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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 특별좌담] 김형오 前국회의장·한덕수 前총리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길’을 말하다 - 본사 이경형 주필 사회

    [신년 특별좌담] 김형오 前국회의장·한덕수 前총리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길’을 말하다 - 본사 이경형 주필 사회

    2016년 새해를 맞아 서울신문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한덕수 전 총리를 초청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성찰과 비전 그리고 제언’을 주제로 31일 특별좌담을 가졌다. 김 전 의장은 현재 부산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 전 총리는 주미대사와 한국무역협회장을 거쳐 (재)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 전 의장은 작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에 ‘한국 정치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다녀왔고 한 전 총리는 파리기후협약 체결 현장에 민간 대표로 다녀왔다. 두 사람은 과거의 경력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해 조언을 하는 국내 최고의 멘토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좌담은 본사 이경형 주필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경형 주필: 2016년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주제로 두 분이 제언을 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대내외 상황에 대해 전망해 주십시오. -김형오 전 의장: 대내적으로 우선 총선이 있습니다. 미국엔 대선이 있고요. 국내외 환경이 그야말로 녹록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성장에 대한 잠재적 기대치가 굉장히 떨어져 있습니다. 거기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성장 둔화 등으로 우리 경제의 먹구름이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습니다. 정치 분야를 필두로 모든 분야에서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 게 우리를 답답하게 합니다. -한덕수 전 총리: 세계적으로 경제 불확실성이라는 구름이 끼고 있습니다. 제로금리를 유지하던 미국이 지난해 말에 금리를 올렸고 일본과 유럽연합(EU)은 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 기축통화의 하나가 됐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라는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를 창출하는 은행이 만들어졌습니다. 중국이 모든 세계 경제의 중요한 섹터가 됐으나 정책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슬람국가(IS) 문제, 테러 문제, 미·중에서 지지받는 극단주의 포퓰리즘 등이 다 겹쳐서 올해는 국제정치적, 경제적으로 굉장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한 해가 될 겁니다. →이 주필: 지난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타계하며 남긴 유지가 통합과 화해였습니다. 새해 우리 국민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 화두로 던질 만한 핵심 키워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 전 의장: 좋은 말들이 깊은 자기 성찰과 실천을 담보하지 않고 입으로만 뱉다 보니 식상해 버린 느낌입니다. 통합,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하도 많이 하니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관철하는 수단적 용어로 전락해 버린 측면이 있어서 이 말을 쓰기에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편협함을 초월하고 아우르는 포용입니다. 올해는 정치권을 필두로 사회 각 분야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포용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전 총리: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협력하고 소통 잘하고 중도적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그러려면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돼야 합니다. 세계화 추세에 뒤떨어진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또 능력 없고 아픈 사람들을 전체 사회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결국 극단이 아닌 중도로 가야 합니다. →이 주필: 19대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여의도 정치를 성찰하고 어떻게 하면 진정한 대의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또 국회, 정부, 청와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전 의장: 디지털시대에 사회는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데, 국회는 말 그대로 회의체 기관이라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국민적 체제가 아닌 것입니다. 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이라 하면 우리는 YS(김영삼 전 대통령),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를 말하는데 그건 그 시대에 필요했던 리더십이었습니다. 민주화 시기에는 그런 영웅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국회 구성 요소들의 리더십이 총체적으로 발휘돼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못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당에서 국회가 하는 모든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노동개혁 입법도 헌법기관인 의원 한 명 한 명의 타협이 아니라 정당 대 정당으로 붙어서 소수 지도자 간 싸움을 하니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은 겁니다. 정당이 국회를 이끌고 가는 비정상적 구조 탓에 일하지 않는 국회, 싸움판 국회가 된 겁니다. 여당과 청와대 관계를 보면 일종의 상하관계가 됐습니다. 여당이 맥이 없고 청와대 눈치만 보는 것처럼 보이고, 청와대가 너무 일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여당 내에도 정책 조율 과정에서 다원화, 다양화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청와대에 끌려가는 것처럼 된 겁니다. 국회와 청와대 관계는 헌법상 3권 분립이 보장된 관계인데 국회가 권한과 책임을 다했느냐는 반성할 여지가 있습니다. -한 전 총리: 좀더 창의적, 혁신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훨씬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개혁 과제는 쉬운 건 대충 끝났다고 봅니다. 어려운 것만 남았습니다. 이걸 행정부 혼자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부와 입법부,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 시민사회, 학계, 언론 등이 방향을 잡아 줘야 합니다. 최종 입법을 하는 국회에서 국민 전체 이해집단의 의견을 반영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중간점에서 타협해야지 극단으로 가는 건 적절치 않고 열등한 정책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중도적 입장에서 협력하려면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지금 국회선진화법 같은 조항이 미국은 상원에만 있지 하원에는 없습니다. 미 상원은 전국적 규모를 가진 데서 선출된 사람들로 구성돼 특정한 영향력에서 탈피해 투표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단원제인데 60% 규칙을 적용하니 중요한 결정을 못 할 수 있습니다. -김 전 의장: 제가 선진화법 주장을 가장 오랫동안 했습니다. 전에는 여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덮어놓고 반대를 했습니다. 여당은 직권상정을 하지 왜 국회의장이 우물쭈물하냐고 하고 야당은 직권상정만은 막아 달라 해서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래서 미국처럼 하자고 해서 가져온 겁니다. 그러고는 제 임기 이후 논의가 됐는데, 미국은 예외적인 것에 주로 적용하는 반면 우리는 선진화법에 일반적인 사항은 다 들어가고 예산안 등만 예외로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필: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5년 단임제입니다. 4년 중임제 등 새 정치 틀을 마련할 때가 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개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전 의장: 현재는 선거 주기 불일치로 매년 선거를 하다시피 하고 그러면서 공약이 남발돼 ‘정치 인플레이션’이 심해집니다. 한 명만 뽑기 때문에 불만 계층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특히 20년에 한 번 같은 해에 총선, 대선을 치르게 되는데 국가적 낭비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비전을 잃었다는 겁니다. 중장기 전망을 할 수 없는 나라가 된 겁니다. 대통령이 취임하면 비전을 제시하지만 바뀌면 그만이니 국민이 받아들이질 않고 또 관성의 법칙에 따라 레임덕이 빨리 오게 됩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5년 단임제의 한계입니다. 개헌은 우선 빨리 하고 적용하는 시기는 합의하에 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새로운 헌법 체제하에서 중장기 비전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 전 총리: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건 제도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봤을 때 잘하면 8년, 10년쯤은 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수가 지지하는 모든 정책이 성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준비하는 과정, 이후 진행하는 과정 등을 생각하면 현행 단임제로는 불가능합니다.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반드시 10년 정도 톱 리더의 권위를 보장해 줘야 합니다. →이 주필: 올해에 총선이, 내년에는 대선, 그다음 해에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올 4월 총선에서 다당제 정치의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또 대선과 관련해 바람직한 지도자의 덕목이나 리더십의 방향은 어떻게 돼야 합니까. -김 전 의장: 사회는 다양화, 다원화되는데 정치 인식은 오랜 관습인 양당제에 고정돼 있습니다. 다당제로 가야 한다는 게 시대적 추세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국회가 중앙집권적 명령 중심의 정당정치를 고치지 않으면 다당제가 된다 해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지금 모든 사회가 가진 핵심 문제는 한마디로 독선과 기득권입니다. 스스로 완벽하다는 착각에 기득권은 내놓지 않고, 자기를 따르면 선이고 아니면 악이라 합니다. 20대 총선에서는 그런 분열상이 더 노정될 것 같습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리더십은 2가지, 자기 희생과 실천적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먼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 같은 헌신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로 자기는 소통하지 않으면서 자꾸 뭐라 하면 반발이 세집니다. 청와대로 오라고 해야 합니다. 야당도 독선에서 빠져 나오는 총선이 되길 바랍니다. -한 전 총리: 협력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중도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유권자들은 현명합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성장·번영하기 위해 리더들이 협력·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해당사자들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협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주필: 올해 우리 외교의 역점을 어디에 두면 좋겠습니까. -한 전 총리: 세계화시대의 외교는 전방위 외교입니다. 모든 나라와 잘 지내야 합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주요 2개국(G2)인 미·중 간 경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두 나라의 요구와 관련 있는 정책을 추진할 때 서로 충돌하는 분야가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나라에 항상 우리나라 지지 세력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과거 같은 최빈국이 아니라 세계 15위 경제대국이고 세계가 필요로 하는 행동에 모두 참여하고 있습니다. 파트너가 될 여지가 있으므로 아시아 내 대국과의 경쟁 관계에 잘 대응하고 우리의 진의가 의심받지 않도록 지지 세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김 전 의장: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중국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지금 시점에 통일된다고 하면 중국이 원하겠습니까. 저는 원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한반도가 흡수통일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한 통일이 되더라도 중국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대(對)중국 외교를 강화해야 합니다. 또 오랜 한·미 동맹의 축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와 중국이 윈윈할 수 있다는 데 대한 확신이 있지 않는 한 중국은 대한민국 중심의 통일을 원치 않을 겁니다. →이 주필: 북핵 문제는 남북 문제로만 풀 수는 없고 국제 공조로 가야 합니다. 또 대북 정책은 어느 시점에서 통일 정책과 맞닿게 됩니다. 그럼 대북 정책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또 그 연장선에서 ‘통일 대박’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같은 구상들은 어떻게 연결되겠습니까. -김 전 의장: 저는 북한의 현실을 좀 인정했으면 합니다. 3대째 세습으로 내려오는 게 도덕·인권의 문제가 아니고 현실의 정치 체제라는 얘깁니다.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이 말한 ‘1국 양제’처럼 한반도 내에 2개 체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북한 체제를 인정하니 북한도 우리를 자극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아가서 북 체제가 당장 무너지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그 차원에서 낮고 높은 차원의 교류를 해야 합니다. 내부적으로 우리는 통일에 대한 준비가 너무 안 돼 있습니다. 북한의 인적 자원에 대한 분석도 안 하고 있습니다. 자원을 어찌 활용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 비용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한 전 총리: 국제적 위치와 경제 차원에서 보면 통일 한국은 국제적 지위가 엄청 달라질 겁니다. 우선 통일이 되면 인구가 1억명이 됩니다. 현재의 산업 발전 및 기술 수준으로 봤을 때 특히 우리 대기업군이 북한에 들어가면 북한 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통일 비용을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세계 속의 우리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화, 협력하면서 신뢰를 높여야 하는데 북핵 때문에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핵은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단계 같습니다. 우선 북한 지역 나무 심기, 주민 보건 및 건강 지원, 농업 지원 등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신뢰를 회복하면서 핵 문제는 국제적으로 6자회담 같은 다자적 체제로 풀어 나가야 합니다. →이 주필: 올해 경제 상황에 어려움이 예견되는데 정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합니까. -한 전 총리: 기업들을 보면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기업 역시 정부의 규제와 인센티브 등 제도에 반응하며 활동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 제대로 만들어 줘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 대해 기업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기업들이 장기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정부, 기업, 학계가 모여 분명하고도 투명한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제 위기 관리 능력은 옛날보다는 엄청 향상됐습니다. 외환 보유고나 부채 비율 등을 모두 고려해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올린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게 정치권, 기업, 정부가 협력하고 특히 정부는 장기적 대안을 준비해야 합니다. -김 전 의장: 경제의 축인 정부·가계·기업 중 가계는 부채가 1000조원을 넘었고 정부도 부채 비율이 40%로 여력이 없습니다. 여력이 있다면 사내 유보금이 800조~900조원에 달하는 기업뿐입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규제 완화를 말했지만 흐지부지됐습니다. 보통 임기 말이 되면 규제는 더 커집니다. 지난해 면세점 허가 취소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루아침에 몇 천명의 실직자를 쏟아내고 누구도 눈 깜짝하지 않습니다. 이런 걸 뜯어고치는 한 해가 되면 그나마 한국 경제가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정부는 기업이 스스로 중장기 전망을 세울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야 합니다. 전처럼 끌어가려 하면 안 됩니다. →이 주필: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 등이 더 심해지는 것으로 나옵니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 시장경제와 정부 규제를 어느 선에서 실시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 수준에서 그 눈금을 어디에 둬야 합니까. -한 전 총리: 성장과 분배는 배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분배에 있어 성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쪽에서는 성장의 파이가 커지는 작업이 진행돼야 하고, 다른 쪽에서는 거기서 탈락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성장 쪽에서는 기업에 창의, 혁신이 일어나게 하고 분배는 정부가 주도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장을 왜곡시키지 않는 분배를 해야 합니다. 단적으로 힘든 사람이 있으면 소득을 이전해 줘야 합니다. 유류세나 전기세를 깎아 주는 방식은 문제가 생깁니다. 아울러 재정이 풍부하면 보편적 복지를 하겠지만 아니라면 타기팅을 잘해야 합니다. 복지는 진짜 힘든 사람에게 가도록 해야 합니다. -김 전 의장: 우리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많으면서 노동 생산성은 떨어집니다. 물론 일부겠지만 ‘귀족 노동자’라고도 하는데 임금 격차가 심해 갈등이 생깁니다. 청년 실업도 세대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체감 실업률은 더 높습니다. 지금은 직장의 개념이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도 산업시대 논리에 젖어 있습니다. 전에는 하루 8시간에 야근까지 12시간을 일해야 했지만 사실 앉아만 있지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직장 개념이 바뀌어 투잡, 스리잡 개념이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제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야 갈등 구조가 줄지 않겠습니까. →이 주필: 끝으로 박 대통령의 국가 경영에 대한 평가와 제언 그리고 2030년, 2050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고언을 부탁드립니다. -김 전 의장: 박 대통령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았지만 왜 역대 대통령들이 밝은 얼굴로 청와대를 떠나지 못했는가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길 바랍니다. 5년 내 이룰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선거 때 본인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했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것이었는데, 이후 국가적 어젠다가 너무 자주 바뀌었습니다. 경제민주화, 지금은 사라졌지 않습니까. 창조경제도 가시적 성과를 못 봤습니다. 이를 받쳐주는 각료나 사회적 시스템이 안 돼 있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가진 장점이 많으니 하나만 남기겠다는 자세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중 하나를 권하자면 공권력이 바로 서는, 노골적으로 말하면 시위대에 얻어맞는 경찰이 더는 안 나오게 하는 것만이라도 해놓으면 평가받을 수 있을 겁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고의 정치는 물과 같은 겁니다.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지만 싸우지 않고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더러운 곳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정치는 헌신을 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자면 이제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초연결 시대입니다. 몇 초면 대화할 수 있는데 국회라는 대의 정치의 꽃은 논의가 몇 달씩 걸립니다. 미래학자들이 없어질 직업을 말할 때 국회의원이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좀더 빨리 소통하는 일을 해 주길 바랍니다. →이 주필: 한 전 총리께는 국가 경영 제언과 함께 파리기후협약의 의미를 포함해 미래 준비에 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한 전 총리: 박근혜 정부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규제 개혁입니다. 규제 개혁은 깨끗한 정부를 만드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국회에서의 개혁이 중요하지만 법률에 의거하지 않은 행정부 규제도 많습니다. 앞으로 행정부 규제 개혁에 꼭 성공해서 우리 경제가 제대로 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또 2030년, 2050년은 기후변화 문제에서는 하나의 기점이 됩니다. 2050년이면 전 지구에 탄산가스 배출량과 나무 및 바다의 탄산가스 흡수량이 같아야 합니다. 기후변화 대응은 전 세계의 협력 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기후변화를 우리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미래 세대가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지 못하면 국민 경제, 세계 경제도 없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국내 경쟁만 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기업도, 공무원도, 노동조합도, 근로자들도 모두 세계와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젊은 세대들도 세계로 나간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김형오 전 국회의장 ▲1947년 경남 고성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경남대 정치학 박사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5선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18대 국회 전반기 의장 ▲부산대 사회과학연구원 석좌교수 ■한덕수 전 국무총리 ▲1949년 전북 전주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美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행시8기 ▲특허청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주미대사 ▲한국무역협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 [글로벌 시대] 전쟁에서 평화로, 진먼다오/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전쟁에서 평화로, 진먼다오/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며칠 전 중국 샤먼(厦門)을 다녀왔다. 중국 대륙의 남쪽 푸젠(福建)성 샤먼은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영국과의 난징(南京)조약에 따라 일찍부터 서양 문물이 유입되었고,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남태평양을 바라보는 깨끗한 자연 환경과 따뜻한 기후조건으로 중국에서도 주거 환경이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샤먼에서 배를 타고 약 30분만 가면 작은 섬 진먼다오(門島)에 도착한다. 대륙 땅이 아닌 대만의 영토로, 1949년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毛澤東)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밀려나면서도 ‘죽음으로 사수하라’는 강한 의지로 지켜낸 섬이다. 1958년 중국은 다시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여 진먼다오를 공격하였다. 44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중국은 무려 47만발의 포탄을 쏘아대며, 턱밑에서 호시탐탐 중원 회복을 노리는 장제스의 진먼다오를 맹폭하였다. 그러나 처절하고 끈질긴 저항에 중국도 이 섬을 포기하였다. 이후 장제스는 진먼다오에 여러 대피소와 지하 방공호를 건설하여 본토 회복의 전진기지, 대륙 반공의 요새를 구축하였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兩岸) 관계를 논할 때 늘 푸젠성과 진먼다오의 팽팽한 대치가 연상되는 이유다. 이번에 들어가 본 지하 방공호는 단순한 땅굴이 아니었다. 식량 보급과 생활이 가능한 지하 도시였고, 특히 군함을 타고 바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든 자이산(翟山) 갱도의 시설은 상상 이상이었다. 방공호 입구에는 장제스가 직접 쓴 물망재거(勿忘在莒·거에 있던 때를 잊지 말라) 글귀가 있다. ‘물망재거’는 사기 전단열전(田單列傳)에 나오는 말로, 전국시대 연(燕)나라에 패한 제(齊)나라가 힘들게 산둥(山東) 지방의 거로 피신한 후에 전단을 내세워 다시 나라를 되찾는다는 고사이다. 장제스도 아마 제나라처럼 언젠가는 다시 본토를 수복하겠다는 염원을 담아 이 성어를 모토로 삼은 것이다. 또 장제스는 진먼다오에서 대륙이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거광루(莒光樓)를 세워 한시라도 대륙 회복의 염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60년 전의 장제스를 떠올리며 거광루에 올랐지만 이미 진먼다오는 평화의 땅이 되어 있었다. 1986년부터 대만인들의 중국 본토 친지방문이 허용되었고, 2001년엔 대륙과 진먼다오 사이에 통항·통상·통우의 3통이 시작되어 진먼다오는 이제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명주(名酒)로 꼽히는 진먼 고량주와 포탄으로 날아온 쇠를 녹여 만든 포탄 나이프는 유명 기념품이 됐을 정도다. 대륙과 대만의 정치적 통일은 요원해 보이지만, 이미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사회 문화적 통일은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달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분단 66년 만에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우리는 한 핏줄’을 외친 만찬에서 두 정상은 57도 진먼 고량주를 함께 마셨다. 이 술은 중국이 포격을 중단한 1990년 9월 27일을 기념하여 당시 가오화주(高華柱) 대만 국방부장이 만들어 소장했던 것이다. 정치적 합의문 발표는 없었지만, 양안의 평화를 상징하는 고량주로 두 정상은 미래를 약속한 셈이다. 다음달인 2016년 1월 대만 총통 선거가 있다. 현재 국민당 후보가 아닌 야당 민진당의 여성 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의 당선이 확실해 보인다. 차이잉원이 주장하는 양안 관계의 3대 원칙인 ‘유(有)소통, 부(不)도발, 의외의 일이 없을 것’이란 말대로 중국과 대만의 평화가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 빠르다, 빠르다… 中 고속철 ‘굴기’

    빠르다, 빠르다… 中 고속철 ‘굴기’

    ‘중국 개혁 개방의 총지휘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부총리였던 1978년 10월 일본을 방문해 신칸센을 탔다. 일본 측 인사가 시속 240㎞인데 느낌이 어떠냐고 묻자 “바람처럼 빠르다. 그런데 이런 기차가 일본에 왜 필요한가”라고 답했다. 고속철은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나 필요할 것 같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덩샤오핑의 신칸센 탑승 경험은 중국이 고속철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으나, 그 후 20년이 흐른 1998년에야 ‘철도 속도 제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7년간의 노력에도 기차의 시속은 140㎞에 머물렀다. 결국 2004년에 독자 개발을 포기하고 일본, 독일, 프랑스 등 고속철 선진국에 손을 내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의 ‘고속철 굴기(?起)’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11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싸고, 빠른 고속철을 건설하는 국가가 됐다. 도대체 중국의 무슨 힘이 고속철 선진국을 추월하는 굴기를 가능하게 했을까. ●한 해 1500량 생산… 작년 매출 5조 5000억원 11일 중국 지린성 정부가 서울신문 등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창춘(長春)궤도객차유한공사의 고속철 열차 공장을 공개했다. 여의도 면적의 1.7배(490만㎡)에 이르는 거대한 공장에 들어서자 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전 세계 고속철 시장의 49%를 석권하고 있는 국유기업 중처(中車)집단의 자회사로 ‘허셰(和諧·조화로움)호’로 불리는 중국의 고속열차를 한 해에 1500량씩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303억 위안(약 5조 5000억원)이었다. 중국 고속열차의 40%가 드넓은 이 동토에 세워진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모방 공장’ 아닌 고부가 첨단산업 급변하는 中 공장 내부에선 쇠를 깎는 굉음과 최첨단 전자 장비 그리고 숙련 노동자들의 민첩한 손놀림이 어우러져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비행기 격납고를 연상케 하는 규모의 개별 공장마다 열차 70량이 한꺼번에 조립되고 있었다. 1954년 철도부 직속으로 설립된 이 공장에서는 1만 8000여명의 노동자와 1200여명의 연구진이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자부심도 대단했다. 류보(劉波) 기업문화부장은 “전국 각지에 1만 7000㎞를 깔아 본 경험과 선진국 기업들과 경쟁하며 키운 기술력 덕택에 이젠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중국 고속철이 선택받을 정도로 성장했다”면서 “가격 경쟁력에서는 우리가 일본, 유럽에 앞선다”고 말했다. 조잡한 제품을 모방하던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고부가 가치의 첨단산업으로 급변하는 중국의 바로 그 모습이었다. ●“7년 만에 전국 1만 7000㎞ 깔아… 경험 축적” 실제로 중국의 차량 경쟁력은 일본과 독일을 위협하고 있다. 기술력의 상징인 최고 속도에서도 지난해 시속 605㎞ 시험 운행에 성공해 세계 최고 기록을 깼다. 그동안 세계 1위는 프랑스가 2007년에 세운 574.8㎞였다. 한국의 최고 기록은 ‘해무’가 세운 시속 421㎞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열차의 수명은 30년 이상이며 최고 속도에서도 소음이 65dB을 넘지 않는다. 달리는 열차에서도 와이파이가 가능하며 2521개의 센서 카메라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달리는 상황에서도 지진을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좌석 사이 공간이 3.36m에 이르고 높이가 4.05m나 돼 다른 국가들의 고속철보다 넓고 편안하다. ‘일본 기술을 추월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기술 담당 매니저인 왕레이(王雷)는 “각국이 중점을 두는 기술이 달라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면서 “세계 유수의 메이커들은 모두 우리의 친구이자 경쟁자”라고 말했다. ●자국 고속철, 세계 표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 돌이켜 보면 중국의 고속철 전략은 치밀하고 대담했다. 우선 선진국에 시장을 내어주는 대신 기술을 받아들여 자체 제작 능력을 갖췄다. 이후 거대한 자국 시장에서 건설 노하우를 축적해 아프리카 등 우호적인 개발도상국에 차량을 수출했다. 차량 수출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차량과 빠른 건설이라는 ‘결합 상품’을 무기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더 나아가 자국의 고속철을 세계 철도기술 표준으로 만들어 한 해 900억 유로(약 250조원)에 이르는 세계 시장을 장악하려고 한다. 특히 초기의 시장과 기술의 맞교환 전략이 주효했다. 신칸센(일본)·이체(독일)·테제베(프랑스) 등은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술 이전 경쟁’을 벌였고 중국은 기술을 빠르게 소화했다. 이렇게 축적한 기술로 중국은 2008년 베이징~톈진 구간을 처음으로 개통한 뒤 7년 만에 총연장 1만 7000㎞의 고속철을 깔았다. 전 세계 고속철의 60%에 해당한다. 풍부한 시공 경험은 공기(工期) 단축을 가져왔고 값싼 노동력은 공사비 절감으로 이어졌다. 건설 비용은 ㎞당 8700만~1억 2900만 위안(약 160억~230억원)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3분의2 수준에 불과하다. 공기도 유럽이나 미국의 4분의3 수준이다. 8000㎞ 길이의 고속철로를 6년이면 완성할 수 있어 ‘차이나 스피드’란 말이 회자될 정도다. 특히 중국은 다양한 지질과 기후라는 악조건도 기술 향상의 밑거름으로 활용했다. 하얼빈~다롄 고속철은 세계 최초로 영하 40도부터 영상 40도까지 80도에 이르는 기온 차를 극복하도록 설계됐다. 지난해 12월 개통된 우루무치~란저우 구간에는 해발 3607m, 길이 16.3㎞의 고산 터널이 포함돼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풍부한 운영 경험을 쌓은 중국 고속철은 이미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터키에 고속철도 차량을 수출했고 올해 6월엔 러시아의 첫 고속철도인 모스크바~카잔 고속철도 사업을 따냈다. 중·일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반둥 간 150㎞ 고속철 공사도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 지난 9월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일본이 눈독 들이던 미국 라스베이거스~로스앤젤레스 간 370㎞ 고속철도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해 고속철을 포함한 중국의 철도 차량 수출액은 267억 7000만 위안(약 5조원)이며 해외 시장이 80여개국에 이른다. 중국은 시 주석의 신(新)실크로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고속철 네트워크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09년 고속철 해외진출 전략을 공식 발표하면서 유라시아 고속철, 중앙아시아 고속철, 범아시아 고속철 등 3개 노선의 건설을 전략적으로 추진해 왔다. 글로벌 고속철 네트워크 건설을 통해 석탄, 철광석 등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고 주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다. 글 사진 창춘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트라우마 이후의 삶(맹정현 지음, 책담 펴냄) 트라우마는 각자가 갖고 있는 통념과 믿음이 해체되는 순간에 출현하는 일종의 균열이다. 많은 이들은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다. 저자는 이 균열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트라우마를 입으면 어떤 증상이 발생하는지, 왜 그 고통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트라우마 이후의 삶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란 단순한 생존이나 고통의 해소가 아니라 삶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가시스템의 결핍을 각인시켜 준 세월호 참사를 계기 삼아 정신분석학적 성찰을 꾀했다. 표지에 가득한 물방울은 책 자체가 갖는 치유와 위로의 성격을 보여 준다. 156쪽. 1만 2000원. 녹색고전 시리즈 1~3(김욱동 지음, 비채 펴냄) “왜 인간이 만든 것을 파괴하면 반달리즘이라고 부르고, 자연이 창조한 것을 파괴하면 진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이는 미국의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에드 베글리 주니어가 남긴 명언이다. 생태문학자인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십수년에 걸친 자신의 활동과 사상을 고전 소개의 형식을 빌려 정리했다. ‘삼국유사’, ‘호질’ 등 한국의 고전 58편과 ‘논어’, ‘도덕경’ 등 생태의 가치를 담은 동양 고전 42편, ‘구약성서’, ‘탈무드’, ‘침묵의 봄’ 등 서양 고전 47편 등을 총망라했다. 단순한 책 소개를 뛰어넘어 생태학과 문학을 아우르는 김 명예교수의 융합적 지식, 지혜, 성찰이 돋보인다. 절대적 위기에 놓인 지구 환경에 대한 실천적 성찰, 자연친화적 삶의 방식을 친절히 설명해 준다. 각권 350쪽. 각권 1만 3000원.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조경란 지음, 책세상 펴냄) 공자와 맹자로 상징되는 전통철학에 가려 중국의 현대사상은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돼 있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봉건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요소들이 치열하게 쟁투를 벌이는 과정을 근현대 중국 지성의 라이벌 구도로 정리했다.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량치차오와 삼민주의를 역설한 공화주의자, 중국의 국부 쑨원을 비교하며 둘의 쟁점과 지향점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마오쩌둥과 실천적 유학자로 그에 맞섰던 량수밍,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서 시대의 격랑에 중심을 잡아 준 저우언라이와 자본주의적 방법을 도입한 덩샤오핑 등을 맞세웠다. 전통과 근대, 현대로 넘어가는 중국 사상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92쪽. 1만 8000원.
  • 2박 3일 광저우~홍콩 크루즈 여행

    2박 3일 광저우~홍콩 크루즈 여행

    #널 만나기 전 거리는 130㎞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면 이상한 버릇이 생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에 만들어진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1994)에서 ‘경찰 223’은 5월 1일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은다. 사랑이 돌아올 때까지. ‘그는, 그녀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사랑에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 후로 적고 싶다’는 다소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대사와 함께. 왜 하필 어깨 위에 한 줄기 햇빛이 내려앉기도 전에 일찍 길을 나설 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오전 9시 50분에 탄 색동 비행기는 3시간 30분을 훌쩍 넘겨 반팔을 입어도 좋은 11월의 중국 선전(深?)공항에 몸을 내려놓았다. 중국 국내선 공항 중에 가장 큰, 이 무슨 우주선 모양의 공항 건물을 빠져 나오자 가이드가 주저리주저리 경제특구 선전을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에 따라 가장 먼저 중국에서 경제특구로 지정됐고 30년도 안 돼 인구가 1000만명으로 늘었다는 사설과 함께 버스기사들이 1분이 멀다 하고 경적을 빽빽 울린다는 생뚱맞는 얘기였다. 승용차가 끼어들기를 하다가 사고가 나도 버스 책임이 70%라서 보험료가 무서워 그 놈의 설잠을 깨우는 경적을 울린다는 것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20여분간 기사는 참 열심히도 경적을 울려 댔다. 여행은 항상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이 누구나 한번쯤 ‘심쿵’하는 크루즈 여행이 아닌가. 그리고 항로가 하필 전 세계적으로 핫이슈인 분쟁 해역 남중국해를 끼고 있다. 절묘한 타이밍. 설렘이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게다가 의사 소통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지 투어버스는 우릴 기다리며 정박해 있는 크루즈가 있는 항구로 가는 대신 제3의 갑문을 헤맸다. 배가 출발하기 1시간 전까지 우린 광저우 난사항의 어디쯤에서 뱅뱅 맴돌았고, 기름때 묻은 채 노을보다 더 붉게 귀가하는 오토바이족들을 만날 때에서야 크루즈를 간신히 만났다. 어쩔 것인가. 이런 돌발 상황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일부분인 것을. 그 붕 뜬 시간 때문에 오히려 여행이 좀 더 너그러워졌다. 크루즈 여행은 황혼에 접어든 노부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그 황혼처럼 크루즈에선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일상도 멈춘다. 정치마저도 멈춘다. 그 속에선 분쟁도 멈추고 평화만 있을 뿐이다. 중국 공안의 다소 까다로운 검색 시간마저 안전을 더욱 약속하는 듯도 했다. 스타크루즈 버고호는 마치 타이타닉을 연상시킬 만큼 거대했다. 7만 6800t급으로 13층 높이였다. 승객은 1870명을 태울 수 있고 승무원 수는 900명이다. 총 객실 수는 935개. 움직이는 호텔이라 생각하면 틀리지 않다. 광저우에서 홍콩까지 130㎞를 아주 천천히 항해했다. 이 배의 선장보다 더 끗발 있는 부사장 마이클 고가 말하듯 배에선 여행을 방해하는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널 만난 후 거리는 0.13m 움직이는 호텔 버고호는 호텔 객실이 부럽지 않다. 삼시 세끼 내내 입이 호강한다. 거위발부터 랍스터, 살살 녹는 스테이크까지 나오는 코스 요리는 수준급이다. 저녁엔 세계의 음식이 즐비한 가운데 바비큐 파티가 기다린다. 그것도 홍콩의 야경을 풍경 삼아서. 어디 그뿐인가. 8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리도극장에선 세계적인 공연이 펼쳐진다. 이날은 ‘언더 더 시’, 인어공주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요리 전문 레스토랑이 있는 7, 8층에서, 커플끼리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12층 선상 카페에서 콘서트를 즐기며 맥주 한잔하면 더할 나위 없다. 물론 거기엔 수영장, 어린이 풀장, 스파, 골프연습장까지 갖추고 있어 뻐근한 근육을 풀 수도 있다. 돈 많은 중국인들은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며 밤을 지새우고, 조금은 ‘부비부비’하고 싶은 젊은 커플들은, 혹은 어떤 설레는 만남을 기다리는 솔로는 댄스파티에서 광란의 춤을 추며 날을 새워도 흉 보지 않는다. 이곳에선 언어도 피부도 하나가 된다. 한배를 탔다는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스타크루즈는 원래 홍콩에서 베트남 하롱베이, 다낭, 마카오를 끼고 주로 돌았다. 소문엔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중국인들이 세계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중국풍을 배제했다는 얘기다. 고마운 것은 울렁증 심한데도 멀미가 없다. 망망대해에서 배는 멈춘 듯 움직였다. 단 한 번의 출렁임도 없이. 홍콩 빅토리아 항구에 정박한 배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일행은 배가 쉬는 동안 홍콩에서 가장 높은 건물, 국제무역센터(ICC) 스카이 100, 그 꼭대기에서 아찔한 풍경에 반했다. 세계에서 7번째 높은 빌딩. 빅토리아 항구뿐 아니라 홍콩 전경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한 풍경. 운 좋게도 이날은 빌딩 사이로 무지개가 피어 오르는 보기 드문 광경까지 목격했다. 특별한 선물이었다. 비가 왔던가. 그 무지개는 문득 작년 9월 말부터 12월까지 있었던 우산혁명을 떠올리게 했다. 행정장관 직선제 선출을 하면서 친중 성향의 후보만 추천하는 바람에 반발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버고호는 내년 1월 3일부터 난사에서 이곳 홍콩을 2박 3일 일정으로 항해한다. 어쩌면 이 버고호가 새로 취항하는 노선을 통해 홍콩과 중국을 좀 더 하나로 묶어 줄 것 같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버고호. 중경삼림의 시그널처럼 ‘언젠가는 둘을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할 지 모른다.’ 130㎞가 0.13m만큼 가까워진 느낌이다. 2박3일의 마지막 밤은 크루즈 여행의 백미를 선사했다. 홍콩 야경…. 빅토리아 항구를 빠져나올 때 홍콩의 밤은 정말 낮보다 아름다웠다. 타이타닉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대사가 야경의 자막처럼 오버랩됐다. 이 배에 승선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너,를 만났으니까. 버고호여 안녕. 글 사진 광저우·홍콩 강동삼 기자 kangtong@seoul.co.kr ■여행수첩 >>스타크루즈 버고호 일정은 크게 두 가지다. 매주 금요일 난사항을 출발해 홍콩에 기항하는 2박 일정과 일요일 출발해 베트남 하롱베이, 다낭을 경유하는 5박 일정이다. 선내 전압은 220V. 한국인 승무원도 상주한다. (02)733-9033. >>국제상업센터(ICC)에 있는 홍콩 최고층 빌딩인 ‘스카이 100’ 전망대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약 393m의 전망대로 홍콩섬, 주룽반도, 신계지구가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분이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홍콩에서 가장 빠른 더블데크 엘리베이터가 있다. 홍콩지하철(MTR) 주룽역에 있으며 홍콩국제공항에서 공항철도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입장료는 어른 168홍콩달러(약 2만 5000원), 어린이(11세 미만)와 65세 이상 노인은 118달러(약 1만 7500원).
  • [World 특파원 블로그] 톈안먼 사태의 도화선 후야오방의 ‘반쪽 복권’

    [World 특파원 블로그] 톈안먼 사태의 도화선 후야오방의 ‘반쪽 복권’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의해 복권됐다. 시 주석은 지난 20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후야오방 탄신 100주년 좌담회’를 주재하고 그를 “역사책에 길이 빛날 총서기”로 규정했다. 후야오방은 중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상과 정책은 무조건 옳다’라는 ‘양개범시’(兩個凡是)론을 비판하며 문화대혁명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웠다. 문혁 시절 쫓겨났던 당 간부와 학자 355만명을 복권시켰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그가 추종했던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총서기직을 박탈당했다. 1989년 4월 갑작스러운 사망은 6·4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이처럼 후야오방은 현대사의 비극에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를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이번 복권도 총서기 시절까지로 한정됐다. 그의 죽음이 몰고 온 정국에 대해 공산당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지난 22일 후야오방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총서기에 올랐을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사진이 나란히 나온 1982년 인민일보 기사를 방영했는데, 자오쯔양(趙紫陽)의 얼굴을 빼고 내보냈다. 자오쯔양은 1989년 발생한 톈안먼 사태 때 유혈 진압에 반대해 숙청된 후야오방의 뒤를 이은 총서기다. BBC는 “시 주석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후야오방의 개혁·개방, 반부패 업적만 복권됐다”며 “공정, 민주, 자유가 충만한 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그의 진정한 가치는 조명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반쪽 복권’에 그쳤을지라도 중국 현대사 해석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은 사실이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후야오방이 역사책에 등장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이 불러온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좌파들이 “후야오방의 자본계급 자유화는 당과 국가에 큰 화를 불렀다”며 반발하자 자유파가 반론에 나서는 모습에서 ‘역사의 단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야오방 복권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이 톈안먼의 진실을 응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한명은 추모 한명은 금기… 中개혁가 둘, 엇갈린 운명

    한명은 추모 한명은 금기… 中개혁가 둘, 엇갈린 운명

    덩샤오핑(鄧小平)은 1982년 개국 원로 172명을 한꺼번에 퇴진시켰다. 자신이 후계자로 지목한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의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다. 후야오방은 공산당 총서기에 올랐고 국무원 총리였던 자오쯔양은 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해 리펑(李鵬) 등 보수파를 제압하고 덩의 개혁·개방 노선을 차곡차곡 실천했다. 두 개혁파 정치인은 정치 분야에서도 ‘자유의 공간’을 허용하려고 했다. 1987년 동유럽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중국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그 공간에서 점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덩의 머릿속에는 정치개혁은 없었다. 더욱이 문화대혁명 시절 대학생 홍위병들에 의해 아들이 반신불수가 된 악몽을 잊지 못하던 덩에게 대학생 시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덩은 시위 진압에 미온적인 후야오방을 총서기에서 끌어내리고 대신 자오쯔양을 앉혔다. 그러나 후야오방이 1989년 4월 심장병으로 사망하자 학생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억울하게 실각한 총서기에 대한 추모 열기는 마침내 6월 톈안먼 시위로 폭발했다. 자오쯔양은 계엄령과 유혈 진압을 반대하다가 실각한 뒤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오는 20일은 후야오방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고, 지난달 17일은 자오쯔양 탄생 96주년이었다. 두 ‘비운의 개혁가’를 기억하는 중국의 태도는 극과 극이다.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기념행사는 넘쳐나고 있다. 20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공식 기념식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참석할 가능성도 있다. 23일에는 후 전 총서기의 고향인 후난성 류양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린다. 공산당 간부양성기관인 중앙당교는 지난 16일 ‘후야오방 동지 탄생 100주년 기념 좌담회’를 개최했다. 그의 생전 강연을 정리한 책이 출판됐고 생애를 다룬 영화 ‘청춘 격동의 시대’도 촬영을 마쳤다. 중국 공산당 신문망은 올해 기억해야 할 4대 기념일로 쭌의(遵義)회의 80주년, 천윈(陳雲) 탄생 110주년, 항일전쟁 승전 70주년과 함께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을 꼽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후 전 총서기가 공식적으로 ‘복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자오쯔양은 여전히 ‘금기어’이다. 2005년 1월 자오 전 총서기가 사망했을 때 신화통신은 “당과 인민 사업에 공헌했다. 1989년 정치적 풍파 속에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평가했다. 이후 그 어떤 평가도 없다. 올해 1월 사망 10주기 및 지난달 17일 탄생 96주년 당시에도 중국 언론에서 그의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자오쯔양의 유골은 10년째 베이징 자택에 안치돼 있다. 당국은 혁명열사 묘역에 안장할 것을 주장하나 유가족은 당국이 통제하는 묘역에 안장하면 자유로운 추모가 이뤄질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 사후에 다른 운명에 처한 결정적 원인은 톈안먼 사태이다. 자오 전 총서기를 재평가하려면 톈안먼 유혈 진압을 꺼내지 않을 수 없지만, 후 전 총서기는 사망 전까지의 업적만 조명해도 된다. 17일 중국 관영매체들이 쏟아낸 후야오방 추모 기사는 모두 청렴결백한 품성과 반부패 투쟁, 시 주석 가문과의 인연을 부각시키는 것일 뿐 그가 추구했던 정치개혁이나 민주화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이 톈안먼 사태를 응시하지 않는 한 후야오방에 대한 복권도 ‘반쪽’에 불과하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중국판 머독 꿈꾸는 마윈

    중국판 머독 꿈꾸는 마윈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홍콩의 유력 영자지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SCMP는 정확한 사실 보도와 중국에 비판적인 보도로 친중국 일색인 중화권 매체에서 독보적 권위를 인정받는 신문이다. 하지만 알리바바의 창립자이자 미디어 재벌을 꿈꾸는 마윈(馬雲) 회장은 중국 공산당과의 끈끈한 유대로 사업을 키웠다. 알리바바가 SCMP 인수에 성공한다면 단순한 미디어 산업 재편을 넘어 중국을 둘러싼 여론 형성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10일 중국 영문 일간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알리바바는 SCMP를 발간하는 SCMP그룹과 투자 협의에 나섰다. 알리바바의 SCMP 인수설은 SCMP가 내년 1월부터 왕샹웨이(王向偉) 편집장을 교체하고 태미 탐(譚衛兒) 부편집장이 뒤를 잇도록 할 것이라는 인사 소식이 전해진 뒤 나왔다. SCMP와 마윈은 ‘악연’이 있다. 마윈은 2013년 SCMP와의 인터뷰에서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와 관련해 덩샤오핑(鄧小平)의 시위 진압을 “가장 정확한 결정이었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기사는 곧 삭제됐으며 해당 기자도 편집자 승인 없이 기사를 수정했다는 이유로 업무 정지 처분을 받은 뒤 사직했다. 마윈은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의 문제”라며 화살을 대학생 시위대에 돌리기도 했다. 구글이 중국에서 철수할 때도 “중국에서 사업을 잘하려면 당국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SCMP 외에도 중국 내 2대 온라인 뉴스포털인 신랑망(新浪網·시나닷컴)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사용자가 3억명에 이르는 신랑망은 뉴스포털과 함께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운영하고 있다. 또 중국 영화사 차이나비전미디어그룹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샤미를 인수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중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유쿠투더우(優酷土豆)의 지분도 전량 매입했다. 중국 최대 경제신문인 제일재경일보도 알리바바의 품에 안겼다. 전자상거래를 넘어 미디어와 콘텐츠를 장악하려는 마윈의 야심이 현실화되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열린세상] 국가의 위상과 외교력의 간극/이호령 한국 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열린세상] 국가의 위상과 외교력의 간극/이호령 한국 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최근 남중국해 중국의 인공섬을 둘러싼 미·중 간의 대립과 아세안(ASEAN) 확대국방장관회의에서 보인 아세안 국가들의 분열과 미·중 간의 입장 차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관을 가진 홉스의 현실주의 돋보기로 보는 21세기 같아 보인다. 일본 안보법제 통과 이후 일본 자위대의 작전범위 등을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과 47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종료 후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국제법에 근거한 동맹론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시기와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起)에 이은 시진핑의 신형대국론에 기초한 중국몽은 지난 9월 대규모의 전승 70주년 열병식을 통해 가늠해 보면 경제굴기와 군사굴기를 통해 꿈의 실현을 더 적극적으로 추구해 나갈 것으로 예측되는 한편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중 간 이해 충돌의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시진핑 체제는 5년 연속 국방비를 두 자릿수로 대폭 증강해 최첨단 무기 개발 및 군사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을 완료해 이에 대한 12해리 영해권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또 남중국해에서 가상 적국을 가정한 실탄훈련 실시는 중국과 영토 분쟁 상태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아시아 중시 정책을 내세우며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는 해양 세력인 미국의 대립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러한 녹록지 않은 국제 정세는 한국 외교에 대한 국내외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압박의 기저에는 두 가지 개념이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절대 개념의 안경을 끼고 미·중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권’의 과민 반응이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우리 국방의 직접적 위협에 대해 군사적 대응을 같이해 온 60년 넘는 동맹 국가로 포괄적 전략 동맹관계를 심화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중국은 바로 이웃하고 있는 상호 의존도가 높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관계의 내실화를 발전시키고자 노력을 해 오고 있는 국가다. 그런데 이 중 어느 국가인가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외교정책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급급한 약소국의 편승 외교에 불과하다. 우리는 2014년 국력이 주요20개국(G20) 중 9위를, 2015년 포브스의 글로벌 2000개 기업의 보유 숫자가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다음인 5위를 차지하는 중견 국가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의식에는 어느 국가에 편승해야만 이익을 보다 높일 수 있다는 사고가 여전히 잔존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중국 경사론’에 대한 우려와 ‘눈치 보기’ 외교 등의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 일본 안보법제 통과에 따라 유사시 한반도 불안정 사태에 따른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놓고 사전에 우리 동의를 얻어야 하는 주권 범위에 대해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일본 방위상이 남한 지역으로 제한한다는 발언과 이어 47차 한·미 SCM에서 주권 범위는 국제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미 국방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가중되는 핵위협과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어떻게 한·미·일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보다는 ‘주권’의 해석 범위를 놓고 3자 간의 균열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련의 이러한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국력과 외교력 간의 간극이 여전히 크지 않나 싶다. 우리의 힘을 과대 평가해 우를 범하는 것도 문제다. 스스로 과소 평가해 실기를 범하지 않는지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국익을 보호하고 증대시키려면 외교적 수사보다는 정공법이 때로는 더 효과적이고 필요하다. 우리가 상대방으로부터 원하는 정답을 듣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정답을 구하고자 힘과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21세기는 손실보다 이익의 파이를 키우고자 협력을 추구하는 논제로섬 게임의 장이다. 제로섬 게임의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국가의 위상에 맞게 당당하면서도 섬세한 외교를 펼쳐 나가는 데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씨줄날줄] 정화 & 장보고/구본영 논설고문

    정화(鄭和)는 장구한 중국사에서 수수께끼 같은 인물 중의 하나다. 명나라 영락제의 환관 출신 제독인 그는 7차례나 대양 원정(1405∼1433년)에 나섰다. 색목인, 즉 중동계 혈통인 그가 이끈 대선단은 많을 때는 240여척의 배에 승선 인원이 3만명에 육박했다. 선단 중의 일부가 콜럼버스보다 먼저 신대륙에 도달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전해진다. 다만 ‘정화함대’가 동남아~인도~동아프리카를 잇는 바닷길을 연 건 과장 없는 사실(史實)이다. 이를 통해 명은 시쳇말로 ‘자원무역’의 헤게모니를 쥐었다. 하긴 정화보다 앞서 통일신라엔 장보고가 있었다. 장보고 역시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을 소탕하면서 갖게 된 제해권을 토대로 동북아시아의 해상 무역을 독점하지 않았던가. 두 인물이 진취적 자세라는 키워드를 공유한 만큼 그들의 몰락 이후 대제국 명이나 신라가 모두 쇠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국가의 부침이 ‘먼바다로 진출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로 갈리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비일비재했다. 정화함대 해체 이후 중국의 600여년은 굴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미국 해군대학에서 전쟁사를 강의한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은 그럼 점에 주목했다. 지금은 고전이 된, 1889년 출간한 명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서다. 머핸은 해외 해군기지와 파나마 운하 건설, 하와이 합병 등을 제안해 ‘팍스 아메리카나’의 초석을 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의 해양굴기(海洋?起)가 본격화하는가. 마오쩌둥 시대까지 대륙의 울타리 안에서 자족하던 중국이었다. “중국의 영토는 둥사군도, 시사군도, 난사군도를 비롯해 인근의 모든 도서를 포함한다”는 법령을 공포한 덩샤오핑 시대만 해도 은밀히 해양력을 키우는 듯했다. 시진핑 주석의 5세대 지도부는 대놓고 남중국해 제해권을 선포하려는 기세다. 필리핀·베트남 등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난사군도의 암초에 인공섬 건설을 강행하면서다. ‘섬을 점령하면 주변 바다는 그 나라 차지가 된다’는 머핸 식 전략을 답습하는 모양새다.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비등점을 향하는 느낌이다. 미국의 이지스구축함 래슨호가 중국 인공섬 주변 12해리 내로 진입하면서다. 중국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필리핀 등 주변국의 편에 서서 미국이 ‘자유항행권’을 명분으로 벌이는 무력시위다. 여기엔 우리도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 난사군도 경유 수송로로 해운 물동량의 30%, 원유 수송량의 90%를 실어 나르고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미·중 충돌 국면에서 우리의 외교적 입지가 넓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엔 “남중국해 분쟁이 국제 규범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청와대 관계자)는 어정쩡한 자세가 불가피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장보고와 같은 혜안을 갖고 우리의 해양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나이 들면서 알아야 할 약 이야기] 파킨슨병 치료제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할리우드 배우 로빈 윌리엄스. 이들의 공통점은 ‘파킨슨병’을 앓았다는 것이다. 파킨슨병은 치매, 뇌졸중과 더불어 노인 3대 질환으로 꼽히며 노령인구가 증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발병률 또한 늘어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질병통계자료에 따르면 2004년 3만 798명이던 파킨슨병 환자는 2013년 9만 2721명으로 10년 사이 3배 정도 급증했다. 파킨슨병 환자 중 약 5%만 유전성이며, 대부분은 뚜렷한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다.파킨슨병에 걸리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생성하는 세포가 점점 소멸해 움직임이 느려지고 떨림, 경직 등의 운동장애가 생긴다.파킨슨병은 몸을 움직일 때 장애가 발생하는 운동질환이며, 흔히 파킨슨병과 혼동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기억력과 판단력 등 인지기능은 떨어지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는 이상이 없는 병이다. 파킨슨병을 오래 앓는 환자에게 치매가 올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달리 힌트를 주면 기억을 되살려 낸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파킨슨병 치료제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도파민 제제다. 그러나 장기간 도파민 제제를 사용하면 합병증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몸이 움직이는 이상운동증이 올 수 있다. 이러면 치료 약물의 용량을 조절하거나, 뇌심부자극술이라는 수술적 치료방법을 쓰기도 한다. 도파민을 직접 투여하면 부작용이 크고, 혈액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해 뇌에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 이때 사용하는 게 ‘레보도파’라는 성분이다. 레보도파도 뇌 안으로는 복용량의 5% 정도밖에 들어가지 못해 우리 몸의 효소가 이 성분을 분해할 수 없도록 하는 약물을 함께 쓴다.레보도파 다음으로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약물은 브로모크립틴, 로피니롤, 프라미펙솔, 로티고틴 성분 등 도파민 효능제다. 레보도파보다 이상 운동증상을 덜 유발하긴 하나 혼동이나 환각을 잘 일으키고 하지 부종이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파킨슨병 환자라고 해서 증상이 같을 수는 없으므로 환자의 증상을 모두 고려해 약을 사용해야 한다.파킨슨병 치료제의 공통적인 부작용은 졸음 또는 갑작스러운 수면 유도, 저혈압, 병적인 도박, 성욕증가, 성행동 과잉, 충동구매, 대식증 또는 강박적 식사 등의 충동조절장애다.파킨슨병 치료제를 복용하는 동안 도파민 전달을 방해하는 약물은 가능한 한 복용하지 않는 게 좋다. 레보도파 성분이 함유된 제제를 복용할 때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효과가 감소할 수 있으며, 레보도파, 엔타카폰 함유 제제와 철분 제제를 복용할 때는 2~3시간 간격을 두고 복용하도록 한다.파킨슨병은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 보니 절망적인 마음에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찾는 경향이 있다. 병을 없애거나 진행을 효과적으로 막을 치료법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파킨슨병 치료제가 계속 개발되면서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은 개선되고 있다. 파킨슨병도 꾸준히 치료하면 나아질 수 있는 질환이다.■도움말 식품의약품안전처
  • 26~29일 18기 5중전회 개회… 2가지 관전 포인트

    중국 공산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 5중전회)가 오는 26∼29일 베이징 징시(京西)호텔에서 열린다. 징시호텔은 인민해방군 소유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는 중국에서 가장 은밀하고 안전한 곳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노선이 채택된 1978년 11기 3중전회를 비롯해 중국의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중전회’는 대부분 이 호텔에서 열렸다. 통상 총서기의 임기 중반에 열리는 5중전회는 경제 정책을 점검하는 다소 느슨한 회의였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침체기로 접어든 경제에 돌파구를 열어줄 청사진을 결정해야 하며, 반부패 투쟁의 고삐를 죄는 한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의 권력도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선 우선 내년부터 2020년까지 적용될 ‘국민경제와 사회발전을 위한 제13차 5개년 계획’(13·5규획)을 확정해야 한다. 5개년 계획은 중국이 여전히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유일한 근거이다. 특히 13·5 규획은 덩샤오핑이 2021년까지 완성하자고 한 샤오캉(小康·복지를 누리는 중진국 상태) 사회 건설을 위한 마지막 마스터플랜이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3일 5중전회를 전망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국유기업 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향후 5년의 평균 경제성장률 목표를 6.5%로 잡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지만, ‘12·5규획’ 때 정한 7.0%를 고수할 가능성도 있다. 정보기술(IT) 및 서비스 산업 중심의 성장동력 전환, 내수 중심의 시장 재편, 국유기업의 정비와 민영기업 강화, 육·해상 실크로드와 징진지(京津冀) 수도권 통합 프로젝트, 빈부격차 해소 및 환경오염 대책 등도 주요 의제이다. 반부패 이슈도 5중전회를 관통할 전망이다. 시 주석은 지난 12일 5중전회 개최 날짜를 확정하는 정치국 회의에서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주도한 ‘중국 공산당 청렴 준칙 개정안’과 ‘중국 공산당 기율 처벌 조례 개정안’을 승인해 5중전회에 회부했다. 두 개정안은 시 주석의 4대 노선 중 하나인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을 구체화한 것으로 법규보다 당 기율이 우선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법규 위반 여부가 불명확하더라도 기율에 위배되면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5중전회에서는 또 지난 7월 공직을 박탈당한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공작부장의 중앙위원 퇴출을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위원의 퇴출은 중전회에서 결정한다. 링 전 부장,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궈보슝(郭伯雄)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처벌된 ‘4대 호랑이’의 잔당 숙청도 발표될 수 있다. 시 주석이 이끄는 18기 들어 모두 18명의 중앙위원과 후보위원이 낙마했다. 이 중 지난해 4중전회에서 6명이 충원됐고, 나머지는 올해 채워진다. 양슝(楊雄) 상하이시 시장, 웨이훙(魏宏) 쓰촨성 성장 등 시 주석 측근이 중앙위원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용어 클릭]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中全會) 중국공산당은 5년마다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열어 임기 5년의 중앙위원 200여명을 선출해 중앙위원회를 구성하며, 매년 한두 차례의 전체회의를 소집하는데 이 회의를 줄여서 ‘중전회’라고 한다. 총서기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위원회는 공산당 최고 권력기구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2012년 가을에 출범한 공산당 제18기를 이끌고 있고, 올해 중전회는 18기의 다섯 번째 회의여서 ‘18기 5중전회’로 불린다.
  • ‘책’ 中 통치를 읽다

    ‘책’ 中 통치를 읽다

    중국 혁명을 이끈 마오쩌둥(毛澤東)과 류사오치(劉少奇)는 공산주의 이론의 양대 산맥이었다. 마오쩌둥이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류사오치 동지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하자 류사오치는 “하루라도 책을 놓으면 마오쩌둥 동지에게 뒤처진다”고 응수했다. 중국 지도자들에게 독서는 생활이자 통치 수단이었다. ●방미 기간 미국 저서 줄줄 읊은 시진핑 중국 인터넷 언론 무계신문망은 30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최근 방미 기간에 미국 작가들의 저서를 줄줄이 읊으며 독서 편력을 뽐낸 것을 계기로 역대 지도자들의 독서 스타일을 분석했다. 시 주석에게 독서는 중요한 외교술이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젊은 시절 미국 정치학의 고전인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와 토머스 페인의 ‘상식’ 등을 읽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러시아 방문에서는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작가 11명을 일일이 거론했고 프랑스에서는 볼테르, 사르트르, 몽테뉴의 철학을 논했다. 인도에서는 타고르의 시를, 쿠바에서는 호세 마르티의 시를 읊었다. 최근 서울대에는 시 주석이 기증한 1만여권으로 채워진 ‘시진핑 서재’가 생겼다. 시 주석은 지방 서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서 5권을 출간할 정도로 책과 가깝게 지낸다. ●고전으로 혁명 의식 가다듬은 마오 마오쩌둥은 고전을 읽으며 혁명 의식을 가다듬었다. 중국 역사를 망라한 ‘이십사사’(二十四史)에 직접 각주를 달아 91권으로 발간하는가 하면 ‘자치통감’을 17번 읽었다. ‘홍루몽’을 읽으며 계급투쟁의 역사를 생각했다. 혁명 시기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끼고 살았다. 장서 10만권을 남긴 마오쩌둥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평더화이(彭德懷)에게 “지식인에게 속지 않으려면 책을 읽으라”고 충고했다. ●독서할 때도 ‘흑묘백묘론’ 덩샤오핑 덩샤오핑(鄧小平)은 독서에서도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을 고집했다. 모두가 ‘자본론’을 가지고 씨름할 때 그는 ‘공산주의 ABC’와 같은 입문서를 읽었다. 덩샤오핑은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쓸모가 있어야 한다”며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무협 소설의 대가 진융(金庸)의 팬이었던 그는 1970년대 금서였던 진융의 작품을 몰래 읽었다고 회고했다. ●책벌레 장쩌민 고전 두루 섭렵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장쩌민(江澤民)도 책벌레였다. 부친은 매일 그에게 고전을 한 편씩 외우게 했다. 이공계 출신인 장쩌민은 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을 좋아하고 셰익스피어, 발자크, 톨스토이 등을 두루 섭렵해 ‘장 박사’로 불렸다. 영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독일어,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장쩌민은 자신의 문화적 소양을 외교와 내치에 활용했다. ●수재 후진타오 “읽지 않으면 낙오”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후진타오(胡錦濤)는 독서법을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칭화대 최고의 수재였던 그 역시 독서량이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주석 시절에는 정치국원들에게 “책을 읽지 않는 지도자는 반드시 낙오한다”며 독서를 독려했다. 2004년 러시아 청년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등 러시아 문학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 경제· 군사굴기에 이어 과학기술굴기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 경제· 군사굴기에 이어 과학기술굴기

     중국이 경제·군사굴기에 이어 과학기술굴기를 이루고 있다. 최근 위성 20개 운반 로켓 발사에 성공한 중국이 미국 고속철 수주하고 영국 원전기술을 수출하는 등 잇따라 첨단 과학기술 성과를 이룸으로써 기술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 중국 업체, 영국 44조원 규모 전력개선사업 주축 원전 건설 수주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은 영국 동부 지역에 들어설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앰버 러드 영국 에너지장관은 “중국 원전 기업들이 동부 에섹스 지역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담당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원전은 영국 정부가 추진중인 245억 파운드(약 44조 6000억원) 규모의 전력공급 개선 계획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중국의 원전이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는 첫 사례다. 원전 건설에는 중국의 원전업체 중광핵그룹(CGN), 중국핵공업그룹(CNNC)과 프랑스 국영 원전업체 EDF가 공동으로 참여한다. 러드 장관은 “중국이 그동안 영국 원전 건설에 참여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며 “영국이 원전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어 영국시장 진출이 중국 원전에 대한 국제 신인도를 제고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앞서 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라스베이거스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중국 국유 철도기업인 중국중철(中國中鐵)이 이끄는 컨소시엄은 엑스프레스웨스트엔터프라이즈와 합작사를 설립하고 미국 고속철 건설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320㎞에 이르는 이 구간은 내년 9월 공사에 착공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원전에 이어 고속철을 해외시장 진출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해 왔다. ● 러시아와 대형여객기 합작개발 추진... 음속 5배 고초음속 비행체 성공  중국은 20일 하나의 운반로켓에 20개의 소위성을 탑재한 창정(長征)6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 위성은 탑재한 20개의 작은 위성을 지구에서 524㎞ 떨어진 우주 궤도에 안착시키는 임무를 띠고 있다. 하나의 로켓에 이처럼많은 위성을 탑재하기는 창정 6호가 처음이다. 창정 6호는 29.3m 길이에 이륙 시 최대 103t의 중량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처음으로 액체산소등유를 사용하는 엔진으로 가동돼 오염원 배출이 없는 친환경 로켓이라고 신화통신은 설명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손잡고 대형 여객기 개발에 나섰다. 러시아 연합항공사의 유리 슬류사르 회장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항공엑스포에 참석해 중·러 대형 항공기 공동개발 계획을 밝히고 “계약을 통해 사업에 관한 각국의 책임과 이윤(배분)을 구체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슬류사르 회장은 “이 새로운 항공기는 (중국이 개발 중인 대형 여객기) C919와는 승객 수용 규모나 비행거리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며 “두 항공기는 서로 다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2008년부터 독자적으로 연구·개발해온 C919는 168좌석과 158좌석이 기본형이다. 항속거리는 4,075㎞다. 중·러가 공동 개발할 대형여객기의 좌석은 210∼350석으로 항속거리가 C919보다 훨씬 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은 음속의 5배가 넘는 속도를 내는 고초음속(高超音速) 비행체 발사 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항공공업집단 산하 중국항공신문망은 신형 고초음속 비행체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고초음속 시험비행 영역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뤘다고 지난 19일 전했다. 다만 비행 시기와 장소, 고도, 속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홍콩 명보는 고초음속이란 마하 5(시속 6180㎞) 이상을 의미하며, 1시간여 만에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 시애틀에 도달할 수 있는 속도라고 전했다. 대만 자유시보도 이 비행체의 비행 속도는 미군 정찰기 SR-71 블랙버드가 기록한 마하 3.2~3.5를 뛰어넘는 마하 5에 이른다고 전했다. SR-71은 지금까지 조종사가 탑승하는 항공기 중 최고 속도 기록을 갖고 있다. ● 덩샤오핑 ‘科敎興國’ 착수, 이공계 출신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기술투자 총력 중국이 과학기술굴기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국가의 전폭적 지지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은 기초과학 기술 투자에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6년 중국의 최고 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4인의 과학자들로부터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첨단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건의를 받았다. 이 4인의 과학자는 핵물리학자 왕간창, 중국 광학의 대부 왕다헝(王大珩), 자동제어학의 양자츠, 전자학의 천팡원(陳芳允)등 원로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의 제안에 덩샤오핑은 주저없이 결정을 내렸다. 과학기술 교육으로 국가를 발전시키겠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 전략이 싹을 틔운 것이다. 그해 국가적 역량을 첨단기술에 집중 투자하는 ′863 계획′이 시동됐고, 해외에서 교육받은 고급 과학인재들도 속속 귀국해 연구·개발(R&D)에 매진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들도 이공계 출신이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상하이자오퉁(上海交通)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은 칭화대(淸華)대 수리공정학과를 나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1979년 칭화대 공정화학과를 졸업한 이공계 출신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국무원 총리는 베이징 지질대학에서 지질학 석사를 받았다. 우방궈(吳邦國)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도 칭화대 무선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공정사(工程士·엔지니어) 치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공계 엔지니어 출신 관료들이 정부에 대거 포진해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中 섣부른 ‘근육 자랑’의 대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中 섣부른 ‘근육 자랑’의 대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인들은 말을 만드는 재주가 남다르다. 중국어뿐 아니라 외국어도 그 의미를 아주 적절하게 담아낸다. ‘코카콜라’(可口可), ‘까르푸’(家福), ‘이마트’(易買得)…. 소리와 뜻을 절묘하게 가차(假借)해 만든 성어(成語)다. 특히 네 자로 된 성어를 즐겨 쓴다. 네 자는 간결한 만큼 메시지를 명쾌하게 전달한다. 두 자로는 의미를 표현하기에 부족하고, 4자가 넘어가면 명료성에 한계가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곧잘 4자성어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곤 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경제전략 ‘흑묘백묘’(黑猫白猫)와 외교전략 ‘도광양회’(韜光養晦)가 가장 많이 회자된다. 1978년 개혁·개방을 천명한 중국은 ‘쥐만 잘 잡으면 좋다’는 흑묘백묘와 ‘몰래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를 기치로 내걸고 쉼없이 달려 주요 2개국(G2)으로 우뚝 섰다. 세계 최대의 인구(약 13억 5000만명)와 한반도의 44배에 이르는 거대한 국토(960만㎢)를 보유한 중국은 30년간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연평균 10.2%), 글로벌 2위의 경제 규모(2014년 기준 10조 3803억 달러),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국(1290억 달러), 최대 수출액(2조 3427억 달러)과 교역량(4조 3030억 달러), 최대 외환보유액(3조 8400억 달러), 최대 채권국(미국 채권 1조 3000억 달러), 최고의 다양한 제품 생산, 글로벌 2위의 국방 예산(1294억 달러) 등 무수한 세계 기록을 쏟아냈다. 자신감에 충만한 중국은 ‘근육 자랑’에 나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약한 상대를 서슴없이 혼내기도 한다. 한국이 자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하자 ‘핸드폰’을, 중국 선박을 나포한 일본에 ‘희토류’를, 반체제 인사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노르웨이에 ‘연어’를 무기로 항복을 받아 냈다. 이달 3일 치러진 전승절 행사는 그 절정이었다. 215억 위안(약 3조 8000억원)을 퍼부은 행사에 쿵징(空警) 조기경보통제기, 훙(紅)6K 폭격기, 젠(殲)11 전투기, 중국판 미사일방어(MD) 체계인 훙치(紅旗)09 등 지대공미사일, 둥펑(東風)21D 미사일 등을 선봬 경제에 이어 군사굴기까지 과시하는 등 대국굴기(大國?起)의 방점을 찍었다. 그렇지만 중국이 근육 자랑을 하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닐까. 함부로 발톱을 드러냈다간 역풍만 부를 따름이다. 경제굴기를 이뤘다곤 하나 중국 제품의 인지도는 여전히 낮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도 거의 없다. 미사일·우주개발·사이버전을 빼면 세계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군사적 영향력을 미치는 데 한계가 있다. 학문·영화·음악·예술품 등도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한다. 데이비드 샴보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중국을 이렇게 평가했다.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우며, 성내고 불만에 차 있으며, 이기적이고 반항적이며 고독한 강대국이다.” 중국이 힘자랑을 하지 못해 안달하지만 ‘덩치만 큰 어린이’일 뿐이다. 아직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외교전략을 기억해야 할 때다. “상황을 직시하고(靜觀察) 내부를 공고히 하며(穩住陣脚), 침착히 대처하되(沈着應付) 자세를 낮추고(善于守拙), 앞에 나서지 말되(決不當頭) 할 일은 한다(有所作爲).”khki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中, 경제 개발 ‘당근책’… 티베트·위구르인 안정 vs 저항 ‘갈림길’

    [글로벌 인사이트] 中, 경제 개발 ‘당근책’… 티베트·위구르인 안정 vs 저항 ‘갈림길’

    9월 1일은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편입돼 시짱(西藏) 자치구가 된 지 50주년 되는 날이었다. 10월 1일은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가 선포된 지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두 지역의 독립세력은 그동안 자치확대·분리·독립이라는 단계적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응징이라는 채찍과 경제 성장이라는 당근으로 두 ‘화약고’를 집요하게 관리했다. 시짱과 신장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봤다. ●분신으로 저항해 온 시짱, 멀어지는 독립의 꿈 지난 1일 시짱의 성도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 광장. 자치구 선포 5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열병식에 나선 군인들은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전직 국가주석과 시진핑(習近平) 현 주석의 대형 초상화를 들고 행진했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변경을 다스려야 하고, 변경을 다스리려면 먼저 시짱을 안정시켜야 한다”(治國必治邊, 治邊先穩藏)는 시 주석의 어록이 쓰인 대형 플래카드가 행사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기념식에 맞춰 저항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CTA)는 “지난 50년은 티베트 역사의 암흑기였다”는 성명서를 냈다. 쓰촨성의 한 라마교(티베트 불교) 스님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하다가 공안에 끌려갔다. 13세기 이후 중국과 영국의 영향을 번갈아 받아 오던 티베트는 1911년 신해혁명 이후 독립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신중국이 건설된 이듬해인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점령했다. 1959년 티베트 곳곳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봉기가 분출했고 진압 과정에서 13만명이 사망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이때 인도로 망명했다. 1965년 시짱 자치구로 공식 편입됐다. 2009년 이후에만 140여명이 분신하며 독립을 외쳤다. 중국의 시짱 관리는 치밀했다. 경제 개발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티베트 국내총생산(GDP)은 1965년 3억 2700만 위안에서 지난해 920억 8000만 위안으로 50년간 281배가 늘었다. 올해 티베트 관광 수입만 180억 위안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시짱의 한족은 800만명으로 티베트족 6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소수민족을 전통적인 생활터전에 남겨둔 채 한족을 이주시켜 소수민족 구성 비율을 낮추는 중국 특유의 소수민족 관리 방식 탓이다. 중국은 소수민족에 대입 가산점 부여, 한 자녀 정책 예외 등과 같은 혜택도 주고 있다. 중국의 시짱 통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 무력화이다. 최근 미국의 팝 밴드 본 조비와 마룬5의 중국 공연이 잇따라 취소됐는데, 밴드 멤버 중 일부가 달라이 라마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기념식을 맞아 달라이 라마가 1995년 선정한 ‘판첸 라마’ 게둔 초에키 니마의 근황을 공개했다. 판첸 라마는 티베트 불교의 2인자로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그의 ‘환생자’를 찾아내는 임무를 맡는다. 중국 정부는 당시 6세였던 니마를 비밀 장소에 연금했다. 중국은 20년 전 니마를 감춘 대신 5세 소년이던 기알첸 노르부를 판첸 라마로 정했다. 시 주석은 지난 6월 ‘어용’ 판첸 라마를 만나 “티베트 불교와 중국 사회주의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르부는 시 주석에게 “민족 단결을 수호하겠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자기가 사망한 뒤 어용 판첸 라마가 달라이 라마를 낙점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우매한 달라이 라마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슬픈 일이지만 누대로 내려온 전통을 지금 끝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도자의 환생을 믿는 티베트 불교 고유의 ‘활불전세’(活佛轉世)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달라이 라마 14세는 위기에 처해 있다. ●신장 위구르 독립세력 10월 테러 감행 가능성 ‘일촉즉발’ 중국 입장에선 분신으로 항거하는 시짱보다 신장 위구르족의 테러가 훨씬 위협적이다. 특히 2009년 7월 한족과 위구르족이 충돌해 197명이 숨지고 1700여명이 다친 대참사 이후 중국은 위구르족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이슬람교 특유의 히잡을 쓰는 것과 수염을 기르는 것도 금지했다. 시진핑 체제 들어서도 톈안먼(天安門) 차량 테러, 쿤밍 철도역 흉기테러, 우루무치 기차역 폭탄 테러가 잇달아 발생했다. 10월 1일 신장 자치구 선포 60주년을 계기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어 중국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IS는 그동안 중국을 향해 위구르족 탄압을 중지하라고 경고해 왔다. 지난 9일에는 중국인과 노르웨이인 인질을 ‘판매’하는 광고까지 냈다. 신장 출신 위구르인 300명 정도가 IS에 가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관광객 20명이 사망한 최근의 방콕 테러도 위구르 무장독립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검거된 용의자와 잠적한 핵심 용의자는 모두 신장 위구르인이다. 용의자들은 지난 7월 태국 정부가 위구르족 난민 109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번 테러를 자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터키계 인종인 위구르족은 2차 대전 후 한때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우고 독립했으나 중국은 1949년 신장 지역을 합병한 뒤 1955년에 자치구를 출범시켰다. 중국에 신장은 전략적·경제적 가치가 큰 지역이다. 고대 실크로드가 통과하던 이곳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잇는 대외 교역로이다. 특히 미국에 비해 해양력이 약한 중국으로서는 석유 등 필수 물자의 공급을 위한 전략 루트이다. 시 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도 신장이다. 1992년에는 대유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짱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신장을 관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제 개발이다. 국가 통계국에 따르면 신장의 GDP는 지난 5년 동안 평균 11.1%씩 성장했다. 1인당 GDP도 지난해 7037달러로 5년 전보다 3배 이상 올랐다. 창업 기업들 사이에선 “상하이, 선전, 푸둥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이젠 신장에서 기회를 잡으라”는 경구가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발의 과실을 이주해 온 한족이 주로 차지해 위구르족의 분노는 더욱 치솟고 있다. 인민일보는 요즘 ‘신장 도약 60년’이란 제목으로 신장의 발전상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지난 10일자 르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저녁 10시, 베이징의 상점은 영업을 끝내는 시간이지만 신장의 야시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양꼬치를 파는 위구르족 아주머니의 호주머니는 점점 두둑해지고 있다.” 아랍인처럼 생겼고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60년 동안 멸시와 차별을 당한 위구르인들이 호주머니가 조금 두둑해졌다고 분노를 억누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오바마 만나는 시진핑 4번째 공동성명 낼까

    오는 22일부터 시작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중국 내에서 양국이 새로운 ‘주요 공동성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시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위안화 절하, 해킹, 인권문제 등을 문제 삼으려 하자 중국이 새로운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의 위상이 미국과 동등해지는 ‘신형 대국 관계’ 건설을 구체화하기 위해 여론을 조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대표적 친중국 매체인 봉황망은 10일 “이번 정상회담은 향후 10년 이상의 세계 질서를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회담”이라면서 “중국과 미국이 그동안 체결한 주요 공동성명은 이미 30년이 넘은 만큼 새로운 양국 관계와 국제질서에 맞는 공동성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은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주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맺은 ‘상하이 공동성명’이 첫 번째다. 이 성명에서 양국은 주권과 영토를 서로 존중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인정했다. 두 번째는 지미 카터 대통령과 덩샤오핑(鄧小平)이 체결한 1979년 1월 1일 공표된 ‘미·중 외교수립 공동성명’이다. 세 번째는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덩샤오핑이 맺은 1982년 ‘8·17공동선언’으로 미국은 대만에 무기 판매를 점차 감소시켜 나갈 것을 천명했다. 봉황망은 “3개의 주요 공동성명은 그동안 양국 정상이 만나면서 합의한 여러 성명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았지만 시간이 오래돼 새로운 관계를 규정하지 못하고 사문화됐다”면서 “새로운 공동성명으로 신형 대국 관계의 이정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은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중국의 권리를 확실하게 명문화하자는 것으로 미국 측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공동성명 합의 주장을 먼저 제기하는 것은 미국의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고 명분을 쌓기 위함인 것으로 분석된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도 이날 사설을 통해 “외교적 예의를 중시하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다양성을 중시해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중국을 음해하는 여러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면서 “이런 음해는 거꾸로 듣거나 아예 듣지 말고 우리의 외교 원칙을 관철하면 된다”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비매너’ 대명사 된 中관광객…왜 그러는 걸까?

    [송혜민의 월드why] ‘비매너’ 대명사 된 中관광객…왜 그러는 걸까?

    해외여행을 즐기는 중국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빨간모자’, ‘유커’로 대변되는 이들의 ‘비매너’가 전 세계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문명사회를 주창해 온 그들이건만, 비매너 사례는 관광객 숫자와 비례하게 넘쳐흐른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왜 중국인들은 언제 어디서든 큰 목소리를 자랑하고, 당당하게 침을 뱉으며, 유적지에 낙서를 하고, 공공장소에서 새치기를 할까? ▲우리에겐 비매너, 그들에겐 습관이자 문화? 과거 중국에서 유학할 당시, ‘올바른 교통문화’를 주제로 글짓기 숙제를 해야 했을 때의 일이다. 과외선생님이었던 중국인 학생과 함께 서투른 문장을 고쳐가며 신호를 잘 지켜야 한다, 과속하지 말아야 한다 등의 글을 열심히 쓴 뒤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다. 6차선 대로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는데, 약 2시간 동안 올바른 교통문화에 대해 함께 글을 쓴 중국인 학생이 일말의 고민 없이 무단횡단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길 건너편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신호 기다리다가는 평생 못 건넌다!” 무단횡단 외에도 새치기, 신호무시 등 많은 외국인들이 ‘호소하는’ 중국의 비매너를 두고 다양한 추측성 분석이 쏟아진다. 그중 비교적 유력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과거 중국의 배급제도다. 현재 중국은 사회주의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전에는 배급제도가 있었다. 적게 일하든 많이 일하든 같은 양을 배급받아야 하는데, 생산량은 정해져 있으니 ‘늦으면 국물도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빨라야 했고, 손해는 용납되지 않았다. 한국인 못지않은 ‘빨리빨리’ 습관은 여기서 탄생한 것이 아닐까. 중국 관광객을 대표하는 또 다른 비매너는 침 뱉기다. 바닥에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습관과도 연관이 있는데, 이는 한국과 다른 입식문화의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인은 서양과 마찬가지로 집안에서도 신발을 벗지 않는다. 게다가 길에는 차(茶)는 물론이고 모든 끼니를 길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노점상이 많다. 중국인에게 길이란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려도 ‘무방한’ 공간일 뿐이다. 해외에서 아시아 관광객들을 구분할 때 ‘활용되는’ 척도 중 하나는 목소리 데시벨이다. 중국 관광객들은 큰 소리로 웃고 떠들기를 즐긴다. 이에 대해 문화대혁명 등 혁명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어야 했다는 분석과 중국어 특성상 4가지 성조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목소리를 키워야 했다는 분석 등이 있다. 일각에서는 해외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군중심리’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 A항공사의 서울지사 직원인 한국인 최모씨(33)는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 여행객들과 달리 중장년·노년층의 단체여행 비중이 높다. 최소 20명에서 50~60명까지 한꺼번에 다니다보면 군중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큰 힘을 낸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다. 혼자 있으면 하지 못할 행동이나 말도, 여러 사람이 함께 다니다 보니 용기 아닌 용기가 생기는게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그런데 ‘로마’를 벗어나면? 다시 중국 유학시절로 돌아가서,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누가 봐도 택시기사의 무례한 진행 탓이었는데, 도리어 택시기사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의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소시지를 씹으며 날 바라봤다. 도무지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나 역시 아무 일 없다는 듯 현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무단횡단부터 택시사고까지, 특히 도로위의 무질서를 보며 느낀 것은 다름 아닌 ‘무질서 속의 질서’ 였다. 신호를 잘 지키는 자동차도,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교묘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질서가 그 안에 있었다. 길에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것도, 침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것도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중국인들이 그들의 영토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습관을 이어가는 것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대는 것은 옳지 않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를 벗어났을 때의 태도다. 모든 나라에 ‘무질서 속의 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는 있는 법이다. 엄밀히 말해 수많은 외국인들의 비난을 받는 것은 아무 곳에나 침을 뱉고 목소리를 높이는 문화가 아니라 중국 밖에서도 그것을 고수하려는 몇몇 중국 관광객이다. 일부는 이러한 태도를 잘못된 사대주의라고, 일부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라고 평가한다. 분석이야 어찌됐든, 중국 밖에서도 중국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탓에 중국 관광객 전체가 비매너로 대변되는 결과가 생기고 말았다. ▲“교양이 없다(不文明), 사람이 많다(人多), 별별 사람이 다 있다(什么人都有)” 무례한 행동으로 손가락질 받는 중국 관광객에 대해 자국민의 생각은 어떨까. 칭다오에서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양(杨, 33)씨는 “교양이 없다, 사람이 많다, 별별 사람이 다 있다”라는 세 문장으로 요약했다. 풀어보자면 해외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중국인들이 부끄럽긴 하지만(不文明), 중국엔 약 14억 명의 무수한 사람들이 있고(人多), 이 안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관계로 자신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什么人都有)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저 세 문장은 중국인들이 상황을 막론하고 툭 하면 갖다 붙이는 말임과 동시에, 신기하게도 어디에나 잘 들어맞는 말이다. 특히 ‘뿌원밍’(不文明)으로 읽히는 ‘교양, 매너가 없다’는 표현은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타 문화와 접촉이 많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예의가 없는 자국 관광객을 비난하거나 의식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정부에서도 대대적으로 ‘문명사회’를 강조하는 실정이다. 양씨 역시 “현재 중국 관광객들의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최근 스위스 알프스의 유명 휴양지가 중국인 전용 특별열차 운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중국인 전용 열차를 개설한 리기 산 철도 관계자는 “그들(중국 관광객)의 강력한 존재감은 (거부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애매한 설명을 내놓았다. 그리고 현지 언론인 ‘블릭’이 마치 이들의 속사정을 대변하듯 “산악 열차 안 통로를 다 차지하고 사진을 찍는 중국인 관광객 무리에 격분했다. 이들은 사람이 가득 찬 객차 안에서 무례하게 굴었을 뿐만 아니라 바닥에 침을 뱉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자신들의 알프스 관광이 스위스 경제에 가져다주는 이득이 얼마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반문했다. 스위스의 ‘특별 열차'가 그들에게는 ‘차별 열차'로 읽힌 것이다. 아마존의 원시부족 사람들은 옷을 입지 않고 생활한다. 한국인은 ‘빨리빨리’에 익숙하다. 미국인은 실내에서도 신발을 벗지 않는다. 중국인은 목소리가 크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의 개념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내게 익숙한 것이 타인에게도 익숙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해야 할 것은 ‘문화’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문화를 고집하려는 ‘일부 사람’이 아닐까.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들] ‘한국 최고의 중국통’ 이세기 한·중 친선협회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들] ‘한국 최고의 중국통’ 이세기 한·중 친선협회장

    “한국전쟁은 소련의 철권 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해 ‘작은 사자’로 등장한 마오쩌둥(毛澤東)을 제압하기 위한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다) 전략’으로 일으킨 동란이라고 할 수 있죠. 6·25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스탈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선 의원과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79)이 최근 펴낸 신간 ‘6·25전쟁과 중국’에서 한국전쟁의 원인과 관련해 ‘발칙한’ 주장을 내놓았다. 평생 통일과 중국 문제를 천착해 온 이세기 회장의 이 같은 주장의 근거를 듣기 위해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중친선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붙여준 ‘한국 최고의 중국통’답게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 등 중국 전·현직 최고 지도자와 나란히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팔순를 바라보지만 활기찬 모습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2시간 30여분 진행된 인터뷰에서 열정적인 목소리로 한반도를 둘러싼 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스탈린 계략’이라고 주장했다. 특별히 이렇게 본 이유는 무엇인가. -6·25전쟁을 단순히 국내 좌·우익, 미국과 소련 간의 갈등으로만 좁게 보면 큰 오산이다.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중국과 미국을 직접 맞붙게 함으로써 두 나라가 우호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신경을 쓰는 동안 유럽 내 소련의 영향력을 높이려고 했다. 때문에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계속 묵살했다가 1950년 4월 승인하고, 그해 6월 27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 대표를 불참시켜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참전하도록 길을 터 준 게 그의 계략이다.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 인민지원군이 개입해 결국 미·중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중국군은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다.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개시해 미국의 참전이 쉽도록 카펫을 깔았고, 중국을 전쟁에 떠밀어 미국의 막강한 화력에 희생시켰다. 더군다나 한국전을 통해 미·중 양국 간의 적대감을 증폭시켜 중국을 ‘죽의 장막’에 가둬 미국 등과 격리시킴으로써 중국이 더욱 소련 쪽으로 기울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우선 한국전쟁 계획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중·소조약 개정 문제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에서 비롯된 까닭에 사실상 1950년 1월 말에 결정됐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스탈린은 이를 5월 초까지 중국에는 비밀로 부쳤다. 여기에다 그해 6월 유엔군의 한국전 참전을 결의한 안보리 회의에 소련 대표가 불참한 것이 그동안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스탈린이 소련 대표를 고의로 불참시킨 비밀 전문이 공개됨으로써 미군의 참전을 보다 쉽게 해 한국전을 미·중 전쟁으로 만들려는 그의 책략이 확인됐다. 스탈린이 중국에 약속한 소련 공군의 중국군 공중 엄호를 거부해 많은 중국군이 피해를 입도록 방치했다는 점 등도 들 수 있다. →6·25전쟁 원인 연구에 파고든 동기는. -고향이 이북이다. 전쟁 발발 이후 부산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며 전쟁이 낳은 가난의 슬픔을 겪었다. 한국전쟁의 쓰라린 경험과 중국군에 대한 기억은 학문적 관심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관심 주제는 한국전과 중국·소련 등 공산권 문제였다. 대학원 때부터 누가, 왜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어떻게 진행됐으며, 남북한 전쟁이 왜 미·중 간의 전쟁으로 비화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대 도서관에서 한국전과 관련된 미국·중국·소련의 자료를 많이 접한 뒤 박사 논문 ‘중·소 대립의 맥락 속에서 한국전쟁 발발의 일원인(一原因)에 관한 연구’를 완성했다. →중국통인 만큼 중국 관련 문제로 화제를 돌리겠다. 한·중 수교를 위한 씨앗을 뿌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85년 4월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있을 때이다.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비동맹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그곳에서 우쉐첸(吳學謙) 당시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다. “우리는 앞으로 중국과의 소통과 협력을 위해 30만 단어의 세계 최대 중국어사전을 만들고 있다”고 하자, 우 부장이 “완성되면 나도 볼 수 있게 한 권 보내달라”며 관심을 표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삼국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대개 중·고등학교 때 읽는다”고 대답하니, 그는 정색을 하고 “한국에서 한자를 쓰고 학교에서 가르칩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한자를 많이 쓰고 거리의 간판에도 많다”고 했더니 매우 흥미 있어 했다. 우 부장은 ‘어뢰정’ 사건(1985년 3월 영해를 침범한 중국 해군 어뢰정이 우리 해군에 의해 나포됐는데, 어뢰정과 승무원을 중국에 인도했다)을 신속하게 처리한데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 일은 두 나라 미래 관계에 좋은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해 한·중 관계에 대한 좋은 징조를 엿보았다. →중국의 유력자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게 된 계기가 있다던데. -반둥회의 이후에도 우쉐첸 부장과 편지로 대화를 이어갔다. 편지 전달자는 당시 미주리대 교수로 있던 대학 동기와 그곳에 유학 중이던 우 부장의 아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그와의 친분을 지속했다. 우 부장을 통해 여러 중국 지도자들을 만났다. 장쩌민 전 주석은 두 번 만났고, 후진타오 전 주석은 여러 번 만났다. 리펑(李鵬)· 주룽지(朱鎔基)·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웨이젠싱(尉健行)·리란칭(李淸)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과도 만나 한·중 간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현직인 위정성(兪正聲)·류윈산(劉雲山)·장가오리(張高麗) 등 정치국 상무위원과 리잔수(栗戰書) 당중앙 판공청 주임, 왕자루이(王家瑞) 당중앙 대외연락부장, 장다밍(姜大明) 국토건설부장, 차이우(蔡武) 전 문화부장 등과도 교분이 깊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시 주석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저장(浙江)성 당서기로 있을 때다. 2005년 4월 저장성 닝보(寧波)에서 열린 소비품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시 주석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해 7월 그가 서울에 왔을 때 제주도 서귀포의 ‘서복공원’을 안내해 급격히 가까워졌다(이 회장은 1997년 국회 문화공보위원장 시절 공원 조성을 주도했다). 특히 닝보가 서복이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기 위해 떠난 출항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 주석은 이 공원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더욱이 제주 감귤이 저장성 원저우(溫州)가 고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과 열병식 참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래전부터 박 대통령이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국이 간곡히 초청하는데 안 갈 수 없다. 중국 전승절은 러시아 전승절과는 다르다. 독일을 이긴 러시아의 전승절과는 달리 중국 전승절은 일본의 침략에 싸워 이긴 만큼 우리의 8·15 해방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에 이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해 미국의 심기가 아주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싫더라도 한국에 ‘가라 마라’ 하지 못한다. 70년 전의 한국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던 당시에는 미국에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국도 많이 컸다. 미국 눈치를 보고 외교도 줄을 서서 따라가던 그런 나약한 나라가 아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강한 중진국으로서 역할이 있다. 물론 한·미동맹도 중요하고 손상돼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통일을 위해 중요한 중국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북·중 고위급 인사 교류가 사실상 끊어지는 등 시진핑 체제 들어 양국 관계가 나쁘다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나쁜 것이 사실이다. 옛날과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악화돼 있다. →그렇다면 북·중 관계가 나빠진 이유는. -북핵 때문이다. 북핵을 용인하면 아시아에 핵개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시 주석은 북한의 핵 실험이 결국 중국의 국익에 해를 끼친다고 본다. 중국 지도층만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다. 중국이 공산당 독재국가라고 하지만 민심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북·중 양국의 친밀도가 떨어지고 사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 세기의 혈맹 북한이 ‘얌전한 완충역’에 머물기를 원한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화했다고 보는가. -중국이 이전의 한국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보가위국(保家衛國)’ 전쟁, 즉 미국의 침략에 대항해 가족과 국가를 지켜낸 전쟁이라는 구태의연한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체로 전쟁 이름을 ‘조선전쟁’으로 보다 객관화해 사실상 김일성의 남침으로 지칭하고 있다. 시 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핵 해결에 강력한 합의를 내놨다. 과거 후진타오 주석 당시에는 북한 때문에 얼마나 속 썩은 일이 많았나. 북핵을 비롯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등. 그래도 중국은 애매하게 북한 편을 들어줬다. 후진타오는 시진핑보다 더 이념지향적이지만 시진핑은 후진타오보다 더 시장친화적인, 실용적인 사람이다. 북핵도 미국과 함께 상의할 수 있고 공감을 쌓을 수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을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 불의(不義)를 못 참고 중국은 불리(不利)를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통일 한국의 미래가 중국에 해롭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일이다. 통일 한국은 북핵을 해결한 통일이 아니라, 통일과 북핵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통일 한국 미래가 중국 발전을 위해서 절대로 해롭지 않다는 것을 이제부터 설득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외교에 그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다음달 워싱턴을 방문한다. 현재의 미·중 관계를 평가하면. -미·중 관계는 과거의 미·소 관계와 다르다. 미국과 소련은 이데올로기-군사안보 대결로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련이 망했다. 반면 미·중 관계는 경제협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 G2는 채권국과 채무국, 생산국과 소비국의 관계이다. 둘 중에 하나가 망하면 같이 망한다는 얘기다. 중·미는 경쟁은 하지만, ‘판은 깨지 말자’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진핑은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얘기했다. 신형대국관계는 중국이 미국의 힘과 영역을 인정하는 대신, 미국도 중국의 핵심적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이세기 협회장은 1936년 경기도 개풍군(현 황해북도 개성시)에서 태어났다. 4선(11, 12, 14, 15대) 국회의원과 국토통일원 장관 등을 지낸 이 회장은 중국 전·현직 최고 지도자들을 비롯해 핵심 권력 엘리트들과 인맥을 두루 쌓은 중국통이다. 1985년 남북 막후대화 창구를 개설했으며 한·중 수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2001년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덩샤오핑(鄧小平) 지도노선을 연구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한·중친선협회장을 맡아 중국과의 민간 외교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1956년 고려대 졸업 ▲1961년 고려대 정치학 박사 ▲1965년 일본 도쿄대 대학원 수료 ▲1979년 고려대 교수 ▲1981년 국회 올림픽 특별위원회 위원장 ▲1985년 국토통일원 장관 ▲1986년 체육부 장관 ▲1993년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1996년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위원장 ▲2002년~ 한·중친선협회 회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 시진핑의 장쩌민 지우기

    중국 베이징시 하이뎬(海澱)구에 위치한 중앙당교 정문에 있던 거석이 최근 사라졌다. 중국 공산당 교육기관인 중앙당교의 상징과도 같은 이 거석에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쓴 ‘중공중앙당교’라는 황금색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중앙당교 측은 “많은 사람들이 거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교통에 영향을 줬고 일부 민원인들이 이 거석 앞에서 수료 기념사진을 찍는 당 간부들에게 접근해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 학교 내부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중앙당교는 거석이 있던 자리에 마르크스와 엥겔스,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자오위루(焦裕綠), 구원창(谷文昌) 등의 석상을 세워 학교의 공산당 혁명 전통을 강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오위루와 구원창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전 당원에게 본받으라고 주문한 지방의 옛 당서기들이다. 그러나 홍콩 명보와 중화권 매체 둬웨이 등은 24일 ‘장쩌민 지우기’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최근 상하이 공군정치학원과 베이징 인민해방군 301병원에 있던 장쩌민 글씨도 철거됐는데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관가에서는 낙마한 관리가 휘호한 글을 제거하는 전통이 있다. 앞서 이달 초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례적으로 당 최고지도부와 원로들 간 ‘비밀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열리는 와중에 ‘손님이 떠나면 차(茶)도 식어야 한다’며 은퇴한 간부들의 지속적인 영향력 행사를 강력 비판했다. 장 전 주석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어 중국 국영 CCTV와 당 이론지 광명일보는 지난 20일 ‘개혁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신념과 강인성을 유지하자’는 제목의 칼럼을 동시에 냈다. 칼럼은 “개혁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반대하는 힘은 완고하고 맹렬하며, 복잡하고 기괴하다”면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을 초월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장 전 주석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장 전 주석을 필두로 한 원로그룹이 시 주석의 반부패 개혁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고 시 주석이 장 전 주석과 마지막 일전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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