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美 카네기멜론大 로봇 공학 연구소
그는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자연이 물을 타고, 기계를 과신해 온 인간에게 복수를 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문명이 자연과 공존하고, 인간성을 찾지 않는다면 결국 의미없이 발전하다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이 인간의 윤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은 인류 역사 이래 지속돼 왔다. 특히 근대에 접어들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기술과 문명은 ‘인간복제’,‘냉동인간’,‘로봇’ 등 상상속에서나 존재하던 일들을 현실의 영역으로 가시화시키고 있다. 현재 인류의 과학기술은 어디까지 와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것인가? 환경주의자들의 말처럼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한국과 미국, 유럽 등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과 이에 따른 인간 윤리의 위기를 살펴봤다.
|피츠버그·보스턴 박건형특파원|문을 열고 복도에 들어서자 카메라가 달린 네모난 모니터 속에서 장난스럽게 생긴 캐릭터가 인사를 건넨다.‘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캐릭터는 자신을 ‘탱크’라고 소개했다. 탱크는 미국 피츠버그에 자리잡은 카네기멜론대학(CMU) 로봇공학 연구소의 마스코트다. 건물 안내는 물론 센터 소개, 사람들을 찾는 일까지 탱크에게 물어보면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 준다. 탱크를 만들어낸 기술은 그래픽 기술과 시각인식 등 두 가지뿐이지만 탱크와 만나는 방문객은 첨단 기계를 접했을 때와는 다른 훈훈한 감동을 받는다.
●현재 로봇공학은 1980년 컴퓨터공학 수준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전투를 하거나 완벽한 인간의 모양을 갖춘 로봇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근무하는 사람들 모두 언젠가는 그런 로봇이 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일하고 있습니다. 탱크 역시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인간적인 마음을 담았다는 점에서 연구소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공동연구를 위해 CMU에 머물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동환 박사는 로봇 연구가 조금씩이지만 꾸준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로봇은 어느 한 사람의 천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문가들이 각자 맡은 분야를 발전시켜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라며 “한 분야가 빨리 발전한다고 해도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단순한 기계 이상의 것을 이룰 수 없다.”고 설명했다.
CMU는 세계 최고의 로봇연구소로 꼽힌다. 전 세계 100여개 대학과 연구소들이 CMU에 직원을 파견해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애쓸 정도로 다양한 연구 분야를 갖고 있다. 지난 몇년간 CMU가 발표한 로봇만 해도 짐 나르는 로봇 수송병 ‘빅독’, 삼키는 의학용 로봇, 휴머노이드(인간을 닮은 로봇) ‘덱스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연구팀을 수시로 바꾸며 원하는 분야를 보강해 나간다.‘벽 없는 연구’야말로 중소대학인 CMU가 전 세계 최고의 로봇공학연구소로 발돋움한 이유다.
김 박사는 “인간을 닮은 로봇은 아직까지 기초 단계에 불과하지만, 기능 위주로 만들어진 상업용 로봇은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는 것이 로봇개발자들의 생각”이라며 “현재의 로봇공학의 위치가 1980년대 컴퓨터공학이 가졌던 위치쯤이고, 조만간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고 밝혔다.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며 인간이 다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로봇은 1조항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1,2조항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A.I.’,‘아이, 로봇’ 등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로봇 3원칙’은 1942년 미국의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실제 공학도들의 도전을 이끌어냈던 아시모프는 로봇이 언젠가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나중에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로봇 3원칙’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작품 ‘아이, 로봇’은 로봇 3원칙이 무너질 경우 어떤 불행을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아직까지 아시모프의 3원칙이 무너질 만큼 로봇기술은 발전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로봇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를 절대적인 수칙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표준원 역시 2006년 로봇의 KS표준을 만들면서 이 원칙을 사용했다. 로봇 3원칙은 언젠가는 다가올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로봇에 대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로봇의 인간 대체 가능성은 아직 없어
그렇다면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전쟁용 로봇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을 위협할 가능성은 있지만, 로봇이 지구를 지배할 위험은 극히 낮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무엇보다 진화의 다음 단계로서 인간을 대신할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세계휴머노이드 조직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민첩한 동작과 동력, 두뇌, 감성, 자율성 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력이 발달해 이를 모두 갖추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특히 로봇이 스스로 번식을 하거나 진화를 하는 일은 이 모든 것을 갖추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다만 로봇을 이용한 위협은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MIT미디어랩에서 로봇공학을 연구하는 휴 헤르 교수의 목표는 인간과 로봇의 공존인 ‘사이보그’다. 지체장애자인 그는 인간의 부족한 신체부분을 보조하는 장치를 만들어 현실속에서 ‘600만달러 사나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디어랩 관계자는 “헤르 교수의 연구에 대해 강력한 힘을 가진 군인이나 무기로서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로봇 자체의 발전속도에 대한 낙관도 여전히 존재한다.CMU 로봇공학연구소의 한스 모라벡 박사는 “반도체의 집적도가 18개월마다 두배로 늘어나는 만큼 2040년이 되면 인간처럼 생각하는 로봇도 나올 수 있다.”며 “이 같은 일이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로봇을 만드는 사람의 철저한 윤리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itsch@seoul.co.kr
■ “로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감정 가질 수 없을 것”
‘로봇 뇌’ 전문가 세바스찬 승 MIT 교수
|보스턴 박건형특파원|로봇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자유롭게 행동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로봇은 ‘휴보’처럼 걷거나 ‘마루’처럼 춤을 추는 일이 고작이다. 체코어의 ‘일한다(robota)’는 뜻으로, 차페크의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로봇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후 100여년이 지났지만 로봇의 발전 속도는 왜 이렇게 더딘 것일까?
로봇 연구자들은 로봇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모든 학문의 집합체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로봇 연구를 위해서는 기계공학자뿐 아니라 물리학, 화학 등 기초 학문부터 뇌과학, 전자·전기·재료공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학분야의 지식과 기술개발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인간적인 사고 연구를 위해 심리학과, 사회학 등 인문학도 동원돼야 한다.
국내외 로봇 연구자들은 이중 가장 발전이 더딘 분야로 ‘로봇의 뇌’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서는 뇌가 필수적이지만 아직 과학자들은 뇌의 외곽만을 맴돌고 있다.MIT 뇌 및 인지과학자 세바스찬 승(41) 교수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최전선에 있다. 그가 개발한 ‘신경컴퓨터’는 사람의 뇌 속 뉴런의 연결을 모방한 형태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승 교수는 “스파게티처럼 얽혀 있는 신경세포들의 연결선을 밝혀내는 것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과제”라며 “각각의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컨넥톰’이라는 뇌신경 연결지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로봇의 뇌를 연구하는 수단으로는 크게 컴퓨터를 고도화해 뇌의 복잡성에 접근해 나가는 전통적인 방식과 승 교수가 주도하는 뇌를 먼저 이해해 컴퓨터의 설계에 적용하는 계산신경과학 등 두가지가 있다. 승 교수는 “컨넥톰이 먼저 뇌를 구현할지 아니면 컴퓨터가 발전해 뇌의 기능을 갖게 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두 가지 방법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후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 로봇을 만드는 기계공학과, 컴퓨터를 연구하는 전기공학과, 뇌 자체를 연구하는 기초의학 등 다양한 분야와 협동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승 교수는 컨넥톰이 완성되더라도, 로봇이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 감정 등을 가질 우려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컨넥톰은 신경해부학자들이 100년 이상 연구했지만 밝혀내지 못했던 뇌의 문제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고,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일에 불과하다.”며 “정해진 사고방식에 따라 논리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드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감정을 가진 로봇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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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미래기획부 손성진부장(팀장)·이도운차장·류지영·박건형·정현용기자, 도쿄 박홍기·파리 이종수특파원, 국제부 박홍환차장, 사회부 안동환·이재연기자 문화부 박상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