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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李총재도 ‘부산나들이’

    내년 총선을 겨냥,‘지방민심잡기’에 나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14일 부산을 방문했다. 이총재의 부산방문은 올 들어서만도 4번째다.그러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방문에 앞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있다. 두 전·현직 대통령은 16일에 있을 ‘부산민주공원’개원식에 참석할예정이다. 또 민주산악회(민산)재건을 둘러싸고 김전대통령과 ‘기싸움’에서 승리한뒤 첫 방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민산출범 연기결정 이후 김전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민심의 동향을 직접 챙기려는 의도도 다분히포함돼 있다. 이총재도 이날 김대통령과 김전대통령의 부산방문을 의식한 듯 3김정치와현정권을 그 어느때보다 강력하게 비판했다.지역기자 간담회에서 이총재는특히 삼성차 가동중단,파이낸스사태 등 어려운 부산경제난을 열거하며 민심을 파고 들었다.이총재는 현 정권이 “인기영합주의,과시주의로 경제정책을흐려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민산에 대한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이총재는 “정치세력화하면 야당의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정치세력화를 하지 않는다면 이들도민주화의 대장정에 동참할 수 있다”고 밝혔다.여권의 합당움직임과 관련,“새로운 정치를 향해 뜻을 같이 한다면 연계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며 김용환(金龍煥)의원 등 자민련내 합당반대파와의 연대가능성을 시사했다.여권의중선거구제 강행 방침에는 강력저지 방침을 재천명했다. 이어 여권의 신당창당,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사장 구속,동티모르 전투병파견의 문제점을 조목 조목 열거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총재는 이날 지역언론사 사장들과의 간담회,부산경제가꾸기 시민연대 방문,지자체 대표들과의 만찬,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 등을 통해 민심 다지기 행보를 가속화했다. 한편 이총재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여사도 부산여중·고 동창회에 참석한데이어 장애인시설 방문, 여성단체 대표 간담회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측면지원활동을 펼쳤다. 부산 박준석기자 pjs@
  • “내년부터 도청이전”沈충남지사 국감 답변

    심대평(沈大平) 충남지사는 13일 빠르면 내년부터 도청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사는 이날 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국정감사에서도청 이전 추진 일정을 묻는 이완구(李完九·자민련) 의원의 질문에 “국제통화기금(IMF) 한파 이후 도민의 의사 분열과 재원 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도청 이전 논의를 유보했었으나 내년부터 ‘도청이전추진기획단’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이의원은 국감 질의를 통해 “전남도청 이전 후보지가 이미 확정됐고 경북도도 지난 8월 ‘도청이전실무기획단’을 편성한만큼 충남도도 어려운 경제상황이 해소되는대로 최소 내년부터는 ‘투명하고 공개적인 절차’에 따라도청 이전을 추진해 달라”고 심지사에게 주문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 金대통령 “이산가족문제 결코 단념 안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휴일인 10일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대통령기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했다.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최근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민생현장 방문과 궤를 같이한다. 김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통해 “정부는 남북 이산가족문제를 결코 단념하지 않고 있다”며 이북 5도민의 숙원 해결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노력에 대해 소개했다.김 대통령은 “북한은 지난 봄 비료20만t 중 우선 10만t을 받으면 이산가족문제를 ‘통 크게’ 해결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지키지 않아 정부도 나머지 10만t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그러나 “제3국을 통한 이산가족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며 정부가 이산가족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렸다. 김 대통령은 이어 “이산가족문제에 대해 정부가 끈질기게 노력함으로써 이산가족 여러분이 멀지않아 북한에 있는 친척과 친지들을 만나거나 소식만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월남 실향민들에게 강한 기대를 심어주었다. 김 대통령은 이 연장선상에서 대북정책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애썼다.“북한은 겉으로 뭐라고 말하건 현실에선 포용정책에 기반을 둔 한·미·일 3국의 공동 노력에 점차 호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하고 “이제 남북관계에 상당한 진전과 의미있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희망을 표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임동원(林東源)통일부·김기재(金杞載)행정자치부장관과 3만여명의 이북 5도민들이 참석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10일 이북5도민 체육대회

    이북 5도위원회는 10일 오전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17회 대통령기 이북도민체육대회를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와 함께 개최한다. 이날 대회에는 김기재(金杞載) 행정자치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3만여 월남 이북도민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진주-서울 항공료 인상 철회를”

    진주시와 고성군 등 경남 서부 9개 시·군의회 의장단 등은 7일 국내 2개항공사에 진주∼서울 노선 항공운임 인상에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현재도 우회항로로 인해 왕복 2만2,000원의 손해를 보는데 두 항공사가 원가절감과 직항로 개설 노력 없이 운임부담을 전적으로 지역민에게 전가한다”면서 “항공료 인상계획을 철회하고 직항로 개설에 앞장서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홍보전단 살포,항의집회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아시아나 항공은 현행요금 51,300원을 13일부터, 대한항공은 5만4,300원을 18일부터 10%이상씩 올릴 계획이다. 이에 앞서 제주도관광협회는 최근 “국내 항공요금 대폭 인상은 도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내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행위 조사를 요청했다. 진주 이정규기자 jeong@
  • 경북도·대구시 통합론 ‘고개’

    경북도청 이전후보지 선정작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경북도 국정감사에서대구·경북 통합론이 제시돼 주목된다. 5일 국회 행정자치위의 경북도 국감에서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의원은 “도청은 도정 발전의 구심체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경북에서는 지난 6월 전남의 도청이전지 확정이후 지역별 유치운동이 과열되면서 도민화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도청이전의 폐해를 지적하며 대구·경북 통합을 역설했다. 정의원은 도청 이전후보지 6곳중 하나인 의성 출신이어서 이날 발언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앞서 4일 건설교통위의 경북도 국감에서도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의원이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임의원은 “도청이전 비용만 해도 2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며 “아직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이같은 거액을 쏟아부으면서 도청을 이전해야 하는지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은 지역간 대립으로 도청 이전후보지 선정이 사실상 어렵다고판단하는 일부 도 공무원과 지역 주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으면 급부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구·경북 통합론은 지난해 일부 도의원들도 제안했으나 ‘현실성이 없다’는 경북도의 반응에 따라 해프닝으로 끝난 바 있다. 이의근(李義根) 경북지사도 그동안 ‘대구와 경북은 지난 81년 분리이후 독자적으로 발전,현실적으로 통합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으나 의원들의 질문이 거듭되자 “대구·경북 통합을 도청 이전문제 해결 방안중 하나로 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국감초점] 이모저모

    15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 이틀째인 30일 의원들의 국감 열기가 고조되면서 피감기관의 장이 누구냐에 따라 여야의 질의 양상이 바뀌는 등 진풍경이벌어졌다. ?행자위의 경남도 국감장은 김혁규(金爀珪)지사가 한나라당 출신이어서인지 여야가 뒤바뀐 분위기였다. 이덕영(李德榮)정무부지사가 앞으로 나오지 않고 그냥 자리에 서서 인사하자 자민련 이원범(李元範)위원장은 “30년 이상 공무원생활을 한 사람이 국감에서 인사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고 호통쳤다.국민회의 이성호(李聖浩)의원은 “기관보고에서 태풍피해를 뺀 것은 도민의 수해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의 홍보만 하려는 것”이라고 김지사에게 면박을 줬다. 반면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의원은 “경남도가 한국능률협회의 지방자치단체 평가에서 최우수 도로 선정된데 대해 노고를 격려한다”고 치켜세웠다. ?문화관광위의 국정홍보처 국감과 환경노동위의 노동부 국감에서는 전날에이어 여당의원들이 피감 부처를 다시 질타,‘야당같은 여당’의 모습을 연출했다.국민회의 최재승(崔在昇)의원은 국정홍보처 감사에서 “국정홍보가 제대로 되지 못해 ‘국민의 정부’의 업적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국정홍보처의 분발을 촉구했다.환경노동위의 국민회의 방용석(方鏞錫)·조한천(趙漢天)의원은 노동부 감사를 통해 “신노사문화 창출사업이 제도개혁 없는 정부주도의 캠페인성 운동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질책했다. ?환경노동위의 노동부 국감에서는 골프장 캐디의 노동권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의원은 “동래지방노동사무소가 캐디 18명이 쫓겨난 문제에 대해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로 보지 않고 행정종결처리했다”면서 캐디의 권리문제를 제기했다.이에 대해 노동부는 “캐디가 사실상 임금을 받는 것으로 볼 때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로 판단,동래지방노동사무소에 재조사를 지시했다”면서 캐디의 노동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약속했다. 김성수 주현진기자 sskim@
  • [의열 독립투쟁](7) 백정기 의사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은 한민족의 민족해방운동 방법론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투쟁방략 중 하나였다.그러나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백정기(白貞基·1896∼1934) 의사는 일찍이 무정부주의사상(아나키즘)을 수용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선각자였다. 일제하 한국인 무정부주의자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체제는 물론,소수의 특권계급(공산당 등)이나 일당독재,약탈적 경제제도,사회적 불평등,노예적 문화·사상 등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였다.따라서 이런 한국인들의 무정부주의운동은 독립운동의 주체가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이라고 설파하고,민중이주체가 된 암살·파괴·폭동 등 폭력혁명론적 투쟁방법론을 제창한 사실은주목된다.일제에 대항할만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조직적 기반 등이 별로 없는 식민지의 민중입장에서 자신의 희생을 무릅쓴 의·열투쟁은 오히려 정당한수단이 되는 것이다.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같은 곳에서 윤 의사와 거의 동시에일제 침략세력을 응징코자 한 영걸이 있었으니,그가 바로 백정기 의사이다.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백의사는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공원 출입증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도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백의사는 1896년 1월(음력)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본관은 수원으로 뒷날 호를 구파(鷗波)라 하여 ‘백구파’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고 활달하여 14세 전후에는 사서삼경에 통달할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또 신학문도 배워 정치·경제·사상사에 대한 식견을 갖추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서울을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의 진전상황을 목격하고 고향의 3·1운동을 주도하였다.이 해 8월 동지 4명과 함께 상경,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일제기관의 파괴를 꾀했으나,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 펑톈(奉天,현 瀋陽)으로 망명했다.이곳에서 후일 ‘육삼정 의거’에 같이 참여하게 되는 동지 이강훈(李康勳·전 광복회장)을 만났다. 1920년 겨울부터 1923년 후반기까지는 군자금 조달과 주요 기관·시설파괴등을 목적으로 국내와 일본 도쿄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1923년 말 우여곡절 끝에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간 백 의사는 그곳에서 신채호(申采浩)·이회영(李會榮)·김창숙(金昌淑) 등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큰 영향을 받았다.특히 이때 이들과 교유하면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그리하여 1924년 4월 이회영·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奎)·정화암(鄭華岩)·유자명(柳子明)등과 함께 재중 한인 최초의 무정부주의 조직 ‘재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게 된다.이 연맹은 중국·일본·대만·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참여한 조직이었다. 1930년 4월에는 유자명·정화암 등과 함께 역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조직했으며 그해 10월말 정화암 등과만주로 건너가 ‘한족총연합회’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특히 백 의사는 이곳에서 일부독립운동가들의 민중 억압을 비판하는연극을 공연하여 재만 한인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지병이 악화로 1931년 5월경 상하이로 돌아온 의사는 몸을 요양하는 한편,영국인 전차회사의 매표원으로 일하며 일정한 직업이 없이 독립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동지들을 부양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평소의 소신을 펼칠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하고 있던 백 의사는 마침 일본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가 항일투쟁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중국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有吉明)에게 4천만 엔(圓)이란 거액을 지원,중국정부의 고관들을 매수하기 위해 상하이의‘육삼정(六三亭)’이라는 요리집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백 의사를 비롯해 정화암·이강훈·원심창(元心昌)등 10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은 1933년 3월5일 상하이에 있는 백 의사의 아파트에 모여 거사를 논의했다.그런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의거에 나서겠다고 해 제비뽑기로 주동자를 뽑게 되었다.추첨결과 백정기와 이강훈이 결정되자 일본에서 건너온 무정부주의자 원심창도 동행을 자청,최종 3인이 선정되었다. 마침내 운명의 1933년 3월 17일.중국인 동지 왕야차오(王亞樵)로부터 입수한 권총과 수류탄,고성능 폭탄을 품에 간직한 백정기와 이강훈 등은 밤 8시경 육삼정 건너편 송강춘(松江春)이란 음식점에서 아리요시 등이 회합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의거를 눈앞에 둔 순간 미리 거사정보를 입수하고 대비하고 있던 일본·중국 관헌에게 세 사람 모두 붙잡혀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육삼정 의거’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거사 직후 ‘상하이시보(上海時報)’를 비롯해 중국 신문은 물론 국내의 주요신문들도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였다. 현장에서 피체된 백 의사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사하야(諫早)감옥에서 복역중 1934년 6월 5일 영양실조와 병고로향년 39세로 순국하였다.백 의사의 유해는 해방 이듬해 김구 선생의 지시로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다.그리고 1963년 3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장세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 운동사硏 연구원‘文博 *‘육삼정 의거' 나머지 2人은 ‘육삼정 의거’의 주역 3인 중 나머지 두 동지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우선 두 동지 가운데 청뢰(靑雷) 이강훈(李康勳) 선생은 아직 생존해 있는데 생존 애국지사 가운데 최고령자이다. 이 선생은 올해 96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애국선열 관련 행사에는 빠지지않고 참석하고 있다. 금년 백범 50주기 추도식에서도 자필로 쓴 추도문을 낭독했다.젊어서 백야김좌진(金佐鎭)장군을 곁에서 모셨으며 백 의사와 함께 체포된 후 15년형을선고받고 일본감옥에서 복역중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일본 현지에서 백의사등 3의사의 유해 봉환에 앞장섰으며 60년까지 재일거류민단에서 간부로 활동했다. 4·19혁명후 귀국해서는 혁신계 인사들과 함께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60년대말부터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 편찬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자서전 ‘민족해방운동과 나’를 비롯,독립운동 관련 저서도 여러권 남겼다.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과 광복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원심창(元心昌,일명 元勳) 선생 역시 백 의사와 같이 체포되어 무기징역을언도받고 복역중 8·15해방을 맞아 투옥 22년만에 일본 가고시마형무소에서석방됐다. 해방후 민단(民團)창립에 참가,11·12대 중앙단장을 지냈다.71년 7월 4일 일본에서 타계후 ‘의사’로 추존돼 재일한국인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두 사람 모두 77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백정기 의사 유족근황과 추모사업 백정기 의사는 의거 당시 기혼자였으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순국했다.현재 백 의사의 유족으로 등록된 백계현(白械鉉·65)씨는 백 의사의 동생 백진수(白珍守·46년 작고)씨의 아들로 백 의사에게 양자로 입양된 사람이다.백의사의 동생 진수씨도 국내 항일 공적으로 지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백 의사의 양자 계현씨는 한 때 공직생활과 개인사업을 하였으며 광복회 사무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백의사 추모사업은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주로 추진되고 있다.정읍시는 수년전부터 시 예산으로 백 의사의 사당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왔으나 IMF사태 이후 자금난으로 모두 중단된 실정이다.현재 정읍에는 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회장 朴在福·전 정읍시의회의장)가 구성돼 추모사업을 해오고 있으며매년 4월 13일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서 공동추모제가 열리고 있다.기념물로는 58년 전북도민의 성금으로 정읍에 세워진 ‘순국기념비’와 독립기념관경내의 ‘어록비’ 등이 있다. 정운현기자
  • 경남도 창원터널 운영권 인수

    경남도는 29일 민자를 유치해 건설한 창원터널 관리운영권을 SK건설로부터인수하기로 잠정합의했다고 밝혔다. 창원터널은 창원시 불모산동과 김해시 장유면을 잇는 왕복 4차선으로 SK건설이 지난 89년부터 민자 782억원을 들여 건설,94년 8월 1일 개통이후 오는2014년까지 20년동안 통행료를 받아 투자비를 회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연리 14%나 되는 높은 이자로 인해 원리금 상환은 커녕 오히려 326억원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해마다 통행료 인상 논란이 반복되는 등 문제가됨에 따라 도가 인수해 경남개발공사에 운영을 맡기기로 했다. 이로써 주민들은 통행료 인상 부담을 덜게 됐으나,민자 유치로 건설한 사회간접자본시설(SOC)의 운영권을 적자라는 이유로 정해진 기간이 끝나기 전에자치단체가 인수하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 다른 지역의 민자유치사업에도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금액은 980억원으로 지난해말 장부상 상환잔액인 1,108억원에서 128억원이 공제됐다. 도는 680억원을 연리 8%인 지역개발기금에서 빌려 현금으로 지급하고,나머지300억원은 3년 거치후 3년내 상환할 계획이다. 도가 터널운영권을 인수하면 연간 이자 차액만 90억원에 달해 통행료(현재1,000원) 인상없이 오는 2008년까지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다. 도 관계자는 “일부 도민들이 창원터널 인수 방침을 SK건설에 특혜를 주는것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이는 실제 내용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인수시기는 불투명하나 늦어도 내년부터는 도가 인수해 운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민속공연 한마당’‘효 콘서트’악극‘아리랑’등 풍성

    올 한가위엔 오곡백과를 무르익게 한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모처럼 전통가락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야외무대의 달맞이행사부터 악극 ‘아리랑’까지 놓치면 후회할 공연들이 연휴기간중 풍성하게 펼쳐진다. 한가위 이튿날인 25일 오후7시30분 국립국악원(02-580-3300)별맞이터에서는‘달’을 주제로 한 공연 ‘보름달빛 소리,휘영청 두둥실’이 마련된다.1부‘보람마당-달빛 그리움,달빛 꿈’에서는 ‘달하 노피곰 돋으시어…’로 시작되는 백제가요 ‘정읍사’를 노랫말로 한 성악곡 ‘수제천’,궁중무용 ‘무고’,17현 가야금곡 ‘달하 노피곰’등을 선보인다. 2부 ‘아람마당-달빛 노래,달빛 춤’에서는 실내악단 ‘오느름’이 국악가요 ‘박씨 물고 온 제비’‘고향가는 길’등을 연주하고,이어 국악원 민속단과 관객이 손을 맞잡고 흥겨운 원무놀이 ‘강강술래’를 펼친다.초대권은 국악원 예악당 안내실에서 무료로 나눠준다. 국립중앙극장(02-2274-1151)은 24·25일 오후4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국립창극단 등 소속 예술단체와 김영자 이지영등 명인·명창이 참여하는 특별공연 ‘우리 가락,우리 춤’을 마련한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02-566-7037)은 우리춤,우리가락(24일)아프리카 타악과사물놀이의 신명(25일)우리 선율의 아름다움(26일)을 테마로 3일간 다양한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매일 오후4시 시작하며 경로우대증 소지자는 무료이다. 예술의 전당(02-580-1300)은 24일 오후7시,25일 오후 3시·7시에 성창순·성우향(판소리)이생강(대금)이경주(가야금)등이 출연하는 ‘추석맞이 효 콘서트’를 열고,정동극장(02-773-8960)은 24일 오후 4시·7시30분에 비나리,남도민요,승무 등을 소개하는 ‘한가위 민속공연 한마당’을 마련한다.서울 필동 한국의 집(02-2267-2375)은 24∼26일 오후1시 새천년맞이 황해도굿 세마당을 펼친다. 한편 24∼26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귀순배우 김혜영이 출연하는 악극 ‘아리랑’을 앙코르 공연한다.(02)508-8555. 국립민속박물관(02-734-1341)도 23일부터 26일까지 매일 오후 3시에 지방민요,판소리,사물놀이 등 우리민속 공연을갖는다. 이순녀기자 coral@
  • 이북5도 제2건국 추진위 창립

    제2의 건국 이북5도 추진위원회 창립대회가 20일 오전 이북 5도청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기재(金杞載)행정자치부장관,이북5도지사,이북7도 중앙도민회장,서영훈(徐英勳)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비롯,이북도민 주요 인사 4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대회에서 제2의 건국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도민은 최고 결재자”

    제주도는 15일 모든 결재서류에 ‘100만 제주인’이라는 도민 결재란(견본)을 신설,시행에 들어갔다. ‘도민이야 말로 최상의 결재자’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 결재란을 만들었다. 도민 결재란은 각종 기안문과 간이결재인에 있는 도지사 결재란 바로 윗쪽에 마련됐다.시행 대상은 도 본청과 원·사업소 등 모든 부서다. ‘100만 제주인’이라는 결재자 이름과 모형은 본청 등 42개 부서로부터 의견을 들어 결정했다. 우근민(禹瑾敏) 지사는 “비록 도민들이 직접 결재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도민이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고,결재 하나 하나가도민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생각하며,도민이야말로 최고의고객이며 상전이라는 의식을 가져 업무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 이 결재란을만들었다”고 말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리뷰] MBC 특별다큐 ‘이제는 말할수 있다’

    역사에는 자랑할 부분도 많지만 감추고 싶은 내용도 많기 마련이다.더욱이한 핏줄을 나눈 민족끼리,그것도 양민을 무장군경이 학살한 비극을 드러낸다는 것은 용기에 속한다. MBC-TV가 12일 밤 11시30분 방영한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첫편 ‘제주 4·3’(김윤영 기획,이채훈PD)은 이같은 용기를 보여주었다. ANCARUM이란 통신명을 사용하는 김모씨는 “(MBC의)용기에 감사드리며 단지방송시간이 너무 늦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시청소감을 보내왔다. 제작진은 1948년 ‘5·10’단독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좌익 무장대가 관공서들을 습격하면서 시작된 이 비극의 발단과 전개과정,미국의 역할 등을 6개월의 치밀한 준비 끝에 밝혀냈다. 미군정은 당시 그날그날의 사태전개를 문서로 보고 받았고 전투기의 위력시위,구축함의 해상봉쇄,통신부대의 항공촬영 등으로 이승만 진영과 친일경찰,우익청년단의 ‘빨갱이 사냥(Red Hunt)’으로 불린 초토화작전을 거들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승만정권 수립후에는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초토화작전에 도움을주었다.결국 1년2개월여만에 제주도민 10명 중 1명꼴인 3만여명이 희생됐다. 당시 좌익세력의 무장이 허술한 상황이었고 조직 자체가 궤멸직전이었다는점을 일본에 건너간 전 남로당 간부 등의 증언을 통해 확보한 것은 돋보였다.특히 ‘꿩 잡는 게 매’라며 친일경찰을 끌어들여 학살을 주도하게 한 조병옥 경무부장의 행적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더욱이 전두환정권 때까지 유가족들이 경찰의 검속을 받아 침묵을 강요당했다는 것은 이 참극의 현재적 의미에 귀기울이게 한다. 그러나 제작진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 문제에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지난 6월 방영예정이던 이 기획이 경영진의 압력으로 연기되다가 이제야 방송을 탄 사정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4·3과 겹쳐보이는 광주항쟁을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다음주에는 동백림간첩단 조작사건의 진실이,10월3일에는 여순반란사건이 오른다. 임병선기자 bsnim@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李相龍 노동부장관

    옛 성현의 가르침 중에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상선약수(上善若水)’.자기를 낮추는 겸손함 속에서도 본성을 잃지 않으며,결코 남과 더불어 다툼이 없이 유유자적하되 능히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고,가지 못할 것이 없는 물의 덕과 도를 깨우쳐주는 말씀이 아닌가 싶다. 물을 통해 깨우쳐야 할 삶의 처세훈과 심원한 철학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으랴마는 ‘살아있다’는 자체도 역시 물이 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인간을 포함하여 살아있는 삼라만상은 곧 물이 있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이요,물의 고갈과 함께 죽음에 이르게 마련이다. 마른 잎,마른 나무처럼 생명력이 약해지는 것을 두고 ‘마른다’는 표현을쓰는 것도 이 때문이요,사람이 늙어가면서 주름살이 느는 것도 의학적으로체내의 수분이 마르는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인류의 문명이 물과 함께 시작되어 물줄기를 따라 발전하여 왔던 것도 물의 생명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껏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 왔다는 소회가 적지 않다.심지어는 ‘물쓰듯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흔하여 헤픈 것을 물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도시지역에서 상수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요,농촌에서조차 식수로 쓸 우물이 없는 형편이라 하니 그 소홀했음을 더 이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과 강원도.산이 높아 골이 깊고,골짜기마다 청정한 물이 샘솟아 이 나라국민들의 젖줄이 흐르기 시작하는 곳.이 얼마나 복받은 땅인가. 강원도 사람들이 지닌 순후한 품성과 인내로써 내일을 기다릴 줄 아는 여유도 알게 모르게 몸에 밴 물의 철학 때문이리라. 맑은 물이야말로 강원도의 소중한 자산이요,미래를 약속해줄 발전의 원천이다. ‘99강원국제관광엑스포’가 막을 올렸다.단풍맞이 관광의 계절도 다가온다.야호를 외쳐대는 산사람 소리,낙엽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소리에 끌려 수많은 손님들이 이 고장을 찾게 될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강원지역의 맑은 물을 통해 흘러넘치는 활력과 2000년대를 기다려온 도민들의 소망을 한껏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 전남도 홈페이지 ‘자기혁신운동’ 코너 인기

    ‘한페이지라도 날마다 책을 읽겠다’(자치행정과 박우육)‘험담하지 않겠다’(보건위생과 이미경) ‘약속을 지키겠다’(대외협력담당 박만호). 전남도가 시행중인 ‘공직자 자기혁신운동’이 도청의 분위기를 뒤바꿔가고 있다.직원들의 의식과 행동이 크게 달라지고 구조조정 여파로 경직됐던 분위기도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다.7일 도에 따르면 공직자들이 스스로 혁신하기 위한 다짐의 글을 지난달 20일부터 도청 제2건국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한 이후 7일 현재 796명이 다짐의 글을 올렸다. 하루 평균 50여건으로 당초 예상을 훨씬 웃도는 높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재철(金在喆) 행정부지사는 “누가 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한다”는 글을띄웠다.조보훈(趙寶勳) 정무부지사는 “남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이 되자”고 제안했다. 박재순(朴載淳) 자치행정국장은 “지시사항은 가급적 오전에 하고 실·과를 찾아가 방문결재를 하며 직원간 대화의 기회를 넓히겠다”고 다짐했다. 각 실·과에는 ‘먼저 전화받기’‘플러스 발상’‘직원 상호간 칭찬하기’‘출근하고 싶은 사무실 조성’ 등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각종 문구들이 나붙었다.물론 실천도 한다. 전남도 직장협의회(회장 최영)도 공직자 의식개혁 10대 수칙을 마련해 모든 실·과에 전파하고 있다.10대 수칙에는 ‘자신의 업무에는 1인자가 되자’‘도민을 위하는 것이라면 일을 벌인다’ ‘비방보다는 대안있는 비판을 한다’등 공직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재순국장은 “공직자 자기혁신운동을 통해 ‘실무자 자신이 바로 도지사’라는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갖고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겠다”고말했다. 광주 임송학기자
  • 경남도의원 관광성 해외연수 ‘물의’

    경남도의원들이 산적한 현안 처리를 뒤로 미룬 채 관광성 해외연수를 떠나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 26일 도의회에 따르면 농림수산위원회 소속 의원 7명이 12박13일 일정으로스위스와 프랑스 등 유럽 5개국을 방문하기 위해 지난 24일 출국했다.지난 17일에는 경제환경위 의원 8명이 유럽으로 떠났고,기획행정위 소속 10명도 23일 이집트와 그리스 등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전체 도의원 50명중 절반인 25명이 해외여행중이다. 이 때문에 도 교육청이 다음달 1일자로 도내 115개 소규모학교를 통·폐합하기 위해 지난 20일 도교육위원회 심의를 거쳐 도의회에 상정한 ‘경남도립학교 설치조례중 개정조례(안)’이 처리되지 못해 학사일정 차질은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도민들은 “학교 통·폐합등 산적한 현안과 태풍피해 복구작업이 진행중인데도 외유성 해외연수로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의열 독립투쟁(2)-강우규 의사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 가운데서 의사(義士)라고 하면 흔히 20∼30대 열혈청년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실제로 윤봉길(尹奉吉)·조명하(趙明河)의사는의거 당시 24세였고,이봉창(李奉昌)의사는 32세, 김상옥(金相玉)의사는 33세,그리고 나석주(羅錫疇)의사는 36세였다. 1924년 일황의 궁성 정문 앞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金祉燮)의사가 의거 당시 44세로 드물게 40대에 속하는 정도다. 그런데 환갑이 넘은 60대 나이로 의거를 행한 의사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지.그러나 실제 우리 의열투쟁사에는 60대 노(老)투사의 의거기록이 있다. 1919년 9월2일 오후 5시경.서울의 관문인 남대문역(현 서울역) 주위에는 일본 군경이 삼엄한 경계를 펼친 가운데 어느 고관의 도착을 기다리는 준비가부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이윽고 5시가 되자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신임 총독 일행을 태운 열차가 플랫폼으로 도착하였다.사이토 총독 내외와 일행은출영나온 내외 인사·신문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이내 귀빈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사이토가 귀빈실에서나와 입구에 마련된 쌍두마차에 오르려 하자인근 한양공원(현 남산공원)에서는 그의 부임을 축하하는 21발의 예포(禮砲)소리가 울려퍼졌다.예포가 끝나고 사이토가 마차에 오르는 순간 사이토가 탄마차 인근에 폭탄 한 발이 굉음을 울리며 작렬하였다. 마차를 호위하던 호위병을 비롯해 신문기자 등 30여명이 일순간 현장에서 고꾸라졌다.폭탄이 떨어진 곳은 사이토가 탄 마차로부터 불과 7보(步)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3·1의거 후 격앙된 조선민족의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소위 ‘문화통치’라는 허울을 내걸고 부임한 신임 총독 사이토.그가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디딘후 받은 첫번째 선물은 ‘폭탄세례’였다.이날 신임 총독이 부임하는 자리에폭탄을 던져 조선인의 기개를 만천하에 드높인 의사가 바로 강우규(姜宇奎)의사다.강 의사의 그때 나이는 64세,이미 환갑이 지난 노인이었다.일제하 숱한 의·열사 가운데 강 의사는 가장 고령에 속한다. 1855년(철종 6년) 평안남도 덕천(德川)에서 태어난 강 의사는 한일합병으로 나라가 망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모두 보고싶지 않은 사람,보고싶지 않은 물건”이라며 이듬해 봄 가솔(家率)을 이끌고 북간도로 이주하였다.만주길림성에 정착하여 신흥촌을 건설하고 동광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에 진력해온 강 의사는 1919년 국내에서 3·1의거가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만주·노령(露領)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해 5월 노령의 ‘노인동맹단’에 참가,노인단을 대표하여 조선총독을 폭살키로 작정한 강 의사는 시베리아에서 러시아인으로부터 러시아 돈 50원을주고 영국제 폭탄 한 개를 구입한 후 6월1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 배를타고 원산을 거쳐 8월5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국내로 들어와 안국동 김종호(金鍾鎬)의 집에 머물면서 최자남(崔子南)·허형(許炯) 등과 거사 계획을 세운 강 의사는 마침 하세가와(長谷川好道)에 이어 사이토가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남대문역에서 그를 처단키로 결심했던 것이다. 9월2일 의거 당일 강 의사는 폭탄을 명주수건에 싸 허리춤에 차고 그 위에저고리와 두루마기를 걸쳐 입었다.또 시골영감 티를 내기위해 파나마 모자에 가죽신을 신고 양손에는 양산과 수건을 하나씩 들고 남대문역으로 향했다.이런 강 의사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역 구내 다방에서 군중 틈에 끼여 기회를 엿보고 있던 강 의사는 사이토가 귀빈실에서 나와 마차에 오르려하자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강 의사가 던진 폭탄은 투탄거리가 불과 6∼7m 정도에 그쳐 사이토가 탄 마차에는 미치지 못한데다 폭탄의위력이 약해 사이토를 처단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이토는 폭탄의 파편이 혁대를 스치는 정도에 불과했고 같이 부임한 정무총감 미즈노(水野鍊太郞)는 경미한 부상을 입는 데 그쳤다.그러나 성과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이 사건으로 현장에서 총 37명의 부상자를 냈는데 이 가운데 스에히로(末弘又二郞) 경기도 경시(警視)는 파편이 왼쪽 엉덩이를 관통하는 상처를 입어 9일 후인 9월11일 사망하였다.또 ‘대판조일(大阪朝日)신문’의 다치바나(橘)특파원은 파편이 복부를 뚫고 들어가 11월1일 사망하였으며야마구치(山口諫男)특파원은 오른쪽 어깨에 중상을 입고 결국 팔을 절단 하였다. 한편 사건 직후 일경·헌병들은 남대문 일대에 비상령을 선포하고 범인 검거에 혈안이 돼 수색을 벌였다.그러나 60대 노인인 강 의사는 별다른 검문도받지 않은 채 무난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며칠간의 수소문 끝에 투탄자가 노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일경은 의거 보름 만인 9월17일 가회동 하숙집에서강 의사를 체포했다. 강 의사를 체포한 사람은 조선인 경찰 가운데 애국지사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김태석(金泰錫)이었다. 강 의사는 재판 과정에서도 의연함과 당당한 기개를 잃지 않아 일본인 재판장이 ‘영감님’ ‘강선생’으로 호칭하였다고한다.고등법원의 항소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자 강 의사는 면회온 장남중건(重健·작고)에게 “사람은 한번 나면 죽는 것이다.네가 나의 사형을 슬퍼한다면 내 아들이 아니다.나는 내가 우리 민족을 위하여 아무 일도 이루어놓지 못하였음을 슬퍼할 뿐이다.내가 이때까지 자나깨나 잊지 못하는 것은우리나라 청년들의 교육이다.내가 이번에 죽어서 우리 청년들의 가슴에 어떠한 감상과 인상을 주게 된다면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없겠다…”고 하고는그 뜻을 전국 13도의 각 학교와 교회에 알릴 것을 부탁하였다. 노 투사는 최후까지 조국을 걱정하였다.1년간의 옥고를 치른 강 의사는 이듬해 11월29일 오전 9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그때 나이 65세였다. 교수형이 집행되기 직전 형 집행자가 “유언이 없느냐”고 묻자 대답 대신사세시(辭世詩) 한 편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사형대에 홀로 서니(斷頭臺上) 춘풍이 감도는구나(猶在春風)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요(豈無感想) 강 의사의 유해는 처음에는 현 은평구 신사동 소재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54년 수유리로 이장됐다가 67년 다시 국립묘지(애국지사 묘역)로 이장됐다.1962년 정부는 강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하였다.강 의사의 의거현장인 서울역 역사(驛舍) 앞에는 강 의사의 의거를 알리는 기념표지석이 오가는 행인들의 눈길도 끌지 못한 채 쓸쓸히 서 있다. 한편 강 의사의 직계 후손은 대가 끊긴 상태다.장남 중건씨는 연해주에서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친손녀 영재(榮才)씨도 수년 전 작고했다.영재씨의부군은 도쿄제대 출신의 농학자로 수원농사시험장장을 지낸 최병석씨.현재강 의사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는 조카 항렬의 강영복(姜榮福·72·서울 거주)씨로 강씨가 강 의사의 훈장과 훈장증을 보관하고 있다.그러나 직계 후손이 아니어서 연금수령은 못하고 있다.강 의사의 제사는 평안남도 중앙도민회에서 매년 순국일인 11월29일 지내고 있다.변변한 일대기 한 권도 없고 그흔한 추모사업회,기념사업회 하나 없는 것은 대가 끊겨 돌보는 이가 없는 탓이다.강 의사가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고적(孤寂)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김삼웅칼럼] 병폐심각한 집단이기주의

    제 논에 물을 대는 것은 인간의 소박한 욕망이다.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배분하는 것은 이성의 성장이다.원시수렵이 공동수렵으로,공동경작이 개인소유로 발전한 것은 인류진보의 과정이다. 자본주의 발달을 막스 베버는 금욕주의정신에서 본 반면에 브렌타노는 인간욕망의 개방측면에서 분석하고, 자연계의 생존원리를 다윈은 약육강식·적자생존의 법칙을 주장한 데 반해 크로포토킨은 상호부조의 법칙을 제시했다. 사회현상에 대한 견해도 상반되는 논리가 가능하다.사회주의체제가 왕성할때 라스키는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는 상극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항상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이산설(離散設)을 펴고 소로킨은 결국 두 체제는 공업화와 복지를 추구하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닮아간다는 수렴설(收斂設)을주장했다.여기에 틴 버거는 동방국가들의 자유화와 서방국가들의 사회화로두 체제는 공통점으로 접근하게 된다고 가세했다.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무색하게 사회주의체제는 붕괴되었다. 집단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린다.축협중앙회장이 축협 농협 인삼협 등 세협동조합중앙회를 통합하는 농업인협동조합법 제정에 반대하며 국회농림수산위에서 칼로 자해한 사건은 집단이기주의 발로의 표본적 현상이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온갖 분야에서 제 몫찾기가 치열하다.말이 좋아 ‘제몫찾기’이지 완전히 집단이기주의 현상이다.공익보다는 사익, 배째라’식의 억지 주장이 판을 친다. 양약과 한약의 해묵은 분쟁,그린벨트해제를 둘러싸고 토론장을 난장판으로만든 이해당사자들,교육개혁문제로 벌어진 교원들의 갈등,‘BK21(두뇌한국21)’과 관련한 교수들의 집단시위,범죄혐의 국회의원을 보호하고자 연거푸 소집한 방탄국회,자동차를 생산하면 할수록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이를 고집하는 지역이기주의 등 그야말로 집단의 힘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토론과 적법절차가 무시되고 공익과 사익이 뒤바뀌고 집단논리가 국가정책에 우선한다면 민주발전과 선진화는 요원하다.더욱이 여론을 형성하고 국론을 모아야할 언론과 국회까지 공익보다는 자사이기주의와 정파이기주의에 빠져여론과 국론형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익단체들의 집단행동과 로비·압력에 밀려 국회의 개혁입법이 ‘뿔잘린사슴꼴’이 되기 일쑤이다.교육개혁의 상징인 3대교육법안의 핵심조항이 대부분 거세된 상태로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나 통합방송법,인권법,부패방지법,장애인직업재활법,농산물가격안정법 등 개혁입법이 이익단체들의 줄다리기와 로비 그리고 정파이기주의에 얽혀 제자리 걸음의 상태이다.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법안이나 행정조례 등에 반영시키려 하는것은 당연하다.이는 다원사회의 장점이고 특징이다.그러나 이경우 토론과 과정이 투명하고 사익보다 공익이 우선하여 입법된다는 전제가 따른다. 우리사회는 이러한 민주주의와 다원사회의 기본룰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독재정권 시대에는 물리력과 정치공작을 통해 쉽게 처리되고 조정된 것도민주화와 함께 ‘목소리 큰’사람(집단)들의 집단이기주의와 로비가 새로운갈등과 대립양상으로 전개된다. 제 논에 물대기 차원을 넘어 저수지까지 차지하겠다고 덤비는 집단이기주의 현상을 광정하지 않고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공동체의 질서 유지도 어려워진다. 일차적으로는 검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위상정립이 시급하고 언론과 국회의순기능 회복이 중요하다.풀어말하면 검찰이 국법질서에 추상같은 권위를 유지하고,언론이 이해대립의 사안에 시비곡직을 제대로 가리고 국회가 로비와파당심리를 극복하여 법안을 심사하고 통과시킨다면 집단주의가 설땅이 없게 된다. 누군가 말했다. “(권력의)가장 좋은 배합(配合)은 강력과 자비,가장 나쁜배합은 약체와 투쟁”이라고.50년만의 정권교체로 집권한 국민의 정부가 내세우는 ‘기본이 바로서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과 자비’를 통해 집단이기주의를 광정하는 일이다.
  • 국립공원 케이블카 논란 재연

    지리산과 한라산 등 국립공원내 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환경단체간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허경만(許京萬) 전남지사는 최근 환경부를 방문,지난 97년 건의한 지리산산동온천지구∼성삼재∼노고단 사이 4.8㎞ 구간의 케이블카 설치계획을 조속히 승인해주도록 다시 요청했다. 허지사는 88년 구례와 전북 남원을 연결하는 연장 23㎞의 지리산 횡단도로개통으로 연간 차량 40만대,관광객 400만명이 이곳을 찾아 매연 등 공해가심각하며 케이블카 설치로 환경오염을 방지하면서 급격히 늘어나는 관광객도 수용할수 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광주·전남 환경운동연합(공동의장 金良玉)은 성명을 발표,전남도 등 자치단체는 지리산 개발행위를 중단하고,환경부는 케이블카 설치를 승인하지 말고 생태계의 보고인 지리산을 지속적으로관리·보전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한라산 훼손의 주원인이 등반객들이 흙을 밟는 답압(踏壓)때문이라는 전문가 진단에 따라 한라산 보호를 위한 케이블카 설치 타당성 용역을7억원의 예산으로 오는 9월 발주,내년 9월까지 마칠 계획이다.용역 결과에따라 노선과 기종,시공방법 등을 선정할 방침이다.이에 대해 범도민회와 환경연합 등 일부 단체들은 케이블카 설치 자체가 한라산을 훼손하기 때문에다른 보호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는 도봉산 등산로 보호와 수입 증대를 위해 도봉1동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의 자운봉(해발 739m) 만장봉(해발 718m)까지 2.3㎞의 케이블카 설치를 지난 96년 추진했으나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등환경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유보했다. 경남 남해군도 지난 94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상주해수욕장에서 금산 정상까지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했으나 지역 환경단체와 산악연맹 등의 반대로 계획을 취소했었다. 한편 환경부는 올초부터 오는 10월까지 실시하는 전국 국립공원 개발 타당성 조사용역 결과를 본 뒤 최종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 전국종합 cbchoi@
  • [우리는 공무원가족](3)아버지·자녀 全光曄·容準·賢貞씨

    “강직한 공무원 아버지가 어렵기만 했는데 이제는 자랑스럽습니다” 남매인 전용준(全容準·31·원주시청 전산직 8급),현정(賢貞·29·강원도가축위생시험소 남부지서 연구사)씨가 공직에 들어와 처음 느낀 것은 강원도청 지역계획과장인 아버지 전광엽(全光曄·57)씨에 대한 자긍심이다. 어린시절에는 무뚝뚝하고 원칙을 내세우는 아버지에게 거리감도 느꼈지만,그 아버지 영향으로 결국 남매가 공무원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나라경제가 어려울 때 전문직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것은 행운이지만 ‘아버지만큼만 공직생활을 하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을 때면 뿌듯해진다. 맏아들 용준씨는 대학을 마치고 잠시 개인회사에서 일하다가 정보처리기사1급자격을 획득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지난해 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개인회사의 이익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시민들의 정보화업무를 위해 일하는 요즘이 훨씬 보람있고 행복하다. 수의사인 딸 현정씨도 마찬가지다.같은 업무지만 자신의 일이 다수의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기쁘다. 아버지는 원주시청 말단공무원으로 시작,공직생활 34년동안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일해왔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쫓아다녔던 화전민 이주사업에서 동해안 해수욕장 개발에 이르기까지 강원도청의 일선 업무는 그의 손끝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공직생활을 2년여 남긴 현재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선행 도민 대상제’를 만든 것.올해로 3년째 맞는 이 상은 강원도민으로 자긍심을느끼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함께 만나도 공직에 관한 얘기뿐이다.풋내기 공무원인 자녀들에게아버지가 당부하는 말은 늘 똑같다.‘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거창한 공무원보다 깨끗하게 성심으로 일하는 개미같은 공직자가 돼라’는 것.청춘을 공직에 바친 아버지의 충고에 남매는 고개를 끄덕인다. 춘천 조한종기자 ha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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