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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도로국장 소환조사/「안전진단 필요 보고」 묵살 경위 추궁

    ◎성수대교 붕괴수사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관련,서울시및 동아건설에 대한 전면수사에 나선 검·경합동수사본부는 23일 자진출두한 이신영 서울시도로국장을 상대로 지난 5월 서울시 동부건설사업소로부터 성수대교의 안전진단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고도 예산배정 과정에서 성수대교를 제외한 경위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국장을 이날 밤늦게 일단 귀가시킨뒤 24일 하오 다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조사 결과 동부건설사업소는 지난 4월 「안전진단선정대상및 소요예산」을 보고하라는 서울시의 지시에 따라 성수대교를 비롯 천호·잠실대교등 16개 교량에 대한 안전진단 필요성을 건의했으나 서울시측은 다음달 26일 이 가운데 성수대교등 7개 시설물을 제외한 9개 시설물에 대해서만 예산배정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국장이 이같은 보고를 받은뒤 부시장이나 시장등 상부에 보고했는지 여부와 상부로부터 이에 대한 지시를 받았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이국장은 그러나 검찰에서 『성수대교의 안전진단이 필요하다는 보고 조차 받은 적이 없다』고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국장의 혐의사실이 드러날 경우 직무유기혐의로 구속하고 이국장 이상의 서울시 고위관계자 또한 이를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 소환,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 21일 소환,이틀째 철야조사를 벌여온 양영규 도로시시설과장(48)등 서울시 공무원 5명은 이날 일단 귀가시켰으며 24일 상오 다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또 시공회사인 동아건설 관계자 2명과 77∼79년 공사당시 현장주임을 지낸 3명,설계에 참여했던 6명등 11명을 불러 시공과정에서 하자나 부실이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검찰은 동아건설이 설계대로 시공을 하지 않았거나 부실자재를 사용,이번 사고의 원인을 직간접적으로 제공했을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혐의로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동부건설사업소측은 안전점검을 하지 않은 천호대교와 영동대교등 3개 교량에 대해 성수대교의 안전점검을 한 신성엔지니어링측의 도장을 도용해 안전점검을 한 것처럼 점검표를 작성,서울시측에 허위보고한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동부건설사업소 시설1계직원 이남구씨(40·구속)는 지난 2월 신성엔지니어링 전무 정찬양씨에게 『일급 8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필요하니 도장을 가져오라』고 해 점검하지도 않은 천호대교등 3개교의 안전점검표에 이 도장을 찍어 서울시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 EU,대외공세 강화/“불법무역관행 대응 새 제재조치 준비”

    ◎무역담당 집행위원 【브뤼셀 로이터 연합】 유럽업계는 유럽위원회의 지원아래 외국의 무역장벽을 타파하기위한 적극적 공세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레온 브리턴 유럽연합(EU) 대외무역담당 집행위원이 20일 밝혔다. 브리턴 위원은 이날 유럽지역 완구업체 연차총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불공정한 보조금을 지급받은 수입품에 대해 EU업계가 소속 회원국 정부를 통해 제소하지않고 독자적으로 보복조치를 요구할 수있는 권한을 업계에 부여하기를 EU집행위는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EU집행위는 또 외국제품에 대한 차별에서부터 지적소유권 도용,제품 위조등에 이르기까지 역외국가들이 일삼는 불법적인 무역관행에 대응하기위해 새로운 제재조치를 제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 고객서류 도용 10억 부정대출/신협전이사장 등 구속

    【부산=이기철기자】 부산경찰청 수사과는 11일 고객이 맡긴 대출관련 서류를 이용,대출을 받은뒤 사채놀이를 한 부산시 남구 우암2동 181의8 동항신용협동조합 전이사장 윤윤길(54·남구 우암2동 124의 10),전감사 주원혁(63·남구우암2동 218의 8),전상무 이영수씨(41·남구 우암1동 112의 52)등 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윤씨등은 고객인 박모씨(40·남구 우암1동)가 사업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맡겨둔 경남 김해군 녹산면 송정리 논 6백51평등의 담보관련 서류와 인장등을 이용,박모·정모씨의 명의로 2천8백만원을 대출해 자신과 친인척의 대출금을 갚는등 87년 11월부터 92년 6월까지 같은 수법으로 62명의 가짜대출자를 내세워 10억7천7백20만원을 부정 대출받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선진국/“지재권침해 조사” 사설탐정 성업

    ◎쓰레기통 뒤지기·위장 취업등 방법 동원/유명상표 도용·해적판 SW사용자 적발 90년대의 사설 탐정들은 지적 재산권(IP)침해 조사라는 전혀 새롭고도 수지맞는 일거리로 성업중이다. 유명상표 위조,저작권 해적행위,이들 가짜상품의 불법적 무역 등 여러 형태의 IP범죄들이 현재 세계 도처에서 성행,전세계 무역의 약 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더욱이 IP범죄는 최근 종래의 가짜 의류,가방 등의 단순범주를 훨씬 뛰어넘어 가짜 약품,가짜 자동차,그리고 심지어 가짜 항공기 부품 등 대형 인명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민감한 분야에까지 확대되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사법당국들은 이를 박멸하기에는 장비·예산 등 여러 측면에서 역부족이다.이같은 상황하에서 사설탐정들이 그들 자체의 보다 유연한 방법들을 개발,이 분야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IP범죄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런던시내 회사들중 하나인 MRH파트너십사는 최근 한 유럽대형 제약회사의 수술후 치료제를 위조한 가짜약품이 헐값에 구체코슬로바키아의 한 병원에 공급되고 있음을 적발한 이 제약회사로부터 이를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가짜 약품을 선적한 한 네덜란드 무역회사의 이름과 소재를 파악하는데는 별다른 힘이 들지 않았으나 가짜 약품 제조자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네덜란드 당국이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자 전통적 수사기법을 동원,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매일 밤마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선적용지를 찾기 시작했다.이같은 쓰레기통 뒤지기 작전 개시 10일만에 문제의 가짜 약품과 동일한 보관·운송조건을 기재한 찢겨진 용지를 찾아내고 이 선적서류를 보낸 한 이스라엘 회사의 이름을 알아냈다.이 회사는 「쓰레기통 뒤지기」가 엄격히 해당국가의 국내법 테두리내에서 이뤄진다면서 『우리 고객들은 우량상장 기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불법적인 일을 하다가 체포된다면 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IP범법자를 잡는 또다른 흔한 방법들 중에는 가짜 상품의 잠재고객으로 위장하는 이른바 「함정 쇼핑」이 포함되어 있다.직원으로 채용되어 문제의 회사에 곧바로 침투하는 방법도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해적판 컴퓨터 소프트 웨어의 사용자를 사로잡는데 효과가 높다. 그러나 IP침해행위 전문조사회사인 캐러투 인터내셔널사의 폴 캐러투 전무이사는 『법정이 여전히 관대한 선고를 내리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재원 부족이 이같은 작업의 또다른 문제점이라고 강조했다.『이같은 범죄행위의 대부분이 1개국이상의 지역에 걸쳐 발생하며,경찰은 이같은 범죄행위들을 국제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예산의 뒷받침을 갖고있지 못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이같은 범죄행위가 대부분 저질러지고 있는 빈국들이 IP 보호법의 제정과 집행을 꺼려하고 있는 것도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부정식품 제조자 사기죄수준 엄벌/보사부,과징금도 높이기로

    보사부는 부정불량식품을 근절하기 위해 이를 제조판매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보사부는 6일 하오 열린 전국 시·도보건환경국장회의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첨가한 식품제조업자에 대한 처벌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으로 내년중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보사부는 또 제품검사를 거치지 않고 식품을 판매하거나 다른 업소의 허가번호를 도용한 무허가식품의 제조판매행위를 형법상 사기죄에 준하는 처벌기준으로 엄벌토록 식품위생법등 관련법규의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연내 식품위생법시행규칙의 개정을 통해 식품위생법규 위반으로 적발될 때 부과하는 과징금의 액수를 상향조정해 제재강도를 높이고 과징금부과대상을 축소해 가급적 영업정지등의 처벌을 받도록 할 방침이다.
  • 수출입업자에 수뢰/40대세관직원 구속

    서울경찰청은 3일 항공사 직원과 짜고 분량이 많은 화물을 개인휴대화물인 것처럼 위장탁송해주는 대가로 의류수출입업자들로부터 사례비를 받은 서울 김포세관 7급 공무원 심승구씨(40·강서구 방화동 개화아파트 104)를 뇌물수수혐의로 구속했다. 심씨는 지난 92년10월5일 의류수출입업자인 서울 중구 흥인동 S통상대표 오모씨(56)가 남미 파라과이에서 의류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모항공사 직원과 짜고 비싼 화물항공료를 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 의류들을 35㎏짜리 화물로 분산,다른 승객의 명의를 도용해 탁송해주는 대가로 5백만원을 받는등 의류수출입업자 8명으로부터 17차례에 걸쳐 8백2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 7월 경기상승세 “주춤”/생산증가율 둔화·가동률 5%P 하락

    ◎통계청,산업활동동향 발표 노사분규와 폭염 등으로 쾌속 질주하던 경기 상승세가 다소 둔화됐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의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생산 증가율은 6월의 11%에서 7% 증가로 떨어졌다.중화학공업이 현대중공업 등의 파업으로 6월의 13.8% 증가에서 9.2% 증가하는 데 그쳤고 경공업 부문은 전년 동기보다 2.1%가 줄었다. 이에 따라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도 전년 동월보다는 0.9%포인트,6월보다는 5.1%포인트 떨어진 78.1%를 기록,올들어 가장 낮았다. 출하도 증가폭이 꺾여 작년보다 10.9% 증가했다.6월의 증가율은 12.3%였다.내수용 출하의 증가폭은 둔화된 반면 수출용 출하는 6월 10.2%에서 11.5%로 높아졌다. 투자동향을 보면 기계수주(산박 제외)는 전년 동월보다 85%,6월보다는 34.8%가 증가했다.고속철도용 철도차량 발주 등 공공부문에서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민간부문의 증가율은 1·4분기 이후 계속 둔화되고 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 해 7월보다 0.2%포인트 증가한 62.6%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취업자도 전년 동월보다 2.4% 증가했고 실업률은 0.%포인트 떨어진 2.%를 기록했다.
  • 심야 불법영업 취재/방송기자 구타 당해

    27일 상오2시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속칭「카페골목」에서 불법 심야영업 실태를 취재하던 서울방송 김용욱기자(26·서초구 서초3동)등 취재진 4명이 업주및 종업원 20여명으로부터 집단구타당해 카메라기자 윤여훈씨(28)가 전치2주의 부상을 입고 보도용카메라 2대가 부서져 8천여만원어치의 손실을 입었다. 김기자는 『카페골목에서 취재장소를 물색하며 돌아다니던 중 갑자기 20여명이 몰려와 「기자들인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을 찍으려 하느냐」며 집단으로 폭행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 지역 번영회장이자 「로젤」카페주인인 김호준씨(43·서초구 방배동)와 이 업소종업원 김민석씨(24·인천시 남구 남천동)를 붙잡아 자세한 경위를 조사중이다.
  • 가짜상표 의류 120억대 시판/빈폴·폴로 등 20종 도용

    ◎제조·유통업자 30명 적발… 11명 구속 국내외 유명의류상표를 도용해 1백20억원대의 가짜상표가 부착된 의류를 불법제조,시중에 유통시켜온 의류제조업자와 유통업자등 30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 북부지청 형사1부(이경재부장검사)는 26일「빈폴」 「캘빈클라인」등 국내외 유명상표를 도용해 1백23억여원어치의 의류를 제조,시중에 팔아온 제조업자와 유통업자등 30명을 적발,이 가운데 진용호씨(31·경기도 광명시 소화1동 48)등 11명을 상표법 위반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가짜의류를 판매한 의류소매업자 이희복씨(26·경기도 부천시 고강동)등 18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하고 김금숙씨(29·여·디티통상대표·경기도 부천시 원미동)를 수배했다. 검찰은 이날 이들이 직영해온 봉제공장 4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시가 10억여원상당의 가짜유명상표가 부착된 의류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이들은 92년10월부터 관악구 신림동등 서울시내 4곳에 봉제공장을 차려놓고 국내상표 「빈폴」과 외국상표인 「폴로」 「게스」 「캘빈클라인」 「휠라」 「마리태저버」등 20여종의 가짜상표를 붙인 티셔츠·청바지등 1백23억원상당의 의류를 제조,시중에 유통시켜온 혐의를 받고 있다.
  • 국산특허상표 도용 억대챙긴 일인구속

    서울지검 형사6부 전강진검사는 27일 국내 의장등록상표인 「파라드」조깅화를 그대로 본뜬 신발을 우리나라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일본에서 판매해온 일본인 야마자키 쇼조씨(58·일본 교토시)를 의장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야마자키씨는 지난해 10월 국내 신발제조업체인 H산업에 「파라드」상표및 의장 사용허가를 받은 것처럼 신용장을 개설,「파라드」상표를 붙인 신발 1만3천여켤레(시가 2억2천여만원어치)를 만들어 일본으로 수입,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식품리콜제(외언내언)

    고대 로마제국 멸망원인에 대해 사학자들은 여러가지 정치·사회적 문제를 들고 있다.전염병,외세침략,중앙아시아 기상의 건조화,기독교대두,관료기구의 비대화등을 몰락원인으로 열거한다.그러나 현대식품과학자들은 로마제국쇠망의 가장 큰 원인을 납중독으로 꼽고 있다.상류부유계층의 납중독으로 이 계층간에 유지,세습되던 로마문화의 전통과 지배계층의 권위가 급속히 쇠퇴하여 로마가 망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연간 2백10만t의 납을 채굴했다.이 것은 오늘의 세계적 사용수준과 비슷한 엄청난 양이다. 채굴된 납은 상류부유층의 상수도용 관,식기,조각품등으로 일상생활에 활용됐다.납수도관과 식기류를 통하여 음료수와 음식물이 오염되어 납중독이 만연됐다. 로마인 의 유골조사에서 납농도가 높은 것이 이를 입증한다.로마문화의 대부분은 상류부유계층이 유지,발전시켜 왔는데 기원전 1,2세기이후 이 계층이 급속히 감소되어 결국에는 지배계층의 자멸을 가져오고 제국이 멸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1965년 일본 니가타현 아가노강유역 주민들이 유기수은으로 오염된 물고기를 먹어 일어난 유기수은중독(미나마타병),1967년 광산폐수로 오염된 물로 경작된 쌀이 카드뮴에 오염되어 일어난 일본 도야마현의 이타이 이타이병 판명,식용유에 함유된 PCB가 원인으로 밝혀진 뾰루지피부병,맹독성 농약으로 오염된 토양에서 자란 풀이나 사료를 먹은 가축으로부터 생산된 고기·우유·달걀이 인체에 해로운 농약중독을 일으킨 사건등 독성물질이 인체에 축적되어 일어난 대사건 기록은 많다. 위해식품을 제조·유통업자가 전량회수,폐기토록 하겠다는 보사부의 식품리콜(Recall)제도는 고도의 검사기술과 정보가 뒤따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당장 분석해내야 하는 국내사용 농약만도 1백5종이고 UR와 함께 밀려들 외국농산물 식품종류는 상당할 것이다.검사기관부터 보강해야 한다.
  • 미 농산물 수출 연4백억불 증가/USTR분석/UR협정 혜택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 덕분에 미국은 쌀과 쇠고기 등 농산물수출이 연간 4백억달러나 늘어난다.우리나라에 시장개방압력을 넣었던 통신장비와 담배 및 제약 등도 많은 혜택을 본다. 미무역대표부(USTR)는 미국의 48개 산업에 대한 UR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농산물 등 35개 산업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며 제약,화학,농업,통신장비,담배,비즈니스 서비스,전자제품 등 7개 산업은 연평균 5∼15%의 수출증대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농산물의 경우 한국과 일본 및 동남아시아의 시장개방에 힘입어 쌀,옥수수,쇠고기,과일 및 가공식품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 연평균 15%가 넘는 수출증대가 예상된다. 제약산업은 UR협정이 의약품에 대한 특허보호기간을 20년으로 정함으로써 지금까지 극심했던 개도국들의 특허도용이 크게 줄어들어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이 상당히 늘어난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가짜외제 의류판매 4명 적발/남대문·동대문시장서 유통

    ◎서울지검/10억어치 2만여점 압수/3명 영장·36명 입건·2명 수배 유명 외국상표를 도용,가짜 의류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서울 남대문·동대문시장 일대의 의류도매·제조업자 41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 이재우검사는 17일 정정옥씨(34·여·중랑구 망우2동)등 3명을 상표법위반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또 한모씨(33·여)등 36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하고 송한철씨(34)등 2명을 수배했다. 검찰은 이들로부터 캘빈클라인·폴로 등 외국유명상표 20여개가 부착된 국산 티셔츠·청바지·유아복등 시가 10억여원어치의 의류 2만여점을 압수했다. 정씨는 지난 4월 한달동안 달아난 송씨의 부탁을 받고 외국상표가 부착된 티셔츠등 시가 3억여원어치의 의류 1만3천여점을 만들어 동대문·남대문시장 등을 통해 전국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 동명이인 폭력 피의자/재판청구에 누명 벗어/진범은 이미 복역

    수사기관이 동명이인의 인적사항을 도용한 범인에 속아 무고한 시민을 기소한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서울형사지법 박성덕판사는 10일 이찬수피고인(37·경기 파주군 법원읍)에 대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사건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에 대한 지문감식 결과 실제범인이 경찰서에 연행돼 찍었던 지문과 다르게 판명됐다』며 검찰의 공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실제범인인 58년 10월 21일생 이찬수가 57년 10월 20일생인 피고인과 성명·생년월일이 비슷한 점을 도용,검찰이 이를 오인해 기소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씨는 범인 이씨가 91년 6월 30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92의2 호프집에서 옆자리에 있던 김모씨 등을 폭행한 혐의로 연행돼 이씨의 인적사항을 대고 조사받은 뒤 경찰이 이에따라 같은해 12월 벌금 20만원을 통보하자 정식재판을 청구,누명을 벗게 됐다. 실제범인인 이씨는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 등으로 이미 2월 18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 국산 농수산물 원산지표시제/65개품목 내년부터 의무화

    ◎경쟁력 높이고 외산과 차별화 쌀·콩·마늘·참깨·고사리·고등어·마른 오징어 등 국산 농수산물 65개 품목에 대한 원산지 표시가 내년 1월부터 의무화된다.지금은 외국산 농산물 1백89개 품목에만 시행하고 있다. 농림수산부는 21일 우리 농산물을 외국산과 차별화함으로써 생산자 및 소비자를 함께 보호하기 위해 원산지 표시대상 품목을 지정·고시했다.농산물 26개,임산물 9개,축산물 7개,수산물 23개이다.외국산과 구별하기 어렵거나 국산의 품질이 좋아 시장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는 품목들이다. 따라서 내년 1월1일부터 이 품목을 생산하는 농어민이나 유통업자는 생산한 시·군의 지역명을 상품에 의무적으로 표시해야한다.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고 판매하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허위로 표시하면 3년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얼굴있는 농수산물」의 유통이 가능해져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유명 생산지를 도용한 국산 농수산물의 가짜 판매도 없앨 수 있어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농림수산부는 철저한 시행을 위해 농산물검사소·가축위생연구소·임목육종연구소·국립수산물검사소 등을 검정기관으로 지정,육안으로 산지를 식별하기 어려워 분쟁이 생길 경우 시료를 채취해 가려내기로 했다. 농림수산부는 참기름 등 가공식품에 대해서도 연내 원산지 표시를 도입키로 하고,대상 품목 및 표시방법 등을 검토중이다.
  • 대규모 여권위조단 검거/사망자 명의 도용,수배자등에 발급

    ◎경찰·구청직원과 합작…7명 구속 구청및 경찰공무원과 결탁,사망자의 이름으로 여권을 부정발급받게 해주고 거액의 사례비를 챙겨온 대규모 여권전문위조단이 검거됐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부장검사 이사철·검사 이부영)는 19일 이같은 수법등으로 92년11월부터 50여명에게 여권을 발급받게 해주고 2억5천여만원을 챙긴 여권전문위조단 공과장파 두목 공희배씨(32·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주공아파트 1단지 1505호)등 일당 7명을 공문서위조및 여권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문서위조전문가 이현필씨(41·서울 구로구 궁동 187)등 6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공씨등은 여행사들이 밀집해 있는 광화문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사람이 사망해 호적등 공부상으로는 사망자로 정리되더라도 경찰 컴퓨터단말기상 사망자로 분류되는데 수개월이 걸리는 점을 악용,사망자의 이름으로 가짜공무원증을 만들어 수배자등 7명에게 여권을 발급받게 해주고 사례비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구속된 종로구청 직원 이병구씨(39·방역기사 10급)와 수배중인 전경찰청 정보1과 김용식경장(38)으로부터 사망자명단및 공무원신분증용지등을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또 여권을 발급받을 때 신분증사본 대신 원본을 제출토록 제도가 바뀐 94년2월이전에도 40여차례에 걸쳐 남의 주민등록증등에 의뢰인의 사진을 붙인 뒤 외무부 여권과에 사본을 제출,여권을 발급받게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주민들 도장 도용 통장 2천개 개설/주택은 진주지점

    【진주=강원식기자】 경남 진주경찰서는 6일 한국주택은행 진주지점(지점장 안용웅)이 주민들의 인장을 임의로 사용,예금통장 2천여 계좌를 불법개설해 전면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주택은행 진주지점은 지난해 12월 27·28일 이틀동안 시내 가좌동 주공아파트 1천2백30가구의 주택자금 대출및 등기신청을 대신해주면서 등기인지대 이외에 더 거두어들인 가구당 2만5천원을 돌려주지 않고 등기신청때 받은 인장으로 자유적금(우리집통장) 1천2백30계좌와 자녀 명의의 차세대 저금통장 1천여 계좌등 2천3백여 계좌의 통장을 멋대로 개설했다는 것이다.
  • 잇단 프로관련 소송… 방송사 “비상”

    ◎S­TV 「일과 사랑」 방영금지후 각사 긴장/MBC 5·KBS 2·SBS 4건 피소/시청자 권리의식 신장… 법적분쟁 늘 전망 지난 18일 SBS의 주말 드라마 「일과 사랑」이 서울지법 남부지원으로 부터 방영금지 가처분결정을 받은 것과 관련,각 방송국들이 법적 제소문제로 긴장하고있다. 방송국에 대한 제소가 문제가 됐던 것은 지난 87년이후 민주화의 물결과 함께 언론 통폐합에 희생된 해직자들의 제소가 밀려들면서부터.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거의 해결돼가는 시점에서 이번에는 일반 프로그램에 대한 각종 제소가 제기될 조짐을 보이고있는 것. MBC의 경우 현재 안고있는 제소건수가 대략 20여건 가량된다. 이 가운데 해직자문제나 지방계열사 전 주주들의 주식반환소송등 구시대 청산차원의 제소가 15건가량이며 5건 가량이 프로그램에 관련된 제소이다. 프로그램에 관련된 제소가운데 이번 SBS사건과 유사한 소송은 4년여전에 방영된 주말 드라마 「유산」에대한 저작권 소송.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한모씨가 자신의 시나리오를 도용했다며 지난 90년 7월 남부지원에 제소해 4년여를 끌어오다가 지난 1월 MBC측이 승소했다. 하지만 한씨가 다시 항소를 제기해 2심을 기다리고있다. 이외에도 정보데이트 프로그램등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론권 요구 제소들이 접수되어있다. KBS의 경우도 현재 20여건의 민사소송이 제기돼있는 상태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해직자 문제에 관한 것이지만 프로그램에 관한 것도 2건이 있다. 지난 4일에는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다큐멘터리극장」의 방영내용 문제로 사장등이 명예훼손죄로 제소당하기도했다. 이 때문에 KBS는 한동안 제소자인 이인수 교수와 실랑이를 벌이다 해명 방송을 내는 차원에서 마무리하기로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SBS의 경우 현재 법정 소송 건수는 개그맨 서세원씨의 출연정지 가처분신청등 4건. 이 가운데 지난 91년 용역회사 직원의 실수로 연기자가 사망한 화재사건과 관련해 여관 주인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정식 제소에는 이르지않았지만 프로그램 관련자들이 계약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 설득이나 해명을 하는 경우도 한달에 3∼4건 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방송국의 법률담당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앞으로 프로그램에 대해 여러 형태의 법적 분쟁이 제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상표 초상권등 저작권문제와 관련해 법률분쟁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송국들은 자체 고문변호사등을 통해 대비책을 강구하고있다. MBC의 경우 지난 91년에 이어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서도 법률문제에 대비해 법대출신의 사무직원을 1명씩 특별히 선발하기도했다. 각 방송국의 법률관계자들은 이러한 추세가 권리의식이 신장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보고있다. 그러나 잘못여부를 떠나 일단 법률문제가 제기되면 큰 골치를 앓아야하므로 방송국들은 제작진들에게 이러한 법률적 문제를 수시로 교육하고있는등 전전긍긍하고있는 실정이다.
  • 백제인의 도기문화(백제를 다시본다:7)

    ◎7세기초 유약 입힌 녹유기 첫 등장/능산리출토 기대,뛰어난 제조술 입증/통일 신라에 이어 고려청자에도 영향/불상대좌·벼류등 많은 융제품 남겨… 동아시아 문화대국으로 우뚝 백제역사에서 사비시대(AD538∼660년)는 문화의 황금기다.부소산 남쪽에 왕궁이 건조되고 외곽에는 나성을 쌓아 왕도의 모습을 갖추었다.부여에는 정림사,익산에는 미륵사가 세워졌으며 부여릉산리에 고분이 영조된 것도 이 시기다. ○선진적 생산기법 사비시대 문화 가운데 간과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면 도기문화도 그 하나로 꼽힐 것이다.인간은 태초를 약간 비켜난 신석기시대부터 진흙을 이겨 그릇을 구워냈다.그러나 도기문화,다시 말하면 질그릇문화는 그릇의 생김새에서 찾아지는 감각적 예술성,얼마나 강한 그릇을 구워낼 수 있는가에 대한 기술성에 따라 가늠되었다.사비시대 백제인들은 뛰어난 감각과 기술을 가지고 도기문화를 발전시켰다. 사비시대 백제도기에서 주목할 그릇은 녹유기다.강도가 높은 질그릇에 녹갈색의 유약을 입힌 이 그릇은 7세기 초기에 나타난다.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녹유그릇받침(기대)이 바로 그것이다.이 그릇은 조각으로 출토되었으나,복원작업을 거친 결과 나팔모양을 한 녹유그릇받침으로 판명되었다.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질그릇에 유약을 입히는 기법의 도기라 할 수 있다. 이 선구적 질그릇인 녹유기는 통일신라로 이어져 널리 사용되기에 이른다.위에 톱니바퀴 모양의 장식이 있고 세로로 붙은 와선무늬 장식의 띠 사이사이에 구멍이 뚫린 그릇받침은 사비시대 백제 녹유기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질그릇에 유약을 입혀 녹유기를 구워내는 백제 도공들의 생산기술은 가히 선진적이었다.그릇에 유약을 입히는 시유술은 뒷날 고려청자와 같은 본격적 도자기를 생산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익산 미륵사 절터에서도 7세기 전반쯤의 도기들과 기와편들이 많이 출토되었는데,모두 표면에 녹갈색의 녹유를 입혔다.녹갈색의 산화연을 저화도에서 입히는 방식으로 녹유를 시유했다.녹유가 시유된 기와에서 백제는 7세기 전반쯤에는 그곳 말고도 기와와 같은 도제품에 녹유를 보편화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그 녹유가 결국은 통일신라에 널리 전파되는 것이다. 백제도기나 도제품의 우수성은 생산기반시설과 견주어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7세기 전반에 과학적인 질그릇 가마를 만들었다.지난 86년 사비성 고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청양 본의리 한 구릉에서 발견한 반지하의 계단식 등요가 그 시기의 가마다.바닥은 계단식이고 가마벽은 돌을 쌓아 만들었다.가마의 길이는 7.4m,폭 1.4m내외,천장은 가장 높은데가 1.5m에 이르고 있다. 이 가마에서는 놀라운 유물들이 출토되었다.도제의 불상대좌 조각들이 대량으로 발견된 것이다.이들 조각을 꿰맞추어 복원해 낸 대좌를 보노라면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옷자락을 펼치고 앉은 모양(상현좌)을 한 대좌는 예술품이다.옷자락이 늘어지고,또 주름이 더러 잡혀있는 이 대좌는 흙을 구워만든 딱딱한 도제품이 아니라 포근하고 부드러운 비단의 질감을 안겨주고 있다. ○높이 1m의 대작 대좌는 높이 1백㎝,너비 2백80㎝나 되는 장대한 것이어서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제작,조립하는 수법을 썼다.이 제작기법에서도 백제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대좌가 이렇듯 아름다울진대,대좌 위에 안치되었을 부처님은 어떤 형상이었을까.결가부좌하고 앉아 계실 백제 특유의 자비로운 부처님모습이 떠오른다. 청양 본의리 출토품 불상대좌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도제유물들은 더 있다.지난 80년대 부여 정림사 절터에서 나온 도용들은 매우 주목되는 도제품으로,특히 인물상들이 이채롭다.농관,물결이 치는듯한 머리카락,깊은 눈과 높은 코 등이 서역적인 풍모를 보여준다.이들 테라코타는 사비로 도읍을 옮긴 직후인 6세기 중반에서 7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중국 북위에서 유행한 이들 유물로 미루어 백제는 활짝 열린 서해라는 해상루트를 통해 남조와는 물론 북조와도 활발한 문화교류를 해온 것으로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사비시대 백제의 도기와 도제품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와류다.국립부여박물관이 최근 발굴조사한 부여 정암리 기와가마터(와요지)가 기와류를 만들어 낸 대표적 유적으로 부여 시가지 남쪽 백마강 언덕에자리하고 있다.언덕의 석비레층을 파고 들어가 터널식으로 구축한 굴가마들이다.길이 4.5∼6.5m 크기의 평요 2기와 등요 2기 이외에 작업장까지 발견되었다. 이들 가마군에서는 주로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해 망새편,암수키와 등의 기와류가 주로 나왔다.그리고 상자형 전돌과 자배기,벼루 등도 출토되어 도와전류는 물론 도기류까지 생산한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오늘날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대할 수 있는 도제유물의 얼마쯤은 정암리 가마에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사비시대가 백제문화의 황금기라면 도기나 도제품의 수요가 왕성했을 것이다.이는 백제의 도기제조술을 발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흔히 호자로 불리는 부여 군수리 출토도기인 소변기로부터 뼈항아리 골호에 이르기까지,또 일상용기와 종교적 성물인 불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그리고 궁궐과 사찰 건축에 따른 거대한 망새(시미)나 기와류,산경산수문전처럼 아름다운 벽돌이 있다.때로는 도기와 도제품은 껴묻거리(부장품)의기로 수요되기도 했다. ○와전토 존재한듯 백제 도기항아리는 어깨가 넓어 광견호라는 이름의 항아리.발이 셋 달린 삼발이항아리,손잡이가 달린 항아리 등 여러 기형이 있다.목이 긴 병을 비롯해 자라병이 있는가 하면 바가지모양의 도기,등잔,잔,삼발이잔,주전자,동물모양의 그릇 등 백제도기는 실로 다양한 형태를 이룬다.납작한 원형판에 마치 동물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다리가 다닥다닥 이어진 사비시대의 도제품 벼루는 뒷날 통일신라와 일본에 전파된다. 이들 명품은 고대사서가 기록하고 있는 백제 기술집단의 하나인 와박사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켜준다.백제의 기술집단은 사비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보다 많은 문물을 창출함으로써 백제를 동아시아의 문화대국으로 우뚝 세웠다.특히 당시 도기제조술이 이룩해 낸 백제 최초의 녹유기가 나온 능산리에서 김동용봉봉래산향로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도기 제조솔/질그릇 가마 과학적으로 축조/경사지 반지하식 등요… 고화도 유지 백제의 도기제조술은 아주 뛰어났다.특히 사비시대의 백제는 도기표면에 녹유를 입히는 선진기술을 습득함으로써 다른 주변국가를 압도했다. 사비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도기나 도제품을 제작한 가마터(요지)는 현재 충남 청양 본의리(7세기 전반),부여 정암리(7세기),전북 고창 운곡리와 익산 신용리(6세기 중반),전남 영암 구림리(6∼7세기)등에 남아있다.이들 가마터는 모두 80년대와 90년대 접어들어 발견되었다.사비시대 가마들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상당히 과학적으로 축조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비시대 가마들은 거의가 경사진 언덕을 따라올라가 축조한 반지하식 등요로 이루어졌다.이는 고화도를 효율적으로 유지,보다 견고한 도기를 만들기 위한 과학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청양 본의리 등요는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는 재래식 사기가마처럼 계단식등요로 밝혀졌다.사비시대 이전의 가마 거의가 평요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익산 신용리 가마는 반지하식 등요로 천장평면은 독사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이와 같은 형식은 일본의 스에무라(도읍)가마군으로 연결되었다.영암 구림리에서 발굴된 가마 역시 반지하식이고 평면은 독사머리를 했다.다만 영암 구림리 가마는 고화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창불구멍을 낸 것으로 조사되어 기능상 한단계 더 발전한 가마로 여겨진다. 사비시대 이전의 가마터도 더러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전남 승주 대곡리(3∼4세기),충북 진천 산수리(4세기)등이 이시대의 가마다.이러한 최근의 발굴자료들은 3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동안 백제 도기가마의 변천및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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