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도둑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디시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반팔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취미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 제압
    2026-04-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317
  • [책꽂이]

    ●도쿄타워를 향해 달려라(알렉산드라 후놀트 지음, 김준미 옮김, 주니어 김영사 펴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도난사건을 해결하는 꼬마 탐정들의 범인추적 과정을 통해 일본의 문화와 지리, 역사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꾸민 학습서. 일본의 전통여관 료칸, 벚꽃축제 하나미,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종교 신도 등 고유의 문화를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배운다.‘추리와 탐험이 만나는 세계여행’ 시리즈 첫째권. 시리즈 2,3권으로 브라질편 ‘아마존에서 사라진 아빠’와 인도편 ‘뉴델리의 얼굴 없는 도둑’도 함께 나왔다.9500원.●흙으로 만든 귀(이규희 지음, 바우솔 펴냄) “나리 마님, 절대로 밖에 나가셔서는 안 됩니다. 왜놈들이 조선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귀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전리품으로 가져간답니다. 그래야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죽였는지 알고 본국에 가서 상을 받는다고요. 지금 남원뿐 아니라 경상도나 충청도까지 귀나 코가 잘린 시신들이 셀 수 없이 많답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미미쓰카’라 불리는 이총(耳塚, 귀무덤)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한 책. 이 무덤엔 우리 군인과 민간인 12만 6000명의 귀와 코가 묻혀 있다. 무덤 뒤엔 가증스럽게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사 지내는 도요쿠니(豊國) 신사가 자리잡고 있다.7000원. ●트로이와 크레타(한스 바우만 지음, 강혜경 옮김, 비룡소 펴냄) 20세기초 트로이와 미케네, 크노소스 유적을 발굴해 전 세계에 고고학 열풍을 몰고온 하인리히 슐리만과 아서 에번스의 일대기. 기원전 3000∼1만년에 걸쳐 에게해 일대에서 번영을 누린 트로이와 미케네, 크노소스 문명은 이 지역에서 일어난 청동기 문명을 입증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은 일곱살 때 선물로 받은 책에서 불타는 트로이성의 그림을 보고 당시로선 신화로만 존재했던 트로이 전쟁의 무대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꿈을 키웠다.1만 2000원.●한국의 멋-인물편(최순자 등 지음, 삐아제어린이 펴냄)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이야기. 안견은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고 초상화와 사군자에도 능했다. 그의 화풍은 일본의 수묵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1447년에 그린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발문을 비롯, 정인지·신숙주·성삼문 같은 당시 문신들의 찬시가 곁들여져 회화사적으로 더욱 가치가 높다.‘금강전도’ ‘청풍계도’ ‘계상정거도’ 등을 그린 겸재 정선, 김홍도·신윤복·김득신 등 조선 3대 풍속화가의 이야기도 실렸다.9000원.
  • 단편영화 진수 ‘핵분열’·‘전쟁영화’

    TV 시리즈 전문채널 CNTV가 봄 개편을 맞아 12일부터 단편영화 상영 프로그램인 ‘시네마S’를 방영한다. 어렵고 재미없게 인식되던 단편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영화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도 단편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다. 국내 유명 단편영화의 상영은 물론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 메이킹 필름, 해당 감독이 만든 다른 작품들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심야시간에 방송되던 기존의 편성시간에서 벗어나 매주 월·화 오후 7시 각각 한편씩, 토·일 오전 8시에 재방송한다. 지난해 11월에 기획된 ‘시네마S’는 현재 상영작품의 선정과 해당작품의 감독 및 배우의 인터뷰가 일부 완료된 상태.12일에는 올해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되어 많은 관심을 받은 박수영, 박재영 형제 감독의 ‘핵분열 가족’이,13일에는 지난해 MBC 영화대상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박동훈 감독의 ‘전쟁영화’가 소개된다. 민용근 PD는 실제로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독립영화 감독이기도 하다. 지난해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작인 단편영화 ‘도둑소년’을 만들어 부산국제영화제와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민 PD는 “지난해 11월 KBS ‘독립영화관’이 폐지되면서 일반인들이 TV를 통해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고 다양하게 단편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로봇 이용 도둑검거 공무원 표창

    “고맙다, 로봇아.” 하수관 탐사로봇 덕분에 시민과 공무원 8명이 서울시장과 노원구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6일 노원구에 따르면 지난 1월30일 상계백병원 이용객 박모씨의 핸드백을 빼앗아 달아나다 쫓기자 하수관로에 숨은 50대 소매치기범을 검거(서울신문 1월31일자 7면 보도)하는 데 공을 세운 시민 1명과 경찰공무원 3명에 대해 서울시장 표창을, 하수관 탐사로봇을 이용해 범인의 위치를 찾는 데 공을 세운 공무원 4명에 대해 노원구청장 표창을 각각 수여했다. 시장 표창을 받은 김환호(39·의정부 거주)씨는 상계백병원 인근을 지나가다 박씨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아나는 범인을 10여m 뒤쫓아 격투 끝에 붙잡은 공로다. 노원경찰서 소속 김진구(41·노원경찰서 형사과) 박경수(38·노원경찰서 형사과) 안승호(52·노원역지구대) 형사 등 3명은 신고를 받고 출동해 김환호씨의 제지에 옷을 벗고 하수관로로 도망친 범인을 검거했다. 구청장 표창을 받은 이근봉(토목7급) 손석호(기능8급) 최식훈(상용직) 안진석(상용직)씨 등 구청 직원 4명은 하수관 탐사로봇을 이용하는 기지를 발휘해 하수관 500여m 안에 숨어 있던 범인을 발견하는 데 기여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6년만에 유괴된 딸 찾은 모정(母情)

    6년만에 유괴된 딸 찾은 모정(母情)

    5살 때 유괴당한 외동딸을 찾기위해 전국에 「펜·팰」을 맺어 호소하기 6년만에 드디어 딸을 찾았다. 이 집념 강한 모정(母情)의 주인공은 그동안 딸을 찾으려다 지쳐 「송장 2번」의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 춘천시 소양로 2가 24 박옥자(朴玉子·45)씨 집에 세든 박미영여인(35) 집에는 6년전에 행방불명됐던 외동딸 오진숙양(11)을 맞으면서 온통 잔치기분에 들떠 있었다. 행상을 다니던 박여인이 딸 진숙양을 잃어버린 것은 65년 한겨울. 행상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청천 벽력이었다. <당신 딸 진숙이를 데려간다. 그렇게 알고 찾지 마시오!> 세든 방 문틈에 끼워놓은 쪽지 한 장뿐이었다. 박여인은 부산 모여고 2학년에 재학하던 54년 그때 육군에 복무하던 오유식(吳有植)상사와 사귀다가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결혼했었다. 오씨가 일선지구로 전속을 하자 남편따라 일선지구를 전전, 그동안 상철(相喆)군(13·춘천국교5년)과 진숙(珍淑)양의 남매를 낳고 가난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했었다. 그러나 군대생활로는 가족들의 장래가 어둡다고 오씨는 제대, 사업을 한다고 이리뛰고 저리뛰다가 실의에 빠져있던중 64년 고혈압으로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하루 아침에 과부가 된 박여인 앞에 남은 유산이라고는 아비없는 어린 남매와 가난뿐. 이 때부터 세식구의 입에 풀칠을 하기위해 삯바느질을 하다가 행상을 시작했다. 피륙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간성 대진에서부터 속초 울진 등 강원도 일대는 안가본 곳 없이 다 다녔다. 이처럼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며칠만이고 솜같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어린 남매가 「버스」정류장에 나와 엄마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대견해 고생도 몰랐었다. 그러다가 지난 65년1월, 강바람이 살을 에는 듯이 휘몰아치던 날 행상에서 돌아와보니 진숙양 대신 문틈에는 당신 딸을 데려간다는 쪽지한장. 그때부터 딸을 찾기 위해 신문 잡지등 「펜·팰」난을 뒤적여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벗이 전국 곳곳에 60여명. 딸을 찾기 위한 애절한 호소는 전국 곳곳에서 메아리져 되돌아 왔다. 당신 딸과 처지가 비슷한 어린이가 있으니 한번 와서 확인해보라는 편지가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행상 보따리 대신 편지에 적힌 주소쪽지 하나를 들고 전국을 누볐다. 그러나 몇백리씩 고생해가며 찾아가봐도 번번이 허탕, 엉뚱한 사연을 안은 인연 없는 어린아이들 뿐이었다. 이렇게 딸을 찾아 한달에 2~3회 「출장」을 나가다보니 가난위에 빚더미만 쌓이게 됐다. 나중에는 「양키」물건을 암매하면 벼락부자가 된다는 「브로커」를 따라 물건을 사러갔던 68년12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단속반에 걸려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서툰 도둑질이 첫날밤에 들킨다더니 「양키」물건 한번 만져보고 징역살이를 하게 되자 홧병에 영양실조가 겹쳐 다죽게 됐다. 딸이 징역살이를 한다는소식에 부산에 살던 친정어머니 이숙화노파(68)가 달려와 고아아닌 고아가 된 외손자 상철군을 맡아 지금 세든 집에 식모살이로 들어가 월급 3천원씩 받아 뒤를 거뒀다. 박여인이 교도소에 들어간 4개월째 되던 68년 4월초, 박여인이 죽었으니 시체를 인수해가라는 연락이 왔다. 그 1주일 뒤 또다시 두 번째로 시체를 인수해 가라고 재차 연락이 왔다. 그랬는데 죽었다던 박여인이 살아온데는 한국인 수녀와 미국인 수녀의 사랑의 「릴레이」덕택이었다. 박여인이 죽었다던 지난 4월 10일, 매주 교도소를 방문하던 성심여대 수녀원 한순희수녀(현 미국「샌디에고」대학에서 수학중)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시체에 마지막 「미사」를 드리다가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 치료를 맡겠다고 나섰다. 한수녀는 죽더라도 절차에 의해 처리하겠다고 약속, 「골롬반」병원으로 옮겨 온 의료진을 동원, 산소호흡을 시켜 겨우 20시간만에 회생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달동안 가료, 지난 5월8일 어머니 날을 기해 퇴원시켰던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박여인은 또다시 딸을 찾기 위해 「펜·팰」을 열심히 하는 한편 법원의 도움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춘천가내공업「센터」에 일자리까지 얻었다. 이같은 기구한 어머니에게 지난 5월초순 전남 영광에 있는 「펜」벗 김선미씨(32)로부터 자기 시댁이 있는 영광군 군남면 옥슬리에 진숙이 같은 아이가 있으니 한번 와보라는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은 박여인은 그동안 많이 속기도 했지만 직장에서 5천원을 가불해서 영광으로 갔다. 가보니 이 마을 이용석씨(43)의 고명딸로 입적, 그 집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는 영희양이 바로 6년전에 잃었던 자기딸이 아닌가. 다짜고짜 붙들고 울어버렸다. 어리둥절한 진숙양은 진짜 어머니의 돌연한 출연에 『엄마 저여자가 누구야』하면서 가짜 엄마품으로 달아나버렸다. 이씨는 어떤 방법으로 진숙이를 데려왔는지 경로를 밝히지 않았다. 단지 그같이 어수룩한 시골 사람이 진숙이를 유괴했을 것 같지는 않고 누가 유괴해다가 팔아버렸을 것 같다는 얘기. <춘천(春川)=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2일호 제3권 27호 통권 제 92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소리수집 50년’ 참소리 박물관 손성목 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소리수집 50년’ 참소리 박물관 손성목 관장

    ‘십년감수’라고 했다.1903년 어느 날이다. 당시 미국 공사로 일하던 선교사 앨런이 고종황제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를 처음 보여 주었다. 말과 소리를 재생하는 기계라고 설명했지만 고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시험해볼 참으로 고종은 박춘재 경기명창을 불러들였다. 영문도 모르는 박춘재는 황제와 신하들 앞에서 ‘적벽가’의 한 대목을 불렀다. 잠시 후 축음기에서 ‘적벽가’가 그대로 재생되어 흘러나왔다. 너무 놀란 박춘재는 그만 얼떨결에 바지에 잠시 실례(?)를 하고 말았다. 이를 본 고종은 박춘재에게 “너의 명이 10년은 감해졌겠구나!” 하며 크게 웃었다. 이때부터 ‘십년감수’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이와 관련된 여러 일화가 있지만 아무튼 이 무렵 서양의 축음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면서 ‘귀신소리’ 등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처럼 소리와 시간을 저장하는 에디슨의 축음기는 새로운 문명을 열었으며 음악은 인류의 영원한 동반자가 됐다. 그렇다면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소리의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왔을까. 그 답을 찾아 지난 15일 강원도 강릉 경포대로 떠났다. 휘영청 달이 다섯개나 뜬다는 ‘경포호’ 인근의 강릉시 저동 36번지.‘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에디슨 사이언스 뮤지엄’이라는 간판이 예사롭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그랜드피아노 위에 레코드판을 올려놓은 모양의 이색적인 건물이었다.2개동 3층 규모(700여평)의 이 박물관은 강릉시 송정동에서 최근 이곳으로 옮겨 새로 확장 이전했다.1992년 처음 문을 연 이 박물관은 그동안 연간 30만명이라는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왔다. 설 명절 전날임에도 타이완 등 외국인 관광객 200여명이 관람 중이었다. 강릉에 놀러왔다가 의례적으로 들르는 곳이 아니라 일부러 찾는 박물관이라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도대체 어떤 물건들이 있기에 그럴까. 우선 에디슨의 발명품 1500여점이 전시돼 있어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유성기 ‘틴호일’,1889년 제작된 ‘클라스 엠’ 등 희귀 음향기기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 뿐만 아니라 축음기 이전의 소리통 등 세계 60여개국에서 모은 각종 진귀한 소리명품들이 전시돼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는 호두나무 몸체와 시계가 부착돼 있는 높이 99인치의 음악상자 폴리폰(1850년·독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스텔라 음악상자(1830년·스위스)와 주인의 연주소리를 듣는 개로 유명한 ‘니퍼’의 베를리너 축음기(1898년) 등이 전시돼 있다.17세기에 등장한 오르곤(벨기에)도 마냥 신기하게 다가온다. 또한 에디슨이 발명한 세계 유일의 극장용 영사기,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에 의해 기초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당시의 등사기 등을 보노라니 저절로 지혜와 역사의 샘으로 쏙 빠져든다. 특히 세계 유일의 아메리칸 포노그래프,1870년대 에디슨사(社)에서 인류 최초의 빛을 양산한 대나무 탄소 필라멘트 백열전구 등 대부분 ‘유일’ 아니면 ‘최초’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 관람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특히 에디슨의 일거수 일투족을 게재한 당시의 신문 기사를 원본 그대로 보관해 놓기도 했다. 문득 눈에 띄는 글귀가 있다.“I would like to live about 300 years,I think I have IDEAS enough to keep me busy that long.=나는 300년을 살고 싶다. 그래도 항상 바쁘게 살아갈 충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에디슨이 1847년 2월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1931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1200여건의 특허를 출원한 것을 상기할 때 만약 그가 300년을 살았다면 인류문명은 더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올해가 에디슨의 탄생 160주년이 된다는 안내원의 귀띔이 있어서 그런지 이 박물관에서는 에디슨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도 가끔 이곳에 들러 에디슨의 숨결을 감상하며 “실제로 와 보니 너무 좋다.”며 에디슨 박물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쯤해서 ‘50년 소리인생’을 걸어온 손성목(62) 박물관장과 마주 앉았다. 미국만 160회정도 다녀왔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도둑으로 오인받아 총을 맞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는 “박물관의 전시품을 찬찬히 둘러보려면 족히 3시간은 걸린다.”면서 “다 돌고나면 100년 전과 현재의 첨단 시스템이 빚어내는 특별한 음악감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손 관장이 처음 소리에 관심을 둔 것은 여섯살 때. 아버지한테 생일 선물로 포터블 축음기(컬럼비아 G24)를 받으면서였다. 당시 부친은 원산에서 백화점과 양복점을 경영할 만큼 부유했다.8세때 6·25가 나자 어린 손성목은 축음기 1대를 등에 지고 가족과 함께 월남할 정도로 애지중지 여겼다. 강원도 속초에 정착한 가족들은 운수업을 키운 부친 덕분에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손 관장은 13세때부터 본격적인 축음기 수집에 나선다. 동네 전파사는 물론 여기저기 수소문을 통해 축음기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사들였다. 고장난 축음기를 고치는 기술도 저절로 익혀졌다. 동네 잔치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축음기를 들러메고 참가해 인기를 독차지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수집한 축음기는 10여대. 군복무를 마친 직후에는 전파사를 경영하면서 수집의 폭을 더욱 넓혔다.1977년 결혼 후에는 한라건설㈜에 중견사원으로 입사,5년간 중동건설 현장에 근무했다. 이때 휴가기간 등을 이용해 유럽 전 지역을 순회하며 축음기를 구입했다. 귀국할 무렵에는 각종 축음기가 600여점으로 불어났다. 그러자 박물관 설립에 강한 애착을 갖는다. 재원 마련을 위해 회사를 그만 두고 강릉 지역에 임대 아파트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다행히 사업에 성공하자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 등을 털어 아프리카부터 유럽,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을 드나들며 골동품 음향기기를 사들였다. 마침내 1992년 11월, 수집품이 2000여점에 이르자 오랜 소망인 ‘참소리 박물관’을 개관한다. “축음기 종류를 모두 수집해 세계 제1의 축음기 단일 박물관을 만들어 후세에게 물려주겠다는 집념에서 비롯됐지요. 에디슨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발명품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바로 참소리 박물관입니다. 이제 에디슨을 만나려면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와야 할 겁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소리를 좇아 세계 어디든 달려간다. 현재 그가 소장하는 각종 축음기만 모두 5000여점, 또한 음반 15만장, 서적 및 관련 자료가 6000여점에 이른다. 손 관장 앞에는 두개의 책상이 있다. 하나는 인류의 과학유산 수집을 위한 책상이고 다른 하나는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발명품을 만나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책상이다. 후자 책상 위에는 인형이나 조각, 장난감 등을 모은 ‘어린이 전시관’과 소리·빛·영상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 즉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마련 계획서가 놓여져 있다. 그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직도 배가 고프다.300년을 살아도 수집하느라 매우 바쁠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61년 동해 북평고 졸업 ▲65년 해병대 만기제대 ▲67년 경희대 상대 졸업 ▲74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수료 ▲82년 참소리방 설립(참소리박물관 전신) ▲92년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박물관 개관 ▲2007년 2월 현재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관장, 에디슨 사이언스 박물관 관장
  • [깔깔깔]

    ●구둣방 수선공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구둣방에 의사가 장화 한켤레를 수선해 신으려고 갔다. 구두방 주인은 도저히 고칠 도리가 없다며 5000원을 내라고 했다. “뭣 때문에 돈을 받는 거요?” 의사가 항의하자 구둣방 주인이 대꾸했다. “당신한테 배운 거요. 내가 당신 병원에 가니까 내 병은 도저히 고칠 수가 없다면서 진찰비를 받지 않았소?”●좀도둑의 기도 어떤 좀도둑이 그의 은신처에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훌륭한 경찰을 주셔서 소매치기와 악독한 무리를, 못된 짓을 공모한 자들을 감옥에 잡아넣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배려가 없다면 같은 직업에 좋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저와 같이 불쌍한 좀도둑은 도저히 제대로 먹고 살 길이 없사옵나이다.”
  • 봉사도 하고 철도 들고

    봉사도 하고 철도 들고

    “우리 손녀딸 왔냐.” “할머니,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 1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단칸방에서 오복남(89) 할머니와 신영주(14·당산서중 1학년)가 담소를 나눈다. 영주의 어머니 주경순(41)씨는 가져온 빵과 식혜를 차려 놓는다. 주씨가 “할머니, 영주가 이번에 1등 했어요.”라고 자랑하자 오 할머니가 덥석 영주의 손을 잡는다. 할머니의 덕담이 이어졌다. “고생했다. 공부도 중하지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은 거다. 잘난 체하지 말고, 변덕부리지 말고 할미한테처럼 마음을 곱게 써라.” 영주와 오 할머니의 ‘아름다운 만남’은 지난해 3월 시작됐다. 독거노인과 중학생을 가족으로 맺어 주는 영등포구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영주가 참여하면서부터다. 봉사활동은 매주 수요일 독거노인에게 전화를 하고 한 달에 한번씩 방문해 말벗이 되는 것. 영주는 첫 만남을 또렷이 기억했다.“처음에 전화를 드릴 때 뵙지도 않은 상태라 무척 떨렸어요. 제 소개를 했더니 할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씀하셔서 긴장이 풀렸지요.” 할머니도 영주를 “마음이 착한 아이”라고 말했다.“늙고 재미없는 노인한테 전화하고, 찾아오고 얼마나 고마워.1년째 한결같이 마음 쓰기가 쉽지 않잖아.” 함경북도 함주군이 고향인 오 할머니는 6·25전쟁 때 피란길에 남편을 잃었다. 결혼 5년 만이었다. 어린 자식 3명을 홀로 키우며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봤다. 그는 지난해까지 재활용품을 모으며 용돈을 벌었다. 그러나 지난 가을 심장수술을 받은 후 일을 그만뒀다. 할머니의 오른쪽 손가락은 동상 때문에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아들들은 지방에 있지만 혼자된 터라 따로 산다. 쌀쌀한 날씨 탓에 단칸방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기름값 걱정에 할머니는 방을 데우지 않았다. “부엌에 떠놓은 물이 얼어 붙으면 방에다 보일러를 넣어. 보일러가 고장나면 안되니까.”밤에는 전기 장판을 깔고 낮에는 노인정에서 추위를 견딘단다. 오 할머니의 어려운 생활을 보며 영주도 달라졌다고 어머니 주씨가 거들었다. “마음 씀씀이가 따뜻해졌어요.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를 길에서 보면 성큼 다가가 도와 주더라고요.” 오 할머니에게 전화한 날이면 어김없이 시골에 있는 친할아버지·할머니에게도 안부를 물었다. 영주는 할머니를 만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할머니께서 불평하시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항상 ‘고맙다.’‘고맙다.’고 하시죠. 그런 할머니를 생각하면 작은 일에 짜증낼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는 설을 사흘 앞둔 15일 할머니와 손자·손녀로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온 독거노인 176명과 청소년 88명을 초청해 다과회를 가졌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무술가족의 도둑잡기 “배꼽 빼주마”

    무술가족의 도둑잡기 “배꼽 빼주마”

    영국 찰스 왕세자도 극찬한 무술 코미디 ‘점프’는 만 4살부터 입장이 가능한데다 대사가 없는 비언어극이라 가족용 뮤지컬로 제격이다. 도합 무술 117단의 가족이 사는 집에 어느날 도둑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신세가 된 이 도둑은 이제 탈출하기에 바쁘고, 무술 가족은 도둑잡기에 혈안이다. 온가족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이다. 2005,2006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런던 웨스트엔드 장기공연에서 매진 사례를 낳은 ‘점프’는 올 한해도 숨가쁘다. 올해부터 매년 봄 웨스트엔드에서 장기공연을 시작하는 데 이어 5∼7월 도쿄, 오사카 공연과 싱가포르 및 모스크바 공연이 예정돼 있다.‘점프’를 보고 몸이 근질근질하다면 이달 26일 종로에 있는 전용극장에서 치러질 오디션에 지원해볼 것. 몸놀림에 특기가 있는 배우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응모 가능하다. 현재 5팀이 공연을 꾸려가고 있지만, 올해부터 한달이상 장기 해외공연이 이어지는 데다 국내 전용관 공연도 병행돼 제작사는 배우 확충이 시급한 형편이다.(02)722-3995.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대학생 4명이 여름방학 1개월동안 한 일은?

    “아이구 맙소사!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삼아 벌인 도둑질로 짭짤한 수입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는데,10년동안 철창 안에서 썩어야 한다고 하니….” 중국 대륙에 대학생 4명이 지난해 여름방학 1개월간 ‘양상군자’의 길로 나섰다가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최고 10년까지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사건이 발생,주변 사람들이 “정말 고소하다.”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장안(江岸)구법원은 최근 대학생 4명이 지난해 여름방학 한달동안 모두 8건의 강도짓을 저질러 휴대전화 7개와 현금 175위안(약 2만 1000원)을 빼앗은 혐의에 대해 이들 4명에게 징역 2∼10년형을 각각 선고했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 천룡망(天龍網)이 12일 보도했다. 천룡망에 따르면 이들 강도범은 보보(勃勃·가명)·타오타오(滔滔·가명)·쥔쥔(軍軍·가명)·룽룽(龍龍·가명) 등 모두 4명이다.이들은 우창(武昌)대·지린(吉林)대 등에 지방대에 재학중인 대학생들.고등학교 동문 선후배들로 구성된 이들은 나이가 겨우 17∼19살의 빛나는 청춘들이었다. 사건은 지난해 여름방학 때 뿔뿔이 흩어져 대학을 다니던 이들이 고향을 찾아오면서 일어났다.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려고 만난 이들 4인방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모두가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갖고 싶어한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있어야 하는데,부모들의 터수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돈을 타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들은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다.맞춤한 ‘알바’자리를 찾기가 힘든 마당에 돈을 벌기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빨리 속전속결로 돈 버는 방법을 모색했다.그 방법은 바로 ‘한탕’하는 것.보보가 먼저 강도짓을 하자고 제의하자,다른 3명의 동문 선후배들이 모두 ‘좋다’고 동의하면서 ‘한탕주의’는 고대 실행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D-데이’를 8월 2일로 잡았다.이날 오후 이들 4명은 칼·쇠파이프 등을 몸 속에 감춘 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시내 한커우(漢口) 둥청(同成)광장에 힘차게 짓쳐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젊은 연인 쌍쌍이 벤치에 앉아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도 모른채 데이트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조용히 다가간 이들은 젊은 데이트족 옆에 가 앉으며 조용히 칼을 들이대며 돈을 내어놓으라고 욱대겼다. 이들 데이트족으로부터 휴대전화 1대와 현금 20위안(약 3000원)을 강탈했다.액수는 생각보다 적었지만,첫번째 시도는 완전히 성공적이었다.이들은 곧바로 휴대전화 중고판매시장으로 달려가 내다팔아 돈을 마련한 뒤 유명 브랜드 셔츠를 하나씩 사입었다. 첫번째 시도가 성공한데 고무된 이들은 8월 한달동안 모두 8건을 저질러 빼앗은 휴대전화 등을 내다팔아 현금화한 뒤 모두 탕진했다. 하지만 이들의 강도짓도 오래가지 못했다.돈 버는 재미에 흠뻑 빠진 쥔쥔이 잘알고 지내던 돈 많은 친구 장(張)모씨를 털었다가,장씨의 신고로 쥔쥔이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이들의 강도행각은 결국 조종(弔鐘)을 울리게 됐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도토리뉴스] 12월·일요일·새벽 2~4시 ‘밤손님’ 가장 활발

    ‘밤손님’들은 12월, 일요일, 새벽 2∼4시 사이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인경비업체 에스원은 지난해 51만여 고객의 건물(주택은 15%)에 발생한 침입 범죄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왔다고 12일 밝혔다. 월별로는 12월(9.7%)과 4월(9.5%), 요일별로는 일요일(18.4%)과 토요일(16.7%)에 도둑이 가장 많이 들었다. 주택의 경우 수요일(17.7%), 오후 8∼10시(19.5%)에 침입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 [책꽂이]

    ●살인의 해석(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비채 펴냄)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 융의 학설을 바탕으로 쓴 고품격 범죄추리소설. 소설은 프로이트가 실제로 미국을 방문한 해인 1909년 뉴욕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당시 뉴욕은 건축산업의 발달로 마천루가 경쟁하듯 세워지고 도시가 새롭게 건설되고 있던 때. 어느날 고층빌딩에서 미모의 여성이 살해된다. 프로이트는 그 사건에 개입, 조금씩 범죄의 진실에 다가간다. 한편 융은 미국에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프로이트의 학설을 전면 부정하며 스승을 배반한다. 영화의 한 컷 같은 단락나누기를 시도한 팩션소설.1만 3000원.●리스본 쟁탈전(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해냄 펴냄) 소설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출신 작가의 장편소설.12세기 포르투갈의 성립 과정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 새롭게 복원했다. 과거시제와 현재시제가 자유롭게 사용되고 기록 속의 과거, 상상속의 과거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등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불리는 사라마구 소설의 다양한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1만 3000원.●인생의 베일(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민음사 펴냄) 허영과 욕망이라는 인간의 굴레를 극복해가는 주인공 키티의 성장과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묻는 장편소설.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한 영화 ‘페인티드 베일’의 원작이다. 런던의 세인트토머스 의학교를 졸업한 몸은 자전적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와 고갱을 모델로 한 ‘달과 6펜스’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이뤄낸 작가로 평가받는다.9000원.●시체도둑(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현명수 옮김, 버티고 펴냄) ‘지킬 박사와 하이드’‘보물섬’으로 유명한 작가의 단편 모음집.‘자살클럽’‘마크하임’‘악마의 병’ 등 9편이 실렸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작가는 45세에 뇌출혈로 죽을 때까지 평생 폐질환과 싸워야 했다. 사랑과 모험을 좇아 자유롭게 떠돌아다닌 진정한 유목민이었던 스티븐슨은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래드와 함께 당대 영국 소설의 삼두마차로 꼽힌다.9800원.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8월 ‘사상계’ 복간하는 장준하 선생 아들 호권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8월 ‘사상계’ 복간하는 장준하 선생 아들 호권씨

    ● 1953년 4월1일 서울 종로구 청진동 백조다방 4층.‘사상계’ 창간호 3000부 발행. ● 1970년 5월 ‘사상계’ 폐간조치.232쪽에 게재된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이유로.‘∼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예가 바로 재벌(1), 국회의원(국獪의猿·2),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3), 장성(長猩·4), 장차관(暲차관·5)이라 이름하는/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의 추락사. ● 2007년 1월25일 한국관광공사 대강당.‘사상계’ 복간 발기인대회 개최. 복간추진위원장 박정훈 전 국회의원을 비롯, 김근태 열린우리당의장, 함세웅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 김상현 민주협 공동의장,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장영달·권영길 의원 등 300여 명 참석. 지난 2005년 8월 ‘교수신문’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분야별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광복 이후 60년간 학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사상계’를 1순위로 꼽았고 이어 ‘자본론’과 ‘전환시대의 논리’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랬다. 독립 운동가이며 민주투사인 장준하 선생의 주도로 창간된 ‘사상계’는 민족과 분단문제, 민주주의, 경제발전 등 당시 지식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던 문제를 가장 선도적으로 다뤘다.1960∼70년대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 따뜻한 인문(人文)의 샘으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와 장준하의 ‘백지(白紙)권두언’ 등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 뭉클 기억에 남는다고 당시 지식인들은 입을 모은다. 하기야 1961년 4·19때에는 발행부수가 8만부에 달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의 관심도가 어느정도인지 충분히 짐작된다. ●부친만큼이나 많은 恨 가슴에 안고 살아 이제 그 ‘사상계’가 오는 8월호로 37년 만에 복간된다. 발행인은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58)씨가 맡는다. 그의 현 직함은 ㈜장준하 思想界 대표.2005년 11월 온라인을 통한 ‘e-사상계’(www.esasang ge.com)를 창간,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부친이 사망하자 테러를 당하는 등 국내에 머물 수 없어 오랫동안 해외 도피생활을 해와 부친만큼이나 많은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복간호 준비에 여념이 없는 장 대표를 지난 주 서울 종로구 내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때마침 박정훈 전 의원과 함께 복간호 견본 표지를 살피고 있었다.“7월말쯤 발간하고 기념식은 장준하 선생의 기일(8월17일)에 맞춰 실시할 예정이다.”고 하면서 발행인은 자신이 맡되 CEO역할만 할 뿐 편집권은 철저히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편집주간은 언론인 출신이자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을 지낸 윤무한 강원대교수가 정해졌고 편집위원 6명이 곧 짜여진다고 밝혔다. 아울러 광화문 주변에 사무실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복간준비 과정과 관련,“주변에서 오늘날의 어려운 잡지현실을 예로 들면서 ‘돈벌이가 되겠느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장준하 선생이 손수레를 끌면서 사상계를 운영했던 옛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나은 편”이라고 했다. 아울러 사상계 복간을 갈망하는 사람들도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보자는 뜻도 있어 복간준비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 편집 방향에 대해서는 “중도가 아닌 중용이다.”고 전제한 뒤,“이념이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나중에는 그쪽으로 중독되고 만다.”면서 “장준하 선생의 철학처럼 진취적인 보수와 따뜻한 진보의 성향을 추구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좌·우이념과 통일문제, 기득과 비기득층 등을 아우르는 국민적 통합차원의 논조를 지향하면서 진정한 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예를 들어 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며 또 국민들 스스로가 차기 지도자감에 대해 잘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근혜 전대표 대선 출마해선 안돼”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만날 수 있느냐고 불쑥 물었다.“광복군 출신의 아버지는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다 사망했다. 나 역시 오랜 외국 도피생활로 집안꼴이 뭐가 됐겠느냐. 박정희 집안과는 한이 맺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박근혜 전 대표는 어쨌거나 군사독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서는 안 된다. 만약 출마하려면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부산일보 등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시킴과 동시에 정말로 바를 ‘정(正)자’의 정치를 하겠다는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따라서 박 전 대표와 만나는 문제는 그때가서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라고 했다. 화제를 바꿔 한많은 세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장준하 선생이 사망하던 이듬해 1976년 4월19일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낮 백범사상연구소에 들렀다가 저녁에 운동권 학생들과 만나 술을 몇잔했다. 밤이 되어 이들과 헤어져 서울 상봉동 집골목으로 막 들어서는데 갑자기 청년 3명이 다가와 다짜고짜 얼굴을 가격하더라는 것. 잃었던 정신을 차려보니 경희의료원 응급실. 턱뼈가 여덟조각으로 깨졌고 8시간에 걸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3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고된 병상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 주재 주미대사를 역임했던 필립 하비브가 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하는 길에 장준하 선생의 아들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이를 미리 안 당국요원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대신 하비브의 편지를 받게 된다.“조용히 살고 있으면 당신의 아버지 장준하 선생이 바라는 세상이 곧 올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하비브의 귀띔대로 퇴원하자마자 그는 평소 장준하 선생을 흠모했던 법조계 인사의 도움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도망치듯이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손에 쥔 것은 미화 20달러가 전부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장준하 선생한테 신세졌다는 한 건설사 사장의 도움으로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0·26으로 박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귀국했다. 하지만 몇달 뒤 집 주변에서 낯선 이들에게 눈을 가린 채 납치돼 감금당했다. 일주일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싱가포르로 떠났다. 여기에서는 화교 사업가와 인연을 맺으면서 금융컨설팅 등을 배웠으며 외국 투자회사들을 상대로 한국 외자유치 세일즈 등에 나섰다. ●“현실도피한 것처럼 얘기할 때 마음 아파” “외국생활을 하면서 육체적인 고생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지만 가족을 두고온 처지와 또 아는 분들이 현실 도피한 것처럼 얘기를 자주할 때에는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아픈 추억은 군 복무 시절에도 있다. 해군 사병으로 있던 그가 1968년 부대 동료 몇명과 함께 베트남 전에 참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파병부대원들과는 달리 자신에게만 주월 사령부에서 보직을 받으라는 것. 사령부로 갔더니 다시 한국에서 타고 온 수송선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수송선은 사이공에서 나트랑으로 떠나 있었다. 다시 나트랑으로 갔으나 수송선은 없었다. 이후 나트랑 부근의 부대를 전전하다가 최종적으로 십자성부대에서 귀국하게 된다. 이 같은 경우는 매우 드믄 일로 나중에 당시 동료들과 만났을 때 “그건 당국에서 장준하 선생이 베트남 파병을 반대해 아들인 장대표가 실종되도록 방치했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처럼 장준하 선생의 아들로 파란만장과 가슴에 커다란 멍을 안고 살아온 장 대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의문사 진상규명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비로소 외국생활을 접고 2003년 12월 다시 한국땅을 밟게 된다. 이후 그는 여러 인사들을 만나 사상계 복간의 뜻을 모았고 이에 앞서 ‘e-사상계’를 먼저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진상규명과 관련,“어떤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해야 가능한 일”이라면서 처음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슬하의 딸 둘은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마쳤고 큰딸은 현지 변호사로 있다. 장 대표는 서울 일원동 전셋집에서 노모 김희숙(81)여사와 함께 산다. 김 여사는 천주교 ‘열령회’ 등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9년 서울 출생 ▲67년 이대부고 졸업 ▲68년 해군입대, 베트남 파병 ▲76년 테러 뒤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생활 ▲89년∼2000년 싱가포르서 사업 ▲2003년 엠렛테크놀로지 고문 ▲04년 ㈜장준하 사상계 법인설립 ▲06년 3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졸업 ▲07년 8월 사상계 복간호 발간예정
  • [깔깔깔]

    ●정육점의 외과의사 한 외과의사가 정육점에 고기를 사러 갔다. 의사는 이 부위를 잘라라, 저 부위는 맛이 없다며 정육점 주인의 신경을 건드렸다. 화가 난 정육점 주인이 고기를 내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보슈, 그럼 당신이 맘에 드는 부위를 직접 잘라가면 될 거 아니오?” 그러자 외과의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깃덩이 앞에 섰다. 고기를 한참 주시하던 외과의사, 정육점 주인에게 손을 쓰윽 내밀며 하는 말, “메스”●도둑의 유언 어느 도둑이 중병에 걸려 죽을 때가 되자 아내에게 유언을 남겼다. “여보, 그간 정을 생각해서 내가 당신에게 보물을 하나 주겠소.” 그러자 아내가 반색했다.“그게 뭔데요?” “보석일세.” 그러자 아내가 더욱 가까이 앉으며 물었다.“어디 있는데요?” “응, 옆동네 강회장 집 장롱 세번째 서랍에 있다네.”
  • [탈당정국 3色 동향] 한나라, 국고보조금에 ‘촉각’

    [탈당정국 3色 동향] 한나라, 국고보조금에 ‘촉각’

    한나라당이 여당의 탈당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권이 2∼3개로 분리했다가 대선 직전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경쟁력있는 단일후보를 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당장 한나라당에 주어지는 국고보조금(정당보조금+선거보조금)이 40∼57%까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여당의원들의 탈당 러시를 ‘기획탈당’이라고 규정하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교섭단체가 후보를 안 낼 경우 국고보조금을 상환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등 여당의 탈당사태에 따른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한나라당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은 30일 국회대책회의에서 “대선전 급조된 정당들이 국고지원을 받은 뒤 선거 전에 간판을 내릴 경우 그 돈을 상환토록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여당을 분열, 와해시킨 뒤 (대선을 앞두고)다시 헤쳐모인다는 소위 ‘기획탈당’이라는 점이 문제”라면서 “별도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해 국민 세금인 정당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고 이 돈을 신당 창당 자금이나 막대한 오픈 프라이머리(대선후보 완전국민경선제) 자금으로 활용한다는 설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선 전 정당 몇 개를 급조해 대선도 아닌 당내 경선에 자금을 쓰겠다는 발상은 용서받을 수 없는 정치행태”라며 “한나라당은 법을 개정해서 의회민주주의와 정당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꼼수 정치가 발붙일 수 없도록 정치적 제도를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경원 대변인도 “열린우리당의 탈당 러시는 기획탈당이자 국민의 표를 도둑질하는 행위이며 새로운 정당을 만듦으로써 국고보조금을 사기질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여당이 3분될 경우 한나라당의 국고보조금은 현재 205억 9600만원보다 무려 104억 4600만원(50.7%)이 깎인다. 이는 전체 국고보조금(509억 2000만원) 중 절반이 교섭단체들에 동률배분되는 데 따른 것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알몸도둑 잡은 탐사로봇

    알몸도둑 잡은 탐사로봇

    벌거벗은 채 빗물 배출관으로 도망친 도둑이 ‘하수관 탐사 로봇’에게 붙잡혔다. 30일 서울 노원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쯤 중계동 상계백병원 종합검진실에서 한모(57)씨가 혈액검사를 기다리던 박모(69·여)씨의 손가방을 훔쳐 달아났다. “도둑이야.” 박씨의 비명에 시민들이 한씨를 쫓기 시작했다. 한참을 도망치던 한씨는 시민들에게 옷덜미를 붙잡히자 점퍼를 벗어 던졌다. 이어 허리띠를 붙잡히자 바지까지 벗고 달렸다. 결국 시민들의 끈질긴 추적에 속옷에 신발까지 모두 벗고 도망가던 한씨는 알몸으로 병원 주변 당현 1교 아래 빗물 배출관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배출관은 직경이 한 사람이 겨우 기어다닐 수 있을 만한 60㎝에 불과했지만 한씨는 손발에 상처를 입어가며 필사적으로 기어 도망갔다. 예상치 못했던 저항에 당황한 경찰을 도운 것은 다름 아닌 하수관 탐사로봇. 경찰의 부탁을 받은 관할 노원구청이 배출관 도면과 함께 가지고 왔다.CCTV와 바퀴 6개가 달린 이 로봇은 노원구청이 1500만원을 주고 사들인 것으로, 원래 하수관의 막힌 곳이나 불법으로 뚫린 곳을 찾는 임무를 맡고 있다. 길이 60㎝에 높이 40㎝, 무게 15㎏의 소형이지만 사람은 들어가기 어려운 곳을 최대 150m까지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동영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조종자에게 보낸다. 로봇을 투입한지 4시간이 지난 오후 2시50분쯤. 로봇이 보낸 화면에 알몸 차림으로 추위에 덜덜 떨며 웅크리고 있는 한씨가 나타났다. 경찰은 가까운 맨홀을 통해 들어가 한씨를 설득,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맑은 공기 꿈꾸는 서울, ‘자전거 천국’] (2) 두바퀴 정책, 이것이 문제다

    [맑은 공기 꿈꾸는 서울, ‘자전거 천국’] (2) 두바퀴 정책, 이것이 문제다

    ‘자전거도로 648㎞, 자전거 보관대 2540곳(7만 3273대), 한강교량 연결로 12곳. 자전거 대여소 25곳’ 서울의 자전거 시설을 숫자로만 나타내면 ‘자전거 천국’이 가까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형을 넓히는 데 만족하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엉터리가 많다. #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서 사고땐 무조건 자전거 잘못 10년 동안 자전거로 출퇴근한 임형태씨는 서울시의 보행자·자전거 전용도로 확장 정책에 대해 반대의견을 냈다. 임씨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자전거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자전거 잘못이다. 도로교통법상 차가 사람을 다치게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해 10월20일 여의도 둔치 자전거전용도로에서 자전거로 시속 10㎞로 달리다 산책 중이던 B(60·여)씨와 부딪혔다.B씨는 넘어져 무릎 등을 다쳤고 8주 진단을 받았다. 법원은 좌우를 살펴 사고를 예방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약식명령했다. # 장애물투성이 자전거 보행자 겸용도로 보행자가 무섭다고 차도로 내려와도 안된다. 자전거전용도로가 있기 때문에 차도로 달리면 불법이다. 이때 자동차와 추돌하면 자전거 과실이 10% 늘어난다. 임씨는 “손해만 보는데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 확장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자전거도로 648㎞ 가운데 자전거 전용도로는 22㎞뿐이다. 나머지 626㎞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다. 게다가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장애물투성이다. 여의도 증권가의 겸용도로에는 지하철 환기구가 즐비하다. 청계천5가∼을지로5가 자전거도로는 상점이 장악했다. 물건을 내놓아 보행자도 다니기 힘들다. 서울 자전거도로는 언제 끊길지도 모른다. 골목길이든, 교차로든 교통안내가 꼭 필요한 지점에 이르면 변심한 연인처럼 자전거를 내팽개친다. 교차로에서 자전거가 좌회전을 하려면 육교나 지하도를 오르락내리락하거나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달려야 한다. # 비좁은 터널·한강다리 자전거를 타고 터널과 다리를 지나는 것은 고행길이다. 대부분 자전거도로가 없어 위험하다. 있어도 너무 좁고 보행자 겸용이다. 옥수터널과 동호터널에는 보도에 두 개의 봉이 세워져 있다. 자전거의 통행을 막기 위한 방책이다. 사고위험이 높지만 자전거도로도 없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자동차와 나란히 달려야 한다. 잠수교는 보도가 보행자·자전거 겸용이지만, 보행자와 자전거가 동행할 수 없다. 도로가 좁아 부딪히기 일쑤고, 오른쪽·왼쪽에 난간이 세워져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 김상일(24)씨는 “잠수교를 지날 때마다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올 하반기에 잠수교를 차량이 다니지 않는 보행자도로로 바꿀 계획이다. 교통국관계자는 “비좁은 자전거도로를 확장해 도로를 다시 설계하겠다.”고 말했다. # 공공기관도 애물단지 취급 박모씨는 지난해 10월 자전거를 타고 마포구청에 방문했다. 자동차주차장은 넓은데 자전거 보관대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현관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 그때 수위가 박씨를 불러세웠다.“자전거를 건물로 갖고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찮은 자전거를 아무데나 세우면 되지.”라며 소리질렀다. 박씨는 “공공기관이 자전거를 이렇게 천대하는데 누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겠냐.”고 반문했다. 자출족 이모(37)씨는 지난해 12월 마포구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자전거를 찾으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몇 주 전에 주차한 자전거는 물론 보관대까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기장 주변을 몇바퀴 돌고나서야 구석에서 ‘자전거 무덤’을 발견했다. 다른 자전거 10여대를 옆으로 옮겨놓자 자신의 자전거가 보였다. 자물쇠는 잘려나가고 자전거도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다. 경기장을 관리하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항의하자 “홈에버가 할인점 오픈행사를 열어 보관대를 일시적으로 치운 것”이라면서 “안내문을 통해 충분히 공지했다.”고 해명했다. 공단은 현재까지 자전거 보관대를 다시 설치하지 않고 있다. # 자전거도로 점유땐 벌금 20~50유로 내야 암스테르담 자전거도로는 자동차·보행자 도로처럼 끊김이 없다. 얼렁뚱땅 사라지는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공사 중이라도 자전거가 어떻게 우회해야 하는지 표지판으로 명확히 안내한다. 교차로에서는 좌회전하는 자전거를 위해 1차선 앞쪽에 자전거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자전거도로를 무단 점유하면 벌금 20∼50유로(2만 4000∼6만원)를 내야 한다. 자전거도로 800㎞가 모두 보행자·자동차와 완전 분리된 전용도로다. 각 도로의 높이가 다르고, 그리고 구간이 명확하다. 따라서 자동차·자전거·보행자가 제 길만 가면 된다. 도심을 관통하는 운하의 경우 자동차와 자전거가 나란히 건너지만 자전거도로는 붉은색으로 표시돼 있다. 자전거 보관대는 공공기관, 자동차주차장, 지하철, 버스정류장, 백화점, 상점 등 어디에나 있다. 가로수에 나선형 모양의 철막대를 설치해 자전거를 보관하기도 한다. 특히 지하철에는 밀폐된 장소에 자전거를 집어넣어 보관하는 무인주차장도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자전거도둑 어떻게 막나 #1 자출족 한모(32)씨는 지난 23일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출퇴근용으로 자전거를 구입한 지 일주일만이다. 회사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경비아저씨에게 부탁도 했지만, 자전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2 자전거동호회 회원 김모(54)씨는 눈앞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자전거를 타다 한강변에서 쉬고 있는데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최신형이죠? 저도 자전거를 하나 구입하려고 하는데…. 시험운전 좀 해봐도 될까요?” 김씨는 의심 없이 자전거를 넘겨줬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택가에서도 자전거 도둑이 날뛰고 있다. 회사원 강모(47)씨는 “아이들이 최근 2년 동안 새 자전거를 학원앞과 친구집에 세워뒀다가 모두 4대를 잃어버렸다.”면서 “자전거를 훔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무리 비싼 자물쇠를 채워도 도둑을 당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자전거 보관대 역시 도난방지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 이상훈(34)씨는 “낡은 자전거만 즐비한 보관소에 새 자전거를 주차하면 금세 눈에 띈다. 그래서 보관대에 주차하면 자전거 도둑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보관대가 ‘바퀴 고정식’이라 바퀴가 분리되는 자전거에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자출족은 자전거 보관대를 ‘자전거 도난대’라고 부른다. 도난방지책은 관리인이나 폐쇄회로(CCTV)가 있는 자전거 주차장을 시내 곳곳에 설치하는 것이다. 다행히 내년 12월 전국 최초의 자전거 토털 센터가 4호선 수유역에 세워진다. 서울시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첨단 도난방지 장치의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전거에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을 갖춘 전자칩을 부착해 도난을 예방하는 방식이다. # 암스테르담에서는 암스테르담 역시 도난이 골칫거리다. 전체 자전거의 10%인 6만여대가 매년 도둑맞는다. 암스테르담은 이를 첨단시설을 갖춘 실내주차시설(25곳)과 분실·도난보험, 자전거등록제로 해결한다. 주차장은 오전 6시∼오후 11시30분 운영하며 보관료는 하루 1유로(1200원), 일주일(4유로·4800원), 한 달(11유로·1만 3200원),1년(90유로·10만 8000원) 단위로 나뉘며 주차장 이용 계약기간이 길수록 요금이 싸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노대통령 기자회견] 직설화법 피하고 답변 간결하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일 개헌 제안을 시작으로 11일 개헌 관련 긴급 기자간담회,23일 신년연설에 이어 25일 신년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달만 4차례 TV 카메라 앞에 섰다. 기자회견은 오전 10시부터 1시간20분 동안 이뤄졌다.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페이스를 잃어’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던 신년 연설과는 사뭇 달랐다. 현안들에 대한 질문에 간결하게 답변했다. 특유의 직설화법도 쓰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10분 동안의 모두발언을 통해 “참여정부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는 자세로 임해왔다.”고 평가한 뒤 ▲사법개혁 ▲방송통신융합 ▲연금개혁 등의 과제를 빨리 처리해줄 것을 국회에 요구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4대 보험징수 등을 사례로 들며 “모든 것을 다음 정부로 미루라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제가 하면 망칠 거라면 말리지만, 제가 해도 대개 비슷할 것 같으면 갑시다.”라고 협조를 호소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부분에서는 야당의 ‘하지 마라.’, 여당의 ‘하라.’는 것 모두 ‘정략적’이라고 규정했다.“있지도 않은 것을 자꾸 끄집어내 마치 무슨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우리집에 오지 마시오.’하면 기분 좋겠느냐.”면서 “기분이 별로 안 좋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언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 포착해서 쓰라.”고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과 여론에 대해 이전과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지난 2002년 대선과정 때를 떠올리며 “저는 국민들을 무서워한다.”면서 “너무나 국민들의 힘을 생생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정말 두렵게 정치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반드시 국민의 뜻, 국민의 이익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남극 세종기지 펭귄마을 특별보호구역 지정추진

    남극 세종기지 인근 펭귄마을을 ‘남극 특별보호구역(ASPA)’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환경부는 남극 환경보호를 위해 펭귄마을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키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다음달까지 현지 조사를 마치고 관리계획을 세운 뒤 내년 5월 13차 남극조약 당사국회의에서 특별보호구역 지정을 승인받을 계획이다. 우리나라가 영토 밖에서 특별보호구역 지정을 추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펭귄마을은 남극 세종기지에서 남동쪽으로 2㎞가량 떨어진 해안가 언덕으로 환경적 보호가치가 높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젠투펭귄 등 펭귄 3종류 군집과 남극 도둑갈매기, 현화식물(꽃을 피워 종자로 번식하는 식물), 선태식물(이끼류 및 우산이끼류), 지의류(균류, 녹조 및 남조류가 공생하는 생물체) 등 육상 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우리나라는 펭귄마을에 대한 관리계획에 따라 출입통제, 모니터링 등 환경보호대책을 실시하게 된다. 남극 생태계 보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남극 환경보호에 관한 우리나라의 의지를 보여주고 남극활동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남극기지 보유국(18개국) 가운데 미국과 영국 등 12개국이 65곳, 기지가 없는 이탈리아가 2곳의 특별보호구역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스무번 찾아가 “담장 허물자” 읍소

    스무번 찾아가 “담장 허물자” 읍소

    공무원 “어르신, 집 담장 허물고 주차장 만들면 불법 주차가 사라집니다. 화단도 꾸미고, 폐쇄회로 TV도 달아드립니다.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 말씀하세요.” 집주인 “우리는 생각지 말어. 별스럽게 한데도 나는 몰라. 수고들 하는데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야지. 나는 차 없어.” 공무원 “자식들이 놀러왔을 때 주차장 있으면 좋잖아요. 세입자도 편하지 않습니까.” 집주인 “세입자하고 나하고 뭔 상관이여. 내 귀에는 소용없어. 딴 데 알아봐. 허험∼.” 24일 오전 10시 강동구 성내2동 502번지 주택가 골목. 강동구청 교통관리과 손명신 주임과 집주인이 옥신각신이다. 옆에 있던 다른 공무원은 “그나마 점잖으신 겁니다. 수시로 멱살 잡히고, 욕 얻어 먹습니다.”며 이런 실랑이가 다반사인 듯이 말했다. 만성적인 주차장 부족에 시달리는 자치구들이 주택가 담장을 허물어 주차장을 만드는 ‘녹색 주차 마을(그린파킹)’ 조성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사업 비용과 인센티브를 줘도 멀쩡한 담장을 허물겠다는 집주인들은 거의 없다. 지난해 골목길 주차장 확보 실적에서 최우수구로 뽑힌 강동구청 공무원들의 ‘주민 설득’ 현장에 기자가 동행했다. 성내2동 502의7번지. 손 주임이 수차례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다.“구청에서 나왔습니다.”라는 몇 번의 큰 소리에 한 70대 어르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어르신도 손 주임의 (그린파킹)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장 없으면 도둑 들어와서 안돼.”라며 손사래를 쳤다. “골목에 폐쇄회로 TV가 설치돼 도둑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라는 손 주임의 거듭된 설득이 계속됐다. 또 물량 공세(?)가 이어졌다.“계량기를 새롭게 달아드리고, 수도대와 장독대는 새로 만들어 드릴게요.” 주효한 걸까. 실랑이 끝에 “다른 집들이 하면 나도 하겠다.”는 ‘반 승낙’이 떨어졌다. 이 골목에서는 세번째로 그린파킹 참여 집이 생긴 것이다. 손 주임은 “한 집에 20번 정도 방문하는 것은 예사”라면서 “오늘은 그나마 수월하게 한 건 올렸다.”고 했다. 하지만 통계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손 주임의 예언대로 이 골목의 다른 10여집에서는 모두 허탕이었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이대로 살도록 내버려둬라. 편하게 잘 사는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느냐.”는 것이었다. 강동구가 ‘그린파킹’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주차 전쟁’을 줄여보기 위해서다. 밤에는 골목길마다 불법 주차가 난무한다. 이 때문에 주차 민원이 쇄도하고, 주민간 고성이 수시로 오간다. 법대로 처리하면 원성만 높아진다. 주택가 이면도로의 ‘주차장화’는 자칫 대형 화재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손규호 교통정비과장은 “그린파킹 사업은 주택가 이면도로의 기능을 회복하면서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골목길을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강동구는 지난해 14개 골목 263가구의 담장을 헐었다. 차량 315대가 추가로 주차장을 갖게 된 셈이다. 올해는 고덕1동 등 12개 골목 220가구의 담장을 허물어 차량 270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로칼뉴스] 본업은 장사, 처녀 더듬는건 부업?

    [로칼뉴스] 본업은 장사, 처녀 더듬는건 부업?

    5월 19일 동대구경찰서는 경남 거창군 거창읍 전(田)모군(23)등 두 사람을 즉심에 넘겼는데… 전군 일당은 장사차 대구에 왔다가 18일 밤 9시쯤 대구시 산격동 수원지 뒷산에 올라가 산책 나왔던 고(高)모양(21·대구시 산격동)을 끌어 안고 돌아가며 온몸을 만지면서 『 딴데 가서 재미 좀 보자』 고 억지를 쓰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혔다는 것.경찰서에서 『 처녀 몸 더듬는 것이 장사냐?』 는 담당 형사의 호통에 넉살 좋은 이 친구들 『그건 부업입니다』 하더라나.<대구(大邱)>■ 도둑일망정 「나도 의리의 사나이」 ?며칠전 부산시 D서를 찾아온 K씨(41)는 「의리있는 강도님」 을 잡아달라는 색다른 신고.K씨는 전 날 밤 집안에 침입한 강도에게 『다른 것은 다 가져가도 좋으나 단벌신사이니 양복만은 좀 봐달라』고 사정했더니 딱한 사정에 감동(?)한 강도씨가 『날씨가 더워졌으니 저고리만 가져 가겠다』면서 바지는 남겨 주더라는 것.<부산(釜山)>■ 「대리아빠」 부업 -공술먹고 재미보고 부산시 대창동 모 회사의 최(崔)모씨 는 요즘 「대리아빠」노릇에 톡톡이 재미를 보고 있는데….최씨는 업무상 거의 매일밤 「살롱」 에서 술을 마시는 처지인데 요즘 각 학교의 소풍철이 되자, 아비 없는 아이(?)를 둔 「살롱」아가씨들이 최씨에게 소풍날 하루만이라도 아빠 노릇을 해주어서 아이를 기쁘게 해달라고 눈물로 간청, 마음 약한 최씨는 아무리 회사일이 바빠도 조퇴를 해가며 그들의 청을 들어 주고 있다는 것.그렇게 대리 아빠 노릇을 한 그날 저녁은 아가씨들로부터 대접이 그게 아니라는 얘기.<부산(釜山)>[선데이서울 70년 5월 31일호 제3권 22호 통권 제 87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