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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시대 메디치家 어떻게 ‘슈퍼부자’가 됐나

    르네상스시대 메디치家 어떻게 ‘슈퍼부자’가 됐나

    타임머신을 타고 1400년대 프랑스의 남부 도시 리옹 세계무역시장으로 가본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장사꾼들 틈바구니에서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각국 상인들에게 돈을 바꿔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환전업자들이다. ●교황청 상대 환전장사로 부 쌓아 이탈리아 피렌체를 기반으로 일어난 르네상스 시대의 ‘슈퍼부자’ 메디치 가문. 메디치 기업을 일군 비에리 메디치는 그런 시장 사정에 어린 시절부터 통달했다. 하지만 큰 돈을 쥐기 위해서는 교황청을 잡아야 한다는 계산을 끝냈다. 교황청은 세계각국의 성당들이 보내온 헌금을 로마에 모았다가 이를 다시 각 지역 돈으로 환전해 성당 운영비로 나눠주고 있었다. 메디치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헌금을 로마 돈으로 환산해 메디치 은행에 보관했다가 교황청이 원할 때마다 싼 환율로 바꿔 공급했다.15세기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가는 금융업자로 나서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던 것이다. ●축재서 쇠락까지 과정 추적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부자들에게는 부를 창출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다.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운 재력가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책이 ‘비즈니스의 탄생’(조승연 지음, 더난출판 펴냄)이다. 부를 일궈낸 흥미로운 과정은 물론이고 쇠락의 길을 걸은 뒤안까지도 추적했다. 책이 르네상스에 주목한 배경은 분명하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기틀이 된 자본주의 체계가 그 시대에 형성됐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왕과 기사들이 농민을 착취하던 봉건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뛰어난 수완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슈퍼부자가 탄생했다.”고 르네상스의 일면을 정의한다. ●‘물류´ 원조 佛거부 쾨르 그 시대, 프랑스의 거부로는 자크 쾨르가 있었다. 왕실에 돈을 빌려줄 정도였던 그에게 특별한 경영 안목이 있었음은 물론이다.1432년 전염병이 휩쓸고간 남부 항구도시 나르본. 폐허로 전락한 도시의 지리적 이점을 그는 정확히 꿰뚫었다. 그곳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연결하는 다마티아로(路)와 남부 프랑스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아퀴타나로가 만나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당대 많은 무역상들과 차별화된 혜안도 있었다. 비단, 보석, 향신료 등 동양의 물품들을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거래하는 대신 새 판매처로 시리아를 뚫어 큰 돈을 벌어들였던 것. 시리아로 들여온 동양의 물품들을 나르본의 창고를 통해 유럽 각국으로 신속하게 배송하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따라서 책은 오늘날의 물류시스템인 ‘로지스틱스’의 개념이 다름아닌 쾨르의 경영전략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사람 몰리는 길목에 돈 있다 거부들의 축재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진 않았다. 슈퍼부자들의 행로를 세세히 소개하는 한편으로 직접적인 비즈니스 팁(tip)도 귀띔한다. 쾨르는 사람이 지나가는 지점과 모이는 지점을 파악하면 돈의 흐름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지도에 표시된 강의 흐름, 역사 속에 묻힌 옛 도로 등이 사람을 모으고 흩어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제언한다. ●인간욕구 짚어낸 첫 미디어재벌 라이몬디 세계 최초의 미디어 재벌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도 르네상스 시대의 신흥부자였다. 엄격한 종교사회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벌이들인 그의 이야기에는 한층 각별한 의미가 실린다. 미디어라는 전혀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그는 엄격한 종교규율에 억압된 귀족들의 욕망을 정확히 간파했다. 교황청의 단속을 피해 부패귀족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유행하던 26개의 침실 체위들을 화가 줄리오 로마노에게 그리게 했다. 기생들에게 무료배포된 섹스화보는 그들이 상대하는 귀족과 추기경들에게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여기서 재확인되는 불변의 비즈니스 원칙. 인간의 잠재의식에 깃든 욕구를 짚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슈퍼부자들의 행로를 쫓는 과정은 곧 르네상스 문화의 주름살을 헤집어보는 인문학적 탐색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베스트셀러 ‘공부기술’을 펴냈던 주인공. 뉴욕대 경영학과, 줄리어드 음대 이브닝 스쿨을 졸업한 뒤 프랑스 에콜 뒤 루브르에서 중세그림을 전공했다.2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8) 옹기장이와 땜장이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8) 옹기장이와 땜장이

    김준근의 ‘옹기장이’는 옹기장이가 옹기를 만드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발로 물레를 돌리며 옹기 안에다가 편편한 나무판자를 대고 바깥에서 몽둥이로 두드려 형태를 만들고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옹기를 굽는 흙 가마가 있다. 옹기가 나오는 그림은 여럿이 남아 있는데, 거개 옹기로 물을 담아 나르거나 혹은 젓갈 따위를 담아 판매하는 행상을 그린 것이다. 옹기를 만드는 것을 그린 것은 김준근의 그림이 유일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준근의 또다른 작품 ‘땜장이’를 보자. 옹기나 사기그릇이 부수어지면 깨진 부분에 접착제를 바르고 철사로 테를 단단히 둘러서 고정시켜 준다. 옹기나 사기그릇이 귀했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땜장이를 불러 다시 보수해 썼기에 생긴 직업이다. ●물레 돌려 질그릇 만들고 유약 입혀 구워내 옹기는 불과 얼마 전까지 흔하디흔한 생활용기였다. 물을 담아두는 것은 물론이고,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의 장류, 김치와 같은 저장식품은 모두 옹기에 담아 보관했다. 그뿐인가. 쌀이며 보리 등의 곡식도 옹기에 담았다. 전기냉장고가 보급되고, 아파트가 주거의 대세를 이루면서 맨 먼저 사라진 것은 큰 옹기들이었다. 간장·된장·고추장과 김치가 공장에서 ‘생산’되면서 더 이상 옹기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한약을 다리는 약탕기는 한약을 일회용 파우치에 담아 먹으면서부터 사라져 버렸다. 그 외의 부엌에서 쓰이던 소소한 옹기들은 모두 플라스틱이나 비닐, 알루미늄 호일이 물리쳤다. 이제 옹기는 큰 규모로 장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면, 장식품이 되어 남거나 박물관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아마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의 송영감이 죽었을 때 시간 속으로 사라져야만 하는 옹기의 운명 역시 정해졌던 것이다. 옹기는 질그릇에 황갈색의 유약을 입혀 구운 것이다. 따라서 먼저 질그릇을 만들고 그것에 유약을 입혀 구워야 옹기가 되는 것이다. 질그릇이야 원래 토기니,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는 것이지만, 유약을 바른 옹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친 뒤에야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하긴 이것은 엄격하게 구분한 것이고, 질그릇이나 옹기나 문헌을 보면 꼭 구분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위의 그림에서 옹기, 곧 질그릇을 만드는 사람을 옹기장이, 한자로 옹장(甕匠)이라고 한다.‘경국대전’을 보면, 공조에 13, 봉상시 10, 상의원 10, 내자시 10, 내섬시 8, 사도시 8, 예빈시 8, 내수사 7, 소격서 4, 사온서 4, 의영고 4, 장원서 8, 사포서 10, 양현고 2명의 옹장을 두고 있다. 이런 관청은 질그릇이 절실히 필요했던 관청이다. 예컨대 사온서란 관청은 궁중에 필요한 술을 빚는 관청이니, 당연히 질그릇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관청에 옹기장이가 각각 배치되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옹기를 굽기 위해서는 가마가 필요한 법이다. 위의 관청들은 절대 다수가 궁중에 있는 관청이다. 궁중에 가마를 둘 수 없는 일이니, 아마도 어디선가 가마를 두고 옹기를 만들되, 그 옹기장이를 파견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성종 때 인물인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사람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으로서 도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지금의 마포, 노량진 등지에서 진흙을 구워 그릇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모두 질그릇, 항아리 독 같은 종류다.”라고 말하고 있다. 곧 마포와 노량진에 질그릇을 굽는 가마가 있었던 것이다. 또 조선후기의 기록들을 보면, 서강의 ‘옹막촌’, 노량의 ‘옹막리’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관청에 소속되는 장인을 경공장이라 하고, 지방의 관청, 예컨대 관찰사영이라든지 군·현 등에 소속되는 장인을 외공장이라 한다.‘경국대전’을 보면 경공장과 외공장을 각각 밝히고 있다. 즉 사기장은 서울의 관청에도 있고, 지방 관청에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옹장의 경우 외공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지방에도 옹장이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허다한 명목으로 세금 만들어 옹기장이 쥐어짜 민유중이 1659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올린 보고서를 보면, 철점(鐵店)과 옹점 등이 모두 통영과 병영의 소속이 되어 폐단이 많다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옹점 등이 국가 기관에 소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순조 때 만들어진 ‘만기요람’에 의하면, 전라도와 경상도에서는 장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는데, 한 사람마다 세목(稅木) 한 필이라고 하였다. 세금을 거두는 대상은 주철장(鑄鐵匠)ㆍ유철장(鍮鐵匠, 놋쇠를 만드는 장인)ㆍ수철장(水鐵匠, 무쇠를 만드는 장인)·옹점장(甕店匠)인데, 앞의 세 장인은 호조에, 옹점장은 공조에다 세금을 바쳤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당연히 지방 각 곳에 옹기를 만드는 곳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 주변에서도 옹기를 굽는 곳을 흔히 찾아볼 수 있었으니, 그런 곳은 대개 조선시대에 옹기를 굽던 곳이었다. 옹기를 만들어 파는 옹기장이는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지위의 장인들이었고, 국가로부터 심한 착취를 당했다. ‘정조실록’ 13년(1789) 윤5월22일조를 보면 장령 조성규는 균역법이 시행된 이후 지방 고을 수령들이 장인이나 상인, 혹은 사기나 옹기를 만드는 마을에서 징수하는 세금에는 모두 정해진 액수가 있는데, 허다한 명목을 새로 만들어내어 백성을 쥐어짜는 묘책으로 삼고 있다고 왕에게 말하고 있다. 그 대책으로 양심적인 수령을 뽑자는 말이지만, 그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옹기 만드는 기술도 무형문화재의 대접을 받지만, 조선조의 옹기장이는 이렇게 쥐어짜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천민이다. 역사에 이름이 남을 리 없다. 범죄에 관련되어 한두 이름이 남을 뿐이다.‘세종실록’ 15년(1433) 12월21일조를 보면, 선산의 옹기장이 대금(大金)이 남의 집 종을 모살하여 참형을 언도받은 기록이 있을 뿐이다. 또 한 사람 옹기장이는 천주교 신자로서 신유사옥 때 순교한 김귀동이다. 그는 박해를 피해 충청북도 제천 배론의 옹점으로 옮겨서 살았다 하는데, 옹점이란 것은 원래 지명이 아니라, 옹기장이인 그가 옮겨가 살면서 옹기를 구웠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김귀동은 신유사옥 때 황사영이 도망오자 숨겨 주었고, 황사영은 그의 집에서 저 유명한 ‘황사영백서’를 썼던 것이다. 황사영은 천주교회의 역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김귀동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김장독처럼 큰 옹기는 어떻게 팔았을까 옹기를 파는 곳은 어디인가? 육의전(입전·면포전·면주전·포전·저전·지전)을 제외한 나머지 상품들에 대해서 자유로운 상행위를 허락한 신해통공 때 이 정책의 발의자이자 추진자였던 채제공은 금난전권을 시전에 허락한 것이 결국 물가를 올린다고 말하면서 “요사이는 심지어 채소나 옹기까지도 판매하는 전(纏)이 따로 있어서 사사로이 서로 사고 팔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음식에 소금이 떨어지고, 가난한 선비가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일까지도 생깁니다.”(‘정조실록’ 15년 1월25일)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자료를 보건대 한때 시전에서 옹기를 독점 판매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시전에 옹기를 파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길이 없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 의하면, 종루거리와 남대문 밖에 도자기를 파는 자기전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판매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만약 지방이라면 어디서 팔았을까. 사기그릇은 지고 다니며 팔지만 김장독처럼 큰 옹기는 어떻게 팔았는지 자못 궁금하다.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보면 ‘옹점이’란 여자가 나온다. 이문구의 어렸을 때 친구다. 옹점이란 이름은 이문구의 조부가 이 여성의 어머니가 딸을 옹점에서 낳았다고 해서 옹점이라 부르라 했던 것이다. 옹점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옹기를 굽는 곳이다. 지명을 사람의 이름이나 호로 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인촌 김성수가 살던 마을이 인촌이었기에 호가 인촌이 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옹점이란 이름은 그 사람이 옹점에서 태어난 것을 말하니, 좋게 들리지 않는다. ‘관촌수필’에서 이문구가 그리고 있는 옹점이는 얼마나 손끝이 맵고 싹싹하고 눈치 빠르고 영리한 여성인가.‘옹점’이란 이름은 그것을 지워버린다. 사족. 대학시절 ‘관촌수필’을 읽고 문체에 홀딱 반하였다. 다시 그런 문체가 있을까. 앞으로 한국문학은 이문구처럼 그렇게 리얼하고 치밀한 충청방언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쉽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도시공동체’ 성미산에 학교 신축 논란

    서울 마포구에 자리잡은 높이 66m의 ‘동네 뒷산’일 뿐이지만, 이웃·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성미산은 ‘희망’과 ‘대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공동육아로 싹을 틔운 주민운동의 씨앗이 2001년 산 정상에 배수지를 건설하려는 서울시에 맞서며 형성된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대안학교와 생활협동조합, 지역라디오 방송을 자체 운영하는 도시속 마을공동체로 탄탄하게 뿌리내린 곳이 성미산 자락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미산이 다시 한번 거센 개발의 바람에 휘말렸다. 지난해 한양대재단으로부터 성미산 자락의 부지를 인수한 학교법인 홍익학원이 이곳에 홍익초등학교와 홍익여중·고의 신축이전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소쩍새·붉은배새매 등 서식 관할 마포구청은 지난달 20일 학교법인 홍익학원이 학교시설 이전을 추진 중인 성산동 산11-31 일대 2만 1485㎡를 체육시설에서 학교시설로 변경해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마포구가 시설변경을 요청한 지역은 성미산 면적의 5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로 대부분 자연숲으로 이뤄져 있다. 이 지역은 최근 생태보존시민모임 조사에서 천연기념물인 소쩍새와 붉은배새매, 서울시 보호종인 꾀꼬리, 박새가 서식중인 것으로 확인되는 등 생태적 보존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서울시도 ‘비오톱(biotop)’ 1등급 지역으로 평가할 정도다. 주민들은 이곳이 개발될 경우 마포 지역의 유일한 자연숲인 성미산의 훼손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 것으로 우려한다. 성미산대책위 김성섭 대표는 “교육수요가 생겨 학교를 신설하는 게 아니라 있던 학교를 이전해 온다는 게 문제”라면서 “주민쉼터이자 생태보고인 숲을 파괴해 학교시설을 짓는다는 것은 서울시가 표방하는 ‘녹색 시정’ 방침과도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주민들은 이 기회에 학교법인 홍익학원 소유 부지를 서울시가 매입해 생태공원으로 전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로선 재원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주민들의 요구도 일리가 있지만 문제는 막대한 매입비”라며 난색을 표했다. ●마포구 “학교시설 제외하곤 모두 공원화” 서울시는 지난달 마포구 도시계획위원회가 제출한 시설변경 요청을 반려한 상태다. 시 관계자는 11일 “학교 부지뿐 아니라 성미산 전체에 대한 종합계획이 먼저 수립돼야 한다는 게 관련부서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마포구 관계자는 “학교시설을 제외한 성미산의 나머지 10만 3000㎡를 모두 공원화하는 방안을 시와 논의 중”이라면서 “학교신축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자연훼손은 건축계획 승인 단계에서 최소화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미산대책위가 중심이 된 주민들은 학교시설 변경계획 철회와 전면 생태공원화를 요구하며 주민서명에 나서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설 태세다. 김성섭 대표는 “사태 해결의 모든 열쇠는 허가권자인 오세훈 시장이 쥐고 있다.”면서 “오 시장과 만나 담판을 짓겠다.”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9) 강원도 태백시 백병산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9) 강원도 태백시 백병산

    태백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태백시 북쪽의 삼수령 피재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산줄기가 시내를 호위하는 듯한 모습이다. 시내 중심부에서 솟아난 황지연못은 낙동강이 되어 낙동정맥과 나란히 흘러간다.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을 따라 흐르는 산줄기로서 태백에서 시작되어 부산 다대포까지 분수령(分水嶺)을 이루며 이어진다. 낙동정맥이 피재에서 갈래친 후 힘을 모아 높이 솟궈 올린 산이 백병산(1259m)이다. 낙동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태백시 통동과 삼척시 도계읍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삼척 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등산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지만, 산 중턱에는 질 좋은 목재로 이름 높은 금강소나무가 숲을 이뤄 자라고 있다. 이 산은 삼척 오십천의 발원지이기도 한데, 산 북쪽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미인폭포를 빚은 후 도계를 거쳐 삼척으로 흘러든다. ●백병산의 원래 이름은 白山 흰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서 있어서 백병산이라고 부른다는 그럴듯한 산이름 유래가 있지만, 원래 이 산은 백산(白山)으로 불렸으며 일제 강점기 이후 근대식 지형도가 제작되면서 백병산이라 표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병산의 남서쪽 주능선에는 촛대바위, 병풍바위, 마고할미바위 등 바위지대가 발달해 있는데 이 때문에 흰 산 또는 흰 병풍산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태백시 통동의 원통골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다. 산의 북동쪽에는 고비덕이라는 곳이 있는데, 일설에는 고사리의 일종인 고비가 많이 자라는 언덕이라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믿기 어려운데, 이 일대는 습기가 많아 여러 종류의 풀꽃들이 자라고 있기는 하지만 고비가 특별히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북방계 약재식물 군락 이뤄 장마철인 이맘때 비가 잦아든 틈새를 이용해 백병산을 둘러보면 가는기린초, 노루오줌, 딱지꽃, 물꽈리아재비, 물레나물, 산꿩의다리, 쉬땅나무, 쥐다래 열매, 하늘나리 등을 계곡에서 만날 수 있다. 까치박달, 다릅나무, 복자기 등이 들어찬 낙엽활엽수림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관중 대군락을 만날 수 있고, 원통골 위쪽에서는 정선황기와 함께 갈고리층층둥굴레도 발견된다. 갈고리층층둥굴레는 북한에만 자생하는 북방계식물로서 이곳의 것은 약재로 재배하던 것이 야생처럼 퍼진 것이다. 능선에서는 겨우살이, 딱총나무 열매, 동자꽃, 물레나물, 미역줄나무, 바위채송화, 산일엽초, 속리기린초, 여로, 조록싸리 등을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꽃은 이미 졌지만 개불알꽃의 대군락을 만날 수도 있다. 정선황기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의 산자락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정선에서 발견되어 우리말이름을 얻었으며, 바닷가 가까운 산지에서 곧잘 발견되므로 해변황기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한국특산식물로 일컬어지기도 했으나, 최근의 연구에서 일본 시코쿠 지방에 자라는 것과 같은 종으로 밝혀졌다. 일본에서는 자생지에서 이미 절멸하여 없고 식물원에 키우는 것만이 남아 있는 매우 희귀한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편이기는 하지만 석회암지대에서 곧잘 발견된다. 물꽈리아재비는 물가의 습지에서 비교적 드물게 발견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 20㎝쯤으로서 네모가 지고 연약하다. 우리나라에는 묘향산 이남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대만에 분포한다. 백병산에서는 원통골 위쪽의 계곡 주변에서 볼 수 있다. ●하늘 향해 꽃피우는 하늘나리 하늘나리는 지리산 이북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 30∼70㎝로서 우리나라에 자라는 나리종류들 가운데 키가 작은 편에 속한다. 꽃은 하늘을 향해 피며, 고산지역의 풀밭 등 생육조건이 나쁜 곳에서는 1개씩 피지만 저지대의 숲 가장자리 등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5개까지 피기도 한다. 큰까치수염은 큰까치수영이라고도 부르는 여러해살이풀로 이맘때부터 늦여름까지 전국의 산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작고 흰 꽃들이 빽빽하게 붙어서 긴 꽃차례를 이루는데, 꽃들이 한쪽으로만 붙어 있다. 꽃 하나하나도 아름답지만 꽃차례 전체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꽃에는 꽃가루와 꿀이 많아서 벌과 나비가 앉아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백병산에서는 서쪽 능선의 양지바른 임도에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장마철에 피는 꽃은 꽃가루받이가 어렵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서 활동하는 벌과 나비가 없으니 충매(蟲媒)가 어렵고, 빗물에 젖은 꽃가루가 풍매(風媒)되기도 불가능하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먹구름 사이로 잠깐잠깐 고개를 내미는 해님 덕에 꽃들은 꽃가루받이에 성공할 수 있다. 장마철에도 쉴 새 없이 꽃은 핀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6) 강원도 평창 능경봉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6) 강원도 평창 능경봉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대관령은 백두대간에 놓인 고개다.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북쪽으로는 오대산 노인봉(1338m)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고루포기산(1238m)으로 연결된다. 능경봉(1123m)은 대관령과 고루포기산 사이에 솟은 산으로서 고루포기산과는 횡계현 고개를 사이에 두고 있다. 대관령휴게소에서 백두대간 등산로를 따라 1시간30분 남짓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능선에는 신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물푸레나무, 복자기, 피나무 같은 큰키나무들이 섞여 자란다. 능선에서 소나무를 거의 만날 수 없는 것도 이 산의 특징이다. 노린재나무, 시닥나무, 함박꽃나무, 회나무 같은 떨기나무들이 숲의 중간층을 이루어 자란다. 숲 바닥에는 감자난초, 관중, 광릉갈퀴, 노루삼, 눈빛승마, 도깨비부채, 삿갓나물, 선괭이눈, 애기앉은부채, 옥잠난초, 쥐오줌풀, 투구꽃, 큰괭이밥 등의 풀꽃들이 살고 있다. ●골짜기 습지 애기앉은부채꽃 등 희귀식물 많아 횡계현에서 횡계마을 쪽으로 내려서는 골짜기인 왕산골이나 대관령휴게소 일대에서 정상 쪽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들에 귀한 식물이 많다. 휴게소 일대의 골짜기 습지에 놋젓가락나물, 애기앉은부채, 제비동자꽃 등의 희귀식물이 살고 있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는 왕산골에도 꽃창포, 노루오줌, 붓꽃, 산비장이, 애기원추리, 참좁쌀풀, 초롱꽃, 할미밀망 등이 자라고 있다. 능경봉 산자락이라 할 수 있는 대관령에서 횡계마을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주변에도 금꿩의다리, 단풍터리풀, 생열귀나무, 범꼬리 같은 귀한 꽃들이 많다. 도로를 정비하거나 확장할 때에 이런 중요한 식물들이 있는지조차 모른 상태에서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단풍터리풀이나 제비동자꽃은 백두산을 비롯하여 만주, 몽골, 시베리아, 캄차카 등 고위도 지방에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이 일대를 비롯하여 강원도 몇몇 곳에서만 발견된다. 이곳에 살고 있는 생열귀나무도 남한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식물이다. 장미과에 속하는 떨기나무로서 높은 산에 자라는 민둥인가목에 비해서 꽃빛깔이 훨씬 진하고, 열매는 길쭉하지 않고 동글동글하게 생겼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산 중턱 이하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바닷가에 자라는 해당화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능경봉 자락의 자생지 부근에는 심어 놓은 해당화가 근처에 있으므로 헷갈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쥐오줌풀은 길가나 숲 속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길가에 자라는 것은 보랏빛이 도는 꽃을 피우고, 숲 속에서 햇빛을 조금만 받고 자라는 것은 흰 꽃을 피운다. ●5월~6월 하순 함박꽃나무 ‘함박웃음´ 붓꽃은 꽃이 피기 전의 봉오리 모습이 글씨를 쓰는 붓을 꼭 닮았다. 꽃잎 아래쪽에 있는 노란 줄무늬는 곤충들이 잘 앉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전국의 숲 가장자리, 풀밭 근처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자생 붓꽃속(屬) 식물 가운데 비교적 흔하다. 숲의 중간층을 이루는 노린재나무는 작은 꽃들이 여러 개 모여서 화려한 흰 꽃을 피운다. 많은 수술이 꽃잎 밖으로 나와서 꽃이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줄기를 태우고 나면 남는 재의 빛깔이 노란색이어서 노린재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가을에 남색으로 익는 열매도 볼 만한다. 이맘때 산 속에서 크고 탐스러운 흰 꽃을 피우는 함박꽃나무를 산목련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식물학적으로도 목련과 같은 속(屬)에 속하므로 일리가 있지만, 학술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말이름일 뿐만 아니라 큰 꽃이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함박꽃나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 부르는 게 좋을 듯하다. 꽃이 클 뿐만 아니라 잎도 크고 시원스럽게 생겨서 관상가치가 높다. 한라산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전 지역에 자라며, 사는 곳의 해발고도에 따라서 5월 하순부터 6월 하순까지 꽃을 피운다. 북한에서는 국화로 지정하여 도시의 공원에도 많이 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06일 TV 하이라이트]

    ●주말(N)(YTN 오전 10시35분) 주말나들이길에 영화 속 주인공이 돼보면 어떨까. 이번주엔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소개된다.‘공동경비구역 JSA’,‘왕의 남자’ 등 수많은 한국영화의 촬영 세트가 있고, 영화제작 과정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시네마 천국이다. 동호회 코너에서는 119 소방대 마술동호회의 특별한 활약상이 펼쳐진다.   ●시네마 천국(EBS 밤 12시10분) ‘라디오스타’,‘너는 내운명’,‘즐거운 인생’ 등 영상보다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들에서 보석 같은 배경음악을 책임진 영화 음악감독 방준석을 만나본다. 또 새 시리즈마다 화려한 스케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화제작 ‘인디아나 존스’를 둘러싼 사소한 진실과 비밀도 엿본다.   ●달콤한 나의 도시(SBS 오후 9시55분) 재인은 은수와 유희에게 만나던 남자를 차버리고 20일 전에 만난 남자와 결혼한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옛 애인이 결혼했다는 소식에 우울한 은수는 말도 못하고 기만 막힌다. 업무관계 미팅을 갖던 은수는 우연히 연하의 태오를 만난다. 은수는 태오의 살인미소와 다소곳한 매너에 이끌려 마음을 연다.   ●코끼리(MBC 오후 7시45분) 우연히 한영의 핸드백을 들어주게 된 복수는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꼴불견이라는 시선에도 행복하기만 하다. 마치 한영의 남자친구가 된 것 같은 달콤함에 빠진 복수. 졸지에 복수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한영의 자그마한 핸드백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한편 현지는 깨끗한 세영의 하복이 자꾸만 탐나는데…   ●이영돈PD의 소비자고발(KBS1 오후 10시) 모유의 다양한 이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돼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모유수유 권장 방안을 내놓고 있다. 덕분에 불과 1년 전만 해도 6곳에 불과하던 지하철역 모유수유실이 현재 50여 곳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모유수유실은 제대로 활용되고 있을까?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서울대 출신에다 IQ 180인 엘리트 남편 영재에게 전문대 나온 남수는 학벌 콤플렉스가 있다. 혹시라도 딸이 자기를 닮아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딸의 학급 등수가 조금만 떨어져도 쥐잡듯 닦달한다. 기죽는 딸이 안쓰러운 영재는 아내를 나무라 보지만 소용이 없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0) 도성의 기와집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0) 도성의 기와집

    김홍도의 그림 ‘기와 이기’다. 이 그림은 아주 재미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은, 각각의 맡은 역할이 다른 데다가 인물의 행동이 개성 있게 그려져 있다. 예컨대 지붕에 앉은 사람이 손을 내밀어 기와를 받으려고 하는 장면을 보라. 기와가 공중에 떠 있지 않은가. 그림 오른쪽에는 이 기와집의 주인, 좀 거창하게 말해 기와집을 발주한 사람이 막대기를 짚고 기와 이는 모습을 보고 있다. 머리에 사방관을 쓴 것으로 보아, 꽤나 지체가 높은 사람인 듯하다. 자, 이제 기와 이는 사람들을 보자. 먼저 집. 이 집은 어떤 용도의 집인지 알 길이 없다. 지금 기와를 올리는 지붕과 기둥만 둘이 보일 뿐 벽도 없다. 집의 구조가 무척 단순해 보인다. 앞으로 벽도 치고 방도 넣을 예정인지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집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감독하는 주인 양반이 나와 있고, 초가가 아닌 기와집을 사람 여럿을 불러 짓고 있으니, 상것들이 사는 집과는 사뭇 다른 고급한 용도로 쓰일 집인 모양이다. ●조선시대 건축노동 그린 유일한 작품 이 그림의 핵심은 기와를 올리는 것이다. 먼저 마당을 보자. 맨 왼쪽의 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사내는 기와를 손에 쥐고 지붕 위로 던져 올리려는 참이다. 사내의 앞에는 앞으로 던져 올려야 할 기와가 남아 있다. 그 오른쪽의 사내는 지붕에 올릴 진흙을 뭉쳐서 줄에 매달고 있는 참이다. 그 줄을 지붕 위의 사내가 막 당겨 올리고 있다. 그렇게 해서 올라간 진흙이 지붕 위에 널려 있다. 기와를 덮기 전에 진흙을 먼저 놓고 그 위에 기와를 덮는다. 이제 기와를 덮는 사람이 남았다. 이 사내는 오른손을 뻗어 아래서 던진 기와를 막 잡으려 한다. 기와는 공중에 떠 있다. 왼손에는 진흙덩이를 다듬을 때 쓰는 귀얄(?)을 쥐고 있다. 숙련된 솜씨다. 이 사내는 들창코로 그려졌는데, 얼굴 생김새가 앞서 역시 김홍도가 그린 ‘타작’에서 나왔던, 시무룩한 표정으로 타작을 하고 있던 그 친구와 흡사하게 생겼다. 타작을 했지만 세금이니 소작료니 하여 다 뜯기고 나서 집 짓는 노동에 나온 것인가. 다시 밑으로 내려오면 기둥 옆에 한 사내가 실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줄에 매달린 시커먼 물건은 먹통이다. 곧 줄을 곧게 치는 도구다. 오른쪽 눈을 감고 수직의 줄과 기둥을 견주어보고 있는 중이다. 기둥이 비뚤어지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 사내의 아래에는 목수가 있다. 널판을 대패로 반반하게 미는 중이다. 아래에는 곱자, 톱, 자귀 등의 목공에 필요한 물건이 있다. 이 그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기와를 이는 것은 단원 당시 일상적으로 목도하는 일이었을 터이고, 그래서 별로 주목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일들은 우리의 의식이 감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가. 기와를 올리는 일상의 풍경, 그것도 가장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천한 이들의 노동 현장을 이렇게 꼼꼼하게 옮기다니, 김홍도의 머리는 달리 작동하는 것이었나 보다. 이 그림은 건축 노동을 그린 유일한 작품이다. 말이 난 김에 기와집 이야기를 좀 해 보자. 기와를 얹으려면 기와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경국대전’ 이전(吏典)을 보면 경관직 종6품아문에 와서(瓦署)란 관청이 있다. 기와와 전(塼)을 만드는 일을 맡는다. 종6품 관청이고, 또 이런 관청이란 수공업을 지휘감독하기에 별로 끗발이 없는 자리다. ●기와 거칠게 만들면 중죄로 다스려 이 와서에는 와장(瓦匠) 40명과 잡상장(雜象匠) 4명이 소속되어 있다. 와장은 기와를 만드는 장인이다. 잡상장은 궁궐 같은 큰 기와집 지붕 끝에 보면 여러 가지 동물 모습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다. 일종의 진흙 조각가로 보면 된다. 와장은 원래 조선초기에는 승려들 중에서 뽑아서 시켰고, 또 각 지방에서 뽑아 올렸다. 이런저런 변화를 거쳐 뒤에 와서의 정원으로 정해졌던 것이다. 와장은 기와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건축할 때 지붕에 기와를 얹는 사람은 또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이 장인을 개장(蓋匠)이라 한다. 조선시대 때 토목이나 건물을 짓는 일을 맡은 선공감(繕工監)이란 관청에는 개장이 20명이 소속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경국대전’ 공전(工典) ‘잡령(雜令)’에 “기와를 거칠게 만들어 법대로 하지 아니한 자는 중죄로 논한다.”란 조항이다. 이것은 와장이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 기와를 만들 때는 대충 만들고, 개인적으로 기와를 만들 때는 제대로 만들기 때문에 생긴 법이다. 조선시대의 수공업을 맡은 장인들은, 해마다 일정한 날수를 국가의 여러 기관에 소속되어 일을 해야 했고, 그 외의 날에 대해서는 세금을 바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무슨 흥이 나서 관청 일을 하겠는가. 불량기와를 만들 수밖에. 기와집은 잘사는 집, 초가집은 가난한 집으로 안다. 사실이다. 가난한 살림에 무슨 기와집을 짓는단 말인가. 1904년 호주의 사진가 조지 소로스가 찍은 서울의 풍경(자세히 보면 왼쪽 상단에 남대문이 보인다)을 보자. 기와집은 몇 되지 않고 대부분 초가집이다. 한데 조선시대 내내 초가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태종 초년에 스님 해선(海宣)이 아이디어를 냈다. 새 도읍인 서울의 모든 집이 초가집이어서 중국 사신이 와서 볼 때 아름답지 못하고, 또 거기에 화재가 두렵다는 것이다. 도시의 미관, 특히 수도의 미관은 국가의 이미지와 관계된다. 거기에 띠집, 초가집은 불이 나기 쉽다. 해선의 말로 조선이 서울로 수도를 옮긴 후 상당 기간 동안 초가집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선은 자기에게 기와 굽는 기관을 만들어 맡겨준다면,10년 안에 서울 시내를 모두 기와집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이 말을 듣고 별와요(別瓦窯)를 설치하고, 팔도에서 와장과 중을 뽑아 소속시킨다(‘태종실록’ 6년(1406) 1월28일). 별와요 사업은 성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중단되었다. 세종 6년 7월7일 해선은 여전히 기와집이 부족하다면서 다시 아이디어를 낸다. 즉 자신이 면포 3000필을 내겠으니, 그것으로 ‘보(寶)’를 만들자는 것이다.‘보’는 요즘으로 치면 재단이다. 해선은 ‘기와 만들기 재단’을 설립하고자 한 것인데, 조정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 뒤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기와집 만들기 재단’의 효과가 금방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다. 성종 7년(1476) 8월9일조의 ‘실록’ 기사에 의하면 성종은 별와요의 기와가 권력층에게만 팔린다고 하여 별와요를 폐지하고 싶다고 하자, 신하들이 법만 제대로 지킨다면 좋은 법이라 해서 폐지하지 않는다. 성종은 법대로 집행해서 “수년 내에 성안이 모두 기와집이 되게 하라.”고 명한다. ●조선 후기 접어들며 건축 수준 후퇴 이 명령이 어떻게 수행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는 추론이 가능하다.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웠던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문집을 보면,‘풍속고이’란 글에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란 중국 책이 조선의 문화를 왜곡한 것에 대해 일일이 변론하고 있는데,“조선 사람들의 집은 모두 초가집”이라는 부분에 대해 “도성의 인가는 대개 기와집이고, 외방 역시 그러하다. 오직 초야의 사람들만 모두 초가집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한 증거가 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조선전기 사회의 경제적 능력과 부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리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치른 뒤 경제가 무너져 내리고, 건축의 수준도 후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조선후기 중국에 들어간 조선 사람들에게 다가온 최초의 충격은, 바로 건물이었다. 벽돌과 기와를 사용한 견고하고 깨끗한 건물, 큰 규모와 합리적 공간 구성은 조선 사신단을 충격에 빠뜨렸다. 홍대용이 그랬고, 박지원과 같은 실학자들은 모두 벽돌과 기와로 집을 짓자고 주장하였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벽돌과 기와를 개혁과 문명의 동의어로 썼을 정도다. 유형원은 고을마다 기와를 굽는 와국(瓦局)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익은 기와집은 지을 때 비용이 많이 들지만 튼튼하고 오래가므로 초가집이 쉽게 썩고 무너지는 것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다고 말하고 기와집을 지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실현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여기서도 절감한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식수원 화학약품 오염… 생존자들 ‘물전쟁’

    식수원 화학약품 오염… 생존자들 ‘물전쟁’

    |청두 이지운특파원·서울 이경주 황비웅기자|대지진이 휩쓸고 간 중국 쓰촨성 일대는 완전 마비상태다. 식수도, 가스도 끊겼다. 가게에는 식수대란을 우려해 음료수를 사재기하려는 주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널려 있는 시신에다 고온다습한 기온으로 전염병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청두시에 진출해 있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수출인큐베이터 김상구(40) 소장은 1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두시 일대에는 폭풍전야와 같은 공포가 뒤덮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청두·두장옌 등의 중국 지인을 통해 일대 피해상황과 교민 안전을 파악하고 있는 김 소장은 중·고교 건물이 붕괴되면서 900여명이 매몰되고 320여명이 숨진 두장옌시에는 시신과 높은 기온 때문에 전염병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13일에만 해도 28℃였던 기온은 14일 내린 비로 22℃로 떨어졌다. 하지만 청두 일대에는 5월 중순에 평균 28∼30℃의 기온을 보여왔으며,15일부터는 기온이 30℃ 안팎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온다습한 날씨에 시신이 부패되면서 전염병이 나돌 것으로 현지 주민들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내일부터 날씨가 더워져 전염병이 창궐할까 주민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두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박모(45)씨는 “주변 도시마다 시신이 워낙 많아 한 구 한 구 들어내지도 못하고 그냥 모포로 덮어놓고 있다.”고 전했다. 청두시 일대의 식수를 공급하는 쉬팡에는 화학공장이 붕괴되면서 제방의 물이 오염됐다. 식수 공급은 중단됐다. 박씨는 “생수를 배달하는 가게는 개점휴업 상태이고, 가스도 끊겼다.”고 말했다. 가게에는 생수가 동난 지 오래고, 탄산음료나 우유를 잔뜩 사든 주민들은 계산대 앞에 20∼30m 길게 늘어서 있다. 박씨는 “오늘 오후에 가게를 둘러보니 음료수가 평소의 10%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서 “주민들이 너도 나도 음료수 가판대로 몰려 음료수 한 개라도 더 손에 쥐려고 다투는 모습들이었다.”고 말했다. 김 소장과 박씨에게 진앙지인 원촨의 상황을 물어봤지만 “원촨으로 가는 길은 산사태와 도로 유실로 접근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청두 일대에는 여진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주민들의 공포감은 더욱 심하다. 주재원과 가족 등 교민 1200여명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지만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다. 박씨는 “지금 항공권을 예약해도 빨라야 금요일에나 한국으로 떠날 수 있어 한국인들은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두 일대를 여행하던 한국여행객들은 대부분 귀국했지만,18명의 여행객들은 청두 부근 지우자이거우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빨라야 16일쯤에 청두를 거쳐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jj@seoul.co.kr
  • [아름다운 간판 2008] (2) ‘간판 뉴타운’ 성동구를 가다

    [아름다운 간판 2008] (2) ‘간판 뉴타운’ 성동구를 가다

    흔히 경기와 간판은 반비례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한다. 경기가 하락할수록 업체·업종간 경쟁이 치열해져 간판이 커지고, 개수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같은 불경기에는 업종 교체주기도 빨라져 악순환은 심화된다는 지적이다. 옥외광고물 관련 법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게 또한 우리 현실이다. 규제 권한을 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이른바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것도 한몫한다. 법과 제도가 지켜지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간판 뉴타운’ 서울 성동구를 들여다봤다. ●간판 사전신고해야 업소 영업허가 내줘 불법 간판의 확대 재생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신규 업소에 대한 억제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따라 성동구는 지난해 모든 인·허가 업종을 대상으로 ‘옥외광고물부서 경유제도’를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도입했다. 신규 업소에 인·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 간판의 형태·크기·개수 등을 옥외광고물부서에서 ‘스크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1년간 성동구에서 새롭게 문을 연 업소 3000여곳이 이같은 경유 과정을 거쳤다. 소판수 성동구청 광고물팀장은 “경유제 대상 업소의 70% 정도는 인·허가 신청 즉시 허가를 내줘야 하는 음식점 등이었다.”면서 “때문에 경유제가 형식적인 절차에 그쳐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성동구는 올해부터 경유제의 문제점을 보완한 ‘옥외광고물 신고병행제도’를 도입, 적용하고 있다. 개업에 앞서 간판을 사전신고하도록 해 불법 여부를 판단하고, 인·허가 부서에서는 간판을 사전신고해야 영업허가증을 내주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소 팀장은 “지난 1∼3월 신고병행제를 적용한 860여개 신규 업소는 도시미관을 해치는 불법 간판이 한 곳도 없다.”면서 “불법 간판을 철거 후 재설치하는 데 따른 비용도 대폭 절감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성동구는 또 대형 상가건물을 지을 때 간판설치대를 갖추도록 의무화했다. 상가를 찾은 이용객 입장에서는 입주 업소를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간판설치대 때문에 ‘간판의 홍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왕십리교차로 ‘좋은 간판 시범거리´로 새 불법 간판을 막는다고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성동구내 인·허가 대상업소는 1만 100여개에 이른다. 이는 인·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서점·슈퍼마켓 등 소규모 자유업종은 제외한 것이다. 때문에 기존 불법 간판에 대한 정비시스템도 필요하다. 성동구는 ‘좋은간판 시범거리 조성사업’을 통해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왕십리교차로에서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 이르는 1㎞ 구간을 시범지역으로 지정,61개 건물 259개 점포에 대한 간판 정비를 실시했다. 하지만 낡은 건물이 많은 탓에 정비효과가 반감되자, 올해부터는 건물주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건물 소유주인 조아라(30·여)씨는 “간판의 크기와 개수가 줄어 그동안 감춰져 있던 건물의 흉한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달 중 정비된 간판에 맞춰 건물 외관을 보수할 계획이며, 그래야 건물 가치도 높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 간판이 시각 공해를 유발하는 원인은 크고 화려한 ‘판류형’ 간판에서 찾을 수 있다. 업체 이름만 새겨넣은 ‘입체형’ 간판이 대안이지만, 판류형 간판에 비해 가격이 1.5∼2배 정도 비싼 게 흠이다. 박기준 성동구청 도시개발과장은 “입체형 간판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표준모델을 개발 중이며, 관내 광고물 제작업체 130여곳을 대상으로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면서 “법과 제도를 지키면 편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유동 광고물이나 무허가 광고물에 대한 상시 단속체계도 구축,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간판, 규제보다 환경이 우선 옥외광고물 부서의 한정된 인력만으로는 이같은 시스템을 가동시키기에 역부족이다. 각종 인·허가 부서와의 유기적인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지자체장이 해야 할 몫이다. 간판 정비에 대한 이호조 성동구청장의 관심은 남다르다. 특히 창문에 무분별하게 글씨 등을 덕지덕지 붙인 간판 ‘박멸’에 나서면서 ‘선팅 구청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06년 7월 구청장 취임 직수 첫번째 지시사항이 도시미관 향상을 위해 옥외광고물 정비계획을 수립·추진하라는 것이었다. 이 구청장은 “업체 입장에서는 광고물이지만, 주민이나 이용객 입장에서는 장애물 또는 혐오시설이 될 수 있다.”면서 “사업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규제가 아니라, 광고물의 대상이 되는 대다수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제도가 정착되면 늦어도 4∼5년 뒤에는 전체 간판의 70∼80% 이상을 아름다운 간판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이제 ‘그분’과 만날 시간이 왔다. 아침 찬물로 세수하고 맞이하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한다. 천지사방이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퍼붓는 정열의 햇살로 온통 찬란해진다.98세에 작고한 피천득 시인은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라고 찬미했다. 어디 이뿐이랴. 어버이, 스승,‘나를 닮은’ 아이들이 새삼 생각나게 한다. 그럴 것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석가탄신일, 성년의 날 등 기념적인 날들이 이어진다. ‘마음을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禪),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奉祝)하는 일이 더욱 많아진다. 5월과 무관치 않은 한 스님을 만나보자. 곧 칠순임에도 여전히 ‘개구쟁이 어린이’처럼 지낸다. 무장무애(無障無), 아무 거리낌 없이 ‘하하하’ 크게 웃어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진한 부처 같다. 그는 어머니와 어린이들을 ‘말할 수 없도록’ 그리워해 그림(禪畵·선화)을 그리고 시를 쓴다. 내공이 워낙 깊은지라, 주위에서는 ‘선화의 대가’라고 칭송한다. 10년 전쯤이다. 스님이 양저우(揚州)박물관장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하루는 양저우시장이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때마침 선화의 대가가 양저우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 글씨와 그림에 관한 한 ‘무림의 고수’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어릴 적 은사도 참석했다. 술잔이 몇순배 돌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중국의 한 원로화가가 붓을 잡더니 즉석에서 물소그림을 그렸다. 이어 그 화가는 붓을 한국의 스님에게 건넸다.‘화답’을 청했던 것. 뒤질세라 스님은 주먹쥐듯 네 손가락으로 붓을 잡았다. 원래 악필(握筆)인 스님은 창호지에 원을 그리고 점을 몇군데 쓱쓱 찍었다. 불과 몇분 후 붓을 내려놓자 약속이나 한 듯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그레한 볼에, 미소짓는 복덩이 동자상이었다. 양저우시장이 즉석에서 “공부 잘하도록 우리 아들 방에 걸어놓으면 너무 좋겠다.”고 하자 스님은 기꺼이 선물했다. 그러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줄을 섰다. 스님은 이날 밤 새도록 붓을 잡았다. 스님과 관계된 일화는 많다. 프랑스 상원의장 초청으로 뤽상부르궁전 의장공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프랑스와 우리나라 화가들을 놀라게 했다. 이밖에도 베를린, 카사블랑카, 남미 등 세계 각지의 유서 깊은 도시를 돌며 전람회를 열어 많은 화제를 뿌렸다. 얼마 전에는 유니세프(UNICEF)에서 발행하는 엽서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스님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해외팬들도 적지 않다. 법문 스타일도 독특하다. 야단법석(野壇法席)에서 마무리할 때 ‘우리의 소원은 성불’을 불러 신도들을 울리기도 한다. 국내 불교계에서는 중생을 연민하고 구제하는 일에 남달라 ‘관세음보살’이라고 표현한다. 스님이 머물고 있다는 통도사(通度寺)의 축서암(鷲棲庵)을 찾았다. 조선 숙종 때 창건된 암자로 영축산(靈鷲山·혹은 영취산)의 옛 이름 축서산에서 비롯된다. 400여년이라는 축서암의 세월 가운데 근래 30년을 문제(?)의 스님이 살아서인지 축서암은 거대한 화실처럼 느껴졌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붉게 핀 자목련이 원숙한 여인처럼 금방이라도 유혹할 듯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암자 뒤로는 온갖 푸른나무들이 병풍처럼 쭉 늘어서 넋을 놓게 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자양반인가? 읍내(서울)에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촌구석까지는 뭐할라고 왔노.”라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온다. 선화의 대가 수안(殊眼) 스님이었다. “차나 마시고 가게.” 합장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쥐 두마리가 ‘입춘대길’이라는 글을 떠받치는 그림이 창문에 붙여져 있었다. “왜 ‘수안’이라고 했습니까?” “내 속가의 성이 ‘문(文)’이야. 그리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수(殊)에다 ‘문수의 안목을 키워라’해서 안(眼)을 넣었지.” “만화방창, 이 봄에 유혹을 느끼지 않나요?” “허허허, 봄이 되면 관광버스 타고 놀러가는 사람들 많지.” 연근차 몇잔을 마셨다. 스님은 평소 길을 떠날 때 차보따리를 끼고 다닌다. 스님이 마실 차, 그리고 스님과 만날 사람을 위한 차를 준비한다. 그게 바로 풍류의 시작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수무향(眞水無香)의 ‘풍류차’를 권하면서 ‘어차피 인생살이가 다반사(茶飯事)이지요.’라고 한다. 차를 마시던 스님이 갑자기 기자의 얼굴을 보더니 “어라, 머리만 안깎았군.”이라고 했다. 전생이 스님인가? “호 하나 지어주랴? 고을 제(濟)에서 삼수는 빼버리자, 그리고 산에 기대 살아야 하니 산(山)을 넣어 제산(齊山)으로 해삐리라.‘재산’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기분이 좋다. 하하하.” 얼핏 ‘개구쟁이 스님’의 장난기로 들려올 법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토굴생활 등 혹독한 수행으로 ‘대긍정(大肯定)’의 경지까지 오른 ‘큰스님’의 말씀 아닌가. “대긍정은 어떤 것인가요?” “별거 아니야, 긍정과 부정도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야. 부정이 많다 보면 그림자가 많아져. 캄캄한 방에 전깃불 켜는 것도 수행이지. 스위치 하나로 어둠과 밝음, 즉 긍정과 부정이 생기거든. 흐르는 물이 굴곡을 탓하는 거 어디 봤는가?” “요즘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너무 바빠, 그렇게 살 필요 없어. 별로 들 것도 없으면서 왜 무겁게 짊어지고 쫓기면서 살아? 아나 다 놓아삐리라. 집착은 곧 노예인 것이야.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해봐. 요즘은 어머니도 고향도 다 잊고 살아가. 지혜는 없고 지식과 정보의 노예로 다들 전락했어. 그러니까 고급인력들이 빈둥빈둥 놀고 자빠졌지.” 스님의 시 중에 ‘사모곡’이 있다.‘누가 지었을까 어머니 이름 석자/기쁠 때 불러도 어머니 슬플 때 불러도 어머니/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아기가 됩니다.’ 스님은 ‘진리는 곧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자비원’을 통해 무의탁 노인을 돕는다. 또 부산 지역 지체장애아동들에게 매년 휠체어 100대씩 사서 선물하는 등 수십년째 선행을 베풀고 있다. 길을 가다가 거지를 만나면 주머니를 뒤져 몇푼의 돈을 꺼내 건네주는 일도 다반사이다. 스스로 ‘수행화가’라고 표현하는 그는 17세 때 출가 직후부터 석정 스님을 스승으로 전각과 선화를 익혔다. 그의 그림은 어린이, 어머니, 초가집 등 토속적 냄새가 짙게 담겨 있다. “출가한 지 50년 됐습니다. 그동안 후회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나요?” “비바람이 부는데 파도가 안 일어날 물이 어디 있겠어. 성불하려면 비워야 해. 가득차 있으면 뭘 담겠나?” 인터뷰를 마치면서 석가탄신일을 맞아 법문 하나를 정중히 부탁했다.“춘래초자청(春來草自靑), 봄이 오면 풀이 절로 푸르기 마련인데 괜히 욕심 보탤 거 없어. 심청사달(心淸事達)이야.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려. 부정과 긍정도 다 흑백논리야. 최선을 다해도 나중에 부끄러운데 눈속임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영혼이 부끄럽겠나. 내 자식이 귀하면 이웃 자식도 귀하고, 사회와 국가도 귀하지 않겠나?”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수안 스님은 1940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57년 석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64년 월하 스님에게 비구계 수지하고 이후 통도사 송광사 백련사 묘관음사 등에서 수선안거에 정진했다. 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때 이재민돕기 선화전을 열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85년 파리 초대전,86년 중앙승가대건립기금마련 전시회,89년 두달간 유럽순회전 등 유럽과 러시아, 남미 등에서 전시를 가져 독특한 수행력을 과시했다. 특히 불우어린이와 장애인, 무의탁노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는다. 그림전시도 ‘중생돕기’ 차원이다. 이달 초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세상을 담는 그릇-발우전’에 공동전시를 가졌다.
  • 주요부처 국정과제 보고내용

    ■금융위 보고 은행·증권·보험 규제 기능별 통합 금융위원회는 은행·증권·보험 등 업종간 규제 내용에 차이가 크지 않아 통합할 수 있는 기능들을 2010년 말까지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업무위탁, 소비자보호, 금융상품판매, 지배구조, 진입·퇴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장기적으로 칸막이식 규제를 기능별로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금융위는 모든 규제를 탄생→성장→퇴출에 이르는 라이프사이클, 법→시행령→규칙→규정→세칙 등의 법령체계,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권역별 등 3차원에서 조사한 뒤 존치·완화·폐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분야별로는 진입·업무영역과 상품·영업·소비자보호 분야 등에 대한 규제 전수조사는 끝났으며 앞으로 자산운용·건전성감독, 퇴출·조직변경에 대한 규제 점검이 다음달 7일까지 시행된다. 규제 폐지 여부는 전에는 민간에서 완화·폐지 필요성을 입증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규제 당국이 존치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 존치되는 규제도 2년마다 필요성을 재심사할 계획이다. 금융고객 통합민원실이 설치되고 인허가 RM(Relationship Manager)과 일반 민원 RM이 운영된다. RM은 모든 민원사항에 대해 민원인을 대행, 민원인에 대한 지원여부를 중심으로 성과를 평가받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국토해양부 보고 골프장·관광단지 개발 규제 완화 국토해양부가 24일 보고한 토지이용제도 개선 내용은 ▲규제 내용 단순화 ▲규제 절차 간소화 ▲이용 규제과정 투명화로 요약된다. 관련 법규 개정안을 6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우선 6월말까지 112개 법률에 걸친 397개 용도지역·지구를 뜯어고치기로 했다. 제도만 만들어 놓고 적용하지 않는 리모델링지구·개발밀도관리구역 등은 폐지된다. 서로 다른 법률에 중복지정된 유사한 지역·지구제도는 국토계획법으로 통합된다. 기반시설만 확보되면 연접개발 규제도 풀린다. 지구단위계획을 피하기 위해 현재는 같은 지역에서 개발 규모를 3만㎡ 이하로 쪼개서 개발하는 것을 막고 있지만 기반시설만 충족하면 이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골프장·관광단지(유원지) 조성도 쉬워진다. 현재는 계획관리지역에만 개발을 허용하지만 앞으로는 전체 부지 가운데 계획관리지역을 50%만 확보하면 붙어 있는 땅이 보전·생산관리지역이라도 개발을 허용한다. 일반주거지역 층수 규제도 풀린다. 일률적으로 규제(2종 주거지역 15층 이하)하던 것을 용적률 범위 안에서는 평균 층수만 지키면 되도록 완화된다.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도시관리계획 권한도 지방으로 대폭 넘긴다. 특별·광역시 도시기본계획과 도내 시·군 광역도시계획도 지방으로 넘기기로 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교육과학부 보고 기숙형高 88곳·마이스터高 20곳 지정 교육 자율화 정착을 위해 올해 안에 인성·공동체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숙형공립고 88개교(학교당 50억원씩 총 4400억원 지원)와 미래형 전문계고인 마이스터고 20개교(학교당 25억원씩 총 500억원 지원)를 지정하는 등 학교유형을 다양화한다. 교장공모제를 기숙형공립고와 마이스터고를 중심으로 확대한다. 대입 관련 정부기능을 대학·전문대학 협의회로 이양하고, 정부의 개입근거를 폐지하기 위해 오는 6월 중 관련 법령을 개정한다. 또 대학재정 지원방식을 성과에 기반한 교수·연구자 직접 지원 방식으로 개편해 투자효율성을 높인다. 학생·학부모·산업체 등 수요자에 의한 대학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대학정보 공시체제를 오는 10월까지 구축하고, 대학 자체 평가 및 평가결과 공개를 의무화함으로써 대학의 책무성을 높인다. 대학 자율화에 따라 대학별 특성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련 지원금을 지난해 20억원에서 올해는 128억원으로 대폭 확대한다. 대학재정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의 국고회계와 기성회계를 통합한 새로운 대학회계제도를 도입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보건복지부 보고 노인보호사·보육교사직 올 7만개 창출 보건복지가족부는 24일 청와대 국정과제 보고에서 8만여개의 일자리 창출을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창출되는 일자리는 노인요양보호사 5만여개, 보육교사 1만 8000여개, 민간분야 노인일자리 2만여개, 사회서비스 일자리 2000여개 등 모두 8만개가 넘는다. 노인요양보호사는 올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을 앞두고 현재 917곳의 위탁 교육기관에서 5만 6000여명이 교육받고 있다. 보육지원 수요확대에 따른 보육교사 일자리 창출도 지난해 8만여명보다 1만 8000여명 늘어난 9만 8000여명이다. 노인 일자리는 공공기관 사회 참여형의 경우 지난해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주유원, 택배, 경비원 등 민간분야 일자리를 신규로 2만개 이상 늘린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실천방안을 통해 복지 서비스분야의 시장 형성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분야 고용비중(12.7%)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1.7%)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경축! 우리 사랑’서 첫 주연 맡은 김해숙

    ‘경축! 우리 사랑’서 첫 주연 맡은 김해숙

    ‘국민 엄마 배우’ 김해숙(53)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영화 ‘무방비도시’에선 소매치기 대모로 면도날을 씹더니,‘경축!우리 사랑’(제작 아이비픽처스·9일 개봉)에서는 21살 연하남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 캐릭터를 꿰찼다. 차기작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 뱀파이어와 불륜에 빠진 며느리의 시어머니로 출연한다. 안방극장의 온갖 채널들을 섭렵하며 팔색조 모성을 펼쳐온 중견배우 김해숙.‘어머니’의 익숙한 이미지를 호기롭게 털고 지천명이 넘어 스크린에서 파격적 캐릭터를 구사한 배우에겐 짙푸른 욕심이 돋아나고 있었다. ● “저보고 산삼 먹냐고들 해요” 1974년 MBC 공채 탤런트 4기로 연기에 입문한 그는 안방극장에 주로 머물렀다.1980∼90년대의 영화이력은 그래서 가난하다. 스크린에서 다시 그를 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가문의 영광’ 이후부터. “저희 땐 드라마가 더 활성화돼 있었어요.‘벗는 영화’도 많았고요. 아이도 어리고 나이도 젊어 제약이 많았는데 지금은 달라졌죠. 드라마에서는 중견 배우가 폭발적인 열정을 보여 주기엔 한정된 역할이 많은데 영화로 와보니 우리도 앞장설 수 있는 캐릭터가 있더라고요.” 지난 1일 새벽 5시까지 드라마 촬영을 하고 그가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하루 일정을 묻자 가는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사람들이 주위에서 물어본대요. 쟤는 뭘 먹냐고. 산삼 먹냐고.”(웃음) 드라마에 영화 일정이 겹치는 요즘 같은 때는 하루에 한두시간 눈을 붙인다. 뒤늦게 발동 걸린 연기사랑이 그에겐 원동력. 드라마는 시즌이 바뀔 때마다 6∼7편씩 제의가 들어오고, 영화 시나리오도 4∼5편씩 받아 두고 있지만 이번 영화는 ‘이유 있는 선택’이었다. ● “시나리오 받은건 3년 전… 한국판 ‘데미지´라고 생각했죠” ‘경축!우리 사랑’의 봉숙씨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엄마다. 노래방과 하숙집을 하는 중산층 가정. 남편(기주봉)은 동네 미용실 여자랑 바람이 났고, 백수 딸은 하숙하는 청년 구상(김영민)과 연애질이다. 퉁퉁 불어터진 얼굴로 엎어진 밥상처럼 너절한 일상을 이어가던 엄마 봉숙. 여기까지는 ‘왼발’로도 할 수 있을 익숙한 역할이다. 그를 사로잡은 건 이쯤해서 불쑥 틈입한 황당한 설정. 딸이 결혼하려던 애인을 두고 가출을 한다. 술에 취해 동네 전봇대에 토하는 청년을 엄마는 들쳐 업는다. 그런데 업힌 청년의 입김에서 그만 가슴이 떨리고 만다. “충격적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다뤄 보지 않은 소재였고, 시나리오를 받은 건 3년 전이라 ‘가족의 탄생’이 나오기도 전이었거든요. 발상 자체가 신선했죠. 한국판 ‘데미지’가 아닌가 싶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는 바로 해볼 만한 역이다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의 결심을 듣고 28·29살인 두 딸은 막 웃더란다.“엄마, 미쳤어?” 그런 반응에 더 오기가 났다. 하지만 문제는 촬영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딸들의 얘기를 듣고선 이게 보통 사람의 시선이라 생각하니 ‘아, 이제부터는 내 책임이구나.’ 싶었어요. 추한 욕정으로 비춰질까봐 굉장히 조심스러웠죠.” 촬영 중 그는 상대 배우 김영민을 15번이나 업었다. 온통 구토물로 얼룩진 옷을 벗기다 설렘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 후에는 붕어빵을 사들고 청년의 손에 쥐어 준다. 아이스크림을 ‘너 한입, 나 한입’ 나눠 먹으며 봄바람결에 수줍게 웃어도 본다.“아이스크림 나눠 먹는 게 얼마나 닭살스럽고 웃겨요. 그렇지만 만약 지금 그런 사랑이 온다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그러다 아기까지 가지는 봉순. 굳은살 배긴 아줌마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번진다. 그때부터는 남편도 딸도 보이지 않는다. 봉순이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이유는 뭘까. “굳이 딸과 연적이 되면서까지 아기를 지키려는 부분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봉순이를 생각해 보니 이 여자는 사랑보다도 자신이 여자라는 걸 잊고 있다가 그때 처음 여자라고 느낀 거였어요. 아이를 지키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었죠.” ● 박찬욱 감독 ‘박쥐’출연…“꿈에도 박쥐가 날아 다녀요”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세상 엄마들을 위한 응원가다. 구상은 남편의 사주를 받은 동네 아저씨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외친다.“저는 봉순씨를 사랑합니다.” 일순, 아저씨들 눈이 커진다. “뭐?봉순이가 누구야?” 웃음과 눈물이 뒤섞일 페이소스 넘치는 이 장면은 이름을 잃어 버린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요즘 세상이 변해서 여자들이 편해졌다곤 하지만 엄마들은 아직도 똑같아요. 가족, 아이들을 위해 사랑은 사치나 꿈인 채 살아 가잖아요.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영화 속 초반 봉순이처럼 사셨던 분들이라면 여자임을 다시 확인하세요.” 그는 두달 전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에 캐스팅됐다. “원래 박 감독님의 팬이에요. 정말 존경하는 감독인데 캐스팅 소식에 멍해 있었더니 딸이 왜 그러냐고 묻대요. 그 박쥐가 내 박쥐가 될 줄은 몰랐지. 꿈에도 박쥐가 날아 다녀요.” 다시, 국민엄마로 돌아온 그의 웃음이 화사했다. 엄마의 파격은 대체 어디쯤에서 멈출까.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지방시대] 일대 전환기 맞은 도시정책/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지방시대] 일대 전환기 맞은 도시정책/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정부의 도시정책이 일대 전환을 맞고 있다. 규제를 줄여 각종 도시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는 반길 일이다. 이제까지 각종 규제가 건전한 도시성장의 발목을 잡아온 것도 사실이다. 지방도시의 입장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과거 정권에서 국토의 균형발전이 도시정책의 큰 축이었다면 지금은 도시의 경쟁발전으로 바뀐 듯하다. 논의가 무성한 한반도 대운하 계획도 그렇고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경쟁적 발전을 유도하는 모양새다. 지자체간의 개발이나 환경을 두고 벌이는 힘겨루기와 싸움을 보면 도시간 경쟁이 자칫 상생이 아닌 공멸이 될까봐 걱정이다. 얼마 전 중앙의 도시계획 관련 결정권을 대폭 지자체로 이양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방자치 초기였던 1990년대 초에는 도시계획 결정권의 단계적 지방 이양이 화두였다. 웬만한 건 다 쥐고 있었던 중앙정부가 그 권한을 지방에 위임하거나 이양하는 정책은 대체로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도시계획 결정과 토지이용 규제의 중요한 몇 가지만 중앙에서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시의 밑그림을 그리는 도시기본계획 승인권이다. 이것을 올 연말부터 특별시나 광역시가 자체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4월부터는 도시기본계획의 하위 계획인 도시관리계획도 수원 등 50만명 이상의 10개 도시는 자체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단 환영할 일이다. 보도대로라면 서울과 6개 광역시는 이제 도시기본계획의 결정을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체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도시기본계획 승인권은 건설교통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이에 목을 매고 있었던 지자체들은 갖가지 묘수를 내어 건교부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입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관·관 접대가 생겨났고 시장이 위원들을 직접 설득하러 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그럴 필요없이 도시계획의 밑그림을 그리고 지역 실정에 맞는 도시계획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마냥 환영하고 있을 상황만도 아닌 것같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도시계획 수준과 철학을 생각할 때 우려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정책은 선출직 단체장의 시정 철학과 표를 의식하지 않는 정책 추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고, 현실은 그런 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단체장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역의 개발 압력과 정치적 고려 없이 도시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할 토대가 문제인 것이다. 도시는 임기 안에 끝내는 대상이 아니며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지방이양이 해답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도시 계획에 관한 한 정부 주도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지방 이양이 성공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특히 도시계획은 자칫 자율성을 강조하다 보면 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일견 그럴싸해 보여도 속으로 곪는 경우가 태반이다. 도시계획의 본질 중의 하나는 방임이 아닌 강제성(anti-laissez-faire)이다. 도시계획은 ‘강제적 공공선(公共善)’이 지상의 목표이고 ‘공공복지적 타협’의 산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공공성 명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왔고 때로는 정치현실주의의 희생양이 돼 왔다. 도시계획의 결정이 지방의회의 견제와 압력 속에 변질되고 왜곡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의회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지만 지나치게 지역구를 의식하거나 지역의 개발 압력에 손을 들면서 도시환경의 보존이나 개발 유보에는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춰볼 때 도시기본계획 승인권 이양을 비롯한 기반시설부담금제의 폐지 등은 정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지방에 많은 권한을 준다는 의미에서는 환영할 만하지만 권한에 따른 책임이나 효율에 따른 환경 파괴 등 도시환경의 본질적 수준을 위협할 우려도 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지방자치의 수준과 자치단체장의 도시철학 및 정책의지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 독립시위 근본 원인

    “상권은 한족에게 빼앗기고, 고유언어는 동화정책으로 시들어가고, 종교적으로도 탄압받고….” 티베트(시짱·西藏)인들이 중국에 강제로 합병된 지 57년이 지난 지금의 티베트인들 모습이다. 이런 상황은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분리 독립 시위가 일어난 배경이기도 하다. 티베트에서 소수민족이자 외지인인 한족들은 근년의 개발 붐을 타고 몰려들었다. 한족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개발 이익을 독차지하면서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중국의 강압적인 동화정책으로 티베트어 사용 인구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티베트어 사용 인구가 5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것도 중국어로의 동화현상을 보여준다. 경제권력도 한족이 쥐고 있다 보니 경제활동 역시 중국어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도시로 진출한 젊은 티베트인들이 배우자를 찾지 못해 한족과 결혼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중국의 티베트 불교 억압정책도 독립 열망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인정하지 않고 티베트 불교와 승려들을 탄압해왔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0) 유혹하는 그림 ‘춘화’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0) 유혹하는 그림 ‘춘화’

    신윤복의 그림 ‘춘화 감상’이다. 그림은 간단하다. 방안이다. 왼쪽 위편에 상이 놓여 있고, 무엇을 담는 그릇인지는 모르지만 그릇 둘이 있고, 아래에는 화로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아마도 요강으로 보이는 물건이 있다. 두 여자가 무언가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왼쪽 여자는 저고리 깃과 고름 곁마기 끝동을 모두 자주색 천으로 댄 삼회장을 갖추어 입고 있으니, 호사스러운 양반가의 여성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저 커다랗게 틀어 올린 구름 같은 가체(큰머리)를 보라. 이런 큰 가체는 여간한 부자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 ●춘화첩 보며 욕망 달래는 소복 입은 과부 왼쪽 여자의 입성에 비해, 오른쪽 여자는 확연히 다르다. 이 여자는 아래 위가 모두 흰옷이다. 저고리 깃도, 옷고름도, 곁마기 끝동도 모두 흰색이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짐작했겠지만, 이 여성은 상중에 있는 과부다. 아마도 남편이 죽었을 것이다. 부모, 시부모가 죽은 사람도 소복을 입기야 하지만, 그 경우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소복을 입은 젊은 여인은 바로 과부일 뿐이다. 두 여자의 앞에 놓인 것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자세히 보면 예사 그림책이 아님을 알 것이다. 사람 둘이 엉켜 있다. 바로 남녀의 성관계를 그린 것이다. 그림은 여러 장으로 만들어져 있고, 한 페이지씩 넘겨보게 되어 있다. 이 그림은 환하게 그려져 있지만, 사실은 어두운 방안이다. 왜냐고? 그림책 앞의 촛불을 보라. 불꽃은 바람에 날려 오른쪽으로 드러눕다시피 하여 꺼질락 말락 하고 있다. 어두운 밤의 방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은밀히 두 여인이 한밤중에 춘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과부라 해서 성욕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과부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춘화첩을 보면서 달래고 있는 것이다. 과부의 억눌린 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문제는 춘화의 존재다. 인간의 성적 욕망 내부에는 포르노그래피를 향한 상상력이 존재한다. 성에 관해서는 그 어떤 치밀한 언어적 표현도 시각적 예술을 넘어설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 고대건 중세건,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성적 상상력을 구체화한 조각과 회화가 존재한다. 오늘날 인터넷에 범람하는 포르노 사이트야말로 인간의 가장 내밀한, 그리고 한없이 복잡하고 한없이 다양한 성적 욕망을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는 무량한 그 형상물이야말로 슬프게도 인간의 리얼리티일 것이다. ●인조 때 중국서 ‘성행위 조각품´ 들어와 그 포르노그래피의 한국에서의 원조가 바로 그림 속 두 여성이 보고 있는 춘화다. 춘화는 중국, 일본, 한국에 모두 있고, 또 서양의 경우는 더 풍부하게 남아 있다. 다만 한국의 춘화는 조선후기에 비로소 생산된 것이다. 박식하기로 이름난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여러 글에서 춘화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일부분을 읽어 보자. 일찍이 북경에서 온 그림책을 보았더니 그 속에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하는 여러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또 진흙상으로 만든 조각을 상자 속에 넣고 기계장치를 조작해 움직이게 한 것도 있었다. 이름을 춘화도라 했는데, 사람의 성욕을 돋우게 한다 하였다. 대개 북경에서 춘화도가 수입되었고, 때로는 조각품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진흙으로 만든 조각품 중에는 인형을 상자 속에 넣고 기계장치를 해서 성행위 장면을 재현하도록 하는 신기한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규경은 이어서 박양한(1677∼?)의 ‘매옹한록’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그런 그림은 춘화라 하고 그런 조각은 춘의(春意)라 한다 하였다. 이규경은 자신은 두견석으로 조각하고 자작나무 갑에 넣은 춘의 조각을 보았는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고 한다. ‘매옹한록’의 기록은 계속된다. 중요한 것이니 직접 읽어 보자. 명나라 말기에 음란한 풍조가 날로 퍼져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혹은 조각으로 만들고 혹은 그림으로 그렸는데, 조각으로 만든 것은 춘의라 하였다. 사신이 와서 바친 예물 중에 상아로 만든 춘의 하나가 있었다. 인조가 승정원에 내렸는데, 상아로 남녀의 면목을 새긴 것으로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면 남녀관계의 동작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으로 모문룡이 우리를 모욕하려고 보낸 것이라 생각했고, 중국사람들이 평소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까마득히 몰랐다. 인조가 마침내 깨부수어 버리라고 명하였다. 이때 조정 신하들 중에 손에 쥐고 감상하는 자가 있었는데, 조정에서 그 일을 비판해 그 사람의 청로(淸路)를 막아버렸다. 우리나라의 곧고 깨끗한 풍속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 기록을 보면 인조 때 처음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조각품이 전해져 상당한 충격을 던졌던 것이다. 또 이 기록을 통해 인조 당시까지는 조선에 전혀 춘화나 춘의가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박양한은 춘의를 만지작거리며 감상한 사람의 벼슬길을 막아버린 것을 두고, 조선이 도덕적인 나라라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이런 향락적 문화는 풍요한 경제력 위에서 가능한 법이다. 박양한 자신이 명나라 말기부터 음풍이 번졌다고 하고 있거니와 사실이 그랬다. 중국에서는 춘화나 춘의가 한나라 이래로 지배층 사이에 유행하였다. 다만 그것이 민간의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진 것은 명대 말기에 와서이다. 명대 말기 상품경제의 발달로 도시문화가 꽃피자 자연히 소비와 향락열이 번졌고, 그 중에서도 특히 성적 욕망이 분출되었으니, 춘의와 춘화는 애당초 경제적 풍요 위에 꽃핀 성적 욕망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조차도 에도막부 이후 도시문화의 발달과 함께 춘화가 서민들에게 널리 유행했다. 화려한 채색 판화(우키요에,浮世繪)로 만든 춘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1719년 제술관으로 통신사행에 끼어 일본에 갔다 온 신유한(1681∼?)은 일본 여행기인 ‘해사동유록(海사東遊錄)’에서 일본의 남자는 품속에 반드시 운우도(雲雨圖)를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성욕을 돕는다고 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 일본의 서점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키요에 춘화일 것이다. ●광통교 다리 위에 걸어놓고 팔던 춘화 이규경은 ‘화동기원변증설(華東妓源辨證說)’이란 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요사이 춘화가 북경에서 들어와 널리 퍼졌다. 사대부들이 많이 돌려가며 보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즉 춘화는 북경에 드나들 수 있는, 또 북경 현지에서 춘화를 구입할 수 있는 세력 있는 양반층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창업(1658∼1721)은 1712년 연행정사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형 김창집을 따라 북경에 다녀와서 기행문 ‘연행일기’를 남긴다. 이 책의 12월23일 조에 춘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날 선비 차림의 한 사람이 그림을 팔러 오는데, 소년과 미인이 성관계를 하는 그림이었다. 서장관 노세하가 더 들추어 보려고 하자 김창업은 춘화 같다고 하면서 말린다. 김창업은 그 사람을 보고 선비냐고 묻고 그렇다고 답하자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어찌 춘화를 가져와 남에게 보이냐고 힐책하자 그 선비는 그림을 싸서 달아나고 만다. 이 일화에서 김창업이 정확하게 춘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김창업은 그야말로 혁혁한 서울의 명문가 안동김씨 집안 사람이다. 형 김창집이 영의정까지 지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런 명문가가 되어야 비로소 북경에서 춘화를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비록 춘화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자신이 춘화를 보지 않았다면 과연 단박에 춘화라고 하는 판단이 나올 수가 있었을까? 이렇게 하여 전해진 춘화는 드디어 조선에서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대부가에서 춘화를 가지는 것은 별반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19세기 중반에 창작된 서울의 풍물을 노래한 ‘한양가’에서는 광통교 다리 위에서 걸어놓고 파는 그림을 잔뜩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춘화가 들어 있으며,‘춘향전’의 한 이본에도 춘향의 방 안을 묘사하면서 춘화를 꼽고 있다. 춘화를 감상하는 것은 18세기 이래 조선의 성풍속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심야(深夜)「프로」 DJ 테이블 엽서더미 사연들은 희한도 한데

    심야(深夜)「프로」 DJ 테이블 엽서더미 사연들은 희한도 한데

    한밤의 전파를 타고 번지는「라디오」의 심야 「팝송」「프로」는 젊은층의 독점「프로」처럼 그 인기는 놀랍다. 그런 탓인지 심야「프로」의 주역인 DJ「테이블」엔 청취자들로부터 신청곡과 함께 별의별 사연이 담긴 엽서가 매일 낙엽처럼 날아들어 쌓이고 쌓인다. MBC의 『별이 빛나는 밤에』(DJ 이종환(李鍾煥)) TBC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DJ 최동욱(崔東旭)), DBS 『0시의 다이얼』(DJ 윤형주(尹亨柱))등 심야 「골든·프로」에 날아든 엽서가운데 「코믹」하고 특이한 내용의 엽서를 골라 살짝 공개해 보면-. -「퀴즈」문제 신혼여행가는 두쌍의 부부가 「하와이」행 배를 탔대요. 그런데 고놈의 배가 고래와 부딪쳐서 파산당했대요. (에고 불쌍해라) 휴대용 「튜브」를 펴서 간신히 어느 무인도에 상륙하게 되었대요. (준비성이 심하죠)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두 부부사이에는 17세된 딸들을 슬하에 두게 됐는데 두집 엄마가 동시에 죽어버렸대요. 하루 아침에 고아 둘과 홀아비들이 생겼어요. 생각다 못해 상대편딸을 재취로 맞아들였대요. 양 집에서 동시에 아들을 낳았대요. 이 두아들들은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답」= ○○아, 나는 너의 외삼촌이야, 아냐 내가 너의 외삼촌이야. 생각이 안나면 도표로 그려 보셔요. -「퀴즈」문제 달밝은 밤, 마루 밑에서 쥐한마리가 뭐를 질근질근 씹고 있었다. 그 쥐는 무엇을 씹고 있었을까? ▶「답」= 「검」좋아하네. 고독을 씹고 있었지. 쥐라고 어디 고독을 못씹나. -「퀴즈」문제 흰 양복이랄까, 「가운」을 입은 남자가 「알루미늄」으로된 「복스」를 들고 흰건물의 3층에있는 맨 끝방 앞에 아주 정중히 가선 말예요. 「노크」를 똑똑하면서 한말이 뭔지 아시겠어요. ▶「답」= 자장면 가져왔읍니다. 문제의 흰 「가운」의 사나이는 바로 중국집 「보이」였어요. 그럼 안녕. 하루종일 비가 내려서 그런지 참 기분이 그럴수 없어요. 「곰」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둘이서 강의를 빼먹고 하숙방에서 뒹굴며 미래의 애인생각에 마냥 젖어 있었읍니다. 이렇게 하숙방에서 지내려면 「라디오」란 존재가 굉장한 위치를 차지한답니다. 오늘은 「퀴즈」문제가 많이 나오는데요. 저희도 한번 「퀴즈」문제 하나 내어 볼까요. 세계각국대표 30명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어요. 그런데 배가 파산이 되려고해서 SOS를 쳤는데 정원27명인 배가 왔어요. 결국 3명은 죽어야된다는 얘기죠. 그러자 미국사람 영국사람이 만세를 부르며 바다에 뛰어들어갔어요. 조금 있다가 한국사람이 대한민국만세를 부르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요. ▶「답」= 옆에있는 일본인을 번쩍들어 물속으로 던졌다는 거예요. -「퀴즈」문제 나무에 새 세 마리가 가지런히 앉아있었읍니다. 사냥꾼이 총을 겨누니까 두 마리는 재빨리 날아갔는데 한 마리는 그대로 버티고 있었읍니다. 왜 그랬을까요? ▶「답」= 순 깡이죠 뭐-. -「퀴즈」문제 전선주에 새 50마리가 앉아 있었는데요. 포수가 오자 모두 다 날아 가버리고 한 마리만 계속 버티고 있었죠. 포수가 한방 갈겨 그 새를 떨어뜨렸는데요. 그 새는 떨어지면서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답」= 야, 그 친구 참 명 포수로군-. 재미있는 「퀴즈」문제들을 많이 보내오기도하지만 그보다 엽서들은 그들 나름대로 읊은 시나 유명인의 시를 옮긴 것들이 대부분. 다음은 여고생인 탓인지 내용이 꽤 감상적. 시가 있고 협박이 있고 시사논설까지도 -제목= 생각하면 임을 생각하면/임은 멀어지고/그리움을 생각하면/임은 다가온다. 청춘을 생각하면/청춘은 멀어지고/아름다움을 생각하면/청춘은 다가온다. 꿈을 그리워하면/꿈은 멀어지고/재회를 그리워하면/꿈은 꾸어지니라. -그렇게/홀로 태어나/열여덟 계단을 뛰어오른/숨 가쁜 의식속에서/온통 가슴을 꿈으로 채우고는/그 꿈을 현실인양/ 지껄이며 살아가는/모순 투성이 도시 계집아이. 자기만을 알며/자기만을 사랑하고/자기만을 위해 살자는/「에고이스트」그 이름…. -밤이 깊었읍니다. 친구와 종일 방황했읍니다. 다방, 빵집, 극장도 기웃거려보고 명동에도 나가 보았읍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수로 가슴을 채우고 피곤으로 맥을 잃었읍니다. 이제 남은건 공허한 마음뿐이군요. 사춘기탓일까요. 이런 여심(女心)이 부탁하는 노래한곡….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내 마음은 울고있다.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그녀의 얼굴. 바람센 오늘은 더욱더 그리워. 내마음은 온종일 울고있으니, 오오! 숙이 너는 어디서 지조없게 바람을 피우고있는지. 엽서중엔 괴상한 사진을 붙여서 보내온것도. -그림(여자가 한손에 담배를 들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어요. 난 이런 여자가 되면 어떻게 할까. 만일 내가 담배를 피운다면 나머지 한손에는 담배피우는 죄로 책을 들고 있겠어요-. 한편에서는 신청곡 틀어 주지않는다고 DJ에게 은근한 협박조도 수두룩. -「별밤」에 보낸 엽서로 하숙비가 축날정도요. 꼭 좀 신청곡들려주쇼. 이번에도 안틀어주면 소각해도 좋지만, 그러나 사나이는 엉엉울거요. 그런가하면 슬쩍 전파를 통해 사연을 전하기도. -밤에 「멜로디」를 들으면 고향생각, 집생각, 무척나죠. 햇병아리 육군 ○○○씨, 집생각 애인생각, 막걸리 생각말고 40일의 훈련을 열심히 받고 씩씩한 군인이 되길 빌며 한 곡조-. 이런것들과는 달리, 엽서가운데는 시사성이 있는것도 적지않다. 「마나슬루」를 오르던 김기섭 선배의 비보에 접했읍니다. 비록 만나 본일도, 대화를 나눠본일도 없는 그였건만 우리 백만산악인을 대표하여, 억겁의 신비에 싸인 「히말라야」에 도전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무척 친근미를 느꼈읍니다. 천길의 암벽에서 한「자일」에 서로의 몸을 묶은채 호흡하고 미소짓는 나의 동료 이상으로 말입니다. 산을 사랑해서 산에서 살다 산에묻힌 김기섭 선배의 영전에 삼가명복을. [선데이서울 71년 6월 20일호 제4권 24호 통권 제 141호]
  • [도시재생 업그레이드](상)재개발 등 문제점과 개선 방향

    [도시재생 업그레이드](상)재개발 등 문제점과 개선 방향

    주택정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새 정부는 자연을 훼손하고 아파트를 짓는 기존 택지개발사업을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 대신 기존 도심의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도시 재생(再生)을 통해 주택 공급을 늘리고 도시 주거환경도 개선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주택시장의 화두로 떠오른 도시 재생사업의 바람직한 추진 방안을 3회에 나눠 싣는다. 도시재생사업은 주거환경이 나쁜 기존 낡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어 쾌적한 삶의 공간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주거환경개선사업, 재개발·재건축,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이 해당한다. 그동안 도시재생사업은 민간이 주축을 이뤘다. 도시 주거환경 개선과 주택공급 확대에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간 중심의 도시 재생사업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비리 복마전’으로도 불린다. 일부 사업지구에서 부정과 비리로 얼룩져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조합과 시공사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일반 분양 아파트에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주민 이해관계가 달라 갈등도 끊이지 않는다. 사업이 10년 이상 걸리는 것도 다반사다. ●행정관청도 인·허가와 공사편의 대가 수뢰 재개발·재건축 비리는 사업비 증가를 가져와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소비자들이 뒤집어 쓰고 있다. 비리 연결 고리는 조합과 컨설팅 업체, 시공사, 행정관청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조합은 조합원을 대리해 많게는 수천억원이나 수조원이 넘는 사업을 움직인다. 서울 강남 아파트는 중소형 아파트라도 10억원 가까이 된다.1000가구를 짓는 지구에서는 사업 규모가 1조원이 된다. 반면 견제장치는 허술한 편이다. 조합 간부들이 불법·탈법 유혹에 노출돼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대부분의 조합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컨설팅사나 대형 시공사가 볼 때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며 “시행자가 되레 컨설팅사와 시공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시공사의 입맛대로 조합을 운영해 주고 받는 반대급부는 ‘운영자금’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재건축 조합은 시공사가 수억원의 비자금을 챙길 수 있도록 편의를 주는 대신 뒷돈을 받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의 다른 재건축 조합장은 특정 업체에 철거공사를 밀어 주고 금품을 받기도 했다. 경기 광주시에서는 재건축 관련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치인이 구속되기도 했다. ●조합·건설팅사·시공사, 비리 ‘한통속´ 조합·건설사간 비리 고리 연결책은 컨설팅사가 맡는 경우가 많다. 조합이 사업의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법률 등을 잘 모르는 약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국에 100여개의 컨설팅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 일부 컨설팅사들은 조합원의 이익보다는 조합 집행부·시공사의 입맛에 맞게 일을 몰고 간다. 건설사를 대신해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대리전을 치르는 경우도 흔하다. 시공사도 한통속이다. 건축비를 부풀려 분양가를 올리거나 하도급 과정에서 비자금을 마련한다. 비자금은 각종 인·허가와 공사편의를 봐주는 이곳저곳 행정관청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조합 간부들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한 기름칠로도 사용한다. 사업에 시비를 걸거나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별도 입막음으로도 사용된다. 재건축 사업감독권은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쥐고 있지만 형식적인 감독으로 조합과 컨설팅사, 시공사의 비리를 키우는 꼴이다. 적지 않은 지자체는 조합과 업체가 짜맞춰 신고한 분양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승인해 주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도시재생사업을 활성화시키려면 모든 사업 과정의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고 공공기관의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 공공기관의 참여 확대가 민간 부문 사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대 논리도 따른다. 그러나 민간 부문의 사업이 제한받지는 않는다. 공공부문이 광역 도시재생 큰 그림을 그리고 민간 업체는 시공을 맡으면 된다. 민간 부문의 역할 축소라기보다는 상호 역할 분담이 되는 셈이다. 공공기관이 전문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조합을 대신해 사업을 추진하면 필요한 자금의 원활한 조달과 책임있는 사업 추진도 가능하다.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은 “도시재생사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선 주택공사나 감정원, 도시개발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공공기관 참여 장점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비리가 생길 수 있는 것은 사업의 모든 과정이 유리알처럼 깨끗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4일 현재 서울에만 300여곳의 재개발·재건축 단지가 있다. 사업을 민간에만 맡긴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공공기관을 적극 참여시켜야 하는 이유다. 공공기관이 참여하면 사업 과정이 투명해져 폭력, 뇌물 등의 재개발 비리를 줄일 수 있다. 조합원 갈등도 줄여 사업 추진도 활발해진다. 공사비 부풀리기나 자격 없는 조합원 끼워 넣기, 상가 분양 비리 등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도 있다. 재개발 컨설팅업체들의 ‘장난’도 막을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추진된 곳은 삶의 질이 향상되지만 주변 주거 환경은 오히려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 사업 이익이 조합과 시공사에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참여하면 대규모 단지로 묶어 개발할 수 있다. 도시기반시설과 편익시설이 잘 갖춰지는 미니 신도시급 조성이 가능하다. 조합과 시공사에만 돌아갔던 개발 이익을 지역 발전에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공기관의 도시재생사업 참여 확대는 서민주거안정을 가져오고 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종합적·체계적인 도시재생사업을 벌여 도시 균형 발전과 도시 경쟁력을 가져올 수도 있다. 기존 소규모 도시재정비 사업은 도시 전체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고밀화를 가져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작은 단위로 쪼개 시행되다 보니 공공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이 참여하면 주변 지역과 연계해 계획적이고 충분한 기반시설을 먼저 설치함으로써 개별사업을 촉진·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지구별 비용 분담·분쟁을 조정해 사업 추진을 원활하게 추진, 조기에 마무리짓는 순기능도 있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개발이익 수혜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따지고 공공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주공의 주거환경개선사업 도시재생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공공기관으로 주택공사를 꼽을 수 있다. 주공이 참여하는 재생사업은 주거환경개선사업, 재개발·재건축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다양하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대부분 주민 스스로 조합을 구성해 시행하는 현지개량방식으로 추진된다. 대규모 재개발사업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 도로를 내거나 일부 편익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그러다 보니 재정부족, 주민 참여 의지 약화로 추진 실적은 지지부진하다. 사업성이 떨어져 민간 업체는 참여하지 않는다. 주공은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비수익사업으로 참여하고 있다.12개 시범지구를 선정, 국고를 지원하고 있다. 인천 가정오거리(97만 2000㎡), 서울 금천구(86만 8000㎡)에서는 광역재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 범일, 서울 마포·가리봉 일대의 도시환경정비사업도 맡고 있다. 주공은 대전·성남·부천시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열악한 환경에 놓인 구 도심을 광역·체계적으로 개발하는 재정비촉진지구 사업의 총괄사업관리 협약을 맺었다. 갈등과 분쟁을 막고 사업을 투명하고 신속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지자체들이 주공을 사업 파트너로 고르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주공은 이들 지역에서 사업을 벌이기 전에 주민들이 이주할 집을 먼저 짓고 있다. 판교·도촌지구에 짓고 있는 임대주택 4200여가구에 성남시를 비롯해 수도권 재개발 사업 추진과정에서 생기는 세입자와 주민들을 임시 수용할 계획이다. 세입자 보호와 주민 정착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적극 참여하기에는 걸림돌도 적지 않다. 원칙대로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일부 조합 간부들이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일부러 민간 추진 방식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고 컨설팅사나 민간 업체가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불바다 장관… 제주 들불축제 21일 팡파르

    불타는 오름, 제주의 겨울 축제 백미인 ‘2008 제주 들불축제’가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열린다. 불(火)과 오름(岳), 달(月), 말(馬)을 소재로 한 이 축제에서 10만㎡의 새별오름에 일시에 불을 놓아 ‘불바다 오름’이라는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들불축제는 말과 소를 방목하던 옛날 선인들이 초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 구제를 위해 들불을 놓던 것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축제화한 것. 첫째 날에는 풍년기원제에 이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마을 풍물놀이팀 31개팀 2000여명이 출연하는 길트기 공연, 관광객들이 참가하는 달집만들기 경연대회와 소원기원 횃불 대행진 등이 펼쳐진다. 둘째날에는 초가지붕을 이을 때 쓰는 집줄놓기 경연, 몽골인들의 마상마예공연, 극단 ‘갯돌’의 북춤 공연, 국제 자매도시와 국내 자매도시의 축하공연이 마련된다. 축제 마지막날에는 들불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지름 7m의 대형 달집 태우기, 오름정상의 화산분출쇼, 오름불 놓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부대 행사로 돌하르방과 해녀, 축제 캐릭터인 ‘부리부리’, 무자년을 상징하는 쥐 캐릭터 등에 감귤을 붙인 감귤 포토존과 세계 다문화 체험코너가 운영되고 감자·고구마 구워 먹기 마당, 소원기원 돌탑 쌓기, 사랑의 역마차 운영 등이 다양하게 마련된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코튼 로드/에릭 오르세나 지음

    우선 일러둬야겠다. 황금가지가 펴낸 ‘코튼 로드’(에릭 오르세나 지음, 양영란 옮김)는 제목으로 내용을 넘겨짚지 말아야 할 책이다. 부지런한 독서가들이 오히려 목화의 문화사쯤으로 오해하기 좋은 표제이다. 하지만 책은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이 ‘세계화’의 진행과정과 지구촌 역학관계를 고찰한 일종의 테마 여행기이다. 책의 화두는 일상용어가 돼버린 ‘세계화’에 고정돼 있다. 전 세계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세계화를 놓고 과연 그것에 의문없이 일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되짚는 탐색기인 셈이다. 그 주제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 무척 새롭다. 지은이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로 잘 알려진 프랑스학술원의 대표주자. 문학가이자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세계화의 허실을 따져 보는 작업에서 부표로 삼은 것은 목화밭이다. 지구촌의 대표적 목화 재배국으로 꼽히는 6개 나라를 집중조명하며 목화를 둘러싼 세계가 어떤 역학논리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프랑스의 기업 CMDT가 목화에 관한 모든 것의 실권을 쥐고 있는 아프리카 말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추수를 한 날 저녁이면 시골에서는 당나귀들이 끄는, 수도 없이 많은 짐수레들을 만나게 된다.(…)이윽고 하얀 꽃 더미 위로 밤이 내려앉는다.” 어깨힘을 빼고 여행 수필처럼 써내려간 글에, 세계화를 둘러싸고 국가들이 벌이는 치열한 잇속 경쟁 등을 포착해 넣는다. 그런 아이디어가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매력이다. 부드러움의 상징, 목화의 이면에 발톱을 숨긴 세계화의 그늘은 서늘하다. 가난을 벗으려 온 나라가 통째로 목화 생산에 매달리다시피 하는 말리에서는 지금 거대목화 기업인 CMDT가 민영화의 기로에 서 있다. 기업의 부패와 목화시세 폭락으로 적자가 늘자 대주주인 말리 정부의 재정적자도 급등해 세계은행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정을 현장고발한다. 외국(프랑스)자본 덕분에 목화 생산국으로 성장은 했으되 면직산업의 기반은 전무한 말리의 사정은 그대로 ‘세계화’의 미명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인 것이다. 반미·반자본적 시각을 견지한 저자는 또 세계 최대 목화대국 미국을 겨냥했다. 전체 인구의 고작 2%가 목화생산에 참여해 세계 목화 수출액의 40%를 차지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도 왜 정작 목화를 생산하는 그 나라의 농민들은 부자가 아닐까. 역시 목화대국으로 꼽히는 브라질 노동자들은 왜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다리품을 팔아 현장을 탐색한 지은이는 느낀 대로 물음표를 찍고 그곳에서 듣고 본 내용을 신랄히 지면에 옮겼다. 로비스트와 국회의원이 결탁해 유전자 변형 목화를 만들어 내는 현장의 주체가 돼버린 미국의 목화 농가도 정책의 피해자이기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식물 유전학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닐 스튜어트 교수와의 대화를 소개하며 이런 사정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뒤늦게 목화시장에 뛰어들어 갖은 방법을 동원해 목화대국을 노리는 브라질, 품질은 최고로 통하면서도 오랫동안 목화생산이 주춤할 수밖에 없었던 이집트, 사회주의를 벗어나 목화산업에 명운을 걸고도 여전히 허덕이는 우즈베키스탄, 도시(다탕) 전체가 면양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국. 노동 경쟁력 하나를 무기삼아 세계 면직산업계를 위협하는 중국의 가족중심 노동체계는 그 자체로 지은이의 눈에 경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계 6개국 목화밭에 주목한 지은이의 시선은 그러나 단정적이지 않다. 관계자 인터뷰, 통계수치 등 현장답사의 자료는 정확하고 풍성하지만 세계화의 허실에 대한 일방적 진단은 끝까지 유보했다.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의문부호를 넘긴다. 세계화라는 이름의 심판 없는 게임에서 당신은, 당신의 나라는 지금 승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리소문 없이 승기를 뺏기고 있는가.1만 3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분양시장에 훈풍 불까

    아파트 분양 시장이 살아날까. 주택 공급 규제가 풀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아파트 분양 시장에 숨통이 트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분양 적체로 고심하는 건설업체들은 벌써부터 분양 시장에 훈풍이 불어올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망은 다르다. 군불(규제완화)이 아파트 분양 시장을 따뜻하게 하는데 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지방 도시의 투기과열지구·투기지구 해제 방침을 내놨지만 이 정도로는 꽁꽁 얼어붙은 분양 시장을 녹이는 데 한계가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분양 시장이 쉽게 살아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투기과열지구나 투기지구 해제에 따른 반짝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분양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지방 도시의 투기과열지구를 풀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투기지역도 아파트가 대량 공급되고 있는 천안, 아산, 울산을 빼고는 풀렸다. 수도권까지 규제완화가 풀리면 청약시장에 훈풍이 불겠지만 투기가 우려돼 정부가 극약처방은 내놓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수요 감소도 분양 시장 침체를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 실수요자 위주의 청약만으로는 분양 시장을 달구는 데 한계가 따른다.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 청약제도 기조가 변하지 않는 한 아파트 분양시장의 훈풍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태호 부동산랜드 사장은 8일 “주택 공급이 늘면서 무주택자가 줄어 실수요자 위주의 청약만으로는 꽁꽁 얼어붙은 분양시장을 녹이지 못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공급 과잉도 원인이다. 투자 수요는 물론 실수요자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어서 지방 도시마다 쌓여 있는 미분양 물량과 추가 공급분을 소화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좁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지역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지방 미분양 아파트 소진은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완화 약속도 당장 이뤄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출 규제·금리 인상도 신규 청약 걸림돌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양도세와 종부세 완화 방안이 나와야 시장이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청약제도는 손을 대면서도 대출 규제는 여전히 쥐겠다는 정책 또한 투자 수요를 억제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체들의 고분양가 고집도 수요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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