 큰 3만 2000석 규모의 돔구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다음달 중 사업자 선정을 마치고, 지방선거가 끝나는 내년 7월 초 착공해 2012년 완공 예정이다. 박주원 안산시장은 “반월공단으로 각인된 도시이미지를 새롭게 바꾸고 녹색성장 및 스포츠 산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돔구장 건설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4월 구로구 고척동 돔구장 기공식을 마쳤다. 당초 지붕의 절반만 덮는 하프돔에서 완전히 덮는 방식으로 설계변경 중이다. 좌석규모는 2만 2258석으로 내년 1월 공사에 들어가 2011년 12월 완공할 계획이다. 대구와 광주시는 지난달 29일 포스코건설과 돔구장 건설에 관한 MOU를 교환했다. 광주는 2만 5000~3만석, 대구는 3만석 규모로 각각 2013년과 2014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돔구장은 시가 건설비용 전액을 부담하지만 나머지 지자체는 민자를 끌어들이려고 사업자에게 개발권 등의 특혜를 줘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안산시의 경우 시는 부지만 제공하고 건립비용은 사업자가 주상복합단지 분양 수익금 등으로 충당한다. 광주·대구시도 포스코 건설이 돔구장을 건립해 시에 기부채납하고 제공받은 부지에 주택개발, 워터파크 등 스포츠 타운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추진한다. 완공 후 수지타산을 걱정하는 지적도 많다. 면밀한 타당성 조사 없이 돔구장을 건설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안산시가 지난 3일 개최한 돔구장 건설 관련 세미나에서 일본 도쿄대 가와구치 교수는 “일본 돔구장은 전용구장만으로 경영이 성립되지 않아 콘서트 등의 관객을 모으는 이벤트를 유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돔구장 운영비는 연간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지어진 오사카돔은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이벤트가 없을 때도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점포, 식당, 테마파크 등을 갖추고 있다. 1988년 준공한 도쿄돔은 7년 만에 총 사업비에 해당하는 600억엔을 회수했다. 서울과 안산시 등도 대형 공연이 가능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꾸민다는 방침이다. 정부도 경기장 내에 쇼핑몰, 게임파크, 호텔 등 다양한 수익시설을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어서 이들 4개 도시 돔구장 건설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존 시설과 겹치는 부문이 있어 수익시설이 제대로 운영될지 의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열린세상] 대학발전기금은 사회의 핵심 자본/신방웅 한양대 석좌교수·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열린세상] 대학발전기금은 사회의 핵심 자본/신방웅 한양대 석좌교수·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며칠 전 전시회 초청장을 한 장 받았다. 날마다 여러 곳에서 보내온 우편물이 워낙 많이 쌓이다 보니 대부분 열어 보지 않는다. 요즘처럼 업무에 바쁜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편지는 남달랐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이 보냈고, 그분의 소식이 한동안 뜸했던 터라 궁금증이 더했다. 재빨리 봉투를 뜯었다. 평생 대학교육에 헌신하고 정년을 맞은 지 2년이 지난 한양여대 이진성 전 학장이 정년 이후 공예작품을 만들어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전시회를 통해 마련한 판매액 전액을 봉직했던 대학에 발전기금으로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그분답게 멋진 일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한 나라의 발전에서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 답은 교육이다. 교육의 중심에 대학이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대학을 만들려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재원(財源)이다. 대학총장을 지낸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대학 총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첫째도 발전기금 조성, 둘째도 발전기금 조성이었다. 대학 입학 학생 수가 줄어드는 추세이니, 대학의 재원을 학생에게 많이 의존하는 대학일수록 재정이 열악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발전기금은 대학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이 내는 돈만으로는 대학운영이 어렵고, 발전은 더욱 요원한 실정이다. 이러한 대학의 재무구조를 건전화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대학발전기금이다. 대학 구성원이나 동문의 기부나 외부인의 기증이 없다면, 교수들은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드는 연구를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연구가 없는 대학을 상상해 보라. 그런 대학은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가장 좋은 대학으로 흔히들 미국의 하버드대학을 꼽는다. 그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넉넉한 재원 확보가 가장 돋보인다. 하버드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학발전기금을 확보하고 있다. 2007년 통계를 보니 33조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이 돈을 관리하는 부서의 직원 수가 250명에 이른다고 한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지난달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에서 하버드대는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은 10위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학의 발전기금은 미국 명문대학의 1~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발전기금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지난해 전국 190개 사립대학의 기부금 모금액은 총 4850억원인데 이중 상위 5%에 해당하는 11개 대학이 절반 이상을 모금했다. 대학의 발전은 대학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와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어진다. 필자는 그중에서 기업의 도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도요타 자동차·도쿄전력·후지필름 등 일본의 15개 대기업이 120억엔의 ‘도쿄대 신탁기금’을 만들어 도쿄대의 국외 유학생 장학금을 지원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기부한 250억엔의 기금 운용수익으로 매년 230명의 국외 유학생을 유치하고 있다. 대학 기부금을 사회 환원이자 새로운 사업을 위한 투자로 여기는 기업 문화가 정착될 때,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에서 손꼽는 우수 대학이 탄생할 것이며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대학의 활동은 사회를 발전시킨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과 정보를 창출하여 사회에 이익과 번영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낀다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대학발전기금은 그 사회의 핵심 자본이다. 대학발전기금은 대학이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연구시설을 마련하여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커다란 힘을 준다. 대학이 좋은 재정 상태를 유지해야 교육의 참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신방웅 한양대 석좌교수·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 “AFC챔피언만 남았다… 7일 아시아 최강 입증”

    │도쿄 조은지특파원│ 프로축구 포항이 7일 K-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와 ‘도쿄대첩’을 벌인다. 이기는 팀은 새달 9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개막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하는 영광도 얻는다. 7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포항이 승리하면 그토록 고대하던 ‘아시아 챔피언’에 오른다. ‘트레블(챔피언스리그·정규리그·컵대회 3관왕)’을 시즌 목표로 내걸었던 포항은 챔스리그에 유독 욕심을 냈다. K-리그(07년), FA컵(08년), 피스컵(09년) 등 국내 대회 우승을 맛봤지만 AFC챔스리그와는 좀처럼 인연이 없었다. AFC챔스리그의 전신인 아시안 클럽선수권대회에서 1998년과 99년 2연패를 차지한 게 끝. 올 시즌 포항은 AFC챔스리그 조별리그에서 6경기 7골로 잠잠(?)했지만 16강 토너먼트부터 득점포가 불을 뿜었다. 5경기 15골로 ‘용광로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여세를 몰아 ‘파리아스 매직’을 결승까지 가져가겠다는 각오. 6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세르히우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에 부임한 이후 국내 모든 타이틀을 수집했다. 남은 것은 AFC챔피언 타이틀뿐”이라면서 “결승에서 우리가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알 이티하드는 2004년 준결승에서 전북, 결승에서 성남을 연파했고 이듬해 4강에서 부산을 제압한 ‘K-리그 킬러’. 파리아스 감독은 “알 이티하드가 K-리그 팀을 중요한 순간마다 꺾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도 중동팀을 여러 차례 꺾으며 결승까지 왔다.”고 큰소리쳤다. ‘전통의 명가’ 알 이티하드도 2004~05년 거푸 챔피언에 올랐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나섰다. 가브리엘 칼데론(아르헨티나) 감독은 “우리는 클럽과 팬들보다 사우디를 위해 싸운다. 포항도 강하지만 결승을 넘어 클럽월드컵까지 진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결승전에는 원정응원을 온 500여명의 포항팬과 유학생, 재일동포 등 현지응원단 1000여명이 찾아 스틸야드 못지않은 응원 열기를 뿜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포항이 ‘K-리그 킬러’ 알 이티하드에 통쾌한 복수를 할지 주목된다. zone4@seoul.co.kr
  • 정상들의 부전자전?… 엇갈린 명암

    세계 유력 국가 정상의 아들들이 일제히 뉴스메이커로 등장했다. 프랑스 대통령의 아들은 체면을 구겼고, 일본 총리의 아들은 성가를 높였다. 이탈리아 총리의 아들은 말썽많은 아버지를 적극 옹호했다. 가만히 보면 그 아버지의 그 아들들이다. ■ 정치 쓴맛 - 佛대통령 차남 EPAD의장직 포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차남 장(23)은 22일 파리 외곽 상업지구인 라데팡스 개발위원회(EPAD)의 후임 의장직을 결국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소르본대 학생인 그는 수십억유로의 자금을 주무르는 EPAD의 차기 의장에 선출될 것으로 알려진 이후 야당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파리 외곽 오드센 도의회의 여당 대표로도 활동 중인 장은 이날 떨떠름한 표정으로 “의구심으로 얼룩진 승리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은 20대 초반에 정계에 입문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약관의 나이로 정치에 발을 들여놨다. 그는 아버지의 강성 정치스타일을 물려받은 듯 그동안 “나의 진로는 내가 개척하는 것”이라며 비판여론에 정면으로 맞서 왔다. 장은 이날 포기 결정에 앞서 아버지와 조율을 거쳤음을 숨기지 않으면서 “이는 프랑스의 대통령이 아닌 나의 아버지와 상의한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 정계 발판 - 日총리 장남, 러 교통난 비책 제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장남 기이치로(33)가 러시아 모스크바의 악명높은 교통난을 개선할 18가지 비책을 제시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3일 보도했다. 모스크바시는 그 방안을 높이 평가해 기이치로를 교통난 관련 전문가그룹에 참여토록 했다고 한다. 도쿄대 공학부에서 교통문제를 전공한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모스크바대에서 객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기이치로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에 흥미가 없지 않다.”고 말해 도쿄대 공학부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를 거쳐 39세에 정계에 들어선 아버지의 궤적을 밟으려 한다는 관측을 불렀다. ■ 구설무마 - 伊총리 장남 “부족함 없는 아버지” 이탈리아에서는 각종 비리와 성 추문에 휘말려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장남이 아버지 ‘변호’에 나섰다. 베를루스코니 총리 소유 회사 ‘메디아셋 SpA’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피에르 실비오(40)는 22일 CNN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바쁜 사람이었지만 늘 곁에 있어줬고 부족한 점은 없었다.”면서 “아버지는 배터리처럼 언제나 에너지가 넘친다.”고 자랑했다.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느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고 당당히 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이었다.”면서 정계 입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 줄 수 있어 보람”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 줄 수 있어 보람”

    │도쿄 박홍기특파원│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인 재일 한국인 진창현(80)씨의 삶을 담은 일본 고교의 영어교과서 읽기부교재 단행본이 이르면 다음달 출판된다. 진씨는 세계에서 감독 및 검사 없이 바이올린을 제작할 수 있는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 가운데 한명이다. ●어려움 딛고 세계 최고 오른 인생역정 진씨의 이야기는 지난해 4월 출판사 산유샤(三友社)의 고교 영어교과서 ‘코스모스(COSMOS) 영어Ⅱ’의 한 단원에서 9페이지에 걸쳐 ‘바이올린의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서 교과서에 실린 것도, 부교재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도 진씨가 처음이다. 부교재 역시 산유샤에서 만들고 있다. 부교재는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학생들에게 좀더 자세하게 전달, 학습할 수 있도록 제작한 보조 교과서다. 출판사 담당직원 가와구치 유는 “국적을 떠나 꿈과 희망 속에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진씨의 인생역정은 많은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면서 “진씨를 자세히 보여줄 수 없어 부독본(副讀本·읽기 부교재)을 내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르면 11월, 늦어도 12월에 나올 부교재는 48∼64페이지 분량이다. 산유샤가 지금껏 내놓은 영어 읽기 부교재의 인물은 헬렌 켈러, 테레사 수녀, 일본 여자마라토너 다카하시 나오코, 록밴드 비틀스뿐이다. 진씨는 이와 관련, “기쁘다.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자체가 보람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고생도 달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씨와 바이올린의 인연은 길고도 끈질기다. 결정적인 계기는 메이지대학 영문과 3학년 때다. 국적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 방황하고 있었다. 당시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장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의 ‘바이올린의 신비’라는 강연을 들었다. 이토카와 교수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 소리를 해명하는 것은 영원한 수수께끼다.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번뜩 떠올랐죠. 인간이 만들었는데….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현실의 벽은 높디 높았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바이올린 제작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때문에 진열된 바이올린을 보고, 바이올린 공장의 창문으로 훔쳐보며 혼자 바이올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뒤에도 명장의 바이올린을 보기 위해 무대 뒤로 가 연주가에게 사정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좋은 음, 모양을 얻기 위해 수십번, 수백번의 과정을 거쳤다. 진씨는 “표본이 없으니 맘대로 생각하고 분석했다.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독창성이다.”라고 회고했다. 진씨의 초기 바이올린 값은 당시 가장 싼 4500엔(약 5만 8500원)짜리 보다 낮은 3000엔이었다. 진씨의 진가는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국제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 결정적으로 인정받았다. 6개 부문 중 5개 부문서 금메달을 땄다. 콩쿠르 사상 최다 금메달 기록이다. ●1년에 5~6개 주문제작… 150만엔 호가 진씨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갔다. 지금도 가고 있다. 보통사람인 만큼 수백배 노력했다. 그때마다 하나의 영감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현재도 1년에 5~6개 정도의 바이올린을 주문 제작하고 있다. 바이올린 값은 150만엔을 호가한다. 정경화, 헨리크 셰링, 아이작 스턴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명연주자들이 고객이다. 진씨는 “영감이 떠오르는 한 손을 놓지 않을 각오”라며 웃었다. 글ㆍ사진 hkpark@seoul.co.kr ●진창현씨는 ▲1929년 경북 김천 출생 ▲43년 14세 때 일본에 옴 ▲55년 메이지대 졸업 ▲76년 ‘국제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 5개 부문서 금메달 ▲84년 미국 바이올린제작자협회로부터 무감사(無監査) 마스터 메이커 칭호 ▲98년 일본문화진흥회에서 국제예술문화상 수상 ▲2008년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
  • 기후·빈곤문제 석학들 한자리에

    서울대가 15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개교 63주년을 기념해 호암교수회관에서 ‘2009 세계대학총장 포럼’ 행사에 들어갔다.세계 7개 대학 총장이 참가해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대학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올해로 3회째다. 포럼에는 일본 도쿄대 마쓰모토 요이치로 부총장과 프랑스 파리13대학 장루 잘츠먼 총장,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주디 겐샤프트 총장, 독일 구텐베르크대 울리히 포어스터먼 부총장 등이 발제자로 나선다. 세계 각국의 대학총장들은 16일 토론결과를 종합해 기후변화, 빈곤문제 등 세계적 난제 해결에 대한 결의를 담은 ‘공동성명문’을 발표할 계획이다.행사에 참가한 대학 총장·부총장들은 미리 공개한 연설문을 통해 세계 공통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이 공익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인 주디 겐샤프트 사우스플로리다대 총장은 연설문에서 대학이 모범을 세우고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지속가능한 세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대학이 주거지역과 음식점, 의료·버스시스템 등 도시적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점에서 총장은 시장과 비슷하다.”면서 “사우스플로리다대는 의료시스템 개선을 통해 종이 처방전을 없애고 학내 셔틀버스를 바이오디젤 연료로 운행하면서 ‘녹색정책’의 사례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13대학 장루 잘츠먼 총장도 프랑스 정부의 정책인 ‘환경그르넬’ 활동에 적극 참여해 학내 에너지 소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후변화 등 인류가 당면한 환경위협 극복을 위해서 학문간 융합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마쓰모토 요이치로 일본 도쿄대 부총장은 “21세기는 지식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학문간 ‘통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울리히 포어스터먼 요하네스 오스트리아 구텐베르크대 부총장도 “대학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들이 활발한 교류를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면서 “우리 대학은 600여년간 축적한 기초학문 분야의 성과에 응용연구를 접목해 대학과 기업 양쪽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산학 협력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소개했다.총장들은 학생들이 빈곤 문제 등 세계적 의제를 당면한 문제로 느끼게 하기 위해 국제적 시야를 확보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유대근 오달란기자 dynamic@seoul.co.kr
  • 日하토야마 정권 이과계 내각

    日하토야마 정권 이과계 내각

    │도쿄 박홍기특파원│16일 출범하는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62) 내각에 ‘이과계 내각’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총리로 취임할 하토야마 대표를 포함, 관방장관·국가전략담당상 등 내각 중추에 이과계 출신이 포진한 까닭이다. 제2차대전 이후 최초의 ‘이과계 내각’이다. 때문에 논리적·합리적인 이미지가 강한 ‘이과계 두뇌’들의 국정운영과 정치적 판단에 한층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우애’, ‘미’ 등의 추상적인 용어를 자주 쓰지만 도쿄대 공학부 계수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는 경영공학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박사과정 때 연구한 ‘오퍼레이션즈 리서치’는 최소의 비용과 최단 시간을 투입, 수학적 논리를 써 최적의 해답을 구하는 ‘문제 해결학’이다. 1986년 정치 입문 때 밝힌 포부 역시 “과학자로서 정치를 과학화한다.”였다. 관방장관에 내정된 히라노 히로후미(60) 의원도 주오(中央)대 이공학부 출신이다. 정치 입문 전에는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에서 12년간 근무했다. 하토야마 정권의 ‘사령탑’인 국가전략담당상으로 확정된 간 나오토(63) 대표대행은 도쿄공업대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한 데다 변리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일본의 전후 29명의 총리 가운데 이과계 출신은 다나카 가쿠에이, 스즈키 젠코 등 2명뿐이다. 대부분이 법학, 경제 등 문과계다. 더욱이 하토야마 정권처럼 총리와 관방장관이 모두 이과계 출신이기는 처음이다. 이과계 출신의 국가 운영과 관련, “과학적인 사고가 기대된다.”, “대국민 설득에 필요한 표현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등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의 스탠퍼드대 동창인 무라카미 마사카쓰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는 “이과적인 사고가 있으면 부족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반면 ‘이과 바보와 문과 바보’의 저자인 다케우치 가오루는 “하토야마 대표에게 부족한 것은 논리적인 전략을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하는 표현력”이라면서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을 제대로 전달할 인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칭화(淸華)대 수리공학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베이징(北京)지질학원을 졸업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라이프치히대 물리학 박사다. hkpark@seoul.co.kr
  • 日 로스쿨 졸업생 올 사시합격률 뚝

    日 로스쿨 졸업생 올 사시합격률 뚝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법과대학원(로스쿨)의 낮은 합격률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로스쿨 출신들이 치른 신사법시험의 합격률은 27.6%로 지난 2006년 첫 시행 이래 처음 30%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합격률은 33%였다. 때문에 내년부터 연간 3000명의 변호사를 배출하려던 정부의 야심찬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11일 법무성에 따르면 올해 신사법시험에는 7392명이 응시, 27.6%인 2043명이 합격했다. 남자는 1503명,여자는 540명이다. 정부는 올해 합격자를 2500∼2900명으로 예상했던 터다. 정부 측은 이와 관련, “법조인 자격에 알맞은 능력의 유무를 기준으로 합격 여부를 판단한 결과”라면서 “3000명의 목표는 로스쿨의 충실한 교육이 전제”라고 밝혔다. 즉 로스쿨 출신들의 상당수가 법률가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일본은 지난 2004년 사법제도 개혁 차원에서 로스쿨을 도입한 뒤 과도기적으로 2006년부터 내년까지 신·구사법시험을 함께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로스쿨을 도입할 당시 합격률을 70~80%로 예측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2006년의 합격률은 48%, 2007년은 40.2%, 지난해는 33%로 계속 감소했다. 합격률 감소의 원인으로는 전국적으로 5765명의 정원을 둔 74개교의 로스쿨 난립과 낮은 교육의 질이 지적되고 있다. 당초 40개교, 4000명선을 유지하려던 로스쿨 규모는 소규모 대학과 지방대들의 기회균등 요구에 대폭 늘었다. 올해 대학별 합격자는 도쿄대가 216명(합격률 55.5%), 주오대가 162명(〃43.3%) 등의 순이다. 10명 이하의 합격자를 낸 로스쿨도 35개교에 달했다. 특히 로스쿨을 졸업한 뒤 5년 이내에 3차례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규정된 탓에 지금까지 571명이 응시자격을 잃었다. 한편 74개교의 로스쿨은 내년부터 2011년까지 교육의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정원을 18%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hkpark@seoul.co.kr
  • [新일본시대] ‘여성자객’ 칼날 매서웠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중의원선거에서 민주당 여성의 파워는 셌다. 확실하게 표적을 겨냥한 이른바 ‘여성자객’들이다. 자민당·공명당의 거물들도 맥을 못 췄다. 공천을 받은 46명의 여성 후보 가운데 무려 40명이 당선됐다. 민주당 의원 중 12.9%에 해당한다. 국민들이 보수적인 정치판의 신선한 변화로 인식, 지지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도쿄 12구에서 당선된 아나운서 출신 아오키 아이(44)는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꾸렸던 공명당 오타 아키히로(65·5선) 대표를 제압했다. 아오키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대행의 사설 비서로 2년간 정치경험을 쌓은 ‘오자와 칠드런’의 한 명이다. 당선이 확정되자 “도쿄12선거구는 연립정권의 상징으로 1석의 의미는 매우 크다.”며 지지자들에게 눈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나가사키2구의 후쿠다 에리코(28)는 “아저씨들이 하는 일”이라고 여겼던 정치에 뛰어들어 자민당 규마 후미오(68·9선) 전 방위상에게 고배를 안겼다. 후쿠다는 정부를 상대로 간염치료제 피해소송의 원고측 대표를 맡아 승소, 이름을 떨친 인물로 역시 오자와에 의해 발탁됐다. 홋카이도 5구에 나선 자민당의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의 수장 마치무라 노부타카(64·8선) 전 관방장관도 민주당 고바야시 지요미(40) 전 의원에게 무너졌다. 도쿄대 조교수 출신인 에바타 다카코(49)는 2005년 우정민영화 선거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정적을 떨어뜨리기 위해 투입한 ‘자객 1호’였던 고이케 유리코(57·6선) 전 방위상을 상대로 승리했다. 고이케 전 방위상은 한때 여성총리감으로 평가받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비록 적은 표차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중의원 비서 출신의 다나카 미에코(33)와 후지TV 아나운서로 근무했던 미야케 유키코(44)는 각각 자민당의 전 총리인 모리 요시로(72·13선)와 후쿠다 야스오(73·6선)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 당선자는 전체의 11.3 %인 54명으로 처음 10%대를 넘었다. 지난 2005년 선거에서는 43명이었다. 민주당 40명을 비롯, 자민당은 8명, 공명당 3명, 사민당 2명, 공산당 1명 등이다.hkpark@seoul.co.kr
  • [新일본 열다] 오자와 창당 13년만에 정권창출 총지휘

    [新일본 열다] 오자와 창당 13년만에 정권창출 총지휘

    │도쿄 박홍기특파원│30일 중의원선거에서 일본의 정치판을 뒤엎은 민주당은 고작 13년의 역사를 가졌다. 54년된 자민당과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비유될 정도다. 민주당은 지난 1996년 9월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가 정치개혁을 내걸며 신당 사키가케를 탈당한 뒤 창당했다. 현 민주당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구 민주당으로 부른다. 민주당의 현 체제는 1998년 4월 민정당·신당우애·민주개혁연합 등이 합류하면서 갖춰졌다. 창당 때만 해도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이룰 것이란 관측은 사실 불가능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잡당’으로 불릴 만큼 보수에서 좌파까지 이념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은 데다 6개의 당이 뭉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계파·이념을 떠나 목표는 확실했다. 정권교체다. 특히 핵심인물들이 만만찮았다. 당의 얼굴인 하토야마 대표를 비롯해 오자와 이치로, 간 나오토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이 포진했다. 모두 당대표 출신이다. 오자와 대표대행은 지난 5월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선거운동을 총연출했다. 하토야마 대표를 후임으로 선택한 것도 오자와의 작품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킹 메이커, 선거의 귀재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책공약, 선거전략, 후보공천, 후보자금지원에 이르기까지 선거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질적인 일등 공신이다. 오자와 대표대행은 또 당내에서 120명의 의원을 거느린 최대계파의 수장이다. 게다가 정치신인들이 이번 선거에서 대거 당선, 새로운 ‘오자와 칠드런’이 생겼다. 하토야마 대표가 당 밖의 간판이라면 오자와 대표대행은 당 안에서의 최대 실세다. 때문에 자칫 하토야마 내각과 오자와 정국이라는 이중권력체제가 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간 대표대행과 오카다 간사장의 역할도 컸다. 당 내에서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간 대표대행은 변리사 출신으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1980년 사회민주연합 후보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1998년 민주당의 당권을 잡았지만 다음해 당내 선거에서 패배, 하토야마에게 대표직을 내줬다. 2002년 12월 다시 당 대표에 올랐지만 2004년 5월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 사건이 터져 물러났다. 도쿄대 법대 출신의 오카다 간사장은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당내 소장파 의원의 지지를 받는 차세대 주자다. hkpark@seoul.co.kr
  • [新일본 열다] 뉴리더 하토야마 유키오는

    [新일본 열다] 뉴리더 하토야마 유키오는

    │도쿄 박홍기특파원│새로운 일본을 이끌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정치권에서 ‘우주인’으로 불린다. “다른 별에서 온 정치인 같다.”는 의미에서다. 정치판에서 이미 사라진 ‘사랑’, ‘미’, ‘존엄’을 정치에 접목시키려는 이단아로 비쳤기 때문이다. 정치철학도 실제 ‘우애(友愛)’다. 1955년 자민당을 창당한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의 정치 신조였던 ‘우애’의 영향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4대째 내려온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증조부는 중의원 의장, 할아버지는 총리, 아버지는 외무상을 지냈다. 친동생 구니오는 아소 다로 정권에서 총무상을 지냈다. 어머니는 세계적인 타이어제조업체인 브리지스톤 창업자의 맏딸이다. 하토야마 대표의 정치입문은 남다르다. 인문계 출신의 가족과 달리 도쿄대 공학부 출신이다. “지금부터는 엔지니어링의 시대다.”라며 공학부를 선택했다. 1984년 “정치를 과학화한다.”며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집안에서는 반대했다. 주위에서도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과학자로 인식했을 정도다. 하토야마 대표는 집안 덕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정치 텃밭인 도쿄 분쿄구를 물려받지 못한 탓에 1986년 불모지인 홋카이도에서 출마, 첫 당선됐다. 때문에 스스로 세습정치에 부정적이다. 민주당의 공약에도 정치세습의 금지를 포함시켰다. 2선 의원 때인 1993년 자민당을 탈당했다. 고도 성장만을 떠받쳐온 자민당의 역사적 역할은 끝나고 새로운 책임세력이 요구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1996년엔 구 민주당을 창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민주당의 창당선언에서는 공개적으로 ‘우애정신’을 내세웠다. 1998년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가 이끄는 자유당과 합당, 현재의 민주당을 탄생시켰다. 지난 5월 당시 오자와 대표가 정치자금수수의혹에 휘말려 대표직을 사퇴하자 경선에 도전, 다시 당권을 잡고 정권교체의 선봉에 섰다. ‘우주인’은 자민당을 대파하고 총리에 올라 ‘우애정치’를 펼 준비를 하고 있다. hkpark@seoul.co.kr
  • 日 자민·민주 이케부쿠로역 최후격돌

    日 자민·민주 이케부쿠로역 최후격돌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아소 다로 총리와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29일 저녁 도쿄 JR(일본철도)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맞붙는다. 공교롭게도 총선거전 마지막 유세를 같은 시간에 아소 총리는 동쪽에서, 하토야마 대표는 서쪽에서 유권자를 향해 ‘최후의 지지’를 호소하기로 했다. 지금껏 유세에서 밝혔듯 아소 총리는 “일본을 지키야 한다. 정치는 도박이 아니다.”라며 민주당의 정권교체에 대한 견제론을,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정치를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자민당 심판론을 전개한다. 이케부쿠로역이 위치한 도교 제10선거구는 6선인 자민당 고이케 유리코(57) 전 방위상과 민주당 정치신인 에바타 다카코(50) 전 도쿄대 교수가 격전을 치르는 중점 선거구다. 두 후보는 정치 경륜과 민주당의 돌풍을 앞세워 시시각각 밀고 밀리는 양상을 낳고 있다. 때문에 양당의 대표들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벌이는 유세전은 총선거의 판세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최대 이벤트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민주당의 대세는 변함이 없다. 일본 미디어들의 막판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의 지지도는 자민당의 두 배에 달했다. 300석 이상이라는 예측도 여전하다. 하토야마 대표는 28일 도쿠시마현 유세에서 “방심하면 모두 바뀐다. 이기고 있다는 기분을 버려야 한다.”며 낙관론을 경계했다. 또 돌발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 ‘몸조심’을 하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지난 18일 선거 공시 전까지만 해도 원칙적으로 하루 한 차례 취재에 응했지만 공시 이후엔 기자들과의 직접적인 문답에 입을 닫았다. 지난 22일 홋카이도에서 단 한 차례 기자회견을 가졌을 뿐이다. 민주당 측에서는 “너무 바쁜 상황에서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말할 가능성이 있어서”라며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오자와 이치로, 간 나오토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 등과 지역을 분담해 자민당의 텃밭을 찾아 표심을 흔들고 있다. 반면 자민당은 총력전을 펴고 있다. 아소 총리는 “돈이 없으면 결혼하지 말라.”는 최근 말실수에도 불구, 하루에 두 차례씩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정권선택이 아닌 정책선택을 당부하기 위해서다. 당의 최대 실세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당내 최대파벌의 회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등 정치 거물들마저 고전하는 까닭에서다. 후보들을 지원해야 할 거물들은 전례없이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는 형국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이 민주당과의 접전지가 53개 선거구에서 67개 선거구로 늘었다. 선거전 초반에 비해 자민당이 종반전에 들어 맹추격하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hkpark@seoul.co.kr ■ 숫자로 풀어본 日총선 일본 총선거의 쟁점은 단연코 자민당의 정권이 교체되느냐에 맞춰진다. 총의석 480석의 분할에 따라 정국은 상당한 변수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의석, 즉 숫자는 총선의 주요 포인트다. ‘241’ 총의석의 과반수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이 유지될지, 민주당 중심의 정권교체가 이뤄질지를 판단하는 척도다. ‘321’ 총의석의 3분의2인 무소불위의 의석이다.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도 중의원에서 단독으로 재가결, 확정할 수 있다. 자민·공명 연립정권은 해산 전 331석을 갖고 있었다. 민주당이 321석을 확보하면 사민당, 국민신당과의 연립 아래서도 확실한 독자 노선을 견지할 수 있다. ‘300’ 제1당이 얻은 최고 의석이다.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이끌던 자민당이 세운 기록이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자민당은 296석을 확보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은 기존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43’ 2005년 선거에서의 여성 당선자다. 지금껏 가장 많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역대 최다인 229명의 여성이 출마, 새로운 기록을 경신할 수도 있다. ‘66’ 자민당과 민주당의 양당 구도 속에 군소정당의 의석수가 가장 적었던 2003년의 의석이다. 민주당의 강풍에 군소 정당의 입지는 더 좁아질 전망이다. ‘177’ 민주당의 과거 최다 의석은 2003년의 177석이다. 반면 자민당의 역대 최저 의석은 1993년의 223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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