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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사랑 운동’ 실천한 ‘보통사람’/13일 열반한 ‘우리시대 최고의 선승’ 서옹 스님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사진) 스님이 13일 오후10시10분 전남 장성 백양사 설선당에서 입적했다.세수 92세,법랍 72세. 서옹 스님은 이날 오후 백양사 주지 스님과 시자들을 주석하고 있던 설선당으로 불러 후학들의 정진을 독려하는 법담을 나눈 뒤 열반송과 임종게를 남기고 좌탈입망(앉은 채로 열반)했다. 스님은 동국대 선학원장을 비롯해 도봉산 무문관,대구 동화사,문경 봉암사,장성 백양사 조실을 역임했으며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냈다.영결식과 다비식은 19일 오전 11시 백양사에서 조계종단장으로 봉행될 예정이다. 스님은 중국 선불교의 대가인 임제 선사의 정맥을 이어 ‘우리시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통하는 선승이었다.특히 상하 귀천이나 성인·범부를 초월해 본래의 선한 면목에 투철한 사람으로 거듭 나자는 ‘참사람 운동’을 주창해 실천한 ‘보통사람’이기도 하다. 191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양정고보에 재학중 무교회주의자였던 김교신 선생의 영향을 받아 ‘간디 자서전’을 읽다가 불교에 입문했다.이후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거쳐 1932년 백양사에서 만암(曼菴·1876∼1957) 스님을 은사로 출가,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의 지도를 받은 뒤 일본 교토의 인제대에 유학했고 이후 해인사 동화사 파계사 봉암사 등 여러 선방에서 정진을 거듭했다.체계적인 근대식 교육을 받았던 스님은 검증되지 않은 여러 수행법에 대해 우려,무엇보다 사람들이 참선을 근본으로 서로 자비심을 갖고 사리사욕 없이 참사람으로 살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참모습을 깨달아야 한다고 늘상 강조했다.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조사선’을 강조하면서도 “깨달음은 한 번의 견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화두참구를 통해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라며 수좌들에게 쉼없는 정진을 다그쳤다. 특히 “참선이야말로 인생문제가 다 해결되는 인간의 참모습인 만큼 공부하는 수좌들은 참선을 하면서 자기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중생까지 제도한다는 큰 원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이같은 신념에 따라 지난 98년부터는 백양사 고불총림에서 지위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승속(僧俗)이 한데 모여 서로의 경지를 묻고 답하는 무차선회(無遮禪會)를 2년마다 열어 왔다. 중생들로 하여금 불교에 대한 바른 믿음과 신심을 갖도록 하는데 힘썼던 스님은 ‘선과 현대문명’‘절대 현재의 참사람’‘임제록연의’‘참사람 결사문’‘사람’ 등의 저서를 남겼다. 김성호기자 kimus@ ●열반송 전문 雲門日永無人至/白巖山頂雪紛紛/一飛白鶴千年寂/細細松風送紫霞(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고/백암산정에 눈이 분분하네/한번 백학이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낸다.)
  • [데스크 시각] 금강산관광, 北결단 필요하다

    금강산 육로관광 버스에 몸을 싣고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녘땅으로 들어서며 주민들의 대하는 태도가 크게 부드럽고 여유로워졌음을 실감한다.도로변 북한군인들의 눈초리에도 적대감이 사라져있음을 보게된다. 구룡연,만물상 등산로를 오르내리며 만나는 안내원들중에는 남녘 등산객들과 갖은 농을 하며 너스레를 떠는 이들까지 생겨났다.“왜 이렇게 달라졌느냐.”고 농반진반으로 물으면 “달라진 것 하나 없다.우리를 보는 남측 사람들의 눈이 달라졌을 뿐”이라며 되레 큰소리를 쳐 웃게 만든다.목란관,금강원 등 온정리의 북녘식당 여종업원들 역시 손놀림이나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남녘 여인네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가 됐다. 물론 이라크전쟁을 어떻게 보느냐,핵문제는 미국 때문에 생긴 것이다 등등 하며 틈만 나면 도발적인 주제들을 들고 나오는 버릇은 여전하다.이들의 부드러워진 태도도 오케스트라처럼 어떤 큰 틀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는 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 5주년을 맞아 그곳에서 마주치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들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들은 사업에 임하는 북측 인사들의 태도에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이곳 관광버스 운전기사,호텔 종업원 등은 모두 중국동포들이다.초기 북측이 주민들이 받을 영향을 우려해,북한인력 공급을 배제시켰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는 고용창출의 중요성을 깨달아 청소인력을 북녘주민들로 채우겠다는 약속을 하고 임금협상이 진행중이라고 한다.현대아산 관계자들은 이제 어려운 고비는 지났다고 말할 정도로 희망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다.그쪽 사람들이 이처럼 변하고 있지 않느냐는 근거에서다.하지만 5년째를 맞은 금강산사업은 이제 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생각이다. 현대측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금강산사업에서 기록한 누적적자가 1조원이 넘고 올 상반기에만 306억여원의 적자를 냈다.금융비용과 감가상각비를 커버하려면 매달 3만명은 와줘야 한다는 이야기다.북측의 획기적인 발상전환 없이는 불가능한 목표다. 북녘 안내원은 내금강,외금강을 합쳐 금강산 전역에 통행로는36곳이라고 한다.이중 외금강 3곳만 개방됐다.10월 한달 1만 8000여명이 금강산을 찾았다.등산로는 포화상태에 이르러 주말 도봉산 못지않은 정체현상에 시달린다.관광요금이 일률적이다 보니 도저히 등산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까지 무리하게 산행에 참가해 언제 사고가 날지 위태위태하다. 현대아산은 관광객 1명당 육로 50달러,해로 100달러씩 입산료를 북측에 지불한다.이런 식으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기업은 지구상에 없다는 시장원리를 북한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그리고 등산로를 늘리고 코스별로 가격차등화를 해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도록 도와야 한다.나아가 개성,평양을 연계하는 관광상품까지 나올 수 있도록 해준다면 사업은 큰 전기를 맞을 수 있다. 보다 자유롭고,풍요로운 곳에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이치다.‘자유의 삼투압’ 작용 같은 것이다.이 삼투압 현상은 막고 돈만 챙길 수 있는 비책은 세상에 없다. 금강산 온정리에서 이 기 동 국제부장 yeekd@
  • “동료의 넋 업고 등정 계속됩니다”/내년 봄 히말라야 16좌 도전 엄홍길 씨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했던가.지난 14일 오후 의정부 호원동 도봉산 산행길 입구에 있는 ‘엄홍길 기념관’에서 만난 엄홍길(43)씨의 첫 인상은 너그러움이었다. 30년 동안 산을 타면서 생사의 기로에서 극한의 상황을 수없이 거쳐온 그지만 ‘한국 최고의 산악인’이라는 이름도 부끄러울 뿐이다.수천m 아래 히말라야 협곡으로 산 친구들을 10명이나 떠나보냈기 때문이다.히말라야의 칸첸중가와 얄룽캉 두 개의 봉을 오르는 데만 6명을 잃었다.그들이 잠들고 있는 히말라야 만년설을 밟으면서 그는 오르고 또 올랐다.그리고 다시 친구를 잃었다. ●캠프에 내려와서야 눈물 엄씨는 지난달 5일 해발 8400m의 히말라야 로체샤르봉 등반에서 박주훈(35),황선덕(27) 두 동료를 떠나보냈다.인터뷰 도중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로체샤르봉 등반 시도는 두번째였다.2001년 봄에 네팔까지 갔다가 기상이 나빠 돌아오고 말았다. 지난 9월 초.다시 현지로 갔지만 진눈깨비가 계속 휘날리고 있었다.사고는 정상을 겨우 150m 눈앞에 두고 일어났다.엄씨 앞에서 올라가고 있던 박씨와 황씨가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박씨와 황씨를 앞에 두고 주봉과 맞붙은 조그만 봉우리를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줄을 잡으라는 ‘앵커’라는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어요.순간 허리춤 고리에 걸려 있던 줄을 잡았지만 두꺼운 등산용 장갑을 다 망가뜨리며 빠져나갔고,두 대원은 3000m 아래 빙하 협곡으로 눈과 함께 떠내려갔습니다.” 엄씨는 “아무 생각없이 ‘내려가야지,살아야지.’를 되뇌며 산 중턱 캠프로 내려왔을 때에야 눈물이 북받쳤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산악계의 살아 있는 신화 엄씨는 도봉산을 고향이라고 생각한다.부모님은 지난 2000년까지 40년 가까이 도봉산 기슭에서 상점을 운영했다.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도봉산을 오르내렸다. 엄씨는 “도봉산은 나에게 산의 의미를 일깨워준 ‘모산(母山)’”이라고 말했다.중학교 2학년 때부터 도봉산 선인봉에서 바위타기를 시작한 엄씨는 고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설악산,한라산 암벽·빙벽 등 ‘산악 코스’를 성년이 되기 전에 다 섭렵했다.해군특수부대에서 훈련받은 경험은 그에게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보다 좋은 심폐기능을 선물했다. 처음 히말라야 정복에 나선 것은 25세인 지난 85년.세번의 시도 끝에 3년만에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았다.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산악 등정 역사를 다시 썼다. 93년 초오유봉에서 시작,지난 2000년 해발 8611m의 K2를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8000m 14좌 등정을 마쳤다.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이자 세계적으로 7번째다.지금까지도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사람이 11명에 불과하다. ●역경에 얻은 ‘히말라야의 탱크’ 별명 동료의 죽음은 별명이 ‘히말라야의 탱크’인 그를 늘 짓누른다.엄씨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등반의 아픈 경험들을 모아 최근 ‘8000m의 희망과 고독’이라는 책을 펴냈다. 96년 안나푸르나봉 첫 등정에서 정상을 500m 앞두고 미끄러지는 네팔인 전문 산악족인 셰르파를 구하려다 오른쪽 발목이 으스러졌다.부러진 발목을 끌고 두 팔과 한 무릎으로 72시간 동안 수직의 빙벽을 기어 겨우 죽음으로부터 탈출했다.안나푸르나봉을 기억하기조차 싫은 이유는,네번을 실패하고 다섯번째 정복했지만 마지막 등정에서 자신보다 더 산을 사랑했던 서른여덟살의 여성대원 지현옥씨를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합니다.언제나 ‘죽음의 그림자’를 밟고 산을 오르는 셈입니다.” 생사의 영역을 넘나들며 그는 ‘산이 나고,내가 산’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엄씨는 “산을 타면서 인생을 배우고 삶을 터득하게 됐다.”면서 “전생에 내가 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산이 받아줘야 사람이 죽음을 넘어 산을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고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산을 오르곤 한다.”고 했다. ●산을 더 이상 망쳐서는 안돼 20년에 가까운 ‘히말라야 생활’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파상,믹마 등 네팔 셰르파들과는 형제처럼 지낸다.기회가 된다면 셰르파 유가족들을 도울 히말라야 문화재단을 만들 계획이다.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를 5차례나 같이 오른스페인의 산악 영웅 후아니토 오아르자발은 오는 12월 자신을 위한 국가 기념행사에 엄씨를 초청해놓고 있다. 엄씨가 요즘 하는 걱정은 고향 같은 도봉산이 망가지는 것이다.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는 비환경친화적인 개발이 삭막한 도시에서 커가는 아이들에게 메마른 정서만을 남겨줄 것이라고 걱정했다.물질문명 덕분에 생활은 편안해졌지만 결국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도리어 인간이 기계문명의 노예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산악인으로서 모든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산행은 그치지 않는다. 내년 봄에는 8500m 높이의 얄룽캉봉에 도전한다.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이외에 얄룽캉봉과 로체샬봉을 등정하는 히말라야 8000m 16좌 등정을 완수하겠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산을 오르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떠나보낸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기도 하다.힘이 있는 한 동료들의 혼을 업고 산을 오르겠다는 각오다.엄씨는 “산을 떠나는 것은 배신”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60년 경남 고성 출생 ▲62년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도봉산 근처로 이사 ▲79년 의정부 양주고 졸업 ▲81년 해군 수중파괴타격대(UDT) 입대 ▲85년 첫 에베레스트 원정 실패 ▲88∼2000년 에베레스트(8848m),K2(8611m) 등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 ▲부인 이순래(33)씨와 1남1녀
  • 홍사덕“이라크서 한달 복무”

    한나라당 홍사덕 원내총무가 이라크 파병군 사병으로 한달간 복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홍 총무는 18일 발간된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국군이 이라크에 파병될 때 1진과 함께 현지로 떠나 한달간 사병으로 근무하겠다.”고 말했다.그는 “우리 젊은이들을 위험한 지역에 보내기로 결정하면 위험의 일부라도 나누는 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따른 정신적 의무감)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총무는 “지난 10월초 이같은 결심을 했고,지난달 6일 조영길 국방장관과도 사병 근무 얘기를 다 끝냈다.”고 설명하고 “나는 해병대 출신으로,지난 63년 제대했지만 지금도 도봉산 정상까지 1시간에 올라가는 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막에서도 병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지운기자 jj@
  • “우리는 모두 꿈속의 사람인 것을…”/‘당대 최고 행정승’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스님 입적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正大·사진) 스님이 18일 오전 5시 안양 삼성산 삼막사 월암당에서 입적했다.세수 67세.법랍 42세. 전북 전주 출신인 스님은 1962년 완주 위봉사에서 출가해 이듬해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1967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이후 조계종단의 요직을 두루 거치는 동안 추진력 있는 종무행정과 친화력으로 종단 안정에 앞장서 ‘당대 최고의 행정승’이란 평가를 받았다. 총무원 사회부장·재무부장·총무부장을 거쳐 부원장에 올랐고 8선의 중앙종회 의원,2차례 종회의장을 거친 뒤 1999년 11월 고산 스님의 후임으로 최고 수반에 올랐다.총무원장 자리에 앉은 스님은 조계종단의 혼란을 수습하고 오랜 숙원인 총무원 청사 건립,중앙승가대 이전,종단재정 안정화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모두 해결했다. 이사(理事)에 모두 능했던 스님은 종무행정에 힘을 쏟으면서도 도봉산 망월사 선원을 비롯해 수덕사·용주사·중앙선원 등에서 참선수행을 병행했다.용주사에 주석할 때 은사인 전강 스님에게 받은 ‘판치생모(板齒生毛·판대기 이빨에 털이 난 도리가 무엇인가)’ 화두를 잡고 정진,‘중생과 부처가 다름이 없고,마음 밖에 부처도 중생도 따로 없다.’는 견성(見性)을 이루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 출가 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의 절반은 어머니에게 배웠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출가한 몸으로 줄곧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어머니와 사별했을 때 며칠간 밥을 먹지 않은 이야기는 유명하며 지난해 유산과 사재 37억원을 털어 소년소녀가장을 돕기 위해 설립한 은정장학재단에도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다. 격외(格外)와 무위(無僞)의 삶을 강조했던 스님은 숨김없이 속내를 털어놓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특히 총무원장 재임 시절 민감한 정치적 발언과 인물평으로 자주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임기를 10개월여 앞두고 올 2월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나 동국학원 이사장에 취임한 스님은 재정난에 부닥친 동국대 일산병원 개원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나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돼 그동안 수차례 입퇴원을 계속하며투병생활을 해왔다. 스님의 법구(法軀)는 입적 직후 출가 본사인 수원 용주사로 옮겨졌으며 영결식은 22일 오전 10시 용주사에서 학교법인 동국학원장으로 봉행된다.(031)234-0040. 다음은 임종게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惺夢中人’(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 김성호기자 kimus@
  • [나의 건강보감] 백낙환 인제학원 이사장

    자신의 삶을 두고 그는 “외길이었다”.고 했다.자기 일에 일가를 이룬 그 연배의 한국인들 거개가 외길의 삶을 살았지만,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가 말하는 ‘외길’이 평생 한 가지 일만 했다는 일반적 의미보다는 ‘그 일에 목숨을 걸었다'.고 할 만큼 비장한 삶이었으며,그 길에서 우람한 성취를 이뤄냈다는 의미임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지금이야 병원이다,학교다 일이 많아 환자 보는 일은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의사잖우.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정에는 참 무심했어.66년 미국에서 외과의사 연수 마치고 돌아와보니 아,집사람하고 애들이 세간을 팔아서 연명하고 있더란 말이야.기가 막히지.그렇게 살았어.” 학교법인 인제학원 백낙환(78) 이사장.주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70대 철인'이라고 말한다.전국 5개 백병원(서울·상계·일산·부산·동래백병원)과 김해 인제대학교를 일군 입지전의 주인공인가 하면,스스로는 결핵과의 사투에서 승리한 부도옹(不倒翁)이기도 하다.“해방 직전인 44년에 경성제대 의예과를 들어갔는데 1학년때 덜컥,폐결핵에 걸린 거야.당시엔 그 흔한 스트렙토마이신도 없었어요.그때 박병래 선생님이라고,성모병원장하셨던 분인데,그 분이 폐에 기흉(氣胸·폐 안의 공기 주머니)을 만드는 방법으로 치료해 주셨어요.폐결핵 걸리면 여지없이 죽는 때였거든.” ●4시 기상… 하루라도 못뛰면 좀이 쑤셔요 6·25때는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혀 낙동강 전선의 안동 야전병원으로 배속받아 이동하던 중 강원도 원주 부근에서 탈출해 구사일생했는가 하면 전쟁통에 아버지와 백부가 납북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하는 대중가요 ‘단장의 미아리고개’가 이를테면 그의 노래인 셈인데,두 분이 이미 유명을 달리 했음을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신산(辛酸)의 삶에 그는 치열하게 부딪혔다.52년 군의관으로 제대한 그는 납북된 백부 백인제 박사가 해방 전 지금의 백병원 자리에 개원한 ‘백인제 외과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이곳이 지난 4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 공익의료법인으로 설립된 재단법인백병원으로,지금 인제학원의 모태가 된 곳이다.그러나 말이 쉬워 입지전이고,부도옹이지 세상에 만만한 일이 없는 법.그는 여든을 지척에 둔 지금도 새벽 4시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새벽달리기로 일과를 시작한다.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삼청공원 구간이 그의 조깅 코스.이젠 새벽 달리기가 체질화해 하루라도 못뛰면 좀이 쑤실 지경이다.벌써 40년째인 이 운동도 절박한 필요성에서 시작됐다.“꿈은 크고,할 일은 태산 같은데 심신이 의지를 따라주지 못하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의사는 여간한 마음으로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그런데 백병원 초창기에 전 1인 3역,4역을 했어요.진료해야지,여기다 원장 행정업무도 만만찮아.또 사무장 일도 내 몫이고 당직까지 해야 했거든.이러니 몸이 배겨내나.그러다가 60년대 초 하루는 병원 식구들하고 도봉산 망월사라는델 갔지.지금 가보면 베이비코스야.그런데 너무 숨이 차 죽겠더라고.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맘먹고 달리기도 하고 등산도 하고 그랬어.”그 사이 달리기에 재미가 붙어 외국엘 가도 신발과 운동복은 반드시 챙겨가는 필수품이 됐다.얼마나 달리기에 빠졌나 하면 한번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달리다가 그만 미로에 들어 길을 잃고 정신없이 헤맨 적도 있다. ●주말마다 등산… 요즘엔 북한산 즐겨찾아 달리기와 이력이 엇비슷한 등산도 빼놓을 수 없다.“처음엔 남산을 오르내렸지.오전에 병원일 마치고 서둘러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어.남산이 저래봬도 꽤 가파르거든.그러다 보니 운동도 정리가 돼요.평일엔 달리길 하고,주말엔 산엘 오르는데,한가지만 하는 것보다 그게 매번 새로워서 좋아요.”요즘엔 집에서 쉽게 오를 수 있는 북한산을 즐겨 오른다.정릉에서 보국문을 거쳐 태고사쪽으로 빠졌다가 거기서 요기와 독서를 하다가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식이다.예전엔 계곡에서 등목도 하곤 했다. 그의 운동은 결코 허섭한 마구잡이가 아니라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다.인제학원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인당사계(仁堂四戒)’가 그것이다.그의 아호(仁堂)를 따 이름붙인 사계는바로 ‘소식(小食)’‘다동(多動)’‘금연’‘절주’를 이른다. 사계가 우리 국민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그는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생활습관병(성인병)의 상당수가 질정없이 먹어대 몸에 과잉 열량이 축적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암과 뇌졸중,고혈압 같은 순환기질환,당뇨병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 질환”이라고 지적했다.해방 전 중학교 4학년(지금의 고1) 때부터 중년을 넘길 때까지 ‘골초’로 불릴 만큼 담배를 즐겼으나 위궤양을 앓으면서 끊었고 평생 술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다동은 그가 일상생활을 통해 보여주듯 많이 움직이라는 뜻이다.그는 지금도 월요일에 서울 백병원에서 전체 회의를 주재한 뒤 다음날 부산으로 가 이틀 가량 부산·동래백병원과 인제대 업무를 처리하고 올라와,상계 백병원으로 출근하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그를 ‘한국에서 가장 바쁜 70대 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젊은 사람도 나동그라질 이런 일량을 거뜬히 소화해 내는 열정과 체력 때문이다.최근에는 맏딸인 인제대 보건대학원의 백수경 교수가 늘 동행해 보좌하지만 “아직은 아버님을 대신할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소식·多動·금연·절주' 반드시 지켜야 건강 그래도 그는 의사다.그 나이에 다른 운동이라면 몰라도 달리기가 좀 무리 아니냐고 묻자 “동물의 생명은 움직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인간의 노화를 막고 건강을 지키는 것은 놀라운 명약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역설했다.그의 얼굴에 “뜻을 가진 대장부는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며 노익장(老益壯)을 역설한 옛사람 마원의 기세가 홍조로 어렸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언탁기자 utl@ ■새벽달리기 이렇게 하세요 그는 새벽에 달린다.“새벽길을 달리는 기분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어.기분 좋거든.” 더러는 새벽운동이 해롭다고도 하지만 그는 체질화되면 도리없다며, 또 막상 해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다고 했다.“달리기는 전신에 고루 효과를 미치는 좋은 운동입니다.근력은 물론 심폐기능 강화,내장근육 단련 등 효과가 한둘이 아니지요.사람이 나이들면 근육이 위축돼 체격이 왜소해지는데 그 때도 운동 말고 다른 묘책이 없죠.” 요즘 그가 뛰는 거리는 2㎞ 안팎.10여년 전만 해도 3∼5㎞를 뛰었으나 나이들면서 체력이 달려 조금 거리를 줄였다.“젊은 사람들은 거리가 좀 짧다고 여기겠지만,운동은 한꺼번에 많이 하는 것보다 적당하게 오래 하는 게 훨씬 좋아요.” 이런 에피소드도 소개했다.“YS가 대통령일 때 청와대에서 한번 뵐 기회가 있었어요.이런저런 얘기 끝에 조깅이 화제가 됐는데,그 분께 물었더니 매일은 아니지만 약 3㎞ 정도씩 뛴다고 해요.그래서 ‘나이에 비해 운동량이 많은 것 같으니 좀 줄이라.’고 얘기해 줬어요.나중에 주치의 얘길 들으니 그래선지는 몰라도 2㎞ 정도로 줄였다고 해요.그 정도면 충분하거든.” 그는 YS보다 한 살 위다. 운동을 오래할 요량이라 뛰는 속도도 빠르지 않다.성과에 급급하지 않기 때문이다.1시간 정도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준비운동과 본운동,마무리 운동을 꼼꼼하게 하는 스타일이다.그렇게 운동을 하고 나면 몸도 몸이지만 기분도 상쾌해져 하루가 가뿐하다.그의 건강론이기도 한 ‘심신불이(心身不二)’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다.‘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평범하지만 값진 가르침이다. 일산백병원 스포츠의학과 양윤준 교수는 “사람마다 체력이 달라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고혈압이나 당뇨,고지혈증 등 순환기계의 문제만 없다면 최대 맥박수인 분당 150의 60∼80% 정도인 90∼120이 적당하다.”며 “노약자들은 자신이 느끼기에 ‘약간 힘든 정도’로 운동하되 중요한 것은 운동을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추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심재억기자
  • 도봉구 ‘내집마련’ 9년만에… 신청사 입주

    1995년 분구된 강북구에 청사를 양보하면서 ‘셋방살이’를 해 온 도봉구(구청장 최선길)가 9년만에 내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도봉구는 2000년 7월 방학동 720번지에 착공한 신청사가 3년4개월여만에 완공됨에 따라 17일까지 입주를 완료하고 업무를 시작한다고 12일 밝혔다. 신청사는 대지 1만 4118㎡,연면적 3만 8704㎡,지하 2층,지상 16층 규모다.사무실뿐만 아니라 농구 배구 배드민턴 탁구가 가능한 실내체육관,작은 야구장 형태로 조성된 야외축제마당,다양한 휴식공간 등 각종 주민 편의시설을 갖췄다. 민원인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민원보육시설’도 운영한다.사무기기 판매·수리점,건축사 사무소,문방구,이용원,은행,여행·보험사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섰고 맨 꼭대기 16층의 ‘스카이라운지 뷔페’에서는 북한산과 도봉산·수락산,중랑천의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다. 처음 3개월간은 주차장을 무료로 운영하고,이전 후 한달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간 정각과 30분에 구청사와 신청사를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구는 20일 신청사 대강당과 광장에서 개청식을 갖고 ‘제2의 도약’을 선포할 예정이다. 류길상기자
  • 北 전차 서울 입성 ‘5분 저지선’/ 도봉시민아파트 사라진다

    “1968년 ‘1·21사태’ 때 아파트는 없고 벙커만 있었는데 밤새도록 조명탄이 터지고 난리였지요.없어진다니 시원섭섭하네요.” 69년,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5분 저지선’의 일환으로 세워졌던 도봉구 도봉동 ‘도봉시민아파트’ 5개 동이 철거에 들어간다. 서울시는 10일 도봉시민아파트에 살던 180가구중 179가구가 이주를 마침에 따라 철거에 들어가 내년 2월 중순까지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아파트인 2∼4층은 당장 철거하지만 ‘대전차 방어용 벙커’인 1층은 군의 협조를 얻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와 도봉구에 따르면 시민아파트는 김신조 일당의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이 터진 직후 서울 경계 강화차원에서 벙커 위에 지어졌다. 유사시에는 벙커와 아파트를 폭파시켜 적의 전차 남하를 최대한 저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벙커 북쪽면에 흙을 덮고 잔디를 심어 북쪽에서 보면 그냥 둑처럼 보였다고 한다.아파트는 처음부터 일반 주민들이 사는 곳은 아니었다.인근 수락산에 위치한 군부대 장교·하사관들의 관사로 사용되다 70년대 후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일반에 분양됐다. 시민아파트는 의정부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전략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왼쪽으로는 도봉산을 사이에 두고 도봉로와 경원선 철로가 지나간다. 오른쪽으로는 중랑천과 수락산이 버티고 있다.대규모 부대가 남하하려면 시민아파트를 지나갈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이 일대에서 50년 넘게 살아 온 주민 장상익(52)씨는 “예전에는 도봉로가 2차로에 불과하고 다른 길은 없었기 때문에 시민아파트 자리만 막으면 서울로 밀고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워낙 요충지라 벙커를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의 우려대로 아예 벙커까지 옮겨 주변 논밭과 함께 이 일대를 대규모 공원으로 조성하려는 도봉구의 바람과 달리 군부대측은 벙커를 옮기는 데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아파트 철거도 “공사도중 벙커가 훼손되면 원형 복원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허락했을 정도로 ‘애착’을 보이고 있다는후문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나의 건강보감]당뇨병학회 회장 강성구 교수

    ●합병증으로 이 여덟개 남고 다 빠져 이런 일화가 있다.그가 성모병원에서 신참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유행성출혈열 환자 한명이 들어왔다.파주에 사는 늙수그레한 그 환자는 몰골도 몰골이었지만 상태도 썩 좋지 않았다.그가 정성껏 치료해 겨우 숨을 돌릴 만 하자 그 환자가 퇴원하겠다고 우겼다.사연이 기구했다.“내가 살겠다고 여기서 버티면 치료비 때문에 내 가족들이 골병든다.”는 것이었다.그는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치료를 마친 뒤 몰래 쪽문을 열고 그를 도망시켰다.그러나 병원측이 수소문에 나서 그 환자의 거주지가 확인됐고,그가 사주한 사실이 들통나 그때부터 치료비 명목으로 월급이 압류되기 시작했다.명색 의사가 집에 돈 한푼 들여놓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했던 그는 견디다 못해 11개월째 들어 병원측에 이렇게 항의했다.“도대체 이 병원의 정신은 무엇이냐?”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4년의 레지던트 생활중 이렇게 월급을 받지 못한 게 36개월이나 됐다. 가톨릭의대 강성구(59) 교수.그는 당뇨병 환자다.현재 대한당뇨병학회 회장과 한국당뇨협회장,세계당뇨연맹(IDF) 아시아태평양지역 총재까지 맡는 등 ‘당뇨의 대가’다운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병마의 심술을 피하지 못했다.“2000년인가요.그때도 국내·외 곳곳에서 학술행사가 많아 무척 바빴어요.외국 학술행사에 참석했다가 새벽에 도착해 종일 강의하고,진료하고 그런 식이었지요.그때 데미지가 컸었던가 봐요.갑자기 이가 쑥쑥 빠지는 거예요.그래서 확인해 보니 당뇨 합병증이더라고요.”이가 몇개나 빠졌느냐고 묻자 “남은 걸 세는 게 훨씬 빠를 것”이라며 “여덟개 남고 다 빠졌다.”고 했다. ●돈없는 환자에 “돈 꿔줄테니 치료 받아라” 사실,그는 별로 의사답지 않다.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소탈한 품성에 낙천적인 기질까지 더해져,항상 경계하듯 환자를 대하고 방어적 습관에 젖어 언제나 최악을 말하는 세간의 그렇고 그런 의사와는 분명 달라보였다.“지금도 후학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환자를 머리로 보지 말고 가슴으로 보라고요.의료업은 결코 취재(取財)의 수단이어서는 안됩니다.국숫집을 해도의사보다 많이 벌 수 있잖아요?”그가 젊은 의사였던 시절,다른 의료진이 포기한 환자 한 명을 떠맡았다.폐에 물이 차 기관지를 절개하자 꿀럭꿀럭 물이 넘쳐나는 환자였다.그 환자를 곁에 두고 그는 중환자실에서 무려 27일간이나 숙식을 같이 했다.“살 확률이 3%,9% 이렇게 높아질 때 느끼는 보람과 희열이야 말로 의사라는 천직의 알파요,오메가 아니겠습니까?” ●술 줄이고 녹차 입에 달고 살아 당뇨가 문제였지만 그보다 먼저 간경화증이 나타났다.“아마 80년 무렵일 겁니다.술 때문에 간경화가 왔어요.의학 교과서에 따르면 내 병증은 살 확률이 2%에 불과했어요.천행으로 그 2%에 들어 살아남았는데,그때 다짐한 게 있어요.‘만약 내가 이승밥을 더 먹을 수 있다면,나의 모든 것을 병든 이를 위해 바치겠다.’고.”그때부터 ‘의술을 취재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오로지 환자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다짐은 그의 생활지침이 됐다.돈없어 치료 못받겠다는 환자에게 “돈 꿔줄테니 치료부터 받으라.”며 설득한 일도 그의 ‘참의사’다운 면모를 설명하는 일화로 남아 있다. 그런 그에게 당뇨합병증이 겹치면서 송두리째 삶이 바뀌었다.바닥 모르고 마셔댄 술부터 줄였다.둘이서 소주 한 상자를 해치우고,서넛이서 양주 대여섯병은 거뜬히 비우는 그의 주량은 웬만한 의료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 무렵 그는 녹차에 맛을 들이기 시작해 지금은 잠자는 시간 빼고는 녹차를 숫제 입에 달고 산다. ●등산·달리기도 빼놓을 수 없는 건강법 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건강법.타고난 운동 체질로 고등학교때 태권도가 공인 3단이었는가 하면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도 뛰었다.산악등산도 전문가 못지 않아 지금도 짬만 나면 산행에 나선다.“집이 효자동이라 가까운 북한산을 자주 가는데,북한산은 손금보듯 하죠.더러는 도봉산이나 수락산도 타고요.”그는 50년대부터 북한산을 올랐다.지금이야 산이 망가져 등산로가 제한되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규제가 없던 시절이라 그가 만든 등산로만 100개 코스가 넘는다.그런 그가 “의사 되고나서 건강 많이 망가졌다.”고 푸념했다. 당뇨 전문의이면서 환자인 그의 당뇨 얘기는 교과서의 범주를 시원하게 벗어나 있다.“누구나 나이 먹으면 호르몬 기능이 떨어져 당뇨병을 앓기 쉬운데,그 합병증이라는 것도 양태가 너무 다양해 일률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틀림없는 것은 당뇨병이 무섭다는 것인데,예컨대 당뇨환자가 암에 걸릴 확률은 정상인보다 4∼6배나 높고,심근경색의 40% 이상이 당뇨성이거든요.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당뇨병이 무섭지만 관리만 잘하면 최소한 병증의 심화를 저지하거나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섭생 원칙도 의외로 간단하다.“포식을 하지 않습니다.의사이다 보니 대충 열량을 계산해 절대 과하게는 먹지 않죠.기름진 음식 대신 담백한 먹거리,육류보다는 생선을,그것도 튀기거나 볶은 것보다 찐 것을 선호합니다.”재미있는 것은 그의 ‘고추 건강론’이다.“다들 매운 고추가 위장에 해롭다고 믿는데,임상시험을 해보니 그게 안그래요.전 매운 청양고추를 즐겨먹는데,섬유소도 많고 매운 캡사이신 성분이 몸을 덥혀주는가 하면 위도 튼튼하게 해줘요.한국 여자들 피부 고운 것,상당부분 고추 덕분이기도 하고요.” ●청양고추 즐기고 기름진 음식 멀리해 “제게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사는 건데,제가 당뇨병을 앓고 있지만 건강 강박증같은 건 없어요.물 흐르듯 사는 삶이 아름답지 않습니까?”라는 그에게 건강하게 사는 법을 묻자 “의사처럼 살면 안되지만 의사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파안했다.그의 얼굴에선가,어디에선가 더운 물에 녹차의 초록이 풀리듯 ‘참 의사’의 향기가 소리없이 배어나,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지는 가을 해거름이었다. 심재억 기자 jeshim@ ■강성구박사의 녹차 건강론 “녹차,좋죠.양질의 섬유소가 많아 공복감을 없애 식사량도 줄여주며,배변도 도와줍니다.또 열량이 거의 없어 먹는데 부담도 없고요.아침에 일어나 한 컵을 마시는 것으로 시작해 하루에 2ℓ 정도 마실 텐데,덕분에 85㎏까지 나갔던 체중이 75㎏으로 줄고 피도 아주 맑아졌어요.”그 뿐 아니다.녹차는 복부비만을 해소해 체형에 신경쓰는 여자들이 가까이해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의 녹차론은 당뇨병 환자에게는 일종의 경험방(經驗方)이다.“녹차를 비롯한 모든 잎사귀차(엽차)에는 사포닌,탄닌,비타민A·C와 항산화물질이 가득해 많이 마셔 나쁠 게 없습니다.특히 녹차는 적당하게 더운 물에 우리는데,그 온도에는 카페인이 잘 녹지않아 좋죠.”해마다 봄이면 그와 친교가 있는 구례 화엄사의 스님 한분이 “옛다,이거 먹고 좋은 일 많이 해라.”며 몇통씩 건네줘 즐겨 먹지만 흔한 티백차도 가리지 않는다. 당뇨합병증을 앓고 있지만 병은 그의 가슴에 있을 뿐 일상 생활은 크게 다를 게 없다.“특별히 까다롭게 따지진 않아요.기름진 음식,특히 튀긴 음식 정도 가리는 편이고…,밀가루보다는 쌀음식을,중국 음식도 기름이 많은 자장면 대신 먹어야 한다면 우동이나 짬뽕을 먹죠.술도 딱 잘라 먹네,안먹네 하지않고 필요하면 먹어요.”대신 그는 녹차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이런 섭생의 문제를 극복해 간다.“1주일에 4일 정도는 북악스카이웨이를 매번 4∼8㎞씩 뛰죠.운동 체질이라 그런 일상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복이라면 복이겠죠.외국에 나갔을 때 운동할 형편이 안되면 목욕탕에서라도 1만번씩 뛰니까요.” 경희대 한방병원 신현대 교수는 “녹차는 카데킨 등 유효 성분이 다량 함유돼 콜레스테롤을 낮춰 비만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강력한 항산화물질이 항암작용과 함께 암세포의 전이도 억제하는 매우 뛰어난 차류”라며 “일반인의 경우 물 대신 1일 3∼4잔 이상을 지속적으로 마실 경우 인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 미카엘 가이어 주한독일대사 인터뷰/ “EU대표단 이달내 訪北”

    송두율 교수 사법처리,이라크 파병,북핵 6자 회담 등에 대해 독일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지난 7월 말 부임한 미카엘 가이어(Michael Geier·사진·59) 주한 독일 대사.아들(17)과 서울 도봉산에 올랐다가 “함께 먹자.”며 깎은 과일을 나눠주는 한국인들의 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그는 31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의 입장을 조심스레 밝혔다. 가이어 대사는 송 교수 문제와 관련,“독일 국적을 가진 송 교수가 국제법과 상식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면서 “그러나 현 단계에서 독일이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항의할 만한 점은 없다.”고 강조했다.강금실 법무장관을 만날 계획도 현단계에선 없다고 밝혔다. 그는 11월 중 계획된 유럽연합(EU) 대표단의 방북 계획도 소개했다.지난 1월 EU측이 하비에르 솔라나 대외정책 대표를 북한에 파견키로 결정했지만,북한측의 소극적 자세로 무산된 지 10개월 만에 열리는 북·EU간 접촉이다. 가이어 대사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 지지·지원한다.”면서 “독일 정부는 평양에 주민들이자유롭게 출입하고,문화 예술 공연도 할 수 있는 문화관을 내년 봄 열 예정”이라고 소개했다.다음은 일문 일답. 2차 6자 회담 전망이 밝아지고 있다.독일과 유럽연합은 한반도 문제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현 EU 의장국인 이탈리아와 차기 의장국인 아일랜드,그리고 EU집행위 국장급으로 구성된 이른바 EU트로이카 대표단을 금명간 북한에 파견,6자 회담 지지 입장과 함께,북한 핵폐기 및 대북 지원 협상의 어느 단계에서 유럽연합이 경제적 지원을 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일정을 잡고 있으나 3∼4주 안에는 방북할 것으로 보인다.EU는 북한과의 관계,그리고 북한이 우려하는 안보 우려 문제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도 표명한다. 독일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도 남·북한을 중심국가로 선정했고,내년 봄 평양에 문화관도 열 계획이다.북한 당국은 아무 제한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송 교수 문제와 관련,독일 정부 입장은 무엇인가. -사실 한국 정부가 송 교수에게 두고 있는 혐의사실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 없다.다만 송 교수가 독일 국민이기 때문에 국제 법과 국제적 상식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아울러 송 교수 문제로 한·독 양국 관계가 저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말씀한 국제법 상식과 한국 법 규범이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는데. -물론 조금 다른 점은 있겠지만,현재 우리가 정식으로 항의할 만한 점은 없다. 강금실 법무장관을 만날 것이란 보도가 있었는데. -현재 계획한 것은 없다.강 장관은 매우 훌륭한 분으로 감탄하고 있다.언젠가는 만나겠다.하지만 송 교수와 연관지어선 만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 세력간 대립각은 분단 구조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는데 통일을 이룬 독일 지식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나. -나는 외교관이고,외교관으로 피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답변이 ‘내정문제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라크 문제와 관련,독일과 미국의 갈등 양상이 드러났는데 파병에 대한 입장은 있나. -갈등이라고 하기엔 좀 과장된 측면이 있다.슈뢰더 독일 총리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의 안정과 평화 정착,경제 부흥에 애쓴다는데 의견을 모았다.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선 중동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독일은 지난번 스페인 마드리드 이라크 재건 공여국 회의에서 EU를 통해 2억 유로 지원 방침을 밝혔지만 파병은 하지 않는다.이미 아프가니스탄과 발칸 반도에 독일 연방군이 많이 나가 있어 여력이 없다.아프간 활동에 대해선 미국이 굉장히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여력이 없어서인가.우리 사회의 파병·반파병 논란 기저에는 전쟁 명분론도 깔려 있다. -여력이 없다는 게 이유의 다가 아니다.이라크 전쟁 명분에 대해선 논란이 많고 독일 정부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해 왔으며 이에는 변함이 없다.파병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가진 어떤 사람,단체도 지지한다. 30년 외교관 생활 중 아시아 지역 근무는 처음인데. -한국에 대해선 사진으로만 봤다.부임전 교통체증 등 환경이 끔찍하다는 말을 들어 브라질의 상파울루 정도로 생각했다.그러나 산과 강이 푸른 환경친화적인 서울이 다른 어느 대도시보다 마음에든다.독일은 산업화를 한국보다 100년 전에 시작했고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한국도 이제 세계화 과정에서 잃어버리고 있는 게 많은 것 같다.농업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소중하고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한국 생활 석달째,고향집처럼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NGO / 성미산 지킨 주민들의 힘

    서울 마포구의 ‘허파’격인 성미산(해발 65m)이 결국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서울시가 최근 성미산 정상 9000여평을 깎아 배수지 물탱크를 설치하는 성산배수지 건설계획을 잠정 유보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유보는 사실상의 백지화를 뜻한다. ‘성미산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2년3개월여 동안 끈질기게 투쟁해온 지역주민들의 값진 승리라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 16일 서울시의회 업무보고에서 “인근지역에 위치한 배수지로도 수돗물공급에 지장이 없어 장래 급수수요가 예측되는 상암택지개발 등의 추이에 따라 (성산배수지 건설여부를)최종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술자문회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면서 사실상의 사업중단을 선언했다. 서울시는 당초 성미산에 2만 5000t 규모의 배수지를 건설하는 사업계획을 세웠었다.이에 따라 지난 1월 수목 3000여 그루를 베어냈으며 3월에는 추가 벌목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는 주민들과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이후 주민들은 너나없이 ‘성미산지킴이’를 자임하며,산 정상에 텐트를 치고 100일간 항의농성을 전개했다.저지운동을 통해 마포주민 2만 5000여명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걱정이다,걱정.성미산을 없앤다니 걱정이다….우리들이 제일 좋아하는 산,마포구에 하나밖에 없는 산….배수지도 아파트도 성미산에 짓지 마세요.성미산엔 절대 안돼요.다른 길을 찾으세요.…’ 성미산주변 아이들이 부르는 이 노래에는 성미산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 있다. 야트막한 언덕 같은 이 산은 서울 마포구 성산1·2동,망원1·2동,연남동,서교·동교동,합정동 등 성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마포구 40여만 주민들의 안식처이다.하루평균 1000여명의 주민들이 오가는 정겨운 동네뒷산이기도하다. 본래 마포에는 와우산,노고산,성미산 등 3개의 산이 있었지만 와우산과 노고산은 아파트단지로 개발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성미산만 남았다.주민들이 성미산 절대사수작전에 나선 까닭이다. 대책위 김종호 위원장은 “관악구에는 관악산이,도봉구에는 도봉산이 주민들에게 소중하듯이 마포주민에게는 성미산이필요하다.”면서 “그러나 배수지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대책위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성미산 전체 3만 3000㎡중 모 대학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2만 6000㎡를 서울시나 마포구가 매입,주민들에게 생태공원으로 돌려줄 때까지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나의 건강보감]‘영원한 國手’ 조훈현

    국수로 불리는 조훈현(51)씨가 담배를 끊은 것이 한동안 세간의 화제가 됐다.“못 끊을 걸.”이라며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더러는 “만약 끊는다면 바둑이 안되겠지.그렇잖아.대국 때마다 그렇게 피워댄 담밴데….”라며 그의 바둑 퇴조론과 결부시키는 사람도 있었다.이런 전망이 결코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그때까지만 해도 담배를 빼놓고는 그의 바둑을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한 대국서 담배 다섯갑 태우기도 73년 군에 입대해서 시작해 96년까지 23∼24년 정도 피운 셈이다.그냥 피운 게 아니라 한국의 바둑 역사를 홀로 일군 그의 발자국마다 담뱃진이 눅진하게 배어 있었다.“많이 피웠어요.대국이 있는 날이면 피우던 것 말고 ‘쌍권총’이라고 해서 양 주머니에 한갑씩 넣어가 바둑 한판에 서너갑씩 태웠지요.떨어지면 따로 사달래서 피워댈 정도였으니 ‘담배없이 어떻게 바둑을 두나.’라고 생각한 게 당연했지요.한 대국에서는 무려 다섯갑을 태우기도 했어요.”그런 그가 지난 96년 돌연 금연을 선언하고 나섰다.바둑을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들의 생각은 “그게 될까?”였다. 그런 세간의 예측을 일축하듯 그는 담배를 끊었고,한 공익광고에 나서 “담배를 끊고 나니 집중력도 좋아지고….”라며 금연 홍보까지 하고 있다.혹시 그동안 몰래 한두번이라도 피운 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단언했다.“제 바둑인생에서 참 힘든 때였어요.큰 대국에서 거푸 지고,그래서 결국 무관으로 주저앉았을 땐데,뭔가 촉발의 계기가 필요하다고 여겼지요.그러던 차에 친구인 차민수 4단의 초청으로 미국엘 가게 됐어요.”차민수,프로갬블러로 TV드라마 ‘올인’의 주인공 바로 그다.그때의 미국행이 그의 ‘흡연 바둑사’를 바꾼 계기가 됐다.“미국엘 가보니 공항이고 집이고 담배 피울 곳이 없어요.10분에 한대는 피워야 하는데,그걸 못피우니 오죽했겠어요.게다가 민수까지 ‘끊으라.’고 채근해 금연을 작심했지요.”그후 귀국해 우연히 금연초 제작자를 만난 것을 계기로 금연을 단행했다.거기서 끝내지 않고 그때부터 등산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30년 넘게 산을 타왔지만 절박한 심정을 느끼며 산을 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심신을 담금질하지 않으면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금연 이후 등산에 더욱 박차 프로기사 조훈현 9단.누구든 그를 ‘국수(國手)’라고 부른다.국수가 아니어도 그는 국수다.바둑 종주국인 중국을 따돌렸는가 하면,현대 바둑의 본산을 자처한 일본을 아우른 한 개인에 대한 최대의 서훈(敍勳)이요,작위(爵位)다.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부턴가 ‘국수’라는 외경의 수사가 함께했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했다.산은 중후하여 변하지 않고,물은 사리에 통달해 막힘이 없으므로 지혜롭고 어진 사람은 산수를 좋아한다는 의미다.궁극적으로 가장 현명한 선택을 묻는 기예인 바둑의 황제 조훈현이 산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그러나 30년 넘게 산을 탔으면서도 그때처럼 절박한 심정을 갖기는 처음이었다고 돌이킨다. 조훈현처럼 많은 별명을 가진 기사는 없다.‘국수’말고도 ‘황제’,‘제비’,‘전신(戰神)’.하나같이 그가 바둑을 통해이룬 업적을 담고 있지만 ‘제비’는 사연이 좀 다르다.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제비’라는 별명을 그의 발빠른 행마와 연관짓곤 한다.그러나 이 별명을 얻은 사연은 전혀 다르다.“작고하신 강철민 8단이 붙여준 별명인데,기사들끼리 산에 올랐다가 제가 나는 듯 산을 잘 탄다고 그렇게 불렀어요.그랬던 것이 나중에 행마와 결부돼 제비,제비 하더라고요.”그는 결혼 전인 20대 때부터 산을 탔다.주로 동료 기사들과 함께했는데 그 덕분에 북한산,도봉산은 훤히 꿰고 있다. “바둑을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들 하는데 등산이 그래요.오를수록 힘든 한계상황에서 다리를 접느냐,더 오르느냐를 항상 선택해야 하거든요.제 경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을 등산에서 얻는데,이런 겁니다.사람도 살다가 ‘회사,이거 때려치울까.’ 할 때가 있듯 저도 ‘바둑,때려치워?’ 할 때가 왜 없겠습니까.그때마다 그런 갈등의 답을 산에서 찾곤 하죠.” ●‘어려운 상황 이겨내는 힘' 등산서 얻어 평생을 반상의 승부로 채운 탓인지 그는 의외로 승부에 담담했다.이기고 지는일에 단련돼 있어서라고 했다.“중요한 대국을 마치고나면 몸이 퍼져요.특히나 혼신을 다한 대국에서 지고 나면 혼이 나간 듯 한 사나흘간 ‘멍’한 상태가 계속되기도 하고요.그럴 땐 빨리 잊는 게 상책인데,그때 내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서는 힘이 산에는 있다는 말입니다.”그렇다고 해도 승부사에게 패배가 주는 충격이 적을 리 없다.한번은 큰 대국에서 진 뒤 집에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아,거긴가.”하고 외쳤다.눈을 TV에 두고도 마음은 복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둘째딸이 “바둑,그만두라.”며 펑펑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 연배로는 세계 바둑 무대에서 유일한 현역이자 제왕이다.중국의 네웨이핑과 일본의 고바야시,한국의 서봉수도 시들었지만 그만은 ‘바둑의 고려장’에 들지 않고 여전히 예각의 기세를 자랑하고 있다.“대국을 앞두고는 절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5분만에 기보 한장’을 독파해 내는 그의 신품(神品)을 천재성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틀림없이 그는 지금도 바둑에 혼을 바치는 노력을 쏟고 있고 그래서 여전히 세계 바둑의 태산준령인 것이다.“이제는 애제자라도 한명 들여 가르치는 재미를 느껴보고도 싶다.”는 그의 얼굴에서 ‘해가 지지 않는 또 다른 나라’를 본다. 글 심재억 기자 jeshim@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 ■조훈현의 등산 건강론 사람들은 그의 바둑에서 날렵한 속도감을 보지만 정작 그는 “나처럼 승부나 수읽기에서 둔감하고 또 둔감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승패를 떠나 그런 무심(無心)의 경지에 들지 못했다면 오랜 세월,수많은 승부의 부침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그런 그에게 산은 미더운 의지처였다.산에서 바둑의 이치를 깨닫고 힘을 얻는다는 그가 아닌가. 그는 20대 시절부터 김인 국수 등 바둑인들과 함께 산을 탔다.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71년부터였는데,결혼도 하지 않았던 젊은 기사 조훈현이 하는 일은 바둑과 등산이 전부였다.“종로4가에서 만나 주로 도봉산을 올랐어요.가끔 지리산과 설악산도 올랐고요.결혼해 화곡동에 신접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좀 뜸했지요.그랬다가 10년전 지금 사는 평창동으로 이사와 본격적으로 등산을 다시 시작한 겁니다.”평창동 매표소에서 출발해 구기동이나 정릉쪽으로 방향을 잡아 2∼3시간쯤 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지만 더러는 백운대나 상명여대쪽으로 빠지기도 한다. 젊어서는 산에만 오르면 마치 제비처럼 가벼운 ‘행마’로 많은 기사들의 부러움을 샀지만,지금은 다르다.젊은 시절의 발빠른 행마 대신 요새는 한 걸음 한 걸음 구도하듯 산을 탄다.서두르지 않는 대신 집요하다.“그러면서 대국의 스트레스도 씻고 또 내가 뒀던 바둑을 반추하는 거죠.전 한번도 제 바둑에 만족해 본 적이 없습니다.항상 아쉬움이 남고,그런 자성이 장수의 밑거름 아닐까요.” 담배를 끊은 뒤 173㎝에 70㎏이던 체중이 한때 80㎏까지 늘었다가 이제는 76㎏으로 자리를 잡았다.식성도 회 등 해산물을 좋아하나 그렇다고 따로 가려 먹지는 않는다.여기에 등산으로 심신을 추스른다.프로로서 언제든 대국할 수 있게 긴장하는 삶이다. 코오롱등산학교 원종민 교무는 “유산소운동인 산행은 육체적 단련뿐 아니라 조 국수처럼 극심한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의 인체 자기장을 회복시키고 깊은 명상의 기회를 제공하며 피톤치드 같은 생체 활성물질을 다량 흡수하도록 해 심신의 기능을 촉진하는 유효한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 메트로 플러스/도봉산 등산 대회 18일

    도봉구(구청장 최선길)는 18일 오전 10시 장애인과 그 가족,자원봉사자 등 800명이 참가한 가운데 도봉산 등반대회를 갖는다.중증장애인을 위해 자택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901-5355.
  • 서울 신도시 더 가까워진다 /광역버스 13개 축 36개 노선 결정 대중교통 연계시설과 환승센터도

    서울시가 버스체계 개편작업에 따라 새로 도입키로 한 광역급행버스는 13개축 36개 노선으로 잠정 결정됐다. 6일 서울시가 국회 행정자치위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서울 도심과 수도권 신도시간을 급행으로 운행하게 될 광역버스 노선은 13개 축 36개 노선으로 잠정 결정됐다.최종노선은 경기도,인천시,건설교통부 등의 협의를 거쳐 결정된다. 광역급행버스는 수도권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승객들의 자가용 승용차 이용을 줄이기 위해 새로 도입되는 것으로, 종점부와 시점부 몇 곳만 정차하고 중간부는 논스톱으로 달리는 방식이다. 13개 축은 수지,분당,수원,의왕·군포·안양축,안산,시흥,인천·부천,김포,파주,고양·일산,의정부,진접,구리·남양주,하남·광주축 등이다.노선별로 1∼4개의 노선이 있으며,기점은 축별로 1곳이되 종점은 도심·부도심 등 여러 곳이다. 예로 수지축의 경우 광화문·강남·삼성동 등 3방향으로 운행하고,수원축은 수원역을 출발해 서울역·사당·강남·영등포 등으로 운행한다. 노선결정의 기준은 서울 도심으로 직접 이동하는 수요가 많아 통행시간 절감효과가 큰 노선 ▲택지개발 등으로 신규 수요가 생긴 곳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승용차 이용이 많아 전환이 필요한 곳 ▲서울로의 출퇴근 통행비율이 다른 곳보다 높은 곳 등이다. 시는 이와 함께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주요 간선도로 교차로와 지하철역 등 13곳에 버스개편에 맞춰 환승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환승센터가 건립되는 후보지 13곳은 지하철·버스 대중교통 연계시설과 환승주차장 등을 갖춘 곳으로, 천호대로 상일IC 부근을 비롯해 ▲지하철 8호선 분당선이 만나는 복정역 ▲동작대로와 지하철 2·4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 ▲시흥대로와 지하철 1호선이 지나는 석수역 ▲통일로와 지하철 3호선이 접하는 구파발역 ▲과천 관문네거리 부근 등이다. 또 지하철 1·7호선과 도봉로가 만나는 도봉산역 ▲망우로 교문네거리 ▲내곡∼분당고속도로 성남 시흥네거리 ▲경인로 구로차고지 ▲경인고속도로 양천차고지 ▲개화동길 강서차고지 ▲수색로 은평차고지 등도 후보지에 포함됐다. 시는 이중 부지가 확보된 복정역을 시범사업 대상으로 정해 내년 8월까지 환승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며,이밖에 사당역,석수역,구파발역,상일IC 부근 등 4곳에도 우선적으로 환승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조덕현기자 hyoun@
  • 馬 뛰어놀던 들녘/‘아파트벽’ 허무는 축제 장으로

    ‘마들 노래를 불러보세 넓은 들이 갈월들이라 앞을 보니 도봉산이요….’ 아파트로 둘러싸여 평소 이웃간의 정을 나누기 어려웠던 노원구 주민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마음의 벽을 허문다.아파트 숲 가운데서 모내기 풍경과 농부들이 부르는 정겨운 농요도 감상한다. 노원구(구청장 이기재)는 7일부터 3일간 마들가요제,문예한마당 등을 통해 64만 구민이 하나되는 ‘마들축제’를 연다. 첫 날은 자신이 사는 동의 명예를 걸고 치열한 예선을 통과한 24명의 아마추어 가수들이 노래실력을 겨루는 ‘마들가요제’가 구민회관 대강당서 오후 3시부터 벌어진다.KBS ‘쇼 행운의 열차’와 코미디클럽 진행을 맡고 있는 오동광,오동피씨의 사회로 진행될 가요제에는 초청가수 배일호,강민주,김미성씨가 출연해 분위기를 달군다. 8일 오후 2시부터는 중계동 중계근린공원 잔디광장에서 초등학생과 주부들이 참가해 글짓기,서예,그림 솜씨를 뽐내는 ‘노원가족 문예한마당’이 열린다.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9일엔 마들근린공원서 6000여 주민이 어우러져 화합을다지는 ‘노원구민 한마음 체육대회’가 하루종일 펼쳐진다. 체육대회에 앞서 기념행사로 서울서 유일하게 전해오는 마들농요(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2호)가 선보인다.노원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벼농사가 성행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마들농요에 취하다보면 애향심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 태권도·에어로빅 시범,염광여자정보고의 고적대 퍼레이드,디스코 경연 등 다양한 볼거리도 준비돼 있다. 체육대회에는 2000여명의 선수들이 씨름,줄넘기 등 7개 종목에서 한판 승부를 펼친다.구는 경기종목을 줄다리기,협동 줄넘기,주부 페널티킥,4인5각 경기,큰 공 굴리기,어머니 배구 등 단체경기로 편성,주민들의 협동심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도록 행사를 준비했다.950-3462. 류길상기자 ukelvin@
  • [메트로 인사이드] 도봉 공영차고지 건설 막판 진통

    도봉·미아로 중앙버스전용차로제 시행에 맞춰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봉구 도봉동 341의 1 일대 공영차고지(버스정류장) 건설이 도시계획위원회 통과를 앞두고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도봉구 주민들이 공영차고지 건설을 꺼리는데다 도봉구의회도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24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도봉동 노외주차장 3만 6389㎡ 가운데 3만 352㎡를 공영차고지로 변경하는 안건을 심의키로 했지만 다른 안건이 많아 다음 달 속개회의 때 다시 심의키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시는 현재 지하철 1·7호선 도봉산역 환승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이곳에 52억원을 들여 내년 말까지 사무실,정비실,세차실,주유소,압축천연가스(CNG)충전소 등을 갖춘 공영차고지를 만들 계획이다.이 일대가 주차장에서 차고지로 바뀌면 승용차 218대와 버스 165대를 수용하게 된다.기사 임대아파트와 할인매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주상복합건물을 시범 건립키로 했던 계획은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 복잡한 절차에 막혀 백지화됐다. 시는 버스업체의 차고지 부족,업체 경영난 등을 해소하는 한편,버스노선을 간선·지선버스로 개편하고 중앙전용차로제를 시행하려면 공영차고지 건설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완충녹지와 방음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매연과 오염물질 배출이 거의 없는 천연가스버스를 도입하기 때문에 환경오염도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도봉구의회는 이미 도봉·미아로 중앙버스전용차로제와 공영차고지 건설에 대한 반대결의문까지 채택할 정도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구의회 김용석 의장은 “공영차고지는 실효성도 없고 근거도 없는 도봉·미아로 중앙버스차로제 시행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미 도봉동 345번지 일대에 음식물중간처리장이 있어 혐오시설을 한꺼번에 이 일대에 모아 놓을 경우 주민들의 반발과 환경오염이 심화될 우려가 있고 소음·매연·안전 등의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변 ‘안골’ 주민들도 구의회와 비슷한 입장이다.주민들은 또 CNG충전소가 위험시설인데다 버스노선을 간·지선으로 개편할 때 공영차고지보다는 작은 규모의 민영차고지를 분산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반발하고 있다.이미 주변에 조성돼 있는 6000㎡ 규모의 차고지 확장 노력없이 또다른 차고지를 만드는 것은 예산낭비라고 비판했다. 시 관계자는 그러나 “이미 환승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일대에 공영차고지를 조성하는 것이 주변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면서 “일부 주민들의 반발은 이해하지만 내년 말까지 완공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메트로 플러스 / 산대회참가신청 22일부터

    도봉구(구청장 최선길)는 다음 달 10일 도봉산에서 관내 주민,직장인,지역산악회,동호인단체 등 총 200여팀이 참여한 가운데 도봉구민 등산대회를 개최한다.신청은 22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다.팀별로 집결시간,단체행동,복장점검,함성지르기,합창하기,등산상식 등 팀워크에 대한 평가를 실시해 우승팀을 가린다.901-5410.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6)조동일 - 한국의 학문, 탈 식민지화를 위해

    저 옛날 원효는 중국으로 가려다 중도에 돌아왔으되 당대 불교철학의 첨단에 서 있었다.오늘날에도 해외에 유학하지 않고 세계적인 학문을 이룩하는 사람이 있다.그가 바로 국문학자 조동일 선생이다.“유럽 문명권의 독주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역사를 청산하고 다음 시대를 열기 위해서 일제히 노력하는데 동아시아도 다른 여러 문명권과 함께 적극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고,한국에서도 할 일을 해야 한다.나는 내 나름대로 그 임무의 일단을 수행하면서,주위의 다른 사람,이웃나라 학자,다른 문명권 학계의 분발을 촉구한다.”(조동일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 중에서) 말복을 앞두고 부채질을 해야 할 만큼 뜨겁던 날,선생의 연구실 바깥에서는 매미 소리가 따갑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선생은 역시 변함이 없었다.뭔가 혼자만의 담대한 구상에 빠져 있다 불청객을 맞은 듯했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지 손수 녹차를 타주시는 배려를 보이기까지 했다. 비록 내 자신이 도둑맞은 건 아니었지만,선생과의 인터뷰 테이프를 도둑맞은 나는 뭐라 변명 드릴말씀이 없었다.빨리 본론을 시작하는 수밖에. “다시 선생님의 근황을 여쭈어 보아야겠어요.” “‘지방문학사 연구의 방향과 과제’라는 책을 썼어요.이제 교정을 다 봐서 책이 곧 나올 단계입니다.그리고 ‘국문학통사’도 한 번 더 고쳐서 제4판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이 작업은 오래 걸려서 2005년 초에나 나올 예정입니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사를 연구해 오셨는데요.우리의 문학은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문학과 어떤 점에서 구별될 수 있을까요?” “한국문학사가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점이 뭐가 있느냐.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어요. 첫째,구비서사시의 전통입니다.우리 문학을 보면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사시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어느 한 시대에 구비서사시의 풍부한 유산을 가진 나라는 여럿 있지만 이렇게 시대에서 시대로 이어지면서 면면히 새롭게 창조되는 구비서사시를 볼 수 있는 것은 한국문학이 특별한 경우입니다.시대에 따른 역동성이 있다는 것이죠. 둘째,한국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간에 위치해있습니다.중국이 중심부이고 일본이 주변부라면 한국은 중간부인데 중간부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중심부가 발전시킨 공동 문어문학과 주변부에서 일찍부터 발전시킨 자국어 민족문학이 비슷한 비중으로 발전하면서 그 양자가 밀접한 관련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한국문학의 이런 특징은 다른 문명권의 중간부에서도 발견됩니다.산스크리스트어 문명권의 타밀,아랍 문명권의 페르시아,유럽 문명권의 프랑스나 독일 등이 그렇지요. 셋째,한국은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근대문학을 일으켰는데 식민지 경험을 가진 다른 어느 나라의 문학보다 훌륭한 근대민족 문학을 이룩했습니다.그리고 그것은 앞 시대의 축적의 대가입니다.일본 식민지 통치는 언론과 정치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했고 이것이 문학에서는 고도의 암시와 상징,비유를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근대문학은 문학적 창조의 방법을 보이면서도 민족이 요망한 것을 깊이 집약하는 양면성을 갖추었습니다.이것은 우리 문학이 가진 한 특성이면서 제3세계 근대문학이 가진 보편적 특징을 잘집약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대,중세,근대에 걸쳐 한국문학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전통과 가치를 구비하고 있는 셈이군요.문명권을 중심부,중간부,주변부로 보는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경우 중국은 공동 문어문학,즉 한문학의 중심부이고 그 규범을 보인 성과가 높은 반면에 중국의 백화문학은 근대에 들어서야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반면에 일본은 공동 문어문학을 많이 하지 않았고 그 수준도 별로 높지 못한 데 반해 자국어문학은 일찍 성립된 편입니다.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한 것인 양 자랑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명권의 주변부가 가지는 일반적 특성일 뿐 민족성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적합하지 못합니다.일찍 자국어문학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보다 유럽 문명권에서 주변부 중의 주변부인 아이슬란드보다 못합니다.중세에는 공동 문어문학을 잘한 중간부,즉 한국이 아주 위세가 높았고,근대에 와서는 주변부였던 탓에 자국어 문학이 일찍 개화한 일본이 조금 나은 형편에 놓여 있는 거지요.그러나 근대를 넘어서서 다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대와 중세의 유산을 함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공동 문어문학에 함유된 가치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중간부인 한국의 중요성이 커집니다.유럽처럼 동아시아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중세적 보편성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을 함께 구비하고 있는 한국이 두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구실을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한국문학 연구를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주체적,독자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 오신 것 같은데요.” “학문하는 데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두 가지 조류가 있어요.하나는 서양 학문을 가져와서 우리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을 토착화하자는 수입학이죠.그런데 이 수입학은 아무리 잘해도 원산지보다 잘 할 수는 없어요.원산지와의 격차를 줄이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죠.또 수입학으로 대안을 만들 수는 없는 거죠. 다른 하나는 국학,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자립학이라고 했어요.수입학이 범람하는 와중에 자립을 하자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것에 매달리면서 그것의 의의를 많은 경우 감정적으로 설정하고,우리 것이 가지는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편성이 결여돼 일반이론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자립학입니다.이러한 자립학으로도 우리 학문은 학문이 크게 나갈 수는 없어요. 수입학의 폐단과 자립학의 폐쇄성을 함께 넘어가는 바람직한 학문의 방법이 필요한데,나는 이것을 창조학이라고 명명했습니다.창조학이란 뭐냐면,우리 것,우리 민족,우리 유산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고 그것을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로 확대하고 제3세계로,세계로 확대하는 것이죠.동아시아로 확대한다는 것은 중세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제3세계로 확대한다는 것은 근대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그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유럽문명권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거죠.그렇게 해서 근대를 합리화하는 그들의 한계에서 벗어나,유럽 문명권 중심주의를 세계 전체로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그것의 근본적 결함을 비판하고 대안이 되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학문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입니다.” “중요한 말씀 같습니다.그런데 학문을 함에 있어 언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예컨대 영어를 잘 알아야 한다든가,말입니다.” “국제비교문학회 같은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보면,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말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겪게 됩니다.우리나라뿐 아니라 제3세계가 다 마찬가집니다.말할 수 있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영문학,혹은 국문학 전공자들이 해외에 나가서 영어는 빠지지 않게 하지만 내용이 없다는 것이죠.할 말도 있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도 있고 그것을 외국어로 표현할 줄도 아는,그러니까 양쪽을 갖춘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영문학자나 국문학자가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려워요.국문학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이 비교연구의 관점도 다 갖추고 세상에 통용되는 말로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실이고 제3세계 국가들도 모두 비슷합니다.그런 공통적인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경쟁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견해는 만만치 않은데요.복거일씨가 그런 분 가운데 한 사람이었죠?” “영어는 일종의 교통어입니다.모국어가 다른 사람끼리 통용하기 위한 말인데,교통어로서의 영어가 갖는 효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할 말은 점점 더 없어져요.할 말이 있고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번역을 해서라도 내놓을 수 있는데 말을 할 수 있고 말할 내용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선생은 어조가 한결 높아진다. “지난번에 그런 주장이 횡행하길래 3개월 만에 급한 대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이라는 책을 썼습니다.관심이 있어 자료는 모으고 있었지만 내 분야가 아니었기에 바로 쓸 계획은 없었어요.그러나 문제가 시급하다는 생각,몇 달 만에 책을 썼고 원고 넘기고 한 달여 만에 책이 나왔어요.그 책의핵심 중 하나는,영어 공용어 국가는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였거나,자기 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뿐이라는 것이에요.우리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게 하는 것,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 한국어를 못 쓰게하는 것은 어떤 정치권력이나 법으로도 불가능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리를 떠드는 것은 사람의 의식을 혼미하게 하는 거예요.영어를 공용화한 나라가 얼마나 많은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조사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고 정책을 좌우하는 사람들까지 부응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그것은 경쟁력도 못키우고 학문을 발전시키지도 못합니다.” 선생은 외국어를 가장 잘하는 국문학자 가운데 한 분이고 학문을 하려면 5개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영어 공용어론에 대해서는 여간 강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평생 학문을 학문답게 해온 사람의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닐는지. 나는 선생께,선생님도 생활이라는 개념이 있느냐고 여쭈었더니,그렇단다.매년 8월 아무 날에는 제자들과 속리산에함께 오르신단다.이 글을 정리하느라 선생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매주 일요일 오후 1시5분쯤이면 도봉산역에 도착해 등산을 하신단다.참으로 놀라운 생활이 아니냐.그 규칙성,그 성실함이라니. ■방교수가 본 국문학자 조동일 옛날에 신림 4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큼직한 가방을 멘 사람이 혼자 쑥 들어오더니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호프 500cc를 한 잔 시켜 마시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그가 바로 조동일 선생이었다.그 무렵 나는 그가 늘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마냥 큼직한 커리어백을 끌고 다니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그는 다른 생각 없이 공부만 하고 땅만 보고 다니는 사람 같았다.생각은 하늘에 두고. ●도전과 의지의 삶… 저서 50여권 이번에 조동일 선생과 인터뷰를 치르는 동안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녹취 테이프 푸는 일을 맡은 작가 김신우씨 집에 도둑님이 들어 테이프를 잃어버린 것.생각다 못해 선생에게 다시 인터뷰를 하자고 어렵게 말씀 드렸더니 쾌히 그러자신다.천재지변 같은 일을 어떻게하겠느냐고. 나는 선생 연구실의 낮은 문턱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높고 낮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었다. 1939년 경상북도 영양 사람으로 예천 출생이다.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한 뒤 국문과에 다시 입학,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학문을 익히는 도전과 의지의 삶을 살아왔다.1982년에 간행되기 시작하여 모두 다섯 권으로 낸 ‘한국문학통사’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쓴 저서가 모두 50여권. 그의 관심은 한국문학에서 출발하여 한국문학으로 끝나되 그 단일 주제는 끊임없이 확장,심화되어 왔다. ●평생 한국학의 세계성 탐구 ‘우리 학문의 길’(1993) 등이 보여주듯,그는 한국 지식사회가 주체성과 독자성을 확보하는 길을 고민해 왔으며 나아가 그러면서도 정저지와(井底之蛙)에 머무르지 않는 학문의 창조성을 고창해 왔다.최근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처럼 그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갈무리하는 저서를 내는 한편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민족문화가 경쟁력이다’(2001) 같은 저서로 사회 일각의 천박한 서양 동화주의를 비판하면서 우리언어와 학문의 가치 옹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 “히말라야 미답봉 가르침 기대돼요”이달말 카조리봉 도전 여성산악인 김주미씨

    “아무도 밟지 못한 처녀봉에 도전하게 돼 가슴이 설렙니다.” 여성 산악인이 히말라야 산맥의 미답봉인 카조리(Kyajori·6151m)봉 암벽등반에 도전한다. 김주미(27·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졸업)씨가 주인공. 김씨는 이달 말부터 30일간 일정으로 모교 산악부와 함께 카조리봉에 오른다. 5000m까지는 걸어서 등반한 뒤 나머지 1000여m 구간은 암벽을 오르게 된다.카조리봉은 지난해 네팔에서 개방한 103개 미답봉 가운데 하나.아직 아무도 정상을 밟지 못했다. 이번 등반팀은 산악부 재학생 4명과 졸업생 7명으로 이뤄졌다. 29일 네팔로 떠나는 등반팀은 지난해 여름부터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의 암벽을 오르내리며 이번 산행을 준비해왔다.김씨는 “대학 때부터 산에 다녔기 때문에 큰 두려움은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1997년 대학에 입학한 직후 산악부에 몸담은 김씨는 2년 뒤 해발 2997m인 일본의 설산 쓰루기다케(劍岳)를 등정했고,2001년에는 등반대장을 맡아 백두산 천지까지 동계 설산 훈련을 이끌었다. 그는 “한걸음씩 정상을 향해올라가다 보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고,차츰 마음이 넓어진다.”면서 “히말라야의 미답봉이 어떤 가르침을 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합
  • 수도권 전철 55%만 운행… 교통대란 불가피 / 오늘 출근 ‘비상’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지하철의 파행 운행 등으로 30일 출근길에 일대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지하철 운행을 늘리거나 시내외 버스를 증편하고,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등 수송 비상대책을 마련했지만 시민들의 불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인선등 배차간격 평소 2배 철도노조 파업으로 수도권 전철은 종전 하루 2040개 열차 가운데 54.9%인 1119개 열차만 운행하고 있다.파업 첫날인 지난 주말과 휴일에는 큰 혼잡을 빚지 않았지만 평일인 30일 출근길에는 극도의 혼잡이 예상된다. 피해가 예상되는 수도권 전철구간은 구로∼인천간 경인선과 서울∼수원간 경수선,용산∼의정부간 경원선,수서∼오리간 분당선,지축∼대화간 일산선 등이다.이 가운데 철도청 운행 비중이 높은 경인선 구간에서는 30일 오전 종전 596차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47차례만 운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배차 간격이 평소 5분에서 10분으로 늘어나 출근길 시민들로 혼잡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또 경원선은 12분에서 20분으로,분당선은 4분에서 15분으로 배차 간격이 늘어날예정이다. ●열차도 운행 횟수 크게 줄어 서울역에서 운행하는 새마을호는 48회에서 4회,무궁화호는 90회에서 27회,통일호는 23회에서 4회로 운행 횟수가 줄어 열차로 출퇴근하는 시민들도 불편을 피할 수 없게 됐다.주말과 휴일에는 환불을 요구하며 항의하는 사태도 잇따랐다. 김동희(46·여·강북구 미아동)씨는 “일요일 오후 경북 김천까지 가는 무궁화호 열차표를 예매했는데 열차를 탈 수 없었다.”면서 “열차가 취소되면 최소한 승객에게 미리 알려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시내외버스 증편·연장운행 당국은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도권 전철과 서울시 지하철 소속 열차를 증편할 계획이다.특히 출근길 시민들이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 육상 대중교통을 이용해 줄 것을 호소했다. 서울시는 30일 지하철 1·3·4호선 구간에 전동차를 79회 늘려 운송률을 평소의 71%로 유지키로 했다.평소 632회가 운행되는 1호선에는 31회,3호선에 10회,4호선에 38회를 늘릴 계획이다.승객이 집중되는 출퇴근 시간인 오전 6시30분∼9시30분,오후 5시∼8시에는 예비차량 투입,배차간격 단축 등으로 시내버스 수송능력을 평소보다 30% 늘리고 막차시간도 1시간 연장키로 했다.또 지하철 파행운행 구간인 도봉산역∼종로5가에 11대,기아대교앞∼구로공단역 4대,온수동∼신도림역 5대 등 모두 20대의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할 예정이다.서울시 관계자는 “시내외 버스 29개 노선 813대의 운행을 늘리고,모든 시내버스를 밤 12시30분까지 연장 운행할 것”이라면서 “파업 수준과 강도에 따라 1만 4130대의 부제택시 해제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시내버스의 운행을 2496대에서 2750대로 늘리고 시외버스는 1647대에서 1770대로 늘려 서울·수원 등 주요도시 위주로 운행키로 했다.서울과 인천 사이를 운행하는 삼화고속 등 민간 버스업자들도 출·퇴근시간대 운행 버스를 평소 90회에서 100회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구혜영 류길상 이두걸기자 douz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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