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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739)-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0)

    儒林(739)-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0)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0) 다음날. 두향은 안동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밤하늘에서 별이 치마폭으로 떨어지는 흉몽을 꾸고 또한 나으리께서 보내주신 정화수의 물이 핏빛으로 변한 흉사를 보고 그냥 그대로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으리의 신상에 무슨 변고라도 일어난 것일까. 다음날 아침 두향은 목욕재계를 한 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소복까지 준비해 가지고 안동을 향해 떠났다. 단양에서 안동까지는 200여리의 험난한 산길. 중도에는 반드시 죽령을 넘어야 했다. 죽령의 높이는 689m로 영남과 호서를 갈라놓는 대재이자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의 가파른 고갯길. 아흔아홉 굽이의 고갯길은 각종 곡물과 상품을 수송하는 중요한 통로였으나 그 무렵 산적들이 들끓어 한낮에도 행인들을 괴롭히고 밤이면 맹수들이 사람을 해치는 험악한 태산준령이었다. 아녀자 혼자의 몸으로는 도저히 가고 올 수 없는 심산유곡이었다. 생각 끝에 두향은 2년 전 자신의 부탁으로 나으리께 분매를 전해주었던 여삼과 동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여삼은 그 사이 한층 더 늙어 노쇠하였으나 두향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전해 듣고는 흔쾌히 이를 수락하였다.20여년 전 퇴계가 단양의 군수로 재임하고 있을 무렵 바로 곁에서 수발을 들었던 여삼이었으므로 나으리께서 돌아가셨다면 빈소에서 분향이라도 드려야 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안동까지의 먼 길을 함께 떠났다. 두향은 전모를 써 얼굴을 가리고 장옷을 입었다. 장옷은 부녀자들이 나들이를 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머리에서부터 길게 내려 쓰던 두루마기 모양의 옷이었다. 쓰개치마를 써도 무방하였으나 때는 엄동설한의 동지섣달. 매서운 삭풍을 막기 위해서는 두꺼운 솜으로 누빈 장옷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두향이와 여삼은 나흘 만에 안동 고을을 거쳐 도산서당이 있는 토계리(土溪里)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토계리에 도착한 순간. 두향은 집집마다의 지붕 위에서 흰옷들이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순간 두향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집집마다의 지붕에 한결같이 흰옷을 널어 놓는다는 것은 죽은 사람의 혼령을 기꺼이 받아들여 달라고 저승사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동리에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풍속. 집집마다의 지붕 위에 흰 옷을 널어놓는다는 것은 마을의 중요한 사람이 죽었음을 알리는 일종의 풍장(風葬) 행위였던 것이다. -돌아가셨다. 두향은 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혀를 깨물며 중얼거렸다. -나으리께서는 분명히 연세하신 것이다.
  • [송두율칼럼] 부동산 자본주의를 넘어

    [송두율칼럼] 부동산 자본주의를 넘어

    부동산 대란이 북핵문제보다 더 무섭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한국적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일종의 자연법칙처럼 시장의 법칙이 경제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보편성이다. 그러나 역사·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이러한 보편성도 일정한 제약을 갖게 마련이며 이에 따른 유형별 특징도 드러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알베르(M Albert)는 우선 ‘영미’ 자본주의와 ‘라인강’ 자본주의를 구별한다.‘사회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후자의 자본주의와 달리 전자는 보다 더 개인주의에 기초한 시장철학을 신봉한다고 두 유형의 차이를 그는 풀이한다. 이 두 유형의 자본주의가 모두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이른 바 ‘아시아적’ 자본주의 또는 ‘유교’ 자본주의로 불린, 또 하나의 다른 자본주의 유형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세 가지 유형의 자본주의는 나름대로 각각 강점과 약점을 지녔으며 그에 따른 부침을 최근까지도 보여주었다.IT산업을 주축으로 세계경제의 주동력이었던 미국경제도 주식시장의 거품이 걷히면서 어려움에 봉착했고, 재원의 고갈로 인해 유럽형의 복지사회도 위기를 맞고 있다. 아시아의 자본주의도 역시 90년대 중반부터 심한 위기에 빠졌다. 이제 ‘세계화’는 어떤 유형의 자본주의도 비켜갈 수 없는 새로운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얼마전 스웨덴 총선에서 보수연합이 승리하자 일부 국내언론이 이를 시장보다 국가를, 성장보다 분배에 중점을 둔 복지정책의 실패라고 아전인수격으로, 사회적 맥락도 무시한 해석과 주장을 폈다. 이는 새로운 과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경제영역에 제한되어 있지 않은, 총체적인 삶과 사고도 지배하려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도전을 맞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나 그렇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국경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자본의 재생산과정이 국가나 시민사회의 통제영역 밖에서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의 통제가 갈수록 무력화되는 데 있다. 이윤극대화 자체가 목적이 된, 한계를 모르는 자본과 권력의 축적과정은 일찍이 하나 아렌트(H.Arendt)가 분석한 전체주의의 전개과정과도 흡사하다. 즉 개별적 이해관계나 전통과 문화적 특징으로부터 분출하는 저항들은 획일화하는 정치적 강제력에 의해서도 억압되지만 시장의 연옥(煉獄) 속에서도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의 영역에서 보다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대량소비 문화는 지적인, 그리고 비판적 안목을 키울 수 있는 일종의 ‘고급문화’를 추방하고 있다. 이는 이해하기 힘든 ‘고급문화’에 대한 대중의 본성적인 거부감보다 삶의 영역에서 자유스러운 기획을 애초부터 파괴하는 자본의 본성에 더 기인한다.‘산업자본주의’를 뒤이을 ‘문화자본주의’의 도래를 예견한 리프킨(J Rifkin)도 문화자본주의의 중요한 전제조건인 사회구성원의 감정이입 문제나 신뢰성과 같은 개인의 예민한 정서 자체도 시장과 상업성으로 인해 곧 바로 분해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문화자본주의의 단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동산이 개인이나 가정의 삶의 공간확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순전히 재테크의 수단이 되다 보니 시장의 연옥도 이제 어찌 못하는 ‘부동산 자본주의’ 앞에서 온 세계가 주목하는 북핵문제도 조용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을 그저 ‘안보불감증’이라고 지탄하기 전에 한국 자본주의의 현주소와 미래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통일이후 구 동독지방에서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부동산사업에 뛰어 들었던 주위의 독일인들이 많이 도산했다. 부동산값이 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와이에 밀려들었던 일본의 부동산자금이 거품이 빠지면서 그 곳에 남기고 간 앙상한 건물도 많이 있다. 온 국민을 하나같이 신들리게 만드는 위력을 지닌, 흡사 전체주의적 모습조차 보이는 ‘부동산 자본주의’를 대신할 ‘인간적인 모습을 한 자본주의’의 길에 대해서 진지한 생각을 나눌 때다.
  • 소설 ‘프랑스가 도산한 날’ 현실화 될까?

    소설 ‘프랑스가 도산한 날’ 현실화 될까?

    |파리 이종수특파원|‘사회당 후보 세골렌 루아얄,2007년 프랑스 대통령 당선→부채 증가→2007년 대선 패배한 집권당 니콜라 사르코지,2012년 대통령 선출→2014년 국가부도….’ 물론 현실이 아니다. 루아얄이 사회당의 대선후보로 당선된 뒤 화제를 모으고 있는 ‘프랑스가 도산한 날’(그라세 출판사)의 내용이다. 지난달 5일 출간, 지난 11일 서점가에 뿌려진 이 책은 현재 인터넷 도서 판매사이트인 아마존(www.amazone.fr) 종합도서 판매량 63위다. 파리의 대형서점 체인 ‘프낙’(FNAC)의 몽파르나스 매장측은 “한달 여 사이에 60여권이 팔렸는데 루아얄이 대선 후보로 선출 뒤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며 “유명 문학상 수상작품이 잇따라 출간된 상황에서 이 정도 판매량이라면 곧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양한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이 ‘가상 경제서’의 미덕은 ‘있음직한 허구’라는 점. 루아얄의 당선을 예상한데다 집권당 ‘대중운동연합’의 후보인 사르코지가 2007년 대선에서 우파의 분열로 패배한다는 것도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자크 시라크계 정치인들이 최근 사르코지에 포문을 여는 등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세계 5위권의 경제 대국 프랑스가 8년 뒤 부도가 난다는 충격적 내용이 보태져 관심을 모은다. 공동저자인 필립 자프레는 1993년부터 6년 동안 국영석유회사였던 ELF 회장을 지낸 경제통이다. 공동 저자인 필립 리에도 통화 전문가로 통하는 언론인이다. 이들은 해박한 경제 지식에 힘입어 프랑스가 도산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소설 형식을 빌려 생생하고 긴박하게 묘사한다. 대통령이 된 루아얄은 당 경선에서 패배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재무장관을 국무총리로 임명한다.(루아얄은 당선 확정 뒤 ‘단합’을 강조했다.)전 정권의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시절부터 쌓여온 국가부채는 사회당의 ‘선심 행정’으로 급증한다. 그 역풍으로 사르코지가 2012년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의 180%,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S&P는 프랑스 재무부가 발행한 채권을 ‘정크본드’로 분류했다.1주일 사이에 주식은 38% 폭락하고 은행이 연쇄 도산한다. 다음해 경제성장률은 15% 곤두박질치고 끝내 부도 사태를 맞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유철도회사 민영화, 지방자치단체 대폭 축소 등 대수술을 단행하면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요청한다. 프랑스의 자존심 ‘모나리자의 미소’마저 2억 7500만 유로(약 3300억원)의 가격으로 중국인 부호에 경매로 넘기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저자들은 “픽션이다. 누가 8년 뒤 일을 정확히 내다 보겠는가?”라면서도 “주인공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고 그들의 과거·현재에 보여준 공식 입장에 바탕하여 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5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의 프레데릭 르바는 “끔찍하지만 과다한 복지 예산 등 프랑스의 고질적 병폐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포퓰리즘 요소가 강한 정치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儒林(734)-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儒林(734)-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오직 이덕홍의 ‘간재문집’에만 기록되어 있는 퇴계의 마지막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퇴계가 숨을 거둔 그날은 하루종일 청명한 날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퇴계가 물었던 ‘내 머리맡에서 바람이 불고 비 소리가 들린다. 너도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라는 말은 생사가 갈라지는 순간에 남긴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대적 예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퇴계가 숨을 거둔 지 10여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의 전 국토는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격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혈풍혈우(血風血雨). 피의 바람과 피의 비가 쏟아지는 대란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퇴계의 이 말은 퇴계가 그토록 사랑하였던 조국에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였던 선지자의 묵시(默示)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덕홍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스승의 임종이 임박하였음을 직감하였다. 이덕홍의 예감은 정확하였다. 유시(酉時)가 가까워오자 퇴계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까 싶게도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정돈하도록 하였다. 유시는 12시 중에 10번째 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오 5시에서 7시의 시간. 이때 청명하던 날씨가 돌변하여 흰 구름이 집주위에 몰려들더니 갑자기 흰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상서로운 백설이었다. 어지러이 쏟아지는 눈발은 속세를 정화시키듯 순백의 세례로 온 산야를 흰빛으로 표백시켰다. 그때 퇴계는 좌우에 부탁하여 자신을 부축하여 일으키도록 몸짓하였다. 이덕홍과 조카 영이 계속 누워계시도록 만류하였으나 퇴계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부축하여 일어나 앉히자 퇴계는 방문을 열어주도록 손짓하였다. 몹시 추운 겨울날씨였으므로 조카 영은 멈칫거렸으나 스승의 임종을 직감한 이덕홍이 방문을 열도록 눈짓하였다. 방문을 열자 펄펄 내리는 눈발이 뒤덮인 도산서당의 뜰이 한눈에 드러났다.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은 퇴계는 물끄러미 그 뜰을 내려다보았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가 유시 초. 그러므로 퇴계가 숨을 거둔 것은 오후 5시에서 5시30분 사이의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앉아있던 퇴계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덕홍이 다시 부축하려고 손을 내민 순간 이덕홍은 스승이 숨을 거둔 것을 깨달았다. 스승의 몸에서 아직 온기는 남아 있었으나 숨은 어느새 끊겨져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덕홍은 떨리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승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제자들은 눈이 내리는 뜰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이덕홍의 입에서 부음을 알리는 기별이 전해지자 제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일제히 눈을 맞으며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 [부고]

    ●김영칠(대동관세사무소 대표)영석(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장)씨 부친상 오성복(초장교회 목사)윤혁준(신성대 교수)씨 빙부상 10일 충남 아산 온양장례예식장, 발인 13일 오전 9시 (041)546-7299 ●지상진(전 동일트레이딩 대표)씨 별세 정석(더패이스샵 코리아 부장)승신(삼성생명 차장)씨 부친상 박희정(대한항공 사무장)씨 시부상 남봉현(재정경제부 산업관세과장)씨 빙부상 10일 서울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2072-2018 ●이홍희(재미 사업)정희(〃)윤희(SK건설 상무)씨 모친상 박재영(사업)씨 빙모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5시20분 (02)3010-2292 ●김찬균(대한야구협회 심판위원)씨 부친상 10일 춘천 강원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33)258-2276 ●정유석(대신증권 대리)씨 부친상 원진영(밀레니엄서울힐튼 대리)씨 시부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3010-2235 ●노현우(군인공제회 공우ENC 감사)씨 별세 재승(현대자동차 연구원)재준(대림산업)씨 부친상 10일 목동이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2)2650-2741 ●유종현(군인공제회 차장)장현(남양주시청 과장)씨 모친상 10일 태릉성심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978-7299 ●홍성기(대석코퍼레이션 대표)씨 모친상 10일 을지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30분 (02)970-8444(교환 2호실) ●안재욱(공인회계사)씨 부친상 심창보(동양물산 중국지사장)윤융근(주간동아 기자)씨 빙부상 10일 청주의료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43)279-2768 ●이종호(선풍공업 실장)종구(전 한나라당 총재 특보)씨 모친상 조용왕(진도산업 대표)씨 빙모상 1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92-0299 ●이창호(전 스포츠조선 야구부장)씨 부친상 10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2일 오전 11시 (02)590-2697 ●황남재(인천공항세관 홍보담당관)씨 모친상 10일 경상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10시 (055)750-8440
  • 자동차 대리점도 ‘변신’ 바람

    자동차 대리점도 ‘변신’ 바람

    프랑스 파리에 가면 샹젤리제 거리에 이색 아틀리에가 있다. 자동차도 팔고 음식도 파는 전시장 겸 식당이다. 세계적인 자동차그룹 ‘르노’에서 운영하는 아틀리에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 대리점 파괴 바람이 불고 있다. 대리점 하면 차만 진열해놓은 공간을 떠올리지만 이제는 골프연습장, 수면실, 인공암벽, 오토카페 등 ‘테마가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심지어 패션쇼, 모델 선발대회도 열린다. 대리점에서 차만 파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물론 근간은 고객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 차를 한 대라도 더 팔려는 전략이다. ●골프 연습도 하고 잠도 자고 르노삼성차의 ‘오토 카페’가 대표적이다. 서울 성수·도봉, 인천, 대전 등 전국 9개 직영매장 2층에 골프 연습장을 갖춘 카페를 마련했다. 차를 둘러보는 동안이나, 수리를 맡겨 기다리는 동안 골프 스윙 연습을 할 수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공간은 수면실이다. 쪽잠이 아쉬운 택시기사나 직장인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GM대우의 부평영업소도 카페 같은 분위기다. 투명 인테리어에 넓은 공간을 확보해 기존의 대리점 이미지를 없앴다.GM대우에서 나오는 전 차종을 갖다놓았음은 물론 그 차종에 어울리는 각종 액세서리도 ‘코디’해 놓았다. 포드의 서울 도산대로 전시장에는 높이 8.4m짜리 인공암벽이 있다. 암벽타기 강습도 무료로 해준다. ●차가 하늘에? 닛산 인피니티는 ‘진열’에서 파격을 시도한 예다. 통상 1층에 차를 전시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건물 꼭대기(5,6층)에 차를 올려다 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쉽게 차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 차와 그림이 함께 있는 갤러리 전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 서울 서초동 전시장은 유리공예 아티스트 김정석씨의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마크 레빈슨룸’에서는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마크 레빈슨)로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 실황을 즐길 수 있다.BMW의 서울 성산서비스센터는 책이 있는 공간으로 유명하다.BMW가 펼치고 있는 ‘북 크로싱(책 돌려보기)’ 캠페인 덕분에 매달 새로 배치되는 인기도서를 볼 수 있다.2000만원짜리 체지방 측정기와 와인바가 있는 푸조의 청담동 전시장도 눈에 띈다. ●현대차등 국내업체도 ‘역발상´ 시동 상대적으로 ‘변신’에 소홀했던 현대·기아차는 최근 대리점 인테리어에 눈돌리기 시작했다. 수입차 전시장이 많은 서울 강남일대 대리점을 중심으로 값비싼 홈시어터 시스템을 들여놓았다. 르노삼성차 박수홍 영업본부장은 “업체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단순히 차만 파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며 “아직은 수입차업체들이 더 적극적이지만 국내 업체들도 대리점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지역경제·복지 현안사업 증액 뚜렷

    광역자치단체의 내년도 예산 윤곽이 잡혔다. 지역경제 살리기 등 현안사업에 대한 증액 편성이 무엇보다 두드러진다.●부산…복지분야 27.8% 늘려 9603억원 내년 예산은 6조 608억원으로 올해보다 15.1% 증가했다. 지하철 운영권이 부산시로 넘어오면서 부채상환 등을 위한 도시철도특별회계가 3818억원에서 8712억원으로 늘었다. 전략산업 육성과 복지분야 투자비가 8603억원과 9603억원으로 올보다 각각 6.9%,27.8% 늘었다.●경남… 성장동력산업·핵심전략사업 중점 육성 예산은 4조 2863억원으로 편성됐다. 올해에 비해 10.7%가 증가한 것으로 일반회계가 3조 4816억원, 특별회계 8047억원이다. 사회복지 분야가 1조 119원으로 올해보다 24.3% 늘었다. 삶의 질 개선과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 및 핵심전략사업 추진에 중점을 뒀다 ●대전… 캠퍼스타운등 민선4기 역점사업에 `무게´ 올보다 7.9% 증가한 2조 2385억원을 편성했다.3대 하천 생태복원(72억원)과 판암동 재개발사업인 무지개 프로젝트(44억원), 캠퍼스타운 조성(6억원),U-턴 프로젝트(55억원) 등 민선 4기 역점사업 대부분이 신규 사업비로 포함됐다. 과학기술, 소외계층 복지향상, 주거환경개선 분야 등에도 증액 편성됐다.●충남… 복지공동체 구축에 5615억원 투자 올보다 12.7% 증가한 3조 5420억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4876억원 ▲농수산업 선진화 5525억원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 1479억원 ▲복지공동체 구축 5615억원 ▲쾌적한 자연환경 구축 2536억원 등이다. 영상미디어 사업화센터 건립과 자동차부품산업 연구개발체제 구축 등 지역선도산업 육성에 중점을 뒀다.●광주… 도시기반시설 구축 4000억원 편성 올보다 6.8% 증가한 2조 3277억원으로 편성됐다. 생산도시건설 3500억원, 문화중심도시 육성 2200억원, 생태도시 2500억원, 도시기반시설 구축 4000억원, 시정혁신 3300억원 등이다. 내년 10월 열리는 전국체전 340억원, 시내버스 준공영제 145억원 등이 신규로 책정됐다.●전남… 1조 3000억원 들여 사회복지 활성화 3조 9400억원을 편성했다. 해남·영암 관광레저도시(J프로젝트)와 무안 산업교역형도시 등 기업도시 착공에 역점을 둔다. 또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등 과학산업 육성 등에 1500억원을 투입한다. 노인 등 저소득 계층을 위한 사회복지분야에 무려 1조 3000억원을 쏟아붓는다. 권역별 특화산업 육성과 고속도로·항만·공항 등을 잇는 접속도로망 확충으로 접근성을 높인다.●전북… 기업 유치·산업기반 확충 역점 올보다 18.9% 증가한 3조 1331억원으로 처음 3조원을 넘었다. 사회복지분야가 6271억원으로 가장 많고, 농어촌지원 5001억원, 건설교통 3496억원, 보건환경 2634억원 등으로 책정됐다. 특히 기업유치·산업기반 확충 등 지역경제 활성화 분야에 39.8% 증가한 1434억원을 배정했다.●대구… 서민경제·성장동력산업 우선 14.6% 증가한 3조 8840억원. 모바일 소프트웨어 집적단지 90억원, 중소기업 지원 550억원, 재래시장 정비 149억원 등 미래 성장동력 산업 육성과 서민경제 활성화에 역점을 뒀다.●경북… 산업경제분야 51.3% 증액 13.7% 증가한 3조 9086억원으로 편성됐다. 낙동강프로젝트 및 경북투자펀드조성 등 민선4기 7대 전략사업 추진에 430억원을 투입한다. 산업경제 활성화 부문에 51.3% 증액하는 등 미래성장동력산업 육성과 산업·경제활성화에 역점을 뒀다.●제주… 특별자치도 원년, 실제 증가액 미미 제주특별자치도 원년 예산이 올보다 11% 증가한 2조 3000억원으로 가시화됐다. 특별도 첫 예산치곤 평년작이란 평가다. 제주지방해운항만청과 국도유지건설사무소 등 국기기관 이양에 따른 예산과 자치경찰 출범 등 고정예산 1600여억원을 빼면 실제 증가액은 미미한 수준이다.전국종합·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儒林(731)-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2)

    儒林(731)-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2)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2) 그러므로 주역에 실려 있는 64괘의 대성괘 중 퇴계의 운명을 암시하는 ‘지산겸’ 괘야말로 군자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자를 비롯한 정이천과 같은 송 대의 초기 유학자들이 이 ‘겸괘’에 대해서 나름대로 해설을 가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먼저 이 괘에 대해 주자는 이렇게 풀이하였다. “겸(謙)이란 가지고 있으면서 가진 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순한 것이 겸의 뜻이다. 산은 지극히 높고 땅은 지극히 낮은 것인데 이제 높은 것이 굴하여 그 낮은 것 아래에 그쳤으니, 겸의 상(象)이다. 점치는 자가 이러하면 형통하여 끝이 있으리라. 끝이 있다는 말은 먼저 굴했다 다시 펴진다는 뜻이다.” 그뿐인가. 정이천 역시 이 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겸은 형(亨)이 있는 도이다. 덕이 있으면서도 있는 체 아니 하니, 겸이라 이르는 것이다. 사람이 겸손으로 자처하면 어디에 간들 형통하지 않겠는가.‘군자는 유종하리라.(君子有終)’라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즉 군자는 겸손에 뜻을 두고 이치에 통달하므로 천(天)을 즐기어 경쟁을 아니 하고, 안으로 충실하므로 퇴양(退讓)하여 자랑을 하지 아니하며, 겸손함을 편하게 지키어 종신토록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낮추면 남이 더욱 존경하고 스스로 낮추면 덕이 더욱 빛나게 드러나니, 이것이 이른바 군자가 ‘끝(終)’을 가진다는 뜻인 것이다.” 정이천의 표현대로 퇴양하고 퇴양하여 스스로의 호를 퇴계로 지었던 이황. 주역의 팔괘는 고대중국의 복희(伏羲)라는 어진 임금이 황하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을 보고 계시를 얻고, 다시 하늘의 천문과 지리를 살펴서 만물에 각자 마땅한 바를 관찰하여 만든 것으로 그렇다면 퇴계가 ‘군자유종’의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겸괘는 하늘이 점지한 천기가 아닐 것인가. ―돌아가신다. 스승께서는 군자유종의 미를 거두신다. 마침내 주역을 통해 하늘의 천기를 알아낸 제자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모두 숨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행여 병석에 누운 퇴계가 들을까 곡성은 터져 흐르지 아니하였으나 일순 도산서당은 침통한 슬픔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기록이 ‘간재문집’ 속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2월7일. 스승께서 이덕홍을 불러 서적을 맡으라고 지시하셨다. 퇴계선생의 병세가 너무 위독해서 제자들이 점을 쳤는데, 겸괘의 ‘군자유종(君子有終)’이란 점사(占辭)를 얻고 모두 아연실색하였다. 스승 퇴계의 종언(終焉)이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파산신청뒤 번 돈으로 집 사도 될까

    Q6개월 전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습니다.1주일 전쯤 파산 선고를 받고 면책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산신청 뒤 1000만원 넘게 현금을 모았습니다. 버는 돈이 다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게 되더군요. 곧 면책결정을 받으면 제 앞으로 집을 사놓을까 생각 중입니다. 전세 7000만원 끼고 제 전재산 1000만원을 투자하면 살수 있는 8000만원대 집이 나왔습니다. 제 벌이로는 앞으로 집값이 오르면 장만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집을 사도 될까요. - 지돈희(43) A법률적인 문제도 있고, 올바른 투자인지 결정해야 할 문제도 있으니 신중하게 결정해야겠습니다. 첫째로 채권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고, 둘째로 새로 채무를 얻어 투자를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십시오. 통합도산법 382조 1항은 “채무자가 파산선고 당시에 가진 모든 재산은 파산재단에 속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지돈희씨가 파산신청을 했더라도 파산선고 전에 벌어서 모은 돈은 법률상 채권자들에게 돌아가야할 파산재단의 범위에 속하게 됩니다. 파산선고가 신속히 이뤄지면 별 문제가 없지만, 법원의 재판이 지연되면 채무자의 새 출발을 저해하게 되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파산신청시를 기준으로 그 이후 소득을 원칙적으로 채무자에게 귀속시키지만, 우리는 법을 개정하면서 그저 과거를 답습해 이런 불합리가 생기게 됐습니다. 물론 실무상으로는 파산신청 뒤에 생긴 재산에 대해 묻지 않으니, 사실상 신청시 기준으로 채무자가 활동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면책이 된 뒤 채무자가 새 재산을 취득해 파산 채권자의 주의를 끌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통합도산법 569조 1항은 채무자가 사기파산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거나 채무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면책을 받으면 파산 채권자가 면책 후 1년 이내에 면책의 취소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돈희씨의 경우 사기파산 규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파산선고까지 파산재단에 속할 재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지돈희씨가 부정한 방법으로 면책을 받았다고 주장할 여지는 남게 됩니다. 물론 불합리한 법조문 때문에 실제로 채권자가 면책취소 신청을 하더라도 법원이 반드시 지돈희씨의 면책을 취소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법적으로 공격받아 이에 응소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됩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은 새 부채를 부담하는 것이라는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즉 집을 산다고 하지만 지돈희씨의 몫은 1000만원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7000만원은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부담입니다. 세입자가 나갈 때 이 보증금은 돌려줘야 하는 채무가 됩니다. 이를 확보할 자신이 없으면 나중에 곤경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또 집값이 오를 수도 있지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만일 집값이 6000만원이 되면 팔아도 세입자에게 1000만원을 더 얹어줘야 합니다. 통합도산법 564조 1항4호에 따라 원칙적으로 파산, 면책을 받고 7년 동안에는 새로 파산, 면책을 할 수 없습니다. 한번 면책을 받는 사람이 다시 부채를 지는 것은 위험하고 치명적인 투자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집값이 급등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자율을 정책적으로 낮게 유지한 탓도 큽니다. 앞으로 하락이 예상된다고 한다면 지돈희씨의 선택은 나중에 보면 어리석었던 결정일 수 있습니다. 신중한 결정을 권합니다.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북 경주 남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북 경주 남산

    삼천리 방방곡곡 아름답지 않은 곳 어디 있을까마는 경주는 단연 돋보인다. 언제 찾더라도 식상하지 않은 여유와 부드러움,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신라인의 체취와 함께 남산(南山)이 있다. 그리 높지도 험악해 보이지 않는 남산엔 수많은 불적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신라 법흥왕 14년(527년) 불교가 공인된 뒤로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받들어져 수많은 절과 탑, 불상이 조성되었다.‘절들은 별처럼 벌여있고, 탑들은 기러기 날아가듯(寺寺星張 塔塔雁行)’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세월은 아득히 흘렀지만 골골에선 여전히 그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포석정을 뒤로 하고 부흥골을 오른다. 구불텅하게 높이 뻗어있는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향수병에서 향기가 번져나듯 솔향기가 짙게 배어난다. 부흥사 이르기 전 만나게 되는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넓은 연꽃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 평안하다. 부흥사 남쪽 늠비봉 넉넉한 봉우리 위엔 늠비봉 5층석탑이 태양빛을 받으며 서있다. 그 모습을 보며 당시 웅장했을 남산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늠비봉 위쪽 금오정에 오르면 외동평야부터 경주 시가지까지 옛 화려했던 서라벌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주능선을 따라 금오봉을 향한다. 임도로 이어진 능선길 덕에 남산의 심원한 맛이 퇴색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 삭막한 능선길이 사라진 신라의 허망함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오른편 멀리 보이는 상선암 마애대좌불. 거대한 자연 암반에 조각된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란다. 불상을 만나려면 냉골로 내려서야 하는데, 지금까지 오른 것이 아깝다고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상선암과 금오봉 사잇길은 조망하기에 좋다. 이쯤에서 바라보는 마애대좌불 바위절벽도 좋고, 너른 배리들판의 모습도 시원하다. 그 너머 망산이 있고 벽도산·단석산 그리고 주변 봉우리의 어울린 모습이 마치 다도해의 섬을 연상시킨다. 금오봉(468m)에 섰다. 높이로 치자면 남산 최고봉은 고위봉(494m)이지만, 주봉은 이곳 금오봉이다. 때문에 이곳 금오봉을 목표로 남산을 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오른쪽 용장골로 내려서는 길. 벼랑 끄트머리엔 산 전체를 기단 삼아 세워진 용장사지 3층석탑이 세상을 내려보며 서있다. 그리고 아래쪽 등성이에는 황남빵을 쌓아놓은 듯 삼륜대석불좌상이 있고, 옆쪽 바위벽엔 엄격하면서도 자비로운 모습의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한 신라인의 지혜로움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이처럼 남산의 여러 유적들은 자연과 가깝다. 눈비를 맞게 하지 않기 위해 바위 처마 아래 불상을 조각했고, 놓여진 바위를 하층기단 삼아 그 웅장함을 표현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들은 박물관에 있으면 미완성이지만 이 봉우리 위에서는 완성품’이라 했던가. 용장사지에 섰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7년간 기거하며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용장사는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람으로, 천년 긴 세월 동안 향연이 그치지 않던 곳이었다지만, 지금은 텅 빈 한쪽에 자리한 표지판만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줄 뿐이다. 부흥골을 거쳐 늠비봉∼금오정∼금오봉을 거쳐 용장골로 하산할 경우 산행시간은 6시간 정도 소요된다. 글 사진 김도훈(월간 MOUNTAIN 기자) www.emountain.co.kr
  • 儒林(728)-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9)

    儒林(728)-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9)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9) 이덕홍의 울음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누구보다 스승의 몸과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었던 이덕홍이었으므로 이덕홍의 갑작스러운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자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덕홍의 슬픔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제자들은 모두 농운정사에 모였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평소에 머물고 잠을 자던 집인 지숙료(止宿寮). 그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함께 모인 것은 스승 퇴계의 운명에 대해 주역을 통해 점을 치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은 이따금 서당에서 주역을 통해 점괘를 얻곤 하였다. 주역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일찍이 공자는 ‘책을 엮은 죽간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韋編三絶)’ 정도로 주역을 탐독하였으며,‘내게 몇 년의 수명이 더해져 주역을 공부해 나가면 흉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소중히 여겼는데, 이는 공자가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보기보다는 우주원리를 꿰뚫는 철학과 수양의 책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퇴계도 젊은 시절 공자처럼 몸이 상할 만큼 주역에 심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역은 이처럼 심오한 철학서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점서(占筮). 따라서 도산서당에서는 이따금 퇴계를 필두로 주역을 통해 점괘를 얻곤 하였던 것이다. 특히 이덕홍은 주역에 밝아서 생전에 ‘주역질의(周易質疑)’란 역학 책을 저술하였던 문인. 그러므로 이덕홍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한데 모여 스승의 운명을 주역을 통해 점을 쳐보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 의식은 역학에 밝은 이덕홍이 집전하였다. 이덕홍은 산통(算筒)을 꺼내왔다. 산통은 점칠 때 쓰는 기구로서 그 안에 대나무로 만든 산가지(算本)를 넣어두는 통이었는데, 서당에 항상 비치하고 있었던 물건이었다. 이덕홍은 산통 속에서 서죽(筮竹)이라고 불리는 점치는 산가지를 꺼내었다. 산가지의 숫자는 50개가 정량. 그 중 한 개는 태극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여 제쳐놓고 49가지만 사용하는 것이 상례였다. 왜냐하면 유학에 있어 태극은 천지만물의 가장 근원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였으므로 제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덕홍은 서죽을 꺼낸 후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달래었다. 이는 이덕홍의 행동을 지켜보는 모든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주역을 통해 점을 칠 때에는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몸가짐이었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마음을 갖거나 부정한 일을 위해서 점을 치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바른 계시를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역은 천지신명의 바른 법칙을 본받아 그 이치에 순응함으로써 계시를 얻는 것이므로 부정한 일을 위한 점은 주역의 원리를 반역하는 일이며 또한 같은 일로 두 번, 세 번 점을 치거나 주역의 결과를 의심하는 것은 상천(上天), 즉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로 금기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양재천 영화 촬영 가능합니다”

    서울 강남구(구청장 맹정주)는 6일 양재천, 도산공원 등 강남구 내의 주요 명소들을 영화 촬영장소로 적극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강남구 관계자는 “대형 장비를 사용해 시민들의 양재천 이용을 크게 방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영화촬영을 적극 지원해 왔다.”면서 “양재천뿐 아니라 강남구 내의 명소들을 국내외에 알릴 수 있는 영화촬영 등에 적극 협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 양재천 대치교 철거공사와 일부 보행로 우레탄 포장공사 등으로 일부 영화촬영을 불허했지만 공사가 끝나면 적극 수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남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양재천은 하천복원의 성공사례다.10년 전만해도 생활하수가 흘러드는 시궁창에 지나지 않았으나, 강남구가 3.75㎞(영동2교∼탄천합류부) 정비사업을 통해 자연형 생태공원으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영화 촬영 장소로도 인기다. 실제로 양재천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마라톤을 연습하는 장면은 영화 ‘말아톤’에서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강남구는 영화촬영 등에 따른 안전사고 방지와 시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촬영시에는 양재천관리사무소(445-1416)와 사전 협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儒林(727)-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8)

    儒林(727)-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8)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8) 퇴계가 얼마나 서적을 사랑하고 독서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던가는 61세 때 도산정사에서 읊은 ‘산당야기(山堂夜起)’란 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산은 텅 비고 온 집이 고요하고 밤이 차갑더니 서리 기운 높으니라.(山空一室靜 夜寒霜氣高) 외로운 베개 위에 잠 못 이루니 일어나 정좌하고 옷깃을 바루노라.(孤枕不能寐 起坐整襟袍) 늙은 눈 부벼 뜨고 가는 글자 보려 하니 짧은 등경 촛불 켜고 여러 차례 돋우네.(老眼看細字 短煩屢挑) 글이라 그 가운데에 참된 맛 심어 있어 살찌고 배부름이 고기보다 낫더구나.(書中有眞味 沃勝珍)” 살찌고 배부르니 고기보다 더 나았던 글. 그 가운데 참된 맛이 심어 있던 서적. 마침내 퇴계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서적들을 애 제자 이덕홍이 맡아 주도록 당부하였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제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침통한 얼굴로 이덕홍이 말을 하자 퇴계는 손을 들어 벽 한 구석을 가리켰다. 뭔가 말을 하려 하였으나 기진하여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덕홍은 스승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청려장(靑藜杖). 퇴계가 평소에 사용하던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 평소 산책을 즐겨하였던 퇴계는 책을 읽다 지치면 청려장을 끌고 서당의 이곳저곳을 소요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유물각에 남아 전시되고 있던 지팡이는 명아주 풀의 줄기들을 잘라낸 옹이가 울퉁불퉁하게 매듭지어져 있어 품격을 더하고 손에 들어도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단단한 지팡이였다. 순간 이덕홍은 스승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이제 다시는 일어서서 지팡이를 짚고 산책할 수 없는 퇴계로서는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그 지팡이를 만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스승의 심사를 알아챈 이덕홍은 청려장을 끌어다가 퇴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까 싶게도 퇴계의 손이 지팡이를 힘껏 감아쥐었다. “빨리 쾌차하십시오, 선생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덕홍이 말하였다. “청려장을 드시고 절우사 뜰에서 백설처럼 피어난 봄 매화꽃을 보시옵소서.” 순간 퇴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형언할 수 없는 깡마르고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에 황홀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찬란한 봄이 찾아와서 절우사(節友社) 뜨락 앞에 백설처럼 피어난 매화꽃을 바라보는 듯한 환희의 얼굴이었다. 꿈이라도 꾸고 계시는 것일까, 하고 이덕홍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퇴계의 손에서 지팡이가 스르르 굴러 떨어졌다. 이덕홍은 지팡이를 다시 벽 구석에 세워 놓으며 뒷걸음으로 완락재를 물러나왔다. 방 앞에는 많은 제자들이 이덕홍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병세는 좀 어떠하신가.” 그 순간 이덕홍은 이를 악물고 숨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 아들나무 네그루, 정이품송 곁 떠난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正二品松)이 네 아들을 분가시킨다.1일 문화재청과 충북 보은군에 따르면 정이품송 보호 울타리 안에서 자라는 다섯 그루의 자목(子木) 중 성장속도가 빠른 네 그루를 내년 3월 정부대전청사 옆 천연기념물 보호센터와 속리산 인근 소나무공원(솔향공원) 등으로 옮겨 심을 예정이다. 이 나무들은 도산림환경연구소가 1980년 정이품송에서 채취한 솔방울의 씨를 싹틔워 탄생시킨 것으로 열다섯 해 되던 1996년 충북 개도 100주년을 맞아 어미 곁으로 옮겨졌다. 그 뒤 산림청과 충북도가 고사위기에 처한 정이품송의 대를 잇기 위해 강원도 삼척 준경릉(濬慶陵) 소나무와 정부인송(천연기념물 352호) 등을 신부로 맞아 후계목 생산에 나서기까지 명실공히 장자(첫 후계목)로서 지위를 확고하게 누려왔다. 도산림환경연구소 이귀용(50) 연구사는 “이들 나무는 자연수정됐지만 정이품송 씨를 받은 1대 자목”이라며 “당시 여덟 쌍둥이 형제가 태어나 5그루는 어미품으로,2그루는 충북도청 정원으로 옮겨지고 현재 산림환경연구원에는 1그루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10년간 함께 살던 어미 곁을 떠나는 것은 훌쩍 자란 키 때문. 해마다 30㎝ 이상 성장하며 평균키가 4∼5m에 육박하는 데다 뿌리도 점차 왕성해져 더 놔둘 경우 어미 생육에 지장을 줄 우려가 높다. 이뿐 아니라 다섯 나무가 둥글게 어미를 둘러싸고 자라 몇해 전부터 정이품송의 고고한 자태를 가리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보은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儒林(72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儒林(72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퇴계가 실질적인 유계(遺戒)를 내린 것은 다음 날인 12월4일이었다. 이날은 마침 퇴계의 병세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자 퇴계는 주위를 물리치고 조카 영(寗)을 불러 자신의 곁에 앉게 한 다음 지필묵을 준비토록 하였다. 이때의 장면이 ‘퇴계언행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2월4일. 병이 조금 덜해진 틈을 타서 좌우를 물리치시고 조카 영에게 유계를 받아 적게 하셨다. 기침 소리가 심하였는데, 좌우를 물리치고 말씀하실 때에는 문득 질병이 몸에서 떠난 듯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쓰기를 마치자 직접 한번 읽어보시고는 영에게 봉하고 서명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런 뒤에야 기침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퇴계의 유계는 그가 죽은 후에야 밀봉이 뜯기고 공개되었다. 퇴계가 남긴 유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국장(國葬)을 쓰지 말라. 해당 관청에서 규례에 따라 국장을 청하면 반드시 유명(遺命)이라 말하고 상소하여 고사토록 하라. 2. 유밀과(油蜜果)를 쓰지 말라. 과일은 넉넉지 못할 것이니 간소하게 한 단씩만 차리고 그 외에는 일절 쓰지 말도록 하라. 3. 비석(神道碑)을 세우지 말라. 다만 작은 돌에다 그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쓰고, 그 뒷면에는 향리(鄕里)·세계(世系)·지행(志行)·출처(出處)의 대략을 ‘가례(家禮)’에 언급된 대로 간략하게 순서대로 기록해라.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짓게 하면 기대승처럼 서로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실속 없는 일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뜻한 바를 스스로 적고자 하여 먼저 자명문(自銘文)을 지었으나 그 나머지는 미루다가 마치지 못했다. 그 초고가 여러 원고들 중에 섞여 있을 것이니 찾아서 쓰도록 하라. 4. 선세(先世)의 묘갈(墓碣)을 세우는 일을 마치지 못하고 이렇게 되니 영원한 한이 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이 이미 갖추어져 있고, 형편도 어렵지 않으니, 반드시 문중 사람들과 의논하여 새겨서 세워라. 5. 동쪽의 작은 집은 본래 너(퇴계의 맏아들 준을 가리킴)에게 주려했고, 적(寂)을 위하여 따로 작은 집 한 채를 짓고 있었는데, 반도 못 짓고 이렇게 되었다. 적의 모자는 가난해서 반드시 완성하지 못할 것이니, 네가 맡아서 집을 완성해주면 정말 좋겠다. 만약 형편이 어려우면 차라리 네가 그 재목과 기와 등의 물자를 가져다가 재실(齋室) 등에 사용하고 적 모자에게는 이 집을 그대로 주는 것이 좋겠다.” 퇴계의 유계는 지금도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도산의 동쪽 끝자락인 청량산 쪽으로 달려 나와 온계에서 흘러내린 퇴계의 물이 하계마을에 이르러 낙천물과 합쳐지는 지점을 직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지산 기슭에 묻힌 퇴계의 묘소 앞 비석에는 다만 다음과 같은 10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도산으로 물러나 만년을 숨어산 진성이씨의 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 ‘영원한 박치기왕’ 故김일씨 일생과 빈소표정

    ‘영원한 박치기왕’ 故김일씨 일생과 빈소표정

    김일씨의 을지병원 빈소에는 아들 수안(56)씨와 첫째 딸 애자(61), 둘째 딸 순희(59)씨 등 친인척, 제자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회장 등 지인 30여명이 모여 김씨의 임종을 지켰다. 박재호 국민체육공단 이사장이 노웅래 국회의원, 이대표 등과 함께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닛칸 겐다이’ 등 일본 언론들도 이 곳을 찾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씨는 1960∼70년대 안방극장의 슈퍼스타였다. 당시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한 흑백TV의 힘을 빌려 프로레슬링은 당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고,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면 사람들이 빼곡히 몰려 들어 ‘링위의 결투’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코너에 몰리다 통쾌한 박치기 한방으로 외국선수들을 넘어뜨리는 김일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찌든 가난을 잠시 잊었다. 김씨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195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프로레슬링 최고의 스타 역도산(본명 김신락)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오키 긴타로(大木 金太郞)란 이름으로 일본 프로무대에 데뷔했다.196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으로 등극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2년 뒤 자신의 신원보증인이기도 한 스승 역도산이 사망하자 곧바로 귀국, 이때부터 각종 국내외 타이틀 매치를 벌이며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70년대 중반 김씨는 자신과 함께 역도산의 3대 수제자였던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신지) 등 일본에서 활동하던 프로레슬러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타이틀전을 치르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김씨가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박정희 정권’의 지원이 깔려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재건을 위해 스포츠영웅을 필요로 했던 당시, 정권이 김일을 적임자로 선택했다는 얘기다. 어쨌든 ‘김일’이라는 든든한 스타를 가진 프로레슬링은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레슬링의 폭발적인 인기도 사회변화에 따라 서서히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80년 들어 야구를 시작으로 축구, 씨름 등이 프로화의 길을 걸었고, 그 사이 김씨를 이을 걸출한 후계자를 만들어내지 못한 프로레슬링은 쇠퇴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은퇴한 김일은 1984년 노구를 이끌고 ‘제2의 중흥’을 위해 링에 다시 올랐지만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후 사업가로의 변신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후 급격히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진 김씨는 1991년 30여년에 걸친 무수한 박치기의 후유증과 고혈압 등 합병증으로 병상에 누웠다. 서울 상계동 을지병원의 도움으로 입원,1994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투병생활을 해 왔다. 을지병원 측은 아예 고정 병실을 내줬고, 김씨는 재혼한 부인 이인순(60)씨와 5평 남짓한 병실에서 신혼같은 살림을 꾸려 왔다. 13년의 병원 신세였지만 최근 김씨의 행보는 건강한 사람 못지 않았다. 고향 후배인 류화석(54) 전 현대건설 배구팀 감독과의 인연으로 배구팬이 된 김일은 지난해 2월 프로배구 원년 개막전에 참석, 수 년만의 바깥 나들이를 시작했다. 또 올 초에는 국내 한 방송사의 일본 일주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당시 예선을 치르고 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을 만나 선동열 삼성 감독과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지난 9월10일에는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WWA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기 위해 링을 찾았고, 직후 바로 옆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SK-LG전에 시구를 자청, 휠체어를 타고 공을 던지는 등 스포츠에 대한 식지 않은 애정과 노익장을 과시했다. 김씨는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후한 대접을 받았다.1995년 4월 도쿄돔에서 6만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다. 이후 국내 은퇴식이 추진됐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뤄지다 2000년 3월 지인들의 힘을 빌려 장충체육관에서 조촐히 거행됐다. 김일은 이날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아 어려운 시절 국민들의 시름을 덜어준 공로를 조금이나마 인정받았다. 최병규 박준석기자 cbk91065@seoul.co.kr
  • 儒林(72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儒林(72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 경오년(1570년) 12월7일. 도산서당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서당 안은 퇴계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몰려든 70여명의 제자들로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지만 누구 하나 정적을 깨트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당을 오갈 때에도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만 걸어 예리성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비록 제자들은 입을 열어 말을 나누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스승 퇴계가 이번 병에서 일어나 쾌차하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퇴계의 병은 위독하였다. 지난 11월9일 가묘에서 시향을 올릴 때 ‘내가 이제 늙어서 살아있는 날이 많지 않으므로 불가불 제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며 손수 독()을 받들고 제물을 올리며 제사를 주관한 이후 감기에 걸렸던 퇴계는 그러나 계속된 무리로 병세가 악화되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스승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온계로 온 것은 12월2일. 이덕홍은 퇴계가 가장 사랑하던 애제자였다. 이덕홍은 퇴계보다 40년이나 연하의 제자였으므로 제자라기보다는 퇴계의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퇴계는 이덕홍을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특히 이덕홍은 10살 때 퇴계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으므로 퇴계는 각별히 이덕홍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퇴계는 자신이 위중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친자식과 같은 이덕홍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이덕홍이 남긴 ‘간재문집(艮齋文集)’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12월2일. 병세가 더욱 위중해지셨다. 약을 드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내일은 장인(권질)의 제사니, 고기반찬을 쓰지 말라.’고 이르셨다. 이날 이덕홍은 퇴계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계상서당으로 와서 머물렀다.” 이덕홍(1541∼1596)은 조선중기의 학자로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였다. 10살 때 퇴계의 문하에 들어가 극진하게 퇴계의 사랑을 받았던 이덕홍은 훗날 이름난 선비 9명 중 4위에 뽑혀 벼슬에 올랐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세자를 모시고 성천까지 호종하였을 만큼 빼어난 충신이었는데, 특히 이순신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거북선’의 도안에도 참여하였다고 알려진 만큼 재능 역시 뛰어난 선비였다. 이덕홍이 얼마나 퇴계의 사랑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는 사실은 지금도 도산서원의 유물각 안에 안치된 혼천의(渾天儀)를 이덕홍이 스승의 부탁을 받고 직접 제작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성좌의 위치를 추정하는 과학기구인데, 이덕홍은 스승이 직접 설계한 도안대로 둥근 공모양의 천체를 대나무로 만들어 그 위에 종이를 바르고 수평으로부터 약간 기울어져 있는 나무대 위에 고정시켜 직접 만들었던 것이다. 퇴계는 생전에 이덕홍이 만든 혼천의를 바라보면서 우주만물의 운행과 별들의 위치를 관측하며 태극사상을 연구하였을 것이다.
  • 儒林(719)-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5)

    儒林(719)-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5)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5) 퇴계는 고봉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좌절하지 말고 큰 용기를 가지라는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로 편지를 이어간다. “…이 때문에 더욱더 수선스러워질 터이니 끝내 그냥 그만두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또한 이와 같으니 깊이 이상하게 여기며 탄식할 것은 못됩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 한 번의 일로 한가하고 고요하게 학문에 전념하려는 오랜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찍부터 세상에 굳건히 대항하여 자기 길로 나서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노여움을 샀는데, 지금 이미 늙어서도 오히려 세상에 얽매여 있습니다. 지난달 사직을 비는 글을 올렸으나 또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끝날 때가 있을지 모르겠으니 늘 스스로 슬퍼하며 탄식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物格)’와 ‘무극이면서 태극이다.(無極而太極)’에 대한 주장은 저의 견해가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그 고친 내용을 베껴서 그대에게 전하라며 김이정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전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듯하므로 지금 한 편을 다시 보냅니다. 아울러 헤아려 주십시오. 근심으로 마음이 어지러워 대충 적었습니다. 삼가 어려운 시절에 몸을 더욱 아끼고 학문의 성취를 게을리 하지 말아 시대의 소망에 부응하기를 바라면서 삼가 답서를 올립니다. 경오 11월17일 황은 머리를 숙입니다.” 마침내 퇴계는 마지막 편지를 끝낸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기다리고 있는 고봉이 보낸 사람에게 답장을 주어서 먼 길을 떠나도록 한다. 고봉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 지 닷새 뒤인 11월22일 퇴계의 병세는 갑자기 더욱 위중해진다. 이에 대한 기록이 몽재선생문집(蒙齋先生文集)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1월22일 병세가 더욱 위중해지셨다.” 마침내 깜박이던 퇴계의 명운은 죽음의 바람에 꺼지기 직전으로 다가온 것일까. 그리하여 원근의 제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에 대한 기록도 ‘겸암(謙菴)선생연보’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11월24일. 퇴계 선생이 마침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원근의 제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때 모인 제자들의 숫자는 70여명. 도산서당은 긴박감에 휩싸이며 초조하게 스승 퇴계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퇴계는 자리에 누워 운신조차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계가 고봉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퇴계가 고봉에게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는 메시지이자 유훈일 것이니, 그 마지막 편지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특히 어지러운 오늘의 난세에 지식인들은 퇴계의 최후설에 귀를 기울여 경청해야 할 것이다. “삼가 어려운 시절에 몸을 더욱 아끼시고 학문의 성취를 게을리 하지 말아, 시대의 소망에 부응하시기를 바랍니다.”
  • 儒林(712)-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58)

    儒林(712)-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58)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58) 이러한 사실은 퇴계의 가서(家書)에서 전해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편에 기대승과 그의 아들이 부친 편지를 보내면서 사람을 유숙시키고 답장을 보내려고 하니 내일 일찍 답장을 부쳐 달라고 하였다.” 가서에 기록된 대로 퇴계는 그 다음날인 11월17일 아침 일찍 답장을 쓰기 위해 완락재에 앉았다. ‘완락재(玩樂齋)’란 당호의 명칭은 주자가 지은 ‘명당실기(名堂室記)’의 기문에 나오는 ‘경을 지니고 의를 밝히고 동과 정이 순환하는 공을 주돈이의 태극론과 합치시켜 족히 그것을 가지고 완상하고 즐겨 외부의 사모함을 잊는다.’라는 내용에서 ‘족히 그것을 가지고 완상하고 즐겨 외부의 사모함을 잊는다.(足以玩樂而忘外慕)‘라는 구절의 일부를 따와 퇴계가 직접 지은 것. 퇴계는 주로 도산서당에서도 이 ‘완락재’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독서를 하고, 글을 썼던 것이다. 완락재에 대한 퇴계의 각별한 사랑은 ‘도산잡영(陶山雜詠)’에서 ‘완락재’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음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공경을 주로 함은 또한 모름지기 의를 모으는 공부이니, 잊지도 말며 돕지도 말고 차츰차츰 두루 통달해야 하네. 주렴계의 태극의 묘리를 깨우쳐 이르게 되니, 비로소 믿겠네, 천년에 이어 내린 즐거움이 이 즐거움과 똑같은 것임을. (主敬還須集義功 非忘非助漸融通 恰臻太極濂溪炒 始信千年此樂同)” 비록 사구로 된 칠언절구에 불과하였지만 퇴계가 지은 완락재의 한시를 보면 퇴계가 얼마나 이곳을 사랑하고 이곳을 태극과 같은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가를 여실히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내용인 것이다. 즉, 한시에 나오는 ‘주경(主敬)’은 맹자의 ‘공손추 하편’에 나오는 ‘안으로는 아버지와 자식의 도리가, 밖으로는 임금과 신하의 도리가 사람의 큰 인륜이니, 부자간에는 은혜를 주장하고 군신 간에는 경을 주장한다.(君臣主敬)’라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고,‘집의공(集義功)’ 역시 맹자의 ‘공손추 하편’에 나오는 ‘호연지기는 의리를 많이 축적하여 생겨나는 것이다(集義所生者). 의는 갑자기 엄습하여 취하여지는 것은 아니니 행하고서도 마음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으면 호연지기는 굶주리게 된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던 것이다. ‘잊지도 말고 돕지도 말아야 한다.(非忘非助)’라는 말도 맹자의 ‘공손추 상편’에 나오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여 미리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야한다.(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는 내용에서 따온 것이었다. 또한 ‘이 즐거움과 똑같은 것임을(此樂同)’이란 마지막 구절 역시 주자가 지은 시 중에 나오는 ‘월왕성 아래의 물 철철 넘치고 이 즐거움 이제부터 뭇사람들과 함께하네.(越王城下水融融 此樂從今與衆同)’란 구절에서 차용해온 내용이었던 것이다.
  • [北 핵실험 파장] “핵실험후 외국거래처서 설비 빼라고 해”

    김근태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12일 개성공단 입주업체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전날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남북 경협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 이은 ‘2라운드’ 행사다. 북핵실험과는 관계없이 “개성공단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는 취지 아래 마련된 자리인 셈이다. 입주협의회 소속 30여개 업체 중 15개 업체의 20여명이 참석했다. 한 참석자는 “수십만명의 북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규모 공단이 될 수 있고, 통일의 기틀이 될 수 있는 사업”이라면서 “폄하하거나 중단을 주장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다른 참석자는 “북 노동자에게 준 임금이 핵을 만들게 했다는 것에 가슴이 찢어진다.”면서 “철조망 뜯고 기업 세웠는데 이를 거둔다면 한반도 정세는 더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북에서 배고파 죽는 사람도 봤고 동공 풀려 기대 앉아있는 사람도 봤다. 인도적 지원 멈추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핵실험 후 다들 말 바꾸는 걸 보고 정치인들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핵실험 이후 외국 주요 거래처에서 개성공단 설비를 빼라고 한다.”“개성공단이 남북 긴장 완화에 도움되는 건 왜 말하지 않나.”“개성공단 중단했다가 재개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무지한 말로 사업하다 중단하는 건 기업으로선 도산이다.” 등 불만과 우려가 쏟아졌다. 강봉균 정책위 의장은 이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은 안보사업”이라고 유지 방침을 거듭 밝혔다. 장영달 의원은 “금강산, 개성공단 철수하면 한 판 붙어보자는 걸로 북이 인식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거들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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