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도정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예산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뉴욕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애도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동결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136
  • 명문 네루가의 마지막 보루/라지브간디 전 총리는 누구인가

    ◎동생사망 뒤 정계에… 무기스캔들로 89년 실각 22일 폭탄테러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라지브 간디 전 인도총리(47)는 지난 81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84년 당시 총리였던 어머니 인디라 간디 여사가 시크교도인 경호원들에 의해 암살당하자 총리직을 승계했다. 인도 초대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외손자이며 인디라 간디 여사의 장남인 그는 애당초 정치에는 뜻이 없어 케임브리지대학 기계공학과를 나와 인도 항공사의 조종사로 근무해 왔으나 80년 6월 당시 하원의원이던 동생 산자이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네루가」의 대를 이어받기 위해 정계에 투신했다. 어머니 인디라 간디여사의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한 그는 84년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국민회의당이 하원의석의 75% 가량을 석권하는데 견인차 노릇을 하기도 했었다. 정치지도자로서 품위있고 원만하여 논리적이라는 평판을 받아온 라지브 간디는 초기엔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인도 북부 펀잡주의 시크족 반란문제 해결과 경제개혁에 실패하면서 민심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87년 스웨덴의 한 무기회사가 인도정부와의 무기판매 계약을 따내기 위해 5천만 달러의 뇌물을 준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포브스 스캔들」로 그는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89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총리직을 사임했다. 총리재임시 중국과 소련을 방문,괄목할 만한 외교적 성과를 이룩했던 라지브 간디는 87년 7월 스리랑카와 타밀족 문제해결을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인도 평화유지군을 스리랑카에 파견했으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인도 정부는 지난해 3월 병력을 철수시키기도 했다. 라지브 간디는 총리재임시기이던 86년 10월과 87년 7월 2차례에 걸쳐 암살을 모면한 바 있으며 총리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유리 뒤에서 생활해왔다. 44년 봄베이에서 출생한 라지브 간디는 68년 이탈리아여인 소니아 마이노와 결혼,1남1녀를 두고 있으며 아들 라훌은 이제 겨우 16살이기 때문에 40년간의 「네루가집권」은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듯하다.
  • 간디 전 총리 유세길 폭사따라/인,전국에 비상령… 총선 연기

    ◎국민회의당,간디 미망인을 새 총재로 선출 【뉴델리 외신 종합】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가 총선 유세중인 22일 새벽(한국시간) 인도 남부 타밀 나두주의 스리페룸 부두르읍에서 폭사함에 따라 인도 정국은 전국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등 지난 84년 인디라 간디 여사의 피살 이래 가장 긴장된 국면을 맞고 있다. 인도정부는 간디 전 총리가 폭사하자 전국에 걸쳐 보안군에 가장 엄중한 적색경계태세에 들어가도록 조치했으며 라마스와미 벤카타라만 대통령과 찬드라 셰카르 과도정부 총리는 공동으로 국민에게 진정을 호소하는 긴급 담화문을 발표했다. 또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23일과 26일 실시될 예정인 총선을 다음달 12일과 15일로 각각 연기했다. 한편 간디 전 총리가 이끄는 국민회의당(I)은 사고 후 즉각 그의 미망인인 이탈리아 태생의 소니아 간디 여사(44)를 새 당총재로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이 선출은 간디 여사에게 통보되기 전에 내려진 것으로 간디 여사의 수락여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국민회의당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사용된 폭탄이 그에게 증정된 꽃다발 속에 숨겨져 있었다고 말했으나 상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직 이번 사건을 자신의 행위라고 밝힌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현재 스리랑카의 타밀 반군 쪽으로 의심이 모아지고 있다. 타밀 반군은 간디 전 총리가 이들의 분리주의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한 인도군과 32개월 동안 싸운 바 있다. 그의 유해는 22일 정오쯤 뉴델리로 운구됐는데 이탈리아 태생인 그의 부인과 두 자녀는 이번 여행에 동행하지 않아 화를 면했다. 프라납 무케르지 국민회의당 대변인은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유해가 오는 24일 하오 4시(한국시간 하오 7시30분) 뉴델리 중심가의 인디라 간디 전 총리 묘소 부근의 힌두화장장에서 화장될 것이라고 22일 말했다. 이번 선거는 인도가 독립한 후 44년간의 역사상 최악의 유혈사태 속에 진행되고 있어 이 폭발사건에 앞서 힌두교도와 회교도간의 충돌 등으로 지난 2일 동안 적어도 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인도 통신들은 메루트와 바라나시 등 우타 프라데시주의 4개 도시에서 종교폭동이 계속되어 통금이 실시되고 있으며 군대가 출동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 간디 시신 운동화 보고 확인/인도 폭탄테러 참극의 현장

    ◎환영 꽃다발 들고 손 흔들다 참변/성난 군중,상점 약탈·무차별 방화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47)는 22일 폭탄이 폭발하기 직전 환호하는 군중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이 말했다. 간디 전 총리가 마드라스에서 50㎞ 떨어진 스리페룸푸두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차에서 내려 온통 미소를 지은 채 꽃다발을 들고 임시연단으로 천천히 걸어가던 도중 귀를 찢는 폭발음이 들렸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목격자 중 한 사람인 이곳 영자신문의 기자는 폭발사건으로 현장에 있던 다른 20여 명의 사람들도 죽었다며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잠시 후 누군가 타밀어로 「그들이 라지브 간디를 죽였다. 그들이 라지브 간디를 죽였다」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타밀 데일리지의 사진기자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미소를 띤 간디의 얼굴 일부가 폭발로 찢겨나가고 옷도 찢어진 채 온통 피투성이였다』며 『머리 위로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을 봤지만 그게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시신은 먼지와 피로 뒤범벅이 돼 있었다. 한 경관이 으깨진 머리통을 들고 그것이 간디의 것인지 살폈다. 옷은 다 찢겨나가 간디가 신은 운동화로 그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던 한 목격자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앞다투어 도망치느라 아수라장이었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은 당시 스리페룸푸두르 현장에는 1만여 명의 군중이 운집,간디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타밀어로 그를 환영하는 구호를 외쳤고 일부 군중은 그에게 타밀식 환영인사인 실크숄을 던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소한 11명이 사망한 이번 사건을 자신의 행위라고 밝힌 단체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현재 스리랑카의 타밀 반군 쪽으로 의심이 모아지고 있다. 타밀 반군은 간디 전 총리가 이들의 분리주의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한 인도군과 32개월 동안 싸운 바 있다. ○…인도정부는 간디 암살사건이 발생한 지 수시간 만에 인도 전역의 수개 지역에서 산발적인 폭력사태가 발생했다면서 1백만 인도 보안군에 대해 특급비상령을 하달했다. 나레쉬 칸드라 내각장관은 이날 뉴델리에서 열린 비상연방각의를 가진 뒤 인도 전역의 1백만 이상의 보안군에 대해 특급비상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람 모한 라오 정부대변인은 『전국에 걸쳐 적색비상령이 내려졌으며 25개 주정부에 모든 사전 예비조치를 취하라는 요청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전 장관집 불질러 ○…이날 뉴델리에서는 1천여 명의 격분한 군중들이 간디 전 총리와 이웃해 살던 자나타달당의 람 빌라스 파스완 전 노동장관의 집을 불태웠다고 경찰이 밝혔다. 자나타달당은 지난 89년 총선에서 간디 전 총리의 국민회의당을 누르고 집권했었다. 또 간디 전 총리의 집을 방문하려던 라마스와미 벤카타라만 대통령도 4천여 군중들이 승용차를 주먹으로 치며 저지하는 바람에 되돌아갔다. 특히 뉴델리시 잔파스10번가에 위치한 간디 전 총리의 저택 주위엔 간디의 피살소식을 듣고 모여든 수백명의 성난 애도객들로 아수라장. 이들은 제지하는 경관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간디여 영원하라」를 연호. ○애도기간 1주일간 ○…인도정부는 이날 긴급각의를 소집,앞으로 1주일간을 애도기간으로 선포하고 모든 학교와 관공서는 22일 하룻동안 문을 닫고 조기를 게양토록 했다. 각의는 『전국민이 국민생활을 위협하는 폭력행위에 맞서 싸우고 중대한 시기에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것』을 당부하는 대국민 성명을 채택. ○어린이 2명 사망 ○…간디의 암살에 분노한 시민들이 버스·승용차에 방화하고 상점을 약탈하는 등 22일 인도 전역에서 심각한 폭력사태가 야기되고 있다. 안드라프라데시주에서는 수개 도시에 통금령이 내려진 가운데 경찰이 데모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2명의 어린이가 사망,타밀 나두주에서는 40대의 버스·트럭이 시민들이 던진 돌에 맞아 파괴됐다고 인도 UNI통신이 보도. ○특별조사위 구성 ○…인도정부는 22일 대법원 판사 1명을 위원장으로 하는 간디 암살 특별조사위를 구성토록 했다고 인도 국영 TV가 보도. 이 방송은 이에 따라 특별조사위가 이미 구성됐다고 보도했다.
  • 에티오피아 반군,수도 진격/멩기스투 대통령 국외탈출

    ◎반군대표 포함 과정 수립 추진 【아디스아바바·나이로비 AP 로이터 연합】 지난 77년 정권장악 이래 14년간 에티오피아를 철권통치해오다 최근 반군들의 대공세로 위기에 몰려온 멩기스투 하일레 미리암 대통령이 21일 아침 국외로 탈출,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날 멩기스투 대통령이 내전으로 인한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대통령직에서 전격 사임하고 국외출국했다고 발표하면서 반군단체들과의 즉각적 휴전을 촉구하고 정부측은 모든 반정부세력을 포함하는 과도정부 구성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돌연한 국외탈출은 최근 수개월 동안 대정부 공세를 강화해온 반군세력들이 북부 2개주를 장악한 데 이어 나머지 3개주의 대부분도 장악,수도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며 외교소식통들은 이로써 에티오피아의 오랜 내전이 종식될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했다. 국영 라디오방송도 정오뉴스를 통해 멩기스투 대통령이 이날 아침 『여러 단체의 요구에 따라』 대통령직을 사임하고출국했다고 전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로부터 사임을 요구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채 헌법규정에 따라 부통령이자 군 최고사령관인 테스파예 게브레키단 중장이 정권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 대OECD 협력강화/정부/가입 앞서 부서활동 적극 참여

    ◎UR협상과 연계,무역제도도 개선 정부는 90년대 중반으로 예정돼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입에 앞서 OECD외의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고 시장개방에 따른 제도정비에 힘쓰기로 했다. 21일 경제기획원에 따르면 한국이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에 가입할 경우 우리의 대외경제문제를 교섭·해결하는데 도움을 받게 되는 등 이점도 많지만 서비스교역자유화·자본이동자유화 등 많은 의무조항이 뒤따르는 등 부담도 적지 않아 가입이 시기상조라는 판단을 내리고 가입문제보다는 관계증진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경제기획원을 비롯,외무·재무·상공·과학기술처 등 관련부처로 하여금 OECD관련부서와의 협력채널을 구축하는 한편 OECD 안에 설치된 각종 위원회의 활동참여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OECD가입에 앞서 우루과이라운드협상과 연계,국내 금융시장 및 자본시장의 자유화계획을 착실히 추진하면서 무역관련제도를 국제기준에 적합하도록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또 무역 및 외국인투자와 관련된 국내제도도 정비하기로 했다.OECD는 미국·일본 등 24개 선진국들이 가입돼 있는 경제협력기구로,우리나라와는 지난 88년 철강위원회와 비공식접촉을 가진 것을 시발로 그 동안 관계증진을 꾀해 왔으며 지난해 10월엔 조선작업반에 정식 가입했다. 현재 OECD측은 우리의 경제력이 크게 신장하자 동구권이나 멕시코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발전을 희망하고 있고 가입을 적극 요청해오고 있다.
  • 반군의 대공세·국외압력에 굴복/에티오피아 대통령 탈출

    ◎소의 군사지원 끊겨 통제권 상실/종족간 갈등 뒤엉켜 내전종식 여부는 미지수 에티오피아 멩기스투 대통령의 강권통치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 77년 집권한 멩기스투대통령이 21일 에티오피아 반군을 비롯한 국내외의 강력한 사임압력에 마침내 굴복하고 국외로 탈출한 것이다. 멩기스투 정부는 지난 몇 개월간 계속된 반군의 대규모 공세로 북부 2개주를 점령당한 데 이어 최근에는 나머지 3개주의 주요지역도 통제권을 상실,사실상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멩기스투 대통령이 사임했다고 해서 현 에티오피아 정권이 당장 반군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통령인 테스파예 게브레­키단 중장이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현 집권체제가 적어도 한동안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멩기스투 대통령의 사임은 정권이 반군에 넘어가기 전에 현 집권체제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멩기스투 대통령의 사임과 함께 반군과의 즉각적인 휴전과 모든 반체제단체들이 참여하는 과도정부 수립을 제의한 것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멩기스투 대통령의 사임은 또 미국의 중재로 다음주 런던에서 열릴 예정인 정부와 반군간의 평화회의의 최대 걸림돌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반군단체인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과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은 멩기스투 대통령의 사임만으로는 내전을 종식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정권을 장악한 테스파예 부통령도 현 집권 평의회의 일원임을 강조했다. 반군단체들의 이같은 반응으로 멩기스투 대통령의 사임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의 내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내전이 계속될 경우 테스파예 정권이 EPLF,EPRDF,티그레 인민해방전선(TPLF) 및 오모로 인민전선(OLF) 등의 공세를 과연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에티오피아 정부군은 최근 들어 반군의 대공세에 계속 밀려왔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이같은 저항력 상실은 경제사정의 악화와 가장 중요한 지원국이었던 소련의 지원중단 때문인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인 에티오피아 정부는 예산의 많은 부분을 반군과의 내전에 투입해온 데다 기근까지 겹쳐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사회주의노선을 표방해온 에티오피아 정부는 특히 연간 1백억달러의 군사지원을 해오던 소련이 최근 국내사정으로 군사지원을 중단하고 기술자들을 철수시키는 등 모든 군사지원을 사실상 중단해 군사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멩기스투 정권은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자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서방국가와의 관계개선을 도모했으나 서방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날로 악화되는 경제사정과 반군의 대공세로 위기를 맞은 멩기스투 대통령이 사임했지만 그의 사임만으로 에티오피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반군이 에티오피아를 장악한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지금까지는 멩기스투 정권이라는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지만 공동의 적을 상실할 경우 각기 자치를 주장하는 반군단체들간의 갈등과 대결이 악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멩기스투 대통령은 사임했지만 부족간의 대립과 반목이 심한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정정불안이 에티오피아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 강택민­고르비 공동성명에 담긴 뜻

    ◎중국/소련/“탈냉전시대 공동보조” 다짐/“미의 신패권주의 견제” 재확인/“개혁노선 상호존중… 내정불간섭” 일치/남북한 대화 지지 등 한반도평화 강조 중소 두 나라는 19일 강택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5일 동안에 걸친 역사적 방소를 총결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모두 18개 항으로 된 이 성명은 사회주의 국가의 발전방식에서 새로운 국제질서 개편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 강택민과 고르바초프도 그들의 정상회담 내용과 정신이 공동성명에 충분하게 반영됐음을 인정했으며 강은 소련을 떠나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의 방문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중소 양국은 이제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에 담긴 주요내용은 ▲양국 동부국경선협정체결 ▲새 국제질서 형성과 관련된 패권주의 경고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정강조 ▲상호 개혁노선의 존중 등으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 동부국경선 협정은 강 총서기의 이번 방소에서 이뤄진 가장 큰 가시적 성과로 지적된다. 이념논쟁과 함께 지난 60년대 이후 30년 가까이 중소관계를 악화시킨 주된 요인이 바로 이 동부국경선 문제였다. 지난 69년 3월 우수리강 가운데 진보도의 무력충돌로 중국군 8백여 명,소련군 6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따라서 중소 국방관계자들은 『이번 동부국경협정체결로 세계 최장인 7천5백㎞의 양국 국경을 둘러싼 문제 가운데 90%는 해결된 셈』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상세한 협정내용은 발표되지 않고 있으나 소련 하바로프스크 남부의 흑해자도 등 과거 소측이 강점했던 흑룡강 연안의 섬들을 중국측에 돌려주고 국경지대에서 상호무력사용을 엄격히 금지시키는 것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소는 또 걸프전 이후의 신국제질서 형성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미국의 주도적 역할과 관련,어떠한 패권주의도 용납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소가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다짐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며 미측을 긴장케 하는 부분인 것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부시 미 대통령은 강 총서기의 방소 전에 고르바초프에게 전화를 걸어 미소관계개선을 강조했으며 중소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던 지난 16일엔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의 연장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이나 소련은 상호협력정책을 다양하게 미국에 대한 카드로 활용하게 될 것 같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는 3극 체제를 이뤄나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편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공동성명 13번째 항목에 「양국은 한반도정세 긴장완화가 동북아전체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 최근 한반도에서 이뤄진 긍정적 변화를 환영하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남북통일의 실현을 지지한다. 남북한 모두에게 평화통일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명시했다. 이 같은 성명내용으로 보아 중소 양국은 한반도문제에 관해 매우 깊이 있는 협의를 한 게 확실하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반도의 평화는 지켜져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 했음을 잘 알 수 있다. 또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방침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여러 각도에서 분석검토됐을 것이란 점은 어렵잖게 생각할 수 있으며 결국 한반도의 평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남북한 유엔가입문제가 해결되게끔 중소가 공동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성명에서 한반도 안정을 강조하는 내용이 별도의 한개 항목으로 다뤄진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중소와의 관계개선을 겨냥한 한국정부의 북방정책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더욱이 한국과의 경제교류확대가 자국발전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임을 잘 인식하고 있는 중소 양국은 북한의 오판에 의한 무력행사 가능성에 쐐기를 박기 위해 「평화통일에 장애가 되는 행동의 자제」를 강조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소 양국은 또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노선에 일정한 패턴이 없음을 강조,각국이 특유의 사정과 여건에 따라 개혁을 하더라도 상호 관계발전에는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종전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사회주의를 배반하는 것으로 비난했던 중국측이 그 시각을 완전히 폐기처분하고 사회주의의 두 거인으로 새로운 동반자 시대를 가기 위한 의도가 담긴 내용으로 받아들여진다. 중소 정상은 모두들 양국이 지난 50년대의 동맹관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재 여러 가지 국내외 상황에 비춰 볼 때 역부족임을 느끼는 중소가 미국 등 상대적으로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는 서방세계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속셈이 깔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노 총리,23일부터 「국민과 대화」

    노재봉 국무총리는 23일 강원도 속초시를 방문,세계잼버리대회 강원도민실천다짐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91년도 총리의 「국민과의 대화」를 가질 계획이다. 노 총리는 오는 8월 강원도 고성에서 개최되는 세계잼버리대회에 앞서 열리는 이 도민실천다짐대회에 참석,대회 준비상황을 살펴본 뒤 7백여 명의 참석 도민들과 국정 전반에 관한 내용과 도정에 대한 건의 등 폭넓은 대화를 나누며 민의를 수렴하게 된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노 총리의 이같은 지방방문 일정과 관련,『굳이 개각여부를 단정하는 지표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개각의 시기가 적어도 내주말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해준다』고 말했다.
  • 국립대 교수협/시국성명 발표

    【청주】 전국 국립대 교수협의회(의장 이병기·강원대)는 17일 하오 충북대에서 올해 전반기 임시총회를 열고 시국 성명을 발표,『최근 강경대군의 죽음과 학생들의 잇따른 분신으로 정치·사회·경제적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현 시국의 본질적 원인은 국민의 여망인 민주화 요구와 민생문제 해결을 외면한 채 공안통치와 차기 정권구도에 급급한 현 제도정치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 먼저 죽음을 안식시키라(사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시신을 떠메고 거리를 헤매며 죽음을 수모스럽게 하는 이런 짓을 해도 괜찮은 일인가. 죽음에 당면하면 우리는 애도를 한다. 흉한 죽음에서 성스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엄숙한 애도일 뿐이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최대의 예의다. 「장례」의 본 뜻도 그런 것이다. 상여는 뒷걸음을 치지 않는다. 그래서 장의차도 뒷걸음치기를 않는다. 그런데 강군의 주검을 담은 운구행렬은 되돌아가 이미 출발했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런 비례를 한 이유를 「장례위원장」이라는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힘을 마지막 싸움에 쏟아 붓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결정적인 싸움」이란 어떤 싸움이고 왜 「마지막 싸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들의 싸움을 위해 예의 갖추어 장사지내져야 할 주검이 이렇게 이승에 붙잡혀 구천을 헤매는 고혼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민망하고 어처구니 없는 것은 「정의」와 「양심」같은 가장 좋은 낱말을 빌려 입고 장례를 싸움의 무기로활용할 궁리에 차있는 장례위원회의 나이든 세대들을 보는 일이다. 거기 가세하여 정치적 장외투쟁의 판을 벌이는 세력도 딱하고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젊은이의 한스런 죽음에 끼어들어 정치적 이득을 챙겨보려 했던 정치인의 모습을 사람들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권자이기도 할 것이다. 병원의 영안실은 주검이 머무는 곳이다. 산사람과 구분하는 정도의 기능을 할 뿐만이 아니라 주검의 조건에 따른 과학적 처리와 관리를 하는 특수한 장치를 가진 공간이다. 이 공간을 출발한 시신은 설사 「노제」를 못 지냈다 하더라도 유택을 향해 정해진 도정을 밟지 않을 수 없는 물리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불가피하고 거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강군의 유해는 「학생회관」으로 되돌아왔다. 영안실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까지 「싸움의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무슨 싸움인가. 정말 이것이 「민주화」를 위한 싸움인가. 과연 이런 방식의 「싸움」을,그들이 칭하기 좋아하는 「국민」이 원한다고 생각하는가.마침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망자」가 남긴 소리에 귀기울이고 싶어도 산자의 욕심가득한 구호소리가 가로막는 이 방해전파투성이의 장의를 통해서는 들을 수가 없다. 나이 많은 세대의 지혜는 사려깊음에 있다. 그런 지혜로 한번쯤 되돌아 생각해 보라. 만약에,시인처럼 여리고 교육자처럼 깊은 아량을 발휘하여 부모다운 용기로 『가엾은 강군을 우리 고이 보내자. 그 죽음을 안식하게 하고 남은 우리 힘으로 그의 죽음이 남긴 억울한 원혼의 설움을 풀어주자. 젊은이의 생명이 우리의 투쟁보다 더 귀하다』고 말을 하는 어른들이었다면,진실로 많은 「국민」은 그 현자같은 태도에 머리숙여 그들이 펴려는 뜻에 공감할 것이다. 시신을 뻗쳐놓고 무슨 일인가를 도모하는 행동을 가장 파렴치하고 비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다. 장례를 예사로 「무기연기」하는 발상을 지닌 한줌의 기성세대가 열에 떠 냉철한 사고력을 잃은 젊은이들을 유도하고 있는 일에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젊은세대는 앞으로도 계속 성숙하므로 이성을 찾고많은 사람이 떨어져나갈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분노를 심어주고 그것으로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이런 「싸움」을 계속할 만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폐일언하고 죽은이를 안식시키라. 우리 모두가 애도할 수 있도록 엄숙하고 조용하고 품위있게 보내드려라. 그러지 않는다면 어떤 섭리의 노여움을 사게 될지도 모를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든다.
  • 치사·자살·시투·가투 그리고…/이정연 논설주간(서울칼럼)

    한 젊은이의 시신을 둘러멘 「비장한 전사」들의 혁명적인 구호와 함성에 시민들은 그저 불안하고 우울하고 착잡하다. 그들은 한사코 「시청앞 노제없는 장례는 못치르겠다」며 사망 후 이제 20일이 된 강경대군의 시신을 부여안고 연세대로 돌아갔다. 장례위원장 문익환 목사는 14일 밤 『애국시민들의 동참으로 오늘의 투쟁은 일단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대책회의는 장례행렬을 되돌린 후 마무리 회의를 갖고 새로운 투쟁을 위한 「회군」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장례행렬을 「행진」으로 인식하고 있다. 장례는 강군 시신의 안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신을 업고 재야 운동권은 「투쟁」하고 「행진」하고 있는 것이다. 강군의 불행한 주검을 안고 「치사정국」을 「자살정국」으로 확대 재생산에 성공한 후 지금 그들은 시신을 담보로 「시투」와 「가투」를 벌이고 있으며 이것을 「임투」에까지 연계시킬 치밀한 계획 아래 회군해서 숨돌리고 다시 행군을 시작할 심산이다. 어찌보면 운동권은 의식화운동 10여 년에 이제는 지하대학이 지상으로 당당하게 제모습을 드러낸 상황이며 하도 자주 듣고 보아온 시민들은 그들의 실체를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형편이 된 셈이다. 이들 「전사」들은 거리낌 없이 집권당의 당사를 각목과 쇠파이프로 아수라장을 만들고 「미 노 끝장내자」 「노태우 타도하자」는 현수막을 대학정문에 큼지막하게 걸어 놓아도 2∼3일씩 누구하나 감히 손을 못대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전대협의 무슨 결사대는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면 민주투사요,불행한 일이 생기면 열사도 되고 전경이 그러면 「백골단」이 된다. 1당독재 45년에 빈곤의 유토피아를 북에 창건한 김일성을 비판하면 「반통일」 세력이 되고 그를 껴안고 감격해 하고 「노정권 타도」를 외치는 사람은 지금 민주투사요,통일의 횃불을 든 통일 일꾼이 돼있다. 하기는 정치인이 받은 돈은 그것이 검은 돈이든 붉은 돈이든 모두 정치자금이라고 재판정에서도 큰 소리 치고 집행유예로 풀려 나와서는 그것 보라는 듯 활짝 웃으며 당당하게 행세하는걸 보면 무언가 잘못 돼도 단단히 잘못 됐다. 제1야당의 총재라는 사람은 그저 어떻게 하면 대권에 도움이 될 것이냐에만 몰두,장례식에 나와서는 라이벌 정당의 해체를 요구하고 내각제 포기를 확실히 다짐하라고 언성을 높인다. 그리고 한술 더떠 앞으로 남북관계 접촉 때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남북한 동시가입이라야 된다며 아리송하게 재주를 부린다. 우리는 아직도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이를 지적하고 시정해야 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시위는 경고적 의사 표시로 그쳐야 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혁명적 방법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다. 분노와 규탄만으로 난제가 해결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제도와 인습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듯 한 칼에 난도질해서 될 일이 아님을 프랑스 혁명에서 보았고 러시아 혁명 70년에 드러난 오늘의 소련 모습에서도 역력히 목격하고 있다. 현실적 가능성과 한계를 무시한 채 때려 부수기만 하면 바람직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 방법 또한 목적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권에서 특정대학을 「해방」 대상으로 학내 문제를 끊임없이 만들어왔고 기실 등록금 투쟁도 이슈가 줄어들면서 끌어낸 한 문제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등록금 문제는 학부형이나 시골 출신의 가난한 학생 등 모두의 관심이 될 만한 주제였고 그를 계기로 학생운동권은 학사행정에까지 관여,학교당국의 책임있는 교수들의 행동마저 주저케 하는 데 성공했던 것도 우리는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그 자체를 파괴하는 폭력적인 방법의 의사표시는 용납할 수도,해서도 안 된다는 점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절 아닌 계속성 속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대학생 그룹이 사회 모든 분야에 일일이 관여하려 들며 판을 벌이고 판을 깨는 나라가 지금 지구상 어디에 있는가. 혁명의 시대는 마감한 것으로 모두를 인식하고 있으나 이번 장례행렬과 절차에서 보면 이들은 아직 혁명의 미망과 착각 속에서 환상을 쫓고 있는 듯 때로 보여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기를 바란다. 그들 운동권 학생이나 재야인사들이 이번 장례식을 통해 이나라 정치사회의 모든 현상에 마치 비토권이나 갖게 된 듯 세력을 확장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태가 있을까 걱정된다. 우리 모두 제자리에 돌아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무슨 사단이 벌어만지면 우르르 모여 학생들을 앞세우고,근로자를 부추기고 대중을 조직해 한바탕 굿을 벌여야 직성이 풀리는 낯익은 사람들은 이번에도 예외없이 행사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이 나라 이 정권이 정말 그들의 구호대로 「독재정권」이고 「살인정권」이라고 생각하는지 정색하고 묻고 싶다. 우리 모두 나라를 너무 벼랑으로 몰고 가면 곤란하다. 그 피해는 바로 우리 일반 백성이 입게 마련이다. 현 정권에 흠도많고 불만을 가진 사람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혁명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민선정부를 애써 탄생시켰고 이제 민주화의 긴 도정에 서 있는 것이 1991년의 한국이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데모대의 각목이나 쇠파이프보다는경찰의 작은 경찰봉이 더 위력 있고 유용하고 모두가 두려워 하도록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화고 민주주의고는 전부 공염불이 되고 만다. 법과 질서는 엄하고 위엄있게 집행되고 정부는 겸허한 자세로 백성에 귀를 기울이며 반성해야 한다. 이 나라를 지키고 의존해야 할 조직이 전경밖에 없는 우울한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도정공장 설립 인허가때/화재보험가입 의무화/재무부,행정지도 강화

    재무부는 일선 행정기관이 도정공장(정미소)의 설립에 대한 각종 입허가를 내주거나 소방점검을 할때 화재보험 가입에 대한 행정지도를 강화,사실상 도정공장의 화재보험 가입을 의무화 하기로 했다. 15일 재무부에 따르면 도정공장의 화재보험 가입을 확대하기 위해 행정지도 강화와 함께 손보사들이 도정공장 화재보험을 공동으로 인수,관리할 수 있도록 공동인수(풀)제를 도입키로 했다.
  • 낙선 네팔총리 사임/총선 중간집계 공산당 다소 뒤져

    【카트만두 AP AFP 연합】 지난해 네팔의 절대왕정을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을 이끌었던 크리슈나 프라사드 바타라이 과도정부 총리가 최근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다당제 총선에서 자신의 의석을 잃은 후 14일 사임했다. 네팔 의회당의 바타라이 총리(66)는 지난 12일 실시된 총선 개표결과 수도 카트만두내 자신의 선거구에서 공산당의 마단 반다리 후보(39)에게 7백51표차로 패배한 것으로 밝혀진 후 왕궁으로 가 사표를 제출한 뒤 『정치적 도덕적인 이유 때문에 정부내에 계속 남아 있는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사임이유를 밝혔다. 한편 14일 하오 현재 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네팔 의회당(NP)이 31석을 차지,27석을 확보한 공산당(UML)을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대북한 쌀 반출 불투명/북,“t당 1백70불” 주장… 50% 깎아

    ◎“물물교환용 무연탄도 준비 안돼” 딴청도 우리나라의 쌀을 북한으로 반출하려던 계획이 당초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는 북한측이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13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선적준비를 끝내 달라는 우리측 반출창구인 천지무역의 요청에 따라 쌀 5천t의 도정을 마치고 일부는 선적항인 목포까지 수송했으나 북한측의 이의 제기로 선적을 못 하고 지난 7일의 출항예정일을 그대로 넘겼다는 것이다. 북한측은 ▲양측이 당초 합의한 「국제가격」에 대해 우리측이 제시한 t당 3백50달러의 절반인 1백70달러 선을 주장하는 데다 ▲남한측이 쌀 교역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난하며 ▲양측 상사간에 합의된 10만t의 선적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라는 등의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또 쌀값 대신 천지무역측에 넘겨주기로 한 무연탄 등의 물자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딴청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천지무역이 북한측 금강산무역개발회사와의 합의에 따라 신청한 쌀 5천t의 대북한 반출을 지난 4월12일 승인해주었으나 북한측이 주장하는 10만t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 강택민총서기,왜 모스크바 가나

    ◎“미의 「신패권」 견제” 중소 공동보조 모색/각종 교류 늘려 사회주의 결속 강화/“한국 유엔가입에 불반대” 결론 낼듯/악화된 대미관계 반전의 지렛대로 활용 속셈도 중소 협력의 새 시대가 개막된다. 강택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15일부터 19일까지 5일 동안 모스크바를 공식방문,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상호 협력·우의를 다지는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이번 강 총서기의 모스크바행은 그가 지난 57년 11월 모택동 이래 34년 만에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하는 중국 공산당 수뇌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국 수뇌,34년만의 방소 게다가 현재의 국제정세는 걸프전 이후 신질서 재편 움직임과 함께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예견되는 소련 내부혼란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강택민·고르비 회담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와 함께 이들은 올 가을 유엔총회의 초점이 될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 문제 등 한반도정책에 관해서도 사전 의견조정을 꾀할 것으로 보여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중소 정상의 만남은 또 시기적 상황의 극명한 대조로 역사발전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측면도 있다. 50년대 후반 이후 모택동과 흐루시초프의 이념분쟁과 양국 국경선의 무력충돌 등으로 30여 년 동안 지속된 대립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고르비가 등소평(당시 중앙군사위 주석)을 방문했을 때가 89년 5월15일로 2년 후 강 총서기의 방소 날짜와 하루도 안 틀린다. 또 당시 북경은 고르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환호하던 모스크바와는 반대로 민주화요구시위의 열기에 휩싸였고 정치·사회적 불안감이 팽배했으며 마침내 「6·4천안문사태」가 발생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강택민이 방문하는 오늘의 소련은 바로 2년 전의 중국과 비슷하게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6·4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한 상황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강경보수파가 지배하는 중국의 지도층은 최근 들어 고르비가 국내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보수경향을 띠는 데 크게 만족하고 있으며 이번 강 총서기의 방소도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해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강·고르비 회담의 주요의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예측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서로 이웃하고 있는 공산주의 거인으로서 새로운 협력과 우의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걸프전 이후 지적되고 있는 미국의 신패권주의 경향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북경과 모스크바 수뇌들은 2년 전 화해를 위해 만났던 것과는 달리 이제 사회주의 동지로서 군사·경제·과학 등 각 방면의 새 협력과 교류를 최대한 확대키로 다짐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잖아도 중국은 이미 지난 3월 경제난에 시달리는 소련을 돕기 위해 7억1천만달러어치의 음식료품을 제공했고 소련측은 그 대가로 SU­27전투기를 중국에 넘겨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걸프전을 통해 서방국가들의 첨단과학 병기 우수성에 충격을 받은 북경측은 군의 현대화를 위해 당초 미국의 지원을 받으려했으나 방침을 바꿔 소에 의존키로 했다는 것이다. ○군 현대화 소에 의존키로 왜냐하면 미국은 인권문제를 내세워 중국에 계속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관계가 악화되거나 소원해질 가능성이 매우 많아서 지속적인 군사적 협력이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 국제질서 재편에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에 대해 중국과 공동대항해야 할 입장이어서 모든 면에서의 상호 유대강화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소련내 공산세력의 재무장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자신의 역할을 증대시킬 것이란 점이다. 지난 57년 모택동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공산주의 세계의 대형은 당연히 소련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크게 달라져 오히려 중국이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제1의 강대국이 된 듯한 실정이며 강 총서기는 이번 회담을 통해 국가와 국가뿐 아니라 당 대 당의 관계를 결부시키는 방안들을 제시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안문 민주시위를 총칼로 진압,강경보수파에 의한 정치·사회안정을 이루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은 소련·동구 각국이 정치민주화로 큰 혼란에 빠진 사실에 대해 언제나 냉소어린 비판을 해온 게 사실이다. 따라서 강 총서기는 소련내 공산세력의 부활을 지원하는 중국의 의지를 표명할 것이며 현재 공화국들의 연방탈퇴·경제혼란 등으로 최악의 곤경에 빠진 고르비도 이에 어느 정도 동조하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대소정책은 미국을 크게 긴장시킬 것이며 결과적으로 중국에 대한 유화적인 제스처(예를 들면 최혜국 대우 연장적용 등)를 낳게 하고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 있어 전략적인 3극체제의 성립까지도 예측케 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회담에서 중소 두 나라는 한반도 안정이 양국을 포함하는 동북아 경제권 형성과 발전에 필수적임을 재확인하고 한국의 유엔가입에 반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조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개방호응”…북한의 간접신호 얻어낸듯/이붕 중국총리 평양방문 결산

    ◎핵사찰 국제여론에 긍정대응 촉구/이달 김정일 방중때 「유엔가입」 재론 북경 당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관해 대내외의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이뤄진 중국 이붕 총리의 평양 공식방문 일정이 6일로 끝났다. 이 총리는 지난 3일 평양행에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지호전,대외경제무역부장 이람청과 능원부장 황의성 등을 대동,이번 방문이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군사문제는 물론 중국·북한의 경제관계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때보다 폭넓은 협의를 위한 것이었음을 잘 알 수 있게 했다. 평양측도 무려 50만에 이르는 환영인파를 동원함으로써 이 총리의 방문에 거는 기대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 이붕 총리와 북한의 김일성 주석,연형묵 총리는 평양에서의 회담을 통해 상호우의를 다짐하고 『앞으로 어떠한 국제정세의 변화가 발생하더라도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인민일보는 3일 하오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있은 회담에서 이 총리가 올해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향후 10개년 발전계획에 담긴 개방·개혁의지를 강조했으며 북한의 연 총리도 중국식의 경제개혁 정책이 가져온 성과에 찬사를 보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연의 대화내용은 중국측의 개방종용에 대해 북한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란 풀이를 하고 있다. 한편 최근의 한반도문제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 방침과 관련,이 총리는 평양측에 한국의 유엔가입 불가피성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 총리는 일단 한국의 유엔 가입신청에 중국이 현재의 국제적 상황에 비춰볼 때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없는 입장임을 북한측이 상당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해해 주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했으며 제2안으로 「한반도가 통일될 때까지의 잠정적 약속」이란 양해 아래 남북한 유엔 공동가입을 촉구했다는 것이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제2안은 한국의 유엔가입신청계획 발표로 비롯된 북한과의 미묘한 갈등을 해소하고 이들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중국의 정책적 배려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의경우 4일 북경을 방문중인 다나베(전변) 일본 사회당 부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한국 유엔가입은 남북한 쌍방의 내부문제로 이에 관해 깊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유엔 단독가입이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것으로 반발하고 있는 북한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일본 교도(공동)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이붕 총리와의 회담에서 평양측은 확실한 태도표명을 유보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며 앞으로 이달 안에 북경을 방문할 계획인 김정일을 통해 제3의 절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이밖에 이번 방문에서 평양측이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의 핵사찰 요청에 긍정적으로 대응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의 무역대표부 상호개설과 한소수교 등으로 사회주의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심한 고립상태에 빠진 북한이 무력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에 빠질까봐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정세 불안은 중국의 경제개발계획에도 치명적인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핵문제에 관한 한 북한은 소련이나 중국등 어느 나라의 입김도 마다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기구의 핵사찰은 불허하면서도 김일성이 얼마전의 국제의원연맹(IPU)회의 연설에서 『핵무기개발 및 사용은 금지돼야 한다』고말한 것은 군사력에 대해선 시종 위장전술로 일관하겠다는 배짱을 거리낌없이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미 소련을 외면하고 있는 상태이고 중국에 대해서도 내심으로는 「언젠가 자국이익 최우선정책을 표면화할 상대」로 보기 때문에 결국 믿을 것은 자체 군사력 증강뿐이란 결론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또 비록 현재의 핵시설이 보잘것 없다 하더라도 핵사찰을 강력히 거부하는 허세를 부림으로써 미국·일본 등 주변강대국의 오판을 유도,앞으로의 국제정세 변화과정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쨌든 이붕 총리의 평양방문은 김일성 생일(4월15일) 축하를 겸해 있게 될 것이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늦게 이뤄진 점만 보더라도 종전처럼 혈맹임을 다짐하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중국이 북한측에 동조할 것을 요구하는 현안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정치권,시국처방 찾기에 부심/“공멸 위기감”… 여·야 대응 언저리

    ◎외부기류 자극 우려,야와 공동보조/여/“재야바람”­제도권 사이서 엉거주춤/야 강경대군 치사사건이 대학생들의 잇단 분신과 시위사태로 증폭되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파문확산을 막기 위해 처방에 부심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가 더이상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도 사태의 흐름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묘책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원론적인 공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가중되고 정치권 전체가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여야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기성 정치권 질서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사태수습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해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에 여권은 4일 당정회의와 고위당직자회의를 잇따라 열어 「사복체포조의 정규경찰로의 대체」 등 긴급 처방을 내놓는가 하면 신민당 등 여권의 제도권내에서의 입지를 최대한 확보해 주기 위해 당초 이번 회기에서 강행처리 불사방침을 천명했던 경찰법 처리문제에서도 유연한 자세를 견지할 뜻을 비추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권은 안응모 전 내무장관의 인책경질에 이어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시위진압방식을 개선하고 야권의 입지를 강화시켜 줌으로써 제도권과 재야권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장기적으로 제도권에서의 논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여권의 한 고위당직자는 『사태악화를 최소화시키려면 1차적으로 정치권내에서는 이 사건이 「확대 재생산」되는 일이 없도록 여야가 공동보조를 취해야 한다』며 야권과의 충돌방지를 우선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재야운동권의 목소리가 여론의 움직임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의 이 같은 묘수풀이 방식에 대해 신민당도 김대중 총재가 이날 재야운동권의 정권퇴진운동에는 동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듯이 이번 사태를 제도권 안에서 가능한 한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데 기본적인 궤도를같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신민당은 이번 사태의 제도권내 해결을 위해 내각 총사퇴 등 5개 항의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차량경적 시위 등을 통해 재야권의 장외시위에도 한발을 걸치고 있다. 여권은 야권의 이같은 요구를 정략적인 공세로 간주,일축하고 있다. 특히 여권은 사태해결을 위해선 제도정치권의 합의보다는 분신행위와 종교계·학계 등 각계로 이어지는 시국선언문 발표 및 농성 등 동조움직임을 차단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강구돼야 한다는 인식이다. 왜냐하면 여권은 이번 사태의 성격을 시위진압 현장에서의 우연한 돌발사건이 엄청난 파문으로 확산된 것이며 그 이면에는 그동안 누적된 정치권 불신과 맞물려 정치권 자체가 여론에 대한 제어력을 상실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재야권의 잇단 제도권 진입과 방향상실로 극도로 위축됐던 재야운동권이 이번 사태를 세확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정치권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든 제한된 범위 이상의 약효를 구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신민당이 광역의회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절호의 호재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시종 엉거주춤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도 재야운동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극히 제한된 데다 자칫 재야운동권의 흐름에 편승,위기국면을 고조시켰을 경우 누구도 예측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앞으로의 정치일정에 큰 차질을 빚을지도 모른다는 입장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문제 자체가 복합적인 요인을 안고 있어 더욱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야 정치권은 정치권 전체가 공멸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우선 외부기류를 자극하는 여야의 충돌을 자제하면서 파문의 강도가 수그러질 때까지 시간을 벌어나가자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관측된다. 이같은 기류가 정치권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의 소장파 의원 중 일부는 사태의 보다 극적인 반전을 위해선 야권의 내각 총사퇴 주장 중 일부를 수용,인물교체를 통한 국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또집권여당이 단순한 돌발사건으로 벼랑끝으로 몰린 이유는 최소한의 지지기반마저 상실했기 때문으로 진단하고,당차원에서도 전면적인 개편을 통해 국민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심어주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게 끔 차기대권 후보에 대한 가시화조치도 서둘러 단행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결국 지금까지는 정치권이 제도권내에서의 사태 해결이라는 구심력으로 정권퇴진운동으로 비화되고 있는 재야운동권의 요구와 압력에 버티어 나가고 있으나 정치권의 바람처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사태가 진정될지는 불확실하다. 또 강군 사건의 확산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금의 시국이 87년 6월 당시의 정치체제가 맞물린 상황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분신자살,교수들의 농성 등 「사건」이 지속될 경우 5월 시국과 맞물려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측면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암운으로 작용하고 있다.
  • 15일부터 휴전… 앙골라의 앞날

    ◎미·소의 대리전 끝나 아주에도 데탕트 바람/정부­반군대표,내년 총선까지 과정 앙골라정부와 반정부 최대 조직인 앙골라 전면독립민족동맹(UNITA)이 지난 1일 포르투갈에서 1년여 동안 계속된 협상을 통해 휴전을 위한 예비협정에 서명,16년 동안 계속된 내전종식이 임박해지고 있다.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과 호나스 사빔비 UNITA 의장이 이달말 내전종식을 위한 휴전안에 공식서명,휴전안이 정식으로 효력을 발하게 되겠지만 양측의 휴전안 수락여부 시한인 15일부터 사실상의 휴전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앙골라의 내전은 지난 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직후 시작됐다. 1885년 이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앙골라는 2차대전 이후 친공산계열인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과 우익민족주의단체인 UNITA의 양대 독립운동 단체가 결성,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투쟁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지난 75년 11월 베트남전 참패의 악몽으로 미국이 시달리고 있는 틈을 이용,소련의 지원을 받은 MPLA가 정부수립을 선포하자 UNITA측은 MPLA에 대한 투쟁을 선언,앙골라는 기나긴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었다. 앙골라의 내전은 그 뒤 미국 및 남아공은 반군을 지원하고 소련 및 쿠바는 정부군을 지원,국제전 및 미소 대리전의 양상으로까지 발전됐다. 남아공은 앙골라 남부의 나미비아 독립을 촉구한 78년의 유엔결의안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미비아를 통치하며 앙골라를 침입,앙골라정부와 마찰을 빚어 왔으며 5만여 명의 쿠바군은 앙골라정부의 요청으로 내전에 개입했었다. 앙골라 내전은 지난 88년 12월 앙골라,남아공,쿠바가 ▲쿠바군의 단계적인 앙골라 철수 ▲나미비아의 독립 등에 관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부터 종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변화와 지난해 평화협정에 따라 쿠바군의 철수가 완료되고 나미비아가 독립을 이룸으로써,정부측과 UNITA측이 1일 예비적인 휴전안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휴전안에 따르면 정부와 UNITA의 대표들로 구성된 정치군사공동위원회(JPMC)가 92년 9∼11월에 치러질 앙골라의 첫 자유총선 때까지 과도정부를 이끌어 나가도록 돼 있다. 또한 과도정부는 양측의 군을 포함,4만명 규모의 단일군을 구성하게 되며 휴전의 성립으로 미·소 양국은 그들의 무기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양측이 내전종식에 합의하게 된 것은 최근의 국내외적인 분위기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먼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동서데탕트와 협조분위기가 성숙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포르투갈의 중재로 이루어진 이번 휴전은 미국과 소련이 지지를 받았으며 미국이 휴전안 발표 직후 『이것은 미국과 소련의 갈등해결에 대한 협력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환영한 것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그 동안의 오랜 내전으로 30여 만 명이 사망하고 석유 및 광물 등 부존자원이 풍부한 앙골라의 경제가 피폐,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양측이 평화적인 해결에 접근한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앙골라가 지난 89년의 휴전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지난해부터 아프리카 대륙에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에 동참할 수 있을지가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전시법」 폐기 이후의 경제구도(대만 새 진로:하)

    ◎외환보유고 세계 제1…「통일지렛대」 활용/“번영해야 살아남는다” 노사 모두 공감/개발계획기간도 홍콩의 대륙귀속 맞춰 연장 대만은 아시아의 4소룡 가운데 가장 알차게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 국제수지 흑자가 80년대 초반 이후 해마다 계속 1백억달러를 웃돌고 있으며 외환보유고는 세계 제1위로 지난 4월 현재 7백60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경제도 정치민주화의 열풍에 휩싸여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87년 계엄령해제 이후 계속돼온 정국불안과 치안문제 발생 등으로 기업인들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고 자본의 해외 유출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민주화에 편승,범죄발생 건수도 급격히 늘어났으며 기업인에 대한 범죄단체의 협박·폭행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대만정국이 바람 잘날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지자 경제에도 위험신호가 뚜렷해졌다. 지난해 대만에선 연초부터 제1야당인 민진당과 대학생들이 국민당의 40여 년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집권 국민당 내부에서도정·부 총통 후보선출 문제를 놓고 심한 내분현상을 보였고 군부 실력자 학백촌 국방부장이 행정원장(총리)으로 중용되자 야당측은 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항의시위를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하는 등 대만정국에 풍파가 그칠질 않았다. 게다가 대만출신 야당인사들의 대만 분리독립 주장에 대해 중국이 『좌시할 수 없다』는 강경자세를 보임에 따라 양안해협의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잘 풀릴 까닭이 없어 90년도 대만의 성장률은 5.2%로 지난 8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물가도 80년대 중반 이후 연2% 미만의 오름세를 보이던 것이 4.4% 상승했다. 물론 지난해엔 세계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대만은 정치불안이란 대내적 요인에 의해 경제가 보다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내적인 불안요인이 별로 없었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대만이 보여준 5.2% 성장률 등의 지표는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만큼 대만의 경제기반이 외부충격에 강하게 버틸 수 있게끔 실속있고 탄탄하다는얘기다. 이에 대해 2천만 주민들은 너나할것없이 대만의 살길은 오직 경제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깊게 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활동을 마비시키는 노사분규 등이 발생치 않은 점도 대만정제가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경제활동을 위한 모든 여건이 다른 때보다 상대적으로 나빴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대만의 무역수지는 1백28억달러 흑자를 보임으로써 역시 정치·경제적 혼란을 겪으면서 47억달러의 적자를 낸 한국과 좋은 대조를 이뤘다. 더구나 대만경제는 지난해 4·4분기부터 회복세를 보여 올 들어서는 정상궤도를 달리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대만정부는 과거 4년 기간으로 추진했던 개발계획을 올해엔 6개년의 국가건설계획(90년 7월∼97년 6월)으로 바꿔 경제발전의 새로운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이 계획은 기간산업은 물론 공공부지 시설에 대한 투자확대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기간중 연평균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 8천7백달러에서 97년에는 1만5천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짜여 있다. 건설계획의 마지막 시점을 97년 6월말로 잡은 것은 홍콩의 중국 귀속시기와 맞추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콩이 97년 7월1일 중국에 흡수되는 데 대한 불안심리를 극복하고 대외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와 같이 시점을 정했다는 것이다. 대만은 또 이번 계획에 미국·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비록 중국의 압력 등으로 대만과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끊었지만 개발계획추진에 따른 대형 프로젝트의 국제입찰에 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실리적인 측면에서 유대강화에 힘쓰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 제1의 외환 보유고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상태를 탈피하겠다는 얘기다. 대만은 또 중국대륙과의 경세교류에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대만정부는 1백56개 대륙산 농·공업원료의 직수입을 허용하는 등 직접교역을 확대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과거에는 투자·무역 등 모든 경제교류가 제3국을 통한 간접방식으로 이뤄졌었다. 경제교류의 확대로 중국대륙에 대만의 발전상을 널리 전파시켜 통일논의 과정에서 자신에 유리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겠다는 것이 대만당국의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 “위기엔 공감”… 여·야의 대응행보

    ◎혼미의 「5월시국」… 장내수렴 안간힘/신민,야 주도권 상실 우려… 양다리작전/여선 중진회담 제의등 정치복원 모색 5월 정국이 안개속을 헤매고 있는 가운데 여야 모두 당면문제들을 제도정치권내에서 해결해보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현재 시국긴장이 가중되고 있는 이유는 강경대군 치사사건에 이어 노측의 임금투쟁 시작과 「5·18」 등까지 겹쳐 노학연대투쟁 양상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국상황이 파국으로 이어지리란 관측은 맞지 않다. 안정을 희구하는 일반 여론이 아직 높은 데다 기초의회선거를 통해 이를 감지한 신민당이 선뜻 강경투쟁으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어 돌발상황이 없는 한 파란은 있겠지만 5월 정국도 그런대로 굴러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향후 정국 전개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역시 신민당의 태도이다. 신민당은 지금 뜨거운 쟁점으로 대두하고 있는 강군 사건과 관련,큰 테두리에서는 다른 야당 및 재야 등과 공동보조를 취하되 구체적 행동은 선별적으로 해나가겠다는 이중적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민당,특히 김대중 총재의 생각은 되도록 정치권의 입지를 확보해두자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태가 장외로 확산될 경우 신민당이 재야뿐 아니라 민주·민중당과도 대등한 위치로 전락,결과적으로 야권내에서의 주도권마저 상실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장내에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시각이라 볼 수 있다. 신민당은 이에 따라 외부적으로는 국회에 「대통령경고결의안」 「내각총사퇴결의안」을 내는 등 강경자세를 견지하고 있으나 내심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길 바라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민자당도 장외투쟁이 지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신민당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1일 당무회의에서 많은 당무위원들이 시위진압경찰의 잘못뿐 아니라 일부 학생들의 과격시위도 문제를 삼아야 한다는 양비론을 제기했다. 그럼에도 민자당 지도부는 사복체포조(백골단) 해체 등 시위진압방법의 근본적 개선을 거론하는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권에서 보수논리를 강조해 신민당을 압박할 경우 신민당으로 하여금 장외로 뛰쳐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가 위기의식을 공감,파국을 막자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강군 사건이 5월 정국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매끄럽게 마무리되기는 힘들 것 같다. 여권은 내무장관의 인책경질,정부측의 공식사과에 이어 시위진압방법 개선으로 강군 사건을 매듭지으려 하고 있다. 반면 신민당은 정치력으로 강군 사건을 해결키 위해서는 여권에서 보다 획기적 조치를 취해주길 바라고 있으며 「상징적인 내각사퇴」,즉 내무장관을 넘어서는 일부 개각을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이 장내에 남아 있는 명분으로 삼으려는 눈치다. 따라서 정부·여당이 신민당의 요구를 일부라고 수용치 않을 경우 제도권과 재야운동권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하는 신민당의 엉거주춤한 자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며 정국에 드리운 안개가 걷히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정국전개에 있어 단기적으로는 1주일여 남은 임시국회운영,특히 개혁입법 처리문제가 관심거리다. 임시국회 상임위나 본회의 진행에 있어 강군 사건은 이제 직접적으로는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상해치사사건을 시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야당의 대여공세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재야·학생운동권의 강군 사건과 관련된 시위가 계속된다면 신민당측은 이전에 공언했던 것처럼 개혁입법 등에 있어 여당이 수용할 만한 절충안을 제시키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도 과격시위 진압에 대한 일반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개혁입법처리를 일방강행키 힘들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 결국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개혁입법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국가보안법·안기부법은 물론 경찰법까지 처리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 아래 7월 임시국회로 처리를 연기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자당은 신민당에 대해 중진회담 재개를 제의하는 등 정치력 복원을 통해 회기내 개혁입법 처리를 위한 막바지 노력을 시작했다. 강군 사건에 이어 연속되는 대학생 분신사태,「5·18」까지의 시국상황 불안정 때문에 관망자세를 보이고 있는 신민당도 일단 중진회담 개최에는 응하고 있다. 결국 이번 임시국회가 끝난 뒤 「5·18」까지 시국상황이 큰 문제없이 지나간다면 광역선거전이 본격시작되면서 지금의 경색정국이 선거정국으로 바뀌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여권은 이 때문에 당초 6월초 실시를 검토했던 광역선거실시를 6월 하순으로 늦출 수도 있다는 입장을 정리하면서 여권과 노동자·학생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신민당도 불안한 시국상황이 정치권 자체를 뒤흔드는 사태로 악화되기보다는 적당한 긴장상태가 유지돼 광역선거전에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미묘한 정국분위기 가운데 일반의 시국불안을 해소키 위해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단독대좌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