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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골목 맛세상] 여의도의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여의도의 맛집들

    누가 뭐라고 해도 여의도는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국회가 있고, 증권가가 있으며 게다가 방송 3사가 한꺼번에 몰려있다. 이런 식이라면 권력과 금력을 비롯한 무소불위의 강력한 힘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셈이다. 아니, 또 있다. 단일교회로는 그 크기나 신도의 숫자에 있어서 세계에서 으뜸으로 꼽힌다는 순복음 중앙교회가 있으며, 가장 높은 63빌딩이 있다.1970년대만 해도 고작 군용비행장이 그 쓰임새의 전부였던 넓고 황량한 모래벌판이 30년이 조금 넘는 기간에 나라의 중심을 차지하는 땅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권력이며 금력이 모여 있는 여의도에 자연스럽게 맛집들 또한 넘쳐나지 않을 수 없다. 얼핏 보면, 하늘이 낮다고 치솟은 금융가의 빌딩들, 고급아파트단지 일색의 살벌한 풍경 속에 어디 한 구석 사람냄새라고는 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빌딩 사이사이의 내면 도로 안에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맛집들이 넉넉하게 숨어 있다. 사람냄새가 풍기는 맛집에 어찌 도타운 정이 없으랴. 그리하여 샐러리맨들을 위시한 여의도 주민들은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을 찾아 모여드는 불나방이처럼 기꺼이 정이 도타운 맛집들을 찾아서 모여든다. ●살벌한 풍경속 도타운 인심 자랑 여의도 백화점 앞 백상빌딩 1층에 율도(02-784-8877)라는 일식집이 있다. 실내 디자인이며 객실 분위기는 얼핏 보기에 여느 일식집과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일식집일 뿐이다. 그러나 주인 내외를 만나는 순간 율도의 인상은 전혀 달라진다. 안주인 마정수씨도 그렇지만 특히 바깥주인 이춘형씨를 만나는 순간, 대뜸 끌려드는 끈끈한 정을 어쩔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순박하고 착한 표정이며 충청도 사투리의 어눌한 말투가 사람으로 하여금 보자마자 전혀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이는 타고난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여 누구와도 격의 없이 어울리는 다정다감한 이다. 그리하여 그이는 손님과 인사만 나누었다 하면 열이면 열 그 자리에 합석하여 함께 즐기는 이다. 율도를 처음 찾는 이라도 그곳에서 주인 되는 이춘형씨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다. 그저 그이를 자리에 불러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술을 한잔 건네면 된다. 만일 어느 정도 드나들어서 서로 얼굴을 아는 이라면, 주인 되는 이가 먼저 술병을 들고 손님을 찾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리하여 술이 몇 순배 돌면, 그이가 먼저 종업원을 부른다. “꽃게 간장이 잘 익었던데, 그것 좀 가져와요. 생태깍두기도 잊지 말고.” 그러면 이번에는 종업원 대신에 안주인 마정수씨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꽃게장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나타난다. 그러고는 그이 또한 싱글벙글 웃으며 기꺼이 손님이 건네주는 술잔을 받는다. 그리고 안주인이 다시 한번 종업원을 부른다. “아무래도 회가 부족한 것 같은데, 도미나 방어뱃살로 한 접시 더 가져와요.” 일찍이 1970년대 우리나라 일식업계의 대부격이라고 할 수 있는 북창동의 미조리에서 갓 스물의 젊은 나이로 소위 ‘칼질’을 처음 배워서 ‘이다바’가 되었다가 마침내 여의도의 일식집 주인까지 오른 이춘형씨는 술이 취하면 농담 한 마디를 빼놓지 않는다. “지가유, 충청도 유구 촌놈으로 마침내 여의도까지 입성했구먼유, 저그 저 지하도를 못 건너가서 그렇지유.” 이춘형씨가 가리키는 지하도 저편에는 물론 국회가 있다. 그런데 그이가 국회를 들먹이는 데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암울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율도를 드나들며 거의 공짜로 먹고 마시던 소위 운동권 인사이자 한편 백수건달인 많은 이들이 1990년대가 되자 너나없이 국회의원이 되어 지하도를 건너간 것이었다. 이해찬, 임채정, 김근태, 김부겸, 이길재, 유인태, 원혜영, 유시민, 배기선, 설훈 등등. 그런가 하면 시인 신경림을 위시해서 소설가 현기영, 극작가 안종관 등의 문인들이나 동아투위 출신의 기자로 연합통신 사장을 지낸 김종철이며 출판사 사장 김학민도 모두 그이가 ‘거둬 먹인’ 이들이었다. 횟집 주인 이춘형씨가 뜬금없이 운동권인사들과 어울리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이의 외삼촌 되는 성래운 교수 때문이었다. 몇 해 전에 벌써 고인이 되었지만, 연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던 성래운 교수가 하루아침에 해직교수가 되어 감옥까지 가게 된 것은 박정희 시절에 전남대학교의 송기숙교수 등과 어울려 발표한 ‘우리의 교육지표’ 때문이었다. 이른바 이 땅의 민주화교육을 위한 지침으로 여겨지는 이 ‘우리의 교육지표’ 때문에, 성래운 교수는 참으로 오랫동안 일자리를 잃고 교단이 아닌 운동권 인사들과 어울렸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의 술자리로 자연스럽게 조카 이춘형씨의 율도를 제공한 것이었다. ●‘거둬 먹인’ 인사들 이젠 정·관계 주역 운동권 시절 성래운 교수는 교육학 전공 교수보다는 낭송시인으로 더 유명했는데, 그이는 무려 100여편에 이르는 시들을 모두 암송하여 민주화 운동의 무슨 행사에서는 물론, 뒤풀이 자리에서도 낭랑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꺼이 낭송을 하고는 했다. 그이의 시낭송은 거기에서도 끝나지 않고, 조카 이춘형씨의 결혼식 주례를 맡고서도 주례사 한 마디 없이 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을 낭송하는 것으로 끝마쳐 신혼의 부부는 물론 하객들을 아연 긴장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서슬 푸른 유신시절 양성우 시인은 바로 ‘겨울공화국’이란 시 때문에 감옥에 가있고, 시인 고은과 조태일마저도 다름 아닌, 겨울공화국을 시집으로 펴냈다는 이유 때문에 역시 감옥살이를 하는 중이었다.‘…총과 칼로 사납게 욱박지르고/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지금은 겨울인가/한밤중인가/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은/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결혼식에서 주례가 잘 살으라는 주례사는 하지 않고 불온한 시나 낭송해대니 앳된 신혼부부는 얼마나 무서웠으랴. 율도의 자랑은 점심 때 나오는 율도정식이다.1인분 3만 5000원의 율도정식에는 모듬생선회에다가 제주갈치탕이라는 다른 집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탕에 제주갈치구이, 초밥, 새우튀김, 메로구이 등이 뒤따른다. 제주갈치탕은 이춘형씨가 제주도의 갈치국에 전라도의 갈치조림을 충청도식의 탕으로 변형시켜낸 것인데, 무, 감자, 시래기, 토란대, 호박에 청양고추며 파, 마늘을 넣어 끓여낸 갈치탕은 갈치국의 시원한 맛과 갈치조림의 진하고 고소한 맛을 함께 살려낸 셈이다. 또 하나 자랑은 도시락인데, 소위 1997년 IMF초기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시절에 임창렬 부총리와 함께 국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점심이며 저녁까지 도시락으로 때울 때, 바로 하루에 100여개 이상씩 공급했던 일화가 있는 도시락이다. 이밖에도 점심메뉴로는 장어구이, 도미머리구이, 장어덮밥, 회덮밥, 전복죽, 은대구탕 등이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율도의 으뜸은 단연 회 뜨는 솜씨에 있다. 이춘형씨의 칼잡이로서의 30년을 훌쩍 뛰어넘는 경력 끝에 나오는 회는 다른 집보다 두터우면서 길고 가는 회뜨기가 자랑인데, 회뜨기 자체만으로도 입안 가득히 감겨드는 맛은 일품이다. 저녁에 나오는 특생선회는 1인분에 7만원인데, 방어뱃살, 도미뱃살, 도미, 농어뱃살, 광어, 광어뱃살, 전복 등이 오르고, 곁들여 나오는 안주에는 키조개, 뿔소라, 개불, 문어, 고둥, 곰피, 붉은 새우에 비단멍게, 홍삼, 홍어내장, 산마 등이 따른다.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접어들어 직진하면 KBS별관과 인도네시아 대사관이 나오는데, 그 직전의 네거리를 넘어서는 왼편 가각 우정빌딩 1층에 서글렁탕집(02-780-8858)이 있다. 지금부터 30년 전 여의도의 절반 정도가 개발이 되지 못하고 아직은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있을 때, 일찍 자리를 잡은 서글렁탕집은 여의도에서는 그야말로 터줏대감 같은 맛집일 터이다. 처음에 설렁탕집을 했는데, 설렁탕과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주인이 서글서글 인상이 좋다는 손님들의 한 마디에 힌트를 얻어 서글렁탕집으로 했다는 이 맛집은 뜻밖에도 삼겹살 양념구이로 유명한 집이다. ●공짜로 먹기엔 미안한 선지해장국 모르기는 해도 삼겹살을 양념간장에 발라 숯불에 석쇠를 올려 구워먹는 식으로는 전국에서 처음일 것이라는 주인의 단언이 그대로 수긍 가는 집이기도 하다. 원래 삼겹살을 간장에 발라 숯불에 구워먹는 식은 청주와 충주 일대에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맛을 본 주인이 서글렁탕집만의 양념간장을 개발한 것이다. 삼겹살에 바르는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양념간장은 손님들 사이에서는 양념소스로 더 알려졌다. 계피, 흑설탕, 초콜릿, 마늘, 파 등의 양념에 간장을 부어 만드는데, 바로 이 간장에 서글렁탕집만의 숨겨진 비밀이 있는 모양이다. 서글렁탕집의 주인은 모두 4명이다. 형 홍정원, 동생 홍동원 형제에다가 형의 부인 손승인, 동생의 부인 장덕순 이렇게 4명이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이좋게 홀이며 주방을 맡아 식구끼리 운영하고 있다. 아니, 또 있다. 형의 아들 홍주성이 대학을 휴학하고 홀에서 서빙을 하며 서글렁탕집의 비법을 전수받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런 가족끼리의 운영이 서글렁탕집의 도타운 정과 함께 1인분 7000원짜리 삼겹살 치고는 양이며 질이 넘쳐난다 싶게 풍성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런 풍성함이 옛날 TBC시절부터 직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져 서글렁탕집을 일약 유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서글렁탕집에서는 삼겹살을 시키면 상추며 깻잎 같은 야채와 파무침에 곁들여 선지해장국 한 그릇이 공짜로 나오는데, 그 진하고 고소한 국물맛이며 뚝배기에 가득한 선지덩이가 어쩐지 공짜로 먹기에는 미안한 기분이다. 그뿐이랴. 삼겹살을 먹다보면 어느새 대형 콜라 한 병까지 터억, 탁자에 놓이기 마련이다. 이 콜라도 공짜인 것은 물론이다. 서글렁탕집에서는 삼겹살 이외에도 등심이며 염통과 콩팥도 있고,4000원하는 설렁탕과 내장탕, 그리고 3000원하는 선지해장국도 있다. ■김치요리 모두 모인 ‘김치방’ KBS별관을 따라 골목을 돌아들면 오른편으로 두일빌딩이 나오는데, 이 두일빌딩 1층에 김치방(02-780-2489)이 있다. 김치방은 상호 그대로 김치로 만든 요리 일색인 김치 전문집이다. 김치전골, 김치국밥, 김치국수, 김치주먹밥, 김치전, 두부김치, 김치해물전, 그리고 하다못해 묵은 김치에 돼지고기와 홍어를 곁들여 먹는 삼합까지, 얼핏 김치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거의 다 있는 셈이다.2만 4000원짜리 삼합을 빼고는 가격이 저마다 3000원에서 5000원 안팎인데, 그중에 김치국수와 김치국밥은 김치방에서 자랑스럽게 내놓는 메뉴이다. 김치국수는 주인 되는 김진주씨의 시부모님이 함경도 출신인데, 겨울이면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시어머니가 갖은 전과 함께 만들어 내놓는 김치국수를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에다가 본인의 손맛을 가미한 것이다. 먼저 김치를 담글 때 김치통이 절반 못 담기게 양을 조절하여 김치를 담고, 그 위에 돌을 눌러놓은 다음에 맑은 생수를 부어넣는 식이다. 그렇게 김치를 숙성시킨 다음에 보름 정도 냉장으로 보관했다가 국수사리에 김치국물과 김치를 얹어낸다. 그이는 김치국수의 국물 맛을 내기 위하여 처음에는 여러 가지로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김치에 사골육수를 붓거나 멸치국물을 부어보고, 새우국물도 부어본 중에 가장 맛깔스러운 것은 뜻밖에도 아무런 가미 없이 생수만 부은 김치였다. 돼지고기를 넣는 김치전골과는 달리 김치국밥은 해물을 위주로 한다. 굴, 홍합, 새우, 오징어를 넣고 멸치국물을 육수로 하여 김치와 콩나물을 넣어 끓여 내는데, 그 담백함이란 얼핏 상상이 안 될 정도이다. 이렇듯 김치국밥이나 김치국수에 3000원짜리 김치주먹밥까지 곁들이면, 주인 되는 이의 넉넉한 품성과 함께 먹는 일의 즐거움이 새삼스러울 터이다.
  • 조리장엔 쥐똥…‘못 먹을’ 학교급식

    불량 학교급식을 공급한 학교위탁급식소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신학기를 맞아 지난 2일부터 19일까지 민·관 합동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한 업소 등 122개 위반업소를 적발해 관할기관에 고발 및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토록 했다고 29일 밝혔다. 합동단속에는 국무조정실, 교육청, 지방자치단체와 명예식품위생감시원 등이 참여해 식중독 발생이 우려되는 학교위탁급식소와 식자재 공급업소에 대한 단속을 벌였다. 단속에서는 학교위탁급식업소 769곳, 식자재공급업소 283곳, 도시락제조업소 91곳 등 모두 1143곳 가운데 122곳이 적발돼 11%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경기도 포천시 P고교 급식소는 조리장에서 쥐똥이 발견된 것을 비롯, 환풍기의 청소상태가 불량한 것으로 지적됐다. 부산시 남구 B공고는 유통기한이 1개월 이상 지난 미니돈가스 등 2종이 발견됐고, 식자재 공급업소인 울산 남구 S농산은 유통기한이 11개월이나 지난 스모그 비엔나, 신미트볼, 프루츠칵테일 등이 발견됐다. 한편 지난해 발생한 식중독사고 165건 가운데 56건은 불량 학교급식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청 관계자는 “이번 단속에서 식중독 발생의 우려가 있는 원재료와 조리에 공급되는 음식물 799건을 수거해 정밀 검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이집트 대사 부인과 요리cook 조리talk

    이집트 대사 부인과 요리cook 조리talk

    이집트는 유구한 역사만큼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나일강, 클레오파트라 등등…. 하지만 막상 이집트 음식 하면 특별히 떠오르는 것 없이 고개만 갸웃하기 마련이다. 아비르 헬미 이집트 대사 부인은 “초로 분위기를 돋우고 접시에 나이프와 포크 등을 차리는 서양식 식탁의 기본이 이집트에서 시작됐다.”며 “지중해 건강식의 원류가 바로 이집트 음식”이라고 자랑했다. 올리브 오일과 콩·토마토·오이 등을 많이 먹으며, 바질·타임·오레가노 등 허브와 향신료를 듬뿍 쓰는 것이 이집트 음식의 특징. 한국 음식의 맛을 장이 좌우한다면, 이집트 음식은 다양한 향신료가 맛을 가름한다. 이집트 여인들은 소금과 후추처럼 애용되는 향신료인 커민을 외국에 나갈 때 꼭 챙긴다. 마치 사막을 건너 향료를 운반하던 낙타처럼. 아비르 헬미 대사 부인은 서울 한남동 대사관저에서 일곱살 난 아들 카림을 키우며 카이로에서 가져온 커민으로 맛을 낸 음식과 함께 이집트 문화의 전령사로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그를 통해 역사만큼 깊은 이집트 음식의 향에 취해 봤다. 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문명의 진원 맛의 진원 이집트 아비르 헬미 이집트 대사 부인이 직접 꾸민 응접실은 넓고 화려했다. 순도 100%의 이집트산 은으로 만든 촛대와 각종 장식품과 접시 및 남대문에서 산 싱싱한 꽃으로 꾸며진 식탁은 우아하면서도 정감이 넘쳤다. 소파와 탁자가 4세트나 갖춰진 이곳에서는 매일 저녁 파티가 열린다. 다른 나라 대사관 동료들끼리 자주 모이는 저녁 식탁에 오르는 이집트 음식에는 신선한 야채로 만든 샐러드와 렌즈콩수프, 훔머스 등 콩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이집트는 농업국가입니다. 살충제를 많이 쓰지 않아서 민트를 요리하면 온 집안에 냄새가 퍼질 정도로 이집트 야채는 향이 강하고 신선하지요.” 렌즈콩으로 만드는 ‘팔라펠’은 유럽에서 ‘채식주의자의 햄버거’라 불릴 정도로 인기다. 팔라펠은 콩소스인 훔머스에 찍어먹는다. 부드러운 죽같은 훔머스는 땅콩 버터와 비슷한 맛이 나는데 입안 가득 고소한 맛과 마늘과 레몬이 섞인 알싸한 향을 안겨준다. ●허브와 향신료가 맛을 좌우 헬미 부인의 이집트 음식 자랑이 이어지는 중간에 마침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카림이 뛰어들었다. 그는 아들을 위해 브로콜리 등을 넣은 야채수프를 자주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대개 야채를 먹기 싫어하잖아요. 당근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대신에 야채를 잘게 썬 수프를 끓여주는 것이 영양가도 높고 아이들에게 야채를 먹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아이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키우는 비법도 살짝 귀띔했다. 카림은 세살때부터 한국에서 자라 이제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한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비빔밥과 불고기. 점심도시락으로 피자를 싸주면 싫어하고, 김밥을 싸달라고 고집해 아침마다 대사관 직원 아주머니가 일일이 김밥을 말고 써느라 고역을 치른다. 한국 사람들에겐 이집트 요리가 생소하지만 바자에 나가면 항상 준비한 음식이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것이 헬미 부인의 자랑.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 레바논 등의 음식과 비슷하고 재료도 친숙한데다 역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 오일, 토마토, 바질, 민트, 파슬리, 타임 등을 많이 쓰는 점에서는 이탈리아 음식과 비슷하다. 닭고기나 양고기로 만든 케밥을 즐기는 점은 터키와 닮았다. 커민은 위에 좋고, 바질과 타임은 소화를 도우며, 민트는 호흡기에 좋다. ●양국 모두 큰상에서 정을 쌓아 헬미 부인은 유니세프에서 어린이의 위생을 위해 일하다 남편 아무르 헬미 대사를 만났다. 대사는 음식에 관한 인터뷰는 정중히 사양했다. 미국, 일본 등에서 각각 4년간 지냈으며 한국에 온지는 이제 3년 반째다. 이집트 음식은 대부분 담백한데다 많이 맵지 않아 처음 한국음식을 접했을 때 김치 냄새가 매우 심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아들처럼 매운 맛이 덜한 불고기와 비빔밥이다. “나물 반찬을 수십개씩 한꺼번에 내놓는 한국 상차림처럼 이집트에서도 애피타이저를 25가지씩 대접하지요. 이집트의 시어머니나 한국 친구 모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차려놓고 많이 먹으라고 하는 점은 똑같아요.”상다리가 떡 부러지는 식탁에서 가족과 친구간의 정을 확인하는 것은 이집트나 한국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7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는 긴 역사를 가졌다는 점에서도 한국과 공통점을 가졌다. 매년 5만명 이상의 한국 사람들이 인류 문명의 원형을 보기 위해 이집트를 찾는다고 한다. 헬미 부인은 4000년전 고대 이집트인의 화장법을 공부했는데 당시 여성들이 20대 초반부터 주름살 예방에 신경쓰고, 임신선을 없애는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했다며 놀라워했다. 고대 이집트 벽화를 보면 모든 여성이 가는 허리와 날씬한 배를 가졌는데 이는 청결, 날씬, 건강이 당시 유행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는 한국 여성들이 메인요리로 고기를 먹는 이집트 여성에 비해 더 날씬하다며 부러워했다. 화려한 꽃꽂이 솜씨를 자랑하는 헬미 부인이 마지막으로 조언을 하나 던졌다.“참, 야채는 이집트가 한국보다 훨씬 싸고 싱싱하지만 남대문 시장의 꽃은 이집트보다 훨씬 싸고 좋다는 걸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더군요.” ■ 이집트 요리조리 쿡 ●팔라펠 재료 병아리콩·껍질 벗긴 잠두 각각 1컵, 다진 양파½컵, 으깬 마늘 3조각, 물 1컵, 참깨 ½컵, 병아리콩 가루 ½컵, 밀 ¼컵, 채썬 파슬리 ¼컵, 소금 ¼큰술, 빻은 커민·고수풀 각각 2작은술, 베이킹 파우더 2작은술, 고춧가루 ½작은술, 검은 후추¼작은술, 식용유 적당량. 만드는 법 (1)기름과 말린 병아리콩, 잠두를 분쇄기에 넣어 돌린다.(2)남은 재료를 모두 넣고 한 시간 동안 둔다.(3)패티를 호두 크기의 공 모양으로 만든다.(4)겉이 바삭하고 갈색이 날 때까지 375℃의 기름에 4분 동안 튀긴다.(5)피타 빵에 튀긴 팔라펠, 채썬 토마토와 양파·상추, 요구르트를 채운다. ●피타 빵 재료 이스트 2작은술, 온수 1컵, 밀가루 3컵, 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 (1)온수에 이스트를 넣어 녹인다.(2)밀가루, 소금을 섞어 체에 친 다음 (1)과 함께 섞는다.(3)몇분간 주물러 빵 반죽을 만든다.(4)반죽을 젖은 천으로 덮고 따뜻한 곳에서 3시간 동안 부풀어오르도록 놓아둔다.(5)오븐을 350℃로 예열한다.(6)반죽을 6조각으로 나눈 뒤 공처럼 만다.(7)손이나 밀대로 반죽을 둘레 5인치, 두께 ½인치로 펴준다.(8)오븐에 넣고 피타가 연한 황금빛을 띤 갈색이 될 때까지 10분간 굽는다. ●렌즈콩 수프 재료 물 2ℓ, 렌즈콩 500g, 양파 2개, 당근 2개, 토마토 1개, 커민 ½큰술, 버터 1큰술, 저민 마늘·소금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냄비에 물을 끓이다가 렌즈콩과 얇게 썬 양파 1개, 당근,4등분한 토마토, 커민을 넣고 끓인다.(2)끓으면 불을 줄여 다시 15분간 끓인 뒤 식혀 믹서로 곱게 간다.(3)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얇게 썬 양파 1개를 중간불에서 투명해질 때까지 10분간 익히고, 마늘은 황갈색이 되도록 볶는다.(4)양파와 마늘을 (2)와 함께 냄비에 넣어 15분 끓인 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스위트 핑거 재료 온수 1½컵, 설탕 ½큰술, 기름 ¼컵, 소금 약간, 밀가루 1컵, 계란 4개,설탕시럽(설탕 2½컵, 바닐라 1큰술, 물 1½컵, 레몬쥬스 ½큰술). 만드는 법 (1)설탕시럽은 모든 재료를 한데 넣고 저으면서 끓인 뒤 식혀서 따로 준비해둔다.(2)물, 소금, 기름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을 만든 뒤 따뜻하게 둬 부풀어 오르면 계란을 하나씩 넣어 섞도록 한다.(3)계란을 넣은 반죽을 손가락 모양으로 빚는다.(4)반죽이 황금빛을 띤 갈색이 날 때까지 튀겨준다.(5)튀긴 (4)를 설탕시럽에 담갔다 내놓는다. ●훔머스 재료 병아리콩, 베이킹소다 1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참깨 페이스트·레몬즙 250㎖, 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 (1)물 1.5ℓ를 끓이다가 불린 병아리콩, 베이킹 소다를 넣고 약한 불에 1시간 반 동안 뭉근히 끓인다.(2)콩을 체에 받쳐 찬물에 헹군 뒤 껍질을 없앤다.(3)콩을 으깬 뒤 마늘, 참깨 페이스트, 레몬즙, 소금을 넣고 섞거나 믹서로 간다.(4)접시에 담아 올리브, 방울 토마토 등으로 장식하고 올리브 오일을 뿌린다. ■국내 유일 이집트식당 ‘알리바바’ 국내에도 이집트 음식점이 있다. 서울 이태원의 큰길 제일기획 맞은편 건물 2층의 알리바바(790-7754)가 유일하다. 3년전 식당을 연 칼리드 알리(37) 사장은 주한 이집트 대사관 상공회의소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에 식당을 열고 정착했다. 곳곳에 이집트 소품들이 놓여있는 알리바바의 내부는 작고 소박한 편이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반반이다. 외국인들은 미국, 캐나다, 유럽인들이 많이 온다. 한국 사람들은 인천이나 멀리 지방에서도 이집트 식당이란 명성 때문에 찾기도 하고, 특히 영어 교사들이 자주 들른다. 메뉴는 영어로 되어 있다. 가장 인기있는 것은 알리바바 치킨(1만 4500원). 닭고기를 레몬, 양파, 오레가노 소스에 재웠다가 오븐에서 구워 낸다. 훔머스(4500원), 팔라펠(8000원), 쌀과 콩을 삶아 볶은 뒤 그 위에 토마토 소스와 베이컨 조각을 얹는 쿠사리(8000원) 등도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이집트의 중동식 빵은 피타 빵(2000원)이라 불리는데 인도의 ‘난’과 비슷한 맛이 난다. 물담배를 피우기 위해 찾는 단골도 많다. 물담배는 물을 통과한 담배의 연기가 긴 호스를 통해 사람 입에 들어오게 돼 있다. 니코틴은 없으며 물에 딸기, 사과, 망고, 바나나 등 과일맛이 나는 향료를 넣는다. 일행끼리 대화를 나누며 돌아가면서 담배를 피운다. 다 피우는데 2시간 정도 걸리며 값은 2만원으로 남녀 모두 즐긴다고 한다. 알리 사장은 “이집트에 여행을 다녀왔다가 또 다시 이집트의 맛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며 “우리 식당이 서울 강남에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일본 아이치 만국박람회 25일 개막

    일본 아이치 만국박람회 25일 개막

    오는 25일부터 9월25일까지 6개월간 일본 중부 아이치현 나가구테 일원에서 ‘2005만국박람회(아이치엑스포)’가 열린다. 한국을 비롯해 120개국과 4개 국제단체가 참가하는 이번 아이치엑스포에는 총 1500만명의 입장객(해외 150만명)이 예상된다. 아이치엑스포는 장기불황에 허덕이는 일본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제는 ‘자연의 예지’로 지구와 환경, 미래를 보여준다. |나가구테(아이치현) 이춘규특파원|25일 개막을 앞두고 18일부터 3일간 언론 및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사전공개행사가 열렸다. 개막 전에 문제점을 파악, 개선하기 위해서다. 아이치현 나가구테 등에 위치한 박람회장에는 3일간 한국과 미국, 중국 등 각국의 취재진과 시민 11만 4000여명이 몰렸다. 주최측은 열기를 들어 “성공을 예감했다.”고 자평했다. ●한국등 120개국 참여… 관객 1500만 예상 박람회장은 크게 ‘기업관’과 ‘일본관’ ‘글로벌관’ ‘놀이와 참가관’ ‘삼림체험관’ ‘센터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18일 세계 각국에서 몰린 취재진과 시민들의 관심은 박람회의 최대 후원업체인 도요타자동차의 파빌리온(관)에 쏠렸다. 도요타그룹관에서는 30여분에 걸쳐 여러 대의 로봇이 펼친 ‘로봇밴드’의 화려한 7중주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연주가 끝나자 도요타가 자랑하는 신형 로봇 이동수단인 ‘아이 풋’(i-foot)이 성큼성큼 걸어나와 “살아가는 것은 움직이는 것입니다.”라며 선진기술을 선보였다. 히타치관은 국제자연보호연합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희귀동물들을 생동감 넘치는 영상으로 재현해 보였다. 관람객은 0.4㎜의 슬림형 비접촉 IC카드(집적회로 카드)를 전시물에 접근시켜 영상을 구동할 수 있다. 미쓰이·도시바관은 자연통풍과 채광 등 자연에너지의 활용을 선보였다. 전체외벽에 ‘물’이 흐르게 해 청량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파빌리온 자체를 볼거리로 내세웠다. 펌프로 16m 높이의 지붕까지 물을 끌어올린 뒤 외벽을 타고 내려보내는 ‘아쿠아벽’이다. 후지이 히데키 도요타자동차 계장은 “아이치엑스포 기간에 이곳 도요타그룹관과 근처에 있는 도요타박물관을 연결, 도요타의 세계적인 기술과 역사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연의 예지’ 주제… 9월 25일까지 열려 박람회장은 환경과의 친화를 추구했다. 박람회장으로 가는 주요 교통수단은 오염이 적은 자기부상식 열차인 리니모이다. 방문객들이 첨단기술의 총아인 리니모를 한 번쯤은 이용하도록 했다.50만평 규모의 전시장은 도요타자동차가 만든 연료전지 하이브리드 버스가 순회한다. 야산공원을 살려 조성된 박람회장 곳곳에는 자연 그대로의 호수와 숲이 배치돼 있다.“환경을 오히려 해쳤다.”는 비판도 있지만 환경친화형 박람회를 실감케 한다. 주최측은 이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친환경 개념을 박람회 주제로 내세웠다. 도요타 쇼이치로 박람회협회 회장은 “6400만명이나 다녀간 오사카엑스포(1970년)가 고도성장기 일본의 힘을 국내외에 과시한 ‘국위 과시형’ 이벤트였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며 “아이치엑스포는 지구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인류의 기술을 사용할 장대한 실험장으로서의 출발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일관계 긴장파고 걱정된다 7번째로 넓은 전시관을 확보한 한국관은 ‘청·홍·황·흑·백’ 등 5가지의 색깔로 한국의 전통과 미래를 표현했다. 대형 스크린에서 한국의 입체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파노라마 조명쇼를 연출, 전시관 안은 환상적 미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주최측의 최대 걱정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 제정에 따른 한·일 마찰. 한국인 관광객을 40만∼50만명으로 기대했으나 차질이 우려된다. 중국과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영토분쟁 등으로 긴장이 해소되지 않아 관광객 감소를 걱정한다. 박람회 관계자는 “외국인 관람객 가운데 한국인이 가장 많을 것으로 기대했었다.”며 “정치적 긴장이 빨리 해소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오는 8월까지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 있어 주최측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시베리아 얼음속 매머드 보기 박람회 주최측이 야심작으로 내세운 환경관련 작품은 매머드다.‘글로벌 하우스’에서는 시베리아 얼음 속에서 발굴한 1만 8000년 전의 매머드를 세계 최초로 냉동상태의 실물크기로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전시된 매머드는 러시아 연방 사하공화국 북부의 북극해 근처 유카길이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것이다. 귀중한 지구 전체의 자산인 냉동매머드를 연구하기 위한 특별 냉동전시실과 연구실에서 최근의 연구성과를 소개한다. 특히 머리와 뿔 부분의 보존상태가 매우 좋아 매머드를 실제로 볼 수 있고, 빙하기에 멸종된 매머드를 보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주최측은 설명했다. taein@seoul.co.kr ■ ‘안내로봇’ 동문서답등 문제 속출 |나가구테 이춘규특파원|언론 및 지역주민을 상대로 한 사전공개행사 기간동안 주요 교통시설이 멈춰서고, 준비소홀로 상당수 국가관들의 공사가 끝나지 않는 등 문제가 속출했다. 테러를 우려한 과도한 보안검색에 따른 입장지연이나 집단식중독 예방 등을 이유로 도시락, 음료수 등 음식물 지참 금지 등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과도한 보안검색으로 입장 지연 박람회협회 나카무라 도시오 사무총장은 “개선해야 할 점은 빨리 개선하겠다. 입장객의 흐름 등을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나가구테회장과 세토회장을 연결하는 곤돌라가 강한 바람으로 오후 대부분 운행하지 못했다. 개막이후에도 강풍시엔 운행하기 어려워 입장객이 큰 불편을 겪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우려했다. 대회 규모를 키우기 위해 참가국수를 무리하게 늘린 부작용도 지적됐다. 개막전 공개행사 첫날까지도 120개 해외참가국 중 40개국 이상의 ‘국가관’이 공사중이어서 몽골과 예멘관 등 상당수가 공개되지 못했다. ●40여개 해외 참가국 공사 늦어져 주최측이 자랑한 자기부상식 열차 ‘리니모’도 19일 문제점을 드러냈다. 리니모 열차와 지하철을 갈아타는 ‘후지가오카역’에서는 오전 9시쯤 매표기에서 한시간반이나 기다리기도 했다.4개역에서는 승차인원의 하중초과로 6∼9분 발차가 늦어졌다. 주최측은 “일부는 버스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안내원들의 부실한 안내도 숙제로 지적됐다. 이번 대회의 상징으로 자랑하고 있는 ‘로봇안내원’도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로 하는 입장객의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연발,“인간만 못하다.”는 평도 나왔다. taein@seoul.co.kr ■ 홈페이지 클릭하면 한국어 안내 |나가구테 이춘규특파원|‘2005 만국박람회’가 열리는 아이치현은 나고야가 위치한 일본의 중앙부분에 있다. 일본 통일의 기초를 다진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역사 인물들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박람회장은 일본 3대 도시인 아이치현 현청이 위치한 나고야역에서 버스로 30∼40분 거리에 있다. 지하철로는 후지가오카역에서 리니모로 갈아탄 뒤 가면 50분 가깝게 걸린다. 이 지역에는 도요타자동차, 미쓰비시자동차 등 굴지의 회사들의 생산공장들이 있으며 ‘나고야경제권’으로 통칭한다.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현지 한국 공관측의 설명이다. ●어른 4만6000원·청소년 2만5000원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막판에 유치경쟁에서 서울에 패해,“중앙정부가 도와주지 않았다.”며 소외감이 많았으나 이번 박람회 개최를 통해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하려고 한다. 자동차 외에도 항공우주산업, 공작기계, 섬유 등의 생산거점이다. 전통도자기 산지로 ‘세토모노’라고 불리는 서민용 그릇을 13세기부터 생산해왔다. 박람회장 근처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가를 비롯, 관광명소와 온천이 산재해 있다. ●도쿠가와生家·온천등 관광지 산재 입장권은 4600엔(약 4만 6000원·어른),2500엔(청소년),1500엔(어린이),3700엔(노인) 등이다. 교통편과 입장권 관련 정보는 박람회 웹사이트(www.expo2005.or.jp)에서 얻을 수 있다. 한국어 안내도 된다. 웹사이트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와 소프라노 사라 브라이트만 공연 등 7000여건에 이르는 이벤트 일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5월11일은 한국의 날이다. taein@seoul.co.kr
  • [빌딩 X 파일]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빌딩 X 파일] 한국전통음식연구소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빌딩은 한국 떡의 ‘랜드 마크’이다. 지난 1998년 창립된 사단법인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둥지다.2001년 9월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빌딩은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창덕궁 돈화문으로 가는 길목 왼편에 서 있다. 지하 1층 지상 10층으로 연구소 치고는 상당한 규모다. 연면적 800여평(2417.89㎡)에 높이만 37.7m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는 우리 전통음식의 연구·개발 및 보급, 교육을 통해 전통 음식문화의 발전과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해 윤숙자 전 배화여대 식품조리학과 교수가 설립했다. 빌딩 전체는 떡 등 전통음식을 전시, 판매하고 교육하는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1층에는 요즘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는 떡카페 ‘질시루’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새롭게 개발한 떡 50여종과 각종 한과류를 전통차와 함께 직접 즐길 수 있다. 외관도 여느 고급 카페 못지않은 수준이라 남녀노소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2층부터 4층까지는 각종 전시·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윤 소장이 20여년 동안 전통음식을 잘 만든다는 할머니들을 만나러 전국을 다니며 옛날 솥이나 떡살, 다식 틀 같은 전통 조리기구를 모은 것이 어느덧 박물관으로 발전했다. 2층의 부엌살림 박물관은 사라져 가는 전통 부엌살림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명절마다 먹어왔던 우리 고유의 음식도 볼 수 있다.3층의 떡박물관은 전국의 50여가지의 떡들이 눈길을 끈다. 떡 조리기구와 떡과 어울리는 전통 차, 민속주도 전시한다.4층 전시장에서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 회원과 학생들의 전시회가 열린다. 5층부터는 교육 시설이 갖춰져 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는 지난 2002년 75명 정원의 4년제 식품조리학과 학사 과정을 개설했다. 교육부 인가까지 받았다.5층과 10층은 식품조리학과와 연구소 산하 평생교육원의 강의실로,6층은 실습실로 쓰인다.7층에는 평생교육원이 있고 8층에는 교수연구실과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이밖에 9층은 새로운 떡을 개발하는 떡개발연구실과 식품분석실험실이 자리잡고 있다. 오래 보관하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떡’을 비롯, 떡 샌드위치와 떡 도시락 등 떡의 세계화를 위한 신제품들은 이곳의 결실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도시락 저녁… 한밤까지 업무파악

    지난 15일 취임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출발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경제정책 수장으로서 빠른 적응력과 의욕을 보이고 있다. 재경부 업무보고를 이틀만에 끝낸 데 이어 모든 경제부처와 정책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직원들은 “워커홀릭(일 중독자)이란 말이 실감난다.”는 반응이다. 한 부총리는 취임 첫날인 15일 오후 5시30분부터 국·실별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취임식과 기자간담회를 마친 게 오후 4시였으니까 잠깐 숨만 고른 뒤 바로 공식업무를 시작한 셈이다. 세제실, 경제정책국, 정책조정국, 금융정책국, 국고국을 대상으로 각각 30분∼1시간에 걸쳐 진행된 첫날 보고는 밤 11시에야 끝났다. 저녁식사도 과천청사 인근에서 시킨 도시락으로 했다. 특히 자신이 직접 담당해본 적이 없는 금융정책 분야는 1시간을 훨씬 넘겨 보고받으면서 신용불량자 대책, 중소·벤처기업 금융지원 등과 관련해 줄곧 질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16일에도 하루종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참석한 뒤 오후 늦게부터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국세심판원, 금융정보분석원, 경제자유구역기획단, 국제금융국, 경제협력국 등으로부터 밤 늦게까지 보고를 받았다. 17일에는 증권거래소와 신용회복위원회를 연달아 방문한다. 친(親)시장과 개방을 지향하고 신용불량자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겠다는 정책의지를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다음주에는 경제5단체장, 금융기관장들을 연쇄적으로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외신 기자회견도 가질 계획이다. 한 부총리는 특히 매주 경제부처를 한곳씩 선정해 장관 및 고위관료들과 주요 현안에 대해 정책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넥타이를 풀어놓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면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총리실 국무조정실장 등을 거치면서 자신이 가졌던 경제현안에 대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개진하고 관련부처의 입장을 들어보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18일 첫번째 순서로 농림부와 토론회를 갖는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박은영의 DVD 레서피]케밥물고 ‘클린’하게 길떠날까

    [박은영의 DVD 레서피]케밥물고 ‘클린’하게 길떠날까

    케밥은 유목민들의 음식이다. 광활한 중앙아시아를 유랑하던 고대 터키인들은 빠른 시간 내에 간편하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을 바비큐 한 뒤 빵에 싸서 먹는 케밥은 말하자면, 웰빙 햄버거이자 터키식 페스트 푸드다. 목자들을 위한 도시락이고 오랜 여행을 위한 요리이기도 했다. 맛은 어떨까. 숯불 화덕 옆에서 회전시키며 구운 고기는 기름기가 빠져나가 담백하며, 얇은 밀가루 빵과 신선한 야채가 함께 씹히는 질감은 기막히다.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들에게도 케밥이 제격이다. 자유롭고 싶은 열망으로 질주하는 그들을 위한 만찬으로는 와인과 촛불이 있는 프랑스 요리보다 유목민들의 여행식이 어울린다. ‘델마와 루이스’의 후예들인 ‘코니 앤드 칼라’,‘클린’의 주인공들 역시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한다. 살인자들에게 쫓기다 드래그 퀸 클럽에서 꿈을 펼치게 된 두 여자와, 마약에 찌들어 살다가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된 한 여자의 여정이다. 음악을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두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시카고’를 연출한 마이클 램벡과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각본과 주연을 맡은 니아 발다로스가 함께한 ‘코니 앤드 칼라’는 어두운 소재임에도 시종일관 경쾌하다. 그러나 ‘클린’은 애잔한 록 음악만큼이나 장만옥의 고단한 여정이 전개된다. ●클린 마약에 찌들고 남편을 죽였다는 혐의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린 아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을 연상시킨다. 장만옥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답게 인생 막바지에 몰린 여자의 심경이 발군의 연기력으로 표현되었다. 시종일관 흐르는 나른한 음악들과 핸드 헬드 카메라로 잡아낸 영상은 매우 강렬하다. 그러나 DVD의 표현력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그나마 부가영상에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닉 놀테, 장만옥의 긴 인터뷰를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작은 행운이다. ●코니 앤드 칼라 화려한 출연진과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국내 극장에선 개봉되지 않았다. 비디오로도 출시되지 않았으니, 이 영화를 볼 길은 DVD뿐이다. 매번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가벼움에 질렸다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일종의 ‘쇼 타임’이기 때문이다. 드래그 퀸인 척하고 무대에 오르는 대책 없는 두 여자가 걸출하게 부르는 ‘카바레’ ‘그리스’ ‘캐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NG와 삭제 장면, 제작과정과 음성해설 등의 부가영상도 본편만큼이나 재미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1)대관령·진부령의 황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1)대관령·진부령의 황태

    산에서 물고기를 구한다? 그럴 수도 있다. 일명 ‘더덕북어’로 불리는 황태는 백두대간의 심산유곡에 가야만 구할 수 있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영동’에 명태가 있다면,‘영서’인 산간에는 황태가 있다. 눈이 펄펄 내려서 ‘교통두절’ 운운하는 방송이 나올 무렵이면 황태의 황금빛 치장이 짙어 간다. 해마다 2월의 끝,3월이 시작될 무렵이면 봄을 시샘하는 폭설이 내리곤 해 대관령 인근 ‘하늘 아래 첫동네’인 평창군 횡계마을은 눈에 갇혀 봄을 맞는다. 황태의 본고장인 횡계 마을은 생각보다 덜 알려졌다.6·25가 끝난 1954년, 일단의 ‘함경도 아바이’들이 횡계마을로 찾아들었다. 그들은 소나무 말짱을 엮어서 덕장을 세웠고, 인근 송천 개울가에는 속초와 주문진에서 할복한 명태들이 터덜거리는 낡은 트럭에 실려와 부려졌다. 이 명태를 하루쯤 얼음물에 담가 수도승처럼 ‘정화의식’을 거친 후 3단 높이의 높다란 덕장에 내걸었다.2마리씩 코가 꿰인 동태들은 이렇게 변신을 준비했다. 황태란 말은 본디 없었으나 해방 이후 단단한 북어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황태와 북어는 출신 배경이 똑같은 생태이나 훨씬 극심하게 고난의 통과의례를 거치는 황태라서 그 결과는 판이하다. 황태는 모진 풍설을 맞으며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 전혀 다른 먹을거리로의 변신에 성공하는 것이다. ‘거래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 앞을 가로지른다 해서 ‘엇개’로 불리던 횡계는 산간에 둘러싸인 너른 저지대다. 옛 장터인 ‘장선말’에 덕장이 들어서서 ‘덕장모퉁이’란 지명도 얻었다. 그러나 덕장 사정은 예전과 다르다.‘원주민’이던 아바이 1세대들이 거의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주문진의 ‘업자’들이 땅을 임대해 겨울 한철 덕장을 꾸려 나간다.12월부터 3월까지 약 4개월동안 덕장 구경을 할 수 있다.4월부터는 말목을 뜯어내 보관한 다음 그 땅에서 밭농사가 시작된다. 다시 겨울이 오면 경작지에 말목을 세웠다가 봄이면 뜯어내고. 이렇게 횡계의 4계는 덕장과 경작지 사이를 돌고 돈다. ●바닷바람에 그냥 말린 북어와는 다르다 횡계에서 제일 오래된 ‘삼신덕장’을 운영하는 평안도 출신의 유성준(83)옹과 유영선(40)씨 부자는 소문난 ‘황태지킴이’. 원주민으로는 유일하게 지금껏 횡계덕장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원주민이라고는 하지만 월남하여 흘러 들어온지 40여년에 불과하다. 날품팔이로 전전하다 어찌어찌 함경도 아바이들이 진을 친 이곳 산골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들은 손에 돈이 쥐어지면 모두 땅을 샀다. 평당 30원에 사들인 땅이 지금은 거금의 땅으로 변했다. 그러나 유옹 부자는 모텔과 콘도가 올라가는 금싸라기 땅에서 곁눈질 하지 않고 오로지 황태만 키워낼 뿐이다. 같은 황태라도 명칭도 제각각이다. 너무 추워서 하얗게 질려버린 백태. 이 백태는 겉이 허옇게 변해 상품 가치는 떨어지지만 창고에 넣어두면 스스로 발효하여 가까스로 상품 구실을 한다. 문제는 일명 먹태, 찐태로 불리는 흑태. 일기가 너무 따뜻해 얼지 않은 채로 마르면 딱딱한 북어가 되고 만다. 횡계 사람들은 황태와 북어를 엄정히 구분한다. 바닷가 세찬 해풍에 그대로 말린 놈을 바닥태, 즉 북어라 하며, 영서의 냇물에 씻어 차가운 서북풍에 말린 놈은 황태라고 부른다. 방망이로 두들겨 패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으니 “북어와 여자는 두드려야 맛이 난다.”는 이해 못할 속담이 예서 나왔음직 하다. 황태야 자신의 몸을 잔혹스러울 정도로 내돌려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저 손으로 쩍쩍 찢어 입에 넣기만하면 될 일이다. 바람을 못이겨 덕에서 떨어지면 낙태요, 몸통에 흠집이 있거나 일부가 잘려나가면 파태요, 애초부터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 말린 뒤 갈갈이 찢어 안주나 반찬거리로 내는 ‘황태채’는 무두태이다. 크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큰 놈부터 왕태, 대태, 중태, 소태로 서열화되며, 앵태는 그중 작은 놈(20㎝ 정도)으로 우리가 아는 노가리급이다. 당연히 몸집에 따라 가격도 다르다. ●요즘 황태덕장엔 베링해 ‘원양태’만 가득 유옹이 입촌할 당시만 해도 이 마을에는 20여 가구만 살았으며, 냇가를 따라 10여 채의 덕장이 있을 뿐이었다. 횡계는 본디 강릉도호부 소속으로 영서에 속하면서도 동해가 지척이다. 함경도 아바이들이 덕장의 최적지를 찾다가 ‘황태명당’으로 이곳을 점찍은 것이리라. 이제 더 이상 동해 명태를 황태덕장에 내거는 일은 없다.‘지방태’는 사라지고 베링해의 ‘원양태’가 시장을 지배한다. 유옹은 “원양태가 횡계에 등장한지도 벌써 38년이나 되었다.”고 귀띔한다. 그동안 우리가 모르는 사이 명태 자원이 격감했다는 말이다. 덕장 1칸에 평균 2500마리가 걸리니,20마리를 1급(한 축)으로 치면 1칸에서 120급 정도가 건조된다. 이런 황태지만 최근에는 중국산 때문에 몸살이다.‘개도 돈을 물고다녔다.’는 얘기는 전설이 된지 오래다.“그러나 이제 맛으로 승부해야죠.” 눈길을 무릅쓰고 기꺼이 현장까지 동행해 준 이영신(평창문화원 사무국장) 시인의 훈수다.‘구름도 쉬어간다.’는 대관령 700고지의 냉랭한 기온과 극심한 일교차, 여름에도 손이 아린 송천,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부터 동해로 가는 통로였던 천혜의 입지 등이 황금빛 황태신화를 창조해 낸 주역들이다. 눈비 몰고 오는 동해의 ‘샛바람’을 피할 수 있는 영서에 자리잡아 춥고 마른 북서풍을 껴안으며 오늘도 황태는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횡계는 더 이상 먼지 날리는 비포장길의 산간 오지가 아니다. 도암면사무소가 옮겨오면서 인구도 3800명에 이르고 있으며, 산간에 그럴듯 한 저자거리도 생겼다. 용평스키장이 번성하면서 겨울이면 스키족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덕분에 횡계의 황태음식점에서 내는 황태구이, 찜, 탕 등의 맛갈스러운 별미가 빈한한 재정자립도의 촌동네 살림살이를 또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 ●대관령엔 횡계덕장·진부령엔 용대리 덕장 대관령이 횡계마을에 덕장을 선사했다면, 진부령은 용대리마을에 또 다른 덕장을 선사했다. 말하자면 대관령과 진부령이라는,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대표적인 고갯길이 남한 덕장의 최적지로 부각된 것이다.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고개는 단순한 도로가 아니다. 사람과 물산이 오가고, 문화가 오가던 전통시대의 동맥이었다. 강릉에서 지척인 횡계가 영동고속도로 권역으로 주문진 등의 명태를 소화한 곳이라면, 인제군 용대리는 대체로 속초나 고성같은 강원 북부해안의 명태를 담당했다. 군인이었던 30여년쯤 전의 일이다. 휴가 때 거진에서 서울 마장동 터미널까지 오자면 반드시 용대리를 거쳤다. 반대로 인제에서는 원통을 거쳐 용대리를 통과해야만 진부령을 넘을 수 있었고, 이내 간성에 이르던 기억이 새롭다. 동해 주둔 군인들의 휴가 통로가 바로 명태들의 덕장행 루트이다. 이곳 토박이인 방효정(81) 인제문화원장의 기억으로는 일제시대에도 진부령 관통도로가 존재했다. 좁은 비포장도로가 인제와 간성, 즉 영동·영서를 이었다. 당시만 해도 목탄차가 힘들여 넘어가는 고갯목이었다. 속초와 인제를 연결하는 지금의 미시령은 1970년대에 군 작전도로로 뚫렸다. 도부꾼들이 내설악쪽의 소로를 이용하여 동해의 건어물과 소금을 지고 넘어와 곡식으로 바꿔갔다. 해산물과 농산물의 물물교환이 소박하게 이뤄졌다. 진부령과 미시령 코앞 길목에 자리잡은 용대리가 오늘날과 같이 황태덕장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불과 20여년 전의 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인근 백담사로 귀양(?)오면서 갑자기 뜨기 시작했다는 주민들의 전언이다. 그러더니 땅투기가 빚어질 즈음에는 덩달아 황태덕장도 뜨기 시작했다. 함경도 아바이들이 주축이 된 대관령덕장과 달리 뒤늦게 1980년대에 5∼6가구가 시작한 진부령덕장은 간성과 인제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고, 지금은 모두 인제 사람들이 운영한다. ●99년부터 황태축제 시작… 연간 7억 소득 지금은 옹벽타기 훈련장으로 더 잘 알려진 용머리가 있어 용대리로 불린 이곳은 바람이 워낙 드세어 ‘바람부리’로 악명높다. 밤과 낮을 번갈아 얼었다 녹기를 되풀이함은 대관령과 다를 바 없다. 폭설이 내린지 10여일이 지났건만 덕장에는 눈이 고스란히 쌓여있다. 엄청난 바람이 ‘영너머’에서 고개를 타고 내려온다. 현지인들은 ‘영너머’란 말을 자주 쓴다. 바람은 물론이고 물산과 사람과 문화교류를 모두 “영너머로 오간다.”고 표현한다. 무려 40여일간 영너머 바람을 견디다 보면 황태 속살이 부풀어 솜처럼 부드러워진다. 1990년 무렵부터 덕장이 불어나기 시작해 지금은 30여개 덕장에서 연간 100만 마리 이상이 생산된다. 아예 지난 99년부터는 황태축제가 시작돼 연간 7억5000만원 상당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축제 기간에만 10만∼15만 인파가 전국에서 몰려든다. 영동에 명태축제가 있다면 영서에는 황태축제가 있는 셈이다. 올해도 2월26일부터 3월1일까지 황태축제가 벌어졌다. 전국 황태의 7할이 용대리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양평쪽에서 홍천을 거쳐 진부령이나 미시령을 넘고자 하는 이들은 용대리 길가의 무수한 황태식당과 덕장을 거쳐야 한다. 황태의 본적지는 두말 할 것 없이 평창의 횡계리다. 반면에 황태를 새롭게 알린 곳은 인제의 용대리다. 하나는 대관령, 다른 하나는 진부령에 위치해 ‘영너머’로 오가는 바람을 이용하면서 바다동네와 산동네의 인정과 물산까지도 맞교환하는 중이다. 황태의 요긴한 쓰임새를 길게 설명해 무엇하리. 짝짝 찢어서 술안주로, 혹은 도시락반찬이나 찜과 탕, 구이로, 무엇보다 조상님 제상에 듬직하니 올려 ‘절받는 물고기’가 되기도 한다. 또 술꾼들에게는 아침 해장 감으로 황태에 비할 것이 없나니, 황태에 인체의 독을 빼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동의보감을 위시한 각종 처방문은 필경 얼고 녹는 환난의 아픔을 겪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베풂의 징표’가 아닐런지.
  • [나눔세상] 독거노인에 ‘사랑’ 날라요

    [나눔세상] 독거노인에 ‘사랑’ 날라요

    할머니가 뚜껑을 열자 작은 조기 지짐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올랐다. 할머니는 차가운 손을 따뜻한 도시락에 문지르며 “몸도 불편한 사람이 매번 여기까지 오느라 욕보지요.”라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자 정운홍(55)씨는 “그러니 할머니가 더 건강해지셔야죠.”라며 어깨를 주물렀다. ●독거노인과 노숙자의 시름 나누기 거리에 내몰린 처지이면서도 이웃의 독거노인들을 남몰래 돕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아침을 여는 집’에 머물고 있는 노숙자 12명이 주인공.‘아침을 여는 집’은 불교신도들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만든 노숙자 생활시설. 문을 열고 2년이 지난 2000년부터 독거노인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차례씩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고 집안일을 돕는다. 도시락은 매년 서울시에서 받는 노숙자 자활프로그램 지원금 400만원을 아껴 정성껏 마련한 것이다. 22일 점심시간에 맞춰 보문동 권소출(83) 할머니의 지하 단칸방을 찾은 정씨는 5살 때 척추후만증을 앓아 등이 굽었다. 하지만 할머니 앞에선 힘들거나 어두운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는 “어려운 사람끼리 서로 도우면 마음이 통한다.”며 쑥스러워했다. 정씨는 2003년 3월 ‘아침을 여는 집’에 들어간 직후 할머니를 알게 됐다. 할머니는 10m만 걸어도 잠깐씩 쉬어야 할 정도로 몸이 편치 않다. 하지만 신장염으로 10년째 거동이 어려운 딸(44)을 돌보랴 폐휴지를 모아 고물상에 내다 팔랴 쉴틈이 없다. 권 할머니는 “딸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도 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는 이웃이 있어 마음이 훈훈하다.”고 고마워했다. ●반찬나누기로 사랑과 재활의지 키워 비슷한 시각, 외환위기의 후유증으로 노숙자가 된 이강원(45)씨도 하일선(74) 할머니의 지하 단칸방에 쌀과 반찬을 내려놓았다. 혼자 살고 있는 하 할머니는 “쌀이 떨어져 걱정했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느냐.”며 이씨의 두손을 꼭 쥐었다. 근처 김분기(64) 할머니의 단칸방에는 지난해 10월 ‘아침을 여는 집’에 입소한 3급 지체장애인 김영진(32)씨가 쇠고기를 들고 찾아갔다. 그는 “장애인이라고 좋은 일을 마다할 수 있느냐.”며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김 할머니를 수시로 찾고 있다. 김영진씨는 “할머니와 나누는 정이 기운을 나게 한다.”면서 “그냥 반찬이 아니라 사랑을 전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침을 여는 집’의 최윤순(34) 상담실장은 “남을 도울 처지가 못된다며 자괴감에 빠진 노숙자가 많아 처음엔 참여가 적었는데 갈수록 희망자가 늘어난다.”면서 “반찬나누기는 노숙자가 자활의지를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주원(35) 소장은 “처음 문을 열 때는 노숙자 시설이라는 이유로 주민의 반대가 워낙 심했다.”고 돌아보고 “노숙자들의 정성이 주민들의 마음까지 녹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장애인 자살에 강서구청 곤혹

    지난 18일 저녁 1급 장애인 주모(52)씨가 강서구청 현관에서 목을 매 숨지자 강서구청 관계자들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21일 “할 도리를 다했다고 변명하거나 유가족에게 누를 끼치려는 것은 아니며 다만 구청의 어려운 입장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자 해명자료를 낸다.”면서 “고인은 지난 2003년부터 구청장과 공식적인 만남만 12차례를 가졌다.”며 외부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강서구는 또 “1995년 5월부터 숨진 주씨를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하고 생계비 월 67만 6840원을 비롯, 장애수당 9만원과 교육급여, 긴급구조금 등 지난해에만 870여만원을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2003년부터 2년동안 645만원 상당을 별도로 지원했으며 지난해 7월부터는 강서구 사회복지관에서 매일 도시락을 배달했다.”고 덧붙였다. 구 관계자는 “주씨가 구청에 상주하다시피 해서 공식적인 1대1 면담 등 구청장과도 자주 대화를 나눴다.”면서 “목욕비나 전기요금 감면 등 주로 경제적인 요구를 했으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구청 직원들이 여러차례 용돈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서구에 따르면 주씨는 또 “면담과정에서 수시로 노끈으로 자살을 하겠다.”고 말했으며 이달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100만원을 받을 때는 “청사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는 각서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구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무료영구차를 지원하고 장제급여 40만원과 긴급 후원금을 마련하고 있다. 원양어선 선원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한 주씨는 아내가 가출하자 홀로 두 딸을 키웠으며 지난 1985년 사고와 질병으로 장애인이 된 뒤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여담여담] “엄마 보고 싶어요”/주현진 산업부 기자

    싸이월드가 지난 1년여간 실시한 미아찾기 캠페인을 통해 최근 두 번째 결실을 거뒀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하루 500만명 이상 접속하는 싸이월드는 주 1회 잃어버린 아이의 얼굴사진 옆에 ‘엄마 보고 싶어요.’라는 글을 적어 메인 화면에서 미아찾기 동참을 호소한다.‘연예인 X파일’ 등 상혼으로 찌든 다른 포털의 홈피와 차별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성의는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아이를 보모에게 맡기고 직장에 나오다 보니 거슬리는 괴소문이 많다.‘술을 먹여 재운다.’‘잘 씻겨 주지도 않는다.’ 등 사실이라면 울분이 터질 일이다. 그러나 어린이 사고 소식을 접할 때면 데리고 나갔다 잃어버리지만 않아도 고맙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린이 유괴, 아동 성추행·폭행, 각종 안전사고 등 어린이 관련 보도는 하루가 멀다 않고 들려온다. 뉴스로 전달될 정도인 만큼 충격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부실 도시락 사건에 이어 설 연휴 동안 세뱃돈 대신 냉동 도시락을 받아든 결식아동 소식은 분노마저 치밀게 한다. 어린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도만 있다. 국가 정책이나 기업의 참여 수준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셋째를 낳으면 보육비가 공짜다.’,‘남편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등 가렵지 않은 곳만 골라 긁는 생색내기 정책이 대부분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유축실을 마련했다.’‘분유를 무상으로 준다.’ 등 사안의 핵심을 비켜가는 홍보성 캠페인에만 치중한다. 싱가포르의 치안이 좋은 것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만 어린이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과하다 싶을 만큼 중형을 적용해 사람들이 기피하도록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기업도 어린이 문제 해결을 자사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해야 한다. 어린이 문제 해결에 대한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는 장기적으로 회사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 어린이를 광고 주인공으로 쓰는 등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대신 어린이를 안전하게 키우는 데 앞장서는 기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주현진 산업부 기자 jhj@seoul.co.kr
  • 與·野 설연휴 ‘민생속으로’

    여야는 설 연휴기간 동안 일제히 민생 속으로 파고들 계획이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예년과 달리 상대를 깎아내리는 내용의 당보나 홍보책자를 배포하는 등 ‘네거티브’ 캠페인을 지양하는 대신 불우이웃이나 산업현장을 찾아 밑바닥 민심을 챙기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열린우리당은 민생 안정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정치’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올들어 여권이 국정 기조로 내세운 ‘경제 올인’의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3대 입법’과 행정수도 후속대책 등 정쟁의 소지가 있는 쟁점에 대한 주장은 가급적 자제할 방침이다. 대신 소속 의원들에게 지역구에서 소외계층을 직접 찾아가 봉사활동을 펼쳐달라고 주문해 놓은 상태이다. 설 연휴에 앞서 임채정 의장을 비롯해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결식아동에 대한 도시락 배달행사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도 예년의 ‘말하는 귀향 활동’에서 ‘듣는 귀향활동’으로 방향을 전환, 민생현장과 소외계층의 여론을 최대한 수렴키로 했다. 지난주 의원연찬회에서 중도실용주의에 기반한 ‘민생정치 ’를 실현키로 결의했고, 이에 맞춰 설 연휴부터 이를 실천에 옮기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6일 서울 성북구 소재 중증장애아동 요양시설, 용산구 소재 소년가장 및 결식아동 가정, 위탁보호아동 가구 등을 잇달아 방문했다. 이어 7일에는 인천 연안여객터미널과 인근 어시장을 돌아보며 설 민심을 점검할 예정이다. 소속 의원들에게도 지역구내의 사회복지시설, 재래시장, 공사장 등을 방문해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해 향후 입법활동에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전광삼 김상연기자 hisam@seoul.co.kr
  • [여의도 IN] 김무성총장 “이슈 대응력 부족” 자아비판

    “한나라당은 당내 역량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과의 연대에도 노력이 부족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이 31일 당 상임운영위 회의에 참석해 따끔한 ‘자아비판’을 해 눈길을 끌었다. 열린우리당의 ‘발빠른 현안 대응 행보’를 벤치마킹하자고 주장해온 김 총장은 “여권은 겉으로는 민생 챙기기를, 안으로는 한나라당 조이기 전략을 세워 구체적으로 실천했지만 우리는 공감대와 추진력이 부족해 실행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면서 “특히 도시락 문제와 논산훈련소 인분사건, 국군포로 납북 사건에 대해 당의 즉각적 대응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연정론, 김진표 교육부총리 임명, 한·일외교 문서공개 등 정부가 제기하는 이슈에 무방비로 있었을 뿐, 이 이슈가 왜 이 시점에 제기됐는지 충분한 검토도 없이 모든 문제를 정치적·정략적으로 대응했다.”고 자책했다. 이내 회의장이 숙연해졌지만, 김 총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린우리당은 대학교수,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 좋은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면서 ”고 말을 맺었다. 그는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씩 여야의 활동내역을 철저하게 비교 분석해 ‘반성’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서민들의 희망을 읽고 싶다/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겨울 숲에서 만난 그루터기는 긴 세월 그을린 나이테 위에 풀꽃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그루터기는 재생의 상징이다. 동강 난 삶을 한 뼘씩 새 생명으로 키우면서 작은 식물과 눈높이를 맞춰 살아간다. 부르튼 껍질은 곤충의 터전으로 내주고, 생채기 도려낸 틈새는 버섯의 겨울나기 보금자리로 내주었다.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살며 봄을 기다리는 풍경은 흡사 우리네 서민의 삶을 닮았다. 각진 세상일수록 작지만 아름다운 삶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 언론에서 일반적으로 다루는 미담기사는 훈훈한 서민의 삶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은 대부분 명절이나 연말에 치중되어 있고 기사 프레임도 틀에 박혀있다. 훈훈한 뉴스 소재가 굳이 사람일 필요는 없다. 지금의 뉴스 패러다임을 보면 기업과 정치권력 일정표를 안내하고 여기서 파생된 모의고사 문제집을 해설하는 것 같다. 취재망의 시각이 출입처 중심의 6H원칙 뉴스에 쏠려있는 까닭에 사건뉴스만 양산된다. 그 밑바닥에 미디어는 이성과 합리적 매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 고정관념과 관행은 이데올로기 대립과 갈등의 윈인이 되기도 한다. 새해를 맞아 덕담을 나눌 여유도 없이 ‘부실 도시락’,‘연예인 파일’,‘한·일협정 문서공개’,‘군부대 폭력’,‘노조 채용비리’ 등의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정말, 지도자들이 달동네 후미진 골목을 찾거나 새벽길을 열어놓은 미화원과 땀방울 뚝뚝 흘리며 우동 한 그릇 먹는 장면 등을 보도로 접하는 일은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들길에서, 집어등 불빛 아래서 삶을 일구고 그물질하는 서민의 온기가 서린 현장 이야기가 그립다. 감성과 감동 없는 보도는 분노와 분열과 허무만 낳는다. 통계청·소비자보호원·대한상공회의소 등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2003년, 2004년 국민 1인당 여가활동비는 꾸준히 상승, 한달 평균 12만 6000원(직장인 23만 3400원)이었다고 한다. 또 연초 한 포털사이트가 실시한 설문에서는 직장인 47%가 적은 임금을 받더라도 레저를 즐기고 싶다고 응답했다. 어려워도 낙천주의를 지향하고 틀에 박힌 사회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욕구를 반영한 결과이다. 정서적 가치가 결코 경제적 가치에 뒤지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서울신문이 보도한, 제주 생태계의 보고 ‘곶자왈이 죽어간다’(1월17일),‘멸종위기 고래SOS’(1월17일),‘새만금 환경갈등 풀 열쇠 찾을까’(1월24일),‘가로변 까치집’(1월20일),‘세계 평화의 섬’(1월28일),‘로드 킬, 야생돌물이 죽어간다’(1월31일) 등은 생활주변의 소재를 통해 생명·환경의 중요성과 정서적 삶을 환기시켜준 사례이다. 또,‘세상을 움직이는 힘, 돈 아닌 희망입니다’(1월8일),‘전세금 1500만원? 장기까지 기증 약정’(1월13일),‘삯바느질로 모은 4억 장학금으로’(1월15일),‘따뜻한 라면’(1월25일),‘신용불량 과일상 인생 역전’(1월26일),‘공존’(1월27일),‘눈물세상 닦아준 청소아줌마’(1월29일) 등의 기사와 칼럼은 온몸으로 사는 서민의 애환을 전했기에 감동이 있었고 공동체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5%의 자본권력이 이 사회 상층부를 이룬다 한들,95%의 개미 인생들의 삶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역사이며 문화임이 분명하다. 시인 워즈워드는 “인간은 감탄과 희망과 사랑으로 산다.”고 했다. 희망은 멀리 있지 않다. 사랑과 희망의 씨앗을 일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열정이 바로 희망이다. 그 징검다리로서, 계몽자로서 우리 사회를 이끌고, 그 거울 역할을 하는 언론의 모습을 그려본다. 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 [내 인생의 등대] 서울시의회 심재옥의원

    [내 인생의 등대] 서울시의회 심재옥의원

    “야학에서 만난 노동자들 덕분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들이 제 삶의 첫 ‘등대’가 됐던 셈이죠.” 서울시의회 심재옥 의원의 수첩은 이미 4분의1가량이 메모와 일정으로 채워졌다. 회의만도 하루 4∼5회가 기본이다.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노숙자문제, 부실도시락 문제 등 분야도 다양하다. 지난해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 ‘최우수 서울시 의원’으로 선정된 것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심 의원에게는 의원보다는 노동운동가라는 직함이 더 어울린다. 경제단체노조협의회와 전국공익·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 등에서 조직담당 간부를 지낸 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에서 여성국장과 정치국장을 역임하는 등 십수년 동안 노동운동의 최일선에 있었다. 의회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지난 2002년 진출했다.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는 1988년 몸담았던 ‘울림야학’과 ‘노동자종합학교’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86년 한양여대(당시 한양여전)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심 의원은 도시락 회사의 영양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바쁜 날은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해야 했다. 얼마 못 가 다리 관절의 통증 때문에 그만두고 6개월을 ‘백조’로 지냈다. 이후 초등학교에서 ‘잡급직 과학실험보조원’으로 일하기도 했다.‘세상에 혼자 버려졌다.’는 절망감을 갖기도 한 시절이었다. 결국 ‘일하는 게 왜 이리 힘들까. 일하면서 행복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학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회과학서적을 집어 들었다. 이후 다른 이들을 도우며 의문을 풀겠다는 생각에 구로동 야학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심 의원이 책으로 이해했던 ‘이론’을 압도하는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이 있었다. 심 의원은 문학, 한문, 풍물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지만 오히려 노동자들이 심 의원의 삶의 스승이 됐다. “많은 노동자들이 야학에 나와 매일 졸면서도 결석은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희망에 차 있을 수 없어요.‘나보다 더 절박한 삶을 사는 사람이 많구나. 내 고민은 낭만적이었구나.’하는 반성에 정신이 확 들더라고요. 사회적 모순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심 의원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그런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화두에 매달렸다. 학교를 그만두고 직업 노동운동가로 나선 것도, 진보정당의 유일한 의원으로 시의회에 진출한 것도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심 의원은 “‘사회운동이나 시의회 활동을 때려치울까.’ 하는 회의가 들 때마다 ‘아직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채찍질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인생의 등대”라고 말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나눔 세상] 신용불량 과일상 인생 역전

    [나눔 세상] 신용불량 과일상 인생 역전

    “모든 게 마음 먹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 이웃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어려운 이웃에 힘을 보태야지요.” 과일 도매상을 운영하는 조성만(44·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씨가 수익의 2%를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약정서를 체결해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조씨는 특히 신용불량자라는 어려움을 극복, 인간 승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5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덕원청과’ 조성만 대표가 순익금의 2%를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조씨는 덕원청과의 귤 판매에서 생기는 순익(2004년 기준 연 10억원)의 2%, 다시 말해 2000만원을 내놓게 된다. 조씨는 우선 25일 500만원을 기탁했다. 협약식은 2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공동모금회 사무실에서 갖는다. 그는 충북 충주시 주덕면 창전리에서 상고를 나와 군 제대 직후인 1985년 상경, 덕원청과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6월 신용불량자 명단에 오르는 날벼락을 맞았다.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주인에게 보증을 서거나 빌려준 돈이 잘못돼 20억원이 넘는 부채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집이 가압류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업소를 인수했다. 신용불량자인 자신 앞으로는 사업자 등록이 안 돼 부인 명의로 인수했다. 조씨는 채권자들에게 “가게를 운영하면서 차차 빚을 갚을 테니 못 믿겠으면 와서 지켜보라.”고 말했다. 몇몇 은행은 하루 2∼3시간 눈을 붙이며 일하는 조씨를 믿고 원금만 받기로 하는 등 부채를 탕감해 줬다. 채권자들이 그동안 종업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그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1년반 만인 지난해 12월 초에 2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빚을 갚을 때까지 10평 남짓한 가게 한구석에 온돌방을 마련, 절반 정도를 이곳에서 지냈다. 겨울엔 전기장판을 깔고 밤을 지새우며, 새벽 2시30분 시작하는 청과물 경매에 힘을 쏟았다. 낮엔 토끼잠을 자며 소매를 했다. 보통 오후 2시쯤 퇴근하던 것이 밤 10시 지나서야 일을 마치게 됐다. 사업이 조금씩 나아져 빚을 갚은 뒤에야 2교대로 일하는 종업원을 3명에서 7명으로 늘렸다. ‘부실 도시락 파문’이 한창일 때 결식아동들에게 보온도시락을 보내고 싶어 수소문하다 모금회와 연결이 됐다. 조씨는 “여건이 허락한다면 과일에 ‘사랑의 열매’ 스티커를 붙여 구매자들이 내는 돈의 일정비율을 다시 모금회에 기부하는 시민참여형 운동을 벌이고 싶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儒林(273)-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73)-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다른 성리학자들이 공자의 사상을 다만 학문으로만 연구하고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조광조는 공자의 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쓰다 목숨을 잃었던 순교자였다. 격랑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쳐 유가의 도를 실현하려다 산화한 순교자였던 것이다. 종착역이던 안동역까지의 소요시간은 무려 6시간, 아침을 거르고 나온 나는 열차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파는 승무원에게 도시락을 샀다.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면서 나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열차의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예전 그대로의 산야였고, 어쩌다 스쳐가는 강과 계곡은 의구하였지만 피란기차와도 같았던 열차의 내부는 마치 위생적인 병원의 복도처럼 정갈하였고 승무원이 파는 도시락 역시 훌륭하였다. 아침을 먹고 나서 뜨거운 물을 마시며 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평일이었으므로 승객들은 만원이 아니었지만 마침 봄이라 드문드문 등산객과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도록 의자의 방향을 바꾸어 앉아서 즐겁게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철도노선에는 소백산이나 태백산, 치악산 같은 명산들이 있어 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아직 조춘(早春)이라 산야에는 벚꽃들이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먼저 피는 진달래나 개나리와 같은 성미 급한 봄꽃들이 홍역을 앓는 어린아이의 몸에 돋아난 붉은 발진처럼 울긋불긋 피어나 있어 그런대로 신열(身熱)이 오른 나른한 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일부러 중앙선열차를 타고 단양까지 가고 있는 것은 참혹했던 청춘의 옛 추억을 반추해 보려는 낭만적인 생각보다는 지난 1년 동안의 역사추적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조광조로부터 시작된 역사추적은 2500년 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공자로까지 이어졌었다. 조광조가 그토록 실현하고 싶어 했었던 공자의 유교식 개혁정치, 즉 왕도정치가 무엇인가를 나는 공자의 생애를 더듬어봄으로서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작업을 통해 나는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조광조가 유가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쓰다 실패하였던 정치가라면 공자역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무려 13년 동안이나 주유천하를 하였지만 마침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실패한 사상가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실패한 정치가란 점에서는 한 개의 수정란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생아처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광조는 어째서 공자의 정치적 주유천하가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낡은 풍습과 사상을 공자의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개혁정치를 펼치다 역시 실패하여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던 것일까. 어째서 조광조는 이미 실패로 끝난 공자의 왕도정치의 철학을 개혁정치의 신 이데올로기로 맞아들인 것일까. 그렇다면 조광조의 유교적 개혁정치는 처음부터 실패로 끝날 것임이 예정되어 있음이 아닐 것인가. 공자의 왕도정치. 그것은 우선 군주와 힘을 가진 권력자들의 높은 윤리의식과 엄격한 도덕주의가 요구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절대 권력자들이 인·의·예·지의 유교적 이념을 철저히 실천하여 군자가 되는 것이 바로 공자의 지치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 안산 결식아동 급식비 4000원으로

    경기도 안산시지역 결식아동에 대한 하루 급식비가 기존 2500원에서 4000원으로 대폭 인상됐다. 안산시는 24일 부실도시락 파문으로 급식문제가 사회문제화함에 따라 결식아동에 대한 하루 급식비 단가를 1500원 인상,3500원 상당의 도시락과 500원 상당의 우유 1개를 지난 17일부터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당초 올해부터 도시락 단가를 2500원에서 3000원으로 500원 인상하려 했으나 부실도시락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의 인상방침과 관계없이 시 자체적으로 추가 인상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안산시내 1057명의 결식아동은 반찬 가짓수가 늘고 질도 좋은 푸짐한 점심도시락을 우유와 함께 먹게 됐다. 시는 조만간 중식을 제공받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도시락에 대한 만족도와 배달방법 등을 조사, 수요자 중심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 영양사가 없는 도시락업체와 급식소에 대해 매월 표준 영양식단을 제공하고 2인 1조로 주민평가단을 편성, 주 1회 도시락업체 4곳과 지역아동센터 8곳에 대한 급식점검을 실시한다. 이와 함께 사회복지관, 경로식당, 시립어린이집, 동사무소 등을 도시락 거점시설로 지정해 아동들이 가까운 시설을 방문, 직접 도시락을 수령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안산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부실도시락’ 통해본 아동복지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은 25일 오후 11시5분부터 방송되는 ‘2005년 겨울, 굶주리는 아이들’(가제) 편에서 최근 일어난 도시락 파문과 관련, 한국의 아동복지 정책을 고발한다. 제작진은 서귀포시와 군산시의 ‘부실 도시락’ 현장과, 가난 속에 방치된 빈곤 아동들의 모습을 통해 후진적인 아동복지의 현주소를 고발한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어진다고 했던가. 한 청년, 독문학도였다. 어느 여름날 시골의 느티나무 아래였다. 청년은 차마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또 아니 들었던 것을 듣고야 말았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속세의 풍진을 훌훌 털어냈다. 번뇌도, 욕심도 없다. 끊어질 듯하면 이어진다. 점점 눈이 부신다. 귀가 떨린다. 쿵쾅쿵쾅, 가슴이 요동친다. 어쩔거나, 어쩔거나. 늪이다. 헤어나올 수가 없다. 인간사 삼세번,3일 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청년은 고독한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김명곤(53) 국립극장장.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소리꾼으로 열연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딸(오정해)에게 약을 먹여 장님이 되게 한 후 소리를 가르치는 ‘아버지’는 더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김명곤’ 하면 평소 1980년대 민중예술계를 대표하는 배우·연출가·판소리 이수자 등으로 꼽힌다. 지금은 문화CEO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 국립극장 사상 처음으로 공채(2000년)로 극장장에 임명된데다 연임의 기록까지 세운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이밖에 ‘광복60돌60인위원회’ 위원을 비롯, 올 11월에 열릴 APEC행사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춥고 배고픈 재야 연극인 생활을 할 때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을 터이다. “오는 4월이면 국립극장이 개관 55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에 맞춰 국립극장은 지난해 10월 해오름극장에 이어 나머지 극장시설에 대한 리모델링 작업이 완전히 끝납니다. 모두 17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지요. 예쁜 새옷을 입고 좀더 편한 모습으로 국민들과 호흡하겠습니다.” 그의 집무실, 탁자 위에 놓인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잃어버린 나, 그리고 잊었던 우리와 다시 만나는 그런 무대를’ ‘무대와 친숙하지 않은 소외된 대중 속으로 더 가까이 더욱 뜨겁게’ 어떤 철학으로 극장을 운영하는지 짐작이 갔다. 글의 주인공은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극장의 단골고객이며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국립극장장에 처음 취임할 때 모든 것을 (기존과)반대로만 하자고 다짐했단다. 즉 권위와 폐쇄, 관료적인 국립극장에서 탈권위적인 국민 속의 극장으로 개혁시키고자 했던 것. 스스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우선 공연장 명칭만 하더라도 대극장을 ‘해오름’, 소극장을 ‘달오름’, 실험극장 ‘별오름’ 등 부드럽게 변화시켰다. 또 무지개 길과 은하수 쉼터 등의 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기존의 연평균 관객 30만에서 50만명으로 늘어났다. 수입도 3배 가까이 증가해 재정자립도를 7%에서 18%까지 끌어올렸다. 해외 유명 국립극장의 재정자립도가 대부분 15∼25%인 점을 감안하면 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국립극장은 6·25 발발 두달 전에 처음 출발했습니다. 국립극장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굴곡의 현대사나 다름없습니다. 어쨌든 올 한해는 우리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로 쭉쭉 뻗어나가게 할 생각입니다.” 화제를 돌렸다. 진보성향이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약간 웃으며 “대학시절, 순수지향적 사회운동이 시작될 때 동료가 잡혀가는 것을 보고 예술과 현실사회 사이에서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당시 임진택·채희완·김석만씨 등과 함께 민족극 운동1세대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진보적 행보는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넓힌다. 연극 ‘갑오세 가보세’ ‘점아점아 콩점아’ ‘인동초’ 등 민족민중극을 연달아 선보였다. 주로 인권과 평등, 분단의 아픔을 고민했다. 예술에의 집착도 이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연극인으로 진보적인 문예운동을 펼칠 때 다섯가지 마귀, 즉 주마(酒魔), 병마(病魔), 수마(垂魔), 궁귀(窮鬼), 색마(色魔)에 시달리느라 좌절도 많이 겪었습니다.”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2학년 때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은 아예 먹고 자는 곳이었다. 첫 역할은 데모하는 학생을 데려다가 두들겨패는 정보과 형사였다. 교수의 첫째딸 역을 맡은 여학생이 예뻐서 더욱 신났다. 특히 연극이 끝나면 라면과 소주가 나왔다. 밤새 친구들과 소주마시며 얘기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잤다. 아침에 선배가 머리맡에 갖다놓은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세수는 늘 학교 우물가. 그런 생활이 계속됐다. 주마의 결과는 곧 병마로 돌아섰다.2학년 말 폐결핵이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약을 먹고 매일 잠만 잤다. 이제는 수마가 시작된 것.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던 처지였다. 하지만 꼼짝조차 하기 싫었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방안퉁소’(방안에서 하루종일 퉁소만 부른다는 뜻)로 불렸을까. 결국 약도 못 사먹는 궁귀의 상태로 빠졌다. 색마에 대한 설명으로 그는 “연극을 하다 보면 늘 여성과 어울리게 된다.”며 웃는다. ●명창 박초월선생에 판소리 배워 대학 3학년 때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몸이 안 좋아 휴학 중이던 여름날. 전북 김제에서 친구를 만났다. 전북대 영문과에 재학 중인 그는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다. 심심해서 친구를 따라나섰다. 시골의 큰 느티나무아 래의 정자. 한 여인이 아이들 4∼5명을 앞에 앉혀놓고 북을 치며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여인의 소리는 마디마디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이런 것이 있었단 말인가. 사흘동안 그렇게 정자에 있었다. 그의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음악이란 오페라나 가곡이 전부인 줄 알았죠. 난생처음 판소리를 듣고 왜 학교에서 한번도 안 배웠는지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종로3가의 단성사 건너편에 위치한 명창 박초월 선생의 학원을 찾았다. 학원비를 겨우 마련한 뒤 등록했다. 두어달 후 학원비가 바닥났다. 사정을 안 박 선생은 그냥 다니라고 했다. 대신 전화도 받고 학생들의 가사를 받아쓰는 일 등을 했다. 나중에 박 선생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이렇게 광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또한 마당극과 민요 등을 어떻게 하면 창작극에 잘 접목시키고 삽입시켜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기자·교직 거쳐 연극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가 된다. 하지만 연극과 판소리의 끼는 버리지 못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방학 때면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독일어과목 첫 수업 때 김 극장장은 “너희들이 독일어를 왜 배우냐, 먼저 우리것을 잘 알아야 한다.”며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한 여제자가 이에 쏙 반해버렸다.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다행히 15년 앓아오던 폐결핵은 아내의 헌신적 간병 덕분에 결혼 2년만에 말끔히 나았다. 지금도 이는 기적이라고 여긴다. “국립극장장이 됐을 때 아내는 이제야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무척 좋아했지요.” 어릴 적 그의 집은 전주시 중앙동. 하지만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장원이 기울어지면서 큰 집에서 작은 집, 중앙에서 변두리쪽으로 자꾸 밀려나갔다. 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한 낚시광이었다. 김 극장장은 모진 세월을 이겨내는 어머니와 인내심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좋아 독일어를 택했다. 가난한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한번도 ‘파우스트’를 잊어본 적이 없다. 올해가 극장장 연임의 마지막해. 내년에 다시 실업자가 된다는 그는 “자유로워지면 꼭 파우스트 같은 작품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전주 출생 ▲76년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졸업 ▲77년 뿌리깊은나무 기자 ▲78∼79년 배화여고 교사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대표 ▲98∼99년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회장 ▲99년 9∼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 ▲2000년1월∼현재 국립극장장 ▲2000년11월∼현재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추진위원회 위원 ▲저서=광대열전, 점아점아콩점아, 꿈꾸는 퉁소쟁이 등 ▲연극=장산곶매, 나의살던 고향은, 장사의 꿈 등 ▲영화=일송정 푸른솔,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등 ▲상훈=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서편제), 자랑스런 서울시민상(1994), 제1회 현대연극상 연출상(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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