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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옴부즈맨 칼럼] 우직함과 참신함, 두 기획기사의 덕목/안혜련 주부

    [옴부즈맨 칼럼] 우직함과 참신함, 두 기획기사의 덕목/안혜련 주부

    2014년 2월 시작된 서울신문의 기획기사 두 가지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하나는 ‘읽어라 청춘’이고 다른 하나는 ‘판례 재구성’이다. 전자는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 중 카프카의 ‘변신’을 시작으로 37권을 선정해 소개했는데, 올 3월부터는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이라는 제목으로 동서양 명저들을 소개하고 있다. <36>편 ‘주역’, 선택의 갈림길에서 헤맬 때 길과 흉은 어차피 반반… ‘불안 잠재울 힘’이 안에 있다, <38>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이미 지나간 ‘오래된’ 것에 우리가 찾는 ‘미래’가 있다, <40>편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금욕적 절제 아닌 탐욕적 부(富) 축적은 죄악… 현대 사회 진정한 자본주의 ‘길’을 묻다 등 책 제목과 부제만 보아도 마치 인생의 화두 한 자락이라도 잡은 양 가슴이 뿌듯하다. 노는 재미 중에서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지식, 상상력을 엿보고 공유하는 이 즐거움 덕분에 ‘생각하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의 삶을 더 풍요롭게 즐기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책을 읽는 동안 책속에 들어가 무장 해제되고, 자기의 삶과 상처, 시간 등을 다시 만나게 된다. 왜 살 것이고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지 결단하게 되고, 그렇게 하여 깊이 있고 강인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말은 독서를 통해 보다 성숙하고 강인한 인간이 되고, 한 단계 도약하는 인간으로 설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순한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가 아닌,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작품들을 신문에서 전면을 할애해 1년 넘게 연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게감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서울신문의 우직함과 뚝심에, 그리고 원고를 작성하는 한우리 독서토론논술 연구원들의 노력과 성실함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한 가지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이라는 이름이 독서의 의미와 범위를 지나치게 좁혀 놓은 것은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첫 편에 소개됐던 카프카의 말처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며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읽을 의미가 있는가. 책이란 우리 안의 꽁꽁 언 바다를 깨뜨려 버리는 도끼여야 하기”(2014년 2월 11일자 20면) 때문이다. 매우 참신한 기획으로 생각돼 첫 회부터 주의를 끈 또 다른 기획은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이다. 2014년 2월 <1>편 ‘민법: 사정 변경의 원칙, 매입한 개발 해제 토지 공공지로 편입 건물 못 짓자 소송-사건 소개 및 판례 의의’로 시작해 지난주 <30>편 ‘위치상표 개념과 권리 범위’까지 소개됐다(2015년 6월 4일자 22면). 온라인 지면에서 자정고(자치, 정책, 고시)란에 실리는 것으로 보아 서울신문에서는 주 독자층을 시험 준비생들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의성과 현실성 있는 법안 판례는 일반인들의 눈과 귀도 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도 가독성과 편집에 좀 더 신경 써 숨어 있는 잠재적 독자층을 공략해 보길 바란다. 현재 나라 전체를 불안에 떨게 하는 메르스 사태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정부나 공공기관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이 사태 직전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던 국회법 개정안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같은 주제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관심사일 테니까 말이다.
  • 美검찰 ‘백악관 침입男’ 소유 ‘분대급 무기’ 공개

    美검찰 ‘백악관 침입男’ 소유 ‘분대급 무기’ 공개

    지난해 9월 미국 백악관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한 남자가 흉기로 무장한 채 백악관 철제 담장을 뛰어넘어 대통령 관저 현관문 부근에서 체포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장부'가 뚫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더 큰 논란이 일었다. 이 남자가 과거 이라크 참전 용사로 활약한 오마르 곤잘레스(43)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무려 12년 동안 복무한 그는 제대이후 '외상후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판정을 받아 정상적인 삶이 힘든 사람이 됐다. 백악관 침입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대기권이 붕괴되고 있어 이 사실을 오마바 대통령에 알리고 싶었다"고 횡설수설할 정도. 이 때문에 미 언론은 곤잘레스가 단순한 침입자가 아니라 희생자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열린 재판에서 미 검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곤잘레스에게 징역 21개월을 선고했다. 이에 맞춰 검찰은 여론을 의식한듯 곤잘레스가 가지고 있던 각종 무기들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에서도 드러나듯 곤잘레스는 자신의 집과 차에 분대 병력 정도는 거뜬히 무장시킬 만한 여러 정의 소총과 800여 발의 탄환, 각종 대검, 도끼들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흉기로 무장한 피고가 무단으로 백악관에 침입해 직원, 경호원, 시민들에게 불안을 안겼다" 면서 "자신의 병명을 알면서도 계속적인 치료도 게을리 했다"고 밝혔다. 현지언론은 "이 사건의 판결이 오는 15일 쯤 나올 예정" 이라면서 "곤잘레스에 대한 동정론도 만만치 않아 귀추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新국토기행] (27) 경기 연천군

    [新국토기행] (27) 경기 연천군

    경기 연천군은 최전방 접경지역 정도로만 알려졌다. 30만년 전 전곡리 유적지, 주먹도끼, 매서운 추위, 군부대…. 연천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이미지다. 그러나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과 평화, 생명이 공존하는 ‘한반도의 허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연천은 서울 광화문에서 60㎞ 남짓한 거리에 있다. 전쟁 통에 잃어버린 ‘고향’처럼 기억에서 잠시 사라졌을 뿐 한국전쟁 전만 해도 원산~서울을 잇는 주요 길목 도시였다. 전후에도 한탄강과 임진강 두 강줄기가 흐르는 곡창지대였다. 한반도 첫 인류가 살았고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뱃길로, 일제강점기에는 기찻길로 번화했던 고장이다. 지형상으론 남북을 나누는 추가령지구대가 지나는 곳이다. 추가령지구대는 서울~원산을 연결하는 좁고 길며 낮은 골짜기로, 원산 쪽에서 한강 하류로 연결되는 교통로를 제공한다. 과거 임진강 뱃길이나 경원선 철도 역시 이 추가령지구대를 따라 났다. 하지만 뱃길이 쇠퇴하고 경원선이 단절되면서 쇠락했다. 해방 이후 38선이 그어지고 일부 지역은 북측에 속했다가 한국전쟁으로 다시 남측에 속하는 파란을 겪으며 고향과 가족을 잃은 사람도 생겨났다. 전쟁 후에는 갈 곳 잃은 피란민 등이 정착하기도 했다. 이 오랜 시간 속에서 연천은 묵묵히 자신만의 얘기를 만들어 왔다. [볼거리] ●고려에 귀부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릉’ 경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나 있다. 고랑포 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에 홀로 위치했다. 경순왕은 신라 56대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 휘는 부(傅)이다. 신라 문성왕의 6대손으로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나라가 후백제·고려·통일신라로 분열돼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결국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스스로 와서 복종했다. 경순왕은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나라에서 공신에게 내려 조세를 개인이 받아 쓰게 하던 고을)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됐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해 여러 자녀를 뒀으며 고려 경종 3년(978년)에 세상을 떠났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이곳에서 벌어지는 제사 때는 2000여명의 자손이 찾는다. ●고려 4왕·고려조 16공신 모신 고려 종묘 숭의전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고려 4왕과 고려조 16공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고려의 실질적인 종묘다. 역성혁명을 통해 왕조를 찬탈한 조선왕조는 연천의 마전에 고려의 종묘를 건립했다. 이어 국조오례의의 구분상 중사에 해당하는 역대시조제로서 숭의전 전례를 치렀는데, 숭의전 전례는 왕이 직접 축문을 내리고 관리를 파견하는 국가의 중요 행사였다. 왕조 전환 후 전조의 흔적을 지워 없애는 전례에 비춰 상생과 화합의 정신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임진강·한탄강 절경 한눈에… 고구려 3대 성 남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을 감상하고 절벽 위에서 임진강과 한탄강 조망이 가능한 코스다. 성에 오르면 이 지역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원하고 탁 트인 전망을 원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이 가운데 당포성은 임진강 중류의 절벽 위에 조성된 고구려 성이다. 임진강과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 대지에 축조됐다. 임진강과 소하천에 면한 남쪽과 북쪽은 15m 이상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성벽 역할을 한다. 적의 침입이 가능한 동쪽 방면에는 인공적인 성벽을 쌓아 올리기도 했다. 당포성의 동벽은 고구려 축성기술이 집약된 과학적인 구조로서 중국 집안과 평양 등지에서 확인되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성곽 구조와 같다. 당포성이 위치한 당개나루의 임진강은 서울에서 양주를 거쳐 연천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해당하는 요충지다. 이곳을 통과하면 개성이 지척이기 때문에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다. 은대리성은 한탄강과 차탄천이 합류하는 곳에 만들어진 성이다. 연천 고구려 3대 성 중 가장 크지만 성곽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성 내부의 면적은 23만여㎡로, 일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이 숲의 끝에는 전망대가 있어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 지점과 삼형제 바위를 볼 수 있다. 신비한 느낌을 주는 빼어난 관광코스 중 한 곳이다. 호로고루성은 개성의 유명한 경치 8곳을 일컫는 송도팔경 중 하나로 장단석벽 위에 조성된 성터다. 성 아래 강은 썰물의 영향을 받아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임진강 최초의 여울목이 있다. 대규모로 병력 이동이 가능한 이 길목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치열한 전투지였다.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 ●한국전쟁 아픔 고스란히 담긴 유엔군 화장장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이 처음 만들었다. 감악산 전투가 벌어진 연천의 마전과 파주 적성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그만큼 전사자들이 속출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수많은 유엔군 참전 용사가 이곳에서 한 줌의 재로 화해 고국으로 돌아간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용암이 빚은 절벽… 동이리 주상절리 임진강(동이리) 주상절리는 미산면 동이리 67-1 일대에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임진강 쪽으로 길게 직벽 주상절리가 형성돼 있다. 주상절리는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지표면에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기둥 같은 절벽을 말한다. 서서히 식는 과정에서 규칙적인 균열이 생겨 마치 기둥처럼 갈라진 절벽이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이 지역 직벽 주상절리는 고원생대부터 신생대 4기까지 오랜 지질학적 시간 동안 형성된 지층이다. 임진강과 직벽 주상절리에 형성된 폭포, 담쟁이와 단풍나무가 절경을 연출한다. 예부터 장단석벽이라 해 송도팔경에 속한다. 이 밖에 한탄강 강변에 조성된 캠핑장과 인접한 전곡선사유적지,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에 만들어진 평화누리길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50만년 전 분출된 용암과 시간이 만든 재인폭포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높이 18m의 폭포다. 높은 절벽에서 물이 쏟아지는 비경은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50만여년 전 분출된 용암이 한탄강과 임진강의 물길을 형성해 그 용암이 식으면서 지금의 그림 같은 풍광을 만들어 냈다. 재인폭포에는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인근 마을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광대인 재인과 아름다운 부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재인의 부인을 탐낸 마을 원님이 재인을 없애기 위해 폭포 위에서 줄을 타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줄을 타던 재인은 원님이 줄을 끊어 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만다.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재인의 부인은 원님의 코를 물어 버리고 자결하게 되는데 이후 사람들이 이 마을을 ‘코를 문 마을’이라 했다고 한다. 이후 ‘코문리’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의 ‘고문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재인폭포 전망시설에는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현무암 협곡에 수줍은 듯 숨은 재인폭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스카이 워크 형태의 전망대(높이 27m)가 있다. [먹거리] ●야생 산야초로 입맛 돋우는 ‘고대산 금수강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초입에 있는 음식점이다. 각종 산야초는 연천 여행에서 필수 ‘섭취 코스’다. 금수강산에서는 주인이 직접 채취한 야생 산야초로 담은 반찬이 입맛을 자극한다. 능이버섯과 더덕 등 약재를 넣은 백숙은 단골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졌다. 국물이 일품인 ‘산야초한방능이버섯백숙’도 대표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백숙에 넣어 주는 능이버섯의 크기와 양이 놀랍기만 하다. 동충하초를 넣은 보양 백숙도 유명하다. 애주가들은 식당 한쪽에 진열된 밀랍주와 산삼주 등 각종 약초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031)834-1399 ●얼큰한 맛에 빠져드는 ‘아우라지 매운탕’ 아우라지는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곳을 이르는 전곡읍의 한 지명이다. 30년 전통을 자랑한다. 국물은 맹물이나 쌀뜨물을 이용하고, 주로 냇물에 사는 물고기를 이용하는데 메기·쏘가리를 으뜸으로 친다.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위해 조개류·굴류, 각종 계절 향채 등을 넣는다. 주인이 한탄강에서 직접 잡은 참게, 메기, 빠가사리, 쏘가리 등 제철에 맞는 신선한 재료를 쓴다. 음식점 앞에는 주상절리가 있어 그 경치 또한 일품이다. (031)832-1513 ●붉은빛의 오묘한 즐거움 ‘청산막국수 초계탕’ 연천 3번 국도 초성리역에서 열두개울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간판이 보인다. 반찬으로 나오는 새콤한 물김치가 식욕을 돋게 한다. 이곳 초계탕은 다른 곳과 달리 약간 불그스름한 색을 띤다. 퓨전 형태지만 동치미 국물과 닭육수에 닭고기살과 각종 샐러드용 채소, 새싹채소, 밤, 도토리묵 등이 어우러지면서 오묘한 맛을 낸다. 건더기를 다 먹고 난 뒤 말아 먹는 막국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찬 음식을 싫어하면 닭곰탕을 추천한다. 누룽지가 들어 있어 흡사 인절미를 먹는 것 같다. (031)835-6447 ●매콤 달콤 ‘한탄강오두막골 가물치구이’ 연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으로 가물치구이가 있다. 탕이나 즙을 내 보양식으로 먹는 가물치를 주인의 재치 있는 손맛으로 구워 먹도록 개발한 음식이다. 주인은 가물치가 한탄강에서 많이 잡히지만 마땅한 조리법이 없어 궁리하다 고추장 양념에 재운 뒤 굽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채 썬 듯한 고기를 양파와 섞어 구우면 상당히 많은 양의 기름이 흘러나온다. 키조개 관자 비슷한 식감에 고추장불고기처럼 달고 매콤한 맛이 난다. 비린 맛이 없어 쌀밥과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031)832-4177 ●계속 찾게되는 매운맛 ‘망향비빔국수 본점’ 전국에 국수 열풍을 불게 한 음식점이다.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5사단 신병교육대 정문 앞에 있다. 상당히 맵지만 며칠 지나면 또 군침이 돈다. 매운 걸 못 먹는 어린이들을 위한 아기국수도 있다. 비벼 나오는 정갈한 국수 위에 배 고물 등이 올라가 있다. (031)835-3575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우리 선조들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대장간이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읍·면마다 한곳 이상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기계화 영농이 보편화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한강·임진강·한탄강 등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산재한 한수 이북(경기 북부)에도 풀무질을 해가며 직접 손으로 두드려 낫·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이 고을마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근수(70)씨의 ‘파주대장간’이 유일하다. 파주 광탄시장 부근에 있다. 대장간 안은 매우 좁다. 겨우 38㎡(약 12평) 한쪽에 화덕이 있고 그 옆으로 모루와 각종 집게 등 작업도구들이 걸려 있다. 호미·낫·쇠스랑 등도 시렁에 쭉 걸려 있다. 마치 옛 농기구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한씨는 평생 해온 대장장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대장장이 길로 들어서게 한 ‘곽산대장간’ 시절을 잊지 못한다. 요즘 만드는 물건에도 곽산대장간을 의미하는 ‘山’(산)자를 새겨 그 정신과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옛날 대장간의 모습과 지금 대장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낫 한 자루를 만들려면 철근을 잘라 화덕에 수십 번 담금질하고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기계가 두들김질을 대신하죠.” 이로 인해 낫 한 자루를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화덕에 담금질을 12번 정도 하고 마지막에 물에 담가 강도를 높이면 완성된다. 한수 이북 마지막 대장간의 문을 차마 닫지 못하고 야장(冶匠)의 맥을 지키는 한씨는 1945년 파주 장단의 진동면 초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1·4 후퇴 때 누이, 남동생, 여동생 등 4남매와 정든 고향을 떠나 금촌 수용소 마을(현 금촌초등학교 근처)에 정착했다. 그러나 젖먹이였던 남동생이 죽고 뒤를 이어 여동생마저 굶주림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금촌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서울 문래동에 사는 큰 아버지 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큰아버지의 소개로 인근 영일동 곽산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게 됐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평생을 ‘업’으로 여기며 살게 된 대장장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곽산대장간은 주로 건축에 필요한 꺾쇠 등을 만들었다. 20여명의 직원들 속에서 가장 어렸던 한씨에게 주어진 일은 풍구질. 화덕에 불을 지피며 눈치껏 다른 일들을 배워 나갔다. “한 10년 하니까, 대장장이가 갖춰야 할 웬만한 기술은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 곽산대장간 주인 김지명씨는 고향인 평안도 곽산을 대장간 이름으로 썼다. 곽산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에는 모두 ‘山’을 새겼는데 당시 서울에서는 꽤 소문나 있었다. 한씨의 대장장이 기술은 김지명씨로부터 전수받았다. 이 때문에 한씨는 지금도 ‘山’이란 로고를 쓰고 있다. 한씨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가 혼인해 파주 용주골에 정착하자 197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파주 법원리에 있는 ‘법원리대장간’으로 일터를 옮겼다. 당시 25살 청년의 눈에 비친 법원리대장간은 서울의 곽산대장간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시골이라 농기구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일들이었으나 눈치껏 일을 배워 나갔다. 첫 월급은 22㎏짜리 밀가루 4포를 살 수 있는 3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씨의 눈에 동료들이 낫자루 끝을 마무리하는 낫 당개미(나무로 된 낫 손잡이가 쪼개지지 않도록 자루 끝에 끼우는 고리 모양의 쇠붙이)를 몹시 어렵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가며 만드는 것을 보게 됐다. 한씨는 당개미의 재료인 두꺼운 쇠판을 오릴 수 있는 가위를 만들면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낫 당개미 전용 가위를 만들자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고 낫을 생산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빨라졌다. 대장간 주인은 월급을 1만 5000원으로 5배 올려줬다. 그로부터 5년 후 한씨는 인접 마을인 광탄면 신산리 ‘파주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3년이 지나자 이곳의 주인이 됐다. 1970년대 중반 당시 파주에도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셌다.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 수요 역시 급증했다. 닷새마다 열리는 광탄 장날은 대목 중 대목이었다. 장날 하루에만 호미를 2만개나 팔았다.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직원 5명을 두고 일을 했지만 물량을 맞출 수 없어 다른 곳에서 구입하다 팔기까지 했다. 낫도 연간 1만개가량 팔려나갔으며 당시 인근 군부대에 도끼를 비롯한 여러 도구를 납품하기도 했다. “그때가 가장 호황을 누렸지요. 자녀 다섯을 대장간에서 번 돈으로 공부시켰으니까.” 그러나 호황도 잠시.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제초제)이 보급되면서 호미·낫을 비롯한 농기구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큰 기업들이 기계로 찍어 내더니 5년여 전부터는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어 오면서 8000원짜리 호미는 연간 20개, 1만 5000원 하는 낫은 200개 정도만이 팔리고 있다. “중국산 호미가 3000원, 낫이 5000~7000원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호미와 낫을 5배, 2배씩 더 주고 사겠어요? 그렇다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죠.” 요즘도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30~40년 전과 달리 한가롭기만 하다. 워낙 수입이 없어 기계로 만든 다른 철물들도 구색을 갖춰놓고 팔고는 있으나 한 달 수입이 고작 100만원도 안된다. 현실은 이래도 한씨는 한 번도 대장간 문을 닫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불을 지폈던 화덕은 이제 주문이 있거나 광탄 장날에만 가끔 불을 지피곤 한다. “나까지 돈 안된다고 문을 닫으면 한수 이북에 대장간은 아예 씨가 마르게 되는 거예요.”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더 노골적이고 화끈하게…하지만 음탕하진 않아요”

    “더 노골적이고 화끈하게…하지만 음탕하진 않아요”

    “변강쇠와 옹녀가 사랑 놀음(?)을 하는구나. 아이고~장승 팔자 딱해라. 장승들도 그런 거 할 줄 아는데~~.” 마을지킴이 장승들이 공연계를 발칵 뒤집었다. 지난 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다. 화끈한 연기와 위트 있는 입담으로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는 함양장승 역의 우지용(48)과 청석골여장승 역의 나윤영(47)을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만났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18금(禁) 창극의 역사를 연 작품이다. 지난해 6월 초연됐다. 보통 일주일 남짓 공연하던 창극의 틀을 깨고 26일이라는 최장 기간 공연 기록도 세웠다. 연말엔 창극 최초로 ‘차범석 희곡상’ 뮤지컬 극본 부문까지 수상했다. 내년 4월엔 프랑스 3대 공연장 중 하나인 ‘테아트르 드 라 빌’ 무대에도 오른다.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 타령’을 현대적인 감각의 희곡으로 각색, 색골남녀 이야기로 저평가된 작품을 인간미 넘치는 사랑 이야기로 바꿨다. 우지용·나윤영은 “사랑 이야기에 금기의 성(性)이 아니라 재미있는 성 이야기를 더했다”며 “장승들은 옹녀와 변강쇠를 돋보이게 하면서 주요 사건도 이끌어 가고 성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낸다”고 소개했다. 극 중엔 10명의 장승이 나온다. 팔도장승과 이들 장승의 대장인 대방장승, 대방여장승이다. 함양장승은 극 전개의 열쇠를 쥐고 있다. 변강쇠가 나무하러 갔다가 함양장승을 뽑아 집으로 가져와 도끼로 쪼개 불에 태운다. 분기탱천한 팔도장승들은 변강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병을 다 불어넣는다. 변강쇠는 장승들의 벌을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보다 더 화끈한 장승들의 연기와 해학이 극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작년 초연 땐 쑥스러워서 성적인 이야기를 절반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어요. 재연하는 지금은 확실히 감을 잡았죠. 추하지 않은 선에서 더 위트 있게 더 노골적으로 연기합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빵빵 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나윤영) “지난해엔 너무 부끄러워서 옹녀와의 사랑 놀음을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확 달라졌어요. 결코 선정적이거나 야하지 않게, 더 재미있게 18금 연기를 합니다.”(우지용) 군더더기를 다 뺀 점도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불필요한 대사와 장면을 과감하게 정리, 공연 시간도 10~15분 정도 줄여 더 밀도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노래도 한층 더 흥겹게 재정비했다. 극 중 원산과 강경 지역을 무대로 창극단 배우 20여명이 무대에 올라 펼치는 단체 장면이 백미다. 우지용은 “아주 경쾌하고 흥이 절로 나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며 “노래도 원산·강경 지역 민요 특색을 살려 만들었다”고 했다. 팔도장승들이 변강쇠를 끌어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을 집어넣는 장면도 볼만하다. 우지용은 1996년 창극단에 입단, 어린이 창극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다. 나윤영은 1991년 입단, ‘이생규장전’ ‘우루왕’ 등에서 주역으로 활약했다. 둘은 “시종일관 유쾌하다”고 입을 모았다. “집단 장면이든 개인 장면이든 완벽한 팀워크로 서로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돌아갑니다.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끝날 거예요. 빵빵 터지며 웃다 보면 훌쩍 시간이 흘러가 있을 겁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커플” 대박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커플” 대박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한 커플”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래퍼 빈지노와 독일 출신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가 열애설에 휩싸였다. 4일 빈지노의 측근은 한 매체를 통해 “빈지노가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사귀고 있는건 이미 힙합계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빈지노는 자신의 SNS에 스테파니 미초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각별한 사이임을 나타냈다. 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빈지노와 스테파니 미초바의 데이트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1987년 출생의 빈지노(본명 임성빈)는 현재 도끼, 더 콰이엇 등과 함께 일리네어 레코즈에 소속된 래퍼이다. 스테파니 미초바는 독일 출신 모델로 목은정 한복패션쇼 등 한국에서 모델활동으로 얼굴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한 커플”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한 커플”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한 커플”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래퍼 빈지노와 독일 출신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가 열애설에 휩싸였다. 4일 빈지노의 측근은 한 매체를 통해 “빈지노가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사귀고 있는건 이미 힙합계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빈지노는 자신의 SNS에 스테파니 미초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각별한 사이임을 나타냈다. 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빈지노와 스테파니 미초바의 데이트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1987년 출생의 빈지노(본명 임성빈)는 현재 도끼, 더 콰이엇 등과 함께 일리네어 레코즈에 소속된 래퍼이다. 스테파니 미초바는 독일 출신 모델로 목은정 한복패션쇼 등 한국에서 모델활동으로 얼굴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공공연한 사실” 대박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공공연한 사실” 대박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공공연한 사실”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래퍼 빈지노와 독일 출신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가 열애설에 휩싸였다. 4일 빈지노의 측근은 한 매체를 통해 “빈지노가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사귀고 있는건 이미 힙합계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빈지노는 자신의 SNS에 스테파니 미초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각별한 사이임을 나타냈다. 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빈지노와 스테파니 미초바의 데이트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1987년 출생의 빈지노(본명 임성빈)는 현재 도끼, 더 콰이엇 등과 함께 일리네어 레코즈에 소속된 래퍼이다. 스테파니 미초바는 독일 출신 모델로 목은정 한복패션쇼 등 한국에서 모델활동으로 얼굴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테파니 미초바 빈지노 열애 “역대급 여신미모”

    스테파니 미초바 빈지노 열애 “역대급 여신미모”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공공연한 사실”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래퍼 빈지노와 독일 출신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가 열애설에 휩싸였다. 4일 빈지노의 측근은 한 매체를 통해 “빈지노가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사귀고 있는건 이미 힙합계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빈지노는 자신의 SNS에 스테파니 미초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각별한 사이임을 나타냈다. 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빈지노와 스테파니 미초바의 데이트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1987년 출생의 빈지노(본명 임성빈)는 현재 도끼, 더 콰이엇 등과 함께 일리네어 레코즈에 소속된 래퍼이다. 스테파니 미초바는 독일 출신 모델로 목은정 한복패션쇼 등 한국에서 모델활동으로 얼굴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테파니 미초바 빈지노 열애 “역대급 여신미모” 대박

    스테파니 미초바 빈지노 열애 “역대급 여신미모” 대박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공공연한 사실”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래퍼 빈지노와 독일 출신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가 열애설에 휩싸였다. 4일 빈지노의 측근은 한 매체를 통해 “빈지노가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사귀고 있는건 이미 힙합계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빈지노는 자신의 SNS에 스테파니 미초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각별한 사이임을 나타냈다. 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빈지노와 스테파니 미초바의 데이트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1987년 출생의 빈지노(본명 임성빈)는 현재 도끼, 더 콰이엇 등과 함께 일리네어 레코즈에 소속된 래퍼이다. 스테파니 미초바는 독일 출신 모델로 목은정 한복패션쇼 등 한국에서 모델활동으로 얼굴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커플” 닭살애정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커플” 닭살애정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유명한 커플”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래퍼 빈지노와 독일 출신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가 열애설에 휩싸였다. 4일 빈지노의 측근은 한 매체를 통해 “빈지노가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사귀고 있는건 이미 힙합계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빈지노는 자신의 SNS에 스테파니 미초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각별한 사이임을 나타냈다. 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빈지노와 스테파니 미초바의 데이트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1987년 출생의 빈지노(본명 임성빈)는 현재 도끼, 더 콰이엇 등과 함께 일리네어 레코즈에 소속된 래퍼이다. 스테파니 미초바는 독일 출신 모델로 목은정 한복패션쇼 등 한국에서 모델활동으로 얼굴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공공연한 사실”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공공연한 사실”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힙합계 공공연한 사실” 빈지노 스테파니 미초바 열애  래퍼 빈지노와 독일 출신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가 열애설에 휩싸였다. 4일 빈지노의 측근은 한 매체를 통해 “빈지노가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사귀고 있는건 이미 힙합계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빈지노는 자신의 SNS에 스테파니 미초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각별한 사이임을 나타냈다. 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빈지노와 스테파니 미초바의 데이트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1987년 출생의 빈지노(본명 임성빈)는 현재 도끼, 더 콰이엇 등과 함께 일리네어 레코즈에 소속된 래퍼이다. 스테파니 미초바는 독일 출신 모델로 목은정 한복패션쇼 등 한국에서 모델활동으로 얼굴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레임덕’을 넘어서 ‘데드덕’으로 가나/김성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레임덕’을 넘어서 ‘데드덕’으로 가나/김성수 논설위원

    이완구 총리가 물러났다. 자진 사퇴는 없다고 버텼지만 처음부터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였다.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로 꼼짝없이 외통수에 몰렸다. “사정 대상 1호가 무슨 사정을 하느냐”는 성완종씨의 육성은 치명타였다. 하지만 이 총리의 낙마는 자초한 측면이 더 크다. 3000만원을 실제로 받았는지와는 별개다. 해명 과정에서 거짓말을 너무 자주, 또 많이 했다. 성씨와는 친하지 않다고 했는데 20개월 동안 23차례나 만났다. 전화통화만 1년간 210여 차례 넘게 했다. ‘목숨’ 운운한 발언도 경솔했다. 자기가 던진 ‘말의 덫’에 갇혀서 끝내 헤어나오지 못했다. 3월 12일의 부정부패 척결 담화도 뜬금없었다. 검찰을 제치고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왜 총리가 나서서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 건 기자뿐만은 아닌 것 같다. 부패와의 전쟁은 부메랑이 돼서 돌아와 이 총리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됐다. 이 총리가 물러나겠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면서 “검찰은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 주기 바란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남미 순방을 떠나기에 앞서 지난 16일 김무성 대표와 만나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부정부패를 확실히 뿌리 뽑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정치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한 것도 맞다. 그런데 이 총리의 사퇴와 ‘성완종 리스트’에서 불거진 국정 혼란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발언은 대다수 국민이 생각하는 것과는 크게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이 총리가 누구인가. 박 대통령이 임명한 국정 2인자다. 현직 총리가 검은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가 성난 민심에 밀려 물러났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홍준표 경남지사를 뺀 나머지 7명은 총리,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친박근혜 실세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들이 돈을 받았다고 믿는 민심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이 총리를 포함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시도한 정황도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사심이 없다”고 칭찬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성씨를 비서실장이 되고 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관련 증거가 드러나자 말을 바꿨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성씨와 140여 차례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리스트에 오른 실세 중 한 명이라도 돈을 받았다면 정권의 도덕성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남의 얘기를 하듯 거리를 두는 것은 잘못이다. 국정 난맥상을 불러온 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할 충분한 이유다. “(박 대통령이)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다”(이재오 의원)는 지적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송구스럽다는 뜻을 먼저 밝힌 뒤 후임 총리를 구하는 절차는 그 다음이다. 후임 총리도 지금과는 다른 발상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급구(急求), 대한민국 국무총리’라는 방이라도 붙여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작업이다. 2년 2개월 만에 벌써 여섯 번째 총리 후보자를 찾아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레임덕’을 지나 ‘데드덕’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본다. 야권에서는 중립 내각을 구성하자는 요구까지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총리 후보자 5명 중 제대로 총리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 총리는 63일간 재임한 최단명 총리라는 오점을 남겼다. 정홍원 전 총리는 세월호 사고로 사퇴 의사를 밝히고도 후임자들이 잇따라 낙마하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다시 총리가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씨 등 3명은 청문회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후임 총리로 정치인, 관료 출신 이름들이 거론되지만 협소한 인재풀에서 골라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정치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번엔 정파에 얽매이지 말고 도덕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을 발탁하는 건 어떤가. ‘100% 대한민국’이라는 박 대통령의 공약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된다. 위기를 돌파하지 못하고 또 정치 공방에 발목이 잡힌다면 올해가 골든타임인 4대 부문 개혁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물 건너간다. 경기침체가 깊어지면서 살기도 팍팍한데 정치마저 난맥상을 보이면 국민만 더 불행해진다. sskim@seoul.co.kr
  • [허준규의 캠핑 액티비티] 환절기 안전캠핑 위한 팁

    어린이는 부모가 하는 일, 특히 캠프장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아빠가 하는 행위에 대해 상당한 동경심을 갖는다. 아빠가 하는 것은 뭐든 다 잘하고 멋져 보이기까지 하는데, 캠핑을 하고 싶은 이유 중 불장난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예컨대 장작을 도끼질해 불 지피는 아빠의 모습, 그걸 보고 아이들은 자신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따라하기 마련이다. 이때부터 아빠는 ‘슈퍼맨’이 돼야 한다. 적어도 캠핑장에서는 가족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만능 일꾼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 시작은 바로 불을 잘 다루는 것. 실제 가장 많이 필요하고 또 사용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안전사고는 예방이 최선이다. 텐트 안 화기부터 없애자. 대신 체온 유지를 위한 용품 스펙에 신경을 더 쓰자. 우선 슬리핑백. 춘추용이 기본이다. 동계용도 따로 구비하자. 간절기에 아이들에게 유용하다. 무엇보다 충전재 소재와 중량을 잘 조합해 내한 온도를 꼼꼼히 따져 선택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침낭 안에 핫팩을 깔거나 내열용기(수통)에 뜨거운 물을 채워 발 아래 놓으면 훈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텐트 설치도 중요하다. 그라운드시트를 꼭 깔고 이너텐트를 올리자. 매트리스는 발포형이든 에어가 들어간 형태든 열저항값이 3.0 이상 되는 제품이어야 한다. 그래야 영하에서도 견딜 수 있고, 여러 변수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여기에 침낭 커버까지 있다면 아빠들은 아무 걱정 말고 텐트 밖으로 나가시라. ‘오성급, 칠성급 호텔 못지 않다’는 수사는 밖에서 쏟아지는 별과 함께 밤을 보내고 나서 하는 얘기다. 가벼운 찰과상이나 배탈, 설사 등도 자주 일어난다. 소독약과 연고, 소화제 등 응급구조 키트는 필히 챙길 일이다. 통상 주말에 캠핑을 가기 때문에 문을 연 약국이 드물다. 또 하나, 오지로 갔을 때 응급실이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캠프장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정도는 체크해 놓고 움직이자. 가족을 위해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산다’ 티저 예고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산다’ 티저 예고편

    “왜 난 하나도 가질 수 없는 거야?” 박정범 감독의 신작 ‘산다’는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현실에서 더 빼앗길 것 없는 한 남자가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무산일기’를 통해 평단과 관객들에게 작품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은 박정범 감독의 신작 ‘산다’는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2014년)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제67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2014년), 제29회 마르 델 플라타 국제영화제(2014년) 등 15여개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최근 영화의 배급을 맡은 리틀빅픽처스는 ‘산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포스터와 티저 예고편을 최초 공개했다. 공개된 포스터에는 육체노동자인 주인공 ‘정철’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찰나에 포착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끈다. “왜 난 하나도 가질 수 없는 거야?”라는 카피는 주인공의 척박한 현실과 절박한 심리를 전하며 작품의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박정범 감독의 복잡 미묘한 눈빛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주인공 정철이 황량한 숲 속에서 도끼로 나무를 베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티저 예고편은 강렬한 음악과 함께 고도의 노동과 폭력 이미지들이 교차되며 긴장감을 높인다. 또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온 몸으로 돌을 끄는 정철의 마지막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라는 카피와 어우러져 그의 삶에 의문을 갖게 한다. ‘파수꾼’, ‘피에타’, ‘지슬’ 그리고 ‘한공주’를 잇는 묵직한 독립영화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영화 ‘산다’는 오는 5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진 영상=리틀빅픽처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도끼로 동료 중요 부위 내리친 교사, 결국…

    도끼로 동료 중요 부위 내리친 교사, 결국…

    물리 실험을 진행하던 교사가 실수로 동료 교사의 중요 부위를 도끼로 내리찍는 영상이 온라인 상에 올라와 폭소를 자아내고 있다. 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은 ‘물리 선생님이 잘린 이유(How The Physics Teacher Lost His Job)’라는 제목의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상을 보면, 수많은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조 교사가 가슴 위에 콘크리트 벽돌을 올려놓고 땅바닥에 누워 있다. 물리 교사는 “모두 준비됐니?”라고 학생들에게 묻더니 있는 힘껏 벽돌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는다. 그러나 도끼는 벽돌 끝을 스치면서 보조 교사의 중요 부위로 향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아찔한 영상은 미국 오리건 주(州) 포틀랜드의 한 학교에서 촬영됐으며 도끼로 중요 부위를 기습당한 보조 교사는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험을 진행한 물리 교사는 실제로 해고당하지 않았다고 언론은 전했다. 사진·영상=How The Physics Teacher Lost His Job/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부부 싸움 중 가스폭발 … 누가 라이터 켰나

    부부 싸움 도중 방 안에 부탄가스를 유출했다가 이어진 폭발 사고로 아내를 숨지게 한 남편이 항소심에서 감형됐다. 누가 라이터를 켰는지 1심과 엇갈린 판단이 영향을 끼쳤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는 가스유출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모(50)씨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31일 밝혔다. 지난해 3월 경기 의정부의 반지하 주택에서 부탄가스 폭발로 인한 화재가 일어났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한 김씨가 자신의 추궁에 아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일회용 부탄가스 용기 12개를 안방으로 가져와 손도끼로 내리찍었다. 김씨가 잠시 거실로 나온 뒤 라이터 불로 인한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 부부 모두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내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재판에서 가스 유출 책임은 시인하면서도 “아내가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켰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사망한 아내에게 화재의 책임을 돌리고 있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사건 당시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과 소방관에게 자신이 라이터를 켜 화재가 발생했다고 진술했는데, 그가 특별히 거짓 진술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갑작스러운 가스 폭발로 심한 화상을 입어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관이 화재 원인을 추궁하자 엉겁결에 자신이 라이터를 켰다고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망한 아내의 부상 정도가 심한 점을 볼 때 아내가 라이터를 켰다는 의심도 든다”고 설명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그가 남긴 어록들 “내 가방에 손도끼 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그가 남긴 어록들 “내 가방에 손도끼 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 만큼이나 다양한 어록을 남겼다. 특히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까지 나라의 경제 기적을 일군 지도자인 그의 어록에는 배불리 먹기 위해서는 권위적 통치가 불가피하다는 정치관이 짙게 녹아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여론조사에 대해 “나는 결코 여론 및 지지도 조사 등에 과도한 관심을 갖거나 집착하지 않았다”면서 “그렇다면 약한 지도자일 뿐이다. 지지율 등락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도자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어느 자리에서는 권력 쟁취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아도 된다는 16세기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될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될지 사이에서 나는 늘 마키아벨리가 옳다고 믿었다”며 “아무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의 의미없는 존재”라고 단언했다. 이처럼 골수 마키아벨리즘 신봉자였던 리 전 총리는 정적에 대해서도 “ 말썽꾼을 정치적으로 파괴하는게 나의 일”이라며 “내 가방 안에는 매우 날카로운 손도끼가 하나 있으며 만약 말썽꾼과 겨루게 된다면 나는 손도끼를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리 전 총리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집과 의료, 직장과 교육’이라고 강조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경시하는 태도도 가감없이 드러내곤 했다. 31년간 철권을 휘두른 사실상의 독재자인 리 전 총리도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가 2010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하자 “그녀 없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될 것이다. 다만 그녀가 89세의 인생을 꽤 잘 살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겠다. 하지만 마지막 이별의 이 순간 내 마음은 슬픔과 비탄으로 무겁다”며 절절한 사부곡(思婦曲)을 감추지 않았다. 또 싱가포르의 국부로서 민족주의자의 면모도 수시로 드러냈다. 그는 대영제국과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통치를 번갈아 경험한 뒤 “강대국들에 갇힌 국민이 살아남기위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알게됐다”며 “어느날 영국이 요지부동의 주인이더니 다음 날은 우리가 왜인이라고 놀렸던 일본이 근시안적 편견으로 싱가포르 국민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리 전총리는 특히 2차 세계대전후이 끝나고 일본이 항복한 뒤 영국군이 싱가포르를 재탈환하자 “대영제국에 대한 복종과 존경이라는 옛 관습은 이제 사라졌다. 영국이 일본에 쫓겨 짐을 싸 도망가는 것을 싱가포르 국민이 봤기 때문이다. 더이상 영국과 싱가포르간 옛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냉정한 현실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S도 벌벌...’태권도 선수’출신 ‘이라크 람보’ 화제

    IS도 벌벌...’태권도 선수’출신 ‘이라크 람보’ 화제

    전세계인들이 이슬람국가(IS)의 잔악한 행위에 충격을 받고있는 최근, 그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한 남자가 언론에 보도돼 화제에 올랐다. 현지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그의 이름은 이라크 시아파로 구성된 민병대인 이맘 알리 여단을 이끄는 아부 아즈라엘(40). 현재 IS에 맞서 총을 들고 있지만 한때 그는 대학 강사 출신으로 이라크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였다는 확인되지 않은 현지 보도가 나올 만큼 유명세를 얻고있다. 과거가 어떻든 아즈라엘은 지금 IS에 맞서는 대표로 우뚝 서 각종 홍보 포스터에 모델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의 페이스북은 무려 20만 '좋아요'(like)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얻고있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도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만든다. 한 손에는 소총을, 또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으며 또 한 포스터에는 당장이라도 적의 목을 벨 듯 장검을 들고있다. 그가 어떤 계기로 과거를 버리고 IS에 맞서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지언론은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IS로 부터 시아파인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현지언론은 "아즈라엘이 이끄는 민병대가 최근 이라크군과 더불어 티크리트 탈환작전을 펼치고 있다" 면서 "'이라크의 람보'로도 불리는 그의 가세로 시아파의 사기가 한층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한편 현재 이라크군과 시아파 민병대 등은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티크리트를 탈환하기 위해 IS측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IS도 벌벌…태권도 선수출신 ‘이라크 람보’ 화제

    IS도 벌벌…태권도 선수출신 ‘이라크 람보’ 화제

    전세계인들이 이슬람국가(IS)의 잔악한 행위에 충격을 받고있는 최근, 그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한 남자가 언론에 보도돼 화제에 올랐다. 현지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그의 이름은 이라크 시아파로 구성된 민병대인 이맘 알리 여단을 이끄는 아부 아즈라엘(40). 현재 IS에 맞서 총을 들고 있지만 한때 그는 대학 강사 출신으로 이라크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였다는 확인되지 않은 현지 보도가 나올 만큼 유명세를 얻고있다. 과거가 어떻든 아즈라엘은 지금 IS에 맞서는 대표로 우뚝 서 각종 홍보 포스터에 모델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의 페이스북은 무려 20만 '좋아요'(like)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얻고있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도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만든다. 한 손에는 소총을, 또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으며 또 한 포스터에는 당장이라도 적의 목을 벨 듯 장검을 들고있다. 그가 어떤 계기로 과거를 버리고 IS에 맞서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지언론은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IS로 부터 시아파인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현지언론은 "아즈라엘이 이끄는 민병대가 최근 이라크군과 더불어 티크리트 탈환작전을 펼치고 있다" 면서 "'이라크의 람보'로도 불리는 그의 가세로 시아파의 사기가 한층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한편 현재 이라크군과 시아파 민병대 등은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티크리트를 탈환하기 위해 IS측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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