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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토바이 핵심기술 中에 빼돌려

    오토바이의 핵심 기술을 중국 경쟁사로 빼돌린 국내 오토바이업체 전 대표이사 등 15명이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공조 수사로 붙잡혔다. 경남지방경찰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대는 7일 오토바이 생산업체 A사의 전신인 H사의 전 대표이사 이모(59)씨와 A사 기술연구소 전 소장 허모(48)씨, A사 전 팀장 이모(46)씨 등 3명에 대해 부정 경쟁 방지 및 영업 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A사가 중국 오토바이업체 B사와 합작 설립한 C사의 전 총경리(대표이사)인 유모(69)씨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A사의 전·현직 직원 11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또 H·A사 기술고문으로 일하다 오토바이 엔진 설계 도면 원본 등을 갖고 이씨와 유씨가 설립한 회사의 기술고문으로 이직한 일본인 N(68)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이씨와 유씨는 H사가 33년에 걸쳐 531억원을 들여 개발한 오토바이 11개 기종의 엔진 제작 도면 등을 2007년 말부터 빼내 이 가운데 250㏄ 등 2개 기종 엔진의 제조 기술을 중국 B사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신재생에너지 ‘명암’] “방조제 건설 생태계 파괴 우려” vs “지역경제 살릴까 기대”

    [신재생에너지 ‘명암’] “방조제 건설 생태계 파괴 우려” vs “지역경제 살릴까 기대”

    5일 오후 2시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분오포구 갯벌. 물이 다 빠져나간 곳곳이 초여름의 햇살을 받아 속살을 드러내 보이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방대한 갯벌이 드러난 이곳은 정부가 국내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를 지으려는 예정지다. 3조 9000억원을 들여 강화도와 영종도, 장봉도 등을 잇는 방조제 18.3㎞를 쌓아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조력발전소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방조제 건설로 생기는 공간은 여의도 면적의 20배. 이곳에는 새우와 꽃게 등 서해의 대표적인 수산물과 천연기념물 저어새 등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인천만 조력발전 건설과 관련, 이달 중 3차 공유수면매립 기본계획을 심의한다. 그러나 건설은 여러 난관에 부딪혀 있다. 발전소 건설 반대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송영길 인천시장은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군 작전에 제약이 있다는 이유로, 농림수산식품부는 어족자원 관리 차원에서 발전소 건설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제출해 놓은 상태여서 앞날이 순탄치 않다. 또한 사전환경성 검토가 이미 끝난 강화 조력발전을 지켜보면서 환경 훼손 정도가 예상보다 크다고 판단한 어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반기는 주민들도 있다. 강화군 화도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어민들이야 반대하지만, 외지인들도 많이 찾아오게 되고,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 같아서 적극 찬성한다.”면서도 반대하는 이웃의 눈총을 살까 두렵다며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택시기사 김모씨도 “주민들 대부분은 찬성하고 심지어 일부 어민과 섬 주민들도 더러 찬성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형제처럼 지내온 이들이라 싸움으로 번질까 봐 서로 쉬쉬한다.”고 귀띔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예정대로 2017년 발전소가 가동되면 한해 2414G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인천시 가정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60%에 해당하는 양이다. 화력발전소에서 쓰는 석유 350만 배럴을 대체할 수 있어 연간 100만t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경우 설비 이용률은 태양광 15%, 풍력 23%에 견줘 조력이 24.8%로 가장 높지만 당장 생계 대책을 세워야 하는 어민들과는 관계없는 얘기다. 7월부터 가동되는 시화호 조력발전과는 경우가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축조된 방조제에 수질 개선 차원에서 발전 설비를 세운 시화호와 달리 인천만에선 발전소 건립을 위해 방조제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최중기 인하대 해양학과 교수는 “정부의 사전환경조사는 방조제 건설로 인한 퇴적층과 침식층에 대한 검토가 빠져 있다. 따라서 정부가 예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환경파괴가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경 인천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습지를 파괴하면서 발전소를 건립하는 것에 신재생에너지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어불성설”이라면서 “신재생에너지라면 에너지를 얻는 과정 역시 친환경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 동안 어업을 해온 박용오(50) 경인북부 어민대책위원장은 “아무리 과학적으로 검토를 했어도 자연은 예측하기 어렵다. 방조제가 건설되면 자연환경은 분명히 변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반대는 아니다. 정부와 대화와 소통이 이뤄진다면 적극 도울 용의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인천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당뇨병과 신부전

    뜬금없이 신부전 얘기를 들춥니다. 그렇게 여기기 쉽지만, 만성 신부전증은 환자 2명 중 1명이 당뇨병이 원인입니다. 이 정도면 당뇨병이야말로 만성 신부전증의 ‘파이프 라인’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뇨병 환자가 혈당을 조절하지 못하면 가장 먼저 핏속의 고혈당이 서서히 혈관을 망가뜨리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인체에서 미세 혈관이 가장 많은 콩팥이 이 때문에 손상을 입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지요. 콩팥은 일단 손상을 입으면 핏속의 알부민을 자꾸 흘려보내게 되고, 이 때문에 소변에 알부민이 섞여나오게 됩니다. 이걸 ‘미세알부민뇨’라고 합니다. 의사들은 바로 이 알부민뇨를 보고 신부전의 시작 여부를 알아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의사들이 허투루 말하는 것 같은 심혈관질환의 예측도 사실은 알부민뇨로 콩팥의 손상을 확인한 결과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단백뇨는 알부민뇨의 다음 단계입니다. 알부민뇨가 심해지면 단백뇨로 발전하고, 이걸 방치하면 얼굴이 푸석거리고 손발이 붓는 부종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흔히 “저 이는 콩팥이 안 좋아 잘 붓는다.”고 말하곤 하는 부종 증상은 콩팥의 이상이 상당히 진행된 단계에 해당됩니다. 다음은 뻔합니다. 고혈압에 동맥경화가 생기고 결국 치명적인 신부전 말기의 수렁에 빠져들게 됩니다. 뜬금없는 결과가 아니라 정해진 수순입니다. 질환의 고통을 통증과 같은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통증은 질환이 주는 수많은 고통의 일부일 뿐입니다. 만성 신부전으로 신장 투석을 받거나 이식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답답하겠습니까. 그래서 예방이 상책이라고들 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jeshim@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아나키즘’ 운동가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아나키즘’ 운동가

    1200명이나 되는 농노와 드넓은 소작지를 소유한 러시아 귀족의 아들. 황제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근위학교를 수석 졸업하고도 안락한 궁정 생활 대신 시베리아 장교 지원. 시베리아 지형 탐사를 통해 지리학자로 명성을 얻지만 ‘제국지리학회’ 사무관직 거절. 막대한 상속을 포기하고 혁명운동에 투신. 반체제 운동 주동자로 지목 돼 투옥. 2년 후 탈옥. 그리고 반세기 동안 이어지는 투옥과 추방.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귀국. 그러나 볼셰비키의 아나키즘 탄압. 심장질환과 폐렴으로 사망. 10월 혁명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장례식…. 이것이 아나키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의 간략한 프로필이다. 이 정도면 그를 소재로 드라마 한 편을 찍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고뇌에 찬 지식인의 자의식을 보여준 적도 없고 혁명 투사의 화약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크로포트킨의 삶에는 골방 대신 시베리아의 벌판과 눈 덮인 스위스의 산들이 있다. 값싼 봉투를 붙이며 격론을 벌이는 이론가가 있다. 그는 비밀경찰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유럽을 누비고 다녔다. 유산을 포기할 때도, 되풀이되는 추방과 고된 망명 생활에 관해서도 괴로움을 토로하는 법이 없다. ●지식인 운동가의 교만함이 혁명을 왜곡한다 크로포트킨은 솔직 담백했다. 그의 삶의 모든 것은 공공연하게 말해지고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공공연함’, 이것이야말로 크로포트킨이 혁명가로서 보여준 최고의 미덕이었다. 크로포트킨이 보기에 사회주의 지식인 운동가들은 공공연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농민이나 노동자들보다 더 안다는 교만함. 민중들은 무식해서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판단할 수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오만함. 그런 운동가들은 현실을 계산하고 전술을 찾았다.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침묵하고, 해야 할 일을 미뤘다. 심지어 전술을 위해 황제와 귀족 편에 서서 농민과 노동자의 봉기를 탄압하기도 했다. 지식인 운동가들의 계몽적 태도와 이로 인한 지도부와 민중 사이의 괴리. 이 사이에서 혁명은 왜곡되고 비밀주의로 물들었다. 크로포트킨은 이런 괴리를 거부한다. 현실이 어려운가? 그럼 공공연히 말하라. 그럼 답은 온다. 해야 하는가? 그럼 공공연히 하라. 그럼 된다. 이 간단한 원칙이 그의 삶 전부다. ●아나키스트, 생각한 대로 행동하라 1878년 경 유럽 전역에서 왕에 대한 암살이 네 차례나 시도되었다. 유럽 정부들은 이 음모의 주동자들을 스위스가 숨겨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스위스는 아나키즘 운동의 중심인 쥐라연합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쥐라연합의 많은 지도자들이 추방당하고 망명 생활에 오르게 됐다. 결국 기관지 편집 일이 크로포트킨에게 맡겨졌다. 이제 막 러시아 감옥에서 탈출한 망명자 크로포트킨,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듀마르트리, 제네바 출신의 내성적인 사나이 헤르치히. 이 세 사람은 1879년 제네바에서 ‘반란자’를 창간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인쇄소에 압력을 넣었다. “정부에서 일을 받지 못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반란자’를 인쇄해줄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매우 실망하고 제네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듀마르트리는 오히려 열정과 희망에 불타 있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3개월 동안 신용담보로 인쇄기를 사면 됩니다. 3개월이면 기계 값을 지불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돈이라곤 겨우 200~300프랑밖에 없지 않소?” 나는 반대했다. “돈이란 우스운 겁니다.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우선 기계를 주문해서 다음 호를 내면 돈이 모일 겁니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우리는 기계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호를 우리의 ‘쥐라 인쇄소’에서 찍고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팸플릿을 발행했다. 우리 모두가 직접 인쇄했다. 과연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동전과 소액의 은화였지만 어쨌든 돈이 모였다.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이 없다. 이것이 크로포트킨이 좌절한 이유였다. 하지만 듀마르트리는 어땠는가. 그는 말한다. 활동을 해야 돈이 생긴다. 그러니 활동을 하자. ‘반란자’는 그렇게 21년간 발행되었다. ‘이론가’ 크로포트킨에게 ‘못 배운 노동자’들은 언제나 배움을 통해 삶의 길을 열어주는 동지였다. 어려움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과도한 비장함으로 포장할 뿐아니라 너무도 쉽게 좌절했다. 노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판단했으며, 꾸밈없고 단순하게 문제를 받아들였다. 혁명가를 자청하는 지식인들이 문제를 분석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문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갔다.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 사이에 어떠한 간극도 없음! 크로포트킨은 이 간극을 없애는 것이 혁명의 출발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길을 간다. 막대한 유산 상속, 위로부터의 개혁을 위한 관료로서의 삶, 학계의 권위 있는 지도자로서 얻게 될 명예와 힘. 그는 이 모든 것을 버린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가진 간극 없는 삶을 배우기 위해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의 삶부터 바꿔라! 이것이 그가 살아낸 아나키즘이었다. ●레닌에게 물었다 “우리란 누굴 말하는 겁니까?” 러시아 2월 혁명. 크로포트킨은 40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러시아로 돌아온다. 이어진 10월 혁명. 레닌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는 이 혁명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이어간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다. 그래도 호랑이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법. 레닌은 1919년 크로포트킨을 만난다. 레닌은 크로포트킨의 ‘프랑스혁명사’를 극찬하며, 이 책을 인쇄해 전국에 배포하고 싶다 말한다. 크로포트킨은 그 책을 정부인쇄소가 아닌 소비조합과 같은 곳에서 출판할 조건을 내건다. 레닌, “희망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우리는 전적으로 편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크로포트킨, “우리란 누굴 말하는 겁니까? 정부 말인가요?” 허를 찔린 레닌은 대답을 얼버무린다. 레닌은 여전히 혁명을 도달해야 할 무엇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혁명의 중간 단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크로포트킨의 생각은 달랐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상호부조·相互扶助)” 이것은 도달해야 할 이념이 아니라 자연 법칙이고,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일구는 현재적 조건이었다. 제도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 의도가 아무리 민주적일지라도 지배 기구는 모두 악”이다. 국가를 위시한 온갖 사회적 제도들은 만인을 노예 상태로 묶어 둔다. 레닌이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결국은 하나의 제도로 새로운 노예 상태를 만들어 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로 인해 가려진 인간 본성, 그 상호부조의 본성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혁명의 지점은 여기에 있었다. 혁명의 지도자든 농민이든 노동자든 바로 그 자신의 삶에서 이 본성을 찾아내고 구현해야 한다. 때문에 크로포트킨에게 노동자를 ‘위한’ 활동은 없다. 혁명은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구원의 주체와 대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크로포트킨은 직접 노동자가 ‘되는’ 활동을 했다. 그는 농민과 노동자들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배운 만큼 글로 써 내려갔다. 배움을 실천하는 삶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실천. 이 과정을 통해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 사상의 이론가가 되었다. 크로포트킨이 최후에 쓰고자 했던 책은 ‘윤리학’이었다. 이것은 혁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크로포트킨의 질문은 ‘노동자들을 위한 세상이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 노동자가 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만이 혁명가였다. 폭약 냄새와 무질서, 혹은 대규모 시위로 혁명을 떠올리는 우리들 앞에, 크로포트킨은 이런 혁명가의 초상으로 우뚝 서 있다. 신근영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저축銀 비리 공방 가열

    저축은행 비리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일 전·현직 정권 책임론을 주장하며 공세를 주고받았다. 한편으로는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이었던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저축은행 칼날’이 정치권을 겨냥할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을 집중 공격했다. 민주당 진상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의원을 전 정권 책임론의 핵심 인물로 규정, 민주당의 대여(對與) 투쟁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명규 원내수석 부대표는 “박지원 의원은 지난 4월 상임위에서 감사원장이 개인 기업을 왜 감사하느냐고 따졌다. 상임위에서 질책할 정도면 누군가의 부탁을 받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명진 의원은 “박 의원은 과거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고, 이번에도 보해저축은행 구명로비 의혹을 받고 있다. 진상조사 위원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반면 민주당은 금융권의 낙하산 인사가 저축은행 사태를 불러왔다고 공격했다. 현 정권의 ‘금융계 전관예우’ 문제가 관치금융을 초래했다는 점을 강조, 여당의 전 정권 책임론에 맞불을 놨다. 민주당 정책위는 “이명박 정부와 관련된 인사 53명이 현 정부에서 금융기관 임원이나 사외이사로 진출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등 고려대 출신 9명,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인수위·대선캠프 출신 8명, 소망교회 출신인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 등 모두 24명(중복 1명)이 MB정부 낙하산 인사로 임명됐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데스크 시각] 걷기열풍과 지자체가 해야 할 일/최병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걷기열풍과 지자체가 해야 할 일/최병규 사회2부 차장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운 좋게도 미국 연수의 호사를 누린 지 두 달째 되던 어느 토요일. 미주리주립대학이 있는 작은 시골 도시 컬럼비아를 6개월 먼저 경험하고 있던 모 신문사 선배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자전거 타러 가지 않을래? 케이티 트레일(Katy Trail)이라고 멀지 않은 곳이 있는데….” 트레일이라니. 그저 ‘산책로’로만 알고 있던 생경한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그냥 길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따라가는 기나긴 길’이란다. 뜻을 곰곰이 뜯어 보니, 목적과 수단이 분명하고 또 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그 선배를 따라나선 자전거 하이킹은 마을을 끼고 도는 미주리강을 따라 네 시간 이상 이어졌다. 주변 이야기를 주섬주섬 모아 봤다. 이 자전거 길의 길이는 무려 365㎞나 됐다. 서쪽 캔자스시티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시작해 동쪽 세인트루이스 직전까지 굽이굽이 이어졌다. 과거엔 철길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86년 10월 클린턴이라는 마을에서 마지막 열차를 떠나 보낸 미국인들은 이후 철길을 자전거 길이자 도보 길로, 또 승마 길로 바꿔놓았고, 주립공원으로 지정했다. 10여년 전 생소했던 보통명사 트레일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하고도 익숙한 말이 됐다. 제주 올레길과 북한산·지리산 둘레길 등 주로 걷기 코스를 아우르는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엔 친환경 탐방 코스를 자랑한다는 누리길도 뛰어들었다. 지역에 따라 이름도 톡톡 튄다. 강원 바우길을 비롯해 변산 마실길, 고창 질마재길, 영덕 블루로드, 무등산 옛길, 안동의 퇴계오솔길, 강화 나들길, 남해 바래길, 군산 구불길 등 일일이 입에 올리기도 숨이 벅찰 정도다. 이 정도면 ‘미주리-캔자스-텍사스’(MKT)를 약칭했다는 미주리의 케이티 트레일이란 이름은 우리나라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어쨌든 걷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경향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이 트레일 덕에 몸과 발 모두 호강하고 있는 셈이다. 몇년 전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걷기에 대한 욕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걷기 열풍’은 주민들의 건강 욕구와 수요를 기꺼이 감당하려는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개발 노력이 보태지면서 ‘태풍급’으로 바뀌었다. 혹시라도 숨어 있을지 모르는 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여부는 일단 제쳐두자. 지난해 9월 개통된 북한산 둘레길 확장에만 올해 92억원의 예산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는 왜 걸으려 하는 것일까. 걸그룹과 립싱크가 점령한 TV에서 이른바 ‘나가수’가 진정한 노래를 갈망하는 노래 팬들의 한숨과 눈물을 짜내는 것처럼, 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 사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행케 하는 무대다. 2주일 전, 엿새 동안 마주한 제주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은 12년 만에 이뤄진 트레일과의 재회였다. 하루 평균 15~16㎞의 길을 걸었으니, 모두 90㎞ 안팎의 길을 따라간 셈이다. 걷기 좋은 계절, 평일이었지만 길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치 순례길에 떠밀려 온 것 같았다.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마치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당초 그렇게 시작된 길은 아니었다. 걷는 이도 그렇지만, 특히 길을 만드는 주체도 마찬가지다. 제주 올레길의 성공 이후 각 지자체들은 ‘길은 돈이 된다.’는 명제에 자극받아 너도나도 트레일 만들기에 나섰다. 넉넉지 못한 살림을 펴보려는 자구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길은 다니지 않으면 금세 잡초로 덮여 사라진다는 점. 길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야 길이다. ‘구불길’이든, ‘바래길’이든, 길을 만들 때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은은한 화롯불처럼 오래가는 길이 되어야 한다. 방법이야 그들의 몫이다. 불씨는 재 속에 묻어야 오히려 꺼지지 않는 법이다. cbk91065@seoul.co.kr
  • 휠체어 탄 장도영 당시 육참총장 5·16을 증언하다

    휠체어 탄 장도영 당시 육참총장 5·16을 증언하다

    1961년 5·16 당시 육군 참모총장으로 있다가 곧바로 군부 세력에 의해 사실상 미국으로 쫓겨 간 장도영(89)씨는 31일(현지시간) “(박정희 전 대통령 등에 대해) 서운한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98년 국내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끝으로 지난 13년간 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끊은 채 지내온 장씨는 이날 미국 플로리다 윈더미어 자택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백형숙(82)씨와 살고 있는 장씨는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다. 장씨는 얼마 전 맞이한 5·16 50주년과 관련, 박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등 자신을 미국으로 추방한 군부 세력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군부 세력의 쿠데타를 저지하지 않은 것과 관련, “다 넘어갔어. 어떻게 할 수 없었어.”라고 말했다. 군 최고지휘관으로 있었지만 이미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5·16 세력의 군사행동을 막는 것은 당시 불가항력이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장씨는 5·16 당시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아주 시끄러워져서 내가 마음이 편치 않아요.”라고 답했다. 5·16으로 정국이 하루아침에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자신이 참모총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으로 읽힌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씨의 부인 백씨는 장씨가 숙청된 것은 권력욕을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남편은 혁명 공약대로 하루속히 민정으로 이양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박정희씨가 의자를 걷어차는 등 서로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서 쫓겨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백씨는 “당시 미국 사람들이 5·16 세력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왜 때려 부수지 않느냐고 남편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면서 “하지만 동족끼리 피를 흘린 과거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 사진 동영상 윈더미어(플로리다)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장도영, “다 넘어갔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장도영, “다 넘어갔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1961년 5·16 당시 육군 참모총장으로 있다가 곧바로 군부 세력에 의해 사실상 미국으로 쫓겨 간 장도영(89)씨는 31일(현지시간) “(박정희 전 대통령 등에 대해) 서운한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98년 국내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끝으로 지난 13년간 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끊은 채 지내온 장씨는 이날 미국 플로리다 윈더미어 자택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백형숙(82)씨와 살고 있는 장씨는 파키슨병과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다.  장씨는 얼마 전 맞이한 5·16 50주년과 관련, 박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등 자신을 미국으로 추방한 군부 세력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군부 세력의 쿠데타를 저지하지 않은 것과 관련, “다 넘어갔어. 어떻게 할 수 없었어.”라고 말했다. 군 최고지휘관으로 있었지만 이미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5·16 세력의 군사행동을 막는 것은 당시 불가항력이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장씨는 5·16 당시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아주 시끄러워져서 내가 마음이 편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5·16으로 정국이 하루아침에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자신이 참모총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으로 읽힌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씨의 부인 백씨는 장씨가 숙청된 것은 권력욕을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남편은 혁명 공약대로 하루속히 민정으로 이양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장기 집권을 계획한 박정희씨가 의자를 걷어차는 등 서로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서 쫓겨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백씨는 “당시 미국 사람들이 5·16 세력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왜 때려 부수지 않느냐고 남편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면서 “하지만 동족끼리 피를 흘린 과거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윈더미어(플로리다)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펴낸 소설가 이세기

    [저자와 차 한 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펴낸 소설가 이세기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1919년 발표된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김도산 감독)부터 2007년 영화 ‘추격자’(감독·각본 나홍진)까지 다양한 의미로 한국영화사를 장식한 그 많은 영화들을 책 한 권에 소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마로니에북스 펴냄)은 영화인들조차 엄두를 못 냈던 일을 깔끔하게 해냈다. 한 세기를 관통하는 한국영화 대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저자 이세기씨를 만났다. 어떻게 1001편을 선정했는지부터 물었다. “4년 전 집필이 결정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동안 만들어진 한국영화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검색 결과 2002년 말까지 만들어진 영화가 6402편, 여기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제작된 영화 360여편을 더해서 약 6800편, 그 중에서 1001편을 골라야 한다는 답이 나왔지요.” ●1919년 첫 영화부터 2007년作까지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가 다음 숙제였다. 나름대로 기준을 정했다. 우선 해마다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제 수상작 위주로 목록을 짰다.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영화’나 영화진흥공사의 ‘좋은 영화’ 선정 작품, 대종상·청룡상·백상예술대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작을 연도별로 모았다. 여기에 각종 해외 영화제 수상작과 영화사전에 나와 있는 감독과 배우의 데뷔작 및 대표작을 추가하고 평론가들의 저서에서 비중 있게 거론된 작품들을 보탰다. 그것도 모자라 영화에 관심 있는 문화예술인 100명을 선정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영화’ ‘일반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영화’를 물었다. 선정작업과 자료조사에만 2년 가까이 소요됐다. ●국내외 수상작·원로 추천작 등 기준 이씨는 “개인의 취향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하기 위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선정했다.”면서 “결과적으로 책에 소개된 영화들은 문화예술계 원로들이 추천한 영화인 셈”이라고 말했다. 원고지 분량만 1만 1000장. 언론인 출신의 소설가인 이씨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가장 길다. 영상자료원에서 보지 못했던 옛날 영화들을 틈틈이 봐 가면서 바깥 출입도 되도록 삼가고 2년 가까이 정말 공을 들였다고 했다.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니까 이 정도면 대하소설도 너끈히 쓰겠다는 자신감까지 생기더란다. ●“바깥출입도 자제… 알기 쉽게 썼어요” “글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평이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본격적인 비평은 평론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신문의 영화리뷰를 근거로 저의 안목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수준으로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김기영, 신상옥, 이만희, 유현목 감독의 흑백 작품을 좋아한다는 그는 “문학인으로 예술 다방면에 관심이 있지만 영화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누구나와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책이 한국영화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두시간 십분’으로 당선돼 등단한 저자는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1999년까지 재직했으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차범석 연극재단 이사와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예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창작집 ‘바람과 놀며’ ‘그 다음은 침묵’과 김옥길 평전 ‘자유와 날개’, 한국 명인 100인을 소개한 ‘빛을 가꾸는 에피큐리언’, 강선영 평전 ‘여유와 금도의 춤’ 등이 있다.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5000억대 보물선? 군산 앞바다 ‘출렁’

    5000억대 보물선? 군산 앞바다 ‘출렁’

    ‘동화 속에나 나오던 보물선 이야기가 군산 앞바다를 출렁이게 한다.’ 수십년 동안 전북 군산 지역에 소문으로 떠돌던 보물선에 대한 탐사가 민간 탐사업체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이 보물선이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7월 2일 금괴 10t(시가 5000억원)을 싣고 선유도 인근을 항해하다 미 공군기의 폭격에 침몰된 일본의 시마마루 12호(253t)를 말한다. 얼마 전 이 선박으로 추정되는 침몰선에서 3t에 이르는 중국 주화 등이 인양되면서 금괴 발굴 가능성을 높이고 있어 화제다. 27일 군산시에 따르면 탐사에 나선 전문업체 ㈜바다사랑은 지난해부터 러시아산 ‘사이드스캔소나’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해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일대의 바다 밑바닥을 뒤지다 그해 5월 해저 15m 모래에 묻혀 있던 침몰선을 찾아냈다. 선수에서 선미 쪽으로 선체의 25m가 펄 밖으로 나와 있었고 선수 상갑판 등은 폭격과 화재로 함몰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침몰선은 일본과 미국의 문서 기록에 언급된 길이 35m, 폭 7.8m의 목재 화물선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침몰선의 위치가 확인되면서 발굴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업체는 군산시로부터는 공유수면 점유 사용 허가를, 군산지방해양항만청으로부터는 매장물 발굴 승인을 얻어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 허가 기간은 올 1월부터 8월 말까지다. 선유도리 남방 5㎞ 지점에서는 대형 바지선과 작업선이 동원된 가운데 작업이 한창이다. 20여명의 잠수사가 동원돼 침몰선을 뒤덮고 있는 개흙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잠수사들은 대부분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 출신의 베테랑이다. 이 회사의 편도영(55) 대표도 잠수기능사 자격을 보유한 공수특전단 출신으로, 현장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 신현택 부사장은 “작업 환경이 그리 나쁘지 않아서 비교적 수월하게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대로라면 6월 말쯤 발굴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군산지방해양항만청 관계자는 “만약 금괴 등 매장물이 발굴되면 원칙적으로는 모두 국유재산에 귀속되지만, 관련 법규와 국제 관행에 따라 80%는 발굴업체에 돌아가고 20%는 국가가 소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마마루 12호에서 엄청난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물품이 발굴된다면 일본이나 중국 등 인접 국가들이 원천적인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발굴 작업이 우리 영해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영해국의 소유라는 게 국제법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소문대로 5000억원 상당의 금괴가 발굴되면 인양업체는 돈방석에 앉게 된다. 시마마루 12호 발굴에는 수도권의 자본가 3명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물선 탐사는 국내외에서 성공한 사례가 극히 드물고, 또 상당수가 사기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투자에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군산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지하투시 레이더로 매립 위치 찾을 것”

    “지하투시 레이더로 매립 위치 찾을 것”

    한·미 정부가 경북 왜관지역 미군기지 ‘캠프 캐럴’ 내 고엽제 매몰과 관련해 27일 첫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한·미 정부는 26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른 환경분과위원회를 열고 27일 캠프 캐럴 기지 주변 10곳 내외에서 지하수 표본을 채취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국립환경과학원이 조사를 주도하고, 미국 쪽 전문가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캠프 캐럴 조사에 주민 참여할 듯 홍윤식 국무총리실 국정운영1실장은 “우리 정부는 정부 관계자·민간 전문가, 지역주민 대표, 시민단체 대표 등 10명 내외로 조사단을 구성하는 방안을 내놨고, 미국에서는 본토에서 전문가를 데려오는 문제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 명단을 확정하지 못했다.”면서 “이번 주말 정도면 우리 쪽에 명단을 통보할 것으로 보이며 그러면 곧바로 공동조사단이 발족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7일 표본 조사는 사전조사의 개념이고, 다음주부터 공동조사단이 본격적으로 캠프 캐럴 영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동조사단은 우선 고엽제 매몰 지역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지하투시 레이더로 드럼통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파악할 계획이다. 또 매몰지역 주변은 물론이고, 영내외의 토양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하게 된다. 캠프 캐럴에서 외부로 반출된 오염물질과 토양의 처리 과정을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퇴역 주한미군 등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오염물질 매립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공동조사가 시작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별도로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고엽제 관련 정부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SOFA 환경분과위 회의 결과와 관련된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공동조사 계획뿐 아니라 주한미군 기지 환경오염 치유 사례·고엽제 관련 후유증 판정 절차·질병관리 사례 등에 대한 대책도 숙고했다. ●부천 ‘캠프 머서’ 민관군 조사 한편 국방부는 화학물질 매몰 의혹이 제기된 부천시 오정동의 옛 미군기지 ‘캠프 머서’에 대해 민·관·군 공동조사단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2003년 이전에 환경조사를 거치지 않은 채 반환된 주한 미군 기지에 대해서도 환경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군산 앞바다에 금괴 10t 보물선?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 민간의 ‘보물선’ 발굴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침몰 선박에서 다량의 중국 주화가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24일 전북도에 따르면 국내 한 해저매장물 탐사업체가 일제강점기 당시 침몰한 일본 화물선의 금괴 찾기에 나선 것은 지난 2월. 탐사업체는 6개월 기한으로 군산지방항만청과 군산시로부터 공유수면점용 사용허가와 매장물 발굴 승인을 받아 발굴에 나섰다. 이 업체가 발굴할 선박은 일본 253t급 화물선 ‘시마마루12호’. 1945년 7월 금괴 10t가량을 싣고 항해하다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와 비안도 사이 해상에서 미 공군의 폭격으로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탐사업체가 이 선박으로부터 3~4t(15억~20억원어치)의 중국 주화와 은화 등을 인양한 것이다. 주화들은 군산항만청 건물에 보관 중이다. 이에 따라 탐사업체는 선박에 대한 발굴 작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화성서 신석기 움집터 26기 발견

    경기 화성에서 대규모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이 발견됐다. 신석기시대 주거 형태와 마을 규모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중부고고학연구소는 24일 “경기 화성시 마도면 석교리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신석기시대 움집터 26기 등을 확인했다.”면서 “주거지 개별유구와 출토유물의 철저한 분석을 통한 취락의 동시기성 문제와 성격 등에 접근함으로써 중서부 지역 신석기시대 취락의 면모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발 20~30m 구릉에서 발견된 유적지 바닥 형태는 원형과 사각형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주거 형태는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북쪽 11기, 남쪽 15기를 조성한 것으로 확인돼 신석기시대 마을 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와 함께 탄화 상태의 도토리와 갈돌, 갈판 등을 발굴해 신석기시대부터 도토리묵을 먹었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반값 등록금’ 한나라 찬·반 의원 지상논쟁

    ‘반값 등록금’ 한나라 찬·반 의원 지상논쟁

    ■“찬성” 권영진 의원 “先재정투자 後구조조정 바람직” “고등교육 재정에 대한 과감한 투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인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은 24일 현재 당 지도부가 추진하고 있는 ‘반값 등록금’이 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학에 국가 재정 투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동시에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先) 구조조정, 후(後) 교육재정 투자’는 국민들에게 너무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라면서 우선은 ‘반값 등록금’ 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그동안은 장학혜택을 늘리고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ICL) 운영을 통해 등록금 문제를 해소하려고 했으나 지금 같은 등록금 1000만원 시대인 상황에서는 ICL이 의미 없다.”고 거듭 밝혔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학생들이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게 돼 결국 미래 부담만 늘어간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당장 기금을 조성하기에는 투입해야 할 재정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당분간은 국가 예산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추가 감세 철회를 꼽았다. 권 의원은 “내년에 추가 감세를 철회할 경우 생기는 약 3조 5000억원 가운데 2조원을 지원하면 된다.”면서 “이와 함께 세계잉여금, 세입 자연증가분,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5년동안 해마다 1조~2조원씩 증액해 나가면 실질적인 반값 등록금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거기에 더해 대학 경쟁력을 위한 지원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권 의원은 당 정책위가 추진하는 방안에서 더 나아가 “소득 하위 50%까지만 지원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소득분위별로 지원하기보다 오히려 대학에 지원해서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을 반으로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의 고등교육에 대한 기부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반대” 나성린 의원 “구조조정·예산 재조정 선행돼야” “대학등록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이른바 ‘고등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한시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 출신의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은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당내에서 불거진 ‘무상·반값 등록금’ 논란과 관련, “등록금 부담 완화라는 방향성이 아니라, 이를 추진하는 절차와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나 의원은 “교부금제는 예산 운용의 경직성을 높일 수 있는 만큼 대학 구조조정과 예산 재조정 등 두 가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내국세의 2%(약 3조원)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당 지도부가 재원 대책으로 내세운 ▲법인세·소득세 등에 대한 추가감세 철회 ▲세출 구조조정 등은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은 “추가 감세를 철회하면 세수가 현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지 규모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원 조달 근거로는 취약하다.”면서 “세계 잉여금도 규모가 불확실한 재원인데, 이를 근거로 예산 집행의 틀을 세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대학 구조조정이 등록금 지원에 선행 또는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 의원은 “현행 82%인 대학 진학률을 적어도 60% 이하로 낮춰야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한 재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경쟁력이 취약한 대학에 대한 퇴출이나 대학 간 인수·합병(M&A)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학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관련 법 개정안을 심의조차 하지 않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불량 상임위”라고 비판했다. 당 지도부를 향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나 의원은 “인기 위주의 포퓰리즘 정책을 정책위의장도 아닌 원내대표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문제다.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듣고 의원총회에서 총의를 모은 뒤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미혼모, 이젠 색안경을 벗자] 친부인 남성에 양육비 지급 의무화案 추진

    전문가들은 미혼모에 대한 양육비 지원, 주거지원 등의 지원책이 미혼모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미혼모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 미혼모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월 5만원’으로 대표되는 미혼모 양육비 지원에 대해 “미혼모가 직접 양육을 하게 하기보다 시설에 보내거나 입양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의원은 미혼모가 양육하는 자녀의 친부로 확인된 남성에게 양육비 지급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내용을 취지로 하는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이 오는 6월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초생계수급비의 혜택 또한 미혼모에게는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혼모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일 경우에도 부모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권자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미혼모들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갈라선 경우가 많다.”면서 “이러한 경우 부모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실태 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희정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미혼모에 대한 주거지원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한부모가정은 국민임대주택 공급대상에 포함되지만 보증금이 최소 1000만원 이상이어서 미혼모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권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의 20대 여성의 실질 임금을 고려하면 미혼모들이 그 정도의 목돈을 모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미혼모가 수급권자인 경우 신청할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과 전세임대주택은 보증금이 수백만원대로 비교적 저렴하다. 그러나 미혼모들은 주택을 우선 공급받을 수 있는 고령, 장애, 다자녀 등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당첨되기 어렵다. 권 사무국장은 “미혼모에게 적용되기 어려운 주거 지원책이 미혼모의 자립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허남순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혼모들이 출산 이후에도 머물 수 있는 시설이 보다 확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산 전 미혼모들을 위한 시설은 대개 출산 뒤 3~6개월 정도면 퇴소하는 것이 원칙이다. 허 교수는 “중간의 집 형태의 시설을 늘려 미혼모들의 자립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24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전남 나주시 다도면 골짜기 끄트머리에 자리한 곰작골에는 무위자연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김영찬·임윤자씨 부부와 가족들이 있다. 19년 전 혼자서는 거동도 못 할 만큼 아팠던 아내를 위해 산골행을 택했던 영찬씨 . 민가 한 채 없는 궁벽한 곰작골에서 아담과 이브가 되어 제2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는데…. ●희망 릴레이(KBS2 오전 9시) ‘밥장’이란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장원석씨는 일러스트레이터·작가·북 칼럼니스트·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기업에서 10년간 마케팅 담당 직원으로 일하다 불현듯 회사를 그만두고, 단순히 그림 그리는 것이 좋다는 이유로 일러스트 시장에 도전한 그를 만나본다. ●짝패(MBC 밤 9시 55분) 천둥이 김 대감에게 보낸 밀서를 본 귀동은 필적이 날조되었다고 확신하고, 귀동은 김 대감에게 약속 장소로 나가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 김 대감은 가문과 재산이 아무 소용 없다고 느껴 사직 상소를 올리고, 동녀와 함께 김 생원을 찾아가 용서를 빈다. 한편 천둥은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켜온 달이와 혼인을 올리게 되는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 30분) 소아 건망증을 의심케 하는 기억력 제로 8살 소년 하준이가 떴다. 학교만 갔다 오면 학용품으로 가득 찼던 가방이 텅텅 비고, 심부름 한번 보냈다 하면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인 하준이. 그런 하준이 때문에 인내심이 바닥나기 일보 직전인 엄마를 위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맞춤형 개선안을 공개한다. ●다큐10+(EBS 밤 11시 10분) 북극해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는 ‘북극곰의 왕국’이라고 불릴 만큼 북극곰의 서식이 활발하던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 북극곰들이 최근 들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지구 온난화 현상에 의해 해빙이 녹으면서 북극곰의 먹잇감이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멸종의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과연 북극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명불허전(OBS 밤 10시) ‘란 스튜디오’의 김재환 회장이 출연해 소회를 밝힌다. 최고의 인물 사진가로서 그가 가지고 있던 40여 년의 사진 철학과 삶의 자세에 대한 무게 있는 대화가 오간다. 역대 대통령들의 존영 사진을 촬영하면서 털어놓지 못했던 사연과 대통령의 가족사진을 찍었을 때의 일화 등 일반인들이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도 함께한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보이스피싱 피해환급금 10월부터 쉽게 받는다

    오는 10월부터 ‘보이스피싱’이나 ‘메신저 피싱’ 등 금융사기로 갈취당한 돈을 소송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 3개월 정도면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20일 이 같은 내용의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오는 9월 30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부당이익반환 청구 소송 등을 거쳐 통상 1년 안팎이 걸려야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었다. 시행령에 따르면 앞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피해구제신청서, 피해신고확인서, 신분증 사본을 금융회사에 제출하기만 하면 지급정지 절차가 시작된다. 피해구제 신청서에는 자신의 계좌 현황, 사기에 활용된 계좌에 대한 이체내역 등을 기재하면 된다. 긴급한 경우에는 먼저 전화로 지급정지를 신청한 뒤 관련 서류를 내도 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과학벨트·중이온가속기 성공 관건은 국제협력”

    “과학벨트·중이온가속기 성공 관건은 국제협력”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영기(49)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이하 페르미랩) 부소장은 국내에 들어설 중이온가속기에 대해 큰 기대감을 표하면서 “과학기술 선진국의 조건을 갖추는 것”이라고 반겼다. 김 부소장은 19일 오전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와 중이온가속기의 성공 여부는 국제협력에 달려 있다.”며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김 부소장과의 일문일답. ●“가속기 개념설계 표절 대상 아니다” →과학벨트에 중이온가속기가 설치되는데. -가속기는 국제 과학기술 경쟁에서 한 국가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국내에 계획되고 있는 것은 희귀동위원소의 종류나 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 먼저 해낸다면 과학기술 선진국 대열에 금방 진입할 수 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국내 과학 인프라가 부족한데 해결책은. -수준 높은 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 단시일에는 안 된다. 우리는 아직 경험이 없다. 따라서 국제협력이 바람직하다. 우리도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지식이나 과학기술은 빨리 알수록 좋기 때문에 서로 도와가며 경쟁해야 한다. →페르미랩과의 협력은 어떻게 되나. -한국과 페르미랩은 1970년대 초부터 입자물리 실험에서 검출, 데이터 분석 등에 협력해 왔다. 지난해 6월 교육과학기술부와 가속기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가속기가 미국의 설계를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표절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설계 자체는 기술적 성과이지 과학적 업적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개념 설계는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가도 다 볼 수 있고, 누구든지 쓸 수 있다. 출처를 밝힐 필요는 없다. 과학계는 산업체처럼 이익을 따지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도와주고 협력한다. 나도 일본 쪽 국제자문위원인데, 미국보다 더 잘하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가속기 설계비 10억~20억원은 지나치게 많지 않은가. -설계하는 데만 8개월에 10억~20억원이 들었다면 대략 100만 달러 정도인데, 100만 달러는 미국에서 대여섯 명이 1년에 연구하는 비용밖에 안 된다. 미국 것을 참고하더라도 내용을 연구하고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아주 싸다고 본다. 국내 가속기 건설비용 4600억원도 결코 과다한 금액이 아니다. 미국은 총예산이 5000억원인데, 한국과 달리 인건비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비용(30~40%)이 포함돼 있다. ●“기초과학 튼튼히 해야 노벨상 뒤따라” 이날 인터뷰에서 김 부소장은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어 “노벨상은 가능성 있는 한 사람한테만 투자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기초과학을 튼튼히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하다 보면 노벨상은 자연히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이기도 한 김 부소장은 80학번으로 고려대 물리학과에 진학해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도미, 1990년 로체스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버클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시카고대 물리학과 시드니 네글 교수와 결혼했다. 그 후 2003년 남편을 따라 시카고대로 옮겼으며, 2006년 페르미랩 부소장 자리에 올랐다. 유럽입자가속기연구소(CERN) 강입자가속기(LHC) 위원회, 일본 양성자가속기연구소(JPARC) 국제자문위원회 등에 소속된 그는 가속기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글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2)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

    [내 정치를 말한다] (2)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

    내게 정치란 운동이고 사명감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재야 운동을 하면서 못다 이뤘던 꿈들을 정치를 통해 조금 더 실천하고 싶다. 욕을 먹어도 정치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정치에 입문하면서 잘하면 정치를 통해 좋은 일, 착한 일, 바른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돈과 자본의 논리에서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 내고, 시장과 대기업 중심의 사회에서 서민과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우리의 소원’인 통일도 평화를 거쳐 정치협상으로 완성하고 싶다. (중도적인)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진보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젊은 날의 초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게 진보는 좌우나 편견의 문제는 아니었다. 경직과 교조가 아닌 유연과 점진의 진보를 하고 싶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의 말을 좋아했다. 17대 총선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민족과 민주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평화와 복지의 길을 통해 언젠가 통일과 평등의 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생활의 진보, 행복한 진보로 말하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선거구인 구로로 돌아왔을 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삶의 현장에는 좌우의 편향도 역사적 편견도 없었다. 서민과 중산층이 다르지 않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삶의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패권 사회에서, 양극화 사회에서 삶은 힘들어졌다. 민주정부 10년도 서민의 삶을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이 들어왔다. 그런데 딱 3년 만에 훨씬 더 힘들어졌다. 절박했고 그래서 지난해 10월 직접 전당대회에 나섰다.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이상을 버리지 않되 이념을 앞세우지는 않기로 했다. 새로운 진보의 길, 서민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는 진보, 즉 생활진보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우선 일자리, 교육, 복지의 길을 강조했다. 2012년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나는 줄곧 민주진보대통합을 외치고 있다. 각자의 이해를 넘어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한국 정치를 범진보와 범보수로 크게 재편하는 꿈도 꾸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의 삶이 그 길에서 진보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사람이 행복한 나라를 꿈꾼다. ? 운동가와 정치인 →운동과 정치, 어떻게 다른가. -실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시대 상황과 주요 과제가 달라졌다. 운동할 때는 ‘식민지 사회에서의 반자본주의’를 생각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반자본주의’ 아닌가. 지향점도 운동할 때는 자주, 민주, 통일이었다면 지금은 복지와 평화다. →민주당의 젊은 정치를 상징한다. 부담은 없나. -왜 없겠나. 돌아보면 ‘주제 넘는’ 사명감이 나를 지켜 주는 큰 힘이 됐다. 1987년 ‘6월 항쟁’ 승리의 자부심이 나를 끌고 왔다. 한편으론 그 해 대선 패배가 겸손해지게 만들었다. →이른바 486을 자평한다면. -가치의 문제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세력의 문제에선 스스로 진보이면서도 보스가 중도면 중도화됐던 모습은 적어도 털어냈다. 클린턴 세대들처럼 ‘리브 오어 리드’(leave or lead)다. 선배들이 잘 이끌면 함께 가지만 잘못 이끌면 못 간다. 그때는 준비가 덜 됐더라도 우리가 한다. →정치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17대 국회 때 국가보안법 폐지 정국 당시였다. 내가 지도부였다면 혼자서라도 눈 내리는 겨울날 거적 깔고 앉아서 폐지를 외쳤을 것이다. →너무 진정성을 강조하다 보니 판단이 늦다는 비판이 있다. -내 판단의 기준은 옳고 그른 것이다. 옳다는 것은 신념이 걸리는 문제다. 대신 한번 결정하면 바꾸지 않는다. →‘리틀 GT(김근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동의하나. -그 분보다 민주화에 더 헌신했던 사람이 있는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역사와 가치가 무시당해야 되나. 김근태의 깃발은 내가 들어줘야 한다. ? 민주 최고위원 그리고 이후 →최근 무엇에 집중하는가. -이 시대에 맞는 제2의 전환시대 논리를 구상 중에 있다. 진보와 통합이다. 이 부분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스피커가 작을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당권과 대권 도전에도 뜻이 있나. -이번 전당대회나 늦어도 다음 전당대회부터는 486 세대의 진출이 본격화될 것이다. 나는 당의 진보화와 통합·연대연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있는 건 사실이다.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도전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치의 문제에선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할 생각인가. -처자식 죽여 가며 하는 정치는 절대 안 한다. 아내와 아들, 정치 중에서 택하라고 하면 아내와 아들을 택한다. 3번 이상 죄 지으면 절대 안 한다. 벌써 한 번 죄 지었다(이 최고위원은 한 번의 죄가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한 최측근은 ‘2000년 총선 패배’일 거라고 말했다). ? 민주당과 야권통합 →손학규 대표가 잘하고 있나. -무난하다. 잘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방법 말고 더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는 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진보로 가야 돕는다. →손 대표의 최측근이라 불리는데. -최측근인 적 없다. 그런 말 들으면 자존심 상한다. 굳이 말하자면 보완재로서 파트너다. →김진표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는데. -진보와 통합의 방향성을 잘 견지해 주기 바란다. →지도부 입성 후 바라본 민주당은 어떤가. -서민과 중산층의 손을 놓고 기득권화된 측면도 있다. 요즘 다시 국민들의 손을 잡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에선 정치가 투기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야권 통합의 현실과 전망은. -연대연합보다는 대통합해야 이긴다고 생각한다. 정파·정당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운명보다 크지 않다. 국민의 박동을 느끼면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정치인, 정국 현안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여전히 유력한 야권 주자인가. -물론이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1980년대 초중반 학생운동의 힘이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구했던 역사적 결단과 같은 곳에 에너지가 사용되면 폭발력이 있을 것이다. 정치 게임을 잘하고 독설로 상처주기보다 항소이유서로 감동주고 노 전 대통령을 구했던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세론을 유지할까. -박근혜라는 사람을 잘 모르겠다. 국민 앞에서 낱낱이 드러난 적이 없고 국정 운영을 위한 자격 검증도 받은 적이 없다. 내년 총선, 대선까지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박근혜 대세론도 사라질 것이다. →한나라당의 쇄신 바람이 거세다. -가치의 깃발이 사라진 쇄신 논의는 권력 투쟁이다. 한나라당이 성공하길 바라지만 현재로선 어떤 가치의 깃발도 확인하지 못했다. 방향과 구체성이 없는 개혁은 권력투쟁이기 때문에, 하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글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이인영 최고위원은 ▲1964년 충북 충주 출생 ▲충주고·고려대 국문학과 및 언론대학원 졸업 ▲병역 면제(1987년 6월 민주화항쟁으로 투옥) ▲고려대 총학생회장 및 전대협 1기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국장, 한국청년연합회 지도위원 ▲노무현대통령후보 선대위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위원장 ▲17대 국회의원(서울 구로구갑) ▲2010년 지방선거 민주당 서울특별시당 기획단장 ▲민주당 최고위원 ▲제1회 박종철 인권상 수상 ▲저서 ‘나의 꿈 나의 노래’
  • [열린세상] 댓글에 나타난 한나라당/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

    [열린세상] 댓글에 나타난 한나라당/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이틀 후, 서울신문에는 ‘4·27 재·보선 후폭풍, 젊은이들 한나라 그냥 싫어하니… 이유 찾기도 쉽지 않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현 여권 실세와의 인터뷰 기사인데, 지난 10일 오후 11시 현재 이 기사에는 무려 4347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댓글이라는 것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으나 4347개의 댓글이 갖는 무게와 내용을 상세히 살펴보면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치권 모두에 제시하는 바가 크면서도 적나라하다.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들의 공통점은 “정말 젊은이들이 한나라당을 그냥 싫어한다고 보는가?”하는 것이다. “분명 싫어하는 이유가 있는데 어떻게 그냥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라면서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라는 지적이 상당히 많다. 그러면 댓글에서 내용상 가장 많이 나온 지적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한나라당이 정의롭지 않아 싫어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법 위에 존재하면서도 법을 지킨다고 주장한다.”, “경제를 살린다고 하면서 자기들만 살린다.”, “약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없는 자의 신음에도 귀를 닫고 있다.”,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간접세 증세)’ 같은 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주요 지적이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정의’를 열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작년 5월 출간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판매가 우리 출판 역사상 최단기간인 11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국회 전체 299석 중 무려 172석(57.7%)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여당 한나라당에서 소위 ‘정의’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계속 터지고 있는 저축은행들의 불법대출·부정인출·분식회계 사건과 이들을 감독할 금융감독원이 체할 정도로 많은 권한을 독점하면서 금융기관 감사를 추천하고 직원들의 보직 세탁까지 해주면서 금융기관을 부실하게 검사하는 것, 절대 사라지지 않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관행, 이러한 불공정한 현상을 목도하는 서민들은 거대 집권여당에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소위 ‘부자 감세 논란’에서도 한나라당은 별로 정의(?)롭지 못하다. 감세정책을 채택하면서 정부나 한나라당 모두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감세가 미치는 경제적 효과를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지 않았지만, 4·27 재·보선에서 패배하자마자 감세정책을 철회하고자 하는 것 역시 그렇게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감세를 반대하는 측의 “감세가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심화시키는 양극화의 주범이다.”, “감세의 혜택은 부자나 대기업에 더 크게 간다.”, “감세가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증거는 없다.”, “감세가 일자리 창출 등을 달성하기는커녕 정부 부채만 늘렸다.” 같은 주장에 현 여권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소통하고자 노력했는지 점검해 보기 바란다. 도입하는 것에 그렇게 신중하지 못했던 한나라당은 감세정책을 철회하는 것만큼은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가 감세정책을 철회하려는 이유가 감세정책 철회로 확보되는 재원을 대중영합적 정책에 사용하고 이것으로 유권자의 표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 어느 조사결과를 보면 대학생 10명 중 8명은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고 이 중 44%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또 20대와 30대의 사망 원인 가운데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리처드 이스털린의 “경제 성장과 행복 수준은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33달러에 불과한 히말라야 오지의 ‘부탄’ 국민 중 97%가 자신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 역시 우리 청년들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제 청년층의 빈곤, 이웃의 빈곤 문제 해결은 다른 무엇보다 중차대한 과제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로운 사회, 즉 ‘출발점의 기회 평등’이다. 결국 ‘배고픈’ 청년층을 ‘배까지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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