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라 빌레트 공원(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28·끝)
◎과학·문화·오락기능 갖춘 “미래공원”/미완성 형태 「폴리」는 도시인 갈등·개체화 상징/「지오드」 외부는 반사유리… 신비로운 우주 재현
건축은 사회의 문화가 가시화되는 중요한 물리적 요소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미래를 향한 진취성은 동시대에 건축되고 있는 건축물의 형태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러한 관점에서 건축답사는 전통 건축을 통하여 그 사회의 지나간 역사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롭지만,현대 새로이 건축되고 있는 건물들을 통해 한 사회의 진취성과 미래관을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도살장·가축시장 자리
파리는 잘 보존되어 있는 고 건축을 통해 문화적 역사에 대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도시임과 동시에,한편으로는 탄탄한 문화유산 위에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용솟음 치고 있는 문화에너지가 현대건축의 형태를 통해 강하게 표출되고 있어 또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이다.여기서 소개하는 라 빌레트 공원은 1970년대말에 시작된 미래형 도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대통령이 직접주관한 파리 7대 건축 과제 중의 하나이다.「21세기형 도시 공원」이라는 세계 최초의 주제를 내걸고 계획된 이 공원은 현대 도시공원의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고 있어 건축적 의의가 높다.
이 공원은 복잡한 도시생활로부터 피난처를 제공하는 19세기적인 공원에서 탈피해 현대 도시공원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도시형태의 연장이어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선언하였다.따라서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창출의 장소와 교육의 장소,또한 오락의 장소를 한데 마련하여 미래형 복합 도시 공원을 제시하고 있다.이 공원을 처음 대하면 다차원적인 도시인들의 특성이 그대로 공원속에 연장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진정 현대 도시민들의 생활장소임을 실감케 한다.더욱이 과학과 문화,오락 등 서로 다른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이 제각기 혁신적인 건축양식으로 표출되고 있어 세계적인 현대 건축의 명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파리 동북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공원은 원래 파리의 모든 분수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812년에 판 운하가 흐르던곳으로 도살장과 가축시장이 있었던 곳이다.1979년에 미래세대를 위한 과학박물관 설립이 검토되기 시작하여 1982년부터 과학과 음악센터를 함께 갖춘 복합공원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검토되었다.그당시 파리의 가장 큰 공원보다도 1.5배나 큰 1백36헥타르의 대규모 공원부지는 저소득층 도시 근로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성공적인 도심공원으로 개발하기에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그러나 유아부터 노년까지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과학 문화 오락을 위한 장르별 박물관 공연장 호텔 아파트 목욕시설 다양한 식당등 다기능의 시설을 포함한 말 그대로 복합공원이라는 특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새로운 개념의 건축형태 도입으로 공원의 개장과 함께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또한번 파리로 집중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국제공모전 통해 탄생
가장 먼저 검토된 2백70m 길이와 1백10m 폭의 국립과학 및 산업박물관은 「지오드」라 불리는 구형 오디토리움과 함께 이 공원을 상징하는 주요시설이 되고 있다.특히 6천4백33개의삼각체의 연결로 완벽한 구형을 이루고 있는 「지오드」는 내부에 과학 입체영상을 위한 1천㎡의 반원형 화면이 설치되어 있으며 외부 마감이 은색 반사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과 주변환경이 반사돼 신비로운 우주를 재현하고 있는 듯하여 이곳을 찾는 차세대 젊은이들이 우주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그 외에도 대중음악 연주장과 지붕만 덮인 2만㎡ 넓이의 가축 경매장을 개조한 「그랜드 홀」이라 불리는 다목적용 전시실이 마련되어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있다.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건축가 뽀르잠박이 설계한 음악센터는 파리 국립음악원과 음악 박물관,연주홀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 건축 형태를 구사하고 있어 미래 지향적인 공원단지임을 다시 한번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공원에서 가장 강한 시각적 자극을 부여하는 것은 용도와 기능과 전통 기하학적인 형태를 거부하며 서 있는 「폴리」라 불리는 공원 전체에 반복되며 서 있는 강렬한 빨강으로 채색된 작은 건축 구조물이다.중세 정원의 정자를 현대적인 개념으로 재구축하여 「폴리」라 명칭하고 있는 소규모의 구조물은 1백20m의 일정한 간격으로 길이,폭,높이가 일정하게 10m 규격인 입방체로 공원전체에 35개의 점이 찍혀 있듯이 설계되어 있다.그러나 모든 「폴리」는 기능이 구체적으로 부여되지 않으며,형태 또한 모두 다르다.어떤 구조물은 카페로 사용될 수 있고,일부는 공원 조망대로 사용되거나,용도를 사용자가 시시각각 부여할 수 있기도 하고,용도 없는 단순 구조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형태 또한 기존의 조형적 질서를 부인하며 쓰러지듯 건축되어 있거나,완성을 거부하듯 미완성의 형태로 남아 있다.이 작은 건축물은 반맥락성,반역사성,반자연성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제각기 개성을 만끽하고 있는 듯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다기능의 시설들이 공원 군데 군데 산재하여 계획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주는 미래형 도시 공원은 제각기 다른 형태를 지닌 35개의 「폴리」의 출현으로 다시 한번 분열된다.이것은 통일성을 거부하며 나타나고있는 현대 도시의 다원적인 갈등과 대립을 표현함과 동시에 중앙집중적인 위계성,안정성을 부인하고 단편화와 개체화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는 현대 도시의 내면이 해학적으로 표현된 듯하다.
이러한 혁신적인 건축 형태는 1983년 라 빌레트 공원 재개발을 위한 국제 공모전을 통해 탄생되었다.36개국이 출품한 4백71개의 작품 중 스위스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버나드 츄미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츄미는 21세기 도시형 공원이라는 주제를 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불연속적인 건물을 계획하여 조화보다는 심리적 분리를 표현하여 현대의 시대성을 표명하고자 하였다.설계자는 거창한 구조물이란 이미 구시대적이 유물이라는 판단으로 이를 부정하고 그에 대한 반명제로 환경에 대한 해체주의 개념을 택하였고,프랑스는 이러한 실험정신을 미래 도시환경 속에 실현 가능토록 하였다.
○해체주의 모태 건물
라 빌레트 공원의 「폴리」는 건축 분야에 해체주의적 양식이 태동하는 계기가 된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해체주의적 건축전에 출품되어전세계의 건축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하였고,해체주의적 건축양식을 낳게 한 모태 건물로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이렇듯 라 빌레트 공원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주관한 파리의 모든 건축물은 국제 설계 공모전을 통하여 세계 건축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미래 지향적 형태를 낳게 하여 현대 건축사의 한 장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파리의 도시건축에 역사적 흔적을 하나하나 더해 가고 있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파리의 현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대부분 권위를 의식하는 공공성을 띠고 있는 건축물이지만,기존의 구태의연하고,권위주의적이며,보수적인 형태는 지양하고 미래 지향적 건축이 선택되고 있다는 점이다.이렇듯 파리의 현대 건축을 대하면,전통을 존중하며 역사를 지켜 나가되 진취적 문화관이 도시의 공공 건축 환경에 시각적으로 표출될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구태의연한 답습을 과감히 떨치고 차세대를 위한 진일보한 미래사회로 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