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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이나 리포트 2004] (16)부상하는 중산층

    [차이나 리포트 2004] (16)부상하는 중산층

    중국에서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인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신개념이다.노동자와 농민 등 무산계급(無産階級)에 의해 1949년에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서문에서는 무산계급이 타도해야 할 주적으로 자본가와 소자본 기업주를 들어왔지만,이제 이들은 중산층의 가장 큰 구성원으로 등장했다. 중국 중산층에 대한 정의는 자가용과 주택을 소유하고,연소득이 1만위안(1207달러)에서 20만위안(2만 4154달러)에 달해야 한다는 등,그 격차만큼이나 인식과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그러나 현대 중국 경제사회의 주류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이들은 공산당이나 국유기업이 아닌 중산층이다. ●중국 사회계층의 변화 중국이 개혁·개방을 결정한 1979년 이전 중국의 계층은 3단계로만 구분되어 왔다.즉 노동자(工人)계급과 농민계급 그리고 지식분자(知識分子) 계층이 그것이다.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노동자 계급은 육체 노동자,사무직원(화이트 칼라),당정 및 국유기업 간부 등 5개 계층으로 세분화됐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새로운 계층이 중국에 등장하게 되는데,학교·기업·정부에서 뛰쳐나온 교사·연구개발(R&D)인력·공무원들이 민영기업을 창업한 경우다.또한 전문직 종사자는 중국이 법치화를 위해 90년대부터 회계법,변호사법 등 각종 법률을 제정하면서 생성된 계층이다. 결국 중국에서도 선진국의 중산층과 유사한 성향을 가진 계층이 등장하게 된다.중국에서는 1999년부터 덩샤오핑이 주창했던 선부론(先富論)에 입각,이들 계층을 포괄하여 선부계층(先富階層)으로 지칭하고 있다. ●중간 계층의 등장과 10대 계층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중산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기점은 2001년 12월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작성한 당대 중국 사회계층 연구보고서가 발표되면서부터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중국 중산층은 서구의 중산층 개념이 포함하고 있는 ‘사유재산’ 혹은 ‘사유영역’을 통해 형성된 계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간계층’이라는 표현이 더욱 중국 실정에 부합한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사회과학원에서 소득구성 구조를 설명하고 있는 경제적 개념을 보면,서구 중산층과 일치한다.노동자,농민,지식분자로 삼분되어 오던 중국의 사회계층은 이제 10대 계층으로 분화된다. ●중국 중산층의 특징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밝힌 중국 중산층의 경제·사회적 특징을 보면,우선 엔지니어링 설계,기술자 등 정신 노동자이며,중간급 간부로서 소속 부서와 그 구성원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수입은 전체 사회의 중간수입 수준에 해당되며,1인 개인소득은 연간 2만 5000∼3만 5000위안(3019∼4227달러) 정도이고,1가구 3인,맞벌이 가정 기준으로 가구당 연수입은 5만∼7만위안(6039∼8454달러) 수준이다.2002년부터 중산층을 특징짓거나 구성하는 요소로 자동차와 주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또한 2003년 7월 7387명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피설문자의 44%는 주택 및 자동차 보유를 중산층 진입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원 관점과는 달리 여러 실증자료를 검토하면 중국 중산층의 연수입은 12만위안(1만 4495달러)으로 추정된다. ‘연수입 12만위안=중국 중산층’이라는 기준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실제소득과 음성소득간의 관계이다.중국 통계연감에서 보여지는 실제 소득과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나는 총소득간의 차이를 계산하여 산출한 음성 소득비중은 실제소득의 15% 이상이며,가장 많게는 50%에도 이른다. ●중국 중산층의 규모 중국 사회과학원은 당대 중국 사회계층 연구보고서에서 최초로 평등사회를 추구했던 중국 사회를 상,중상,중중,중하,하 등 5등급으로 나누어 분류한 바 있다.여러 사회계층 가운데 중·고급 당·정 간부,대기업 간부,고급 전문기술 인원,대형 사영기업주 등은 사회 상층으로 분류되었으며,중간급 관리 간부들은 중상층으로,초급 기술인원과 소기업주 일반사무원 등은 중중층에 분류되었다.사회과학원이 규정한 중국 중산층은 이들 5등급 중 중상층,중중층,중하층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등급별 각 점유비율은 18.5%,37%,44.5%에 이른다. 2002년 7월 중국 국가통계국 도시 거주민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가정의 48.5%가 15만∼30만위안(1만 8116∼3만 6232달러)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따라서 중국 인구(12억 8400만명)의 39.1%를 점유하고 있는 도시 거주민 5억 212만명 중,7079만가구(2억 4300만명,1가구 3.44명 기준)가 넓은 의미의 중산층에 속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중국 중산층을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저축 규모를 통해서다.2003년 3월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발표에 따르면 2003년 2월 말 현재 인민폐 및 외화예금 잔고가 1조위안을 초과해 1조 300억위안을 기록했다.가장 최근에 밝혀진 예금구조를 살펴보면 국내 예금잔고의 51%는 상위 20%의 소수 예금자가 보유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이상과 같은 자료에 근거하면 현재 중국의 중산층 규모는 9000만명에서 2억 4300만명(2616만∼7079만가구) 규모로 추산된다. ●중국에서 중산층의 역할과 의미 후진타오(胡錦濤) 신정부는 중산층 육성전략(擴中·保低·調高)을 추구하고 있다.이중 중간층 확대(擴中)는 분배제도 개혁을 통해 중간관리층과 기술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입을 제고하는 것이다.극빈층 보호(保低)는 농촌 도시화 정책을 추진하여 농촌 잉여 노동력이 도시 혹은 비농업 취업 시스템에 편입되도록 하여 저수입층인 농민의 최저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상위층 조절(調高)은 개인소득세 개혁을 가속화하여 고소득 수입자의 세금부담을 조정하여 자연스러운 부의 환원을 시도하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이러한 중국 중산층의 등장과 중국 정부의 중산층 확대정책은 정치적 성향은 다를 수 있으나 경제적 자유로움의 향유 추구라는 공통 이익목표를 가진 거대 사회계층을 형성시킬 것이 분명하다. 베이징 김동하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dhkim@posri.re.kr ■ [기고] 간부층이 유일한 권력집단 아니다 중국사회의 계층구조 변화는 ‘새로운 세대의 중국인’의 움직임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중국 사회의 향후 변화를 알려면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중국인의 발전기회와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이들이 개혁·개방 20여년 동안 중국사회 변화의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좌경 정치’ 의식 형태의 틀에서 중국사회 구조는 2개 계급,1개 계층(노동자·농민 계급과 지식분자 계층)의 신분 등급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1978년 공산당 11기 3중전회 이후 개혁·개방 전면 실시로 고도로 집중된 중앙집권 계획경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됐다.전통 농업사회는 현대 공업사회로,봉쇄 구조가 개방 구조로 변화된 것이다. 개혁·개방은 중국 사회구조,계층구조의 변화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국가에서는 많은 자원을 사회 혹은 시장에 넘겨주었다.중앙집권 재분배 제도가 인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켰고 사회적 자유도를 높였다. 사회 분화 진전에 따라 일부 신 사회계층이 탄생했고 다양한 사회 계층 사이에서 경제사회 지위를 변화시킨 것이다.이에 따라 전통적 이원신분 시스템이 붕괴·와해되면서 신분 등급 차별은 점차 사회적 의미를 잃었다. ‘도시-농촌 이원화 신분’은 여전히 존재하나 도시로 밀려오는 농촌 노동자(民工)에 의해 점차 파괴되는 과정에 있다.간부 계층도 속출하는 민영기업인과 학술·연예계 스타들의 탄생과 함께 중국사회의 유일한 권력 집단이 아니다.계급·계층 구조는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게 된 것이다. 국가제도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던 시대는 기본적으로 끝났다.사람들은 출신 배경과 사회적 관계,개인의 노력에 따라 새로운 사회 계층구조 시스템에서 자신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중국 사회과학원이 내놓은 ‘중국사회구조 변화연구’에 따르면 2001년 기준으로 현재 중국 사회엔 10개의 다양한 사회계층이 존재한다. 즉,1.국가·사회 관리자(2.1%) 2.매니저(1.6%) 3.민영기업인(1.0%) 4.전문기술인력(4.6%) 5.행정·사무직(7.2%) 6.개인 공·상업자(7.1%) 7.서비스 계층(11.2%) 8.산업 노동자(17.5%) 9.농업 노동자(42.9%) 10.실업·반실업자 계층(4.8%) 등이다. 문제는 사회계층 구조에서 최하위 계층(노동자·농민)이 점한 비중이 매우 크고 중간층 비율이 적다는 점이다.2001년 기준 중간층은 전체 노동인구의 15% 안팎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빈부 격차는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빈부차를 가늠하는 지니계수는 91년 0.282에서 2000년 0.458로 10년간 1.62배가 높아졌다.국제적 기준을 넘어서 심각한 상황에 왔다. 중국정부는 전사회적으로 확대되는 빈부격차를 중시,상응 조치를 취하고 있다.90년대 말에 완성된 개인소득세 납세제도는 사회 각계층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주요한 재분배 수단이다.고수입 계층의 탈세 등 위법행위를 엄격히 감시하면서 농촌 세금제도 개혁으로 향후 5년간 농업세를 전면 면제시켰다.중국사회 수입 분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정부는 경제성장과 도시·농촌의 균형발전의 신(新)전략을 짜고 있다.향후 중국은 빈부 격차를 축소하는 새로운 발전관을 선보일 것이다. 첸광진(陳光金) 중국사회과학원·사회학硏 연구원
  • 중국 “富國서 强兵으로” 변화조짐

    중국 “富國서 强兵으로” 변화조짐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이 개혁·개방 20여년 동안 견지해온 경제제일주의에서 ‘부국강병(富國强兵)’정책으로의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가 이끄는 중국 4세대 지도부는 미국의 패권주의 확대와 타이완 독립 움직임 등 대내외적으로 급변하는 군사·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최근들어 국방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우선적으로 국가 주권 확보를 위해 경제성장과 국방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부국강병 전략을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채택할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 언론들은 10일 시사주간지 요망동방주간(瞭望東方週刊) 최신호에 실린 ‘중앙정치국 부국강병 전략 탐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일제히 중요 기사로 다뤘다. 후진타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7월24일 실시된 당 정치국 제15차 집단학습에서 “평화 및 발전 추구와 자주적인 외교정책 유지에 있어 국가주권과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전제,“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방과 경제를 조화롭게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후 주석은 또 “국방건설과 경제건설 관계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라며 “이 둘은 상호촉진의 관계이기 때문에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통상 극비에 부치는 중앙정치국의 내부 활동을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들이 이례적으로 구체적 발언까지 보도한 것은 향후 국방정책 등과 관련,당의 정책 변화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4세대 지도부의 이같은 변화로 그동안 미국이나 주변국의 눈치를 살피던 국방력 강화 움직임이 노골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 주석은 “국방력은 종합적인 국력의 주요 부분이며 국방력이 건설되지 않으면 경제건설은 물론 안전한 (경제)환경도 확보할 수 없다.”며 국방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중국 언론들은 또 “전쟁준비를 충분하게 해야 전쟁을 피하고 장기간의 평화시기도 얻을 수 있다.(只有充分 做好戰爭准備 才有避免戰爭 從而爭取 和平建設時間)”는 회의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부국강병은 지난 100년간 지속된 중화(中華)민족의 간절한 소망으로 제 16기 당대회 보고서에 그 뜻이 나타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부국강병 추구는 10여년동안의 연 9%가 넘는 경제성장이 바탕이 됐고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의 4대 현대화노선에 따른 것이라고 중국 언론들이 강조했다. 중국 국방기술대학 취안린위안(全林遠) 교수는 “적극적으로 세계 군사 변화와 도전에 호응하지 않으면 국가 안전은 물론 심지어 서방 열강에 당한 침범보다 더 심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초강대국 미국의 경제·과학·군사 분야의 우위가 중국의 주요 현대화 정책에 압력으로 작용하고 미국의 군사압력이 아시아로 밀려오면서 중국 지도부를 긴장시키는 것도 변화의 배경이란 지적이다. 중국의 부국강병 추구가 자칫 중화(中華) 우월사상과 패권주의로 변질될 경우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사건’처럼 주변국들과의 역사적·영토적 분쟁과 마찰로 확대될 것이란 지적도 적지않다. oilman@seoul.co.kr
  • ‘부국강병’ 3國 전문가 진단

    ‘부국강병’ 3國 전문가 진단

    ‘중국 중앙정치국의 부국강병 전략 탐색’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외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는 대체로 일치했다.주변국의 긴장감도 동반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10일 “부국강병 천명은 대내적으로는 국가 통합을 위한 것이며,대외적으로는 위상 강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정지작업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중국은 그간 자신들이 절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주변국의 경계심을 늦추려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나,이제 자신들의 논리를 좀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실상 공산당 내부 용어였던 ‘부국강병’을 공식화·양성화함으로써 중국 내 ‘내셔널리즘’도 한층 강화될 것이며 해외동포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아울러 동북아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새로운 지위를 확립하려는 기도도 시도될 여지가 많다고 전망했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국어과 교수도 “‘중국 위험론’에 수세적 대응을 해온 중국이 각 분야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중국이 동북아의 지역 파워(Regional Power)에서 미국처럼 글로벌 파워(Global Power)로 나가는 데 더 이상 주변국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발언 배경에 대해서는 “권력 이양기에 있는 후진타오 주석이 국방을 포함한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로 여겨지며,후진타오 체제의 공고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정재호 교수는 “한달반 전쯤부터 중국이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적으로 일어선다)란 표현을 공식적으로 쓰지 않고 있다.”면서 “정확한 진의를 파악해 봐야겠지만,일단 보도내용대로라면 중국에 새로운 슬로건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 교수는 “현재 내부 논쟁이 진행 중이어서 이 표현의 사용을 잠정 유보하고 있는 듯 보인다.”면서 특히 “부국강병이라는 용어가 왜 이 시점에서 새삼 선전의 대상이 되는지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 취안린위안(全林遠)교수는 “부국과 강병은 고정불변의 비례 관계가 아니다.”라며 “현재와 미래의 변화 추이에 따라 선택하는 전략적 관계”라고 말했다. 1980년대는 덩샤오핑이 ‘국방건설보다 경제건설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타이완 문제가 점점 긴박해져 국가 안전이 가장 심각하고 현실적인 위협이 됐다고 강조했다. 일본 외교문제 전문연구소 ‘카잔카이’의 아베 준이치 주임연구원은 “부국강병 전략은 이미 2003년 제16차 당대회 때 공표된 내용으로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베 연구원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즉 과학발전과 국방력 발전,지방발전과 중앙정부발전,대도시와 농어촌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아울러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의 권력투쟁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에 의미가 미묘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경제가 현재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산적한 국내문제를 무시하고 부국강병을 위해 예산을 국방쪽으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도쿄 이춘규·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13)징산학교의 개혁실험

    [차이나 리포트 2004] (13)징산학교의 개혁실험

    덩샤오핑의 손자·손녀,총리와 국회의장격인 전인대 상임위원장을 역임한 리펑의 손자들,부총리를 지낸 완리의 손자·손녀…. 징산(景山) 학교의 역대 학부모 중에는 중국 최고지도자와 고급 관리들이 즐비하다.판루옌(范祿燕)교장은 “지금도 상당한 지위의 지도자들 자손들이 다닌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석우특파원|베이징의 명동격인 왕푸징과 인접한 번화가 덩스코우 거리의 한편 건물 숲에 둘러싸인 이 학교의 졸업생 중엔 장군,장관,은행장,국영기업의 최고경영자 등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늘어서 있다. “지위에 따라서가 아니라 국가에 공헌을 한 분들의 자녀들을 우선 선발합니다.국가지도급 인사에서부터 과학자,국영기업직원,교사,노동자까지 다양하지요.” 추첨방식이 아닌, 학교측이 나름의 기준으로 뽑는다. “귀족학교라뇨? 중점학교며 실험학교지요.” 판 교장은 해마다 한국돈으로 환산하여 수백만원씩을 내며 다니는 귀족학교라 불리는 사립학교들과는 다르며,9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므로 학비도 무료라고 강조한다.중점학교란 정부가 특별히 지원·육성하는 학교며 실험학교란 교육개혁을 위해 학제·교과내용·교육방법을 기존방식과는 다르게 진행함을 말한다. 이 학교는 1960년 중국 공산당 선전부가 설립했고 1982년부터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아시아지역 연락센터로 지정돼 있다.한 학교의 문패 아래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서 생활한다.본인이 원하면 계속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초등학교에서 180명을 선발하는데 전원이 중학교로 진학하고 고등학교 때에는 40%가량의 학생을 외부 충원한다. 학부모 왕다이쥔(王黛軍) 베이징이공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많이 주고 있고 학생특성을 배려,존중한다는 점에서 이 학교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다른 학교 같으면 진학률을 높인다며 저녁 7∼8시까지 잡아놓고 주입식 수업을 진행하지만 징산은 오후 4∼5시면 학생들을 풀어준다. 징산학교의 고등학교 부문의 대학진학률은 100%.5명 중 1명이 최고명문 베이징·칭화대에 입학하고 90%가 명문대에 입학한다.진학률보다 창조력과 자율성을 강조한 교육 때문인지 베이징·칭화대 입학률이 1위는 아니다.“베이다·칭화의 입학률은 베이징 4중학,베이징사범대부속고,런민대 부속고가 우리를 앞서요.그러나 우리 졸업생들이 지식사회에서 더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징산학교는 공산당 선전부,문화부 등에서 지원을 받지만 주요 국영기업의 재정협조도 적지않다.외국기업이나 사기업의 기금찬조도 환영하고 미국기업인의 자녀도 일부 다니고 있다.중국에선 국립학교라고 정부지원에만 손을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학교는 기존 6-3-3 학제를 파괴,교육제도에 변화를 가져왔다.“초등학교 5년,중학교 4년,고등학교 3년의 5-4-3제의 실험은 성공적입니다.초등학교는 지나치게 느슨하고,중학생들은 수학 물리 등 갑자기 어려워진 교과과정과 심리적·신체적인 변화에서 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지요.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중학교 과정이 더 길어야 한다는 판단이었지요.” 학사를 담당하는 순잉춘(孫迎春) 선생님의 설명이다. 1960년대 시작된 징산의 학제실험으로 상하이의 절반 가량의 학교가 5-4-3제를 도입했고 교육당국도 향후 중고등학교의 학제를 5-4-3제로 변화시키려 하는 중이라고 순 선생은 말한다.중점·실험학교답게 중국어와 영어 등 외국어 교과서를 학교측이 독자적으로 편찬한다.영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일주일당 2시간씩 가르친다.읽기보다 듣기 말하기 위주로 미국·영국인 등 현지인 선생님들과 말하면서 영어에 입문한다.중국어의 경우 역사 이야기나 아이들의 상상력과 관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의 전개를 통해 시작한다는 게 순 선생의 설명이다. 판 교장은 “체육수업의 경우 다른 학교들이 보다 빨리,멀리,오래라는 구호로 체력강화형 수업을 진행한다면 우리는 개인의 특성에 맞고 청소년 발육 즉, 신체형성에 도움이 되는 발육위주에 중점을 둔다.”면서 “우리 교육의 초점은 현재의 능력에 아닌 내일의 활동을 위한 준비에 있다.”고 강조했다. swlee@seoul.co.kr ■특파원이 만나본 징산학교생들 |베이징 이석우특파원|“한국영화와 TV드라마,월드컵과 축구팀,금모으기,롯데월드,제주도,휴대전화,베이징현대자동차….” 한국 하면 뭐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징산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거리낌 없이 말을 쏟아냈다.순간 교실 중간쯤에 앉아 있던 여드름투성이의 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헤이샤오(黑哨).”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교실은 이내 까르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헤이샤오는 블랙 휘슬,즉 검은 호루라기다.중국 국내 프로축구경기에서 심판이 뒷거래를 하고 돈을 받은 팀을 위해 부당한 판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2002년 서울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좋은 성적과 일부 경기들이 헤이샤오와 관계가 있다고 비꼰 것이다. 북한 하면 생각나는게 뭐냐고 묻자 한 남학생이 손을 들더니 대뜸 “감자요.”라고 말했다.북한 하면 가난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탓이었다.“핵무기,김일성,김정일.”등에 이어 “조선냉면”,“조선비빔밥” 등 조선이란 수식어가 들어간 것을 몇몇 학생들이 나열했다.우리 전통음식을 중국에선 앞에 조선자를 붙여서 부르는데, 중국의 어린 세대는 북한(조선)과 한국을 완전히 별개의 문화체,완전히 다른 언어를 갖고 있는 나라로 인식했다.한국은 빠른 시간 안에 경제발전을 한 나라란 인상이 심어져 있었고 친근한 생각도 갖고 있었다. 장래 희망을 묻자 쓸데없는 질문이란 표정이었다.그래도 손으로 가리키면서 시키자 “우주공학자”,“생물학자”등 우리 학생들과 달리 과학자,공학도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좋아하는 사람,존경하는 인물을 말하라고 하자,저우화지엔(周華健),장신저(張信哲) 등 홍콩가수나 연예인과 야오밍(桃明) 같은 미국 NBA에서 활약하는 중국인 운동선수들이 대부분이다.영어로 묻자 주저없이 영어로 답했다.이미 몇몇 학생은 영국 등 영어권에서 열리는 여름학생캠프의 참가를 위해 출국한 상태였다.미국에 대해선 일방적,패권주의적 등의 부정적인 인상을 표현했다.샤오빈빈은 “오만한 미국은 싫다.영국으로 유학가고 싶다.”고 말했다.리우싱화(劉興華) 선생님은 “활달하고 거리낌없는 것이 요사이 청소년들의 특징이다.대부분이 가정의 유일한 자녀이기 때문에 부모와 조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보호 속에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라고 지적했다. swlee@seoul.co.kr ■베이징·칭화大에 ‘초중고생 행렬’ |베이징 이석우특파원|‘베이다·칭화(베이징대·칭화대학의 통칭)로∼.’ 베이징·칭화대의 교정은 7월 들어 전국에서 몰려든 초·중·고학생들에게 점령당했다.방학을 맞아 단체로 베이다·칭화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적게는 15∼20명,많게는 100여명씩 무리지어 성지 순례하듯 몰려와 중국의 두 최고 명문대 교정을 활보하고 있다. ‘내 자식이 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의 학부모들은 학교 방문이 장래 자녀들의 베이다·칭화 입학과 어떤 연관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항공료,숙식비를 아끼지 않고 순례를 추진한다.적잖은 지방여행사들은 부모들의 이런 소망에 편승,베이다·칭화 학생체험여행이란 신상품을 내놓고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3박4일 혹은 4박5일 일정으로 학생들이 베이다·칭화의 학생숙소나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시설참관,대학생들과 대화,학교관계자 설명회에 참석하게 한다.학생들의 면학자세에 자극을 준다는 이유로 학부모 사이에 인기가 치솟고 있다. 중남정법재경대의 왕카이밍(王開明) 교수는 “대도시 학부모들이 대학입시에서 가산점을 얻기 위해 자녀들을 신장,칭하이성 등 편벽한 저소득지역 학교로 단기간 이주시키는 ‘대입 이민’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대학입시열기의 한 단면”이라고 소개했다. swlee@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12) 상하이 집중탐구 ②

    [차이나 리포트 2004] (12) 상하이 집중탐구 ②

    한국인들은 지금도 “몇 년 후면 상하이가 서울을 따라잡을 것인가?“라고 묻곤 한다.중국인들도 10년 전에는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그러나 지금은 아니다.그들은 이제 “언제면 상하이가 세계 최고의 도시가 될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상하이시의 투자환경에 대한 취재를 마치고 나서 그들의 이런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롄(大連)에서 시작해 톈진(天津),칭다오(靑島),상하이,닝보(寧波),샤먼(廈門),푸저우(福州),선전,광저우(廣州)등으로 연결되는 포트벨트의 중심에 상하이가 위치하고 있다.동부 연해지역의 각 도시들을 선으로 연결해보면 활 모양이 된다.그 활의 중심부를 서에서 동으로 6000㎞를 달리며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양쯔강이 화살이라면 상하이는 화살촉이라고 할 수 있다.이 화살촉이 드넓은 태평양을 겨냥하고 있는 모습은 세계의 중심도시로 부상하려는 상하이 시민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상하이는 경제적으로도 중국 최대 경제권인 장강삼각주의 구심점이다.상하이 주변의 저장(浙江)성,안후이(安徽)성,장쑤(江蘇)성 등은 모두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일찍 시작된 지역이다.주변에는 양저우(揚州),우시(無錫),쑤저우(蘇州),항저우(杭州) 등 무려 10여개의 이름난 도시가 있다.장강삼각주에 밀집된 15개 도시의 GDP가 전체 중국경제의 19.5%를 차지한다.주변 지역의 시장 잠재성은 다국적기업들이 상하이에 투자를 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상하이는 줄곧 중앙정부의 커다란 관심을 받으며 발전했다.푸둥개발구의 최초 구상자는 덩샤오핑이었으며,그 건설작업을 직접 지휘했던 사람들은 장쩌민과 주룽지,리란칭,우방궈,쩡칭훙 등이다.이들은 모두 상하이 출신들로 중국의 중앙정치 무대에서 성공한 이른바 ‘상하이방(幇)’들이다. 중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정치수도인 베이징을 제쳐두고 경제수도인 상하이에서 세계적인 행사를 잇달아 유치함으로써 국제도시로서의 상하이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1999년 가을 세계 500대 기업인의 모임인 ‘포천 글로벌 포럼 500’이 푸둥의 동방명주탑 앞에 위치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렸고,2001년에는 APEC회담이 상하이에서 진행되었다.2010년 박람회가 열리면 상하이는 또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맞는다. 상하이에 대한 투자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상하이의 푸둥지구는 선전,주하이 등 여타 경제특구와 달리 하이테크 산업의 생산,연구개발,그리고 최첨단 물류시스템 등이 고루 갖춰진 허브 특구로서 투자기회가 제일 큰 지역이다.그래서 푸둥에는 GM,IBM,GE,필립스,알카텔,씨티뱅크 등 다국적 기업의 본부 60여 개가 있다. 풍부한 고급인력도 상하이가 지닌 장점의 하나다.1990년대 후반부터 서구의 유명대학에서 MBA나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선진적인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해귀파’(海歸派·하이구이파)들이 돌아오고 있다. 이들이 경제의 고속성장을 이끄는 중심세력이 된다.개혁개방 이후 해외로 나간 중국 유학생 58만명 중 15만명이 이미 귀국했으며,이들은 전국에 4000여개의 기업을 세웠다.상하이 일대에만 최근 5년간 돌아온 해귀파가 2만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해귀파들은 기회의 땅인 상하이로 몰려들었다.그 이유는 간단하다.돈과 기회이다.기업들이 제시하는 스톡옥션을 보고 인재가 찾아 드는가 하면,우수 인재에 대한 정부의 배려로 그들이 몰리기도 한다.해외의 유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학생이 대학교에 교수로 취직을 하면 주택을 무료로 제공하고,연구지원금을 충분히 지원한다.또한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국제학교 설립에도 시당국이 발벗고 나서고 있다. 해귀파의 등장은 여러 측면에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상하이의 공무원들 중 상당수가 해외유학 경험을 가지고 있다.이들은 선진적인 공공 서비스 제공에 익숙해 있다. 현재 상하이시 정부는 자본주의식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중이다.그 골자는 시장 진입 장벽의 제거,정부간섭의 축소,투자환경 개선,법률환경 정비,시장요소의 효율 증대 등이다.상하이는 지난 해 중국내 200개 도시 경쟁력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해 높은 투자기회를 검증 받았다.이같은 개혁 작업이 완수되면 상하이의 투자기회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상하이 김창도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jincd@posri.re.kr ■ 국제화 열풍 “위험도 크다” 상하이의 투자 전망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단기간에 이룩한 급속한 발전이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도시생활비의 상승,비싼 인건비,심화되는 교통난 등이 비즈니스 환경의 악화 요인이 되고 있다. 급상승하고 있는 부동산 임대료로 인해 외국기업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푸둥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420m의 진마오 빌딩 임대료는 홍콩 최고가 빌딩 수준에 도달한 상태이다. 상하이 투자진출은 시기적으로 이미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중국 상무부 다국적기업연구센터의 왕즈러(王志樂) 주임은 “상하이의 높은 인건비와 부동산 가격을 고려할 때,한국기업이 꼭 상하이에 진출해야 하는 지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상하이 보다 그 주변 지역에 대한 투자가 더 타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상하이의 국제화 열풍이 인근 도시로 급속도로 번져나가면서 주위 도시들이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하나은행 상하이지점의 고광중 지점장은 “당장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발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상하이 주변 도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런 점에서 상하이의 대체 투자지로 급부상하는 곳이 쑤저우다.상하이에서 서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장쑤성 쑤저우는 상하이를 그대로 모방한 국제도시다.최근 상하이로 들어왔다가 이 곳으로 다시 옮기는 외국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밖에도 타이완 PC업체들이 집결해 있는 쿤산,전자부품·LCD업체 밀집 지역인 우시,난징 등도 상하이에 위협을 주는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김창도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jincd@posri.re.kr ■ 한국中企 ‘묻지마 투자’로 실패 다국적기업의 경연장이 되고 있는 상하이에 대한 한국기업의 진출은 어떠한가? 푸둥개발구 국제교류중심의 마쉐제에(馬學傑) 선전부 부부장은 “상하이의 핵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푸둥지역에 이미 1만여 개 외자기업이 들어와 있다.”고 했다.이 중 한국기업은 233개로 예상보다 적다. 한국이 홍콩,버지니아제도에 이어 세 번째로 중국에 많이 투자를 하는 나라이다.상하이에 대한 투자가 부진한 이유에 대한 마 부부장의 설명은 이렇다.“한국 중소기업의 투자가 적기 때문이다.미국,일본,싱가포르 기업들에 비해 실력이 뒤지기 때문이다.한국기업은 자신의 특징에 맞는 투자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설명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한국 대기업의 대중국 투자는 보통 철저한 사전조사를 거치고 전략적으로 충분하게 검토한 후 진행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기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중국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국식 관행과 법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보다 적극적 진출이 필요하다. 현지의 경험과 지식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현장에서 직접 뛰는 것이 경험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상하이가 중국의 미래이고 또한 다국적기업의 경연장이라면 상하이에서 경험을 축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경험의 대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언론이나 연구소 등을 통해 쉽게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사회가 다양한 분야의 중국 전문가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김창도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jincd@posri.re.kr
  • [차이나 리포트 2004] (10)화교네트워크의 힘

    [차이나 리포트 2004] (10)화교네트워크의 힘

    중국의 경제수도격인 상하이 푸둥(浦東)지역의 황푸(黃浦)강 주변.6월중순 취재팀이찾은 이곳의 루자주이(陸家嘴)는 대륙 어느 도시의 거리보다도 현대적으로 단장돼 있었다.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의 고층 건물들로 가득찬 푸둥 신구 전체가 뉴욕의 ‘맨해튼’이라면 루자주이는 그 핵심인 ‘월스트리트’에 비견된다.총면적 28㎢에 불과한 지역에 굴지의 중국 내외 기업들의 사무실은 물론 국내외 금융기관 200여개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중국의 금융 메카 루자주이에 한국금융기관도 상륙했다.하지만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간판은 역시 중국의 금융개방에 앞서 진출한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같은 중화권 금융기관들이다.아시아 금융 허브를 꿈꾸는 상하이시가 화교자본을 그 첨병으로 활용하려는 복안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상하이 구본영특파원| 상하이만이 아니다.화교들은 중국 전역에서,아니,중국인이 흩어져 사는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유동자산을 지닌 ‘큰 손’으로 군림중이다.세계 각지의 화교는 총 3400만명을 넘어서면서 그 자체로 가장 큰 이민집단이지만,동남아나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화교는 유대인과 더불어 세계경제의 배후 실세다. ●동남아 상권 주무르는 큰손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공상연합회 연락부 자오훙(趙宏) 부장은 “화교도 외국인이고,중국본토 투자시 특혜는 없다.”고 애써 강조한다.그러면서도 “해외의 화교,특히 화상(華商)들이 애국심과 근면성 등 좋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화교 특유의 상술과 근면성이 은연중 대중화(大中華)정신을 연결고리로 해 네트워크화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실제로 2001년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절반이 넘는 216억달러가 화교자본이라는 통계도 있다. 흔히들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타이완을 묶어 중화경제권이라고 부른다.하지만 그 외곽의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인 싱가포르는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화교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아시아 지역 거주 화교는 총 2600여만명으로 이중 85%인 약 2200만명이 동남아 지역에 살고 있다.이들은 전체 인구의 10%에도 밑돌지만 역내 무역의 60% 이상을 좌지우지한다. 한족이 다수인 싱가포르는 제쳐두더라도,태국의 최상위 재벌 가운데 6개를 화교자본이 차지하고 있고,인도네시아에서는 상위 10개 재벌 모두를 화교계 자본이 장악중이다.지난 1997년 미 경제지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10대 억만장자 명단에 홍콩의 리카싱 창장(長江) 그룹회장 등 화교가 4명이나 랭크된 사실이 화상들의 막강한 재력을 재확인해준다.2004년 ‘포천 세계 500대 기업’명단에서 중국기업이 15개나 포함돼 한국(11개)을 제친 것도 기실은 화교자본의 위력을 말해준다. ●베이징 정부 세계화상대회 적극지원 화교자본이 동남아라는 좁은 울타리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미국의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등 대도시 치고 차이나타운이 없는 곳은 없다.심지어 러시아의 고도(古都)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최근 차이나타운이 조성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지난 4월 중국 상하이 산업투자회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시와 함께 10억달러를 투자해 쇼핑센터와 호텔,아파트단지,중국식당 등을 건설키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이같은 화상들의 잠재력과 그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대륙에 대한 기여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근년들어 화상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2년마다 열리는 세계화상대회(WCEC)를 적극 후원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본래 1991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제안으로 조직된 WCEC는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됐다. ●한국 뒤늦게 관심 보여 철없는 악동들이 동네 자장면집 아이를 놀려먹던 때가 있었다.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어설픈 중국말 사성(四聲)까지 넣어가며 “짱꼴라”니,“진 땅의 장화”니 하며 외치던 그 시절이다.이렇듯 유독 한국에서는 화교사회가 그다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한국의 화교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만명을 웃돌았으나,한국 사회 특유의 배타성 등으로 인해 지금은 겨우 2만∼3만명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상당히 세계화됐지만,화교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한국기업인들이 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상네트워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때문에 한·중 양국 경제의 윈­윈 차원에서 “화교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자오홍 부장)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인천시가 추진중인 송도 차이나타운 건설계획이나,서울시가 검토해온 상암동 또는 뚝섬 차이나타운 계획이 오히려 때늦은 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이 일본 호주를 제치고 2005년 세계화상대회를 유치했다는 사실이다.중국인의 해외여행 자유화나 한국 증시로 몰려오고 있는 싱가포르 자본 등 범중화권의 대(對)한국 투자를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kby7@seoul.co.kr ■ 기고-성장률 10년간 8%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중국경제의 성장 전망과 전략,그리고 향후 변화는 중국인들은 물론 주변국가,전세계의 커다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세계천년 경제사’에 따르면 1820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전세계의 32.9%로 세계 1위였고,2위는 인도(16%)였다.3,4위는 프랑스와 영국 등 서방국가다.둘을 합쳐도 GDP의 23.6%에 불과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중국경제는 외국의 침략과 내부관리 실패로 후퇴했다.하지만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덩샤오핑(鄧小平)은 ‘산부저우’(三步走·3배로 달린다) 전략 구상을 제기했다.이는 중국의 GDP를 10년마다 배씩 늘려 나가자는 구상이다.1980년 2500억달러에서 1990년 5000억달러,2000년에 1조달러를 달성한다는 목표다.이후 21세기에도 30∼50년간 4배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1,2단계는 이미 실현됐다.2000년말 중국의 1인당 GDP(7078위안)는 80년의 15배로 1978∼2000년까지 연평균 9.5%의 속도로 증가됐다.세계경제 연평균 성장의 3배이며 경제규모는 이탈리아를 초과,세계 제6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21세기 초반 20년은 중국에 절호의 기회다.1997년 중국정부는 21세기 전반기 50년의 ‘신(新)산부저우’ 전략 목표를 세웠다.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이 국제 협력과 경쟁에 전면적으로 참여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20여년내에 중국은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샤오캉(小康·복지국가)’사회를 실현시킬 것이다. 1단계 2000∼2010년의 경제성장은 8%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2단계 2010∼2030년까지 6% 수준을,3단계 2030∼2050년 4∼5%의 수준을 유지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2010년까지 2000년 GDP의 2배로,2020년에는 4배가 된다.2050년 건국 100주년을 맞아 현대화를 실현,중국을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국가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2020년에 종합국력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권에 진입,국제경쟁력은 세계 15위권을 목표로 한다.중국의 경제력은 2005년 프랑스,2006년 영국,2012년 독일을 능가하게 된다.순조롭다면 금세기 중반 중국은 일본을 넘어서 제 2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낙관적으로 본다면 국내외의 평화로운 환경이 조성되면 중국경제는 향후 30년간 8∼10%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미국이 3%대 경제성장을 유지하면 21세기 중반에 중국은 미국을 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발전은 중국이 인류 역사에 중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 250년 후 21세기 중반까지 15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공업화를 실현하고 현대 물질문명의 성과를 누린다면 이는 세계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중화민족에 있어 21세기는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장위옌 中사회과학원 아태硏 부소장
  • 기업인 黨포진…中 ‘붉은 자본가’들이 뜬다

    기업인 黨포진…中 ‘붉은 자본가’들이 뜬다

    |베이징·상하이 구본영특파원|중국 사회에 이른바 ‘붉은 자본가들’이 뜨고 있다.붉은 자본가란 본디 중국 정부에 의해 임명돼 국영기업을 경영하는 인사를 가리켰다.그러나 올해까지 최근 수년간 이윤동기로 무장한 신흥 기업인들이 중국 공산당의 고위간부 대열에 대거 합세,또 다른 의미의 붉은 자본가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새로운 의미의 ‘붉은 자본가’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나 마오쩌둥 이론에서 보면 전형적인 부르주아 계층이지만,이제 역설적으로 공산당에 입당해 핵심 간부직에까지 오르고 있다. ‘차이나 리포트’ 취재팀이 만난 중국 공산당의 한 고위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현재 장관급 위상인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회 위원과 전국인민대표자회의(全人大·의회격) 대표의 20∼30%가 기업인”이라면서 “국가정책 결정과정에 기업인 참여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최근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공산당 간부일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무역위·국유자산관리위 등을 거친 그는 “중국 최대 백색가전업체인 하이얼의 장뤼민(張瑞敏) 총재도 올해 공산당 최고위급인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의 전자업체 톰슨과 합작으로 세계 최대 TV생산라인을 구축한 중국의 TCL집단 최고경영자인 리둥성(李東生) 회장도 대표적인 붉은 자본가.그는 2002년 중국 공산당 16차 전국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된 바 있다.하지만 올들어 그는 자신이 이끄는 TCL집단의 지분구조를 확 바꿔 버렸다. 미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TCL이 지난 1월 3억 3000만달러를 증자하는 과정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후이저우(惠州) 시정부 지분을 25%(종전 40.97%)로 줄이고 민간이 38% 차지하는 구조로 조정한 것이다.1996년 후이저우시 지분이 80%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TCL은 이제 더이상 국유기업이 아니라 ‘민영기업’으로 거듭난 셈이다. 계층 분화,즉 빈부 격차의 확대와 붉은 자본가의 본격 등장이라는 ‘현실’ 앞에 마오쩌둥 이래의 홍기(紅旗)는 빛이 바랜 지 오랜 느낌이다. 그렇다면 “중국식 ‘시장사회주의’의 실체는 무엇인가,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라는 등의 의문이 제기된다.중국 공산당은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이에 대해 중국 공산당 소식통은 “덩샤오핑 동지의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중국은 착실히 시장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며 체제 동요설을 단호히 부인했다. 그러나 그의 언급과는 별개로 붉은 자본가의 급부상은 이제 중국 공산당 내부나 중국경제의 생산양식에 ‘화학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웅변하기에 충분하다.붉은 자본가의 출현은 장쩌민의 간판 이론인 ‘3개 대표론’(부르주아의 입당 허용이 핵심)이 당 강령에 삽입되면서 싹이 텄다.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민간영역의 경제가 급속히 확대됐지만,법적 보장이 미흡해 경제 활동에 커다란 걸림돌이 됐음을 감안한 것이다. 올해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2차 회의를 통해 사유재산 보호 조항은 더욱 강화됐다.특히 헌법 제11조의 사영경제 조항도 보다 구체화됐다.사영경제의 개념은 이번에 ‘국가는 비공유제 경제발전을 고무·격려·지지한다.’는 표현으로 뚜렷이 명문화됐다.자본주의 색채가 더욱 짙어진 것이다. 이같은 변화가 종국에는 종전의 중국 사회주의체제를 환골탈태시킬 것인지,아니면 중국 공산당의 주장대로 중국식 시장사회주의의 발전과정에 불과한지는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다.분명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차이나호는 이제 세계경제의 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왼쪽(사회주의 사상 강조)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시장 및 경제 중시)으로 달리고 있는 열차’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kby7@seoul.co.kr
  • [열린세상] 북한이 발전할 수 있는 길/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북한은 경제적,외교적으로 부분적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북한의 변화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장기간의 경제침체를 벗어나려는 북한의 체제경영전략은 이른바 ‘강성대국’ 건설이다. 그런데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서는 남한과의 관계 개선뿐 아니라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남한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공동발전을 위해 북한에 대한 지원과 협력에 앞장서고 있다.미국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경제 환경을 개선해줄 수 있다.일본은 북한에 대해 많은 자본과 선진 기술을 공급해줄 수 있다.물론 이들 세 나라 이외에도 북한은 외부 자원 획득,시장 개척,실추된 신뢰 회복 등을 위하여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더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외부세계가 북한을 보는 시각은 썩 좋지 않다.세상의 이치와 모든 사물을 통치자가 내세운 이데올로기에 따라서만 보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은,‘신정(神政)국가’를 떠올리게 한다.김일성 광장에 운집한 백만명의 군중이 함성을 지르고 행진하는 광경은,전체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최고지도자에 대한 주민들의 무조건적인 충성 강요는,북한을 ‘현대판 봉건체제’로 묘사하게 만든다.경제건설에 매진하자고 주민들을 독려하고 동원하면서 국방건설을 더욱 강조하는 선군정치는,북한을 여전히 ‘병영국가’로 보게 한다. 이러한 체제의 성격으로부터 탈각하지 못하는 한,북한이 경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추진하는 여러 가지의 경제개혁·개방조치들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경제개방·개혁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을 때,개혁·개방의 전도자였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교조적 이데올로기를 주장하지 않았다.자신을 신(神)으로 만들지도 않았으며,중국 사회에 남아있던 봉건제적 요소의 탈피를 역설했다.세상의 이치와 사물을 실용주의적으로 보고,인민들의 삶이 먼저 개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그리고 땅을 그 땅에 터를 둔 농민들이 자기의 것처럼 경작하도록 권한을 주었다.그의 이러한 비전과 정책이 김정일도 ‘천지개벽’이라고 말한 중국의 발전을 가지고 왔다. 옛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을 추진했을 때,그는 지배층만이 아닌 모든 소련인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비전으로 삼았다.소련이 미국에 견줄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지만,그는 군사력이 국민들의 삶을 개선해준다고 믿지 않았다.사회주의 종주국의 최고지도자로서 전체주의를 고수할 수도 있었으나,고르바초프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체제 변화를 지향했다.비록 그 자신은 오랜 기간 누적되었던 사회주의 병폐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일선에서 사라졌지만,그는 오늘날의 러시아가 있게 한 터를 닦았다. 1980년대 말 폴란드·헝가리·체코에서 국민들이 아래로부터 변화를 요구하였을 때,공산당의 지도부도 경제적·정치적 변화가 나라의 미래 발전을 위한 시대적 필연임을 깨달았다.그래서 이 나라들은 국민들의 요구에 따른 정치·경제체제를 채택하여 놀라운 발전의 길로 들어섰다. 이처럼 잘못된 과거의 길로부터 벗어나 오늘날 새로운 국가발전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지도자들이 국민의 삶을 위해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가를 깨닫고,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여 그것을 실천하였다는 점이다.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 전략과 ‘실리사회주의’의 개혁·개방정책이 전체 북한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비전을 갖고 새로운 발전의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가길 기대한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중국 황제/앤 팔루던 지음

    고대 중국에서 황제는 ‘신’이나 다름없었다.천명을 받은 도덕적 통치자였으며 지상과 하늘을 중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중국의 황제는 마치 해와 달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존재로 사회에 녹아들었다.중국 역사상 전통시대의 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기운과 흐름이 있었지만,황제제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는 없었다.장제스나 마오쩌둥,덩샤오핑 같은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시대의 통치자들조차 ‘황제형’ 권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영국의 중국문제 전문가인 앤 팔루던이 쓴 ‘중국 황제’(이동진·윤미경 옮김,갑인공방 펴냄)는 역대 황제들의 면면을 통해 살펴본 중국 제국 2000여년의 문명사다.중국의 황제제도는 기원 전 221년 진나라 시황제가 즉위하면서 시작돼 1912년 마지막 황제 푸이가 퇴위,청조가 멸망할 때까지 2000여년 동안 지속됐다. 이 책은 그 기간 지존의 자리에 올랐던 중국 황제 157명의 내밀한 삶을 들춰낸다.황제를 중심에 놓고 중국의 역사를 통관하는 방식은 정사의 체제를 따른 것.그런 점에서 황제들의 연대기,즉 ‘황제 본기(本紀)’인 셈이다. ●황제 157명 통해 살펴본 중국 2000년史 중국에 황제가 157명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중국 황제의 수에 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다.‘분열의 시대’에 어느 왕조를 정통 왕조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또한 정통 역사서에선 단명한 황제는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누구를 황제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역사적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이 책은 중국의 정통 사서에서 황제로 인정받는 남북조 시대 북조 왕조인 북위,동위,서위,북제,북주,그리고 요와 금의 황제들은 다루지 않는다.반면 정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신 왕조를 세운 왕망에 대해선 소상하게 밝힌다.전한 말의 정치가인 왕망은 뛰어난 인재들을 중용한 유능한 행정가로,부자와 지주의 특권을 견제하는 야심찬 개혁에 나섰다.모든 금을 경화로 교환하도록 했다.왕망이 죽었을 때 국고엔 당시 중세 유럽의 전체 공급량보다 많은 14만㎏의 금이 쌓여 있을 정도였다.그러나 부유층을 소외시킨 왕망은 끝까지 개혁을 밀고 나갈 수 없었다.9년 동안 즉위한 왕망은 결국 평민 사병에게 죽음을 당했다. ●너무 뚱뚱해서 혼자 움직이지 못했던 만력제 중국 황제들의 삶은 그들의 거대한 권력만큼이나 다채롭고 신비스러웠다.책에 따르면 명나라 만력제는 너무 뚱뚱해 누군가의 도움 없인 일어서지도 못했다.양나라 무제는 틈만 나면 왕궁을 빠져나와 불교사원으로 달려간 은둔형 황제였으며,화가 황제인 북송의 휘종은 눈멀고 귀먹은 채 불행한 삶을 살다 갔다.금욕적인 인물로 후궁에게서 낳은 아들이 없었던 수나라 문제,신분을 숨기고 매음굴을 찾아가 양성애를 즐겼던 청나라의 허수아비 황제 동치제,평민으로 태어나 가난을 딛고 천자에 오른 전한의 선제 등에 관한 이야기도 관심을 끈다. ●스스로를 聖母라고 칭한 측천무후 여성으로서 중국의 권력지도를 좌우한 인물론 단연 당 태종과 고종의 후궁인 측천무후와 청나라 함풍제의 후궁이자 동치제의 생모인 서태후가 꼽힌다.측천무후의 권력 장악 과정은 피로 얼룩졌다.고종의 황후 왕씨와 후궁 소씨의 사지를 절단한 뒤 몸통을 술통에 던져 죽게 했는가 하면,밀정을 둬 공포정치를 일삼았다.측천무후는 후궁이면서도 특이하게 자기 일족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측천무후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유가와는 달리 여성의 중요성을 인정한 불교를 적극 지원하고 활용했다.673년 룽먼 석굴에 자신의 모습을 본떠 거대한 미륵보살 석상을 세우게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측천무후는 스스로를 ‘성모(聖母)’라고 불렀다. 동치제와 광서제의 섭정이 돼 국정을 농단한 서태후는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대신들을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 권력을 유지했다.쾌활한 성격의 서태후는 다른 만주족 여성들처럼 손톱을 길러 기분이 나쁘면 궁녀들의 얼굴을 할퀴었다고 한다. ●중국인들 자부심, 황제제도와 연관 저자는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중국(中國·중심국가)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황제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유사 이래 중국인의 삶은 황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황제정치는 2000여년 만에 별다른 투쟁도 없이 붕괴됐다.제정(帝政)은 중국의 가장 성공적인 정치제도 가운데 하나였지만,근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황제정치의 이데올로기가 유연성을 잃게 된 것이다. 황제의 역사는 ‘위로부터의 역사’다.하지만 중국의 황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중국 사회를 관통한 질서의 축이란 점에서 그를 통해 중국사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다.이 책의 미덕은 거기에 있다.이번에 출간된 ‘중국 황제’는 본격 대중역사서를 표방한 갑인 크로니클 총서 중 첫권.출판사측은 앞으로 ‘로마 공화정’‘로마 황제’‘교황’ 등을 차례로 펴낼 예정이다.2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3)경제를 보는 두 시각

    [차이나 리포트 2004] (3)경제를 보는 두 시각

    중국은 논쟁의 나라다.역사적으로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으며 근대화 과정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와 자본주의자들간의 논쟁이 치열했다.마르크스주의자들이 퇴장한 지금 또 하나의 논쟁이 불 붙고 있다.아직은 서구 자본주의로 무장한 학자들간의 논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그러나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태동하는 조짐도 보인다.역사학계의 ‘동북공정론’과 국제정치학계의 ‘다극화론’은 ‘중화민족주의’의 반영이다.경제학계의 ‘긴축 논쟁’도 그 뿌리는 이런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중국 정부는 과거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학자들간에 논쟁을 유도했고 논쟁에서 정리된 결론들을 정책에 반영했다.이번 긴축 논쟁은 향후 중국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에도 지난 2001년 주식시장 논쟁과 마찬가지로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의 우징롄(吳敬璉)과 베이징대학의 리이닝(勵以寧) 교수가 양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이들은 모두 덩샤오핑(鄧小平)사단의 개혁파 그룹에 속하며 중국 경제학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논쟁의 핵심은 긴축의 강도와 정부의 시장개입 여부다.지난 2001년의 주식시장 논쟁에서는 중국 정부가 우징롄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우징롄이 판정승을 거둔 바 있다. ●긴축을 지지하는 관방학자들 중국정부의 긴축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곳은 정부 연구기관인 국무원발전연구중심과 사회과학원이다.사회과학원의 판강(樊綱)은 “중국경제가 이미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경기과열로 들어섰으므로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그는 철강,에너지 등 일부 원부자재의 병목현상이 너무 심각하므로 현재의 투자과열을 진정시켜야만 물가상승 압력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징롄은 판강과 같이 정부의 시장개입에 동의하면서도 물가상승보다는 부동산,주식시장의 거품을 더 우려하고 있다.이들은 모두 “정부가 경기과열을 계속 방치하면 심각한 시장주의의 오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학계는 정부의 시장개입에 비판적 반면,상당수의 학자들이 이번에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며,겨우 걸음마 단계에 있는 중국의 시장기능이 긴축 조치로 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리이닝 베이징대 교수는 현재의 중국경제 상황을 ‘정상적인 경기순환의 과정’이라고 표현했다.중국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경기침체이지 경기과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해외유학파의 대표주자격인 후쭈류(胡祖六) 골드만삭스 중국 지사장 역시 “개도국인 중국경제가 9∼10% 성장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현재 중국경제는 결코 과열상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다만 현재의 부동산시장과 자동차산업은 문제가 있으므로 이들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선별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홍콩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장우창(張五尙) 교수도 “현재의 상황을 결코 통화팽창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개입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 부처간에도 입장 달라 경제부처들도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통화관리 주무부처인 중국인민은행은 현재 통화팽창 압력이 있으므로 이를 해소할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국가발전개혁위원회(한국의 재정경제부)와 국가통계국은 약간 다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국가통계국은 최근의 소비자 물가상승 추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지나친 통화긴축이 기업에 어려움을 줘 경기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의 거시경제연구원도 현재 거시경제지표들이 합리적인 수준내에 있으므로 지나친 긴축은 필요치 않다는 시각이다. 정부 안팎에서 이처럼 경제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과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어 당분간 중국정부가 초강력 긴축 수단을 동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금리 인상을 하더라도 그 폭은 소폭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베이징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mhlee@kiet.re.kr ■ 경제 움직이는 싱크탱크들 중국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국무원발전연구중심(DRC)을 들 수 있다.1981년 경제개혁을 담당할 인재와 정책수단을 개발하기 위해 국무원 산하에 독립된 기관으로 설립하였다.기관장은 장관급으로 책정되어 있다.자오쯔양(趙子陽) 전총서기의 브레인이었던 마홍이 장기간 주임으로 있었으며 현재는 왕멍쿠이(王夢奎)가 주임으로 있다. 성장,고용,지역발전,농촌,산업,국제경영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중국 개혁정책 성공의 최대 공로자중 하나이다.전체 연구원 직원은 700여명,그중에서도 박사급 연구원은 200여명이며 대표적 연구원으로 우징롄(吳敬璉)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국무원 산하 학술기관으로 사회과학원이 있다.국무원발전연구중심이 정책수단 개발을 주 임무로 맡고 있는 반면,사회과학원은 이데올로기 개발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동북공정의 주역들이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들이다.대표적 경제학자로 초창기 개혁멤버중 하나인 류궈광(劉國光)을 들 수 있다. 중국은 각 부처별로 정책연구를 보좌하는 연구기관들을 내부에 두거나 또는 외부 독립기관으로 두고 있다.대표적 연구기관으로 중국 핵심 경제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거시경제연구원,상무부의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1997년 설립),중국인민은행 산하의 금융연구소(1956년 설립)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들어와 미국 등 해외에서 유학한 고급 두뇌들이 대학으로 들어오면서 대학의 정책연구기능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베이징대학 중국경제연구중심과 칭화대학 경제연구중심 등이 대표적 대학 부설 연구기관들이다.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중심은 1994년 설립되었으며 리이닝,리이푸(林毅夫) 등이 대표적 학자이다. ■ 경제학계 주류·비주류 중국 경제학계의 주류는 극좌인 마오쩌둥 사상을 버리고 극우인 자본주의 경제학으로 무장하고 있다.지난 20여년간 개혁정책으로 인해 상하이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듯 경제학계에도 버금가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부개입 최소화를 주장하는 주류 학자들 중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이들은 연령층으로는 개혁 초창기 세대인 70대와해외유학파인 30대가 주력을 이루고 있다.중국내 정부나 기업 등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40대와 50대 연령층이 없다.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문을 닫음으로써 이 기간에 학교를 다녀야 했던 40대와 50대가 정규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무원발전연구중심 등 개혁후 새로 설립되어 보수가 좋은 정부 연구기관이나 대학,증권기관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개혁정책의 이론을 제시하고 구체적 정책수단들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 개혁정책을 만들고 그리고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중국내 신흥 화이트 칼라층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공평보다는 효율을 주장하며,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기능을 중시한다.규범경제학보다는 실증경제학을 선호하고 국제무역에 있어서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있다. 소유제에 있어서는 사유제의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으며,국유기업의 ‘철밥통 근로자’들을 ‘노동귀족’으로 간주하며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서구 경제학 남용에 반대하는 비주류 학자들 대표적 비주류 경제학자로는 쭤다페이(左大培,사회과학원),리우리췬(劉力群,국무원발전연구중심),양빈(揚斌,廈門大) 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은 서구식 자본주의 경제학의 지나친 남용과 재벌 학자들의 부패를 반박하면서 ‘경제학 정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 지금은 상당한 세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최근 다시 대두되고 있는 중화사상과 개혁정책의 부작용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배경으로 생겨난 학파이다. 이들은 신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며 정부의 시장개입을 옹호하고,보호주의와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을 지지한다.다국적기업과의 협력에는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민족기업을 적극 지지한다. 대체로 50대 전후의 세대로 민족관이 뚜렷하다.노동자와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삼아야 하며 민생주의에 입각한 지역간,계층간 소득격차를 해소하는 데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mhlee@kiet.re.kr
  • [차이나 리포트 2004] (3)경제를 보는 두 시각

    중국은 논쟁의 나라다.역사적으로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으며 근대화 과정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와 자본주의자들간의 논쟁이 치열했다.마르크스주의자들이 퇴장한 지금 또 하나의 논쟁이 불 붙고 있다.아직은 서구 자본주의로 무장한 학자들간의 논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그러나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태동하는 조짐도 보인다.역사학계의 ‘동북공정론’과 국제정치학계의 ‘다극화론’은 ‘중화민족주의’의 반영이다.경제학계의 ‘긴축 논쟁’도 그 뿌리는 이런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중국 정부는 과거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학자들간에 논쟁을 유도했고 논쟁에서 정리된 결론들을 정책에 반영했다.이번 긴축 논쟁은 향후 중국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에도 지난 2001년 주식시장 논쟁과 마찬가지로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의 우징롄(吳敬璉)과 베이징대학의 리이닝(勵以寧) 교수가 양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이들은 모두 덩샤오핑(鄧小平)사단의 개혁파 그룹에 속하며 중국 경제학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논쟁의 핵심은 긴축의 강도와 정부의 시장개입 여부다.지난 2001년의 주식시장 논쟁에서는 중국 정부가 우징롄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우징롄이 판정승을 거둔 바 있다. ●긴축을 지지하는 관방학자들 중국정부의 긴축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곳은 정부 연구기관인 국무원발전연구중심과 사회과학원이다.사회과학원의 판강(樊綱)은 “중국경제가 이미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경기과열로 들어섰으므로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그는 철강,에너지 등 일부 원부자재의 병목현상이 너무 심각하므로 현재의 투자과열을 진정시켜야만 물가상승 압력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징롄은 판강과 같이 정부의 시장개입에 동의하면서도 물가상승보다는 부동산,주식시장의 거품을 더 우려하고 있다.이들은 모두 “정부가 경기과열을 계속 방치하면 심각한 시장주의의 오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학계는 정부의 시장개입에 비판적 반면,상당수의 학자들이 이번에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며,겨우 걸음마 단계에 있는 중국의 시장기능이 긴축 조치로 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리이닝 베이징대 교수는 현재의 중국경제 상황을 ‘정상적인 경기순환의 과정’이라고 표현했다.중국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경기침체이지 경기과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해외유학파의 대표주자격인 후쭈류(胡祖六) 골드만삭스 중국 지사장 역시 “개도국인 중국경제가 9∼10% 성장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현재 중국경제는 결코 과열상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다만 현재의 부동산시장과 자동차산업은 문제가 있으므로 이들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선별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홍콩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장우창(張五尙) 교수도 “현재의 상황을 결코 통화팽창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개입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 부처간에도 입장 달라 경제부처들도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통화관리 주무부처인 중국인민은행은 현재 통화팽창 압력이 있으므로 이를 해소할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국가발전개혁위원회(한국의 재정경제부)와 국가통계국은 약간 다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국가통계국은 최근의 소비자 물가상승 추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지나친 통화긴축이 기업에 어려움을 줘 경기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의 거시경제연구원도 현재 거시경제지표들이 합리적인 수준내에 있으므로 지나친 긴축은 필요치 않다는 시각이다. 정부 안팎에서 이처럼 경제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과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어 당분간 중국정부가 초강력 긴축 수단을 동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금리 인상을 하더라도 그 폭은 소폭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베이징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mhlee@kiet.re.kr ■ 경제 움직이는 싱크탱크들 중국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국무원발전연구중심(DRC)을 들 수 있다.1981년 경제개혁을 담당할 인재와 정책수단을 개발하기 위해 국무원 산하에 독립된 기관으로 설립하였다.기관장은 장관급으로 책정되어 있다.자오쯔양(趙子陽) 전총서기의 브레인이었던 마홍이 장기간 주임으로 있었으며 현재는 왕멍쿠이(王夢奎)가 주임으로 있다. 성장,고용,지역발전,농촌,산업,국제경영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중국 개혁정책 성공의 최대 공로자중 하나이다.전체 연구원 직원은 700여명,그중에서도 박사급 연구원은 200여명이며 대표적 연구원으로 우징롄(吳敬璉)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국무원 산하 학술기관으로 사회과학원이 있다.국무원발전연구중심이 정책수단 개발을 주 임무로 맡고 있는 반면,사회과학원은 이데올로기 개발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동북공정의 주역들이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들이다.대표적 경제학자로 초창기 개혁멤버중 하나인 류궈광(劉國光)을 들 수 있다. 중국은 각 부처별로 정책연구를 보좌하는 연구기관들을 내부에 두거나 또는 외부 독립기관으로 두고 있다.대표적 연구기관으로 중국 핵심 경제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거시경제연구원,상무부의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1997년 설립),중국인민은행 산하의 금융연구소(1956년 설립)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들어와 미국 등 해외에서 유학한 고급 두뇌들이 대학으로 들어오면서 대학의 정책연구기능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베이징대학 중국경제연구중심과 칭화대학 경제연구중심 등이 대표적 대학 부설 연구기관들이다.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중심은 1994년 설립되었으며 리이닝,리이푸(林毅夫) 등이 대표적 학자이다. ■ 경제학계 주류·비주류 중국 경제학계의 주류는 극좌인 마오쩌둥 사상을 버리고 극우인 자본주의 경제학으로 무장하고 있다.지난 20여년간 개혁정책으로 인해 상하이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듯 경제학계에도 버금가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정부개입 최소화를 주장하는 주류 학자들 중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이들은 연령층으로는 개혁 초창기 세대인 70대와해외유학파인 30대가 주력을 이루고 있다.중국내 정부나 기업 등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40대와 50대 연령층이 없다.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문을 닫음으로써 이 기간에 학교를 다녀야 했던 40대와 50대가 정규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무원발전연구중심 등 개혁후 새로 설립되어 보수가 좋은 정부 연구기관이나 대학,증권기관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개혁정책의 이론을 제시하고 구체적 정책수단들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 개혁정책을 만들고 그리고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중국내 신흥 화이트 칼라층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공평보다는 효율을 주장하며,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기능을 중시한다.규범경제학보다는 실증경제학을 선호하고 국제무역에 있어서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있다. 소유제에 있어서는 사유제의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으며,국유기업의 ‘철밥통 근로자’들을 ‘노동귀족’으로 간주하며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서구 경제학 남용에 반대하는 비주류 학자들 대표적 비주류 경제학자로는 쭤다페이(左大培,사회과학원),리우리췬(劉力群,국무원발전연구중심),양빈(揚斌,廈門大) 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은 서구식 자본주의 경제학의 지나친 남용과 재벌 학자들의 부패를 반박하면서 ‘경제학 정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 지금은 상당한 세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최근 다시 대두되고 있는 중화사상과 개혁정책의 부작용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배경으로 생겨난 학파이다. 이들은 신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며 정부의 시장개입을 옹호하고,보호주의와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을 지지한다.다국적기업과의 협력에는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민족기업을 적극 지지한다. 대체로 50대 전후의 세대로 민족관이 뚜렷하다.노동자와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삼아야 하며 민생주의에 입각한 지역간,계층간 소득격차를 해소하는 데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mhlee@kiet.re.kr˝
  • 1국2체제 홍콩 반환 7주년…경제불황 ‘끝’

    |베이징 오일만특파원|1일은 홍콩주권 이양 7주년을 맞는 날이다.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는 중국 공산당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실험은 세계의 이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홍콩 시민 20만여명은 1일 주권 반환 7주년 기념일을 맞아 민주화와 직선제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였다.이들은 찜통 더위 속에서 ‘직선제를 쟁취하자.’,‘둥젠화(행정장관) 물러나라’ 등의 각종 구호를 외치며 열기를 보였다. ●中, 대대적 투자로 불황터널 지나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 이후 정치분야의 강경 대응과 경제분야의 적극 지원의 강온 양면 정책을 취해왔다. 이 때문에 홍콩은 지난 7년간 민주화를 요구하는 야당·시민 세력과 중국 정부와의 격심한 마찰과 팽팽한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홍콩 경제도 반환 초기 아시아 금융위기,일국양제의 시스템 미비 등으로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중국의 대대적 투자로 불황의 터널을 지났다는 분석이 많다. 홍콩의 정치적 불황은 지난해 ‘홍콩판 국가보안법(국가안전조례)’ 제정 움직임과 올초 홍콩 행정장관(2007년)과 입법회의원(2008년)의 직접선거 요구 묵살 등으로 5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시위로 이어졌다. ●1·4분기 6.8% 성장률 보여 하지만 반중(反中) 정서는 최근들어 서서히 개선되는 분위기다.중국 지도부가 대륙·홍콩 경제관계 긴밀협정(CEPA)에 서명하는 등 대대적 경제지원책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의 홍콩연락판공실은 중국 자본이 7년 만에 홍콩의 운송과 보험,여행업에서 25%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고 중국은행의 예금 및 대출,건축기업들의 점유율도 20% 이상에 달했다고 밝혔다.이 덕에 홍콩 경제는 지난 1·4분기 6.8%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최대 현안인 실업률을 크게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중국의 ‘홍콩 길들이기’도 주효했지만 경제 성장은 홍콩의 일부 야당세력들이 초기 극렬한 반대에서 한발짝 물러나 “공산당이 잘하면 표를 줄 수 있다.”는 선으로 후퇴하게 한 기폭제가 됐다. ●창건 83주년 맞은 공산당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홍콩인들의 염원은 강렬하다.‘홍콩이 중국식의 일당독재로 가선 안 된다.’는 신념이 깔려있다.덩샤오핑(鄧小平)이 창안했던 일국양제는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공교롭게도 이날 중국 공산당은 창건 83주년을 맞았다.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를 포함,공산당 중앙정치국원들은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3개대표 등 중요사상을 지도로 공산당의 집정 건설 능력을 배양하자.”는 메시지를 6600만 당원에게 보냈다. oilm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이웃 공룡 길들이기/구본영 국제부장

    장강의 물결처럼 넘실대던,그 많던 자전거의 행렬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며칠 전 5년만에 찾은 베이징 거리에는 자전거가 예전만큼 많지 않았다.아직도 눈에 아련한 잔상으로 남아 있는 은륜의 물결 대신 대륙은 온통 자동차로 넘쳐나고 있었다. 때마침 국제모터쇼도 열렸지만,베이징 시가 전체가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의 거대한 경연장이었다.벤츠,BMW,GM상하이,시트로앵,폴크스바겐 산타나,혼다 어코드,도요타 캠리….대견하게도 현대의 쏘나타나 쌍용의 무쏘 같은 상표도 이따끔 눈에 띄었다.베이징대나 칭화대 캠퍼스도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도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세계화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무엇보다 금발의 서방 유학생들이 캠퍼스를 메우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중국 전역의 한국 유학생도 3만 5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미 버지니아주 출신의 제이슨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가면 몸값이 2배로 뛴다.”고 귀띔했다. 이제 베이징은 성당(盛唐)시대의 장안이나 원나라 때의 연경(燕京·베이징의 옛지명)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당시에도 모란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연경 거리엔 주변국의 상인들과 유학생들로 흥청거리고 있었으리라.얼마전 김하중 주중 대사는 ‘떠오르는 용,중국(騰飛的龍中國)’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모았다.용안(龍顔)이나 용포(龍袍) 등의 어휘에서 보듯이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보는 중국인의 전통을 감안하면 꽤 어울리는 제목이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만난 한 중국 경제전문가는 ‘떠오르는’ 용이라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다고 반론을 폈다.중국은 본래 15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GDP 총액의 2할가량을 생산한 공룡이었다는 것이다.중국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5분의1인 13억명에 육박하는 만큼 세계총생산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실제로 세계사를 통틀어 중국이 여느 강대국보다 주변국들을 국력에서 압도한 기간이 더 길었다.역대 통일중국 왕조의 집권기를 합산했을 경우다. 이쯤 되면 머잖아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중심의 세계)시대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갖기에 충분하다.사실 과거 팍스 시니카는 로마나 영국의 세계지배를 뜻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나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보다 길었다.오죽했으면 구소련의 붕괴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의 의회 산하 초당파기구가 최근 대중 견제론을 촉구했겠는가. 산업혁명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된 이래 지난 150여년간 예외적으로 ‘병든 용’으로 지내던 중국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하면서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형국이다.그 공룡의 위력을 우리는 조금 멀리는 ‘마늘 파동’에서,가까이는 중국 정부의 긴축정책 선언에서 비롯된 ‘차이나 쇼크’와 탈북자 7명의 일방적인 북한 송환에서 속절없이 실감했다. 그렇다면 공룡의 그늘에서 우리의 자존을 찾고,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갈 방도를 찾는데 마땅히 눈을 돌려야 한다.혹자는 IT산업 등을 기반으로 한 강소국 지향을 대안으로 제시한다.그러나 구호로만 동북아 중심을 외치기 전에 우리의 힘을 안에서부터 소진하는 당략적 사고라는 고질부터 치유하는 게 급선무일 듯 싶다.수도 이전 문제 하나만 봐도 그렇다.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느냐,마느냐 하는 진지한 찬반 논쟁이 아니라 어느 지역 표를 얻는 데 더 유리할까 하는 식의 셈법이 판을 치는 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구본영 국제부장 kby7@seoul.co.kr˝
  • [서울광장] 중국의 푸른 별/이기동 논설위원

    중국외교부 초청으로 중국대륙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정책이 시작된 지 25년.‘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黑猫白猫論).’‘사회주의,자본주의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누가 인민을 잘 살게 만드느냐는 것(姓社姓資)’등의 논리로 무장해온 이들이다.지금 이들에게 중국공산당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까.하지만 많은 관리와 공산당원,일반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질문은 너무도 한심한 우문이 되고 말았다. 지금 중국인들의 머리와 가슴속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바로 경제발전이다.그들은 자기들이 추구하는 경제발전을 여전히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말한다.하지만 그것은 빈부격차를 수용하고 경쟁이 발전의 동력이라고 믿는 사회주의다.이 새로운 사회주의에 대해 덩(鄧)은 수많은 어록을 남겨 놓았다.‘빈곤이 사회주의가 아니다.’‘일부 사람을 잘 살게 해야 나머지가 분발한다.’‘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등등.덩샤오핑의 이 말들은 지금 금과옥조가 돼있다.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6700만명의 당원을 거느린 정당이다.하지만 당의 최대 목표는 이전처럼 모두가 잘 사는 사회주의 건설이 아니라 빈부를 따지지 않고 국가의 부를 키우는 것으로 바뀌었다.덩의 위대함은 평등 이데올로기에 젖은 인민들을 미몽에서 깨우지 않고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찍이 깨달은 데 있다.중국공산당은 지금 첫째 목표를 국가의 경제발전 지원에 두고 있는 전혀 다른 공산당으로 바뀌었다. 중국 관리들은 세 가지의 금기(禁忌)를 갖고 있다.공산당,타이완,그리고 중국경계론이다.힘들게 이룬 발전을 수포로 돌릴 사회혼란을 막아주는 유일세력이 바로 공산당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타이완은 전쟁의 기억과 연결돼 있다.중국경계론은 새롭게 등장한 금기사항이다.만나는 이들마다 서방학자들이 제기하는 중국경계론의 허구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1인당 GDP 1000달러를 겨우 돌파해 사회주의 초기발전단계에 들어선 중국이 감히 미국에 대적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는 것이 요지다. 이때 내세우는 목표가 바로 1인당 GDP 3000달러의 샤오캉사회(小康社會)건설이다.연간 7%이상의 고속성장을 지속할 경우 2020년이면 도달된다는 초기 부유사회다.그리고 그들은 이 목표가 미국정부,미국기업들의 협조와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너무도 잘 안다.미국과의 협력관계를 외교의 최우선 정책목표로 세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韜光養晦).’‘매사에 정면대응 않고,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不當頭,不稱覇).’의 외교정책노선이다. 에드거 스노가 대장정의 기록 ‘중국의 붉은 별’을 남겼다면, 지금 중국인들은 평등사회 대신 경제대국 건설이라는 ‘푸른 별’을 향해 새로운 대장정을 진행하고 있다.그리고 험한 시행착오 끝에 이들은 마침내 중국호를 중원의 고속도로에 올려놓았다.우리가 그랬던 것처럼,앞으로 15년쯤 더 지난 뒤면 보다 더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욕구가 다시 터져나올지 모른다.현명한 중국인들은 그 이전에 공산당의 명예로운 철수계획(exit plan)을 마련할 것이다. 이들에게 ‘지금 한국민들이 겪고 있는 설움이 미국 패권주의의 결과’라고 외치는 한국 정치지도자의 외침은 이해난이다.1인당 GDP 1000달러를 넘어선 중국이 그 30배가 넘는 미국보다 더 중요한 나라라고 매달리는 한국식 방정식 역시 그들로서는 이해불가다.대립의 리더십으로는 안된다. 중국의 질주를 부러워하며 박수나 치는 초라한 관객의 처지로 우리가 점점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할 뿐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儒林(117)-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17)-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1999년말 뉴스위크는 20세기가 낳은 유명한 어록을 소개하고 있다.1925년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라고 한 말에서부터 1987년 레이건 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에게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벽(베를린장벽)을 허물어 버립시다.”라고 한 말까지 소개한 이 어록 중에서 백미는 단연 1978년 덩샤오핑이 선언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이다.”는 내용의 ‘흑묘백묘론’이었다.원래 이것은 덩샤오핑의 독창적인 이론은 아니었다.원래 사천지방의 속담인 ‘흑묘황묘(黑猫黃猫)’에서 유래되었는데,이데올로기와 선입관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경제발전의 결과만을 놓고 어떤 정책이나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자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경제이론은 마오쩌둥의 ‘잡초론(雜草論)’의 경제이론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던 것이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寧要社會主義的草不要資本主義的苗)”라는 ‘잡초론’으로 문화혁명을 일으켜 중국의 역사를 후퇴시켰으며,“덩샤오핑은 죽어도 회개할 줄 모르는 주자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하며 숙청하였던 것이다.결국 덩샤오핑의 ‘고양이론’이 마오쩌둥의 ‘잡초론’을 뒤집어 엎은 이후 중국도처에는 자본주의의 숲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음이니. 나는 천천히 무덤가에서 일어서면서 생각하였다. 결국 조광조의 검은 신과 흰 신도 마찬가지가 아닐 것인가.갖바치의 참언은 ‘검은 신이든 흰 신이든 상관없다.몸에 잘 맞아 편안한 신발이면 좋은 신발인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조광조가 신진사림파이든 대역죄인이든 과격주의자든 실패한 정치가든 그것은 모두 신발의 빛깔에 불과한 것이다.조광조는 안내문에 나와 있던 대로 유교의 정신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던 개혁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광조의 유교적 개혁정신은 ‘계심잠(戒心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어느 날 중종은 어전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항상 마음을 경계하고 싶으니 홍문관에서는 이에 합당한 글을 지어 올리도록 하라.” 왕의 어명이 떨어졌으므로 소속관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짜내어 글을 올렸는데,그 결과 채택된 것은 뜻밖에도 조광조의 글이었다. ‘마음을 경계하는 글’인 ‘계심잠’에는 조광조의 도덕주의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조광조는 이로 인해 중종으로부터 털로 만든 이불까지 하사받는 것이다. 이 계심잠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마음에는 욕심이 있으므로 그 마음의 본체의 영묘한 것이 잠겨져서 사사로운 정에 구속되었음은 능히 유통하지 못하여서 천리가 어두워지고 기운도 또한 막히어서 인륜이 폐해지고 천지만물이 생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하물며 임금은 음란한 소리와 아름다운 맛의 유혹이 날로 앞에 모여들고 또한 권세의 높은 것으로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성상께서 이를 염려하시고 두려워하여 신에게 명하여 마음을 경계하는 글을 지으라 하시니 아아,지극하십니다.신이 감히 뜨거운 정성을 헤쳐 내어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될 것을 바라나이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굳세게 자기의 마음을 지켜 신명의 엄숙함을 본 받도록 한다.이렇게 하기를 바꾸지 말고 끊임없이 마음을 닦아라.그리하면 마음의 밝음이 진실로 깨끗하고 그 흐름은 호호(浩浩)할 것이니라.천하 모든 일에 발휘하면 탁연한 밝은 날이라.마음속에 있는 의(義)는 모든 일에 나타나고 인(仁)은 모든 물건에 밝게 비칠 것이다.아아,이 마음을 항상 지니면 선과 악이 분별될 수 있을 것이다.”
  • 儒林(117)-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1999년말 뉴스위크는 20세기가 낳은 유명한 어록을 소개하고 있다.1925년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라고 한 말에서부터 1987년 레이건 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에게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벽(베를린장벽)을 허물어 버립시다.”라고 한 말까지 소개한 이 어록 중에서 백미는 단연 1978년 덩샤오핑이 선언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이다.”는 내용의 ‘흑묘백묘론’이었다.원래 이것은 덩샤오핑의 독창적인 이론은 아니었다.원래 사천지방의 속담인 ‘흑묘황묘(黑猫黃猫)’에서 유래되었는데,이데올로기와 선입관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경제발전의 결과만을 놓고 어떤 정책이나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자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경제이론은 마오쩌둥의 ‘잡초론(雜草論)’의 경제이론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던 것이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寧要社會主義的草不要資本主義的苗)”라는 ‘잡초론’으로 문화혁명을 일으켜 중국의 역사를 후퇴시켰으며,“덩샤오핑은 죽어도 회개할 줄 모르는 주자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하며 숙청하였던 것이다.결국 덩샤오핑의 ‘고양이론’이 마오쩌둥의 ‘잡초론’을 뒤집어 엎은 이후 중국도처에는 자본주의의 숲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음이니. 나는 천천히 무덤가에서 일어서면서 생각하였다. 결국 조광조의 검은 신과 흰 신도 마찬가지가 아닐 것인가.갖바치의 참언은 ‘검은 신이든 흰 신이든 상관없다.몸에 잘 맞아 편안한 신발이면 좋은 신발인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조광조가 신진사림파이든 대역죄인이든 과격주의자든 실패한 정치가든 그것은 모두 신발의 빛깔에 불과한 것이다.조광조는 안내문에 나와 있던 대로 유교의 정신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던 개혁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광조의 유교적 개혁정신은 ‘계심잠(戒心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어느 날 중종은 어전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항상 마음을 경계하고 싶으니 홍문관에서는 이에 합당한 글을 지어 올리도록 하라.” 왕의 어명이 떨어졌으므로 소속관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짜내어 글을 올렸는데,그 결과 채택된 것은 뜻밖에도 조광조의 글이었다. ‘마음을 경계하는 글’인 ‘계심잠’에는 조광조의 도덕주의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조광조는 이로 인해 중종으로부터 털로 만든 이불까지 하사받는 것이다. 이 계심잠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마음에는 욕심이 있으므로 그 마음의 본체의 영묘한 것이 잠겨져서 사사로운 정에 구속되었음은 능히 유통하지 못하여서 천리가 어두워지고 기운도 또한 막히어서 인륜이 폐해지고 천지만물이 생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하물며 임금은 음란한 소리와 아름다운 맛의 유혹이 날로 앞에 모여들고 또한 권세의 높은 것으로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성상께서 이를 염려하시고 두려워하여 신에게 명하여 마음을 경계하는 글을 지으라 하시니 아아,지극하십니다.신이 감히 뜨거운 정성을 헤쳐 내어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될 것을 바라나이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굳세게 자기의 마음을 지켜 신명의 엄숙함을 본 받도록 한다.이렇게 하기를 바꾸지 말고 끊임없이 마음을 닦아라.그리하면 마음의 밝음이 진실로 깨끗하고 그 흐름은 호호(浩浩)할 것이니라.천하 모든 일에 발휘하면 탁연한 밝은 날이라.마음속에 있는 의(義)는 모든 일에 나타나고 인(仁)은 모든 물건에 밝게 비칠 것이다.아아,이 마음을 항상 지니면 선과 악이 분별될 수 있을 것이다.”˝
  • [씨줄날줄] 중국인의 기억력/이기동 논설위원

    오늘로 15주년을 맞은 6·4톈안먼사태 당시 중국당국에 의해 반혁명인물 1호로 지목된 이는 약관 20세의 베이징대학생 왕단.구름처럼 모인 톈안먼광장의 시위대앞에 마이크를 들고 구호를 외치던 앳된 얼굴의 그 학생을 우리는 기억한다.그는 이후 체포돼 10년 가까운 수감생활을 한 뒤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이 소개한 왕단의 하버드대 생활은 35세가 된 그의 중국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조금도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는 지금도 청년 한명이 탱크대열을 가로막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확대해 침대머리맡에 걸어놓고 있다.그 청년은 후에 처형됐지만,왕단은 매일 이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짐한다고 했다. 톈안먼 이후의 중국이 그들 세대의 몫이라면 톈안먼 이전을 만든 주역은 단연코 고(故)덩샤오핑 주석.문화혁명의 광풍이 중국전역을 휘몰아칠 때 덩은 고깔모자를 쓴 채 홍위병들에게 베이징시내를 끌려다니는 수모를 당했다.홍위병들은 나아가 그의 아들을 대학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려 반신불수로 만들어 놓았다.덩은 합리적인 인물이지만 이후 이 일을 결코 잊지 않았다고 한다. 굳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강한 의지는 고래로 중국인들의 유전인자에 녹아있는 것인가 보다.마음에 한번 담은 일을 쉽게 잊지 않기는 타이완인들도 마찬가지.1992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자기들을 쫓아낼 때의 서운함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이 일로 타이완의 한국유학생들이 타이완학생들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한국이 한 짓을 잊지 않으려고 책상머리에 적어놓고 마음을 다잡는다던 한 타이완 대학생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주한중국대사관 직원이 천수이볜 타이완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는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이번 일을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본인은 단순히 기억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나중에 보복하겠다는 뜻이 절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듣는 기분은 좋지 않다.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미묘한 뉘앙스까지는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어쨌건 한국과 중국이 지금 강철의지를 다지면서 보복을 다짐할 사이는 아니다.그리고 사이가 좋을수록 더 예의를 갖추는 게 도리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
  • 톈안먼사태 주역 어디서 뭘 할까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톈안먼(天安門) 사태(1989년 6월4일)가 일어난 지 꼭 15년이 됐다. 당시 대학생·시민들이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규탄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다가 무력으로 진압 당한 ‘톈안먼 사태’는 중국 현대사의 또 다른 질곡으로 남아 있다. ●톈안먼 사태 재평가 논란 톈안먼 사태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공식 규정은 ‘폭란(暴亂)’이다.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반도(叛徒)들의 폭거라는 의미다.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일 정례 브리핑에서 “톈안먼 사태는 사회안녕 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 지도자들이나 반체제 인사들은 끊임없이 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당시 희생자들을 ‘민주투사’로서 대접해 달라는 주문이다.이들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생들의 열망을 꺾기 위해 군 병력을 동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톈안먼 사태의 재평가는 공산당 체제 존속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이다.무력 진압을 최종 명령한 덩샤오핑(鄧小平)이나 톈안먼 사태로 대권을 거머쥔 장쩌민(江澤民) 중앙군사위 주석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등 4세대 지도부는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공산당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한 당분간 역사적 재평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 공안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초비상 상태다.민주인사들과 인권 운동가들을 가택 연금하거나 연행하고 있다고 홍콩의 ‘중국인권민주운동센터’가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은폐 사실을 처음으로 폭로했고 톈안먼 사태의 재평가를 요구했던 의사 장옌융(蔣彦永)도 최근 모처로 연행됐고 인권운동가 왕궈치도 다롄(大連)으로 끌려갔다고 이 단체가 주장했다. ●톈안먼 주역들의 현주소 톈안먼 사태 당시 수배 리스트 1호에 올랐던 왕단(王丹·35)은 현재 미국 하버드대 박사 과정에서 타이완(臺灣)사를 전공하고 있다.홍콩과 타이완 잡지에 중국 공산당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연재 중이다.지명수배 2호였던 우얼카이시(吾爾開希·36)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학한 뒤 타이완으로 옮겨 탤런트 겸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당시 시위대 ‘총사령관’으로 대열의 선두에 서 ‘중국의 잔다르크’로 불렸던 차이링(柴玲·38)은 미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인터넷 관련 회사를 차렸다. ‘부총사령관’으로 불렸던 리루(李祿)는 뉴욕 48층 빌딩에서 ‘히말라야 캐피털’이란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세계경제포럼이 ‘차세대 세계지도자 100명’에 선정하기도 했다.사건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학사,MBA,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왕단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톈안먼 사태는 중국 민주화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oilman@seoul.co.kr˝
  • [中 후난·후베이성 개발 열기] 中 거대 내수시장이 뜬다

    |우한(武漢)·창사(長沙) 오일만특파원|중국의 ‘중원경제권’이 한국 등 외국자본 유치를 본격화하는 등 새로이 용틀임을 시작했다.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먼저 부자가 되라.’)에 입각해 동부 연안경제지역이 급성장했고,이어 서부 대개발과 동북 3성 개발이 본격화되자 뒤늦게 경제개발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중원경제권은 중국인구의 4분의1을 넘어서지만 경제규모는 5분의1에도 못미치는 낙후된 지역이다. 중국 중앙정부도 대륙의 ‘균형발전’이란 측면에서 일부 과열품목을 제외하고 지방정부에 상당한 투자 승인권한을 이전했다.중국의 과학기술부가 중부 5개성 개발을 위한 전략연구소조를 구성,오는 27일 첫 회의를 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의 허브경제를 꿈꾸는 중부의 대도시들 중원경제권을 대표하는 후베이성과 후난성에서는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한국우호주간’ 행사를 열고 본격적인 투자유치에 나섰다. 주중 한국대사관(대사 김하중)이 중국 지방정부와의 관계강화를 위해 마련한,일명 ‘팀 코리아(Team Korea)’ 프로젝트의 일환이다.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한 열기가 동북 3성에 이어 중국 내륙경제권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우한이나 창사 등 중부의 대도시들은 지리적으로 중국 정중앙이라는 점을 활용,중국의 ‘허브경제’가 되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한국기업들 속속 중원경제권 진출 이번 한국 우호주간 행사를 통해 100여개 투자유치 항목을 제시한 후베이성은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LG전자가 현지 국유기업과의 3세대 이동전화용 통신장비 합작 조인식을 갖고,한국 미생물연구소가 동호그룹과 축산동물용 백신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에 합의했다.한국의 자본과 첨단기술이 속속 중원경제권으로 진출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경기과열과 맞물려 무분별한 외자유치는 자제하는 분위기다.우한시 경제개발구 관계자는 한국의 투자사절단에게 “오염이 심한 업종은 받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중원경제권의 핵심기지인 우한은 과거 오(吳)나라의 수도로,청(淸)나라 말 중국 최초의 철강회사(우한철강)가 설립될 정도로 경제 열기가 높았던 곳이다.내륙의 교통 중심지라는 이점 덕분에 불과 5년 사이 우한시의 GDP는 65%,1인당 소득은 41%가 성장했다.중국의 물류거점을 확보하려는 일본은 이토추,미쓰이물산 등이 진출했고 프랑스의 카르푸와 이탈리아,독일 등 다국적 유통업체들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성배 코트라 우한 관장은 “후베이성의 성도 우한은 동서남북의 요지로 창장(長江·양쯔강) 중앙의 해운 중심지”라며 “수출보다 중국의 내수시장을 겨냥할 경우 투자의 적격지”라고 설명했다. 우한시에는 현대자동차 투자공장인 만통기차와 금호고속 현지법인,LG전자 판매법인,SK지사 등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최근 들어 건설 등 내수시장을 겨냥한 중소기업들이 속속 진출 중이다. 후난성 성도(省都) 창사의 경제기술개발구에서는 이 지역 최대 기업인 LG필립스 진출에 이어 한국전기초자 공장이 7월1일 문을 연다. 브라운관용 유리 밸브를 생산하는 이 공장은 50년간 무상임대 조건을 확보했다.후난성 허퉁신 부성장은 “동부지역에 비해 토지용수,전력 등 공장운영을 위한 종합비용이 30%가량 적다.”며 후난 사람들의 근면성을 강조했다. ●중원경제권은 장시,후난,후베이,허난,안후이 등 5개성을 포함한 중국 중부 경제권이다.중국에서는 “후난에 풍년이 들면 천하가 족하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중부지역은 중국 전체 농산물의 70%를 공급하는 식량기지다. 그러나 중국의 중부지역은 동부와 서부의 ‘샌드위치’ 신세에 놓여 개혁·개방 이후 고전을 면치 못했다.서부 대개발과 동북3성 개발에 자극을 받은 중부 경제권이 최근 “과거 중원의 영광을 되찾자.”는 슬로건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후난성 양정우 당서기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난은 농업 발전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제조업,특히 장비 제조업 수준을 한단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허퉁신 부성장은 “현대적인 서비스업 등 3차산업의 수준을 높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최근들어 후난성은 광둥·홍콩·마카오 주강 삼각주의 산업기지 이전기를 활용,광둥·홍콩 지구의 경제합작을 중시하는 분위기다. 반면 인구 6000만명의 후베이성은 중원경제권의 핵심이다.1997∼2002년 GDP 연평균 성장속도는 9.2%로 중부지역 5개 성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50년대 말부터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시로 국방기지로 성장한 후베이성은 최근 중국에서 유일한 국가광전자경제개발구를 출범시켰다.첨단 국방기술의 상업화를 겨냥한 것으로,2000여개의 입주 기업 가운데 지멘스와 필립스 등 세계 굴지의 거대기업들도 즐비하다. oilman@˝
  • 칭화대 후안강교수가 진단한 中경제

    세계 금융시장은 지난달 28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유럽 순방길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위험하게 급성장하고 있는 경제를 진정시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긴축정책 시사 발언에 휘청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한국 등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충격의 정도는 컸다.오일만 베이징특파원이 중국정부 경제자문인 후안강(胡鞍剛·51) 칭화대 교수와 긴급 인터뷰를 갖고 ‘차이나 쇼크’의 배경과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정부의 경제자문을 맡고 있는 후안강(胡鞍剛·51) 교수는 인터뷰 내내 재치있고 활기찬 어조로 직설 화법을 구사했다. ‘체제 특성상’ 두루뭉술하고 완곡한 표현에 능숙한 중국 학자들과는 분명 달랐다.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중국 학계에서도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어 중국당국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점과도 무관치 않은 듯했다. 지난 13일 오후 칭화(淸華)대학교내 국정연구(國情硏究)센터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후 교수는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갈등’을 ‘차이나 쇼크’의 원인으로 지적하는가 하면,즉석에서 자료를 찾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자신의 논리를 진행시켰다. 세계의 슈퍼파워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화(中華)의 자신감을 후 교수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소장파 석학’으로 불리는 후 교수는 지난달 28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발언으로 시작된 ‘차이나 쇼크’의 배경과 향후 전망 등을 놓고 중국정부가 취했던 과거의 긴축 사례와 비교하면서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중국 정부가 긴축정책을 펼 정도로 중국경제가 과열됐는가. -중국경제는 1979∼2001년까지 매년 9.2∼9.5%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지난해 9.1%,올 1·4분기 9.7%의 성장은 지표로선 과열이 아니다. 하지만 동태적 측면에선 상황이 다르다.전체적으로 과열은 아니지만 ‘추세’가 과열이다.과거 경험을 추론하면 과열 조짐 현상은 개혁·개방정책 이후 지금까지 4번 있었고 지금이 5번째다.77∼78년과 84∼85년,87∼88년,91∼93년이었다. 현상황은 구체적으로 13년전인 91년과 비슷하다.1년만 놓고 보면 과열이 아니었지만 92년부터 성장이 가속화돼 93년 무려 13.5%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과거와 현재의 경제과열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공통적으로 투자가 과열됐고 부동산 가격과 물가와 원부자재,곡물 가격 등이 가파르게 올랐다.재미있는 것은 매번 과열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는 점이다. 공산당 전당대회 1차연도 평균 성장률은 10.3%이고 2차연도 11.0%,3차연도 8.7%,5차연도 8.0%로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정치 동원체제인 중국에서 정권 초창기에 의욕적으로 일하다 보니 과열 양상으로 번진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胡錦濤) 체제 출범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2002년 16대 전대(全大) 이후 지방에 가면 2∼3년내에 ‘샤오캉(小康)사회’ 건설을 완성해야 한다며 경제개발을 독려했던 것도 과열의 원인이다. 거시적으로 지금의 긴축정책이 중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중국정부는 ‘연착륙’에 동의하고 있다.여기서 연착륙은 자동차 운전시 과속으로 달릴 때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수준이다.세게 브레이크를 밟으면 문제가 생긴다.이번 경제조정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조정으로 봐야 한다. 다소 아쉬운 것은 1년전에 경제 조정에 들어갔어야 했다는 점이다.중국 정부가 능동적이 아닌,피동적 자세로 나온 것이다.중앙정부가 지난해 발생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주저하고 망설인 측면이 있다.나 자신도 지난해에 조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중국정부에 건의했다. 1979∼2001년까지 고정자산의 평균 성장률은 10.9%였다.지난해만 27.3%였고 올 1·4분기는 43%나 성장,평균 성장률의 4배나 됐다.아직 조정할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다. 중국의 연착륙의 성공 가능성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직접 물어봐라.(웃음) 지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 ‘게임’을 하고 있다.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올해만도 31개 성·시·자치구의 성장과 주요 시장 등을 모아놓고 중앙에서 거시경제 조정을 위해 투자를 줄이라고 수차례 지시했었다. 지방정부 지도자들은 회의석상에서는 ‘알았다.’고 해놓고 돌아가면 실행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내륙지방은 “경제가 낙후돼 경제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연안지역은 “경제분위기가 좋을 때 더 빨리 경제발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3년 당시 장쩌민(江澤民),리펑(李鵬),주룽지(朱鎔基) 등 3명의 지도부가 지방과의 싸움에서 이겼다.이번에도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와 원자바오 총리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선 이긴 것이 아니다.지방에서 중앙의 압력에 과거처럼 순종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이 세계경제에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세계경제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과거와 다르다.97년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 때에도 중국은 기둥으로서 주변국의 경제회복에 좋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세계경제에 영향을 주는 원인은 간단하다.2002년 무역량은 불과 4년전인 99년의 두배나 됐다.10년전과 비교해서 무역물량이 4∼5배나 늘었고 세계 3,4대 교역국으로 성장한 것이다.지난해 석유 수입은 200억달러,1억t을 넘어섰다. ‘마이너스 효과’도 있다.중국의 거시경제가 불안하면 바로 주변국들의 경제불안으로 이어지는 점이다.중국경제의 거시적 안정을 위해선 일종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우선 동아시아 3국,즉 중국과 한국 일본이 1년에 두번 정도 주기적으로 재무장관 회의나 중앙은행장,무역(통상)장관 회의를 열어 상황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나아가 경제 전문가들이 모여 집중적으로 토론을 하며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국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거시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 주변국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해야 중국의 거시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가. -우선 정보교류를 위한 학술 세미나가 필수다.한국과 일본의 민간기업들이 중국정부에 거시정책과 관련해 의견도 개진할 수 있다.이번 중국정부가 취한 각종 긴축정책들을 주변국에 통보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장기적인 중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중국경제는 전환기 모델이 절실한 시점이다.현재는 고투자,고원가에 저효율 시스템을 갖고 있다.지난해의 고정자산 투자가 26% 성장했으나 경제성장률은 9%대였다.투자 성장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전형적인 저효율 경제구조다. 따라서 자원소모와 환경오염이 높은 성장모델에서 자원소모가 적고 친환경적인 경제성장으로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두번째로 정부의 기구와 역할도 조정해야 한다.정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집행하지 말고 한발 나와서 공공 서비스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직접적으로 시장에 관여하거나 투자자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정부 본연의 역할인 공공서비스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 커져도 안 된다.중요한 것은 중앙이나 지방정부가 아니라 시장주도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점 3가지를 든다면. -가장 시급한 것이 삼농(三農)문제이다.도시와 농촌의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현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에서도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두번째는 실업률이다.중국은 세계 인구의 21%,세계 노동인구의 26%를 차지하고 있다.매년 280만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있는데 구직난도 문제다.현재 실업자가 1400만명인데 수억명의 농민들이 도시로 뛰쳐나오고 있다.중국의 정부정책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가 자원부족 문제다.석유는 1억t을 수입하고 매년 20∼30%씩 늘어나는 추세다.올해의 석탄 소모량은 16억t 규모다.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덩달아 심각해지고 있다.인구 5000만명 규모의 한국경제와 13억명의 중국과는 분명히 다르다. ■후안강교수는 누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소장파 석학’으로 불리는 후안강(胡鞍剛) 칭화대 국정연구센터 주임(소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중국 경제발전과 공공정책 분야가 주 전공이다.그동안 논문 100여편을 발표했고 저서 9권과 공저 16권을 냈다. 지난해 3월 중국의 신정부 출범 이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주재 국무원 경제관련 회의에 참석,경제 부문을 자문해 오고 있다. 후 교수의 고향은 안산강철(鞍山鋼鐵)로 유명한 랴오닝(遼寧)성 안산이다.안산강철의 준말인 ‘안강(鞍剛)’이 이름이다.5세때인 58년 베이징으로 와서 67년 문화혁명 당시 오지 중의 오지였던 베이다황(北大荒)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내 개인 이력은 한마디로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라며 “개혁개방 덕에 노동자였던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77년 대학 입시에서 허베이성 탕산(唐山) 공학원(공대)에 입학했다.그는 “대입제도 부활은 덩샤오핑 선생의 최대 업적”이라고 강조했다.개혁·개방을 추진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며 대입제도 부활이 인적자원 육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논리다. 주요저서는 중국 부패도전(中國腐敗挑戰),중국 대전략(中國大戰略),중국 경제파동(中國經濟波動),중국 국가능력(中國國家能力) 등 다수가 있다. ●후교수 약력 -53년 랴오닝성 안산 출생 -82년 허베이성 탕산공학원 졸업 -84년 베이징 과기대학 석사 -88년 중국 과학원 박사 -92년 예일대 박사후 과정 -93년 미국 머레이주립대 교환교수 -98년 MIT 객원연구원 -99년∼현재 칭화대 국정연구센터 주임 공공관리학원 교수,재정부 자문위원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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