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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FO와 美공군기 도심서 한때 추격전”

    “UFO와 美공군기 도심서 한때 추격전”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도시 한복판 상공에서 미국 공군과 UFO간의 추격전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모으고 있다. 미국 신문 이그재미너(examiner.com)의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18일 텍사스 주 샘휴스턴 동쪽의 한 공원을 지나던 행인들은 하늘에서 약 30초간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떠 있는 비행물체를 목격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UFO로 추정되는 이 비행물체는 한 자리에서 수 십 초 머무른 뒤, 마치 ‘점프’ 하듯 한번에 20~30마일 가량을 이동했다. 목격자들은 미확인비행물체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 공군이 C-5, C-17 등 수송기 2대를 이끌고 출동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세 비행기는 삼각형 형태를 이루고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수송기들은 대형을 유지한 채 점프하듯 빠르게 이동하는 비확인비행물체를 쫓아 빠르게 비행했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 목격자는 “공군의 비행기 2대는 강하고 밝은 빛을 내뿜으며 맹렬하게 추격하는 것 같았다. 도망치듯 이동하는 또 다른 비행물체는 기체 전체에서 오렌지 빛이 반짝였다.”고 말했다. 미군기 와 UFO사이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 공군 측은 어떤 공식 답변도 내놓지 않은 가운데, 이 같은 주장은 미국에 기반을 둔 미확인비행물체(UFO) 조사단체인 MUFON(Mutual UFO Network)이 지난 21일 이를 공식 게재하면서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신경숙 “고되지 않은 삶이 있겠어요? 문학이 삶의 균형 맞춰줬으면”

    신경숙 “고되지 않은 삶이 있겠어요? 문학이 삶의 균형 맞춰줬으면”

    1990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란 드라마가 있었다. 요즘 여성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답은 ‘도우미 아줌마’다. 남편은 바쁘고, 자식마저 엄마를 귀찮아하면 여성은 도우미 아줌마와 소통하며 위로를 얻는다. 신경숙(48) 작가의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 펴냄)에도 이런 세태가 담겨 있다. ‘모르는’에는 작가가 지난 8년간 세 편의 장편소설을 쓰는 동안 “정말 쓰고 싶어서 쓴” 7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인간 내면의 깊은 심리를 파고들었던 소설은 서사가 풍부해졌다. 초기 단편에 자주 등장하던 말줄임표는 사라졌다. 특히 제일 먼저 실린 ‘세상 끝의 신발’은 6·25 전쟁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수십 년을 압축한 단편이다. 10대 학도병이 등 뒤의 총부리를 피해 도망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눈발 속에 얌전히 놓인 신발 두 짝의 이미지로 마무리된다. 촘촘하면서도 정교한 서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문체는 국어교과서에 실린 걸작 단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모르는 것과 교류 폭 넓어져 나이 먹는게 좋아” 지난 23일 서울 평창동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같은 시대를 산다는 건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은연 중에 깊은 영향을 끼치면서 사는 것”이라며 “모르는 사람들이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표제작인 ‘모르는 여인들’은 아픈 남편과 아내를 둔 여자와 남자 이야기다. 여자는 첫사랑이었던 남자의 아내가 도우미 아줌마와 주고받은 메모를 읽게 된다. 살림살이에 대한 지시사항과 쇼핑 목록이 담겨 있던 메모는 몇 달 뒤 두 여자의 우정 어린 편지로 바뀐다. “힘이 들면 작품을 쓴다.”고 말하는 작가는 어느새 26년째 소설을 쓰고 있다. 슬럼프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모르고 지냈다며 글이 잘 안 써지면 이야기의 내면화가 덜 된 상태라고 받아들였단다. 생의 이면에서 빛나는 후광을 발견해내는 것이 문학이고 말을 잘 못해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다. 해외 31개국에 판권이 팔린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관련한 긴 해외 행사를 최근에서야 마친 작가는 “모국어란 살 냄새와 똑같다. 그걸로 최상의 작품을 쓸 뿐이고 그 다음 일은 여러 가지 상황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 실린 또 다른 단편 ‘화분이 있는 마당’은 갑작스러운 남자의 이별 통보에 먹지도 못하고 말도 잃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의 말과 식욕을 되찾아주는 것은 모르는 익명의 존재에서 더 나아간, 실제로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유령이다. 유령이 차려준 오이 무름, 가지무침, 백김치, 미역찬국, 애호박새우젓나물 등이 놓인 밥상을 받고 여자는 삶의 한고비를 자연스레 지나간다. ●“모국어란 살냄새… 그걸로 최상의 작품 쓸 뿐” “고되지 않은 삶이 있겠어요? 다들 우울하고 고독하고 거기다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삶 쪽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지금은 소통이 필요한 때죠. 너무 ‘인간’과는 반대되는 쪽으로 치우친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문학이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모르는 여인들’에는 ‘서른이 되기 전에 나는 서른이 지난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했다’는 문구가 나온다. 그리고 조물주가 인간에겐 생명을 삼십 년만 주었는데 너무 짧다고 슬퍼하자 할 수 없이 짐승들의 생명을 덜어와 보태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깐 서른 이후의 인간의 나이에는 소가 내놓은 십 년, 돼지가 내놓은 오 년 등이 뒤따라 다니는 것이란 이야기다. 신 작가는 “지금은 나이 먹는 게 좋다. 모르는 것과 교류하는 게 더 넓어지고 겁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나이 먹는다는 건 모르는 것을 받아들인 폭이 넓어진다는 이야기”라고 나이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밝혔다. 26년간 문학의 본령을 지키며 자기만의 언어의 세계를 더 확장시키고 성숙시켜온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복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맥도널드 몰래 들어가 햄버거 만들어 먹은 대학생

    맥도널드 몰래 들어가 햄버거 만들어 먹은 대학생

    20대 청년이 새벽에 맥도널드 매장에 들어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고 도망갔다. CCTV에 찍힌 자신의 얼굴이 TV에 공개되자 청년은 자신이 햄버거사건의 범인이라며 경찰에 자수했다. 청년은 어엿한 대학생이었다. 이상한 사건이 발생한 곳은 미국 아이오와 주의 시더 폴스라는 도시. 위틀리 테슬로 앨런이란 이름의 청년이 괴상한 행각을 벌인 건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새벽이다. 청년은 맥도널드 매장에 들어가 재료를 찾아내 햄버거를 만들었다. 튀김기계를 켜고 감자튀김까지 만들어 곁들여 먹었다. 그가 맥도널드에서 열심히 햄버거를 만들고 감자를 튀겨내는 모습은 CCTV에 고스란히 잡혔다. 그때 시간은 새벽 1시55분이었다. 청년은 햄버거를 여럿 만들어 배부르게 먹고 청량음료를 한 컵 들고 매장을 빠져나갔다. 계산대에 있는 돈은 한 푼도 건들지 않았다. 청년은 그러나 3일 만에 경찰에 자수했다. 괴상한 햄버거 범죄를 낱낱이 포착한 CCTV 기록이 아이오와 현지 TV KWWL를 통해 공개되면서다. 가까운 곳에 24시간 문을 여는 또 다른 맥도널드 매장이 있지만 청년이 굳이 닫힌 곳에 잠입해 직접 햄버거를 만들어 먹은 이유는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다. 청년의 자수 소식은 23일 보도됐다. 사진=KWWL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인신매매·장기적출… SNS ‘무한 괴담’

    최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는 괴담이 점입가경 수준에 이르고 있다. 경찰은 최초 누리꾼을 색출하기 위해 수사에 나섰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전남 순천에서 ‘인체의 장기를 적출하려는 여고생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있다’는 괴담이 확산되고 있다. 후속 괴담은 ‘중국인 인신매매단이 여고생 3명을 잡아갔는데, 1명은 죽고, 2명이 실종됐다’, ‘경찰이 학부모들에게 처음 본 사람이 준 음료수는 마시지 말고, 야간통행을 조심시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등이다. 그러자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는 구체적인 납치 장소와 피해 학생들의 이름과 학교명까지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자신이 인신매매를 당할 뻔했으나 겨우 도망쳤다는 경험담까지 등장했다. 또 중고교생들 사이에서는 “공원에서 장기가 노출된 여고생 시신이 발견됐다.”, “호수공원에 시체가 떠올라 경찰이 출동한 것을 목격했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돌고 있다. 괴담이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기정사실화되자 이를 확인하려는 학부모들이 경찰서와 언론사에 하루 수십여통씩 문의전화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부모 김모(41·연향동)씨는 “중학생 딸이 여고생 시체 운운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불안해서 저녁 시간에 학원 보내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순천경찰서 관계자는 “납치, 유괴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고 여고생 시체가 발견된 적도 없는데 헛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얼마 전에는 ‘국도에 승합차를 세워 놓고 해산물을 싸게 팔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해산물에 중국산 고성능 마취제가 뿌려져 있어서 냄새를 맡으면 그 자리에서 뻗는다’는 괴담도 등장했다. 괴담은 충남 등지에서 퍼지다 수그러들더니 요즘에는 수도권 도심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순천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사건inside](9) 7년만에 발견된 성병, 20세 청년에게 무슨일이…‘전주 무속인 성추행 사건’

    [사건inside](9) 7년만에 발견된 성병, 20세 청년에게 무슨일이…‘전주 무속인 성추행 사건’

     소년은 겁에 질렸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은밀한 손길을 뻗쳐오는 아버지의 친구는 13세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1년 반에 걸쳐 변태 성도착자에게 몹쓸짓을 당하면서도 소년은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7년이 지난 후에야 50대 무속인의 일그러진 성욕이 빚어낸 ‘전주판 도가니 사건’의 잔인한 진상이 밝혀졌다.    ●무속인의 일그러진 성욕, 13세 소년에게로…  무속인 허모(54)씨. 그의 범행은 200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밤, 자정이 가까울 무렵 그는 친구의 집을 찾았다. 술이나 한잔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에는 A군 혼자뿐이었다. 이를 본 허씨는 딴생각을 품었다.  “아버지가 집에 안계시는구나. 잠깐 이리와 보겠니.”  첫 성폭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안방에서였다. 허씨는 놀라 달아나는 A군을 붙잡아 반복해서 몹쓸짓을 했다. 공포의 순간이 이어졌지만 A군은 허씨와 있었던 일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평소에도 ‘무당’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왠지 무서웠던 아빠 친구가 그날은 악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후 허씨는 공포에 질린 A군을 2005년 11월 말까지 1년 6개월여 동안 총 12번에 걸쳐 성폭행했다. A군에게는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여기서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이 사건에서 허씨는 A군에게 강제적인 성폭행을 가했지만 혐의는 강제 추행만이 적용됐다. 피해자인 A군도, 가해자인 상대도 같은 남자라는 이유에서다. 우리 사회의 성폭행 처벌 규정은 동성간 적용에는 커다란 허점을 안고 있다.  거듭된 성폭행에 지친 A군이 허씨를 피해 도망다녔고, 허씨도 더 이상 A군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사건은 잊혀져가는 듯 했다.  그러나 범행으로부터 7년이 흐른 지난달, 성인 A군은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신체검사를 받다가 성병인 매독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됐다.  “군 입대 전에 이상한 곳에 갔었나?”  “절대로 그런 적 없었습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A씨는 7년 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털어놨다. 군은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렸고 허씨는 경찰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일부 매독은 잠복기가 무려 10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이형래 강동경희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매독은 처음부터 증상이 나타나는 1·2기 매독과 일정기간의 점복기를 거친 뒤 발현되는 3기 또는 잠복매독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서 “특히 잠복매독은 증상이 전혀 없거나 본인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아마도 A군은 잠복매독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몸속에 남은 성추행의 흔적…하지만 현실은  경찰은 지난 16일 허씨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최근 강화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아닌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 데다 그의 범행 12건 중 대부분 사건이 공소시효(7년)가 지났다는 게 기각 이유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시간이 많이 흘러 피해자 진술 외에 다른 증거를 찾기 어려운 데다 허씨가 범행 일체를 시인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 합의 의사를 갖고 공탁금을 낸 점 등이 영장 기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동이나 청소년기에 당한 성 범죄는 피해자의 인격 형성에 막대한 악영향을 주는 준(準) 살인행위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법률적으로 맹점을 지닌 개정 이전의 법률을 기준으로 처벌해야 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은 “몸의 상처와 병은 치료되겠지만 A씨가 어린 시절 당한 충격을 어떻게 씻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면서 “기각이라는 결과가 그에게 두번의 상처를 준 건 아닌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에서 허씨는 자기의 변태적인 성도착을 부인 탓으로 돌렸다. 부인이 다른 남자와 외도를 했고 그 좌절감 때문에 양성애를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며 자기 죄를 어떻게든 가볍게 해보려는 그의 행태는 인면수심, 그 자체였다. A군은 현재 신병교육대에서 퇴소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고 있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방화 주한미군 소환 조사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15일 새벽 외국인 전용 클럽이 몰려 있는 용산구 이태원의 한 주점에 불을 낸 주한 미군 P(21) 일병을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16일 소환해 조사했다. P일병은 15일 오전 2시 30분쯤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주점 업주가 “시간이 늦었으니 나가 달라.”고 하자 석유난로에 든 기름을 뿌린 뒤 불을 질러 간이침대 등을 태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P일병은 경찰 조사에서 “쪽방에서 냄새를 없애려고 촛불을 켰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니 불이 나 있었다. 소화기를 가져오려고 근처 모텔에 갔을 뿐 도망치지 않았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연예인 지망생 꼬셔 강제로 성폭행한 힙합가수 영장

    연예인 지망생 꼬셔 강제로 성폭행한 힙합가수 영장

     서울 용산경찰서는 16일 연예인 지망생을 때리고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로 힙합가수 최모(29)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3일 피해자 김모(25·여)씨가 더 이상 자신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자 용산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성관계를 요구했다. 최씨는 김씨가 거듭 성관계를 거부하자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등 폭행을 한 뒤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최씨는 강남의 한 클럽에서 만난 김씨가 연예인 지망생인 것을 알고 연예계에 데뷔시켜주겠다고 속여 몇 차례 만나왔다. 사건 당일 김씨는 연예계 진출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항의하기 위해 최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경찰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한 것은 아니다.”라며 혐의를 일부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최씨 아파트에서 도망치는 김씨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와 김씨의 몸에 난 상처 등 여러 정황을 볼 때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면서 “김씨는 가슴과 얼굴 등에 멍이 들었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최씨는 몇몇 케이블TV에 출연, 자신이 외국 명문 대학 출신이라고 밝혀 이름을 알려왔다. 올해 초에는 데뷔 앨범을 냈지만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범죄자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교도소?

    범죄자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교도소?

    기발한 아이디어로 경찰을 따돌리고 숨어 있던 사기범이 결국 수갑을 찼다. 경찰의 수사를 피해 교도소로 잠입, 은신했던 여자 사기범이 검거돼 숨어 있던 교도소에 진짜로 갇히는 신세가 됐다고 현지 언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여자는 개인정보를 빼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수법으로 사기를 치던 조직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경찰은 14명으로 구성된 조직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 일당을 차례로 검거했다. 수사망이 좁혀지자 여자는 은신처를 찾다 교도소를 떠올렸다. 여자는 수도 라파스에 있는 산페드로 교도소로 몸을 숨겼다. 교도소 안에서 4일 동안 숨어 있던 여자는 경찰의 수사가 느슨해진 것으로 보고 은밀히 빠져나와 도망가려다 잠복 중인 경찰에 체포댔다. 경찰은 쫓던 여자가 교도소 주변에서 감쪽같이 증발하자 은신 중인 것으로 보고 잠복하고 있었다. 한 경찰은 “여자가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워낙 위험한 곳이라 경찰이 수색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자가 교도소에 숨어 들어간 경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끓어오르는 화 어떻게 다스리지?

    끝 없는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탐진치(貪瞋痴)는 불교에서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세 가지의 근본적인 번뇌로 경계한다. 이른바 삼독(三毒)이다. 그중에서도 화와 성냄의 진은 나를 해치고 남을 어려운 지경에 빠뜨리는 해악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그 화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 낫한 스님의 ‘화해’(불광출판사 펴냄)는 진을 다스리는 방법을 천착한 책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의식 속에 고통의 씨앗인 화를 품고 있고 그 화는 비슷한 환경에 처할 때마다 폭발하게 된다. 그 화는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자손들에게 이어지게 되는 만큼 내 안의 화를 다스리게 된다면 과거와 미래의 화까지 모두 다스릴 수 있고 그것이 나와 남이 모두 평화롭게 사는 지름길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스님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화의 치유법은 회피와 도망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평화를 얻는 수행의 권유이다.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의 씨앗을 ‘내 안에 다섯 살짜리 아이’로 보고 도닥거리며 어루만지는 나와의 싸움이다. 그 싸움은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위를 온전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는 만큼 내 몸과 움직임을 제대로 보기 위해 호흡에 충실하라고 스님은 권한다. 들숨 날숨을 통해 우리 몸과 몸 속의 작은 세포며 그 세포에 담긴 화의 근원까지 볼 수 있는 일상에서의 쉬운 수행이다. 부모미생(父母未生)의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디로 가는가. 내 안의 ‘다섯 살짜리’ 아이는 바로 그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일 수 있다는 심리 처방. “불교는 하나지만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가가야 한다.”는 스님의 소신과 철학 그대로 책은 어렵지 않은 평이한 언어의 긴 묶음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혼돈의 상태에서 빠져나와 마치 밖에서 구경하듯 우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 달빛처럼 은은한 미소가 번진다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화해의 방식. 그래서 단박에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수행 양식, 즉 한 번의 호흡과 한 번의 고요한 발걸음을 통해 평화를 건져내자는 메시지의 은은한 전달이 특이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세상 최고의 의사이자 최고의 심리치료사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스님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변화시키려면 그것과 싸워서도 안 되고 그것을 없애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저 깨어 있음의 빛으로 고통을 씻어주라.” 1만 3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고양이 꼬리잡고 학대하는 영국男 ‘분노’

    고양이 꼬리를 잡고 휘두르는 한 남성의 모습이 담긴 CCTV가 공개돼 영국인들의 분노가 일고 있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이 사건은 지난달 26일 오전 8시 30분경(현지시간) 영국 켄트 주 람스게이트에 위치한 캠던 암스 선술집 주변에서 발생했다. 이 남성은 2살 난 모글리라는 이름의 고양이의 꼬리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고양이는 휘둘리는 과정에서 길가 기둥과 충돌할 수도 있고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고양이는 휘둘리는 과정에서 고통에 차 울었고, 그의 모습을 본 행인들이 그만두라고 제지해도 이 남성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양이를 학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글리는 다행히 이 남성의 학대에서 도망을 쳐 주인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시 이 상황은 선술집 옥외에 설치된 CCTV에 녹화됐고, 선술집 주인이 이 동영상을 영국 동물보호협회에 보내면서 공론화 됐다. 영국 동물보호협회는 이 영상을 다시 경찰에 제출했고, 영국 경찰은 이 남성을 공개 수배하기로 했다. 영국 동물협회 조사원인 캐롤라인 도는 “이런 고양이 학대는 매우 난폭하고 몰상식한 공격”이라며 “반드시 이 남성을 찾아내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GTX ‘구리·남양주 연장계획’ 가속도 붙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중 인천 송도에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까지 계획된 노선을 경기 구리·남양주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 주무장관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주광덕 의원(한나라·경기 구리)은 “대규모 택지개발로 교통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구리·남양주까지 청량리를 종점으로 한 GTX 노선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산결산특별위원들에게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8일 밝혔다. 주 의원은 “GTX 3개 노선 중 경기 고양시~화성시 동탄 노선과 의정부~군포시 금정 노선이 경기북부에서 경기남부로 이어져 도심을 관통하는 반면, 송도~청량리 노선은 경기서부에서 동부로 서울을 관통하지 못하게 계획돼 있다.”며 그동안 이 노선의 연장을 촉구해 왔다. 노선을 구리·남양주까지 연장하면 경춘·중앙·별내선 전철과 연계가 가능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총 연장 174㎞(KTX 공용노선 28.5㎞ 포함)에 이른다. 주 의원은 전날 열린 예결특위에서 박 장관에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GTX사업 취지를 고려할 때 노선 연장만이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며 타 노선 인근 주민들과의 형평성에도 맞다.”고 주장했다. 박 장관은 “구리·남양주까지 연장하는 방안 등을 전문가들에게 예비 타당성 조사 항목에 넣도록 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울·경기·인천을 한 시간에 연결하는 GTX 사업은 김문수 경기지사의 핵심 공약사업으로 지난 4월 정부가 발표한 제2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2011~2020년) 전반기 착수사업에 반영됐다. 하지만 기본계획 용역비 50억원이 내년 정부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아 지지부진하다, 그러다가 지난 1일 기획재정부가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선정, 발표하면서 예산반영 근거를 마련해 가속도가 붙게 됐다. 예비 타당성 조사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내년 상반기 4개월 동안 진행할 예정이다.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만화시장 이끄는 건 힘있는 장편”

    “만화시장 이끄는 건 힘있는 장편”

    ‘식객’ 이후 8년 만에 나온 거장의 선택은 칭기즈 칸이었다. 3년간 12권으로 완간 예정인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월드김영사 펴냄) 1, 2권을 낸 허영만(64) 화백이 8일 기자들과 만났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의 정복자 칭기즈 칸을 주인공으로 한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현재 신문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 중이다. 허 화백은 “칭기즈 칸은 많이 아는 얘기지만 요즘 세상 사는데도 도움되는 얘기인 데다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넣을 여지가 많아 힘이 떨어지기 전에 해보자 싶어 시작했다.”며 “4만명 전투라면 적어도 100명 이상의 사람과 화살을 그려넣어야 하는데, 굉장히 힘들다. 앞으로 사극은 안 할 생각”이라며 웃음 지었다. 허 화백이 이야기를 구상하고 데생을 하면 문하생 3명이 인물, 색깔 등을 나눠서 그리지만 항상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한단다. 그는 “칭기즈 칸이 마누라도 놔두고 도망칠 정도로 비겁한 면도 있었고 그래서 뒷일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한다.”며 “자신보다는 큰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기에 넓은 영토를 다스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평소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꼼꼼한 취재를 하기로 유명한 허 화백은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그리려고 몽골에도 3번 다녀왔다. 게르(이동식 집)에서 자보고 싶다고 하자 가이드가 예약도 없이 초원으로 데려가 무척 걱정했는데 낯선 이를 재워줘서 몽골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님에게 아내를 빌려 주는 몽골의 옛 풍습을 체험하는 ‘호사’는 못 누렸다고 덧붙였다.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과 막역한 사이인 허 화백은 기자간담회를 시작하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운을 뗐다. 장례식 기간에는 만화에 인물은 없고 배경만 등장해 출판사에서 “만화가 읽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식객’에 이어 두 번째로 인터넷에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허 화백은 “댓글은 안 본다.”며 “소소하게 지나치는 한마디가 비수로 와서 꽂힐 수 있고 줄거리에 잠재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인터넷 연재에 관해 “신문사의 원고료만으로는 살림을 꾸릴 수 없다.”고 밝혔다. 만화잡지가 거의 사라진 한국 만화의 상황에 대해서는 “초기에 작가들이 원고를 인터넷에 뿌리면서 만화는 공짜란 인식이 퍼졌다.”며 “정부 지원으로 근본적 문제 해결은 안 된다.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만화 시장을 이끄는 것은 힘있는 장편이라고 강조하는 거장은 그 모범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사망판정 인도청년, 시체보관소에서 ‘벌떡’

    사망판정 인도청년, 시체보관소에서 ‘벌떡’

    사망 판정을 받은 청년이 시체보관소에서 벌떡 살아났다. 당국은 남자에게 사망판정을 내린 의사를 직위해제했다.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라는 곳에서 17세 청년이 사망판정을 받은 지 10시간 만에 깨어났다고 외신이 8일 보도했다. 라데이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지난 5일(현지시간) 뇌전증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실려갔다. 의사들은 입원한 그에게 주사를 놔줬다. 다음 날 오전. 회진을 하던 의사는 의식을 잃은 청년을 발견을 했다. 이미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 의사는 청년이 사망한 것으로 판정하고 시체보관소로 옮기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적이 일어난 건 그로부터 약 10시간 뒤. 경찰이 시체(?)를 옆에 두고 부검에 앞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청년이 의식을 되찾았다. 정신을 차린 청년이 침대에 걸터앉자 경찰과 시체보관소 직원들은 유령이 출몰했다며 혼비백산 도망쳤다. 외신에 따르면 농촌에 살고 있는 이 청년의 부활(?)은 처음이 아니다. 여러 번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깨어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현지 경찰은 밝혔다. 사진=인도TV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FTA ‘4생결단’] 검·경, 허위사실 유포땐 구속수사… 시민단체 “정당한 의견 봉쇄”

    검찰·경찰청 등 공안당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와 관련, 인터넷상의 허위사실 유포자를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해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한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민사소송에 대해 법률 지원까지 한다고 밝히는 등 이른바 ‘FTA 괴담’ 확산을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시민단체는 정당한 의견을 막는 처사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임정혁 검사장)는 7일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서 경찰청·외교통상부·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FTA 비준 반대 불법집단행동 대비 공안대책협의회’를 개최했다. 회의에서 검찰은 불법·폭력시위 주동자와 과격 폭력행위자, 국회 진입자 등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철저히 대처하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자 등을 사법처리할 방침임을 분명히 밝혔다. 임 공안부장은 “SNS, 인터넷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퍼뜨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매체의 파급효과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과 중대성 등을 고려해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맹장수술을 받으면 의료비가 900만원이 되고, 감기약은 10만원이 된다’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으로 도망가고 관여자들은 국민이 잡아서 총살했다’는 등의 내용이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지는 일은 FTA에 관한 정당한 비판과 반대를 넘어선 근거 없는 허위사실로 처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이 같은 조치는 유언비어로 일부 국민들이 반대 집회에 참여하거나 폭력사태로 번질 것을 우려해서다. 이번 FTA 반대 시위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점도 공안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불러왔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한·미 FTA 관련 조항에 대한 허위사실이 확대 재생산되는 모양새는 ‘광우병 괴담’이 번졌던 2008년과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게 공안당국의 판단이다. 시민단체는 이에 대해 “인터넷상의 정당한 토론마저 옥죄는 방침”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김미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입법팀장은 “틀린 내용이 있다면 정부가 적극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고 설명하면 되는데 검찰의 힘을 빌려 칼을 들이대면 인터넷상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규 한국진보연대 민생국장은 “국민의 우려와 주장을 공권력으로 막는다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 발상”이라면서 “한·미 FTA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제기하고 해법을 찾는 토론만이 국민적 반발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안석·김소라기자 ccto@seoul.co.kr
  • [열린세상] 100년 전 실패의 역사를 생각한다/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100년 전 실패의 역사를 생각한다/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선 오늘. 미국과의 수교를 놓고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이 파열음을 울리던 1881년이 생각난다. 충돌의 계기는 한 해 전 일본에 갔던 수신사 김홍집이 청국 외교관 황준헌에게서 받아 온 ‘조선책략’이 제공했다. “러시아의 침략은 조선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오늘 조선의 급무는 러시아를 막는 계책을 세우는 것이다. 오대주(五大洲) 사람들이 다 조선이 위태롭다 하는데 조선인들만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하니, 집에 불이 난지도 모르고 재재거리는 처마 밑 제비나 참새 꼴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가 러시아 침략이 임박했음을 경고하며 던진 ‘연작처당’(燕雀處堂)의 경구는 조선왕조 위정자들의 정수리에 일침으로 꽂혔다. “중국과 친하고(親中國), 일본과 맺고(結日本), 미국과 연대해(聯美國) 자강을 도모하라.” 그가 제시한 러시아 침략 대비책은 고종의 마음을 움직였다. 고종은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 경험을 따라 배우려 했다. 조사(朝士)시찰단과 영선사(領選使)를 보내고 신식군대 별기군도 만들었으며, 대미 수교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양무(洋務)운동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비해 시기적으로 20여년 늦었지만, 대외개방과 부국강병에 나선 고종의 판단은 옳았다. 양반 유생들이 감긴 눈을 뜨길 바란 고종은 정문일침의 깨침을 준 ‘조선책략’을 전국에 배포했다. 그러나 그때 유생들은 “천주교, 기독교와 다르니 포교를 허용해도 큰 탈이 없을 것”이라는 구절을 빌미로 삼아 정부의 개화정책에 반발하는 거국적 시위에 나섰다. 공자와 주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인간세계가 추구할 바른 목표라고 여겼던 선비들에게 유교 외의 모든 사상과 종교는 배척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때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모토로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처형된 홍재학의 상소는 이를 웅변한다. “중국이 시궁창에 빠져 온 세상에 짐승냄새를 풍긴 지 300년이나 되었습니다. 어찌 삼천리 우리 옛 강토가 오늘에 와서 개, 돼지가 사는 곳으로 되고 500년 공자·주자의 예의가 오늘에 와서 똥물에 빠질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유생들은 우물 밖을 나와 큰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을 볼 것을 바란 고종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들은 힘의 정치가 작동하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를 맞이하고도 유교화 정도를 기준으로 세상을 중화와 이적으로 가르는 화이(華夷)론의 세계관을 고집했다.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어리석음을 범한 그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예의염치를 모르는 오랑캐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전국적인 유교 지식인들의 반대에 밀린 정부는 대미 수교 교섭을 중단하고 궁여지책으로 협상실무를 종주국인 청국에 일임하고 말았다. 조약협상 과정에서 청나라가 조선이 자국의 속국임을 명시하려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자주권은 큰 상처를 입었다. 한 세기가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개화정책을 펴려 한 고종과 개화파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소중화(小中華)의 낡은 사상과 양반 지배 체제를 사수하려 한 유생들은 시대착오의 오판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구와 개화 세력이 범한 우(愚)의 차이는 전쟁에서 적에게 등을 보이고 오십 걸음을 달아난 이가 백 걸음을 도망친 사람을 보고 비웃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의로 나라를 세웠기에 남의 땅과 백성을 탐하지 않으며, 굳이 정치에 간여하지도 않는다.” 황준헌이 한 미국에 대한 찬사는 조미조약 제1조에 거중조정(居中調停) 조항이 들어가면서 우리 위정자들에게 사실로 믿겨졌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 비해 고율인 10~30%의 협정관세율도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부당한 간섭이나 침략에 대한 중재를 규정한 거중조정은 외교적 꾸밈말에 지나지 않았으며, 고율관세도 최혜국대우조관으로 인해 명목에 지나지 않았다. 한·미 FTA 비준의 핵심쟁점인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찬반논쟁이 거리로 확산되고 있는 오늘. 훗날 사가(史家)들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기록할지 두렵다. 여야 모두 한 세기 전 아프디아픈 실패의 역사를 곱씹어 교훈과 지혜를 찾길 바랄 뿐이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1) 中 혁명의 아이콘 마오쩌둥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1) 中 혁명의 아이콘 마오쩌둥

    1966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이 천안문 광장을 가득 채운 홍위병들을 사열하는 순간 문화혁명은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10년 동안 중국은 상처로 얼룩져 갔다. 1976년 마오의 죽음과 함께 문화대혁명은 종결되었고, ‘마오’라는 아우라에 지배되던 중국 현대사도 일단락됐다. 마오는 중국 공산당 창립(1921년) 멤버 12인 중 한 사람으로, 혁명의 씨앗을 뿌린 ‘대장정’(1934년)을 이끌었던 홍군의 일인이었다. 아울러 국공합작을 이끌어 중일전쟁(1937년)에서 승리하고, 1949년 10월에는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성립을 선포하는 천안문 광장에 섰다. 신중국 성립 이후 많은 지식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내란’ 문혁 때도 마오는 홍위병 곁에 있었다. ‘마오쩌둥 어록’은 홍위병들의 성경이었다. 이렇듯 중국 현대사는 마오의 족적을 빼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마오가 걸어간 길은 곧 중국혁명이 걸어간 길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마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인민들의 평가는 양가(兩價)적일 수밖에 없다. 마오에 대한 평가는 바로 중국 인민인 ‘나’, ‘우리’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혁명은 현실에 대한 ‘나’의 저항서 시작 마오쩌둥은 후난(湖南)성 샹탄(香潭)현 출신으로, 소작농에서 자수성가하여 중농이 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를 곯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머슴과 마찬가지로 호되게 어른 몫의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마오의 어린 시절 학업은 3년 정도의 서당 공부가 전부인데, 부친이 수를 셈하고 장부를 정리할 정도의 지력만 키우고, 소송에 대처할 수 있는 고문만 배울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 관련해서 마오는 자신이 저질렀던(?) 두 가지 일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했다. 하나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서당 훈장에게 저항하여 수업을 거부하고 땡땡이쳤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력과 힘으로 가족을 억누르는 부친에게 목숨을 걸고 대들면서 반항했던 일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오는 그 사건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했다. “공개적인 반항으로 나의 권리를 지키려고 할 때면 아버지가 누그러지고, 내가 온순하게 복종하는 태도를 보일 때는 그가 오로지 욕만 하면서 때린다는 사실을 알았다.”(‘마오쩌둥 자서전’) 마오는 경험을 통해 약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혁명이란 다른 누구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저항을 통해서만 획득된다는 것. 그것은 중국 인민 전체에게 적용되는 문제였다. 마오는 신해혁명을 창사(長沙)에서 맞았다. 하지만 신해혁명의 성공 이면에서 혁명의 ‘덧없음’을 경험했다. 그는 빈자와 피억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난의 혁명가들이 상인, 학자, 부르주아지 및 돌아선 군중에 의해 살해당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혁명이 반혁명으로 변질되던 1910년대에 베이징의 한 처량한 회관에서 탁본을 베껴 쓰면서 적막감을 토로했던 루쉰처럼 마오도 학교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몇 해 동안 점심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도서관에서 서구와 중국의 근대 지식을 흡수하는 데 쏟았을 정도다. 그러다 5·4운동(1919년)이 일어날 즈음 마오는 베이징도서관 사서의 조수로 일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접하게 된다. 오랜 적막 뒤 마오가 깨달은 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혁명을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인민 스스로가 자신을 해방하고 혁명의 주체가 되는 것, 그것이 혁명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의 임무란 무엇인가. 공산당원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인민을 계몽하거나 그들에게 혁명의 열매를 시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혁명의 주체로 서게끔 실마리를 풀어 주고, 옆에서 뒤에서 그들을 돕는 것, 그게 혁명가의 임무였다. ●‘인민에 의한’ 혁명을 꿈꾸다 “지식을 얻으려면 현실을 변혁하는 실천에 참여하라.”(‘실천론’, 1937년)는 말대로 마오는 혁명에 관한 지식과 이론을 현실의 농민들에게서 ‘몸으로’ 배웠다. 그에게 ‘몸으로’는 결코 은유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는 ‘신체단련’이라는 명목으로 한겨울에 들판을 누비거나 산을 오르내리는가 하면, 남중국 일대를 무전여행하기도 했다. 걸어 다니면서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직접 보고 들을 기회를 가졌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중농 출신인 마오는 스스로를 인민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지식인들과는 달랐다. 마오는 ‘인민을 위한’ 혁명이 아닌, ‘인민에 의한’ 혁명을 꿈꿨다. 그리고 스스로를 그 ‘인민’이라고 생각했다. 마오는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이나 강령에 중국 현실 꿰맞추기를 거부하고, 혁명의 현장에 대한 정확한 장악과 실제적인 조직화 사업을 통해 ‘중국적 사회주의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먼저 농촌 근거지를 만들고 농민운동을 조직화하는 일에 참여했다. 그 경험의 결과물이 ‘후난성 농민운동 시찰보고서’(1926년)인데, 여기서 마오는 농민의 실생활을 직접 조사하고, 농촌에서의 혁명 가능성을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 줬다. 농촌 경제의 모순과 농민의 계급분화 및 갈등은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런 판단하에 그는 소유 토지 면적이나 높은 이자율뿐만 아니라 돼지기름, 소금, 석유, 차, 종자, 비료, 장작, 가축, 농기구 유지 비용까지 자세히 분류한 후, 그 소유 정도에 맞춰 농민계급을 보다 세분화했다. 이런 실천적 분석을 통해 마오는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혁명을 구상해 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식 사회주의’의 탄생이었다. 몇 차례 계속된 국민당의 포위공격을 피해 장시(江西)성 징강(井岡)산에서 활동하던 공산당원들은 근거지를 버리고 ‘도주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도망으로 시작한 ‘대장정’은 승리로 귀결되었다. 1년 동안 공산당은 18개의 산맥을 넘고(그중 5개의 산은 만년설로 덮여 있었다), 24개의 강을 건넜으며, 12개의 성을 통과했다. 또 62개의 마을과 도시를 점령했으며, 전투를 치르고 돌파한 지방 군벌의 포위망이 무려 10개에 달했다. 지나가는 곳마다 대중 집회를 열어 노예를 해방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이 초인적인 고난의 행군을 가능하게 했던 규율은 가난한 농민들로부터는 어떤 것도 빼앗지 않는다는 것, 지주들에게 몰수한 재산은 소비에트 정부에 전달해서 처분한다는 것, 농민들과의 모든 거래는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한다는 것 등이었다. 지도자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아예 없었다. 마오는 이들과 똑같이 자기 ‘몸으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 지역에 마련된 근거지에서 마오가 다른 홍군에 비해 특별대우를 받은 것이 있다면 모기장 정도였다고 한다. ●주어는 ‘나’가 아니라 ‘우리’다 1938년 미국 언론인 에드가 스노는 대장정을 마친 공산당의 근거지를 찾아가 직접 보고 들은 중국공산당의 실체와 역사를 담은 ‘중국의 붉은 별’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원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스노는 마오의 회고담을 들으면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마오가 행한 역할은 선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개인적인 마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을 의아해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오의 진술에서 사용되는 주어는 더 이상 ‘나’가 아니라 ‘우리’였기 때문이다. 어느 혁명가가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지 않았겠는가마는 마오는 자신을 온전하게 인민 속으로 던졌다. 때문에 역사적 현장에서 마오는 비인칭으로 존재했다. 자신의 이름을 잊고 혁명의 흐름에 몸을 던지면서 인민과 함께 걸어간 혁명의 동반자 마오의 혁명은 실패였을까 성공이었을까.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을 내 삶의 지침으로, 나의 앎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변혁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마오의 삶이 일관되게 보여 주는 메시지다. 마오는 어떤 일이든 자신을 온전히 그 현장에 넣지 못하면, 몸으로 전력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어떠한 열매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마오쩌둥이 중국 현대사의 선봉에 선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였음은 분명하지만, 그에게는 정치가라는 이름보다 혁명의 순간에 자신을 내던져 자신을 산 혁명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최정옥 남산 강학원 연구원
  • “닭고기 덜 익었다” 손님 항의에 총질한 웨이터

    “닭고기 덜 익었다” 손님 항의에 총질한 웨이터

    음식에 대해 항의를 하던 손님이 웨이터가 쏜 총에 맞고 사망한 황당한 사건이 최근 남미 콜롬비아의 한 식당에서 벌어졌다. 손님을 살해한 웨이터는 사건 직후 도주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볼리바르라는 도시의 숯불구이 전문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엘비스라는 이름의 40세 남자가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남자가 시킨 음식은 숯불구이 닭고기 반마리. 잠시 후 웨이터가 닭고기를 들고 와 테이블에 내려놨다. 엘비스는 지글지글 기름이 흐르는 닭고기를 칼로 썰어 접시에 덜었다. 그러나 먹음직스러운 보인 건 껍질뿐(?), 속은 덜 익은 상태였다. 남자는 웨이터를 불러 “이런 걸 어떻게 먹냐! 어떻게 이런 고기를 먹으라고 내오냐!”며 언성을 높이며 손님이 항의를 계속하자 웨이터는 주머니에서 불쑥 총을 꺼내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3발의 총을 맞은 손님은 그 자리에서 고꾸러졌다. 쓰러진 손님을 본 웨이터는 그길로 도망갔다. 병원으로 옮겨진 남자는 응급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경찰은 도망간 웨이터를 추적하고 있다. 사진=크로니카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다이하드 경찰관?…차로 비행기 들이받아 범인 체포

    다이하드 경찰관?…차로 비행기 들이받아 범인 체포

    마치 영화와 같은 범인 추격전이 경찰이 촬영한 카메라를 통해 생생히 공개됐다.   최근 브라질 연방경찰이 밀수품을 싣은 경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로에서 파라과이로 도망치려던 범인을 붙잡았다. 놀라운 것은 범인들의 체포과정. 자동차를 타고 추격전을 펼치던 경찰들이 막 이륙을 앞둔 범인들이 탄 비행기 날개를 그대로 들이받아 기체를 멈춰 세운 것. 경찰은 소총을 들고 날개가 고장나 이륙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은 비행기를 탄 범인들에게 내리라고 소리쳤다. 브라질 경찰은 “범인들은 밀수꾼으로 이날 컴퓨터등 전자제품 약 20만 달러(약 2억 2000만원) 정도의 물건들을 압수했다.” 며 “조종사를 포함 총 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 뉴스를 전한 해외언론들은 영화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에 비유하며 “영화보다 더 생생하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디즈니채널 ‘스티치… 시즌2’

    어린이 전문채널 디즈니채널이 ‘스티치! 새로운 모험 시즌2’를 7일부터 방영한다. 시즌2는 투로 행성에서 도망쳐 나온 외계 악동 스티치가 펼치는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 차 있다. 스티치와 유나가 소원을 들어 주는 ‘영혼의 돌’을 얻기 위해선 43가지 착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주 감옥을 탈출한 햄스터빌 일당이 ‘영혼의 돌’을 손에 넣으려고 스티치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한편 디즈니채널은 시즌2 방송을 기념해 퀴즈 이벤트를 마련했다. 홈페이지(http://disneychannel.co.kr)에서 응모하면 된다. 정답을 맞힌 시청자에게 추첨으로 스티치 인형과 캐릭터 시계를 증정한다.
  • [문화마당] 여자란 무엇인가/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여자란 무엇인가/신동호 시인

    작은 소동이 있었다. 지난 추석 때였다. 아버지의 차례는 엉망이 되었고 가족 간의 갈등도 도드라졌다. 나는 그냥 여자들의 갱년기 증상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갈등으로부터 도망쳤지만 결국 내 안에 내재된 가부장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재작년에 아내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그리움에 몸서리치는 일이 잦았으나 그럭저럭 잘 견뎌내는 것으로 보였다. 아내는 아이들과 직장이라는 일상의 분주함을 손에 놓을 처지도 못 되었고 본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내면의 변화를 잘 읽어내지 못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장인어른의 기일도 잘 챙기지 못했다. 그게 미안하기도 했고 좀 애매한 연휴 일정을 생각해서 추석 앞에 장인의 성묘를 먼저 하게 되었다. 단순한 생각이었는데 문제가 커졌다. 사이 좋던 시누이와 올케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시작은 “왜 아버지 산소부터 가지 않니?”라는 것이었다. 아내도 지지 않았다. “그게 뭐 잘못됐나요?” 사실 누님이 화가 난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누님도 시댁에 가야 되는 처지라 자칫 하루 이틀 어머니가 혼자 계시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탓이었다. 나는 “그것도 이해 못하냐?”고 어머니와 누님을 싸잡아 몰아붙였다. 갈등만 더 키워버렸다. 급기야 어머니는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고, 아내는 중간에 집으로 가버렸다. 나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들의 일이라면 대개 긍정해 주셨던 어머니나 자기 가족보다 동생집의 대소사를 먼저 챙겨준 누님의 태도에도 당황했지만 그보다 더 놀란 건 아내의 변화였다. “나, 이젠 참고 살지 않을래!”라니. 처음엔 왜 이러냐고 윽박질러 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한층 강해진 저항이었다. 나는 여기서 도망쳤다. 그저 화만 내면서, 그들이 갱년기 우울증일 거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말이다. 나의 반성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여자들을 교묘하게 학대하며 살아왔다. 안 해봐서 못한다고 집안일은 뒷전이었다. 밖에서 큰일이라도 하는 모양으로 그럴싸한 폼을 잡고 가정 일을 등한시했다. 머릿속 가득히 빨래, 요리, 청소 등은 하찮은 일이라 개념지어 버렸다. 역사를 망쳐 갔던 거대한 서사만 손에 잡고 있어서 역사를 보듬었던 여자들의 서사를 보지 못했다. 아내의 일이 내 일보다 더 훌륭할 수 없고, 어머니의 가치관이 내 알량한 철학보다 더 옳을 수 없다는 이 오만을 어쩔까. 그걸 눈치챈 여자들에게 의학적 진단을 내리면서 나를 정당화하는 건 정말 심각한 가부장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장인 산소에 성묘를 먼저 가자고 제안한 나의 내면엔 이 가부장을 감추고 싶은 비열함이 있었을지 모른다. 이것이 소동을 야기했다. 본질은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에 있었다. 내가 여자를 남자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드시 공동으로 나눠야 할 일들, 가령 육아나 가사·세금 납부 같은 일들을 일방적으로 여자들에게 떠넘겨 버린 건 아닌지, 분단 극복이나 개혁을 운운하면서 또 다른 억압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딸에겐 너그러우면서 아내에겐 윽박지르지 않았는지까지. 흔히 하는 말로, 평소에 잘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나누고 인정하고 반성했다면 말이다. 우리 국가권력의 가부장도 그렇다. 무엇인가 베풀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때마다 부패의 치부를 드러냈다. 소설 ‘도가니’가 과도한 표현으로 국민감정을 격앙시켰다고? 한나라당 인권위의 이런 발언이야말로 정신병 치료가 필요하다. 국민 모두가 히스테리에 빠져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정당화할 판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하위개념일 뿐이다. 도올 선생의 명저 ‘여자란 무엇인가’에서 제목을 빌려 왔다. 선생은, 동등한 관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맨(Man)의 저급하고 비본질적인 위치에 놓인 우먼(Woman)을 규정한 서구적 개념을 비판했다. 두 개념의 교합체로 이해되고 있는 우리의 인(人)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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