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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한파(외언내언)

    「골프 망국론」을 펴오던 한 저명인사가 어느 계기엔가 골프를 배운 다음에는 「골프광」이 된 사례가 있다.그 사실을 두고는 「지식인의 2중인격」운운하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달리 표현하자면 그만큼 골프라는 것이 재미있다는 말이기도 하다.어찌 재미뿐이겠는가.오염된 공기에 찌든 도시민으로서는 맑은 대기와 탁 트인 평원에서 호연지기를 숨쉰다는 기쁨도 크다고 할 것이다. 「망국론」의 근거는 무엇이던가.미국처럼 땅덩이 넓은 나라라면 몰라도 우리같이 땅덩이 좁아 유택 걱정 해야 하는 나라에서 장소를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더구나 대중화하기가 요원한 현실에서 아무래도 「귀족놀음」이 되기 쉽고 그럴 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위화감을 심는다는 것도 이유이다. 사실,오는 6월 개장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최대」라는 관사가 붙는 「코리아CC」의 경우 부지가 33만평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몇천만원씩 한다는 회원권도 그렇다.같은 하늘을 이고도 셋방살이하는 서민들로서야 그런 회원권 몇장씩 가진 사람이「보통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그렇건만,자금난등으로 공사중단한 곳이 있는데도 올해 새로이 22개 골프장이 문을 연다고 할 만큼 열었다 하면 되는 장사가 골프장이었다.22개가 추가될 때 「좁은 땅덩이」의 골프장 수는 83개로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사정한파에 골프장 경기가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어 오고 있다.한데도,새 정부의 개혁의지를 옛날의 그것으로 경시하는 쪽에서는 「일과성 태풍」쯤으로 착각하기도 한다.그런 터에 엊그제 김영삼대통령은 『나는 내 임기중에 골프는 치지 않을 것』이라고 언명했다.그에 따라 골프장에는 꽃바람 아닌 찬바람이 설상가상으로 불듯싶다.쯧쯧.골프장은 불어난다는데….치고싶은 사람은 치는거지,눈치 보면서 못치는 것은 자기의지로 안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 흠집내기(외언내언)

    남을 비방하기는 쉽다.그것은 마치 전염병과도 같다.한 사람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한마디씩.그 한마디가 차츰 눈덩이처럼 커져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눈앞에서 보고듣고 겪은 것처럼 구체성을 띠어간다. 비란하는 사람은 마음에 두지 않고 무심하게 던진 말일지라도 그 말이 새끼를 치고 갈래를 이루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파국을 초래할 수 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하물며 악의에 찬 비난은 말할 것도 없다. 새정부의 사정활동이 강화되자 행정기관이나 사직당국에 특정인을 중상모략하는 고소 고발 투서와 전화가 빗발치는 모양이다.전에는 한달에 10여건에 지나지 않던 투서가 요즘은 하루에 20여건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하나의 비이사실을 알고 그것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면 이는 무고성 음해못지 않게 비겁하기 짝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적 감정이나 사업상의 갈등을 비리로 포장해서 남을 모함하거나 흠집을 내려는 풍조는 인간대 인간의 불신을 조장하는 요인이 된다. 사정 한파가 몰아치자 구설수에 말리고 싶지 않은 공직자 가정에서는 요즘 파출부를 쓰지 않거나 내보내기에 바쁘다. 많지않은 식구에 파출부를 쓰고 있다는 자체가 구설의 빌미도 되겠지만 「주전자 하나도 수입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집에 드나들면서 집안일을 돌봐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람까지도 못믿게 되었다.이런 식으로라면 사회에 나가 옆에 앉은 직장동료까지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될지 모른다. 중상과 모략에 대응하는 것은 「침묵」이나 「경멸」이다.지나치게 비방을 의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이 남을 비방하지 않는 자라면 남을 음해하는 그 모습을 이미 「비패」로 바라보기 때문이다.결국 가장 상처를 입는 자는 비방한 자이다.의욕적인 새 정부아래서 불신 풍조가 「찬물」이 되지 않기를 함께 기대해본다.
  • 연극배우 최종원씨(이세기의 인물탐구:20)

    ◎혼신다해 역동적 연기하는 “진짜 배우”/주어진 역할에 정열바쳐 특유의 개성표출/「리어왕」서 고뇌하는 내면연기로 주목받아/갖가지 삶의 모습 소화해내며 끝없는 연기변신 시도 거칠고 투박하다.솔직하고 꾸밈이 없다.불같고 칼같은 그의 성격상 중용과 중도를 지키는 모호한 태도는 맞지않는다.기백과 의리,정의감과 정열로 뭉쳐진 연극배우가 최종원이다. 아직은 들판에 풀어논듯한 포효와 폭만이 도사려보인다.그러나 탁탁 부러지기보다 불에 달군 쇠처럼 강인함이 돋보인다.부러지는듯 휘어지고 휘어졌다가도 제자리에 돌아와 설줄아는 투지,꿋꿋한 자존심이 그의 대명사다.만사에 주저함이 없다.한다면 한다.연기를 할때도 몸을 사리지않고 전신을 던진다. TV출연 때문에 연극연습에 소홀한 선배나 후배를 보면 연극만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연극을 그만두어 줄것을 당당히 요구한다.TV인기,연기보충처럼 연극에 참여하는건 연극모독이자 관객모독,처럼부터 연극할 자격도 없다고 못박는다. 또 연출자나 제작자에겐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끌어낼수 있을만큼 완벽하고도 만족한 여건을 갖춰달라고 말한다.그는 언제 어디서나 연극배우의 입장에서 배우의 권한을 옹호하고 주장한다. 한때는 연기자그룹을 발족하고 초대회장이 되어 본격적으로 배우들의 출연료 계약문제를 연극계에 제기한적도 있었다. 91년 연극의 해를 위한 모임에서는 그동안 창작극 활성화와 극단 지원 결과 과연 그 성과가 어땠는가를 따져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그때도 그자리에서 막연하게 단체를 지원하여 지원금의 효력을 희석시키기보다 한사람의 연기자를 집중적으로 지원해보는 방법을 고려해보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식으로 열성적으로 연극무대를 지켜왔다.20년간 1백여편,아마도 그처럼 많은 연극에 출연한 배우도 드물 것이다.최종원이 끼지 않으면 연극이 안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주어진 무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게 밀착하여 그는 이미 「최종원 특유의 색깔과 체취가 물씬 풍기는 살아있는 연기」를 구사한지 오래다. 최종원의 출생과 성장기는 마치 일부러 설정해놓은 무대와 인물구성처럼 파란만장으로 점철되어있다.그것은 어쩌면 소설이나 연극보다 더 가파른 삶의 진실이라 할수 있다. ○탄광촌서 유년기 보내 강원도 태백,광부의 8남매중 막내.태백공고 졸업후 그는 그의 부친이나 형들처럼 함태 탄광에서 탄분석기사로 일한적이 있다. 이 일을 하기위해 3개월동안 갱(갱)속에서 생활하는 연수기간을 거쳐야했다.그리고 3개월 연수를 끝내고 갱속에서 나오던날,동료중의 하나가 지하로 떨어져 죽는 슬픔을 눈앞에서 겪었다.그는 동료의 시체를 찾아내겠다고 울부짖었다.그러나 수직 6백m 지하로 떨어지면서 비좁은 갱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을 시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낼수 없었다. 동네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이 죽어나갔다.곡소리가 그칠날이 없었다.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은 부인네들의 통곡소리,이런 생활에 지쳐 걸핏하면 보따리를 싸들고 도망치는 가족들,남자들은 대낮부터 술상에 둘러앉아 탄가루에 찌든 목을 술로씻어 내렸다.슬픔은 차라리 사치임을 그는 어린시절에 진작 터득하고 있었나보다.어머니에게 손목을 잡혀초상집에가면 어른들은 술마시고 어린애들은 떡이나 국수를 얻어먹는다.청소년기에는 남의 상가에 가서 상여메는 일을 도맡다시피했다.상여를 멨던 광목한필을 얻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도 나무도 심지어는 빨래줄에 널린 빨래까지도 온통 검은색 뿐인 묵화같은 탄광촌,그는 둘째형이 메탄가스로 질식사하는 사고를 겪은후 더이상 참지못하고 고향을 탈출했다.술집외상,싸움질,비통,울분,가난과 무기력이 집합된듯한 극지의 땅을 떠나지않는한 타고 태어난 운명적 비극을 모면할수 없을것 같았다. 그는 집을 떠나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던 손위 누이의 자취방에 얹혀살았다.농무가 눈앞에 쌓인것처럼 막막할뿐,대책도 목적도 없었다.평소 연극을 좋아하던 누이가 갑자기 「연극을 해보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연극이라면 고등학교때 박종화원작의 「금삼의 피」를 해본적이 있었다.그때 맡았던 「연산군」이 미련처럼 내면에서 꿈틀거렸다.그러나 배고픈 그에겐 연극은 너무나 한가한 소리였다.몇달을 빈둥거리다가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전)에 입학원서를 냈다. 면접하는 날 동랑 유치진선생이 『자네는 왜 연극을 하려는가』고 물었다.그는 대뜸 「연극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연극을 위해서 왠지 자기자신이 필요한 존재일 것 같았다.남다른 경험을 요구하는 연극무대에서 그는 끝내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70년,전국대학생극협의회가 주최하는 연극 「콜렉터」로 정식 데뷔,그때 협의회 자문으로 있던 유현목 하길종감독이 그의 연기의 가능성을 인정해주었다.그는 차츰 연극무대에 침몰되어갔다.의사 형사 주정뱅이 농부 공사판 감독에서 백만장자 워벅스,무기력한 세일즈맨,에쿠우스와 햄릿,방화범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연기변신을 시도해나갔다.연극평자들로부터 「좋은 재목」「탄탄한 연기자」「능란하고 현란한 연기구사」로 평가되기도 했다. ○70년 「콜렉터」로 데뷔 그러나 모든 역할이 그때마다 절실하게 밀착되는건 아니었다.전혀 엉뚱하고 생소하여 접근이 불가능한 역할은 얼마든지 있었다.83년 안민수연출의 「리어왕」이 그랬다.오랜만에 동랑의 연극에서 타이틀 롤을 맡게됐으나한달반의 연습이 지났는데도 도무지 연기 이미지가 포착되지 않았다.하나의 역할을 끝내고 또다른 새로운 성격을 몸속에 채워야한다.그러나 리어의 모습은 아득한데서 맴돌뿐 이에 탐닉되지 않았다.그는 이 역할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최종원의 잠재된 수많은 가능성을 간파하고있던 연출자는 오히려 그에게 1주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리어는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한 가정에 가장이 있고 회사에는 사장이 있듯이 그는 한나라의 왕이다.너무 부담갖지 말라』고 위로했다.리어왕의 고뇌와 갈등이 전광처럼 뇌리를 스쳤다.결국 「리어왕」은 최종원의 내면연기를 끌어낸 화제작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무슨일에든 망설이는 법이 없다고 했으니 시시때때로 연극이냐 생활이냐,연극에 대한 회의에 시달렸다.연극의 열성만큼이나 다른 일을 했다면 그도 남들처럼 풍요롭게 살수 있었을 것이다.아무리 온몸을 던져 무대를 지켜도 느는건 눈덩이처럼 커지는 빚뿐이었다.연극을 할수록 가난의 공동은 깊이 패어갔다. 연극초기때부터 줄곧 살고있는 명륜동3가 언덕바지에서 부부(부인 정영애씨)와 딸 둘(고1,중3)네식구가 전셋집을 전전하면서 그는 10원을 아끼기 위해 연탄을 직접 날라다 쓴적도 있다.생활때문에 어쩌다 1년에 한두편 TV베스트셀러극장이며 「마유미」등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그의 연극보다 TV나 영화출연을 더 좋아하는 것에 그는 위기감을 느꼈다. 『당신은 연극배우의 아내다.나는 처음부터 연극배우였다.이를 전제하고 결혼했었다』고 단호하게 못박았다. 가족들이 불편해 하더라도 그는 연극을 포기할 순 없었다.다른 동료들처럼 TV나 영화로 돌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다.연극은 천직이고 다른일은 생계수단에 지나지 않았다.85년이후 TV출연을 일체 끊어버렸다. 연극무대를 지키는 배우는 드물다.자신의 직업에 자랑스러움과 긍지를 갖게된 그로서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관객들이 두시간전부터 극장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일본 연극계가 부러웠다.그는 뜻맞는 동료를 만나면 배우들의 의식개혁을 부르짖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삶을 다양하게 비쳐보는 연극의 매력,어떤 예술과도 견줄수 없다.인간이 전신으로 할수 있는 총체예술은 연극의 수단을 능가할 수 없다고. ○작년 「극발전연」 발족 지난해 그는 연극계의 선배이자 존경해온 연기자인 전무송과 의기투합,순수연극을 지향하는 극발전연구회를 발족하여 첫무대로 이강백작 김광림연출의 「북어대가리」를 동숭동 성좌소극장에 올렸다. 자신의 주어진 삶을 한치의 오차없이 지키려는 창고지기 전무송과 갇혀진 창고속의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출을 꾀하려는 최종원의 거칠고 절박한 모습에는 그 옛날 탄광촌을 벗어날 때의 몸부림이 실려있어 보는이의 가슴에 전율같은 감동을 흐르게 한다. 더구나 23년간 기다려온 대선배 전무송과의 연기대결은 「연염의 조화」에 비유될만큼 그의 성숙을 확인시켜주었다. 이제 어떤 역할에든 책임져야 하는 위치. 심장의 고동소리까지도 생생하게 객석에 전달하고 싶어하는 그의 정열은 모든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이긴 투지의 결정에 틀림없다.머리카락 한올 까지도 혼신을 다해 역동적으로 연기해내는 배우가 우리에게도 있음을 연극계는 물론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 모두는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연보 ▲1949년10월 강원도 태백 출생 최석담씨(84)와 김옥녀여사(85)의 4남4녀중 막내 ▲67년 태백공업고 광산과 졸업 ▲68년 함태탄광 탄분석기사 ▲69년 상경,서울 연극학교 (현 서울 예전)연극영화과 입학 ▲70년 서울연극학교 학생회초대회장 ▲〃 전국 대학생 극 협의회 주최 연극 「콜렉터」로 데뷔 ▲〃 수재민 돕기 지방공연 「점을칩니다」 1팬,「교행」 「춘향전」 ▲71년 재경 강원도 학우회주최 연극 「형제」로 강원도 일원 공연 ▲77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공연(이진순연출 「북벌」) ▲83년 연기자그룹창립(초대·2대·8대 회장역임) 85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연극영화과 졸업 87년 극단 부활과 이재한작·연출 「배비장전」 미국지역 45일간 순회공연 89년 영화 「마유미」 촬영차 도미 ▲90년 서울연극제 「아버지바다」 개인연기상 수상기념 뉴욕 연수 ▲91년 「연극의해」 기획위원▲〃 배우협회 창립(창립기념공연 윤대성작·정일성연출 「출세기」) ▲92년 일본동경 다이니아이리스 페스티벌 참가(김상열작 「길」) ▲현재 한국연극협회이사·극예술발전연구회 창립멤버(전무송과 발족) 「거룩한 직업」「어린왕자」「달집」「우회」「베니스의상인」「방화광」「노부인의 방문」「날개」「동물원이야기」「그리고 리어든양은 마시기 시작했다」「탱고」「검찰측증인」「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리어왕」「내·물·빛」「에쿠우스」「햄릿」「밤의묵시록」「신화1900」「욕망이라는이름의전차」「꽃을 사절합니다」「지금은 부재중」「티타임의 정사」「세일즈맨의 죽음」「환타스틱」「심판」「출구없는방」「애니」「만리장성」「아가씨와 건달들」「매춘Ⅱ」「헬로 미스터후라이데이」「하나를 위한 이중주」「기막힌 사내들」「아버지바다」「토선생전」「살로메」「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랴」「락스트리트」「그리운 앙트완느」「마네킹의축제」「변신」「격정만리」「길((욕)」「아침부터 자정까지」등 앙코르공연외 초총공연만 100여편이상,현재 「북어대가리」공연중.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마유미」「꿈」「나의아내를 슬프게 하는것들」등…. 영화연극상·서울연극제개인연기상·동아연극상대상·서울극평가그룹상
  • 신라때 조성 야철지/강원 양양군서 발견

    【양양】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 산50 구룡령 기슭에서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야철지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교원대 박물관장 정영호박사(65)가 14일 현장을 답사,확인한 이 야철지(광석에서 철을 골라내고 정제해 각종 철제연모를 만들던 터)는 갈천리 갈천계곡의 구갈천교와 신갈천교 사이 남쪽 기슭 언덕에 용암 처럼 생긴 무쇠덩이가 직경 1.5m 가량의 원형으로 둘러쳐진 형태로 발견됐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발굴된 고대의 야철지는 경남 창원공단 및 울주 치눌령,충북 중원등 3곳으로 강원도내 동해안에서 이같은 야철지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6)

    ◎지상의 생지옥:라/함경도 월광령 99고개 넘어 수용소에/멀미하는 9·6살 철부지 밤새 운송/살아선 못건넌다는 「마의 입석천」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수용소로 끌려가던 날,「죽음의 고개」를 넘던 날의 황당했던 경험은 지금까지 아픈 기억으로 가슴에 못박혀 있다.우리 앞에 잔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철부지는 훗날 얼마나 가혹한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던가. 처음 보는 산과 나무들은 9살밖에 안된 어린애에겐 가슴설레게 하는 것들이었다.울창한 숲,맑은 내,신기한 나무와 꽃들은 한여름의 정취를 흠뻑 담고 있었다.북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평양.그곳 중심지에 있는 「교통소아파트」에서 살아온 나에겐 그런 모든 풍경들이 신기했을 뿐이었다. 이삿짐을 실은 소련제 트럭도 그랬다.간단한 짐 속에 끼어 한없이 산길을 달리는 기분은 어린 나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그땐 차도 흔하지 않았을 뿐더러 소련제 트럭을 한번 타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평양을 떠나 꼬불꼬불한함경도 산길을 달릴때만 해도 철모르던 나와 동생은 이러한 기분에 휩싸여있었다.『야,저런데서 고기잡고 놀면 재미있겠다』 우리에겐 그때가 여름방학이었다. 그렇게 6∼7시간을 달리다 보니 해가 지고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들었다.울퉁불퉁한 황톳길을 마냥 달린 탓인지 「좋아라」하던 동생은 언제부터인지 심한 차멀미에 시달려 얼굴이 창백했다.나도 견디지 못해 토하기 시작했다.소련제 트럭은 이에 아랑곳않고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켠채 한없이 산속을 향해 달려만 갔다.『우리 집에 다시 가자』 6살박이 동생이 기어코 울음을 떠뜨렸고 엄마를 찾았다.엄마는 우리가 끌려오기 달포전 『출장을 간다』며 집을 떠나 우리와 동행하지 않았다.뒤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혁명열사의 딸로 분류된 어머니는 반동인 아버지와 이미 강제이혼 당해 우리 곁을 떠난지 오래였다.그것도 모르고 나와 동생은 그 엄마를 찾은 것이다. 소련제 트럭은 아무 것도 보이지않은 산길는 계속 뒤뚱거리며 앞으로 나가기만 했다.인가의 불빛은 물론 지나치는 차조차 없었다.그저 어둠뿐이었고 소련제 트럭이 내는 굉음이 전부였다.참다못한 할머니와 아버지가 『애들이 다 죽는다』며 앞좌석에 탄 책임자같은 사람에게 조금만 쉬어갈 것을 간청했다. 깡마른 체구의 책임자는 인상이 참 험상궂고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허리에 권총을 찬 그는 『거의 다왔다』고 톡 쏘아붙인뒤 더이상 말이 없었다.할머니는 우리를 껴안으며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말도 제대로 못이었다.그저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만을 훔치고 있었다.그때서야 나는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어 가는 구나」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언제부턴지 차의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져 걷는 것보다 조금 빨라보였다.길도 겨우 트럭이 지나갈만 만큼 좁았고 거기다 가파른 경사였다.수도 없는 모퉁이를 따라 도느라 트럭의 뒤뚱거림은 한결 심해졌다.움푹 패인 웅덩이로 이어진 듯한 길옆을 자세히 보니 깎아지른듯한 벼랑이었다.자칫 굴렸다하면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아흔 아홉고개,북에선 「죽음의 길」로 통하는 정치범수용소로 통하는 월광령 고개에 다달은 것이다.산등성이 너머로 방향을 바꿔가며 이쪽 저쪽을 비추는 희미한 불빛이 아스라히 보였다.그 서치라이트 속에서 내가 10년을 갇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꿈에나 알았겠는가. 어렵사리 고개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길고 두꺼운 나무 차단기가 설치된 초소에서 보위원들이 우리 가족을 검문했다.소련제 트럭운전사는 아버지가 준 일제시계를 뇌물로 받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우리는 3개의 초소를 더 거쳤다.그때마다 보위부원들이 물건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이삿짐은 한결 가벼워졌다. 길솟은 풀숲 사이를 헤치고 나서니 그림책 속에서 본것과 비슷하게 생긴 「귀틀집마을」이 나타났다.사방은 숲으로 우거진 칼날같은 산이 에워싸고 있고 곳곳에 깊은 소가 있는 폭 10여m쯤의 강이 마을을 에워싸듯이 흐르고 있었다.살아선 건널수 없다는 「마의 입석천」이었다.마을 앞에 난 가느다란 둑이 이 강을 건너는 유일한 통로였다. 배정받은 흙벽집에 짐을 풀어놓으니 어느새 먼동이 떠 올랐다. 수용소 생활에서 죽음같은 고통이 뒤따를 때마다 나는 월광령 너머,입석천 건너의 세상을 언제나 꿈꾸었다.그리고 끌려오던 날이 꿈속에 나타나는 가위눌림에 몸부림쳤다.
  • 삼국시대 대규모 주거지 발견/대구 욱수동

    ◎도로 등 「도시계획」 따라 조정 【대구=남윤호기자】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 택지개발지구에서 삼국시대(5∼7세기)도시계획에 따라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주거지가 발견됐다. 지난해 8월부터 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해 온 영남대발굴조사단(단장 권이구)은 11일 유구예상지역 1만5천여평 가운데 4천5백여평에서 삼국시대 주거계획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도로·연못·우물·건물지 등 대규모 취락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유구지역에는 직경1m,깊이 2·4m의 우물 10개가 30여m 간격으로 나란히 축조돼 있으며 지면을 얕게 파서 자갈을 깐 뒤 흙을 덮어 축조한 너비 2·5∼3m 길이 40m가량의 도로도 3곳이나 확인됐다. 또 이 도로 위에는 마차등의 바퀴자국으로 여겨지는 폭 2∼2·3m의 파인 흔적이 남아있다. 이 도로는 지난해 10월 발굴된 시지동 지석묘군 지역의 도로와 동일 형태여서 당시 이 도로가 1·2㎞ 떨어진 두 지역을 서로 연결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함께 길이 14m 폭 8m 깊이 1·5m의 장방형으로 구덩이를 판 뒤 활석을 이용해 10단 정도의 석축을 쌓은 연못도 발견됐다.특히 이 주위에서는 일본지역에서 많이 발굴된 굴립주형식 주혈형태의 건물지 7개소가 확인돼 주목되고 있다. 유적조사단은 이밖에 방추차·장경호·굽달린항아리·숫돌·어망추·기와조각 등 수천편의 토기와 표주박형 목제품 등 생활도구도 수습했다.
  • 턱시도/모닝코트/테일코트/남성 혼례복 새 바람

    ◎“한번뿐인데 멋있게” 수요 크게 늘어/맞춤점외 10개 대형사도 본격 제작/턱시도 35만∼60만원… 빌릴땐 12만∼15만원 「일생에 한 번 뿐인 결혼」.봄바람을 타고온 꽃소식과 함께 본격적인 결혼시즌이 시작됐다.최근에는 서양의 전통 혼례복인 턱시도를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랑들이 부쩍 늘어 관심을 끌고있다. 특히 올 봄에는 결혼날짜를 잡기에 제일 좋다는 윤달이 4년만에 다시 믿아와 결혼식 행렬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이와함께 국내 의류업계 역시 턱시도와 테일코트등 예전에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남성예복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제까지 남성의 결혼예복은 짙은 색의 깔끔한 정장을 새로 맞추거나 사입는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 현실.조금 멋을 부리는 사람들이 아이보리색이나 순백색의 정장을 입어 하객들의 주목을 끄는 정도였다.서양식 전통예복을 입고 혼례를 치르는 사람은 극소수로 일반인들에게는 영화속의 주인공들이 즐겨입는 호사스런 사치정도로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전반적인 국민소득 향상과 젊은 세대에일기 시작한 개성주의가 남성의 결혼예복에도 일대 혁신을 불러왔다.여기에는 남녀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신세대 「유니섹스」물결도 한 몫을 거들고 있다.결혼식하면 신부의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떠올리게 되는데 요즘은 이에질세라 신랑도 신부의 아름다움에 걸맞게 차려입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현재 남성용 결혼예복을 생산하는 대형 의류업체는 10여개.2∼3년전만해도 맞춤전문 양복점들이 주문이 있을때만 턱시도 한두벌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신원·캠브리지·제일모직·코오롱·논노·서광등 의류전문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남성예복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아직은 업체내의 판매비중이 미미한 편이나 수요전망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이는 결혼식의 비디오 촬영이 인기를 끌면서 신랑의 화장과 예복착용등 예전에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대중화돼가는 추세로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신원의 남성예복 전문디자이너인 임해주씨는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이제는 여성뿐이 아니라 남성들도 결혼예복에 많은 관심을 쏟고있다』면서 『일반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턱시도나 모닝코트 같은 서양의 전통 예복을 아무리 비싸더라도 결혼식때 한번 입어보자는 것이 요즘 신랑 신부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남성예복도 여성예복처럼 대여도 가능하다는 점이 침체에 빠진 국내 의류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턱시도의 판매가격은 35만∼60만원대이고 대여가격은 12만∼15만원선이다.턱시도보다 격식을 더 갖춘 모닝코트나 테일코트의 경우 판매가격은 70만∼90만원에 달한다.대여하는데도 20만∼25만원은 지불해야 하므로 씀씀이가 헤퍼지는 결혼식비용으로도 무리가 많이 가는 편이다. 이밖에 예복에 갖춰야할 드레스셔츠·보타이·커머밴드등 일체의 액세서리는 대부분의 업체가 예복을 대여하면 무상으로 제공한다.색상은 검정·아이보리·흰색 등이 있는데 계절에 따라 흰색 예복이 봄·여름에 많이 나가는 반면 가을·겨울에는 검정과 아이보리 색상이 선호된다. 지금은 남성예복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턱시도가 19세기 후반무렵 미국 사교계에 처음 등장했을때는 정장을 무시한 파격으로 충격을 던져주었다고 한다.엉덩이를 덮는 제비꼬리 모양의 날렵한 뒷부분을 가진 테일코트를 반토막 낸 모양의 턱시도의 낯선 모습에 비난이 많았다는 것.그러나 간편함과 개성적인 매력으로 금세 전세계에 퍼져 현대까지 전통예복중 가장 인기있는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서양에서는 결혼예복 뿐아니라 각종 사교모임과 행사의 필수복장인 턱시도는 원래 격식을 많이 따지는 옷이라 제대로 차려입기가 보통 힘들지 않다.넥타이는 검은 보타이가 일반적이나 보타이를 매지않을 때는 은회색의 밝은 타이를 매야 어울린다.
  • 파주서 고분 48기 발굴/통일신라·여말 추정… 백자 등 출토

    ◎법흥리 월음실 지구 【파주=김명승기자】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법흥4리 산11 일대 속칭 월음실부락 고분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말 조선조 초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생활유물이 대량 발굴됐다. 법흥리고분군 발굴조사단(단장 배기동·한양대교수)은 9일 지난해 11월부터 법흥리 유적지에서 지표조사를 정밀실시한 결과 월음실 A지구와 C지구에서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돌덧널무덤(석관묘)8기와 B지구에서 고려말 조선조 초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널무덤(토간묘)40여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돌덧널무덤에서는 인화문개합·동전·과대금구등 유물 20여점이 발굴됐으나 대부분 훼손돼 있었으며 무덤에는 도굴흔적이 있었다. 돌덧널무덤은 야산 꼭대기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분산돼 있었고 ㄴ자형의 구덩이를 파고 만든 반지하식 구조에 긴쪽이 2백29㎝,폭 88㎝ 규모이다. 무덤은 할석으로 5∼7단을 쌓아 올렸고 바닥은 돌덧널 내부의 중앙을 따라 3∼7장의 편평한 할석으로 시상대를 꾸몄으며 여백은 점토를 다져 메운뒤 목관을 안치했다. 이 널무덤에서는 백자상감병·이형철기등 60여점이 출토됐다.
  • 청동기시대 성읍국가 존재 확인/BC4세기 창원지석묘 발굴 현장

    ◎5백평규모 1호분은 “왕릉급”/칠기문화흔적도 발견… 변진12국으로 발전 경남 창원군 동면 덕천리.진해만을 북으로 약간 비키면서 낙동강 남쪽 품에 안긴 구룡산 아랫녘 땅이다.청동기시대의 고인돌(지석묘)유적과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이 주변에 널려있거니와 변진의 실체를 보여준 1세기경의 다호리유적도 지척에 자리잡았다. 그 한반도 남해안의 덕천리가 새롭게 역사적으로 부각되고 있다(서울신문 6일자 1·22면).고인돌을 포함한 1만평규모의 유적지가 초기국가 형태인 성읍국가의 잔영을 처음으로 엿보게 한 것이다.경남대 박물관팀이 이 유적의 고인돌(3기),돌널무덤(12기),돌덮개 흙구덩무덤(5기)등을 발굴한 결과 덕천리 일대에는 이미 4세기경에 수장을 주축으로한 계급사회가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국가통치의 기본요건인 계급사회의 존재는 무덤형태(묘제)에서 우선 찾아진다.수장급 통치자가 묻힌 고인돌 묘역은 방형의 석축을 쌓아 구획했고,돌널무덤이나 흙구덩무덤은 그 외곽에 배치한 점이 그것이다.1호 고인돌의 경우 구덩이(8×6m)를 3단으로 파서 4.5m 아래 돌널을 만들고 그 위에 5장의 널돌을 얹었다.그리고 위에다 다시 돌무지를 한 뒤에 12장의 널돌을 2겹으로 덧덮어 실력자의 무덤답게 꾸몄다. 이 역시 처음 밝혀진 독특한 형식의 고인돌 무덤이다. 이 유적에서 쏟아져 나온 2백23점의 유물을 통해서도 초기 국가형태의 성읍국가의 실체는 물론 문화상을 가늠할 수 있다.고조선의 강역인 요령지방의 청동검을 지녔을 뿐 아니라 대롱옥을 치례거리로 갖추어 권력과 부를 함께 누렸다.돌을 가지고 청동기를 그대로 본 떠 간돌칼(마제석검)을 만들었고,흙으로 붉은간토기(단도마연토기)를 구었다.특히 나무에 입혔던 칠(칠)흔적이 여러군데서 발견되어 칠기문화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분명히 잡히는 것은 한반도 남부지역 청동기사회에도 우월한 계급이 존재했다는 점이다.비슷한 시대에 수장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유적이 한반도 인접국가에서 발견된 바 있다.중국 요령지방의 강상·누상묘나 일본의 방형주구 등이 그 실예로 꼽힌다. 어떻든 덕천리 유적을 근거로 한 청동기시대의초기의 성읍국가는 뒷날 변진12국으로 발전한 모태가 되었을 것이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5)

    ◎지상의 생지옥:다/어린이도 통나무 운반 등 땔감사역/너무 힘에 부쳐 몇차례 쓰러지기도/일 서투르면 소달구지끌기 등 형벌 정치범 수용소내에서 하는 작업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험한 일은 모두 망라돼 있다. 수용소 설치목적 자체가 죽어도 무방한 사람을 가두어 놓기 위해 만든 곳이니 어떤 험한 작업이 자행되는지는 충분히 짐잘할 수 있으리라. 더욱이 어른들은 물론 인민학교 아이들까지도 갖가지 노역에 가혹하게 동원되었다. 처음 이곳에서 내가 한 일은 학교에서 시키는 땔나무 작업이다. 땔나무 작업이라고 하면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이곳에서의 나무하기란 어린 나이에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남한으로 치면 국민학교 2학년 또래인 내가 첩첩산중에 들어가 아름드리 통나무를 잘라 끌어내리는 작업에 투입된 것이다. 보위부원인 선생이 주는 톱과 도끼 등을 들고 학교에서 3㎞ 떨어진 병풍골과 돈사골까지 걸어 이동한뒤 그곳에서 다시 산중턱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조금 나이든 아이는 톱과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우리 또래는 여럿이서 자른 나무를 나르도록 돼있었다. 어린애들이 커다란 통나무를 자르기도 힘들거니와 그것을 나르기란 정말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는 「죽을 일」이었다. 처음 내가 동원된 날 애들이 내게 통나무 한덩이를 메어주고 나르라고 했다.통나무를 어깨에 맨 것까지는 했는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몇발자국 옮기지도 못한채 나는 나무를 어깨에 멘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때 넘어진 나를 보며 애들은 『새로온 새끼』라고 놀렸다. 학교에서 한 또 한가지 작업은 농사돕기였다.말이 좋아 「돕기」이지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강냉이를 키워내는 일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끝에 봄기운이 돌면 수업은 아예 집어치우고 강냉이농사 사역에 동원되었다. 하루에 어른은 1백50평,우리는 50평크기의 묘판에 강냉이를 뿌리는 것이다.그냥 강냉이만 뿌리는 것이 아니고 부식토를 날라와 뿌린뒤 흙을 덮고 곡괭이로 22㎝씩을 파고 강냉이 씨를 심고 나면 그 위에 물과 비료를 주는 작업이다. 가뜩이나 먹을 것 없는 이른 봄에 힘든 일을 하다보면 하늘이 노랗게보이면서 현기증으로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이 절반은 넘었다. 또 중학 1학년 때부터 5학년 졸업때까지는 토끼먹이주기·개밥먹이기 등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하다 보위부원들의 눈밖에 나거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가혹한 형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드리나 되는 돌을 양쪽에 쌓아놓고 벌줄 사람을 양쪽에 정열시킨 뒤 자기들 앞에 있는 돌들을 마주보는 쪽으로 날라다 놓는 일을 하루종일 반복해 시키는 것이다. 이런 벌을 받다보면 돌덩이에 발등을 찧는 어린이부터 손가락이 으스러지는 사람,손톱이 빠지는 사람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보다는 덜 힘드는 사역으로는 소달구지끌기·똥푸기 등이 있다. 소달구지끌기란 소나 말 대신에 사람이 멍에를 메고 잔뜩 짐을 실은 달구지를 끌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다. 똥푸기는 수용소내 인분을 퍼다 버리거나 농토에 뿌리는 일인데 조금이라도 요령을 부리면 자루가 길게 달린 똥바가지를 빼앗고 자루없는 깡통으로 퍼 나르게 했다. 오물에 옷이 더럽혀지는 것은 물론 얼굴과 손에 냄새가 배어들어 집안식구들이 큰 고통을 겪기도 했다. 겨울철의 경우는 고약한 냄새를 지우려고 얼음을 깨고 냇물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만 했다.그러나 비누는 물론 세제가 전혀 없는 수용소에서는 악취가 저절로 없어질 때까지 참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기자) 양승현(정치부기자) 최철호(사회1부기자)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 로만손 시계(앞서가는 기업)

    ◎독자상표로 세계시계시장 공략/스위스·일제에 맞서 25개국 누벼/중·저가에 초점맞춰 디자인으로 승부/매달 5∼6개 새 모델 개발,3백종 시판/연 300%씩 성장… 작년 7백만불 수출 독자적인 국산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자. 지난 88년4월 회사설립 이후 매년 3백%씩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 (주)로만손시계(대표 김기문·38)의 수출전략이다.로만손은 스위스의 정밀시계 공업단지 이름에서 따온 자체 브랜드로 불과 5년만에 세계적 상표로 인정받고 있다. 일찍이 OEM(주문자상표 부착)방식의 거래에서 겪은 쓰디쓴 경험이 독자 상표개발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됐다.당시로서는 무모하다고 할만한 모험이었으나 시계의 선진국인 스위스와 일본을 따라 잡겠다는 로만손 가족들의 오기로 성공을 거뒀다. 창업 당시를 회상하는 김사장의 고언은 주로 OEM에 안주하는 우리나라 수출업자 모두에게 주는 냉엄한 경고이다.『처음 일본 시계회사에 OEM방식으로 1차분 수출물량을 선적했는데 그 뒤 엔화가 급격히 하락하자 바이어들이 수입선을 대만과싱가포르로 바꿔버렸습니다.판로가 막히니 재고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임금은 주어야 하고 앞이 캄캄하더군요.OEM으로는 독자적인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회사의 운명이 바이어의 판단에 달려있거든요.20년 이상의 호황을 누린 신발업계가 요즘 겪는 어려움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로만손시계는 이렇게 탄생했다.고생도 많았다.우선 한국이라는 지명도가 바이어들에게 생소한 편이어서 무척 애를 먹었다.게다가 고급시계는 스위스와 일본이 거의 전세계를 독식하고,저가시계는 홍콩제가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을 파고 들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실력에 맞는 중저가 제품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과 독창적 아이디어에 승부를 걸었다.과거에는 시계가 제품성능으로 차별화돼 있었으나 최근에는 편의품·소모품화 돼가면서 다기능화 및 패션기능이 중시되는 점에 착안,디자인실을 설치하고 제품차별화 정책을 펴나갔다.7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디자인실에서는 한달에 평균 5∼6개의 새 모델을 개발,지금까지 3백여종의 제품을세계시장에 내놓았다.로만손 시계의 수출가격은 개당 17∼1백50달러이다.제품차별화에 성공을 거둔 셈이다. 처음에는 중동지역을 주요 수출시장으로 공략했으나 지금은 5대양 6대주 25개국을 누비고 있다.지난 89년5월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가 주최한 「두바이 한국상품종합물산전」에 손목시계업체로는 처음 참가해 그 자리에서 1백만달러의 수출계약을 맺었다.중동의 홍콩이라는 두바이를 장악하면 중동지역을 석권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적극적인 세일즈 활동을 편 결과였다.두바이에서의 좋은 평판은 곧 이웃 중동국으로 파급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예멘·쿠웨이트는 물론 이집트·나이지리아등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주문이 쏟아졌다.바이어와 소비자들로부터 색상이 뛰어날 뿐 아니라 품질에서도 스위스 및 일본제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품차별화에 성공을 거둔 로만손은 요즘 시장다변화에도 눈을 돌려 올해의 주요 전략을 신시장 개척으로 정했다.보다 큰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인구가 많은 중국과 러시아·브라질·멕시코등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종업원은 65명에 지나지 않지만 지난해 총 수출액은 7백만달러를 넘어섰다.지난해 제29회 무역의 날 행사때 5백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등 4년 연속 무역의 날 포상을 받았다.지금까지는 수출을 위주로 했으나 앞으로는 내수비중도 높일 계획이다. 지난해 선보인 그랑죠이는 저가시계인 로만손 브랜드에 이어 고급시계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야심작이다.그랑죠이로 내수시장은 물론 세계시장도 잠식하겠다고 단단히 벼른다. 『로만손시계는 세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샘플을 보내달라는 텔렉스와 팩시밀리가 수 없이 날아오는 사무실에 걸린 표어가 흡사 용틀임하는 것처럼 보였다.
  • 요통예방 첫걸음은 바른자세/정양기 성모재활의학과의원(건강한 삶)

    「요통의 원인과 증상」편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경험하는 요통의 80%는 허리,즉 주요추부의 인대·근육의 이상,염좌에 의한 것이고 디스크,즉 요추간판탈출증은 그 원인의 일부임을 이야기 하였다.요통의 원인과 결과는 대부분 잘못된 자세,불균형적인 운동등의 역학적인 원인이 척추나 근육,인대라는 구조물에 대해 구조적,기능적 이상을 초래하고 이러한 결과로 허리부분에 통증이 생긴다.따라서 가장 좋은 치료는 예방에 있다는 말로 표현되듯이 올바른 자세,운동시의 균형이 첫째로 중요하다.의자에 앉거나 서있을 때에도 비뚤어진 자세는 피해야 하며 오래 서있거나,경미한 요통이 느껴질때는 요추부의 만곡을 펴주는 역할을 하는 딱딱한 바닥에 눕는 자세도 도움이 된다. 물건을 들 때에도 무게를 허리에 부담시키는 허리굽힌 자세는 피하고 다리에 부담을 주는 경우에는 다리를 구부리는 자세가 좋다.의자에 앉을 때에도 너무 깊숙이 앉으면 허리 만곡이 심해지므로 약간 엉덩이를 앞으로 빼고 앉는 것이 좋다.일단 요통이 심해지게되면 자세를 변경하는 것자체가 통증을 더 심하게 한다.이것은 최초에 시작된 통증이 인접 근육과 인대의 특정 자세를 선호함으로써 여기서 연쇄적인 자세 이상과 통증을 유발한 것이다.이때에는 통증부위에 대한 온열,초음파,레이저등의 물리적인 작용이 근육수축을 이완시키고 통증을 완화시킬 수있다.따라서 요통의 부위,성격,원인에 따른 적절한 물리적인 처치가 필요하다.약물치료는 근육이완제,진통제,소염제등을 적절히 조합하여 적절한 용량을 복용한다. 수술적인 치료는 수술로써 교정할 수있는 구조적인 이상이 있는 경우로서 요추간판탈출증이 대표적인 예이다.수술의 목적은 탈출한 추간판을 제거하는 것이고,효소주사만으로 시행하는 간편한 방법과 수술부위를 절개하여 직접 보면서 시행하는 방법이 있다.
  • 청소년탐험대 백두산서 통일기원

    ◎초중고생 10명,지난달 25일 국토사랑·극기정신 체험/연초 마라도서 천지까지 국토종단 성공/영하 30도속 썩은 감자로 허기 달래기도/백록담 물과 흙 백두산에 흩뿌리며 통일노래 불러 어른들조차 오르기 힘든 겨울 백두산을 우리 어린이들이 등정하고 최근 귀국했다.통일대행진에 나선 한국소년탐험대(대장 강원규)가 국토사랑과 극기정신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낸것이다. 『백두산 오르는 길이 너무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천지를 보고 힘든것도 다 잊어버렸어요』 한국소년탐험대 대원으로 이번 백두산 등정에 참여한 안지원군(서울 은평구 신사국교 6년)의 감개어린 소감이다. 통일대행진은 마라도에서 백두산까지 우리의 국토를 걸어서 체험하며 국토사랑과 극기정신을 기르는 프로그램으로 이번 백두산 등정에는 초·중·고등학생 10명과 2명의 어린이지도자가 참가했다.올해 1월1일 국토 최남단 마라도를 출발하여 예정(본지 92년12월24일자 참조)대로 1월18일 임진각까지의 국토종단을 무사히 마쳤던 통일대행진팀은 20일 비행기편으로 중국 북경을 거쳐서구정인 23일 백두산 초입에 다달았다. 겨울 백두산 등정은 중국정부의 통제와 2∼3m의 눈이 쌓여있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탐험대는 중국인 안내운전사를 따돌리고 얼어붙은 눈위을 디디며 24일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다.눈으로 유실된 길을 찾아 3분의 1쯤 올랐을때 탐험대는 첫 어려움에 봉착했다.식량이 담긴 배낭을 빼놓고 온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것. 『산행을 지휘하는 강서구대장과 함께 등정포기를 결정했으나 아이들의 성화로 등정을 강행할수 밖에 없었다』고 통일대행진을 주관한 강원규대장은 밝혔다.영하 30도이하로 내려가는 기온으로 오줌을 누면 바로 얼 정도이고 뱉은 침이 얼어서 구르는 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가끔 눈구덩에 빠지기도 하면서 정상을 향해 꿋꿋이 나아갔다.그러나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해가 지는 바람에 탐험대는 사람이 철수한 중국기상대 건물에 간신히 다달아 둥지를 틀었다.땔감을 구해 3시간만에 불을 피우고 썩은 감자더미를 찾아내 허기를 달랬으며 눈덩이로 물을 대신했다.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탐험대는 다음날 아침인 1월25일 상오7시 드디어 백두산 정상에 올라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며 한라산 백록담에서 가져간 물과 흙 돌 등을 백두산에 흩뿌려 합치는 조촐한 통일기원의식을 거행했다.『애국가와 통일노래를 부르면서 모두들 통일돼서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 걸어갈수 있길 기원했다』고 안군은 밝혔다. 하산한 탐험대는 중국에서 화제가 되어 연변TV방송에 출연하고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압록강국경의 집안과 두만강국경인 훈춘을 방문하기도 했다.또 연변 조선족어린이의 집을 방문하고 훈춘제5소학교 어린이들과 자매결연을 맺는등 어린이문화교류에도 힘썼다.탐험대는 올 5월 연변 조선족어린이들을 한국에 초청하기로 했다. 강대장은 『통일대행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참아내어 대견스럽다』면서 『어린이들이 이같은 나라사랑 체험을 바탕으로 일상에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 홍성 앞바다 6천㏊ 벙커C유 대량오염/기름띠 계속 확산

    【홍성=이천렬기자】 5일 상오10시쯤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 천수만해상에 벙커C유가 대량으로 흘러들어 이 일대 바다 6천◎가 오염돼 김과 굴 양식장 1천여㏊가 큰 피해를 입고있다. 충남 태안해안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보령군 천북면 학성리앞 해상에서 발견된 기름덩이가 홍성군 서부면 죽도 인근해상으로 8㎞ 길이의 기름띠를 형성하며 조수를 따라 계속 확산되고 있다.
  • 올바른 세배법/남­왼손·여­오른손을 위로

    ◎무릎꿇을때 발등이 바닥에 닿아야/아랫사람이 먼저 덕담하는 것 금물 설날아침이면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세시풍속.가족·친지들간에 훈훈하고 정겨운 덕담이 오가는 설날을 맞아 세배드리기의 올바른 예법을 청년여성교육원 예절교육실 김복진실장으로부터 들어본다. 원래 우리나라의 예법은 가가례)로 지방·집안에 따라 다르지만 세배는 서울·경기지방의 풍속에 맞춰 평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자의 경우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양손을 마주잡고 섰다 팔을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린다.왼발을 발길이의 반정도 뒤로 살짝 빼면서 왼무릎을 꿇고 오른무릎을 세운다.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인 상태에서 양손을 꽃잎모양으로 펴서 바닥에 대는 동시에 목이 옷깃에서 떨어지지 않을만큼(15도 정도)허리전체를 굽혀서 절한다.이때 팔꿈치를 구부리지 않아야 단정해 보인다.일어나서 양손을 잡고 가볍게 목례한 후 어른의 정면에서 비껴 앞에 양다리를 사선이 되도록 모아 앉는다.양장을 입었을 때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절한다. 남자는 왼손이 위로 오도록 두손을 마주잡고 섰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풀고 무릎 꿇고 앉는다.두손을 앞으로 뻗어 엎드렸을때 코정도에 오도록 왼손을 위로 하여 마주잡는다.몸을 일으키면서 두손을 자연스럽게 옆으로 풀고 일어나 목례한 후 다시 앉는다.남자들이 절할때 주의할 점은 무릎을 꿇었을때 발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발등이 바닥에 닿도록 눕혀야 엉덩이가 올라오지 않고 자연스런 자세가 된다. 세배가 끝난후 어른으로부터 덕담을 듣는다.덕담은 잘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이 절하면서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든지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어린이들에게는 절값으로 세뱃돈을 주는데 아이의 나이에 맞게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부모들은 세뱃돈이 어린 자녀들에게 큰 액수인만큼 저축을 하거나 제대로 잘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아랫 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덕담을 듣거나 세뱃돈을 받았으면 반드시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공손한 자세로 물러선다. 가장 웃어른에게 세대별로 세배를 드린 다음 형제·동서 지간에 맞절을 올리고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 부부맞절을 하고 자녀들로부터 세배받는 것이 자녀교육에도 좋고 아름다운 우리 풍습이다.
  • 30대 뺑소니 운전사 자녀·처 죽이고 자살

    【예산=이천렬기자】 20일 하오2시쯤 충남 예산군 덕산면 둔리 덕숭산 다락바위 옆에서 허용우씨(31·트럭운전사·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378)와 부인 김선옥씨(27) 딸 미진양(3) 아들 웅군(1)등 일가족 4명이 숨져있는 것을 주민 신상철씨(38)등 3명이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 부부의 사체 옆 50㎝ 깊이의 구덩이에 묻혀 있던 자녀 2명의 사체를 찾아냈다. 경찰은 허씨 부부가 자녀들에게 극약을 먹여 숨지게 하고 파묻은 뒤 부인은 극약을 마시고,허씨는 목을 매 각각 자살한 것으로 보고있다. 허씨는 지난해 11월4일 하오7시쯤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상신리앞 길에서 충남7아2551호 5t트럭을 몰고가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박종서씨(37·정비사·경기도 평택시 비전동108)를 친뒤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박씨가 숨지자 달아났었다.
  • 당뇨병/“70∼80%가 복부비만형”(남성 신건강학:7)

    ◎엉덩이보다 배둘레 길면 “요주의”/다식·다음·다뇨… 식이요법 최고 「우리나라 인구 5%가 앓고 있는 국민병」「40대 사망률 1위국의 주범」.불과 10년전만 해도 우리 국민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못됐던 당뇨병을 두고 언론과 의료계에서 요즘 이런 표현을 하고 있다.지난해말 현재 학계에서 추정하고 있는 국내 당뇨병환자는 2백만명.이들중 절반은 자신이 당뇨병환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며,40대이상의 비만인 4∼5명가운데 1명이 당뇨병환자라는 보고도 나와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당뇨병이란 말 그대로 소변을 통해 당분이 배설되는 병.췌장에서 인슐린이 적게 분비되거나 전혀 분비되지 않음으로써 혈당량이 상승되는 것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당뇨병을 크게 1형과 2형으로 분류한다. 제1형은 인슐린분비가 안돼 인슐린을 주입받아야하는 인슐린의존형으로 주로 소아에서 발생한다. 제2형은 혈관속에 인슐린은 있지만 여러 저항요인으로 인해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해 혈관에 포도당이 축적되는 인슐린 비의존형이다.연세대의대허갑범교수(내분비내과)는 『우리 국민의 당뇨병 발병양상은 서양인과 달리 20%정도가 「중간형」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서양인은 인슐린 비의존형과 의존형의 비율이 95대5로 양분되지만 우리국민은 78대2로 나타나며 나머지는 「중간형」이라는 것. 중간형은 비의존형처럼 40대이후에 진행되지만 체중이 감소되는 특징을 지닌다. 당뇨병의 가장 흔한 증상은 다뇨 다식 다음의 이른바 「3다현상」이며 이밖에도 전신피로,체중감소,야뇨증등을 일으킨다. 당노병은 병 차체보다도 합병증이 더 무서운 내분비계질환.허교수에 따르면 합병증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부위는 신경조직,망막,신장이며 그 종류는 당뇨병성 혼수와 저혈당의 급성 대사성질환과 만성혈관성질환으로 나뉜다. 당뇨병성 혼수는 혈당조절이 잘안돼서 나타나는 고혈당상태로 탈수와 전해질이상을 동반한다.또 저혈당은 치료과정의 부주의로 지나치게 당뇨병약을 복용하거나 인슐린을 주사받을 때 나타난다.식은땀이나 심한 공복감·손떨림·시력장애를 일으키는데 이때는 사탕이나 설탕물을 먹어야 한다. 만성혈관성 합병증은 혈당조절이 잘 되지 않은 상태가 오래 지속돼 생기는 것으로 뇌졸중·협심증·심근경색증·괴저(발가락이 썩는 병)·망막손상·만성신부전증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이와관련 허교수는 『인슐린 비의존성환자의 50%가량이 신장합병증을,15%가 망막장애를 일으킨다』며 『당뇨병이 40대이후 실명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당뇨병의 고위험군으로는 가족력과 비만·약물남용·운동부족 그리고 과음·스트레스 등이 꼽힌다.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비만. 허교수는 『비만과 관련해 한국인의 당뇨병을 논의할 때는 「신장과 체중」보다 「엉덩이와 배둘레」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서양인의 경우 당뇨병환자의 70∼80%가 체중계산법(자신의 키에 1백을 뺀 수치에다 0.9를 곱한 수치)상 비만증세를 보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20∼30%밖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신 복부둘레가 엉덩이둘레 보다 더 긴 이른바 「복부형비만」(내장형비만)이 국내 인슐린비의존성환자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즉 한국인의 당뇨병은 「근육조직과 복부지방질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내장지방을 억제하는 것이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30∼40대의 마른체격을 가진 사람이 체중을 늘리려면 반드시 운동이 전제가 돼야 하다. 허교수는 『지금까지 당뇨병에 대한 몰이해가 환자만 양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과학적 근거 없는 민간요법보다 식사조절과 운동을 통한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특히 당뇨병은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조절되는 병인 만큼 건강한 사람도 정기적인 혈당검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음주 30대 사자우리 추락/목·손·가슴 물려 중태(조약돌)

    ○…17일 하오 4시40분쯤 대구시 달성동 달성공원에서 관람객 황봉학씨(33)가 대구시 북구 소성2동 102 사자우리내에 떨어져 사자에게 목과 왼쪽손,가슴등을 물려 중태에 빠졌다. 이날 사고는 황씨가 술에 취한채 높이 1.2m의 사자우리 2층 안전철책을 넘어가 사자에게 눈덩이를 던지다 폭8m 깊이6m 아래 사자방사장으로 미끄러져 일어났다.
  • 지붕밑까지 눈…굴뚝만 뾰족 솟아/폭설에 갇힌 영동 산간마을을 가다

    ◎2m가까이 쌓여 제설 역부족/생필품난 심각,응급환자 비상/어선 50척 눈무게 못이겨 침몰… 축사붕괴 등 속출 산에서 내려다 본 강원도 산간은 온통 은빛이다.모든 것들이 키를 넘는 폭설에 묻혀 온데간데 없고 멀리 보이는 낙락장송도 눈무게에 내려앉아 푸른 절개를 시험받는 느낌이다.눈덩이를 수북히 머리에 인채 굴뚝만 뾰족이 솟아있는 가옥은 마치 안테나만 내밀고 망망대해에 침몰해 가는 선박을 연상케 한다. 1m50㎝가 넘는 폭설이 내린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2리.12가구 30여 주민들은 나흘째 고립돼 외부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4일째 계속 내리는 눈발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기세를 더해가 걱정이 태산같다. 진동2리는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어 우선 식수해결을 위해 공동우물까지 눈치우기 작업에 나서고 있으나 대부분 노인들이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생필품도 부족해 제설작업이 늦어질 경우 비상공급이 불가피한 실정이다.주민들은 무엇보다 응급환자가 생길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그래서 이곳주민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비상 썰매를 준비하고 있다. 진동2리는 차량이 운행되는 도로의 최단거리인 현리까지가 28㎞.최신제설장비를 동원한다해도 눈을 치우는데 4∼5일이 넘게 걸린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강릉서에서 40㎞쯤 떨어진 명주군 왕산면 대기1∼4리 1백60가구 3백80여명도 사정은 마찬가지.설전에 시내버스가 다니도록 제설작업을 서두르고 있으나 눈이 하도 많아 엄두를 못내고 있다. 더욱이 17일 새벽엔 기온까지 영하10도 이하로 뚝 떨어져 쌓인 눈이 얼어붙는 바람에 주민들의 외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폭설현장에서 눈치우기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박용환왕산면장은 『현재 군청에서 지원된 페이클더 1대로 제설작업을 하고 있으나 이 장비만으로는 설전에 38개 마을의 눈을 모두 치워 길을 뚫기는 어렵다』며 관계기관의 장비지원을 호소했다. 이밖에 농어촌지역에서도 피해가 잇따라 속초항에서는 15일 밤 정호동 부두에 정박했던 수영호(선주 주인섭·48)를 비롯한 소형어선 12척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침몰하는등동해안 일대에서 모두 40여척의 소형어선이 침몰했다. 이와함께 16일 상오4시쯤 속초시 설악동278 이종기씨(56)집의 돼지우리가 무너져 돼지 2백50마리가 떼죽음 당했으며 양양군 양양읍 기정리 장우수씨(59)집에서는 양계장이 붕괴돼 닭 2백50마리가 몰사됐다. 한편 강원도는 양곡·의류·모포·생필품 등을 긴급 확보하고 고립마을에서 지원요청이 있을 경우 헬리콥터를 동원해 비상공급할 계획이다. 또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명주·고성군등의 인근 군부대에 헬기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노루등 야생조수가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올 것으로 보고 헬기를 동원,산에 조수먹이를 뿌릴 계획이다.
  • 악필고(외언내언)

    영국국민들에게 있어 인도라는 거대한 땅덩이보다 더 소중한 자존심이었던 셰익스피어.그의 글씨는 마치 국민학생이 쓴것같이 치졸한 것이었다고 한다.그러나 그 글씨로도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으니 훌륭하지 않은가. 글씨가 치졸한 것은 필재가 없어 그렇다 쳐도 악필의 경우는 필재하고도 관계가 없는 버릇 문제다.세상에는 이런 악필들이 많다.그래서 가끔씩 술자리의 화제가 되곤 한다.소설가 누구누구의 글씨는 나중에 그자신도 못알아본다느니,언론인 아무개의 글씨는 지렁이 기어가는 꼴이라느니…. 「의상철학」「영웅·영웅숭배론」등으로 알려진 영국의 사상가·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도 지독한 악필이었던 듯하다.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런던의 어떤 인쇄업자가 스코틀랜드에서 무수한 문선공을 스카우트해 왔다.그 문선공에게 맨먼저 돌아간 원고가 바로 칼라일의 것이었다.이 원고를 들고 보던 스카우트 문선공은 상을 찌푸렸다.그러더니 소리를 꽥 지르면서 원고를 내동댕이 쳐 버렸다. 『베라먹을.또 이친구 원고야?』 그는 계속해서소리쳤다. 『이 친구 원고 꼴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런던까지 피해 왔는데….맙소사.귀신같이 날 따라오다니』 스코틀랜드 태생인 칼라일은 그쪽에서도 적잖이 글을 썼던 모양이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있어왔다.본디는 당나라 때 관리를 뽑으면서의 네가지 조건이었는데 거기에 「서=글씨」가 끼인다.이말이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혼담이 오갈때 신랑될 사람을 소개하면서도 쓰였다.『거,신언서판이 똑바르고…』.여기서의 「서」도 글(문)뿐 아니라 글씨까지 뜻했다.서도가 있는 동양과 그게 없는 서양의 글씨에 대한 관념은 다르다 할것이다. 악필이고 졸필이고 달필이고 간에 오늘의 시류는 컴퓨터의 보급 따라 글씨쓰기의 필요성을 감퇴시켜 간다.한데,서점마다 「펜글씨 교본」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다.94학년 대입시의 주관식­논술형에 대비한 움직임.글씨를 잘써야 점수에 유리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생각이야 옳다만 어이구 그 대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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