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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기 구석기 ‘자라모양 송곳’ 첫 발굴

    ◎건국대 박물관,경기 연천 원당리서/길이 3.2­가로 3­두께 1㎝ 차돌로 만들어/지표조사선 주먹도끼 등 전기 구석기 유물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약 2만년전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인 자라모양의 돌송곳이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2리 임진강가 유적에서 발굴되었다.또 찍개 발굴과 함께 지표조사에서는 주먹도끼를 찾아내는 등 전기 구석기시대 유물도 상당량 수습했다.이에따라 학계는 원당리 유적을 중요 구석기유적으로 주목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구석기 표준유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내다보았다. 건국대박물관(관장 최무장)팀이 지난 7월20일 발굴에 들어간 이 유적규모는 2백12㎡.문제의 자라모양 송곳은 발굴팀이 판 3개의 구덩이 가운데 후기 구석기지층이 있는 구덩이에서 나왔다..길이 3.2㎝,가로 3㎝,두께 1㎝ 크기의 자라모양 송곳은 차돌로 만든 매우 정교한 소형 돌연모.자라 몸둥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손잡이고,자라 머리 부분이 송곳으로 되어있다. 이 자라모양 송곳은 당시 구석기인들이 사냥한 짐승가죽에 구멍을 낼 때 사용한연모로 추정했다.그러니까 짐승가죽을 끈으로 꿰매기 전에 먼저 구멍을 뚫는데 사용한 작은 송곳이라 할 수 있다.송곳 끝은 약간 마모되었는데,이는 실제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했다.이 유물은 다루기가 퍽 어려운 차돌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석기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지역 후기 구석기 유적에서는 더러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에서 자라모양 송곳이 나왔다는 발굴보고는 아직 없다.아주 작은 돌연모인 자라모양 송곳은 여간 발달한 석기제작기술이 뒤따르지 않고는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 발굴팀의 견해다.그래서 고고학계는 이번 출토유물에 주목하면서 한반도 구석기 문화가 상당 수준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그리고 원당리 유적에서는 물론 지표에서 수집한 유물이기는 하나 20만년전 전기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주먹도끼는 전기 구석기시대 돌연모의 진수로,당시 가장 발달한 다용도의 만능석기. 현재 지표로부터 5m를 파 내려간 전기 구석기지층에서 주먹도끼로 발전하는 과정에 나타난 돌연모 찍개를 찾아냈다.따라서 이 지층에서 주먹도끼도 곧 발굴될 것으로 발굴팀은 기대했다. 이번 원당리 유적발굴을 계기로 한탄강에서 임진강 하류를 잇는 하안단구지대가 구석기 유적의 보고임을 다시 입증하게 되었다.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는 원당리유적 말고도 연천군 연천읍 전곡리와 남계리,연천군 장남면 주월리,파주군 파평면 금파리 등에 구석기 유적이 널려있다. 유적발굴현장을 방문한 서울대 임효재 교수(고고학)는 『구석기시대 전·후기가 뚜렷한 지층에서 시대 하향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발전한 유물이 나와 발굴을 더 진척시키면 표준유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어 임교수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자라모양 송곳은 당시 기술집약형 돌연모로 가치 높은 유물』이라고 덧붙였다.
  • 「의인」의 희생을 기리며/김정란 시인(특별기고)

    ◎의로운 죽음을 의롭게 해선 안된다 우리의 정신적인 시계는 지금 몇시일까? 우리는 정말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일까? 연이어 터지는 성폭행 사건들,보신관광 추태,너무나 실망스러운 정치인들의 행태,잊을만 하면 터지는 안전사고…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채 「역사」 운운하는 전 대통령들,혹세무민하는 수많은 교언영색의 혀들.뻔뻔스러우라.그러면 네가 잘 먹고 잘 살게 되리라. 삼풍백화점의 붕괴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는,우리가 그동안 바라크 건물안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회칠한 무덤,추악한 모순을 물질의 금가루로 덕지덕지 칠해 놓은 삼풍.풍! 바람이 빠졌다.그리곤…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잠깐 법석을 떨고 끝.백화점들은 여전히 사기 세일을 하고 엉터리 상품권을 팔고 표절 시비로 자살소동까지 벌였던 가수들은 또다시 랄랄랄 잘 나간다.그러니 뻔뻔스러우라,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어렸을때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기억난다.어느 날인가 감시원 몰래 산에서 나무꾼이 나무를 자르고 있었더란다.그러다가 갑자기 볼일이 급해져서 일을 보고 있는데 감시원이 들이닥쳤단다.다급해진 나무꾼이 얼른 도끼로 눈을 가렸다나.어쨌든 내 눈에 안보이면 안보이는 거니까.감시원이 호통을 쳐댔겠지.그랬더니 나무꾼이 너무나 신기해 하면서 『어이구,그놈 신통하네.어떻게 이 두꺼운 쇠를 뚫고 보았을까』라고 말했다나.어쩌면 우리 모두 그 나무꾼 짝인 것은 아닐까.내 눈에 안 보이니까 없는 거야.또는 내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없는 거야. 연이어 터지는 성폭행 사건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인 수준이 삼풍백화점 못지 않은 부실한 수준임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이문제는 단지 「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들의 특정한 행태의 비정상성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우리사회 전반의 정신적 미성숙을 웅변으로 드러내어 보이고 있다.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는 지금 일종의 「잘 먹고 잘 살기」신화의 착종된 형태의 질환을 앓고 있다는 말이다.모든것이 물질적인 추구 쪽으로만 방향을 잡고 있다.사회는 미래에 대한 건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물질적이고 말초적인 감각적 욕망만을 부추김으로써 가장 원초적인 「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비정상적인 환상만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숨어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세계의 추악함 앞에서 눈을 감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자신을 버린다.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한심한」일이다.대충 끝내지,뭘 그렇게 애를 쓴담.그래서 남은게 뭐야.아니,나의 생각은 다르다.그의 죽음은,정치적인 차원에서 박종철군의 죽음과 맞먹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성폭행」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정신적 미성숙을 끝내기 위해서 죽었다.아니 우리가 그의 죽음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이제 새로운 정신의 집을 짓자.성숙한 정신의 집을,사회의 요란한 쾌락의 거품에 대항할 수 있는 단단한 정신의 집을,한 의로운 사람의 죽음을 외롭게 만들어서는 안된다.젊은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무심한 이웃들 앞에서 몸을 던진 그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말자. 결국,나의 믿음에 의하면 세계는 저절로 맑은 곳이 되지 않는다.세계는 점점 더 최성규씨와 같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를 요구할 것이다.나는 방금 「순교」라는 말을 썼다.이 단어는 적절하다.왜냐하면 그의 죽음은 「믿음」때문이었기 때문이다.이때 내가 사용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특정한 종교의 특정한 교리에의 헌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 「믿음」은,인간이 인간에게 걸 수 있다는 믿음.여기 이곳에서 인간에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다는 믿음.그렇게 함으로써만 여기 이곳을 우리의 손으로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아벨의 피값을 지불해야 한다.당신이 아무리 도끼로 눈을 가려보아야 소용없다.그의 피가 하늘을 항해 울부짖고 있기 때문이다.
  • 지방자치시대 새 문화현상/유적박물관 건립 붐

    ◎지역의 역사적 특성부각… 애향심 고취/관광사업과 연계 소득증대 “일거양득”/충북 단양·강원 양양·경기 연천 등 사업 구체화 전국 여러지역의 문화유적보존운동이 유적박물관건립과 같은 실체로 떠오르고 있다.현재 유적박물관 건립을 구체화한 지역은 충북 단양,강원도 양양,경기도 연천 등으로 밝혀졌다.이같은 움직임은 중요문화유적을 영구히 보존하면서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살리기 위한 지방자치시대의 문화현상으로 풀이 된다. 충북 단양군은 오는 97∼99년까지 1백50억원을 들여 수양개 선사 유적박물관을 세우기로 했다.그 후보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후기 구석기유적 바로 이웃인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산24의1 언저리 2만평.수양개유적박물관 규모는 유적및 유물전시관,생활사전시실,세미나실을 포함한 연건평 1천5백평의 3층건물로 되어 있다.그리고 2만평 부지에는 야외 선사유적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단양지역은 남한강 수계의 석회암지대.이러한 지리적 여건은 선사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한데유적과 동굴유적이 널려있다.그동안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를 비롯,매포면 금굴,가곡면 구낭굴 등의 구석기유적이 발굴되었다.이 가운데 대표 유적은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유적.지난 81∼85년 수양개유적을 발굴한 충북대박물관은 긁개,슴베찌르개,주먹도끼 등의 석기와 집터를 찾아낸 바 있다. 수양개유적 출토유물은 모두 3만여점.이 가운데 2만5천점은 충북대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단양 수양개유적물박물관은 수양개유적출토유물과 구낭굴에서 나온 사람 뼈화석,꼬리원숭이 화석을 포함한 각종 동물화석들을 꿰맞추어 전시할 계획.동물화석은 꼬리원숭이 이외에 사슴·곰·호랑이·시라소니·오소리가 들어있다.그리고 최근 충북대가 수양개유적 제2지구에서 발굴한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유물도 전시물로 채택했다. 강원도 양양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손양면 오산리 신석기유적지에 선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오는 99년까지 7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산리선사박물관(3백평)을 세우고 밖에 야외전시장(3백평)을 꾸밀 계획이다.서울대박물관이 지난 81∼87년 발굴한 오산리유적에서는 14기의 집터와 각종 토기·뼈낚시·돌톱·흑요석연모,점토제 인면상 등이 출토되었다. 경기도 연천군은 연천읍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에 선사유적공원을 만들기로 하고 이미 4천평의 땅을 확보했다.앞으로 1만평의 땅을 더 사들여 한탄강유역 관광과 연계한 유적공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약42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러한 유적박물관건립 붐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지역의 역사적 특성 부각 말고도 관광과 연계한 지방자치시대의 지역소득 증대 목적이 그것이다.〈황규호 기자〉
  • 중 선원,한국어선 “선상 도끼 폭력”/소흑산도 부근서

    ◎20여명 장비파손 난동… 금품 강탈 도주 【목포=남기창 기자】 중국 선원들이 조업중인 한국 어선에 흉기를 들고 난입,장비를 파손하고 한국 선원들을 폭행한 뒤 돈을 빼앗아 달아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남 통영선적 69t급 어선 55창성호 선원들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하오 7시쯤 전남 신안군 흑산면 소흑산도 남서쪽 1백30마일 해상에서 조업을 하고 있을 때 중국 선적 50t급 유자망 어선 해진호 등 2척이 다가와 배를 댄 뒤 20여명의 선원들이 칼과 도끼,각목 등을 들고 갑자기 창성호에 난입했다. 이들은 선원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중경상을 입히고 무전기 등 전자 장비를 마구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린 뒤 현금 1백50만원을 빼앗아 중국 방향으로 달아났다. 이가운데 선장 김씨등 5명은 중상,선원 6명은 경상을 입었다. 상처를 입은 선원들은 완도의료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목포해양경찰서는 창성호 선원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중국 어선을 수배했다.
  • 미그기 귀순 계기 김정일체제 긴급 점검/전문가 좌담

    ◎“북,「최악의 위기」 외교수단으로 역이용”/군부강경파 득세… 대남도발 계속 예상/4자회담 큰틀엔 영향 미치지 않을것/한·미 공조 더욱 긴요… 북의 「자폭식 군사공격」 배제못해 식량난과 에너지난등으로 요약되는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최근 북한체제의 총체적 난국이 가중되고 있다.23일 터져나온 북한 미그19기 조종사의 귀순사건 역시 북한체제의 불확실성을 입증한 사례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서울신문은 24일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코리아소사이어티회장)와 허남성 국방대학원 교수,홍승길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 연구위원(전안기부 북한정보국장)의 긴급 정담을 통해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되는 북한체제의 현실상을 진단하고,한·미등 국제사회의 바람직한 대북 정책을 점검해 보았다.〈편집자주〉 ▲그레그 회장=23일 북한의 한 조종사가 귀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북한의 공군 파일럿 귀순사건으로선 13년만에 생긴 일입니다.저에게 놀라운 점은 북한으로부터의 귀순자가 오히려 적다는 사실입니다.과거 동독에 비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북한사회에서 높은 지적 수준과 기술력을 갖춘 촉망받는 우수한 조종사가 한국으로 귀순했다는 사실은 북한군부의 현재 「기분」,즉 사기나 준비태세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비행사의 10년간 비행시간이 3백50시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1주일에 불과 1시간도 실제 비행 훈련을 못했을 정도라면 한·미 공군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훈련량일 것입니다.이래가지곤 한국과의 전투가 벌어지면 북측은 거의 승산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북 내부반발 확산 ▲홍승길 연구위원=미그19 귀순은 최근 북한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젊은 「귀족 계층」과 외국생활 경험이 없는 계층까지 북한체제에 회의하고 있음을 반증하기 때문에 의미가 큽니다.아직까지는 북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 기둥,즉 김일성의 카리스마와 당노선 및 통제메커니즘이 붕괴됐다는 징후는 없지만 내부 반발이 젊은 귀족계층으로 확산돼가고 있어 김정일이 이를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레그 회장=재미있는 말씀입니다.저는 지난 22∼23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미 아메리칸대가 공동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주북한대사로 내정된 러시아의 발레리 데니소프 외무부 아시아1국 부국장과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서 그로부터 김정일이 북한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물론 저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김정일은 김일성만한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자리에 서서히 다가서려는 듯합니다.북한의 강경파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나 김정일이 이들에게 반대급부를 주면서 잘 통제하고 있는 인상입니다.북한이 휴전협정 무효화공세를 펴면서 미국과 새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하는 것도 그것이야말로 강경파들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반대급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 양국이 4자회담을 북한에 공동제안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특히 중국을 참여시켰다는 점이 그렇습니다.4자회담이라는 틀이 마련됨으로써 한국은 미국의 향후 대북 정책에 대해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게 됐으며,북한 또한 한·미가 그들에 대한 목조르기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허남성 교수=그레그 회장께서 북한군의 잇따른 도발을 북한 사회 변화를 위한 보상,강경파를 무마하기 위한 보상으로 보는 분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그러나 전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북한은 지난 4월4일 현재의 정전협정 무효를 선언했고 북한군의 도발은 자신들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봅니다.그리고 앞으로도 도발은 계속될 것입니다.7∼8명 단위에서 20∼30명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어선납치,20년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같이 극단적인 도발도 가능합니다.북한의 대남도발에는 첫째 미국을 군사회담장에 끌어들이고,둘째 북한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며,셋째 한국의 국론분열과 혼란을 유도하고,마지막으로 한·미,한·일간의 관계를 분열시키겠다는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지난해 10월10일 열렸던 노동당창건 50돌 행사때 김영춘 이하일등 갓 차수로 승진한 군인들이 당비서보다 먼저 호명되고 군 열병식을 하는가하면 최광이 경축사를 해 당이 아닌 군 행사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혁명1세대를 중심으로 군부 강경파가 상당히 전면에 나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홍위원=김정일은 금년 하반기에 권력을 완전 승계할 것으로 예측됩니다.근거로 삼년상 얘기가 있고 또 3년간의 경제개혁이 올해로 끝나고 내년부터 7차 경제개혁이 시작된다는 점,그리고 오는 10월 김일성이 창건한 「타도제국주의 동맹」 70주년을 맞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그러나 향후 경제실정과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내년으로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레그 회장=지난 3년간 한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제가 한국을 떠난 지난 93년 무렵만 해도 통일을 늦추는 게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남북간 경제적 격차를 줄여 10∼15년 후에 통일하는게 유리하다고 본 것입니다.그러나 그후 김일성 사망이 한국민의 심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한국인에게 사악한 인물로 비쳐지고 있는 김일성 대신에 좀 「이상하게」 보이는 김정일이 지도자가 된데다가 독일통일 과정에서 엄청난통일비용을 지켜본뒤 남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나 여겨집니다.더욱이 북한의 경제력이 한국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격차가 벌어져 통일이 멀수록 통일비용만 늘어나기 때문에 지금 통일하는게 낫다는 의견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현실적인 파트너로 여기고 협상하는 게 낫다고 보는 계층과,북한의 지금 상황을 그대로 방치해 붕괴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두 부류로 한국사회의 대북관이 엇갈리고 있는 느낌입니다.더욱이 문제는 어느 쪽이 주도세력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허교수=북한체제의 연착륙을 놓고 한·미간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연착륙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기 때문입니다.저는 연착륙을 안락사라는 의미로 씁니다.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정상 상태로 진입하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이렇게 되면 통일이 더 어렵게 될 뿐입니다.따라서 한·미간에 연착륙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하고 상호 합치점을 도출해야 합니다.미국에서 포용정책을 들고 나오는데,유연한 대처는 좋지만 유화적인 것은 문제입니다. ▲그레그 회장=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이같은 토론에 귀순한 북한 조종사도 노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또 한국의 정치지도자들도 대북 정책을 좀더 일관성있게 펴나갔으면 하는 권고를 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한국의 지도자는 이승만·장면·박정희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동안 북한은 김일성­김정일로 승계되고 있습니다.제 생각으론 북한에도 박정희와 같은 역할을 할 인물이 나중에 출현할 가능성이 높고,한국측이 이 사람과의 대화가 오히려 잘 될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홍위원=제주에서 한·미정상은 한반도 문제해결은 당사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미국이 북한 개입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는 남북대화와 연결해야 남북관계 발전의 여건이 조성됩니다.남북대화는 동결됐는데 미·북관계만 발전되면 한국민의 대미불신을 야기해 양국간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허교수=북한의 식량난은 과장된 측면이 많아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60년대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쌀소비량은 연간 1백36㎏이었습니다.북한의 경우 1인당 1백50㎏이라고 설정하고 2천3백만명이니까 3백50만t 정도인데 여기에 자연감소량을 감안해 1백만t을 더해도 연간 4백50만t이면 굶어죽지는 않습니다.북한의 90년 들어 양곡생산량은 연간 4백만t 안팎입니다.93년 3백80만t,95년 홍수로 3백30만t으로 올해에는 약 2개월치의 양곡이 부족할 것으로 분석됩니다.7∼8월쯤이 어렵겠지만 지하경제에 약 1백만t의 쌀을 갖고 있다고 추측돼 미국처럼 쌀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식량난 과장됐다 ▲그레그 회장=상호간의 무지 때문에 이견이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봅니다.한미간 뿐만 아니라 남북한 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한·미간에 공조를 더 잘 유지하자면 정확한 식량사정등 북한에 대한 정보를 더 잘 공유하는 게 중요합니다. ▲허교수=4자회담에 대해 북한은 앞으로도 신속하게 반응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중국이 이 제안에 적극적이지 않고 러시아도 배제된 상태에 대해 반발하고 있고 북한은 4자회담이 아니더라도 미사일과 유해송환협상등 다양한 대미채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또 시간을 끌면 끌수록 떡이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수정제의를 통해 공을 이쪽으로 넘길 수도 있다는 심산입니다.북한은 최악의 위기사태를 유효한 외교수단으로 역이용하고 있습니다.핵협상때 벼랑끝외교에서 이번에는 「자폭위협 외교」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입니다.하여튼 앞으로 3∼4년이 매우 중요합니다.북한이 우세한 군사력으로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따라서 국방비를 일종의 안보보험금으로 보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레그 회장=김정일이 하반기쯤에 공식적인 권력승계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홍위원님의 말씀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김이 정확히 언제 최고위직 승계 절차를 밟을지 모르지만 권력승계후에는 4자회담에 참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으로 보입니다.한·미 양국은 북한이 이렇게 나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이같은 관점에서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한·미 양국이 엄밀하게 공동 평가해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이런 가운데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고 4자회담을 수용한다면 한반도의 긴장국면이 완화되는 새로운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합니다. ○「경보망 구멍」 충격 ▲홍위원=미그19기의 귀순이 4자회담의 큰 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단,북한의 지도층이 개방하니까 이런 일이 터진다고 판단할 경우 당장에는 4자회담이 위축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내부의 저항문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허교수=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단기적으로는 내부단속을 강화해 역효과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홍위원=한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은 이번에 서울시의 조기경계망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우려할 만한 사실입니다.항상 전쟁터에 있다는 업무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허교수=서울시의 민방위 경보체제에 구멍이 뚫린 것은 충격적인 사태입니다.수시로 해오던 훈련도 주민불편을 이유로 간헐적으로실시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방위 문제를 재고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정리=구본영·김균미 기자〉
  • 동아시아고고학연·한대 연천서 「전곡리 구석기문화재」(문화현장)

    ◎유물 발굴하며 떠나본 원시로의 여행/구서기인 분장 학생들 원시의 몸짖춤/돌도끼로 돼지잡고 부싯돌로 불붙여 원시의 시공속으로 뒷 걸음질 친 문화놀이마당.그것도 구석기시대하고도 전기로 올라가 본 「전곡리 구석기문화제」가 5일 하루종일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전곡리 한탄강가에서 펼쳐졌다.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가 주최한 이날 문화마당에는 1천5백여명의 참여자와 관객들이 몰려들었다.전곡리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10∼30만년전 이 땅에 살았던 최초의 인류 구석기인들의 생활터전.그 구석기인들이 남긴 주먹도끼 따위의 여러가지 돌 연모가 곳곳에서 출토되었다.이때문에 세계의 학계가 주목하는 유적으로 떠올랐고,24만평의 유적을 국가가 사적지로 지정했다. 문화마당을 연 날이 마침 「어린이날」이어서 행사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린이 1백70명이 참가한 사생대회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그리고 국전 대상작가 임근후 화백의 설치­행위미술전,시간의 타워 건설과 발굴,불과 원시요리 3가지,원시인들의 축제 재현 등으로행사가 이어졌다.이에 앞서 4일 저녁에는 전곡리유적관에서 「문명과 야만」을 주제로 한 강연회를 슬라이드쇼를 곁들여 열어 전야제를 대신했다. 임근후 화백의 설치­행위미술전의 주제는 「원시마을 축제에 초대된 현대인」.유적 나무가지 마다에 울긋불긋한 리본을 달아매고 돌무지를 중간에 쌓은 뒤 대나무를 솟대처럼 높이 세웠다.그렇듯 원시의 주술적 분위기가 감도는데,탑속에 설치한 컴퓨터 화상과 팩시밀리에는 원시시대 메시지들이 문자와 그림으로 연신 쏟아져 들어왔다.또 탑 근처에서는 구석기인들로 분장한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이 원시의 몸짓으로 원색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돼지 몇 마리가 돌도끼에 의해 도살되었다.도살에 사용한 돌도끼는 구석기시대 당시 가공할 무기이자 만능연모.한 옆에서는 발화기를 문질러 만들어낸 불씨를 장작에 붙였다.돼지고기 여러 부위가 돌판 위에 올라 지글거리더니 이내 바비큐로 변했다.참가자들이 너무 많아서 바비큐가 양껏 돌아가지는 않았으나 원시의 맛을 씹어보았다. 이날 행사의 절정은 시간의 타워 건설과 발굴.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역사시대는 물론 오늘의 컴퓨터시대층 까지를 차례차례 쌓은뒤 직접 발굴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흥미를 가지고 달라붙어 발굴작업을 펴는 동안 모조유물이 나오면 구덩이 속에서 탄성이 울려나왔다.오랜 세월을 두고 묻혀버린 유적과 유물이 어떻게 발굴되는가를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한양대 배기동 교수(고고학)는 『국민들이 현장 체험을 통해 지나간 시대의 문화와 유적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전곡리 구석기 축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행사를 지켜본 사람들은 『내년에는 돼지고기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모의발굴현장에 다양한 모조유물을 묻어달라』는 희망사항을 거리낌 없이 내놓았다.『그렇게 하겠다』는 주최측의 약속을 듣고 모두들 내년을 기약하면서 봄날 하루를 짧게 느꼈다.〈연천=김성호 기자〉
  • 첫 창작집 「쥐와 그의 부하들」간 안광씨(인터뷰)

    ◎“각박한 현싱을 동화나 설화 빌어 풍자” 『현대사회는 날로 고도화되는데 샐러리맨들의 어깨는 처져만 갑니다.비루하고 의기소침한 일상에 도끼를 찍어내리는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소설가 안광씨(36)가 등단 10년만에 첫 창작집 「쥐와 그의 부하들」(세계사)을 펴냈다.특이한 제목의 표제작을 포함,흔히 볼 수 없는 우화적 상상력과 힘있는 문장이 돋보이는 10편의 단편이 실렸다. 안씨의 작품은 대번 쉽게 씌어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과작이나 공들여 다듬은듯 탄탄한 문장 때문만은 아니다.부패한 구조에 치이고 첨단문명의 물결에 받히면서도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평균」 생활인의 모습이 너무도 가깝게 그려지기 때문이다.이는 현대사회의 타락에 대한 지은이의 숙고가 얼마나 진정하고 깊은지를 반증한다. 안씨의 주인공 중 사악한 인물은 드물다.아니 오히려 그들은 너무 여리기 때문에 경쟁사회의 생리를 견뎌내지 못한다.「구지가에 대한 명상」의 나는 거래선 접대때문에 불가항력의 오입을 했다가 성병에 걸리고 아내마저 떠나보낸다.미루나무가 하늘에 닿도록 뻗어나는 환상을 꿈꿨던 「자크와 콩나무」의 주인공은 회사에서 잘리고 도박판에 퇴직금을 날린다.「난생설화」의 길수도라는 인물도 세상 모든 불화를 없애기 위해 마술사가 되려는 무구하고 식물적인 영혼의 소유자.그러나 그는 80년 광주의 충격과 무자비한 공권력에 정신이 미쳐 자살한다. 이같은 이야기를 작가는 여러가지 설화를 끌어들여 풀어나간다.구지가,박혁거세 신화,자크와 콩나무 동화 등이 작품의 모티브로 등장,비소한 일상인의 이야기에 무궁한 상징을 부여한다. 『각박한 현실을 풍요한 설화의 공간과 한데 놓아 비교,더욱 신랄하게 풍자하고 싶었다』는 안씨는 『앞으로도 이런 설화의 현대적 패러디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손정숙 기자〉
  • 귀순 임영선 중위가 말하는 전쟁준비 실상

    ◎「군입대 탄원」 전쟁분위기 고취/푸에블로호·도끼만행사건때도 열어 내부 결속/고등학교 5∼6년생·대학생들 징집 군사훈련 군입대탄원대회가 열리면 북한에선 금세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군입대탄원대회라는 것은 당에서 개최 지시를 해서 열리는 것이지만 대회에 참석하는 북한 청소년들은 『머슴이 되느니 싸우다 죽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된다.악에 바쳐 한판 붙어보자는 식이다. 군입대탄원대회는 고등중학교 5∼6년학생(15∼16세)들이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북한당국은 이들중 건강한 학생들을 골라 입대 시킨후 6개월의 훈련을 거쳐 전선에 배치하는 것이다.고등중학교 5,6학년생들은 붉은청년근위대원들로 평소 20일간의 병영생활을 통해 사격훈련을 받기 때문에 짧은 기간의 훈련을 통해 전선에 쉽게 배치할 수 있다.또 대학생들은 평상시 징집대상에서 제외 되나 입대탄원대회가 열리면 지원입대를 하게 된다. 남한에 귀순하기 전에 여러차례 군입대탄원대회가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93년 남한에서 팀스피리트훈련이 실시 될 때 군입대탄원대회가 있었다.이때 근무하던 부대의 부대장 아들이 입대탄원대회를 통해 입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EC121정찰기 피격사건,푸에블로호사건,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에도 군입대탄원대회가 열렸다. 북한에서 군입대탄원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현재 남한에서는 북한이 그렇게 쉽게 전쟁을 일으키겠는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북한의 전쟁준비는 완벽하며 그 시기만 노리고 있을 뿐이다.그런 만큼 이에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북한군은 언제나 전쟁을 수행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총탄·식량등 전쟁에 필요한 물자는 6개월분 이상을 비축해놓고 있는 것이다.북한군은 길게는 1주일,짧게는 3일 이내에 서울을 타격한다는 작전계획을 짜놓고 있다.각 가정에서도 비상식량을 갖추고 있고 방공호도 파놓고 있다.〈유은걸 연구위원〉
  • 청동기 유물 80여점 울산 방기리서 발굴/창원대 박물관

    창원대 박물관(관장 박동백)은 지난 2월20일부터 경남 울산시 삼남면 방기리 359 공용화물터미널 부지에 대한 구제발굴조사를 벌여 방형 주거지 18기와 장방형 주거지 20기등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40기와 석기등 유물 80여점을 수습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주거지는 대부분 양산시 신평과 울산시 삼남면 경계지역 국도변 능선에 분포해 3∼7.7m크기의 장형·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저장시설과 노지등의 흔적이 드러났다.특히 주거지 안에서는 청동기 전기시대에 해당하는 민무늬토기 30점과 반달형 돌칼·돌도끼·돌거울등 석기 50점이 발견됐다.〈김성호 기자〉
  • DMZ 긴박대치­판문점 이모저모

    ◎북 초소 옆엔 새로 구축한 박격포 진지…/평온속에도 일촉즉발의 긴장 감돌아/「경무」완장 안찬 북 병사 남측 동태 감시 북한 무장군인이 정전협정을 깨고 연 사흘째 중화기로 무장,무력시위를 벌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9일 겉으론 한가로운 듯하면서도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이날부터 한국인의 판문점 관광(?)조차 전면 금지돼 이곳에는 외국인들만 간혹 눈에 들어올 뿐 폭풍전야의 정적이 묻어났다. ○…자유의 집에서 내려다본 공동경비구역은 폭 50㎝,높이 5㎝의 시멘트 구조물로 표시돼 있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측지역에서 10여명의 북한 경비병들이 남쪽을 응시. 북한측 1,2초소 사이에는 북한군이 지난 5,6일 구축한 뒤 무반동총·박격포 등을 설치해놓은 진지가 언덕 아래 숨어 있었다. 북한 경비병의 왼쪽 팔에는 정전협정을 깼다는 사실을 반영하듯 지난 40여년간 차고 있던 빨간색 「경무」완장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가슴에 김일성 배지만이 달려 있었다. 내외신 기자 50여명이 북측을 카메라에 담으려고하자 북한 판문각에서도 양복차림의 50대 카메라맨이 나타나 남측을 향해 ENG카메라를 들이댔다. 또한 3층 건물 유리창 전면을 커튼으로 가려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해놓은 판문각 2층 베란다에서도 인민군 4∼5명이 나와 서성이며 남측의 동향을 주시. ○…3,4층 높이의 회색빛 북한측 1,2초소 옥상에는 폐쇄회로 TV가 남쪽을 겨누고 있었고,초소 앞에는 망원경을 든 인민군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자유의 집 3층 전망대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김성일 상병(23)은 『지난 5일부터 이곳을 지키는 북한 경비병들이 경무완장을 차지 않고 있으며 차량식별 표지판도 부착하지 않고 있다』고 전언. ○…3초소 건너편에 바라다보이는 북측 「72시간 다리」에 이어진 북한군 5초소에도 북한군이 나와 남측을 예의주시하는 모습. 남한측 3초소에서 경비근무중이던 안왕헌 상병(21)은 『낮에는 북한군의 움직임이 거의 감지되지 않아 평상시와 다름없다』며 『그러나 며칠전부터 밤을 틈타 북한군이 공동경비구역내에 들어왔다 철수하는 도발행위를 되풀이하고있어 한시도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설명. ○…때마침 판문점 견학을 온 6·25 참전 용사 및 가족 40여명이 북녘땅을 카메라에 담으며 과거의 치열했던 전투를 되새기느라 분주. 미국인 게린씨(60)는 『최근 신문을 통해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다는 평온한 것 같다』며 반세기만에 다시 격전지를 찾은 소감을 피력. 또 북으로 통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는 76년 8·18 도끼만행사건 당시 밑둥이 잘린 미루나무 그루터기가 남아 20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분단의 현실을 실감케 했다.〈판문점=황성기 기자〉
  • 「도끼만행」 저행했던 부대/판문점시위 북한군 정체는

    ◎대대급… 인민무력부서 관할/32㎝ 강철 뚫는 로켓포 무장 지난 5일부터 3차례나 정전협정을 어기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무력시위를 했던 북한군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군사전문가들의 판단으로는 지난 76년 8월18일 「도끼만행사건」을 자행한 부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 부대는 당시 판문점내 미루나무 가지 제거작업을 하고 있던 우리측에 도끼를 마구 휘둘러 미군 장교 2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미군 4명과 카투사 4명에게 중상을 입혔었다. 이 북한 경비부대는 1개 대대급으로 개성에 주둔하면서 고도의 훈련과정을 거친 숙달된 요원으로 구성돼 있고 인민무력부의 직접 지시를 받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이 부대의 장교들 대부분은 퇴촌 군관학교 출신으로 장교 가운데 일부는 판문점에도 파견돼 경비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상황이 발생하면 증원되는 부대 가운데 하나. 4백여명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82 및 60㎜ 박격포 ▲RPG­7 대전차 로켓포 ▲B­10 대전차 및 대인용 82㎜비반충포(무반동총) ▲12.7㎜ 중기관총 ▲7.62㎜ 경기관총 등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다. 이번 판문점 무력시위 때 소지했던 60㎜ 박격포는 무게 14㎏으로 1.5㎞ 밖에 있는 표적을 공격할 수 있어 판문점내 우리 경비병력을 사정권으로 하고 있다.이들이 5일 1차투입 때 동원한 RPG­7 대전차 로켓은 무게가 7㎏으로 개인이 쉽게 휴대할 수 있고 5백m 이내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북한군은 이 RPG­7 대전차 로켓포로 32㎝의 강철장갑을 뚫을 수 있어 건물 속에 피해있는 우리 경계병까지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이밖에 북한의 7.62㎜ 기관총은 유효 사거리가 6백m여서 판문점 남쪽 지역 전체가 사정권에 들게 된다.북한은 이같은 중화기로 무장한 부대를 투입,우리측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황성기 기자〉
  • 북,무장군 3차 투입/어젯밤 230명 판문점서 진지구축훈련

    ◎한·미 조기경보망 풀가동/경보기 한반도 투입 미와 협의/국방부/이국방 기자간담 국방부는 7일 중무장한 북한군 병력 2백30여명이 5,6일에 이어 이날 하오 8시7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사흘째 투입돼 진지구축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들 북한군 중무장 병력이 소형차 6대와 대형트럭 6대에 분승,북한지역에 위치한 「72시간 다리」를 통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투입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하오 8시15분 1사단 소속기동타격대인 전진타격시켜 공동경비구역 밖 우리측 초소에 투입하는 한편 8시20분 모든 부대에 긴급조치반을 동시에 소집했다. 이들 북한군은 1,2차 투입때 처럼 60㎜ 박격포 2문과 82㎜무반동총1정,40㎜ 대전차로로켓포를 비롯 기관총 1정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진지투입훈련을 마친 뒤 1차로 하오 10시20분 70여명이,2차로 하오 10시35분 1백60여명이 도보로 「72시간 다리」를 통해 철수했다.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공동경비구역에 진입한 북한군운 개성에 주둔하고 있으며 지난 76년 도끼만행사건을 자행한 부대』라고 밝혔다. 이장관은 『미국 및 중국 러시아가 북한의 이같은 도발에 압력을 넣고 있으며 외무부와 협의,안보리에 제소할 것을 검토중』이라면서 『국민들의 생업에 지장이 없도록 전선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다른 관계자는 『이날 하오 3시쯤 3사단 지역 전방 비무장지대에 나타난 북한군 12명의 북한군중 9명이 완장을 차고 있어 휴전협정을 포기를 선언한 사실이 북한군 전체에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면서 『이들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7일 중무장한 북한군이 지난 6일 저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2차 투입된 이후 전방부대의 전 지휘관과 국방부·합참의 주요 당직자들을 정위치에서 근무하도록 하고 비상대기조를 운영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특히 판문점 인근 사단인 1사단은 사태재발에 대비,전 관측장비를 동원해 전방관할지역을 24시간 감시하는 한편 증원병력 출동준비와 포사격지원태세를 갖추는 등 즉각 대응태세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우리 군은 이와함께 미군당국과의 협조를 통해 북한군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기 위해 조기경보망을 모두 가동하고 있다고 국방부측은 밝혔다. ◎미 국방 기자간담 국방부는 7일 최근 북한군이 중무장 병력을 판문점에 투입하는 등 한반도에 군사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공중조기경보관제기(AWACS)를 한반도에 투입하는 방안을 미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이날 밤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군이 판문점에 중무장 병력을 투입하는 등 의도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어 대북 정보수집 자산을 보강하는 방안을 미측과 협의하고 있다』며 『이 정보수집 자산에는 공중조기경보관제기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미국은 일본 오키나와기지에 AWACS기인 E­3C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 항공기는 반경 3백50㎞ 이내의 항공기,차량의 움직임을 샅샅이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앞서 한미연합사는 북한이 지난 4일 정전협정 임무 포기선언을 함에 따라 5일부터 대북 정보감시태세를 워치컨3에서 2로 격상했으며 이에 따라 U­2R 등 정찰기의 운항횟수와 정보분석요원이 대폭 보강된 것으로 알려졌다.〈황성기 기자〉
  • 한국고고학 세계화의 발판마련/동양고고학회 오늘 하와이서 창립총회

    ◎한·미·중·영 등 30여 국학자 참석/한국 임효재­박양진교수 등 10여명 참여 세계의 고고학자들이 참여하는 동양고고학회가 8일 미국 하와이에서 창립된다.한국학자 10여명이 이 학회의 창립멤버로 참여하며 8∼10일까지 하와이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창립기념 국제학술회의 5개 발표주제 가운데 한 주제를 한국학자들이 전담키로 했다. 이 학회에 참여할 국가는 모두 30여개국으로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중국,일본이 주축을 이루고 미국과 영국 등 구미 여러나라의 학자들도 공식멤버로 참가한다.지금까지 동양고고학은 개별 독립학문이라기 보다는 아시아학회(ASS)역사분야에 부수되어 영역이 불분명했으나 이번 학회창립을 계기로 아시아학회의 독립된 회원학회 자격을 얻게되었다.회장은 영국 듀함대 지나 번스 교수,총무는 미국 덴버대 넬슨교수,간사는 하버드대 박양진 박사로 내정되었다. 동양고고학회 본부는 미국 콜로라도 덴버대에 두기로 했다.그리고 국가별로 연락간사를 선출키로 했는데 한국에서는 이인숙씨(서울대)를 이미 내정해놓았다.한국의 공식멤버로 창립총회에 참가하는 서울대 임효재 교수는 『최근 한국과 중국,일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고고학발굴과 연구성과 축적이 학회 태동을 북돋웠다』고 학회창립 배경을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고고학이 학문적으로 세계화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말로 학회활동을 기대했다. 동아시아 고고학은 유럽고고학이 우월권을 주도해온 통에 사실상 소외되어 왔다.특히 선사고고학의 경우 유럽과 아프리카,서아시아 유적에 밀려 동아시아 선사문화는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했다.유럽의 일부 학자들은 동아시아 구석기문화에서 주먹도끼문화가 없다고 극언할 정도였다.그러나 이는 중국 북경 교외 주구점유적,한국 경기도 연천 전곡리유적 등이 학술적으로 발굴됨으로써 부정되었다. 그리고 강원도 양양 오산리유적,일본 아오모리 산나이마루야마(산내환산)유적,중국 배리칸(배이강)유적,시베리아 연해주지역의 보이즈만유적 등 최근 동아시아 신석기문화도 속속 드러났다.이밖에 역사유적발굴도 활발히 진행되어 시대별로 연구성과를 골고루 축적했다. 이번 창립기념 국제학술회의 주제는 ①아시아문화의 중심과 변방 ②동아시아 고고학역사 ③한국과 중국과의 고고학적 관련성 문제 ④중국의 옥 ⑤일본사회의 인종과 문화의 전망 등 5개분야.이 가운데 한국은 3주제 「한국과 중국과의 고고학적 관련성 문제」를 맡아 7명의 학자들이 주제발표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의 발제 및 발표자는 ▲신석기시대의 한중문화교류=임효재(서울대) ▲백제와 중국의 관련성=최몽룡(””) ▲원삼국시대와 중국의 관련성=최성락(목포대) ▲후기 청동기시대문화와 중국과의 관련성=이청규(영남대) ▲한국과 중국의 곡옥=이인숙(서울대) ▲부여·옥저의 동예사회와 중국의 관련성=박양진(하버드대) 등이다.〈김성호 기자〉
  • 원삼국 유물 대량발굴/경주 사라리고분군…덧널무덤 1기 원형그대로

    ◎청동검·재화상징 철도끼·쇠솥 등 110점 나와/AD2세기 초기 신라 수장묘 추정… 요갱 흔적도 경북 경주시 서면 사라리 573의3 고분군에서 서기 2세기쯤 초기 신라시대 최고 수장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덧널무덤(토광목곽묘) 1기와 함께 유물 1백10점이 발견돼 26일 공개됐다.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사라리발굴조사단(단장 이백규)이 지난해 11월부터 착수한 (주)명성 제2공장부지 구제발굴에서 발견한 유물은 청동검과 청동거울,쇠솥과 철검,수정구슬로 돼있다.이들 유물이 나온 덧널무덤은 길이 3백25㎝,폭 2백25㎝,깊이 90㎝로 원형 그대로 발굴됐다. 고분은 모서리를 죽인 말각장방형의 묘광을 파고 그 안에 길이 2백5㎝,폭71㎝의 널(목관)을 만든다음 길이 2백69㎝,폭1백20㎝의 덧널(목곽)을 또 갖추어 널과 덧널이 있는 유관·유곽의 구조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널과 덧널사이에는 점성이 강한 흙을 작은 돌멩이를 섞어 덮었는데 특히 피장자의 허리부분에 직경 70㎝의 허리부분의 구덩이인 요갱 흔적이 남아있다. 목관 내부에는 70여개의 사각형 철도끼를7열로 깔았고 머리부분의 널 모서리 양쪽에 사각형 철도끼를 각 1점씩 꽂았으며 칼자루가 남아있는 세형동검(50㎝)1점을 널 머리 우측에 세워두었다. 유물은 덧널의 위쪽에서 나비모양 8자형 동기,청동환등이 S자형 재갈과 함께 출토됐고 깨진 토기와 쇠창 2점,쇠솥 1점도 묻힌채로 발견됐다. 이 고분에는 삼보로 알려진 칼·거울·옥과 함께 당시 재화의 의미를 가진 사각형 철도끼 70개가 부장돼 무덤에 묻힌 피장자가 당시 정치·경제적으로 최고 수장의 위치였을 것으로 문화재관리국은 평가했다.대체로 서기 2세기를 전후해 형성된 이 유구는 덧널이 아직까지 부장공간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채 단지 1점의 쇠솥을 묻은 것으로 미루어 초기 단계의 덧널무덤으로 추정된 동시에 신라 덧널무덤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해석됐다.그리고 이번 발굴된 고분에서 피장자의 허리부분을 판 요갱이 함께 확인된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경남 창원 다호리 고분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는 이 요갱은 아직까지 완전히 조사되지 않은 부분으로 신라 묘제발전단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구로 판단된다.〈김성호 기자〉
  • 독립운동가 양세봉 장군(압록강 2천리:27)

    ◎재만조선군 총사령… 20년대 항일전 주도/노구대전투 등 승리 이끌어… 군관학교도 설립/해방직후 평야서 유해모셔… 서울선 훈장 추서/조선족은 요령성 신빈현에 흉상 건립해 추모 요령성 신빈현 왕청문향 조선족학교 운동장에는 항일독립운동가 양세봉(1896∼1934년)장군의 석상이 서 있다.조선혁명군 총사령으로 생애를 마감한 그의 석상은 지난 1989년8월29일 낙성되었다.신빈현과 왕청문 지방정부,북경과 동북3성의 50여개 단체대표 5백여명이 낙성식에 참석했다.중국 인민대표대회 대표이자 중국인민해방군 전 40집단군 정위였던 정순주소장,중국 공안부 심계실장 서세명의 아들 서철 등 굵직굵직한 조선족 인사들이 나왔다. 장군의 동상은 중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조선족의 모금으로 세워졌다는 점에서 큰 뜻을 지닌다.석상 건립을 발기한 사람은 신빈현문화관 전정혁(41)씨인데,그는 자전거를 타고 장군의 활동무대였던 옛 흥경땅 신빈현 일대를 모두 누볐다.석상건립을 제의하면서 장군의 항일운동사료도 함께 수집했다.그 결과 신빈현 당위원회 전 부서기 최선죽(63)선생 같은 조선족이 발벗고 나섰다.요령조선문신문,길림신문,국가민족사무위원회,연변대학,연변조선족사학회,흑룡강조선말방송,민족출판사가 후원을 자청했다. 조선족의 의견이 집약되자 공직에서 정년퇴직한 노년층 조선족이 주동이 되어 모금운동에 뛰어들었다.동북3성은 물론이려니와 북경 천진 등지를 메주 밟듯 누볐다.침대차 한번 타지않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대합실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신빈현 조선족문화관 전 관장 김순화 선생이 무순시 제1조선족중학교에서 양세봉장군의 독립투쟁업적을 강연하고 돌아온 이후 학생들이 2천8백87원을 모아 보냈다.중국 전역의 50여개 조선족단체와 1천4백여명의 개인들이 석상 건립비로 맡겨온 돈도 10만원에 달했다. ○3·1운동직후 독립군 투신 중국의 조선족 뿐 아니라 중국에 와 있는 한국인도 성금을 내놓았다.중국에 주재한 한국한화집단 북경판사처(대표 신영수)와 동북농업대학 초빙교사(교환교수)인 한국 사진작가 유은규선생과 그의 일본인 부인 도타이쿠코여사도 동참했다.그럭저럭 모두17만5천원이 모금되어 심양 노신미술학원 조각학부 주임 전금택선생에게 조각을 맡겼다.그래서 기단을 포함한 높이 5·4m의 양세봉장군 흉상이 제막되었던 것이다. 양세봉장군은 평안북도 철산 출신이다.서봉,윤봉이라고도 불렀는데 호는 벽해다.1919년 3·1운동 직후 평안북도 삭주 천마산을 근거로 한 천마산대 독립군에 첫발을 들여놓았다.다음해 압록강을 건너가 광복군총영을 거쳐 1923년 육군주만참의부에서 소대장과 중대장으로 활약했다.1929년 재만 각 단체가 통합하여 국민부를 조직했을 때는 국민부 소속 독립군 조선혁명군 제1중대장이 되었다.그리고 조선혁명군을 개편하여 총사령이 되어 일본군이 차지한 영릉가성과 흥경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그는 혁명군을 보충하기 위한 군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노구대전투와 쾌대모자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1932년 일본경찰의 밀정 박창해의 계략에 빠져 두도구에서 일본군에 포위되어 치열한 전투끝에 전사했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해방이후 북한 당국이 평양으로 데려갔다.한국에서는 그의 빛나는 독립운동의 업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고 한다.장군의 직계 가족들은 평양으로 갔지만 동생 양시봉의 부인과 자녀들은 지금 요령성 청원현 북삼가촌에 살고 있다.양시봉의 부인이자 장군의 계수인 김화실(85)할머니는 시숙 양세봉의 행적을 어제 일이나 되는 것처럼 똑똑히 기억해냈다.열세살 나던 1924년에 양씨 가문으로 시집을 온 할머니는 아직도 총기가 대단했다. ○일 밀정 계략에 빠져 전사 『흥경 진코우츠로 시집을 왔디요.위로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에다 청춘과부가 된 시숙모가 아들 둘을 데리고 얹혀 삽데다.그리고 시숙 양세봉장군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에 계시지 않고 큰 형님만 함께 사셨디요.거기에 둘째 시숙 내외·시누이·우리 내외를 합해 열두 식솔이 우굴댔단 말입네다.강지주네 밭 닷새갈이를 소각했지만 입에 풀칠하기 바빴디요.그 잘난 살림에 독립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몰래 들락거렸으니 사는게 말이 아니었습네다』 양씨 일가의 집은 당시 독립군의 연락처이자 비밀숙박처였고,믿음직한 후방 기지였다.독립군이 묵는 날이면 없는 살림에 한 끼니라도 더 따뜻하게 대접할 요량을 대고 삼동서가 애를 썼다.맏시숙 양세봉은 모처럼 집을 찾을 때면 의레 걸레 같은 양말을 한짐씩 가지고 왔다.며칠을 몇밤을 새워 꼬매 다시 보내곤 했다.매년 겨울철에는 반입한 무기를 산골짝에 감추었다가 해동하면 독립군부대로 보내는 일도 양씨 일가가 맡았다. 그런 어느 날 양세봉이 느닷없이 집에 들렀다.만주 사변이 일어난 1932년 일이었는데,가족이 여러패로 나누어 빨리 피신하라고 재촉했다.양세봉이 편지를 써주어 청원현 소산성에 사는 이영준을 찾았다.그의 도움으로 소산성에 자리를 잡았으나 그해 양세봉장군은 전사했다.전사 소식을 들은 동생 양시봉은 명주 20자를 사가지고 흥경으로 가서 형의 시신을 고구려산성 기슭에 고이 묻었다.일본군이 장군의 아들을 인질로 잡으려고 또 눈에 쌍심지를 켜 양씨 일가는 40원에 소를 팔아 종손을 일본으로 빼돌렸다. ○일군 묘파고 시신 목잘라 고구려산성 기슭에 양세봉장군의 시신을 모셨을 당시 정황을 기억하는 노인한분이 아직도 생존해있다.신빈현 왕청문향 고려산촌의 김효순 할머니가 그분이다.독립운동가 김두선의 딸인데 아버지는 양세봉장군의 휘하에 있었다고 술회했다. 『나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독립군 연락을 자주 다녔디요.양세봉장군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 안되어 일본놈들이 들이닥치더구만.그놈들은 아버지를 나무에 매어놓고 장군의 묘소를 대라고 족쳤디요.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으니끼리 어머니한테도 매를 댔수다.결국은 알아내어 묘를 파서 장군의 시신을 끄잡아 냈습네다.기리고 아버지더러 도끼로 시신의 목을 치라고 다그칩데다.아버지는 막무가내를 댔디요.하는 수 없는지 놈들이 제손으로 목을 쳐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내려 가면서 아버지에게 총질을 했지 뭡네까.아버지도 비명에 돌아가셨디요』 양세 봉장군의 유해는 지금 고려촌 고려산성 기슭을 떠났다.해방 이후 북한에서 모시겠다고 파갔다.김효순 할머니 증언대로 두개골이 없는 유해였다고 한다.이제 양세봉 장군의 살아 생전 모습을 본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야 손가락 몇개를 꼽을정도가 되었다.얼마전 개주시 쌍천안촌에서 만났던 양세봉장군의 비서 박윤걸 노인도 이번 여행길에서는 만나지 못했다.그토록 출간을 기다렸던 「양세봉 장군 회고록」을 손에 쥐지 못한채 지난 91년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 동양화가 성재휴(이세기의 인물탐구:92)

    ◎“파필과 파묵” 한국화 의 새경지 개척/스승의 필법을 거부… 한때 화단의 반란자로 낙인/해회서 먼저 진가 인정… 60년대 미 화랑서 작품거래/골동서화점서 일하다 소질발견,본격 그림 수업 아침햇살을 받고 먼 항해를 떠나는 풍곡의 「출범」은 언제봐도 찬란하고 의기양양하고 힘차다.청옥타래를 장식한듯 크고 작은 도서를 거느린 그의 돛단배들은 어느 때는 탁하고 어느 때는 눈시린 하늘을 배경한채 이상향을 향한 도도한 항진을 멈추지 않는다.유장하게 흐르는 끝없는 항로는 전에는 그의 미래였으며 이제는 그가 지나쳐온 먼먼 뒤안길이다. 평론가 이구열씨는 『풍곡의 독특한 준법은 웅장하면서도 교만함이 없고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간사함이 없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아 천박하지 않으며 힘이 넘치는 붓질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화면구성이 특징』이라고 말한다.먹붓을 매끄럽게 다듬기보다 갈라지고 뭉친대로 파필과 파묵을 구사하여 강인하게 풍상을 견딘 천봉만학과 비바람에 마르고 닳은 산간석경을 「붓이 가는대로」 창출해 낸다.여기에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평면성을 강조한 점과 적·황·남청색을 대비시킨 색채의 변환은 소낙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듯한 방타,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선획과 더불어 진취적이고 야인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겨나게 한다. ○야인적 분위기 물씬 이런 풍곡의 세계를 향해 원로 이경성씨는 『전에 듣지 못하고 후에도 본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경지』임을 전제,『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방일은 자신만의 용필과 묵법을 일시에 실현시키고 있다』고 평한다.따라서 『그는 동양화로 불렸던 전통적인 화법을 깨고 그만의 화풍을 이룩하면서 「자연그대로」를 화면에 전개시키는가하면 어느 작품은 거의 추상에 가깝고 어느 작품은 서양화를 방불케 하여 기술적 정신적 측면에서 한국화를 개척하는데 앞장선 동양화 대가』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른바 『잔잔한 기교에 연연하기보다 한국미의 본질인 대범한 문기에서 우러나온 예리한 필단(붓끝)으로 시기속취를 없앤 묵색의 창윤과 구도의 웅대함을 이룩하고 있다』는 것이다. 풍곡이라고 하면 그를 아는 사람들은그의 활달한 화폭을 곧잘 그의 특기인 남도창에 비유하곤 한다.한량없는 주흥에 겨워 도끼로 찍어내듯 터져나오는 그의 창처럼 중중몰이 휘몰이로 이어지는 그의 화필은 남성적 스케일과 템포와 스피드와 박력을 드넓은 화면에 유창탁발하게 발휘해 낸다.예의「부드러운 우미의 서정성을 배격한 패기와 생명감에 넘친 장미의 의지적 공간」이 그것이다. 그의 술친구이자 한학자인 조규철씨의 「풍곡화실기」에 보면 「한창 술에 취해 노래와 웃음이 집을 흔들흔들하게 하고 방약무인한채 호기가 진탕하여 스스로 제지할줄 모르는 경지에 도달하면 그는 미친듯이 그림에 몰두하여 그 정사와 세심이 삼매지경에 든다」고 쓰고 있다.실제로 그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그의 소탈하고 강렬한 인간적 체취와 즉흥적으로 발설하는 예술의 핵심적 본질론이 그의 작품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뉴욕초대전 호평 받아 풍곡은 경남 창녕에서 십리 못미처 위치한 창락면 어섬(어도)에서 태어났다.글방과 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창녕읍 골동서화점에서 일한 것이 자신의 그림 소질을 발견한 계기가 되었고 18세 되던 해 대구의 서화가인 석재 서병오에게 사군자와 묵화를 사사,1년도 못되어 스승이 타계하자 이번엔 화법교본인 「개자원화보」로 독학하다가 다음해 호남의 산수화 대가인 의재 허백련문하에서 정통 남종화법과 고전적인 그림 지식을 섭렵해 나갔다. 그러나 그림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그의 고집스럽고 타협을 모르는 외곬의 성격은 지나치게 화보식인 법규를 초탈하여 자신만의 기질적인 필정과 묵취와 생명감으로 독자적 세계를 개척하기에 이른다.사풍의 고법형식을 좇지 않고 스승의 노여움을 받아가면서까지 그만의 화풍을 갖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반란으로 결국 이 일이 화근이 되어 그는 오랫동안 국내화단에 외면당하는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홀로 진주에 머물러 현대적인 방법을 모색한 일련의 작품으로 55년 서울에서 첫 전시,동아일보는 『전통을 고수하는듯 하면서도 새로운 선을 느끼게 하는 건실한 선,푸근한 묵운,탈속한 설채』란 호평을 실었으나 국내 화단은 끝내 냉담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57년 뉴욕의 저명한 화랑주인 부세티여사가 한국에 왔다가 때마침 서울 동화백화점에서 열린 그의 두번째 개인전을 보고 뉴욕 월드화랑이 주최한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형식적 유형에서 이탈된 분방한 먹붓그림」이 서양인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60년대 미국 화단에서 그림이 거래되는 유일한 동양화가로 올라서게 되었다.이렇게 풍곡의 경우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 국내에 알려진 케이스로 우리 화단은 그의 예술의 진가를 알아보기에 인색했거나 알아보지 못한 결과를 빚은 셈이다. 정치적인 사교나 계산있는 대인관계에 어두운 그로서는 그후에도 해외 활동 20년만인 78년 중앙미술대전에 초대되었고 평생 처음 사회적 영예인 중앙문화대상을 수상,국내화단은 비로소 노익장의 예경에 대한 경의를 아끼지 않았다. 80년대의 「돛단배」시리즈가 풍부하고 화려한 화면속에서 역동적 낭만성을 드러내고 있다면 90년대의 현실적인 산수풍경이나 호랑이나 새나 물고기를 의인화한 해학적 표현과 묵법 담채의 담대한 표현성으로화면의 신선감과 묘체를 성취,국내화단은 「전통화단의 거인 예술가」로 풍곡을 내세우면서 「지금까지 그의 화풍을 모방하거나 그런 류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하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외부인 접촉 일체 삼가 그의 일상생활은 지극히 서민적이고 물욕이 없는 야인이다. 그리고 아무리 정성을 담았다해도 마음에 들지않는 그림은 미련없이 찢어버리는 단호한 제작정신을 지키고 있다.전에는 친구들을 만나 말술에 바둑을 두거나 등산을 즐기기도 했으나 3년전부터 거동이 불편하여 말술도 친구도 끊고 요즘은 연희동 자택에 칩거한채 소품에나 손대고 있다.가족은 부인 강신애씨(71)와의 사이에 3남2녀,차남인 종학씨가 동양화가로 활약하고 있다. 『선도 악도 불자체는 아니며 그리로 이르는 과정(불가선불가악)』일뿐 이라는 그의 소신대로 그는 언젠가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마는 하도 어려워서 붓가는대로 이리저리 칠할따름』이라고 겸허한 자세를 고백한 바 있다.자신의 노추를 남에게 보이지 않고자 사진은 물론 사람 만나기를 일체 꺼리고가족이든 누구든 그의 그림에는 일체 손을 못대게 하는 등 한번 안되는 것은 끝까지 「안된다」「안한다」는 고집은 여전하다. 이제 장렬한 석양 앞에 선 그의 귀범은 모든 구차한 격식을 떨쳐버린채 투묘를 서두로는 시기다.그러나 그의 정박은 잠시의 휴식일뿐 그는 또한번 먼 항해에 앞선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내일 힘차게 닻을 올리게 될 것이다. □연보 ▲1915년 경남 창녕출생 ▲1934년 의재 허백련문하에서 수업 19 38년 이충무공영정제작(충무 착량묘에 봉안),진주에서 작품생활 ▲1950년 대한미술협회회원 ▲1955년 첫개인전(서울 동방살롱)19 57년부터 백양회회원, 개인전(서울 동화백화점),뉴욕 월드화랑주최 「한국현대작가전」초대 ▲1958년 샌프란시스코박물관주최 「아시아미술전」 한국대표 초대 ▲1959년 개인전(서울중앙공보관) ▲1960년 중국 대북·향항미술관초대 「특별전」,뉴욕빌리지미술관 공모전 김상수상, 뉴욕시립도서관초대 개인전 ▲1962년 워싱턴 웨스트엔드화랑초대 개인전 ▲1965년 개인전(서울중앙공보관) ▲1968∼74년 수도여사대교수 ▲1969년 개인전(서울 신문회관) ▲1976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동양화대전」초대, 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백양회이사, 개인전(서울미술회관)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초대,개인전(동산방화랑),동아미술제 심사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1983년 국립현대미술관주최 「현대미술초대전」 ▲1984년 현대화랑초대 개인전 ▲1987년 서울시주최 「서울미술대전」초대,현대백화점개관기념 초대전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준공 개관기념전초대,「서울미술대전」초대 ▲1987년 「풍곡성재휴 회고전」(호암갤러리) ▲ 중앙문화대상 예술상(78년)
  • 금관가야 유물 5백52점 발굴/김해 양동리서

    경남 김해 양동리 가야 고분군에서 금관가야의 것으로 추정되는 AD3∼4세기의 유물이 대량 발굴됐다. 부산 동의대박물관(관장 임효택)은 지난해 10월부터 경남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 양동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토광목곽묘 39기와 수혈식석실묘 4기,옹관묘 6기등 가야시대 분묘 49기를 확인하고 토기·철기·청동기·장신구 등 유물 5백52점을 수습했다고 13일 발표했다. 분묘는 토광목곽묘가 주종을 이루며 특히 이 토광목곽묘 39기중 6기에서는 순장자의 사체와 유물을 안치한 길이 5m,너비 3.1m,깊이 1.4m크기의 방형또는 장방형 부곽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들 분묘에서는 토기 1백68점과 말재갈·검·도끼·화살촉등 철기 3백65점,사각무늬청동거울인 「방제방격규구문경(방제방격규구문경)」 1점등 청동기 6점,금제 귀고리등 장신구 12점이 함께 출토됐다. 이 가운데 「방제방격규구문경」은 중국 한대의 영향을 받아 가야에서 새롭게 제작한 것으로 당시 구리거울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 지구촌 재난/일 북부 폭설 도로·철도 마비

    ◎모스크바선 255명 동사·70만명 “독감”/남아공·콜롬비아 폭력 난무… 수백명 숨져 【도쿄·모스크바·더반(남아공)·보고타 외신 종합】 성탄절을 전후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악천후,사건·사고 및 질병 등으로 인한 큰 피해가 잇따랐다. 일본 대부분 지역이 26일 쏟아진 눈과 함께 한파에 휩싸였으며 이로인해 기차가 연착되거나 출발이 취소되는 바람에 45만여명이 추위에 고생했다. 일부 고속도로에서는 눈때문에 차량이 무려 60여㎞나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교통정보센터가 전했다. 일본 제2도시 오사카(대판)에서는 2백24량의 열차가 출발이 취소됐으며 5백32량의 열차가 3시간이상 연발되는 바람에 27만여명이 추위에 떨었다고 서일본국철이 밝혔다. 지난달 초부터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모스크바에서는 지난 2개월간 2백55명의 동사자가 발생한 가운데 25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주에 태풍과 한파가 덮쳐 2명이 사망하고 50개 마을에 전기가 끊겼으며 카자흐스탄 공화국 동부 아크몰라 지역에서도 지난 주말 맹렬한 눈보라가 몰아쳐 최소한 21명이 동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다. 모스크바에서는 또 사상 최악의 유행성독감이 유행,지난 한달동안 어린이 약 40만명을 포함해 모스크바 시민 70만명이상이 감염됐다. 네팔 서부 자자르코트 지역에서도 폐렴,한파 등으로 지난 2주일간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에서는 지난 주말 40년만에 최악의 폭설이 내려 2만3천6백가구에 전기 공급이 두절되고 여러곳의 도로가 파손됐다. 남아공 콰줄루­나탈주에서는 창·도끼·총 등으로 무장한 5백여명의 인카타 자유당원들이 라이벌 정치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주민 거주지를 습격,적어도 14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했으며 콰줄루­나탈주의 이든데일에서는 홍수가 발생,1백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현지경찰이 밝혔다. 콜롬비아에서도 성탄절 전야의 광란의 축제분위기속에서 1백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이중 52명은 살해됐다고 경찰이 밝혔다.
  • 경남 하동 쌍계사 목장승(한국인의 얼굴:57)

    ◎주먹코·송곳니의 “사찰 수호신”/눈썹·콧수염은 문양처리… 우스꽝스러/흐트러진 머리칼은 사방으로 뻗친듯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어귀에 서 있었던 목장승 한 쌍.지금은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와 있는 쌍계사 목장승을 보노라면 지혜로운 솜씨가 엿보인다.그것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다 물구나무 세워 장승으로 다듬은 기발한 착상이다.도끼 목수의 솜씨는 아닌 듯 하다.절집과 인연이 닿은 어떤 도목수가 소박한 영감을 불어넣어 만든 신앙대상물일 것이다. 쌍계사 목장승은 나무 뿌리가 하늘을 향한 특이한 모습을 했다.아름드리 밤나무를 아예 뿌리가 달리게 뽑아다 뿌리를 머리삼아 장승 한 쌍을 깎고 다듬어 냈다.그래서 장승의 머리는 봉두난발한 꼴이 되었다.머리칼이 가닥 가닥 헝크러졌다기 보다는 한데 뭉쳐 사방 팔방으로 흩어졌다.이 때문에 귀신을 형상화 할 때 흔히 그려넣는 뿔처럼 보이기도 한다.머리칼이 아닌 뿔로 여겨도 사실상 무리가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을 닮은 인태신으로 제작 되었다는 점에 있다.쌍계사 목장승은 인태신으로 조각한 신장상인 것이다.높이는 자그마치 3백30㎝나 되어 그야말로 키가 장승이다.왕방울눈과 주먹코에 송곳니를 드러낸 이들 장승은 신장상이 분명하지만,그리 무서운 귀신이 아니어서 공포분위기를 자아내지는 못했다.오히려 전통무늬로 도안화한 눈썹과 수염 등 얼굴 다른 부분들이 우스꽝스럽다. 눈알이 왕방울처럼 둥글게 튀어나온 것은 암수 장승이 서로 닮았다.콧방울은 말 그대로 방울인데,암장승은 콧마루를 사이에 두고 두 개가 붙어있다.수장승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었고 왕방울 눈위에 당초문으로 눈썹을 새겼다.눈썹이 왜 당초문이가 했더니,웬걸 콧수염은 구름무늬(운형문)다.인중이 길어 바보스러울까봐 구름무늬를 새긴 모양이지만 본래 인상은 끝내 바꾸지 못했다.수염은 댕기머리 가꾸듯 총총 따 내렸다. 무섭기로 말하면 암장승이 더 하다.아랫니를 내놓은 입가에 송곳니를 위로 솟게 올려붙여 윗송곳니가 팔자로 아래를 향한 수장승과 대조를 이루었다.눈썹도 닭벼슬처럼 새겨올렸다.또 할망구 노파의 성난 얼굴을 표현할 요량으로 턱에다 톱니꼴 주름살을 길게 새겼다.그렇지만 험상궂은 얼굴이라고 가슴을 철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엉뚱하기 짝이 없는 익살스러운 얼굴로 다가 설 뿐이다. 이들 쌍계사 장승은 사실상 착한 신장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다.수장승은 가람선신이고 암장승은 외호선신이다.그러니까 쌍계사 장승은 절 안팎을 지키는 사찰장승기능을 지닌 것이다.또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 주변 사방산천가운데 헛점이 보이는 부분은 채운다는 이른바 비보기능도 공유했다. 사찰장승은 때로 절땅 경계표시물이 되어 바깥 세상과 절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었다.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쌍계사 목장승 한쌍은 1백30여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 김종휘씨 진술 기대 못미쳐 실망/율곡비리­12·12수사 이모저모

    ◎구속 김씨,재벌총수와 병합심리 전망/소영씨 미 수사기록 구체정보 없는 듯 ○…검찰은 김종휘 전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검찰에 출두한 지 48시간만인 13일 하오6시쯤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 장시간 조사를 받은 탓인지 피곤한 모습으로 검찰수사관들에 이끌려 대검 11층 조사실에서 나온 김씨는 『리베이트를 받았느냐』 『억울하지 않느냐』는 등 기자들의 질문공세에도 아무런 대답없이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검은색 르망 검찰호송차에 탑승. ○…검찰은 김종휘씨로부터 차세대전투기사업 리베이트와 관련, 별다른 진술을 받아내지 못하자 크게 실망하는 모습. 검찰은 노태우 전대통령이 이미 구속됐고 김씨의 귀국이 상당부분 자의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을 들어 내심 속시원한 진술을 기대했으나 막상 김씨가 노씨의 지시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 대부분 혐의사실을 부인하자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표정이 역력. ○…검찰은 이날 구속한 김종휘씨를 법원이 노씨 비자금사건으로 일괄사법처리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병합심리할 것으로 전망. 안강민 대검 중수부장은 이날 『대우 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부분과 맞물려있기 때문에 김씨도 함께 심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 ○…검찰은 당초 15일쯤 검찰에 넘어올 노소영씨의 20만달러 밀반입사건의 미국측 수사기록에 스위스 UBS은행의 계좌번호 등이 명시되는 등 매우 상세한 자료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당초 기대에는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 안중수부장은 『계좌번호 같은 상세한 정보는 없는 것 같고 당시 소영씨의 남편 최태원씨의 차에서 발견된 돈묶음띠 정도는 들어있는 것 같다』고 설명. ○…하루에 4∼5명씩 이어지던 12·12 및 5·18사건 관련자들의 소환조사가 이날 갑자기 중단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 이종찬 특별수사본부장은 이날 『소환대상자는 수사팀 검사들이 밤 12시쯤 회의를 열어 연락상황 등을 검토한 뒤 정하고 있다』면서 『오늘은 소환자를 정하지 못해 그동안의 수사상황에 대한 점검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설명. 검찰 주변에서는 출국금지 조치된 최세창씨가 잠적한데다박희도·장기오씨 등이 해외에 머무는 등 「소환 차례가 돌아온」 핵심인물들과의 연락이 여의치 않아 검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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