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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노씨에 대한 청와대 정서 변화/최근의 행보에 평가 엇갈려

    ◎전씨/정치적 표현 자제… “한수높은 사람”/노씨/TK정서 업은 연설… “믿는 도끼에…”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에 대한 청와대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무엇보다 지난 9일 서울과 대구에서 있었던 경북고 동문체육대회와 대구공고 동문체육대회에서 행한 두전직대통령의 서로 다른 「행동」이 지금까지 청와대가 갖고 있던 두사람에 대한 분위기를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전전대통령에게는 무관심에서 「괜찮은 사람」이란 쪽으로,노전대통령에게는 「전임총재에 대한 예우」에서 「참…」이란 쪽이다. 전두환전대통령은 동문들과의 만남에서 『동문여러분이 산업현장에서 맡은바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게 됐다』면서 「장인정신」의 중요함을 역설했다.현실정치에 대한 일체의 관여나,아쉬움이 담긴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태우전대통령은 『달구벌사람들은 참을 줄도 용서할 줄도 기다릴 줄도 안다』면서 『다시 한번 여러분의 손으로 영광을 재현한다는 마음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듣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이른바 「TK정서」를 업은 연설이었다.청와대의 느낌도 그런 모양이다. 이날의 요란스런 행사들에 대해 청와대측의 공개된 표현은 『동문행사에서 한말인데 뭐…』정도다.다만 『동문행사를 신문에서 크게 취급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란 선이 최고다. 그러나 한발자국만 더 들어가 보면 금방 『전전대통령이 노전대통령보다 한 수 높은 것 같다』는 비공식 반응이 비치고 있다.『한때 그런분을 총재(민자당의)로 모시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30년동안 잡았다가 1년7개월 쉬었다고 그런식으로 표현하면 호남이나,다른 지역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전대통령에 대한 청와대의 그동안 분위기는 무관심이었다.「쿠데타적 사건」으로 정리한 「12·12」의 주역이었지만 전직대통령인만큼 서로 모른체 하고 각자 길을 걷자는 식이었다.신세진 것 없이 박해만 받은 터라 오히려 미움에 가까운 무관심이었는데 최근의 행보를 보면서 청와대는 대통령을 지낼만한 사람이었다는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 같다. 이에 비해 노전대통령은 민자당의 전임총재였다.청와대는 전임총재에 대한 예우를 지키려했던 것으로 이야기한다.물론 고도의 정치적 득실을 따진 판단이겠지만 사정태풍 때 노전대통령의 이름이 나올 기미가 보이면 추적하던 계좌도 끊어버렸다고 말하는 관계자도 있다.청와대는 노전대통령이 비록 동문행사지만 지역정서를 등에 업는 듯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전직국가원수로서의 금도를 벗어났다는 생각이다. 물론 노전대통령쪽에서는 전전대통령과 달리 김대통령에게 빚이 없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 청동기 석관묘 대규모 발굴/충남 서천서

    충남 서천에서 국내 처음으로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가 대규모로 발굴됐다. 공주대 박물관(관장 윤용혁)은 26일 『지난 6월 23일부터 약 3개월간 충남 서천군 서천읍 오석리 서해안고속도로 예정구간 1천5백평 부지에서 발굴 조사를 펼친 결과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4∼5세기경의 석관묘 25기,집터 4기,옹관묘 1기와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2∼기원후 2세기)의 토광묘 8기,옹관묘 5기 등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청동기시대 석관묘가 대규모로 집터와 함께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자료 부족으로 부진했던 중부 서해안 지역의 청동기문화 및 사회생활을 연구하는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유물로 마제석검,마제석촉,돌도끼,돌끌,삼각형돌칼 등 마제석기 40여점과 무문토기 수백점과 초기철기시대의 회색 정날문토기,적갈색 양이부 직립구연호 등 토기류 10여점,구슬류 20여점이 출토됐다. 발굴단은 이번에 발굴된 초기 철기시대 토광묘는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문화변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밝혔다.
  • 10억 강탈 목표로 무차별 납치/소사장부부 등 5명 살해

    ◎엽기적 살인조직 「지존파」 6명 구속/조직 배반 1명 곡괭이등으로 타살/납치부부 몸값 받고 공기총으로 쏴/방송국 점거 계획도/경찰,여죄 집중수사 시체처리장까지 갖춘 아지트에서 합숙하며 닥치는대로 시민들을 납치,금품을 빼앗은뒤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하거나 태워버린 범죄조직 「지존파」일당 6명의 끔찍스런 범죄행각이 속속 드러나 충격을 주고있다. 울산 삼전기계사장 소윤오씨(42·서울 중랑구 중화동 극동아파트 19동302호) 부부 납치살해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21일 이 사건의 범인 김현양씨(22·전남 영광군 영광읍 단주리 471)등 6명을 검거,이들로부터 소씨 부부 납치살해를 비롯,지난해 7월부터 배신한 조직원 1명등 모두 5명을 살해한뒤 사체를 암매장하거나 불에 태웠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김씨등 5명을 강도살인및 사체유기·범죄단체구성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된 범인들은 김씨외에 강동은(21·특수절도등 2범·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강문섭(20·충남 논산군 연무읍 안신 2동 14),문상록(23·특수절도등 3범·성남시 중원구 금강1동 1180),백병옥(20·특수강도등 2범·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등이며 범행가담을 부인하던 이경숙씨(23·여·강동은의 애인·절도 1범·대전시 중구 문창1동 34의24)도 범인도피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지난해 7월 범죄단체 「지존파」를 결성,강령까지 만든뒤 10억원의 금품을 강탈키로 목표를 설정,전국을 무대로 무차별 납치살인극을 자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또 지난 6월28일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된 두목 김기환씨(26·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에 대해 같은 혐의를 적용,추가 기소키로 했다. ▷1차 범행◁ 이들은 지난해 7월 밤11시쯤 충남 논산군 두계리 두계역 부근 다리밑에서 혼자 걸어가던 23세가량의 여자를 납치,윤간한뒤 두목 김씨가 목을 졸라 살해,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2차 범행◁ 지난해 8월 하오3시쯤 같은 조직원인 송봉은씨(23)를 조직배반을 이유로 전남 영광군 불갑사 야산으로 끌고가 단검과 곡괭이등으로 마구 찌르고 때려 죽인뒤 근처 산에 묻었다. ▷3차 범행◁ 지난 8일 새벽3시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앞길에서 이종원씨(36·밴드마스터·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선경아파트 119동306호)가 운전하고 가던 경기 1주1019호 그랜저승용차를 자신들의 르망승용차로 가로막고 가스총을 발사,이씨와 함께타고 있던 이모씨(27·여)를 아지트로 납치한뒤 몸값을 요구했다.그러나 이씨가 지급능력이 없자 다음날 비닐봉지를 얼굴에 씌워 이씨를 질식사시킨 뒤 그랜저승용차에 태워 전북 남원 부근 계곡으로 굴러 떨어뜨려 교통사고로 위장했다.납치된 이여인은 15일 간신히 도주,다음날 경찰에 제보했다. ▷4차 범행◁ 지난 13일 하오5시쯤 경기 성남 동서울 공동묘지에서 벌초를 하고 있던 소씨 부부에게 가스총을 발사,아지트로 끌고가 다음날 몸값 1억원을 요구,소씨 회사의 심모부장(36)으로부터 현금 8천만원을 받아낸 뒤 15일 새벽 아지트 지하실에서 소씨를 공기총을 쏴 살해했다.소씨의 부인 박미자씨(35)를 칼로 찔렀으나 죽지않자 도끼로 살해한뒤 소씨부부의 사체를 칼과 도끼로 토막내 소각장에서 태웠다. ▷범행모의및 조직결성◁ 이들은 「지존파」조직결성후 ▲조직을 배반한 자는 죽인다 ▲돈많은 자로부터 목표액 10억원을 강취한다 ▲돈많은 자들을 저주한다는등의 행동강령을 만든 뒤 지난 3월쯤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 두목 김씨 명의의 대지에 아지트를 짓고 지하에 납치감금할 수 있는 철창과 사체소각용 화덕을 설치했다. ▷검거경위◁ 탈출한 이여인(3차범행 피해자)으로부터 제보를 받은 경찰은 이씨가 갖고 온 강동은씨의 핸드폰을 추적,아지트의 소재를 알아낸 뒤 지난 19일 새벽 4시쯤부터 이씨와 함께 아지트 부근에서 잠복근무를 하면서 검거작전을 병행,이들을 붙잡았다. 경찰은 이들의 아지트에서 소씨로부터 강탈한 현금 3천8백만원,망원렌즈가 부착된 6연발 공기총 1정,대검 11자루,손도끼 1개,전자충격기 1개,전자봉 1개,가스총 1정,다이너마이트 뇌관및 떡밥등 35개,무전기 2개등을 증거물로 확보했다. ▷추가범행계획◁ 이들은 두목 김씨가 지난 6월 강간치상 혐의로 영광경찰서에 구속되자 경찰서를 습격해 총기를 탈취한 뒤 모방송국을 점거할 계획도 세웠다.또지난 7월초 서울시내 모백화점에서 대량으로 상품을 구입한 부유층 고객 3백여명의 명단을 비밀리에 확보,범행 대상을 물색하기도 했다. ▷범행동기◁ 이들은 경찰에서 빈부차이가 너무 크고 돈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세상이 싫어져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또 「야타족」등 돈있는 사람들은 다 죽이지 못해 억울하다고 했다.
  • 태연하게 토막내고 태우고…/최치봉 전국부기자(현장)

    ◎소름끼치는 번행 재연에 “아연” 「공포의 지하실」­지존파의 엽기적인 범행현장엔 범행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듯 시체탄 냄새가 코끝을 진동했다. 21일 하오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회산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범인들의 아지트에선 경찰의 현장검증이 진행되고 있었고 집주변엔 끔직한 장면의 재연모습을 본 주민들이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인간살육이 이뤄졌는데도 이웃 주민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속에 범행이 이뤄졌으며 이를 위해 대문에 조직원들끼리 연락하는 비밀 초인종 2대를 달아놓은 모습이 보여 범인들의 주도면밀한 계획범행의 실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대문에서 20m쯤 떨어진 30여평건물본채는 거실과 방 3개,부엌,보일러실등으로 이뤄졌고 집바로 뒤편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출입문 우측 첫번째 방에는 함께 기거한 이경숙의 옷가지가 걸려 있고 방바닥에는 「야인」 「뼁끼통」 「꿈의 해몽」등 소설책과 피묻은 수건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유리창이 깨진 바로 뒷방과 옆방에는 범인들의 옷가지와 화투짝등이 나뒹굴고 있었다.거실에는 TV 1대와 소윤오씨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구입한 새 주방용품과 살림살이가 흩어져 있고 검거당시 반항한 흔적으로 거실문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있었다. 김현양과 강문섭은 서울지검 강력부 김홍일검사의 지휘로 실시된 감금실에 대한 현장검증에서 태연하게 살해상황을 재연했다.김등은 소씨는 공기총으로,소씨부인 박미자씨는 식칼과 도끼로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재연했다. 이들은 먼저 소씨를 살해한뒤 『살려달라』며 부들부들 떠는 박씨를 흉기로 배를 찔러 그자리에 쓰러 뜨렸다.그들은 이어 사체를 토막내고 이를 소각로로 옮겨 불을 붙여 태우는 소름끼치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재연했다. 3평크기의 소각로는 송풍기와 기름보일러 연통이 집뒤 산쪽을 향해 나있어 연기가 나도 이곳 주민들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제작되는등 사전에 치밀한 계획에 따라 설계돼 있었다. 두시간여동안 현장검증작업을 마친 한 수사관은 『30여년을 범죄와 함께 뒹굴었지만 이같은 끔찍한 사건을 접하기는 처음』이라며 수사관생활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 살인실습에 「화장터」까지 차려/「지존파」 일당 행각 이모저모

    ◎야쿠자세계 다룬 소설 「야니」 교과서로/“최후엔 자폭” 다이너마이트도 구해둬/지리산서 지옥훈련… 공기총 항상 휴대 희대의 연쇄납치살인사건을 벌인 「지존파」일당은 「살인실습」을 위해 길가던 20대 처녀를 집단 성폭행한 뒤 살해·암매장했는가 하면 범행 아지트에는 시체소각장까지 설치하는 등 잔혹하기 짝이 없는 범죄행각을 벌였다. 이들의 범죄조직운영및 범행수법의 대담함과 잔인함·치밀함에는 강력사건에 익숙한 베테랑 수사관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강간치상 혐의로 이미 구속된 김기환씨(26)를 중심으로 지난해 7월 「지존파」를 결성한 일당 6명은 조직의 결속을 위해 지난 7월 지리산에서 합숙하면서 1주일간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지옥훈련」을 하는등 마피아조직을 방불케 했다. 이들은 일본 야쿠자 폭력배들의 세계와 깡패들의 교도소생활을 다룬 「야인」「뼁끼통」 등 소설들을 「교과서」로 삼아 엽기적 살인수법및 책속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대담한 행동을 배웠다고 경찰에서 진술. 또 납치했던 이모씨(27·여)가지난 15일 탈출한 뒤 경찰의 추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면서도 범인들이 계속 아지트에 남았던 이유는 동료들과 함께 「최후」를 맞기 위한 것이었다는 후문.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아지트에서 압수된 공기총·도끼·다이너마이트·무전기등 각종 살인장비 가운데 특히 다이너마이트는 범인들이 강원도 삼척의 광산에서 입수,만일의 경우 자폭하기 위해 지니고 있었다는 것. 이들은 소사장을 살해할때에 사용한 사냥용 공기총으로 수시로 사격연습을 했고 항상 실탄을 장전한 상태로 지니고 다녔다고. ○…검거 당시 범인들이 갖고 있던 서울 모백화점의 우수고객명단에는 3백여명의 이름과 주소가 들어있었으며 몇몇 사람의 이름앞에는 범행대상으로 지목한듯한 특정표시까지 돼있는 상태.범인 가운데 한명은 경찰에서 『백화점에서만 한달에 7백만원 이상 쓰는 사람이 많은데에 배가 아팠다』고 진술. 경찰은 이들이 검거되지 않았을 경우 명단에 나와있던 부유층들을 상대로 또다른 범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 ○…경찰은 21일 상오 김현양씨등 범인 4명을 전남 영광군등 3곳으로 데리고 가 현장검증및 사체발굴작업을 실시. 호송차량 뒤에는 이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서울지검 형사3부 김홍일검사와 서초경찰서 형사계장등을 태운 승용차 3대및 취재차량 20여대가 뒤따라 이번 사건에 쏠린 높은 관심을 반영. ○…전남 장수경찰서가 3번째 희생자인 이종원씨 피살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의 2차례에 걸친 재수사지휘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의 위장수법에 넘어가 단순 교통사고로 간주,수사를 제대로 하지않아 소윤오씨부부등 피해자가 늘어났다는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 경찰은 지난 12일 하오6시쯤 제초작업을 하던 장수군청 인부들에 의해 발견된 이씨의 사체주변에 소지품이 그대로 있고 사고지점이 S자 굴곡 형태라는 점만을 들어 단순 교통사고로 단정,수사를 종결하겠다며 전주지검 남원지청 문무일검사에게 품신했다가 재수사 지휘를 받았다는 것. 그래도 경찰은 계속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문검사가 사건발생 8일만인 지난 16일 ▲사고당시 이씨가 맨발이었고 ▲머리부분이 검게 타일반적인 교통사고 사망자와 다르며 ▲차량 손상이 거의 없었다는 점등을 지적하며 재차 재수사 지휘를 내리고 남원의료원에서 사체를 부검하고 국과수에 사인규명을 의뢰했다고. ○…이번 연쇄납치 살인사건 해결에 결정적 계기가 된 세번째 피해자 이종원씨의 가족들은 교통사고사로 장례까지 치른 이씨가 살해됐다는 비보에 넋을 잃은채 비통해 하고 있다. 부인 김모씨(35)와 딸 등 가족들은 기자들은 물론 이웃과의 접촉도 일절 회피하고 있으나 전화통화로 『사지가 벌벌 떨린다.가족들이 모두 충격으로 정신이 없으니 더이상 묻지 말아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인 김모씨는 지난 7일 하오 7시30분쯤 남편 이씨가 출근한다며 나간뒤 소식이 없자 4일뒤인 11일 하오 2시쯤 관할 공단파출소에 가출인신고를 했다. 이후 부인 김씨는 지난 12일 공단파출소로부터 『전북 장수경찰서에서 이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통보해 왔다』고 연락받은뒤 지난 16일 장례까지 치른 상태. ◎죽음의 집 「영광아지트」/지하소각로엔 타다남은 뼈마디…/평범한 시골농가… 감금실엔 쇠창살/방·지하실간 인터폰 달아 보안유지 「지존파」일당이 은신처로 삼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 불갑산자락의 단층가옥은 바로 「죽음의 집」이었다. 슬라브형으로 지은 「ㄴ」자형의 이 집은 회산마을에서 2백m쯤 떨어져 기와집 두채와 나란히 서있어 겉보기엔 한가한 시골 농가와 다름이 없다.그러나 지하실에는 쇠창살로 만든 사제감옥과 시신소각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지존파를 결성한 두목 김기환(26·구속중)이 지난해 3월 홀어머니를 이웃마을로 옮기도록 한뒤 지난 7월 「특수목적」에 맞게 개축을 마쳤다.이를 위해 일당은 대지80평에 건평 27평의 건축허가를 받아 실제는 1백17평에 본채 30평,지하실 차고용 부속건물들을 지었다.외부인에게 집의 내부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 미장공이나 벽돌공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범인들이 손수 지었다. 1층은 범인들이 숙식에 사용한 방3개와 주방,보일러실이 전부이나 감금실과 시신소각로가 설치된 지하실은 멋대로 지은 창고겸 주차장안으로 통로를 내 은폐를 노렸다.나무사다리로 8계단을 내려가면 15평 가량의 지하실이 나오고 오른쪽에 감금실,맞은편엔 시체소각로가 치밀하게 설치돼 있다. 통로 오른쪽으로 1m쯤 떨어진 곳의 육중한 철문을 열면 경찰서 유치장을 연상케하는 쇠창살로 막은 것이 이중잠금장치를 한 납치자감금실이다.쇠창살안쪽 콘크리트바닥과 벽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있고 뽑힌 모발이 흩어져 있어 소윤오씨의 살해수법이 참혹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두개골 2개와 타다남은 등뼈등이 발견된 소각로는 가로 1.8m 세로 2m 높이 1.05m의 철판상자안에 직경 3㎝의 철봉 13개를 50㎝높이로 끼워넣어 시체를 태우기 쉽도록 해놓았다.소각장에는 지름 20㎝의 쇠파이프굴뚝을 세워 1층 뒤뜰로 치솟게하고 대형환풍기까지 갖춘뒤 판자를 덮어 위장했다.한적한 시골임에도 본채와 20여m 떨어진 대문에 전력검침기를 설치하고 조직원들간의 수신호용 초인종과 일반가정에서 사용하는 초인종은 물론 방과 지하실간에도 인터폰을 달아 보안에도 철저히 주의를 기울였다. ◎범인일당 일문일답/“돈 많은 사람·야타족 다 죽이려 했다” 범인들과의 일문일답. ­왜 범행을 저질렀나. ▲(강동은)세상이 싫다.빈부차이가 너무 크게 나 있고 돈없는 사람은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세상은 돈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있다. ­피해자들을 누가 살해했나. ▲(김현양)모두 내가 주동해 살해했다.소윤오씨와 이종원씨를 살해할때는 탈출한 이영순(가명)이를 시켜서 살해했다. ­몸값을 받아내고도 소씨부부를 살해한 이유는. ▲(〃)우리들의 얼굴을 알고 있어 범행이 탄로나지 않도록 완전범죄를 노리고 살해했다. ­완전범죄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나. ▲(〃)언젠가는 잡힐줄 알고 있었다.이영순이가 도망간 것을 알고도 나흘동안 도망가지 않고 현장에서 기다렸다.차라리 잡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백화점 고액거래자 명단을 어떻게 입수했나. ▲(강동은)가스총 등 장비를 구입하면서 부탁했다.출처는 밝힐 수 없다. ­아지트를 지을때 사용한 돈은 어디서 조달했나. ▲(〃)각자 막노동을 해서 번돈 4천만원을 저금했는데 이중2천여만원을 찾아 비용으로 썼다. ­현재의 심정은. ▲(김현양)살해할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동료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한 생각이다.장기기증을 해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다.압구정동 야타족 등 돈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지 못한게 억울하고 한이 된다.다시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만들지 말아달라.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달라.
  • 북 벌목공 우라늄 채광/살인·고문 여전… 탈출자 계속 늘어

    ◎러지,극동 현지취재 보도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극동지역의 북한벌목장에서 일하는 북한벌목공들이 방사능측정기를 소지,인근의 우라늄폐광에서 우라늄을 캐내가는 것같다고 러시아 일간지 「모스콥스키예 콤소몰레츠」지가 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날 「김일성은 죽었으나 그의 사업은 계속되고 있다」라는 제목아래 1,2면 전면을 할애해 사진과 함께 크게 게재한 북한벌목장 현지취재 기사에서 벌목장주변 지역주민들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콤소몰레츠지는 또 북한벌목공들은 벌목장을 『북한영토』라고 주장,벌목장취재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취재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쇠막대기와 도끼 등을 들고 카메라를 빼앗으려 덤벼들기도 했으며 호위중이던 무장경찰이 공포를 쏘아 덤벼들던 북한벌목공들을 쫓기도 했으며 실제로 북한벌목공들에게 카메라를 빼앗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벌목장에선 여전히 고문·살인행위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를 견디지 못해 탈출하는 벌목공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북한 벌목공들의 일부는 돈벌이를 위해 마약·밀주·밀렵 등을 자행하고 있어 지역주민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다고 콤소몰레츠지는 전했다.
  • 러시아 신문 「인권툰드라」 실태 보고

    ◎북 벌목공,인부 감금·고문… 치사 예사/일감줄어들자 인근주민 채소밭서 막노동/도끼로 기자 공격… 동행경관이 공포쏴 저지 북한 벌목장의 실상을 보도한 「모스콥스키예 콤소몰레츠」지 기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1주일을 준비한 끝에 체그도민,뒤르마,지모비에에 있는 수개의 벌목장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모두 하바로프스크에서 6백80㎞ 떨어진 곳이다.이 벌목장들은 지난 69년 당시 소련과 북한간 벌목협정에 의해 세워졌다.이즈베스트코마야∼뒤르마∼체그도민을 잇는 철도가 교차하는 하바로프스크지역의 베르흐네부린스크지방은 사실상 북한영토나 마찬가지였다.주민 대부분이 북한 벌목공들이다.하바로프스크에서 체그도민에 이르는 숲에는 높이 3m나 되는 담과 철조망이 세워져 있었다. 하오6시쯤 인구 4만여명의 체그도민마을에 도착했다.이 곳은 바로 지난 92년4월 독일 슈피겔지 기자들이 헬기를 타고 취재하러 왔다가 주민들에게 폭행당하고 취재장비를 빼앗기는등 봉면만 당한채 돌아갔던 곳이다. 우리는 먼저 마을에 있는 브레야호텔에 여장을 푼뒤 마을 내무당국에 방문목적을 신고하고 그 곳 경찰의 무장경호를 요청했다.지원을 약속한 세레바쳉코지방내무국장은 우리에게 『슈피겔지 기자들이 다녀간뒤 북한인들은 기자만 보면 행패를 부리니 각별한 조심을 하라』고 당부했다.세레바쳉코국장은 작업장안의 벌목공들이 자신들의 법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며 안전부장교인 박춘선,김두빈이라는 사람이 작업장을 통솔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김두빈은 북한해군 중령으로 벌목장에서 전권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그 곳에 등록된 벌목공수는 2천9백4명이라고 했다. 이 벌목장은 벌목공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일감도 줄어들어 벌목공들 일부는 체그도민시내를 배회하며 다른 일감을 찾기도 하고 채소밭에서 막노동도 한다.이들은 체그도민일대 숲을 배회하며 덫을 놓아 밍크,담비같은 동물들을 밀렵하고 지보비에,우르갈 등지에 나가 마약밀매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체그도민에서 1차로 벌목장을 들어가려고 시도하다가 우리는 큰 봉변을 당했다.2명의 러시아 무장경찰과 동행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인들은 도끼,쇠지렛대등을 들고 나와 달려들었다.경찰이 공포 몇발을 쏘자 그들은 멈추었으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수년전 최초로 이 벌목장을 탈출한 사람은 김정운과 김호였다.그들의 증언에 의해 벌목장안에 감옥까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감옥안에서 고문이 자행된 증거도 발견됐다.올 1월부터는 러시아의 부검의가 벌목장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북한으로 실어가기 전에 검시할 수 있게 됐는데 러시아 의사들은 시신에서 치명적인 고문흔적들을 발견했다한다. 지역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지보비에프에서 60㎞ 떨어진 곳에 70년대 문을 닫은 우라늄폐광이 있는데 이 곳에 북한인들이 게속 드나드는게 목격됐다고 했다.그들은 방사능측정기를 소지하고 있어 주민들은 『북한인들이 폐광에서 우라늄을 캐내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벌목장앞에는 위병소가 세워져 있고 3,4명의 북한인들이 지켜서서 출입자들을 일일이 감시했다.그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카메라를 보자 욕설을 하며 돌을 던졌고 동행한 경찰에게도 달려들어 기관총까지 뺏으려 했다.간신히 들어간 벌목장안은 50∼1백명정도 수용할 수 있는 바로크단층건물이 한채 있었고 나무침상위에 더러운 침구,식기들이 여기저기 있었다.수용소중앙에는 「김일성의 집」이 있었는데 마치 박물관처럼 꾸며졌다.김일성초상의 사진을 찍는데 김일성배지를 단 북한인들이 여럿 몰려와 『사진을 못찍는다.이 곳은 우리 영토다.나가라』며 우리를 위협했다.벌목공들은 안전부요원들을 『대장』이라고 불렀는데 모든 벌목장에 이 대장이 있었다.대장이 출현하자 그들은 모두 부동자세를 취하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왜 러시아시민인 우리가 우리 영토에서 취재활동도 할 수 없단 말인가.이 곳이 어째서 북한인들의 영토인가.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체그도민으로 돌아와 우리는 러시아측 벌목합작회사 「우르갈레스」사의 수크노발렝코사장을 만나 전후사정을 들었다.초기부터 북한인들과 함께 이 곳에서 벌목사업을 해온 그는 벌목된 목재의 70%는 러시아로,나머지 30%는 북한으로 간다고 했다.그동안 벌목관련 일반협정 6개가 체결됐는데 오는 9월1일이면 협정이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5월 이를 5년간 연장키로 한 협정이 가서명됐다고 했다.북한측에서 이 협정의 정식조인을 매우 원하고 있으나 벌목공의 인권개선 등을 둘러싸고 최종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 정식발효된 상태는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초기에는 1만5천여명의 북한노동자들이 5백만㎥의 벌목을 했는데 지금은 일감이 계속 줄고 있다고 했다.하바로프스크 내무부의 당국자들은 과거 소련 KGB와 북한 안전부간에 벌목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양자간 협력한다는 내용의 의정서를 체결했는데 이 협정은 러시아나 한국으로 망명을 원하는 탈출자들을 수색하는데 상호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현재까지 이 곳에서 공식집계된 탈출자가 60명인데 실제로는 더 많다는게 지방 내무국당국자들의 설명이었다.안전부책임자 박춘선이 체그도민 지방당국에 본지 기자들이 북한 벌목장영토를 불법침입했다며 항의했다고 한다.어째서 이 곳이 북한 영토란 말인가. 하바로프스크지방정부로서는 목재수출을 통해 얻는 외화가 필요할뿐아니라 북한벌목공들의 임금이 러시아인들과 비교해도 10∼15배정도 낮기 때문에 이들을 크게 괄시할 수가 없다고 한다.그러나 지역주민들과 북한인들과의 관계는 심각하다.밀주,밀렵등을 서슴없이 하는 이들을 향한 지역주민들의 눈초리는 경멸과 분노로 가득차 있다.하바로프스크로 돌아온 차속에서도 3명의 북한인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우리가 사진을 찍자 카메라를 뺏고 우리를 위협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정부는 이들 북한벌목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러시아영토내 북한안전부요원들의 존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어떻게 외국인들이 우리 영토에서 밀주,밀수를 멋대로 하는가.이런 것들이 벌목협정에 포함돼있는 내용들이란 말인가.이런 문제들은 하루 빨리 고쳐져야 된다.
  • 「고고학에서 본 가야」… 김원룡박사 유고논문 공개

    ◎가야/위로부터 군국자격 획득/명제 삼한의 지배자에 읍장관호 하사/5세기 통일… 고분서 투구·칼 등 출토 우리나라 고고학 개척자인 고금원용박사(전서울대 대학원장)의 유고논문이 최근 학계에 공개되었다.그가 지난해 12월 작고하기 전에 써놓은 이 논문은 「가야문화」제5집(가야문화연구원간)에 실린 「고고학에서 본 가야」.삼국역사에 따라 붙었기 때문에 빈약할 수 밖에 없는 가야사를 유적과 유물을 통해 문화사 측면에서 복원했다. 이 논문은 우선 가야가 성립하기 직전단계의 문화를 경남 창원 다호리 1호분에서 찾았다.기원 전후 낙동강 하류지역에 세력자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바로 다호리 1호분이라는 견해.이 무덤에서는 초기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로 넘어가는 문화전환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출토품 붓을 한문화의 영향을 받은 유물로 평가했다. 그 다음에는 경남 김해 양동리 일대에 축조된 고분군에서 가야문화의 여명을 추적했다.그러나 전시대(1세기)처럼 피장자들이 제정일치의 지도자 범부를 크게 벗어나지못했다는데 주목했다.양동리 90호분에서 철제무기류가 2점 출토되었지만 양이 너무 적다는 사실은 피장자를 새로운 시대의 무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3세기가 되면 사회계층화가 두드러지게 진행되는 것으로 밝혀내고 그 증거로 경남 김해 양동리 31·33호분 출토 고리칼(환두대도)을 제시했다.또 3세기 후반의 무덤인 8호분에서는 가시달린철기(유극철기)가 나오는데,이들 철기류는 신부의 고귀를 상정하는 유물로 판단했다.중국 위의 명제(AD 226 ∼ 239년)가 대방군을 통해 삼한의 지배자들에게 읍장 관호를 준 것도 이 시기.그래서 국제적으로 군국의 자격을 인정받는 시기도 바로 3세기라는 주장이다. 삼국이 정립하는 4세기부터 가야지역에는 으뜸덧널과 달린 덧널(주·부곽)을 갖춘 대형 무덤들이 출현한다.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이 그러한 유적.14호분의 큰칼,도끼,철촉,바람개비,유리옥,가죽방패가 나왔다.그리고 39호분에서는 갑옷과 말재갈,3호분에서는 갑옷과 투구가 출퇴되었다.이로써 전시대 지배자들과는 달리 기마전을 수행할 수 있는막강한 실력자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이어 5세기초는 고구려의 남하에 따라 신라와 가야가 군사적 충격을 받는 시기로 해석했다.이 때문에 지배자들이 근대화 내지 무장화를 서두른 것으로 보면서 그 흔적을 경남 함안 가야읍 널무덤을 통해 들추어냈다.이 무덤에서는 중기병의 위세를 실감케하는 말갑옷 1벌이 출토되었다.또 다른 5세기 중반의 무덤인 부산 복천동 11호분에서는 큰고리칼에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수장이 말투구를 갖춘 말위에 올라앉은 모습을 그릴수 있는 유물들이 쏟아져나왔다. 가야에서 5세기는 중요한 시기로 보았다.5세기 후반에 들어 축조된 경남 합천 옥전 3호분에서 나온 용봉문양의 큰고리칼 등 14점의 큰칼을 당시 경제력에 연관시켰다.특히 이 논문은 5세기 후반부터 산위에 나타난 경북 고령 지산동 44호분과 같은 거대한 무덤에 관심을 돌렸다.이는 가야 중심세력이 남쪽 김해지방에서 북쪽 고령지방으로 옮겨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고령지방에서 비로소 대가야라고 쓴 「대」자가 결코 허세가 아니라는 입장.이 시기는 실제 가야가 통일왕국으로 발돋움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나서 6세기에는 가야가 막을 내린다고 결론지었다.그같은 정황은 지산동 가야 왕족묘지 이웃에 가야를 대신한 백제식 ㄱ자 돌방무덤들이 축조된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
  • 김정일의 과격성 잊지말자/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대북정책 새접근)

    ◎대남정책 수정 약속때 대화해도 안늦어 우리 민족사에서 사상 유례없는 불행을 초래케한 장본인­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정권이 출현했다.이로써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통일의 최대 장애요인의 하나가 제거된 셈이다. 이제 북한에서 김일성의 권위때문에 표출하지 못했던 여러의견이 분출될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것이다.그렇다고 당장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왜냐하면 새로 등장한 김정일정권의 본질적 특성으로 보아 우리가 바라는 변화를 기대할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누구보다 강하게 「일당독재,중앙집권적 사회주의·계획경제를 개혁하는 것이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는 요인」이라고 주장해 왔다.따라서 김정일정권도 지금까지 선대가 추진했던 대내외 정책,대남전략을 계승·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김정일정권은 사라진 김일성정권처럼 여전히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통일의 새로운 장애물일 따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없다. 또 한가지유념할 것은 김정일정권의 장래문제이다.물론 앞으로 당분간 김정일체제는 유지될 것이다.과거 20년동안 김정일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전력했던 지원세력들은 계속적인 충성을 서약하고 있다.그러나 이들이 앞으로 변함없이 김일성생존때처럼 그를 지지할 것인가는 확실치 않다.정권인수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침체된 경제를 회생시키자면 개혁·개방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선대의 정책노선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그 과정에서 반드시 정책대결이 일어날 것이며 그것은 새로운 권력투쟁을 유발할 것이다. 아직 환영할 만한 정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정책을 변경할 것이라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특히 김정일정권의 장래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미리부터 정부가 김정일정권을 환영할 만한 정권으로 보는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환영할 수 있는 정권은 개혁·개방으로 전환하는 정권이어야 하며 핵개발을 중지하고 대남전략을 수정하여 남북관계를 확실하게 개선시킬 것을 확약하는 정권이어야 한다.과거 그가 자행한 대남도발(판문점 도끼만행,아웅산묘소 폭발테러,KAL기 격추,최은희·신상옥 부부납치등)로 보나 그의 이론과 정책으로 보나 선대정권에 못지않은 과격주의 경향을 지닌 정권이다.우리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유화적인 양보로 반대급부를 기대할수 있다는 확증은 전혀 없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 신중을 기하면서 상대방 정책이 밝혀질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김일성과 약속했던 남북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재개해야 한다는 생각도 성급한 것이다.상대가 바뀌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또한 장차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하여 할말도 하지못하는 유약성을 보여서는 안된다.무엇때문에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뭣이라는 것을 당당히 말해야 한다.어차피 남북관계는 밟아야 할 과정을 밟고 나야 해결될 것이다. 정부는 신중하면서 명백한 태도를 보여주기 바란다.특히 정치인들의 신중한 태도가 긴요하다.일부 야당국회의원들의 「김일성 조문」발언에서 우리사회의 대북인식이 얼마나 혼란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혼란된 대북관을 시정하지 않고는 본질상 전정권과 다름없는 김정일정권과 대응할수 없다.가장 위험스러운 것은 감상적 낙관적 자세이다.김정일개인의 성격으로 보나 권력구조 안정성여부로 보아 선대정권보다 김정일정권이 더욱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정부는 신중하고도 단호한 원칙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 무구의 특징(백제를 다시본다:17)

    ◎성 방어용 철제가시 마름쇠 이채/제조술 훌륭… 활에 발사장치 덧달아/보병 판갑옷은 철판으로 만든 통형/용·봉황문양 장식한 고리칼은 훌륭한 공예품 철기문화는 동서나 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융성을 좌우한다.정복국가에서 무기는 철기문화의 꽃이기도 하다.사실상 정복국가로 성장한 백제의 무기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그래서 실상을 고분 따위에서 출토된 매장유물을 통해 알아볼 수 밖에 없지만,분명히 훌륭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비성 옛터인 충남 부여읍 부소산성에서 얼핏 불가사리처럼 보이는 철기가 출토되었다.얼마전의 일인데 그 철기는 마름쇠(철질여)라는 일종의 방어용무기였다. 4개의 가시로 이루어진 마름쇠는 어느 방향으로 놓아도 첨예한 가시 하나가 위쪽을 향해 세워지도록 고안되었다.그 중에 가장 큰 가시 하나에 구멍이 뚫려 여러개의 마름쇠를 끈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삼국사기에 기록 기막힌 방어용 무기다.마름쇠를 끈으로 연결,성밖에 둘러놓으면 가시덩굴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성벽 위에서 던지면 적을 살상하거나쫓아버리는 무기 구실을 한다.「삼국사기」기록에도 나오는 이 무기는 부소산성 출토품이 유일한 실물이다.그 당시 마름쇠를 성밖에 둘러놓으면 요즘 현대식 방어용무기 클레모어지뢰를 매설한 만큼이나 수비를 하는데 마음을 놓았을 것이다. 활과 화살,쇠뇌(노)는 공격용 무기이자 원거리 무기이기도 하다.그 대표적 유물로 전남 나주 신촌리 9호고분 출토품이 있다.이 활은 활채의 정탈목을 지나고 있는 활고자 부분이 휘어진 모양으로 보아 만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화살촉은 쇠로 만든 까닭에 유물이 많이 전해지는데,크게 넓적촉과 뾰족촉으로 나누어진다.그 형태도 다양해서 넓적촉의 경우 도끼날 모양의 부인형족,삼각 및 오각형촉,좌우로 날개가 뻗친 양익족이 있다.그리고 송곳 모양의 원추형촉,촉몸이 좌우로 갈라진 우형족은 뾰족촉에 속한다. 백제인들은 활에 발사장치를 덧달아 활이 더 멀리 나가고,관통력이 강한 화살을 쏠 수 있는 쇠뇌를 사용했다.서울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아는 바로 이 같은 발사장치다. 그리고 베는데 사용한 검과 칼,찌르는기능의 쇠창과 끌모양무기(착형무기),적을 걸어서 당기는 갈고리와 쇠낫,내려치는 쇠도끼가 있다.서로가 접근한 가운데 사용되는 이들 무기류는 근거리 무기,외날칼인 도중에는 칼몸이 길고 칼자루 뒤끝인 병두가 둥근고리로 된 고리칼(환두대도)은 훌륭한 공예품이기도 하다.왜냐하면 민고리칼(소환두대도)도 있지만 고리에 용,봉황,잎새문양을 넣은 고리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칼자루 뒤끝의 둥근 고리 안에 장식무늬가 있는 환두대도 중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나온 삼엽문환두대도는 특히 유명하다.철지에 금판을 씌운 타원형 병두 고리의 중심 장식이 금동삼엽형으로 되어 있다.손잡이에는 고기비늘무늬를 돋친 은판으로 감았다.또 칼자루 끝 고리에 타출문(정출문)의 돋친 은판을 씌우고 고리 안에는 봉황의 머리를 장식한 고리칼(단봉환두대도)) 역시 이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이밖에 무령왕릉출토품이 있다.타원형 고리 표면에다 용을 새기고 고리안에서 여의주를 입에 문 용머리를 장식한 고리칼(김동장환두대도)이다.고리칼은 아무데서나 출토되는 것이아니다.왕릉이나 규모가 큰 수장급 무덤에서만 나온다.그러고 보면 고리칼은 무기의 기능도 물론 있지만,요새 개념으로 말하면 지휘도라고도 할 수 있다. 고대사회가 전쟁을 할때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무기의 하나가 쇠창(철모)이다.창몸이 모난 송곳 모양인 방추형,쌍날칼 모양의 검신형,자루를 끼우는 착병부에 3가닥의 창몸이 달린 삼지창이 있다.착형무기는 자루를 끼우는 부분은 다른 창들과 같지만 날 부분이 뾰족하지 않고 끌날처럼 넓적하게 생겼다. ○오늘날의 지휘도 기병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기는 쇠갈고리(철구)다.인마를 베고 찌르는 큰칼과 장창을 휘두르면서 적을 걸어당기는 중요한 무기가 쇠갈고리인 것이다.부여 부소산성에서 나온 쇠갈고리를 보면 몸체의 뾰족한 끝쪽은 휘어져 갈고리를 이루고,다른쪽은 자루를 끼울 수 있게 만들었다.몸체의 한쪽이 두가닥으로 갈라진 또다른 쇠갈고리도 부소산성에서 출토되었다.쇠낫도 걸어당기는 무기로 쓰였다.백제의 쇠낫은 날부분이 안쪽으로 약간 휘고 기단부분이 한쪽으로 말려있다. 오늘날의 쇠도끼는 장작을 패고 도구를 만드는데 쓰이는 일종의 공구다.하지만 삼국시대의 도끼는 육박전을 할때 쓰인 중요한 무기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 고분벽화(안악 3호분·평양역전 2호분·약수리벽화고분)에 그려져 있는,도끼를 어깨에 멘 무사 대열도에서 엿볼 수 있다.또 백제의 병사가 신라의 장군 눌최를 도끼로 쳐죽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도 도끼의 역할이 나타난다.고분에서 드러난 백제의 쇠도끼에는 단조품과 주조품이 있다.단조한 쇠도끼에는 어깨를 갖춘 것과 날끝이 약간 넓고 어깨가 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투구·방패 발견안돼 우리가 사극영화를 보노라면 갑옷으로 치장한 늠름한 무사를 대하는 경우가 있다.그러나 갑옷은 옷이 아니고,방어용 무기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갑옷에는 판갑옷(단갑)과 비늘갑옷(찰갑)이 있으나,이들 두가지 모두 조각만 나와 온전한 백제의 갑옷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보병이 주로 입었던 판갑옷은 철판을 오려 못을 박아 두들겨 붙인 형태(철제삼각판정체단갑)다.목가리개(경갑)와 어깨가리개(견갑)를갖추었지만,여닫이(개폐)장치가 없는 통형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동물뼈로도 제조 갑옷이라고 하면 흔히 쇠를 연상하게 마련이다.그런데 백제인들은 쇠가 아닌 동물의 뼈를 갈아서도 갑옷을 만들었다.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공원조성을 위해 발굴한 몽촌토성 출토품 뼈비늘갑옷(골제찰갑)이 그것이다.이렇듯 백제인들이 입었던 갑옷의 윤곽은 밝혀지고 있으나,투구와 방패가 발견되지 않았다.본래 갑옷(갑)과 투구(주)는 일습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두가지를 붙여 갑주라는 말을 쓰고 있다. 「삼국사기」는 갑옷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김갑을 비롯해 금휴개,명광개라는 갑옷 이름이 기록되었다.이들 갑옷은 신라 고분인 김관총에서 나온 금동갑옷과 같은 것이 아니었나 한다. 백제의 무기가 풍기는 분위기는 비록 무기라 할지라도 공포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삼국의 무기가 거의 그렇듯 당시 중국의 무기에 비해 부드러운 느낌을 안겨준다.뛰어난 제철기술을 보유했음에도 공포의 모서리를 순화시킨 까닭은 무엇일까.아마도 부여 능산리 출토 김동용봉봉래산향로에 담긴 종교적 심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제철술/철기문화 한성시대에 이미 발달/철 불에 달군뒤 두들겨 무기 제작 고대 역사무대에서 무기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제철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제철은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 정련,사용 목적에 적절한 조직형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여기에는 담금질,뜨임 등의 열처리 공정과 함께 필요한 모양을 갖추는 성형술이 뒤따른다. 무기의 경우는 특히 강도에 따라 우월성이 판가름나기 때문에 철재의 강성이 요구되었다.사비시대 백제의 철기제조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철제무기류 또한 우수한 것으로 가려졌다.사비시대 백제강역에 속했던 오늘날 충남 부여와 논산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무기류는 이를 잘 입증했다.포항제철기술연구소와 고려대생산기술연구소가 실시한 이 지역 출토 손칼(도자)에 대한 화학성분 분석에서 철재가 고탄소강으로 밝혀진 것이다. 고탄소강은 저온(섭씨8백∼1천1백도)에서 뽑은 괴련철을 숯불로 장시간 열을 가한 뒤 계속두드려 탄소가 침투되게 한 철재.이때에 내부에 낀 불순성분이 빠지고 쇠가 매끄러워지면서 강성을 얻을 수 있다.그리고 저탄소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불에 달구어 두들김작업이 끝날 때마다 물속에 담가 급랭시키는 방법도 썼다.지금도 대장간에서 이런 식으로 칼과 낫 따위를 만드는 것을 더러 보게된다. 백제는 일찍부터 철기문화를 발전시켰다.「일본서기」를 보면 백제의 근초고왕이 일본사신에게 철제 40장을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현재 일본 이소노카미신궁(석상신궁)이 신물로 여기는 가운데 소장하고 있는 칠지도 역시 백제가 일본에 준 단철의 칼이라 할 수 있다.「태화4년(AD369년)에 백련강철로 만들어 백제 왕세자 기생 성음이 위왕지에 주면서 후세에 전하라」는 명문이 들어있다.이 시기 역시 근초고왕 때 일이다. 그리고 한성시대(?∼?년)백제유적인 서울 성동구 구의동 고분출토 쇠도끼와 철촉을 분석한 결과 실제 고탄소강으로 밝혀졌다.도끼날의 경우 높은 온도에서 여러번 두들겨 공랭한 흔적을 보였다.이렇듯 백제는 한성시대에 이미 철기문화를 꽃피웠다.
  • 밀매조직 첨단장비 “중무장”(마약을 추방하자:8)

    ◎고급승용차에 카폰·외제총까지/봉고차 추격 단속반,놓치기 일쑤 「달리는 마약사범,기는 수사망」 일선에서 마약수사를 전담하는 수사관들이 즐겨 쓰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89년 보사부 마약단속반이 검찰수사반으로 전면 개편된 뒤 검·경의 철저한 단속으로 마약조직이 상당히 움츠러든게 사실이다. 히로뽕사범의 경우 89년부터 지난해말까지 모두 90개파 9백93명이 검거됐다.이에 따라 히로뽕사범 역시 89년 3천3백명을 정점으로 92년에는 9백60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지난해 다시 1천9백명이 적발돼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현재의 수사인원과 장비,수사예산으로는 마약사범추방에 한계가 있음을 입증한 기록이다. 특히 최근의 마약조직은 당국의 단속을 피해 철저히 점조직화,간첩조직을 방불케하고 있다.게다가 카폰이 달린 최고급승용차와 핸드폰,가스총을 갖추고 있는 등 수사당국보다 앞선 첨단장비로 무장돼 있다. 이에 반해 서울지검 마약수사반의 장비는 초라한 수준이다.봉고차 및 엑셀승용차 1대씩과 핸드폰 2대,가스총 등이 출동장비의 전부다.그나마 범인들과 마약거래때 주로 사용하는 엑셀승용차는 이미 「뽕장이」들 사이에 번호가 알려져 있어 다른 용도로 바꾸어야 할 형편이다. 「피터팬사건」·「유한농장사건」등 대형마약사건에 직접 참여했던 서울지검 조웅희수사관은 『검거과정에서 그랜저를 탄 범인들과 카레이스가 벌어졌는데 봉고차와 엑셀승용차로는 아무리 달려도 따라잡지 못해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가스총과 수갑만으로 일본도나 도끼,심지어는 밀수입한 총을 들고 막무가내로 저항하는 범인들과 격투하는 것도 무모하기 이를데 없다. 마약사범을 검거하기 위해 쓰이는 「미끼자금」,즉 수사비의 부족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사관들은 주요사건의 경우 정보수집 및 공작단계에서부터 검거에 이르기까지는 보통 1천만원이상의 수사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나 검찰에서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수사비는 3백∼6백만원에 불과하다. 최근 정부에서 추경예산에 공작비 일부를 계상했지만 턱없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때문에 나머지 수사비는 지휘검사나 수사관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서울지검 마약검사가 되면 수사비 대출을 위해 은행에 적금통장 한두개쯤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돼 있다. 최근에는 1인당 5천원이던 야근비마저 3천원으로 줄어들었다.야근은 예전보다 늘었는데 예산은 그대로이니 야근비를 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밖에 마약검사용 시약으로 개발돼 있는 TBPE도 완벽하지 않아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힌다. 이처럼 장비·인원·수사비가 변변치 못하다보니 마약사범 검거공작의 성공률이 50%에 못미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일선 수사관들은 『당국이 마약사범퇴치에 대한 의지에 상응하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으면 마약수사는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라며 『이는 수사관으로서의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망국적 해악을 몰아내기 위한 건의』라고 입을 모았다.
  • 한·미,북제재 맞춰 「신속군」 증강/항모 2척·경보기 3대 배치

    ◎패트리어트 1개대대 더 파한/미 지상군 1개여단 증파계획/초전대응태세 강화/이국방 국회보고 한미양국은 대북 경제제재를 취할 경우 동시에 신속억지전력(FDO)으로 조기경보기 AWACS 3대와 1∼2척의 항공모함을 비롯,미 본토와 일본 오키나와·괌등에 배치돼 있는 육·해·공군 전력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9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한미양국은 경제제재에 돌입할 경우 있을 수 있는 북한의 도발을 신속하게 대응,억제하기 위해 이같은 FDO전개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한미양국은 이 계획에서 현재 한반도에 있는 정보수집기 U2R기 3대에 추가로 일본 오키나와 기지에 있는 AWACS기 3대를 한반도 남쪽 상공에 배치,북한의 도발 즉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기로 했다. 또 항모를 동해상에 배치하고 최근 국내에 배치된 패트리어트 미사일 대대와 공격용 아파치헬기 대대를 1개 대대씩 추가 배치키로 했다. 이와함께 괌등에 있는 F15기 대대와 F111 전폭기 대대도 역시 배치하는 등 미국은 해·공군 전력을 위주로 한반도 전쟁억지전력을 강화키로 했다. 지상군의 경우 주한미군에 1개여단 규모를 증강할 계획이다. 한미양국은 이어 한반도에서 국지전을 포함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최근 한미연합사에서 확정한 작전계획 「50­27」에 의거,미본토 병력 40만명 이상을 한반도에 투입할 예정이다. 한미양국은 그러나 이 사전배치된 FDO전력에 대해 경계상태를 현행 데프콘4 상태보다 다소 높게 유지하되 북한 군사동향에 따라 단계적으로 경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한미양국은 이에따라 세부 군전력증강계획에 대해 이미 점검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FDO는 정치·경제·군사 모든 분야에 걸쳐 각종 수단을 망라하고 있다』면서 『경제제재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는 지난 76년 8·18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당시의 대응과 비슷한 수준으로 한미양국의 확고한 전쟁억지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도발 억제 만전 이병대국방부장관은 9일 북한의 전면전 도발 가능성과 관련,『위기고조시 신속억제전력을 사전에 전개해 힘으로써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아래 미군 지원전력을 때맞춰 증원하는 등 만반의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시한부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고 효율적인 기습방지대책및 초전대응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상황진전에 따라 방어준비태세(데프콘)를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에 출석,북한 핵문제로 비롯된 한반도의 위기상황과 관련된 안보태세를 묻는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이같이 답변하고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어떠한 유형의 북한도발에도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단계별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국지전 도발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 있는 도발유형별로 연합대응작전태세와 함께 초동단계의 신속한 의사결정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즉각적이고 강력한 응징보복 작전의 전개를 준비하고 있으며 군사지휘및 통제시설,공공시설,공항등 주요시설에 대한 경비·방호태세등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 여의도교서 도끼난동 30대,“재판잘못됐다”(은방울)

    ○…7일 상오11시2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교 한가운데서 전우이씨(35·농업·대전시 서구 오동 192)가 가족들을 태운 봉고차 지붕위에서 도끼를 휘두르며 30분동안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이 일대 교통이 한동안 마비. 97세의 할머니와 두자녀를 태우고 서울에 온 전씨는 다리 한가운데서 팬티만 걸치고 자동차위에 올라가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유인물 2만장을 뿌린 뒤 볏집으로 만든 판사·변호사마네킹을 도끼로 찍으며 소동을 벌이다 긴급출동한 경찰에 검거. 전씨는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에서 2년전까지 임대로 영업해온 차량정비업소가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폐쇄돼 소유주인 H관광측과 소송을 벌였으나 판사·변호사의 농간으로 오히려 자신만 죄인이 됐다』고 호소.
  • 안보 절대적위협 판단때 소집/국가안전보장회의란 무엇인가

    ◎도끼만행·아웅산사건·88직전 소집 김영삼대통령이 소집을 지시한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안보와 관련된 최고의 회의체이다.헌법 91조는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정책·군사정책과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안보회의의 의장은 대통령이 되며 위원은 국무총리와 경제·통일부총리,외무·내무·국방·재무·정무1장관및 비상기획위원장,안기부장이다.11명의 위원 가운데 비상기획위원장이 상임위원을 맡는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국가안보의 절대적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때 이례적으로 소집되어 왔다.기록상으로는 지난 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83년 아웅산폭파사건,88년 서울올림픽직전,91년 걸프전때에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것으로 되어 있다.새정부 들어서는 이번이 첫 소집이다.따라서 헌법기구인 국가안보회의는 현재 수시로 열리는 안보장관회의,고위전략회의,통일안보조정회의 등과는 격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이 해외순방도중 안보회의의 소집을 지시한 것은 그만큼 북한핵문제와 관련한 한반도사태를 심각하게 보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 편부가정(외언내언)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란 미국영화가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지난 80년 아카데미상 5개부문을 휩쓴 이 영화는 이혼한 부부의 자녀 양육권을 둘러 싼 분쟁을 다룬 것.영화의 줄거리는 부성과 모성의 대결이었지만 당시 화제가 된 것은 아내없이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의 비애와 뜨거운 부성애였다. 이 영화의 아버지로 출연한 더스틴 호프만은 부성이 모성에 못지 않음을 감동적으로 그려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그도 처음엔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렇듯 가정보다는 직장과 사회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았던 아버지.그러나 아내가 집을 떠난후 홀로 아들을 키우며 어머니 노릇까지 해내느라 온갖 소동을 겪고 결국 직장에서 쫓겨나는 위기에 처한다.그럼에도 그는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눈물겨운 법정투쟁을 벌인다. 아버지를 뜻하는 한자의 「부」는 오른 손에 돌도끼를 든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중국의 문학자였던 곽말약이 풀이한 바 있다.아버지는 돌도끼를 들고 사냥하는 사람,즉 힘의 상징이라는 것이다.「엄부자모」라는말도 있듯이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은 다르고 그 두 역할이 공존해야만 바람직한 자녀교육이 이루어진다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지금 가정해체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통계청의 「가정현황」보고서에 의하면 92년 현재 부부 7쌍중 1쌍이 이혼하고 있다.이혼 사별 미혼등의 이유로 배우자가 없는 가구도 80년 17.5%에서 90년 21.3%로 늘었다. 이혼한후 홀로 아들을 키우던 아버지가 10살 난 아들이 『심부름 시킨 돈으로 전자오락실을 가는등 말을 안 듣는다』고 마구 때리고 감금한 혐의로 구속됐다. 잘못된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의한 가정폭력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가정의 해체에서 비롯된 비극이다.영화속의 호프만과 달리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편부·편모와 그 아래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안타깝다.올해는 가정의 해이고 5월은 가정의 달인데….
  • 강력한 대비태세 갖추라(사설)

    북한의 동태가 이상해지고 있다.최근들어 상식을 벗어난 이례적인 군사·안보 도발행동이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원래 예측불허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자주하는 북한이긴 하다.그러나 목적없는 행동을 한적은 한번도 없는 북한이다.특히 지금은 북한 핵사찰거부의 한반도 긴장이 크게 고조되고 있는때다.그 의도와 파장을 경계하지 않을수 없다. 느닷없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휴전협정을 대체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한 북한은 군사정전위에서도 일방적으로 철수했다.작년의 체코에 이어 중립국감독위 북한측 감시국인 폴란드도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다.여러가지 도발적인 군사행동도 병행하고 있다.비무장이 원칙인 판문점 중립지대에 76년의 도끼만행 사건이후 처음으로 무장병력을 투입,시위했으며 훈련 폭격기편대를 이례적으로 우리의 군사저지선 가까이까지 남하 비행시켰다. 한마디로 그것은 대한미 안보·군사 시위요 압력이며 도발이다.53년 휴전이후 한반도안보의 근간을 이루어온 정전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요 위협이라 할수있다.정전체제가생각처럼 확실한것이 아니며 북한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뒤흔들어 놓을수 있다는 일종의 시위요 협박인 것이다. 그러한 시위와 협박을 통해 북한이 노리는 것은 많다.가장 중요한것은 새로운 대미 협상카드의 확보다.정전체제 자체를 볼모로 삼을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대미협상에서 한국을 배제시키고 핵문제에 대한 관심을 호도하기 위한 것일수도 있다.한국경제에 불리한 한반도 정세불안의 세계적 선전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북한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한국의 민심교란 계산도 하고있을 것이다.말하자면 북한은 그 모든것을 위한 다목적의 정치·외교 심이전을 구사하고 있다고 할수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우려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북한의 그러한 모험적이고 호전적인 행동이 가져올수 있는 전쟁등 우발사태 발생 가능성이다.비록 북한이 현존하는 휴전협정은 대체협정이 체결될때까지 준수할 것이며 적대행위는 하지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북한의 정전위철수는 사실상의 정전협정 무의미화를 뜻하는 것이며 언제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는 지극히 위험스럽고 유동적인 상황의 조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의도와 목적 그리고 그것이 갖는 가능성이 그러하다면 우리의 대응방법도 자명하다.무엇보다 중요한것은 확고한 대비와 의연한 대처다.특히 철통같은 군사적 대응태세의 완비가 시급하다.미국과의 공조도 더욱 철저를 기해야 할것이다.북한의 교활한 속셈과 한국의 안정성에 대한 국제홍보를 적극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 정전협정 깨 미와 직거래 속셈/북,정전위 일방철수 통보 배경

    ◎무력시위로 「애매모호한 상황」 유도/평화협정 요구하며 한국 배제 의도 최근 북한측이 정전협정을 어기고 무장병력을 비무장지대에 투입하는가 하면 전술항공기들을 우리측 공군의 군사조치분계선 부근까지 근접시키는등의 군사행동을 펼치고 있는 사실에 한·미 양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미 양국군은 일단 대남정치심리전의 일환으로 보고 있으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철저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측이 이상행동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8일 외교부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립국감시위원회의 철수를 조건으로 현행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고 제의한 이후부터다. 북한측은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김정일의 권한을 위임받았음』을 밝힌 군사정전위 북측비서장 김연기대좌를 통해 유엔사비서장 칠튼대령에게 『한국측을 빼고 정전위대표가 아닌 미군대표의 자격으로 만나자』고 제의하는등 한국측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했다. 북측은 또 『앞으로 군정위 비서장명의로 회의에 나오지 않고 대신 북한군대표자격으로 나갈것』과 『중립국감독위의 폴란드를 위원국에서 제외할 것』임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북한측은 이어 이날 하오5시쯤 공동경비구역 초소근무자들을 교대하면서 갑자기 철모와 소총으로 무장한 1개소대를 투입,한·미 양국군을 바짝 긴장시켰다.이 지역은 76년 도끼만행사건 이후 인솔장교만 권총을 휴대하고 병사들은 무장을 않기로 상호약속되어 있다. 북한측은 다음날인 30일 하오 주말에는 훈련을 갖지 않던 전례를 깨고 전투비행단 합동방공훈련을 실시,휴전선부근까지 표적기인 IL28폭격기를 근접비행 시켰다. 한·미 양국은 북한항공기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휴전선상공을 전술조치연장선·군사조치연장선·긴급전술조치연장선등 3단계로 나누어 감시하고 있으나 이날 북한 항공기는 요격 바로 직전단계인 휴전선상공 북방 15마일 군사조치연장선까지 다가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측 항공기가 대응비행을 하자 더이상 남하하지 않고 기지로 되돌아갔으나 주말 한때 비상태세가 발령되는등 긴장이 감돌았다. 한·미 양국은일단 이같은 일련의 북한측 행동에 대해 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53년 정전협정에 위배되는 행위로 간주,북한측에 항의절차를 밟고 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북한측의 행동과 관련,『92년 군사정전위 수석대표가 한국군(황원탁소장)으로 바뀐 이후 북한측은 본회담을 거부한 채 비서장회담등만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북한측이 중립국감독위에서 폴란드를 제외하면 이미 체코가 빠졌기 때문에 북측 중감위는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는 셈이며 북한은 이를 통해 정전협정을 유명무실화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만일 북한측 주장에 따라 정전협정이 중지되면 한반도상황은 평화도 정전상태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가 될 것』이라면서 『북한은 앞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고 나올 것이며 이 경우 북한은 미국에게 직접 협상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고 지적,이번 북한측 행동들은 한반도사태에서 한국의 배제를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고 풀이했다.
  • 온가족이 원시시대로 “시간여행”

    ◎전곡리 유적관,어린이 날 맞아 체험고고학 프로 마련/원시인모습으로 석기제작 등 옛생활 체험/어린이들 무한한 상상력 유발… 경연대회도 아이들로 부터 『고고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그때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했다면 어린이날인 5월5일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도 전곡에 있는 구석기유적관을 찾아 체험고고학프로그램에 참가하라.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소장 배기동 한양대문화인류학과교수)가 여는 이 행사의 주제는 「자연에 적응하는 원시인간과 그 가족」.한 가족이 원시인으로 돌아가 한탄강변에서 석기를 제작한뒤 돼지와 토끼를 잡아 음식을 만들어 먹고 고사도 지내는등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하게 된다.또 어린이들을 위해서 「가족들이 만든 석기 경연대회」와 「원시인 상상도 그리기 대회」를 열어 상도 준다. 이 행사는 전곡리 유적관의 개관 1주년을 맞아 일반인,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고고학을 접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가족 단위로 선사생활을 체험하는 이 프로그램은 우리 고고학계의 새로운 시도로 전공자들에게는 하나의 실험적 연구이며 일반 참여자들에게는 고고학적인 시간여행을 하는 기회로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되리라는 것이 전곡리유적지를 발굴하고 사재를 털어 유적관을 세운 배교수의 설명이다. 전곡리 구석기유적지는 지난 79년 이래 9차례에 걸친 발굴과 지질조사 결과 19 70년대 까지도 동아시아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굴되어 세계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던 세계적인 유적.이 일대 23만평이 사적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으나 도로공사와 기계화경작등으로 이미 많은 부분이 훼손되고 있는 형편이다.그런만큼 이번 행사는 참가자들에게 우리나라 선사고고학에 새로운 국면을 열게 한 전곡리 구석기유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영원히 보존코자하는 고고학도들의 뜻 또한 담고 있다. 연구소측은 이번 행사를 위해 국수와 음료,그리고 얼마간의 「알콜성 음료」와 돼지고기 안주를 준비해 놓고 많은 가족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바라고 있다.그러나 너무 많은 가족이 참여할 경우를 대비해 가족단위로 간단한 식사를 개별적으로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한편 한탄강 유원지에서 가까운 전곡리 구석기유적관은 항상 문을 열지는 않으므로 관람을 윈하면 3일전에 연락을 해야한다. 어린이날 행사나 유적관람절차에 대한 문의는 02­406­8651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로 하면 된다.
  • “선진 도성” 사비성(백제를 다시본다:12)

    ◎“2중의 방어벽”… 부소산성내에 왕궁 축조/오부관아행가는 산성 발치에 자리잡아/도로망·하수도등 도시체제 잘 갖춰/금동향로 출토지 능산리는 공방촌 추정 백제가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널리 알려진 대로 AD538년의 일이다.그러니까 사비성은 한성(서울)과 웅진(공주)을 거쳐 3번째 도읍으로 자리잡은 도성이다.오늘날 충남 부여군 부여읍 일대로 압축되고 있다. 사비성은 부소산성과 평지성이 연결되어 둘러쳐진 나성의 개념을 갖는다.부소산성을 제외한 나성은 현재의 부여시가지 주위를 에워싼 야산능선을 이용하여 축조되었다.그러면 사비성 안쪽에 해당하는 도성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왕궁이 어디쯤에 자리 잡았고,왕의 명을 받들던 관아는 어느지역에 모여있었을까 하는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소산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않나 한다.테뫼식과 포곡형의 두 가지 축조방식이 복합한 이 산성은 부소산 위쪽 표고 1백6m를 중심으로 쌓아졌다.현재 행정구역상으로 부여읍 쌍북리,구아리,구교리,관북리에 걸쳐 위치한다.면적은 74만6천2백2㎡,성 둘레는 2천2백m에 이른다.부여 중심부에서 보면 북쪽에 있다.그리고 산성의 북쪽 끝이 백마강(금강)에 와닿는다. 이 산성의 형태는 군창지와 사비루 부근이 테뫼식을 이루었고,이들 테뫼식 산성을 연결하는 부분은 모두가 포곡형이다.산성 둘레에는 문자리(문지)가 여러곳에 남아있다.군창지 부근의 남문은 테뫼식 산성을 드나들도록 설계되었다.또 동문과 서문은 포곡형 산성,다시말하면 부소산성 성벽에다 낸 문이라 할 수 있다.이밖에 백마강 대안쪽에는 수구와 더불어 또다른 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연구소가 지난 90년과 91년 동문자리를 발굴한 결과 포곡형 산성의 성벽은 판축을 기본으로 한 흙벽으로 밝혀졌다.그러나 흙벽 만으로 이루어진 성벽은 아니다.흙벽을 보호하기 위해 바깥에 돌을 쌓은 다음 안쪽에도 또 돌을 쌓고 흙벽을 한겹 더 덧붙였다.이를테면 돌­흙벽­돌­흙벽의 단면구조를 가진 견고한 성벽인 것이다.특히 판축과정에 1백20㎝ 간격으로 기둥을 세운뒤 진흙을 쌓아올렸다.그 기둥구멍은 30㎝나 되고 주춧돌까지 받쳐놓았다. 이 성벽 안쪽에는 돌을 깐 도보가 아래로 계속 연결되었다.너비 80㎝의 이 도보는 비가 올 때에 쓰였던 순시용도로로 보고있다.특히 도보 안쪽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금제관장식편을 비롯해 금동제용두장식 2점,금동제귀면장식,금동제방울이 그것이다.또 갈고리,양지창,낫,창,도끼와 같은 철제무구와 함께 격조높은 토기,석간,벼루,기와류가 출토되었다. 이들 출토품은 사비시대 왕이나 왕족과 관계되는 유물이다.그렇다면 부소산성 어딘가에는 왕의 상주거소가 있었을 것이다.아직은 왕궁유구나 이렇다 할 건물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사비도성을 호령한 백제의 중심축은 부소산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왕실 관련유물 출토 그리고 지난 88년과 89년 현 부여문화재연구소 동쪽 부소산 입구 발굴과 결부해도 부소산성은 왕의 거소일 가능성이 있다.이 발굴에서는 부소산성을 향해 일직선상으로 쌓은 축대와 함께 그 축대 밑에서 축대와 병행한 석축의 배수구가 확인되었다.그리고 건물자리 5곳과 암반을 깎아서 만든 우물터를 발견한 바 있다.이들 유적을 부소산성 내에 왕궁이 존재했다는 입장에서 보면 부소산 발치의 축대와 배수구로 여겨진다. 현재의 부여문화재연구소(구국립부여박물관)는 부소산 기슭 남쪽 언덕에 있다.부여 시가지가 가장 가까운 자리다.조선시대 후기 관아이기도 하거니와 부근에 백제시대 석조유물이 산재되어 한때는 가장 유력한 왕궁자리로 추정되기도 했다.그래서 지난 82년 충남대가 이 지역 발굴에 나섰지만,그 성과는 현 부여문화재연구소 정문 앞에서 네모꼴 백제시대 연못자리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이후 87년 네모꼴 연못자리 동쪽에서 도로유적을 확인했다.남북과 동서로 통하는 도로유적으로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흔적을 역력히 보여주었다.남북도로의 너비는 10.7m,그 좌우 양쪽에는 너비 75㎝의 하수도 시설을 갖추었다.그리고 동서도로는 너비 4m로 밝혀졌다.이 일대가 바로 사비시대에 백제를 다스린 오부의 자리로 추정되는 지역이다.사비도성의 관아가라 할 수 있다. 사비도성에 살았던 사람들의삶은 가히 선진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왜냐하면 지난 92년 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시대 천왕사터로 전해진 옛 부여경찰서 자리를 발굴할 때 2중구조의 우물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위에 있는 샘터에서 일단 물을 받아 정수처리를 거친 뒤 밑의 샘으로 보내 물을 마시도록 한 시설로 보인다.윗 샘은 방형의 석축시설이고 아래 샘은 돌(하부)과 널빤지(상부)를 사용해서 만들었다.여기에서는 수막새기와와 토기류(사발과 동이),사람얼굴을 새긴 기와,방추차,곱돌제 거푸집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면서 사비성 사람들은 도성 안에서 불교를 가까이 대했다.나성 안에 있는 명찰 정림사와 천왕사에서 불심을 길렀던 것이다.그뿐이 아니라 군수리 절터나 동남리 절터와 같은 유적지에도 분명히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늘 부처를 섬길 수 있었다.또 중국의 양과 일본과의 관계가 밀접한 탓으로 외국문물을 쉽게 접했다.거기에 비옥한 옥토가 백제강역으로 완전히 편입되어 생활은 윤택했을 것이다. ○2중구조 우물 발굴 최근에 와서는 사비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는 큰일이 일어났다.지난해 연말의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발굴이 그것인데,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그것도 역사적 사건이다.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비도성이어서 금동향로가 갖는 제조상의 기술적인 문제나 예술성에 대해서는 접어둔다.다만 금동향로를 발굴한 국립부여박물관 발표대로 출토지를 공방으로 추정한다면,능산리는 공방촌일 수도 있다.바꾸어 말해서 사비시대 백제왕국의 금속산업을 일으킨 지역이 곧 오늘의 부여읍 능산리라는 이야기다.능산리는 사비성의 나성 밖에 있. 이를를론 삼아 종합하면 사비시대 백제는 부소산성안에다 작은 규모의 건건성 밖에 있. 이를를론 삼아 종합하면 사비시대 백제는 부소산성안에다 작은 규모의 건분명히 나성 밖에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도성을 산성과 평지성인 나성을 연결시켜 축조한 점은 고구려 평양성과 더불어 우리 고대의 도성형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평양성과 같은 나성/길이 1만3천자… 산성과 평지성으로 구성/사비성의 구조 사비성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때의 도성이다.백제 도읍자체의 명칭으로 쓰이기도 한다.백제가 협소한 웅진(공주)을 버리고 넓은 평야를 포용한 땅에 보다 큰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천도한 것은 AD538년(성왕16년)봄이다. 백제는 사비로의 천도를 국가체제 재정비의 시기로 삼았다.북서쪽으로 금강이 굽어 흐르는 가운데 동쪽으로는 산이 둘러쳐져 외적 방어에 더할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도읍을 사비로 옮긴 까닭을 당시 일본과의 관계가 밀접했기 때문에 해상교통에 유리한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어떻든 사비성은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백30년간의 수도가 되었다. 사비도성은 산성으로서 부소산성과 평지성으로서의 나성으로 이루어졌다.부소산성은 부소산을 양쪽 머리가 낮게 감싸 두르고 백마강을 향해 초승달의 형태를 보여 반월성이라고도 불렀다.이밖에 사비성,소부리성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조선시대의 문헌에는 성터의 길이가 1만3천여자나 되며,치소가 그안에 있었다고 기술했다.치소는 왕궁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결과를 토대로 하면 현재 부여시가지가 있는 나성안쪽은 사비시대에 도시체제를 어느정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가능성은 한성시대(BC18∼AD475년)백제의 도성인 서울 몽촌토성이 당시 구획정리가 된 도로망을 구축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몽촌토성을 올림픽공원으로 가꾸기 위해 발굴한 결과 조방이 뚜렷한 도성으로 밝혀졌다.그리고 웅진시대(AD475∼538년)의 백제왕궁도 공주 공산성안에 자리했던 여러가지 정황을 남기고 있다.
  • 유혈의 검은 대륙/종족분쟁에 끝없는 내전…

    ◎총선앞둔 남아공/흑·백 분리자치주의자 “선거불참” 저항/흑·흑 갈등에 1만5천명 정치폭력 희생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과연 소수 백인통치의 역사를 털어버리고 흑·백 공존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낼 것인가.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실시될 예정인 남아공 사상 최초의 흑·백 다인종 총선에서 3백50년간 계속돼온 소수 백인통치에 종지부를 찍을수 있을 것인지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여론조사결과 넬슨 만델라가 주도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지지율이 한결같이 60%를 넘고있어 순조롭게 총선이 이뤄질 경우 ANC의 집권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다.그러나 정국불안의 불씨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있어 남아공 총선정국은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48년 현 국민당 집권이후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로 일컬어지는 대표적인 인종차별정책을 채택,전체인구의 13.6%에 불과한 소수 백인들이 75.2%에 달하는 흑인들을 지배하는 기형적인 정치체제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지난 89년 인종차별정책의 대표적 인물인 피터 보타 대통령이 물러나고 현재의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남아공 정정은 급변했다.90년 2월에는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27년간 수감생활을 하던 넬슨 만델라가 석방됐고 이어 33개 흑인저항단체들이 합법화 됐다.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만델라를 흑인의 공식대표로 인정하고 91년 12월 남아공 26개 흑백 정당대표들의 모임인 「민주남아공회의」(CODESA)를 구성,93년 7월엔 흑인의 참정권을 인정하는 새 헌법을 제정하고 다인종 총선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이와함께 총선을 관장할 과도행정평의회(TEC)를 출범시키고 과도헌법안에 대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소수 백인통치 종식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갔다. TEC는 흑·백인 정당대표들이 참여하며 정부 결정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구로 흑인들은 TEC에 참여함으로써 남아공 사상 최초로 정치에 참여할수 있게된 셈이다. 과도헌법안은 양원제와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했으며 4개주와 보푸타츠와나·트란스케이·시스케이·벤다등 4개 흑인자치국을 포함한 10개 홈랜드(흑인거주지구)로 이뤄진 현재의 행정구역을 해체,새로 9개의주로 재편하도록 규정했다. 본래 흑인거주지구는 남아공 전체 영토의 13%에 불과한 불모지로 전체 흑인의 75%를 거주시키고 참정권을 박탈하는 대신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흑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같은 행정구역 재편은 한편으로 백인들만의 자치국가를 건설하려는 백인 보수세력과 흑인 분리자치주의 세력들의 저항을 가져왔다.백인우익단체의 연합체인 「아프리카너 국민전선」(AVF),최대 흑인부족인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흑인자치국인 보푸타츠와나등이 지난해 7월 연방제 실시에 맞서 자치권 확보를 위해 「자유동맹」을 결성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7일에는 보푸타츠와나 흑인자치정부가 갑자기 총선불참을 선언,총선 참여를 요구하고 ANC를 지지하는 흑인들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이 과정에서 백인 우익무장세력 5천여명이 루카스 망고페 보푸타츠와나 자치국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폭동현장에 진입,한때 보푸타츠와나 경찰과 충돌하는 위기상황을 빚기도 했다. 보푸타츠와나 자치정부는 이 폭동의 후유증으로 무너지고 자유동맹 내부의 분열이 초래했다.보푸타츠와나와 AVF의 일부 세력이 총선불참 대열에서 이탈하고 현재는 단지 줄루족의 인카타 자유당과 신나치주의 백인단체인 「아프리카너 저항운동」(AWB)등 자유동맹내 일부세력들만이 총선불참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AWB는 1만여명에 달하는 자체 무장병력을 보유하고 있어 총선정국의 무시못할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 지도자 망고수투 부텔레지는 여전히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것을 주장하며 총선불참을 분명히 하고있다. 다른쪽에서는 줄루족의 족장인 굿윌 즈웰레티니가 지난달 줄루족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총선정국을 긴장으로 몰고갔다.또 지난 6일에는 줄루족 거점인 나탈주와 콰즐루 홈랜드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줄루족 2만5천여명이 창과 도끼등을 들고 독립국가건설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에따라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만델라 ANC의장은 줄루족을 총선에 참여시키기 위한 회담을 잇따라 열었으나 현재까지는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있는 상태다. 「남아공의 고르바초프」로 일컬어지는 데 클레르크 대통령 등장이후 만델라가 석방되고 흑인단체가 합법화된 뒤에도 지금까지 정치폭력으로 사망한 사람은 무려 1만5천여명에 이르고 있다.그중 절반이상은 ANC와 인카타 자유당 지지자들간 흑·흑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정국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선거를 앞두고 과거 정권의 일부분을 담당해 온 남아공내 백인들이 속속 국외로 빠져나가는등 행정공백현상도 두드러지고 있어 총선전은 물론 이후에도 남아공은 쉽게 평정을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첫 자유총선 어떻게 될까/만델라 첫 흑인대통령 확실/ANC,전체의석 65%이상 차지할듯/새정부 과도연정성격… 99년까지 존속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등 일부정파가 선거참여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9일 남아공정부와 최대 정치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일단 「힘에 의한 총선강행」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3백50년 남아공 역사상 처음인 이번 다인종 자유총선은 지난해 12월 현 남아공정부와 25개 정파가 도출해 낸 새헌법에 따라 실시되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 제헌의회에서 부통령과 함께 간선으로 선출된다.부통령은 하원에서 80석 즉 20%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들이 후보를 지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오는 26일부터 3일간 실시되는 총선에서는 지방의회의원도 함께 선출되며 지방의회가 구성되는대로 자체 행정부를 조직토록 돼 있다. 새로 구성되는 중앙정부는 오는 99년까지 존속하는「과도연정」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이후에는 지방정부가 상당부분 독자적인 권한을 갖는 미국식 연방제를 채택하고 백인거주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현지 유력일간지인「선데이 타임스」의 여론조사는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가 흑인유권자의 세(전체의 75.2%)를 몰아 전체의석의 3분의2가 넘는 65%를 차지,압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집권 국민당은 16%,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과 백인 극우정당들은 기껏해야 2.5%정도의 의석을 차지하게 될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의회에서 선출토록 돼 있는 대통령직은 자연스레 만델라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이나 정작 만델라는 『국민화합차원에서 대통령은 비ANC출신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나탈주와 콰줄루자치지구를 활동무대로 한 줄루족의 인카타 자유당(IFP)과 극우백인 보수세력들.이들은 소위「자유동맹」을 결성,흑·백 양쪽으로 분리된 자치정부를 요구하고 있다. 5백50만명의 줄루족을 대표하는 IFP의 당수 망고수투 부텔레지는 아직도 소요를 지휘해가며 느슨한 연방제형태의 분리자치주의를 고수,선거불참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남아공 공산당(SACP),범아주회의(PAC)등도 선거를 반대하는 흑인강경세력가운데 하나이다.백인 극우세력 가운데는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아프리카너 저항운동」(AWB)이 있는데 이 단체는 1만명의 자체 무장병력으로 각종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26개 정파가 망라된 과도행정평의회(TEC)가 주관하고 세계1백60여개국에서 파견된 참관인들이 행정감독과 지원을 펴게 된다. ◎“킬링필드” 르완다/민간인 수천명 인접국가로 줄이어 탈출/수도 키갈리 병원마다 참혹한 시체더미 ○…종족분쟁 재연 3일째를 맞은 8일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생지옥을 방불케하는 아수라장의 모습을 연출.이곳에서의 살인행위는 대부분 투치족과의 권력분배를 거부한 르완다정부군 및 대통령경호원들이 저지르고 있다고. 반군세력인 르완다애국전선(RPF)지도자 폴 카가메는 『키갈리는 어떠한 정부나 권위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 무정부상태다.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질서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돌에 맞아 죽기도 ○…키갈리에서 활동중인 국제적십자사 간부 필립 게일라드씨는 한 병원에서만 연고자를 찾는 시체가 공시장에 4백구 가량 포개져 있었으며 또 이보다 많은 시체들은 장소부족 때문에 병원 앞에 짚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고 밝히고 총·칼·심지어 돌에 맞아 죽은 남녀 민간인과 군인의 시체들이 뒤섞여 있었다고 설명. ○…현지 유엔관리들과 외교관들은 아가테 우윌링이마나 르완다총리와 공보장관등 3명의 각료,6∼7명의 지도층 인사,약 20명의 성직자,수십명의 구호요원들이 정부군에 살해됐고 우윌링이마나총리를 경호했던 벨기에출신의 유엔평화유지군요원 10여명도 고문을 받은 뒤 피살됐다고 전했다.이에따라 50명의 정부고위관리들이 현지 프랑스대사관에 몸을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대가 저질러” ○…이같은 살륙행위는 대부분 약 7백여명의 대통령경호대원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고.르완다의 다수종족으로 군을 장악하고 있는 후투주 중에서도 강경파인 이들은 투치주에 대한 양보에 반대하고 있는데 투치주뿐만 아니라 후투주 온건파들까지 무차별 살해하고 있다.일부 외교관들은 이들이 후투주내의 다른 온건파들에게 대통령직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같은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 ○“반역자 체포 주력” ○…르완다 군사령부는 이날 르완다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들 경호대원들을 겨냥,『성난 병사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수치스런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이들 반역자들을 반드시 체포하겠다』고 다짐.그러나 대부분 투치주으로 구성된 RPF 지도자들은 이날 정부군의 폭력을 규탄하면서 질서회복을 위한 군사공격을 시작하겠다고 위협했다. ○…테오게네 루다싱와 RPF사무총장은 이날 RPF 사령부가 있는 우간다 접경 무린디에서 『위기국면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질서회복조치 시급 ○…르완다의 종족대립은 수도 키갈리에서 남부지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국제자선의료단체인 「국경없는 의사」(MSF)가 8일 밝혔다.이 단체는 후투족이 투치족 원주민을 위협하는 부타레 지역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MSF는 의사와 구호봉사자 62명을 이같은 상황 때문에 이웃 부룬디로 소개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의료진과 의료장비 10t을 르완다 수도로 투입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르완다인 수천명이 8일 내전을 피해 탄자니아로 탈출했다고 국제구호위원회(IRC)가 밝혔다.IRC는 4천명이 탄자니아로 탈출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응가라로모여들 것으로 전망했다.탄자니아의 IRC 직원은 약 15만명이 응가라로 올 것으로 본부에 보고했다.한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르완다 및 부룬디인 약 5천명이 자이르로 피신해 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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