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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胡錦濤 中 부주석 26일 한국방문

    胡錦濤 중국 국가부주석 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56)이 金鍾泌 국무총리서리의 초청으로 26일부터 30일까지 방한한다고 외교통상부가 8일 밝혔다. 胡부주석은 중국 국가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胡부주석은 방한기간중 金大中 대통령 및 金守漢 국회의장, 金국무총리서리등을 예방하는데 이어 각 정당 지도자 및 경제계 인사들과 면담을 갖고 양국간 선린 우호협력관계 방안과 한반도정세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胡부주석의 방한에는 중국 공산당 및 국무원 장·차관급 등 약 40여명이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石齊平 臺灣 사회대 문교기금회 상무 亞州週刊 기고(해외논단)

    ◎中 국가기구 축소 등 근본개혁 필요 ○등소평의 업적과 한계 스지핑(石齊平) 타이완사회대학 문교기금회 상무이사는 최근 야저우저우칸(亞洲週刊)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중국은 지난 10여년 동안 덩사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 실시로 일정 수준의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을 높였으나,여전히 국영기업의 낙후한 경쟁력과 민간·정부간의 협력 부조화로 난관에 봉착했다”며 “21세기를 앞두고 중국총리에 오른 주룽지(朱鎔基)는 국가 기구의 간소화 및 국영기업의 구조조정 등 근본적인 개혁조치를 통해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다음은 그의 칼럼 요지. 주룽지는 지난 3월 중국 인민들의 강력한 지지와 기대를 받으며 21세기로 나아가는 중국의 총리직에 올랐다.주 총리는 취임 회견을 통해 시정강령(施政綱領)을 국내외에 천명했다.시정강령은 국영기업 및 금융개혁,국가기구 개편 등을 통해 연평균 성장률 8%,통화증가율 3%,런민삐(人民幣)의 평가절하불가 등을 3대 국정지표로 삼는 한편 ▲식량유통 ▲투자체계 ▲주방 ▲의료▲재정세무 등 5개 부문에 대해 개혁을 시행한다는 게 그 내용이다. 국제 전문가들은 근래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전궤(轉軌)’단계라고 규정한다.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조정(調整)·전환기라는 것.사실 중국 현대화과정은 ‘역궤(易軌)’·‘전궤’·‘접궤(接軌)’·‘병궤(倂軌)’단계를 포괄하고 있다.전궤는 그중 한 단계이다.1949년 중국에 공산당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국은 거의 30년을 중앙 계획경제를 시행했다.그러나 78년말 덩사오핑은 시장경제 편입을 위한 대담한 개혁·개방정책을 내놓으며 정책방향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이는 역궤한 것으로 볼 수 있다.‘원궤(原軌)’는 가격통제와 공유재산제를 포함하는 계획경제이다.가격통제는 시장기능을 경색시키고 공유재산제는 인간의 노력동기를 봉쇄하는 탓에,두 요소는 경제를 말살시킬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두 요소를 방기(放棄)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가격통제를 없애 시장기능을 활성화하고 개인의 노력을 부추기는 사유제를 허용해야 한다.이는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하는 것이다.그래서 79년 이후는 계획경제의 요소가 점점 사라지고 시장경제 쪽으로 진입하는 조정과정의 ‘전궤’ 단계이다.지난 10여년 동안 중국은 전궤 단계를 거치며 생산력이 제고돼 국제경쟁력을 키웠을 뿐 아니라,국제적 위상도 높였다.그러나 계획경제의 틀을 깨지 못한 국영기업들은 극심한 경쟁압력을 받아 더욱 큰어려움에 부닥치고 있다.민간 부문이 커짐에 따라 정부 부문과의 협력이 원활하지 못한 점도 드러났다. ○WTO가입조건 획득해야 따라서 현단계에서는 국가기구 간소화 및 국영기업의 구조조정 등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국제경쟁력 유지와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게 된다.따라서 고도의 국제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국제사회가 함께 나아가는 게 병궤 단계이다.중국 개혁의 최종 목표는 중국과 국제사회가 함께 나아가는 병궤 단계로 볼 수 있다.지금은 병궤의 전단계로 먼저 거쳐야 하는 접궤 단계로 가는 과정이다.접궤 단계는 크게 조직·제도·이념 등 3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것이 중국과 국제사회가 조직적인 측면에서 접궤했다고 할 수 있다.WTO의 가입조건을 획득하는 것은 중국이 무역·금융·외환 등의 부문에서 필요한 개혁을 이뤄 국제경쟁력을 높였다는 것이다.이는 중국과 국제사회가제도적인 측면에서 접궤했음을 뜻한다.이밖에 중국은 최종단계인 병궤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융화돼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치국(治國)이념·정책·시정방향 등의 측면에서 조정이 필요하다.법치,인권중시,민주등을 강조해야만 이념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국제사회가 접궤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주 총리의 역사적 사명 중국 현대화의 도정(途程)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주 총리는 전궤 단계에서 접궤 단계로 가는 중요한 과정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현재 국제사회의 정세,중국의 개혁기초 및 조건,주 총리의 능력 등을 감안하면 전궤 단계에서 접궤 단계로 접근하는 형세는 이미 성숙돼 있다.하지만 국가기구 개편 및 국영기업 개혁 등 몇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주 총리시대는 도전의 시대이다.현재 중국은 전궤 단계로부터 접궤 단계로 진입하고 있으므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병존하고 있다.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명칭은 다르지만,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효율과 공평(혹은 정의)이라는의미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이 두 체제는 역사발전의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으나,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이다. 21세기 중국의 개혁이 전궤 단계로부터 접궤 단계로 완전히 진입하면 국제사회의 두 체제는 병궤 단계로 진전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21세기를 눈앞에 둔 중국의 역사에는 주룽지 총리가 덩사오핑이 결정한 역궤단계를 계승해 전궤 단계와 접궤 단계를 이끌어간 인물로 남을 것이다.
  • ASEM 후속 3대 조치 마련 분주/黨政 움직임 안팎

    ◎외국투자 유치 돕게 국내법·제도 등 정비 박차/근로자 불이익 최소화하며 노사정 합의 유도/사회불안 방지 차원서 획기적 실업대책 준비 국민회의,자민련과 정부 등 여권은 金大中 대통령의 런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세일즈 외교’노력이 결실을 거두도록 후속대책 마련에 분주하다.후속대책 핵심은 세 분야.첫째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둘째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며,셋째는 실업대책 마련이다. 당정이 우선 실천해야 될 과제는 외국 투자조사단의 조기방한이다.金대통령이 유럽 각국의 투자조사단을 유치해 놓은 만큼 조기실천을 위한 뒷받침이 필요하다.외교통상부,산업자원부 등 경제부처는 물론 국민회의,자민련의 ‘해외통’들이 모두 나서 총체적 투자유치 노력을 벌이기로 했다. 외국투자가 이뤄지도록 국내제도를 빨리 정비하는 것도 당정의 몫이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외국인투자 자유지역 설치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획기적 세제감면과 행정편의 제도 마련방안도 강구중이다.이와 관련,한번 서류만 내면 해당관청이 알아서 처리해 주는 ‘원스톱 제도’를 목표로 각종 제도정비를 서두르고 있다.지주회사 설립허용과 기업회계기준의 국제화,적대적 인수합병의 조기도입도 이미 추진되고 있다.기업분할제를 조속히 실시하고 공기업 및 방산업체의 외국인 매각도 허용한다는 생각이다.외국인의 토지매입 자유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외국인투자 활성화 방안은 우리 근로자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는 쪽으로 잘못 비칠 우려도 있다.이때문에 당정이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노·사·정 합의다.근로자들의 불이익을 최소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다소의 고통분담으로 큰 ‘파이’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나라경제도 살리고 노동자도 혜택을 보게 된다는 점을 집중 설득할 계획이다.여권은 노·사·정 합의도출을 위해 여야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이 문제를 당리당략에 이용한다면 외국인투자에 대한 적대감이 생길 수 있다. 대량실업은 사회불안 요소가 된다.외국인 투자가의 발길을 돌리게 할 뿐 아니라 국가위기관리 측면에서도 위험부담이 크다.당정은 실업대책을 최대과제로 생각,이 달안에 획기적 처방을 내놓을 예정이다.
  • 천도교 새교령 金光旭 도정

    천도교는 2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교당에서 제29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를 열고 새 교령에 光菴 金光旭 도정(73)을 선출했다. 金신임교령은 1946년 입교한이후 종의원장,종무원장등 요직을 거치고 (주)신화공업사 대표,(주)동아상호신용금고회장,한국종교인협회 부회장,아세아종교인평화회의 부회장 등을 지냈다. 金신임교령은 “이 땅에 人乃天 사상을 우뚝 세우는데 봉사하라는 명령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건물 임대·분양사업 개방/골프장운영·도정업도 함께/내달부터

    다음 달 1일부터 외국인들이 주거용이나 비주거용의 건물을 임대하거나 분양하는 사업을 하는 게 완전 개방된다.골프장 운영과 도정업도 완전 개방되고 종합 유선방송업(케이블 TV)에 대한 외국인 투자비율은 15%에서 30% 까지로 확대된다. 이와 함께 외국은행들의 국내 현지법인 설립을 통한 소매금융이 허용된다. 재정경제부는 30일 외국인투자를 활성화하고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투자 대상업종을 이같이 추가개방 한다고 발표했다. 외국인 투자자금의 운용을 신주(新株) 인수로 제한하는 투자회사 중 투자조합의 경우 투자자금의 80% 이상을 1년 이내에 신주 및 신주인수권부 사채,코스닥등록 벤처기업(장외등록법인)의 주식인수 방식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자산운용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외국인투자 추가개방으로 1천148개 업종 중 외국인투자 제한업종은 주유소영업업을 비롯한 미개방 18개,주정제조업을 비롯한 부분개방 24개 등 42개로 줄어든다. 재경부는 주유소업과 석유정제업 등 나머지 제한업종에 대해서도 올해 내에 부분적으로 추가 개방하기로 했다. 은행 현지법인 설립시 필요한 최소자본금은 시중은행은 1천억원,지방은행은 2백509억원이다.
  • 日 5년내 초·중·고 광통신망 연결

    ◎자민 ‘학교 정보 하이웨이’ 구상 경기대책 포함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제1여당인 자민당은 전국 초·중·고교를 광통신망으로 연결해 ‘원격 수업’ 등에 이용하도록 하는 ‘학교판 정보 하이웨이’를 5년여에 걸쳐 구축하기로 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29일 보도했다. 자민당은 이같은 구상을 98년도 예산통과후 마련하게 될 종합경제대책에 포함시켜 추진키로 했다. 일본 정부·여당은 경기부양을 위해 예산 통과후 공공 사업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16조엔 규모의 종합경제대책을 실시하기로 한 바 있다. 각급 학교에 광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은 종합경제대책에 포함된 공공사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서 추진될 예정이다. 학교판 정보 하이웨이 구축에는 총사업비 6천억엔이 투입될 예정으로 광통신망이 구축되면 도심 학교와 낙도가 같은 내용의 수업을 받거나 과외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고도정보화 시대에 어울리는 교육이 진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민당은 이와함께 각급 학교가 광통신망을 통한 인터넷 이용료와 퍼스컴리스 비용 등을 국가가 부담하기로 했다.
  • 대형건물 중수도 의무화 추진/환경부

    ◎물 부족지역·재개발 대상지 우선 적용 환경부는 24일 “대형 공공건축물 등 주요시설에 권장하고 있는 중수도 시설을 앞으로는 일정규모 이상의 모든 건축물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중수도 설치 의무건축물은 하루 300∼1천t의 수도물을 쓰고 있는 공공기관 건축물과 공장,백화점,호텔,스키장 등으로 제한하되 물 부족지역과 물사용량 급증지역,재개발 대상지역부터 우선 적용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올 상반기안에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겨 중수도설치 의무화 대상건축물 및 규모를 검토한 뒤 그 결과가 나오는 대로 시행 시기를 결정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현재 30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중수도 설치자에 대한 수도요금 감면혜택을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받아드리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수도로 하루 13만8천t의 물을 다시 사용하고 있으며 36곳에서 중수도 시설을 만들고 있다. 중수도에서 나오는 허드렛물은 주로 건설공사 때 살수용이나 조경용,수세식 화장실용,청소용 등으로 쓰고 있다. 환경부金鍾天 수도정책과장은 “지난 91년부터 중수도 제도를 도입,운영한 결과 하루 300t 이상 수돗물을 사용하는 영업장이 중수도를 설치하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권장사항인 중수도의 설치를 의무사항으로 바꾸기 위해 올 상반기안에 용역을 맡길 방침”이라고 말했다.
  • 선거제도:하(대한민국 50년:11)

    ◎67년 총선 131개 선거구 중 86곳 무효 소송/71년 대선선 지역감정 촉발 박 후보,94만표차 DJ눌러/80년 대선 ‘체육관통대선거’ 1표 기원 100% 찬성 기록도 그릇된 선거의 과정과 결과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후퇴시키기도 제자리 걸음으로 남아있게도 한다. 60년 3·15 부정선거의 과정은 4·19혁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또 4·19가 낳은 제2공화국은 허약한 권력기반으로 인해 5·16군사쿠데타를 낳았다.5·16은 유신체제를 낳았고 유신은 체육관 선거라는 기형적 선거제도를 잉태했다.유신은 필연적인 결과로 5·17이라는 사생아를 낳았다.87년 국민들의 욕구 분출로 대통령 직선제라는 정상적인 선거형태가 이루어지기까지는 30년가까운 세월이 흘렀다.이어 97년 대선까지 또 10년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여야 정권교체,후유증없는 공명선거라는 민주발전의 결과를 얻게됐다.한번 잘못끼워진 단추를 바로잡는데 역사는 자그만치 40년 가까운 세월을 요구했다. ○‘한지붕 두가족’ 민주당 분당 60년 4·19혁명후 7월 29일,민의원과 참의원 선거가 실시됐다.이어8월 12일,민·참의원 합동 간접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구파인 윤보선이 당선됐다.그러나 8월 17일 민의원 본회의에서 구파인 김도연 국무총리인준동의안이 부결됐다.이틀뒤인 19일에야 신파인 장면 국무총리인준동의안이 가까스로 가결됐다.내각제의 제2공화국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그러나 구파 대통령과 신파 총리의 갈등은 앞으로의 정국불안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한지붕 두가족’의 민주당은 끝내 민주당과 신민당으로 갈라섰고 몰락의길을 걷게 된다.당시 곽상훈 민의원의장이 당적을 떠나며 한 고별사는 다가올 상황을 극명하게 내다보고 있다.“민주당의 신·구파 지도자들은 파벌의성쇄에 앞서 당과 국가의 영고에 책임을 져야 한다.민족의 영웅이 될 수도있고 민족의 죄인도 될 수 있다.제1공화국은 이승만의 아집으로 망했다.제2공화국은 당신들의 아집과 파쟁으로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고,당신들의 아량과협조로 욱일승천할 수도 있다”” 새벽 총소리와 함께 시작된 5·16은 왜곡된 선거문화의 새로운 시작이었다.이후 92년 대선 이전까지 정치권은선거가 끝날때마다 부정선거와 지역감정이라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67년 5월3일 실시한 제6대 대통령 선거 결과 박정희 대통령이 신민당의 윤보선 후보를 1백16만여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선거 결과에 대해 신민당은 관권,금권,투·개표 부정 등 사상 유례없는 부정선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신민당은 이어 6월8일 실시된 7대 국회의원선거도 계획적 전면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무려 8개월동안 선거무효 투쟁을 벌였다.전국 131지역구 가운데 당선 및 선거무효 소송이 제기된 지역은 3분의 2에 달하는 86개 지역에 달했다. 70년 40대 기수론과 함께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부상한 김대중은 여세를 몰아 공화당의 박정희 대통령을 압박했다.3선개헌으로 권력연장의 토대를 마련한 박대통령은 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94만여표차로 눌렀다.7대 대선은 전형적인 조직 대 바람의 선거였다.안보논쟁이 가열되고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영남과 호남사이의 지역감정이 선거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여당의 지역감정 촉발에 김후보도대구 유세에서 “대중이가 대통령 자격은 있으나 전라도 출신이라서 못찍겠다면 그런 표는 안 받아도 좋다.63년 선거에서 박대통령은 전라도 지지표로 당선됐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이후 김대중 후보는 73년 동경 납치에서부터 80년 내란 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미국으로 망명하는 등 엄청난 정치적 박해를 받게된다. 3선개헌을 하면서까지 힘겹게 권력을 연장한 박대통령은 드디어 72년 10월17일,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헌정의 초시계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만다.이른바‘10월 유신’.비상계엄하에 국회는 해산되고 정치활동이 중지되는 헌정중단의 사태가 빚어졌다. ○85년 총선 신민당 돌풍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그해 12월15일 실시됐다.통대의원 후보자 선정은 해당지역의 경찰서장과 시장 군수,정보책임자 등으로 구성된 지역협의회의 자료를 토대로 관계당국이 결정했다. 72년 12월 23일 장충체육관.통대의원 2천359명 중 단 2표의 무효표를 제외한 전원이 박정희 대통령을 8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이후 통대의원들은 9대 박정희,10대 최규하,11대 전두환 등 세번이나 체육관 대통령 선출 거수기 노릇을 해야했다.79년 10월 26일.유신의 심장은 내부의 총격으로 무너졌다.이어 80년 ‘서울의 봄’은 신군부의 5·17확대 계엄과 함께 얼음장 밑으로 사라졌다.그해 8월 27일 통대의원들은 총투표자 2천525명 가운데 2천524명이 단독 후보인 전두환에게 찬성표를 던졌다.그나마 한명은 반대가 아닌 기권이었다.100% 찬성은 공산국가에서나 벌어지는 투표행태만은 아니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내연하던 민주화 바람은 85년 2월 12일 제12대 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창당한지 불과 한달도 안된 김영삼과 김대중 공동지분의 신민당이 지역구 50석을 얻었고 전국구까지 합치면 67석의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다음날 조간신문들은 ‘신당태풍’‘신당바람’이라는 제목으로 머릿기사를 장식했다.민정당은 놀랐고 신민당은 환호했으며 여당의 1중대 2중대로 불리우던 민한당과 국민당은 침통했다.워싱턴타임즈,뉴욕타임즈,르몽드 등 외신들은‘신민당의 부상은한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대변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이런면에서 ‘2·12총선’은 억눌려 있던 국민들이 깨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또 ‘체육관 대통령’ 선출제도의 변화를 감지케하는 전환점이었다.멈춰버린 역사의 시계바늘이 제자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이 역사의 시계바늘은 드디어 87년 정권이 국민에게 항복한 6·29선언으로 직선제대통령선거가 부활됐다.87년,92년 대선을 거쳐 우리 선거사는 97년에 이르러서야 여야정권교체라는 최초의 경험을 갖게된다. ◎선거관리 산증인 김유영 선관위 사무총장/“97년에 와서야 선거의식 성숙”/집권자의 확고한 공명의지가 관건 남조선 과도정부의 군정장관이었던 윌리엄 에프 딘 소장은 1948년 3월3일자 행정명령으로 ‘국회선거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 15명을 임명했다.이승복,백인제,이갑성 등이 15인 위원이었다.이어 치러진 5·10 총선이 대한민국최초의 선거였고 선거관리 역사의 시작이었다. 제2공화국은 헌법상 독립기관인 중앙선거위원회 필요성을 제기했다.이에따라 60년 6월17일 개별법률로서 선거위원회법이 공포됐고 헌법상 독립기관인 중앙선거위원회가 설치됐다.63년 1월 16일 선거위원회법은 선거관리위원회법으로 대체됐고 닷새후인 21일 역사적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창설됐다.초대 위원장에는 사광욱대법관이 취임했다. 63년 창설때부터 지금까지 선거관리의 현장을 한번도 떠난적이 없는 김유영 중앙선관위사무총장은 현대 선거관리사와 개인사의 궤적을 같이한다.김총장은 “정부여당에 의한 조직적인 3·15 부정선거는 결과적으로 4·19와 5·16으로 이어져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총장은 “3·15 이후 60년대 선거는 조직적인 정부의 부정선거는 없었지만 탈법·관권·금권선거가 부정적인 선거풍토로 자리잡았다”면서 “당시는 여야 야나 가릴것 없이 선거법이 있어도 교통법규 정도로 여기는 경시풍조가 만연했다”고 당시의 선거풍토를 회고했다. 김총장은 88년 치러진 여소야대 4당체제하에서의 동해 국회의원보궐선거가 선거문화 발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보고있다. 그는 “선거 사상 최초로 4당 국회의원후보와 사무장 전원이 고발되고 후보매수로 한 정당의 사무총장이 구속된 혼탁상은 선거풍토 개선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이후제정된 통합선거법에 따라 치러진 97년 12월 19일 대선은 선거사상 유례없는 공명선거로 평가했다.김총장은 “92년과 97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부정선거 시비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면서 “97년 대선은 정당과 후보자가 결과를 깨끗이 승복했고 국민들도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말했다.김총장은 “국민들의 선거의식은 이제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권자의 확고한 공명선거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 “21세기 초강대국 건설 매진”/중 정부 보고 내용

    ◎시장경제 대비 행정·금융·국유기업 개혁/대대만 통일 협상은 1국 2체제 방식 적용 【북경=정종석 특파원】 9일 상오 9시(현지시간) 북경인민대회당.제9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일.정부사업보고에 나선 이붕 총리가 “우리는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건설의 길을 따라 21세기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자 대회장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앞으로 5년 동안 중국이 걸어갈 길을 밝힌 전인대 개막식의 화두는 단연 ‘21세기’와 ‘초강대국 중국’에 모아졌다.이총리는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현대화 위업은 21세기를 향해 전면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여러 차례 ‘21세기’를 강조한 뒤 연설을 마쳤다. 미국의 연두교서에 비견되는 이 보고서는 올해부터 시작하는 중국의 제9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의 중점사업을 절반 이상 담고 있다.오랫동안 ‘철밥통(철반완)’으로 상징돼 온 국유기업의 개혁과 정리실업자 재취업 문제,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인민폐(위안화)의 환율안정 등 당면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진력하겠다는 내용이다.미국에 대항하는 21세기 초강대국 건설을 위해서 그만큼 경제건설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정부가 중시하는 또 다른 현안은 행정부기구 개혁이다.과거 계획경제 시절에 마련한 현재의 방만한 정부기구를 갖고서는 국제화시대의 시장경제질서에 대비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그래서 주용기 부총리의 전폭적인 주도 아래 행정부인 국무원의 부와 위원회를 현재의 40개에서 29개로 줄이기로 했다.특히 직접 경제를 관리하는 전문부서를 줄이고 거시적 조절통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미국,러시아,일본 등 세계 3강과의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등 교과서적인 원칙론만을 밝혔다.그러나 대만문제에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대만은 신성한 중국의 영토에서 갈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라고 못박고 대만독립을 조작하는 등 각종 분열활동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홍콩과 같은 ‘1국 2체제 방식’을 적용,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거듭 표명했다. 한반도 문제는 종전과 달리간단히 표현했다.남(호혜협력 촉진) 및 북(친선관계 수호)과도 관계를 유지,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힘써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종래의 ‘남=경제’‘북=정치’라는 한반도정책의 틀을 유지하면서 한반도의 전쟁방지 억제 등 안정에 체중을 싣고 있다.이는 만일 한반도에 전쟁같은 큰 돌발사태가 일어나면 중국의 경제발전 야망에도 큰 차질을 초래하기 때문인 것 같다.
  • 경제 성패 재벌개혁에(사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기업과 합의한 5대 개혁,즉 기업의 투명성 확보·상호지급보증 금지·건전한 재무구조·핵심기업 설정과 중소기업에 대한 협력·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책임성 확립 등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밝혔다.새정부의 경제정책 성패는 재벌개혁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개혁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새 정부는 재벌개혁을 추진하되 자율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정부는 30대 재벌의 상호지급보증 금지와 결합제무제표 작성 등 제도적 개선책을 추진하고 금융기관과 기업간에 자금거래에 관한 약정을 통해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 등을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도정책은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그 책임은 철저히 묻겠다는 것으로 주목을 끈다.현재 진행중인 은행과 재벌기업간의 재무구조 약정은 바로 금융기관 책임경영제를 확립하기 위한 출발이다.정부가 이번 주총에서 은행인사에 간여하지 않은 것은 책임경영의 신호탄으로 보인다.은행이 부실기업에 대출을 해주면 은행 경영진이 책임을지는 것은 물론 부실화된 은행을 퇴출시키는 선진국식 금융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려는 상호지급보증 금지와 결합제무제표 작성은 대기업의 선단경영을 제도적으로 막는 것이고 은행이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거나 대출한 돈의 회수를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돈을 빌려준 은행이 돈을 빌린 기업의 경영상태를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또 신용평가기관은 평가방법을 선진화해야 할 것이다.국내 신용기관이 선진국 신용평가기관처럼 권위있는 평가를 한다면 대기업이라도 부실화된 대기업은 돈을 빌리기 힘들게 되고,그렇게 되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은행의 재무구조 약정과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게 되면 경제개혁은 본 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정부의 유도정책과 금융기관의 책임경영 확립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 경제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 격동의 대한제국 이면사/철없는 임금(비록 남가몽:1)

    ◎고종 첫 어명 “계동 군밤장수 처형하라” 대원군은 미친 사람 행세를 해가면서 와신상담 집권의 기회를 노리다가 1863년 마침내 둘째 아들 재황을 왕위에 올려 놓는데 성공하였다.이 분이 바로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다.고종의 즉위식 날이 음력으로 12월13일이었으니 양력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취임식 날인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의 나이는 열두살 철없는 어린아이였다.만으로 따지면 10살 밖에 안되는 아이였으니 요즘 같으면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다.그러나 고종 앞의 철종이 18살이었고 그 앞의 헌종이 8살,그 앞의 순조도 11살 나이로 등극하였으니 당시로서는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대원군 둘째 아들… 12세 즉위 왜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계속해서 왕위에 올랐느냐 하면 순조,헌종,철종 등 3대 60여년에 걸쳐 세도정치를 하던 안동 김씨가 의도적으로 어린 왕을 세워 권력을 전단하려 했던 탓이라 한다.그런 세도정치하에서 흥선군(흥선대원군은 고종 즉위 후에 부른 존칭)처럼 난처한 사람은 없었다.흥선군은 영조대왕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었으니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였다.그러니 그는 안동 김씨들의 일급 요시찰 인물이었다.까딱하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죽는 몸이었다.말이 세도정치지 사실상 군사독재보다 더한 공포정치였다.그러니 철종 14년간은 대원군으로서는 살얼음 밟듯 조심하여 살아야 했던 눈물의 재야시절이었다. 흥선군의 사저는 최근 복원된 운현궁이다.말이 궁이지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흥선군이 거지나 다름없이 살았던 초가 삼간이었다.이 초가 삼간에 왕기가 서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집터 때문이었다.터 좋은 데를 명당자리라 하지만 운현궁 자리는 그보다 더 좋은 왕후정승이 나는 터,대지였다. 운현궁 터에는 본시 관상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관상대는 일명 서운관이라 했으므로 서운관의 구름 운자를 따서 운현궁이라 했다는 것이다. 관상대라면 천기를 엿보는 기관이다.왕이 되는 것은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천기를 엿보는 고개마루의 초가집에서 왕이 났다.운현궁에 왕기가 서린다느니 또 성인이 난다느니하는 소문은 벌써 철종 초년부터 났었다.그러면 그럴수록 흥선군의 처신이 더 어려워져 마침내 탁질양광,옛날 양녕대군이 그랬듯이 온갓 미친 짓을 다하며 정신병자처럼 행세하여 안동 김씨의 눈을 속였던 것이다. 고종이 왕좌에 오르게 된 데에는 집터 말고 고종의 관상이 좋았다는 설도 있다.경상북도 청도에 사는 박유붕이라는 애꾸눈 관상쟁이가 있었는데,어느날 운현궁에 와서 고종 얼굴을 보더니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물리치고 난 뒤 “왕이 될 관상이니 이 말을 절대 누설하지 마십시요”라고 했다고 한다.이 사람은 그 공으로 고종이 즉위하자 이듬해 경기도 남양부사와 수사로 임명되었다고 하니 관상보는 것도 출세의 한 방편이었다. 1863년 말 강화도령으로 이름난 철종이 나이 32살의 젊은 나이에 후사도 없이 죽게 되니 흥선군은 극비리에 조대비와 내통하여 전격적으로 후계자를 자신의 둘째 아들로 결정해 버렸다.즉위식은 지금의 창덕궁 안에 있는 인정문에서 거행되었다. ○“운형궁에 왕기 서린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누가 대통을이을 것인지 논란이 많았다.중론이 분분하여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사슴(대권)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이와같이 의론이 분분하게 갈려 있는 시점에 조대비가 특별히 처분을 내려 운현궁의 흥선군 제2자 재황으로 대통을 잇게 한다는 명령을 내리니 누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그리하여 12월 길일 양신에 고종이 보위에 오르니 만조 백관들이 모두 축하하고 만세를 불렀다.한쪽에서는 철종의 장례를 치르고 한쪽에서는 즉위식을 거행하니 조정의 백관들은 눈코뜰새가 없었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철없는데다가 평소 굶주리며 자라온 고종이었기에 옥좌에 앉자마자 제일성으로 하는 소리가 계동에 사는 군밤장사를 잡아다 죽이라는 것이었다. 놀란 대신들은 황급히 제지하였다. “전하가 지금 보위에 오르시어 성선의 덕으로써 정치를 하셔야 하는데 어찌해서 주살의 위엄을 먼저 보이십니까” 이에 고종은 반박하여 말하기를 “다른 이유는 없다.내가 여러 번 군밤 하나를 달라고 하였으나 한번도 주지 않았으니 이 어찌 인심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이같이 이익만 알고 의리를 모르는 자는 죽어 마땅하며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의 불선한 마음을 막아주어야 하는 것이다.어찌 내가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그를 죽이려고 하겠는가.” 이 말을 듣고 대신 한 사람이 아첨하여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시여.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여. 다른 사람의 불선한 마음을 막는다는 교를 내리시니 과연 임금의 도량에 알맞습니다.그러나 일개 하찮은 군밤장사를 효수하라는 것은 전하께서 처음 등극하신 자리에서 혹 국가의 화평한 기운에 미안한 일인 듯 생각됩니다.” 이에 수렴청정을 하게 된 조대비(신정왕후)는 교를 내리기를 “대신이 말씀드린 것은 금석과 같은 말입니다.그 효수하라는 명령은 거두어 들이시는 것이 타당할 것 같으니 짐짓 그만두고 논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했다. 이 말을 한 대신이 다름 아닌 안동 김씨 핵심인물이었는데 그 아첨하는 말솜씨는 후세의 정치인들에게 으뜸 가는 귀감(?)이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중앙부처 조직·인력조정 내용:Ⅰ

    18일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가 확정,발표한 중앙부처 내부조직 및 인력조정안은 다음과 같다. ◇내부조직 개편의 내용 ▲인력의 감축 가.대상:16만1천8백55명(국가 일반공무원) ­중앙부처:9만5백1명 ­현업기관:7만1천3백54명 *대통령비서실,경호실,감사원 제외(별도계획으로 추진) *교육공무원(28만6천1백37명),경찰·공안(11만2천2백16명)제외 나.감축:1만7천6백12명(정원의 10.9%) ­98년도:7천7백62명(4.8%) ­99년도:6천3백92명(4.0%) ­2000년도:3천4백58명(2.1%) ▲유사 관련 기능의 통합 ­외교통상 교섭기능을 외교통상부로 일원화한다. ­농수산 기본통계 작성기능을 통계청으로 일원화한다. ­중소기업정책기능을 중소기업청으로 통합한다. ▲국가경쟁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능은 보강 ­지속적인 정부혁신을 위한 행정개혁과 규제개혁 기능을 보강한다. ·기획예산위원회에 ‘정부혁신실’ 설치 ·국무조정실에 ‘규제개혁조정관’ 설치 ­국민의 권리구제기능을 보강한다. ·행정심판위원회,국민고충처리위원회 보강 등­특허 심사 전문인력을 보강한다.(96명) ­식품·의약품 안전과 동·식물 검역기능을 강화한다.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청’ 신설 ·동·식물 검역인력 증원(70명) 등 ­여성정책 관련 기능을 보강한다. ·여성특별위원회에 ‘사무처’(4개 조정관) 설치 ·교육부 등 5개 중앙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 신설 ­고용안전 기능과 국민복지 기능을 강화한다. ·고용보험 담당인력 증원(120명) ·‘국립공주정신병원’ 신설(162명) ·보건복지부를 업종별 조직에서 기능별 조직으로 개편 ▲지방자치단체 기능 이관 ­문화관광부소속 국립지방박물관(9개),칠백의총관리소의 관리 등 ­해양수산부의 수산종묘배양장,어촌지도소 기능 등 ­농촌진흥청의 종자공급소(2000년) ▲민간위탁 및 이양 ­항로표지 제작·수리,선박검사,항만청소선 운영 등 항만관리기능(98∼99년) ­국군홍보관리소의 제작·집행기능(99년) ­대덕연구단지 관리,서울과학관 운영 등 시설관리·운영기능(99년) ­국립목포결핵병원 운영(99년) ­국립중앙극장 운영 등(99년) ­건설공사의 시험·조사,항공무선표지소 운영(99년) ­국제교육진흥원의 국제교육교류사업(99년) ­농산물 검사,추곡수매 업무(2000년) ▲공사화 추진 ­철도사업 및 우정사업은 2001년에 공사화(약 6만명) ­지방산림관리청의 국유림관리는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통합(약 730명:99년) ▲책임경영행정기관(Agency)화 ­운전면허시험장의 운전면허 기능(1천2백70명),국립의료원(801명),교육훈련기관 등 ▲행정기관 운영의 효율화 ­총액예산제도를 도입·운영한다. ·예산 총액범위 내에서 각부 장관의 재량권 확대 ­공무원 총정원제를 도입·운영한다. ·공무원 총정원을 법령으로 규정 ·장관에게 ‘과’ 단위 이하 조직편성 자율권 부여 ­실·국·과 조직외에 ‘팀’·‘단’ 등 탄력적인 조직구성이 가능토록 한다.(통상교섭본부 등) ◇정부혁신을 위한 제도의 개선 ▲경쟁원리에 입각한 인사관리 혁신 ­고위직 공무원의 계약제 임용과 성과급 제도를 도입한다. ­행정의 전문화를 위한 인사제도 개혁을 추진한다. ▲성과관리체제의 확립 ­중장기 국가전략계획과 연계하여 성과 위주의 목표 관리체계를 구축한다. ▲고객중심 행정서비스 실현 ­‘시민헌장제도’ 도입 등 행정서비스 제공에 시장 및 경쟁원리를 적극 도입한다. ▲전자정부의 구현 ­정보자원의 중점관리 및 One­Stop/Non­Stop 행정서비스 체제를 구축한다. ▲별도정원 인력의 감축 ­국내외 각종 연구소 및 국제기구에 파견된 별도정원 인력은 2년에 걸쳐 30%를 감축한다.(교육파견정원은 별도) ◇분야별·직급별 감축 내역 □중앙부처 일반직 및 현업기관 구분 현정원 감축 감축% 계 159,806 △17,462 10.9% 정무직 97 △15 △15.5% 1급 138 △14 △10.1% 국장급(2·3급) 713 △65 △9.1% 과장급(3·4급) 2.871 △167 △5.8% 5급이하 155,987 △17,201 △11.0% □외무공무원(재외공관 포함) 구분 현정원 감축 감축% 계 2,049 △150 △7.3% 정무직 3 1특1·2급 72 △12 △16.7% 1급 68 △2 2.9% 2·3급 355 △21 △5.9% 4급 470 △17 △3.6% 5급이하 1,081 △99 △9.2%
  • 미군정 폐지와 행정권 인수(대한민국 50년:7)

    ◎정부수립후 3개월 지나서야 ‘정권’ 확보/한·미대표단,군­경찰 지휘권 놓고 첨예 대립/하지­이승만 직접담판 통해 ‘점진 이양’ 합의 1948년 9월4일 열린 제헌국회 제57차 회의에서 이범석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정부와 미군정 사이에서 진행되는 행정권이양 회담에 관해 중간보고를 했다.이총리의 보고는,국회가 9일전 긴급결의해 국회의장 명의로 서한을 보낸데 따라 갖게 됐다.이총리는 회담에서 한국측 수석대표였다. 이총리는 먼저 “한미 양국간에 이견이 있어 회담에 매달리다 보니 경과보고가 늦어졌다”고 사과한 뒤 “행정권을 완전히 이양받은 다음에야 인적·물적 토대에 근거하여 시정방침(국정지표)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이날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20일째인데도 정부가 아직 행정권을 인수하지 못해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사실을 국무총리가 공개시인하고 양해를 구한 것이다. ○재산권처리 협상도 난제 2년 11개월에 걸친 미군정은 형식상 48년 8월16일 0시를 기해 폐지됐다.16일 아침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령 제1호를 발표,미군정청 과도정부로부터 이관되는 행정업무를 11부4처별로 정리했다.이에 따라 17일부터 신생정부 각부처의 장은 과도정부의 미국인 고문들과 구체적인 인수절차 협의에 들어갔다.19일에는 대통령 담화를 통해 과도정부에 소속된 한국인 관리의 직책을 새정부에서도 보장했다. 이처럼 한국정부가 발빠르게 인수절차를 밟았다고 해서 행정권이 쉽게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양쪽은 인계인수할 행정권의 범주를 결정하는 큰 테두리에서 상당한 견해차를 보였다. 한국정부와 미군정 간의 행정권이양 회담은 16일 하오2시 중앙청내 미군정 민사처 사무실 200호실에서 처음 열렸다.양쪽 대표는 한국에서 이총리와 윤치영 내무부장관·장택상 외무부장관,미군정측의 무초 주한미국대사·헬믹미군정 민사처장(소장)·드럼라이트 미군정 정치고문 참사관 등 6명이었다.무초대사는 그달 23일에야 부임하는 바람에 첫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회의는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첨예하게 대립한 부분은 ▲군(당시의 조선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과경찰에 대한 지휘권 문제 ▲한미간 재정 및 재산권처리에 관한 협정 등이었다.군정측은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는 한 군과 경찰에 대한 지휘권을 미군사령부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정부로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재정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측이 미군정이 보유한 물적 재산을 최대한 넘겨받기를 원했고,더불어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도 요구했다.회의에 진전이 없자 양쪽은 하루에 상하오 두차례로 회동을 늘리기로 합의,이를 한국정부 김동성 공보처장이 정식 공표하기도 했다. 당시 회담에 임한 미군정측은 “이범석 총리를 비롯한 한국측 대표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손아귀에 쥐어 있기 때문에 논의과정에서 권위를 갖지 못한다”는 시각을 가져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가 출국을 사흘 앞둔 8월24일 이대통령을 방문,직접 담판을 짓고서야 ‘군경에 관한 통수권’문제가 해결됐다.26일 조인한 ‘군사통수권 이양에 관한 협정’내용은 ▲군경에의 통수권은 가급적 점진적으로 이양하되 ▲미국이 국방경비대·해안경비대 장비를 원조하며 ▲미군이 주둔하는 한 이 문제를 계속 협의한다는 것이었다. ○9월30일에 시정연설 이 합의에 따라 경찰지휘권이 대한민국의 내무부장관에게 정식으로 넘어간 것은 9월3일 정오를 기해서였다.내무부는 곧바로 경찰조직 9국실 가운데 감찰실·총감부·수사국·교육국·공보실 등 5개국을 없애고 공안국·통신국·총무국·여자경찰국 등 4국실만 남기는 개혁을 단행했다.지방경찰 직제는 그대로 유지했는데 막상 지방 경찰력을 인수할 때는 미군정청과 가까운 일부인사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물자 현금 인사 및 정부직권의 이양’협정은 9월11일 타결됐다.이승만 대통령은 9월30일 국정지표를 제시하는 시정방침 연설을 할 수 있었다.미군정 과도정부의 중앙 각부처가 인원·재산 등을 한국정부에 이관하는 작업이끝난 날은 11월 18일이었고 지방 행정기구까지 완전히 신생정부가 인수한 때는 11월 20일이었다.정부수립 석달여가 지나서야 대한민국의 행정권이 비로소 확립된 것이다. 미군정청(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USAMGIK)은 1945년 9월9일 서울 중앙청(옛 총독부)에 설치됐다.행정실무를 책임질 첫 군정장관으로는 아놀드 소장이 임명됐다.미군정은 초기부터 ‘영어를 알고 행정겸험이 있는’한국인을 활용한 고문제도를 시행했다.45년 12월에는 한 직위에 미군과 한국인을 한사람씩 두는 ‘한인·미인 양국장’제도로 바꾸었다.이때 참여한 인사가 광공국장 대리 오정수,학무국장 유억겸,농상국장 이훈구,경무국장 조병옥 등이다. ○행정훈련서 친미 양성 해방된지 1년쯤 지났을 때는 모든 부처의 장에 한국인이 진출,한인관료 체계가 자리잡았다.47년 2월12일 안재홍을 민정장관에 임명했고,그해 6월3일에는 미군정청 한국인기구를 ‘남조선 과도정부’라 개칭했다.이어 47년 9월12일에는 행정권을 남조선과도정부에 넘겨 새정부에의 이양에 대비했다. 이같은 미군정청의 정책에 대해서는 두가지 엇갈린 평가가 존재한다.하나는 미군정이 나름대로 일정표를 갖고 한국인들에게 행정훈련을 시켰다는 것이며,다른 하나는 신생국가에 친미파를 조직적으로 양성했다는 시각이다. 미군정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토대를 마련한 공이 적지 않은 반면에,일제의 한인 관료군대부분에게 재생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일제청산에 큰 걸림돌을 남기기도 했다. 미군정이 이땅에 시행한 법령은 태평양 미육군 총사령부 포고 4건,남조선과도정부법령 14건,미군정법령 219건,행정명령 24건,부령 및 지령 115건,조선과도정부입법결의안 4건,미군정청포고 7건,기타 11건 등 모두 398건에 이른다. ◎미,한국협상대표단 불신/본사 특별취재반,‘제이콥스 보고서’ 입수 확인/“이범석 권한 없고 이승만이 모두 결정” 미국이 한미 행정권 이양회담에 임하면서 이범석총리를 비롯한 한국측 대표단에 불신을 가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입수한 ‘제이콥스 보고서’는 당시 회담 분위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J K 제이콥스는 주한 미24군 정치고문으로 회담경과를 정기적으로 미 국무부에 보고했다.이번 자료는 1948년 8월22일 작성했으며 그가 보낸 5번째 보고서이다. 제이콥스는 8월20일 상오10시와 하오2시 7∼8차 회의가 잇따라 열렸으며,7차 회의에서 이총리가 “자신에게는 권한이 없고 결정권은 아직도 이승만 대통령 수중에 있다”고 실토했음을 보고했다.이어 미군정측의 헬믹소장이 구체적인 항목들을 나열하며 의견을 물었지만 이총리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한국측 태도에 자극받았음인지 하지사령관은 8월24일 이승만을 만나 ‘군사통수권 이양 협정’을 직접 협상했다.미 본국 정부도 우회전술로 한국정부를 압박했다. 트루만 미국대통령은 8월27일 ‘한국경제원조 계획’을 미군정에서 다루지 말고 국무부 경제협력국에서 수립할 것을 지시했고,마샬 국무장관은 9월1일 기자회견 석상에서 “미국은 국제연합 한국위원단(UNTCOK)의 보고가 있을때까지 행정권 이양에 관한 최종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고 공언했다. 이후 한미행정권 이양에는 가속도가 붙었다.이승만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기 보다는,회담에서 상대가 내민 카드를 서로 탐색하다가 결국 수뇌부에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특별취재반 ▲이경위 부국장겸 정치부장 ▲이용원 문화부 차장 ▲김경웅 정치부기자 ▲최병렬 문화부 기자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정치부 기자 ▲서정아 정치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노사정위 부문별 합의 내용

    1.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보 및 구조조정 촉진방안 ▲99년부터 대규모 기업집단(재벌)의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외부감사인 및 회계관계인의 책임을 강화하고 부외부채의 공시,전자공시제도 등 기업공시제도 개선 ▲99년부터 자기자본의 5배이상 차입금 이자에 대해 손비 부인,연차적으로 손비부인한도 확대 ▲재벌에 대한 대출시 주요 채권은행과 재무구조 개선협정 체결 ▲지배주주의 자기재산에 대한 부채상환 증자 보증 및 한계기업과 불요불급한 자산 영업의 처분 등 자기자본 비율의 획기적 제고를 위한 기업의 구체적 계획 수립 ▲재벌의 지배 대주주,기조실 임원의 경영책임을 묻기 위한 상법 개정 ▲기업의 핵심주력부문 설정 및 중복 사업의 자율적 교환 추진 2.물가안정 및 경제운용에 관한 사항 ▲경제정책 최우선과제로 물가안정을 추진 ▲98년도 소비자물가상승률 9%선 억제 ▲공공요금 조정시 근로자,소비자 대표 참여 의무화 ▲소비자물자 통계작성시 시민단체,노조대표 등의 참여방안 강구 및 생필품 가격 등 관련자료 공개 ▲IMF의 분기별 이행실적 점검 및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한 노조의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금리 등에 대한의사 반영 ▲노사정위 요청시 생필품 가격 동향 등 물가관련 자료 보고 ▲매점매석 요건 구체화 및 단속권한의 지방자치단체 위임 3.종합적인 고용안정 및 실업대책 ▲이직전 6개월 이상 보험료 납부한 실직자에 실업급여 지급 ▲실업급여의 최저지급기간 60일 연장 및 최저임금의 70%로 최저지급수준 상향조정 ▲실업률의 일정수준 이상 지속 등 고용불안 발생시 일정기간 동안 실업급여 지급기간의 30∼60일간 연장 ▲실직자의 주택자금 상환,전세자금,의료비,본인 또는 자녀 학자금(대학생포함) 등의 부담을 고려 생활안정자금의 저리 대부사업 실시(98년중 1조원 이상의 재원을 마련해 담보능력이 취약한 장기실직자도 생활안정자금의 대부수혜 혜택 부여) ▲경영상 이유로 인한 실직자에게 이직후 1년간 직장의료보험의 혜택을 부여하되 보험료의 50% 직장의보에서 지원 ▲공공직업안정 기관 및 인력의 확충보강과 전국적인 취업정보망 확보 ▲실직자에 대한 직업훈련프로그램 확대,직업훈련 쿠퐁제 도입 등으로 20만명이상의 실직자에 대한 직업훈련 체제 확보 ▲고용보험 미적용자에 대한 직업훈련 기회 대폭 확충 ▲장기실직자의 공공분야 채용 등을 통한 5만명 규모의 고용창출 추진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을 경우 고용안정 도모를 위해 자율적이고 성실한 협의를 통해 연장근로시간 단축,근로시간 조정,임금수준 조정,배치전환,재훈련실시,휴직,휴가 등 해고회피 노력 ▲98년 상반기중 가칭 ‘근로시간위원회’를 구성,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 방안 강구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해고 발생뒤 2년이내 근로자 채용시 해고자 우선 고용 노력 ▲외국인력 규모의 단계적 축소 ▲98년중 외국인력관리제도 마련 ▲일반회계,고용보험기금,무기명 장기채권 발행 등을 통한 5조원 규모의 98년도 고용안정 및 생활안정재원 확보 ▲실업률 상승 추이 및 고용보험 재정수지 감안,추가재원 필요시 노사협의로 고용보험요율의 상향조정과 일반회계 등 추가재원 확보 4.사회보장제도 확충 등 저소득층 근로자 생활보호대책 ▲사업도산시근로자의 임금채권 보장 방안에 관한 법안 2월 국회에 제출 ▲보유과세 및 변칙적 상속 증여에 대한 과세 강화 등 상속.증여세제의 개선 추진 ▲고용보험과 산재보험,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의 보험료 통합 ▲공공자금관리기금법 제5조의 삭제문제와 의료보험 일원화 및 확대적용문제 98년중 신정부에서 입법 추진 ▲4대 사회보험제도의 민주적 관리를 위한 사회보험 관련 위원회에 노사 및 기타관계자 대표의 참여 확대 ▲영세사업장의 근로자보호 위해 5인미만 사업장에 대해 근로기준법 일부조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98년중 관련법 개정 5.임금안정과 노사협력 증진방안 ▲기업의 부당한 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근절,고용안정을 위한 최선의 노력과 노조의 기업경쟁력제고와 고용안정을 위한 생산성 향상 및 품질개선 적극 노력 ▲IMF 경제위기에 편승한 노사의 불법행위에 엄정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산업평화 유지 노력 ▲노사 공동의 ’노사협력지원센터’ 구성 ▲성과급 배분제도에 대한 세제지원 방안 강구 ▲정부투자기관의 예산편성과 민영화 과정에 노사대표의 의견 반영 ▲택시사업 완전월급제의 조속 실시 6.노동기본권 보장 등 민주적 노사관계 확립 ▲공무원 99년 1월부터 직장협의회 설치 ▲교원 97년 7월부터 노동조합 허용(98년 정기국회에서 법개정)▲올 상반기중 노조정치활동 보장 ▲노조자립 촉진을 위한 정부측의 세제지원 방안 강구 ▲지방노동관서의 노동행정업무 일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98년 2월중 법개정) ▲노사정위의 법적상설기구화 7.노동시장의,유연성 제고방안 ▲고용조정(정리해고) 유보조항 삭제(a,조문명: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b,해고요건:경영상의 이유에 의해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할 경우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 인수 합병의 경우에도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봄.c,해고회피노력: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도록 함.d,대상자 선정기준: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해 해고자 선정(성차별 금지 규정).e,해고절차:60일전에 근로자대표와 해고회피방법 및 선정기준에 대해 통보하고 성실한 협의를 거쳐야 하며,노동부에 사전신고.f,재고용(리콜제) 노력 의무화 ▲근로자파견제도의 대상업무 전문지식·기술·경험 분야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허용업종 선정 ▲단순업무 분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금지업종을 정하되 98년 2월 관련법 제정 8.국민대통합을 위한 건의사항 ▲산업평화와 국민대통합의 계기가 될 수있도록 합리적 기준을 정해 구속노동자 석방 및 사면·복권 대통령당선자에게 건의 ▲98년 상반기중 국회에서 경제청문회 개최 방침 지지 ▲정치권의 고통분담과 고비용 정치구조 타파를 위한 부패방지법,자금세탁방지법의 조속한 제정과 선거법,정당법 등의 전향적 개정 요청 9.수출증대 및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국민운동 전개 ▲수출관련 제도정비와 규제완화 추진 및 수출금융의 조기정상화 대책 추진 ▲기업의 자본재 국산화,디자인 경쟁력 강화,에네지 절약형 생산구조 확립을 통한 수출경쟁력 제고 ▲근로자와 가계의 국제수지 개선 앞장 노력과 기업의 근로자 근로의욕 고취 노력 ▲국제수지개선을 위한 민간주도의 비상대책기구 구성 10.기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국민의 역할에 관한 사항 ▲사교육비 획기적 절감책 마련 ▲정부 조직의 통폐합 및 예산절감 노력 ▲불합리하고 과도한 행정규제 완화와 기업부담 경감을 위한 획기적 조치 마련 ▲4대 보험과 노동복지 정책의 연계성 강화 ▲금융의 자율성 확고히 보장
  • 중 공산당 상무위원 호금도 왜 오나

    ◎“전환기 한국 중시” 고위급 파견/당서열 5위… 요직 거친 차세대지도자/강 주석 친서 휴대… 새 정부와 관계 강화 호금도 중국공산당정치국 상무위원은 당서열 5위이나 강택민 국가주석과 함께 당을 이끄는 양두마차의 한 축이다.21세기초 강 주석을 이을 핵심인물로 꼽힌다. 그는 지난 42년 12월 상해출생으로 명문인 청화대학을 졸업했다.정부나 국회보다도 당우위인 중국에서 줄곧 당직만을 맡아온 성골로 유일한 50대의 최연소 상무위원.현재 당서기처 서기와 당중앙학교 교장을 겸하고 있다. 지난 92년 서장자치구 당서기로 있다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2000년이 되어도 그의 연령은 58세에 불과하며 현재 국가 간판급 지도자군 가운데 가장 유력한 차세대 지도자로 여겨지는 실세이다. 그러한 호 상무위원의 한국방문은 오는 8일로 예정된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중국방문에 이은 것으로 새정부 출범을 맞아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양국의 실세급 지도자의 교환방문은 빠르면 연내에 김대중대통령당선자와 강택민 국가주석의 상호방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외교소식통은 예상한다. 호 상무위원의 방문은 특히 중국의 한반도정책과 관련,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중국은 김정일의 노동당총서기 취임이래 남북한 어느쪽에 먼저 고위급 지도자를 파견하느냐를 놓고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을 선택함으로써 김대중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한국과의 관계를 더욱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또 호의 방문을 통해 통일·외교정책에서 중국을 중시해온 김 당선자가 이끄는 새정부의 의중을 탐색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고 외교소식통은 분석한다.
  • 토지거래허가구역 대폭 축소/30일부터

    ◎국토 면적의 32.7%서 3.3%로/대형아파트 재산세 누진… 청약예금금리 인상 오는 30일부터 토지거래 허가구역이 전 국토면적의 32.7%(3만2천634㎢)에서 3.3%(3천301㎢)로 대폭 축소된다. 건설교통부는 22일 투기를막고 땅값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건교부장관이 지정·고시하는 토지거래 허가구역을 현재 전 국토면적의 31.9%에서 2.5%로 축소키로 했다고 발표했다.이에 따라 전국의 토지거래 허가구역은 시·도지사가 지정한 777.65㎢(전 국토면적의 0.8%)를 합쳐 3천301㎢(전 국토의 3.3%)만 남게 됐다.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계속 묶인 지역은 ▲택지개발지구 주변 ▲고속철도정차역 주변 ▲시도지사 건의지역 ▲산업단지 주변 ▲인천국제공항 건설지역 등이다. 허가구역에서 풀리는 곳에서는 땅(농지·임야)을 살 때 당국의 사전허가가 필요 없어 매매절차가 진행되면 사는 사람이 곧바로 소유권 등기를 할 수있다.수도권이나 제주도내의 해제지역에서 농지를 사려면 농지법상의 ‘농지취득자격증명’만 받으면 된다.임야는 종전에는 해당 임야인접 시·군에 6개월 이상 살아야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아무런 규제없이 사고 팔 수 있다. 건교부는 그러나 토지거래 허가구역에서 해제된 곳이라도 투기조짐이 있으면 투기행위의 단속과 함께 즉시 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할 방침이다.
  • ‘정리해고’ 입법 첫 고비 넘었다/노사정 5개항 공동선언 의미

    ◎‘경제살리기 고통분담’ 합의 도출/방미 외채협상단에도 큰 힘 실려 노·사·정 위원회가 오랜 산고 끝에 1차 합의문을 도출했다.세 경제주체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경제회복과 공정한 고통분담을 위한 노·사·정의 공동선언문’ 형태로 매듭지어진 것이다. 3자간 합의는 커다란 장·단기적 의미를 지닌다.길게 보아 경제회생을 위한 사회적 합의도출의 첫 단추를 채웠다는 것을 뜻한다.경제난을 국민적 고통분담으로 극복하려는 취지의 협약문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당장에는 뉴욕에 파견된 외채협상단에 힘이 실릴 수 있게 됐다.합의내용들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 외국투자가들을 안심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21일 협상단은 본격 협상에 들어간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면 노·사·정이 손잡고 풀어나가야 과제를 압축한 셈이다.즉 우리 경제의 숙제들을 합의문 전문과 5개항의 결의사항,10개 의제 및 세부 실천과제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엔 ▲사회보장제도 확충 및 저소득층 근로자 생활보호대책 ▲임금안정과 노사협력 증진▲물가안정 ▲종합적 실업대책 ▲노동기본권 보장 등 민주적 노사관계 확립 방안 등도 포함된다.IMF가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추진해야할 과제다. 때문에 노·사·정위의 전도는 아직은 안개속이다.사회적 합의도출이라는 마지막 고지를 앞두고 장애물이 널려있다는 얘기다. 가장 큰 장애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방안이다.구체적으로 고용조정을 위한 법제 정비,파견근로자 등 비정규 고용 관련 제도정비 등이다.이를 의제에 포함시킨 사실 자체가 2월 임시국회에서 정리해고 도입의 입법화를 가로막는 바리케이드가 제거됐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정리해고제는 노동계의 생존권이 걸린 사안이다.고통분담에 관한 사회적 합의도출의 알파요 오메가다.그런만큼 타결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1차 합의과정의 엄청난 진통이 이를 말해준다.사·정측은 노측을 설득키 위해 많은 반대급부를 제시해야 했다.탈법적 정리해고,일방적 임급삭감·단체협약 파기 등 부당노동행위 근절 방안을 밝히기로 한 것이다.‘현장근로자의 신뢰제고를 위한 선행조치’라는 이름이었다. 다만 세 경제주체도 고통분담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노·사·정위는 이같은 공감대를 토대로 10대 의제에 대한 일괄타결을 시도할 참이다.국제통화기금(IMF)파고를 넘기 위해서다.
  • ‘IMF’와 문화위기/임영숙 논설위원(서울논단)

    올해 음악무대에는 피아노 공연이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예술의 전당,세종문화회관 등 주요공연장의 대관일정이 이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는 성악이나 현악과 달리 반주자 없이 독주가 가능하다.공연기획사로서는 다른 연주회 보다 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이런 상황이 바로 지금 우리 문화계의 현주소다. 그만큼 문화계는 얼어 붙었다.아니 얼어 붙은 정도가 아니라 뒷걸음질 하고 있기도 하다.지난 시대의 신파극이 국제통화기금(IMF)시대 중·장년층의“울고 싶은 마음”을 겨냥해 때아닌 흥행 성과를 올리고 있다.문화적 퇴행현상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우리 문화는 위기에 처해 있다. 나라가 총체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판에 “문화가 밥 먹여주느냐”고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경제는 수단에 불과하며 그 수단이 봉사하는 목적은 문화다.따라서 아무리 경제가 어렵더라도,아니 그럴수록 더욱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사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가적 위기는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적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계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다.대통령 선거 이전에도 문화현장과 가장 가까운 후보로 꼽혔던 김당선자는 당선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문화정책에 대한 소견을 “빠뜨리지” 않았다.국가부도 위기의 숨막히는 상황에서 비록 몇마디 안되는 이야기라도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에 문화계는 감동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지난 ‘문민정부’에서는 오히려 문화가 홀대 받았기 때문이다.군사정권 시절에는 그 정통성을 치장하기 위해 문화에 대한 배려가 장식적으로나마 이루어졌으나 지난 5년동안은 그런 들러리로서의 역할마저도 무시 당했다.문화부가 문화체육부로 바뀌었고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서도 문화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당선자에 대한 기대에서인가,아니면 위기의식의 발로인가.지금 문화계에서는 문화정책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두차례에 걸쳐 문화정책 포럼(15·21일)을 마련했고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IMF시대 문화불황 극복 방안’세미나도 열렸다.출판계에서도 새 문화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한 모임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논의의 초점이 좁은 의미의 문화에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문화체육부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것도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부처통합 능사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체육부를 문화부로 바꿀것인가 교육문화부로 통합할 것인가가 아니다.우리 사회의 가치와 이념,목표에 대한 합의를 확보하는 문화정책을 어떻게 수립하고 실천하느냐 이다. 민예총의 2차 문화정책 포럼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서는 도정일 교수(경희대)는 “해방이후 어느 정권도 민주주의 체제로의 변화와 함께 민주주의 문화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이를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서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합리적 시민문화의 부재”라고 말한다.문화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폭넓은 인식이 필요하다는 그의 발언은 경청할만 하다. ○‘가난한 예술’ 바탕으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문화란 커다란 유기체”로서 “그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각자가 전체의 정신에 의거하여 일 할 수 있는 장소를 할당”해 준다.사회 통합 기능으로서의 문화를 중요시 하는 문화정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문화의 생산과 향유라는 좁은 의미의 문화도 이 위기의 시대가 기회가 될 수 있다.기업의 지원을 받아 외형적으로 팽창했던 우리 문화계의 거품은 사실 “참을수 없는 문화의 가벼움”을 안겨 주었을 뿐이다.20~30년대 경제공황기의 미국,IMF시대 멕시코의 문화예술계가 그랬듯이 우리 문화예술계도 ‘가난한 예술’을 바탕으로 문화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문화의 세기’ 21세기 한국문화는 그런 단련을 통해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문화계의 자기반성은 그 시발점이다.
  • 탈법적 정리해고 근절/노사정위

    ◎실업대책마련 등 1차합의문 오늘 발표 노·사·정위원회(위원장 한광옥)는 19일 종합적인 실업대책의 수립·시행과 고용조정(정리해고)에 관한 법제정비 및 구속근로자에 대한 석방과 사면·복권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3자 공동합의문을 발표한다. 노사정위는 이날 발표를 통해 IMF 합의사항 이행과 노사정간의 공정한 고통분담 의지를 표명하면서,탈법적인 정리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는 것을 골자로 한 ‘현장근로자의 신뢰제고를 위한 선행조치’ 방안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노사정위는 18일 하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전문위원 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문 의제 7개조 31개항과 선행조치 의제 4개항을 결정,19일 노사정위기초위와 전체회의에 회부키로 했다. 임창열 경제부총리도 전체회의에 참석,근로자 보호를 위한 물가대책 방안에 대한 정부측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노사정위는 합의문에서 전문위 회의가 마련한 의제와 세부방안 및 선행조치에 대한 개괄적 방향과 실천의지,일정계획을 천명한뒤 각 항목에 대한 세부실천 계획은 차후 협의를 거쳐 이달말께 2차 합의문 형식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노사정 전문위가 이날 마련한 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보 및 구조조정 촉진 과제관련 합의문안은 ▲대기업집단 체제개혁 ▲기업경영정보 공개 및 근로자 참여 촉진 ▲책임경영체제 확립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 등 경영합리화 ▲경영주재산의 기업투자 확대 등 5개항이다. 노사정위는 이와 함께 노동계와 관련한 의제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방안’을 선정,▲고용조정에 관한 법제정비 ▲고용촉진을 위한 비정규 고용관련 제도정비 ▲파견근로자 보호 및 파견사업의 적절한 운영에 관한 법제정비 방침 등을 포함시켰다.
  • “IMF 빙자 부당노동행위 근절”/노사정위 2차 회의

    ◎‘고통 분담’ 내일 합의문 발표 노·사·정위원회(위원장 한광옥)는 19일 3자간 협약문에 들어갈 의제에 관한 합의문에서 종합적인 실업대책의 수립·시행과 고용조정(정리해고)에 관한 법제 정비를 위해 3자가 공동노력할 것을 선언할 예정이다. 노·사·정위는 특히 합의문과 함께 발표할 ‘현장근로자의 신뢰제고를 위한 선행조치’에 탈법적인 정리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는 것은 물론 구속 근로자에 대한 석방 및 사면복권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설날 임금체불 예방에도 만전을 기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노·사·정위는 17일 밤늦게까지 진행된 전문위원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문 의제 7개조 31개항과 선행조치 의제 4개항에 의견을 모으고,19일 기초위원회의와 본회의를 열어 확정,발표키로 했다. 노·사·정위는 합의문을 토대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의 최종 합의를 담을 협약문 작성 협상에 들어간다. 19일 확정될 1차 합의문은 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보 및 구조조정 촉진 과제로 ▲대기업집단 체제개혁 ▲기업경영정보 공개 및 근로자 참여 촉진 ▲책임경영체제 확립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 등 경영합리화 ▲경영주 재산의 기업투자 확대 등 5개항을 포함하고 있다. 합의문안은 또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문제와 관련,▲고용조정에 관한 법제정비 ▲고용촉진을 위한 비정규 고용관련 제도정비 ▲파견근로자 보호 및 파견사업의 적절한 운영에 관한 법제정비 방침 등을 밝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의 입법화 방향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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