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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여기] 소동/이민영 국제부 기자

    [지금&여기] 소동/이민영 국제부 기자

    언젠가부터 소화가 안 됐다. 가끔 속이 쓰리기도 했다. 소화제를 먹는 날이 잦았다. 지난주부터는 배가 쿡쿡 찌르듯 아팠다. 갑자기 내장이 꼬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현대인의 친구,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이번주 들어서다. 설사가 끊이지 않던 것이 이제는 검은 변을 보게 된 것이다.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끼고 노트북을 두드려 검색을 해봤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혈변이나 흑변은 소화관에서 출혈이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관련 질병으로 넘어갔다.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식도 궤양, 식도와 위 접합부 열상…. “뭐 다 별 거 아니네”라며 창을 닫으려는 순간 덜 흔한 원인으로 ‘위암’이 적혀 있었다. 위암이 어떤 병인가. 암은 사망원인 1위를 놓치지 않는 질병이다. 게다가 한국인 위암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의사가 답변해 준다는 지식검색 창에서도, 각종 병원과 건강식품 광고가 난무하는 글에서도 흑변은 위암과 관련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위암’이라는 두 글자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족들이 떠올랐다. 방정맞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보험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암 보험금 액수까지 확인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점심 때를 틈타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있다는 근처 병원을 찾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날 9시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금식을 한 상태였다. 의사는 증상을 꼼꼼히 묻고 배도 이곳저곳 눌러보더니 내시경을 제안했다. 목에 마취제를 뿌리고 수액처럼 생긴 약이 들어가니 금세 잠들었다. 잠깐 잔 것 같은데 간호사가 날 깨워 진료실로 안내했다. 붉은 반점 하나 없는 위 사진을 보니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무 이상 없이 깨끗한데요. 십이지장도 그렇고. 저기 붉은 기 보여요? 약한 위염 정도예요. 약 드릴 테니 조금만 드세요.” 의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느냐며 그것 때문에 긴장했을 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주일간의 소동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허탈과 안도가 적당히 버무려진 채 병원을 나오자 조바심이 난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점심 먹었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의미를 알게 된다’는 상투적 문구가 생각났다. 다행히 소중한 것은 아직 옆에 있었다. min@seoul.co.kr
  • 15대 심수관 “전통 도자기 활성화 기여하고 싶어”

    15대 심수관 “전통 도자기 활성화 기여하고 싶어”

    15대 심수관(55)이 19일 경북 청송을 방문했다. 심수관은 청송에 뿌리를 둔 도예가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심당길이 일본으로 끌려간 뒤 420여년 동안 가문을 이어 가며 일본 도예계를 주도했다. 12대 후손부터 심수관이란 이름을 이어받아 선조들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했다. 15대 심수관이 그의 본향인 청송을 찾은 것은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부동면 하의리 주왕산관광지에 들어선 심수관도예전시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심수관도예전시관은 청송군이 58억 2000만원을 들여 건립했다. 12~15대 심수관 작품 30여점과 돌의 가루로 도자기를 빚은 500년 전통의 청송백자 40여점 등이 전시돼 있다. 15대 심수관은 평소 ‘청송은 나의 영원한 성지’라며 청송에 대해 강한 애정을 보였다. 또 청송은 ‘심가’ 일족의 본관지이며 본관은 성씨의 뿌리라고 했다. 청송군은 15대 심수관의 청송 예찬론에 지난해 11월 명예군민증을 전달하며 화답했다. 이날 그는 일본인 부인 오사코 스미코(55)씨와 동행했다. 청송읍 덕리에 위치한 시조 묘에서 한복을 입은 15대 심수관과 기모노를 입은 그의 부인이 함께 성묘도 했다. 이어 파천면에 있는 송소고택을 둘러봤다. 송소고택은 99칸 한옥으로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지었다. 오후에는 심수관도예전시관을 찾았다. 전시관 관람 후 그는 “심수관 도자기가 청송백자와 더불어 전통 도자기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15대 심수관의 청송 방문에는 한동수 청송군수도 함께했다. 한 군수는 “심수관가는 청송의 자랑거리다. 심수관도예전시관을 야송미술관, 객주문학관 등과 연계해 문화가 함께하는 청송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청송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미술교육은 세월호와 닮은꼴…바로잡아야 더 이상 비극 없어”

    “미술교육은 세월호와 닮은꼴…바로잡아야 더 이상 비극 없어”

    “우리 미술교육은 세월호 참사와 닮았어요. 바로잡지 않으면 비극이 이어질 것입니다.” 도예가 신상호(67)는 미술교육계의 내부 고발자를 자처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개막한 개인전 ‘사물의 추이(推移)’전에는 ‘미술대학교 총동문회 구출작전함’이라는 큼지막한 상자가 놓였다. “전국에서 훌륭한 인재를 모아 놓고 썩히고 있는 모교를 보는 게 안타까워 만들었다”는, 투표함을 닮은 궤짝이다. “세월호 사건을 바라볼 때 마치 모교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을 돌며 동문들의 의견을 취합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내부 고발함인데, 이번에 작품으로 내놨어요.” 국내 미술계의 양대 산맥인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학장까지 지낸 작가는 이처럼 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한국 미술교육에 대한 비판은 전시장 곳곳에서 드러난다. 도자 평면에 그린 배 그림을 침몰하는 것처럼 비스듬히 내걸고, 그 앞에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가져온 고기잡이배를 배치한 설치작품 ‘내부 고발자 1’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낡은 의자 50여개를 쌓아 올린 벽엔 이런 문구도 쓰여 있다. ‘WOW,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미술교육, 안녕하십니까.’ ‘와우’는 홍대가 자리 잡은 와우(臥牛)산에서 빌려 온 말이다. 작가는 “비단 홍대만을 싸잡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미술 교육 전반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특정 학교 출신이 권력을 쥐고 있는 일부 미술단체와 기관들도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해 평균 1만명 이상이 미대에 입학합니다. 그런데 왜 세계적인 작가가 나오지 않는지 생각해야 해요. 안일하고 억압적인 시스템이 학생들을 영양실조에 걸리도록 내몰고 있습니다. 미술대학이 덩치를 키우고 권력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의 전시를 바라보는 미술계, 특히 모교 측의 시선은 혼란스럽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예술”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이번 전시에선 비판적인 작품들 외에 신씨가 그간 만들어 온 다양한 도자 작품들이 즐비하다. 흙 판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뒤 고열에 구워 만든 도자 회화, 구운 자기를 건축물의 표면에 붙인 클레이 아트 등이다. 도예의 영역을 넓히면서 이번에는 아예 도자로 만든 회화와 설치미술을 망라해 모두 70여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서울 청계천시장과 영국 런던의 포토벨로마켓 등에서 끌어모은 방탄유리, 수레바퀴, 차고 문 등에 흙으로 구운 도자를 덧붙여 만든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저소득층 청소년 밴드·성교육센터… 송파 주민들은 복지 정책 디자이너

    송파구가 안성맞춤 복지서비스에 팔을 걷어붙였다. 구는 저소득 소외계층을 위한 주민서비스 공모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27일 밝혔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복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직접 아이디어를 접수한다. 주민들의 욕구나 지역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 민간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지난 6월부터 공모를 받아 맞춤 복지 서비스 10개를 선정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2014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 캠페인 모금액으로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공모에 선정된 사업은 청소년, 노인,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로 나뉜다. 우선 저소득 가정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생활을 돕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청소년 밴드가 마을 안에서 연주 활동을 펼치며 지역사회와 소통을 꾀하는 ‘청개구리 마을 속으로 풍덩’은 무지개빛청개구리 지역아동센터에서 담당한다. 가락종합사회복지관은 한부모·다문화·조손 가정 아동 등 방임 아동을 대상으로 토요교실을 추진한다. 요리 실습, 도예 체험, 성교육센터와 안전박물관 견학 등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을 한다. 저소득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풍납종합사회복지관은 ‘할배·할매의 마을 조직단’을 꾸려 골목길 가꾸기나 벽화 그리기, 말벗 서비스 등을 지원한다. 서울시 장애아동사회적응지원센터는 ‘동화일러스트 꿈꾸기’를 통해 장애인의 사회 적응력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이번 사업에선 지역 특성을 고려해 차별화한 복지 프로그램을 꾸리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제주의 흙으로 ‘오름’ 빚어내기 25년 도예가 송충효

    [김문이 만난사람] 제주의 흙으로 ‘오름’ 빚어내기 25년 도예가 송충효

    작은 산, ‘오름’이다. 대체로 둥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태고적부터 켜켜이 쌓인 흙이 비바람에 묵묵히 견디었기에 그랬다. 제주에는 오름이 360여개나 있다. 이 오름들은 1만 8000여개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에서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간다. 민초들의 얼과 혼이 서려 있으며 항쟁과 여러 사건을 고스란히 묻어둔 곳이기도 하다. 하여 둥그런 모습의 오름은 온갖 아픔을 품은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이기도 하며 잉태와 생명을 간직하고 있다. 도예가 고우(古牛) 송충효(70)씨는 25년 동안 이러한 오름을 오롯이 그릇에 담아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를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오름을 오르고 또 올랐다. 아름답게 뻗어나간 곡선, 세월의 아픔을 쓸어안은 분화구 등은 예나 지금이나 늘 활화산처럼 생명력 있게 다가온다. 오름의 분화구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았다. ‘낮의 오름’과 달리 ‘밤의 오름’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흙에 버무리고 또 버무려서 그릇을 만들어냈다. 주로 사발그릇이다. ‘도자기’ 하면 대부분 이천, 여주, 강진 등 소문난 육지의 흙으로 빚어내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의 그릇은 제주의 흙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한 가지 더 있다. 그는 22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어느 날 그만두고 도예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 그렇다. 지난 8일 제주시 오남동 ‘속리산방’(俗離山房)에서 그를 만났다. 속리산방은 비록 세상 한가운데 있지만 세속과 멀리한다는 뜻으로 서예의 대가 현중화 선생이 생전에 지어준 이름이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얼핏 범상치 않은 스님처럼 느껴진다. 우선 머리를 빡빡 깎았으며 가끔 욕지거리를 섞어 내뱉는 말투가 그랬다. 하지만 웃을 때는 영락없는 어린 동승의 모습이다. 파안대소,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그에게 왜 오름인지 먼저 물었다. “제주 오름을 사랑합니다. 평소부터 오름을 작품에 담고 싶었어요. 제주에 있는 대부분의 오름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지요. 그림에는 재주가 없어서 흙으로 재현하려고 했습니다. 몇 년 하다 보면 오름 하나는 만들겠지 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흙덩이들을 어지간하게 고생시켰습니다. 오름의 선은 파도가 뒤집어지는 접시모양인데 그런 것이 잘 안 나와 초벌구이 전체를 모두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흙장난이나 하고 있지요 뭐.” ‘흙장난’이라는 말은 아무렇게 만들어도 원하는 작품이 나온다는 뜻으로 들린다. 사실 오름의 분화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사발모양을 하고 있다. 또 해안가에서 바라보는 오름은 아름다운 자연의 선(線)을 간직하고 있다. 분화구에서 들여다 보고 오름과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서 오름을 바라다보면서 작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오름의 생명력과 신비함이 담겨진 선과 색이 살아났던 것이다. 이후 오름뿐만 아니라 범위를 넓혀 제주 자연이 주는 선물, 즉 지형과 바람, 바다 물결이 남긴 선 등도 사발그릇에 담았다. 그렇다면 제주의 흙으로 그릇을 빚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 이에 대해 그는 “제주의 흙은 철분이 많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좋은 흙을 고르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가 주로 쓰는 흙은 오름 도처에서 캐오는 것들이다. 그가 이러한 작업을 할 때 2005년 작고한 사진작가 김영갑씨와 막역한 인연을 맺는다. 성산읍 신풍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당시 김씨가 지내는 곳과 멀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김씨 역시 오름 등 제주의 자연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던 터였다. 둘은 자연스럽게 만나 작품 얘기를 하고 또 작품 소재를 위해 여러 차례 함께 제주를 돌아다녔다. 송씨가 잠시 회고한다. “만난 지 20년은 더 됐지요. 김씨가 처음 제주에서 작업을 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어요. 무엇보다 텃세가 힘들었는데, 저는 마을사람들에게 ‘제주에는 훌륭한 문화인들이 많이 와야 한다’며 그러지 못하도록 자주 설득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씨와 친해졌지요. 한쪽 눈을 감고 사진을 찍지 말고 양쪽 눈으로 찍으면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는 등의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움직이는 오름을 찍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습니다. 민둥오름에 억새 흔들리는 모습, 그리고 쥐불놀이 때 용이 상처 나서 꿈틀거리는 모양의 오름 등을 얘기했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김씨는 생전에 “제주도만이 간직한 맛과 멋을 느끼고 표현하려고 애쓰는 나로서는 송충효님의 작품을 되돌아보며 나의 사진작업을 되돌아보곤 했다. 그의 작업은 억겁의 세월이 남긴 바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는 글로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송씨는 2003년 9월 김영갑갤러리 개관 때 작품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전시는 무슨 전시냐며 야외 전시장 빈 공간에 작품 몇 점을 던지듯 뿌려놓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깊다. 그가 불혹의 나이에 교직을 그만두고 경기도 곤지암의 보원요(寶元窯)에서 3년 동안 청소, 농사, 장작패기 등 허드렛일을 하고 지낼 때였다. 하루는 법정 스님이 찾아왔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마에 무너진 돌담을 열심히 옮겼다. 그러던 차에 도예 스승 김기철과 법정 스님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됐다. 스승이 법정에게 “(그를 가리켜)새로 들어왔는데 저렇게 일을 잘하고 있다”고 했고 법정은 “고생을 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송씨는 안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던 터에 화가 나서 한마디 욕을 뱉었다. 나중에 둘은 깊은 인연으로 이어졌다. 법정은 제주에 올 때마다 송씨와 만나 도자기 형태, 도자기 디자인 등에 대해 자주 의견을 나눌 정도로 송씨의 그릇 마니아가 됐다. 제주살빛과도 닮은 은은한 찻잔인 이른바 ‘법정스님 찻잔’은 법정과의 인연에서 탄생된 것이다. 또 송씨는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틈틈이 법정의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속리산방에는 법정이 직접 사인하고 보내준 책만 10여권이 된다. 그가 도예의 길로 들어선 까닭은 어릴 때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제주 표선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받고 지체없이 도공이 되겠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도공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하지만 제주에는 가마가 없을뿐더러 도예를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1969년 제주사범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직 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게 22년이 지난 어느 날 교직을 그만두고 도예공부를 하려고 서울로 왔다. 얼마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아동문학가 정채봉의 소개로 보원요에서 도예를 배우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기철 선생은 “안정된 교직을 박차고 나와 도자기를 해보겠노라고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솔직히 황당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꾸준히 뜻을 굽히지 않고 많은 역경을 이겨냈으며 타고난 예술성에 고맙고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단국대 박종훈 교수한테 도예를 더 배운 뒤 제주 신풍리에 작업장을 만들면서 불가의 선수행처럼 도선일계(陶禪一界)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작업을 하는 동안 여러 분야의 인사들과 만난다. 정종섭(현 안전행정부 장관) 서울대 교수, 동양화가 박대성·김행복· 최환채, 서양화가 김만수, 문인화가 구지회 등을 비롯해 수안 스님, 일장 스님, 대안 스님, 서예가 김종원, 유학자 오문복, 옻칠공예가 이가현 등도 함께 작업에 동참한다. 그릇의 형태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면 함께 만나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며 작업을 완성해 나가는 일이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현돈 제주대 교수는 “그는 꾸밈을 극도로 자제한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비정제·무정형의 파격이다. 애써 예쁘게 꾸미지 않고 타고난 자연의 결을 살려나가는 도가(道家)의 예술성에 맞닿아 있다”면서 “그릇 전체에서 풍기는 미적 정조는 질박하고 영혼을 정화하는 청정무구의 아름다움”이라고 평가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그는 “어느 날 때가 되면 그동안 만들어온 그릇을 모두 오름에 내던질 것이다. 나를 좋아했던 사람은 알아서 가지고 가고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던 사람은 그 자리에서 깨버리게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도예가 송충효는 1944년 제주 표선에서 태어났다. 1969년 제주사범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2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불혹의 나이에 교직을 그만두고 경기도 곤지암 보원요에서 김기철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예를 배웠다. 이후 단국대 박종훈 교수에게서 도예를 더 배운 뒤 제주 신풍리에 작업실을 만들고 본격적인 도예의 길을 걸었다. 제주 오름을 비롯해 해안, 바람, 바다물결 등 제주의 모습을 그릇에 담았다. 도예를 하면서 많은 인사들과 인연을 맺는다. 정종섭(현 안전행정부 장관) 서울대 교수, 동양화가 박대성·김행복·최환채, 서양화가 김만수, 문인화가 구지회 등을 비롯해 법정 스님, 수안 스님, 일장 스님 등과 교류하면서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현재 제주시 오남동 ‘속리산방’ 방장이다.
  • “공연 전엔 수다도 금물…성악가는 수도승 같아요”

    “공연 전엔 수다도 금물…성악가는 수도승 같아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김영의연주홀. 무대에서 솟은 쾌청한 음성이 객석 끝까지 뚫고 나왔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성악가의 눈빛과 손짓에 담긴 감정은 더욱 깊어지고 목소리에는 호소력이 더해졌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스페인 지휘자 안토니 로스 마르바(마드리드 퀸소피아 음악원 교수)는 “베리 굿”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오는 26일과 31일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공연을 앞두고 진행된 소프라노 캐슬린 김(한국명 김지현·39)의 리허설 현장이었다. ‘세계 오페라 1번지’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오페라)의 주역 캐슬린 김이 올해 11회째를 맞은 대관령국제음악제 무대에 처음 선다. 1984년 홍혜경, 1989년 조수미, 1990년 신영옥에 이어 2007년 메트 오페라 무대에 선 네 번째 여성 성악가로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그가 직접 고른 로시니의 아리아 ‘방금 들린 그대 음성’(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등으로 대관령의 밤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어릴 적 캐슬린 김은 그저 춤추고 노래하는 게 좋은 소녀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MBC어린이합창단 활동을 시작한 이후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거치며 노래를 쉬지 않았다. 예고 1학년 때(1992년)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2000년 맨해튼 음대 석사를 마친 뒤 동양인 성악가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7년간 합창단, 단역, 대역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말 오디션에 셀 수 없이 도전했어요. 수십 번을 떨어져도 그저 꿈이 있다는 게 좋았어요. 제 목표라는 게 그저 조그만 배역이라도 따내는 거였는데 그걸 향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시절이죠. 대역을 맡아도 대가들 옆에서 큰 역할을 공부하고 오페라 극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체 그림을 파악하려 애썼던 그때 경험들이 밑거름이 돼 지금 활동에도 큰 도움이 돼요. 무명 기간이 없었다면 무대에 서는 기쁨과 소중함을 몰랐을 테니까요.” 2005년 시카고 리릭오페라에서 뽑은 영아티스트 10명 안에 든 그는 주말에도 오로지 연습에만 매달린 결과 2007년 쟁쟁한 동료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메트 오페라에 데뷔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르바리나 역할이었다. 2012년에는 BBC 프롬스 무대에 데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중국의 닉슨’ 중 장칭 역을 완벽히 소화해 주목받았다. 특히 진정성 있는 감정이 실린 연기가 빼어나다는 평을 받는 그는 지난해 ‘한여름밤의 꿈’에서 티타니아 역을 맡는 등 메트 오페라에도 거의 매 시즌 출연하고 있다. 여기에는 외로울 정도로 철저한 자기 관리가 뒤따른다. “메트 오페라 가수는 전속이 아니기 때문에 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분투해야 해요. 공연을 앞두고는 연습과 운동, 목 관리로 하루가 다 가죠. 목을 아끼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놀러 나가는 것도 삼갈 정도예요. 어떻게 보면 수도승 같은 삶이죠.(웃음)” 이민 간 지 20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 사랑이 여전한 그는 지난해 고국에서 처음 독창회를 한 데 이어 오는 9월 20~2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야외공연 강변음악제에도 설 예정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벨기에 오페라 무대 데뷔도 하반기에 계속 이어진다. “돈이 아깝지 않은 공연, 관객을 치유하는 공연을 하는 성악가로 롱런하고 싶다”는 그의 소박하면서도 큰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고려시대 도예기술 ‘연리문’ 부활시킨 노경조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고려시대 도예기술 ‘연리문’ 부활시킨 노경조 교수

    보면 볼수록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색깔이 다른 것 같지만 하나로 잘 어울려 은은함이 있다. 비색 유약 속에 대리석이 자유분방하듯 조용히 새겨져 있다. 여러 모양의 병(甁)도 있고 통(筒), 합(盒)도 있다. 이른바 연리문(練理紋) 기법으로 탄생된 도자기다. 연리문은 대리석 무늬를 의미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도예기술이다. 당나라 때 기원을 두고 있으나 고려시대에 등장했던 도자기법이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거의 사라졌다. 백토, 흑토, 자토(紫土) 등 각기 다른 색깔의 흙을 사용해서 도자기를 빚어내는 제작과정의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전통 도예가 노경조(63) 국민대 교수는 그러한 연리문 도자기법을 부활시키고 40년 넘도록 일관되게 작업을 해와 연리문 도자기의 대가로 유명하다. 이론적 연구와 오래된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여러 도자 파편들을 채집한 뒤 고려시대의 전통 연리문 기법을 재현시키는 데 최초로 성공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는 동안 영국과 미국 등 세계 20여개국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보란 듯 전시할 정도로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1982년 한·영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첫선을 보인 뒤 1990년대, 2000년대 작품 등 10년 주기별로 그의 대표 작품이 이곳에 영구소장 됐다. 또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는 1990년대 대표작이 영구 전시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보통 2년 주기로 주제를 바꿔 도자기를 전시하는 데 비해 노 교수의 작품은 보기 드물게 영구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독 수교 100주년, 한·미 수교 100주년 때에도 도자기를 들고 현지에 나가 한국 도자기의 강점을 알리기도 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공항미술관에서 내년 2월까지 예정으로 성황리에 전시되고 있다. 도자기 작업이란 얼핏 보면 단순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어렵고 까다롭게 진행되는 일이다. 노 교수의 작품은 서로 다른 색깔의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과정 속에 노 교수는 한국인의 감성, 한국의 산하를 담아낸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감성으로 세계를 매료시킨다고 할 수 있다. 2001년과 2011년 세계 유명미술관 큐레이터 30여명이 한국에서 워크숍을 가진 적이 있다. 이때 대부분의 큐레이터들이 노 교수의 작품을 보고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한국의 유산을 이어주는 듯하다. 현대적이면서도 우아한 감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노 교수의 작품에 대해 “그의 연리문은 우리의 전통에서 터득한 여러 가지 맛을 자신의 조형감각에 호소해 새로 창조해낸 것이다”면서 “담담한 연리문 작업을 통해 흙의 참 아름다움과 흙의 참맛, 흙의 참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그는 연리문의 대가답게 천년 전의 도예기술을 습득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을 현대 도자공예 분야에서 차별화된 스타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래서 감상하는 이들에게 묘한 흙의 향수를 자극시킨다. 그는 도예뿐만 아니라 회화작품도 그리고 전시를 한다. 화가이자 도예가라는 이름을 듣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지난 7일 서울 정릉동 국민대 연구실에서 노 교수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유럽은 18세기 돼서야 도자기를 자체 생산했고 일본은 17세기에 시작했습니다. 반면 조선은 15세기이고 고려는 더 앞서서 도자기를 생산했지요.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아주 귀중한 문화적 자산인데다 역사가 담겨 있어 황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일본은 도자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도자기를 유럽에 팔아서 2차 대전의 물자를 확보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도자기 강국답게 지금에라도 각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주제별로 정리를 잘해놓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 미술관에 가 보면 역사의 흐름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도자기는 썩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에 따라 제대로 진열해 놓으면 오래도록 문화적 자긍심을 간직할 수 있으며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제공해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에게 연리문의 특징을 물었다. “연리문은 서로 다른 흙을 섞어 무늬를 만드는 것이지요. 소고기에 마블링이 있듯이 대리석 물결무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토, 백토 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문양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당나라와 고려시대 때 사용됐는데 요즘 현대작가들이 즐기는 기법 중 하나가 됐습니다. 주로 철분이 많은 흙을 사용합니다.” 원래 도자기라고 하면 둥근 모양을 떠올리지만 그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사각형 등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내 마치 회화를 연상케 한다. 거치문 장식이 달린 도자기도 만들어내는 자유분방함이 있다. 그의 작업실은 경기 양평의 자작나무 숲이 있는 곳에 자리해 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옹기들도 있다. 소주고리도 있고, 조선의 사방탁자도 있다. 이곳에서 자연의 놀라움, 생명에 대한 경외심 등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또한 연작시리즈의 회화작품도 그린다. 전국의 도요지를 다니면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자기의 파편들도 모았다. 그에게는 황금보다 더 귀한 파편들이다. 잠시 그의 손을 쳐다봤다. 나이에 비해 손이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태어날 때 손과 발만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흙에는 미백효과의 물질도 있지 않느냐”며 웃는다. 이어 “흙을 다루는 일은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모든 과정을 손으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에서 할머니 손맛을 내는 것처럼 흙 반죽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1년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도자기를 빚는 일은 기다림의 미학이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는 울고 웃으며 신호를 보내지만 흙은 절대 말을 안 합니다. 흙은 아무 말 없이 스스로 깨지고 그러기 때문에 항상 정성껏 살펴야 하지요.” 그는 1951년 서울의 학구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할머니는 일본의 우에노 음악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대 약대를 나왔다. 아버지는 국립중앙의료원 창립 멤버로 병원에서 초대 약국장을 지냈다. 어렸을 때 손이 유난히 커서 할머니는 장차 피아니스트가 되라며 피아노를 가르쳐 줬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부모는 외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피아노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지만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사춘기 방황도 그림으로 치유할 수 있었던 같다”고 회고한다. 그가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미술을 공부하는 동네 형 집에 놀러 다니다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따라 그리면서 시작됐다. 어릴 적 얘기가 나오자 추억 하나를 회고한다. 서울사범대 부속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다. 하굣길에 그는 아버지가 일하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자주 놀러 갔다. 당시 의료원에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 파견된 의사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의사들의 자녀와 만나 친하게 지냈다. 레고 같은 장난감도 선물 받았다. 이 레고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소중히 간직하는 골동품이 됐다. 또한 아버지는 당시 스웨덴 등 유럽 출장을 갈 때면 그림엽서를 자주 보내왔다. 그는 이 엽서를 자랑삼아 학교에 가지고 갔고 환경미화 시간이면 그림엽서를 벽에 떡하니 붙이고 그 옆에 세계지도를 그려넣곤 했다. 그는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그림보다는 도자기가 더 생산적이지 않느냐. 그리고 나중에 그릇이 부족한 아프리카에 거서 그릇을 만들어주면 추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할아버지 말씀’ 때문에 방향을 바꿔 대학에서 요업공예과를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원로 도자공예가 정규 선생을 스승으로 삼으면서 도자공예, 재료학 등을 섭렵하고 틈나는 대로 옹기가마에 가서 수련했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논문 ‘고려 상감청자 연구’를 발표했다. 이때 연리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 돈암동에 가스가마를 만들고 백자와 분청사기, 연리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국내외 많은 전시를 통해 도예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자녀 얘기를 꺼냈더니 “아들 둘을 두었는데 다들 잘 자랐다. 학교 다닐 때에는 성적표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졸업할 때 ‘사춘기를 잘 보내줘서 감사하다’라고 했다”며 웃는다. 현재 디자인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 미술관에 계속 전시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제자들도 그 뒤를 따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노경조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동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영화배우 안성기와 가수 조용필이 중학교 동창이다. 원래는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경희대 입학 때 요업공예과를 택했다. 대학에서 원로 도자공예가 정규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동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졸업 때 ‘고려 상감청자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 연리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77년 일본에 가서 우리 도자공예와 다른 도자기 공예를 2년간 접했다. 1979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 돈암동에 가스가마를 만들어 본격적인 연리문 작업을 시작했다. 그해 공간사 공모전에서 도예상을 시작으로 동아공예전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개인전은 일본 가나자와 갤러리(1979년), 서울공간미술관(1981년), 미국 버밍햄 박물관 초대전(1982년), 미국 뉴올리언스 박물관(1983년), 노경조 도예 30년전(서울, 2005년) 등 수십여 차례 열었다.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세인트 피터스버그 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이탈리아 파엔자 도예학교, 중국 의홍박물관 등 해외 20여개국의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국민대 조형대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스스로 꿈 찾기 ‘예술꽃 학교’ 가다] (5) 특수학교 예술교육

    [스스로 꿈 찾기 ‘예술꽃 학교’ 가다] (5) 특수학교 예술교육

    곽지영씨는 도예가이자 예술강사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진흥원)의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5년째 참여하고 있는 그는 5년 중 최근 4년간 인천 부평구에 있는 특수학교인 예림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이 학교에는 유치원 과정부터 대학(직무 중심 전공과) 과정까지 학생 102명이 있다. 학생들은 정신지체,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특수학교 예술강사를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도예 작업을 하며 출퇴근하기 좋은 학교를 고르다 예림학교 학생들을 만나게 됐다. 첫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친 뒤 이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려고 머물렀다. 그해 만난 학생들은 이미 고교 과정을 졸업해 직업능력을 배우는 전공과 학생이 됐고, 올해에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최근 진흥원의 특수교육연수프로그램을 수강하는 등 장애를 지닌 학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예림학교 학생들에게 도예를 가르치는 일의 매력에 대해 “그 시간을, 또한 예술 자체를 즐기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만 해도 그는 학생들이 ‘예술적인 기술’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교육의 초점을 뒀다. 조금 더 가위질을 잘하고, 조금 더 구상에 대해 잘 이해하기를 기대했다. 학생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기술’보다 중요한 게 ‘현재에 충실한 그 자체’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작품에 몰두하고, 만드는 동안 즐거워하고, 만든 다음 뿌듯해하는 즐거움을 깨닫는 자체가 장애를 가진 아이뿐 아니라 모두에게 예술교육의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예림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 학생 8명을 대상으로 ‘입체카드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그는 만드는 자체의 즐거움을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날 발달장애 학생이 모인 학급에서 진행된 수업에서 유독 자폐 성향을 지닌 성훈(가명)군은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수업 시간 40분의 절반인 20분이 지날 때까지 성훈군은 재료를 만지작거리며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성훈군은 시선을 3~4명씩 한꺼번에 훑고 지나갈 뿐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자주 만나 익숙한 곽씨와 눈이 마주칠 때에도 기분 좋은 웃음만 씩 웃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한 남학생은 “저는 공룡이 좋으니까 공룡을 만들래요”라며 뾰쪽한 이빨을 가진 공룡의 입을 만들고 있었다. 개구리 모양 카드를 만들던 여학생은 개구리 눈 2개를 짝짝이로 만들고 고민하다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눈을 그린 뒤 오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카드를 다 만들면 누구에게 줄지, 또는 그냥 보관할지를 쉴 새 없이 곽씨에게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작품을 거의 완성해 갈 무렵 그는 재료만 만지고 있는 성훈군에게 향했다. “선생님은 오리를 만들면 좋겠는데, 오리 입이 어떻게 생겼을까” 부리의 모습을 함께 스케치한 뒤 그는 성훈군에게 가위를 줬고, 성훈군이 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학생의 마음이 내킬 때까지 기다리기, 참여할 생각이 들었지만 망설이는 학생을 수업에 끌어들이기, 필요한 도움을 준 뒤에는 다시 학생이 직접 해보도록 기다리기…. 그의 교실에서는 이처럼 수업과 기다림의 과정이 반복됐다. 곽씨처럼 학생들 역시 기다리는 일에 능숙했다. 카드에 쓸 개구리 눈 2개가 짝짝이여도 곽씨가 다른 학생의 작품을 봐주는 동안 기다렸고, 풀을 너무 많이 짜서 완성 직전에 낭패를 본 학생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만들기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40분 동안 교실에 머무르며 집중하는 것 자체가 기다림 훈련이었다는 점은 수업이 끝난 뒤 알았다. ‘학생들이 차분하게 수업에 잘 집중하는 것 같다’고 하자 예림학교의 양미옥 초·중학교 과정 부장교사는 “평소 지루하면 화장실에 가거나 교실을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오늘 공개수업을 한다는 말을 듣고 학생들이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며 대견스러워했다. 학생들에게 장애가 있다고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사회성이란 사회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는 일에 다름 아니다. 학교 외부인에게 잘 보여주겠다는 동기가 학생들이 예술 수업에 참여하는 동기가 됐다니 공개수업을 보느라 학교를 번잡스럽게 만든 게 조금은 덜 미안해졌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아이들 지킬 수호천사… 미소천사 마음으로 빚었어요

    아이들 지킬 수호천사… 미소천사 마음으로 빚었어요

    입모양을 보며 질문을 읽고 성실하게 답한다. 또렷하지 않은 말투지만 줄곧 웃음을 머금는다. 참 밝은 사내다. 청각장애 2급·지적장애 2급인 박진오(32)씨의 첫인상이다. 지난 11일 오후 5시 은평구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옛 은평천사원) 교육장에서 박씨를 만났다. 도예실에서 장애인 사회적기업으로 독립한 ‘달항아리’ 동료들과 점토 모양을 다듬고 소리가 날 수 있도록 구멍을 만드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는 “도자기 만드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이건 도자기 호루라기”라며 ‘삑’ 불었다. 피리 소리가 났다. 자신의 말이 맞지 않느냐는 듯 씩 웃었다. 휴대전화나 가방에 매달고 목걸이로도 사용할 수 있는 박씨의 창작품이다. 초등학생, 여성 등이 위급 상황에 호신용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식용으로도 썩 괜찮은 디자인이다. 작품엔 박씨의 이름을 따 ‘지노 피리’로 붙이게 된단다. 이미 초등학생 호신용으로 수백개를 주문받았다. 박씨는 “평소 버들잎 두 장을 겹쳐 풀피리 소리 내기를 좋아한다”며 “풀피리를 도자기와 접목하려고 고민했고 코로 부는 코피리, 호루라기 형태의 초소형 오카리나, 부엉이·돌고래 모양 피리 등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가방에서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또 “듣고 싶은 소리를 내 곁에 두고 싶은 것처럼 지노 피리가 어린이들의 수호천사가 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지노 피리 판매 수익금 일부는 장애인 재활을 돕는 데 쓰일 예정이다. 박씨의 창작품이 누군가를 보호하기도 하고 나눔으로 재탄생되는 셈이다. 네댓 살 때 기차역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린 뒤 아동보호소를 거쳐 일곱 살 때 천사원에 왔다. 정신지체 특수학교인 은평 대영학교를 다닐 때 학교 교사였던 장형진 달항아리 대표가 그를 도예 세계로 이끌었다. 장 대표는 “호기심 많은 말썽꾸러기여서 복도에서 손들고 있기 일쑤였지만 흙을 만질 땐 특출한 손 맵시를 뽐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이후 장 대표에게 도자기 관련 기술을 하나씩 배우며 일취월장을 거듭했다. 도예 일을 한 것도 12년째. 전국 장신구 공모전, 장애인기능경기대회 등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미소천사로 불리는 박씨는 올해 초 천사원에서 나와 장애인 정착을 돕는 체험홈에서 지낸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박씨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결혼하고 싶다”며 쑥스러운 듯 작품으로 눈을 돌렸다. 글 사진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부고] 남종화 마지막 거장 조방원

    [부고] 남종화 마지막 거장 조방원

    남종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아산(雅山) 조방원 선생이 9일 오전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수묵산수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남도의 정서에 맞는 수묵화의 경지를 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치(小癡) 허련(許鍊), 남농(南農) 허건(許楗)을 잇는 남종화의 큰 산으로 손꼽힌다. 활달하면서도 무게 있고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남도예술회관 건립 추진위원, 현대한국화협회 이사, 아산 미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과 문교부장관상, 전남도 문화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 2녀가 있다. 발인 11일 오전, 장지는 전남 곡성군 죽곡면 연화리, 빈소는 광주 북구 신안동 광주역 장례식장 특 2호실. (062)264-4444.
  • [IT기술 혁명-다가온 미래학교] (중) 서울 계성초 스마트 교육 현장

    [IT기술 혁명-다가온 미래학교] (중) 서울 계성초 스마트 교육 현장

    “지금부터 20분간 마인드맵의 설명을 늘리는 ‘트리 확장’을 시작합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의 계성초등학교 5학년 슬기반. 조기성(41) 교사의 말에 학생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교실 앞면의 전자칠판에는 자기 생각을 지도 그리듯 이미지화한 ‘마인드맵’이 준비돼 있다. 트리 확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정보를 찾아 마인드맵의 가지를 늘려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5명씩 모둠(그룹)을 지어 앉은 학생들은 동영상을 보고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자료를 찾았다. 2모둠의 민석이와 민준이가 태블릿PC를 클릭하더니 찾은 자료들을 마인드맵의 ‘트리’ 끝 부분에 붙여 넣었다. 민석·민준이가 맡은 것은 ‘불교문화’ 부분. 두 학생은 ‘직지심체요절’과 ‘고려청자’, ‘고려청자에 이름 붙이는 방법’, ‘고려청자와 빗살무늬토기의 다른 점’ 등을 인터넷에서 척척 찾아내더니 능숙하게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조 교사가 “민석이와 민준이가 가장 빠르네!”라며 칭찬을 하자 다른 학생들도 바빠졌다. ‘5분사탐-고려의 불상’이란 동영상을 들으며 메모를 하던 5모둠의 주원이가 태블릿PC에 정보를 넣었다. 동영상이 안 떠서 고생하던 태화 역시 분발하는 모양새였다. 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일수록 마인드맵의 가지 수도 여기저기서 점점 늘어났다. 이날 슬기반 사회 과목의 주제는 ‘불교의 영향과 고려 사람들’이었다. 5개의 모둠으로 나눠 ▲팔만대장경판 ▲불교의 영향 ▲사찰의 영향 ▲불교문화 ▲건축과 불상 등 5가지 소주제를 하나씩 맡아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각 주제에는 관련 영상과 찾아야 할 과제 등이 제시돼 있다. 트리 확장을 끝낸 후 각 모둠에서 1명의 학생이 반 전체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고 친구들의 질문에 답도 해야 한다. 수업은 태블릿PC로 게임이나 웹서핑 등 딴짓을 하기 어려울 만큼 밀도 있게 진행됐다. 수현이는 “1주일에 2~3번 정도 이런 수업을 하고 있다”며 “책을 보면서 선생님 수업을 듣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짝꿍 혜림이도 “수업한 뒤 교과서를 보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이 학교는 2011년부터 사회와 과학 등 일부 과목에서 태블릿PC를 활용해 수업하고 있다. 조 교사가 삼성에서 태블릿PC를 협찬받아 3학년부터 수업에 도입해 올해 3~6학년까지 확대됐다. 외국어, 미술, 도예, 무용, 인성, 국악 수업과 함께 특성화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태블릿PC를 수업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초반에 거부감도 있었다. 남궁순옥(58) 계성초 교장은 “태블릿PC를 도입할 때 주변에서 ‘아이들이 게임이나 웹서핑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며 “하지만 예상외로 학습 효과가 뛰어나고 학생들도 수업을 즐거워해 점점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블릿PC는 수업 시간에만 사용하고 수업 종료 후엔 바로 회수하는 게 원칙이다. 남궁 교장은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첨단 기기는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수업을 준비하는 게 교사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 조 교사는 수업 개설에 ‘삼성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는 EBS 클립뱅크나 유튜브 등에서 적절한 것을 찾아 링크를 붙이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조 교사는 “수업을 설계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사의 몫”이라며 “일부 회사에서 나오는 디지털 수업 자료는 콘텐츠까지 제공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라면 지금의 수업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자료를 찾을 때에도 인터넷에 널려 있는 자료가 아닌 출처가 분명한 자료를 찾도록 가르치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단순한 질의응답 서비스나 출처를 모르는 블로그 자료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은 백과사전이나 도서관, 교육청 등 공공 사이트에 올라온 자료를 활용해야 한다. 조 교사는 “첨단 기기를 활용한 수업은 아이들의 역량을 키워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스스로 자료를 찾고 협업해 더 큰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게 바로 이 수업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했던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에서도 이런 부분이 강조됐다. 미래의 교육 방식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공부하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며, 그러려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 한영중학교의 김두일(39) 과학 교사는 현재 중학교 3학년 과학 과목의 8단원 중 2단원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수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 교사가 수소 풍선을 천장에 띄우고 공기 중에 풍선이 뜨는 이유를 설명하면 학생들이 태블릿PC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자기 생각을 주고받는다. 학생들의 답이 즉각 오기 때문에 교사는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학생들의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SNS를 활용하자 수업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 게 가장 큰 성과다. 김 교사는 “교사와 학생들이 충분히 공감하지 않은 채 첨단 기기만 활용한다면 오히려 해악이 될 수 있다”며 “미래의 수업은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고 자존감과 자신감 등을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남 김해시 김해외국어고등학교의 박승훈(36) 영어 교사도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게 미래 수업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 수업에 메모, 갈무리, 뉴스 클리핑 등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램인 ‘에버노트’를 사용한다. 에버노트사에서 인증한 전 세계 26명의 앰배서더(홍보대사) 중 한 명인 그는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사진이나 글귀, 뉴스 등을 에버노트로 모아 수업에 활용한다. 학생들에게는 휴대전화 등에 에버노트를 설치하도록 하고 일상생활에서 갑자기 떠오른 노래를 영어로 녹음해 발표하게 하는 등 다양한 수업을 하고 있다. 박 교사는 “에버노트라는 프로그램이 유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학생들에게 사용법을 익히라든가 하는 식으로 강요를 하면 안 된다”며 “첨단 기기나 각종 프로그램이 수업에 도입되면 오히려 불편해하는 학생도 있다. 지금까지 수업이 교사가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었다면 미래의 수업은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랜드, 中시장 겨냥 화장품 사업에도 관심

    이랜드, 中시장 겨냥 화장품 사업에도 관심

    “어디 괜찮은 화장품 회사 없나요? 추천 좀 해 주세요.” 최근 이랜드그룹이 켄싱턴 제주 호텔 개장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박성경 부회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다각화 및 영역 확장 의지를 피력했다. 박 부회장은 “이랜드는 의·식·주·휴·미·락 등 6개의 큰 그림 아래 사업을 넓혀 가고 있다”며 “(이랜드가) 쇼핑몰 하나를 통째로 채울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가진 것에 대해 중국 기업들이 놀라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파트너들이 다 있는데 왜 화장품만 없냐고 묻는다”며 “관심은 있는데 노하우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좋은 매물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M&A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든 M&A는 중국에서 사업 영토를 확장하는 데 맞춰져 있다. 1996년 대륙에 처음 진출한 이랜드는 지난해 매출 10조 4000억원 가운데 2조 4000억원을 중국에서 거뒀다. 박 부회장은 “중국에서 매년 20% 성장하고 있는데 올해 목표치(2조 7000억원)를 넘어 3조원도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얼마 전 개장한 켄싱턴 제주 호텔도 중국 VIP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마련했다. 중국 관광객이 넘쳐 나는 제주에서 ‘화랑 콘셉트’를 내세운 이 호텔은 주락경 등 중국 유명 도예가가 제주도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이랜드에 따르면 이 같은 사실이 중국 문화계에도 퍼지면서 다음 달 골든위크 기간 예약률이 100%를 기록했다. 이랜드는 중국 구이린 지역에서도 호텔 2곳을 운영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국내에서 대기업 진출 제한으로 막힌 면세사업도 해외 사업 목록에 올라 있다. 박 부회장은 “2020년까지 150개 지점에 1만 8000개 객실을 갖춘 매출 5조원의 세계 10대 호텔·레저그룹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주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토박이 예술가들 작품 전시… 관악구청 갤러리 인기 모아

    토박이 예술가들 작품 전시… 관악구청 갤러리 인기 모아

    구청 갤러리에서 토박이 예술가의 전시회를 잇달아 열며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서울 관악구는 다음 달 1일부터 22일까지 청사 2층 갤러리관악에서 ‘도예가 김금자 초대전’을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김금자 작가는 낙성대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줄곧 관악구에 살고 있는 지역 예술인이다. 공예 작가로 이름이 높다. 그는 창작 활동 외에도 낙성대동 골목예술제 총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골목예술제엔 동네 주민들에게 멀리 미술관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골목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가 담겼다. 김 작가가 직접 기획했다. 해마다 10월 즈음 열린다. 도예, 카툰, 공예품, 회화 등 다양한 작품 전시뿐 아니라 음악회, 무용 공연, 영상 상영 등을 곁들이며 이웃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쉼, 그리고 사색’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선 다양한 색과 빛을 내는 도자기 30여점이 전시된다. 자연친화적인 흙으로 전체 형태를 만든 뒤 표현하고 싶은 대상의 윤곽만 남기고 나머지는 파내는 방식(투각)으로 만든 조형물에 불빛을 더해 도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정적과 허무를 담은 백자 무심에서 길어올린 미학

    정적과 허무를 담은 백자 무심에서 길어올린 미학

    “거기엔 아무런 기교와 재주와 계획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스런 형태, 자연한 빛깔은 도공의 무심에서 이뤄졌던 것입니다. 조그만 지식과 개성은 오히려 망치는 것입니다. … 오직 자연에 맡겼던 것입니다.”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말갛고 뽀얀 살결을 지닌 조선백자는 이 땅의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었다. 1300도가 넘는 화덕에서 두 차례나 구워져 돌아온 백자에는 넉넉하면서도 두루뭉술한 묘한 매력이 숨어있다. “담긴 것은 정적과 허무요, 그것은 이미 그릇이라기보다 천지요 우주”라는 소설가 이태준의 찬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추상회화의 개척자인 김환기(1913~1974)는 ‘달항아리 작가’로 불렸다. 달항아리와 조선백자를 수집해 감상하고 즐겨 그렸는데, 국내에 머물 때면 서울 성북구 성북동 화실 한편에 도자기를 쌓아 놓았다. 화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수집한 백자를 창문 밖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선반을 만들어 올려놓기까지 했다. 정물화로 유명한 도상봉(1902~1977)의 짝사랑도 이에 못지않았다. 그는 아예 호를 ‘도천’(陶泉)이라고 지었다. ‘도자기의 샘’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백자의 미감을 화폭에 빼곡히 담아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이 최근 개막한 ‘백자예찬: 미술, 백자를 품다’전은 수많은 국내 작가들이 다양하게 풀어낸 백자의 미학에 관한 이야기다. 매화나무 가지 사이로 달항아리를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을 녹여 낸 김환기의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1956년) 등 백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회화·설치·도예 등 56점의 작품이 나왔다. 전시는 크게 3부로 나뉘어 백자와 예술가의 관계를 전한다. 1부 ‘백자, 스미다’에선 대가들의 회화작품을 다룬다. 김환기의 1940년대 작품인 ‘섬 스케치는’ 이번에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작가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안좌도를 배경으로 아낙들이 항아리를 이고 가는 풍경을 형형색색으로 단순화해 표현한 그림으로, 미술관 측이 지난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했다. 도상봉은 라일락과 개나리, 튤립이 꽂힌 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깊고 맑은 유백색, 도공들의 무작위적 작업 방식 등 백자가 갖는 미학을 추상언어로 표현한 박서보, 이동엽, 정상화, 정창섭의 단색조 회화도 소개된다. 2부 ‘백자, 번지다’에선 백자를 모티브로 확장된 작품을 다양하게 다룬다. 사진가 구본창은 4개국 16개 박물관에서 촬영해 온 조선백자 사진을 전시하고, 도예가 노세환은 백자의 전통을 짜장면 가게에서 마주할 수 있는 생활 자기로 구워 내 보여 준다. 손석은 물감을 쌓아 올려 백자의 아름다움을 홀로그램처럼 담아내고, 이승희는 흙물을 겹쳐 발라 3차원의 도자를 2차원으로 표현한다. 3부 ‘백자, 이어지다’에선 백자의 명맥을 잇는 현대 도예가들의 예술혼을 살펴본다. 백자 복원에 평생을 바친 한익환, 물레 성형의 원형을 깨고 파격의 미를 추구하는 김익영 등의 작품이 나왔다. 김가연 서울미술관 학예실장은 “이번처럼 회화와 입체, 설치, 사진까지 두루 어우러진 전시는 처음”이라며 “조선백자의 미학은 우리 미술 속에서 계승되고, 변화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8월 31일까지. 성인 9000원, 초·중·고 학생 7000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고희 넘긴 韓·佛 화가 3인 ‘지구 환경’ 다룬 미술전

    고희 넘긴 韓·佛 화가 3인 ‘지구 환경’ 다룬 미술전

    “숨어 버린 돌계단, 침묵에 싸인 파란 하늘은 모두 고향 코르시카의 척박한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지요.” 최근 한국을 찾은 장마리 자키(70) 프랑스화가협회 명예회장은 나폴레옹 1세의 고향인 코르시카 출신이다. 이슬람과 이탈리아, 프랑스가 번갈아 가며 지배했던 이곳을 19세에 떠나 파리에서 50여년간 의욕적으로 활동해 왔다. 지금은 색채 미술의 마술사로 불린다. 도예가인 조상권(78) 광주요 도자문화원장은 1960년 파리 국립미술대 건축과를 졸업한 건축 엘리트였다. 하지만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30여년간 해외를 떠돌다 17년 전 가까스로 귀국해 도자예술에 천착하고 있다. 흙과 불이 오묘한 이치를 이루는 감수성 풍부한 도자예술을 펼친다. 강석진(75) 세계미술문화진흥협회 이사장은 화단보다 재계에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GE코리아 회장을 거쳐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고향의 산과 들을 소재로 간결하고 정감 넘치는 풍광을 초록색의 색감을 이용해 그려 왔다. 고희를 넘긴 화가들은 오는 1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남서울대아트센터 갤러리 이앙에서 한·프랑스 국제교류전 ‘이곳에 살기 위하여’를 연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의 동명 시를 주제로 한 전시는 지구의 환경 문제에 방점을 찍었다. 세 작가는 삶의 여정을 공유한 듯 “이번 전시에서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다”고 말했다. 전시에서 자키 회장은 소음과 공해에 훼손된 남프랑스 마을의 회복을 소망하는 맑은 색채의 유화를 선보인다. 조 원장은 ‘침향로’, ‘아로마램프’ 등 전통과 현대가 접목된 도자 작품을 내놓고 강 이사장은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초록빛 벌판의 무한한 생명력을 전달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미술 작품을 구매한 당신 사회공헌도 함께했군요

    미술 작품을 구매한 당신 사회공헌도 함께했군요

    “7년 전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했을 때 지하철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어둡고 천편일률적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이때부터 사소한 주변의 것들을 포착해 강렬한 색감으로 경쾌하게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회화를 전공한 신진 작가인 정도영(32)씨는 이렇게 말한다. 도예를 전공한 명가을(30) 작가가 구워낸 도자기에 색을 입혀 배트맨, 원더우먼, 토르와 같은 영화 캐릭터부터 레이싱 선수, 추리닝맨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의 표정을 경쾌하게 그려낸다. 푸른 초원에서 마냥 웃고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익살스러운 표정도 예외가 아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와 국내 아트페어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온 두 작가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5년간 함께 작업하며 무려 1000여명의 모습을 도자기에 담아왔다. 원형을 떠 가마에 굽고 채색·유약 작업을 거쳐 다시 가마에 들여놓는 도자 작업에 흠뻑 빠져 산다. 이들은 2일부터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그림손갤러리에서 열리는 ‘행복의 발견’전을 통해 새로운 실험에 동참한다. 대한적십자사와 한국미술경영연구소가 주관하는 전시에서는 기본경비를 제외한 작품구매 수익금 전액이 대한적십자사에 그대로 기부된다. 예전 나눔전시와 달리 구입자의 이름으로 기부가 이뤄져 연말정산 등 다양한 소득공제 혜택을 챙길 수 있다. 두 작가의 협업 작품들은 해학적이다. 과장된 표정과 색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소유를 추종하는 삶의 의미를 되묻는 듯하다. “현대사회와 사회를 구성한 사람들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도자기가 갖고 있는 속성을 작품의 의미와 결합시켰죠. 도자기는 화려하지만 동시에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조각날 수 있는 이중성을 지녔어요. 아슬아슬한 삶의 모습이죠.”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유망 작가를 발굴, 후원하는 한편 미술작품 소비가 사회공헌 기부활동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특별한 계층의 특별한 소비행위로 여겨지는 미술 소비문화의 저변을 확산시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청송백자·심수관가 작품 나란히… 청송 도예전시관 28일 문열어

    청송백자·심수관가 작품 나란히… 청송 도예전시관 28일 문열어

    400여년 전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 도공의 예술혼과 민족혼을 꽃피운 심수관가(家) 작품(오른쪽)과 500여년 전통의 청송백자(왼쪽)를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이 경북 청송에서 문을 연다. 청송군은 28일 부동면 하의리 주왕산 주왕산관광지에서 도예촌 준공과 함께 ‘청송백자·청송심수관 도예 전시관’ 개관식을 갖는다고 27일 밝혔다. 개관식에는 한동수 군수를 비롯해 15대 심수관, 청송백자 기능보유자 고만경(84)옹 등 5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군이 2004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총 58억여원을 투입해 조성한 도예촌은 연면적 696㎡, 건물 6개(공방, 가마 등) 동으로 구성됐다. 백자전시관에는 생활용 도자기인 ‘주병’ 등 42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청송백자는 일반 서민들이 주로 쓰는 민요(民窯)로 500여년간 생성과 단절, 복원, 전승을 이어 온 청송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흙을 주로 쓰는 다른 지역과 달리 도석(陶石)을 빻아 만들어 눈처럼 흰빛으로, 두께가 매우 얇고 가벼운 게 특징이다. 제작 시설과 기술이 독특한 형태를 보여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심수관 도예전시관은 416년간 선조의 예술혼과 전통을 바탕으로 일본 ‘사쓰마’(현 가고시마) 도자기의 세계적 명성을 쌓은 12∼15대 심수관가 작품 ‘사군자무늬 대화병’ 등 30점을 선보인다. 심수관가 도자기는 정교한 투각기법과 화려한 금채기법이 돋보인다. 심수관가는 1598년 정유재란 당시 전북 남원에 살던 도예공 심당길이 사쓰마로 끌려가 청송 심씨(靑松 沈氏) 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심수관으로 이름을 이어받아 선조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며 민족혼과 예술적 자긍심을 지켜온 것으로 유명하다. 한 군수는 “청송백자와 청송심수관가 도자기는 청송을 대표하는 한 뿌리”라며 “이번 전시관 개관이 청송 문화를 아름답게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청송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디스크 참으며 붓 잡은 민화 화가·연구원 박차고 그릇 잡은 도예가, 그 손으로 한국의 美 함께 만든다

    디스크 참으며 붓 잡은 민화 화가·연구원 박차고 그릇 잡은 도예가, 그 손으로 한국의 美 함께 만든다

    “이명박 정권 초기 (김윤옥) 여사께서 사람을 보내 한복치마에 민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러시아 순방을 앞둔 시기였죠.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는데, 중간에 다리를 놨던 분이 ‘돈 받고 하시겠어요, 아님 끌려가서 그냥 하시겠어요’라고 (농담조로) 말해 바로 그렸습니다.” 전통 민화의 현대적 변화를 꾀하는 작가 서공임(왼쪽·54)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크게 웃었다. 지금도 하루 12~16시간씩 작업한다는 작가는 심한 목 디스크에 시달리면서도 우두커니 앉아 그림을 그린다. 이런 작가에게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1996년 인사동을 방문한 스페인 국왕 부부는 커피 냄새에 이끌려 카페인 줄 알고 제 작업실을 방문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던 소피아 왕비는 ‘일월오악도’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기념으로 호랑이 그림을 가져갔죠.” 작가의 작업실은 서울 북촌 효자동의 한옥에 자리한다. 홀로 온종일 화폭과 씨름하며 기껏해야 하루 1시간 남짓 인근 둘레길을 걷는 것이 유일한 삶의 위안이다. “‘과거와 똑같은 민화를 그리는 사람이야’란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다”는 작가는 전통 민화를 재해석해 주목받고 있다. 작품 제목도 이채롭다. 부부를 뜻하는 매화와 대나무에 까치가 등장하는 그림에 ‘죽매쌍희’ 대신 ‘결혼 축하드려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이름을 다는 식이다. 전 세계를 돌며 전시를 연 작가는 “몸 망가지며 그린 그림이 외국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서 역시 민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작가는 지구촌 아동을 돕는 유니세프 카드에 작품이 실릴 만큼 유명해졌다.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도예가 이기영(오른쪽·59)씨도 입을 열었다. “조선 후기 시골 장터의 환쟁이가 연명을 위해 그린 조잡한 그림이란 인식이 강해 지금도 민화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어요.” 이씨는 프랑스에서 발전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따고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다 도자기에 빠져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민화를 현대적인 그릇에 담아내겠다며 직접 그릇 제작소를 열기도 했다. “도자기를 굽던 중 그릇에 새겨 넣을 그림을 고민했는데 민화가 눈에 들어왔어요. 민화의 매력은 상상력과 자유분방함입니다.” 그는 두드러짐의 미학을 첫손에 꼽았다. “지배계층의 핍박을 받던 서민들이 마음껏 키우고 줄이거나 생락하면서 자유롭게 숨을 쉬었다”는 것이다. 2010년에는 민화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민화에 홀리다’(효형출판)를 펴냈다. 책에는 서 작가가 그린 작품이 실렸고, 이를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그룹 2NE1 씨엘의 외삼촌인 그는 작가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순수후원단체인 aba그룹 대표도 맡고 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민화에 홀리다’전은 오는 23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이어진다. (02)726-4456.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SBS 짝 여성 출연자 “명백한 자살” 수첩 내용 보니.. 충격

    SBS 짝 여성 출연자 “명백한 자살” 수첩 내용 보니.. 충격

    ‘SBS 짝 여성 출연자’ 5일 서귀포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께 제주 서귀포시 예래동 SBS ‘짝’ 촬영 숙소 화장실에서 여성 출연자 A 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오후 두 번째 브리핑에서 “명백한 자살”이라고 밝히며 수첩에 적힌 유서 내용을 일부를 공개했다. 유서에는 ‘엄마 아빠 너무 미안해. 그냥 그거 말곤 할 말이 없어요. 나 너무 힘들었어. 살고 싶은 생각도 이제 없어요. 계속 눈물이 나. 버라이어티 한 내 인생 여기서 끝내고 싶어. 정말 미안해요. 애정촌에 와 있는 동안 제작진들에게 많은 배려 받았어요. 그래서 고마워. 난 너무 힘들어. 단지 여기서 짝이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삶이 의미가 없어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미안해. 고마웠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밖에 이 수첩에는 애정촌에서 만난 사람 중 호감가는 남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출연진이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A 씨는 숨지기 전인 이날 밤 12시 30분쯤 테라스에 혼자 있는 모습이 다른 출연진에 발견됐으며, 왜 거기 있느냐는 질문에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촬영 초반에는 활기 있는 모습이었지만 사망 전날에는 활기가 없었으며 사망 전날 저녁 오후 8시쯤부터 촬영장인 3층 건물 중 1층 거실에서 남녀 출연진 12명이 다 같이 모여 회식을 하며 술도 어느 정도 마셨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후 같은 날 오후 11시쯤 어머니와 통화했으며 힘들다는 얘기는 없었고 출연자 간 다툼이나 따돌림 등 촬영 과정상의 문제도 아직 확인된 바 없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촬영과정에서 A 씨는 초반에는 남성 출연자에게 선택을 많이 받았으며 수첩에 적은 호감 가는 남성과 짝이 된 적도 있지만 후반부에는 서로 엇갈리는 상황이 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한 출연진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최종 선택을 앞두고 선택한 남성이 다른 출연자와 맺어진 것을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촬영시작 4일째인 지난 2일 오전 SNS에 밝게 웃는 자신의 사진과 함께 ‘나는 제주도예요. 행복하닷’이라는 글을 올리고 지인들의 응원메시지에 ‘응 잘하고 있어’, ‘와~ 여기 장난 아냐’는 등 댓글을 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SBS 짝 여성 출연자 사망 충격이다”, “SBS 짝 여성 출연자, 제주도에서 대체 무슨 일이”, “SBS 짝 여성 출연자 사망 안타깝네”, “짝 제작진과 출연자들도 정말 놀랐겠다”, “이제 짝에 누가 나가겠느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SBS(SBS 짝 여성 출연자)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일본서 꽃핀 양대 조선도예 400년 만에 만나다

    일본서 꽃핀 양대 조선도예 400년 만에 만나다

    400여년 전 일본에 끌려와 조선의 도예 기술을 꽃피운 도공의 양대 가문 심수관가(家)와 이삼평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도쿄의 주일 한국문화원은 5일부터 22일까지 문화원 갤러리에서 열리는 기획전 ‘해협을 잇는 도공, 400년의 여행-이삼평과 심당길을 되새기고’ 개최에 앞서 주인공인 제15대 심수관(55)과 14대 이삼평(53)의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일본에 끌려온 조선 도공들은 주로 서일본에 정착해 조선의 도예 기술을 전하며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중 가고시마현에 자리를 잡고 ‘사쓰마야키’로 불린 자기로 일가를 이룬 심수관가와 사가현에서 ‘아리타야키’를 만드는 이삼평(일본명 가나가에 산페이)가가 대표적인 가문으로 손꼽힌다.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선조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쓰면서 조선 도예의 명맥을 잇고 있다. 두 가문이 함께 기획전을 여는 것은 처음이다. 14대 이삼평은 “2016년에 아리타야키 400주년을 맞는데 그런 의미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한국문화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같은 조선 도공이었지만 정착한 지역의 흙에 따라 작품의 개성은 서로 다르다. 15대 심수관은 “아리타야키의 생지(유약을 바르기 전 도자기)와 유약을 좋아한다”고 평했고 14대 이삼평은 “사쓰마야키는 전통을 제대로 지켜 만드는 작품이라 매우 아름답다”고 말했다.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 가문은 작품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14대 이삼평은 “초대 선조가 일본에 와서 아리타야키가 생겼고 그 덕분에 나도 있게 됐다”면서 “한국에 보은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내 작품으로 한국과 교류하고 싶다. (일본인들이) 아리타에 와서 우리의 작품과 역사를 본다면 한·일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15대 심수관은 “같은 백자 도공으로 일본에 와서 사쓰마야키, 아리타야키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했다. 결국 뿌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형제와 같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 있는 조선 도공들이 다 함께 기획전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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