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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제 5천년전 돌도끼/일본에서 첫 발견

    ◎일 학계 「독자문화」설 바뀔듯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에서 5천년전 중국산 돌도끼 유물이 최근 발견돼 대륙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문화를 키워 왔다는 일본 고고학계의 정설을 뒤흔들고 있다. 28일 일본언론에 따르면 야마가타(산형)현의 나카카와시로(중천대)유적에서 조몬(승문)시대 중기인 기원전 3천년 전후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유공석부가 일본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다. 도쿄도 문화재센터등의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이 돌도끼는 5천여년전 조몬시대에 일본과 대륙간에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이같은 유물의 출현으로 지금까지의 학계 정설이 바뀌게 될 지 모른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고유문화발전론과는 달리 규슈(구주)에서 한반도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는 유물이 발견돼 왔고 아오모리(청삼),오이타(대분) 등지에서도 중국의 청동기와 닮은 유물이 출토됐으나 이들 유물이 출토됐으나 이들 유물이 대륙과의 교류를 확실히 시사하는 것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 선사 농경유물 대량 출토/삼한시대 추정/광주서

    ◎80㎝ 벼껍질층·목제기구 포함/빗자루 등 당시 생활 복원 길터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563 일대에서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사상 처음으로 소택지유적을 확인한 국립광주박물관은 이 유적발굴을 통해 19일 다양한 목제기구를 비롯,토기 짚가공품 씨앗등 기원전 1세기경의 농경생활 유물을 대량으로 수습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이 지난 5월부터 발굴한 이 유적(11×11m)은 영산강 지류 극락강이 범람하면서 퇴적층을 이룬 저습지대 유적으로,최대 80㎝ 두께의 벼껍질 층과 함께 생활유물인 목제기구가 주로 출토되었다.이같은 벼껍질층은 세계 벼농사 유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밝혀졌다. 목제유물은 나무칼(목검),옻칠을 입힌 칼집,칼자루와 장식,활등의 무구류와 낫,괭이,도끼자루등의 농기로 되어있다.이밖에 자귀자루와 같은 공구류,목기와 뚜껑,나무문짝,쐐기,짚신을 만들때 사용한 나무골(목형)이 목제유물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후기 민무늬토기시대 유물인 굽다리잔 잔 대접 바리등의 토기가 나왔다.또 씨앗류로는 벼 불탄 쌀(탄화미)보리 가래 호두 살구 참외 박씨등을 수습했다. 벼농사와 관련한 또 다른 유물로 짚을 꼬아만든 새끼가 발견되었다.이와 더불어 삿자리,칡을 동여 만든 빗자루,짐승가죽,노끈을 엮어 만든 주머니,천조각을 발굴함으로써 당시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식생활을 가늠하는 자료로 우렁이 조개 다슬기등의 민물 조개류와 소뼈,사슴뼈가 나왔다. 이번 발굴에서 얻은 또하나의 수확은 발화대와 회전막대의 출토다.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불을 얻는데 필요한 어떤 자료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었다. 국립광주박물관 이건무 관장은 『이 유적 발굴을 계기로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복원은 물론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가 맞물린 당시 사회문화체계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 불 에밀 졸라 박물관/자금난으로 폐관위기

    ◎「도끼살인」집필등 마지막 작품활동 했던곳/개관 10년만에 지원금 끊겨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 박물관이 자금난을 맞아 폐관 위기에 처해 있다. 파리 서쪽으로 40㎞ 떨어진 이블린 지역 메당시에 위치해 있는 에밀 졸라 박물관은 에밀 졸라(18 40∼19 02년)가 마지막 작품 활동을 했던 곳.에밀 졸라는 당시 2만프랑(약 3백만원)에 구입했던 이 집에서 「도끼살인」 등의 작품을 썼다. 생존시에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이 곳에서 영감을 얻고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그가 죽고 난 3년 뒤 미망인 졸라 여사가 요양원으로 써달라고 공공단체에 기증했던 곳을 지난 85년 박물관으로 꾸몄었다. 연 관람객수는 1만여명.그러나 최근 공립협회는 더이상 지원금을 줄 수 없다고 밝혀 개관 10년만에 문을 닫아야할 판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자 에밀 졸라 박물관협회회장인 모리스 렝 여사는 『박물관을 허물어야 할 판』이라고 폐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이 박물관협회부회장인 조르주 퐈송씨도 『지원금이 늘지 않는 한 박물관 문을 닫지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물관 유지에 필요한 비용은 유지및 관리비 등 12만프랑(약 1천8백만원).에밀 졸라의 손길이 스며있고 그가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장 「나는 탄핵한다」의 정신이 살아 있는 박물관을 12만프랑의 경비 때문에 폐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다. 하층대중을 묘사하는데 뛰어나고 인간의 추악함과 비참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그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 옛 동독 금지영화 6편 상영/독일문화원,18∼25일… 토·일 제외

    ◎「45년생」 등 반체제적 내용 담아 주한 독일문화원은 오는 18일부터 25일까지 구 동독에서 제작됐으나 검열에 걸려 상영되지 못했던 「금지된 영화」6편을 독일문화원 강당에서 상영한다. 소개될 작품은 ▲「카를라」(감독 헤르만 초헤) ▲「나는 도끼다」(〃 쿠어트 메치히) ▲돌의 흔적」(〃 프랑크 바이어) ▲「45년생」(〃 유르겐 뵈트혀) ▲「사랑하는 아담,네가 크면」(〃 에곤 귄터) ▲「베를린 구석」(〃 게르하르트 클라인)등.약 30년만에 햇빛을 보게된 이들 60년대 영화는 모두 16㎜필름으로 만들어졌으며 공산당 통치하 권력자들의 횡포와 사라져가는 민주주의,사회저변에 확산되는 반체제적인 불만 등을 그리고 있다. 상영금지됐던 영화들은 용기있는 편집자나 자료실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해온 것으로 이번에 선보일 「베를린 구석」과 「49년생」은 가편집 상태로 남아있었으며 「사랑하는 아담,네가 크면」은 삭제된 부분이 너무 많아 다시 찍어야만했다.토·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 7시 한편씩 상영된다.문의 754­9831.
  • 가고 온 사람들(두만강 7백리:5)

    ◎광복­6·25이후­문혁때 귀향 줄이어/60년대말까지 쉽게 도강… 65% 다시 연변에/“지금은 갈수 없는 땅”강 건너 바라보며 눈물 ○보따리 이고 강 건너 끼룩 끼룩 끼루룩…. 한떼의 기러기가 일찍 얼음이 녹은 강 한구석을 박차고 북한땅을 멀리 돌아 날아간다.걸음을 멈추고 강 건너 마을을 바라보았다.한낱 짐승들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강.그렇지 못한 우리에게 두만강은 늘 한을 던져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 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옛날 선조들이 불렀다는 「월강곡」을 되뇌어 보았다.나라의 독립을 위해 개척민에 뽑혀 산길을 찾아 나선 선조들은 밀물처럼 강을 건너왔다.그리고 또 광복 후 이주 당사자들과 후손들은 고국이 그리워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시 강을 되건너 썰물같이 대거 고국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귀향은 광복 당시였다.일제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나라가 독립을 맞자 조선족들은 보따리를 싸지고 두만강을 건넜다.당시 귀향민들은 두가지 부류다.대부분의 사람들은조상들이 묻힌 땅을 찾아 귀향했다.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고향을 찾았지만 살수가 없어 이남으로 곧장 월남했다.광복이 되자 연변과 북한의 공산당 정부는 일제주구 청산부터 시작했다.훈춘의 대지주이고 대동아전쟁때 비행기를 헌납하고 동경에 가서 천황의 접견을 받은 한희삼은 물론 다른 지주와 친일파들은 처단 당했다.항일부대 토벌에 공로가 있는 용정의 박도끼는 북한으로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청진에서 잡혀 총살당했다고 한다. 화룡현 신선대 대장 김일로는 일제가 연길공원에 동상까지 만들어 세웠던 김동환 다음으로 가는 주구였다.1940년 3월25일 일본인 산림경찰대장과 함께 자기의 병졸들을 휘몰아 독립군을 추격하다가 홍기하에서 매복습격을 받아 1백20여명의 졸개를 잃었다.김일로도 졸개들을 호령하다가 벌린 입으로 탄알이 꿰뚫고 지나갔지만 요행히 목숨은 건졌다.이남으로 건너간 그는 여생을 편히 보내다가 수원에서 일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번째 대 귀향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였다.한국전쟁(6·25)이후의 일인데 전후복구 지원을 위해 많은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들어갔던 것이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에서만도 49호가 나갔다.그리고 인민공사가 시작되면서 굶어 죽게 되자 다시 살길을 찾아 북으로 건너갔다.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최태경 일가는 19 62년에 함경북도 연사군으로 이사했다.최씨의 막내 딸 최해옥은 연사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중 5학년 때 평양으로 뽑혀갔는데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서 「꽃파는 처녀」에서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인재들이 많이 갔다.중국에서의 반우파투쟁이 지식인들을 잡는 운동이나 다름이 없고 민족심을 가진 사람들은 반동적 민족주의자로 되는 판국이라 떠나들 갔다.유명한 시인 주선우,작곡가 정진옥,소설가 김동구,아동문학가 채택룡 등 문학예술계 인사들도 떠나갔다.용정시 삼합향 승적 신재룡은 길림성 공업학원 학생이고 축구를 잘 했다.지금 그는 조선체육대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너왔다 도로 가고 용정시 삼합향 북흥촌 이기희(54)는 연변대학을 다니다가 2학년 때인 1961년 7월 북한에 들어가 만 6년을 살고 다시 돌아왔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 살다가 다시 연변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당시 회령의 사탕공장건설은 연변에서 건너간 귀향민이 대부분이였댔습니다.나는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 공무직장에 배치 받았디요.직장장의 이름을 딴 김희진작업반에 배치합데다.그때 국가 철도상이자 함북도 건설사업소 소장으로 파견나왔던 김주봉이 하루는 우리 공장에 와서 연설을 하면서 「중국에서 하루에 백오십명씩 건너오고 또 매일 백여명씩 되넘어갑니다.조국에 왔으면 참답게 살아야지 이것이 뭡니까」라고 비판을 했디.어떤 날 출근하면 많은 사람이 없어집데다.알아보면 중국으로 돌아간거디요.67년 7월에 나도 가정을 데리고 도강을 했으니 아마 이튿날 내 자리가 비어 야단이었을 것이 뻔합데다.이북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호구를 붙여주지 않다가 67년 9월 정부에서 한꺼번에 복적시켰댔시요』 세번째 귀향은 문화대혁명시기이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만 해도 항일에 참가했던 사람들 70여명 모두가 귀순 분자로 투쟁을 맞았으니 2백50호 중에 70호가 적이된 셈이었다.그중 10여호가 북한으로 도망갔다.용정시 백금향 백금촌 차덕균은 일제시기 동경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다.일본에서 공부한 사실이 간첩조건이 되어 투쟁을 맞았다.모진 매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북한으로 갔는데 떠나던 날 큰 딸이 친척 집에 가고 없어서 두고 간것이 생이별이 되었다.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사이섬에서 총 사격을 받고 수백명이 종성으로 집체도주 한 일이 대표적 사건이다.선구촌 문영기(54)씨도 그 사건에 끼었던 한사람이다.캉다(강대)요 홍색이요 하는 조직간에 말로하던 시비질이 주먹질,돌팔매질,몽둥이 싸움으로 번졌다. ○“북에 남아라”만류도 1967년7월29일 연길 캉다에서 개산툰에 와 개산툰 캉다와 합세하여 홍색을 쳤다.싸움은 공장울안에서 일어났는데 쌍방은 돌멩이를 던지고 창으로 찔렀다.홍색에서는 열세에 몰리자 해관의 총을 내다 불질을 해댔다.캉다패들은 결국 선구 대안 두만강 복판 사이섬으로 쫓겨나고 말았다.8월2일 홍색은 사이섬을 포위하고 투항하라고 공포를 놓았는데 총소리를 들은 북한땅 종성 사람들이 강변으로 나와 어서 건너오라고 소리를 쳤다.3백여명이 모조리 강을 건너갔으나 여자 하나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북한에서는 대우를 제법 해주었다.그러면서 돌아가면 잘못 된다고 북한에 남으라는 선전을 했지만 몇사람 이외에 모두가 두달 후 되돌아왔다.주모자들은 감옥에 들어가 1년씩 구류를 사는 것으로 그쳤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당시의 일들이 억울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그때 북한으로 건너가 거주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손해배상을 받아갔다.용정시 삼합진 승지촌 김광진은 지방 자위단에 있었다는 죄로 투쟁을 당하다 죽었다.그래서 온 가정이 야간 도주하여 회령으로 건너갔다가 지난 92년에 아들 김상연이 와서 용정시 민정국에 상소,3만원(인민폐)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현재 화룡시 덕화진 남평촌의 내 숙부(유인상·77)는 낮이면 두만강가에 나가 건너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지으시기 일쑤다.내 고모가 60년도에 조선 청진으로 간 이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조카들은 60년대 초에 다녀갔고 몇해전까지는 편지라도 오갔는데 벌써 5년째 소식조차 모르고 있다.앞길이 멀지 않은 숙부는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부친(유민상·84년 별세)께서도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말끝마다 외우시다가 한많은 세상을 뜨셨다.
  • 골동품 수집 붐(두만강 7백리:3)

    ◎“한국인에 팔면 큰돈 번다”달려들어/연변주변엔 고대유물·발해고분 널려/달러 갖고 강 건너가 북 유물 밀반출도 화룡에서 숭선까지는 90㎞가 떨어졌다.노과진에 이르고 나서부터 국도는 두만강을 따라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가면서 오른쪽은 절벽이요 왼쪽은 두만강인데 벼랑 중간 못미쳐서 펌프물을 자아내듯 하는 작은 폭포가 조용히 떨어지고 있다.얼핏 보기에 엉덩이를 길쪽에 돌려대고 소변을 보는 형상이다.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이 절벽을 외설스럽게 개 무슨바위라고 불러왔다.그러나 요즘은 그냥 개바위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여놓았다. 1993년8월 이 바위 밑으로 국도를 낼 때 세개의 완전한 공룡화석을 발견했다고 한다.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먼 옛날 연변땅에 털코끼리가 산 것으로 되어 있다.그런만큼 공룡화석 발견은 고고학연구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됨직한 일이었다.그 공룡화석이 숭선진 남석촌 최진을씨한테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연변박물관에서 팔라고 해도 한국사람한테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 거절했다는 이야기와 함께….나는 물어물어 최씨를 찾아갔다. 최씨는 뒤울안에서 허름한 종이상자를 들고 나오더니 그 속에서 공룡이빨화석 한조와 턱뼈 하나를 꺼내 보였다.이빨의 길이는 40㎝,너비는 10㎝,높이가 15㎝이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밭고랑같이 패어들었다.두 이빨 사이 거리는 40㎝정도였다니 주둥이의 크기가 한아름이 실했을 것이다.턱뼈는 너비가 15㎝,길이가 22㎝,굵기가 7㎝나 됐으나 완전하지 못했다. 『이나마 건진 거이 다행입네다.도로 일꾼들이 막무가내 바수어대는 걸 빼앗아왔디요.큰 일을 치를 뻔했수다.일꾼들 말을 들으면 애초 크기는 10m가 넘었다고 기래요.허리가 휘유둠한 거이 똑 올챙이 같았다고 합데다』 ○공룡이빨 소중히 보관 최씨가 공룡화석을 발견했다는 전갈을 듣고 도로 작업현장에 달려갔을 무렵에는 이미 화석이 몇 동강 박살이 난 뒤였다는 것이다.뼈를 가루내어 먹으면 만병통치라는 말에 공룡화석은 해머로 맞고 불에 그을리기를 여러 차례.그렇게 서너시간 수난을 겪었다.최씨는 가까스로 턱뼈 일부와 이빨 몇점을 건졌다.그런데 최씨는 이화석을 한국인 골동품상에 팔면 큰 돈을 번다는 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연변 도처에서는 석기시대 돌도끼·돌자귀 등으로부터 철기시대 유물,그리고 발해시대 유물들을 주워올 수 있었다.내가 태어나 22년을 살아온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에는 발해시기 무덤들이 수없이 많았다.70년대초까지만 해도 발해 선조들의 해골이 대굴대굴 굴러다녔고 도자기며 동거울이며 장식품들이 발길에 차일 정도였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유인철이란 사람이 자연보석구슬을 얻었다.유리알처럼 투명한데 하늘에 대고 보면 기와집 앞으로 강이 나타난다.빙빙 돌리면 강물이 흐르고 돌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물살이 세찼다.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는데 아마 두만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다. 상화촌에서는 갑옷을 주워왔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마을에 병이 성했다.노인들이 갑옷을 파왔기 때문에 옛 장수가 노하여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해서 점쟁이를 불러다 방책을 하고 갑옷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상화촌 허정윤(64)노인은 돼지우리를 짓느라 돌각담을 파헤치다가 석기를 발견했다.돌이 좋은지라 숫돌로 썼는데 물에 숫돌을 넣으면 「웅…」하고 벌이 이사하는 소리를 내더란다.유물들이 큰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올해 찾아보았더니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역사유물에 대해 이만큼이라도 깨닫게 해준 것은 한국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 수교뒤 붐 일어 1992년부터 한국의 골동품 장사꾼들은 중국대륙을 휩쓸고 다니며 골동품에 대한 계몽운동을 일으켰다고 할까….옷보따리를 꿍쳐메고 두만강을 건너가 명태며 오징어며를 힘겹게 지고 가서 팔던 일부 조선족은 골동품을 밀수하기 시작했다.강건너 북한땅 민간에 수장되어 있는 오랜 병풍이며 도자기며 심지어는 장롱 따위도 들여왔다.그리고 나서 고려 청자·조선 백자·고서화 등이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어떤 한국인은 호주머니를 두둑히 채워와서 조선족을 도와준답시고 자금을 대주기도 한다.자금이 많든 적든 한국인이 돈을 대고 중국 조선족이 몸을 던지게 마련이다.돈을 받은 조선족 선봉장들은 달러를 가지고 강을 건너가서는 골동품을 사온다.이런 물건들은 야밤 두만강 도하작전으로 옮겨지기도 하지만 통 크게도 백주에 해관을 통해 운반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국의 G실업(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3 D빌딩) 대표라는 김모씨(43)는 19 94년 벽두부터 연변을 넘나든 한국의 골동품상인.그의 말에는 미더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벌써 20여년간 골동품과 벗해 살아왔다구.한국에서 나만큼 골동품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봐야겠지.몇해전에 우리 집에 도난사건이 나 귀중한 골동품 40점을 잃어버렸다구.그 다음부터 골동품과 멀리 했었어.이번에 다시 시작한 것은 국회의원으로 계시는 우리 신우형님의 정치자금 때문이지 뭐야.김영삼 대통령이 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정치인들이 곤경에 빠졌어.골동품으로 차기 국회의원 선거비자금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라구』 ○일본경유 대거 유입 골동품 장사꾼들은 대개 사기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연길시 하남가의 한 사람은 북조선으로 친척방문을 갔다가 조선시대 백자를 사왔다.그런데 한국인한테 팔려고 감정을 해보니 한국에서 요새 만든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골동품 붐이 일자 한국의 골동품 장사꾼들이 가짜를 만들어 일본을 경유하여 북한으로 보내 중국에 팔았다는 것이다.가짜가 어찌나 횡행하였든지 세계적 명품의 바이올린도 연변에 3개나 굴러다녔다. 하여튼 골동품 붐은 한국인,중국 조선족,북한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반목을 몰고오고 있다.
  • 문학평론가 김훈씨 첫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무의미에 대항한 허무주의자의 죽음/화재 진압하다 숨진 소방관의 삶 회고/“에세이식 소설의 독특한 장르 개척” 평가 문학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김훈씨(47·시사저널 사회부장)가 계간「문학동네」 봄호에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연재를 마쳤다. 문학기자 또는 문학평론가로서 섬세한 언어의 운용과 사유깊은 문장으로 독특한 경지를 이룩했던 김씨는 소설가로서 첫발을 내디디며 선보인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리 만족치 않는 모습이다.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나의 소설은 실패로 끝났다』고 되뇌었다.시간상의 문제 등으로 석연찮게 마무리했던 소설의 결말부가 끝내 부담으로 남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문학동네」에 2회 분재된 그의 소설은 이제까지 산문작업에서의 자신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으며 한국소설로는 드물게 에세이식 소설로 독특한 경지를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장편「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한 소방서장이 화재진압과정에서 부하 소방관의 사고사를 계기로 부하의 삶을 되새기는 회고담이다.작가가 한때기자직을 그만두었던 89년말부터 1년반에 걸쳐 3분의 2가량 썼다가 5년의 공백기간을 딛고 지난해 마무리한 소설로서 소방관과 중장비기사에 대한 내밀한 묘사가 돋보이고 있다.일간신문 사회부 사건기자를 지낸바 있는 작가의 체험과 관련수험서 읽기,수년전 시화지구 간척사업에서 십장일을 맡았던 친구 동생의 경험에 빚지고 있는 부분이다.하지만 이 소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질긴 사유로써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문장들이다. 『질료의 죽음과 함께 불꽃도 죽는 것이어서,그것들의 삶과 죽음,생성과 소멸은 같은 축 위에 놓여 있었지만,불은 타오름으로 질료를 죽였고 질료는 스러짐으로 불꽃을 타오르게 하다가 이윽고 저 자신의 죽음으로 불꽃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처럼 불을 비롯해 바람,수직의 구조,한낱 쇳덩어리에 불과할 중장비들이 그의 언어 부림에 의해 사물의 비릿한 속살을 드러낸다.『3인칭으로 소설을 쓰는 일에는 자신이 안선다』고 그는 말했지만 이 소설의 1인칭 시점은 특유의 사유깊은 문장을 구사하는데 좋은 기반이 되고 있음이분명하다. 또한 이전의 산문작업으로 허무주의라 규정지어졌던 작가의 세계관은 이 작품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하고 있다.타오르는 불꽃에 속수무책인 인간,화재현장에서의 맥없는 죽음들,그리고 애완 청거북의 죽음처럼 삶에 언뜻언뜻 끼어드는 죽음 등….그의 생각은 신석기시대의 인간이 도구인 돌도끼로부터 벗어나는데 수천년이 걸린,최신 소방장비조차 불끄는데 별로 소용되지 못하는 문명에 대한 답답함과 불신에 닿아있는듯 하다.그러나 허무주의는 세상에 대항하는 방법일뿐,그는 결코 허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는 않는다. 작가는 화재현장에서 불에 이끌리는 소방수,자신의 몸짓이 하릴없는 줄 알면서도 불의 발화점을 향해 돌진하는 장철민을 세상의 무의미함에 대항하는 「허무주의의 전사」로 내세운다.그러나 그 전사는 세상에 부딪혀 깨어지듯 화재현장의 무너지는 콘크리트천장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다. 대리인은 죽고 『언어와 실제는 배반이다』『나의 글의 메시지가 남에게 과연 전달될 수 있을까』하고 회의하는 또다른 허무주의자 김훈이 남아있다.『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세계변혁의 도구로서 발명된 무기(철기)와 악기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음을 다룬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앞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진 탄피처럼 혹은 시체처럼 수북이 쌓여있다.그의 허무주의가 어떤 변모를 겪었는지는 다음 작품이 말해줄 것이다.
  • 이양호 장관에 듣는 국방정책(국정 어떻게 돼 갑니까)

    ◎“군지휘부 감축… 일선전력 증강 극대화”/국방부·합참기능 통합… 인력·조직 정예화/사기 진작·정신무장으로 군기사고 예방/핵타결 됐지만 북위협 여전… 안보의식 다져야 □대담=황병선 정치2부장 95년은 군으로서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지난 2년 개혁의 와중에서 갈피를 잡지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나사풀린 구태를 털어내고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당당한 군으로 거듭태어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출범후 우리 군은 정치적 분위기 전환에 따라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강한 견제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더욱이 율곡사업과 관련한 옛 비리들이 터져나오고 사조직 병폐해소 조치가 취해지면서 군을 보는 사회의 시선도 별로 곱지 못했다.게다가 장교들의 탈영,은행강도등 기상천외의 군기사고마저 잇따라 나라지키는 일 밖에 모르는 대다수 군인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이같이 어려웠던 2년을 정리하고 문민시대의 새 군대로 재탄생시키는 산파역을 맡은 이양호 국방장관. 취임 1개월이 조금 넘은 그는 역대 국방장관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인품을 지녀 문민시대 국방장관다운 체취를 풍긴다는 평을 듣는다.공군 파일럿출신인 이장관은 그러나 속이 당찬 전형적 외유내강형. 『군인은 강한 훈련속에 탄생합니다.요즘 젊은세대는 편하게만 살려는 사회풍조에 따라 인내심·극기력이 부족합니다.군이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고 강훈으로 단결심과 애국심을 갖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장관은 4일 대담 첫머리에 최근의 군기사고들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재발방지를 다짐했다. ­65만의 대식구를 거느리다 보니 별난 사람도 많고 의외의 사건·사고도 많아 군의 사기가 훼손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두사람의 잘못이 전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먹칠을 해 안타깝습니다.초급장교든 사병이든 짧은 기간 훈련으로 내면을 모두 바꾸기는 불가능합니다.엊그제까지 예컨대 압구정동에서 돌아다니다 군에 입대했는데 금방 사람이 달라질 수는 없겠죠.따라서 강인한 실전적 훈련을 통해 군기를 확립하고 신세대 장병들에게 단결심,그리고 개인보다나라를 위하는 바른 자세를 심어주고자 합니다. ­국방을 책임진 군의 전반적 사기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져 큰 문제라고 지적들을 합니다. ▲지난 2년 변화과정에서 진통도 있었지만 이제 안정을 되찾아 본연의 임무에 박차를 가할 단계에 왔습니다.정치적 때도 벗었고 사회에서 군의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크게 힘을 얻고 있죠.군내부적으로는 병영시설을 현대화하고 각종 수당을 올리는등 복지향상을 위한 조치를 강구중입니다.그러나 군의 사기가 물질적 보상만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죠.그보다는 강인한 교육훈련을 통해 제대로 된 군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병영생활 합리화와 근무여건 개선등에 많은 신경을 써줄 생각입니다. ­정부와 사회 각계가 세계화를 향한 각종 과업들을 설정해놓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 군의 세계화구상은 어떤 것입니까. ▲군의 세계화란 한마디로 선진국과 비교해 손색없는 군이 되는 것이죠.이를 위해 구성원 개개인의 자질을 높이고 조직을 선진화해야 합니다.걸프전에서 나타났듯 요즘전쟁은 첨단과학 장비로 수행되기 때문에 한사람으로도 과거 여러사람 몫을 해낼 수 있습니다.또 포탄 10발을 쏴 목표 1개를 맞히던 것을 요즘은 1발로 적중시키고 있죠.그러나 우리 군은 아직 인력과 조직면에서 특히 미흡한 실정입니다.따라서 인력을 정예화하고 조직을 정비할 예정입니다.개혁위등에서 방안을 검토중인데 1·4분기중 실천방안이 확정될 것입니다.기본방향은 전투력발휘와 직접 관계가 없는 「머리쪽」 사령부를 줄이고 팔·다리인 일선 전투부대를 키운다는 것입니다.또 국방부와 합참의 기능을 어느 쪽으로건 통폐합,기능을 일원화 할 생각입니다. ­첨단과학전쟁 시대이고 보면 군이 컴퓨터전문가등 민간기업 못지않게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국방과학연구소등 연구기관에서 우수인력양성과 첨단기술개발을 맡고 있습니다.그러나 교육받은 만큼 높은 복지를 요구하는게 사람들의 심리죠.그 결과 우수인력이 민간부문으로 유출되는 사례도 있습니다.그러나 군에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죠.예컨대 조종사들이 모두 민항에 가겠다고 하지는 않습니다.군에는 민간회사에 없는 뛰어난 직업의 안정성과 연금등 노후보장 혜택이 있는게 사실이죠.그보다 나라를 지킨다는 보람에 큰 의미를 두는 건전한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북핵타결 이후 사회 일각에 안보의식 해이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군에서는 걱정이 없습니까. ▲북핵타결로 북한의 핵개발이 중지된 것은 큰 성과입니다.그렇지만 북의 재래식전력은 여전히 크게 위협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또한 북은 믿을 수 없는 정권임에 변함이 없습니다.그들은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KAL기 폭파·아웅산사건등 예기치 못한 폭거들을 저질러 왔죠.게다가 요즘 북한은 확고한 체제를 갖추고 있지도 못합니다.따라서 과거식으로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등 은연중 주적개념이 흐려질 우려가 있어 군에서는 정신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요즘 북한내엔 『어차피 살기 힘드니 한번 붙어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하던데 만에 하나라도 북한이 도발할 경우 우리의 방위력은 충분합니까. ▲한미연합방위체제에 따라 완벽한 방위태세를 갖추고 있으니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24시간 북한을 주시하고 있으며 도발징후가 있으면 전선에서 곧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할 준비가 돼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군사동향은 어떻습니까. ▲북한은 통상 겨울철에 훈련을 많이 하는데 요즘도 훈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그들은 북핵타결 이후 부쩍 대남비방을 강화하고 있어요.그들은 『한국이 핵전쟁 일으키려 한다.우리가 배고픈 것은 바로 남한 때문이다』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종전에 미국에 퍼붓던 욕까지 모두 한국에 돌리고 있어요. 그러나 전쟁은 말로 하는게 아니고 국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죠.남북간 국력을 보면 GNP가 북의 20억달러에 비해 우리가 2천억달러이고 인구는 두배,수출입은 1백배나 많으니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따라서 걱정되는 것은 북한의 국지적 도발입니다.그러나 한­미양국은 첨단 연합전력을 갖추고 있으며 유사시의 증원전력도 완비돼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중순 미합참의장 섈리캐슈빌리대장이 방한했을 당시 주로 그런 논의가 있었겠군요. ▲한미연합방위체제가 공고함을 재확인했습니다.우리의 기본입장은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북이 대화에 응해와 남북회담도 되고 또 우리 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한미연합방위체제의 유지가 필수적입니다.미국은 신아·태전략과 관련,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 이 지역에 미군 10만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군 전력증강 현황/F16기 8대 7월 추가 도입/99년까지 총 1백20대 실전배치 완료/K1전차 주포 1백20㎜로 화력 강화 한국군은 지난 20여년동안 지속적으로 전력증강 및 현대화에 힘을 쏟아왔다.그 결과 지난 74년 전력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을 시작할 당시 북한의 50.8%수준이던 전력이 92년 현재 71%선으로 증강됐다. 주한미군 전력을 배제한 우리 군사력은 이같이 북한에 비해 아직 열세에 머물러 있지만 2천년대에는 자체전력만으로 북한을 감당할 수 있게 될 청사진이 마련돼있다. 우리 군은 이 청사진을 현실화하기 위해 10년단위로 군사력 증강목표를 조금씩 발전시켜오고 있으며 현재는 『대북 억제전력의 확보 및 급변하는 전략환경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군사력건설을 추진중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지상군의 공세적 기동전력을 보강하고 군구조를 공세적으로 전환하며 ▲대 함정 및 대 잠수함 작전능력을 향상시키며 ▲기술집약형 공중전력을 발전시키고 ▲3군 통합차원의 군사력을 건설한다는 세부목표 아래 잠수함과 차세대전투기 도입·전자전 능력 확보·전차개량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군의 이같은 전력목표는 「소총이나 기동력 보강·고속정 증강과 팬텀기 도입」이 고작이었던 70년대나 「전차 및 포 강화·상륙전 능력강화」등 재래전에 필수적인 무장확보에 치중한 80년대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이 지난해 새로 도입한 전력의 대표적인 것은 차세대전투기인 F­16이다.대당 3백34억원선인 이 전투기는 지난 84년 계획에 들어간지 10년만인 지난 연말 4대가 미국에서 생산돼 한국에 배치됐으며 오는 7월까지8대가 추가도입된다.또 99년까지 국내에서의 면허생산등으로 1백8대가 더 배치돼 모두 1백20대의 F­16전투기가 우리 하늘을 24시간 지키게 된다.이 전투기는 야간에 낮은 고도에서 정밀폭격을 할 수 있는 첨단장비를 부착,우수한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주력기인 미그25(팬텀 수준)보다 성능이 월등하며 북한이 15대밖에 갖고 있지 못한 미그29에 비해서도 회전반경이나 기동성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차세대전투기 다음의 주요전력은 잠수함을 꼽을 수 있다. 92년 1번함인 장보고함이 독일에서 조립생산돼 도입된 이후 지난해 4호함 박위함까지 4척(1척당 1천5백억원 상당)이 배치돼있다.앞으로 계속 국내생산될 이 잠수함은 동급 잠수함 가운데 소음이 가장 적어 은밀성이 뛰어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북한은 26척의 잠수함을 작전배치해놓고 있으나 구소련이 50∼60년대에 생산한 구형이어서 연안침투용 잠수정수준을 조금 앞서는 정도로 전해지고 있다. 국방부는 해·공군 전력과 함께 지상전력도 보강,지난 85년부터 생산된 한국형 K­1전차가 오는 96년이면 소요량을 완전히 충족하게 된다.군은 이 전차의 1백5㎜주포를 1백20㎜로 바꿔 화력을 강화하는 개량작업을 하고있다. 이밖에 코브라헬기에 야간에도 적을 찾아낼 수 있게 하는 장비를 부착하는 중이다.코브라헬기 1대는 전차 16대를 동시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같은 전력증강과 주한미군 전력을 감안하면 북의 어떤 기습적 도발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 군당국의 설명이다.
  • 미 기업·월가/리스크 관리 새로운 시도(현장 세계경제)

    ◎각광받던 「파생금융상품」 큰 손실/「재무 위험관리」 새모델 개발 고심/“기업 생사 판가름”… 전담 매니저제 도입 등 열기 미국에서는 지금 기업 및 금융기관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보호하는 경영방법인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여러가지 방법 가운데 특히 중요한 수단으로 각광 받았던 파생금융상품(데리버티브)이 지난해 말부터 막대한 손실만 냄으로써 새로운 위험관리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한때 수익률이 수십 %까지 올라가 리스크 매니지먼트 방법으로서 보물단지 대우를 받았던 파생금융상품은 94년 채권시장 폭락으로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다.파생금융상품이란 금융자산의 가치가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위험방지용 금융상품을 말한다.프록터 앤 갬블,깁슨 그리팅스등 파생금융상품을 많이 이용했던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이같은 시장반란으로 딜러들도 상처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모건은행의 파생금융상품 수수료 수입은 지난 한해에만 무려 17% 줄었고 시티뱅크는 9개월 동안 절반으로 떨어졌다.체이스 맨해튼은행은 4·4분기에만 2천만달러의 손해를 보는등 딜러나 기업할 것없이 파생금융상품에 손을 댄 쪽은 한결같이 강펀치를 얻어 맞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던 기업과 은행,월스트리트 증권사들은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한 위험관리가 위험도나 복잡성이 큰 90년대적 상황에서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세계적인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는 매수합병과 합작에서부터 신약 연구개발비용등과 같은 기업의 새 프로젝트에 따른 위험도를 측정하기 위해 「몬테 카를로 시뮬레이션」이라는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새로운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프루덴셜 보험사는 92년 미 회계감사협회들로 구성된 「조직보증위원회」가 낸 보고서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고경영자와 이사회가 관리철학을 마련하고 말단 직원에까지 이를 확산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지난해 상반기동안에만 파생금융상품에서 3천2백만달러를 날린 델 컴퓨터는 회사 자금부를 파생금융상품 시장 투기센터로 활용하던 종래의 정책을 버리고 위험과 비용관리 중심부서로 역할을 수정했다.94년 6월말 금융투자실패로 1억2백만달러의 손실을 본 프록터 앤 갬블은 이사회가 자금및 구매부서 고위급 매니저들로 구성된 「위험관리협의회」(RMC)라는 조직을 구성해놓고 위험에 대처케 하고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하에서 위험도를 점치고 있는 금융계에서는 모건은행이 단연 돋보인다.모건은행은 당일 하오 4시 15분에 외환·이자율·상품시세등을 자세하게 분석한 「4:15 보고서」라는 리스크 측정자료를 작성하고 있다.지난해 10월부터는 이같은 자체 리스크 측정 시스템을 전지구적 기준으로 확립하기 위해 「리스크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위험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모뎀과 PC를 가진 개인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은행의 데니스 웨더스톤 회장은 『뭘하든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일단 위험을 이해해서 측정하고 해명하면 기업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새로운 위험관리의 당위를 주장한다. 이같은 새로운 위험관리 프로그램은 고위급 리스크 매니저에 의해 중앙통제감독을 받으며 최고 경영자들이 정한 정책에 따라서 전사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문서화된 정책없이 비용에만 초점을 뒀던 기존의 방식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이에 따라 전혀 새로운 범주의 새로운 직능인 리스크 전담 매니저가 탄생하며 단순히 주판알만 굴리는 부서로 알려진 재무·회계부서가 구매에서부터 마케팅에 이르는 기업의 전활동에 대해 조언을 제공하는 재무위험관리에 대한 컨설턴트의 역할을 떠맡게 됐다.뿐만 아니라 사내 부정이나 낭비를 찾아 헤매는 「두더지」쯤으로 여겨졌던 감사부서는 기업의 윤리적 규범의 준수여부를 감시·감독하는 책무를 수행하게 됐다.마찬가지로 리스크 매니저들은 기업의 중장기적 명망을 희생하면서 직원 개인의 영달을 허용하는 보상 체계를 감독한다. 이같은 발상은 80년대 탄생한 파생금융상품 중심의 위험관리방식이 90년대들어 수명을 다했으며 효율적인 프로그램 개발이 기업의 생사를 판가름한다는 자각에서 출발했다.물론 아직 옵션을 활용하는 인텔을 비롯해 천연가스 마케팅과 생산자금 조달을 위해 인하우스 상업은행을 설립,스와프등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을 애용하고 있는 휴스턴 석유·천연가스 회사인 엔론등과 같은 기업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효과적인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몬테 카를로 시뮬레이션이나 4:15 보고서 RMC만이 아닐 것이다.정교한 분석법과 컴퓨터 모델의 지원을 받는 이같은 프로그램도 리스크에 민감한 사내 문화가 정착된 환경이라면 재정적 타격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보다 빨리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 “CD­롬 입력자료 50년후엔 무용지물”/「정보코드」표준화 급하다

    ◎미 과학전문지 경고/“SW발달로 포맷 급변… 멀지않아 판독 불능” 디지털매체가 종이로 된 문서를 대체하면서 정보혁명을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확실한 정보보존이 가능할까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최근호는 현재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는 디스켓,마그네틱 테입 등의 디지털매체에 확실한 조치를 해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정보를 순식간에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록매체의 안정성도 문제가 있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다.즉 현재 가장 진보된 형태의 기록매체인 CD­ROM의 경우,앞으로 수십년이 지난후 과연 「원시적인」CD를 읽어낼 수 있는 기계가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다.그때쯤이면 지금쓰고 있는 개인컴퓨터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석기시대쯤의 돌도끼정도가 될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그렇다면 CD­ROM에 담긴 정보는 무용지물이다. 현재 정보를 쉽게 저장 또는 복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스켓 등의 디지털매체가 가장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여기에 담긴 정보들은 지금부터 길어도 50년만 지나면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자료로 되고만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미 하원보고서에 따르면 19 60년도 미 인구조사기록,마약관리에 관한 보건성자료,월남전 전쟁포로기록 등이 부분적으로 훼손된 구멍이 나있는 상태다.자료를 마그네틱테입에 보관을 해 두었는데 소프트웨어가 발달되고 자료기록 방법이 새로운 포맷으로 바뀌면서 그전 데이터를 제대로 읽어들이지 못한 결과였다. 컴퓨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공통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현재 정보기록의 표준이 되고 있는 「아스키코드」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지금까지와 같이 표준이 소프트웨어의 발전속도에 맞춰 변해간다면 지금 보존되어 있는 데이터는 앞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현재의 코드를 앞으로 몇십년,몇백년이 지나도 읽어낼 수 있게 만드려면 지금부터라도 확실한 코드표준작업이 전세계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 육사출신 엘리트장교 범행에“경악”/“잦은사고”군기강해이 어디까지…

    ◎인격보다 성적위주 생도관리 주인/경비 허술한 육사 무기관리도 문제 육사출신의 현역중위 하기룡(25·육사49기)가 한낮에 총기를 들고 은행을 털려다 붙잡히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건이 발생,국민을 경악케 하고 있다. 건군이래 처음인 육사출신 현역장교 강도사건은 지난해 9월27일 53사단 장교 2명의 무장탈영사건에 이어 두번째로 빚어진 육사출신 엘리트장교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이날 사건은 물론 장교무장탈영사건때 제기된 초급장교의 선발과 교육·군기강등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다시한번 드러내주었다.그러나 이보다 우리 젊은 세대의 물질만능·향락풍조만연이란 사회적 병폐가 이 사건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경찰에서 범인은 『좋은 승용차에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서』라고 범행동기를 밝히고 경마에까지 손을 댔다고 말해 이같은 지적을 뒷받침하고 있다. 육사에 따르면 범인은 모범생이었고 따라서 임관과 동시에 육사의 추천으로 서울대 법대 2학년에편입했다. 법무병과를 받은 범인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법무관으로 임명될 자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육사는 지난해 졸업생 3명을 서울법대에,또다른 2명은 서울의대에 편입토록 했다. 따라서 이같이 우수한 자원이 상식밖의 범행을 저지른 데 대해 육사관계자들조차 아연실색하고 있다. 이번 범행의 배경으로는 정확한 인성파악과 인격도야를 외면한 성적위주의 육사생도관리가 첫번째 요인인 것으로 꼽히고 있다. 육사생도는 통상 상오6시에 기상,2시간여 아침운동과 식사등을 가진 뒤 바로 학과교육을 시작,하오10시 취침하고 있다. 육사는 이런 꽉 짜인 환경속에서 잦은 시험을 통해 생도를 평가,생도끼리도 계급을 매겨 지휘와 복종 및 경쟁관계를 유지토록 하고 있다. 육사는 담밖에는 철저한 경계망을 펼치고 있으나 일단 내부로 들어서면 일체 경비가 없어 무기를 훔치기가 매우 용이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범인 주변/육사 49기… 전체 15등한 모범생/“승용차·여자친구 갖고 싶었다” 하기룡중위는 육사 49기로 93년3월 임관한 뒤군 위탁교육생으로 서울대 사법학과 2학년에 편입,현재 4학년에 재학중이다. 졸업때 법무병과에 배속된 하중위는 고시에 응시,법무관이 되기 위해 서울대 법대에 편입했다 하중위는 생도시절 전체 2백67명 가운데 15등의 우수한 성적에 럭비에 소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군인으로서의 자질은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육사 생도로 입교하기 전에 받는 4주간의 교육평가에서는 「복종심이 부족하고 반발심이 강해 특수훈련을 시켰다」,1학년 생활기록부에는 「적극성과 사교성이 부족하다」,3학년 기록부에는 「대인관계가 좁고 친화력이 부족하며 개인적 성향이 강해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라고 적혀 있다고 군 관계자들은 전했다. 또 위탁교육생 평가서에는 「럭비 이외에는 무관심하다」고 적혀 있었으며 서울대에 편입한 뒤에도 사귀는 사람 없이 학교 도서관에서 고시공부에 열중해왔다는 것이다. 또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면서도 동기생들은 부유한 집안의 생도인 것으로 알고 있어 과시욕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관계자는이와 관련,『머리는 뛰어나지만 단체생활에 적응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하중위의 형(30)도 『평소 명석하고 사리분별을 잘했는데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중위는 위탁교육생들이 배속되는 학생중앙군사학교 소속으로 관악구 신림동에서 자취생활을 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범행동기는. ▲경마에 빠져 후배의 신용카드를 빌려 3백만원을 사용한 뒤 12만원은 갚았으나 나머지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해 범행을 결심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는가. ▲군에만 있다가 2∼3년 사회생활을 해보니 사회가 너무 물질만능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회의가 들기도 했으나 나도 모르게 그같은 사회풍조에 젖어든 것 같다.멋있는 빨간색 승용차와 예쁜 여자친구를 갖고 싶어 돈이 필요했다. ­학력과 가족관계는. ▲부산의 B고교를 졸업했다.도장업을 하는 아버지와 아파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울산의 큰누나집에 가 있는 어머니 사이의 2남2녀중 막내다. ­군인신분으로 서울대에 다니는 이유는. ▲군에서 우등생으로 인정받아 국비위탁생으로 발탁된 뒤 서울대 사법학과에 들어가게 됐다.법무관 공부를 하고 있었다. ­현재의 심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후회한다.
  • 부대이동·초계활동 독자 수행/「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답풀이

    ◎전쟁 반발땐 연합사에 작통권 재이양/미의 한반도방어 역할 「지원관계」 전환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자주국가의 주권에 해당하는 군통수권을 회복했음을 의미한다. 이번 평작권환수는 비록 평시에 한정되는 「제한성」을 지니고 있지만 6·25이후 지금까지 전시를 뜻하는 상황이 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등 1∼2차례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군은 이번 조치로 사실상 군부대 전체의 통제권을 회복한 셈이다. 작전통제권과 관련된 사항을 문답으로 알아본다. ­작통권은 언제 연합사측에 넘겨졌는가. ▲6·25당시인 50년 7월14일 고 이승만대통령이 전쟁수행을 위해 유엔측에 이양했다.그러나 80년대 말 한미양국간에 작통권환수에 논의가 시작돼 92년 「94년까지 평시작통권을 환수키로」 합의한 바 있다. ­한국군은 평작권 환수로 어떤 이점을 얻게 되는가. ▲평작권이란 전쟁 발발 이전 단계에서 부대운영 전반에 관해 행사하는 권한이다.따라서 앞으로 한국군은 평상시 경계임무·초계활동·부대이동·군사대비태세 강화등을 독자적으로 결정·수행할 수 있게 된다.한국군은 또한 지형에 적합한 훈련·전력강화·부대배치·군사교리 개발·작전계획 수립등도 할 수 있게 된다. ­전·평시의 구분기준은. ▲평시는 현재와 같은 정전상태를 의미한다.전시는 북한측이 이상징후 목록에 따른 이상행동을 보일 경우 양국 합참의장들의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이 때는 한국합참의장은 작통권을 다시 연합사에 넘기게 된다. ­평작권환수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앞으로 한국군이 한반도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므로 그만큼 한국의 국방비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미국측은 북핵과 관련,주한미군 감축계획을 당분간 유보하는 한편 한국군에 대해 지속적인 전력강화를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미국은 지금까지 한반도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던 것을 「지원 관계」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미국측은 적절한 시기에 89년의 넌­워너수정안에 의거한 2단계주한미군감축안을 시행할 전망이며 이 경우 우선 주한미군 예하 1개 기계화보병여단·1개 항공여단·주한미공군 1개 전투비행단등이 감축되게 된다.따라서 한국은 주한미군 감축시 전력공백을 메우는 일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평시작전권」 환수 일지 ▲50·6·29 맥아더,이승만에게 작전권 요구 ▲50·7·14 이승만,맥아더에게 작전권이양 서한발송 ▲54·11·17 한미합의의사록에 한국군을 유엔군통제하에 둔다고 명시 ▲61·5·26 국가재건최고회의,유엔군의 작통권재확인 ▲78·7·26 SCM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작통권부여 ▲92·10·9 SCM서 94년말까지 평작권 한국군환수합의 ▲93·11·3 SCM서 환수일자 94년 12월1일로 확정 ▲94·10·7 SCM서 최종합의 ▲94·12·1 평시 작통권 한국군이양 ◎한·미 공동발표문 전문 이병태 한국국방장관과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은 최근의 제2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정전시 지정된 한국군 부대에 대한 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을 한국 합참의장에게로 전환한다는 제24차 SCM의 합의사항을 확인했다.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양국 정부간의 필요한 내부 협조절차를 마침에 따라 1994년 12월1일 0시부로 시행된다. 이번의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는 한국의 방위를 위한 미군의 주도적 역할이 지원적 역할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12월1일부터 한국군은 한국방위를 위해 더 큰 책임을 맡게 될 것이다. 지난 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이 언급한 바와 같이 작전통제권이 전환되더라도 한·미 동맹관계는 공고히 유지될 것이다.그러나 현재 및 가까운 장래의 한반도 안보환경을 분석·평가해볼 때 북한의 위협은 상존해 있으므로 한국정부는 전쟁을 억제하고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정전기간중에 필요한 기능·책임·권한을 연합사령관에게 위임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작전체계는 전투준비태세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므로 전반적으로 한·미연합국사령부의 전쟁억제태세는 향상될 것이다. 한·미양국은 평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통해 양국간의 역할을 재정립함으로써 한 단계 발전된 군사협력시대를 맞게 됐다.
  • 전통의 「아박춤」(연변 조선족 1백년:2)

    ◎거친 율동… 한서린 삶 표현/궁중춤 「동동」서 유래… 직선­전투적 동작으로 변모 『교수님,내말 좀 들어보오.쪽박 차고 건너와 이제 겨우 살 듯하니 시어머니 셋이 되었소.시어머니 하나도 감당하기 벅찬데 셋을 모시자니 어찌 고달프지 않겠소』 『시어머니 셋이라니?』 『처음 시어머니는 우리가 스스로 모시기로 한 중국이고,둘째 시어머니는 해방이 되자 재빨리 우리에게 시어머니 노릇을 시작한 북한이고,지금은 한국까지 시어머니로 모시니까 세번째가 아니겠소?』 딴은 그렇다. 『그치만 한국을 시어머니로 보는 시각은 잘못이 아닌가요?』 『말도 마오.시어머니가 따로 있소? 모국이면 시어머니지』 『모국이면 어머니지,어찌 시어머니요』 ○쪽박차고 두만강 넘어 『이래도 저래도 눈치봐야 하니 어찌 어머니라 할 수 있겠소? 시어머니지』 옳다.한국을 가까이 하자니 북한의 눈치를 봐야 하고,북한을 가까이 하자니 한국을 의식해야 하고,현재는 중국국적이라서 중국인이긴 하나 조선족 소수민족이니 역시 눈치보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조선족의 전설학자인 박창묵선생과의 일문일답이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불편한 심기를 단적으로 대변한 말일게다.어디 중국조선민족뿐이겠는가.조국분단의 설움은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공통된 아픔일 것이다.남북이 통일만 되었다면 이러한 고민은 있을 리 없다.그러나 중국에 사는 조선민족의 고민은 일본이나 미국의 교포들과는 또 다르다.박창묵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쪽박 차고 두만강을 넘은 조선족은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사선을 넘는 사투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당시 빈손의 이주민을 맞아준 것은 처절한 냉대뿐이었다.거의 중국인의 땅을 개간하는 소작인으로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였고,중국인 관리들의 횡포는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재물의 약탈,부녀자의 납치는 극에 달했다.본국에서 왜놈에게 위안부로 끌려가는 비운의 주인공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곳 만주벌의 텃세에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인 지주 착취극심 두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당시의 비참한 경험은 지금은 설화로 구전되고 있다.악질지주로부터 착취당하는 민초의 고통을 담은 전설 「장생초」「백운봉」「신선봉」「와호봉」「방학대」등이 있으며 여자 겁탈을 담은 내용으로는 「봇나무와 만병초」「신선꽃사슴」「금붕어처녀」등이다.이들 이야기는 당시의 비참한 생활의 단면을 보여준다.「장생초」의 처음 발단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백두산 기슭의 외딴 산촌에 모자가 살고 있었다.부잣집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데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의 공포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어느 해 여느 때보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추수를 끝내고 미처 새 곡식으로 밥을 지어 먹기도 전에 땅주인이 와서 양식을 몽땅 가져가버렸다.정말이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땅주인을 찾아가 호소했으나 만나주지조차 않았다.모자는 하는 수 없이 마을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고향에서는 왜놈들의 가혹한 탄압을 피해 다시 중국으로 이주했건만 맞아준 것은 실망뿐이었다.여기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뭉치는 것뿐이었다.횡포와 텃세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족의 뭉침이었다.설상가상으로 일본의 침략근성이 만주벌까지 미치었으나 조선이주민들은 최후까지 저항으로 맞섰다.끝내 그들도 조선족의 뭉침을 흐트러뜨리지는 못했다. 전통춤을 연구하는 김정훈선생은 중국조선민족의 춤이 과거 가혹한 삶의 고통을 반영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해주었다.이를테면 「아박춤」은 율동이 직선적이고 전투적이다.원래 이 춤은 학이 조용히 나래를 펴고 호수가에 앉으려는 듯 은은한 궁중춤이었다.우리가 익히 아는 「동동」이 바로 그 춤이다.그러나 삶의 위기에 봉착한 춤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다.극적인 변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눈녹여 주린창자 채워 쪽박 차고 살 길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온 일단이 안도현 송강 송화의 두메산골에 닿은 것은 땅거미가 진 뒤였다.사나운 눈보라에 굶주림과 피곤이 겹친 일단은 더는 옴짝달싹도 못했다.모두 동사직전이었다.이때 50여세 되는 「복실어머니」가 도끼로 참나무를 쪼개어 두 손에 들고 절규했다. 『자 모두들 아박춤을 추시우다.춤을 추면 춥지 않아요.얼어죽지 않을 사람은 빨리 춤을 춥시다』 모두 놋대야에다 눈을 끓여 굶주린 창자를 달래며 일어나 춤을 추었다.짚신 구멍으로 삐죽삐죽 나온 언 발을 굴려가며 춤을 추었다.아박춤은 이렇게 해서 민간춤이 되었다.소도구도 상아뿔이 아니라 참나무를 쪼개어 썼고,점차 참대를 다듬어 썼으며 구멍을 뚫어 삼색끈을 끼워 쓰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중국조선민족의 괴로웠던 삶의 역사였다.광복을 맞고 이제 살맛이 날까 하는데 또 하나의 장애가 생겼다.하루속히 남북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은 조국의 동포들보다도 더더욱 절실할 것이다.
  • 외무통일위/김 대통령 외지회견관련 논쟁(국정감사 초점)

    ◎“북핵 대응 한­미 이견없나” 추궁/“청와대발언 왜 외무부서 모른체”/미국무와 통화내용 공개도 요구 12일 외무부에 대한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지난 8일 김영삼대통령의 「뉴욕타임스」 회견으로 나타난 한미간의 외교공조 이상기류가 쟁점으로 부각됐다.여야 의원들은 정부가 그동안 줄기차게 되풀이해온 『북한핵 협상과 관련,한미간에 이견은 없다』는 주장을 지적하며 청와대와 외무부를 포함한 외교안보팀의 혼선과 일관성 결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의원들은 특히 이날 회의 초반에 한승주외무부장관이 김대통령의 뉴욕타임스 회견에 대해 『공식회견도 아니며 발언내용이 활자화 과정에서 잘못 전달됐다』고 일부내용을 부인하자 너도나도 들고 일어났다. 민자당의원들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북한에 지나치게 타협적이라고 지적했다.그러므로 김대통령의 발언이 우리 외교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첫 질의에 나선 박정수의원은 『정부가 그동안 미국과의 공조체제를 강조했지만 솔직히일종의 추종체제라는 인상이 강했다』면서 『주권국가로서 자주적인 외교를 풀어나간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을 했다』고 두둔.안무혁의원도 『지난 1년반 동안의 핵협상과정을 돌이켜볼 때 김대통령이 꼭 필요한 말을 했다』고 말하고 『그런데도 외무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북한핵문제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고 한장관을 직접 공격.구창림의원도 『김대통령의 발언은 한미간 공조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모처럼 자주외교의 방향으로 나간다는 반응이 많다』고 소개.서정화의원은 푸에블로호·도끼만행사건등 과거 대북협상 경험을 예로 들면서 『협상보다는 전면적 힘의 우위가 바탕이 돼야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이끌어 왔다』고 강경책을 적극 주문했다. 이에 비해 야당의원들은 김대통령이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북한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곧 붕괴할 것』이라고 한 발언을 문제삼고 나왔다.민주당의 김원기의원은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북한의 붕괴를 얘기할 때는 정확한 정보와 근거가 필요하다』면서 『며칠뒤의 CNN회견과도 상반된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냐』고 추궁했다.민주당의 김상현의원은 『대북문제에 대한 원칙과 접근 방법이 정리되지 않아 나온 발언』이라고 주장한뒤 『뉴욕타임스 회견뒤 크리스토퍼미국무장관과 통화하면서 해명한 내용을 밝히라』고 요구했다.신민당의 박찬종의원과 민주당의 이우정의원은 『김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새한국당의 이종찬의원도 『그동안 정부는 미국 전략을 마치 우리 것으로 오인,오락가락했다』고 비난했으며 민주당의 임채정의원은 『김대통령의 뉴욕타임스 회견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정부가 정정을 요구하라』고 촉구. 이에 대해 한승주장관은 『크리스토퍼장관과의 통화에서는 제네바 북미협상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을뿐 해명을 하지는 않았다』면서 『뉴욕타임스회견과는 관계없이 북한핵과 관련해 한미간의 의견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 전·노씨에 대한 청와대 정서 변화/최근의 행보에 평가 엇갈려

    ◎전씨/정치적 표현 자제… “한수높은 사람”/노씨/TK정서 업은 연설… “믿는 도끼에…”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에 대한 청와대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무엇보다 지난 9일 서울과 대구에서 있었던 경북고 동문체육대회와 대구공고 동문체육대회에서 행한 두전직대통령의 서로 다른 「행동」이 지금까지 청와대가 갖고 있던 두사람에 대한 분위기를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전전대통령에게는 무관심에서 「괜찮은 사람」이란 쪽으로,노전대통령에게는 「전임총재에 대한 예우」에서 「참…」이란 쪽이다. 전두환전대통령은 동문들과의 만남에서 『동문여러분이 산업현장에서 맡은바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게 됐다』면서 「장인정신」의 중요함을 역설했다.현실정치에 대한 일체의 관여나,아쉬움이 담긴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태우전대통령은 『달구벌사람들은 참을 줄도 용서할 줄도 기다릴 줄도 안다』면서 『다시 한번 여러분의 손으로 영광을 재현한다는 마음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듣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이른바 「TK정서」를 업은 연설이었다.청와대의 느낌도 그런 모양이다. 이날의 요란스런 행사들에 대해 청와대측의 공개된 표현은 『동문행사에서 한말인데 뭐…』정도다.다만 『동문행사를 신문에서 크게 취급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란 선이 최고다. 그러나 한발자국만 더 들어가 보면 금방 『전전대통령이 노전대통령보다 한 수 높은 것 같다』는 비공식 반응이 비치고 있다.『한때 그런분을 총재(민자당의)로 모시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30년동안 잡았다가 1년7개월 쉬었다고 그런식으로 표현하면 호남이나,다른 지역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전대통령에 대한 청와대의 그동안 분위기는 무관심이었다.「쿠데타적 사건」으로 정리한 「12·12」의 주역이었지만 전직대통령인만큼 서로 모른체 하고 각자 길을 걷자는 식이었다.신세진 것 없이 박해만 받은 터라 오히려 미움에 가까운 무관심이었는데 최근의 행보를 보면서 청와대는 대통령을 지낼만한 사람이었다는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 같다. 이에 비해 노전대통령은 민자당의 전임총재였다.청와대는 전임총재에 대한 예우를 지키려했던 것으로 이야기한다.물론 고도의 정치적 득실을 따진 판단이겠지만 사정태풍 때 노전대통령의 이름이 나올 기미가 보이면 추적하던 계좌도 끊어버렸다고 말하는 관계자도 있다.청와대는 노전대통령이 비록 동문행사지만 지역정서를 등에 업는 듯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전직국가원수로서의 금도를 벗어났다는 생각이다. 물론 노전대통령쪽에서는 전전대통령과 달리 김대통령에게 빚이 없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 청동기 석관묘 대규모 발굴/충남 서천서

    충남 서천에서 국내 처음으로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가 대규모로 발굴됐다. 공주대 박물관(관장 윤용혁)은 26일 『지난 6월 23일부터 약 3개월간 충남 서천군 서천읍 오석리 서해안고속도로 예정구간 1천5백평 부지에서 발굴 조사를 펼친 결과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4∼5세기경의 석관묘 25기,집터 4기,옹관묘 1기와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2∼기원후 2세기)의 토광묘 8기,옹관묘 5기 등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청동기시대 석관묘가 대규모로 집터와 함께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자료 부족으로 부진했던 중부 서해안 지역의 청동기문화 및 사회생활을 연구하는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유물로 마제석검,마제석촉,돌도끼,돌끌,삼각형돌칼 등 마제석기 40여점과 무문토기 수백점과 초기철기시대의 회색 정날문토기,적갈색 양이부 직립구연호 등 토기류 10여점,구슬류 20여점이 출토됐다. 발굴단은 이번에 발굴된 초기 철기시대 토광묘는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문화변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밝혔다.
  • 태연하게 토막내고 태우고…/최치봉 전국부기자(현장)

    ◎소름끼치는 번행 재연에 “아연” 「공포의 지하실」­지존파의 엽기적인 범행현장엔 범행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듯 시체탄 냄새가 코끝을 진동했다. 21일 하오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회산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범인들의 아지트에선 경찰의 현장검증이 진행되고 있었고 집주변엔 끔직한 장면의 재연모습을 본 주민들이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인간살육이 이뤄졌는데도 이웃 주민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속에 범행이 이뤄졌으며 이를 위해 대문에 조직원들끼리 연락하는 비밀 초인종 2대를 달아놓은 모습이 보여 범인들의 주도면밀한 계획범행의 실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대문에서 20m쯤 떨어진 30여평건물본채는 거실과 방 3개,부엌,보일러실등으로 이뤄졌고 집바로 뒤편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출입문 우측 첫번째 방에는 함께 기거한 이경숙의 옷가지가 걸려 있고 방바닥에는 「야인」 「뼁끼통」 「꿈의 해몽」등 소설책과 피묻은 수건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유리창이 깨진 바로 뒷방과 옆방에는 범인들의 옷가지와 화투짝등이 나뒹굴고 있었다.거실에는 TV 1대와 소윤오씨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구입한 새 주방용품과 살림살이가 흩어져 있고 검거당시 반항한 흔적으로 거실문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있었다. 김현양과 강문섭은 서울지검 강력부 김홍일검사의 지휘로 실시된 감금실에 대한 현장검증에서 태연하게 살해상황을 재연했다.김등은 소씨는 공기총으로,소씨부인 박미자씨는 식칼과 도끼로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재연했다. 이들은 먼저 소씨를 살해한뒤 『살려달라』며 부들부들 떠는 박씨를 흉기로 배를 찔러 그자리에 쓰러 뜨렸다.그들은 이어 사체를 토막내고 이를 소각로로 옮겨 불을 붙여 태우는 소름끼치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재연했다. 3평크기의 소각로는 송풍기와 기름보일러 연통이 집뒤 산쪽을 향해 나있어 연기가 나도 이곳 주민들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제작되는등 사전에 치밀한 계획에 따라 설계돼 있었다. 두시간여동안 현장검증작업을 마친 한 수사관은 『30여년을 범죄와 함께 뒹굴었지만 이같은 끔찍한 사건을 접하기는 처음』이라며 수사관생활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 살인실습에 「화장터」까지 차려/「지존파」 일당 행각 이모저모

    ◎야쿠자세계 다룬 소설 「야니」 교과서로/“최후엔 자폭” 다이너마이트도 구해둬/지리산서 지옥훈련… 공기총 항상 휴대 희대의 연쇄납치살인사건을 벌인 「지존파」일당은 「살인실습」을 위해 길가던 20대 처녀를 집단 성폭행한 뒤 살해·암매장했는가 하면 범행 아지트에는 시체소각장까지 설치하는 등 잔혹하기 짝이 없는 범죄행각을 벌였다. 이들의 범죄조직운영및 범행수법의 대담함과 잔인함·치밀함에는 강력사건에 익숙한 베테랑 수사관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강간치상 혐의로 이미 구속된 김기환씨(26)를 중심으로 지난해 7월 「지존파」를 결성한 일당 6명은 조직의 결속을 위해 지난 7월 지리산에서 합숙하면서 1주일간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지옥훈련」을 하는등 마피아조직을 방불케 했다. 이들은 일본 야쿠자 폭력배들의 세계와 깡패들의 교도소생활을 다룬 「야인」「뼁끼통」 등 소설들을 「교과서」로 삼아 엽기적 살인수법및 책속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대담한 행동을 배웠다고 경찰에서 진술. 또 납치했던 이모씨(27·여)가지난 15일 탈출한 뒤 경찰의 추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면서도 범인들이 계속 아지트에 남았던 이유는 동료들과 함께 「최후」를 맞기 위한 것이었다는 후문.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아지트에서 압수된 공기총·도끼·다이너마이트·무전기등 각종 살인장비 가운데 특히 다이너마이트는 범인들이 강원도 삼척의 광산에서 입수,만일의 경우 자폭하기 위해 지니고 있었다는 것. 이들은 소사장을 살해할때에 사용한 사냥용 공기총으로 수시로 사격연습을 했고 항상 실탄을 장전한 상태로 지니고 다녔다고. ○…검거 당시 범인들이 갖고 있던 서울 모백화점의 우수고객명단에는 3백여명의 이름과 주소가 들어있었으며 몇몇 사람의 이름앞에는 범행대상으로 지목한듯한 특정표시까지 돼있는 상태.범인 가운데 한명은 경찰에서 『백화점에서만 한달에 7백만원 이상 쓰는 사람이 많은데에 배가 아팠다』고 진술. 경찰은 이들이 검거되지 않았을 경우 명단에 나와있던 부유층들을 상대로 또다른 범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 ○…경찰은 21일 상오 김현양씨등 범인 4명을 전남 영광군등 3곳으로 데리고 가 현장검증및 사체발굴작업을 실시. 호송차량 뒤에는 이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서울지검 형사3부 김홍일검사와 서초경찰서 형사계장등을 태운 승용차 3대및 취재차량 20여대가 뒤따라 이번 사건에 쏠린 높은 관심을 반영. ○…전남 장수경찰서가 3번째 희생자인 이종원씨 피살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의 2차례에 걸친 재수사지휘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의 위장수법에 넘어가 단순 교통사고로 간주,수사를 제대로 하지않아 소윤오씨부부등 피해자가 늘어났다는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 경찰은 지난 12일 하오6시쯤 제초작업을 하던 장수군청 인부들에 의해 발견된 이씨의 사체주변에 소지품이 그대로 있고 사고지점이 S자 굴곡 형태라는 점만을 들어 단순 교통사고로 단정,수사를 종결하겠다며 전주지검 남원지청 문무일검사에게 품신했다가 재수사 지휘를 받았다는 것. 그래도 경찰은 계속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문검사가 사건발생 8일만인 지난 16일 ▲사고당시 이씨가 맨발이었고 ▲머리부분이 검게 타일반적인 교통사고 사망자와 다르며 ▲차량 손상이 거의 없었다는 점등을 지적하며 재차 재수사 지휘를 내리고 남원의료원에서 사체를 부검하고 국과수에 사인규명을 의뢰했다고. ○…이번 연쇄납치 살인사건 해결에 결정적 계기가 된 세번째 피해자 이종원씨의 가족들은 교통사고사로 장례까지 치른 이씨가 살해됐다는 비보에 넋을 잃은채 비통해 하고 있다. 부인 김모씨(35)와 딸 등 가족들은 기자들은 물론 이웃과의 접촉도 일절 회피하고 있으나 전화통화로 『사지가 벌벌 떨린다.가족들이 모두 충격으로 정신이 없으니 더이상 묻지 말아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인 김모씨는 지난 7일 하오 7시30분쯤 남편 이씨가 출근한다며 나간뒤 소식이 없자 4일뒤인 11일 하오 2시쯤 관할 공단파출소에 가출인신고를 했다. 이후 부인 김씨는 지난 12일 공단파출소로부터 『전북 장수경찰서에서 이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통보해 왔다』고 연락받은뒤 지난 16일 장례까지 치른 상태. ◎죽음의 집 「영광아지트」/지하소각로엔 타다남은 뼈마디…/평범한 시골농가… 감금실엔 쇠창살/방·지하실간 인터폰 달아 보안유지 「지존파」일당이 은신처로 삼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 불갑산자락의 단층가옥은 바로 「죽음의 집」이었다. 슬라브형으로 지은 「ㄴ」자형의 이 집은 회산마을에서 2백m쯤 떨어져 기와집 두채와 나란히 서있어 겉보기엔 한가한 시골 농가와 다름이 없다.그러나 지하실에는 쇠창살로 만든 사제감옥과 시신소각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지존파를 결성한 두목 김기환(26·구속중)이 지난해 3월 홀어머니를 이웃마을로 옮기도록 한뒤 지난 7월 「특수목적」에 맞게 개축을 마쳤다.이를 위해 일당은 대지80평에 건평 27평의 건축허가를 받아 실제는 1백17평에 본채 30평,지하실 차고용 부속건물들을 지었다.외부인에게 집의 내부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 미장공이나 벽돌공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범인들이 손수 지었다. 1층은 범인들이 숙식에 사용한 방3개와 주방,보일러실이 전부이나 감금실과 시신소각로가 설치된 지하실은 멋대로 지은 창고겸 주차장안으로 통로를 내 은폐를 노렸다.나무사다리로 8계단을 내려가면 15평 가량의 지하실이 나오고 오른쪽에 감금실,맞은편엔 시체소각로가 치밀하게 설치돼 있다. 통로 오른쪽으로 1m쯤 떨어진 곳의 육중한 철문을 열면 경찰서 유치장을 연상케하는 쇠창살로 막은 것이 이중잠금장치를 한 납치자감금실이다.쇠창살안쪽 콘크리트바닥과 벽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있고 뽑힌 모발이 흩어져 있어 소윤오씨의 살해수법이 참혹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두개골 2개와 타다남은 등뼈등이 발견된 소각로는 가로 1.8m 세로 2m 높이 1.05m의 철판상자안에 직경 3㎝의 철봉 13개를 50㎝높이로 끼워넣어 시체를 태우기 쉽도록 해놓았다.소각장에는 지름 20㎝의 쇠파이프굴뚝을 세워 1층 뒤뜰로 치솟게하고 대형환풍기까지 갖춘뒤 판자를 덮어 위장했다.한적한 시골임에도 본채와 20여m 떨어진 대문에 전력검침기를 설치하고 조직원들간의 수신호용 초인종과 일반가정에서 사용하는 초인종은 물론 방과 지하실간에도 인터폰을 달아 보안에도 철저히 주의를 기울였다. ◎범인일당 일문일답/“돈 많은 사람·야타족 다 죽이려 했다” 범인들과의 일문일답. ­왜 범행을 저질렀나. ▲(강동은)세상이 싫다.빈부차이가 너무 크게 나 있고 돈없는 사람은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세상은 돈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있다. ­피해자들을 누가 살해했나. ▲(김현양)모두 내가 주동해 살해했다.소윤오씨와 이종원씨를 살해할때는 탈출한 이영순(가명)이를 시켜서 살해했다. ­몸값을 받아내고도 소씨부부를 살해한 이유는. ▲(〃)우리들의 얼굴을 알고 있어 범행이 탄로나지 않도록 완전범죄를 노리고 살해했다. ­완전범죄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나. ▲(〃)언젠가는 잡힐줄 알고 있었다.이영순이가 도망간 것을 알고도 나흘동안 도망가지 않고 현장에서 기다렸다.차라리 잡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백화점 고액거래자 명단을 어떻게 입수했나. ▲(강동은)가스총 등 장비를 구입하면서 부탁했다.출처는 밝힐 수 없다. ­아지트를 지을때 사용한 돈은 어디서 조달했나. ▲(〃)각자 막노동을 해서 번돈 4천만원을 저금했는데 이중2천여만원을 찾아 비용으로 썼다. ­현재의 심정은. ▲(김현양)살해할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동료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한 생각이다.장기기증을 해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다.압구정동 야타족 등 돈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지 못한게 억울하고 한이 된다.다시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만들지 말아달라.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달라.
  • 10억 강탈 목표로 무차별 납치/소사장부부 등 5명 살해

    ◎엽기적 살인조직 「지존파」 6명 구속/조직 배반 1명 곡괭이등으로 타살/납치부부 몸값 받고 공기총으로 쏴/방송국 점거 계획도/경찰,여죄 집중수사 시체처리장까지 갖춘 아지트에서 합숙하며 닥치는대로 시민들을 납치,금품을 빼앗은뒤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하거나 태워버린 범죄조직 「지존파」일당 6명의 끔찍스런 범죄행각이 속속 드러나 충격을 주고있다. 울산 삼전기계사장 소윤오씨(42·서울 중랑구 중화동 극동아파트 19동302호) 부부 납치살해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21일 이 사건의 범인 김현양씨(22·전남 영광군 영광읍 단주리 471)등 6명을 검거,이들로부터 소씨 부부 납치살해를 비롯,지난해 7월부터 배신한 조직원 1명등 모두 5명을 살해한뒤 사체를 암매장하거나 불에 태웠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김씨등 5명을 강도살인및 사체유기·범죄단체구성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된 범인들은 김씨외에 강동은(21·특수절도등 2범·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강문섭(20·충남 논산군 연무읍 안신 2동 14),문상록(23·특수절도등 3범·성남시 중원구 금강1동 1180),백병옥(20·특수강도등 2범·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등이며 범행가담을 부인하던 이경숙씨(23·여·강동은의 애인·절도 1범·대전시 중구 문창1동 34의24)도 범인도피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지난해 7월 범죄단체 「지존파」를 결성,강령까지 만든뒤 10억원의 금품을 강탈키로 목표를 설정,전국을 무대로 무차별 납치살인극을 자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또 지난 6월28일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된 두목 김기환씨(26·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에 대해 같은 혐의를 적용,추가 기소키로 했다. ▷1차 범행◁ 이들은 지난해 7월 밤11시쯤 충남 논산군 두계리 두계역 부근 다리밑에서 혼자 걸어가던 23세가량의 여자를 납치,윤간한뒤 두목 김씨가 목을 졸라 살해,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2차 범행◁ 지난해 8월 하오3시쯤 같은 조직원인 송봉은씨(23)를 조직배반을 이유로 전남 영광군 불갑사 야산으로 끌고가 단검과 곡괭이등으로 마구 찌르고 때려 죽인뒤 근처 산에 묻었다. ▷3차 범행◁ 지난 8일 새벽3시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앞길에서 이종원씨(36·밴드마스터·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선경아파트 119동306호)가 운전하고 가던 경기 1주1019호 그랜저승용차를 자신들의 르망승용차로 가로막고 가스총을 발사,이씨와 함께타고 있던 이모씨(27·여)를 아지트로 납치한뒤 몸값을 요구했다.그러나 이씨가 지급능력이 없자 다음날 비닐봉지를 얼굴에 씌워 이씨를 질식사시킨 뒤 그랜저승용차에 태워 전북 남원 부근 계곡으로 굴러 떨어뜨려 교통사고로 위장했다.납치된 이여인은 15일 간신히 도주,다음날 경찰에 제보했다. ▷4차 범행◁ 지난 13일 하오5시쯤 경기 성남 동서울 공동묘지에서 벌초를 하고 있던 소씨 부부에게 가스총을 발사,아지트로 끌고가 다음날 몸값 1억원을 요구,소씨 회사의 심모부장(36)으로부터 현금 8천만원을 받아낸 뒤 15일 새벽 아지트 지하실에서 소씨를 공기총을 쏴 살해했다.소씨의 부인 박미자씨(35)를 칼로 찔렀으나 죽지않자 도끼로 살해한뒤 소씨부부의 사체를 칼과 도끼로 토막내 소각장에서 태웠다. ▷범행모의및 조직결성◁ 이들은 「지존파」조직결성후 ▲조직을 배반한 자는 죽인다 ▲돈많은 자로부터 목표액 10억원을 강취한다 ▲돈많은 자들을 저주한다는등의 행동강령을 만든 뒤 지난 3월쯤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 두목 김씨 명의의 대지에 아지트를 짓고 지하에 납치감금할 수 있는 철창과 사체소각용 화덕을 설치했다. ▷검거경위◁ 탈출한 이여인(3차범행 피해자)으로부터 제보를 받은 경찰은 이씨가 갖고 온 강동은씨의 핸드폰을 추적,아지트의 소재를 알아낸 뒤 지난 19일 새벽 4시쯤부터 이씨와 함께 아지트 부근에서 잠복근무를 하면서 검거작전을 병행,이들을 붙잡았다. 경찰은 이들의 아지트에서 소씨로부터 강탈한 현금 3천8백만원,망원렌즈가 부착된 6연발 공기총 1정,대검 11자루,손도끼 1개,전자충격기 1개,전자봉 1개,가스총 1정,다이너마이트 뇌관및 떡밥등 35개,무전기 2개등을 증거물로 확보했다. ▷추가범행계획◁ 이들은 두목 김씨가 지난 6월 강간치상 혐의로 영광경찰서에 구속되자 경찰서를 습격해 총기를 탈취한 뒤 모방송국을 점거할 계획도 세웠다.또지난 7월초 서울시내 모백화점에서 대량으로 상품을 구입한 부유층 고객 3백여명의 명단을 비밀리에 확보,범행 대상을 물색하기도 했다. ▷범행동기◁ 이들은 경찰에서 빈부차이가 너무 크고 돈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세상이 싫어져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또 「야타족」등 돈있는 사람들은 다 죽이지 못해 억울하다고 했다.
  • 러시아 신문 「인권툰드라」 실태 보고

    ◎북 벌목공,인부 감금·고문… 치사 예사/일감줄어들자 인근주민 채소밭서 막노동/도끼로 기자 공격… 동행경관이 공포쏴 저지 북한 벌목장의 실상을 보도한 「모스콥스키예 콤소몰레츠」지 기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1주일을 준비한 끝에 체그도민,뒤르마,지모비에에 있는 수개의 벌목장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모두 하바로프스크에서 6백80㎞ 떨어진 곳이다.이 벌목장들은 지난 69년 당시 소련과 북한간 벌목협정에 의해 세워졌다.이즈베스트코마야∼뒤르마∼체그도민을 잇는 철도가 교차하는 하바로프스크지역의 베르흐네부린스크지방은 사실상 북한영토나 마찬가지였다.주민 대부분이 북한 벌목공들이다.하바로프스크에서 체그도민에 이르는 숲에는 높이 3m나 되는 담과 철조망이 세워져 있었다. 하오6시쯤 인구 4만여명의 체그도민마을에 도착했다.이 곳은 바로 지난 92년4월 독일 슈피겔지 기자들이 헬기를 타고 취재하러 왔다가 주민들에게 폭행당하고 취재장비를 빼앗기는등 봉면만 당한채 돌아갔던 곳이다. 우리는 먼저 마을에 있는 브레야호텔에 여장을 푼뒤 마을 내무당국에 방문목적을 신고하고 그 곳 경찰의 무장경호를 요청했다.지원을 약속한 세레바쳉코지방내무국장은 우리에게 『슈피겔지 기자들이 다녀간뒤 북한인들은 기자만 보면 행패를 부리니 각별한 조심을 하라』고 당부했다.세레바쳉코국장은 작업장안의 벌목공들이 자신들의 법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며 안전부장교인 박춘선,김두빈이라는 사람이 작업장을 통솔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김두빈은 북한해군 중령으로 벌목장에서 전권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그 곳에 등록된 벌목공수는 2천9백4명이라고 했다. 이 벌목장은 벌목공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일감도 줄어들어 벌목공들 일부는 체그도민시내를 배회하며 다른 일감을 찾기도 하고 채소밭에서 막노동도 한다.이들은 체그도민일대 숲을 배회하며 덫을 놓아 밍크,담비같은 동물들을 밀렵하고 지보비에,우르갈 등지에 나가 마약밀매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체그도민에서 1차로 벌목장을 들어가려고 시도하다가 우리는 큰 봉변을 당했다.2명의 러시아 무장경찰과 동행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인들은 도끼,쇠지렛대등을 들고 나와 달려들었다.경찰이 공포 몇발을 쏘자 그들은 멈추었으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수년전 최초로 이 벌목장을 탈출한 사람은 김정운과 김호였다.그들의 증언에 의해 벌목장안에 감옥까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감옥안에서 고문이 자행된 증거도 발견됐다.올 1월부터는 러시아의 부검의가 벌목장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북한으로 실어가기 전에 검시할 수 있게 됐는데 러시아 의사들은 시신에서 치명적인 고문흔적들을 발견했다한다. 지역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지보비에프에서 60㎞ 떨어진 곳에 70년대 문을 닫은 우라늄폐광이 있는데 이 곳에 북한인들이 게속 드나드는게 목격됐다고 했다.그들은 방사능측정기를 소지하고 있어 주민들은 『북한인들이 폐광에서 우라늄을 캐내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벌목장앞에는 위병소가 세워져 있고 3,4명의 북한인들이 지켜서서 출입자들을 일일이 감시했다.그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카메라를 보자 욕설을 하며 돌을 던졌고 동행한 경찰에게도 달려들어 기관총까지 뺏으려 했다.간신히 들어간 벌목장안은 50∼1백명정도 수용할 수 있는 바로크단층건물이 한채 있었고 나무침상위에 더러운 침구,식기들이 여기저기 있었다.수용소중앙에는 「김일성의 집」이 있었는데 마치 박물관처럼 꾸며졌다.김일성초상의 사진을 찍는데 김일성배지를 단 북한인들이 여럿 몰려와 『사진을 못찍는다.이 곳은 우리 영토다.나가라』며 우리를 위협했다.벌목공들은 안전부요원들을 『대장』이라고 불렀는데 모든 벌목장에 이 대장이 있었다.대장이 출현하자 그들은 모두 부동자세를 취하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왜 러시아시민인 우리가 우리 영토에서 취재활동도 할 수 없단 말인가.이 곳이 어째서 북한인들의 영토인가.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체그도민으로 돌아와 우리는 러시아측 벌목합작회사 「우르갈레스」사의 수크노발렝코사장을 만나 전후사정을 들었다.초기부터 북한인들과 함께 이 곳에서 벌목사업을 해온 그는 벌목된 목재의 70%는 러시아로,나머지 30%는 북한으로 간다고 했다.그동안 벌목관련 일반협정 6개가 체결됐는데 오는 9월1일이면 협정이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5월 이를 5년간 연장키로 한 협정이 가서명됐다고 했다.북한측에서 이 협정의 정식조인을 매우 원하고 있으나 벌목공의 인권개선 등을 둘러싸고 최종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 정식발효된 상태는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초기에는 1만5천여명의 북한노동자들이 5백만㎥의 벌목을 했는데 지금은 일감이 계속 줄고 있다고 했다.하바로프스크 내무부의 당국자들은 과거 소련 KGB와 북한 안전부간에 벌목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양자간 협력한다는 내용의 의정서를 체결했는데 이 협정은 러시아나 한국으로 망명을 원하는 탈출자들을 수색하는데 상호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현재까지 이 곳에서 공식집계된 탈출자가 60명인데 실제로는 더 많다는게 지방 내무국당국자들의 설명이었다.안전부책임자 박춘선이 체그도민 지방당국에 본지 기자들이 북한 벌목장영토를 불법침입했다며 항의했다고 한다.어째서 이 곳이 북한 영토란 말인가. 하바로프스크지방정부로서는 목재수출을 통해 얻는 외화가 필요할뿐아니라 북한벌목공들의 임금이 러시아인들과 비교해도 10∼15배정도 낮기 때문에 이들을 크게 괄시할 수가 없다고 한다.그러나 지역주민들과 북한인들과의 관계는 심각하다.밀주,밀렵등을 서슴없이 하는 이들을 향한 지역주민들의 눈초리는 경멸과 분노로 가득차 있다.하바로프스크로 돌아온 차속에서도 3명의 북한인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우리가 사진을 찍자 카메라를 뺏고 우리를 위협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정부는 이들 북한벌목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러시아영토내 북한안전부요원들의 존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어떻게 외국인들이 우리 영토에서 밀주,밀수를 멋대로 하는가.이런 것들이 벌목협정에 포함돼있는 내용들이란 말인가.이런 문제들은 하루 빨리 고쳐져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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