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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은 국론통일에서(남·북한 화해시대:8)

    ◎「4,500만 한목소리」 북 역이용 막는다/혁신­보수 갈리면 통일전선전략 말려/국회가 「재량권인정」 결의… 앞장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사회안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혁신세력 쪽의 움직임과 함께 극보수의 목소리,모두를 염려하고 있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일부 과격 재야세력이나 운동권 학생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정상회담으로 전쟁위험이 없어졌으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것 같다는 예상이다. 보수세력쪽은 아직은 심각하지 않은 상태다.다만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동족을 죽인 김일성과 무슨 대화냐」하는 논리를 내세워 세를 얻을 수도 있다. 공산주의자와 대화 또는 전쟁을 하면서 내부분열로 낭패를 본 케이스는 수없이 많다.공산주의의 최고전략은 통일전선전략이다.상대 내부를 이간시켜 힘을 뺀뒤 굴복시키는 방식이다.북한도 해방이후 줄곧 남북한의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주장해왔다.우리 정부를 야당이나 재야단체와 같은 반열에 놓고 의견차로 분열이 일어나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일 것이다.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내부에서 앞서 언급한 우려들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북한은 더없는 호재로 여길 것이다.정부의 정통성·대표성을 의심하게하는 선전을 펼칠 지도 모른다.김일성과 역사적 담판을 하는 김영삼대통령의 처지도 상당 부분 어렵게 만들려고 할 것에 틀림없다. 정부가 생각할때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야당이 김대통령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은 자제하는 느낌이지만 그야말로 초당적 지지를 보내는 인상은 없다.김대통령이 정말 힘을 갖고 평양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4천5백만 남한 국민이 김대통령을 한마음으로 지원한다는 가시적 조치들이 바람직스럽다.여야 정당과 국회가 그것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 국론통일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주체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먼저 김대통령 스스로이다.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성사된 지난달말부터 이미 국론집약 작업을 시작했다.여야 국회직 인사,이북5도민대표,평통관계자를 만났고 김수환추기경으로부터 정상회담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앞으로도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과 남북 고위급 회담에 간여했던 강영훈·정원식전총리등 국가원로들을 차례로 만날 일정을 짜고 있다.종교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 지도자와의 면담도 계획중이다. 그 다음은 정부이다.정부도 청와대와 통일원이 주관이 되어 정상회담에 대비한 여론수렴을 하면서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우리사회 안에서 극단세력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막을 1차적 책임도 정부 몫이다.그들을 설득하고 자제시키기 위한 홍보방안이 마련되어야한다. 국회와 여야정치권도 나몰라라 할수는 없다.정상회담 과정및 결과에 있어 김대통령을 적극 지지하고 재량권을 인정하는 결의안이라도 채택해야 한다.그렇게 하면 지방의회및 각 사회단체도 따라올 것이다.김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것과 남북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별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다.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민족사에 대단한 의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뜨거나 과도한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차분하고 냉철하게 회담의 경과를 지켜봄으로써 김대통령이나 정부의 부담을 줄여줄때 의외의 성과가 나올수 있다.
  • “인도적차원서「이산재회」실현에 전력”/김대통령­이북출신인사 대화록

    ◎서신 교환만이라도 이뤄지길 기대/가장 시급한건 남북의 동질성 회복 김영삼대통령은 4일 낮 이북5도민회 간부등 북한출신 인사 2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평양냉면으로 오찬을 나누면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5도민의 성원을 당부했다. 다음은 주돈식대변인이 전한 오찬 대화요지. ▲강제문이북5도민연합회장=남북정상회담이 7천만 겨레가 바라는 결과가 되기를 기대합니다.5도민은 북한핵문제가 해결되고 실향민의 고향방문이 이뤄지기를 고대합니다만 이것이 안되면 최소한 이산가족의 서신교환이라도 이뤄지길 갈망합니다. ▲방준필황해도지사=이북5도청사에 북한관을 설치했습니다.앞으로 북한물산관도 설치할 것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환상적 통일은 허구 ▲안응모자유총연맹사무총장=환상적인 통일은 허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남북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북을 자극하지 않고도 우리체제의 우월성을 북한에 인식시켜야 합니다. ▲조창석이산가족재회추진위부위원장=이산가족의 재회를 실천하기 위해 2천만명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미 1천만명의 서명을 달성했습니다.앞으로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입니다. ▲장정렬평북지사=평북 정주출신인 김공집선생의 유해를 러시아로부터 봉환할수 있게 되어 도민일동은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진·선봉 진출 기대 ▲장문철함북도민회장=최근 함북의 나진과 선봉이 경제특구로 지정되고 개방이 된다고해 우리 도민은 누구보다 먼저 북한땅을 밟을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이곳에 기업을 진출시켜 고향에 가서 고향민들과 함께 일할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원식함남도민회장=실향민들은 최근 일부 과격학생들이 열차를 세우고 경찰을 폭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북쪽이 노리는 후방교란행위가 아닌가 하는 우려와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철도파업의 배후가 없는지 철저히 수사하여 북한이 적화통일의 호기로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국민성원땐 성공 ▲김대통령=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아무 조건없이 만나기로 한 것입니다.내가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은 있지만 그 내용을 이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한가지만은 말할수 있습니다.내 고향이 거제기 때문에 언제라도 갈 수 있지만 파도소리만 들어도 어렸을 때 생각이 문득문득 나는데 여러분은 고향에 얼마나 가고 싶겠습니까.인도적 입장에서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이 이뤄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이 문제만은 조건없는 회담이지만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제기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참된 자유속의 통일과 번영에 대한 염원이 강합니다.이산가족이 통칭 1천만명이라고 합니다.여러분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수고를 잊을수 없습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이 없어야 된다는 것과 북한의 핵투명성 보장이라는 기본입장하에 4각외교를 이뤄 왔습니다.국가발전에 앞장섰던 여러분의 성원과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성원을 보내면 남북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할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공석 경어 사용… 친밀감표현땐 반말루/답변 곤란할때 임기응변도 뛰어난 편/김일성의 화술·회담진행 스타일 분단 반세기 만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영삼대통령의 카운터파트인 김일성주석의 대화술과 회담진행 스타일에 커다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만큼 남북 정상들의 얘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따라 그 결과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김주석은 지난 48년 9월 수상 취임으로 공식적인 1인자가 된 이래 지금까지 45년10개월이나 북한을 통치해오고 있으나 정작 그의 개인생활이나 습관 등이 베일에 가려있다는 사실 때문에 궁금증을 더해 주고 있다. 임기응변에 능한 노련한 화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주석의 대화스타일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는 게 북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공식석상에서의 대화때 구어체의 경어를 사용하면서도 친밀감을 표현할 때나 다른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경우 반말투나 반종지형의 어법을 잘 구사한다.지난 89년 방북했던 작가 황석영(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중)을 접견했을 때도 김주석은 한창 대화가 무르익자 예의 평안도 사투리의 반말을섞었다고 한다.그는 황씨의 소설 장길산을 읽었다며 호감을 표시하면서 『황동무,객지에선 잘 먹어야디.이 수박 들라구』라는 식의 말투를 썼다. 지난 90년 가네마루씨와 다나베씨를 단장으로하는 일본 자민당대표단과 사회당대표단의 방북때 이들을 접견한 김주석은 정중하다고만 할 수 없는 어투를 사용했다.즉 『조일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가네마루·다나베 두 선생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말을 평가한다고.공화국 인민을 대표해 감사한다고』라는 식의 반종지형 어투를 쓴 것이다. 이 말투는 통역을 겨냥해 한 말일 수도 있지만 북한방송에 일부 보도되면서 또 다른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김주석이 의도했든 안했든 북한주민들에겐 그가 이들 외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위」있는 인물로 부각된 것이다. 김주석은 또 답변이 곤란할 경우 임기응변으로 넘기는 노회함도 겸비하고 있다고 한다.방북한 한 일본인이 김주석에게 『김주석이 전주 김씨냐』면서 유교문화를 부르주아적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북한체제에 걸맞지 않은 질문을 던지자 『조선 김씨』라고 웃어넘긴 사실이 단적인 사례다. 올해 82세의 노령인 그는 오른쪽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래도 잘 들리지 않을 경우 배석자에게 대화내용을 이따금 확인하기도 한다.지난 91년 문선명씨 일행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 도중 문씨 말이 잘 들리지않자 『야,뭬라 기래』라고 외치는 바람에 배석했던 김영남외교부장이 두번이나 큰 소리로 반복해서 들려줬다는 일화도 있다.
  • “고향방문 성사에 최선”/김 대통령/남북 신뢰구축에 정상회담 역점

    ◎경제부처·국방·외무장관은 수행단서 제외될듯 김영삼대통령은 4일 평양남북한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문제를 주요의제로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북5도민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나누면서 『인도적인 입장에서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이 이뤄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비록 평양회담이 조건없는 회담이지만 이문제를 주요의제로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특히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전쟁을 막고 북한의 핵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4각외교를 추진해왔다』고 밝혀 북한핵의 투명성확보와 이산가족 고향방문문제를 최우선적인 의제로 다룰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남북한 정상회담의 의미를 양측의 신뢰구축과 핵투명성 확보로 단순화한다는 방침아래 수행원단도 이원칙에 맞춰 구성하기로 했다. 이에따라 경제부처와 국방부·외무부는 공식·비공식 수행원단에서 거의 제외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일하는 정상회담을 강조하기 위해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도 동행하지 않을가능성이 크다. 청와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날 『경제부처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포함되면 회담의 성격을 불분명하게 만든다』고 밝혀 경제부처 장관이나 국방부장관,합참의장등은 수행원단에 포함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당국자는 또 『독일도 양독정상회담에 외무부장관을 배석시키지 않았다』고 상기시키고 『외무부 장관이나 의전장등은 수행하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6·25전 좌익활동 학계의견 정리

    ◎“대구폭동­제주 4·3사건 항쟁일수 없다”/박헌영의 「미군정 타도」 폭력 노선이 원인/민중사관 주장 극복… “분명한 폭동” 결론 「대구폭동」인가 「10월항쟁」인가,「제주도 4·3사건」인가 「제주도 4·3항쟁」인가.지난 봄 교과서의 역사용어 변경을 위한 시안을 놓고 벌어졌던 이같은 논란은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비록 논의 차원이기는 했지만 새 정부가 그처럼 진보적인 사관을 교과서개편 문제에까지 개방했기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만큼 정부의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을 만큼 파문이 길었던 것은 이 시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6·25 44주년을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기억되어야 하는 것도 「10월 항쟁」「4·3항쟁」이라는 시각이 수용된다면 6·25 또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는 『「10월항쟁」이나 「4·3항쟁」이라는 표기는 첫째 국내의 민중사관,둘째 북한의조선전사,셋째 중국의 혁명사관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단언했다.그들의 시각에 따르면 일제하의 독립운동은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인 만큼 8·15는 광복이 아닌 「민족해방」이다.또 일제하 「민족해방투쟁」은 8·15이후 미군정 치하 남한에서 「민중항쟁」이라는 형태로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이같은 논리에 따라 그들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저버린 대한민국의 건국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징벌을 받게되며 6·25는 북침이었을지도 모르는 단지 한국전쟁일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현강연세대교수는 『그같은 민중사관을 그동안 적지않은 학자들이 편향적이 아닌가 우려하면서도 용인해 온 것은 학문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이라면서 『학계를 벗어나면 용인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학자들은 「폭동」과 「사건」이라는 단어의 차이만큼 현재 국사 교과서의 표기대로 「대구폭동」과 「4·3사건」을 차별화한다. 이현희성신여대교수는 먼저 『「대구폭동」은 폭동일 뿐』이라고 말했다.아무리 진보적인 연구성과가 나와 있다고 해도 그 때를 체험·목격한 격앙의 세대가 악의적의 공산 파괴공작의 맥락에서 비롯된 당시 상황을 증언·열변하고 있는 한 달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덕규이화여대교수는 『1948년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을 폭동으로 보느냐 항쟁으로 보느냐는 문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는 우리 국가의 이념까지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현희교수는 그러나 『과거 일반화된 표기였던 「4·3제주폭동」은 그 간의 연구와 지역적 특수성으로 볼 때 「폭동」이라 표기하기에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 학계 대다수의 시각』이라고 전하고 『이같은 시각은 교과서에 「4·3사건」이라고 표기됨으로써 이미 수용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승조고려대교수는 이 두 사건을 남로당 총책 박헌영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남로당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자 1946년 가을부터 폭력투쟁 노선으로 전술을 바꿨으며 이는 좌익세력에 대한 과신과 우익 세력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비롯된 과오로「대구폭동」과 「4·3사건」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다.한교수에 따르면 박헌영이 보기에는 미군정이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고 보수세력도 한줌 밖에 안되므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계산했다.한편으로는 북한 인민군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해 3만명의 경찰과 5만명의 국방경비대를 상대로 폭력과 무장투쟁을 하다 좌익세력은 모두 소진됐다.또 박헌영은 남로당 조직에게 모두 총탄이 되어서 「5·10총선거」를 저지할 것을 명했으나 많은 인명의 살상과 대량 구속을 초래했을 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저지하지 못했다.결론적으로 상대방의 전력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극한투쟁을 벌이다 좌익세력의 총 붕괴를 재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통주의적 입장에 서는 학자들 사이에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좌익·혁신적인 학자들에 비해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기회주의적인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좌파학자들에게 보수·반동·어용으로 낙인찍히며 공격당할까 두려워 사실과 다른 억지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이의나 반론을 제기하기를 꺼려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려 속에서도 이제 폭동을 폭동이라고 제목소리를 내는 학자가 많아졌다는 것은 폭동이냐 항쟁이냐의 논쟁을 계기로 우리 학계가 한부분의 건강은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이다. ◎46년10월 대구폭동/경찰서 등 방화·군수 살해/식량요구 시위가 발단… 경남북 등 확산 「대구폭동」은 1946년10월1일 상오 쌀을 나누어준다는 풍문을 듣고 대구시청 앞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가 발단이 됐다.당시는 미군정 아래 좌우대립으로 정국불안이 계속되고 물자부족과 군정당국의 식량공출로 생활고가 극심한 가운데 좌익계열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이른바 「9월총파업」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태는 하오 들어 시위군중이 1만여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하오7시쯤 대구역 앞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한 시민이 숨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흥분한 시민들은 이튿날인 2일 아침부터 경찰서·역·시청 앞 등에서 대규모시위를 벌였고 당초 식량배급을 요구하던 구호도 애국자석방,조선인에게 행정권이양 등 정치적 문제로 발전되어갔다.경찰서를 점거해 무기를 탈취하고 대구시청 간부의 집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이에 군정당국은 하오7시 대구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미군의 출동으로 대구의 소요사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시위는 다음 날인 3일 저녁부터 영천·달성 등 주변지역으로 번져나가 11월 중순까지 경북전역과 경남·전남·강원지역에서 계속됐다.시위가 일어난 대부부의 지역은 경찰서가 습격당하고 교량·철도가 파괴됐다.특히 시위가 극심한 영천의 경우 경찰서·군청·재판소가 불타고 군수가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48년4월 4·3사건/좌익의 지서습격이 원인/9년간 희생자 3만∼8만명 추정 「4·3사건」은 제주도에서 1948년4월부터 만9년동안 최소 3만명에서 최대 8만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를 낸 해방후 최대의 유혈사태였다. 사건은 단독정부수립을 위한 5·10총선을 한달남짓 앞둔 4월3일 상오2시,산중에 집결해 있던 제주도민 2천여명이 도내 15개 경찰지서 가운데 14개를 일제히 습격하면서 시작됐다.이들은 「미군철수」와 「단독선거반대」 「이승만매국도당타도」 등 구호를 외치며 일부는 일본군이 남기고 간 99식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좌익세력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미군정은 즉각 1천7백여명의 경찰을 비롯,국방경비대와 우익인사들인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했다.이에 봉기대와 이에 동조한 도민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장기적인 유격전의 성격으로 전환됐다. 이후 봉기대를 주민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근거지가 되는 마을전체를 불살라버리고 주민들을 집단이주시키는 군·경의 소개작전과 이에 맞선 봉기대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이 과정에서 양민을 포함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이 사건은 또 진압을 명령받은 군대가 이를 거부하고 소요를 일으킨 48년10월 「여순반란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했다.「4·3사건」은 1957년4월2일 마지막 「빨치산」 오완권이 생포되어서야 비로소 막을 내렸다.
  • 제주도 유배지문화 재조명

    ◎홍순만 국사편찬위원 「… 역사의 영향」 연구 논문 발표/14세기 시작… 연산군때 대표적 유형지/당대 석학들 근대사상 전파… 문화 형성/광해군·송시열·김정희·김윤식·박영효 등 수백명 추정 유배지는 무엇보다도 왕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험한 뱃길 뿐인 바다로 차단되어 있으면 더욱 좋았다.이른바 「원악지」 혹은 「원악도」가 그것이다.제주도야 말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었다.우리 역사에서 유배지를 말할 때 제주도를 빼 놓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순만 국사편찬위원회 제주도사료조사위원은 이 유배지로서 제주도의 역사와 제주문화 형성에 미친 영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제주유배인들의 도래와 그 영향」이라는 그의 논문은 17∼18일 제주대에서 열리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회의에서 발표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제주도를 처음 유형지로 삼은 것은 우리나라가 아닌 14세기 초 원이었다고 한다.고려와 원 연합군은 1273년 제주도에서 항쟁했던 삼별초를 섬멸했다.원은 이어 제주도에 총관부를 두어 1백여년 동안 지배했다.원은 이 기간 이곳을 다른 나라의 왕족이나 세력가 등 국내에 두기 곤란한 인물들을 쫓아보내는 장소로 이용했다. 원은 1317년 위왕 아목가를 시작으로 모두 1백70여명을 유배시켰다.제주도 유형은 이후 원을 멸망시킨 명나라도 답습했다.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사람을 제주도에 처음 유배시킨 것은 1343년 고려 충혜왕 때부터이다.그러나 고려 때는 숫자도 많지 않았고 유배 시간도 짧았다고 한다.제주도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형지가 된 것은 조선 이후이며 특히 사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연산군 이후라는 것이다. 제주 유배인들의 유형배경과 죄목은 각양각색이다.사화와 옥사,반란과 모반에 연루된 것을 비롯,상소부도죄,간언부도죄,조정비방 또는 대신탄핵,정책반대,반정에 따른 성토,실정,세자책봉반대,벽서사건,서학사옥,과시부정 등 헤아릴 수 없다.이 가운데 역사책에 나오는 큼지막한 사건으로 유배된 사람만도 2백여명에 이른다.그러니 실제 유배된 사람은 훨씬 많다는 추정이다. 왕족으로는 광해군을 비롯,소현세자의 세 아들,이하전 등이 있고 왕실 친인척으로는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씨,선조의 부마 신익성,장희빈의 오빠 희재 등이 있다. 상신으로는 송시렬 이건명 서지수 등 대신급만도 30여명이며 학자와 문인들은 홍유손 김정 김정희 최익현 안효제 김윤식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 보우를 비롯해,정약현의 딸로 백서사건을 일으킨 황사영의 부인 정란수,권일신,오산학교의 창설자 이승훈 등 종교인도 있었고 내관도 8명이나 된다. 유배형은 1895년 갑오개혁 때 장단법에 의한 형기제로 바뀌기까지 조선시대 5백년 동안 원근법에 의한 거리제가 유지되어 왔다.무기형이었던 셈이다.당대를 대표할 만한 지식인들이었던 유배인들은 이 긴 시간동안 책을 읽거나 시를 지으며 보내기도 했지만 적지않은 시간을 도민들의 자제를 가르치며 보냈다. 특히 홍유손 김정 송시렬 조관빈 최익현 등 석학과 김춘택 김정희 등 문화예술인들이 제주문화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더구나 김윤식 박영효 등의 제주유배는 제주도에 일찍부터 근대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이처럼 오늘날 제주의 문화·사상·정신을 형성하는데 유배인들이 미친 영향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 백정기 의사/흑색공포단 결성…일밀정 제거 앞장(이달의 독립운동가)

    ◎상해서 학도병 구출 등 항일투쟁/일군 회의장 폭파하려다 체포돼 『나의 구국일념은 강도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공생공사의 맹우 여러분,대륙침략의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겨레에 바치는 마지막 소원을』 독립투사 구파 백정기의사(1896년 1월19일∼1934년 6월5일)가 1933년 3월17일 중국 상해의 한요릿집에 모인 일제 군간부와 중국의 친일분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비장한 결의로 떠나면서 남긴 유서다. 의사는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요리사등으로 가장해 숨어있던 일경과 일제헌병들에게 붙잡혀 1년3개월여 옥고를 치르다 끝내 조국해방의 제단에 목숨을 바쳤다. 이 거사는 비록 미수로 끝났으나 한국인과 중국인의 항일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후대에 평가되고 있다. 의사는 명성황후가 일제에게 시해되고 고종이 아관파천하던 해 전북 정읍군 영원면 은선리 농가에서 태어났다.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하면서 독학으로 글을 익힌 의사는 일찍이 소년기부터 민족의식에 눈을 떴으며 23세 인 1919년 2월 상경,독립투사의 길을 믿아 나섰다. 서울에 도착한 의사는 사람들로부터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살됐으며 곧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벌였다. 의사는 그 뒤 인천등지에서 무장독립활동을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하다 일제의 주목을 받게 되자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당시 북경에는 이회영,유자명,이을규,신채호등이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었다. 이들은 신채호가 1923년 발표한 「조선혁명선언」에 크게 영향을 받아 무정부주의를 행동강령으로 채택하고 이를 통해 독립을 관철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이들이 표방한 무정부주의의 내용은 무지배,무권력의 민족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이었다. 의사는 이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레 무정부주의에 심취,한때 호남성 동정호부근에서 이상적 농촌사회 건설을 위해 애썼다. 의사는 다음해인 1924년 일본 조천수력공사장을 폭파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도쿄에 잠입했다가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온다. 북경에서 곧바로 상해로 옮긴 의사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철공장에 들어가 폭탄제조기술을 익힌 뒤 1925년 상해에서 5·30총파업이 실시되자 중국인 무정부주의자들과 노동조합을 결성,독립운동의 기반으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1927년 복건성 천주시에서 중국인 동료들과 함께 무정부주의자 양성소인 민단훈련소를 설립,농민 3천5백여명을 모아 농민자위대를 조직했다. 의사는 1930년 상해에서 동료 무정부주의자들을 규합,일본침략세력 저지작전과 밀정제거작전을 주임무로 삼는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이 조직은 나중 일제에 징용된 한인학도병 귀순작전과 포로구출작전,항일전쟁참가등 많은 공을 세웠다. 의사는 또 이 조직등을 골간으로 1931년 항일구국연맹을 조직하고 기관지로 「자유신문」을 발행,결사항일투쟁의지를 북돋우는데 힘을 기울였다. 의사는 제1차 상해사변이 일어나자 중국동지와 함께 파괴암살을 주목적으로 하는 비밀단체 「흑색공포단」을 결성,일본기관 파괴와 침략원흉의 처단활동에 나섰다. 이 흑색공포단은 결성되자마자 일제 밀정들을 다수 처형하는등 맹활약을 펼쳐 일제를 긴장시켰다. 일제는 이처럼 비정규적인 유격전이 펼쳐지자 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상해의 고급음식점 「육삼정」에서 군간부등이 참가한 가운데 비밀회의를 개최키로 했으며 이 정보를 흑색공포단이 입수,의사가 이 음식점을 폭파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의사를 비롯한 흑색공포단원들은 이 거사를 서로 자기가 적임이라고 주장,추첨으로 의사와 동료 이강훈이 행동대원에 선정됐다. 의사등 행동대원 2명은 거사일인 1933년 3월17일 육삼정 비밀회의가 시작되기 2시간전인 하오 6시쯤 폭탄과 권총,수류탄등으로 무장을 하고 현장에 도착해 정세를 살피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들은 변절한 일본인 무정부주의자로부터 사전정보를 입수한 일제가 인력거꾼·요리사등으로 변장하고 수십여명이 현장주변에 숨어 있는 것을 알아 채지 못해 그 자리에서 체포돼 거사는 불발로 끝났다. 의사등은 바로 일본으로 압송됐으며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1년3개월여 복역하다 지병인 폐결핵으로 천추의 한을 가슴에 품고 옥중에서 순국했다. 백의사의 유해는 적지 일본에 묻혔다가 광복 1년 뒤인 1946년 7월 이봉창·윤봉길의사의 유해와 함께 조국에 봉환됐으며 국민장으로 천묘의식을 치른 뒤 효창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의사의 공을 기려 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고향인 전북 영원면에는 도민의 성금을 모아 건립한 순국기념비가 서 있다.
  • 제주도개발 7조 투입/관광객 연5백30만 유치

    ◎「2대­3중핵」체제로 개편/2001년까지/국무회의 의결 【제주=김영주기자】 올해부터 오는 2001년까지 제주도가 연간 5백3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국제수준의 관광휴양지로 개발된다.이와함께 제주·서귀포를 축으로한 2대 핵과 성산포·한림·대정읍등 3대 중핵으로 구분해 대대적인 지역기반시설및 생활환경개선사업이 추진된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서 91년12월 제정된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의해 마련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안」을 의결,확정했다.이 계획에는 올해부터 2001년까지 연차적으로 공공부문 3조5천9백19억원,민간부문 3조7천9백82억원등 모두 7조3천9백1억원이 투입된다. 부문별 투자계획은 ▲관광개발등 지역산업진흥부문 4조7백90억원 ▲자연환경보전및 환경오염관리부문 2천9백18억원 ▲생활권정비부문 1조3천4백19억원 ▲도로·항만·공항등 기반시설부문 1조6천7백74억원등이다. 이 계획안이 예정대로 추진될 경우 제주공항의 연간 수송능력은 여객 1천5백57만명,화물 46만4천t으로 각각 늘어나고 해운 화물운송량은 6백8만6천t에서 1천7백9만6천t으로 늘어난다.또 관광객 숙박시설은 1만2천7백59실 규모에서 2만3천7백21실 규모로 늘어나 연간 5백30만명의 관광객 유치가 가능케 된다. 이와함께 도민 1인당 소득은 연 3백27만4천원에서 1천1백51만6천원으로,지역총생산은 1조6천6백37억원에서 6조6천5백60억원으로 높아진다.또 주택보급률은 78.3%에서 93%로,상수도보급률은 99.9%에서 1백%,하수도보급률은 23.6%에서 70%,도로포장률은 63.6%에서 91%로 크게 확충된다.
  • 「한국의 하와이」 청사진 제시/제주 종합개발계획안 내용

    ◎성산포읍 등 3곳 국제휴양단지 조성/자본·기술집약형 첨단농업 집중 육성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안」은 제주도를 「한국의 하와이」로 개발한다는 청사진이다. 이 계획안이 추진되면 제주도의 1차산업 총생산액은 6천9억원에서 2001년 1조5천5백10억원으로 2.6배,2차산업은 9백13억원에서 3천1백60억원으로 3.5배,3차산업은 9천7백15억원에서 4조7천8백90억원으로 각각 4.91배씩 늘어난다. 지난 92년7월 제주대학교에 용역을 맡겨 만든 계획안을 놓고 도민공청회,도의회 심의,지난 4월 중앙부처의 제주도개발지원위원회의 심의 그리고 이번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계획착수 2년만에 결실을 보게됐다. 부문별 주요 개발계획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시·농어촌 정비=제주도를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대생활권으로,성산포·한림·대정지역을 중생활권으로 하는 「2대핵,3중핵 도시체계」로 개편해 도시와 농·어촌지역간 기능이 상호연계되도록 광역시설등을 배치한다. ▲1차산업진흥=기술및 자본집약형 첨단농업이 집중 육성되고 유통구조가 크게 개선된다.감귤재배면적 2만㏊에 생산량을 60만∼65만t으로 관리하는대신 품질이 크게 향상되고 12곳에 돼지수출단지가 조성돼 연간 6천t의 돼지고기가 수출되도록 한다. 또 농·어민의 농외소득 증대방안으로 3곳의 농어촌휴양단지,12곳의 관광농원,20곳의 관광어촌,31곳의 관광목장이 각각 들어선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제주공항에 평행유도로 3천5백m가 신설되고 항공기 연간 운항횟수가 11만3천3백63회로 늘어 1천5백57만명의 탑승객 수송이 가능해진다.또 제주∼아시아·태평양지역간 항공노선이 증설된다. 제주·서귀포·한림·화순·성산포등의 항만시설을 확충,연간 항만 하역능력이 2백88만9천t에서 6백8만4천t으로 늘어난다.또 7개노선 2백10.1㎞의 기존 도로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되고 2개노선 43.9㎞의 우회도로와 2개노선 45.6㎞의 지방도로가 새로 만들어 진다. ▲관광개발=중문·성산포·표선지역에 각각 국제적인 종합휴양단지와 해양관광단지,민속관광단지가 조성된다. 또 돈내코 함덕 만장굴 남원 용머리 봉개 교래 송악산묘산봉 세화 송당등 10곳에 휴양·레저스포츠·온천관광지가 조성돼 내국인 4백70만명과 외국인 60만명등 연간 5백30만명의 관광객유치가 가능케 된다. ▲자연환경보전과 토지이용=한라산과 해안변등 연면적 2백52.29㎦를 절대보전지역으로,2백75.84㎦를 상대보전지역으로,1.97㎦를 각각 특별관리지구로 지정해 보존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한라산의 해발 2백∼6백m지역 연면적 5백77㎦에 대해서는 대규모 배출시설및 개발사업 입지를 제한하는등 오염원을 철저히 규제키로 했다.이와함께 1급수 수준의 수질을 보전하기 위해 하수종말처리장 8곳,분뇨종말처리장 4곳,폐수처리시설 5곳,농공단지와 오·폐수종말처리시설 1곳등을 신설한다.청항선 2척과 선박폐유 저장시설 5곳도 마련된다.
  • 5·18 추모행사/질서유지 호소/광주기관장들

    【광주=최치봉기자】 강영기광주시장,구용상전남지사,심상명광주지검장,안병욱전남지방경찰청장등 이지역 기관장들은 16일 상오 10시 광주시청 상황실에서 5·18 14주기행사와 관련,호소문을 발표하고 『추모행사를 경건하고 질서있게 치르기 위해서는 시·도민의 협조와 학생들의 사려깊은 행동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 「탈북동포 돕기」/민간운동 “봇물”

    ◎귀순­정착 지원·국민관심 제고 목표/모금·바자·취업알선 등 다양한 계획 북한을 탈출한 동포들을 돕자는 민간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의 문제가 이같은 움직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여기에다 멀잖아 닥칠지도 모를 통일에 민간차원의 준비를 미리 해 나가자는 것이다. 오제도변호사,정남렬개신교단연합회장,송원영전국회의원등 각계 중진과 원로 1백여명으로 구성된 「북한탈출동포돕기운동본부」는 오는 10일 고당기념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탈북자와 북한벌목공돕기 범국민운동의 전개를 호소할 계획이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15명으로 구성된 준비위원 모임을 갖고 발기문을 확정했다. 이들은 활동방향을▲러시아와 중국의 북한벌목공 실태조사및 북한으로의 강제송환 저지 ▲러시아와 중국정부및 적십자등 유관단체에 대한 인도주의적 협력요청 ▲송환및 정착자금마련을 위한 범국민 모금운동 등으로 정했다. 발기준비위원대표로는 오익제천도교교령,오세진전대건고교장,오제도변호사,송원영·김준섭·최영희전국회의원,김윤근전해병대사령관등 8명이 참여하고 있다. 「탈출동포돕기모임」이 탈북동포의 송환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탈북동포들의 정착및 적응을 돕는데 중점을 둔 단체도 있다. 아시아·태평양 환경 비정부기구 한국본부·농어민후계자연합회·주부교실중앙회·녹색어머니회·야생동물보호협회·한국세차협회등 6개 민간단체로 구성된 「자유의 새살림지원 범국민운동본부」가 그것이다.이들 역시 오는 10일 발기인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이 모임의 주간사를 맡고 있는 소일진 아·태환경한국본부사무총장은 『통일에 대비,북한 동포들의 경제적·사회적 고통을 분담하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취지에서 인도적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살림 본부」는 이를 위해 탈북벌목공이 처음으로 입국할 가능성이 높은 다음달초 국민대토론회를 열어 『통일비용의 국민적 분담』을 호소할 계획이다.이에앞서 이달말쯤 주부교실·녹색어머니회등이 중심이 돼 「탈북귀순자 정착금마련을 위한 바자회」등 모금활동을 전개하고 탈북동포의 취업연수및 직장마련등도 지원할 방침이다. 이밖에 1가구 1동포 자매결연,통일기원 촛불대행진,전국순회바자회등에 대한 국민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이북5도민회·천주교대교구·한국 기독교연합회·대한불교조계종·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노동조합총연맹등 20개 단체를 상대로 교섭하고 있다.참여단체가 늘어나면 「탈출동포돕기본부」등과 합쳐 통일준비및 북한동포지원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의 창설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서울신문사 주최 진도 「영등살 놀이」 성황

    ◎「신푸리」등 연주… 5만관객 어깨춤/「연신풍장」 관람 외국관광객 탄성 연발/청사초롱 1만여개… 축제분위기 고조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금성이 공동으로 주최한 제17회 진도 영등축제 「영등살 놀이」행사가 26일 낮 12시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마을앞 바닷가에서 18만여명의 내·외국인 관광객과 진도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하게 펼쳐졌다. 「뽕할머니가 바다가 갈라진뒤 가족들을 만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진도의 전설을 형상화한 영등축제는 이날 하오 4시52분쯤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사이에 폭 40m,길이 2·8㎞에 신비의 바닷길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절정을 이뤘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더 유명한 이번 행사에는 장덕상서울신문감사,김정주진도군수,박병훈문화원장,곽순재진도군의회의장을 비롯한 각급기관장들과 이주영문화재관리국민속실장등 문화예술관계자 5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하오 4시쯤부터 회동마을과 모도사이의 모래언덕이 바닷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관광객들의 탄성이 간간이터져 나오기 시작.바닷길이 완전히 열려 장관을 이룬 하오 5시30분쯤에는 수만여명의 인파가 신발을 벗어들고 바닷길에 들어서 회동마을 앞바다는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바닷길에 나선 관광객들은 저마다 소라등 각종 조개류와 낙지 해삼등을 주우며 신기함을 체험했으며 행렬은 성경속의 모세의 기적이 재현된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일대 장관을 이뤘다. ○…이번 영등제는 25일 밤 진도읍 거리에 걸린 1만여개의 청사초롱이 일제히 불을 밝힌 가운데 진도국교 교정에서 서울신문사와 금성이 주최한 남도민요 창극 뱃노래 신장기춤등 다채로운 전야제 행사가 펼쳐져 축제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전야제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25명의 서울예술단이 선보인 「연신풍장」.26일 회동마을에서도 공연된 이 무용극은 전설속의 뽕할머니의 혼을 모셔 인도하고 바다의 수호신을 맞이하는 무속의식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굿을 구성진 가락과 춤으로 표현,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멋들어진 우리가락에 경쾌한 현대리듬를 가미해 젊은층을 상대로 국악의대중화를 이끌어온 국악실내악단 「슬기둥」의 공연실황은 한편의 진한 드라마였다.신뱃노래,신푸리,들춤,꽃분네야로 이어진 국악들이 연주될 때마다 진도 회동야외공연장을 꽉 메운 5만여 관람객들은 어깨춤을 추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우리가락의 흥취에 젖었다. 특히 진도지역에 전해오는 전통무악과 현대음악이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뤘다는 평가. ○…이어 벌어진 명창 이임례씨의 판소리 무대엔 특히 외국인 관람객들이 몰려 우리가락에대한 그들의 관심을 가늠케 하기도.이명창이 「춘향가」「심청가」를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한 맺힌 소리로 열창하자 외국인들은 연신 박수갈채.일본인 관광객 도미무라 노보루(부촌승)씨(40·동경도립고교교사)는 『말로만 듣던 바닷길을 몸소 체험하고 한국의 판소리를 들을 수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면서 『내년에는 학생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바닷길을 사이에 두고 회동마을과 인근 가계·모도마을 어민들은 60여척의 어선에 형형색색의 만기를 달고 해상퍼레이드를 벌여 이날 축제분위기를 한껏고조시켰다.특히 어린이들은 오색연막탄이 퍼져 나갈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4월하늘을 밝게했다. ○…한편 이번 영등제에는 일본 NHK등 외국 언론사들이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특히 NHK방송은 전야제행사에서부터 민속공연마당이 열릴때마다 이 지방의 무속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 25∼29일 화랑훈련/인천·경기지역서

    대간첩대책본부(본부장 이양호합참의장)는 올해 전반기 화랑훈련을 25일부터 29일까지 4박5일 인천·경기지역에서 민·관·군합동으로 실시한다고 22일 발표했다. 한편 합참은 훈련기간중 예비군의 동원,병력이동,공포탄 사용,특공부대 복장의 대항군 운용등에 따른 주민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훈련은 주로 야간에 펼쳐진다고 밝히고 인천시민과 경기도민의 협조를 당부했다.
  • 외화벌이에 내몰리는 북노동자(시베리아 북한벌목장:6)

    ◎벌목은 뒷전… 밀렵·공사장부업 몰두/일감 크게 줄자 웅담·사향 채취 혈안/8백명 아파트공사… 탄광 품팔이도/불법취업 사회문제화… 러시아,한국기업 진출 바라 노동자들의 대거 탈출등으로 벌목사업이 갈수록 쇠락해지자 북한측은 러시아에서 또 다른 외화벌이에 몰두하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사냥과 건설,그리고 탄광에서의 채탄작업이다. 가장 오래된 벌목노동자의 부업은 사향노루와 곰의 사냥이다.벌목장으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에는 「노루주의」라는 표지판이 따로 설치될 정도로 극동 러시아의 벌판에는 사향노루가 많다.바로 그 사향노루와 겨울잠을 자는 곰을 마구 잡아 사향과 웅담을 채취해 북한으로 보내는 것이다.일부는 러시아 사냥꾼들로부터 비교적 싼값으로 사향과 웅담을 사들이기도 한다. 북한벌목장이 있는 튀르마시에서 30년동안 곰사냥을 해왔다는 크리오보르스키 예르게니 블라디미로이슈씨(59)는 『북한노동자들이 불법사냥을 자행,곰과 사향노루의 숫자가 크게 줄고 있다』고 밝히고 『튀르마에는 러시아인 직업사냥꾼이 많아 북한노동자들과 무척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월급 제대로 안줘 북한노동자들은 러시아와 북한 사이의 벌목협정 시한이 연말로 끝나는데도 벌목장의 인권문제가 떠오르면서 재협정이 타결되지 않아 지난해 8월쯤부터 사실상 일손을 놓은 상태이다.무료해진 벌목노동자들은 소일거리로 이웃 공사장이나 농가에서 품을 팔기 시작했다.공사장에서는 주로 러시아주민의 집을 짓는 일을 했으며 농가에서는 채소재배를 도왔다. 일부는 이웃 군부대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어주기도 했다.이런데서 제법 수입이 생기자 북한노동자들은 아예 본격적으로 부업에 매달렸다. 당시 북한벌목장의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월급도 제대로 줄 수 없는 지경에서 돈을 벌 길이 보이자 노동자들에게 통행증을 발급,벌목장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나가 한국에서 온 종교인이나 기업인,고려인등으로부터 금품을 마련해 벌목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일부 돈을 마련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등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더욱이 돈을 벌러 내보낸 노동자 가운데서도 탈출자가 나타나곤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는 윤모목사는 『6개월전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갑자기 북한의 벌목노동자들이 몰려온 적이 있었다』면서 『이들은 돈을 구걸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탈출자와 마찬가지로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망명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총영사관측도 그당시 망명허용 여부를 문의하는 북한인의 전화가 잇따랐었다고 밝혔다. ○러시아 상점 털기도 급기야 지난 2월말부터 북한의 벌목노동자들이 한국공관에 무더기로 망명을 요청했다는 모스크바발 보도가 터져나왔다. 이로써 북한노동자들의 이른바 「앵벌이」는 일체 중단되고 말았다.또한 북한노동자들에 대한 외출통제가 한층 강화됐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측은 최근들어 좀더 합법적인 외화벌이의 방편으로 건설공사에 나서고 있다.블라디보스토크의 테로마이스키구역에 짓고 있는 25층짜리 아파트가 대표적인 공사현장이다.북한측은 러시아와 무역거래에서 발생한 차액을 루블화로 갚는 대신 아파트공사를 해주고 있다.이곳을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8백명가량의 북한 건설노동자가 일하고 있다고 관계기관은 밝혔다. 시내 한복판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통제는 매우 삼엄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한 간부는 『식당에서 우연히 북한 건설노동자를 알게돼 한국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주었는데 그가 그 노래를 듣다가 본국으로 소환됐다』고 말했다.기자가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에게 다가가 『몇 층짜리 건물이냐』고 말을 걸자 『당신 누구냐』『그런 걸 왜 묻느냐』는등 냉정한 답변만 돌아왔다. 이들과는 달리 중부시베리아의 공업지대 구스바스에서는 수백명의 북한 광부들이 석탄을 캐내는데 한창이다.구스바스탄광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기업이 자본을 대고 있으나 노동조건등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제2의 외화벌이」에 나서는데 대해 러시아인들은 매우 차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하바로프스크주에서 발행되는 「지호오겐스크스카야 즈베즈다(태평양의 별)」지는 최근 북한의 불법취업을 비난하는 기사를 게제했다.『조선노동자들이 개인집에서 밭을 갈거나 기업소에서 건설을 하고 군대의 나무 베는 일을 돕고 있다』면서 『이는 그들의 봉급이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기사는 이어 『이들을 강력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불법취업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라면서 『러시아정부는 조선측이 노동자들에게 합당한 월급을 주도록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매우 아이로니컬한 것은 러시아가 벌목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북한의 자리를 한국이 메워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물론 한국측에 바라는 것은 북한에게처럼 노동력이 아니다.우리의 자본과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벌써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무더기로 망명 요청 러시아의 대표적인 북한벌목장이 있는 체그도민을 방문했을 때 페트로 티티코프시장은 매우 흥미로운 말을 했다.한국에서 기자가 방문한 것은 처음이지만 이미 많은 기업인들이 체그도민을 다녀갔다는 것이었다.티티코프시장이 자랑삼아 보여준 명함철에는 현대 고려합섬 한라 대우 한국중공업 한전등 국내 대기업의 사장으로부터 대리에 이르는 기업인들의 명함이 9장이나 꽂혀 있었다.물론 일본회사의 명함도 많았다.티티코프시장은 『한국기업인 가운데 두명은 북한측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일러줬다. 이 지역 주민들은 한국과 서울에 관심이 많아 서울에서 기자가 왔다고 하자 「노동자의 말」이라는 지방신문의 편집장이 인터뷰를 요청했다.그는 한국이 체그도민에 관심을 갖는 이유와 함께 서울신문이 다루는 기사의 주요테마및 발행부수,기자수,근무시간등을 물었다. 벌목장의 러시아측 업무를 맡고 있는 우르갈레스의 발레리 수크노발렌코 총지배인은 『지난해말 북한과의 벌목재협정을 앞두고 주민들이 재계약을 하지 말도록 정부에 강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그는 『이미 한국의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서울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고 밝히고 『러시아법만 준수하면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우르갈레스의 아나톨리 체 부지배인은 『최근 북한측에합작생산을 제안하고 있으나 북한측이 거부하고 있다』면서 『아마도 합작생산을 하면 합작기업소가 설립돼야 하고 거기서 이익을 나눠야하니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러시아인의 벌목기술에 발전이 없고 노동자수도 절대부족해 당분간 북한노동자의 인력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계약 추진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러시아측 벌목회사인 달리레스프럼의 필리펜코 바실리비츠 부사장은 『러시아에는 나무를 벨 수 있는 벌목장이 12구역이나 된다』면서 『북한벌목장은 그 가운데 1개 구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달리레스프럼의 대외관계업무를 맡은 사람은 윤 예르게니 세르게이츠(37)라는 한국인2세였다.그는 『현재 서울의 중소규모 기업 3군데와 벌목 계약을 추진중』이라면서 『한국사람들이 일처리를 빨리빨리 하기 때문에 일본사람들보다 한국사람들과 일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북한노동자들이 철수해버린 비르비잔벌목장의 콜리에프 비크토르 그리고리비츠지배인의 사정은 더 다급한 것 같았다.그는 기자가 『서울에서왔다』고 인사를 하자마자 『목재를 합작생산할만 한 회사가 없겠느냐』고 묻더니 『서울로 돌아가면 꼭 회사를 소개해달라』면서 명함을 내밀었다.그가 내민 명함의 뒤쪽에는 「아라사 피라비첨목재가공창 창장 고소설부」라고 적혀 있었다.중국이나 한국,일본등과의 합작을 생각하고 한자로 명함을 새겼다는 것이었다.
  • 「우리멋 우리가락…」오늘 발대/10월까지 전국 52개지역 순회공연

    전국 방방곡곡에 우리가락을 전할 「우리멋 우리가락 순회공연」이 9일 하오 2시 동숭동 대학로에서 발대식을 갖는다. 오는 10월 하순까지 전국 52개 지역을 찾을 「우리멋 우리가락」은 한국국악협회가 마련한 「국악의 해」 역점사업의 하나.신나라 레코드사가 1년 동안 무상으로 대여한 최첨단 기재의 이동무대차량(라이브 스테이지 카·Live Stage Car)이 동원된다. 전국에 있는 한국국악협회지부를 중심으로 펼쳐질 이 공연은 가·무·낙이 조화를 이루어 꾸며질 예정.무용인 임이조와 양길순 양정화,민요의 이춘희와 임정란 김혜란 김금숙 지화자 전숙희 고주량 이호연 장동욱,굿의 박병천과 지연화,판소리의 김일구와 남해성 김영자 안숙선 오정숙 성창순 은희진등이 나서게 된다. 이밖에 전북도립국악원과 전남도립국악단,남원민속국악단,사물놀이 한울림,뜬쇠,진쇠,풍물놀이,민속촌농악단,중앙국악관현악단,민속악회 시나위,국립국악원등 대표적인 국악단체들과 공연이 열리는 해당 지역의 국악인들도 가세한다. 한편 발대식은 국악협회 농악분과와 국방부 취타대의 「길놀이」로 막을 올려 오고무 남도민요 판소리 기악합주 경기민요 가야금병창 국악관현악의 순으로 펼쳐진다. 본격적인 공연은 10일 경북 경주에 이어 14일은 강원도 강릉·경포대,20일은 전북 김제·군산,21일은 고창과 전주,5월1일은 부안,3일은 전남 여수,8일은 강원도 인제,18일은 전북 임실·남원순으로 진행된다.
  • “러시아내북한땅”벌목장현황(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북한벌목장:4)

    ◎모두 15곳에 노동자 1만2천여명/67년 협정 첫 체결… 27년간 「외화사업」/연 15∼20억원어치 생산… 북몫은 35%/90년 노동자 일당 150루블… 한때 2만여명 일하다 최근 급감 옛 소련과 북한이 처음으로 벌목협정을 체결한 것은 67년3월2일이다. 그로부터 북한측은 상당기간 벌목장의 수와 규모를 늘려가며 턱없이 부족한 외화를 획득하고 양질의 목재까지 확보하는 일거양득의 재미를 누렸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등장하는 거센 변화를 겪으면서도 북한벌목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른바 「우리식 철옹성」을 고집하다 결국 세계의 대표적인 인권사각지대로 전락하고 말았다.그리고 그같은 변화는 이제 북한벌목장을 러시아에서 한발씩 한발씩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지금 15곳의 북한벌목장이 남아 있다.흔히 「시베리아벌목장」으로 불리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벌목장이 있는 지역은 극동 러시아지역이다.러시아인들은 「원동」이라고 부른다. 「벌목장」이라고 하면 보통 나무를 베어내는 숲속 벌목현장과 지방도시의철도역 근처에 자리잡은 목재가공공장,그리고 공장 안이나 공장 이웃에 있는 행정본부등 세곳을 총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15개 벌목장 전체를 관할하는 북한의 행정기관은 이른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림업부 재쏘림업대표부」다.극동지역의 중심도시인 하바로프스크시에 대표부가 있고 대표는 김지윤이다. 15개의 벌목장은 하바로프스크주와 아무르주등 두 지역에 나뉘어 있다. 하바로프스크주에 있는 9개 벌목장을 묶어 제1련합기업소가 담당하고 아무르주의 6개 벌목장은 제2련합기업소가 관리한다. 제1련합기업소 본부가 있는 곳이 바로 체그도민시이다.지금까지 알려진 탈출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 제1련합기업소 소속 벌목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체그도민이 세계의 관심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인권사각지대 전락 제2련합기업소는 아무르주의 틴다시에 있다.아무르주의 벌목장은 지난 70년대 말부터 생기기 시작했으나 하바로프스크주의 벌목장들에 비해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그리고 하바로프스크의 벌목장들보다 생활시설등 노동환경이 훨씬못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북한의 「림업대표부」를 상대하는 러시아측의 파트너는 하바로프스크시에 있는 달리레스프럼과 체그도민시에 있는 우르갈레스,틴다시에 있는 틴다레스와 아무르레스라는 4개의 국영기업이다.초기에는 달리레스프럼이 하바로프스크주와 아무르주의 벌목장을 모두 관리했으나 지난 90년부터 아무르주 벌목장은 완전히 틴다레스와 아무르레스에게 넘겼다.우르갈레스는 달리레스프럼이 체그도민에 파견하고 있는 자회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회사들은 벌목장에서 북한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러시아노동자의 노무관리및 북한과의 연락,업무조정등을 맡고 있다.물론 러시아와 북한측은 협정에 따라 서로에 대해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우르갈레스의 책임자 발레리 수크노발렌코 총지배인은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다.그의 집무실벽에는 아직도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있었고 러시아의 현집권층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그러나 그는 서울에서 온 기자에게 아주 호의적이었으며 하바로프스크지역을중심으로 한 북한벌목장의 현황을 자세히 설명해줬다.물론 우리는 페트르 티티코프 체그도민시장과 필리펜코 바실리비츠 달리레스프럼부사장,아나톨리 체 우르갈레스부지배인으로 부터도 벌목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 있는 15개의 벌목장에서 일하는 북한노동자의 수는 1만2천명가량이다.한때 2만명이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셈이다. ○노동자수 늘 부정확 하바로프스크주의 9개 벌목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해도 90년까지는 1만3천∼1만4천선을 유지했으나 최근 급격히 줄어들어 6천4백명가량만 남아 있다.거기에 비해 흔히 안전요원으로 불리는 북한의 사회보위부요원이 2백명가량이나 된다는 것이 한 관계자의 귀띔이었다. 아무르주의 6개 벌목장에 남은 노동자는 4천∼5천명가량이다.노동자의 수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러시아와 북한이 생산량을 기준으로 벌목계약을 맺기 때문이다.한해에 일정량의 목재를 생산하기로 합의되면 그에 필요한 노동자는 북한측이 알아서 확보하는 것이다.체그도민에 오는 북한노동자의출입국업무를 맡고 있는 루덴카 리디아 빅토르나는 『북한에서 새로 노동자가 오면 일단 신고를 하지만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서류의 숫자와 실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수와는 항상 오차가 있다』면서 『그러나 특별히 그점을 문제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벌목노동자의 수가 줄어든 것은 목재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북한벌목장이 올해 목표로 하는 목재생산량은 1백20만㎥.그동안 해마다 평균 4백만㎥의 목재를 생산해온 것과 비교하면 그 수량이 얼마나 줄어든 것인가를 쉽게 알수 있다.1백20만㎥는 현재 남아있는 1만2천명의 노동자가 베기에도 너무 적은 량이다. 필리펜코부사장은 1백20만㎥의 가격에 대해 『인플레가 심해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오늘 시세로 따지면 30억∼40억루블쯤 될 것』이라고 밝혔다.단순비교는 어렵지만 북한벌목장의 1년 총생산량은 우리돈으로 15억∼20억원가량 되는 셈이다. 목재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나무를 베는데 드는 비용이 갈수록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70년대까지만 해도 벌목노동자들은 목재공장 근처의 숲에서 벨만한 나무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다.그러나 30년 가까이 벌목이 계속되면서 나무를 베기 위해서는 점점 숲속 깊숙히 들어가야만 하게 됐다. 오늘날 목재공장에서 벌목현장까지의 거리는 보통 1백∼3백㎞가량이나 된다.말하자면 대전에서 벤 나무를 서울에 싣고와 가공을 하는 셈이다.그러자니 목재공장에서 벌목현장까지의 도로를 새로 내야하고 거리가 먼 만큼 트럭운송비등 각종 부대비용이 늘어나는 것이다. 최근들어서는 러시아인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나무를 벤 자리에는 반드시 묘목을 심고 있다.여기에도 추가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이러한 추가비용은 모두 러시아측에서 부담하고 있다.말하자면 북한측은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것이다. ○공사장으로 내몰려 이 때문에 생산된 목재 가운데 북한측이 차지하는 비율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지난 67년 벌목협정이 체결된 뒤부터 86년까지는 생산된 목재를 러시아와 북한이 6대4로 나눴다.그러다 86년부터는 분배비율이 6.5대3.5로 바뀌었으며 최근 다시 6.55대3.45로 조정됐다는 것이우르갈레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현재 진행중인 러시아와 북한의 재계약협상에서는 러시아측이 7.2대2.8의 비율을 요구하고 있다. 발레리총지배인은 벌목공들이 베는 나무를 북한노동자들이 「삼손나무」「벗나무」「사시나무」「니깔나무」라고 부른다고 일러줬다.명칭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모양새는 굵고 곧게 자란 소나무와 같았다.벌목하는 나무의 굵기는 용도에 따라 지름 22㎝에서부터 1m가 훨씬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러시아로부터 받는 북한노동자의 임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하지 않다.러시아와 북한의 벌목협정에 「노동자가 필요한만큼 보상한다」고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러시아측은 얼마전 우리의 최저임금개념인 「노르마」이상의 임금을 주도록 북한측에 요구한 적이 있다.그러나 지금은 살인적인 인플레 때문에 노르마 자체가 기준이 되기 어려운 지경이다. 발레리총지배인은 『북한노동자에 대한 임금은 러시아법에 따라 계산하지만 북한지도자들이 일괄적으로 받아가기 때문에 어떻게 배분되는 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그는 『노동자들이 먹는 것과 입는데 쓰는 돈은 모두 월급에서 제하고 나머지도 상당부분 북한으로 송금하고 그 나머지만을 받는 것 같다』고 전했다. 티티코프시장은 『지금은 인플레가 심해 비교하기 어렵지만 90년에는 러시아노동자가 하루에 1백80루블을,북한노동자가 1백50루블을 받았다』면서 『북한지도자들이 인플레를 감안해 임금을 나눠준다면 러시아노동자보다 약간 적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노동자의 나무 베는 솜씨는 러시아 벌목공들에 비해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아나톨리부지배인은 『러시아인들은 작동시키지도 못하는 다 낡은 전기톱을 갖고 거목을 척척 쓰러뜨리는 재주는 과연 감탄할만 하다』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북한노동자들이 최근에는 일거리가 줄어들자 주변 농지와 공사장,사냥터로 나가고 있다』면서 『그것이 또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 박태권 충남지사 사퇴/“사전선거운동 물의… 도민에 송구”

    【대전=최용규기자】 사전선거운동 시비로 물의를 빚은 박태권충남지사가 5일 하오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박지사는 이날 하오 7시 30분쯤 도청 접견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사전선거운동 시비에 휘말려 도민에게 걱정을 끼치게돼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자성하는 마음에서 충남지사직 용퇴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충남지사로 부임한 박지사는 재경충남향우회에 참석하여 협조를 당부했으며 충남지역 여성단체장 28명을 도 및 시·군예산으로 외유를 보내 사전선거운동 시비를 불러 일으켰었다. 박지사는 이날 사퇴문제를 놓고 하오 청와대측과 협의를 한뒤 최종적인 사퇴결정을 한것으로 알려졌다. ◎빠르면 오늘 수리/청와대 관계자 김영삼대통령은 사전선거운동으로 물의를 빚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박태권충남지사의 사표를 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5일 『박지사의 사표는 빠르면 내일중 수리될 것으로 안다』면서 『박지사가 사전선거운동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사퇴함으로써 김대통령의 깨끗한 선거풍토 혁신과 정치개혁의 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박지사는 이날저녁 사의를 표명하기 앞서 최형우 내무장관을 통해 자신의 뜻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관계자는 그러나 『사전선거운동혐의로 물의를 빚은 최기선인천시장은 이미 선관위로부터 경고처분을 받았고 박지사와는 사안의 경중이 다른 것으로 안다』고 말해 사전선거운동과 관련한 사퇴는 박지사로 그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 몰락한 벌목장 비르비잔(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 북한벌목장:3)

    ◎탈출 잇따르자 북서 노동자 소환/벌목계약 작년말에 종료… 연장 포기/한때 1천여명 작업… 현재는 10명뿐/술주정에 사향노루 사냥 일삼아 러시아주민들도 반감 극동 러시아의 중심도시인 하바로프스크시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3시간쯤 달리면 비르비잔이란 곳에 닿게 된다. 비르비잔은 하바로프스크주 예브레이스카야구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10만명의 주민 가운데 유태인이 30%를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체그도민이 러시아에 남아 있는 북한벌목장의 건재를 확인하는 곳이라면 비르비잔은 몰락해가는 북한벌목장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르비잔의 거리에서는 작업복을 입은 북한노동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시의 북서쪽에 자리잡은 벌목장본부와 목재가공공장,이웃 벌목장등에서 1천여명의 북한노동자들이 일했기 때문이다. 특히 목재가공공장은 비르비잔시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벌목노동자들이 간부들에게 뇌물을 써서라도 가려하는 인기좋은 작업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곳에서 북한노동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지난해말로 비르비잔벌목장의 벌목계약기간이 끝나 북한노동자 대부분이 이미 철수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취재팀은 3월18일 새벽 비르비잔에 도착했다.비르비잔역에 내려 북한벌목장을 돌아보기 위해 20만루블(약10만원)을 주고 전세낸 택시의 운전사가 운좋게도 목재가공공장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유태인이었다. 그의 안내로 시내의 목재가공공장을 찾았다.정문에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으나 러시아인 직원들은 『서울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별다른 절차 없이 출입을 허락했다.공장은 총규모가 5천평 정도로 정문에 들어서니 벌목현장에서 베어온 나무를 쌓아놓은 야적장과 이를 운반하는 대형 크레인,굴삭기,대형트럭이 줄지어 있었다.또 통나무를 절단하는 기계와 목재를 네모나게 자르는 기계,전기톱,대패등 각종 공구를 비치한 커다란 가건물이 10여채 늘어서 있었다.공장의 동쪽 끝에는 북한노동자의 숙소가 있었다. ○가장 인기 좋았던 곳 공장 곳곳에는 북한노동자들이사용하던 깃발등의 물품이 널려있었지만 일하는 북한노동자는 한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고 러시아 노동자들만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다른 목재공장과 벌목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과 간판도 거의 눈에 띄질 않았다. 공장본부에서 만난 비크토프 그리고리스비츠 러시아측 지배인은 『비르비잔지역의 벌목계약은 지난해로 완전히 끝나 연초부터 북한 노동자들의 철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비르비잔벌목장은 러시아와 북한간에 나머지 벌목장들과는 따로 벌목계약이 체결됐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데도 비르비잔에서 철수를 결정한 것은 다른 벌목장보다 눈에 띌 정도로 탈출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도 보였다.비크토프지배인은 최근에도 이곳에서 몇명의 노동자가 탈출했다고 밝혔으며 그 가운데 세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다른데보다 좋은 작업여건인데도 노동자들의 탈출이 많은 것은 러시아사회와 잦은 접촉기회를 가지면서 그동안 통제된 북한에서의 삶이 허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것이었다. 벌목장본부의 한 간부는 『벌목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 주민들이 정부당국에 계약연장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고 신문에서도 그런 기사를 많이 썼다』고도 했다.벌목노동자들의 행색이 남루한데다 술을 마시고 러시아인들과 패싸움을 하거나 불법으로 사향노루와 곰을 마구 사냥하는등 문제가 계속 발생했기 때문에 러시아주민들이 북한사람들을 싫어했다는 설명이였다. 비크토프지배인은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북한인은 행정간부와 안전요원,그리고 통역원등 10명뿐으로 본국에서의 마지막 철수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면서 『음식을 사러가는 것을 빼놓고는 숙소 밖으로 일체 나오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살아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과 10명정도라는 말에 취재팀은 그들의 숙소 안에 한번 들어가보기로 했다.비크토프지배인등 러시아관계자들은 『사고가 생겨도 책임질 수 없다』고 말렸다.하지만 우리는 일단 부딪쳐보기로 하고 북한측에 아무런 사전통보 없이 숙소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최근에도 몇명 탈출 숙소는 블록과시멘트로 지은 2층건물이었다.층마다 공동화장실과 세면장이 있고 긴 복도 양쪽에 방들이 줄지어선,한국 대학가의 하숙집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비르비잔역의 기차시간을 적은 표가 입구에 걸려있었다.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이따금씩 시간을 내어 하바로프스크까지 여행을 하는 자유도 누리곤 했다고 한다. 1층의 모든 방을 열어보았지만 비어있었다.빈채로 방치해둔 탓인지 냉기가 감돌았다.2층으로 올라서면서부터는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분명히 사람이 사는 곳인데도 인기척이 없이 조용하기만 한 까닭이었다. 계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TV 소리였다.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가 문을 열어젖혔다. 방에서 축구경기를 보고있던 5명의 북한인과 마주쳤다.그들은 흠칫 놀라며 쏘아봤다.그들에게 『서울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뜻밖에 그들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 없이 인사를 받았다. 5명 가운데 2명은 옷도 깨끗한 편이었고 점퍼엔 김일성배지를 달고 있었다.행정간부나 국가보위부요원쯤으로 보였다.나머지 3명은 겉으로 보기에도 노동자 냄새가 났다.이들은 『사업 때문에 비르비잔에 왔다가 북한동포들이 있다기에 들러봤다』고 말하자 의자를 내주며 앉도록 권했다. 방안에는 창쪽으로 10개의 침대가 나란히 붙어있었고 장작난로와 흑백TV를 올려놓은 선반,의자등이 가구의 전부였다.나무로 짠 침대에는 색이 바랜 시트와 붉은 나일론 이불이 깔려있었다. ○북서 감옥으로 사용 이들은 왜 비르비잔에서 노동자들이 철수하느냐고 묻자 『계약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한강과 대동강의 봄소식을 화제로 5분가량 대화를 나누던 북한인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기자일행을 앉혀둔채 한사람씩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옆방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더 있다가는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이만 돌아가겠다』고 일어섰다.마지막까지 방에 남아 있던 김일성배지의 사나이에게 『기념으로 사진 한장 같이 찍자』고 권했더니 『작업복을 입어서 안되겠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비르비잔 목재공장 건너편에는담이 매우 높은 회색건물이 있다.유태인택시운전사는 그곳이 옛소련의 정치범수용소였다고 일러줬다.그곳을 북한측은 벌목노동자의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튀르마벌목장을 탈출,러시아에 망명허가를 받은 김호씨가 도주과정에서 붙잡혀 수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비르비잔은 국경을 넘어선 남녀간의 애틋한 우정이 꽃핀 곳이기도 하다.지난 91년 이곳에서 일하던 벌목노동자 장모씨는 동료가 남한방송을 들었는데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요원에게 조사를 받게되자 탈출을 결심했다.장씨는 그 동료와 자주 가던 러시아식당에서 일하던 올냐라는 아가씨에게 사정을 얘기했다.올냐는 장씨를 남편인 것처럼 꾸며 시베리아횡단 열차편으로 모스크바에 데려가 장씨가 헝가리를 통해 남한으로 탈출하도록 도왔다.장씨는 서울에 정착한 지금까지도 올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초청장을 보낼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취재팀은 서울에서 장씨에게 들었던 얘기를 토대로 올냐가 일하던 식당으로 찾아갔다.그러나 그곳에서 올냐를 만날 수는 없었다.식당에서 일하는 중년여인은 『지난해까지 올냐라는 이름의 여성이 식당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지만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 러 벌목장·북한탈출 주민 실태파악/정부조사단 이달 연변 파견

    ◎중·러에 난민지위 확보 교섭 정부는 시베리아 북한벌목장을 탈출한 노동자들과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의 중국거주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달 안에 실무자 2명을 연변지역에 보낼 예정이다. 정부는 또 체그도민등지의 북한벌목장을 탈출해 러시아 극동지역과 모스크바,중앙아시아지역에 숨어살고 있는 노동자(서울신문 특집으로 연재중)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안에 조사단을 러시아 현지에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정부는 1일 하오 외무부에서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갖고 범죄자를 제외하고는 벌목노동자의 귀순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부분 여권이 없는 이들 노동자에게 난민지위부여를 외교경로를 통해 추진하고 이들 북한 노동자들이 대거 귀순할때 국내정착지원을 위한 예산확보및 직업훈련실시방안을 수립하기로 했다.
  • 전남도,관변단체 신설/시·군에 「우리고장…」 구성 지시

    ◎정부방침 역행 빈축 【광주=최치봉기자】 정부의 관변단체 정리방침에도 불구하고 전남도가 도민들의 애향심을 고취해 선진도민상을 정립한다는 명분아래 「우리고장 사랑운동추진협의회」구성을 추진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전남도는 지난달 30일 각 시·군에 「우리고장사랑운동 추진계획」을 시달,이를 주도할 민간단체를 구성토록하고 행정관청이 이를 적극 뒷받침토록하라는 내용의 세부지침을 시달했다.이에따라 일선 시·군은 활동적인 15명정도를 선정,우리고장사랑운동 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매월 1차례 정례회의를 갖도록 하는 한편 시장·군수를 회장으로,공공기관장을 회원으로 한 「우리고장사랑운동지원협의회」를 구성해 「추진협의회」의 제반 활동을 지원해 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도는 이 단체에 대한 지원협의회를 각 시·군별로 구성하고 세부지원방침까지 세워놓고 있어 내년의 자치단체장선거를 겨냥한 포석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 남도민요 진수 맛본다/국립국악원,새달8일 「민속음악의 밤」

    ◎강정숙·임향님씨 등 중진 출연 남도민요와 남도민요에서 파생된 다채로운 음악형태를 한자리에서 맛볼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국립국악원이 4월8일 하오 7시30분 국악당소극장에서 여는 「민속음악의 밤­남도민요」.강정숙 임향님 김경숙 강선례 정경옥등 판소리로 기초를 잘 닦은 중진들이 나서 모처럼 남도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호남지방을 기반으로 한 남도민요는 단순한 음악구조와 서정적 가락이 특징인 일반 민요와는 차이가 있다.남도민요는 바로 판소리와 산조를 뿌리내릴수 있게 한 기본토양.그만큼 소리와 내용 모두가 극적인데다 다양한 기교를 요한다. 남도민요를 부를 때는 몇개의 곡을 뽑아 음악적으로 형식미가 갖추어 지도록 구성,이어 부르며 약간의 발림을 가미해 음악의 분위기를 더하는 것이 보통.1·2부로 나뉘어 진행될 이 공연 1부에서도 「육자배기」를 「화초사거리­육자배기­자진육자배기」로,삼산(삼산)은 「반락(반락)­개구리타령­서울삼각산」순으로 이어 들려준다. 남도민요의 맏이격인 「육자배기」는 누구나 부를 수는 있지만 그 맛을 제대로 내기가 어려워 「판소리 명창도 육자배기 명창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1부에서는 또 무용음악인 「강강술래」와 「농부가」가 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에 의해 관현악으로 새롭게 연주되어 색다른 맛을 더해주게 된다. 2부에서는 보통 부르는 「새타령」에 서창을 덧붙인 「긴새타령」을 시작으로 「동백꽃 타령」(한일섭곡),「사철가」(신숙곡),「신뱃노래」(서용석곡)등 신민요가 선을 보인다.신민요는 명인·명창들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전통음악」.과거 창극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주로 만들어졌으나 이제 악보도 없이 잊혀져가는 실정이라 이번 공연이 더욱 의미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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