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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외 흡연실은 투명 재질로 만드세요

    야외 흡연실은 투명 재질로 만드세요

    서울 영등포구는 전국 처음으로 금연 케어부스(야외흡연실) 설치 기준을 마련했다고 7일 밝혔다. 간접 흡연 피해를 줄이되 흡연권도 존중하며 금연을 계도하기 위해 흡연실 용도의 가설 건축물 축조 신고에 대한 내부 처리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올해 흡연 규제를 확대한 국민건강증진법 전면 시행과 함께 금연 시설로 지정된 연면적 1000㎡ 이상 사무용·공장 및 복합용도 건축물은 흡연 공간용으로 별도 건물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증축이 쉽지 않고, 건축법상 가설 건축물 설치 근거 또한 명확하지 않아 건물주가 임의로 설치하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구는 관련 법 개정 전까지 이러한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 현행 규정 범위 안에서 금연 건물의 조기 정착을 홍보하는 기능까지 곁들인 기준을 마련했다. 기준에 따르면 흡연 공간은 금연 건물 대지, 또는 옥상에 지을 수 있다. 내부에는 흡연을 줄일 수 있는 문구를 써 붙이고 금연 홍보 자료를 비치해야 한다. 특히 내부가 들여다보이도록 지어야 한다. 또 유리 등 투명재질을 바닥면 기준 1.2m 높이 이상, 벽 면적 3분의2 이상을 활용해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고 보행자의 간접 흡연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조길형 구청장은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를 배려했다”며 “야외흡연실 기능을 금연 홍보 공간으로 재해석해 금연 정책을 적극 알릴 매개체도 마련한 셈”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망우3동 ‘무서웠던 그 길’… 걷고 싶은 꽃길로

    망우3동 ‘무서웠던 그 길’… 걷고 싶은 꽃길로

    중랑구 망우3동 주민자치위원회가 ‘꽃피는 서울상’을 받았다고 7일 밝혔다. 서울시가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녹화사업 우수사례를 선정하는 콘테스트다. 망우3동이 사업에 관심을 기울인 까닭은 지역에 혜원여고, 혜원여중, 면일초교 등 학교가 몰린 데다 오래된 골목길 탓에 어둡고 낡은 이미지를 짙게 풍겨서다. 안전한 등·하굣길을 확보하고 지역 이미지를 밝게 재단장해야 했다. 이에 따라 동은 학교 주변 환경개선과 도시미관 향상을 위해 각 지역 상황에 맞게 ‘상상문화거리 나무 돌보미 사업’ ‘면일초등학교 담장벽화사업’ ‘꽃동산 공원 녹화거리 조성사업’ ‘무단투기 방지 골목길 벽화 사업’ 등을 벌였다. 삭막하고 인적이 드문 길을 화사하고 북적대는 길로 바꾸기 위해서다. 특히 면일초교 담장벽화와 이어지는 꽃동산 어린이공원 녹화사업은 길이 350m에 미장, 색칠 등을 하려고 주민들이 총출동하기도 했다. 문병권 구청장은 “비가 내려도, 햇살이 따가운 날에도 그림을 그리고 꽃을 심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라면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웃 사이에 끈끈한 정이 샘솟아 훈훈한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깔끔해졌다 했더니… 이웃사랑 실천까지 하네

    깔끔해졌다 했더니… 이웃사랑 실천까지 하네

    강서구는 주택가 골목에 난립한 의류수거함을 정비해 규격과 디자인을 통일한 수거함 900여개를 새롭게 제작해 설치했다고 6일 밝혔다. 옷을 모아 재활용하자는 수거함은 관리 사각지대에 불법 설치되는 사례가 늘면서 주택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구는 지난 5개월간 불법설치 수거함 1700여개를 철거했다. 구 관계자는 “수거함 주변이 무단투기 장소로 변질돼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운영 주체뿐만 아니라 규격, 디자인도 제각각이어서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수거함 관리는 공개모집과 적격심사를 거쳐 선정된 ‘강서구의류자원순환협회’가 맡는다. 협회는 관내 13개 장애인단체와 9개 보훈단체로 구성된 연합단체로, 구 의료수거함 관리협약에 따라 향후 2년간 수거함을 운영한다. 특히 협회는 수익금 중 일부를 매년 불우이웃돕기, 장학금 지급 등 공익목적에 환원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예정이다. 구는 수거함의 난립을 막기 위해 800~1000개 범위 내로 수거함 총수를 제한하기로 했다. 또 수거함마다 일련번호를 매겨 관리대장을 만들고 모든 수거함을 등록관리제로 운영할 방침이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하)

    ●모래 위의 욕망 ‘한강의 기적’이란 이름으로…여의도보다 컸던 밤섬 희생되다 “한강개발계획을 세워라. 첫째,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서 가능한 한 많은 택지를 조성한다. 둘째, 여의도와 마포·영등포를 연결하는 교량을 가설한다. 셋째,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제방도로를 연차적으로 축조함으로써 한강 홍수를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한다.”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여의도 건설을 주축으로 하는 한강개발 3개년계획이라는 것에 착안한 것은 1967년 8월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3월에 기공한 한강연안도로(강변도로)가 모습을 드러내자 재미있는 현상이 김 시장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새로 생기는 도로와 기존 제방 사이에 새로운 택지가 조성됐는데 제방을 종전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결과였다. 여의도를 개발하면 엄청난 택지가 생기고 그것을 판 수익금으로 그동안 구상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김현옥의 머리를 스쳤다. 같은 해 9월 서울시는 한강개발 3개년계획을 수립했다. 주무부서인 건설부와의 협의를 통해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에 샛강을 두되 소양강댐이 완공되면 폐쇄해 택지를 더 조성하고, 홍수방지 차원에서 한강 본류의 폭을 1300m로 유지하는 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여의도의 총면적은 127만평에서 샛강 면적 등 40만평을 뺀 87만평으로 확정됐다. 여의도 방죽(윤중제)의 높이는 15.5m, 제방 너비는 21m이며, 제방 안에 조성되는 택지는 강바닥에서 13m 높이로 정했다. 총 둘레는 7.6㎞였다. ‘여의도의 몇 배’라는 대한민국 면적의 기준치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한강 폭을 1300m로 한다는 건설부와 서울시의 합의는 참으로 교묘했다. 여의도를 개발하되 강물의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밤섬을 없애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방을 쌓으려면 엄청난 골재가 필요한 마당에 코앞 밤섬 폭파로 골재를 얻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당시 밤섬의 면적은 1만 7393평으로 지금의 40배 크기였다. 어마어마한 골재가 채취됐다. 밤톨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은 밤섬(栗島)에는 78가구 44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 초기부터 17대를 살아온 마(馬), 판(判), 석(石), 인(印), 선(宣)씨 등 5개 희성 씨의 집성촌이었다. 이들은 토지보상비 838만원과 건물보상비 702만원을 지급받고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의 대지 1000평 연립주택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이곳을 ‘밤섬 마을’이라고 불렀다. 밤섬은 고려시대 유배지였으며 주민들은 길이 18m짜리 장도릿배와 15m짜리 조깃배, 12m짜리 늘배 등을 만드는 배 목수 일을 주로 했다. ‘배 제작술을 배우려면 밤섬으로 가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여의도에 제방을 쌓고 땅을 다지느라 한때 여의도보다 더 컸던 섬이 무참히 희생됐다. 밤섬은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폭파돼 시야에서 사라졌다. 방죽을 쌓는 와중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10만평의 부지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여의도 입주신청 1호였다. 종묘 앞과 남산 등지를 전전하며 터를 구하지 못한 국회가 ‘신천지’ 여의도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신문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66년이었고 1968년 서울인구는 400만명에 이르렀다. 비록 1인당 국민소득은 123달러,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8층(소공동 반도호텔), 차량대수는 2만 5000대(승용차 1만대)에 불과했지만 모든 것이 광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서울의 교통난, 주택난, 급수난을 해결할 요술방망이가 필요했다.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10일 만에 제방 축조공사가 끝났다. 기적에 가까운 초스피드 공사였다. 홍수가 오기 전 완공이 유일한 목표였고, 생태나 환경은 돌볼 틈이 없었다. 개발연대기의 원초적 불행이었다. 여의도라는 섬은 사실상의 육지가 됐다. 지금 국회가 들어앉은 양말산(羊馬山)은 높이 190m로 양이나 말을 기르던 목축장이었는데 이때 완파돼 평평해졌다. ●모래 위의 도시 차는 지상·보행은 위층… 초현대적 입체도시 꿈꾸었던 여의도 새로 탄생한 하중도시(河中都市) 여의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1959년) 당선자이며, 워커힐호텔(1962년), 세운상가(1966년), 청계고가(1967년) 계획과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김수근이 또 등장한다. 김수근은 김종필 국무총리, 김현옥 서울시장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건설기술종합 용역업체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라는 국영기업체의 부사장을 거쳐 사장으로 재직했다. 건축사무소는 문을 닫고 ‘공간’이라는 건축잡지만 발행했다. ‘문학청년’ 김현옥은 김수근에게 초현대적이며 후세에 길이 남을 예술적 설계를 요구했다. 국회에 이어 사법부와 서울시청이 입주해 여의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2의 서울’을 건설한다는 포부였다. 10층 이상의 스카이라인에, 자동차는 지상으로, 보행자는 2층으로 다니는, 지하도나 육교가 없는 초현대적 입체도시를 꾸미겠다고 발표했다.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위한 전제와 가설’(공간 1969년 4월호)과 서울시에 제출한 ‘여의도 및 한강연안 개발계획’ 등을 종합해 보면 이 계획을 완성하는 데는 무려 20년이 걸리며 107억원의 서울시 선행투자와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민간투자가 필요했다. 1968년 당시 서울시의 일반회계 세입은 138억원이었고, 한강개발특별회계의 세입결산액은 11억원이었다. 서울시 재정상황은 직원 봉급주기도 빠듯한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실현불가능한 장밋빛 청사진이었고 실패한 도시계획의 전형이었다. 김수근의 여의도개발계획은 일제강점기 ‘백화점 왕’ 박흥식이 해방 후 재기를 노리며 세웠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과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둘 다 천재였고, ‘강남시대’를 예견한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모래 위의 광장 ‘비상용 활주로’ 5·16 광장… 거대한 집회장소 기억 남기다 ‘밤섬의 저주’였나. 밤섬 폭파 후 2년여 흐른 1970년 4월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죽고, 39명이 다쳤다. 공교롭게도 밤섬에서 강제이주한 주민들이 사는 밤섬 마을 바로 옆에서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건설은 나의 종교’를 외치던 김현옥은 물러났다. 같은 해 10월 여의도 한가운데에 12만평 규모의 ‘텅 빈’ 대광장을 만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여의도계획에 잡혀 있는 상업·업무지구를 동서로 나누라는 허탈한 지시였다. 여의도 입체도시 건설의 꿈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5·16광장’ 건설로 여의도 계획은 뿌리째 뒤틀렸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1971년 8월 서울시는 서울시청사를 1976년까지 여의도에 건립하며, 여의도 전역을 미관지구로 지정하고, 통행금지 해제지역으로 지정하며, 여의도를 통과하는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여의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김수근보다 더 허황했지만 불가피했다. 투입 예산은 50여억원인데 수입은 국회 제공 부지 10만평을 평당 1만원에 판 10억원이 전부였다. 대법원지구로 예정된 땅 전부와 시청이 들어설 땅 절반에 시범아파트를 지어 팔기로 했다. 후임 양택식 시장을 비롯한 시 간부들이 거리로 나서서 시범아파트를 선전하는 홍보전단을 돌렸다. 분양이 쉽지 않았다. 서울시민들은 110일 만에 급조한 여의도 제방의 안전이 미덥지 못했고 모래섬 위에 사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를 내세운 시범아파트가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영아파트도 따라 들어섰고 택지도 덩달아 팔려나갔다. 서울시청 건설예정부지였던 지금의 산업은행 자리도 팔았다. 국회와 방송 3사, 증권거래소 입지가 결정적이었다. 서울시는 투자한 54억원을 뽑고 30억원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여의도는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도시를 포기한 대가로 빈사상태의 서울시 재정난을 회생시켰다. 이 중 10억원이 지하철 건설비로 계상됨으로써 지하철 건설의 역사가 돛을 올렸다. 후에 드러난 일이지만 박 대통령이 의도한 여의도광장 조성은 전시 비상용 활주로 용도였다. 여의도는 1916년 간이비행장이 생긴 이래 1961년 김포공항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의 국제관문이었다. 공군의 발상지였으며 1971년 성남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공군 K16 비행장이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서울 침입,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 등 안보위기가 겹치면서 여의도는 예상치 못한 운명을 맞았다. 같은 해 북악스카이웨이가 개통되고, 다음 해 서울시민 3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용 남산1, 2터널이 굴착되는 등 이때부터 일련의 남북체제 대결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971년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TV중계를 통해 처음 선보인 여의도와 여의도 광장의 엄청난 규모에 온 국민은 놀랐다. 이후 반공궐기대회와 대통령 유세, 취임식 등이 광장의 주요 용도였다. 1973년 닷새 동안 200만명이 모인 빌리 그레이엄목사 서울전도대회를 시작으로 국풍, 이산가족 찾기, 부처님 오신 날, 천주교 200주년 행사 등이 잇따르면서 매번 집회 참가인원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 텅 빈 광장은 소통의 광장이 아니라 ‘아고라포비아’(Agorafobia·광장공포증)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따랐다. 1999년 조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이 100억원을 들여 광장을 시민공원으로 바꿨다. 여의도와 여의도광장은 한국 현대사의 영욕이 담긴 기억저장소이다. joo@seoul.co.kr
  • [의정 포커스] 정형기 마포구 의장

    [의정 포커스] 정형기 마포구 의장

    “현장에서 주민들이 진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읽어내 제대로 해결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래서 서민숙원 사업을 잘 해결했다는 게 가장 뿌듯한 기억이 아닐까 합니다.” 24일 정형기 서울 마포구의회 의장은 임기 중 겪은 일을 이렇게 되돌아봤다. 정 의장의 아침 일과는 지역구 순례다. 일찌감치 일어나 대흥동, 염리동을 산책하면서 주민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주의 깊게 듣고 다닌다.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이런 일상의 결과물이다. 그는 “어느 날 지역을 도는데 ‘물가는 오르고 가게 영업은 어려운데 위법 건축물로 등록돼 있어 이행강제금을 낼 판’이라는 하소연을 들었다”면서 “그 얘기를 듣고 특별조치법이 다시 한번 제정돼야 한다고 마포구를 통해 끊임없이 서울시와 국토해양부를 설득해 마침내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특정건축물이란 사용승인을 받지 못한 무허가건물, 일단 승인은 받았으나 이후 증축이나 용도변경으로 인한 승인을 다시 얻지 못한 건물을 말한다. 이런 건물들은 영업시설로 등록도 안 되고, 관리를 위한 보수공사도 안 된다. 거기다 적법하게 고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더러는 고의로 이렇게 하기도 하지만, 서민들이 생활터전을 잡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별조치법은 이를 양성화하는 장치다. 정 의장은 도시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법을 엄격히 지키기보다는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되도록이면 양성화해 주자는 쪽이다. 정 의장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도 고맙다고 손잡아 주는 동네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구의원의 의정활동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어 뿌듯해진다”며 웃었다. 정 의장이 또 보람으로 여기는 것은 세입을 늘린 것이다. 복지 등 여타 사업을 위해서라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지방세와 세외수입 체납액 433억 8300만원의 징수율을 11%에서 15%로 끌어올리도록 마포구에 제안했다. 이에 따라 조성되는 10억원은 공공근로사업, 경로당 확충, 노인복지 증진 사업에 쓰자는 것이다. 마포구가 제안을 받아들여 현재 진행 중이다. 정 의장은 “의회가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 못잖게 구민 복지 증진을 위해 사업 확대가 필요한 부분에는 집행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 “어느 의회보다 열린 의회를 지향하는 만큼 구민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경기 공사중단 공동주택 7655가구

    경기도에서 착공 뒤 2년 이상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방치된 공동주택 신축현장이 31곳 7000가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가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심재철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년 이상 공사가 중단된 미준공 공동주택단지는 용인 10곳, 화성 4곳, 김포·광주·남양주·포천·안성 각각 2곳 등 모두 31곳 7655가구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5곳이 시공사 부도로 공사가 중단돼 언제 완공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중 안산 우림연립단지 80가구는 1992년 8월 착공했으나 시공사 부도로 20년 넘도록 방치되고 있다. 가구 규모가 가장 큰 파주 극동스타클래스아파트 1006가구는 2010년 6월 착공 뒤 주택경기 침체로 지금까지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또 430가구인 용인 에이스아파트는 1996년 2월 착공했으나 시공사 부도로 언제 준공될지 알 수 없으며 1094가구 규모의 성복2차 e-편한세상은 2007년 6월 착공해 지난 6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소송에 휘말려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심 의원은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는 도시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우범장소로 악용될 수 있고 일부는 건물 붕괴 등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어 사업계획 승인 취소와 철거 등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가을맞이 옥상 대청소

    서울 종로구는 오는 14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장기 방치 옥상폐기물 일제수거 사업’을 추진한다고 10일 밝혔다. 건물 옥상에 장기간 방치된 폐기물은 모두 대상이다. ‘종로 건강도시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과 도시미관 개선을 위해서다. 구는 사전신청을 받아 지정일에 건물을 개별 방문하고 수거한다. 동별로 수거한 폐기물은 창신동 집하장에 모은 뒤 종류를 구분해 처리장으로 모두 운반된다. 구는 올해 2월부터 건강도시 만들기 사업 활성화를 위해 주민 생활과 관련된 모든 업무에 건강 개념을 도입했다. 특히 건강도시 만들기 사업 추진을 위한 건강포럼을 민간 주도로 구성했다. 구는 포럼을 통해 주민과 전문가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사업 방향 등을 설정할 계획이다. 김영종 구청장은 “이번 사업으로 주민들의 건강한 생활에 도움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건강도시 만들기 사업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의류수거함, 수거합니다”

    성동구는 4일 주택가 골목길에 마구잡이로 들어선 재활용 의류수거함을 모두 정비해 다시 설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의류수거함은 아깝게 버려지는 멀쩡한 옷들을 다시 쓰자는 취지이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쓰레기만 있다거나 아무렇게나 설치돼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을 줄곧 받았다. 또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임의로 설치하기 일쑤여서 옷을 팔아 챙기는 이득을 둘러싸고 이권 다툼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구는 의류수거함 정비사업을 통해 기존 수거함을 모두 없애고 통일된 디자인의 수거함으로 재정비한 뒤 위치를 바꿔서 달리 설치하기로 했다. 관리도 이제 성동구의류재활용협의회에 맡긴다. 협의회는 수거함을 설치했던 개인과 단체들이 속한 곳으로, 구가 마련한 수거함 관리지침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또 수거함에서 나오는 옷을 팔아 나오는 수익금 가운데 일부는 저소득 가정과 장애인 등을 위한 복지사업에 쓰도록 했다. 고재득 구청장은 “버려지는 의류의 재활용이 한층 더 쉬워질 뿐 아니라 도시미관이나 환경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수거함이나 그 주변에 이상은 없는지 주민들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동부이촌동 전봇대없는 깔끔한 길로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길이 전봇대 없는 길로 변신한다. 용산구는 29일 오후 3시 신용산초등학교에서 주민 500여명과 함께 이촌동길 지중화 사업 착공식을 열고 2014년까지 두산위브 아파트~금강아산병원 간 3.3㎞ 구간의 전봇대를 없애고 전선을 땅속에 묻는 지중화 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먼저 올 연말까지 5개월에 걸쳐 금강아산병원~동부이촌종합상가 1.57㎞ 구간에 대한 공사를 실시한다. 이를 통해 전봇대 48대가 거리에서 사라진다. 내년에는 동부이촌종합상가부터 두산위브아파트 앞 1.73㎞ 구간에 대한 전선 지중화 공사가 이뤄진다. 성장현 구청장은 착공식에서 “전선, 통신 등 가공선로가 난립했던 이촌동길이 지중화 사업으로 쾌적하고 아름다운 거리로 다시 태어난다”고 밝혔다. 실제로 4차로인 동부이촌동길 양쪽에 3~4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가운데 전봇대와 전선이 뒤엉켜 있다. 전선·통신선이 난립해 전선 지중화 작업은 주민들의 대표적인 숙원 사업으로 손꼽혀 왔다. 예산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010년부터 구가 한국전력공사 간부와 실무자들을 상대로 사업 필요성에 대해 설득한 결과 지난해 12월 31일에서야 사업을 확정했다. 어렵사리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주민 기대감도 높다. 엄기연(56·이촌동)씨는 “좁은 길에 지저분하게 늘어섰던 전선 등이 묻히면서 도시 미관뿐 아니라 안전 문제도 함께 좋아질 것으로 보여 기대된다”며 “어지럽게 붙어 있던 전단지와 광고판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는 지중화 사업에서 도로 굴착·복구 방법을 개별 굴착에서 병행 굴착 방법으로 개선, 공사비를 대폭 절감해 눈길을 끈다. 또 사전 협의를 통해 렉스 아파트 재건축 공사 부지 앞 200m 구간의 통신관로 노선을 단지 내로 들여오면서 2억 4000만원을 줄였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충남 삽교역 폐침목 재활용? 폐기처분?

    “재활용할 수 있는데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미관상 좋지 않고 환경이 오염되니 처리하라.” 철도 폐침목 적치를 놓고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충남 예산군 삽교읍 주민들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16일 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장항선 옛 삽교역 부지에 콘크리트 침목 2000여개와 나무 침목 20여개 등 모두 700t 안팎의 폐침목 더미가 쌓여 있다. 이는 2009년 장항선 개량사업으로 철로가 이전되면서 폐철로 밑에 깔려 있던 것을 철거해 쌓아 놓은 침목들이다. 당초 폐침목은 산책로 계단이나 조경공사 테두리용으로 많이 재활용돼 공단 측이 개당 2만원 이상을 받고 자치단체나 조경업자 등에게 팔던 인기 품목이었다. 그 이전에는 동남아 국가 등에 수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폐기물관리법 개정으로 나무 폐침목이 환경오염 유발원으로 지목되면서 판로가 막혔다. 썩지 말라고 칠한 방부제 기름에 발암물질이 함유돼 있다는 이유였다. 현재로서는 선박을 만들 때 받침용 정도로 쓰이지만 활용이 많지 않은 상태다. 이곳 폐침목도 판매 중 법적 규제와 판로난 때문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 관계자는 “요즘은 나무 침목 대신 튼튼하고 관리가 편한 콘크리트 침목으로 바꾸고 있다. 삽교역 부지에 쌓여 있는 콘크리트 침목은 상태가 온전하지 않아 철로로 재활용하기는 어렵다”면서 “그냥 버리면 아까운 데다 폐기물 처리비가 적지 않게 들어 옹벽 공사업자들이 구입해가지 않을까 해서 쌓아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주택가 가까운 역 부지 맨땅에 아무렇게나 쌓아둬 미관상 좋지 않고, 콘크리트 침목은 철근이 드러날 정도로 깨지고 부서져 안전사고 위험과 토양오염 등이 우려된다”고 즉각 처리를 요구했다. 민원이 계속되자 공단은 폐기물업체에 맡겨 폐침목을 처리하기로 하고 이날 예산군에 폐기물처리를 신고했다. 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포토 갤러리] 얽히고설킨 전선

    [포토 갤러리] 얽히고설킨 전선

    서울 마포구 대흥동 일대 전신주에 전선이 셀 수 없을 정도로 걸려 있다. 전신주에는 전력 공급용 전선과 유선방송, 인터넷 통신용 전선들이 빽빽하게 연결돼 있다. 비바람이 강한 장마철에는 전신주가 자칫 쓰러지기라도 하면 전선과 함께 도로 위의 흉기가 될 수 있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난해 서울시에 접수된 전선 사고와 무단 설치 민원은 6000건을 웃돈다. 전선 중에는 서비스가 끝났는데도 철거하지 않은 폐전선도 적지 않다. 전신주 공중선 점용료와 허가제를 놓고 한국전력과 갈등을 빚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많다. 지자체들은 사고 예방과 도시 미관을 위해 전선 지중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종로, 보행장애물 철거

    서울 종로구는 도시 비우기 사업의 하나로 보행 지장물 정비 사업을 추진한다고 8일 밝혔다. 종로1가부터 6가 양쪽 보도에 설치된 노점 및 적치물 방지용 펜스 83개가 대상이다. 이번 사업은 2010년 ‘걷기 편한 종로 거리 조성 사업’으로 종로대로 노점들이 이면도로로 옮겨 간 후 기능을 잃은 펜스가 보행에 큰 불편을 주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구는 이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펜스를 철거하고 있으며 보도 판석 재설치 등 모든 공사를 이달 안에 끝낼 계획이다. 구는 올해 초부터 쾌적한 도시 환경을 조성하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시 시설물 비우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각종 안내 표지판, 전신주 등의 각종 지주와 보도블록, 펜스, 교통 표지판, 신호등, 가판대, 입간판 등 보도에 설치된 모든 시설물 가운데 불필요하거나 경관을 해치고 기능이 겹치는 것을 정비 대상으로 한다. 김영종 구청장은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위험 요인이 됐던 펜스를 제거함에 따라 복잡했던 종로대로가 보행자 중심의 행복 거리로 거듭나는 등 시민들이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민선 5기 3년! 구정의 품격] 김영종 종로구청장

    [민선 5기 3년! 구정의 품격] 김영종 종로구청장

    2011년 12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등 4개 기관이 공동으로 진행한 ‘사회의 질’ 조사에서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위를 차지한 곳이 있다. 건강 도시, 전통 도시를 표방하는 종로구다. 3년째 종로구를 이끄는 김영종 구청장은 2010년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공약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정도로 발로 뛰는 행정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그가 내세운 건강 도시 정책으로 종로구는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연구원 평가에서 수도권 10대 건강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구청장은 취임 3주년 인터뷰에서 “건강 도시, 전통 도시 종로구를 만드는 데 주력했고 앞으로도 더욱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도시 비우기 사업 등을 통해 더 살기 좋은 종로를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건강 도시 만들기 정책에 대해 그는 “취임 후 무단 투기의 온상이었던 방치된 땅들을 도시 텃밭으로 만들어 곳곳의 쓰레기 1062t을 치우고 39곳에 7223㎡(2185평)의 도시 텃밭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물청소 차량 10대, 물푸미 4대, 보도 물청소 장비 4대 등을 이용해 모든 간선도로를 비롯해 골목길까지 매일 물청소 작업을 벌인다. 김 구청장은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세종로, 인사동, 북촌, 대학로, 청계천 관광특구는 ‘상시 특별 물청소 지역’으로 설정해 하루 두 차례 물청소를 한다. 자연스럽게 종로 지역 공기와 환경이 나아졌다”고 전했다. 김 구청장은 성과 중 하나로 ‘세종마을 푸르메센터’ 개관을 꼽았다. 그는 “장애 진단부터 재활, 자립을 돕는 일을 모두 한곳에서 할 수 있는 신개념 장애인 복지관을 지난해 7월 개관했다”며 “맹학교와 농학교가 위치한 지역으로 구에서 부지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김 구청장의 스마트폰 사진첩에는 종로 지역의 모습만 담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길을 걷다가 주민들이 불편함을 느낄 만하다고 생각되면 지체 없이 사진을 찍어 직원들에게 개선하라고 이야기한다”면서 “3년쯤 지나니 이제 직원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의 문제점 등을 찾아내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전봇대에 중구난방으로 둘러쳐진 철사 줄이 아이들 안전을 위협해 정리하고 다니기도 했다. 주민 삶의 질 높이기에 애쓰다 보니 대외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김 구청장은 인왕산 아래 수성동계곡 복원 등 전통 도시 구축 사업에서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김 구청장은 후반기 중점 사업으로 도시 비우기를 꼽았다. 그는 “거리에 무분별하게 난립한 신호등, 단속카메라, 가로등, 교통안전표지판 등의 지주 시설물이 도시 미관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면서 “폐쇄회로(CC)TV도 자치구, 경찰, 교통방송 등 3개 기관이 운영해 복잡했는데 종로구에서 나서 통합 작업을 벌인 결과 큰 호응을 얻게 됐다”며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공공디자인, 길 위의 미술관서 배워요

    “길이 아니라 갤러리 같아요.” “어둡고 칙칙한 지하보도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어요.” 서울 중랑구 상봉동 지하보도인 ‘토끼굴’을 찾은 아이들이 이렇게 입을 모았다. 원래 이 굴은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다. 중랑구는 이 굴을 2009년 공공디자인 개선 대상으로 지정해 나비 모빌을 달고 화사하게 꾸몄다. 덕분에 이 길은 출퇴근과 등하교에 요긴하게 쓰인다. 사람을 불러모아 공간의 이미지를 바꾸는 공공디자인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중랑구는 17일 초중고교생을 상대로 공공디자인에 대한 견학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견학 프로그램은 담장 벽화, 지하보도, 망우시계, 소통의 문 같은 공공디자인 설치 현장과 불법 간판을 재정비한 망우로 디자인서울 거리, 간판을 정비 중인 망우동 맛솜씨길 같은 곳을 찾는 것이다. 현장 견학을 통해 공공디자인이 어떻게 도시의 미관을 바꾸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교육의 장이다. 지역 초중고교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기존 자연·새 사업 연계…관광객 적극 유치할 것”

    “기존 자연·새 사업 연계…관광객 적극 유치할 것”

    “바다와 산 등 풍부한 자연 자원을 활용해 삼척을 동해안 최대, 최고의 관광 도시로 가꾸겠습니다.” 김대수 강원 삼척시장은 11일 기존 천연 동굴을 자원으로 한 관광 도시 이미지를 바다와 산 등이 어우러진 새로운 해양동굴 관광 도시로 향상시켜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의 나폴리’로 유명해진 장호마을 인근에는 해상 케이블카(로프웨이), 임원 남화산에는 수로부인상, 오십천에는 대단위 장미공원을 조성하는 등 올 들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관광 전략으로 새로운 ‘관광 중흥기’를 꿈꾸고 있다. 대금굴, 환선굴 등 대이동굴지대를 비롯해 해양레일바이크, 이사부 사자공원, 해신당공원, 동굴 엑스포광장, 새천년도로 등 지역 특색에 맞는 관광지를 개발해 ‘해양동굴 관광 도시’의 명성을 쌓고 있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김 시장은 “용화리~장호리 해상 케이블카 사업은 아름다운 항구와 항구 사이를 바다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로 연결해 관광 자원화하는 것으로, 빼어난 경관 위에 조성된다”면서 “해양레일바이크와 연계해 지역 최고의 명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변을 활용해 만든 세계 최대의 장미공원이 조만간 개장한다”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로즈가든보다 6배나 많은 13만 그루의 장미가 심어진 장미공원이 문을 열면 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미공원은 도시 미관과 주민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조성한 것이지만 오히려 외지 관광객에게 더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수로부인 헌화공원에 조성되는 대형 수로부인상도 볼거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높이가 10m를 넘고 무게만 500t에 이르는 수로부인상이 울릉도를 조망할 수 있는 남화산에 세워짐에 따라 이곳이 해맞이와 동해 조망의 명소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김 시장은 “삼국유사에 기록되고 구전 설화가 전해져 오는 수로부인상이 세워지면 동해와 함께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랑했다.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금쪽같은 행정 노하우와 열정의 ‘흔적’… 금천구 공무원들 아주 특별한 출판기념회

    금쪽같은 행정 노하우와 열정의 ‘흔적’… 금천구 공무원들 아주 특별한 출판기념회

    5일 오전 10시 금천구청 대강당에서 아주 특별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신나게 노래를 합창하고,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고 박수를 치는 등 시끌벅적한 잔치 분위기가 연출됐다. 알고 보니 참석자 10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저자였다. 한때 꼴찌였다가 최우수 국으로 거듭난 도시환경국 직원 75명이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즐거웠던 경험과 업무에 대한 열정, 금쪽같은 노하우를 책으로 묶었다. 책 제목은 ‘금천구 도시환경국 이야기-흔적’이다. 공무원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출판하는 경우는 흔해도 한 부서 전체 직원이 힘을 모아 책을 내는 것은 매우 드물다. 아파트 옹벽 복구와 옥상 텃밭 설치, 가산동 정보기술(IT)문화거리 조성, 산기슭 주변 미관 공사, 칼바위 부근 산사태 복구, 관악산 둘레길 조성, 호암산 폭포 조성 등. 직원 한 명 한 명의 글이 책 속에서 모자이크처럼 합쳐지며 ‘금천’이라는 큰 그림이 완성된다. 대체 이 책은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 발단은 2011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성수 구청장이 박종일 도시환경국장에게 그동안 추진했던 업무를 기록으로 남겨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박 국장은 자화자찬보다는 반성 차원에서 기록을 남기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김만순 주택행정팀장과 노명숙 주택정비팀장이 총대를 멨다. 주택과, 도시계획과, 건축과, 공원녹지과, 환경과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원고를 받았다. 보고서 작성엔 익숙한 그들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례집 수준으로 만들 요량이었다. 하지만 점점 욕심이 났다.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다시 원고를 받고, 글 맵시를 다듬고,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제목을 붙이고, 책 안팎을 디자인하기까지 지난한 작업이 이어졌다. 박 국장이 붓글씨로 표지 제목을 직접 썼다. ‘흔적’은 이렇게 1년 6개월 만에 세상에 나와 흔적을 남기게 됐다. 출판과 함께 공무원들의 땀과 애환을 제대로 담았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39년 공직 생활의 마감을 앞둔 박 국장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먼 훗날 책장 구석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먼지를 털어내고 그땐 그랬지 하고 웃으며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 구청장은 “좋은 역사를 만들어줘 감사하다”며 “후배 공무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며 웃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슈&이슈]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 갈등

    [이슈&이슈]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 갈등

    ‘노면(面)’과 ‘고가(高架)’. 요즘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핵심이다. 대전시는 도로 위에 고가 철로를 설치해 자기부상열차를, 시민단체는 기존 시내 도로에 레일을 깔아 트램(전차)을 운행하자고 맞서고 있다. 정부가 재정부담을 들어 지하철을 허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양쪽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대전시는 고가의 장점으로 건설 시에만 도로를 점유하고 완공 후에는 도로 점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의 방해를 받지 않아 정시성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평균 열차 속도가 44㎞를 유지할 수 있어 18~20㎞로 들쭉날쭉한 노면 트램보다 빠르다고 덧붙였다. 자기부상열차는 무인으로 운전해 인건비가 크게 절약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시 용역을 수행한 동일기술공사 강유정 상무는 “고가 철로를 달리는 자기부상열차는 소음과 진동이 적고, 악천후에도 안정적인 운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반론을 펴고 있다. 고가가 도시미관을 크게 해친다는 것이다. 지상에서 10~11m 높이로 교각을 세워 철로를 깔기 때문이다. 정거장이 높게 설치돼 승하차가 불편하고, 열차 사고 시 대피가 어려워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금홍섭 대전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고가는 접근성이 떨어져 수요자인 시민들이 외면하면서 적자가 쌓이고, 결국 시민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전 5개 자치구 중 4개 구청장도 같은 논리로 대전시의 고가 건설 방식에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노면 트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승하차가 편리한 점을 노면의 장점으로 꼽았다. ㎞ 건설비가 420억원이 드는 고가보다 200억원밖에 들지 않는 부분도 큰 이점이라고 했다. 곡선이나 급경사 주행이 가능하고 주변 주택 사생활 침해가 없다. 금 정책위원장은 “부산은 고가 이용률이 지하철보다 45%, 대구는 7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철도의 최대 목표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제 몫을 해야 한다는 점인데 수요가 부족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라며 “노면은 버스 등 대중교통과도 연계성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전시는 노면에 대해 왕복 철로와 정류장을 설치하면 최소 2개 차도를 점유해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 운행에 지장을 준다고 반박했다. 극심한 체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소음과 진동도 있다고 설명했다. 폭설이나 폭우 등 악천후 때는 운행이 중단되거나 교통 혼란에 빠진다고 덧붙였다. 이 문제는 2호선이 2006년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했다가 지난해 11월 ‘대전의 인구 증가로 수요량이 늘고 있다’는 이유로 통과되면서 불거졌다. 시가 이를 신청할 때 제시한 건설 방식은 고가에 자기부상열차다. 이후 시민단체에서 반대하자 시는 동일기술공사에 용역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지하 5m 깊이로 지나는 저심도 방식도 검토됐으나 ‘대전은 통신시설 등 지하 장애물이 많고 건설비가 정부지원 한도를 넘는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동일은 지난 3월 용역결과를 발표하고 고가에 자기부상열차가 최선이라고 밝혔다. 노선은 정부대전청사 등 현재 운행 중인 1호선의 4개 역을 만나면서 엑스포과학공원과 충남대 등을 거치는 36㎞의 순환형이다. 이 중 유성네거리~진잠 간 2단계 7.4㎞는 도시여건 변화를 보면서 추진된다. 앞서 1단계 진잠~유성네거리 간 28.6㎞ 사업비는 모두 1조 3617억원으로 60%가 국비로 지원된다. 3호선은 충남 논산~계룡~서대전네거리~신탄진~세종시~조치원~청주공항으로 이어지는 106.9㎞의 국가 전철인 충청권 철도 중 대전 구간에 몇개 역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3호선 착수시기는 2016~2019년 사이. 대전시는 이에 맞춰 내년 말까지 설계를 끝낸 뒤 착공해 2019년부터 2호선을 운행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사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에선 차기 민선에서 결정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금홍섭 정책위원장은 “결정이 차기 민선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일단 (대전시의 태도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번 2호선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전례 없이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이슈&이슈] “2호선 개통 땐 승용차 이용 10% 감소 건설방식 결정 차기로 넘기지 않을 것”

    [이슈&이슈] “2호선 개통 땐 승용차 이용 10% 감소 건설방식 결정 차기로 넘기지 않을 것”

    윤기호 대전시 도시철도기획단장은 2일 “어떤 방식이든 시민들이 반대하면 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윤 단장은 반대 단체를 설득하는 일에 힘을 쏟을 각오다. 그는 “6~7월 사이에 시민단체 관계자와 5개 구청 실무자들을 충북 오송 트램 시험선과 인천 고가 자기부상열차 시험운행장으로 데려가 견학시키겠다”고 말했다. 또 양쪽(노면과 고가) 주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연다는 계획도 내놨다. 도시미관 저해와 관련한 우려에 대해 윤 단장은 “디자인협회에 용역을 의뢰해 경관 저해 요소를 최소화하겠다”면서 “고가로 운행하거나 추진 중인 국내외 도시 사례를 참조하겠다”고도 했다. 윤 단장은 “노면 트램은 유럽처럼 땅이 넓고 인구는 적은 곳에 좋다”면서 “하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데는 고가 방식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호주 등도 고가 방식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노면 트램을 운행하는 도시는 400여곳, 고가를 선택한 곳은 180곳에 이르지만 고가 열차 운행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전주와 울산이 2005년과 2008년 각각 노면으로 예비타당성 조사에 통과하고도 보류한 일을 되새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단장은 “2호선이 개통되면 승용차 이용률이 10% 떨어지면서 연간 1조 2000억원에 이르는 대전의 사회적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면서 “(건설 방식 갈등으로) 사업 착수가 6개월쯤 늦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물가가 오르면서 사업비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윤 단장은 “행정을 멈출 수는 없다”면서 2호선 건설 방식을 일부러 차기 민선 시장 때로 넘기는 일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영등포 고압전선 지중화…앙평2동 7월 공사 착수

    영등포구는 주민들의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인 양평2동 주택가 고압전선 지중화 공사를 오는 7월 착수한다고 13일 밝혔다. 구는 최근 양평2동 고압전선 지중화를 위해 한국전력공사와 공사비 부담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동도빌라 주변에서 남쪽으로 250m 이어져 있는 고압 전선이 대상이다. 앞서 구는 도시 미관을 살리고 지역 발전을 이끌어 내기 위해 2011년 5월부터 송전선로의 위치를 바꾸고 고압전선을 땅속으로 옮기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공사에는 사업비 23억원이 투입된다. 구는 이달 말 주민설명회를 열어 공사 개요 및 추진 일정 등을 알리고 다음 달 중 세부 공사 설계를 마칠 계획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공사로 인한 주민 불편을 최대한 없애고 한전과의 협조를 통해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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