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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무장병력 침투/정부,사과받아내야”/이 자유총련 총재

    자유민주총연맹의 이철승총재는 27일 북한측이 자행한 지난 22일의 무장병력침투사건과 관련 『정부는 저들의 화전양면의 협상전술에 더 이상 우롱당하지 말고 남북대화를 일시 중단하더라도 북한의 무장도발에 대한 확실한 시인과 사과를 받아내고 의연한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미국의 북도발 가능성 경고에…(사설)

    북한의 대남무력도발가능성을 경고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미국방·안보관계책임자들로부터다.체니국방,게이츠CIA국장,파월합참의장,리스카시주한미군사령관 등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대규모 군사력의 북한은 아시아안보의 중대한 위협이며 한국전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북한의 지도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보지 않는다』『현재 북한은 병력과 무기면에서 상당한 우위에 있으나 경제난과 외부지원중단 등으로 그 우위가 크게 잠식될 90년대말 이전에 공격을 개시하려 할 위험이 있다』『앞으로 3∼4년이 심각한 고비이며 북한은 무력에 의한 통일방안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북한은 병력 및 장비의 65%이상을 비무장지대로부터 1백㎞이내에 전진재배치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내년의 한반도 군사분쟁 가능성이 높다』등등이다. 물론 보다 많은 군사예산확보를 위한 과장일 수 있다.북한의 핵개발견제용일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소름끼치게 하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미국방관계자들이 그들의 목적만을 위해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을리는 없을 것이다.그들 나름의 근거는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게된다. 지난날의 냉전시대 같았으면 그중 단 한건의 경고로도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탈냉전의 시대라서 그런지 연이은 심각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신경을 쓰지 않고 예사로 듣고 있다.「설마 그럴리가」하는 분위기다. 북한을 뒤에서 버티던 공산종주국 소련은 소멸되었다.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우리와 선린·우호조약을 맺으려 하고 있다.중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세계는 화해와 공존을 지향하고 있다.남북간에도 화해·협력과 비핵화선언이 채택되는 등의 분위기다.특히 경제파탄의 북한은 전쟁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그렇게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그러기를 바란다.그렇더라도 우리의 안보의식이 이처럼 해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부정적인 측면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북한 주석 김일성은 과거를 잊자고 했지만 미래를 위해 문제삼지 않을수는 있어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평화를 내세우며 기습남침을 감행하고 남북대화를 하면서 남침용 땅굴을 판 역사가 있다.민생도탄에도 불구하고 전쟁준비에는 빈틈이 없다.한국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서울을 전격 기습점령하면 식량·연료·무기·병력의 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미국쪽에서 들려오는 경고의 소리들을 이렇게 건성으로만 들어도 되는 것인가.북한은 핵무장의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인상도 짙다.경제도 어렵고 주변정세도 그렇다.권력세습의 최대난관을 앞두고 있다.그동안 예측불허성으로 유명한 북한이다. 우리 기준,우리 상식으로만 북한을 보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이다.탈냉전·화해와 공존 그리고 공산독재체제에 대한 자유민주체제의 승리라는 이름의 마약에 우리는 너무 도취하고 몽롱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국방당국자들로부터까지도 반응이 없다.역사상 해이와 방심이 모든 실패와 비극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광고주의 언론 도발/권혁찬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로 흔히 권력으로부터의 압력과 광고주의 압력을 꼽는다. 미국등 언론자유가 고도로 보장된 나라에서는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보다 오히려 기업의 광고압력을 「언론자유를 해치는 최대의 공적」으로 치부하고 있다. 요즘 현대그룹이 서울신문사에 가하고 있는 광고해약과 게재중단사태는 이제 우리사회도 광고주 압력이 언론자유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수위에 이르렀음을 실감케 해준다. 현대그룹은 지난5일자와 11일자,20일자 서울신문에 싣기로 예약했던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현대정공광고를 돌연 취소했다.현대의 「광고탄압」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매지인 스포츠서울과 퀸·피플·TV가이드에도 똑같이 가해지고 있다. 현대의 서울신문에 대한 「광고탄압」은 정주영 전명예회장이 계열광고회사인 금강기획의 매체담당자에게 직접 지시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처럼 정치한번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자꾸 「안좋은 소리」를 하는 신문이 고와보일리 없다.악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현대그룹의 광고해약과 게재중단사태는 정치와 기업의 구분을 현대와 국민당이 스스로 흩뜨리는 잘못된 처사이며 언론에 대한 탄압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정정당의 정치적 견해를 지지 또는 반대했다는 이유로 특정지에 기업광고를 주고 말고한다는 것은 언론자유를 해치는 기업의 횡포이며 중대한 도전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단순한 상품·기업광고까지 정치와 연계시키려는 것은 정씨와 현대그룹이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해온 『현대와 국민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스스로 뒤엎는 행태이다. 물론 광고주에게는 광고지면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광고업계의 관행을 무시한채 예약했던 광고까지 빼앗아가며 「어디 한번 맛좀봐라」는 식으로 하도급횡포를 부리듯 압력을 행사하는 재벌현대의 모습은 기업윤리와 거리가 먼 일이며 자유언론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짓이 아니다. 정씨와 현대는 광고를 정치와 연계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또 정경분리야말로 큰 정치인이 가져야 할 첫째 덕목이라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 북한 핵 저지/다자간 압력 가중된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 후속조치 전망/우선 내년 2월까지 핵부재 선언할듯/북서 거부땐 경제제재 강제사찰 검토/핵개발 포기면 대미일 수교 지원·경협 노태우대통령의 비핵정책 선언으로 정부가 앞으로 취할 조치는 북한의 핵무기개발 저지및 핵재처리 시설 포기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노대통령의 선언 자체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정착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의 핵무기개발 저지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단계로 북한에 대해 외교적 압력을 강화할 계획이다.외교적 압력은 쌍무적 차원과 다자간 협력체를 통한 방안등 2가지의 「연대외교압력」이 있다.쌍무적 차원에서 볼때 북한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역시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에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미·일·중·소를 들 수 있다. 외교적 압력이란 「말로만」핵무기 개발 중단을 촉구하는 것 같지만 국제적인 고립에서 탈피하려는 북한 입장에서 볼때는 그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평가된다.다자간 협력체를 통한 압력방안으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북핵사찰촉구 결의 ▲유엔내 연설을 통한 촉구 ▲국제회의에서의 북한핵무기 개발 거론등을 들 수 있다. 노대통령이 비핵정책 선언에서 『이제 북한이 국제사찰을 피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명분도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듯이 북한이 상응하는 긍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본격적인 대응책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정부는 11일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접촉등의 대북대화 창구를 통해 이같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면서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핵무기개발 의사를 포기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도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다시말해 화전양면 전술을 펼 것이라는 것이다. 그 반대급부란 제4차 고위급회담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흡수통일 의사가 결코 없으며,남북연합을 통해 북한의 체제가 유지되고,북한의 대미·일 관계개선을 지원하며,대북경제지원을 보장한다는등의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북한은 체제보존 차원에서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설득및 압력에도 불구,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개최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남한의 핵불재 발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저지를 위한 한단계 진전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그렇다면 남한의 핵불재는 언제쯤 밝혀질 것인가.우선 남한에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주한미군 핵무기 철수 시기와 반드시 연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핵불재확인은 북한이 우리의 비핵선언에 상응하는 긍정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또다른 압력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와 핵부재 확인의 상관관계를 보면 ▲핵무기는 이미 철수됐으며 일정시점에서 핵불재를 확인 ▲현재 철수가 진행중이고 완료 이후 일정시점을 택해 핵불재 확인 ▲완료와 동시에 확인하는등의 방안을 상정할 수 있으며 내년 2월쯤부터는 대북핵무기개발포기 압력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정부당국자는 전망하고 있다.따라서 핵부재확인은 늦어도 내년 2월 이전에는 이루어질 것으로 분석된다.92년2월은 IAEA가 북한과의 핵안전협정 체결교섭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결국 이때까지 북한이 핵안전협정을 체결,핵무기개발의사를 포기했음을 밝히지 않으면 대북조치는 압력 수준을 지나 「강제」차원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그 수순은 정부당국자와 미국관리및 학자들의 발언을 종합해 볼때 ▲유엔 안보리의 핵사찰 촉구 결의안 채택 ▲대북 경제제재조치 결의 ▲강제사찰 결의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적 대응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의 비핵선언과 함께 한반도 핵무기 불재 확인이 되면 한반도의 힘의 공백은 어떻게 될 것인가.주한미군도 단계적으로 감축되는 추세이고 보면 힘의 균형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결코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재래식 무기만으로도 북한의 예상되는 도발을 저지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미국의 핵우산보호가 유효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이다.핵우산 보호의 구체적방법은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ICBM)·전략핵 미사일·잠수함 탑재미사일등 3가지가 사용될 수 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8·끝

    ◎“철군 반대” 인터뷰로 워싱턴 “발칵”/이틀뒤 배시사령관,“본국 소환” 통보/카터,경위 설명 불구 끝내 해직 명령/“한국내 전술핵 제거땐 위험” 하원 군사소위 증언서 강조 배시사령관의 민간인 특별고문인 짐 하우스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그해(77년) 5월18일 수요일 이었다.그는 1946년이래 한미 양국군의 고문역으로 서울에서 근무해온 베테랑 한국통이었다.그가 주한미군 철군관계를 취재하러온 워싱턴포스트 도쿄특파원 존 사르와 함께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르는 도쿄의 한국 망명 좌익인사들과 친하며 스나이더대사가 그에게는 어떠한 브리핑도 하지말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들은바 있어 그를 만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그러나 하우스만은 유엔사령부가 이미 존 번부사령관의 인터뷰를 허가했으며 나에게는 2사단의 역할에 관한 간단한 질문 몇가지만을 하게될 것이라며 만날 것을 간청했다. ○한국군 장성 견해 어필 결국 「20분간만」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그는 좀 야위었지만 저돌적으로 보이는 30대의 젊은이였다.몇가지 질문을 받는동안 그가 군사문제에는 별지식이 없음을 알게 됐다.마지막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찬반견해를 물었다.『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김일성이 전쟁도발의 충동을 받게될 것이라는 한국군 장성들의 견해를 순수한 군사적 견지에서 동의한다』면서『그러나 일단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우리는 최대한 열심히 수행해나갈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다음날인 19일 밤10시쯤 배시사령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조지 브라운합참의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워싱턴포스트지 1면에 실린 존 사르의 기사 때문에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르에게 크게 문제될만한 얘기는 하지 않았고 또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얘기했기 때문에 문제된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커터 게획 도전” 보도 자정이 막 지나서 배시사령관으로부터 또한차례 전화가 왔다.가능한한 빠른 비행기편으로 워싱턴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경위설명을 하라는 본국 정부의 소환령을 전했다.한국전쟁때 맥아더사령관이 트루만대통령에 의해 소환된 이래 대통령이 해외주둔 장성을 소환한 일은 두번째였다. 문제의 워싱턴포스트지 복사본을 구한 것은 다음날 새벽 6시였다.「위험한 결정­주한미군장성들,카터 철군계획 신랄한 비판」이라는 제목의 1면박스로 내가 카터대통령의 미군철군계획을 「실책」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돼 있었다.또 철군이 전쟁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한국군장성들의 견해가 내 견해로 나타나 있었으며 『많은 군관계자들이 카터의 철군 구상에 도전하고 있다』는 인용도 있었다.더욱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대통령 발표 정책에 대해 일선 장군들이 공공연히 이견을 나타내는 이례적인 현상들이 정책수행 직전에 나타나고 있다』는 인용구였다. 다음날 도쿄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우연히 가족들과 함께 탄 짐 하우스만을 만났다.딸인듯한 젊은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던 그가 내옆에 와서 앉자 그 여자도 함께와 뒷자리에 앉았다.우리는 사르의 보도내용들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얼마후 그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을때 그녀가 옆에 앉아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몇가지 질문에 답하다보니 그녀는 하우스만의 딸이 아니었다.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그녀는 어깨에서 테이프 리코더가 든 백을 내려놓으며 『멜린다 닉스,CBS기자에요』라고 답했다.나중에 온 하우스만은 그녀가 사르의 부인이라고 보충설명을 해줬다. 그녀는 「특종」을 하기 위해 도쿄에서 내렸고 나는 극성스러운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피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 안에서는 내내 브라운 합참의장에게 제출할 경위서를 작성했다.워싱턴에 도착해서 안 일이지만 이 철군계획은 이미 지난 5월5일께 최종결정됐으며 유엔사에는 이에앞서 4월말 버나드 로저스육참총장이 방한했을때 이미 통보한 것으로 돼있었다. 해럴드 브라운국방장관과 카터대통령을 만난 것은 5월21일 대통령집무실에서 였다.카터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들어왔다.『싱글로브장군,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익숙해 있소.8년동안의 해군생활에서도 그랬고 조지아주지사를 맡으면서도 그랬소』 대통령은 또 철군에 대해 합참의장과 국방장관도 동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내가 듣기로는 합참은 철군의 3개방안을 분석하라는 지시만 받았지 철군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지시받은 것은 아니었다.합참은 결국 가장 지연된 방안을 건의하면서 그것이 미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브라운장관이 그 대목을 삭제했었다.나는 장관을 쳐다봤다.그는 창밖의 로즈 가든을 내다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또 『장군의 직속상관인 배시대장의 우려도 결정전에 충분히 참고를 했소』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최종결정을 내리기전 배시와 상의하겠다고한 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이어서 그는 『당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않아 국방장관에게 해직을 명령했소』라고 말했다. 나는 존 사르기자와 인터뷰한 경위를 설명했다.철군계획이 확정된 사실을 모르고 그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으나 일단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는 최선을 다해 그를 수행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한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해직 결정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그러나 대통령은 단호히 거절했다.누군가가 대통령이 나를 군법회의에 회부시키든가 아니면 강등시키려했다고 한말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싱글로브소장 참모장직 해임」이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장관의 말을 인용,1면 톱으로 보도했다. 25일에는 하원군사소위원회에서 증언이 있었다.방청석은 초만원이었다.나는 질의에 앞선 진술에서 ▲결코 민간의 군통치원칙을 무시하지 않았다 ▲헌법을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신문을 이용 군통수권자에게 도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점등을 강조했다.여러가지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미 지상군과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이다.만일 우리가 이들 지상의 수단들을 제거해버린다면 우리의 억지력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은 오전 오후 7시간동안 진행됐고 마지막에 스트래튼위원장은 북한군의 군사적 우위와 명백한 침략의도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카터대통령의 고집스런 주한미군철수결정은 의회의 반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미 지원사령부로영전 다음날 워싱턴포스트는 역시 1면 머리기사로 「카터의 대한정책 정면 비난」이라고 스트래튼위원장의 말을 인용,보도했다.백악관은 즉시 반격에 나서 브라운국방은 내셔날 프레스클럽에서 로저스육참총장이 이미 나에게 결정사실을 통보했었으며 주한미군 지휘관들도 철군에 동의했다는등 변명을 늘어놓았다.그러나 나에게는 주한미군정책에 관하여 일체 함구령이 떨어져 있었다. 27일 로저스총장이 새보직을 통보했다.조지아주 맥퍼슨에 있는 미육군지원사령부 참모장이었다.참모부인원만도 2천여명에 달하는 미육군의 12개사령부중 가장 큰부대로의 영전이었다. 결국 카터대통령은 철군정책과 관련 대외적인 대통령의 권위를 확인했고 나의 영전조치로 군내부의 불만을 무마한 셈이었다. 다음해 4월27일 나는 조지아공대 ROTC생도들을 대상으로한 연설에서 카터대통령의 중성자탄 생산연기및 파나마운하정책에 대해 내견해를 밝혔다.소련의 상응조치를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의 중성자탄 생산의 일방중단은 군사적으로 어리석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파나마운하의 관할권 이양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이같은 견해가 또 AP통신을 타고 보도됐다. 다음날 나는 국방성으로 소환됐을때 알렉산더 육군장관과 로저스 육참총장에게 사의를 밝혔다.35년간의 군생활이 이렇게 마감됐다.마침내 위험한 임무는 끝난 것이다.
  • 미·EC,유고군부 동태 예의 주시”/혼미 거듭하는 유고사태

    ◎겐셔 독 외무,“연방군 미쳐 날뛰고 있다”/미 국무부선 자국민에 조기 출국 권유 ○…유고슬라비아 연방군과 슬로베니아공화국 방위군이 전투를 중단한 것으로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로베니아의 밀란 쿠칸 대통령은 『공화국 영토 방위군은 연방군이 「4일중 야만적인 공격」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으며 옐코 카친 공보장관도 공화국측이 입수한 연방군 내부문서를 근거로 새로운 공세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유고에서 2번째로 큰 크로아티아공화국측도 슬로베니아로 향하고 있는 연방군의 합의되지 않은 영내 침범을 「무력도발」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시메 조단 국방장관은 『우리는 적절한 대응태세를 갖출 것이며 모든 크로아타아군은 전투준비 상태에 있다』면서 『우리는 싸우기를 바라지 않으나 우리 국가의 자유가 이에 달려있다면 자유는 대단히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고연방군이 4일 슬로베니아공화국에 대해 또 다시 무력사용 경고를 발함에 따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 마크 아이스켄스 벨기에외무장관은 유고연방군과 슬로베니아방위군간에 또 다시 폭력이 발생한다면 EC는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지역 국가지도자들은 3일 유고슬라비아 내전사태에 대해 지금까지 취해온 조심스런 태도에서 벗어나 유고연방군에 대해 강도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독일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유고연방군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비난하고 즉각 완전철수할 것을 촉구했으며 이탈리아 외무장관도 이에 가세해 만일 유고군이 휴전약속을 준수하지 않으면 크로아티아공화국 및 슬로베니아공화국과 『연대해서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의 더글러스 허드 외무장관도 유고군은 유고의 분열을 촉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그는 의회 연설에서 『유고의 구체제는 상당히 부패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이상 존속할 수 없는 것이다.따라서 유고는 단일국가를 유지하기가 이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무부는 연방군과 슬로베니아공화국 방위군간의 무력충돌로 2백명이 사망하는등 유고사태가 혼미에 빠져들자 4일 슬로베니아및 크로아티아공화국에 체류하고 있는 자국민들에게 가능한한 빨리 빠져나올 것과 유고슬라비아로부터의 출국을 권유했다. ○…바바라 맥더걸 캐나다 대외업무부장관은 3일 캐나다가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유고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두 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승인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맥더걸장관은 지난주 발표된 이 두 공화국의 독립선언을 캐나다가 승인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캐나다 정부는 폭력사태가 중단된다면 민주적으로 이뤄진 어떤 해결책이라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은 3일 유고슬라비아 사태와 관련한 가장 강력한 어조의 논평을 발표,이번 사태를 심각히 우려한다고 말하고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두 공화국이 합의한 독립선언의 3개월 유예가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비탈리 추르킨 소연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뉴스 브리핑에서 『우리는 유고의 현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고 『충돌이 인명손실을 초래했다는 사실은 깊은 유감을 자아내게 한다』고 덧붙였다. ○…알로이스 모크 오스트리아외무장관은 4일 유고연방군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열망을 꺾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경우 오스트리아는 「한치의 주저도 없이」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크장관은 또 오스트리아외에도 「상당수의」국가들이 두 공화국에 대한 승인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유고 연방간부회,군통수권 상실/슬로베니아 대표

    ◎“군제안 수용돼야 명령 따를 것”/연방군,“도발 계속땐 비극 초래” 경고/“국경초소 이양” 최후통첩/연방간부회 【베오그라드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유고의 국가최고기관인 연방간부회는 이제 군에 대한 통제력을 더이상 갖고 있지 않다고 유고 연방간부회 슬로베니아대표인 야네즈 드르노프스크가 4일 밝혔다. 이와함께 안테 마르코비치 총리도 연방군이 독자적인 행동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드르노프스크대표는 이날 슬로베니아라디오와의 회견에서 『군은 연방간부회가 군의 제안들을 수용할 경우에만 간부회에서 내려진 결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관영 탄유그통신은 보도했다. 드르노프스크는 연방간부회가 비상대권을 요구한 군의 제안을 거부한 지난 3월에도 군이 연방간부회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고 주장한바 있다. 마르코비치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유고정부는 연방군에 대해 슬로베니아공화국에 무력을 사용하라고 명령한바 없다고 말했다.마르코비치는 또 지난달 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포한 이래 연방군이 독자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유고연방정부와 슬로베니아공화국간에 휴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중요한」 국경문제에 대해 아직 이견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연방군은 슬로베니아방위군의 적대행위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전면적인 대공세를 재개할수 밖에 없다고 위협함으로써 지난 3일 연방군에 발포중지령이 내려지고 연방군 일부가 원대복귀함으로써 일단 소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던 유고내전 위기는 다시 혼미속으로 빠져들었다. 연방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연방군의 자유로운 이동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며 『연방군에 대한 도발은 슬로베니아인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은 이어 슬로베니아에 『연방군 인내의 한계를 자극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한편 『슬로베니아 지도부내의 무책임한 호전적 그룹의 자살과 같은 정책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베오그라드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유고내전 위기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소집된 유고 연방간부회는 4일 모든 슬로베니아방위군은 4일 하오10시(한국시간 5일 상오7시)까지 기지내로 복귀하고 모든 연방군 포로들을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연방간부회는 또 오는 7일 하오7시(한국시간)까지 슬로베니아방위군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모든 국경초소를 연방군에 넘겨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연방간부회는 이같은 명령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 「정부정책토론」 TV중계 논란 안팎

    ◎“막판 대세잡기”… 야서 쟁점화 안간힘/“도덕성훼손 속셈… 통상적 국정수행” 반격/민자/후보사퇴등 “관권개입” 내세워 폭로공세/야권 기초의회의원선거전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여야정치권은 후보자의 사퇴속출,정부의 정책발표,대통령의 연두지방순시 등을 놓고 후보매수·관권개입·행정선거 시비의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권은 정당간여를 배제토록한 선거법정신에 맞게 될수 있는대로 여야격돌을 피해 나간다는 방침이나 평민당은 관권이 개입된 위법·탈법 선거운동사례가 적발될 때마다 이를 폭로,대여공세를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여야공방은 가열될 전망이다. ○…민자당은 선거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평민당측이 후보자 사퇴문제를 관권개입에 의한 「외압」에 따른 것으로 집요하게 주장한데 이어 대통령의 연두순시 및 청와대 정책토론회 등까지 트집잡아 「행정선거의 표본」이라고 밀어붙이자 『기초의회선거에서 대세가 일찌감치 판가름나자 광역선거에 대비,여권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위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일축. 민자당은 특히 선거기간 중에는 야권의 「억지도발」 행위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맞대응을 자제한다는 입장에 따라 앞으로 파상공세가 계속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 민자당이 이같이 다소 느긋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는 이미 여권의 구도대로 분리선거가 실시되면서 여성향인물의 압도적우세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사안에 대해 일일이 왈가왈부할 경우 향후 광역의회선거 등을 앞두고 예상되는 야권의 바람작전에 말려들어 상승무드가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연두순시를 선거운동이라는 평민당의 주장과 관련,김윤환 사무총장은 『선거 때라고 대통령이 국정을 포기할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행정업무를 야당총재의 정당활동과 혼동한 모양』이라고 반격. 당의 한 관계자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당차원 홍보활동도 자제키로 한 마당에 야권의 정치공세성 공격에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겠느냐』고 전제하고 『현재로선 정당의선거개입이 금지된 기초의회선거의 정신에 맞게 정치배제의 분위기를 유지토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자신감을 표시. 민자당은 또 지난 19일 평민당의 인천집회에서 『전북 고창군에서 민자당적후보가 평민당적후보를 1억5천만원에 매수,후보사퇴를 요구했다』는 주장에 대해 『평민당적후보가 후보사퇴를 전제로 먼저 금품을 요구했다』고 반박. 민자당은 전북도지부에서 자체 조사한 보고서내용을 공개하면서 『평민당측이 민자당적후보가 재력가인 점을 악용,선거법을 위반토록 유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평민당적후보가 금품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이날밤 공개. ○…평민당은 선거전이 종반에 들어서도 정당단합대회 등을 통한 당세확장 전략이 기대에 못미치자 정부의 최근 잇따른 경제정책발표와 정부회의의 방송중계 등을 선심성 불공정선거운동으로 몰아치는 등 적극적인 대여공세로 전환. 평민당은 이와함께 20일 전북 고창 기초의회선거에 출마한 여권당적후보의 평민당적후보 매수기도설을 터뜨리는 등 연일 관권 및 금권개입사례를 발표해 여권성향후보에 대한 「흡집내기」를 통해 평민당측 지원후보를 원격 지원. 평민당측은 특히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조업경쟁력 강화대책회의와 19일 노사관계토론회를 TV와 리디오로 잇따라 생중계한 것과 관련,『대통령이 당정을 주관하는 것은 좋으나 과거에 일찍이 없었던 낮시간에 TV방송으로 생중계하는 것은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반발,중앙선관위에 항의단을 보내는 등 선거쟁점화. 민주당측도 19일 정무회의에서 이같은 TV생중계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면서 정부측에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이기택총재는 20일 정부의 최근 각종 공약과 관련,『여권이 이번 선거운동기간중 남발한 각종 공약을 모두 수집해 선거이후에 그같은 농약들이 실현되는지를 철저히 추적조사할 방침』이라고 엄포. 평민당측은 그러나 순회당원단합대회를 통한 붐조성이 여의치 않은데다 믿었던 호남지역에서도 「내부공천」에서 탈락한 후보자들이 조직분규를 일으키는 등 난기류에 휩싸이자 오는 24일 김대중총재의 광주·전주 당원대회를 통해 직접 진화를 시도하는 한편 대여공세를 통한 「이이제이」 전법을 병행. ○…청와대측은 평민당이 대통령의 지방연두순시를 두고 여권후보지원운동이라고 비난한데 대해 처음에는 「말같잖은 소리」라고 대꾸조차하지 않으려 했으나 20일 이수정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이를 공식반박. 또 노태우대통령이 주재한 제조업활성화·산업평화 등 경제 관련 두 회의를 TV가 생중계한 사실도 여권의 불공정선거운동이라고 평민당이 몰아세우는데 대해 청와대측은 평민당이 기초의회선거의 정당배제여론이 확산되자 뒤늦게 당황,좌충우돌식 트집작전으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 한 당국자는 연두순시나 당면경제현안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대통령의 통상적인 국정수행인데 선거기간 중이라고 국정수행을 중단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청와대 회의의 중계여부를 해당 방송사가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인데 평민당이 아직도 구시대의 발상에 젖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라고 맹공. 다른 한 당국자는 평민당이 지방순회 단합대회를 해도 바람이 일어나지 않고 호남지역에서 조차 내부공천 반발 때문에 역작용이 많자 선거종반에 지푸라기라도 잡아 시비를 걸어보자는 계책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 ○…중앙선관위는 야당측이 「선거기간중 정부의 선심행정은 명백한 관권개입」이라며 선관위측에 판단을 요구하고 나선데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 특히 선관위측은 정당집회와 관련한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야당이 시비를 걸어온데 이어 정치적 이슈에까지도 게속 선관위를 끌어들이려는 태도에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 선관위는 노태우대통령의 연두순시 및 내무부 직원들의 선거단속활동투입 등이 명백한 관권개입 및 선거지원활동이라는 평민당의 주장에 대해 『노대통령의 연두순시는 대통령의 통상적인 국정업무수행의 일환이며 내무부 등의 활동도 정부의 행정고유기능으로 선관위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정리.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관권개입을 하지 않았다고 공식입장을 밝힐 경우 야당들이 「선관위도 정부·여당과 한통속」이라고 몰아붙일게 뻔하다』면서 『굳이 정치적이슈에 선관위가 말려들 필요가 없지않느냐』는 입장. 따라서 선관위는 공명선거풍토 확립을 위해 『선관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엄정중립을 취할것이며 설사 정부라하더라도 불법행위가 있으면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원칙론만 강조. 또 평민당대표단이 지난 19일 윤관위원장을 방문해 정부측에 경고 또는 제재조치를 취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선관위는 선관위원들의 합의제로 운영되는 만큼 일단 21일 전체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는 해보겠다』는 식으로 즉답을 우회.
  • “후세인,인도에도 두차례 망명 타진”

    ◎전후처리 숨가쁜 중동 이모저모/정정불안… 터기접경부대 수도이동령/체니 미 국방,“항모전단·공군 걸프주둔” ○인지,“정부선 거절”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달 두차례에 걸쳐 인도 망명을 은밀히 요청해 왔으나 인도 정부가 이라크측의 이같은 「비밀제의」를 거절했다고 인도의 대중지 선데이 옵서버가 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후세인의 사촌인 바르잔 이브라힘이 지난달초부터 후세인과 그 가족들의 망명지 물색작업에 나서 스와미 인도 상공장관과 접촉,망명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이브라힘은 지난달 18일 리비아의 트리폴리에서 스와미장관을 만나 인도측의 망명허용 여부를 통보받을 예정이었으나 스와미장관이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지난달 22일 후세인의 부인이 인도방문을 희망한다고 적힌 제2의 메시지가 전달됐으나 인도정부는 정중하게 「지금은 그같은 방문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고 밝히는 답신을 이라크측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걸프전쟁이 마무리된 후항공모함 전단을 걸프지역에 그대로 유지하여 이 지역에서 「보다 강력한 공군력」을 유지하게 될지 모른다고 딕체니 국방장관이 2일 밝혔다. 체니 장관은 걸프국가들이 이같은 계획에 동의할 경우 미국의 전폭기들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교대로 주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쿠데타 계획” ○…망명중인 이라크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전후 이라크의 「구국정부」 구성문제를 협의중이라고 이라크의 한 반정부 지도자가 2일 밝혔다. 이라크군 참모차장을 지낸 퇴역 군장성이자 야당 지도자인 하산 알­하키브는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한 호텔에서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구국정부 구성이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몇가지 대안들중의 하나』라면서 그같이 밝히고 이 구국정부는 이라크 남부 바스라주에서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세인이 조만간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그는 현재 불구상태이며 우리는 이라크군과 사령관들중 90%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후세인건재”보도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최소한 2명의 고위보좌관들과의 회의를 주재하는 등 아직도 이라크를 통치하고 있다고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후세인대통령의 주재로 2일 야간에 열린 이 회의는 이라크군 사령관들이 3일 쿠웨이트국경 부근에서 다국적군 사령관들과 영구적인 휴전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갖는데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터키국경에 배치됐던 기계화부대 2개 여단을 바그다드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미군소식통들이 3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후세인이 자신의 정권을 보호하고 다국적군이 공격을 재개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이들 부대를 바그다드 부근에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6개월내 총선실시 ○…쿠웨이트 왕실은 수개월간 이라크군의 점령과 전쟁을 치른 쿠웨이트에서 민주주의 확대실시 및 3∼6개월 이내의 의회선거 실시를 보장했다고 압둘 라만 알 아와디 내각문제담당 국무장관이 2일 밝혔다. ◎안보리 종전 결의문 ▲이라크는 납치해간 모든 쿠웨이트인들과 다국적군 전쟁포로들을 즉각 석방한다. ▲이라크는 모든 적대행위 및 도발행위를 중단한다. ▲이라크는 쿠웨이트 합병을 무효로 한다. ▲이라크는 국제법에 따라 쿠웨이트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전쟁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며 모든 쿠웨이트 재산을 반환하고 쿠웨이트 복구를 지원한다. ▲이라크는 모든 지뢰와 부비 트랩의 위치를 공개한다. ▲미국과 연합국은 쿠웨이트가 안정되고 국제평화 및 안보가 회복되면 가능한한 조속히 이라크 남부지역을 떠난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래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12개 결의가 여전히 유효함을 재확인하며 이날 채택된 종전 결의문은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지 않는다. ▲이라크가 위의 사항을 이행할 때까지는 쿠웨이트지역의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안보리결의 678호가 유효하다.
  • 안보관련 안팎의 대비태세(사설)

    고금의 전쟁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빼앗고 자연을 파괴한다. 또 사람과 사람사이의 복수심을 불태우고 그런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인간의 심성을 피폐케한다. 그래서 전쟁은 없어야하고 어쩔 수 없이 터진 전쟁은 더 커지기전에 중단돼야 한다. 현대에 이르러 전쟁은 또 하나의 가공할 현상을 가져왔다. 바로 테러이다. 전쟁당사국간 동맹국과 적대국간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적으로 하여 인명 재산상의 위해를 가하는 일이다. 테러는 어느 의미에서 전쟁보다 더한 인간심성의 파괴현상이다. 걸프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발발이후 오늘까지 전세계에서 모두 80여건 1백60여명이 살상되는 국제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 월남전과 중동전 등 여러 국지전쟁에서의 테러양상이 전쟁 못잖은 인명살상을 보인 기록이 있거니와 지금 우리도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현재 걸프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전쟁직후 의료진이 파견된데 이어 군수송기와 조종사 등 지원대의 추가파견이 진행되고 있다. 두차례에 걸쳐 모두 5억달러의 전비도 지원됐다. 실질적으로 우리는 직접적인 지원국이고 만일 무차별 국제테러가 음모된다면 우리 자신이 그 대상이 되고 있음을 사실일 것이다. 걸프전쟁의 명분은 세계평화의 수호이며 침략행위에 대한 응징이다. 우리의 참여명분과 논리도 그것이다. 평화 수호의 방법이 전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는 국제정치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참여한 이상 전쟁으로부터의 여파를 최소로 줄이는 일은 중요하다. 예측되는 모든 국제테러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내무·국방·법무 등 관련부처로 구성된 「국가테러 실무위원회」를 긴급 소집하고 전국경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는 등 비상대책을 마련한 것도 최근 안팎의 안보정세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테러뿐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 다른 시기와 달리 비교적 취약한 안보상황 속에서 걸프전쟁을 지원하는 입장이다. 휴전선 일대에 걸친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이 심상찮은 것이다. 전해진 바로는 북한이 최근 휴전선 북방 40∼50㎞ 지점에 스커드 B 미사일을 이동발사대까지 갖춰 실전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이 이미 오래전부터 핵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들은 이밖에 휴전선부근 3백여곳에 지하갱도를 구축했고 후방엔 군 지하기지를 완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팎의 안보상황에 대한 대비태세에 대해서는 노태우대통령도 엊그제 『걸프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가능성이 그 어느때 보다 높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도 지적한 바 이 긴장완화와 군축의 시대속에서도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국제정치현실이다. 그중에서도 한반도의 휴전선은 아직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릴만큼 엄청난 전화력이 집결돼 있는 곳이다. 남북한이 비록 간헐적으로나마 대화와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전쟁을 택한다면 팽팽한 균형은 깨지게 마련이다. 그 전쟁을 택할 수 있는 쪽이 북한이라고 볼때 우리의 안보대비태세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 우랄산맥을 넘는 북방외교/노대통령의 역사적인 방소에(사설)

    노태우 대통령이 오늘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소련 방문길에 오른다. 한국과 소련간 공식 수교에 이은 노 대통령의 방소는 그 동안 우리가 꾸준히 추진해온 북방외교의 한 산맥을 매우 성공적으로 등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동북아시아 정치 및 경제구도의 대변혁이 이제 바야흐로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사의 변이추세에 맞춰 탈이데올로기 외교를 표방해온 노태우·고르바초프 양국 정상은 이번 만남에서 한반도의 냉전체제 종식과 전쟁위협 제거를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협의를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 ○한소정상 재회의 역사성 정상외교에는 으레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르게 마련이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미 첫 만남을 가진 바 있다. 그러나 수교와 함께 정상의 상호교환 방문을 합의한 데 따른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 입성」은 양국간 실질적인 첫 정상회담이 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로서는 북방외교,더 나아가 전반적인 국제외교에 있어서의 국가적 좌표를 새로이 설정하게 될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대통령의 방소에 이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조만간 서울을 방문할 것이다. 한소수교 자체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킬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측면에서도 한소 양국 정상의 교환방문은 양국 관계가 수교 이후에도 급속도로 밀착되어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대개 국가간 정상회담에 있어서는 명분과 형식도 내실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한반도문제와 관련해 어느 정도의 역할을 요청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공식적인 한소 외교관계는 이제 시작단계라 할 수 있으므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가시적인 결실을 기대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소 정상회담은 그것이 갖는 「역사성」과 관련해 볼 때 양국간 경제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데도 기여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남북한 관계의 개선,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새로운 질서창출의 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경 실질협력관계의 진전 한소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의미에 주목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통일 여건의 국제적 보장에 대한 깊이 있는 의견교환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는 유엔의 보편성 원칙에 따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소련이 대외적으로 확실히 지지할 경우 한반도 평화정착 구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우리 입장이다. 또 우리측은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에 대한 소련의 억지력 행사에도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일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볼 때 대치하는 두 당사국 즉 남북한 각기에 대한 내부문제 간섭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소련으로서는 그들의 「전통적」인 우방인 북한에 대해 전쟁억지를 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이 고도정밀유도무기,항공기·전자통신 분야에서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지원중단 등의 방법도 있을것이다. 북한측이 계속 거부하고 있는 국제 핵안전협정 가입에 대한 종용여부도 중요한 협의 대상의 하나일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한 한소간 실질적인 경제협력 관계의 진전도 긴요한 과제이다. 한소경협에 있어서는 당초부터 노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이중과세방지협정·투자보장협정 등이 체결될 방침이었다. 이와 함께 보다 구체적인 민간차원의 합작진출문제 등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소련측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등에 따른 준비부족으로 부분적인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같은 미해결의 과제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서울방문에서 일괄 타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동북아시아의 새 질서구축 노 대통령의 방소는 이제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 북방외교의 한 단계 도약을 의미하기도 한다. 두 정상의 만남과 양국관계의 밀착은 앞서 지적한 바 남북한관계 개선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뿐더러 한중관계 개선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협력시대를 구축하는 데도 견인역할을 할 것이 확실하다. 구체적으로는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아시아지역 미수교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진전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활용여하에 따라서는 탄자니아 등 친북한 노선을 걷고 있는 아프리카 전선국가들과도 차분히 관계개선을 기할 수 있는 계기로도 작용하리라 본다. 소련은 우리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인상처럼 그렇게 평탄한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제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은 과정상의 적잖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낡은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제도가 제대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파생되는 시행착오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첫 방소의미와 함께 우리는 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방소의 가장 큰 뜻은 물론 양국간 과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의 과정이 가져온 결실을 수확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한소간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고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숱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의지를 다지고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데보다 더 큰 의미를 찾아야 할 줄 안다. 대통령의 방소일정이 시종 순탄하고 보람에 찬 가운데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자 한다.
  • 모스크바대좌 뭘 논의하나(한·소 새 지평:1)

    ◎수교 이후「협력의 틀」 확고히/한반도 평화구도 구체협의 노태우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소가 오는 13일부터 16일까지 3박4일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청와대를 비롯,외무부 등 정부관계부처는 「모스크바행」의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한소 양국은 4일 새벽 4시 노 대통령의 소련 방문을 공식적으로 동시발표했으나 구체적인 일정과 관련해서는 「12월 중순」으로만 밝혔을 뿐 더 이상의 일정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는 소련당국이 한국측의 기간 명시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전관례,경호상의 이유 등을 들어 한사코 반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방소 일정 교섭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지난 가을 독일의 콜 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콜 총리가 모스크바공항에 도착한 뒤 소련측 의전장이 기내영접을 하면서 최종 확정된 일정을 전달했다면서 『사전에 노 대통령의 소련체제 일정을 완벽하게 확정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노 대통령의방소격식과 관련,소련에는 의전관례상 ▲공식방문 ▲업무방문 비공식방문 ▲기착방문(TRAN SIT VISIT) 등 4가지가 있으며 이번 방문은 서방국가의 국빈방문(STATE VISIT)에 해당되는 공식방문으로서 국빈의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방문기간 중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데 이어 소련의 각계 지도자와 국민들도 만날 것이라고 이 대변인이 밝히고 있는 점에 비추어 정상회담에 소련 각계 인사와의 회동이나 다른 일정도 있음을 비췄다. 이 대변인은 노­고르비회담에서는 ①한소 양국간의 우호·협력관계발전 ②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공고히 하는 문제 ③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관해 깊이있는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이번 방소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 등 3명의 장관이 수행한다고 밝혔다. 한소 정상회담의 의제와 수행장관의 업무성격을 대비해 보면 이번 방소는 양국의 수교를 바탕으로 협력의 틀을 확실히 마련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구축하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입장에선 소련과의 국교수립 등 북방외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토대구축에 있기 때문에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한 긴장완화와 관련,소련측의 적극적인 역할을 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요청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 행사·남북한 평화통일 여건조성을 위한 국제적 보장확보가 그 대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의 인식은 북한이 고도정밀유도무기·항공기·전자통신분야에서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이에 관한 대북한 지원중단을 통해 북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통일 여건조성의 국제적 보장작업의 하나로는 유엔의 보편성 원칙에 따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소련이 대외적으로 확실히 지지할 경우 결국 한반도 평화정착 구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우리측은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일은 어느 나라의 내정의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 소련측에 대해 대북 내정간섭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소련이 명시적으로 대북 영향력행사를 밝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한소 양국은 동북아의 냉전적 대결구도를 평화구조로 바꾸는 데 공동노력을 한다는 포괄적인 입장천명으로 대응하거나 한반도에서의 전쟁반대라는 표현으로 우리측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 자문위원이 지난번에 노 대통령에게 고르비의 친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소련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한다』고 표명한 점에 비추어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를 직접 표명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문제는 한소 양측의 기본적인 인식차이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비중있게 논의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촉구 문제는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측면에서 양국간에 인식을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 양국의 실질적인 협력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초 노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완벽하게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소련측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등에 따른 준비부족으로 부분적인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 정식체결을 목표로 했던 6개 협정가운데 무역·과학기술·2중과세방지 협정은 이번 방소를 계기로 정식 서명이 될 것이지만 투자보장·항공·어업협정은 계속 실무적인 협의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한소 경협문제도 이달 초순까지는 소련정부 대표단이 서울로 와 제2차 한소 정부대표단회의가 열려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소련측의 국내사정 등으로 2차회의가 계속 지연됨으로써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경제협력의 기본방향과 가속화원칙만 재확인 할 것으로 보인다.
  • 화해시대의 한미 안보협력(사설)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미군은 전투병력과 부대만을 증파하고 전투부대 운영과 유지를 위한 자원은 한국군의 상당부분 담당하게 된다. 한미 양국간의 전통적인 동맹우호와 공동안보협력관계도 이제 변화된 시대상황과 안보환경에 맞게 발전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전환기 한미안보협력에 있어서의 대등하고 동반자적 관계의 정립이라고 본다. 한미 양국 정부는 이번 제22차 워싱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회의에서 한반도 유사시에 미국의 즉각적인 대한 군사적 지원을 보장하는 내용의 「전시 주류국 지원협정」을 체결키로 했다. 회의는 또 한국의 방위비 분담액을 연차적으로 증액키로 하고 또 자주포 공동생산 양해각서를 수정체결하는 한편 미국이 특허를 갖고 있는 한국산 재래식 방산품의 제3국 수출조건을 개선할 것도 협의함으로써 한미간 쟁점현안에 크게 접근했다. 한미간 공동안보관계는 그동안 변화와 곡절을 거듭하는 가운데에도 상호 의존관계를 손상함이 없이 연합방위체제,방산협력관계,주한미군 유지를 순조롭게운영해왔다. 그러나 근년의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특히 90년에 들어와서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축소 및 비용분담 문제,용산 미군기지 이전,차기주력전투기(KFX)를 둘러싼 이견으로 하여 미묘한 관계를 맞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이번 회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정신과 전통적인 공동안보협력관계를 크게 되살렸다는 측면에서 평가돼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미소의 안보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안보현황은 이렇다할 변화가 없다. 최근 국방백서는 물론 외신으로도 전해졌듯이 북한은 핵개발보유계획을 계속 추진하고 있고,휴전선 일대의 공격적 병력배치 상황을 바꾸지 않는 등 고립적인 패권주의를 버리지 않고 있다. 국제적인 화해추세에 힘입은 남북한간 군축문제에 있어서도 군사적 신뢰구축의 성의를 보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주한미군 철수와 팀스피리트 폐지를 끈질기에 요구하고 있다. 미국측의 감축정책도 발표된 바 있고 그 분담금 증액의 문제가 따르기는 하나 사실 주한미군은 아직 우리가필요로 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 전쟁재발 방지에 기여하는 외에 세계와 이사아에서의 한미공동안보협력의 상징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갖기도 한다. 또 남북한간의 군축협상이라는 막중한 과제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전쟁도발위험을 차단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그러나 아직까지 그들의 대남전략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북한측의 전쟁도발 위협이 상존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인계철선으로서의 주한미군은 긴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현재의 남북한 군사정세에 비추어 팀스피리트훈련의 규모축소는 몰라도 완전중단은 시기상조다. 공동성명이 지적했듯이 한미 양국은 이번에 기탄없는 주장과 입장을 교환했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다져나가는 입장이고 미국은 세계전략적 측면에서 동북아시아 및 한반도 안보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한미공동안보협력은 더욱 굳어질 것이다.
  • 안보리,페만 군사행동 승인/결의안 채택

    ◎미·소선 바그다드에 도발책임 경고/이라크,돌연 유화 제스처/일부 공관 포위 탱크 철수·전기공급 재개 【카이로·런던·워싱턴·유엔본부 외신 종합】 쿠웨이트 주재 외국대사관들의 강제폐쇄를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개전위기로까지 치닫던 중동사태는 25일 이라크의 한 고위관리가 외교공관의 폐쇄를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일단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4·5면〉 이라크는 당초의 폐쇄시한(25일 상오 6시·이하 한국시간)을 1차 연기,25일 하오 2시30분으로 못박으면서 자진폐쇄하지 않을 경우 강제폐쇄를 공언해왔으며 미국등은 이라크가 이를 강행할 경우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맞서 25일이 페르시아만사태의 큰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같은 이라크의 유화책으로 폐쇄시한에 앞서 공격대형으로 전면 전환했던 페르시아만 일대의 미군이 대형을 풀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영국 외무부의 대변인은 25일 쿠웨이트 주재 영국대사관을 포위하고 있던 이라크군 탱크가 철수했으며 공급이 중단됐던 전기와 식수도 공급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영국대사관 외의 다른 대사관들에 대해서도 이라크군이 포위를 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국대사관을 포위했던 탱크들이 철수한 것은 이라크군이 대사관 폐쇄를 위해 무력사용을 시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또 대사관 주변의 탱크는 철수했지만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본·이탈리아·프랑스 등 일부 국가의 쿠웨이트 주재 공관은 단전조치됐고 프랑스대사관은 단수시키기 위해 이라크군이 대사관 벽 일부를 허물었으며 소수병력이 공관밖에 머무르는등 심리적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이라크의 하미티공보국장은 『외교관들이 머문다면 이들을 축출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시설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이날 하오 재소집된 회의에서 13­0으로(쿠바와 예멘은 기권) 유엔의 대이라크 제재를 강화키 위해 페르시아만에서 필요한 군사행동을 취하는 것을 허용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에 따라 중동에 파견된 각국 해군은 이라크에 대한 금수조치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선박정지 ▲화물조사 ▲선박의 행선지 확인 등을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말린 피츠워터 미백악관대변인은 이라크가 쿠웨이트 주재 미대사관의 직원 가족및 해병경비병등 약 1백10명에게 자유롭게 이라크를 떠나도록 보장한다는 약속을 어기고 이들을 바그다드에 인질로 억류하고 있다며 이라크에 억류된 미국인들의 신변안전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전적으로 이라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경고한다고 천명했다.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24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에게 보낸 긴급친서에서 『쿠웨이트 점령과 이라크및 쿠웨이트의 외국인 실태와 관련하여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들을 지체없이 수행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이라크가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는 적절한 추가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또 대이라크 금수조치 준수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25일 방소중인 뒤마 프랑스외무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 휴전 37돌ㆍ범민족대회 계기로 본 어제ㆍ오늘

    ◎“냉전ㆍ대화의 장”… 두얼굴의 판문점/화해ㆍ도발ㆍ긴장 엇갈린 「국권의 사각지대」/북측,남북교류 구실로 정치선전장화 기도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37년,그동안 판문점은 동서이념 대결과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뉴스의 초점이 돼왔으며 최근에는 활발해진 남북대화와 함께 개방여부를 놓고 또 한차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953년 7월27일 상오 10시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육군대장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발효와 함께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휴전회담 회담장을 중심으로 직경 8백m의 원을 그려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삼은 것이 오늘의 판문점이다. 세계 각국의 언론에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기묘한 장소」라고 불리운 판문점은 북위 37도57분20초,동경 1백26도40분40초,한국도 북한도 아닌 국권의 진공지대이다. 휴전이후 37년동안 4백50여차례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렸으나 합의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논쟁과 설전만 계속해왔다. 북한의 선전과 도발,생떼,어거지가 본회담의 주류를이루던 판문점은 때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팽팽한 긴장의 현장이었으나 7천만 민족의 통일의 염원이 결려있는 곳이며 남과 북의 유일한 대화통로여서 늘 뉴스의 초점이 되어 왔다. 당초 휴전회담은 1951년 7월10일 공산군의 통제지역인 개성에서 시작됐다. 공산측의 제의에 따라 회담장소를 개성으로 정한 유엔군측은 휴게소건물이나 회의장건물이 모두 공산측의 장악아래있어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았다. 1951년 10월25일 유엔군측은 당시 남북군사분계선상에 있던 판문점을 새로운 회담장소로 제의,공산측의 합의를 받아 옮겼다. 초가집과 판잣집 4채 밖에 없던 주막거리 판문점은 일약 유엔군과 공산군의 고위장성을 실어나르는 헬리콥터와 내외신 보도진들이 몰려드는 뉴스의 현장이 되었다. 대형 천막 4개를 급히 세우고 이속에서 회담은 계속 됐다. 2년여동안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이곳에는 천막대신 목조건물이 세워졌고 53년 7월27일 역사적인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됐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유엔군측의 자유의 집ㆍ평화의 집ㆍ일직 장교실ㆍ초소ㆍ막사 등이 들어서고 공산측에도 판문각ㆍ통일각ㆍ경비본부초소ㆍ막사 등과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의실 등 10여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가 열리는 남북의 회담장은 군대 막사형인 단층의 목조건물로 20여평밖에 되지 않는다. 회담장 한 가운데 녹색 커버를 씌운 테이블이 놓여 있으며 테이블위로 국토를 양분하는 비극의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앞에 놓고 유엔군과 공산군의 장군급대표 5명이 『안녕하십니까』나 『또 만납시다』라는 인사말도 없이 37년간 수사학적인 말의 전쟁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단뒤로는 비서장을 비롯한 보좌관과 한국어ㆍ영어ㆍ중국어 통역 등 20여명씩의 수행원들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다. 군사정전위가 열릴때마다 유엔군대표들은 서울을 출발,헬리콥터나 차량편으로 임진강의 자유의 다리를 건너 회담장으로 가고 공산측은 하루전에 평양을 출발,개성에서 1박을 한뒤 4천m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대신 북쪽에 새로 놓은 다리를 지나 판문점에 도착한다. 유엔군측의 자유의집은 65년 9월30일 준공됐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공산측도 2층 건물인 판문각을 준공했다. 80년 6월20일에는 자유의 집옆에 연건평 1백40평의 남북총리회담장 건물이 준공됐고 89년 12월20일에는 남북회담장소로 사용할 3층의 백색건물 「평화의 집」을 준공했다. 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과 72년 7월의 7.4공동성명으로 판문점에서 남북조절위원회가 열리면서 판문점은 휴전이후 두절된 남북대화의 통로가 활짝 열리는듯 했었다. 그러나 73년 8월28일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대화중단 선언으로 판문점은 또다시 냉전과 설전의 싸늘한 분위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남북회담이 중단된지 3년뒤인 76년 8월18일 북한의 경비병 30여명이 도끼와 몽둥이 등으로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 판문점은 숨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도끼만행사건이전에도 59년 1월27일 소련 프라우다지 평양특파원 이동준씨 귀순,67년 3월22일 이수근위장탈출,75년 6월30일 미군장교 구타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80년대에 들어 남북대화가 재개되면서 판문점은 남북회담장소로 변해 84년 11월15일 남북경제회담과 85년 7월23일 남북국회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체육회담 등이 계속해 열렸다. 85년 9월20일에는 남북고향방문단 2백여명이 이곳에서 출입사열을 거쳐 교환방문했으며 84년 수재때에는 북한이 제공한 수재구호물자 쌀 7천1백96t,의약품 7백59상자가 이곳을 통해 전달되기도 했다. 휴전뒤 37년동안 1백55마일의 군사분계선중 유일하게 총칼대신 탁자가 놓여진 이곳에서는 상스러운 욕설에서부터 고도의 이념논쟁에 이르기까지 수억만 단어가 3개국 언어로 구사되면서 때로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주는 장소로,때로는 분노와 실망을 안겨주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 은행,시은등에 외환매각 지시/환투기 재연조짐에 쐐기

    ◎1불7백11원70전 거래/“은행이 적정수준이상 매입땐 자금지원 중단” 한은은 일부 시중은행들이 지불준비금 부족사태를 빚으면서까지 환율상승에 대한 기대로 달러화매입에 나섬에 따라 효율적인 자금운용을 위해 보유외환을 매각토록 지시했다. 한은은 22일 11개 시중은행과 10개 지방은행의 자금당담자회의를 소집,이같이 지시하고 지불준비금부족을 일으키면서도 달러화를 적정수준이상으로 사들이는 은행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RP(환매조건부 채권매매)지원등 통상적인 자금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의 이같은 조치는 한은이 21일 지불준비금마감을 앞두고 시중은행에 8천억원의 자금을 RP방식으로 지원했으나 일부 은행들이 환율상승기대로 달러화를 대거 사들이는등 자금을 방만하게 운용한데 따라 취해진 것이다. 한편 국내외환시장에서 환율이 최근 원화의 대폭절하에 대한 기대로 가수요가 일면서 큰폭으로 오르고 있다. 이날 금융결제원 자금중개실이 고시한 달러당 매매기준율은 7백11원70전으로 전날보다 1원70이 올랐으며 첫거래환율도 7백12원30전으로 오름세가 지속됐다. 환율이 이같이 큰폭으로 오르는 것은 상공부 장관의 원화절하 유도발언과 국제수지적자추세로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외국계은행등 외국환은행들의 경우 콜시장에서 연20%의 고리를 끌어써가며 달러화매입에 나서는등 환차익을 노린 투기양상이 재연되고 있다.
  • 일도발전소 92년 완공/여수ㆍ울산화전도 내년 재가동

    ◎한전,전력수요 증가 대비 한전은 최근 급격한 전력수요의 증가에 따라 92년부터 예상되는 전력부족사태에 대비하기위해 95만㎾ 용량의 일도LNG복합화력발전소 2단계사업을 현재 추진중인 1단계사업에 포함시켜 오는 92년 준공하고 가동이 중단된 여수ㆍ울산화력 등 석유발전소8기(1백51만㎾)를 내년까지 재가동시키기로 했다. 한전은 또 분당ㆍ일산ㆍ안양 등 신도시열병합발전소의 건설추진에 따라 발전용 LNG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서울화력의 LNG전환을 오는 95년 이후로 유보해줄 것을 관계부처에 요청키로 했다. 13일 한전본사에서 열린 「전력수급동향 및 대책에 관한 세미나」에서 전재풍 한전 전원기획처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3년간 전력최대수요가 연평균 13.4%의 높은 성장을 기록했고 지난 1,2월중에는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전년동기에 비해 18.5%가 증가함으로써 오는 92년에는 전력예비율이 적정수준 25%를 크게 밑돌아 수급불안이 예상된다」고 밝히고 이같은 장단기수급대책을 제시했다.
  • “체제수호”ㆍ“개방조치” 딜레마의 북한/유석렬(특별기고)

    ◎주민의식 변화… 통제력 한계에 고심/땅굴 드러나 남북대화 선뜻 나서기도 거북/곤경 탈피위해 상징적 개혁 추진할 공산 커 최근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곤경에 처해있음이 여러측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정책추진에 있어 장기성이나 일관성이 없고 갈팡질팡 땜질하는 식으로 변화가 심한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1989년을 「경공업의 해」로 정하고 주민들의 생활향상을 내세웠던 정책이 90년에는 중공업우선의 해로 바뀌었으며,여느때보다 2∼3개월 앞당겨 공관장회의를 개최,새로운 외교지침을 시달했고,90년 신년사에서도 일체 언급이 없었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구실로 「진행중인 여러갈래의 남북대화는 진행」할 것이라는 공언도 팽개치고 남북대화를 모두 중단시켰는가하면,북경아시안게임에는 반드시 단일팀으로 출전해야 한다는 앞뒤가 안맞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남침용 땅굴을 파고,평양주민들의 북한전지역,도주민들의 도내자유왕래를 금년 1월중순부터 실시하겠다던 계획을 갑자기 중단시켰고,최근에는 외국인들에 대한 북한방문의 제한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면 정책의 일관성을 과시해오던 북한이 왜그런 태도를 보여야하는가. 북한에게 숨겨진 고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북한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주민의 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문제이다. 북한은 동서냉전체제 속에서 남한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한,주민을 통제하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미제를 몰아내고 민족의 해방을 성취」하는것과 「매판 자본,지주,부패한 정치인들을 몰아내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북한주민들에게 쉽게 설득시킬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에게 「철천지 원수인 미제국주의」가 동맹국인 중소와 화해하고,중ㆍ소가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며,북한도 한ㆍ미와 관계를 개선해야 할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한미를 적으로 몰아붙이고 적대할 수 만은 없다. 또 사회주의에 대한 신뢰도가 최근 급격히 감소됨에 따라 북한주민들중에는 자유주의 체제의 민주ㆍ자유ㆍ인권등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한편 물질적인 욕구도 분출시키는 등의 의식구조의 변화로,되풀이 되는 사상교육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경의 천안문사태와 동구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주민봉기는 북한에게 큰 위협이며,북한에서 정치개혁의 요구가 일어나는 경우 현체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김일성권력승계도 순조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서둘러 추진해야할 형편이다. 둘째는 동구사회 민주국가들의 급격한 변화에 맞서 체제를 수호하는 문제와 경제활성화를 위해 사회를 개방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 두 문제는 북한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이면서 동시에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는 상충되는 문제라는 데 북한의 고민이 있다. 북한 경제는 80년대를 통하여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했으며 이 문제해결을 위해서 「합영법」을 제정하고 정무원 산하에 합영산업부를 신설하는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자본과 선진기술을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북한의 투자여건 미성숙으로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더구나 평축준비를 위한 무리한 재정낭비로 경제는 결정적인 파국을 맞게 되었다. 중ㆍ소로부터의 경제 원조에한계를 실감한 북한은 서방국가들과 본격적인 경제교류를 시도했으나 얻는 이익에 비하여 체제에 미칠 위협은 심각한 것이었다. 더구나 북한의 체제에 강력한 지주가 되었던 중ㆍ소가 개혁ㆍ개방의 추구로 북한의 독재체제와 그를 뒷받침하는 주체이념을 수호해 주어야 할 실체와 명분을 잃었다는 것은 북한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셋째는 「남조선혁명」 성취와 남북공존조선추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개혁의 방황이다. 북한의 김일성체제는 「남조선혁명성취」라는 명분 위에서 1인독재우상화와 권력세습에 대한 정통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기 때문에 김일성은 「혁명적 낙관주의」와 「혁명적 수양」등을 내세운 주민들의 사상적 무장을 강조하면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즉 혁명적 수령관을 확고히 세우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주민들과 약속해온 「남조선 혁명」을 40여년동안 성취할 수 없었다는 것과 보다 큰 문제는 갈수록 혁명성취의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내외적 상황은 혁명노선 포기를 압박해오고 있는데다가 무력을 통한 통일이란 현실적으로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때,동서냉전체제에서와 같이 중ㆍ소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보장받을 수 없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한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곤경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체제유지를 위해 북한 주민들에게 「남조선혁명」 성취의지와 가능성을 계속 확인해 주어야 한다는데 있다. 오늘날 북한은 대내적으로 심각한 경제난과 권력승계,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국제적 고립문제로 곤경에 처해있다. 중소를 비롯한 동구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을 북한이 무한정 외면할 수 없고 또 북한의 동맹국인 중소가 한국과 관계개선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체제 수호를 위해서도 남북한공존노선 추구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북한은 강대국들의 남북한교차승인,유엔공동가입과 남북한교류를 적극 추진하여야 함에도,북한주민들에게는 이러한 정책을 계속 부인해야 하는 고민이 북한에게는 있다. 이밖에도 북한이 당면한 곤경은 중ㆍ경공업 우선문제,남북한관계,군축문제,대미일접근문제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시켜 김정일권력승계를 순조롭게 하기 위한 경공업중점정책은 그동안 경제난을 가중시켰고 기간산업 우선정책은 주민들의 생활을 더욱 피폐시킨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북한체제수호를 위해 필요한 남북대화와 교류는 단기적으로 위협의 요소가 될 수 있고 또,남북한관계개선은 「남조선 혁명」의 포기를 시사하는 것으로 주민을 설득시킬 명분을 잃게 되기 때문에 대화를 하면서 땅굴을 파는 것과 같은 상충되는 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군축은 군부내의 반발은 물론 「혁명의지와 필요성」 약화로 나타날 수도 있고,북한의 대미일접근 보다 앞질러 나가고 있는 한국의 중소접근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교차승인을 오히려 북한이 추진해야 할 곤경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북한의 선택은 권력승계와 함께 상징적인 개혁ㆍ개방 추구,남북한 공존노선으로의 점진적인 전환,강대국들의 남북한교차승인 수용,대미일접근의 강화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점진적인 남북대화와 교류추진,교차승인및 유엔공동가입의 반대 입장완화,권력승계 조기실현,개혁ㆍ개방추진을 위한 강대국의 안전보장 등의 구체적인 정책이 추진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대내상황 정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므로 당분간은 사상교육등으로 통치체제강화에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는 우리의 정책은 북한이 질서있고 평화로운 변화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특히 북한주민을 상대로 그들의 생활과 의식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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