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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中 ‘비판적 지식인’ 다이칭… 새달 3일 ‘양회’ 개막 앞두고 대륙의 미래를 말하다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中 ‘비판적 지식인’ 다이칭… 새달 3일 ‘양회’ 개막 앞두고 대륙의 미래를 말하다

    중국의 연중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새달 3일 개막한다. 세계 각국은 중국이 올해 어떤 청사진을 제시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신문은 양회를 앞두고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다이칭(戴晴·74)을 만나 중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이칭은 중국 공산당의 전형적인 훙얼다이(紅二代·혁명 원로의 자손)이지만 권력을 좇기보다는 기자와 작가의 길을 걸으며 민주·인권·환경 운동에 헌신했다. 중국 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리는 싼샤(三峽)댐 건설이 가져올 환경 파괴 문제를 내부에서 처음으로 제기해 공사를 5년 동안 중단시키기도 했다. 2012년 한국의 환경운동 30주년을 맞아 방한한 적이 있지만 국내 언론과 중국 전반의 문제를 놓고 인터뷰하긴 처음이다. 인터뷰는 춘제(春節·중국 설)를 하루 앞둔 지난 18일 베이징시 외곽 순이(順義)에 있는 한적한 자택에서 두 시간 동안 이뤄졌다. →친아버지 푸다칭(傅大慶)과 양아버지 예젠잉(葉劍英) 모두 항일운동가이자 혁명군의 지도자들이었다.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내가 네 살 때 일본헌병에 의해 살해되셨다. 친아버지와 황푸(??)군사학교 친구였던 양아버지가 나를 딸로 삼았고 헌신적으로 키워 주셨다. 친부와 양부 외에도 의붓아버지, 시아버지 등 두 분의 아버지가 더 있다. →일본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나. -어머니 역시 일본군에게 처참한 고문을 당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 앞에서는 일본의 ‘일’자도 꺼낼 수 없었다. 1991년 싼샤댐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처음 일본을 방문할 때 밤새 고민했다. 제대로 된 지식인이라면 개인 감정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일본에서 온 엽서를 보이며) 지금은 친한 일본 친구들이 많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의 극우화를 어떻게 보나. -일본과 중국은 물론 세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국주의의 부활은 재앙이다. 다만 이러한 비판은 중국에도 마땅히 적용돼야 한다. 중국이 군사주의를 앞세운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중국 언론이 과도하게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을 비판하기에 앞서 중국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과연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 극우파가 맹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듯 우리도 무비판적으로 우리의 지도자들을 숭배하도록 강요하는 건 아닌지 따져 봐야 한다. 옹색한 민족주의에 기댄 통치는 옳지 않다. →한·중·일이 평화롭게 지낼 방법은 없나. -3국 모두 더 냉정하고 차분해져야 한다. 누가 감정 싸움을 부추기고 그 싸움에서 누가 이득을 챙기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 →요즘 중국에선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양분되는 것 같다. -동북3성의 항일운동에서 조선 의용군의 역할은 컸다. 많은 중국인들이 항일운동 당시 조선인들의 활약을 기억하며 북한을 바라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을 무조건 감싸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그만 북한을 포기하자는 쪽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을 잘 설득해 한반도 통일에 일조하는 게 옳은 길 아닌가. -북한 국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게 우선인데 중국의 정치가 과연 북한을 개방시키고 설득할 만한 수준이 되는지 의문이다. 북한을 단지 바둑판의 ‘바둑알’ 또는 사회주의의 ‘막냇동생’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공산당 간부 자녀 학교인 하얼빈(哈爾濱)군사공정학원을 졸업하고 인민해방군 총참모국에서 근무하다가 어떻게 기자 겸 작가가 됐나. -대학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자동제어를 공부했다. 많은 친구들이 고위직에 올랐다. 만약 중국에서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나도 그 길을 갔을 것이다. 개혁·개방 초기 아주 제한적으로 언론·사상의 자유가 열렸다. 그때 처음 신문을 보게 됐고 비판적인 시각도 길렀다. 광명일보(光明日報)에 기고한 글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기자가 됐고 소설도 쓰게 됐다. →길을 바꾼 것을 후회하지 않나.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으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훙얼다이로서 고위직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괴로운 선택’을 많이 해야 했을 것이다. 말을 조심해야 하고, 오늘은 이 아저씨(고위 간부)에게 내일은 저 아저씨에게 잘 보여야 한다. 가끔은 선물도 줘야 한다. 때때로 충성도도 시험받는다. 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자유와 존엄이 부귀영화보다 중요하다. →생활은 어렵지 않은가. -편하진 않다. 톈안먼(天安門) 진압을 비판해 투옥됐었다. 사회보험이나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글을 계속 쓰지만 출판은 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열사이기 때문에 순이구에서 한 달에 1000위안(약 17만원)씩 준다. 그러나 나는 이 돈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나중에 순이 지역 학교에 기부할 것이다. →훙얼다이들이 과도한 특혜를 받는 것 아닌가. -혁명원로의 자녀들인 훙얼다이와 현재 고위 관료의 자녀인 ‘관얼다이’(官二代)는 구분해야 한다. 훙얼다이는 부모에게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고 아무런 노력 없이 좋은 일자리를 꿰차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관얼다이들은 아버지로부터 권력과 자본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 JP모건 취업 문제로 말썽이 된 상무부장 아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관얼다이가 앞으로 문제가 될 것 같나.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들에겐 훙얼다이처럼 인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정신이 없다. 오히려 인민의 몫을 가로채고 있다. 따라서 인민들도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혁명원로들과 달리 이들의 아버지는 국가와 당이 아닌 오직 자식에게 부와 권력을 물려줄 궁리만 했다. 최근 낙마한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는 나의 대학 친구다. 그가 한 일이라곤 관직을 사들여 가족들에게 나눠준 것뿐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3대째 세습되면서 부작용이 심화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지만, 중국은 사회적 감시가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각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나. -어렸을 때 만난 적은 있으나 연락하지는 않았다. →시 주석의 국정 운영을 평가한다면. -시 주석은 지금 굉장히 힘든 위치에 있다. 갈수록 다변화되는 현대 사회에선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될수록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시 주석은 군대를 통솔해야 하고 금융도 컨트롤해야 한다. 홍콩의 ‘센트럴 점령’ 시위도 책임져야 하고 윈난(雲南)성 기차역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그것도 진압해야 한다. 다만 한 단면을 가지고 시 주석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자유파 친구들이 많이 투옥됐다고 덮어놓고 시 주석을 비판할 수는 없다. 최근 교육부장이 대학에서 서양식 교육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지식인들은 물론 변호사들까지 나서 그를 비판했다. 교육부장의 시대착오적인 발언과 그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시 주석 통치하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지도자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정통 좌파(보수파)와 자유파(개혁파) 간 사상투쟁도 전개되는 것 같다. 좌파를 어떻게 보나. -좌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첫째, 고리타분한 좌파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시작하자 계획경제를 가르치던 베이징대 교수가 자살했는데, 그런 부류들을 말한다. 둘째,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교조적으로 마오 사상을 부르짖는 좌파가 있다. 최근 사망한 덩리췬(鄧力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큰 힘을 갖고 있다. 셋째, 향수에 사로잡힌 좌파다. 현실이 힘들어질수록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자유파도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이다. 극단적인 자유파와 이성적인 자유파로 나뉜다. 톈안먼 시위 당시 극단적 자유파는 ‘덩샤오핑·리펑 타도’를 외치며 체제가 전복되면 자신들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망상에 젖었다. 이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만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생각에 찬성할 수 없다. 중국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다. 누가 정권을 쟁취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 기자 시절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문예정풍’으로 희생된 작가 왕스웨이(王實味)를 재조명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기사가 나간 이후 일방적으로 매도됐던 왕스웨이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세상은 일시에 대약진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보는가. -전혀 아니다. 인성 교육 등 개별 정책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체제 자체를 베끼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더 모범적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인류는 자신에게 적합한 체제가 무엇인지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갖고 있다. 평등, 자유, 인권이 그것이다. →중국 사회가 질적으로 도약하려면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가. -먼저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성숙돼야 한다. 시민이 납세자로서 정부를 감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중국인들은 당과 정부에 무조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사실은 당과 정부가 인민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납세자가 정부를 기르고, 감독하고, 심지어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중국의 경제성장에 전 세계가 놀라워한다. -최근 한국의 방송사에서 중국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나는 그런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 중국 경제성장의 뒤안길엔 인민과 환경의 희생이 숨어 있다. 양쪽을 다 조명해야 한다. →중국 정부도 이젠 환경 문제를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나. -정부의 대책은 오염의 속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말의 성찬으로 끝날 뿐이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 앞에 환경은 늘 장애물로 취급된다. 경제 성장이 빈곤층에 대체 어떤 이익을 가져다줬는지 이제 고찰할 때가 됐다. 글 사진 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window2@seoul.co.kr ■다이칭의 친아버지, 푸다칭 1920년 중국 공산당 창시자 천두슈(陳獨秀)를 따라 사회주의 청년단에 가입했고 1927년 저우언라이(周恩來)와 함께 난창(南昌)봉기를 주도했다. 1940년 일본군이 점령한 베이징에 밀파돼 정보공작 활동을 하다가 일본헌병대에 살해됐다. 푸다칭의 중매를 섰던 예젠잉은 푸가 죽자 그의 딸 다이칭을 양녀로 삼아 키웠다. ■다이칭의 양아버지, 예젠잉 중국 공산군(홍군·紅軍)의 지도자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10대 원수 중 한 명으로 추대됐다. 대장정(大長征) 당시 마오쩌둥과 장궈다오(張國燾)가 진로를 놓고 대립하자 상관인 장궈다오의 오류를 비판하고 휘하 부대를 이끌고 마오 진영으로 합류해 마오가 권력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화대혁명 이후 4인방 척결에 앞장섰다. 중국 공산당 부주석, 국방부장 등을 지냈다.
  • 中 자본, 한국 금융시장에 상륙한다

    中 자본, 한국 금융시장에 상륙한다

    중국 안방(安邦)보험이 동양생명을 1조 13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동양생명은 대주주 보고펀드 등이 동양생명 지분 6777만 9432주, 63.01%를 안방보험에 넘기는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17일 공시했다. 매각 가격은 주당 1만 6700원으로 총매각 대금은 1조 1319억원이다. 금융 당국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면 중국 자본이 국내 대형 금융회사를 인수하는 첫 사례가 된다. 중국 자본은 그동안 투자 등의 목적이나 제조업 인수를 통해 들어오긴 했지만, 국내 금융회사 인수를 통해 금융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보험업계뿐 아니라 국내 금융권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안방보험은 지난해 우리은행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으나 다른 입찰자가 없어(유효경쟁 미달) 포기해야 했다. 중국 자본의 국내 금융권 진출 신호탄으로 보는 기류가 역력하다. 매각되는 동양생명 지분은 보고펀드의 지분 57.5%에 유안타증권(3.0%),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2.46%) 등의 지분을 더한 것이다. 다만 유안타증권과 이 회장 등이 동반매도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매각 지분과 금액은 바뀔 수 있다고 동양생명은 밝혔다. 또한 안방보험 측은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339억원을 추가 지급하기로 했으나, 해당 요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계약은 금융위원회가 대주주 변경을 승인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계약이라고 동양생명은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안방보험과 보고펀드는 이달 말까지 양국 금융 당국에 매각 및 인수 승인 신청을 하고 5월 말 또는 6월까지 최종 승인이 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동양생명은 총자산 18조원 규모의 국내 8위 생명보험사다. 안방보험은 2004년 설립된 이후 인수합병(M&A)을 통해 10여년 만에 급성장했다. 덩샤오핑 전 군사위원회 주석의 맏사위가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생명보험과 자산관리 등 종합보험과 금융 업무를 영위한다. 중국 내에서는 5위권, 전 세계 10위권 안팎의 대형 종합보험사로 알려져 있다. 자산 규모는 7000억 위안(약 121조원)으로 200조원이 넘는 국내 1위 삼성생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위권인 한화 및 교보생명(각각 약 90조원)은 훌쩍 뛰어넘는다. 생보업계에는 현재 알리안츠, 라이나, 메트라이프 등 외국계 업체 10여곳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모두 미국이나 유럽계 자본이다. 이들 외국계 업체는 시장 지배력이 적어 국내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안방보험의 유입은 사정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미국이나 유럽계 업체와 달리 안방보험이 한국 업체 인수를 통해 단번에 국내 보험업계 중상위권 대주주로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방보험이 자금력을 동원해 드라이브를 건다면 업계의 무시할 수 없는 축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방보험이 동양생명을 시작으로 국내 금융권에서 또 다른 인수합병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부고] 중국 공산당 ‘좌파의 왕’ 덩리췬

    [부고] 중국 공산당 ‘좌파의 왕’ 덩리췬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에 반대해 온 좌파 이론가이자 혁명원로인 덩리췬(鄧力群)이 10일 10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1일 보도했다. 후난(湖南)성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선전부장을 역임한 덩리췬은 이날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통신은 덩리췬에 대해 “충성스런 공산주의 전사, 무산계급 혁명가, 우리 당 사상이론과 선전 전선의 걸출한 지도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다”고 평가했다. 덩리췬은 1980∼1990년대 보·혁 노선 투쟁에서 마오 사상 견지를 주장하면서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반기를 들었다. ‘좌파의 왕’, ‘지하 총서기’, ‘좌파의 붓대’라고 불렸으며 ‘마르크스주의 재생이론의 기본원리 필수 견지’등 좌파 이론 서적을 남겼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중국 일각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복구 움직임이 일고 있는 현 상황에서 덩리췬의 사망은 좌파에 큰 손실이라고 논평했다. 명경신문망(明鏡新聞網)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덩리췬의 장례와 관련해 어떤 대우를 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현재 중국은 시 주석의 ‘이데올로기 공작’ 지침을 계기로 좌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자유파의 반발도 거세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시대] 미국으로 향하는 중국인들/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미국으로 향하는 중국인들/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미국 어바인에 방문학자로 있을 때 알게 된 친한 형과 최근에 통화하다가 주거 환경이 좋고 학군이 좋아 한국인들이 선호했던 그곳에 이젠 중국인들이 밀려들고 있고, 현지 아파트 곳곳에 출산이 임박한 중국 임신부들이 자녀들의 시민권을 위해 단기 렌트로 거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830년쯤 미국 진출 초창기 중국인들은 뉴욕에서 장사를 하거나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했고, 서부 금맥 발견 이후엔 광부로, 미국 노예 해방 이후 흑인 노예를 대체할 인력이 필요할 때는 쿠리(苦力)라는 이름으로 하급 노동자 역할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중국 대륙 사회주의 시절에도 중국인이 미국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특혜와 영광이었다. 대부분 국가의 허락을 얻어 떠나고, 유학생들은 국가장학금을 받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다는 조건으로 미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홍콩의 많은 부호가 홍콩머니를 들고 미국에 진출했다면, 2000년대 이후는 중국 대륙의 차이나머니가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벼락부자와 고위 공직자의 처자식들은 중국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인 식품안전, 대기오염, 의료낙후, 부패, 산아제한 등 사회 문제를 걱정하며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떠나는 이민자들 중 40%가 미국을 택하고 있고, 최근 미국 투자이민 카테고리(EB5)에서 전체의 80% 이상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중국 부자들의 미국 이민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2013년 외국인들이 구입한 미국 부동산 중 12%를 중국인들이 사들였는데, 미국의 주택값이 중국에 비해 저렴하다 보니 대부분 현금을 들고 즉석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투자이민 정책이 유연하고 다른 선진국에 비해 물가 등이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거주 환경과 2세의 교육을 위해 차이나머니가 움직이는 것이다. 중국인 구매 부동산의 절반은 캘리포니아에 있는데,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원정 출산 전용 아파트인 머터니티 맨션이 등장했다. 학군이 좋은 어바인의 주택은 중국인의 수요에 맞게 주택을 디자인하고, 주택 중 일부는 남향으로 창문을 내는 등 풍수지리를 따르기도 하며, 주소에서 ‘4’를 빼기도 했다. 뉴욕의 호화 맨션은 80층에서 88층까지 8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이 구매했다고 하니 미국 속의 중국 파워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중국인들에겐 어글리 차이니스라는 오명이 있다. 보양(柏楊)은 ‘추한 중국인’(醜陋的中國人)에서 중국인은 불결, 무질서, 소란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인들의 질서의식 부족, 매너 부족, 무례함 때문에 시진핑도 “해외 여행을 가는 중국인들에게 교양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추한 중국인일지라도 돈의 위력 앞에서는 다른 대접을 받는 게 사실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주요 호텔들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셔틀버스와 전용 시설을 구비하고 있고, 다가오는 춘제(春節)를 앞두고 중국 장식으로 호텔을 꾸미고 있다. 오늘날 중국 경제 발전의 단초를 마련했던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함께 ‘먼저 부자가 되어 가난한 중국을 이끌자’는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했다. 이제 먼저 부자가 된 중국인들은 풍요로운 미국을 향해 떠나고 있는 것이다. 하급 노동자로 미국에 진출했던 상황과 ‘사회주의는 좋아’(社會主義, 好)를 외치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 돈과 군사 중국을 살리리라

    돈과 군사 중국을 살리리라

    돈과 힘/존 델러리·오빌 셸 지음/이은주 옮김/문학동네/624쪽/2만 8000원 중국 난징 서북쪽의 징하이사(靜海寺) 안내판에는 영어·중국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이러한 불평등조약은 치욕의 족쇄가 됐다. 이것이야말로 근대사 속의 중국이 가난하고 약한 국가가 된 주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이곳에서 난징조약에 굴욕적으로 서명해야 했던 나약하고 무기력한 근대사를 되새기는 상징물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청나라 왕실의 아름다운 여름궁전이었던 베이징 서북쪽 원명전은 제2차 아편전쟁 중 영·불 연합군에 불탄 폐허로 남아 있다. 공산당 정부가 잔해 그대로 보존한 왕궁터는 서구열강의 만행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역사박물관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거침없이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외세의 침략과 강점, 내란 등 굴곡 많은 근현대사 속에 어떻게 지금의 강국이 됐는지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민심과 나라의 힘을 한 군데로 모아간 걸출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리고 그 리더십의 핵심 철학은 부강(富强)으로 결집된다. ‘돈과 힘’은 바로 이 부강을 국가적 목표로 추구한 중국 역사의 대표 유명인 11명의 이야기이다. 풍계분(馮桂芬)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사상가부터 서태후, 량치차오(梁啓超)를 거쳐 쑨원(孫文)과 장제스(莊介石), 마오쩌둥, 덩샤오핑 같은 세계적 정치가가 들어 있다. 저자는 컬럼비아대와 베이징대를 거쳐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 재직 중인 존 델러리 교수와 오빌 셸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중관계센터 소장. 두 사람은 강성했던 옛 국력의 회복을 지상명제로 삼은 이들의 의지와 동력을 지금의 중국을 있게 한 으뜸 요소이자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로 보고 있다. 원래 ‘부강’은 2000년 전쯤인 전국시대에 탄생한 고대격언 ‘부국강병’을 줄여 부른 말이다. ‘현명한 군주가 있어 부국과 강병을 이뤄낼 수 있다면 이 군주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갈파한 법가 사상가 한비자의 말이 시초다. 부강을 역사의 갈피 속에서 다시 꺼내 개혁의 기치로 세운 최초의 위인은 바로 청나라대에 민정·재정 담당 지방장관 포정사를 지낸 사상가 위원(魏源)이다. 위원은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는 참담한 현실을 자각,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치국적 정치개혁’이라는 전통 부활을 국력 회복의 길로 보고 전략적 차원에서 서구열강의 문물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외친 그는 ‘황조경세문편’을 통해 사대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태평천국의 반란군을 피해 도피했던 상하이 외국인 거류지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수치심을 느껴야 강해진다’며 자강(自强)을 치국의 핵으로 세운 19세기 후반 정치사상가 풍계분이나 ‘근본적 변화 없이 성공할 수 없다’면서 강(强)은 자유의 필요조건이라고 외쳤던 20세기 벽두의 량치차오의 신민(新民)사상도 눈에 띈다. 국력을 회복하려면 발전을 방해하는 문화적 전통을 폐기하고 새 국가개념을 세워야 한다는 량치차오의 이 사상은 후대 지도자들에게 계승된다. 그 사상은 신문화운동 당시 사회비판 소설을 쓴 루쉰(迅), 신생활운동을 추진한 장제스, 혁명적 신중국의 청사진을 내놓은 마오쩌둥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파괴 없이 건설 없다’는 ‘선 파괴 후 건설’을 모토로 문화혁명을 강요한 마오쩌둥은 ‘진정한 혁명가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의 덩샤오핑은 ‘혁명보다는 생산, 이념보다는 실리’를 앞세워 경제적 수단에 온 관심을 쏟아 비교된다. 책은 11명의 짧은 전기를 엮은 구성이지만 각 인물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저작물과 연설문 등에 연결해 중국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특히 마지막에 톈안먼 사건 이후 인권·민주화운동에 헌신해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저자들은 류샤오보를 소개하면서 의미심장한 말로 마무리한다. “부강을 추구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두 가지 사조가 미래의 어느 순간 하나로 수렴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날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중국의 ‘자오쯔양 딜레마’/오일만 논설위원

    1989년 5월 19일 새벽. 비가 뿌리는 톈안먼 광장에서 메가폰을 든 채 시위 학생들에게 해산을 호소하는 일흔 나이의 노신사가 있었다.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학생 제군들은 아직 젊다. 살아서 중국의 4대 근대화를 실현하는 날을 직접 보아야 한다…”는 간곡한 설득 장면은 아직도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각인돼 있다. 중국 현대사의 풍운아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당총서기는 이날을 끝으로 영원히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톈안먼 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지시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리펑(李鵬) 총리에 맞서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다 실각된 것이다. 덩의 오른팔로 개혁 개방의 야전사령관이었던 그는 ‘당을 분열시켰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16년간 가택연금 끝에 2005년 1월 17일 사망했다.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들에게 모진 고초를 당했지만 그는 기적처럼 회생해 중국 최고 권부에 오른 인물이다. 개혁 개방 초기 당시로선 파격적인 자유시장 정책인 ‘가정생산청부제도’(家庭生産請負制度)를 성공시켜 “식량이 필요하면 자오쯔양을 찾아라”라는 말을 유행시킨 당사자다. 이렇게 현대 중국사의 비극과 권력투쟁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 온, 그의 유골함은 죽은 지 만 10년이 됐지만 베이징 자택 마당에 안치돼 있다. 당국의 거부로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이 묻히는 바바오(八寶)산 혁명열사릉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반혁명 폭란(暴亂)’을 일으킨 톈안먼 사태의 주동자들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거 10주기를 맞아 최근 중국 사회에서 ‘영원한 자오쯔양’(永遠的趙紫陽)이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지고 홍콩에서도 추모 서명 운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의 복권은 현재로선 요원하다. 이는 그의 사후 회고록(국가의 죄수-The Prisoner of the State)에서 밝힌 ‘위험한 생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중국이 현대적 시장경제와 현대문명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한다”며 서구식 다당제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공산당의 유일 지배를 통해 중화부흥을 노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지도노선과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자오의 유골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은 중국의 딜레마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를 진압한 후 초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성공의 역사 때문에 덩의 통치노선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아직도 절대 다수다. 반면 중국의 고도성장의 뒤안길에 나타난 부정부패 등 각종 사회적 폐해 때문에 자오의 길을 따라 민주화 운동 대열에 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류샤오보(劉曉波) 등이 대표적이다. 자오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9년 중국 사회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이부진 사장, 中 국영기업 사외이사 선임

    이부진 사장, 中 국영기업 사외이사 선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45) 호텔신라 사장이 중국 국영기업 시틱그룹(中信·CITIC)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이 사장은 지난해 12월 9일자로 이 기업의 사외이사로 등재됐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시틱그룹은 “이부진 호텔신라 최고경영자(CEO)를 독립사외이사로 임명했다”고 공시했다. 시틱그룹은 1979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설립된 국유 투자기업이다. 증권, 은행, 보험, 부동산, 엔지니어링, 중기계 사업 등을 하며 750조원 자산의 최대 규모 국영기업이다. 시틱그룹의 사업영역에는 여행서비스 등 관광업도 포함돼 있어 시틱그룹 측이 이 사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도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씨줄날줄] 중국과 ‘아편전쟁 트라우마’/구본영 논설고문

    “미국에서 경찰에 대들거나 중국에서 마약을 운반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오랜 외교관 경력으로 해외 사정에 밝은 선배가 한 얘기다. 전자는 오래전 미국 연수 생활 중 실감했다. 시민에게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미국에선 집회 시 폴리스라인만 넘으면 사고를 막으려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수갑을 채울 정도니 말이다. 어제 중국이 한국인 마약사범 1명의 사형을 집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집행 후 1주일이 지나서야 우리 정부에 통보해 왔단다. 잊고 있었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지난달에도 한국인 14명이 마약 밀수 혐의로 중국 공안 당국에 석연치 않게 구속됐다는데…. 재외 국민, 특히 중국에 체류하는 국민과 여행객 보호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중국이 마약사범에 관한 한 ‘무관용 정책’을 펴고 있는 배경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중국 형법은 1kg 이상의 아편이나 50g 이상의 헤로인·필로폰 등을 제조·판매·운반·밀수할 경우 15년 이상의 징역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적용한다. 2010년엔 일본인 4명, 2011년·2013년엔 각각 필리핀인 4명과 1명을 처형했다. 지난해에도 파키스탄인과 일본인 1명씩을 사형시켜 상대국과 외교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09년엔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까지 나서 영국인의 사형집행을 막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마약사범에 대한 중국의 가혹한 처벌이 인권 침해 소지가 농후한 건 물론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긴 했지만, 아직 ‘세계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마약사범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단속은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아편전쟁과 무관치 않다. 산업혁명 후 영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중 아편 수출을 선택했다. 강희·옹정·건륭제 등 3대 황제가 통치한 황금기가 끝나고 쇠퇴기에 접어든 청(淸)의 생활고에 찌들린 백성들을 아편의 잠재적 수요자로 본 것이다. 청 조정은 처음에는 아편 몰수에 나서는 등 완강히 저항했으나, 아편전쟁(1840∼1842)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신병기로 무장한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경제사가들은 아편전쟁 전인 1820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GDP의 3분의1에 육박했다고 추정한다. 그 이전에도 세계 제일의 경제 규모였지만. 아편전쟁 무렵부터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잠자던 중국을 흔들어 깨운 1970년대 후반까지 150여년은 중화(中華)의 자존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시기였던 셈이다. 중국의 마약사범 무관용 정책이 이런 ‘아편전쟁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기에 쉽게 바뀔 것 같진 않다. 이는 대(對)중 영사업무에 관한 한 일이 터지기 전에 예방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당장엔 억울한 국민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수습에 주력해야겠지만.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日총리, 中과 ‘센카쿠 현상유지’합의했다고 말해”

    중국과 일본이 과거에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를 ‘현상 유지’ 상태로 놓아두는 데 합의했음을 시사하는 영국 공문서가 공개됐다. 교도통신은 이 같은 내용이 언급된 1982년 스즈키 젠코 당시 일본 총리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정상회담 관련 문서가 영국 공문서관에서 비밀 해제됐다고 31일 보도했다. 문서에 따르면 스즈키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센카쿠 열도 문제에 관해 중국의 실력자인 덩샤오핑(鄧小平)과 직접 교섭한 결과 ‘중·일 양국 정부는 큰 공동 이익에 기반을 두고 협력해야 하며 세부적인 차이는 뒤로 미뤄둬야 한다’는 합의에 쉽게 도달했다는 설명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스즈키 총리는 덩샤오핑이 “센카쿠 열도의 장래는 미래 세대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표시했고 이후 중국이 센카쿠 문제를 언급하는 일이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 문서는 대처 총리의 비서관이 정상회담에 관해 작성한 메모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1978년 8월 소노다 스나오 일본 외무상이 베이징에서, 스즈키 총리도 취임 전인 1979년 5월 중국에서 각각 덩샤오핑과 면담한 것 등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당시 일본 정부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에 관해 현상 유지를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문제를 뒤로 미뤄두는 전략을 용인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현재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배치된다. 일본 정부는 센카쿠 열도와 관련해 현상 유지를 중국과 합의한 사실이 없다며 ‘암묵적 승인설’을 부인하고 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씨줄날줄] 시진핑의 승부/오일만 논설위원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 있다. ‘총명하기는 어렵고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어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는 의미다. 청나라 문학가 정판교(鄭板橋)의 말인데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경구다. 손자병법에서 ‘자신의 의도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손자가 말한 시형법(示形法)이다. 덩샤오핑의 유언인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길러라)와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난세에 살아남는 처세술을 가르친 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권을 거머쥔 것도 이런 처세술 때문이다.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시 주석은 지방에서 조용히 인맥을 쌓으며 기회를 기다렸다. 중앙정치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인 흔적도 없다. 다만 공청단과 태자당의 치열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어부지리 전략을 썼다. 당시 공청단을 이끌던 후진타오 전 주석이 자신의 후계자로 리커창 카드를 내밀자 태자당의 리더 장쩌민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과정에서 타협책으로 공청단과 태자당 모두에게 거부감이 없는 시진핑이 주석으로 낙점된 것이다. 시진핑의 인생은 평실(平實), 저조(低調), 겸화(謙和), 대기(大氣)란 네 단어의 좌우명에 압축돼 있다. 소박하고 수수한(평실)한 성품을 바탕으로 재능과 능력을 뽐내지 않는 처세(저조)와 겸허하고 온화함(겸화)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대범하고 당당(대기)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가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도 진시황이나 한 무제, 당 태종 같은 화려한 영웅이 아니라 후한을 연 유수(劉秀)나 촉나라를 세운 유비(劉備)처럼 인화단결을 중시하는 인물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조용한 처세로 2012년 11월 당서기에 등극했지만 이후 그는 승부사로서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상하이방과 태자당을 향해 반부패 척결을 앞세워 가차 없이 칼을 뽑아들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자신의 집권에 반대해 정변을 모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4인방에 창을 겨눴다. 지난해 8월 태자당의 핵심인 보시라이 전 충칭 당서기를 법정에 세워 단죄한 데 이어 장쩌민의 군부 대리인이었던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상하이방의 핵심인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을 차례로 감옥에 넣었다. 최근 공청단의 핵심이자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공작부장을 부패 혐의로 낙마시켰다. 시 주석이 사실상 1인 체제를 굳힌 것이다. 어찌 보면 마오쩌둥보다 더 무서운 책략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뉴욕 스카이라인 접수하는 미스터왕

    뉴욕 스카이라인 접수하는 미스터왕

    중국 기업들이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을 싹쓸이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제너럴모터스(GM) 빌딩과 원 체이스맨해튼 플라자,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에 이어 채 완공도 되지 않은 브라이언트파크 빌딩(조감도)도 사들였다. 중국 5대 은행 중 하나인 중국은행은 최근 미 부동산 개발업체인 하인스와 JP모건체이스로부터 6억 달러(약 6613억 2000만원)에 맨해튼 브라이언트파크 인근에 들어설 28층짜리 빌딩을 사들이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브라이언트파크 40번가에 있는 이 빌딩은 총면적 4만 3665㎡(약 1만 3208평)의 유리로 된 고층 건물로 내년 초 완공될 예정이다. 중국은행이 이 빌딩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에 있는 미국 지사를 이곳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1912년에 영업을 시작한 중국은행은 상업은행으로 자산 13조 8743억 위안(약 2474조 4814억원·2013년 기준 세전 이익 2127억 위안)에 이르는 거대 은행이다. 중국 자본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알짜 빌딩을 무차별 사냥하고 있다. 부동산 서비스업체 CBRE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 기업들이 투자한 미국 상업 부동산의 78%가 뉴욕에 몰려 있다. 특히 덩샤오핑(鄧小平)의 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 회장이 이끄는 안방(安邦)보험그룹은 지난 10월 맨해튼의 랜드마크이자 5성급 호텔인 월도프 애스토리아를 19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중국 민영 투자회사 상하이푸싱그룹(上海星集團)이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원 체이스맨해튼 플라자를 7억 2500달러에 사들였고, 부동산 개발업체 소호차이나의 장신(張欣)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일가는 그해 6월 맨해튼에 있는 50층 높이 초고층 건물 GM빌딩의 지분 40%를 14억 달러에 매입한 바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찔끔찔끔’ 힘들고 꽉 막혀서 괴로워

    ‘찔끔찔끔’ 힘들고 꽉 막혀서 괴로워

    “남자에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휴일을 맞아 북한산에 오른 박모(48·경기 광명시 소하동)씨는 짐짓 수줍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동행한 친구가 점심밥을 먹을 때 콜라비를 꺼내 놓으며 “전립선(질환)에 그만이라더라”고 말한 터였다. 그러자 8명이 서로 손을 내밀어 금세 동나고 말았다. 하늘 아래 남성이라면 어느 누구도 비켜가기 어렵다는 게 전립선 질환이다. 사극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궁궐 내 벼슬아치에 빗대 ‘내시에겐 없는 질병’으로도 일컬어진다. 가뜩이나 그런 마당에 기온마저 곤두박질한 요즈음 전립선 질환, 특히 전립선 비대증이 심각해지기에 눈길을 끈다. 전립선(prostate)은 그리스어로 보호자(protector)에서 유래했다. 고환 앞에 있으면서 고환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고환이 바로 정액을 생산하는 공장이라 전립선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성인 대열에 들어서는 20대의 경우 전립선은 방광 밑에 밤톨 만하게 자리한다. 전체의 30%에 해당하는 정액을 생성, 분비하고 정자의 생존과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또 정자에 영양을 공급하고 세균 감염을 막는다. 성욕 감퇴, 발기력 약화 등 성기능 위축과 맞닿아 이른바 ‘고개 숙인 남자’를 양산하기도 한다. 먼저 전립선암은 다른 암에 견줘 수술 후 3년 무재발 생존율이 92%로 높은 편이다. 다만 혈뇨, 배뇨 곤란 등 증상을 동반하지만 뚜렷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례가 수두룩해서 40~50대라면 정기적으로 비뇨기과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는 게 바람직하다. 묘하게도 세계를 움직이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걸려 ‘황제의 암’으로 불린다.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전 주석,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전 프랑스 대통령, 넬슨 만델라(1918~2013)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 아키히토(1933~현재) 일왕은 모두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등졌거나 투병 중 수술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50대 이후 중년 남성에서 많아 ‘아버지의 암’으로도 일컬어진다. 전립선암은 우리나라 남성암 가운데 5위를 달린다. 강동경희대병원 이형래(비뇨기과) 교수는 “통계상 전립선암 환자의 경우 2010년 7848명으로 2009년 7404명보다 444명 증가했다”며 “남성 전체 암환자 가운데 7.6%에 해당하는데 1999년 이후 연평균 12.6%에 이르는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전립선암은 고령과 기름기 많은 음식 섭취 때문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천의대 길병원 오진규(비뇨기과) 교수는 “예방하기 위해선 적절한 운동과 수면, 금연, 금주 등 일반적인 수칙과 더불어 콩, 토마토, 녹차, 커리 등 식이요법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한 게 바로 전립선비대증이다. 비뇨기과 전체 질환의 25%를 웃돈다. 50대 가운데 50%, 60대의 60%, 70대의 70%, 80대의 90%가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질환이 아니라 노화에 따른 증상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환자 대부분은 불편한 배뇨 증상을 그저 나이 탓이거니 하면서 가볍게 넘기곤 한다. 결국 뒤늦게, 심지어 전립선이 꽉 막히고서야 병원 문을 노크하기도 한다. 전립선이 너무 커져 여기에 둘러싸인 요도를 압박할 정도에 이르면 심각해진다. 전립선은 막 출생했을 때 완두콩 크기인데 성인 땐 가로 4㎝, 세로 3㎝, 높이 3㎝, 무게 20g으로 훌쩍 자란다. 30대 이후로 갈수록 성장 속도는 차차 낮아지지만 해마다 0.4g씩 꾸준히 커진다. 60대에 들어서면 평균 30g이나 된다. 정상이라 할 20대에 비해 50%나 불어나는 것이다. 전립선비대증에 걸리면 오줌이 잘 나오지 않고 오래 걸린다. 따라서 자주 화장실을 찾기 마련이다. 한밤에 일어나는 등 하루 소변 보는 횟수가 8회를 웃돌면 의심할 만하다. 뜸을 들이거나 힘을 잔뜩 줘야 해 따끔한 느낌도 잦아진다. 정상인의 경우 400㎖쯤 오줌을 누고 나면 시원한 느낌을 갖는다. 반면 전립선비대증을 앓으면 방광을 완전히 비우지 못한 채 인체에 남기게 된다. 이후 방광 기능저하, 신부전 등 심각한 합병증을 앓는다. 배뇨가 불편해지면 어떤 일이라도 집중하기 힘들고 수면장애를 겪을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이만큼 끔찍한 일도 드물다. 아주 조그만 일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우울증을 호소하기 쉬워진다. 중장년층 남성에게 삶의 질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사태를 빚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찍 발견만 한다면 환자의 80%는 약물로 증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거꾸로 요로 감염, 혈뇨 등 만성으로 번지거나 결석이 생긴 경우, 약물치료 효과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 교수는 “전립선비대증 환자가 2006년 45만 8955명에서 2011년 84만 2069명으로 83.5%나 늘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전립선염을 들여다보자. 몸 상태가 약해진 상태에서 세균이 전립선에 침입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먼저 세균이 요도를 거쳐 올라가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면역 결핍이나 요도의 기능 이상, 골반 긴장근육통, 스트레스 등 요인들의 복합작용에 의해 발병할 수도 있다. 만성질환으로 도질 가능성도 37%로 아주 높아 적극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세균성이라면 항생제 처방을 통해 비교적 잘 치유될 수 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한·중 FTA와 후강퉁/정기홍 논설위원

    중국의 경제개방 정책이 거침없다. 최근 열린 주요20개국(G20)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호주·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그제는 홍콩과 상하이 주식시장을 교차 거래하는 ‘후강퉁’을 개시했다. 빗장을 푸는 기세가 ‘역발산 기개세’라 할 만하다. 아세안은 물론 지난해에는 스위스와 FTA를 체결해 유럽연합(EU)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다. 세계 경제의 맹주 자리를 꿰차겠다는 주요2개국(G2) 중국의 야심으로 보인다. 중국이 개방 발걸음에 속도를 내는 것은 자신감이다. 그동안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지만 ‘세계의 시장’이 되겠다는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다. 양의 팽창에서 질의 발전을 추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 규모(GDP)는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라섰고, 수출과 외환보유고 등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 경제의 중심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5000달러를 넘어 ‘소비점화 시대’에 진입해 있다.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1선급 도시들은 1만 달러를 넘어섰고 2, 3선급 도시들도 6000달러에 이르렀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동남부 지역을 시찰하면서 천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로 개방정책을 추진한 이후 ‘점→선→면’의 경제발전 전략을 구사해 왔다. 특정 지역인 점(點)을 먼저 발전시키고, 이를 연결한 인근 지역(線)과 대륙 전역(面)으로 발전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동남부 연해 중심 지역인 상하이의 푸둥이 대표적이다. 면의 시대 진입은 경제 전략이 지역 중심과 소비재 중심으로 옮아 가는 방증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권역별·도시별 경제 성장을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다. 시동을 건 서부개발 계획이 대표적이다. 중국과의 FTA 체결은 우리에게 1992년 한·중 경제교류 이후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될 듯하다. 수교 이후 교역 규모는 무려 35배로 증가했다. 수출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고 수입은 일본을 앞질러 1위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중국 신설 법인은 큰 폭으로 줄었다. 2006년 2200여곳에서 올 상반기에는 300여곳으로 급감했고, 중국 투자 기업의 3분의1이 진출했던 산둥성에는 한때 1만여개의 법인이 설립됐으나 4800개로 줄었다. 인건비 상승과 세제 지원 감소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개방 확대는 우리 기업의 대중 투자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한다. 기존보다 더 미시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GM이 199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100명당 1대를 팔겠다고 호언했지만, 수백대 판매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GM은 시장이 성숙한 2002년에 재진입해 안착했다. 중국 투자에 성공하려면 때와 현지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깃털’만 털고 ‘몸통’ 처리는 신통찮아

    ‘깃털’만 털고 ‘몸통’ 처리는 신통찮아

    박근혜 정부 최대 과제 중 하나이자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직(職)을 걸겠다”던 우리금융 민영화가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민영화 1단계(지방은행계열)와 2단계(우리투자증권 패키지)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지만 핵심인 3단계(우리은행 매각)가 시원하게 뚫리지 않아서다. ‘깃털’(경남은행, 광주은행, 우리아비바생명, 우리투자증권 등)은 팔았지만 ‘몸통’(우리은행) 매각이 영 신통치 않다. 교보생명은 18일 정기 이사회를 열어 우리은행 경영권 지분 인수 예비입찰 참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결정했다. 현재 우리은행 매각은 정부(예금보험공사) 지분 30%를 한꺼번에 넘기는 ‘경영권 매각’과 18%를 희망자에게 나눠 파는 ‘소수 지분 매각’ 등 두 갈래(투 트랙)로 진행되고 있다. 소수 지분은 연기금과 국내외 펀드 등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만 경영권 매각은 입질도 거의 없다. 교보생명 측은 “입찰 참여 여부를 포함해 (참여 결정 시) 구체적인 가격과 수량 등은 조만간 열리는 이사회 내 경영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당초 우리은행 인수전에 참여한다고 밝혔다가 돌연 ‘추후 결정’으로 말을 바꿔 여러 뒷말을 낳고 있다. 인수전에 뛰어들어 봤자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 금지)에 걸려 승산이 없다고 보고 발을 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교보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우리은행 인수 의지를 적극 밝혀 왔다. 여론은 부정적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지분 34%를 가진 최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성격이 강한 은행을 개인, 그것도 ‘오너 세습’ 일가에 넘긴다는 것이 금융 당국으로서도 부담이다. 돈도 부족하다. 교보생명의 자금 동원력은 1조~1조 3000억원 수준. 우리은행을 인수하려면 2조원가량을 외부에서 끌어와야 한다. 은행산업 경험도 없다. 교보생명이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장(場)이 서기도 전에 파장하는 분위기로 흘러 ‘참여 유보’라는 어정쩡한 태도를 내놓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입찰 자체가 무산되면 금융 당국으로서는 또 한 번 체면을 구기게 된다. 하지만 교보가 입찰전에 뛰어들더라도 유효경쟁 성립은 어려워 보인다. 신한, KB, 하나 등 대형 금융지주사들은 이미 인수 의향이 없다고 밝힌 데다 각종 사건·사고와 인사 등으로 제 몸 추스르기에도 바쁜 실정이기 때문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최고지도자의 손녀사위가 경영을 맡은 중국의 안방보험이 눈독을 들인 것이 사실이지만 ‘해외 자본에 국내 은행을 넘길 수 없다’는 부정적 여론이 압도적이라 입찰 가능성은 작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뜩지 않은’ 대상자들만 있어 네 번째 민영화 시도도 결국 무산될 공산이 높아졌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우리은행을 인수해 제대로 경영할 만한 유력 후보군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매각 연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우리은행 매각 입찰일은 오는 28일이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민영화 원칙 중 ‘공적자금 조기 회수’는 이미 물 건너갔고 ‘금융산업 발전’은 우리은행 사기 저하 및 평판 하락 등으로 실패한 상황”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우리은행 인수) 문턱을 더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구본영 칼럼] 미국과 중국 사이, ‘서희 외교’가 답이다

    [구본영 칼럼] 미국과 중국 사이, ‘서희 외교’가 답이다

    요즘 서울 빛초롱 축제가 열리는 청계천은 유커(중국 관광객)로 넘쳐나고 있다. 한·중 정상이 자유무역협정(FTA)의 사실상 타결을 선언한 베이징 인민대회당 주변이 한국 관광객들로 붐볐듯이. 13억 인구의 중국이 우리에게 거대한 내수 시장의 빗장을 푼 까닭은 뭘까. 과거 혈맹이었던 북한이 추진 중인 압록강 하중도의 황금평경제특구에 중국 기업의 투자 건수는 ‘제로’라는데 말이다. 한·중 FTA 체결이야말로 비단 장수 왕서방의 실리적 상술을 말해 주는 듯싶다. 하긴 중국인들의 상술은 본래 유대인이 울고 갈 정도였다. 지폐와 어음도 세계 최초로 사용했다지 않는가. 아편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늘 세계 총생산의 20% 이상을 차지한 ‘공룡’이었다. 1949∼78년 사회주의 경제를 실험하느라 허비한 ‘잃어버린 30년’은 제쳐 두자. 이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중국인들의 잠들었던 상혼을 흔들어 깨우자 엄청난 경제성장 속도를 시현하지 않았나. 한·중 FTA는 어느새 주요 2개국(G2)이 된 중화(中華)의 자신감 발현으로도 비친다. 어쩌면 한국을 중립지대화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사회 일각에선 이참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미국보다는 중국을 더 가까이 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탈미 친중론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은 반만년 역사에서 언제나 친구이자 적이었다. 영어로 표현하면 프레너미(Frenemy)였다. 얼마 전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북 인권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는 내정간섭”이라고 거품을 물었다. 북한 정권의 붕괴는 바라지 않는 중국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 독일 통일 2년 전인 1989년 가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은 동베를린에서 유통기한이 끝난 사회주의 체제를 바꿀 개혁을 한사코 거부하는 에리히 호네커 동독 서기장에게 경고했다. “인생은 너무 늦게 오는 자를 벌준다”고. 물론 그 이전에 서독 헬무트 콜 총리는 옛 소련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제공했다. 고르비가 동독을 버렸듯이 이제 시진핑이 북 세습정권을 포기하면 남북 간 진정한 협력은 급물살을 탈 게다. 북한이 보다 합리적 정권으로 ‘레짐 체인지’되면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적다. 하루가 다르게 경제력을 불리고 있는 중국이 어디 우리의 원조에 매달릴 처지인가. 다만 중국이 G2라고는 하나 세계의 지도국이 되기엔 왠지 역부족으로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꿈꾸는 비전이 다당제와 직접선거,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확고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탓이다. 중국이 이런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에 올라타지 않는 한 지식산업이 근간인 21세기 유일 패권국이 되긴 어려운 노릇이다. 학문과 과학기술의 창의는 자유가 있는 곳에서 샘솟기 때문이다. 까닭에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중국과도 협력을 강화하는 ‘연미협중’(聯美協中)이 우리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지난한 일이지만 한국 외교가 개척해야 할 뉴프런티어다. 쉽진 않겠지만 지레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까닭 또한 없다. 과거 기울어져 가는 송(宋)과 중원을 장악한 요(遼·거란) 사이에서 고려의 서희가 그랬다. 그는 요의 위세에 굴복하지 않고 또 다른 신흥세력인 여진과 요·송의 틈새에서 고려의 전략적 가치를 당당히 설파함으로써 외려 강동 6주를 양보받았다. 중국으로 하여금 핵개발에 매달리는 북한이 더는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함정’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도 이를 위한 좋은 카드일 수 있다. 미국은 바라지만, 중국이 꺼리는 현실을 역발상으로 활용할 경우다. 북핵을 막지 못하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불가피함을 주지시킴으로써 중국의 북핵 억제 영향력 강화를 이끌 지렛대로 삼으란 얘기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적극 참여해야겠지만, 중국이 제안한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를 외면할 이유도 없다.
  • 타임誌 커버스토리 시 주석 빗댄 ‘시황제’

    타임誌 커버스토리 시 주석 빗댄 ‘시황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7일 발매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 최신호에서 ‘시황제’(習皇帝·Emperor Xi)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로 다뤄진다고 홍콩 명보가 9일 보도했다. 타임은 “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인민을 일어나게 했고,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인민을 부유하게 했다면, 시진핑은 중국 인민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최근 보도를 인용, 시 주석의 권력이 3~4세대 지도자인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를 능가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 주석의 권력은 개혁·개방을 이끈 아버지 시중쉰(習仲勛) 전 부총리와 달리 (공산당 일당독재)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보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평가했다. 타임은 그 근거로 “시 주석은 취임 직후 (공산당 일당독재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헌정·민주·언론 자유 등 보편 가치를 대학가에서 논하지 못하게 하는 ‘칠불강’(七不講) 조치를 한 데 이어 반독점법으로 중국 내 외자 기업들을 괴롭혔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총서기 취임 1개월 뒤인 2012년 12월 개혁·개방을 대표하는 광둥(廣東)성을 찾아 “소련 공산당이 붕괴한 것은 그들의 이상과 신념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으며, 이는 그의 보수적인 정치 노선을 보여 준 신호로 분석됐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시진핑 2.0 시대] (상) 정치 集(집:모으다)-권력집중

    [시진핑 2.0 시대] (상) 정치 集(집:모으다)-권력집중

    오는 15일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 최고 지도자인 당 총서기로 취임한 지 만 2년이 된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정치·외교·사회 분야에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난 2년을 ‘시진핑 1.0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시진핑 시대의 변화를 키워드로 정리해 보고 다가올 ‘시진핑 2.0 시대’를 3회에 걸쳐 조망한다. 지난 6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한 줄짜리 속보가 중국 정가를 강타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경제 관련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 중앙재경영도소조 조장에 취임했다는 소식이었다. 재경영도소조장은 1998년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주룽지(朱鎔基) 총리에게 넘겨준 이후 총리가 줄곧 맡아 온 자리다. 시 주석이 재경영도소조장까지 꿰찬 것은 외교·안보는 주석, 경제는 총리가 담당하던 중국의 ‘투톱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의미다. 11월 현재 시 주석이 정치, 군사, 외교, 사회,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최고 책임자 감투를 쓴 것은 10개에 달한다. 시 주석에게 ‘시 황제’란 별명이 붙은 것은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 균형을 위해 채택한 ‘집단지도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 정치의 특색이던 원로 정치도 크게 약화됐다. 덩샤오핑은 1981년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를 후계자로 지명한 뒤 천윈(陳雲) 등 ‘8대 원로’와 함께 막후 정치로 정가를 주물렀다. 이후 원로 정치는 중국 정치의 전통처럼 여겨졌다. 덩샤오핑이 지명한 3세대 지도자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사망할 때까지 원로들의 눈치를 살폈다.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에는 장쩌민이 전·현직 최고지도부의 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에 ‘장쩌민 판공실’을 운영하며 상왕(上王)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시 주석 집권 이후에는 이런 모습이 사라졌다. 장쩌민은 후진타오 시절 의전 서열에서 국가주석 다음으로 호명됐지만 시 주석 집권 이후 장쩌민의 호명 순서는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7인) 뒤로 밀렸다. 이처럼 시 주석이 집단지배체제와 원로정치의 전통을 깨고 일인지배체제를 구축한 힘은 어디서 왔을까. 그는 장쩌민, 후진타오와 달리 공산당 지분을 가진 혁명 원로의 후손인 ‘훙얼다이’(紅二代)라는 태생적 우위을 갖고 있다. 문화대혁명 시절 7년간 하방돼 고난의 세월을 겪었고 이후 25년 동안 지방 생활을 통해 낮은 자리에서부터 한 계단씩 밟고 올라오면서 ‘태자당 도련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취임 전 당·정 간부 2000여명을 상대로 한 지지 투표에서 리커창(李克强)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원동력이 됐다. 취임 뒤에는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공고히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풍(整風)과 반부패로 민심을 얻으며 권력을 움켜쥐었다. 당원들의 근검절약 등을 지시한 당8조(黨八條)와 사치 등의 금지 사항을 적시한 금6조(禁六條), 군인들의 금주 등을 명령한 군10조(軍十條), 자아비판을 골자로 한 군중(群衆)운동, 반부패 기구인 당 중앙기율검사위의 전국 순시조 감찰 활동 등 각종 정풍 카드로 당·정·군 기강 잡기에 나섰다. 특히 지난 7월 조사 방침이 선포된 저우융캉을 통해 ‘상무위원은 건드리지 않는다’(刑不上常委)는 묵계를 파기함으로써 원로를 포함해 누구든 도전하면 제거될 수 있다는 경고장도 발부했다. 시 주석 집권 이래 지난 9월까지 2년 동안 장·차관급 이상 55명을 포함해 부패 척결로 낙마한 공직자만 18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권력 독주를 위한 기본 틀을 구축한 것이다. 시 주석의 권력 집중은 지난달 폐막한 4중전회(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 회의)에서 법치의 기치를 꺼내 들며 제2기의 막이 올랐다. 지난 2년 동안 정풍 및 반부패 운동을 통해 당을 손보는 식으로 당내 권력 기반을 구축했다면 이제는 법치를 내세워 국가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려 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4중전회 공보는 ‘시진핑의 일련의 중요 강화(講話) 정신’(시진핑 정신)을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 등과 같은 당의 지도 사상으로 처음 적시했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여전히 권력 집중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과학원 출신의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마오쩌둥(毛澤東)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와 군권을 이용한 길을 시진핑이 답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마오가 당권을 장악한 옌안(延安) 문예좌담회를 연상케 하는 문예 공작좌담회를 열어 마오처럼 문화예술인들에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전파를 촉구하고, 마오가 군권을 장악한 구톈(古田)회의 유적지에서 전군 정치공작회의를 열어 당에 대한 군의 충성을 강조한 게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시진핑이 강력하게 밀고 있는 장유샤(張又俠) 인민해방군 총장비부장(상장·한국군 대장)의 중앙위 부주석 승진 소식이 4중전회나 군 정치공작회의에서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시 주석의 권력이 공고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 정가 소식통은 “시진핑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린 세력이 시진핑의 개혁을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시진핑표 개혁에 성과가 없으면 반대 세력의 권력 도전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시진핑, 29일 ‘구톈회의’서 군권 다잡기

    중국군 통수권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개국원수 마오쩌둥(毛澤東)이 군권을 장악한 ‘구톈(古田) 회의’ 85주년을 맞아 29~30일 푸젠(福建)성 구톈에서 전군회의를 열고 군권 강화에 나선다고 타이완 타블로이드지 왕보(旺報)가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시 주석 집권 후 진행된 일련의 반부패 캠페인에 군이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면서 “시 주석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마오가 당의 군 지휘 원칙을 세운 구톈에서 이 원칙을 다시 강조함으로써 군 기강을 다잡는 식으로 군권을 조이려 한다”고 전했다. ‘구톈회의’는 중국에서 ‘당(공산당)이 총(군대)을 지휘한다’는 원칙을 확립한 기념비적 성격을 띤다. 마오는 국민당과 싸우던 공산당의 홍군(紅軍) 대장정 직전인 1929년 말 군 경력이 짧다는 이유로 당시 군 통수권자 격인 주더(朱德)로부터 무시를 당하자 ‘당이 군을 지휘한다’는 명분을 수립해 군을 접수하고 권력을 강화했다.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때도 예전잉(葉劍英) 당시 국방부장이 군대로 정권 실세인 문혁(문화대혁명) 4인방을 제압했듯 일당독재를 내세우는 공산당과 그 지도자는 당의 군 장악 원칙을 목숨처럼 중시한다. 신문은 이에 따라 이번 전군회의에서 시 주석은 최근 폐막한 18기4중전회(18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가 내세운 법치에서 군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반부패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부패로 권력강화에 매진해 온 시 주석은 반부패 캠페인에 대한 군의 반발이 정권 운용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시 주석은 자신의 측근들로 군 요직을 채우며 군권 장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중화권 언론이 보도했다. 전날 군 지도자의 요람으로 통하는 18개 집단군 지휘부 가운데 6명을 교체하는 인사가 단행됐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열린세상] 시장농업,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가나/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시장농업,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가나/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최근 중국통계연감은 도시가계 평균소득이 2만 4565위안으로 농촌가계 7917위안의 3배임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 2배이던 격차가 고도성장 기간에 더 벌어졌다. 현재 농업·농촌 발전과 도시·농촌 불균형 완화는 중국의 우선적 국정과제다. 작년 말 중국은 국가개혁특별위원회로 볼 수 있는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소조)를 출범시키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조장을 맡았다. 시 주석은 올해 1월부터 소조회의를 주관해 왔는데 지난달 29일 제5차 회의에서 의미 있는 농정방향을 제시했다. 지금 널리 퍼져 있는 농민들의 농지사용권 거래에 법적 질서 확립을 강조한 것이다. 농지개혁은 농업개혁의 근간이다. 중국은 1949년 건국과 함께 농지의 봉건적 지주소유제를 폐지하고 농민소유제를 실시했다. 농민들이 농지의 소유, 경영, 처분권을 가졌다. 그러다 잠시 후 1950년대 중반 국가가 소유권을 회수하고 농지의 집단경영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했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이 있기까지 국가는 집단경영 토대 위에 농지를 인민공사-생산대대-생산소대로 이어지는 3단계 조직에 위탁함으로써 농민 개인 소유권은 없어졌다. 1978년 덩샤오핑은 핵심적 개혁·개방 정책의 하나로 ‘가정연산승포책임제’(家庭??承包?任制)라는 가족단위 농업생산책임제를 도입했다. 개별 농가에 자율적 농지 사용권을 주고 농민에게 일정의 정부 몫을 제외한 나머지 생산물에 대한 자율 처분권을 허락한 것이다. 농민 몫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됐고 급격한 생산 증가로 연결됐다. 1983년 말 가족책임경영 농지 면적은 전체의 97%로 확대됐다. 따라서 생산소대와 대대는 의미를 잃었고 1984년 인민공사 해체와 함께 농지 집단경영 기반이 사라졌다. 국가는 소유권을, 농가는 사용권을 가진 것이다. 2000년대에 시장 힘은 더 커져 농지사용권까지 거래한다. 공업화, 도시화에 따라 농촌을 떠나는 농가들이 사용권을 거래한 것이다. 소유권이 없는 상태의 불완전한 거래였지만 다양한 형태의 사용권 거래를 통해 지역에 따라 대규모 경영자가 나타나는 등 농업경영구조 변화 조짐을 보였다. 하청, 임대, 교환, 지분출자, 양도 등 자본주의 토지시장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거래형태가 나타났다. 그러나 제도 부족에 따른 무질서한 거래 확산, 국가의 갑작스러운 정책변경 가능성 등은 불확실성의 요인이었고, 거래 활성화를 통한 농업경영구조 개선에는 한계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시 주석의 추인은 앞으로 구체적 제도 도입으로 연결되고 정책 안정성을 높여 큰 파급 효과를 부를 것 같다. 중국은 이제 농지 소유권은 국가가 갖되 농가가 임대차 등을 통해 사용권을 이전함으로써 실제 원하는 자에게 경영권이 공고하게 분화될 것이다. 이를 통해 농지 규모화가 이루어져 만성적 소규모 경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소조는 기대한다. 또한 소조는 고령 등으로 영농이 어려운 농촌 주민은 임대료 등을 통해 일정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농촌 내부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도시·농촌 불균형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북한도 올해 5월 30일 농업개혁조치를 발표했다. 내년부터 협동농장에 공동작업 단위 대신 가족 단위 책임경영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가족 1명당 농지 1000평을 지급하고 생산물은 국가와 농가가 4대6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덩샤오핑이 도입한 ‘가정연산승포책임제’를 닮았다. 북한에도 이미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광범위한 시장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지난 5·30농업개혁이 농산물 시장 확대와 농업생산 증대를 유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예상대로 시장 힘이 더욱 확장된다면 지금 중국이 가는 방향의 추가적 개혁을 기대하게 한다. 현재 많은 난관 가운데서도 남북한 경제협력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보면 농업·농촌부문이 경제협력의 우선적 대상이다. 협력이 현실화된다면 북한의 5·30농업개혁 조치가 시장기능을 크게 할 수 있도록 방향이 설정됐으면 한다. 시장 힘을 등에 업은 개혁과 경제협력이 항상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뉴욕 왕궁’ 새주인은 덩샤오핑 손녀 사위

    ‘뉴욕의 왕궁’으로 불리는 미국 뉴욕 맨해튼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의 새 주인은 중국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외손녀 사위 등 태자당(太子黨) 인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명경(明鏡)에 따르면 지난 6일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을 19억 5000만 달러(약 2조 800억원)에 매입한 중국 안방(安邦)보험그룹의 창립자 겸 회장 우샤오후이(吳小暉)는 덩샤오핑의 차녀 덩난(鄧楠)의 사위로 확인됐다. 10대 개국 원로 중 한 명인 천이(陳毅)의 아들 천샤오루(陳小魯)는 이 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이사다. 매체는 또 이 회사가 거래하는 주요 계열사 중 하나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이 소유한 신톈위(新天域)라고 덧붙였다. 안방보험은 민간 기업인이 보험 분야 영업 허가를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2004년 설립됐다. 태자당이라는 풍부한 인맥을 배경으로 중국 내 은행과 부동산에 대한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벌였다. 지난 4월 현재 자본금 규모(300억 위안)는 중국 최대 생명보험사인 차이나라이프(中國人壽·283억 위안)를 압도한다. 이번 호텔 인수로 총자산 규모는 7000억 위안(약 115조원)으로 늘어났다. 태자당은 공산당 혁명 원로 및 고위 간부의 자녀들을 일컫는 말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실시된 이후인 1980년대에 본격 부상했다. 이들의 중국 내 경제 독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앞서 블룸버그는 2012년 태자당 가운데 덩샤오핑을 포함한 중국 8대 혁명 원로의 자제들이 보유한 국유기업 자산만 1조 6000억 달러(약 1700조원)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1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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