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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눈금 새김돌/문소영 논설위원

    1만 8000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눈금 새김돌’이 발굴됐다. 국내에서 처음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발견된 적이 없는 희귀 유물이라고 한다.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에서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긁개 등 유물 1만 5000여 점과 함께 출토됐다. 반질반질하게 잘 다듬은 약 20㎝ 길이의 장방형 돌에는 0.4㎝ 간격의 눈금 22개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구석기인들이 숫자의 개념을 기호화했다는 해석과 함께 치수를 잴 때 사용한 잣대로 추정해 ‘구석기인의 눈금자’라는 해석이 붙기도 했다. 사진으로 본 눈금 새김돌은 모양새도 단아하고 양끝에 적당한 여분을 남기고 일정한 간격으로 눈금을 새겨놓아 규칙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마치 현대미술가 이우환의 그림인 ‘점에서’를 감상할 때처럼 고요하고 안정적인 리듬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떻게 동굴 원시인이었던 구석기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었을까. 규질사암 자갈돌과 같이 단단한 돌에 눈금을 새긴 도구는 혹시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는 돌멩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망상도 즐겁게 해봤다.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장방형의 둥근 돌에 0.4㎝ 간격으로 금을 파려면 고도의 집중력과 힘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이승원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실장은 “유럽에는 눈금을 새긴 동물의 뼈가 발견된 기록이 있지만, 구석기에 직접 눈금을 새긴 유물이 보고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 눈금 새김돌이 후기 구석기 유물이 확실하다면 현생 인류 역사에서도 중요한 발견이 될 전망이다. 원래 구석기인들은 사냥한 동물 수를 뼈에 새겨놓는 방식으로 수의 개념을 사용했다. 하지만 구석기인들에게 넓이나 크기를 계산하기 위한 측정도구가 있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 눈금 새김돌이 발견되자 국내 고고학계가 깜짝 놀라고 환호하는 이유다. 한 연구원은 이 눈금 새김돌을 들고 망치로 쓸 만한 돌의 크기를 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착 생활은 1만년 전쯤 ‘신석기 혁명’이라 불리는 농경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종교적 의례를 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등의 문화는 집단지성의 결과로 3만년 전부터 내려오고 있다. 눈금 새김돌이 의식·제례용일 수도 있지만 측정 도구라면 더 의미가 크다. 이언 모리스의 저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와 같은 서양인의 우수성을 강조한 글을 읽은 뒤 찾아오는 불쾌한 감정을 구석기 조상이 당대 다른 지역의 조상보다 더 똑똑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으로 우쭐해 하며 해소할 수 있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인도 여성, 시내​​ 끌려 다닌 뒤 남편 포함 10 명에 집단 성폭행 당해

    인도 여성, 시내​​ 끌려 다닌 뒤 남편 포함 10 명에 집단 성폭행 당해

    인도에서 또다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엔 남편을 포함한 남성 10명이 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고 현지방송 NDTV가 1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은 지난 12일 밤 마디야프라데시주(州) 빌라이나가르에 있는 한 마을에서 발생했다. 친척의 도움으로 풀려난 이 여성은 다음날 경찰에 신고했고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몇 달 전 이 여성이 남편과 땅 문제로 싸우면서 그 남성으로부터 도끼로 공격당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여성은 이 사건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자신의 10살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가서 생활해왔고 최근 남편이 화해를 요청해 다시 아들과 함께 남편의 마을을 방문하면서 일어났다. 남편은 이 여성을 다른 남성들과 함께 묶은 뒤 창고에 가두고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3일이 흐른 뒤 여성은 반나체의 상태로 마을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닌 뒤 남편을 포함한 10명의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여성이 목이 말라 물을 요청하자 이들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소변을 마시게 하기도 했다. 한편 이 여성을 성폭행한 남편을 포함한 남성 10명을 체포됐다. 남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NDTV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단양서 국내 첫 ‘눈금 새김돌’ 출토

    단양서 국내 첫 ‘눈금 새김돌’ 출토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눈금 새김돌’이 국내 처음으로 발굴됐다. 1만 8000여년 전 구석기인들이 숫자 개념을 기호화한 것으로 보여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연구와 해석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16일 문화재청은 2011년부터 진행해 온 하진리의 후기 구석기 유적 발굴터에서 0.4㎝ 간격의 22개 눈금이 새겨진 돌제품 1점 등 1만 5000여점의 후기 구석기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 중 눈금 새김돌은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희귀 유물로 평가받는다. 가장 아래층에서 나온 유물은 길이 20.6㎝, 너비 8.1㎝, 두께 4.2㎝의 길쭉한 규질사암 자갈돌로 이뤄졌다. 발굴을 대행한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이승원 실장은 “예전 유럽에서 눈금을 새긴 동물의 뼈 등이 발견된 기록은 있지만 구석기에 직접 눈금을 새긴 유물이 보고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물이 최종적으로 검증될 경우 구석기인들의 숫자 개념과 관련된 다양한 학설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단양 수중보 건설지역인 남한강가에 자리한 하진리(수양개 6지구)에선 현재 2500㎡ 범위에서 모두 3개의 후기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됐다. 눈금 새김돌 외에 다른 후기 구석기 유적지처럼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슴베찌르개, 긁개, 밀개, 홈날, 뚜르개, 새기개 등 갈아 만든 다양한 도구들이 출토됐다. 연구원 측은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층마다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망치돌이 출토됐고 몸돌과 격지, 조각 등 여러 유물이 나와 대표적인 석기 제작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원은 앞으로 하진리 상류에 위치한 수양개 1지구에서 출토된 석기들과 제작기법과 시기 등을 비교 연구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추후 전문가 검토회의 등을 거쳐 유적지의 가치와 활용 방안을 최종 결정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한·일 고대 뱃길 통나무배로 고증 나섰다

    한·일 고대 뱃길 통나무배로 고증 나섰다

    한국과 일본 민간인들이 한·일 간 고대 뱃길 고증을 위해 통나무 배를 타고 6일 경남 거제에서 대마도를 향해 출항했다. 일본 시마네현 교사들이 주축이 된 민간역사연구 모임인 가라무시회(대표 모리 유타카)는 이날 오전 3시쯤 거제 지세포항에서 출발해 대한해협 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뱃길 탐사에 나선 통나무배 ‘가라무시 4세호’는 길이 9.7m, 너비 60㎝, 무게 600㎏ 규모다. 고대인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하는 선박을 고증해 만들었다. 시마네현에서 수령이 250년 된 전나무를 어렵게 구해 도끼로 속을 파내는 등 전통 방식으로 제작했다. 탑승 인원은 7명이며 시속은 4.7㎞다. 가라무시회 모임은 35년 전에 설립됐으며 회원은 50여명이다. 이 모임은 ‘대한해협 횡단 프로젝트’를 통해 고대에 대한해협을 오갔던 통나무배의 이동경로와 소요 시간 등을 고증한다. 통나무배로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신라시대(157년)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재현하는 의미도 있다. 이 설화는 연오랑이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고 부인 세오녀도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 철기문화와 베 짜는 기술 등을 전해줬다는 얘기다. 부산외대 명예교수인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은 “고대 문헌에 기록된 사실들을 일본인들이 직접 고증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이번 탐사 프로젝트에는 모임 소속 일본인 6명 외에 한국인 지원인력 등 모두 21명이 참여했다. 요트 2척과 고무보트 1척이 지원 선박으로 동행한다. 통나무배 항해는 일본인 6명과 한국인 5명 등 11명이 맡는다. 15년 전부터 가라무시회 모임과 인연을 이어온 유현웅(52)씨는 “역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일본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면서 “탐사단이 무사히 도착해 한·일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가라무시 4세호는 7일 오후 7시쯤 대마도 인근 해상에 도착한다. 모리 대표는 “준비과정이 쉽지 않았던 만큼 꼭 성공해 고대인들의 뱃길 발자취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3300년 된 세계서 가장 오래된 ‘바지’ 발견

    3300년 된 세계서 가장 오래된 ‘바지’ 발견

    만들어진지 약 3,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고(最古) 바지가 발견돼 고고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과학전문주간지 사이언스뉴스 온라인 판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진이 중국 신장(新彊) 위구르 자치구 서부 ‘타림 분지’ 유적에서 3,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지를 발견했다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타림 분지 양하이 무덤유적에서 발굴된 이 바지는 함께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벨트, 천 조각 등 기타 부장품과 함께 발견됐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밝혀진 이 바지의 제작연도는 놀랍게도 약 3,300년 전. 이것이 확실하다면 이 바지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지라는 기록을 얻게 된다. 3쌍의 천 조각이 맞물려져 만들어진 이 바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 상당히 마모가 진행되었음에도 훌륭한 보존 상태를 유지해 발굴자들을 놀라게 했다. 여기에서 주어진 질문은 한 가지 더 있다. 과연 이 바지를 입었던 주인은 누구이고 용도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단서는 함께 출토된 다른 물품에서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은 바지와 함께 채찍, 전투 도끼, 활 등도 발굴했는데 이는 바지가 ‘승마용’ 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언어학자 빅토르 메어 박사는 “아마 해당 시기, 타림 분지 일대에 거주하던 유목민이 말을 타고 사냥할 때 쓰던 용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바지의 기원은 고대 유목민들이 승마 시 불편하지 않도록 개발된 의류에서 찾을 수 있다. 학자들은 해당 시기를 약 4,000년 전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발굴된 바지의 측정연대와 엇비슷해 상당한 설득력을 주고 있다. 한편 양하이 무덤 유적은 총 면적 5만 4,000㎡에 달하는 광활한 고대 무덤지역으로 타림 분지 특유의 건조 기후가 수천 년간 묻혀있던 의류 및 기타 유물 을 보존에 큰 도움이 됐다. 현재까지 해당지역에서는 1970년대 첫 발굴이 시작된 후 500개가 넘는 무덤유적이 발견됐다. 사진=사이언스뉴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시론] 교실과 선실/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

    [시론] 교실과 선실/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모처럼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 친구들과 여행할 생각에 잠을 설치며 그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여행은 결국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경기 안산 단원고의 어느 교실 칠판에 ‘꼭 돌아오기’, ‘죽지 말기’라는 과제가 적혀 있지만, 아직 시신조차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희생자들이 찍은 동영상이 복원되면서 사고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동영상을 볼 때마다 사고현장에 함께 있는 것 같아 가슴이 꽉 막힌다. 나란히 서서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지척에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 그러나 선실에서는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만 계속 흘러나올 뿐이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처럼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만일 어른들의 말을 의심하거나 거역할 용기가 있었다면 선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 주었다면, 몇 개의 문과 창문이라도 열어 주었다면, 그 선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파된 교실은 이제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처박혀 있다. 그곳에서 구명복의 끈을 서로 묶어주며 죽음의 공포를 견뎠을 아이들. 그러나 구명복은 고스란히 수의가 되고 말았고, 산산조각난 선실의 부유물들만이 바닷물에 둥둥 떠다닌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제 목숨만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존재에 불과했다.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선장과 선원들에게 아이들의 목숨은 짐짝과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은 안산 단원고 아이들만의 것일까. 수학여행과 야외활동을 금지하거나 안전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예방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4월 16일 세월호를 예약한 학교가 바뀌었다면, 그 희생자 명단 속에는 바로 내 아이의 이름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온 국민이 유족들의 슬픔을 함께하며 집단적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도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공감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의 대열에 동참한 학생이나 교사를 불순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게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라면, 타인의 슬픔에 감응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하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세월호 밖의 수많은 교실에서는 지금도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은 그 명령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걸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지 않았는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대한민국호의 침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고 원인과 구조 과정을 살펴볼수록 어느 구석 썩지 않은 곳이 없고, 유착과 편법을 통해 부와 권력을 거머쥔 자들의 행태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뒤늦게나마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가개조를 언급한 것은 그 총체적 난국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해경 해체나 정부조직 개편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풍토가 개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심성이 달라지지 않는 한 급조된 후속 조치들은 포장 바꾸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획일화된 가치와 규칙을 강요하는 교육으로는 자율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없다. 공부라는 패키지 상품을 학생이라는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교육으로는 공생적인 시민을 길러낼 수 없다. 지금도 난파된 교실에는 아이들이 갇혀 있다. 의자 밑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들과 유리창을 탕탕 두드리는 손들이 있다. 그 완강한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 22m 크레바스에 빠진 산악인 6시간만에 ‘극적 탈출’

    22m 크레바스에 빠진 산악인 6시간만에 ‘극적 탈출’

    히말라야에서 홀로 등반하던 한 산악인이 빙하가 이동할 때 생기는 응력으로 빙하의 표면에 깊게 갈라진 틈인 ‘크레바스’에 추락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돼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지난 19일 켄터키 대학의 지리학 교수 겸 과학자 존 올(44)이 네팔 카트만두 히말라야의 힘룽히말(Himlung Himal, 7126m)을 오르는 과정에서 71피트(약 22m) 아래의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존이 직접 촬영한 영상에는 크레바스에 빠진 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추락할 때의 충격으로 얼굴이 피범벅 된 그가 끝이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 아랫부분과 자신이 떨어진 윗부분을 카메라로 보여준다. 존은 구조된 후에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눈으로 덮인 크레바스의 22미터 아래로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1m 남짓한 얼음 턱에 걸려 목숨을 구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어깨가 탈골되고 얼굴과 무릎에 출혈과 타박상을 입은 채로 얼음도끼(ice axe)를 이용 크레바스를 힘겹게 탈출했다”고 당시 사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부상을 당한 악조건 속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22m 깊이의 크레바스를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총 6시간이 소요됐으며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위성 장비가 있는 그의 텐트로 이동하기까지 3시간이 더 경과했다. 존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조되기를 기대하며 무려 9시간의 사투 끝에 자신의 텐트에 도착한 존이 팀의 베이스캠프에 위성 장비를 이용 구조요청을 보내지만 악천후로 인해 구조헬기가 뜰 수 없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상과 추위로 혼자 고통의 밤을 보내야 했던 존은 결국 다음날 긴급 출동한 헬기에 의해 구조된다. 존은 크레바스 속 추락으로 길비뼈 5개와 오른쪽 팔이 부러지고 얼굴과 무릎에 출혈과 타박상을 입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존 올은 오염에 의해 빙하의 녹는 속도를 연구하기 위해 산을 오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0년에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경험이 있는 전문 산악인이다. 사진·영상=RightThisMinute 유튜브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전통 방식 그대로, 문명도 비켜 간 소수민족의 삶

    전통 방식 그대로, 문명도 비켜 간 소수민족의 삶

    1970년대 말 처음 세상에 알려진 코로와이족. 인도네시아 파푸아 밀림 속에 사는 이들은 아직도 돌도끼를 사용하고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피운다. 수렵과 채집을 하며 불과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식인 풍습을 이어 왔다. 19~21일 밤 11시 35분 방송되는 EBS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 ‘세계의 집’(1~3화)에서는 현대 문명에서 벗어나 오롯이 전통을 지켜가는 이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른 아침 밀림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나무 쓰러지는 소리. 야곱의 가족들이 살 집을 짓기 위해 코로와이족 남자들이 모두 모였다. 집 지을 곳은 지상 35m 위. 코로와이족은 모기나 맹수, 적들의 침입으로부터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높은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왔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재료부터 도구까지 즉석에서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내는데 이 모든 것이 맨손으로 이뤄진다. 20일 2화에서는 부평초처럼 바다 위를 떠도는 바다의 집시, 바자우족을 만난다. 바다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에서 보내고 죽어서야 육지로 돌아가는 이들은 소박하고 욕심 없는 종족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들의 언어에 “원하다”라는 표현이 없다. 21일 3화에서는 하루 일과가 100% 순록에게 맞춰져 있는 차탄족(순록을 따라다니는 사람)을 따라 숲을 누빈다. 순록에게 헌신하면 돌아오는 대가는 순록의 젖과 뿔, 가죽 등이다. 차탄족 가족은 순록의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노인이나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 등 가족들과도 종종 생이별을 해야 한다. 그래도 정착할 수 없는 것은 유목민의 숙명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우린 아직 일본의 문화재 식민지다

    우린 아직 일본의 문화재 식민지다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아라이 신이치 지음/이태진·김은주 옮김/태학사/256쪽/1만 5000원2011년, 조선총독부가 강탈해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실의궤(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가 89년 만에,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도서가 145년 만에 돌아왔다.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에 약탈된 우리 문화재의 소재가 확인돼 우리 정부가 요구하면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는 일본의 전쟁 범죄와 책임 문제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아온 아라이 신이치 일본 스루가다이대 명예교수 겸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공동대표가 조선 말기와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의 문화재에 관해 쓴 책이다. 원제는 ‘식민주의와 문화재-근대 일본과 조선을 통해 생각한다’. 그는 2011년 4월 조선왕실의궤 등 귀중 도서 반환에 관한 한·일 협정을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가 심의할 때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그 자리에서 “반환 문제는 식민지 지배 청산을 위한 기본틀이며, 역사자료 등 문화재는 그것이 태어난 환경이나 배경에 두어야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으므로 조선왕실의궤도 조선왕조 문화의 상징으로서 원래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진술했다. 저자는 일제의 문화재 약탈이 어떻게 시작됐고 진행됐는지를 추적했다. 첫 무대는 1875년 9월 강화도였다. 그때 일본은 이노우에 요시카 함장의 지휘 아래 조선의 귀중 도서들을 노획해 갔다. 이후 1894년의 청일전쟁에 편승해 일본은 궁중의 재화와 보물들을 마구 약탈했다. 일본 궁중 고문관 겸 제국박물관 총장인 구키 류이치는 전시 문화재 수집 지침을 정부와 육해군 고관들에게 전달했다. 평시에는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명품을 얻을 수 있으며, 평시에 비해 중량 있는 물품을 운반할 방법이 있다는 등 군이 주도하는 문화재 약탈의 이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일본의 학계와 정치인, 군이 일체가 되어 국가적 사업으로 문화재 약탈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일제의 목표는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미술품까지 약탈, 수집함으로써 ‘동양미술 유일의 대표자’ 지위에 서는 것이었다. 청일전쟁 선전포고 직전인 1894년 7월 23일 조선 주재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는 궁중의 재화, 보물, 역대 제왕의 진기한 물건이나 법기(法器), 종묘의 주기(酒器)류를 모조리 챙겨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조선이 수백년간 축적해 온 것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간 것이다. 개성과 강화 부근의 고려 고분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파헤쳐졌고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자기를 포함한 고미술품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뒤 발군의 것들을 골라 일왕에게 갖다 바쳤다. 오사카에는 조선에서 나온 고물(古物)을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일제의 기상학자인 와다 유지는 우량(雨量) 측정기인 측우기를 일본으로 빼갔다. 이후 1923년 이 측우기는 영국에 기증돼 현재 런던 과학박물관에 있다. 일제가 학술조사라는 이름으로 시행한 고적(古跡) 조사는 한국의 문화재를 더욱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빠트렸다. 낮은 등급 판정을 받은 경희궁이 헐렸고, 고분묘 조사는 결과적으로 사굴이나 남굴 풍조를 심화시켜 유적들을 괴멸시켰다.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일본으로 반출된 한반도 문화재가 6만 1409점이 넘을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 내에서 개인이 수집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만 해도 30여만 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정설로 통한다.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에서 약탈 문화재 반환 사례가 부쩍 늘었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에우프로니오스의 항아리를 포함해 21점을 이탈리아에 반환했다. 영국은 20만년 전 돌도끼와 기원전 7000년대의 토기, 동전 등 2만 5000점의 유물을 이집트에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도 약탈 문화재의 일부를 반환했다. 책에는 한·일 간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참고 사항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해외 여러 나라들의 문화재 반환 사례, 국제법적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반환 움직임, 문화재 반환과 식민지 청산의 현재적 의미 등을 두루 짚어볼 수 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TV 맞선 프로그램 출연男 ‘살인의 추억’ 고백 파문

    TV 맞선 프로그램 출연男 ‘살인의 추억’ 고백 파문

    한 남자가 새 연인을 찾는 TV 맞선 프로그램에 출연해 과거 저질렀던 ‘살인의 추억’을 공개해 파문에 휩싸였다. 최근 터키 플래시TV에서 방송된 새 반려자를 찾는 맞선 프로그램에 한 남자가 출연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올해 62세의 세퍼 칼리낙. 그는 놀랍게도 구애의 멘트를 날리며 과거 부인과 애인을 살해한 적 있다는 폭탄발언을 던져 일순간에 스튜디오를 초토화 시켰다. 그가 고백한 최초 살인은 어린 나이인 17세 때였다.  칼리낙은 “17세 때 사촌이었던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나 이를 질투해 살인을 저질렀다” 면서 “살인죄로 13년 9개월을 선고받았으나 4년 정도 살다 사면됐다”고 털어놨다. 그의 폭탄발언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출소 후 한 유부녀와 사귀다 그녀를 살해한 것. 칼리낙은 “이혼 후 나와 결혼하기로 한 그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나를 죽이려고 했다” 면서 “도끼를 휘두르다 사고로 살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후 다시 감옥에 간 칼리낙은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다시 사면돼 자유의 몸이 됐다. 그가 이같은 ‘살인의 추억’을 고백한 것은 좋은 부인을 얻기 위해 자신이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 하에 강조하기 위해서 였다. 칼리닉의 폭탄 발언 직후 당황한 프로그램 진행자는 “아마도 운명의 희생자인 것 같다”고 말하며 곧바로 그를 퇴장시켰다. 방송 직후 현지언론은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비판에 가세했다, 현지 방송 비평단체는 “프로그램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면서 “제작진 측은 사전에 충분히 출연자의 범죄 기록 등을 조사했어야 했다” 며 비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JTBC 언딘 ‘시신 인양 고의 지연’ 의혹 인터뷰 추가 공개…“다른 업체에 뺏기면 손실”

    JTBC 언딘 ‘시신 인양 고의 지연’ 의혹 인터뷰 추가 공개…“다른 업체에 뺏기면 손실”

    ’JTBC 언딘’ ‘JTBC 손석희’ ‘언딘 의혹’ JTBC 언딘의 ‘시신 인양 고의 지연’ 의혹에 대한 추가 증언 인터뷰를 공개됐다. 29일 밤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9’에서는 서해 훼리호 구조에도 참여했던 강대영 잠수사가 언딘 측에 대한 발언에 대해 추가 증언했다. 강대영씨는 “새벽 4시 정도에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을 보고 창문을 깨려고 했지만 망치도 작은 걸 가져갔었고 창문이 파기가 안 돼서 다시 들어가려는 차에 물이 세지고 시야가 둔탁해져서 경비정으로 다시 올라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도끼와 창을 갖고 들어가서 꺼내려고 했는데 가장 물이 셀 때 쯤이었다. 들어가는데 어떤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창 앞에 다다랐을 쯤 뒤에서 당기는 느낌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다. 보조줄을 차고 갔는데 20여분 정도 일을 못하고 다시 나왔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언딘이나 해경 쪽에서 시신 수습은 미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나”라는 질문에 “한 사람이 현장에 작업장비는 없었는데 언제 올라왔는지 자꾸 와서 ‘이거 저희가 전체 맡아서 하는 일인데 제가 이런 일을 다른 업체에 뺏기게 되면 내가 회사 사장으로서 굉장히 실망을 얻는다’라면서 ‘당신도 회사생활을 해왔는지 몰라도 내가 뺏기게 되면 얼마나 손실이 있겠느냐. 좀 더 미뤄졌으면 한다. 원하는 게 있느냐’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같이 구조 작업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언딘 측과 얘기를 나눴던 사람들도 있었다며 “서로 생각이 달랐던 거 같다. 그런데 때마침 굉장히 조류가 세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면서 “제가 머뭇거리는 순간에 언딘 김 이사가 다시 찾아와서 재차 부탁을 하길래 좀 미뤘다. 양보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당시는 조류도 워낙 셌고 저희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경비정에 작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희가 공략지점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유도라인에 경비정을 잡고 있던 중이었는데 오랜 경험에 의해서 파도가 쳐 잡을 수 없었다”면서 “우리가 빨리 양보를 해서 장비도 좋고 여러 가지 경력이 많은 언딘이 바로 작업이 이뤄진다면 우리보다 훨씬 효율적인 구조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우리가 서포트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양보한 이유에 대해 “우리 잠수사가 들어갈 라인은 하나 밖에 없었는데 거기는 둘이 들어갈 수 있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장비가 보였기 때문에 양보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면서 “저는 그 배가 훨씬 유리하고 효율적일 것 같아 양보를 하고 나갔는데 그 후로 그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더라. 굉장히 화도 나고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양보를 해줬으면 바로 바통을 받아서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언딘사의 배, 장비를 실은 배까지도 철수를 하더라. 왜 철수를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당황스러웠던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작업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유리창을 깨서 들어가고 나면 그 때부터는 충분히 얼마든지 살아 있는 학생들을 찾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윗선이 곤란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에 대해서는 “저는 그 얘기는 듣지를 못했다.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같은 팀이었지만 그 쪽의 입장과 저의 입장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고 당시 바로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면서 “전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서해 훼리호 사건과 비교해 “조류가 세다고 하나 배가 규모가 크고, 에어포켓이 잡히고, 선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배의 균형이 어느 정도 잡힌 것”이라며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작은 배들은 뒹굴면 서해 훼리호 같은 경우는 금방 가라앉지만, 격벽이 많으면 에어포켓이 많이 잡힌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안 해도 얼마든지 들어가서 작업하고 구조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JTBC 손석희, 언딘 의혹 추가 증언 인터뷰 “다른 업체에 뺏기면 사장으로서 실망 얻는다”

    JTBC 손석희, 언딘 의혹 추가 증언 인터뷰 “다른 업체에 뺏기면 사장으로서 실망 얻는다”

    ‘JTBC 손석희’ ‘언딘 의혹’ 언딘에 대한 추가 증언이 인터뷰를 통해 공개됐다. 29일 밤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의 ‘JTBC 뉴스9’에서는 서해 훼리호 구조에도 참여했던 강대영 잠수사가 언딘 측에 대한 발언에 대해 추가 증언했다. 강씨는 “새벽 4시 정도에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을 보고 창문을 깨려고 했지만 망치도 작은 걸 가져갔었고 창문이 파기가 안 돼서 다시 들어가려는 차에 물이 세지고 시야가 둔탁해져서 경비정으로 다시 올라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도끼하고 창하고 들어가서 꺼내려고 했는데 가장 물이 셀 때 쯤이었다. 들어가는데 어떤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창 앞에 다다랐을 쯤 뒤에서 당기는 느낌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다. 보조줄을 차고 갔는데 20여분 정도 일을 못하고 다시 나왔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언딘이나 해경 쪽에서 시신 수습은 미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나”라는 질문에 “한 사람이 현장에 작업장비는 없었는데 언제 올라왔는지 자꾸 와서 ‘이거 저희가 전체 맡아서 하는 일인데 제가 이런 일을 다른 업체에 뺏기게 되면 내가 회사 사장으로서 굉장히 실망을 얻는다’라면서 ‘당신도 회사생활을 해왔는지 몰라도 내가 뺏기게 되면 얼마나 손실이 있겠느냐. 좀 더 미뤄졌으면 한다. 원하는 게 있느냐’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같이 구조 작업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언딘 측과 얘기를 나눴던 사람들도 있었다며 “서로 생각이 달랐던 거 같다. 그런데 때마침 굉장히 조류가 세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면서 “제가 머뭇거리는 순간에 언딘 김 이사가 다시 찾아와서 재차 부탁을 하길래 좀 미뤘다. 양보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당시는 조류도 워낙 셌고 저희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경비정에 작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희가 공략지점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유도라인에 경비정을 잡고 있던 중이었는데 오랜 경험에 의해서 파도가 쳐 잡을 수 없었다”면서 “우리가 빨리 양보를 해서 장비도 좋고 여러 가지 경력이 많은 언딘이 바로 작업이 이뤄진다면 우리보다 훨씬 효율적인 구조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우리가 서포트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양보한 이유에 대해 “우리 잠수사가 들어갈 라인은 하나 밖에 없었는데 거기는 둘이 들어갈 수 있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장비가 보였기 때문에 양보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면서 “저는 그 배가 훨씬 유리하고 효율적일 것 같아 양보를 하고 나갔는데 그 후로 그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더라. 굉장히 화도 나고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양보를 해줬으면 바로 바통을 받아서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언딘사의 배, 장비를 실은 배까지도 철수를 하더라. 왜 철수를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당황스러웠던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작업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유리창을 깨서 들어가고 나면 그 때부터는 충분히 얼마든지 살아 있는 학생들을 찾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윗선이 곤란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에 대해서는 “저는 그 얘기는 듣지를 못했다.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같은 팀이었지만 그 쪽의 입장과 저의 입장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고 당시 바로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면서 “전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서해 훼리호 사건과 비교해 “조류가 세다고 하나 배가 규모가 크고, 에어포켓이 잡히고, 선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배의 균형이 어느 정도 잡힌 것”이라며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작은 배들은 뒹굴면 서해 훼리호 같은 경우는 금방 가라앉지만, 격벽이 많으면 에어포켓이 많이 잡힌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안 해도 얼마든지 들어가서 작업하고 구조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수색 현장] 잠수부 8~10명씩 동시다발 선내 진입… 가족들 “이제서야…”

    [세월호 침몰 참사-수색 현장] 잠수부 8~10명씩 동시다발 선내 진입… 가족들 “이제서야…”

    ‘세월호 침몰’ 사고 닷새째인 20일 해양경찰(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부 등이 전남 진도의 사고 해역에서 활발한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기적’을 건져 내지는 못했다. 기다렸던 생환 소식 대신 가라앉은 선체에서 시신 10여구만 뭍으로 나왔다. 정부는 “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 요원이 동시다발적으로 바다에 들어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고 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가 난 지 3~4일이 지나서야 선내에서 겨우 사망자를 찾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격분했다. 사고 뒤 첫 주말인 19~20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세월호 내부에 진입해 본격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다. 잠수부들은 19일 오전 5시 50분쯤 여객선 3~4층 계단 통로에 들어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4층 격실 창문 너머로 시신 3구를 발견했다. 오후 11시 48분 수차례 시도 끝에 손도끼로 유리창을 깨고 4층에서 남성 시신 3구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 잠수부가 선체 내부에서 피해자를 발견해 수습한 것은 사고 뒤 처음이었다. 수십㎝ 앞조차 가늠할 수 없는 탁한 시계(視界) 탓에 피해자가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객실로 보였다. 실종자 가족 사이에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잠수부들이 발견한 것은 숨을 거둔 시신뿐이었다. 21일 오전 1시까지 22구의 시신이 선체 안팎에서 수습되면서 사망자는 58명으로 늘었다. 더디기만 하던 수색 속도가 빨라진 것은 ‘생명선’으로 불리는 가이드라인(안내선)과 손도끼 등 수동 장비 덕이었다. 로프의 일종인 가이드라인은 침몰한 세월호 선수와 선체 중앙부 등에 20일까지 모두 5개가 묶였다. 성인 남성 손가락 굵기인 로프는 수면 위에서 선체까지 이어져 있다. 잠수사 수백 명이 사흘간 번갈아 투입돼 라이트 불빛과 손의 감각으로 선체 돌출 부위에 묶었다. 수면 아래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까닭에 잠수부들은 가이드라인을 부여잡고 천천히 이동해 겨우 선체에 닿을 수 있다. 이 줄이 5개까지 설치되면서 그동안 2인 1조로 20여분간 선체를 수색하는 데 그쳤던 구조팀은 8~10명씩 동시에 입수해 구조 수색 작업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선내 유리문을 깨뜨린 ‘특수 손도끼’는 민간 잠수부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쇠뭉치의 끝을 뾰족하게 갈아 손잡이를 단 모양으로 유리를 찌르듯 깨뜨리는 장비다. 묵직한 도끼를 동원해도 해저 수압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사고 이후 줄곧 좋지 않던 기상과 조류도 뒤늦게 호전됐다. 빠른 유속으로 악명 높은 맹골수도 조류는 속도가 최저가 되는 ‘조금’(23일)이 되면 8일 전보다 유속이 40% 정도 느려진다. 미국으로부터 원격 조종 무인잠수정 ROV 2대를 지원받아 현장 투입을 앞두는 등 첨단 장비도 동원되고 있다. ROV는 원격 수중 탐색장비로 1980년대부터 깊은 바닷속에서 난파선 탐사, 기뢰 제거 등 위험 임무에 활용된 기계다. 관측함과 ROV를 케이블로 연결해 원격 조종하는 방식으로 해저 영상을 전달받아 수중 탐색에 활용한다. 또 이날 오후 사고 현장에 긴급 공수된 바지선(짧은 거리에서 화물을 수송하는 부선)이 정박해 잠수사들이 대거 투입할 준비를 마쳤다. 민간 잠수업체의 선박과 해경, 해군의 소형 선박들은 바지선에 잠수장비 등을 실어 놓고 잠수사들도 바지선 위로 올라탔다. 정조 시간인 오후 5시쯤에는 민간 잠수사 1개조가 바지선에서 잠수했다. 합동수색팀은 20일 민·경·군 잠수부 560여명과 함정 204척, 항공기 34대 등을 동원해 집중 수색을 벌였다. 사고대책본부는 이날까지 잠수부를 투입한 수색 구조 방식을 유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박 표면을 절단한 뒤 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잇따랐지만 선체의 중심이 흔들려 에어포켓(선실에 형성된 공기층)이 줄어 생존자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이후 줄곧 ‘오보’를 양산해 빈축을 샀던 정부는 주말에도 사망자 수를 정정하는 등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19일 밤 세월호 주변 50m 부근 해상에서 시신 3구를 추가로 수습해 사망자가 39명까지 늘었다고 밝혔지만 이내 “선체 안에서 발견된 시체를 두 번 셌다”며 정정했다.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은 20일 청와대 항의 방문을 시도했다. 오전 7시쯤 진도대교에 모여 청와대로 가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나서야 했다. 1시간에 걸친 설득에도 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이 완강하자 정 총리는 차량에 탑승해 자리를 떠나려다 2시간여 동안 발이 묶였다. 경찰과 대치 중 가족 중 한 명이 오열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한편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던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4500t)에서 화물승강기 정비 작업을 하던 중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승조원 윤모(21) 병장은 19일 끝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묻지마 살인 공익요원 “내 롤모델은 유영철”

    서울 강남 주택가에서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공익근무요원이 사전에 인터넷으로 살인 장비를 구입하고 행동 수칙을 마련하는 등 ‘묻지 마 살인’을 준비해 뒀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조기룡)는 강도살인과 살인예비, 절도 등의 혐의로 공익요원 이모(21)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11시 10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빌라 1층 현관 입구에서 김모(25·여)씨의 얼굴을 미리 준비한 흉기로 찌르고 벽돌로 머리를 20회가량 내리쳐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전날 근무지인 경기 김포시의 한 주민자치센터를 무단 이탈한 일로 어머니와 다툰 뒤 평소 보관하고 있던 가스총을 갖고 집을 나왔으며 가출 비용을 마련하려고 강도질을 하려다 김씨가 반항하자 살인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며 자해 소동을 벌이다 결국 현장에서 검거됐다. 조사 결과 이씨는 지난해 1월 칼과 도끼 등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놓았다. 또 지난 1월에는 “언제라도 살인을 할 수 있게 몸을 단련하고, 살해 순위는 애새끼들, 계집년, 노인, 나를 화나게 하는 순이다. 롤 모델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이고 7명을 죽인다”는 등 내용이 포함된 12개 행동 수칙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국가 지도자의 언어/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국가 지도자의 언어/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지도자들은 유려한 언어를 구사한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달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고금의 성어(成語)를 적절히 구사하며 막힘없이 받아넘겨 중국 총리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는 부동산 문제 등 차이나 리스크에 대해 “일할 때 어려움을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준비하지 않음을 근심하라”(凡事不患難但患無備), “도끼를 잘 갈아야 장작도 잘 팰 수 있다”(磨好了斧子才能劈開柴)는 성어를 인용해 정면 대응하겠다는 각오를 내보였다. 권한을 하위 기관으로 이양해 부패를 척결하는 ‘간정방권’(簡政放權)을 얘기할 때에는 ‘솥 밑에 타는 장작을 꺼내 물이 끓는 것을 막는 계책’(釜底抽薪之策)이라고 설명했다. ‘깨어지기 쉬운 관계’로 불리는 중·미관계에 대해서는 서로 충돌하지 말고 공영하자는 ‘신형 대국관계’를 내세우며 ‘현명한 자는 서로 같은 것을 추구하고 우둔한 자는 서로 다른 것을 추구한다’(智者求同愚者求異)고 미국을 자극했다. 개혁에 대해서는 ‘나의 도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는 논어 이인(里仁)편을 인용해 일관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리 총리가 종횡무진 성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뛰어난 고문 실력 덕분이다. 그는 중학생 시절 문화혁명으로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안후이(安徽)성 고향 집에 머물며 국학대사(國學大師) 리청(李誠)을 사사해 고금의 시와 고전을 섭렵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연초 반부패와 관련해 “독을 빼내기 위해 뼈를 깎아내다’(刮骨療毒), ‘장사가 (독사에 물린)손목을 잘라낸다’(壯士斷腕)는 성어를 곁들여 결연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괴롭히는 ‘이지메 언어’를 쓴다. 그는 한마디 할 때마다 국제사회의 돌팔매 맞을 일만 골라서 한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나열해 일본을 비방 중상하는 것에는 사실로 냉정히 반론하겠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미국인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경의를 표하는 것과 같다.”, “(일제 침략과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 정의는 학술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침략의 정의가) 다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 “박근혜 한국 대통령 옆에는 간신이 있다.” …. 잊을 만하면 두더지처럼 불쑥 고개를 내밀고 이웃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박박 긁어대는 망언을 내뱉는 게 그의 특기일 정도다. 언어는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한다. 은연중에 마음속을 밖으로 드러낸다는 얘기다. 마음속이 부드러우면 언어도 부드럽고, 마음속이 거칠면 언어도 거칠게 마련이다. 특히 국가 지도자의 언어에는 부드러움에다 진정성과 책임감까지 담겨 있어야 한다. 산속의 모난 돌을 동글고 고운 조약돌로 변신시켜주는 것은 날카로운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시냇물이라는 사실을 아베는 알기나 할까. khkim@seoul.co.kr
  • 대낮 보석상 습격한 간 큰 강도들 포착

    대낮 보석상 습격한 간 큰 강도들 포착

    얼마전 영국 런던의 한 고급 보석상을 털려던 강도들이 보안문을 열지 못해 달아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온데 이어, 최근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영국에서 발생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메트로는 이날 오후 1시경에 요크셔(Yorkshire) 주의 한 보석상에서 벌어진 복면 강도 습격 사건을 보도했다. 영상을 보면 대낮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심 한폭판에서 아래위로 파란색의 옷을 입고, 복면을 쓴 네 명의 강도들이 도끼와 망치로 보석상의 문을 내려치고 있다. 이들 중 한명은 흉기를 들고 지나가는 행인을 위협하기도 한다. 사건 발생 직후 보석상 상점 안에 있던 직원이 급히 보안시스템 버튼을 눌렀고, 출입문은 셔터문으로 봉쇄되었다. 강도들은 보석상문을 열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쉽게 열리지 않는다. 점점 시간이 지체되고 다급해진 강도들은 결국 보석상을 털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타고온 승용차에 올라타 급히 도주한다. 이 영상은 보석상 건너편 건물에 있던 한 시민에 의해 고스란히 촬영되었다. 한편 지역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용의자들이 타고 달아난 차량을 발견해 조사 중에 있으며, 현재 달아난 네 명의 강도들의 행적을 쫓고 있다. 사진·영상=유튜브 장고봉 PD goboy@seoul.co.kr
  • 죄수들 재판정으로 호송중 극적인 탈출 순간 포착

    죄수들 재판정으로 호송중 극적인 탈출 순간 포착

    영국에서 죄수를 호송하던 버스가 무장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죄수들이 탈출하는,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다. 영국 데일리메일 인터넷판은 지난해 4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사건의 영상을 최근 소개했다. 영상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성들이 총기로 보안요원들을 위협을 하는 동안 두 명의 죄수가 교도소 후송차량에서 탈출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사건은 죄수들의 치밀한 계획 아래 이루어졌다. 맨체스터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라이안 맥도날드(20)와 스티브 맥뮬란(32)은 감방으로 몰래 반입한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외부의 공범과 연락을 취해 교도소를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탈출 사건 당일인 지난해 4월 30일 맥뮬란은 납치, 절도, 방화 및 무기 소지죄로 법원에서 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는 교도소에서 재판정으로 가던 도중 외부 공범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기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두 사람의 탈출은 한창 차들이 붐비던 시간때에 시도되었다. 복면을 한 무장괴한들은 녹색 사브 차량을 타고 죄수 호송차량을 뒤쫓았고, 맨체스터 샐퍼드(Salford)의 도로 한가운데에서 호송차량을 막아섰다. 그리고 호송차량의 보안요원들을 총과 도끼, 해머 등으로 위협한 뒤, 차량의 창문을 부수었다. 공범들이 호송 차량을 덮치는 장면은 호송차량 내부에 설치된 보안 CCTV 카메라에 고스란히 촬영되었다. 공범들 중 한명은 대형 해머를 들고 있고, 다른 사람은 산탄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영상에서 이들은 무기력하게 쳐다보고 있는 보안요원들을 뒤로 한 채 죄수들과 함께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다. 탈출한 죄수들은 호송용 차량에서 뛰어내린 뒤, 다른 공범 3명과 함께 사브 차량에 올라탄다. 이들은 얼마후 범행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차량을 버리고 도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이들에 대한 공개수배령이 내려졌고, 결국 두 명의 탈옥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검거 됐다. 조사결과 탈출계획은 수감중이었던 맥도날드와 맥뮬란이 주도해 세웠으며, 탈출 당일 맥도날드는 휴대전화로 “최대한 빨리 구출해줘. 자동차 열쇠를 잊지마”라는 문자를 공범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유튜브 장고봉 PD goboy@seoul.co.kr
  • 고급 보석상 털려던 강도들의 굴욕

    고급 보석상 털려던 강도들의 굴욕

    고급 보석상을 털려던 강도들이 줄행낭치는 장면이 CCTV에 포착돼 화제다. 2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17일 런던 웨스트엔드 뉴본드 거리의 한 고급 보석상을 털려던 6인조 강도들이 보안문를 열지 못해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상점의 CCTV에 촬영된 영상에는 6인조 강도들이 영화 속 멋진(?) 갱들처럼 오토바이 탄 채 등장한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강도들이 도끼와 망치로 보석상의 문을 있는 힘껏 내리치지만 고급 보석상의 보안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점점 시간이 지체되고 다급해진 강도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를 동원해 문에 충격을 가한다. 하지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보석상을 털려했던 6인조 강도들은 결국 50초 만에 그들의 계획을 포기하고 경찰이 출동하기 전에 도망을 친다. 이번 사건으로 보석상 인근에 있던 한 경비원이 강도들의 폭행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 중이며 경찰은 달아난 6인조 강도들의 행적을 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유튜브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런닝머신 타면서 장작 패는 말(馬) 화제

    런닝머신 타면서 장작 패는 말(馬) 화제

    말(馬)이 런닝머신을 즐기면서(?) 장작까지 패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누리꾼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유튜브에 게재된 해당 영상은 24만 6600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 마리의 말이 나무로 만든 회전하는 구름판 위에서 런닝머신을 타고 있다. 말의 움직임으로 발생된 운동에너지가 구름판에 연결된 축을 지나 동력으로 바뀐다. 톱이 장착된 기구에 말주인이 장작을 올려놓자 자동으로 장작이 패진다.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도끼를 사용, 장작을 패는 일보단 훨씬 수월해 보인다. 이 신기한 기계의 이름은 ‘말 트레드밀(Horse Treadmill)’로 1797년 아테네란 이름을 가진 회사에서 곡물을 찧기 위해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기는 런닝머신 위의 말 움직임을 이용해 곡물분쇄기·유압모터·펌프·냉동압축기·세탁기 등과 연결해 전력이 없는 곳에서 에너지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발전해 왔다. 아테네의 ‘말 트레드밀’은 12년 동안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기울기 조정, 가변속도, 레벨수정 등 실제 러닝머신과 똑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현재도 시판 중. 이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에디슨 이후 최고의 독창적이다”, “말의 동력과 신기술의 하모니다”, “말 트레드밀을 구입하기 전에 말을 먼저 사야할듯” 등의 신기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사진·영상=유튜브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강화역사박물관

    [명인·명물을 찾아서] 강화역사박물관

    흔히 강화도는 역사 문화유적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선사시대를 비롯해 삼국·고려·조선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강화도의 지정학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강화는 나라가 외세의 침략으로 위급할 때 왕실과 조정이 피란해 전란을 극복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주변국에서 내륙으로 문화와 물자가 드나드는 주요 길목이었다. 인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위치한 강화역사박물관이 전국적으로 산재한 역사박물관 중에서도 유독 주목을 받는 것은 이 같은 특수성 때문이다. 우선 선사시대 유물이 눈에 띈다. 박물관 옆에는 남한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 자리 잡고 있다. 높이 2.6m, 길이 7.1m, 너비 6.5m, 무게 80t에 달한다. 이를 중심으로 고인돌광장이 형성돼 있는데 강화역사박물관은 고인돌광장 내에 2010년 10월 문을 열었다. 국·시비 125억원이 투입돼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4233㎡ 규모로 조성됐다. 강화 고인돌은 고려산과 별립산 주변인 부근리, 고천리, 오상리 일대에 160여기가 있다. 이곳 고인돌은 탁자 모형 북방식 지석묘 형태의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묘제로 200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역사관에 전시된 선사시대 유물은 다양하다. 전체 전시 유물 3841점 가운데 30%가량이 선사시대 것이다. 전문가들은 문명의 여명기인 신·구석기시대에 대륙의 문화가 바닷길을 따라 한반도로 전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선사유물은 강화도를 비롯해 인근 섬인 덕적도, 삼목도, 영종도 등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이 섬 지역에 널리 퍼져 살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주거지 모형이 여러 형태로 재현돼 있다. 이 시대 유물은 반달도끼, 주먹도끼, 돌망치, 주먹찌르개, 청동숟가락, 어망추,민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등이 주를 이룬다. 다양한 종류의 석검과 돌화살촉도 크기별로 비치돼 있다. 조계연 강화역사박물관장은 “신·구석기, 청동기시대 유물은 중앙박물관보다 많이 소장돼 있다”면서 “강화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의 활동이 매우 왕성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삼국시대 유물은 철제갑옷, 청동초두, 허리띠고리, 마구, 발걸이 등 주로 전쟁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삼국시대에 강화는 주로 백제에 예속돼 있었다. 유물의 형태가 백제문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면 유물이 보다 다양해진다. 고려 말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겨 60년간 임시 수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철제투구를 비롯해 금동좌불상, 동경(거울), 경문금고(타악기) 등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려청자다. 청자류인 병, 잔, 접시 등은 창후리 고분군에서 다수 발굴되었다. 고려청자는 대개 전라도 강진이나 부안에서 생산돼 공물 또는 상품으로 서해의 조운로를 따라 강화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강화도 시기는 고려청자의 전성기로 불린다. 강화에 있는 고려왕릉 4기에서 출토된 항아리, 수막새, 석인상, 잡상 등도 전시됐다. 고문서인 대장경, 동국이상국집, 강도고급시선, 시권 등은 당시 인쇄문화 발달상을 잘 보여준다. 조선시대 유물도 국난 극복사와 관련이 있다. 병인양요(1866년) 당시 강화 수비군이 재래식 무기로, 첨단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에 맞서 격렬하게 싸운 정족산성 전투 장면도가 음향 설명과 함께 배치돼 있으며,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강화도조약(1876년) 모형은 너무 생생해 당시 협정 현장을 보는 듯하다. 신미양요(1871년) 당시 미국 해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어재연 장군의 군기인 수자기와 광성보전투 모형도 눈에 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2013년 구입유물 전시전’이 열리고 있으며, 박물관 1층 로비에서는 지난달부터 나비·잠자리·장수풍뎅이·하늘소·사슴벌레 등 곤충 300여점을 전시한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가 개최되고 있다. 박물관 측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역사체험 행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개관 이래 매달 1회 유치원생·초등학생들이 민속방패연·한지연필꽂이·민화부채 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현장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참가 학생들이 갈수록 늘어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상실에서는 강화의 역사를 시대별로 설명하는 영화를 상시 상영하고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화문석문화관, 고인돌군(群), 평화전망대, 각종 돈대 등 연계 관광지들이 즐비해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적합하다. 지난해에만 24만명이 박물관을 찾았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박영주 연구사는 “오는 7월 각종 전쟁 관련 유물을 모아 갑곶리에 ‘호국박물관’을 별도로 개관해 강화에 깃들어 있는 선인들의 호국정신을 기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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