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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영화] 끝없는 모험

    ●끝없는 모험(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 재판이 열리고 있는 법정. 하지만 피고인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그들은 범죄자로 이곳에 섰지만, 재판 도중 낙서를 즐기는 등 계속 딴짓거리에만 열중한다. 이 와중에 그들의 과거사가 플래시백으로 전개된다. 리노 마사로(리노 벤추라)와 자크(자크 브렐) 등이 무리지어 다니는 5인조 갱단은 정치적 범죄단으로 변모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유명가수 조니 할리 데이와 라틴 아메리카의 한 대사를 납치한다. 이후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자신들을 잡으려는 무리와 숨바꼭질 같은 게임을 벌인다. 그들을 추적하는 이들은 게릴라단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정부까지 가세해 더욱 복잡한 양상이 된다. 잘도 도망쳐 다니던 갱단은 결국은 게릴라단에 납치되고야 만다. 어쩌다 빠져나왔다가 또다시 잡힌 이들은 결국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클로드 를루슈 감독은 프렌치 누아르 장르에 재치와 비틀기를 가미해 새로운 느낌의 코미디 영화 ‘끝없는 모험’(1972)을 만들어냈다. 그저 멋진 생을 꿈꾸던 갱들이 뜻밖의 걸림돌들을 맞닥뜨리면서 벌이는 소동은 우스꽝스럽고도 이채롭다. 그들의 낙천적인 면모들이 더러 황당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한바탕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13세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단편영화를 찍은 것으로 유명한 ‘신동’ 감독 클로드 를루슈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한국 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1966년 영화 ‘남과 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사상 최연소 수상했고, 같은 작품으로 이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른 나이에 세계의 주목을 받은 감독은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1995년 ‘레미제라블’,2007년 ‘역의 로망’ 등을 선보이며 변함없이 건재함을 입증해왔다.15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불법이주노동자 ‘생존의 투신’

    불법이주노동자 ‘생존의 투신’

    지난해 11월25일 밤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경기도 발안의 ‘중국인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 법무부 단속반원과 맞닥뜨린 순간, 중국인 노동자 쑨찐성(40)과 쩡더썽(27)은 교회 안으로 내달렸다. 교회 2층으로 쫓아온 단속반원들은 신분을 밝히기는커녕 아무 설명 없이 다짜고짜 수갑을 채우려 했다. 두 사람은 간신히 몸을 피해 3층 옥상으로 달아났다.‘추적자’들은 등 뒤에 있었고, 겁을 먹은 이들은 높이를 가늠해 볼 정신도 없이 몸을 던졌다. 쑨찐성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쩡더썽은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지만 기어서 건물 틈에 들어가 2시간 동안 몸을 숨겼다. 사건 발생 54일 뒤.18일 서울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에서 만난 이들은 같은 병실에 누워 있었다. 쩡더썽은 하루 전에야 다리 깁스를 풀었지만 손목의 깁스는 그대로였다. 다리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던 쑨찐성은 아직 거동조차 하지 못했다. 이틀전 중국동포 권모(50·여)씨가 단속을 피하려다 8층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 소식 탓인지 이들의 안색은 더욱 나빠 보였다. 쑨찐성은 “8층에서 뛰어내린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가족들을 생각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쩡더썽도 “단속반이 쫓아오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잡히면 가족이 먹고 살 수 없으니 끝장이란 생각에 도망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체류기간이 끝났으니 단속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까지 이르면 잠시 놔둬야 하는데 끝까지 몰아붙이니 뛰어내리게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쑨찐성은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해 이 땅을 밟았다. 중국에서 들기름, 참기름 장사를 하다가 한국인 사장으로부터 ‘한국에서 3년 동안 합법체류할 수 있도록 손을 써줄테니 20만위안(약 2600만원)을 빌려달라.’는 말에 속았다.“아내가 간호를 위해 한국에 와서 중국에 홀로 남아 있는 아들(12)이 보고 싶다. 돈을 떼먹은 사람을 잡지 못하면 돌아갈 일이 막막한데….”라며 울먹였다. 쩡더썽은 지난해 5월 석달짜리 비자로 한국에 왔다. 보따리 장사를 하려던 쩡씨는 각종 서류를 꾸미는 데만 8만위안(약 1040만원)을 썼다.“몸이 나아도 걱정이다. 한국에 오기 위해 쓴 돈과 가족들이 먹고 살 돈을 구해야 하는데 무슨 낯으로 집에 가겠나.”라며 눈물을 훔쳤다. 글 임일영 신혜원기자 argus@seoul.co.kr
  • [새영화] ‘에반게리온:서(序)’

    ‘에반게리온’ 하면 ‘오타쿠’를 빼놓을 수 없다. 오타쿠는 자기만의 취미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상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광적인 마니아를 가리킨다.12년 전 도쿄TV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오타쿠를 만들어냈다.1조 5000억원의 수입을 벌어들인 ‘산업’이기도 하다. 그 만화영화가 2000년대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돼 25분만에 5000장의 표가 매진된 ‘에반게리온:서(序)’다.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는 ‘탈오타쿠’를 지향했다지만 이번 새 극장판의 개봉 소식에 국내 오타쿠들은 다시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전투도시인 제3신도쿄.2000년 세컨드 임팩트로 인류의 반이 사망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인간은 생체병기 에반게리온을 만든다. 인류를 습격해오는 정체불명의 적, 사도에 맞서기 위한 것.14살 소년 신지는 어느날 특무기관 네르프의 총사령관인 아버지로부터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이 되라는 명을 받는다. # ‘에바´는 자란다 유기 인조인간인 에바(에반게리온)는 파일럿과 정신적·육체적으로 가장 긴밀히 연결됐을 때 최고의 성능을 뽑아낸다.3D 컴퓨터그래픽으로 다시 그린 그림은 세련된 움직임과 색감, 입체감으로 기술과 세월의 변화를 짚어보게 한다. 형형한 야광빛을 반사하며 짐승처럼 폭주하는 에바, 푸른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제5사도 ‘라미엘’의 진화한 형태와 파괴력은 에바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위력적이다. 일본 내 전력을 모두 끌어와 싸우는 둘의 ‘야시마’전투 장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아나는 건물숲이 순식간에 신도시 하나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이번 극장판의 백미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서’는 초보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여러 편의 애니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배경이나 캐릭터 설명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 ‘소년´은 자란다 에바의 캐릭터는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영문도 모르고 무작정 인류를 지키라는 부름을 받은 신지. 몸도, 정신도 미성숙한 이 소년의 ‘찌질함’은 막중한 임무와 대비되며 묘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그는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사도의 막강함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히면서도 끊임없이 되뇐다.“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늘 적용된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의 세기만큼 자괴감이 발을 잡아채는 것. 소년은 그래서 회의와 체념 속에서도 에반게리온에 오른다. 질문에 대한 답도 못 구한 채, 철수하라는 상부의 명도 어긴 채, 전인류를 위해 내달린다. 가녀린 몸으로 “내가 널 지켜줄게”라고 말하는 또다른 파일럿 신비소녀 레이의 존재도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서울 19일전국 24일 개봉.12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영상앨범 산(KBS1 밤 12시25분) 북섬과 남섬으로 이루어진 뉴질랜드는 원주민인 마오리족 언어로는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 불린다. 뉴질랜드 남섬의 관광지 중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밀포드트랙. 그러나 이에 버금가는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는 산이 있다. 소리없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곳 블랙피크로 향한다.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BC 146년 로마가 마침내 오랜 숙적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공화정을 깨부수고 승리를 쟁취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광기로 인해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되는 네로 황제를 거쳐 로마제국 최대의 반란인 유대인 봉기, 기독교를 도입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중소기업UP 한국경제UP(YTN 오전 10시40분) 한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중소기업. 뛰어난 기술력과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세계가 인정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술과 매출의 발전은 물론 깨끗한 작업환경과 편안한 복지로 일할 맛 나는 일터로까지 자리잡아가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 그 현장을 찾아간다.   ●그래도 좋아(MBC 오전 7시50분) 효은은 산부인과에서 임신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는다. 명지는 갑자기 나타난 준배에게 가진 돈을 몽땅 쥐여주고 다시는 얼굴을 보지 말자며 도망치듯 돌아선다. 그러나 준배는 그런 명지를 비웃으며 변함없이 그녀 주위를 맴돈다. 한편 석빈은 윤사장에게 한강제화로 옮기기로 결심한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 여자가 무서워(SBS 오후 7시20분) 경표가 납치됐을 때 쓰인 주사약이 백회장 납치에도 쓰였다는 걸 알게 된 영림은 준철에게 백회장을 지켰어야 한다고 말한다. 준철은 짚히는 사람을 물어보지만 영림은 말하지 않는다. 한편 병실에서 경표는 은애에게 백회장이 영림만을 기억하는 건 주사약 때문이라며 백회장을 원망 말라고 조언한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KBS2 밤 11시5분) 남편 월급만으론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을 끌어 쓰더라도 지연은 딸 예나의 뒷바라지만큼은 최고로 해주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피겨스케이트를 타다 다친 예나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상해 보험금을 받게 되고, 며칠 후 지연도 음주운전 차에 치여 보상을 받게 되는데….
  • [17일 TV 하이라이트]

    ●낭독의 발견(KBS2 밤 12시45분) 미래가 보장된 변호사 명함을 버리고 사회운동에 뛰어든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을 한다. 책을 펴내도 인세는 고스란히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희망을 전파하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의 낭독을 들어본다.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클레오파트라의 매혹적인 눈빛을 닮은, 이집트에서 온 사라. 두 아들을 둔 엄마로, 억척스러운 주부로, 대학생으로 일인다역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다. 시험이 끝난 사라를 위해 가족들은 오랜만에 나들이를 떠난다. 또 이집트 최대명절의 하나인 ‘희생제’와 사라의 즐거운 생일파티 등을 보여준다.   ●세계 명작 드라마 투앤느(EBS 오후 8시50분) 남편의 병으로 카페 운영과 농장 운영에 차질이 생긴 투앤느 부인. 그러나 하루는 단골 셀레스탱의 제의로 기가 막힌 구상을 한다. 다름아닌 밤낮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의 몸 밑에 달걀을 넣어 부화시키는 것. 마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오고 투앤느는 결국 병아리를 부화시킨다.   ●아현동 마님(MBC 오후 7시45분) 부자가 숙영네에서 밑반찬을 얻어가자 숙영은 할머니를 내세워 반찬을 얻어가는 시향이 얄밉다며 한소리 한다. 희라는 마음을 곱게 쓰라며 숙영을 구박한다. 퇴근길에 도담은 하 수사관에게 저녁식사를 하자고 한다. 근처 밥집으로 오라는 조 수사관의 전화를 받은 하 수사관은 도담에게도 함께 가자고 한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0분) 도민 대량학살의 참사로 이어진 제주 4·3사건이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다. 당시 일본으로 도망친 우리 동포들은 대부분 오사카에 살고 있다. 최근 오사카 재일동포들을 중심으로 제주 4·3사건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동포들은 60년 전 역사를 바로 잡아줄 것을 한국 정부에 바라고 있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사시사철 맨발로 사는 사나이 김용봉씨. 엄동설한에 맨발도 모자라 보기만 해도 소름돋는 반소매에 반바지 차림을 하고 다닌다. 인도 남부의 깨랄라 마을에는 70쌍의 쌍둥이가 있다. 쌍둥이 마을의 특별한 생활을 공개한다.10년을 한결같이 어머니 산소를 지키는 여든여덟살의 딸을 만나본다.
  • ‘순간포착’ 새끼치타가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

    최근 영국의 한 사진작가가 어미 치타의 사냥기술을 보며 야생에서의 삶을 배우는 새끼 치타들의 모습을 담아내 눈길을 끌고있다. 작가 앤디 루즈(Andy Rouse)가 포착한 사진들에는 어미 치타가 새끼에게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을 전수하는 적나라한 모습이 담겨있다. 먼저 사냥감을 발견한 어미 치타는 몸을 낮추며 서서히 먹잇감으로 향한다. 그리고 어미 치타는 먹잇감이 눈치채기도 전에 와락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낚아챈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적인 사냥에 기뻐하듯이 새끼쪽으로 돌아와 먹잇감을 떨어뜨린다. 어미 치타에게 물린 살아있는 먹잇감은 공포에 질려있다. 그러나 새끼 치타들은 이런 먹잇감의 마음도 모른채 코로 문지르고 앞발로 치면서 갖고 놀기 시작한다. 먹잇감이 비틀거리며 도망가려고 해도 새끼 치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장난을 친다. 어쩌다 먹잇감이 재빨리 도망치면 어미 치타는 새끼들이 먹잇감을 좇도록 유도한다. 이같은 사냥 학습이 18개월 정도 이어지면 그제서야 어미 치타는 새끼들의 곁을 안심하고 떠난다. 이같이 어미 치타가 새끼에게 남긴 ‘야생의 교훈’은 평생 새끼들이 독수리와 같은 천적을 피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단독]사이버 공간 성매매 백태

    “ㅂㄱ가능해여/(비건전만남 가능해요?)”A씨가 묻는다. “ㅇㅇ(응)”상대 여성의 답이다.‘ㄴㄴ(아니)’라고 대답했으면 했는데…. 하지만 곧 “얼마 원함/ㅋㅋ”,“님히 원하는 거 있어염/”이라는 거래 금액과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문답이 오간다. “어데가 좋아효?”,“강남 쪽으루..”,“난 신촌 쪽인데 일로 오는 게 어떤지../”,“앙 그럼.. 제가 글루 갈께염ㅋㅋ”상대 여성이 원하는 곳으로 섣불리 찾아가겠다고 나서면 상대는 밀어붙이는 남자에게 부담을 느껴 더 이상 채팅을 진행하지 않는다.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다. “핸펀 버노는여/”,“010-****-****. 지그ㅁ 그 쪽도 문자 보내여.”,“ㅇㅇ”결국 걸려들고 말았다. 한숨이 나온다. 대화가 오간 곳은 ‘애인대행 사이트’다.‘비건전만남’이란 성매매를 뜻하는 그들만의 은어다.‘비 건’,‘비’,‘삐’,‘b’,‘비ㄱ’,‘ㅂㄱ’ 등으로 변형돼 쓰이기도 한다.‘/’는 컴퓨터 자판에서 물음표를 치기 위해선 ‘쉬프트(Shift)’키와 ‘/(?)’키를 함께 눌러줘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 그냥 /키만 누른 데서 나왔다. 일부러 오타도 낸다. 사이버 공간에서 채팅 은어를 연구하고 심리까지 꿰뚫으며 성매매 차단에 나선 A씨는 서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박일철(40) 경사. 박 경사는 동료 한 명을 데리고 신촌으로 향한다. 차번호를 알아본 여성이 차에 탄다. 곧 주변에서 기다리던 동료 형사가 따라 타고 여성을 검거하려 한다. 놀란 토끼눈을 한 여성이 “왜 이러세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라며 동료 형사를 밀치고 차도 건너편으로 도망친다. 애써 쫓으면 차에 치일 우려가 있어 그냥 둔다. 전화를 걸어 “이미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약속장소에 나온 걸로 성매매 혐의가 인정된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같은 사람에게 걸려 다치지 말고 조사받으러 오라.”고 한다. 십중팔구는 순순히 경찰서에 나온다. 최종 검거 목적은 성구매 남성이다. 여성의 6개월간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모두 뽑는다. 수상한 남성들의 통화내역을 추려내 경찰서로 오라고 한다. 별별 남성들이 다 있다.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나까지 엮이면 너는 가중처벌된다. 실적 올리려는 형사에게 속지 말라.”고 회유하기도 한다.‘대포폰’을 쓰거나 유영철처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공중전화로 추적을 피하는 지능형 성구매범도 있다. 경찰을 사칭해 “너 나한테 잡혀야 하는데, 맘에 드니까 이번만은 봐준다.”며 협박성 성행위를 강요하기도 한다. 박 경사는 회유당한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보통 생계형 범죄자여서 벌금형이나 기소유예로 끝나니 재범만 하지 않으면 되지만, 성구매 남성들은 또 다른 여성 피해자를 낳는다.”고 설득한다. 지난해 9월부터 성구매 남성 250여명이 그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지난해 10월에 붙잡힌 한 여자 아이는 아버지가 암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데다 오빠는 장애인이라 어쩔 수 없이 이 세계로 빠져들었더군요. 그들을 딸처럼 생각하고 비겁한 성구매는 좀 안하면 안될까요.”박 경사가 한숨을 내쉰다. 이재훈 신혜원기자 nomad@seoul.co.kr
  • 中 진출 한국기업인 야반도주 왜?

    1990년대 말 중국의 외자기업 투자유치가 한창이던 때, 중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한국의 중소기업인들은 도전과 재기를 노리며 속속 중국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그들에게 돌아갈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위기의 땅’이 돼버렸다. 인건비와 세 부담 등으로 손해를 보고 있지만, 빚더미에 앉아 철수할 수도 없게 됐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중소기업인들은 급기야 야반도주의 위험천만한 선택까지 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도망자 신세로 전락시키는 것일까. KBS 2TV ‘추적60분’은 16일 오후 11시5분 ‘중국 현지 보고-한국 중소기업, 그들은 왜 야반도주 하는가’에서 그 실태를 파헤친다. 지난해 12월 중순,‘추적 60분’ 제작진은 공장을 도망쳐 나온 한국 중소기업 사장이 중국 옌타이 시내에 숨어 살고 있다는 제보를 받는다. 수차례의 설득 끝에 만난 이 사장은 밀린 임금과 채무를 갚지 못해, 돈도 여권도 없이 무작정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위험한 도주 행로를 따라 그간의 사연을 추적한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김경준씨 “구속상태로 재판 방어 힘들다”

    김경준씨 “구속상태로 재판 방어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 등을 수사할 정호영 특별검사는 14일 수사팀 인선을 마무리지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특검보에 검사출신 김학근(사시 23회·검사 출신) 변호사, 판사출신 문강배(〃 25회)·이상인(〃 26회) 변호사, 변호사 출신 최철(〃 26회)·이건행(〃 27회) 변호사 등 5명을 임명했다. 이 당선인과 가깝다는 논란을 빚어온 박요찬·김욱균 변호사는 임명에서 제외됐다. 정 특검은 인천지검 특수부 박정식(사시 20), 대전지검 특수부 유상범(〃 21), 대검연구관 윤석렬(〃 23) 등 부장검사 3명과 평검사 7명 등 파견감사 10명을 확정했다. 특검팀은 15일 오전 11시 역삼동 한신인터밸리 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돌입한다. 한편 ‘BBK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김경준씨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김동오)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대한민국 검사에게 실망하고 있다. 검사가 대한민국 헌법을 구겨버리고 있다.”며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정의(justice)를 지키라고 국민이 힘을 줬는데 검사들은 세금을 낭비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고 있다.”고 검찰을 공격했다. 김씨는 “이런 상태로 재판에서 방어하기 힘들다.6∼7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고,4년이나 갇혀 있었다. 없앨 증거가 남아 있지도 않고, 국민이 모두 얼굴을 아는데 어떻게 도망 가느냐.”며 보석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미국 판결문 등 변호인의 추가 자료를 검토해 보석을 조만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공판은 다음달 4일 오전 10시.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토요영화] 13 자메티

    [토요영화] 13 자메티

    ●13 자메티(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 ‘13 자메티’(2005)는 흑백 영상으로 이뤄진 한편의 강렬한 아포리즘이다.86분짜리 이 영화에는 죽음과 공포에 대한 은유가 가득하다. 제목의 ‘자메티(Tzameti)’는 그루지야어로 ‘13’을 뜻한다. 흔히 불길한 숫자로 받아들여지는 이 숫자는 주인공이 룰렛 게임에서 부여받은 등번호이기도 하다. 프랑스로 이민 온 그루지야 출신 집수리공 세바스찬(게오르기 바블루아니)은 새로 지붕 수리를 맡게 된 집에서 일하던 중 우연히 집주인에게로 온 편지 봉투를 열어보게 된다. 그 속에는 파리행 열차 티켓과 호텔예약 확인서가 들어있다. 세바스찬은 이것이 어쩌면 가난한 자신에게 ‘대박’을 안겨다줄 수도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집주인 대신 길을 떠나는 세바스찬. 파리에 가서 지정된 호텔에 숙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 행동 지시를 받는다. 지침대로 움직이던 세바스찬은 어느 숲속의 저택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곤 얼른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붙잡힌 채 저택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게임에 선수로 참가하게 된다. 모두 13명이 참여하는 이 게임은 원형으로 둘러선 선수들이 전등이 켜지는 순간 제 앞사람을 겨눈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집단 러시안 룰렛 게임이다.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진행되며, 생존자는 85만 유로의 상금을 받게 된다. 선수들이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는 동안 이들에게 돈을 건 도박사들 간의 협상과 거래도 계속된다. 죽음의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과 이득에 혈안이 되어 번득이는 눈빛의 대조가 선명하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임에도 영화사가 자금지원을 꺼리자, 당시 26세의 젊은 감독 젤라 바블루아니는 러시안 룰렛 장면을 먼저 찍어 보여준 뒤 합격점을 얻었다. 그렇게 어렵게 완성한 영화로 바블루아니는 2005년 베니스 영화제 신인감독상과 이듬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쥐었다. 올해 하반기 중 할리우드에서 완성될 리메이크판까지 직접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니, 이 젊은 감독의 행보가 어디까지일지 사뭇 기대된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칠순의 문화경찰들이 본 인사동의 젊은 세태

    칠순의 문화경찰들이 본 인사동의 젊은 세태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죠. 우리가 잘못된 건지, 애들이 잘못된 건지….” ‘문화경찰’이라고 적힌 남색 점퍼를 입은 노인 3명이 일요일인 지난 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를 순찰하기 시작했다.‘전통 거리’인 인사동에서만큼은 기초질서를 잡겠다며 계도에 나선 것이다. 노인들이 전통 거리에서 만난 요즘 세태를 따라가 봤다. ‘인사동 문화경찰’ 한기련(83)·손호금(74)·김병기(77)씨는 모두 전직 경찰이다. 이 단체는 종로경우회 소속 20명의 퇴직 경찰이 모여 만들었다. 인사동 문화환경 보존과 기초질서 확립을 위해 2007년 9월부터 토·일요일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노인들은 인사동 거리 입구에 널브러져 있는 ‘오늘은 차없는 거리’라는 입간판을 세우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흰색 승용차를 몰고 진입했다. 한씨가 다급하게 차를 막으려 했다. 여성은 뒤따라 오는 한씨에게 눈을 흘긴 뒤 도망치듯 질주했다. 이번엔 젊은 남성들이 탄 자전거 3대가 보였다. 김씨가 “사람이 많은 날이니 다른 길로 가라.”며 정중하게 부탁했다. 젊은이들은 쓴 웃음을 지으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노인을 공경하라는 게 아니다. 어른이 웃으며 부탁하면 웃는 낯으로 대해야지….”김씨는 못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대낮에 한 쌍의 연인이 진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저런 행동을 하는 것도 미풍양속은 아닌 것 같다.”고 묻자 손씨는 “입맞춤은 집에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삿대질을 하며 대드는 젊은이들에게 봉변당한 이후로는 못본 척하고 넘긴다.”고 말했다.“우리가 왜 셋이 함께 다니는지 알아요? 혹시 있을지 모를 봉변에 대비하기 위해서요.” 인사동 거리 중앙의 쌈지길 네거리에서 젊은이 여섯명이 말머리 가면을 쓰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옆을 지나던 외국인 여성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통거리 끝머리인 인사마당에 다다를 무렵, 젊은 부부가 키가 1m는 넘어 보이는 사냥개를 끌고 다녔다. 손씨가 “개가 위협적이고, 광견병 접종 기록이 있는 명찰도 안 달았으니 인사동 거리를 피해서 가라.”고 완곡하게 요청했다. 부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보란듯이 주변을 맴돌며 개와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세상이 바뀐 것은 알겠는데, 자기 마음껏 사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서로 배려하고 어울리며 살아야죠.”세 노인은 이날 700m에 이르는 거리를 다섯 차례 왕복했다. 노인들의 ‘계도’를 고맙게 받아들이는 젊은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글 사진 이경주 신혜원기자 kdlrudwn@seoul.co.kr
  •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한길사 펴냄

    평등 개념이 희박하던 시대,‘사회계약론’은 ‘정부 파괴 목적의 파렴치하고 무모한 책’으로 판매금지 당했다. 아이들을 기독교 원죄설로 규정하던 시대,‘에밀’은 ‘신앙 전통을 전면 부정하는 이단적 요설’로 불태워졌다.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던 시대, 장 자크 루소는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다 죽을 때까지 시대와 불화했다. 루소는 이단아였다. 보수적 특권층과 교회로부터 배척당했고, 진보적 ‘백과사전파’와도 결별했다. 그는 오직 그의 생각으로 살았다. 자유와 생명을 억압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사회계약론’도,‘에밀’도, 그 생각으로 썼다. 루소의 ‘산에서 쓴 편지’가 국내 처음 번역·출간됐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김중현 옮김, 한길사 펴냄) 속에 함께 묶였다. 편지 형태를 띠고 있지만 연애편지도 안부편지도 아니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위한 치열한 싸움의 소산이다.‘사회계약론’과 ‘에밀’에 사형선고를 내린 국가 및 사회를 향한 격정의 반박문이다. ●절박한 마음으로 쓴 편지 ‘산에서 쓴 편지’는 1763년 10월말부터 이듬해 5월초 사이에 완성된 글이다.1762년부터 시작된 악몽 같은 경험이 계기가 됐다. 한 해 전 출간한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통해 당대 정치·종교·사회질서를 강렬하게 통박하면서 루소의 악몽은 시작됐다. 소르본 대학의 비난성명이 나왔고, 프랑스 의회는 책 압수·소각 명령과 함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루소가 고향 제네바로 몸을 피하자 제네바 국정회의는 책 판매금지와 체포명령을 내렸고, 베른으로 도망가자 베른 정부마저 추방령을 내렸다. 루소는 결국 프로이센으로 건너간다. 프로이센 한 작은 농가에 숨어, 더할 수 없이 절박한 마음으로,‘도망자’ 루소는 반박문을 써내려 갔다. 편지는 총 9편으로 쓰였고, 주제에 따라 1부와 2부로 나뉜다.1부에선 자신과 자신의 책에 대한 제네바 국정회의 조치를 비판했고,2부엔 공화국 정치상황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편지 9편 중 국정회의를 상대로 쓴 것만 4편이고, 제목을 ‘국정회의의 부당한 조치´ ‘국정회의의 전횡´ ‘국정회의의 음모와 술책´ ‘국정회의의 거부권´이라고 달 만큼 국정회의를 향한 루소의 반발은 엄청났다. ●루소의 처절한 ‘대 도그마 투쟁기´ 논쟁은 사실에 근거한 주장간의 공방이다. 최소한의 사실이 주장을 떠받치지 못할 때, 논쟁은 논쟁의 틀을 벗어나 힘 있는 자 일방의 날카로운 칼로 돌변한다.‘황우석 논쟁’과 ‘디 워 논쟁’은 논쟁이 도그마로 변질되는 사회적 시스템의 일단을 보여 줬다. 루소는 도그마의 피해자였다. 교회와 정치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던 시대,‘사회계약론’과 ‘에밀’의 필화는 종교가 법의 이름을 훔쳐 인간의 영역을 재단한 비극적 사례다.“민간 법정이 금지해야 하는 것은 신에 관한 저술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저술”이란 말로 루소는 끊임없이 이 사실을 상기시키지만, 도그마는 더 이상 논리적 옳고 그름에 구애받지 않는다.‘산에서 쓴 편지’는 도망자 루소의 처절한 ‘대 도그마 투쟁기’다.2만 8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51)양주 회암사 지공선사 부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51)양주 회암사 지공선사 부도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회암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이름을 떨친 거찰이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머물게 하고 불사가 있을 때마다 참례토록 한 것은 물론 상왕으로 물러앉은 다음에는 아예 이곳에서 도를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조선이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마당에 왕실의 권위를 등에 업고 번성한 회암사는 더더욱 유생들의 집중 견제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쇠락해가던 회암사는 조선 중기 이후 어느 때인가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회암사터는 1997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요. 발굴 현장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262칸에 이르렀다는 전성기 회암사터의 규모에 놀라게 됩니다.14세기의 대(大)여행가로 새롭게 주목받는 지공(持空·1300∼1363)의 부도는 그가 중창한 회암사가 있는 천보산 중턱에 법제자인 나옹과 무학의 부도와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고려 불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지공은 본명이 디야나바드라(Dhyanabhadra·提納薄陀)로 인도의 마가다국(摩竭提國) 출신입니다. 그는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원나라 수도 연경을 거쳐 충숙왕 13년(1326년)에는 고려에 들어와 ‘환생한 부처’로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3년 가까이 머물게 되지요. 지공은 1328년 연경으로 돌아간 뒤에는 고려인들이 세운 법원사(法源寺)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나옹과 백운, 무학 등이 다투어 원나라로 건너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되지요. 지공의 가르침에는 개혁사상이 담겨 있었던 듯 나옹은 고려 말 개혁정치를 시도한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고, 무학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엽니다. 지공은 1361년 11월 겨울 입적하는데,1368년 원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의 혼란 속에 그의 유골을 네 사람의 제자가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이 고려로 가져온 유골이 회암사와 장단 화장사, 묘향산 안심사에 나뉘어 안치된 것입니다. 마가다국에서 고려에 이르는 지공의 행적은 목은색이 지은 지공의 회암사 부도비명 병서에 자세히 전합니다. 지공은 인도의 동북부에서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오늘날의 스리랑카에 이르는 인도의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인도사(史)는 14세기 초에 이르면 인도의 대부분은 이슬람의 영향권에 들었고, 이를 전후한 시기에 힌두교가 성행하기 시작하였던 반면 불교는 거의 사라졌다고 서술하고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지공의 행적을 보면 적어도 인도의 동부는 당시 불교의 전통이 강하게 존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공은 처음엔 바닷길로 중국으로 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의 미얀마와 말레이반도의 초입까지 진출했다가 돌아선 것으로 짐작되고 있지요. 이후 인도 서부의 사막과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와 운남, 연경을 거쳐 고려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고려에서도 개경에만 머물지 않고 금강산과 양산 통도사에서도 설법을 했습니다. 지공은 티베트에서는 주술사가 독약을 타놓은 차를 마셔야 했고, 하성(蝦城)에서는 이교도들로부터 얻어맞아 이가 부러졌으며,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속하는 대독하(大毒河)에서는 도적을 만나서 알몸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지공의 발자취를 담은 기록은 당시 아시아 각국의 지리와 민속, 종교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지공을 모로코 탕헤르 출신으로 이슬람세계와 중국을 여행한 이븐 바투타(1304∼1368)와 비교되는 대여행가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회암사에 있는 지공의 부도를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dcsuh@seoul.co.kr
  • [08일 TV 하이라이트]

    ●와신상담(EBS 오후 8시50분) 구천은 암응을 제계영 쪽으로 보낸다. 암응 또한 대왕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암응은 당려가 새긴 글자를 통해 구천을 암살하려는 그의 결심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자신과 함께 남은 생을 편히 살자고 설득한다. 당려는 암살 계획을 포기한 듯 구천의 용포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30분) 2007년 최고의 악동들을 다시 만난다.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주먹을 휘두르던 폭력의 절대강자, 다섯살배기 늦둥이. 그리고 낮잠이 몰려오는 오후 2시가 되면 무시무시한 ‘잠과의 사투’를 벌이던, 잠투정 공주를 다시 만난다. 아이들이 방송 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본다.   ●1대100(KBS2 오후 8시50분) 첫 번째 도전자는 김상엽. 역대 최강의 100인 군단을 물리쳐 예비신부인 여자 친구에게 값진 선물을 안길 수 있을 것인가? 두 번째 당찬 도전자는 고시준비생 신국인. 여기에 맞서는,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브레인 고시합격자 100인. 사법고시합격자 50인과 행정고등고시합격자 50인의 팽팽한 도전을 지켜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세계 최대이자 최고인 티베트 고원.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지역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관광객이 급속히 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티베트 민족은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랜 건물 복원에 힘을 쓰고 전통 수공예와 무용, 의상 등이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인간은 일생의 3분의1에 해당하는 긴 시간을 수면으로 보낸다. 잠자리의 필수품이자 동반자가 바로 베개인데, 베개가 맞지 않으면 척추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숙면을 취하기 어려워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과연, 숙면을 유도하는 좋은 베개란 어떤 것일까?   ●김치 치즈 스마일(MBC 오후 8시20분) 집 앞 차 안에서 키스를 하려던 기준과 혜영을 본 신구는 앞으로 결혼전까지 혜영의 통금 시간은 10시라고 잔소리를 한다. 한편, 은숙은 수영과 병진 모르게 2000만원짜리 계를 들고 목돈 받을 날만 기다리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가 계주가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 돈대신 어린애로 받으셔요

    광주(光州)지검 김(金)모검사는 지난15일께 조(曺)모여인(28·송정(松汀)읍)을 영아유기혐의로 입건했는데…. 조여인은 지난해 10월4일 미(美)군 모사병과 동거중 출생한 어린애를 12월24일, 살고있던 경기도 평택(平澤)의 모 전셋집주인 이(李)모씨에게 주어버리고 도망쳤다는 것. 조여인이 어린애를 버린 이유가『이씨에게 줄돈이 있는데 그걸로 대신, 혼혈아를 주었다』고-. -몸도 팔아 살았는데 그까짓것쯤? <松汀里> [선데이서울 71년 5월 2일호 제4권 17호 통권 제 134호]
  • [강유정의 영화in] 미스트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람이라는 것, 그 자체가 괴물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스트’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괴물들이 몰려온다. 사람들이 공포에 떤다. 대개 비슷한 상황들이다. 괴물의 모습이 달라진다. 때론 좀비이기도 하고, 때론 살인마이기도 하며 때론 유전자가 변형된 동물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안개다. 안개의 공포는 그것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영화 ‘미스트’의 전반을 감싸는 공포감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안개가 우리를 포위했다. 그런데 그 안개에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숨어 있다. 그것은 생명체일까 아닐까, 아니 지구상의 것일까 아니면 외계의 것일까. 그런데, 이 영화 ‘미스트’, 만만치 않다. 그 만만치 않음은 영화의 공포가 실은 외재적인 데 있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사람들은 불온한 안개와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겁을 먹는다. 누군가가 괴생물체를 목격했노라고 말하지만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대도시에서 온 똑똑한 변호사에게 사람들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바보로 만든다며 외려 자신의 조직을 구성한다. 바보들을 따돌리고 밖에 나가보자고 말이다. 이 틈을 타서 종교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광신도 주부가 종말론을 외친다. 이 모든 것이 신의 징벌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그녀는 ‘희생양’을 바쳐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생물체라고 믿기 어려운 희한한 괴물들이 그들을 습격한다. 그런데 더 공포스러운 것은 이 미지의 괴물 앞에 선 ‘인간’이라는, 나약하고 간교한 생물체들이다. 그들은 그 작은 공간 안에서 편을 가르고 획책한다. 의견은 사람의 수만큼 갈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성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광신도로 돌변해 살인을 저지른다. 먹을 것이 해결된 ‘마트’라는 공간, 하지만 갇혀 있다는 불안이 준비된 식량으로 달래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공포 그 자체 때문에 공포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결국 선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죽더라도 도망쳐 보는 것, 두 번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마지막은 사이비 종교와 같은 미망에 빠져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 카메라는 죽더라도 도망쳐 보자는 낙관적 행동주의자들을 따라간다. 그렇다면 그들은 탈출에 성공할까? 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괴물이 나타나는 순간 이미 결말이 준비 되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당신이 선택하는 것, 바로 그것이 답이 되리라는 것. 따지고 보면, 미국의 스릴러 영화들은 외계 혹은 미지에서 온 가상의 적들을 많이 그려낸다. 좀비, 외계인, 괴생물체 등등. 가상의 적들로부터의 침공이라는 설정 덕분에 SF라는 장르가, 그리고 특수 효과가 발전되어 왔겠지만 때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미국은 진짜 미국을 침범할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침범당한 역사도, 유린당한 기억도 없는 그들에게 적은 늘 외재적인 것은 아닐까? 스릴러와 미스터리 속에서도 억압당했던 여성과 침략 당한 역사를 재구하는 우리 영화와 달리, 미국의 영화들은 자유롭다. 안개와 함께 안온한 일상에 틈입해 온 괴생물체, 억압이 없는 자들은 미지의 것이 두려운가 보다.
  • [기고] NLL은 하늘에서도 군사분계선/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국제정치학 박사

    평생 국가안보를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은 천만다행이며 국민의 승리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망언으로 무척 걱정했다.30여년 전투조종사 생활 중 1975년 2월 서해공중작전의 비화(秘話)를 공개함으로써 북방한계선(NLL)은 해상뿐 아니라 공중에서도 군사분계선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나는 그때 팬텀기의 조종사였다. 갑자기 참모총장이 작전명령을 직접 하달했다. 요지는 이랬다. 김일성이 NLL의 무효화를 선언한 이래 인천∼백령도를 항해하던 황진호의 운항이 중단됐다. 이에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박정희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이것은 대통령 극비명령이다. 내일 아침 08시를 기해 황진호가 백령도로 출항한다. 북한이 공중공격시 즉각 응징하라. 적함정이 NLL 월경시 공격하라. 적기가 NLL 월경시 격추하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전 항공기가 비상대기에 돌입했다. 낮 동안 적의 공중활동은 없었다. 황진호는 항해를 계속했다. 숨막히는 비상대기도 계속되었다. 밤 11시경 야식을 시작하려는 순간 비상출동 벨이 울렸다. 이륙하자마자 최대속도로 북서쪽으로 향하라는 지시다. 서산 앞바다 상공에 도착하니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비행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악기상에서 탐색에 집중했다.50마일 전방에 수상한 항체를 포착했다. 적기임이 확인됐다. 최대속도로 추격해 40마일-30마일-25마일 접근하면서 나는 모든 무기를 장전했다.20마일로 가까워지는 순간 AIM-7레이더 미사일 방아쇠(Trigger)를 당겼다. 이제 곧 유효사거리가 되면 자동으로 발사되어 적기를 명중시킬 것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투기조종사가 되어 드디어 조국을 위해 충성할 기회가 왔구나. 일격에 격추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극한 상황에서 어린 딸과 아내, 늙으신 어머님의 모습이 순간 스쳐갔다. 그런데 발사 직전 적기가 북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에게도 즉각 선회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NLL을 넘지 말고 내려오라는 명령이었다. 초계비행을 계속했지만 적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귀환 착륙하니 지휘관이 마중을 나왔다.“최 대위 수고했네. 을지무공훈장 감이야.” “적기를 격추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격추보다 더 큰 일을 했다네. 자네가 적기를 격퇴함으로써 우리 임무는 성공했고 황진호는 백령도에 무사히 도착했네. 우리가 이긴 것이야.” 임무 결과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 3시가 넘었다. 만삭이던 아내는 영문도 모른 채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잠이 오질 않았다. 돌이켜보면 NLL 상공에서 공중전이 벌어졌다면 적기를 격추했겠지만 나도 고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국가최고지도자의 결단이 북한의 서해5개 도서에 대한 지배 야욕을 굴복시킨 것이다. 이와 같이 NLL은 휴전 이래 남북한 사이 실질적 군사분계선이자 영토선으로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지켜온 최후 방어선이다. 따라서 NLL을 결코 무력화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 안보에 큰 허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첫째 해상방위뿐만 아니라 영공방위 특히 수도권방위가 무척 어려워진다. 공중위협시 인천국제공항에 항공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도 없다. 둘째, 유사시 서해 5개 도서에 주둔한 장병들과 주민의 안전과 주권 그리고 생업을 보호할 수 없다. 셋째,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이나 한국방공제한구역(KLIZ) 재설정에 커다란 불이익과 위험을 준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NLL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이 순간에도 목숨 걸고 국방에 전념하는 장병들에게 새해인사를 보낸다. 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국제정치학 박사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3) 경남 하동군 청암면 논골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3) 경남 하동군 청암면 논골마을

    지리산 영신봉(1651.9m)에서 남하한 능선은 삼신봉(1289m)을 기점으로 두 갈래로 나뉘는데 동쪽은 낙남정간의 큰 줄기가 되어 김해 신어산까지 가닿고, 서쪽 가지는 형제봉(1115.2m)과 거사봉(1133m)으로 다시 갈래를 치며 그 세력을 확장한다. 형제봉은 신선대를 거쳐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19번 국도)로, 거사봉은 회남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칠성봉과 구재봉으로 각각 나뉜다. 마치 알파벳 U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이 말발굽형 능선은 악양면과 청암면의 경계가 되는데 논골마을은 그 경계 능선의 거의 꼭대기에 자리한 산마을이다. 논골을 달리 답동이라 부르는 걸 보면 이름 그대로 논이 있는 마을쯤으로 넘겨짚겠지만 원체 높은 곳인데다 가구수도 별로 없어 실제 농사를 짓는 집은 한두 집뿐, 작은 채마밭을 제하곤 벌을 치는 일이 주 소득원이다. 악양과 청암의 면계에서 청암쪽으로 치우친 까닭인지 청암의 너른 길(1003번 지방도)과는 달리 악양에서 오르는 길은 드문드문 비포장에다 구불구불 아찔한 산중 도로다. 형제봉∼회남재∼구재봉 또는 칠성봉 종주산행을 하는 산꾼이라면 모두 이 임도를 거쳐야 하는데, 식수가 떨어졌거나 부득이 탈출할 일이 생겼다면 악양보단 논골로 가는 것이 훨씬 가깝고 낫다. 3년 전 처음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올랐다가 산중 너른 터에 안긴 마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오죽하면 지리산 원로 산꾼 성낙건씨의 ‘아내 몰래 연인과 지리산으로 도망가 숨어 살기 좋은 곳 열 군데’ 중 한 곳에 그 이름이 올랐겠는가. 물론 이제는 그 열 곳 모두 세월의 수순대로 그 모습을 달리해 숨어살기 어렵게 되었으니 섣불리 도망가 살 생각은 마시길. 겨우 오후 2시를 넘겼을 뿐인데도 산중의 마을은 온통 잿빛이다. 하늘과 가까운 탓인지 낡은 지붕 위에 내려앉은 구름은 여느 곳보다 더 두껍고 무겁다. 드문드문 대략 10여가구가 흩어져 있는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버려진 마을처럼 고요하다. 한참을 이집 저집 기웃대다 개들에 놀라 뒷걸음질치길 두어 번.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도끼질 소리에 겨우 걸음을 옮긴다.“면사무소 건물을 새로 지어서 다들 거기 점심 먹으러 갔소. 내일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전체 회의가 있어 아랫동네로 음식 장만하러 가기도 했고요.” 7∼8년 전쯤 뇌졸중 때문에 논골로 이주한 정태영(71세) 할아버지는 장작을 팰 만큼 기력이 회복됐다. 장작을 차곡차곡 쌓는 일이 겨울철 유일한 소일거리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나무만 팬단다. 마을을 탈탈 털어 남자는 딱 세 명. 나머지는 할머니들뿐인데 남녀를 막론하고 거의 다 70대 고령이다. 부부가 사는 집도 정 할아버지 댁을 포함, 고작 두 집뿐이라고. “공기 좋고 물 좋겠다, 돈도 안 괴롭고 그저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다만 휴대전화가 안 터져 외지인들이 고생을 하는데, 그럴 땐 괜히 내가 더 미안해지더라고.” 오후 내내 하늘이 우울하다 싶더니 결국 멀리 내려앉은 구름이 쥐어짜듯 눈발을 흩뿌려 놓는다. 할아버지는 두 손을 힘차게 쥔 채 멈췄던 도끼질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또 그 댁 아궁이엔 뜨끈뜨끈 군불 때는 소리가 한가득하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www.mountain.co.kr #가는 길 자가용의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단성IC로 진입해 20번 국도를 타고 중산리 쪽으로 간다. 그 후 삼신봉터널을 지나 하동군으로 접어든다. 혹은 남해고속도로 하동IC로 들어서 청학동 이정표를 따른다. 악양에서도 논골로 갈 수 있지만 초행자라면 초입 찾기가 힘들뿐더러 아직은 길이 좋지 못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구례∼화개를 거쳐 하동까지 가는 버스를 탄다. 하동에서 청학동까지 가는 버스는 있지만 논골을 오가는 군내버스는 없다.
  • [2008 희망지기] 화마 딛고 일어선 이상용 어린이

    [2008 희망지기] 화마 딛고 일어선 이상용 어린이

    “새해엔 용기내서 친구들에게 먼저 손내밀 거예요. 밖에서 야구나 축구도 하면서 힘차게 놀게요.”2일 서울 동작구 본동 이상용(11·강남초교 5학년)군의 집. 겨울방학을 맞은 상용이는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컴퓨터 게임 ‘삼매경’에 푹 빠져있었다. 상용이의 꿈은 임요환, 마재윤과 같은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 스타크래프트 세계에선 또래 그 누구보다 빠른 머리회전과 손놀림이 자신있는 상용이다. ●“트라우마·은따의 상처는 잊을래요” 상용이는 얼굴과 손, 대퇴부와 어깨 등 전신 18%에 3도 화상을 입었다.100% 화상을 입었던 얼굴은 세월의 힘으로 이제 50%까지 줄었다. 화마가 상용이를 덮친 건 2005년 2월14일. 추운 날씨 탓에 거실 소파 옆에 전열기를 틀어놓은 것을 잊은 채 컴퓨터 게임을 하러 방으로 들어갔던 게 화근이었다. 지직지직 타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거실은 이미 까만 연기로 가득 찼다. 간호사로 병원 밤샘 근무를 마치고 안방에서 곤히 잠든 엄마를 깨웠지만 이미 현관으로 빠져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엄마는 불길을 등지고 상용이를 꼭 끌어안았다. 소방대원들과 가족들이 뒤늦게 구출했지만 결국 12일 뒤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투가 시작됐다. 화재가 남긴 트라우마(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상용이에게 잠을 앗아갔다. 악몽에 시달리며 30분 이상 잠을 자지 못했고 깨어나선 20∼30분 동안 괴성을 질러댔다. 심리안정제에 의존해 억지로 잠을 자면서도 괴로움에 몸부림쳤다.6개월 동안 그랬다. 친구들의 ‘은따(은근히 따돌림)’도 견디기 힘들었다. 대놓고 놀리지는 않지만 은근히 상용이를 멀리 했다. 하굣길 학교 앞에 주차된 학원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며 놀려대는 모습을 보고 아빠 이근우(47)씨 앞에서 30분간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엄마 얘기만 나오면 “나 때문에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입을 굳게 다물고 눈가에 눈물만 그렁그렁 맺는다. ●스타크 세계 제패 프로게이머가 꿈 하지만 고통이 남긴 것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선 상용이는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배려심이 깊다. 당초 엄마가 미국에서 치료받고 있는 줄 알고 있다가 1년 전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상용이는 울먹이며 “아빠, 동생에겐 말하지 말아요. 충격받게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외식하러가도 꼭 동생과 아빠 먹을 것을 먼저 챙긴다. 아빠 이씨는 “상용이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정말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전신마비 장애인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있는 힘에서 희망의 빛을 보는 것처럼 기다리면 즐거움은 꼭 오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상용이는 새해에는 좀더 적극적으로 바뀌고 싶어한다.“움츠리지 않고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친절하게 다가가면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거예요. 친구집에 놀러 가서 게임 대전(大戰)도 하고 싶어요.”아직 웃는 모습이 어색하지만 그 누구보다 미소가 환하게 빛난다. 글 사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당선작] ‘여수’에서 식물성의 세계로, 그 타자 찾기 - 한강론/주지영

    1.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서 우리네 일상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경계의 반복적인 명멸과 대면하는 자리에 인간을 위치시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들에 의해 일상의 공간은 구획되고 짜여진다. 주어진 공간의 구획을 넘어서는 순간에도 경계 짓기는 끝없이 지속된다. 안주와 일탈의 길항은 일상의 작은 균열들 속에서 내파되고, 일탈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새로움을 향한 갈망조차 이미 기획된 미시적인 욕망의 파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기에 ‘가지 않은 길’을 향한 욕망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일상을 전복시킬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은 것, 그것이 소설의 운명이 아닐까?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는 루카치의 명제는 소설의 발생론적 배경을 논하는 자리에서 도출된 것이지만, 그것은 현대의 소설이 처한 위상을 거론할 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소설의 문법 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작가의 ‘별빛’이 있어야 하고, 또한 현실사회의 고해를 건너는 ‘모험’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모험을 통한 별빛 찾기, 이를 달리 잃어버린 타자 찾기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인식이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 인간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 같은 불구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끊임없이 벌판을 방황한다. 그 벌판은 근대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화된 불모지이다. 그곳은 산업사회일 수도 있고, 후기산업사회일 수도 있다. 동그라미는 그런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반쪽인 타자(the other)를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쪽을 찾지 못하는 한 동그라미는 영원한 불구자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나서는 고독한 탐험가, 그가 작가이다. 잃어버린 타자는 인간이 황폐화시킨 자연일 수도, 남성에 의해 도구화되어 억압받는 여성일 수도, 도시에 의해 황폐화된 농촌일 수도,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일 수도, 이성에 의해 감금된 비이성일 수도 있다. 소설은 잃어버린 타자를 되찾고 타자와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하지만, 당연히 그러한 지향은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강렬하게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소설이 짊어져야 할 비극적 운명이다. 어떤 타자를, 어떻게 지향하는가, 바로 그 점에서 소설의 색채와 작가가 이뤄내고자 하는 세계는 다른 빛깔을 띠게 된다. 소설사적 흐름에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들은 바로 이 잃어버린 타자를 찾기 위해 모험을 시도했고, 그 모험의 결과로 산출된 별빛들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빛을 밝혀준다. 인간에게 불을 내어 준 프로메테우스가 그 대가로 자신의 심장을 독수리에게 내맡기듯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를 밝혀 줄 소설을 쓰기 위해 벌판을 고독하게 방황한다. 그렇다면 최근 소설에서 프로메테우스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천형으로 짊어지고 가는 작가는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소설의 운명을 포기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고 있지는 않은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매스미디어적 메시지들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소설의 고독한 운명을 방기하고 현상적이고 피상적이며 찰나적인 것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결여한 채 일상에 안주하여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쾌락들을 경탄해마지 않는 그런 소설들을 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프로메테우스의 천형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짊어지고 고독한 방랑의 길을 떠나는 작가가 더욱 고귀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강은 ‘모험을 통한 타자 찾기’에 충실한 작가이다. 한강의 ‘모험’은 현실사회 모순의 해부보다는 그 현실사회에서 불구자로 전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작품은 죽음과 광기, 소통의 법칙을 뒤집는 침묵이나 몸짓, 욕망의 금기를 위반하는 근친상간, 동물성에 대비되는 식물성 같은 언표들을 공적인 영역 속에서 가시화한다. 뼛속부터 밝음의 영역에 속해있던 기획된 욕망들을 삭제하려는 충동질로 가득한 그의 소설에서 인위적인 모든 것들은 부정된다. 제도나 관습 일반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획일화된 것들을 거부한다. 먹고 마시는,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조차 깡그리 부정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들을 힘겹게 터득해 나간다. 폭력적인 일상에 휘둘릴수록 본래의 육체에 깃들이고 있었을 법한 영혼에 대한 갈급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가라앉았던 감정의 앙금들을 분출하고, 토해낼 때 비로소 영혼의 정화는 일단락된다. 의식(儀式)과도 같은 파토스가 지나가고 난 빈 자리에 ‘타자’를 향한 존재의 갈망이 채워진다. 그렇다면 한강 작품에 나타나는 ‘모험’은 무엇이며, 그 모험을 통해 찾고자 하는 ‘타자’는 무엇인가. 초기 작품에서는 죽음의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가 설정된다. 타자의 자리가 설정된 이후 그 타자와의 합일 방법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가면벗기와 맨얼굴 찾기’에서부터 출발하여 ‘언외언과 관의 사유’를 거쳐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1995)에서부터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비평사,2000)를 거쳐,‘채식주의자’(창비,2007)로 전개되는 바,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강 작품의 의의를 탐색하고, 나아가 ‘지금 여기’에 대해 고민하는 소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지평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2. 관념으로서의 여수(旅愁), 행(行)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병적 징후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자살 같은 극단적 행위를 통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한강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죽음은 인간의 육체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죽음은 그 기억 속에 유폐된 인물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인물들이 삶의 영역으로 나오도록 이끄는 통로이다. 그 통로의 끝에서 인물은 좌절과 절망 같은 심리의 장막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타자와 조우한다. 그런데 여기서 작중 인물의 병적 증후나 자살 등을 유발하는 가족의 죽음을 두고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현실에 내재한 모순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죽음의 기억은 인물의 내면에 일상에 적응할 수 없을 만큼의 정신적 상흔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어린 시절 농약을 먹고 자살한 아버지와 동네 아이들에게 매맞아 죽은 동생 진규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질주’의 인규, 생모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녁빛’의 제헌,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동반 자살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심각한 결벽증을 앓는 ‘여수의 사랑’의 정선 등을 보면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부적응이라는 요인을 촉발하는 정신적 상흔으로서 작동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인식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조건을 문제 삼는 쪽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한강의 관심은 불행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드러내는 측면에 놓인다. 따라서 작가는 가족의 죽음을 인물의 기억 속에 저장해 두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용서와 증오 등과 같은 보편적 주제와 연결시킴으로써 특정 시대, 특정한 상황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을 탐색하려 한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 그러한 정신적 상흔으로 인한 병적 징후, 죽음과 같은 음울한 기운이 만연한 일상에의 부적응, 기억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등으로 구성된 서사가 ‘여수의 사랑’ 전편을 관통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를 깔고 작가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둡고 침울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설정된 타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 안에 오롯이 담긴다. 가령,‘여수의 사랑’을 보자. 이 작품에서는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먼저, 정선의 경우. 여수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술에 찌들어 살다가 결국 정선과 어린 동생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꾀한다. 혼자 살아남은 정선은 서울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정선은 서울을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이 만연하고, 온갖 병균이 득실한 곳으로 여긴다. 그곳에서 정선은 ‘결벽증’과 같은 병적 증세에 시달린다. 다음 자흔의 경우. 그녀는 두 살 때 서울역에 버려져 고아가 된 뒤 보육원 생활을 거쳐 입양이 된다. 돈에 대한 욕심도, 행동거지에 조심성도 없다.‘모든 것을 생각 없이’ 다루는 그녀는 아무 희망도 없이 도시를 옮겨 다닌다. 자흔은 일상의 ‘나’와 또 다른 ‘나’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핏기가 없는 데다가 입가와 뺨에 온통 하얗게 버짐이 피어 흡사 분가루를 뒤집어쓴 광대 인형’ 같은 것이 일상의 ‘나’이고, 늘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사에 무관한 채 ‘견고한 평화가 어른거리는 얼굴’,‘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천진한 영혼’을 가진 것이 또 다른 ‘나’이다. 또 다른 ‘나’는 여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고향도 모르는 자흔은 성인이 되어 문득 찾게 된 여수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수를 고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로 거듭 태어나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수는 풍경이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품은 공간으로 인식된다.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 온갖 병균으로 득실한 ‘서울’에 대비되는 여수란 과연 어떤 곳인가. 길 여기저기에 소들이 쟁반만 한 똥을 갈겨놓은 진짜 시골이었어요.(중략) 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 앞 버려진 부두에는 누더기 같은 천막이며 더러운 판자때기들이 뒹굴고, 검푸른 물결은 갯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가 밀려가고……염소 울음 소리, 새소리, 바람, 두엄 냄새, 일하는 아낙네들……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낯익은 것이 없었는데도 마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았어요.(‘여수의 사랑’,50∼51쪽) 따뜻한 산수화 한 폭을 보고 있는 듯한 여수의 풍경은 자흔에게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으로 각인된다.‘푸른 실 하나하나를 촘촘히 엮어 놓은 것같이 잔잔한 만’에 염소 울음소리와 새소리가 있고, 바람이 불고, 두엄 냄새가 나며, 그런 자연적인 것들과 어우러져 백발 성성한 노인과 머릿수건을 쓴 아낙네, 상고머리 소년들이 일을 하는 곳,‘무덤’마저 ‘착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곳, 그곳이 바로 자흔의 기억 속에 자리한 ‘여수’이다. 고향도 모른 채 고아로 자란 그녀에게 여수는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숨쉰다. 여수로 표상되는 이 세계야말로 자흔에게 인간다운 삶을 가능토록 하는 타자이다. 그녀가 여수를 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도시의 삶을 견디기 위해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녀가 물고기 키우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자신이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이다.“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물고기가 되고자 하는 일이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로 흘러들어 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일상의 ‘나’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와 일체가 되고자 하는 또 다른 ‘나’를 지향하는 자흔을 통해, 정선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상흔으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정선에게 죽음의 기억이 서린 여수는 병적 증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자흔은 그런 정선에게 여수를 이야기하고, 그럴 때마다 정선의 결벽증은 심해진다. 그러다가 정선은 차츰 자흔을 통해 환기되는 여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자흔이 그녀의 곁을 떠나자 정선 역시 여수행 기차를 탄다. 정선의 여수행은 자흔처럼 일상의 ‘나’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여수를 사랑하는 ‘나’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여행이다. ‘여수의 사랑’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타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작가가 천착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인간은 불행한 존재다.’라는 관념의 영역에서 설정된 것이어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리얼리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여수’라는 타자가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몸피를 얻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 심화되어야 하며, 더불어 그렇게 얻어진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탐구해 들어가야 한다. 3. 맨얼굴에 담긴 관(觀)의 사유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타자’가 되기 위해 작가의 인식이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어둠의 사육제’와 ‘아기부처’에서 이뤄진다. 이들 작품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주력한다. 그 방법은 ‘가면 벗기를 통한 맨얼굴 찾기’와, 용서라는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관’의 사유로 구체화된다. ‘어둠의 사육제’를 보자. 먼저 주목할 것은 ‘서울’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이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전히 ‘어둠’이자,‘인간들의 더러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무덤’으로 인식한다. 죽음의 기억이 이러한 인식을 이끌어내었던 초기작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서울의 구체적 현실에 천착하여 그 속에 내재된 동물적 폭력성을 감지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인식이 현실에 밀착해 있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을, 번들거리는 눈과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를, 그 이상 철면피할 수 없을 되바라진 억양을 묵묵히 관찰하며 나는 연민이나 환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슬픔에 사로잡히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0쪽) 중년 여자는 자신의 얼굴을 실수로 때린 여대생에게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전철에서 뻔뻔스럽게 자리 양보를 요구한다. 비단 중년 여자뿐만이 아닌 이 작품의 여러 인물들에게서 모두 감지되는 동물적 폭력성은 이후 전개되는 한강의 소설에서 현실 인식의 한 증좌가 된다. 나(영진)와 인숙 언니는 같은 고향 사람으로 둘 다 서울로 상경한다. 영진은 ‘세상에 대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인숙 언니는 ‘커다랗고 감정이 풍부했던 눈이며 부드럽기만 했던 입매’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로 올라와 변화한다. 여직공이던 인숙은 ‘거친’ 말씨를 내뱉고 ‘나쁜 쪽만 생각’하는 ‘독한 사람’으로 변한다. 무역회사 경리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 영문과에 진학할 생각을 하던 영진은 인숙이 전세금을 빼들고 도망가자,‘악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품고 ‘인간에게 살의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한다. 명환 역시 ‘본래 선한 사람’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모든 인간들에게 살의’를 품는다.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 전세금을 갖고 도망간 인숙이나, 그 인숙으로 인해 ‘독기’를 품은 ‘나’나, 돈으로 용서를 구해온 가해자에게 복수를 꾀하는 명환이나, 모두 중년 여인처럼 동물적 분노와 보복심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어둠 속에 꼿꼿이 네 발을 세운 채로, 경련하는 암고양이의 모습을 소리없이 주시하고 있는 검은 수고양이의 모습은 흡사 악령 같았다.(‘여수의 사랑’,223쪽) 쥐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고양이를 냉혹하게 주시하는 악령 같은 수고양이는 동물적 폭력성이 난무하는 현실을 환유하는 장치이다. 영진과 인숙, 명환 등은 바로 이 동물적 폭력성에 길들여진다. 이러한 동물적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가면을 벗음으로써 맨얼굴을 찾는 것이 그 첫 번째 방법이다. 동물적 복수심으로 남을 괴롭혀 온 명환이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빈손’,‘완전한 빈 몸뚱이’가 되기 위해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영진 역시 그런 복수심을 버리고 간암 치료를 받는 인숙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가면 벗기와 맨얼굴 찾기가 이뤄진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객실의 음산한 풍경 속에 내 얼굴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나는 그 가면 같은 얼굴을 뒤집어쓴 사람이 더 이상 눈물 따위를 흘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1쪽)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상에 길들여진 자들의 뻔뻔스러운 얼굴을 표상하는 ‘가면 같은 얼굴’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인 동물성을 표상하는 수고양이의 것에 가깝다. 작가는 가면을 쓴 비정한 일상의 인간들에게서 발견한 물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 가족이기주의와 같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의 목록에 등재한다. 동물적 폭력과 복수심에 길들여진 일상의 가면을 벗고 또 다른 ‘나’의 맨얼굴을 획득할 때 비로소 용서와 화해를 품을 수 있고, 또한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하다. 요컨대, 맨얼굴 찾기가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일차적 방법인 셈이다. 맨얼굴로 도심의 일상에 나서는 영진에게서 현실을 향한 적극적인 대응 의지가 엿보인다. ‘어둠의 사육제´가 동물적 폭력성이 길들여진 가면을 벗고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맨얼굴을 되찾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아기부처´는 그 맨얼굴이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를 ‘언외언(言外言)´과 ‘관(觀)´의 사유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주인공 선희는 프라임타임의 앵커인 남편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다. 남편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 흉터를 감추려고 철저하게 긴 옷을 입는다. 선희가 감기에 들자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병원에 가보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그는 말실수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고, 독단적인 인물로서 출세를 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선희는 처음엔 남편의 흉터를 보고 고됐을 그의 삶을 연상하지만, 결혼 후 이기적이고 권위적이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남편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남편의 화상 흉터를 싫어하게 된다. 자신의 흉터를 보듬어 줄 사랑을 찾아 남편은 외도를 하고 선희는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나는 한갓 짐승이었다. 땀에 젖어 산비탈에 엎드린, 누더기 같은 한겹 가죽만 남은 병약한 짐승이었다. 그 가죽 안에서 악취나는 거품처럼 부글거리고 있는 것은 오래 묵은 분노와 후회와 증오, 억울함과 자책감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들이 내 살을 속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식시켜 왔다(‘내 여자의 열매’,111쪽) 현실의 동물적인 폭력성에 선희는 철저히 희생당한다. 그 결과 남편과 세상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쌓아간다. 그렇지만 분노와 증오는 앞서 ‘어둠의 사육제’의 인물들처럼 스스로를 동물적 존재로 만들 뿐이다. 그런 동물적 삶으로 인해 선희는 황폐해져 간다.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선희의 모습은 꿈 속 아기부처의 얼굴에 비춰진다. 아기부처가 짓는 표정들은, 음흉한 입꼬리와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거나, 차갑게 빈정대는 눈꼬리를 한 그녀의 내면과, 진흙이 끈적이며 달라붙기도 하고, 모래가 되어 부서지기도 하는 남편과의 현재 관계를 거울처럼 되비친다. 아기부처의 얼굴은 선희가 병약해가는 것이 “마음속에 맺힌 악취 나는 감정들” 때문임을 깨닫게 하는 경고의 스크린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기부처로부터, 동물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나 몸짓’ 속에 현현하는 ‘언외언’에 있다.‘몸짓’으로서의 ‘언외언’은 ‘말’이 야기하는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남편, 어머니, 아기부처와 선희는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소통함으로써 화해한다. 어머니의 불화 그리기, 아기부처의 얼굴 빚기, 혹은 언어 장애 아동을 위한 삽화 그리기 등이 ‘언외언’의 도정에 가로놓인다. 아이, 까르르 웃는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외친다. ‘가자!’ (중략) 아이의 손을 번쩍 들게 하고 엉덩이도 약간 띄워서 아이가 펄쩍 날아오르는 것처럼 해야겠다. 아빠의 몸까지 함께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해야겠다.(‘내 여자의 열매’,102쪽) 언어장애아동처럼 언어를 거부하는 것은 말의 논리와 체계, 즉 말을 배우면서 사회로 편입되는 사회화과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일상 현실의 ‘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아버지의 노력에 힘입어 자기 안의 성벽을 허물고 드디어 입을 연다. 선희는 그들이 느꼈을 법한 기쁜 감정을 몸짓에 담아 삽화로 그려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의 “날아오르는” 듯한 몸짓에 ‘기쁘다’는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이 담긴다. 삽화를 그리며 깨닫게 된 ‘언외언’은 남편의 흉터를 어루만지는 몸짓에 담긴다. 남편이 다른 여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머리를 짓찧을 때 선희가 남편의 머리를 감싸안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몸짓’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말’ 그 자체에는 은폐된 ‘무엇’이며,‘침묵’의 빈 공간에, 말없이 이루어지는 ‘몸짓’ 속에 실재한다. 결국 언표화 되지 않는 마음을 환기시키는 방법은 ‘언외언’에 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인가. 이 작품에서 ‘언외언’의 심층을 ‘관(觀)’의 사유가 가로지른다.‘말’의 폭력성 때문에 갇혀 있던 용서와 화해의 마음은 ‘관’의 사유에서 풀려난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나누는 구분 자체를 초월한 곳에, 그리고 속물적인 욕망을 넘어선 자리에 “관”의 사유가 존재한다. 일상을 지배하는 논리규범에는 담길 수 없는 진정한 마음이 “관”의 사유 속에서 우러나온다. (i)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내 여자의 열매’,104쪽) (ii) 관음의 입술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귀가 퍽이나 예민한 이인가 보았다. 빗소리를 듣다가 깨달음을 얻었고, 늘 세상사람들의 소리를 관(觀)하고 있어 괴로이 부르는 음성을 듣는 즉시 곧 구제해 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내 여자의 열매’,105쪽)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마음속에 관세음보살을 잉태하듯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마음을 잉태하는 것, 그럼으로써 일종의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관’의 사유이다. 선희는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부부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남편의 모습은 실은 화상을 입은 그의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정작 남편의 마음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 밑에 고통스럽게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목련(木蓮)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올려다보자, 하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 봉오리들은 마치 꽃잎 안에 흰 등불들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117쪽)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겨울 나무에서 봄의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겨울부터 저 날카로운 솔잎들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같은 푸른색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방금 나온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었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내 여자의 열매’,125쪽) ‘아기부처’의 마지막 장면이다. 겨울 지나 봄으로 가는 문턱에서 자연을 보고 느낀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같은’ 푸름에서 ‘다른’을 간취하고, 겨울부터 ‘지속’되는 것들 가운데 ‘방금 나온’ 생명의 시작을 발견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진다는 획일적인 공식이 아닌, 한 나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색의 잎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긍정하는 사유, 앙상한 겨울나무에서도 미세한 생명의 떨림과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그것이 바로 ‘관’의 사유이다. 이 관의 사유를 마음속에 지닐 때,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의 삶을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다.‘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잠언과 같은 감탄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4. 식물성을 향한 욕망의 존재론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서의 맨얼굴과 ‘관’의 사유는 작가가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 현실의 삶에 뿌리내리면서 발견한 중간 경유지이다. 이 방식들은 의식의 층위, 마음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층위는 평면의 동심원에서, 외원을 이루는 동물적 폭력성이 강렬한 외파로 밀고 들어올 때 위태롭게 흔들리는 내원과도 같다. 그 어떤 외파도 견딜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과 마음이라는 동심원의 평면 저 아래 깊은 심연에 자리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그것을 심화시켜야 한다. 요컨대 타자와의 합일을 향한 무의식의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 그래서 의식의 수면을 꿰뚫을 정도로 강렬하다면, 그럴 때 현실의 외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한강은 ‘내 여자의 열매’를 거쳐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연작에 이르는 도정에서 욕망의 영역으로 작가 인식을 심화시킨다.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이 순간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 무의식의 심연에 자리한 욕망의 영역이 설정되고, 그 결과 관념에 지나지 않았던 ‘여수’ 대신 ‘식물성’의 세계가 새로운 타자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 타자는 여수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실 저 너머의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자,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 타자이다. ‘내 여자의 열매’는 식물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식물적 상상력이 길어내는 삶의 진실은 그 힘이 아직 미약하다. 현실도피의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일상이 싫어서, 도심의 똑같은 아파트가 싫어서, 지긋지긋한 피를 갈고 싶어서, 어머니처럼 되기 싫어서, 어디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어서 결국 식물이 된다는 가정이 단순한 현실도피를 방증한다. 그리고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인물의 욕망 역시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식물성의 세계를 강렬히 욕망하는 인물에 의해 식물성의 세계가 온전히 개화하는 작품은 ‘몽고반점’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와,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근친상간을 예술적 시선과 현실 윤리의 시선 속에서 포착해낸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처제의 욕망과 그의 욕망이다. 우선 처제의 욕망을 보자. 그 욕망은 그의 눈에 포착된 몽고반점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채식주의자’,101쪽) 처제의 몽고반점은 ‘순수성’ 혹은 ‘순수한 영혼’을 표상한다. 곧 ‘어린아이’처럼 처제는 일상의 폭력성에 물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붓칠에 의해 ‘순수한 영혼’이 육체에 새겨진 ‘몽고반점’으로 가시화된다. 꽃을 그려 넣는 행위는 폭력적인 일상에 의해 상처받은 인간의 몸에 ‘순수한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식물성을 부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처제는 “뱃속의 얼굴”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낸다.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은 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진정한 욕망을 의미한다. 뱃속의 얼굴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 까닭은 일상의 질서에 자신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날 때 그 얼굴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처제는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가시화한 꽃 그림에 힘입고, 그녀 자신에게 내재해 있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함으로써,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로 풍겨 나오는 처제의 “배냇내”는 타자와의 합일이 뿜어내는 식물성의 ‘향기’인 셈이다. 몽고반점, 즉 꽃잎 그림자로서의 순수한 영혼과, 몸 혹은 꽃으로서의 진정한 욕망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세계, 그것이 ‘색채의 세계’로서의 식물성의 세계이다.“색채의 세계”는 “격렬한 세계”이자,“마술적” 세계이고,“전혀 다른 세계”이다. 식물성에 대비되는 동물성의 세계는 일상에 만연해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함축한다. 그것은 육식성, 적자생존, 약육강식 등으로 점철된 일상이자 문명의 세계를 표상한다. 반면에 식물성은 순수성과 공존의 세계이자, 가족의 윤리마저 붕괴되는 탈일상이자 탈문명의 세계로 압축된다. 인간의 몸과 꽃, 그리고 짐승이 뒤섞인 교합에서도 드러나듯, 식물성의 세계는 “추악하면서도 아름답고” 동시에 “삶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고,“모든 것이 담겨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곳”이기도 한, 차별상을 가진 일체의 것이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인 것이다. 하기에 처제가 욕망하는 식물성의 세계는 처제와 형부의 불륜관계처럼 제도의 금기마저 초월한 곳에 있다. 현실 제도의 금기를 위반하는 욕망이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죽음’과 ‘광기’의 영역 안에서이다. 곧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은 금기의 위반에서 맛본 죽음과도 같은 향유(jouissance)를 안은 채 죽음을 향해 돌진할 것인가, 아니면 ‘광기’로 내몰려 사회로부터 배제당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건 모두 일상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귀결로 치닫는다. 처제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치열하게 표출한다. 그렇다면 그의 욕망은 어떠한가. 그의 욕망은 육체적 욕망과 예술적 욕망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동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모되고 찢긴 인간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강직한 성직자”로 불릴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러다가 처제의 자해사건을 겪으면서 그가 작업했던 것들 역시 일상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그가 찾았던 “더 고요한 것, 더 은밀한 것, 더 매혹적이며 깊은 것”으로서의 실재를 현현하고 있었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에게 이미지가 갖는 재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그는 지금까지 작업해 온 일상의 폭력성을 담은 이미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했든 간에 상관없이, 실재의 고통과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한계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용솟음치는 욕망과 대면할 때마다 현실과 욕망의 경계 선상에서 그가 느꼈을 법한 환멸과도 같다. 그는 근친상간이라는, 현실의 금기를 위반하며 욕망의 극단에 잠시 도취된 결과, 잡으려 했던 욕망의 실재가 허망하게 스크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의 욕망은 처제가 보여주었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욕망의 시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욕망은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자신의 육체적 쾌락 앞에 예술적 욕망을 무릎 꿇린 결과를 낳고 만다. 여기서 ‘그’의 욕망을 작가 한강의 글쓰기의 욕망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제와의 근친상간을 통한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애초의 글쓰기의 의도이다. 이 의도대로라면, 작중 인물은 ‘그’와 처제만으로 충분하다. 두 인물의 근친상간을 담은 캠코더의 화면처럼, 근친상간 그 자체만을 다루면서 식물성의 세계를 오롯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본래 기획이고,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실에서나 가능하다. 그것이 공적인 장으로 나올 때(발표될 때), 현실로부터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로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비난을 피하고, 작가가 생각한 본래의 의도를 어느 정도 형상화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내’이다.‘아내’는 현실 사회의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윤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아내’의 등장에 의해 ‘그’와 ‘처제’의 근친상간은 작품 속에서 불륜으로 비판된다. 작가는 ‘아내’를 작품 결말 부분에 등장시켜 이 작품이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이라는 비판을 비껴나가게 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본래 지향하는 예술(식물성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의 측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한편으로는 작가 한강의 영민한 균형 감각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화한 예술을 공적 영역으로 드러내기에는 아직도 현실의 억압과 금기가 완강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비판 의식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본래적 욕망과 안전장치가 균형을 이루면서,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연작이다. 이들 소설에서 영혜라는 인물은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 속에서 포착된다. 세 인물은 각각 독특한 인물형을 표상하며, 그 인물형이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낸다.‘채식주의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나)은 속물을,‘몽고반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부(그)는 예술가를, 그리고 ‘나무불꽃’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언니(그녀)는 일상에 함몰되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을 표상한다. 그들은 모두 길들여진 욕망에 사로잡힌 채 진정한 욕망을 추구하려는 영혜를 경계 밖으로 일탈한 인물로 취급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광인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영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욕망을 지켜내려 한다. 연작에서 교직된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인식하는가. 혹시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욕망이란 ‘광기’와도 같은 것, 정상의 영역을 벗어난 것, 그래서 죽음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영혜는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런 영혜에게 작가 한강의 깊고 고통스러운 숨결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한강의 고민이 바로 진정한 욕망의 탐구 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5. 텍스트의 독법, 타자를 향하여 한강의 소설은 탄탄한 서사구성으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 텍스트 간의 긴장관계까지도 탄탄하게 조여 낸다. 그런 까닭에 한강의 소설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서 파악하는 독법이 필요하다. 일종의 텍스트 간 소통의 재구성 방식이다. 그 하나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방식.‘여수의 사랑’에서 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둘, 둘 이상의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 보기.‘저녁빛’이나 ‘진달래능선’,‘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서로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듬어주는 중층적인 시선들이 교직된다.‘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식물 되기를 꿈꾸는 인물의 내면을 편지 형식으로 삽입하고 지켜보는 시선에 남편을 배치한다. 셋, 동일한 사건을 겪는 인물들의 다중초점화.‘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이 만드는 연작 형식.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채식주의자’는 그녀의 남편의 시선에,‘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선에,‘나무불꽃’은 언니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영혜를 바라보는 중층적인 시선들을 세 작품에 나누어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식물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영혜의 욕망을 보여주고, 그녀의 욕망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부각시킨다. 더불어 텍스트마다 화자를 바꾸어 조명함으로써 각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 결과 각 인물들은 세 텍스트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선에 의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지금, 이곳’의 리얼리티를 무수히 직조한다.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꿈꾸는 ‘여수’에서부터 출발하여 ‘채식주의자’ 연작에서 영혜가 꿈꾸는 ‘나무 인간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강의 소설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게 결여된 빈 공간이자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지난한 행보를 보인다. 한강은 그러한 타자와의 합일을 지향함으로써 폭력적인 일상 속에서 위협당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를 보듬고자 한다. 작가 한강이 어두움의 세계, 즉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들에 은폐되어 있는 죽음, 성, 욕망 등을 공론화의 장으로 내어 놓고, 그럼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값진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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