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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종 벽 허무는 ‘전천후 CEO’

    업종 벽을 허물며 유감없이 끼를 발휘하는 최고 경영자(CEO)들이 늘고 있다. 특정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갑자기 생소한 업종으로 배를 갈아타자마자 눈에 띄는 실적을 내고 있는 전천후 CEO들이다. 하지만 업종을 오가는 CEO에 대한 능력의 평가는 엇갈린다. 한 분야에서 경영 수업을 충실하게 받은 CEO라면 대부분 다른 업종으로 옮기더라도 자신의 역량을 한껏 뽐내면서 바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 반면 오너가 입맛대로 인사를 채우기 위해 능력과 무관하게 다른 업종의 사장을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동차⇔건설을 오간 CEO들 이방주 현대산업개발사장은 현대자동차에서 잔뼈가 굵은 CEO다. 처음 건설업체 사장으로 갈아탈 때 업계는 반신반의했다.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보여주고 시승할 기회를 주는 자동차와 견적서와 공사 지명원 서류를 들고 공사를 따내는 건설업에서 유사점을 찾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면서 대형 주택건설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건설업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엠코 김창희 사장도 자동차회사에서 몸집을 키운 사람이다. 제주도를 떠나본 적이 거의 없는 그가 이번에는 공격경영을 선언한 현대차 그룹의 건설사로 옮겼다. 엠코가 첫 주택사업 런칭에 성공, 본격적인 건설업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단행된 인사라는 점에서 김 사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기아차 김익환 사장은 현대정공과 고려산업개발·현대산업개발을 거쳐 다시 자동차 경영인이 된 경우. 김 사장은 건설사에서 중견 임원(상무)을 하다 기아차로 갈아탄 뒤 홍보 임원 겸 스포츠단장을 거쳐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주위에서는 건설업의 밀어붙이기 능력과 섬세함이 요구되는 자동차회사 경영 능력을 함께 갖춘 인물로 평가한다. ●굴뚝산업에서 첨단산업 CEO로 변신 휴대전화 콘텐츠 및 결제회사인 다날 박성찬 사장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다가 지난 1998년 회사를 설립, 짧은 기간에 가장 성공적으로 키운 경우다. 휴대전화 벨소리, 게임, 동영상 등을 선보이며 지난해 매출 528억원, 영업이익 49억원으로 무선인터넷시장 강자로 자리했다. 올해는 휴대전화 결제시장 절반을 장악,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온라인 음악사이트 ‘오디오닷컴’을 운영 중이며 올해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사업 준비에 주력하고 있다. 이내흔 전 현대건설 사장은 현대정보통신의 일정 지분을 갖고 경영을 맡다가 지금은 오너가 됐다. 아파트에 들어가는 홈오토메이션 제품을 생산하고, 정보통신 시설을 설치해주는 업종이다. 주택경기 활성화를 계기로 매출이 급증하고 알찬 기업으로 키우면서 부러움을 사고 있다. ●깃털 산업에서 중공업의 대부로 주류업체 사장하다가 중공업사장으로 변신한 경우도 있다. 김대중 두산중공업 사장은 소비재와 산업재를 넘나드는 두산그룹의 대표적인 CEO다. 김 사장은 2000년 ‘산소주’ 개발로 ㈜두산 주류BG를 정상화시킨 뒤 2003년 3월 두산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두산중공업은 노사 갈등과 이에 따른 수주 악화로 그야말로 ‘특급 소방수’가 필요했던 시절. 그는 노조를 다독이며, 직접 수주전에 뛰어들어 1년만에 두산중공업을 다시 ‘효자’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올해 대우종합기계를 인수, 두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산업부 chani@seoul.co.kr
  • [공직이 변해야 나라도 변한다] (13)정해룡 법무부 소년1과장

    [공직이 변해야 나라도 변한다] (13)정해룡 법무부 소년1과장

    2004년 11월 광주의 어느 정보산업고등학교 강당에선 예수의 생애를 그린 록뮤지컬 ‘가스펠’이 공연되고 있었다. 배우는 얼마 전까지 ‘안산 소년원’으로 불렸던 안산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다. 무대에 오르자 자신을 에워쌌던 어두운 그림자를 씻어내기라도 하듯 혼신을 다해 극에 빠져들어갔다. 연기자와 관객이 함께된 공연은 그들에게 전문배우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주는 단초가 되기에 충분했다. 무대 뒤편에서 공연 내내 손에 땀을 쥐고 있던 정해룡(55)법무부 보호국 소년 제1과장은 막이 내리자 그제서야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비행 청소년들의 ‘대부’ 정 과장은 1979년 7급 공채 소년보호직의 길에 들어섰다. 지난 25년간 안양소년원장, 법무부 보호국 소년제2과장과 기획서기관을 거치면서 교화제도 혁신의 기반을 닦았다. 반세기 이상 어른들의 감옥과 다름없던 소년원을 학교로 탈바꿈시킨 주역이다. 소년원생들은 1990년부터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학업에 흥미를 갖지 못했다. 일방적인 교육이 문제라고 진단한 그는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높일 방안을 생각했다. 체육, 연예 등 특기교육을 강화한 것이다. 영어와 컴퓨터과목도 개설했다.3000여명의 교육 자원봉사원도 모집, 교육의 질을 높였다. 정 과장의 노력은 2004년 소년원을 맞춤식 특성화 학교로 바꾸는 소년원법 개정으로 결실을 맺는다. 현재 서울지역 5개교를 포함해 전국 16개 특성화 중·고등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그는 “소년원의 폐쇄적 체계와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교정과 재범방지에 한계가 있었다.”면서 “학교로 바뀌면서 이들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바탕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문제아’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 아니냐.”,“예산 낭비다.”라는 지적도 있었다. 야심찬 계획이 실패할 것이란 우려도 많았다. 운동과목을 개설하자 ‘문제아들에게 싸움질마저 가르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럴수록 그는 보다 많은 아이들을 더 자주 사회로 내보냈다. 가족과 사회와 접촉하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 교정의 출발점이라 믿어서이다. 가족관계를 회복시키고자 가정관을 만들어 청소년들이 보호자들과 숙식을 함께하도록 했다. 덕분에 모든 학생들이 영어말하기 대회, 스키캠프, 문화 공연장 등 외부활동에 참여했다.2003년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집을 지어 무주택 서민에게 제공하는 해비탯 운동에는 용접 등 관련 자격을 취득한 청소년 45명이 나섰다.“아이들은 ‘밖으로 내돌려도’ 우려하는 것처럼 도망가지 않더군요.”정 과장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각종 기술 교육과 창업지원제도도 강화했다. 그가 특성화 교육혁신을 지휘하면서 2818명이 취업하고 7166명이 컴퓨터 관련 전문 자격증을 획득했다. 컴퓨터 전문가가 된 청소년들이 설립한 벤처기업도 4개나 된다. 정 과장이 키운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고 사회와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6개월 이내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비율은 18.5%에서 9.9%로 1년 이내 재비행률은 33.2%에서 19.5%로 낮아졌다. 일본 NHK, 영국 BBC, 독일 ZDF 등에서도 다도예절, 악대반 등 학생 특별활동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들로 그는 2000년 공공기관 혁신대회 3위 입상,2001년 제1회 법조봉사대상 수상이라는 영예도 안았다. 정 과장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를 짊어지고 있다.“가장 큰 장벽은 ‘전과자’란 낙인과 선입견입니다. 우리 사회가 한 순간의 실수를 ‘내 자식’의 일처럼 너그럽게 이해할 때까지 할 일이 많습니다.”그의 노력은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열린세상] 한석봉 어머니는 이제 그만/김민환 고려대 언론학 교수

    남북한 7000만 동포가 다 아는 실화(實話)가 하나 있다. 주인공은 한석봉의 어머니다. 아들이 학업에 정진하지 않아 애가 탄 어머니는 어느 날 밤 등잔불을 꺼놓고 아들과 시합을 벌인다. 어머니는 떡을 썰고 아들은 글씨를 쓴다.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가 썬 떡은 가지런한데 아들이 쓴 글씨는 그렇지 못하다. 석봉은 대오각성하여 서예에 정진해 드디어 독특한 서법을 남길 만큼 대가가 되었다. 아들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긴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동양 현모(賢母)의 귀감이라면 석봉의 어머니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표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조선조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의 어머니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석봉이 살았던 16세기에 서구에서는 역사의 대전환이 활기차게 이루어졌다. 석봉이 태어나기 50여 년 전에 이미 콜럼버스가 바하마제도와 쿠바를 발견했다. 얼마 뒤 마젤란은 태평양 항해를 서둘러 필리핀에 도착했다. 탐험가들이 새로운 항로를 발견함으로써 돛을 단 것이 서구 자본주의였다. 서구 경제는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었다. 뒤이어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서구사회에서 봉건제는 급격하게 퇴조하고 자본주의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16세기에 석봉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명필이 되라고 하기보다는 장인(匠人)이 되라고 했어야 한다. 석봉에게 글씨를 쓰게 하기보다 떡 써는 기계를 만들라고 했다면 그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떡을 써는 기계, 세상에서 가장 가지런하게 떡을 써는 기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그런 기계를 만들었더라면 그의 어머니는 떡을 써는 힘든 숙련노동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석봉 자신은 큰돈을 모았을 것이다. 그 시절에 조선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관리나 명필이 되도록 강요하지 않고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게 했더라면 조선도 당당한 자본주의 나라로 발전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은 16세기에 아들이 떡 써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보다 서예를 하는 선비가 되기를 선호한 어머니가 절대다수였다는 사실(史實)이 아니다. 압축성장으로 자본주의 도약의 신화를 일군 우리나라에서 오늘날도 거의 대부분의 어머니가 석봉의 어머니와 같은 바람으로 자식을 키우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事實)이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도 선비 좋아하는 봉건제적 유한(遺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16세기에 항해술을 택한 나라가 3세기 뒤에 제국이 되는 데 반해 명필을 택한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한 역사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어머니의 이런 경향은 교육 분야에 여과 없이 투영되고 있다. 이공계에 대한 인기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이공계 중에서도 순수과학 분야는 그야말로 고급두뇌가 약속이나 한 듯이 기피해 명문 대학의 대학원 과정마저 학생정원 채우기가 쉽지 않다. 이공계 중에 그나마 의과대학이 명맥을 이어가지만 그 분야도 들여다보면 기초는 사람이 없고 안과니 성형외과니 하는 분야만 법석거린다. 이공계가 파리를 날리고 있는 데 반해 사회계는 때 아닌 활황이다. 그것도 실용적인 사회과학분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우수한 학생은 거의 법대와 경영대가 쓸어가고, 요즘은 불황이 장기화되어 그런지 사범계가 새 바람을 타고 있다. 법조나 기업이나 학교가 일할 만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공계가 부실한 상황에서 사회과학분야, 그것도 응용분야가 인재를 싹쓸이하는 건 아무래도 불안하다. 자본주의는 뭐니 뭐니 해도 이공계 없이는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기 때문이다.21세기는 정보사회라니까 그런지 내가 속한 신문방송학 쪽도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자꾸 공허한 느낌이 드는 건 숨길 수 없다. 강한 나라 어머니는 과학자나 엔지니어를 사랑한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 교수
  • [프로배구 V-리그] 삼성 파죽의 7연승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양강 구도’. 여기에 ‘3강 체제’를 구축하려는 LG화재의 몸부림. 하지만 거포 이경수의 힘만으론 부족했다. LG화재가 13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V-리그 3차투어 최종전에서 이경수가 한양대 선배 김세진에게 블로킹 3개를 빼앗는 등 20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리시브에서 밀린 데다 고비 때마다 저지른 서브 범실에 자멸, 삼성화재에 0-3 완패를 당하며 상위권 도약에 실패했다. 삼성화재는 홈대회 마지막 경기를 화려하게 마감하며 개막전에서 맞수 현대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 뒤 7연승을 일궈 한 경기 더 치른 선두 현대(8승1패)의 뒤를 바짝 쫓았다. 김세진(19점)-신진식(11점)-김상우(9점) 등 노장 트리오를 선발로 투입, 초반부터 코트를 장악한 삼성화재는 김세진이 전성기 못지 않은 타점 높은 스파이크를 폭발시킨 데 힘입어 첫 세트를 기분좋게 출발했다. 삼성은 2세트에선 이경수의 대포알 스파이크를 막지 못해 14-17까지 끌려갔으나 이경수의 서브 실패 등 상대 범실 3개가 겹친 틈을 타 동점을 만든 뒤 마지막 23-22에서 신선호의 강서브가 김상우의 다이렉트 킬로 연결되면서 세트 스코어 2-0으로 달아났다. 삼성화재는 3세트에서 ‘갈색 폭격기’ 신진식이 강서브로 상대 코트를 뒤흔들어 신입생 하현용(7점)이 공수에서 힘을 보탠 LG화재의 추격을 따돌리고 승부를 마무리했다 대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中·日지사 세워 해외공략 박차”

    “中·日지사 세워 해외공략 박차”

    “경쟁이 치열하지만 많이 파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내 공기청정기 제조 대표 기업인 ㈜청풍 최윤정(34) 사장이 10일 단독대표가 되면서 낸 일성이다.2002년부터 아버지 최진순(64) 회장와 함께 일하던 부녀 공동대표 체제를 접고 홀로 경영에 나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제 연구·개발 활동에만 전념키로 했다. 최 사장은 이날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단일 대표라지만 큰 일은 회장님한테 자문하고 함께 결정하겠다.”면서 “아버지는 제품과 기술 개발에 힘쓰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중국과 일본에 지사를 세우고 해외지역 공략을 본격화한다.”면서 “청풍 공기 청정기는 중국 백화점에서 150만원에 팔리는 가장 비싸고 최고 품질을 인정받는 제품이다.”고 말했다. 해외 40여개국에 청정기를 수출하고 있지만 공장은 국내에만 둘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 사장은 최 회장의 4녀중 셋째딸로 대학시절(상지대 91학번)에도 아르바이트 등 형식으로 청풍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대리 실장 등을 거쳐 2002년 공동대표가 됐으며, 남편인 삼성 에버랜드 출신의 정완균 상무가 2001년에 과장으로 회사에 합류해 그를 돕고 있다. 아버지 최 회장은 “일찌감치 최 사장을 나의 후계자로 결정했다.”면서 “갓 출산하고도 병실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그의 책임감과 저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풍은 1989년 음이온 공기청정기를 출시하면서 현재 국내 공기청정기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1위 업체다. 공기와 관련된 청풍무구 브랜드 이외에 최근에는 물 관련 브랜드인 청정무구도 내놓으면서 환경 전문기업으로 도약을 준비중이다. 올해 매출 목표는 718억원이며,2007년까지 1616억원으로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경기 방문의 해’ 우표 발행

    ‘2005 경기방문의 해’ 기념우표가 나왔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사장 신현태)는 10일 ‘2005 경기방문의 해’를 맞아 ‘사랑해요 경기, 함께해요 2005년’라는 주제의 공식 기념우표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기념우표는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올해 행사기념우표 발행계획에 따라 중앙 및 지방 주요기관에서 신청한 총 20건 가운데 심의를 거쳐 ‘2005 APEC 정상회의’ 기념우표 등과 함께 최종 확정했다. 경기 방문의 해 기념우표는 액면가 220원으로 모두 160만장 발행되며 초대의 메시지를 담은 ‘조각보’와 ‘손님맞이 방석’, 도자기(도리), 평화(피키), 첨단IT산업(테리)을 형상화한 캐릭터 등을 활용해 제작됐다. 공사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방문의 해 행사에 기념우표를 발행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방문의 해의 취지와 경기관광의 도약상을 널리 홍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을 통해 우표를 구입할 수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저환율·고유가 ‘복병’ 되나

    저환율·고유가 ‘복병’ 되나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서서히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저환율과 고유가 등 나라 밖 악재의 부담이 커지면서 우리경제의 재도약에 만만찮은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가계의 소비여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중소기업 자금난이 지속되는 등 내수경제의 회복세를 알려주는 지표들도 좀체 찾기 힘든 상황이다. 경기가 상승세로 돌아서더라도 피부로 느낄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경기 기대심리 30개월 만에 최고 통계청이 10일 발표한 ‘2월 소비자전망 조사결과’(가계소비 심리지표)를 보면 적어도 심리적인 측면에서 우리 경제는 이미 완연한 봄이다.6개월 뒤의 경기에 대한 기대지수가 106.2를 기록, 지난해 4월(103.6) 이후 처음으로 100을 넘어서면서 3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6개월 뒤 소비지출에 대한 기대지수도 103.1로, 지난해 4월(103.2) 이후 처음으로 100을 돌파했다. 지수가 100을 넘으면 앞으로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생활형편(98.3), 내구재소비(91.8), 외식오락(88.1) 등 기대지수도 기준선인 100에는 못미쳤지만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특히 월 소득 200만원 이상 계층의 소비자 기대지수가 모두 기준선인 100선을 돌파했으며, 월소득 100만원대도 87.1에서 93.5로 상승하는 등 저소득층의 소비심리도 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통계청 관계자는 “월소득 400만원 이상 소득자의 기대심리는 지난해 12월,300만원대는 올 1월,200만원대는 지난달에 각각 크게 좋아졌다.”면서 “소비심리 회복세가 단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기대심리도 높아지고 있다. 앞서 한국은행이 발표한 제조업 업황전망지수는 올 1월 73에서 2월 87로 뛰었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종합경기전망지수도 85.7에서 119.2로 급등했다. ●실물지표 회복 생각보다 약해 심리지표의 개선은 올 들어 급상승한 증시의 효과, 당초 우려와 달리 호조세를 이어간 수출, 몇몇 경기지표의 호전 등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정부 홍보도 큰 역할을 했다. 정부는 신용카드 사용액, 자동차 및 휘발유 판매량 등의 증가세를 들며 기대심리를 자극했고 사실상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실물경제의 회복세가 아직은 심리회복세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고용사정이 좋아지고 가계소득이 늘어 실질적인 소비여력이 확충돼야 하지만 최근 지표들은 이를 확인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4분기 근로소득 증가율이 3.2%에 그쳐 1분기 6.8%,2분기 5.2%,3분기 5.7%보다 감소하면서 99년 2분기 1.6% 이후 가장 낮게 나온 게 단적인 예다. 또 지난해 전국 가구의 28.8%, 도시 근로자가구의 23.7%가 가처분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많아 적자를 냈다. 실업자와 임시·일용 등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게 결정적인 이유로 꼽혔다. 이 때문에 이번 소비심리 지표 개선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이를테면 정부와 한은이 경기상승세 반전을 언급했던 지난해 4월 경기 기대지수가 103.6으로 급등했으나 이내 기대감이 꺾이면서 5월 93.2,6월 86.1로 하락해 결국 12월(74.2)까지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자금난도 여전하다. 대출기준 강화 등으로 중소기업의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올 2월말 237조 8141억원으로 전월보다 고작 2542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2월(2조 942억원)의 10분의1에 불과한 수준이다. ●대내외 불안요인…“급상승은 없다” 국내 회복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환율하락과 국제유가 상승 등 대외 악재의 불안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지수 1000선을 돌파했던 주가 흐름도 불안한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환율하락의 경우 시차를 두고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올 하반기에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제유가도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30달러대 중반의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던 당초 전망이 크게 빗나가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전망했던 것보다 경기가 더 빨리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환율과 유가 등 대외 악재가 소비와 투자심리 확산에 부담을 줘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지난해 성장률보다 크게 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외국인 연일 “팔자” 공세 증시 ‘흔들흔들’

    외국인 연일 “팔자” 공세 증시 ‘흔들흔들’

    연초부터 기세 좋게 치솟던 주가가 최근 ‘이상 기류’에 휘말리고 있다.9일 종합주가지수와 코스닥지수는 이틀 동안의 하락세는 벗어났으나 시장주변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인 5일째 IT중심 팔자 주문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오전에 990선까지 밀렸다가 오후들어 회복되면서 전날보다 8.51포인트(0.85%) 오른 1008.79를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도 후반에 하락폭을 좁혀 전날 종가와 같은 481.98로 마감됐다. 전반적인 지수 상승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5일째 국내 증시의 주력인 정보기술(IT)주를 중심으로 ‘팔자’ 주문을 쏟아냈다.1454억원을 순매도해 지난 3일부터 누적 순매도액은 4390억원을 기록했다. 외국인들의 매도세로 삼성전자(-0.4%),LG전자(-1.5%), 하이닉스(-1.1%), 삼성SDI(-3.0%) 등 기술주들이 모두 힘을 못썼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본격적인 ‘셀 코리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한 데 다른 부담감 때문에 차익실현을 위해 매물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동원증권 김세중 연구원은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을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국면일 뿐, 매수세가 바뀐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만 “앞으로 대형주가 장세를 결정할 것으로 보이지만 곧바로 한 단계 도약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코스닥, 벤처육성 차질 우려로 휘청 코스닥은 지수가 500선을 돌파한 이후 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난 7일 이헌재 부총리의 사퇴는 가격조정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됐다. 코스닥시장은 기관이 주도해 적절한 시점에 자동으로 거래하는 프로그램 매매가 적고, 유가증권시장보다 투자심리적 요소에 더 흔들리는 특징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부총리의 사퇴로 정부의 시장친화적 정책이 후퇴할지 모르고, 벤처육성정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코스닥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줄기세포관련주’의 일부가 주가띄우기를 한 것으로 드러나 관련 테마주들이 일제히 하락하는 등 악재들도 수두룩하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위원은 “신임 부총리가 결정되고 정책기조가 확실해질 때까지는 코스닥사장이 방향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LG투자증권 강현철 연구원도 “프로그램 매수세가 주가하락의 안전판 노릇을 하는 유가증권시장의 종합주가지수는 1000선 안팎에서 움직이겠지만 이같은 안전판이 없는 코스닥시장은 추가적인 지수 하락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프로배구 V-리그 ] 이경수 있음에 실업팀 쯤이야

    LG화재가 한국전력의 돌풍을 잠재우고 상위권 도약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LG는 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V-리그 3차투어 남자 경기에서 주포 이경수가 대거 23득점하며 그동안 삼성화재 등 프로팀들을 괴롭혀온 초청팀 한국전력을 3-0으로 완파했다. 리그 개막 이후 5경기를 치르는 동안 징검다리 1승씩 올리며 3승2패로 불안한 중위권을 유지하던 LG는 이날 1승을 보태 3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지난 3일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두 세트를 빼앗기고도 역전승 일보 직전까지 간 데 이어 5일 대한항공에 3-2 패배를 안기는 등 돌풍을 일으킨 한국전력은 ‘용수철 스파이커’ 정평호(14점)가 분전했지만 주포 심연섭(5점)이 부진해 더 이상 프로팀을 애먹이지 못했다. LG의 작전은 이날도 어김없이 이경수(23점)에게 몰아주기. 이경수는 1개의 백어택과 4개의 오픈강타로 신입생 하현용(6점)과 함께 공격을 주도,1세트를 가뿐히 낚아 올렸다.2세트에서 이경수는 64%에 달하는 공격성공률로 무려 9점을 혼자 뽑고,3세트에서도 다채로운 파상 공격으로 9점을 보태 승리의 견인차가 됐다. 여자부 경기에서는 ‘왕년의 챔프’ 현대건설이 KT&G의 상승세를 3-0으로 일축하고 3연패 끝에 귀중한 1승을 낚았다. 연패를 거듭하며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던 현대건설은 지난 2일 당한 0-3 완패를 고스란히 되갚으며 2승3패(승점 7)로 3위에 올라섰다. 대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사설] 투명사회협약 실천 주시한다

    정부와 정치권, 재계, 시민단체 등 4대 부문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어제 투명사회협약이 체결됐다. 과거 대형 비리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이나 재계가 자정선언을 한 적은 있지만 대부분 여론무마용 전시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민단체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협약 내용면에서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제한 및 영리목적 겸직 금지, 직무관련 주식 백지신탁제 도입, 부정한 수익 몰수 및 부패공직자 양형기준 강화 등 부패척결을 담보할 수 있는 사안들을 망라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협약이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약속한 만큼 법 제·개정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믿지만 시민단체들은 협약을 근거로 끊임없이 채근해야 한다. 특히 협약체결에 빠진 교육·노동·종교·언론·법조계의 동참도 이끌어내야 한다. 전국민적인 협약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10년째 40위권에서 맴돌고 있는 부패지수에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다. 투명성이 높아지면 외국인 투자를 유인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부수 효과가 뒤따른다. 우리는 협약 체결을 계기로 공직부패수사 전담기구 설치는 물론, 공직자 재산등록제도도 부패 요인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체제로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공직을 이용한 축재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연고나 뇌물을 이용해 내 주머니부터 챙기자는 그릇된 관행도 불식돼야 한다. 제도 개선이나 감시 못지않게 전 국민의 동참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 경제는 지금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목표점인 ‘선진한국’에 도달하려면 부패고리부터 척결해야 한다.
  • 창립10년맞은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

    “지난 1년간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향후 10년 성장 엔진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올해는 다음이 1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사업구조 재편 계획과 5000억원대의 매출 목표 등을 제시하며 도약 의지를 피력했다. 라이코스 인수에 따른 주가 급락과 거래소 이전 무산, 순이익 마이너스 기록 등 악몽 같은 2004년을 겪은 뒤 나온 구상들이다. 이 대표는 8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다음의 사업구조를 뉴미디어 국내부문(다음카페 등), 뉴미디어 해외부문(미 라이코스 등), 뉴커머스 부문(디엔샵 등), 뉴파이낸스 부문(다이렉트자동차보험 등) 등 4개로 재편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이들 4개 부문 중 11개 회사(다음 소유 지분 50% 이상)에서 매출 4700억원(누적 기준)을 내는 세계적 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같은 기준 매출액은 2843억원. 그는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된다’는 신념을 심어주는 일”이라면서 “사업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수익을 낼 수 있나.’란 의문을 냈고, 수익을 냈더니 성장할지를 물었는데, 이제는 세계적인 회사가 될지를 의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라이코스 인수로 다음 주가가 급락했지만 올해는 미국 라이코스, 일본 타온 등의 뉴미디어 해외부문에서 65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이 부문 매출은 160억원. 그는 “지난 10년간 1700배의 매출액 성장을 이뤘듯 향후 10년 동안에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주는 즐거운 변화를 통해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우리구 올해는] 이유택 송파구청장

    [우리구 올해는] 이유택 송파구청장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발전은 반쪽에 불과합니다.” 이유택 송파구청은 송파구를 새로운 기업 도시로 만드는 동시에 경로효친사상 등 미풍양속이 넘치는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다. 이 구청장에게 ‘중용(中庸)’은 신앙과도 같다.2000년 구청장에 선출된 이후 ‘도덕과 발전’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작년 ‘청렴도 우수기관’ 선정 송파구는 지난해 부패방지위원회로부터 ‘청렴도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서울시 등 각종 외부 평가에서 35개의 표창과 25억여원의 시상금을 받았다. 이 구청장의 신중하고도 공평 무사한 구정철학이 가져온 결실이다. 여기에 문정법조단지와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사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송파구가 ‘베드타운’에서 ‘포스트 강남’으로 도약하는 원년인 셈이다. 송파구는 문정지구 올해 법조타운의 첫 삽을 뜬다. 동부지법·지검과 미래형산업단지 등이 들어서는 조성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또 올림픽로지구 등 모두 11개 지구의 용도지역 상향조정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지구단위계획 재정비 사업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자치구는 ‘주거 도시’에만 매몰돼서는 안 됩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 유치가 필수적입니다. 또 송파가 그동안의 발전에 걸맞게 큰 옷으로 갈아 입는 것은 당연합니다. 용도지역 상향조정의 필요성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정지구 법조타운과 용도지역 상향조정은 송파의 발전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될 것입니다.” 기업 도시로서의 면모는 이미 갖추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만 건국유업 등 102개의 우량기업을 유치했다. 올해는 300개 업체가 송파에 새 둥지를 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거여·마천 뉴타운 지정 ‘균형 개발’ 송파를 서울의 ‘주거 1번지’로 만드는 생활환경 개선은 ‘발전’과 더불어 송파의 또 다른 목표이다. 가장 중요한 사업은 거여·마천지역 뉴타운 지정. 강북 이상으로 낙후된 이 지역 34만평을 개발, 도시의 균형 발전을 이룬다는 복안이다. 재건축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잠실 지역의 고급단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주변 도로와 함께 공원·교육시설을 대폭 확충한다. 이밖에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과 자원봉사활동 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 공동체정신을 높이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이 구청장은 “기업유치와 함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주민들의 주거 만족도가 97.6%나 됐다.”면서 “앞으로 송파는 강남을 대체하는 서울 최고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유한양행 차중근 사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유한양행 차중근 사장

    ‘사회 환원, 윤리 경영, 노사 공동체….’ 요즘 들어 기업마다 부르짖는 ‘모토’지만 국내 기업 가운데 이를 충족시켜 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기업의 양심과 경영 이념은 곧잘 눈앞의 이익에 밀려 뒷전인 탓이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80년간 이를 고지식하게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출이 3000억원대에 불과한데도 수십조원 매출의 거대 재벌 못지않게 많은 관심과 부러움을 받고 있다. 또 대(代)를 이어가며 경영권을 세습하는 국내 기업 문화 현실에서 36년째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수해 소유구조 측면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남들은 더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큰(Big) 회사보다 좋은(Good)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전 임직원과 손잡고 한발 한발 전진하는 것이 기업 발전의 지름길입니다.” 유한양행만의 독특한 전통을 이어가는 차중근(59) 사장의 경영 철학이다. 그는 지난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 부문에서 43위를 차지했다. 차 사장은 1974년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2003년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집안의 ‘복덩이’ 차 사장은 1945년 8월20일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 덕분에 가족은 친가인 평양에 돌아가지 않고 그 곳에서 터전을 잡았다. 이후 38선이 그어지고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가 집안의 ‘복덩이’로 불린 연유다. “부모님이 갓난이인 저 때문에 객지인 횡성을 떠나지 못했어요. 당시 친가인 평양으로 돌아갔더라면 아마도 북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겠지요.” 그는 대학 졸업 후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군입대 문제로 학업을 중단했다. 당시 군 보직은 항공 통제 업무. “근무가 4교대로 이뤄지다 보니 점점 안일함과 나약함에 빠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계속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그래서 돌파구로 선택한 것이 베트남전 지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패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가 베트남에서 경험한 것은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었다. 교수의 꿈을 접고 유한양행에 입사한 계기가 됐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부대원들은 지휘관의 통제를 철저히 따라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티 한 점 없이 순진무구해 보이는 베트남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아무 힘이 없지만 훗날에는 반드시 남을 돕는 일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회사의 ‘기둥’으로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CEO에 오르기까지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1974년 영업 사원으로 입사해 경남 마산에 배치를 받았다. 그의 성실과 정직함이 통했는지 당시에 생소했던 인센티브를 받고, 지점장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또 그를 눈여겨본 연만희 전 사장은 1988년 그를 본사 공장으로 발령냈다. 공장 업무는 특성상 물품을 제조하고, 납기일에 맞춰 물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근무시간 외에도 잔업이 적지 않았다. 특히 늘 납기일에 쫓기고, 직원들을 설득해 잔업을 진행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1989년 유한양행은 당시 소련에 의약품을 수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컨테이너 10대 분량으로 금액으로는 30억원대 규모. 다만 4개월이라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유한양행의 신용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프로젝트였다. 시간이 촉박한 데다 공장설비가 자동화되지 않은 탓에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8시간 근무에 익숙한 직원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기일을 못 맞추면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신용의 상징’인 유한양행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었죠. 덕분에 납기일을 겨우 맞출 수 있었습니다.” ●CEO로서의 첫 발 그가 사장 취임 직후 가진 첫 행보는 현장속으로였다. 이를 위해 종업원 중시, 현장 중시, 실천 중시를 강조하는 ‘100일 작전’을 진행했다. “현장을 모르고는 전략을 세울 수 없으며,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또 실천 경영을 위해 ‘균형성과 관리제’를 도입, 객관적이고 정량화된 수치로 사원들을 평가토록 했다. 이와 함께 분기마다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1100여명 직원의 ‘고민 해결사’로 나섰다. “‘유한’이라는 울타리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조직을 하나로 만들어 내는 것이 사장으로서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도태되기 쉬울 뿐 아니라 생존조차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회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CEO 혼자만 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전 직원이 일치단결해 각자 세운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를 불태워야 합니다.CEO는 직원들에게 개인과 기업의 입장,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유한양행은 노노(勞勞) 기업” 차 사장은 1주일에 한차례씩 노조위원장과 격의없이 대화를 나눈다. 각종 경영 현황과 목표에 대한 정보 등을 보고회에서 투명하게 공개한다. 또 직원들의 의사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사원운영위원회’를 가동, 공동운명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특히 ‘노사합동연수회’와 성과급 분배 등은 유한양행이 ‘노사 기업’이 아닌 ‘노노 기업’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직한 기업활동, 건전한 기업 윤리,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 등 유한양행만의 전통은 노사 화합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사안이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기업 문화에 깔려 있다고 봅니다.” 차 사장이 올해 힘을 쏟는 사업은 신약개발과 R&D(연구개발) 부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미 국내 시장을 상당 부문 잠식하는 상황에서 토종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해외시장 개척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한은 현재 궤양 치료제인 신약의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소화성궤양 치료제의 국내 시장 규모는 4000억원 규모로 신약인 ‘레바넥스’가 출시되면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매출액 대비 5∼6% 수준인 연구개발비를 앞으로는 10%까지 늘릴 방침입니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과 해외시장 진출에 더욱 속도를 낼 생각입니다. 내부적으로는 2010년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해 80년간 외길을 달려온 유한양행. 그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차 사장은 “기업 규모가 크다고 해서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원과 주주, 소비자, 언론 등 모든 관계자들의 신뢰를 구축하고, 공동 운명체 관계로 ‘윈-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기업, 존경받는 기업’으로 지속성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유한양행은 어떤 회사 유한양행은 고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설립한 국내 대표적인 제약회사다. 전통에 걸맞게 ‘삐콤씨’,‘안티푸라민’ 등 국내 대표 의약품을 생산해 지금은 국민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설립자인 고 유 박사는 기업 경영권을 자식이 아닌 사내 직원에게 넘겨 국내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도했다. 전 재산을 공익법인(유한재단)에 넘겨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에도 앞장섰다. 내년에 창사 80돌을 맞는 유한양행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완공 예정인 충북 오창산업단지의 신공장은 모든 공정이 국제적 품질기준인 ‘CGMP(의약품 제조 관리기준)’에 적합한 시설로 건설되고 있다. 경기도 기흥에는 국내 제약업계 최대 규모인 연구소가 올 하반기에 문을 연다. 또 자체개발 신약인 소화성 궤양치료제 ‘레바넥스’는 이르면 올해 출시될 예정이다. 에이즈 치료제 원료인 ‘FTC(항바이러스제)’의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유한양행은 앞선 기술력과 견실한 경영,80년간 지켜온 설립자의 기업이념을 기반으로 향후 생활용품과 건강기능식품, 원료의약품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종합보건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12.6% 늘어난 3831억원, 영업이익은 1.2% 증가한 490억원으로 잡았다. ■ 차중근 사장은 ▲1946년 8월20일 출생 ▲64년 2월 숭문고등학교 졸업 ▲68년 2월 동국대 상학과 졸업 ▲74년 10월 유한양행 입사 ▲93년 1월 기획실 부장 ▲95년 1월 기획관리실 이사 ▲95년 3월 기획관리실장 겸 재정담당 이사 ▲96년 1월 총무담당 상무 ▲97년 3월 전무(기획관리본부장) ▲2002년 7월 부사장 ▲2003년 3월 유한양행 사장
  • [우리구 올해는] 박장규 용산구청장

    [우리구 올해는] 박장규 용산구청장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복지 구청장’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복지’가 떠날 날이 없다. 올해 69세인 박 구청장은 소나무 새순을 벗겨 말린 뒤 갈아 먹었을 정도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런 탓인지 그는 지금도 “설움 가운데 가장 큰 설움이 배고픈 설움”이라며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구청장이 해야 할 첫번째 의무로 여기고 있다. “구청장에 당선되고 나서 청파동 소년가장 집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당시 11살,13살 먹은 형제가 냄비 1개, 수저 2개, 이불 한 채, 그리고 간장병 하나를 세간살이 전부로 해서 살아가고 있더군요.” ●복지법인 ‘상희원’ 자산 50억으로 박 구청장은 이날 배고픔에 허덕이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면서 임기를 마칠 때까지 ‘사회복지’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지난 2001년 3월 만든 것이 사회복지법인인 ‘용산 상희원(常喜苑)’이다.‘상희원’은 설립 당시 용산전자상가 내 ㈜나진상가의 이병두 회장이 법인설립 자본금으로 화천군·양평군·구례군 소재 임야 17만평과 서울 양재동·인천 구월동 소재 대지 234평 등 시가 18억원에 상당하는 부동산을 기부했다. 태평양 화장품의 서성환 회장도 두 차례에 걸쳐 5억원의 후원금을 기탁하는 등 관내 기업인들의 후원이 이어져 약 30억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했다. 현재 ‘상희원’은 50억여원의 자산을 가진 법인으로 도약했으며 매년 용산구민의 복지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구청장은 “기업회장들을 직접 만나 취지를 설명하며 기금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희원’을 통해 박 구청장은 지난해까지 노인복지 부분에 매진했다. 그는 “올해에는 여성과 청소년 복지에 치중할 계획이며 이들에 대한 각종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강로 일대 국제첨단업무단지로” 구는 우선 용산 청소년수련관을 건립할 계획이며 청소년 어울마당 축제 개최, 컴퓨터 게임대회 등 청소년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들부터 추진할 방침이다. 또 숙명여대와 협력해 용산구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운영해 가정문제 상담, 가정생활 교육 등을 통해 건강한 가정생활을 도울 예정이다. 숙명여대와 공동으로 여성문화 축전을 7월에 개최할 예정이다. 박 구청장은 용산의 구체적인 개발계획도 항상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그는 “미군기지 이전, 용산∼인천국제공항간 고속철도 개통, 분당∼용산간 지하철 개설 등 앞으로 용산이 서울의 부도심으로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강로 일대 100만평도 국제첨단업무단지로 개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15. 캐나다의 평생학습도시

    [이젠 사람입국이다] 15. 캐나다의 평생학습도시

    |에드먼턴(캐나다 앨버타주)·실리콘밸리(미 캘리포니아주) 정재삼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교수|21세기는 정보사회, 지식경제사회라고 한다. 이에 따라 평생학습, 학습조직, 학습공동체, 학습도시, 학습타운, 학습마을, 학습지역, 학습국가 등에서처럼 ‘학습’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학습공동체는 지역사회의 네트워크와 발전의 원동력이다. ●지구촌, 학습도시 열풍 평생학습도시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원하는 학습을 즐길 수 있는 지역학습공동체라고 포괄적으로 설명된다. 학습도시는 1970년대에 캐나다 에드먼턴이 주민의 평생학습기회를 넓히고자 추진한 교육도시 만들기 프로젝트와 일본 가케가와시가 79년 최초로 평생학습도시 선언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확대된다. 특히 학습도시 개념은 1992년 스웨덴 괴텐베르그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 공식 채택돼 파급 속도가 더 빨라졌다. 현재 일본에 140여개, 영국에 40여개의 학습도시가 있다. 한국에도 1999년 광명시가 평생학습도시를 선언(2001년 정부 지정)한 뒤 2004년 현재 19개가 학습도시로 지정돼 있다. 학습도시는 선진국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서인도제도의 자메이카도 학습도시를 개발활동의 중심으로 선언했다. 캐나다는 1970년대에 교육개혁을 시작했고, 특히 에드먼턴은 평생학습이 미래 교육발전의 기초라는 생각에서 전략기획팀을 구성했다. 미국에서는 학습도시보다는 능력있는 도시, 이상적인 도시, 활기있는 도시, 안정적인 도시, 청소년 친화도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컬럼비아대학, 스탠퍼드대학, 에모리대학 등을 중심으로 학습도시에서 대학의 역할에 초점을 두는 프로젝트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세인트앨버타, 도시 전체가 평생학습공동체 캐나다 앨버타 주정부는 ‘미래의 선택’이라는 교육기획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평생학습과 성인교육을 강조해왔다. 에드먼턴평생학습자협회, 에드먼턴공동체성인학습협회 등이 조직돼 캐나다는 물론 유럽의 학습도시와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2003년 에드먼턴에서는 제1회 학습공동체 세계대회가 열렸고 2004년에는 평생학습세계프로그램 국제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에드먼턴이 학습도시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 데는 정보통신(IT) 기술 활용이 큰 몫을 했다. 에드먼턴의 성공은 인접 도시로까지 번져 도시 하나를 ‘평생학습공동체’(Continuing Learning Community)로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에드먼턴 북쪽에 인접해 있는 세인트앨버타는 인구 5만의 불어권 도시인데, 도시 전체가 평생학습에 투자하고 있다. 세인트앨버타 인구의 대부분은 에드먼턴으로 출근한다.1995년 앨버타 의회에서 공동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 생겼는데, 구성원 대부분이 세인트앨버타에 살았다. 여기에 고무된 이들은 세인트앨버타 평생학습축하모임(Continuous Learning Celebration) 및 도시 전체를 평생학습공동체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평생학습축하모임은 1997년 학습관련 전시를 중심으로 첫 행사를 가졌다. 행사는 성공적이었지만 평생학습 개념은 대중들에게 전파되지 않았다. 평생학습축하모임이 학습공동체를 추구하면서 공동체 주민들의 생각을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또 철학적 내용을 중심으로 한 축하모임의 개념을 주민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축하모임은 사업중심으로 행동의 초점을 옮겼다. 또 주민들이 참여하는 수많은 토론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을 통해 도시 전체가 학습공동체 개념을 자각했다. 축하모임은 1998년 유럽에서 열린 학습도시관련 회의에서 사례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평생학습공동체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조정위원회만 있던 축하모임에는 동반자, 번영, 지도자 등 4가지 하위 위원회가 생겨 평생학습을 일상생활화하는 작업을 실행 중이다. 축하모임에서 역점을 두는 사업 중의 하나는 인터넷 보급이다. 도시 전체에 컴퓨터를 무료로 쓸 수 있는 장소를 13곳 선정, 주민들이 웹서핑이나 e메일 체크 등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IT 보급으로 인한 디지털 격차를 해소,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일환이기도 한다. ●실리콘밸리, 대학과 기업이 만들어낸 학습도시 캐나다 에드먼턴이나 세인트앨버타가 정부나 주민들이 만들어낸 학습도시라면 실리콘밸리의 형성에는 스탠퍼드대학과 기업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실리콘밸리는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군에 속하는 6개 도시(팔로알토, 마운틴뷰, 서니베일, 쿠퍼티노, 산타클라라, 새너제이)를 포함한다.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은 1971년 반도체산업전문정보지의 편집자가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전체 벤처자금의 3분의1 이상이 이곳에 투자돼 있고 인터넷 정보혁명이 여기서 주도됐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은 돈을 벌어들이고 대학은 지식을 발견·전달하는 등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즉 대학은 실리콘밸리에서 아이디어를 팔고 대학 내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이뤄왔다. 한편 기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는 대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다. 실리콘밸리 활성화의 시작은 스탠퍼드대학이다.19세기 말 금광과 철도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스탠퍼드가 세운 스탠퍼드대학은 1940년대 터먼 교수에 의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다. 터먼 교수가 실리콘밸리에 뿌린 첫 씨앗은 휼렛패커드(HP)다.HP의 창시자인 휼렛과 패커드를 스탠퍼드대학 공학부로 불러서 석사공부를 시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HP는 40년대 초에 상당한 회사로 성장하였다. 터먼 교수는 넓은 스탠퍼드 대학 소유의 땅에 연구단지를 건설,HP 등 70여개 회사를 입주시켰다. 입주사들은 임대료 부담을 덜고 대학과의 기술연계성이 강화되면서 회사발전에 더 힘을 쏟게 됐다. 스탠퍼드대학이 공과대학 건물을 터먼공학관이라 부르는 것도 터먼 교수가 학교와 지역사회에 공헌한 점을 기리기 위해서다. 터먼 교수의 업적으로 많은 회사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된다. 인텔이 대표적이다. 물리학자 쇼클레이는 1952년 상업용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제자들과 함께 쇼클레이반도체회사를 세웠다. 그의 제자들은 페어차일드 반도체회사를 세웠다. 이들은 LSI(대규모집적회로)의 기본이 되는 MOS트랜지스터를 개발, 인텔을 만들기에 이른다.1965년에는 록히드항공의 주력 부문이 들어오고 국방부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와 더불어 미 항공우주국(NASA)의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 ●적자생존의 벤처생태계 스탠퍼드 대학을 씨앗으로 해 1930∼40년대 태동기를 거친 실리콘밸리는 1950∼70년대 성장기를 맞는다.50년대 벤처창업이 붐이었다면 60년대는 반도체산업,70년대는 컴퓨터 산업이 주를 이룬다.80년대 위기를 무사히 넘기면서 90년대의 재도약에 성공한다.90년대에는 미국 경제의 붐을 일으키는 엔진 역할을 했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실리콘밸리는 이제 경쟁에 의해 죽고 사는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돌아간다.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도 높은 실리콘밸리의 이직률과 경쟁체제는 기업의 설립과 도산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물론 21세기 들어 실리콘밸리는 IT 거품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다.2001∼2002년에는 일자리가 10% 이상 줄어들었다.2003∼2004년에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비율이 1.3%로 완화되긴 했으나 2004년에는 실리콘밸리 전체에서 컴퓨터와 반도체 관련 일자리가 5100개가 없어졌다. 대신 의료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4100개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처럼 실리콘밸리도 직업이 다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 전역에 걸친 것으로 2001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미국에서는 260만개의 전문적·기술적 일자리가 없어졌다. 최근들어 미 전역에 걸쳐 2001년 경기후퇴 때 없어진 일자리를 회복했다고 노동부는 보고 있다. 그러나 새너제이와 스탠퍼드대학 지역을 포함하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관련 일자리는 2001년보다는 16% 정도 적은 상태이다. 예를 들어 산타클라라에 있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2001년부터 25%의 종업원(3만 2000명)을 줄였다. chungjaesam@korea.com
  • 신세계 이경상 대표 등기이사로

    신세계는 4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임기가 만료된 이경상 이마트부문 대표 등을 등기이사로 선임하고 사외이사로 한영수 한국무역협회 전무 등을 선임했다. 구학서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숙원사업인 신축 본점을 8월에 오픈하고 내년 초에는 구관을 명품관으로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연다.”며 “강북상권 최고의 쇼핑 명소로 재도약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 기업들 새 CI로 “제2창업”

    최근 재계에 새로운 기업이미지(CI) 제정을 통한 ‘제2의 창업’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회사의 ‘얼굴’인 CI를 보다 세련되게 함으로써 회사의 이미지를 한단계 높이고 글로벌 회사로서 거듭나겠다는 의지에서다. 회사의 이미지가 기업의 주요 경쟁력이 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도 작용하고 있다.GS그룹을 비롯해 KCC, 삼양사, 풀무원 등이 최근 CI를 새로 제정하거나 교체했다. LG그룹과 계열 분리한 GS그룹은 지난해 4월 분리 방침이 서면서 가장 먼저 CI 제정 작업에 들어갔었다. 미국의 세계적 CI 전문회사인 랜도사가 용역을 맡아 최근 선보인 새 CI는 주황·초록·파랑색 등 3색으로 이뤄졌다.GS 계열사들의 사업 영역, 비전, 고객 등을 반영했다. 주황색은 정유의 에너지가 상징하는 역동성을, 초록색은 유통·서비스사업을, 파랑색은 투명경영 의지를 상징한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LG그룹 계열사인 LG MRO도 3일 CI 선포식을 갖고 사명을 ‘주식회사 서브원’으로 바꿨다. 식품회사인 삼양사는 지난해 말 창립 80주년을 맞아 새 CI를 제정한 뒤 최근 보수적이던 회사 이미지를 젊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탈바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립 이후 5번째로 바뀐 이 CI는 빨강·노랑·연두·파랑 등 9개의 작은 점으로 구성돼 있다. 점은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요소를, 4가지 색상은 균형과 조화를 나타낸다. 이번 CI 교체작업에는 특히 김윤 회장이 관심을 갖고 적극 챙겼다는 후문이다. 삼양사 이명주 부장은 “보수적인 회사 이미지를 보다 미래·고객 지향적인 이미지로 바꾸기 위해 CI작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식품회사 풀무원도 최근 최고의 ‘자연건강 생활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기업 의지를 담은 새 CI를 발표했다. 상단의 비상하는 듯한 녹색곡선은 ‘자연을 담는 큰 그릇’을 상징하며 환경보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글자체도 과거 딱딱한 고딕체에서 부드러운 ‘유기농체’로 바꿨다. 광고회사 웰콤도 지난해 말 좋은 광고에다가 광고주의 비즈니스까지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내는 회사가 되겠다며 회사 로고를 ‘Welcomm IDEA FACTORY’로 정했다. 팩토리로 한 것은 웰콤사의 특이한 회사 건물이 마치 공장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금강고려화학도 최근 사명을 KCC로 바꿨다. 해외마케팅 역량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CI 작업을 벌인 것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경제플러스] 세후 순이익 915억 ‘최고실적’

    포스코건설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달성했다고 3일 밝혔다. 포스코건설은 이날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지난해 경기침체 속에서 수주 4조 1446억원, 매출 2조 6931억원에 세후 순이익 915억원을 올려 창사이래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한수양 사장은 “오는 2015년까지 세계 30위권의 건축·엔지니어링(E&C)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美·日 야구 시범경기…박찬호·이승엽 재기 ‘관심’

    ‘죽느냐 사느냐, 첫 발이 문제다.’해외파 야구선수들이 운명의 시즌을 눈앞에 뒀다. 지난해 너나 할 것 없이 부진했던 이들이 맞는 올 시즌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메이저리그에서의 부활과 도약, 대한해협 건너 일본땅에서의 자존심 회복이 과제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 절치부심의 각오로 굵은 땀방울을 쏟아왔다. 정규리그 선발을 꿰차기 위한 시험무대인 시범경기가 미국과 일본에서 2일 일제히 시작된다. ●‘부활하거나 짐을 싸거나’ 겨우내내 분·초를 다퉈가며 담금질을 한 한국인 빅리거들의 운명을 판가름할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9명의 ‘태극 전사’들이 모두 나선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땅을 밟은 지 어느덧 12년째를 맞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의 재기여부다. 지난 2001년말 5년간 6500만달러의 잭팟을 터트렸지만,3년 동안 고작 14승에 그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지난 시즌 막판 155㎞의 강속구를 뿌려 부활의 조짐을 보인 박찬호는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미국으로 떠나 빡빡한 개인훈련을 소화했다. 그 결과 고질적인 허리부상을 떨치고 풀타임 선발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소득이다. 다저스 시절부터 ‘사부’로 모신 오렐 허샤이저 코치가 텍사스와 재계약해 심리적 안정을 찾은 것도 플러스 요인. 일단 동계훈련의 성과는 알차 보인다.ESPN과 USA투데이 등 유력 언론들이 올시즌 텍사스의 운명을 짊어질 ‘키플레이어’로 지목했다. 허리 부상 재발 여부가 관건이지만 올시즌 30경기 이상 등판해 두 자릿수 승수를 챙긴다는 박찬호의 다부진 각오다. 아직은 팀내 입지가 단단하지 못한 최희섭(LA 다저스)과 구대성(뉴욕 메츠), 김병현(보스턴 레드삭스)의 활약도 관심거리이고, 서재응(뉴욕 메츠) 봉중근(신시내티 레즈) 김선우(워싱턴 내셔널스) 추신수 백차승(이상 시애틀 매리너스)도 빅리거의 희망을 품고 서바이벌게임에 나선다. ●‘용두사미, 더 이상 없다.’ 일본무대 2년째를 맞는 이승엽(29·롯데 마린스)은 빛바랜 ‘아시아 홈런킹’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한겨울을 보냈다. 첫 시즌에 이어 올해도 화두는 어김없이 ‘주전 경쟁’. 지난해 이승엽은 시범경기에서 홈런 3방으로 화려하게 첫 시즌을 열어젖혔지만 잔인한 4월 이후로는 부진의 늪에 빠져 한때 2군 강등의 수모까지 겪었다. 지명타자에 묶여 제자리를 찾지 못한 지난 시즌 성적은 당초 목표에 훨씬 못미친 14홈런 50타점에 타율 .240. 그러나 2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원정경기를 시작으로 15차례의 시범경기에 나서는 그의 방망이는 지난해와 다르다. 이승엽은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가진 팀 홍백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린 데 이어 지난 26∼27일 한국 롯데와의 평가전에서도 6타수 3안타 1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4경기 성적은 홈런 2개를 포함해 13타수 7안타(타율 .538). 특히 2차 홍백전에서는 팀의 동갑내기 왼손 투수로부터 홈런을 엮어내 지긋지긋한 ‘좌완 공포증’까지 털어냈다. 발렌티노 파스쿠치와 매트 프랑코, 베니 아그바야니 등 메이저리그 출신 용병들이 저마다 외야수 1순위를 부르짖고 있지만 예비 좌익수 이승엽의 성적에 견줘 현재까지는 한 수 아래다. 주전 경쟁 1라운드는 이승엽의 판정승인 셈. 이승엽은 “올해에는 내 타격폼대로 가겠다.”고 선언한 뒤 한 달 만에 견고하게 하체를 고정한 채 어깨를 수평으로 돌리는 ‘레벨 스윙’으로 재처방을 내렸다. 전성기 시절의 풀스윙은 아니지만 지난해 어정쩡했던 스윙과는 분명 다르다. 지난해 ‘용두사미’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그의 성공여부는 변신을 거듭한 그의 스윙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최병규 임일영기자 cbk91065@ 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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