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덕성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안보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미관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입찰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밀레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938
  • 산업폐기물 불법처리 1백2곳 적발/대메이커등 54개 업체 고발

    ◎환경처,37개 업소엔 과태료 환경처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산업폐기물을 제멋대로 버린 1백2개 산업체를 적발,이 가운데 동국제강의 부산공장 등 54개업소를 사직당국에 고발했다. 또 산업폐기물 관리대장을 갖추지 않은 대한통운 울산지사 등 37개업소에 대해서는 10만원에서 최고 1백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하고 산업폐기물처리 기술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조업을 한 대정환경 등 6개업소는 시정조치했다. 고발된 동국제강 부산공장의 경우 지난88년 6월부터 조업중 생긴 분진 1천여t을 제때 처리하지 않고 야적장에 쌓아두었다가 적발됐으며 강원산업(경북 포항시 송내동 44)도 산업폐기물 2천5백여t을 공장부지안에 야적방치했다는 것이다. 고발된 업소는 다음과 같다. △동국제강㈜ 부산공장 △동국제강㈜ 인천공장 △한보철강㈜ △대한상사㈜ △강원산업㈜ △한일도자기(합) △성신양회공업㈜ △현대종합목재 △㈜국제제지 △한창제지공업㈜ △경기화학공업㈜ △한남화학㈜ △미포산업㈜ △㈜한국화이버 △대림유화㈜ △아주판지공업 △라미화장품㈜ △품만제지 조치원공장 △제일사료공업 △㈜대동기업 △일광산업사 △(유)동성아스콘 △대광자동차정비공업사 △충남차이나 △㈜대화제지 △울산공업사 △명화공업㈜ △동신공업사 △한국송유화학 △대창스프링공업사 △보림기업㈜ △세찬산업㈜ △대신공업사 △이용사공작소 △일신공업사 △미광정비공업사 △오성공업사 △광신공업㈜ △조양전구공업사 △통일전구㈜ △서해레미콘 △대영산업 △대왕제지공업㈜ △현대농장 △명지개발 △정희금속 △형제상회 △유공상사 △나성수지 △덕성수지 △동남무역상사 △진흥금속공업사 △대광수지공업사 △우성화학공업사
  • 소「민주사회주의 새 깃발」 올리다/고르바초프「도박」의 의미와 전망

    ◎정치개혁과 경제발전 연계 포석/재야흡수,온건진보정당 결성 가능성도/서유럽서 극동까지 대폭 군비축소 시도 1백40년 전에 카를 마르크스가 근로대중의 자기임금 되찾기 운동으로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은 그로부터 70년후 소련땅에 현실로 적용됐다. 그런데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받는 공산주의 이념이 소련땅에 적용된지 정확히 73년이 지난 1990년,올해의 벽두에 그만 공산주의의 깃발을 내리게 됐다. 소련은 소수 민족자치령을 국가체제로 연합하면서 유럽국가중 후발대 국가로 형성된 제정러시아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됐다. 국민의 9할 이상이 저소득계층으로 구성된 농경사회였던 제정 러시아를 1917년 소수파인 볼셰비키가 과격 공산혁명으로 무너뜨렸다. 그후 토지 자본국가공영제,중앙계획경제와 통제배급제를 실시하고 서방세계와는 중공업위주의 군수산업으로 군비경쟁을 하면서 냉전구도를 이룩해 왔다. 레닌이 심장ㆍ뇌졸질환으로 조기에 사망하자 오히려 극단적 소수파로서 민주사회주의를 건국하려던 도덕성에서 정반대의 궤를그린 사회주의 파시즘을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맥락에서 가설적으로 제시한 근로자의 기대임금과 실질임금의 차액을 소수 자본가가 착취함으로써 빈부격차가 극대화된 자본주의가 성숙된 사회에 공산혁명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논리는 소련에서는 해당될수 없는 그 당시 상황이었다. 즉,극소수 상업가ㆍ지주 외에는 성숙된 자본주의사회의 지표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산계층이나 활발한 상업활동이 소련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정체된 후진사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신축적인 경제활성화와 생필품위주의 산업발전 대신에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 육성에 정책선택의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스탈린의 명령없이는 전 사회가 움직이지 않았으며 하부구조 구성원의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봉쇄됐다. 이와같은 자기모순의 공포사회가 스탈린 이후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말하자면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었던 후진국 러시아의 풍토속에서 다원적 공산주의 이상은 스탈린 이후의전체주의 지배자들에 의해 침묵과 복종만을 강조하는 관료적 동원체제를 구사해온 것이 핸재의 소련사회이다. 현재의 소련사회는 순발력없는 저능 거인이며 실질적 파산선고를 내린 회사와 같다. 중지한 부실기업이며 저능거인은 기초운동과 기초이론 학습부터 시작하여 거듭 태어나야 하고,부실파산회사는 처음부터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구조적으로 재조직ㆍ관리돼야 한다. 바로 여기서 개혁,재조직(Perestroika)과 만인에게의 공개성(Glasnost)을 강조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은 스탈린 후기세대의 대표주자로 새로운 사고를 가진 고르바초프가 통치권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되는 소련사회의 변혁은 미시적으로 볼때 원초적으로 빈곤했던 소련이 군사대국 유지로 인해 더욱 피폐된 생필품 절대빈곤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장경제원리 도입,사유재산의 인정으로 민중봉기 일보직전의 긴박한 경제빈곤의 고리를 풀자는데 있다. 그런데 그같은 경제빈곤 해결은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국민전체가 새로운 생산기풍을 진작하는 자발적 노력의지가보여야 하는데 국민은 두려움과 의심의 눈초리로,그리고 지성인을 비롯한 여론주도계층에서는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황에서 그같은 노력은 아무리 신사고를 가진 개혁의지에 불타는 개혁주의자가 있다고 해도 개혁은 무위로 끝날수 있다. 인구증가와 같이 서서히 로가리즘적으로 누적되어온 소련의 사회경제침체는 아무리 자유와 개방ㆍ개혁이 뒷받침돼도 하루 이틀에 성취될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르바초프는 정치 개혁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 총의를 민생문제 해결 위주의 경제발전에 연계하려는 전략포석으로 이미 동구에서 시행돼 오고 있으며 고르바초프가 원거리에서 보호해준 바 있는 다당제 도입ㆍ자유경선ㆍ시장경제 원리도입,그리고 국가원수의 직선제 등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로서는 그의 정치적 주사위인 대통령 직선제에 출마하여 국민의 직접 신임을 얻음으로써 지속적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90년 초인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5년에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가 개혁의 신호탄을 올린 시기라면 90년대는 개혁의 실적을 경제사회적으로 보이는 행동단계라고 보겠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응하든 않든 서유럽에서 이제는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군비축소를 국내정치맥락에서 자의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또한 조만간 28차 당대회를 치르고 난후 그는 공산당을 해체하거나 구조적으로 당의 체질을 개선하여 이에 걸맞은 당명 또한 새로이 변경하면서 어쩌면 수면위에 부상하는 재야조직을 흡수하여 의외의 인물로 충원하는 새로운 온건진보정당을 조직할지도 모른다. 볼셰비키 소수 급진공산당이 해체된다고 해서 공산당 통치의 러시아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 사회가 소수민족의 자치도 인정하면서 제국주의적 영토팽창에 눈돌릴 수 없는 내치의 민주화ㆍ경제활성화에 당분간,적어도 2000년 이후까지 정책집행에 우선권을 유지하는 역사의 긍정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노력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정치국원이나 참모들은 과거 공산당의 보수적 당관료가 아닌데 그들의 전직은 해외근무 특파원,대외경제 전문가,기타 국내 각분야에서 개혁에 불타던 깨끗한 도덕정치를 표방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당면문제를 다룰때 소련 역사의 방향을 다원화된 민주사회주의 국가로 그 키를 돌리는 역사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믿고있다. 혹한기를 피할수 있으며 대서양과 발트해를 접하고 있는 정치ㆍ상업ㆍ관광도시인 레닌그라드의 옛 이름은 성 페테르스부르크시였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공산혁명의 진원지가 된 이후로 레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레닌시)라고 명명하였는데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치가 90년에 정착돼 2000년이 되면 레닌그라드도 고르바초프의 이름을 본따 고르비그라드(고르비시)로 부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또 이렇게 예상하는 서방인에게 소련인은 처음으로 빙그레 웃음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 거취 유보 민주의원들의 「민자」합류 급선회 배경

    ◎각개 설득 주효… 이탈 진통 조기 진정/김 총재,옛정 호소ㆍ자리보장 언질/민정 유력인사들의 지원도 한몫/잔류파,원내 세 확장 중단… 원외에 미련 남겨 민주자유당(가칭) 참여문제로 진통을 겪던 민주당은 일부 동요의원들이 김영삼총재를 따르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 내부동요를 수습하고 큰 탈없이 「거대여당」에 합류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이기택총무의 야권잔류선언을 계기로 여당으로의 변신에 갈등을 느껴온 일부 의원들이 크게 흔들리는 등 한때 위기를 맞는 듯 했으나 김영삼총재의 각개격파식 선무작업이 주효하면서 이탈의원을 5명으로 묶고 탈야당과정에서의 1차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이로써 김총재는 3당통합을 추진하며 표방해온 「구국적 결단」의 명분이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안방에서 훼손당할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당초 거취표명을 유보해온 김재광국회부의장,최형우 전총무,박종률의원,신상우보사위원장 등 중진들과 김동주,정정훈의원 등이 모두 야권잔류를 선언했을 경우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기대했던 신야당추진모임은 더 이상의 원내의석확보 노력을 포기하고 신야당 결성의 구체적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한때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하던 신야당 돌풍이 이처럼 급속히 진화되게 된 원인은 김영삼총재가 동요의원들을 최소한 한차례 이상씩 만나 인간적 호소와 신여권내에서의 자리보장 약속 등을 통해 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큰 탈없이 관문 통과 김재광국회부의장과 박종률의원의 경우 『당신들이 떠나면 나의 정치생명은 끝난다』는 김총재의 극구만류로 신당참여를 결정했으며 특히 김재광부의장은 고위 국회직에 대한 언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연구모임 소속의 김동주의원에 대해서는 민자당내의 당직보장이 있었으며 지역구내서의 기득권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동요의원에 대한 설득과정에서 민정당 유력인사들의 직ㆍ간접지원도 있었던 것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김총재의 측근들은 『무엇보다 김총재의 저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 했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총재는 설득과정에서 서독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정을 예로들며 앞으로 자신의 위상정립 방향을 시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치시절 외무부 고위관리를 지낸 경력의 키신저 당수가 이끄는 여당 기민당의 연정제의를 야당인 사민당 당수 브란트가 받아들였을 때 원내총무를 포함한 많은 의원의 반대가 있었고 5분의1 이상의 의석이 이탈했으나 차기선거에서 최대의석 정당으로 발돋움하고 브란트 자신은 수상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또 이로써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펼칠 수 있었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독의 변화를 가능케 했으며 당시 고도성장 끝에 침체기를 맞은 서독경제를 중흥시켰던 것과 김총재 자신의 선택을 비교시켰다고 전해진다. 이와함께 동요의원들이 민자당 참여를 결심한 계기는 김총재쪽으로 돌아서는 의원들이 지난주말을 고비로 늘어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불가능해진 데 따르는 역도미노현상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입장유보 의원들이 전원 김총재와의 동행을 결정함에 따라 신야당추진모임도 그동안의 원내 세확장노력을중단하고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나름대로의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착수하는 모습이다. ○저력 재확인의 계기 신야당추진모임은 민자당의 창당 수순이 신여권의 향후 정국운영계획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민자당의 창당작업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상황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에따라 신야당추진모임은 민자당내에서의 입지마련에 불안감을 느끼는 원외위원장들을 포섭,우선 정당창당에 필요한 법정지구당 결성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신야당결성은 전도가 험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민자당은 신야당이 목표로 하는 비호남지역에서의 지지기반 확보계획에 결정적으로 이해가 맞부닥치는 상대다. 또 평민당은 신야당이 김영삼총재를 집중공격하며 민자당을 괴롭힐 것이란 점에서는 제휴관계를 성립시킬 수도 있는 대상이다. 그렇지만 신야당이 비호남지역에서의 민주당에 대한 대체정당으로 성장할 경우 평민당의 탈호남전략이 차질을 빚게되며 김대중총재의 퇴진압력 가중을 의미하는 만큼원내에서 최소한의 협력외에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지자제 선거에 총력 그러나 신야당추진모임측은 김영삼총재의 여당변신에 대한 여론의 반향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주장하며 거대여당 출현에 따르는 유권자의 반사심리인 야당육성 필요성 인식에서 입지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야당으로서의 선명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지원호소 노력을 계속할 경우 지자제선거에서 7석의 원내점유율(2%)를 크게 상회하는 득표율을 올림으로써 질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내의 민자당 참여그룹 및 야권 잔류그룹의 구분이 분명해짐에 따라 더이상의 내부진통은 없어졌으며 앞으로 참여파는 신여권내에서의 개혁주도,잔류파는 신야당결성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라는 나름대로의 과제를 각각 안게 됐다고 해야겠다.
  • 가짜 산삼 밀매단 수사/값싼 중국산 들여와 국내산으로 팔아

    ◎10만원도 안되는 것이 3천만원짜리로 둔갑 최근 중국등지에서 들여온 값싼 산삼을 국내산삼으로 속여 비싸게 팔아먹는 조직사기단이 늘고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3일 김모씨(43ㆍ충남 홍성군)가 지난달29일 집 이웃 왕지마을 뒷산에서 캤다는 산삼 6뿌리를 전문가에게 감정시킨 결과,가짜임을 밝혀내고 조직 밀매단이 계획적으로 가짜 산삼을 팔려고 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김씨는 이날 산삼 6뿌리중 한뿌리를 소개인이 훔쳐갔다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감정결과,가짜임이 드러나자 달아났다. 경찰은 김씨가 『산삼을 팔기위해 함께 상경한 박씨라는 50대남자가 비싼 값에 팔아주겠다면서 한 뿌리를 갖고 나간뒤 달아났다』고 신고한 것도 이 사실을 신문 등에 보도하도록 만들어 진짜 산삼으로 믿게해 비싸게 팔려는 계획적인 수법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의 산삼을 중국산으로 감별한 한방 전문의 임덕성씨(47)는 『중국산 산삼은 40g(두뿌리정도)에 1백만원 정도이고 약효도 우리나라 산삼의 10∼20%밖에 안되는데 비해우리나라 산삼은 40g에 1천만∼2천만원정도씩 받을 수 있는 점을 노려 이같은사기사건이 잦다』고 경고했다. 임씨는 『우리 산삼은 설악산 지리산 오대산 등지에서 가끔 발견되며 겨울철인 12∼2월사이에 캐면 뿌리가 손상을 입게돼 값을 제대로 못받기 때문에 김씨가 지난달에 캤다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경찰수사결과 김모씨(50ㆍ공무원)의 경우 지난해 12월10일 믿을 만한 사람의 소개로 산삼 한뿌리를 3천만원에 샀으나 전문가의 감정결과 10만원짜리도 안되는 중국산 산삼으로 밝혀졌고 회사원 조모씨(48)도 지난해10월 중국 길림산 산삼을 실제보다 10배이상 비싼값을 주고 사는 등 피해가 수십건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산삼 사기밀매단이 국제우편이나 여행객 등을 통해 외국산삼류를 들여와 가끔 산삼이 발견된 적이 있는 산에 몰래 심어둔뒤 심마니들이 캐낸 것처럼 꾸며 시장에 판매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가 가짜 산삼임이 밝혀진뒤 추궁을 받자 『지난해12월 중순쯤 박씨가 찾아와 「참나무아래를 잘 살펴보라」고 말해 이 산삼을 발견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루어 이들이 조직밀매단의 하부조직일 것으로 보이고 있다.
  • 민정당 해체를 보며(사설)

    집권 민정당이 1일 전당대회를 열어 새 여당이 될 민주자유당에로의 통합 의결을 함으로써 사실상 간판을 내렸다. 스스로 소멸절차를 밟는 것을 바라보는 당원들의 감회야 남다르겠지만 일반국민들로서는 다소 얼떨떨한 기분이 뭔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음직하다. 전례도 없는 일이고 너무 숨가쁘게 돌아가니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이 불안과 연결돼 반사적으로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생길 수밖에 없다. 사실 당총재가 권력의 핵심에서 건재한 상태에서 집권당이 해체되는 일은 우리의 정당사상 없었다.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로 자유당이 무너졌고 5ㆍ16군사혁명으로 장면내각과 함께 민주당도 사라졌으며 민주공화당 역시 박정희대통령의 변고이후에 문을 닫고 말았다는 점에서 민정당의 해체는 독특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의 문제일 뿐 사실은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여당으로 가기 위한 발전적 해체라는 측면이 강하다. 지난 9년간에 걸쳐 두차례나 대통령을 당선시켜 권력을 창출해낸 민정당이지만 6공 이후 그 위상이집권당으로서 다소 미흡했던 데서 결국 오늘의 해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원내과반수 이상의 안정세력을 얻는데 실패함으로써 여야대결이라는 정치풍토 속에서 국정을 제대로 주도할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하나는 「5공청산」이라는 지난 2년 가까운 야당의 공세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민정당의 생성과정에서 여러 과와 비가 쌓인 것이 6공의 민정당에 커다란 부담을 주었다는 점이다. 「12ㆍ12」 이후 권력을 잡은 신군부세력에 의해 급조된 점이나 독선적인 권력행사로 빚어진 수많은 갈등,그리고 권력형 비리의 점철 등이 민정당의 짐으로 남아 정통성과 도덕성의 문제를 야기시켰던 것이다. 결국 노태우대통령으로서는 민정당의 발전적 해체로 민자당이라는 거대여당을 만들어 제도적으로 의회정치의 실을 확보하고 5공의 정치제도중 가장 중요한 정당의 틀을 깨어버림으로써 5공청산을 정치적으로 완결시키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 정가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제 노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급변하는 국내외의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미래지향의 국정을 이끌 수 있는 여건을 일단 마련했다. 이 여건은 지금의 해체결의가 보다 발전적이고도 생산적인 결과를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 민정당 구성원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단단해질 것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을 비롯한 민정당의 신당추진세력들은 이를 위한 노력을 특별히 기울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대통령이 신당의 지도력을 확립하여 가장 큰 구심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구심점이 확실한 다른 두 정당과의 통합에서 민정당 구성원의 이탈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민정당의 공과 좋은 점을 신당에 이식시키기 위해서는 이 일이 필요하다. 과거 민정당 정권이 보여준 물가안정ㆍ국제수지흑자ㆍ고도성장 등 경제발전과 올림픽유치,평화적 정부이양 등 좋은 점과 정신을 계승함으로써 민정당 구성원이 자긍심을 갖고 신당에 참여토록 하는 효과는 적은 것이 아니다. 아울러 거대여당에 만족하기에 앞서 국민의 뜻을 두루 살피는 국정운영으로 민정당 해체의 참뜻을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 공화당 해체와 김 총재의 새 역할(“대통합” 신당정국:8)

    ◎“당분간 조연”…과도기 융화 주력할 듯/이질적인 민정ㆍ민주사이 교량역 자임/수적 열세에 중간보스 없어 고전 예상 공화당은 통합신당 창설에 함께 참여하는 민정ㆍ민주 양당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 속에 민주자유당(가칭) 창당작업에 전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합신당에 반발,이탈움직임을 보이거나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반JP(김종필총재) 기류는 거의 감지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몇몇 소장파 원외지구당위원장들이 이미 신당참여 거부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그들의 정치적 비중등을 고려할 때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것이 JP 측근들의 생각인 것 같다. 지난해 가을 공안정국등을 거치면서 소장파의원등으로부터 간헐적으로 터져나왔던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와 같은 불협화음도 비치지 않는 가히 일사불란한 체제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요당직자 및 소속의원 등 당의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기득권 그룹은 이번 정계개편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격상시켜 주었다는 만족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4당구조 아래에서 말석정당의 구성원으로서의 불안한 「신분」에서 벗어나 일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데 대한 안도의 빛이 역력하다. 최근 JP의 밝은 표정에서도 이같이 고무된 당 주변의 분위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당소속 15인 통합추진위 관계자 및 주요당직자들로부터 신당창설 추진과 공화당 정리작업등에 대한 보고만 받고 대부분의 시간을 바둑등으로 소일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정계개편의 산파역을 자임하면서 범여ㆍ구 야권인사 등과의 교제범위등을 넓혀왔던 지난 몇개월 동안 JP의 행보와 견주어 측근들은 반칩거상태라고 비유한다. JP는 신당창설 이후 자신의 역할과 신당운영 등과 관련한 위상정립문제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유보하고 있다. 다만 『또다시 뒤로 들어가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조용히 하겠다』는 표현으로 당분간 「조연역」을 계속 맡을 것을 확인하고 있다. 자신의 몫으로 배분된 최고위원으로서의 입지강화 보다는 신당의 뿌리가 내릴 때까지 이질적인 민정ㆍ민주 양당을 막후에서 접목시키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있은 3당 총재의 합당선언 후 JP가 신당의 지도체제와 관련,노태우대통령이 당총재를 맡고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이 당무를 사실상 관장하는 총재­대표 단일라인을 강조한 것도 자신은 막후조정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JP가 신당운영 과정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 않겠다는 발언속에서는 한시적인 시간설정이 함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즉 정계개편을 내각책임제를 전제로 추진한 그로서는 내각제 개헌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로 시한을 설정,막후에서 당내 지지세력을 확장하면서 장기구도에 대비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계개편 추진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이 충분히 이뤄졌고 집안단속이 잘돼있는 상황에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큰 과도기에 전면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판단인 듯하다. 13대국회내에 내각제 개헌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만큼 14대국회 들어서는 내각수반등 당과 정부의 최전위 일선에 접근할수 있는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JP가 신당에서 자신이 구상중인 장기구도에 따른 목표점에 도달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석이 적지않다. 우선 현실적으로 세집이 합가하면서 JP가 데리고 가는 식솔들이 상대적으로 초라한 것을 꼽고 있다. 소속의원 35명(전국구 7명 포함)이라는 숫적 열세 뿐만 아니라 향후 신당의 지구당조직책 선정과정에서도 「공화당 몫」으로 내세울 만한 비중있는 인물이 드문 상황이다. 또 3,4공화국시절 잔뼈가 굵은 테크노크랫 군출신등으로 JP가에 들어온 장년층과 13대총선 직전 공화당에 입당,원내에 진출한 소장파의원들 사이에는 의식구조와 성향등에서 상당한 간격을 노출해 왔기 때문에 이를 이원화된 집단간의 융화 역시 쉽지 않을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신당이 계보관리체제로 들어갈 경우 JP가의 이원화된 소속의원들을 연결할 중간보스가 없는 약점등으로 계보간 이합집산 과정에서 JP가 불리할 것으로 점치는 분석등이 흥미롭게 제기되고 있다. JP계에서 노리는 민정당내의구 공화당출신 및 충청권 인사의 흡수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의 목소리 역시 간과할 수 없다. 6공 말기에 민정당내 신 TK그룹이나 SK그룹등이 실세로 부상,세대교체론을 내세울 경우 구 공화당 출신의 원로그룹의 입지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민정당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또 당외요인으로 야권이나 재야세력 등이 제기하고 있는 인위적 정계개편의 당위성 및 도덕성 시비를 적절히 방어ㆍ극복해야 하는 어려움도 갖고 있다. 보수연합을 반대하는 그룹들이 또다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로 신당 출연을 몰아붙일 때 정계개편의 분화구인 JP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측이 가장 먼저 포화를 받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정계개편의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게 하고 신당의 민주발전 의지를 구체화할 수 있는 조연역할을 어느정도 무리없이 해나가느냐가 결국 JP의 입지를 확장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 민주「해체이후」 김영삼씨의 정치적 장래(“대통합” 신당정국:7)

    ◎정국안정 YS 기여도가 판가름/“정계개편 이어 여개혁 주도” 자신감/“변절”로 보는 부정시각도 적지않아 민주당 김영삼총재의 3당합당 참여가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인가. 민주투사로서의 30년 야당활동을 정리하고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가칭)에 민정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김종필 공화당총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음으로써 여당으로 변신한 김영삼총재의 정치적 장래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자유당이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고 표방한대로 정국및 사회안정,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되면 김총재의 변신은 그의 말처럼 구국적 결단이었음이 증명되고 김총재 자신은 제2의 정치 황금기를 맞게될 것이며 반대의 경우 그의 합당 결심은 제2야당의 궁지 모면에 급급한 나머지 자충수를 놓은 결과가 되어 정치 생명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김총재는 민주자유당을 주도하게 돼 있다고 측근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김총재는 민주자유당을 끌고 나가며 구법개폐,민주복지 정책의 구현 등을 통해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5공청산및 민주화 완결을 해냄으로써 집권세력의 도덕적 재탄생을 이룩하겠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김총재는 3당통합을 통한 민주자유당의 출범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현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불만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주도한 정계개편이 국민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다. 이같은 김총재의 구상은 일단 노대통령과 김종필총재의 적극 지원 아래 당분간 순조로운 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으로서는 3당통합이 5공의 승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마땅한 차기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차선책이 마련되는 만큼 김영삼총재를 어느 정도 부각시키는 것을 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김종필총재는 민주당 세력이 제대로 입지 마련도 못하고 민정당 세력에 흡수돼 버릴 경우 공화당도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김영삼총재를 도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김영삼총재가 자신의 뜻을 펼쳐볼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정치의 지역화ㆍ정당의 사당화 현상을 타파하고 건전한 보혁구도를 정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폭넓게 형성돼 있다는 점도 김총재의 이번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끔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김총재의 변신을 변절로 보고 그의 민주자유당 내에서의 위상 설정가능성 또한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은 긍정적으로 보는 눈들 못지않게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같은 부정적 시각은 전격 여야합당이라는 충격에서 깨어나면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같은 흐름은 크게 보아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 김총재 스스로가 집권세력의 도덕적 재탄생을 주도할 만한 도덕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현시점이 민주화가 완결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군사독재 세력의 연장 선상에 있는 현 정권과 유신세력인 공화당 및 민주당의 합작은 야합이며 밀실에서 추진해 온 합당 절차는 민주주의적 과정을 밟지 않음으로써 출발부터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김총재가 보여준 부도덕의 단적인 예로 반대 토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날치기 통과로 40년 전통야당의 간판을 떼낸 30일의 전당대회를 들고 있다. 둘째는 김총재가 자신의 구상을 펴나가기 엔 민주자유당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자유당의 창당 작업이 마무리 된 후부터는 각파벌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전개될 것이 분명하고 김총재 역시 이 싸움에 휘말려 발전적 정국운영을 할 여력이 없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김총재가 자신이 구상하는 제반 민주개혁 조치들을 민주자유당의 당론으로 하려고 할때 노선의 유사성을 갖고 있는 민정ㆍ공화당 세력이 반대,김총재와 민주당세력이 소수 의견으로 몰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이와함께 30일 이기택총무겸 부총재와 김현규부총재가 신당 불참을 선언,김상현부총재 김정길ㆍ노무현의원 및 20∼30여명의 원외지구당위원장들과 함께 민주당 잔류 세력으로 남은 사실은 민주자유당 내에서의 파워게임을 앞에 둔 김총재에게 부산ㆍ경남 지역의 대표성을손상시키는 등 상당한 타격을 입힌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앞으로 더 많은 이탈자가 나올 조짐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셋째는 민주자유당의 내부 정리가 김총재 뜻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정국 흐름이 민주자유당의 바람대로 진행될지가 의문이라는 점이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라이벌관계에 있던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양당제하의 의회운영에서 야당인 평민당의 협조를 받을 가망은 거의 없게 됐으며 이는 법안의 강행통과,야당의 실력저지등 13대 국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태를 재등장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호남을 고립화 시킴으로써 지역 갈등의 골을 깊게할 것이라는 우려는 광주 등지의 격렬한 규탄시위 등에서 벌써부터 현실화하고 있는 느낌이며 정국을 민주 대 반민주 대결구도로 파악하고 있는 재야세력과 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은 신당이 내세우는 정국안정과 정치발전을 공염불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같은 부정적 측면들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김총재는 노대통령이나 김종필총재에 비해 훨씬 심한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이는 김총재에 대한 퇴진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게 지배적 관측이다. 결국 김영삼총재가 던진 승부수의 성패는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얼마나 얻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으며 이는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국정운영 여하에 따라 그 향방이 결정되고 6월로 예정된 지자제선거를 통해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김교준기자〉
  • 인명경시 풍조를 우려한다(사설)

    세상 되어가는 꼴이 너무 절망스럽다. 너무 두렵다. 사람 목숨이 사람 목숨이 아니라 파리 목숨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세태가 아닌가. 언제 어떤 형태의 위해가 나에게도 가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더도 말고 어제 아침신문의 사회면만을 들여다보자. 외박하자는 걸 거절한 데 대한 앙심으로 보이는 술집 남녀 종업원 4명 피살사건이 눈에 띈다. 한 남자대학생은 변심한 여자대학생 애인을 껴안고 분신자살하고 신병을 비관한 30대 여인은 아들 딸과 동반자살했으며 낙방과 가정불화를 비관한 중ㆍ고등학생 6명은 집단 음독을 했다. 그런가 하면 10차례의 범행으로 부녀자 7명을 살해했다는 성남 살인강도범의 여죄를 보도하고도 있다. 광란하는 세태를 느끼게 하는 끔찍하고 몸서리쳐지는 사건들이다. 이런 사건 중에서도 특히 술집 살인사건을 두고는 치안당국에 원망의 화살을 돌리는 국민도 있을 법하다. 범죄소탕령을 거푸 내리면서 특수대까지 발족시켰건만 폭력사건은 끊이지 않는 작금의 사회상과 연관지으면서 갖게 되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기강이나 기풍이 이러할 때 당국의 능력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의 의식구조에 근본적인 변혁이 없는 한 설사 4천만이 경관이 된다 해도 범죄는 일어날 것인지 모른다. 생각컨대 타살사건이나 자살사건이나 본질적으로는 오늘의 우리 사회 병리현상에 연유한다는 점에서 궤가 같다. 물신 숭배사상의 팽배에 따라 도덕ㆍ윤리는 황폐해지고 그것이 마침내 극기심 부족과 인명경시 풍조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찰라주의의 노예가 되면서 무엇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로 가치 있는 삶인가 하는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고황에 든 병이 표출시키는 현상이 곧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삭막하고 살벌한 반가치적 작태들이라 할 것이다. 나타난 현상에 대한 대증요법으로서의 치안력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 여기에 있다. 원인요법의 이치는 간단하다. 윤리ㆍ도덕을 회복하여 참다운 삶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바른 가치관을 정립 확산시키는 일이다. 그렇건만 그 간단한 일이 실천면에서 쉽지 않다는 것이 또한 오늘의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물질숭배 사상은 많은 사람들의 의식구조 속에 정착되었고 그래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도리어 이단시되면서 사회적인 패배자로도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풍토에 변혁이 와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전율할 반사회적 작태들을 떨쳐버리지 못한 삶을 이어갈 밖에 없다. 경제가 발전하여 개인소득이 몇만달러 몇십만달러가 되면 무엇하겠는가. 범죄 앞에 떨어야 하는 사회라면 차라리 초근목피로 연명할망정 윤리ㆍ도덕이 살아있는 사회쪽이 인간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는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을 일이겠는가. 교육열이란 이름 아래 온 사회가 열병을 앓으면서도 인간화 교육에 얼마만한 비중을 두었던가 너 나없이 성찰해봐야겠다. 윤리성ㆍ도덕성을 지닌 인간이 사는 사회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런 사회를 위하여 정치가 경제가 혹은 교육이 이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경제가 풍요로운 사회보다는 인정이 풍요로운 사회로 될 수 있어야 한다.
  • 여야 3당,「신당선언」이 나오기까지

    ◎청와대 결단­JP 중재­YS 앞장 “결실”/「12ㆍ13」 청와대회담 때 「합당」 거의 결정/박철언­황병태­김용환 핫라인으로 활약/부작용 우려,조기개편으로 급선회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신당 결성은 「정치혁명」으로 불릴 만큼 모두에게 놀라움을 던졌으나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빨랐다 뿐이며 이런 기본구도에 대한 노대통령의 결심은 이미 지난해 12월초 유럽순방에서 귀국하면서 섰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노대통령은 당시 귀국 전용기상에서 기자들과 만나 『초연한 입장에서 국정을 운영하고 싶다』는 심정을 밝혔으며 이때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 통합에 의한 안정세력구축의 결단을 내렸으리라는 관측이다. 즉 몇차례의 개별 혹은 영수회담을 통해 민주ㆍ공화당과 이념적 면에서 근접하는 부분이 많았던 반면 일련의 방북사건,5공청산 과정에서의 태도등을 볼 때 평민당과는 상당한 시각차를 느끼게 됐다고 여권 고위관계자들은 말한다. 노대통령의 「결단」 이후 5공청산 막바지협상 과정에서 「대통합→내각제 개헌」이 민정ㆍ민주·공화당간의 막후협상의 주된 의제가 된 것으로 보여진다. 노대통령이 5공청산 이후 전개될 정국구도에 대한 결단에 따라 김종필 공화당총재가 충실한 「중재자」 역할을 했고 김영삼 민주당총재가 앞장서는 형식으로 3당통합의 하모니가 이뤄져 나갔다는 얘기다. ○88년 7월 신호탄 올라 ○…정계개편 구상의 시발을 보다 근원적으로 따진다면 13대 대통령선거부터라고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은 당시 후보로서 선거전을 치르면서 생사를 건 대결,지역감정의 악화 등을 경험하고 『다음에는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언급을 해왔다. 이에 덧붙여 4ㆍ26 총선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탄생하자 국정운영의 불안을 타개한다는 명제가 커져 다각적 방안이 강구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의 이러한 생각을 감지한 박준병 당시 사무총장은 보수대연합으로의 정계개편 당위성을 조심스레 거론하기 시작했고 88년 7월 윤길중 당시 대표위원이 마닐라에서 내각제 개헌발언을 통해 「노대통령 재임시 정계개편」의 신호탄을 올렸다. 그러나 5공청산ㆍ중간평가실시 등을둘러싼 논란 때문에 정계개편문제는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지난해 3월 중간평가 유보결정이 난 후 5∼6월쯤 노대통령이 측근들에게 개편방안을 적극 검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에는 정계개편을 위한 특별연구팀이 구성되었으며 ▲중평유보에 있어 호의적 태도를 보인 평민당과의 연정▲공화당과의 연정이나 합당 ▲「헤쳐모여」식의 대연합으로 내각제 개헌달성 등 다양한 방안들이 검토대상에 올랐다. ○빈번한 골프회동 주효 ○…이러한 여권의 구상이 여야간 본격절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10일 노대통령과 공화당 김총재간의 단독회담부터이다. 김총재는 당시 보수대연합을 공식 제안했고 이에 노대통령이 긍정의 뜻을 표함으로써 양당간 연정 또는 합당문제에 대한 절충이 시작됐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이에 대한 결단을 미루는데다 8월말 이종찬 당시 민정당총장이 『공화당과 합치는 것은 도덕성문제를 야기한다』고 반발,양당 통합추진파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김종필총재는 이후 9월 한달동안 「칩거상태」에 들어갔으며 이때 민주당과의 연합을 먼저 이룩한 뒤 민정당까지를 포함,대연합을 이뤄보자는 구상을 한 듯하다. 김영삼 민주당총재도 이에 호응,양인간 빈번한 골프회동이 이어졌으며 10ㆍ26사태 10주기 때 김영삼총재가 고 박정희대통령 묘소에 조화를 보내 유신을 「사면」하고부터 양당간 밀월관계가 한층 깊어졌다. ○귀국 기상서 결심한 듯 ○…지난해 12월4일 노대통령이 유럽순방 귀국기상에서 대통합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박준규 당시 민정당대표위원이 이를 야당총재에게 통보함으로써 개편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박 당시 대표는 김영삼총재에게 이원조의원 문제에 대한 양보를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보수대연합 혹은 중도통합에 의한 내각제 개헌 가능성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의원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양보로 12ㆍ15 청와대회담에서 5공청산에 대한 대타협이 이뤄진 후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 실무진간 통합 또는 연정에 대한 절충이 은밀히 시작됐다. 박철언정무1장관ㆍ황병태 민주총재특보ㆍ김용환 공화 정책위의장이 3당총재의 「분신」으로서 「하트라인」을 구성했다. 이들 3인의 개별접촉을 통해 통합신당의 윤곽이 잡혀나갔고 지난 12ㆍ13일 노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총재간의 개별 청와대회담 때 3당 합당이 거의 결정됐다는 것이다. ○반발ㆍ부작용 최소화 ○…여권은 금년들어 홍성철비서실장ㆍ노재봉정치담당특보ㆍ최창윤정무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들과 박철언정무1장관ㆍ박준병사무총장 등이 안가에서 잦은 당정회의를 갖고 개편문제를 논의,특히 박정무장관은 연일 심야작업을 계속해 그의 주도적 역할을 시사했으며 노특보도 김영삼총재를 몇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주요 관심사는 민정ㆍ민주ㆍ공화가 합당하되 민주ㆍ공화가 먼저 한 뒤 민정이 합류할 것인가 아니면 한꺼번에 뭉칠 것인가등 절차와 시기문제였다고. 결국 반발과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조기개편」쪽으로 결론이 왔으며 호남대 비호남 대립,혹은 극우인사 포함 인상을 배제키 위해 보수대연합 대신 「중도연합」의 기치를 내걸기로 결정했다.
  • 외언내언

    마리온 배리 워싱턴시장이 전격 체포되어 기소될 것으로 알려진다. 마약복용 10년 소문의 꼬리가 현장에서 잡혀버린 것. 이 소식에 오버랩되는 사람이 있다. 파나마의 노리에가 장군. 「마약밀매혐의」로 미국의 법정에 선다는 것이 아니던가. ◆마약문제로 남의 나라 사람까지 잡아간 미국이었는데 수도의 행정 책임자가 마약복용자였다니. 대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지난 79년 시장으로 당선된 이래 3기째 연임해올 만큼 「신망받는 수도의 얼굴」.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나는 것은 범법자이니까 그렇다 치자. 「마약전쟁」을 선언한 미국의 꼴은 무엇인가. ◆그렇잖아도 워싱턴은 「살인 수도」 랭킹 1위. 지난 가을 FBI(연방수사국)가 발표한 바에 따를 때 88년의 워싱턴 살인율은 10만명당 59.5명이었다. 그같은 비율은 런던의 28배,마드리드의 32배,도쿄의 24배에 이르는 숫자. 올해 들어서도 하루 1.5명꼴이 넘게 살인이 발생한다. 그 살인이 대부분 마약과 관계된다. 마약 시장이 다스리는 곳이니 당연하잖으냐는 말이 나오게도 돼 있다. 그는 며칠 전의 기자회견에서 마약 단속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그 「성과」로 자기 자신이 체포된 것인가. 연기가 뛰어난 위선자였구나 싶다. ◆남의 윗자리에 앉을 수 있는 요건으로서 요구되는 것은 높은 도덕성. 그래서 정치의 요체에 대해 묻는 계강자에게 「정자정야」(정치는 정이다)라고 답한 공자는 다시 덧붙이지 않던가. 『정경인 당신이 바르게 처신한다면 누가 감히 부정하겠습니까』 하고. 마르코스가 왜 망했던가. 차우셰스쿠 부부는 왜 죽어야만 했던가. 부도덕한 2중인격이 언제까지고 감추어지리라 생각했던 배리씨의 처지가 가여워진다. ◆그가 흑인이기에 혹 사시적인 견해가 따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밀카메라에 잡혀버린 그는 흑인들의 선망하는 눈길에 재를 뿌린 셈. 그쪽의 허물이 더 크다고 할 수도 있겠다.
  • 내일 후기대 예비소집

    전국 61개 후기대학들이 22일로 예정된 입시에 앞서 19일부터 21일사이 수험생들을 예비소집,수험표를 교부하고 주의사항을 시달한다. 19일에는 동덕여대 상명여대 총신대 등 5개대학이,일요일인 20일에는 한양대 숭실대 덕성여대 서울여대 등 24개대학이 학생들을 예비소집한다.
  • 북한,정치범 15만2천명 수용/82년이후 급증

    ◎집단수용소도 12곳으로 늘어/정보당국 밝혀 북한에는 현재 12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가 전국에 흩어져 있으며 그 수용인원은 15만2천여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의 고위 정보당국자는 17일 『북한탈출 동구권 유학생 및 귀순자,북한지역 여행자들의 진술과 기타 정보자료를 종합분석한 결과 북한에 정치범과 그 가족들만을 강제수용하는 정치범 집단수용소가 82년이후 4개소가 증설되어 현재 12개소가 되었으며 수용인원도 10만5천여명에서 4만7천여명이 늘어난 15만2천여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에서 일반 범죄자를 수용하고 있는 교화소와는 달리 통상 「○○관리소」라고 불리는 정치범 집단수용소는 82년도까지 함경북도의 온성ㆍ회령ㆍ경성,함경남도의 정평ㆍ요덕,자강도의 희천,평안북도의 용천ㆍ영변 등 8개소였으나 그 이후 체제내부 불만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함경남도의 덕성,자강도의 동신,평안남도의 개천ㆍ북창 등에 4개소가 증설됐다』고 말하고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 총면적은 1천5백8㎢로 국토의 약1.23%,수용인원 15만2천여명은 북한 전체주민의 0.7%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정치범 집단수용소에는 이른바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세습체제 반대자,개방정책을 주장하는 개혁세력 등 정치범과 그 가족이 재판절차도 없이 강제수용되어 있는데 86년 2월 권력서열에서 사라진 부총리 홍성룡,전 국가보위부장 김병하,전 부주석 김동규 등이 현재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89년 12월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전 총리 이근모도 수용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 「김정일 후계」 반대자 대거 수용/북한 정치범 왜 늘어났나

    ◎전 부수상 박금철ㆍ이근모 등 포함/군 고위층ㆍ북송교포까지 대상에/하루 5시간 잠자며 “종신 강제노역”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는 1956년에서 58년에 걸친 「8월종파」 사건 연루자와 가족들을 특정지역에 집단수용함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1958년에서 60년에 걸쳐 실시된 중앙당 집중지도와 1966년에서 70년에 걸쳐 계속된 주민등록사업 과정에서 반혁명 적대분자로 「위해하다고 지목되는 자」들을 색출,수용함으로써 본격화 됐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1개리 정도의 지역에 설치됐던 정치범 집단수용소의 규모는 점차 확대,수개 리를 합친 1개군 절반정도의 크기로 늘어났으며 그 수도 크게 증가했다. 특히 1973년부터 김정일 후계체제의 구축을 위한 정치투쟁조직인 3대혁명 소조활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그 수용인원이 크게 늘어났고 규모도 더욱 확대됐다. 80년 10월 노동당 6차대회 이후에는 김정일이 당권을 장악,반대자 또는 방해자들을 「반당종파」라는 딱지를 붙여 계속 숙청했고 이 결과 82년 현재 8개지역에 약 10만5천여명이 사상개조사업이라는 명분아래 사회와 격리된 채 종신강제노역에 처해진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바에 의하면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는 1월 현재 지난 82년 보다 그 수와 수용인원에서 각각 50%씩 늘어난 12개지역 15만2천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북한당국은 이들 12개지역 수용소에 대해 비밀번호를 부여,관리하고 있음도 새롭게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 12개지역(지도와 별표참조)중 함경북도 온성군과 회령군 경성군에 있는 것은 전 부수상 박금철을 비롯,전 당비서 김도만ㆍ김광협,전 당정치국후보위원 유장식 등 주로 김일성ㆍ김정일 체제에 반대 또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반당ㆍ반혁명분자를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자강도의 희천시ㆍ동신군등에는 전 국가보위부장 김병하,전 제7집단군사령관 김양춘,전 제3집단군사령관 정병갑 등 군부와 권력기관내의 불평ㆍ불만분자 등을 주로 수용하고 있으며 함경남도 요덕군,정평군 덕성군에는 대부분 휴전선에 인접한 황해도 강원도 주민을 비롯해 친일ㆍ반동분자로 분류된 자들을 집단이주시켜 사회와 격리해 놓고 있다. 이밖에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에 있는 집단수용소에는 유사시 평양에 대한 위협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주로 부화범등 잡범과 경미한 사상범을 수용하고 있다. 정치범 집단수용소의 수용대상 및 수용생활 관리실태 등은 다음과 같다. ▷수용대상◁ 처음에는 주로 반당ㆍ종파분자 또는 반혁명분자ㆍ악질지주ㆍ친일파ㆍ종교인 등과 그 가족들이었으나 점차 노동당의 간부나 당원으로 있다가 권력에서 밀려난 정치인과 그 가족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희생된 정치적 피해자들이 수용인원의 주류가 되었으며 일본에서 귀국한 북송교포 가운데 북한체제를 비판한 사람들도 상당수 수용되어 있다. ▷수용소생활◁ 수용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새벽 4시에 기상,6시까지 아침식사를 마치고 작업장에 들어가 작업량을 부여받고 7시부터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하오 8시까지 작업을 계속한다. 이들이 하는 작업은 주로 석탄과 광물을 캐는 갱도작업과 벌목,개간 등 중노동이며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하오 11시까지 2시간에 걸쳐 자기비판을 위주로 한 학습시간을 갖고 난뒤 취침에 들어간다. 이같은 일과는 휴일도 없이 연중 계속된다. 이들이 주거하는 주택은 통나무로 엮어 만든 귀틀집(4평정도)이나 토굴을 파서 살고 있으며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통나무로 만든 집단주택에 합숙토록 하고 있다. ▷관리 및 운영실태◁ 국가보위부가 수용소의 모든 업무를 총괄 관장,조정 통제하고 있으나 경비업무는 사회안전부 산하 인민경비대에서 맡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김정일 체제강화를 위해 김정일이 직접 실질적인 모든 권한행사를 총괄하고 있다. 정치범과 그 가족이 일단 수용되면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하는 공민증을 우선 압류하고 모든 기본권의 박탈은 물론 친지의 면회,외부와의 서신연락 등은 완전히 차단한다. 집단수용소는 표준시설로 외곽철책선,경계초소,내부철책선으로 탈주의 방지와 외부와의 격리를 목적으로 한 방호구조물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관리소ㆍ수용막사ㆍ집단농장ㆍ사상학습소를두어 자급자족체계와 사상개조를 위한 기본적 요소만을 구비하고 있으며 처형장도 설치되어 있다. □수용중인 주요인사 ●성명:김도만 숙청 연월:1967.3 당시의직책:당비서 숙청 이유:당정책에 불만 ●성명:박금철 숙청 연월:1967.4 당시의직책:당정치위원,부수상 숙청 이유:당정책에 불만 ●성명:김창봉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부수상,민족보위부장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김양춘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7집단군 사령관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정병갑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3집단군 사령관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허봉학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대남사업총국장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김광협 숙청 연월:1970.11 당시의직책:당비서 숙청 이유:반당ㆍ종파분자 ●성명:유장식 숙청 연월:1975.9 당시의직책:당정치국후보위원비서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동규 숙청 연월:1977.10 당시의직책:부주석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병하 숙청 연월:1982.1 당시의직책:국가보위부장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경련 숙청 연월:1982.1 당시의직책:부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홍성룡 숙청 연월:1986.2 당시의직책:부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이근모(?) 숙청 연월:1988.12 당시의직책: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 도약과 시련… 갈림길에 선 민정/창당 9돌… 오늘의 과제와 진로

    ◎「과거터널」 벗어나 운신의 폭은 넓어져/소외그룹 무마,당내결속이 “발등의 불”/정계개편ㆍ지자제선거가 시험무대 될 듯 민정당이 15일 창당 9주년을 맞아 제2의 도약을 다짐했다. 당 지도부가 생각하고 있는 도약의 받침판은 지자제선거와 정계개편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권 행사들이 민정당의 새로운 시련의 무대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창당 기념식에서는 유달리 단합과 결속이 강조됐다. 5공청산 터널에서 벗어난 민정당의 미래가 찢겨있는 범여권을 결속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당 9주년을 맞은 민정당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안개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민정당의 외적 환경은 모처럼 양호한 상태로 파악되고 있다. 대국민 관계는 창당이래 최상의 상태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로부터 해방됨으로써 동시에 국민들의 적대적인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정치권에서의 위상 역시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민정당을 2년 가까이 짓눌러 온 여소야대는 정계개편이 운위되면서 집권민정당의 운신을 방해하는 결정적 장애물로서의 자리에서 비켜서고 있다. 창당이래 끊임없이 목을 죄어 온 정권의 정통성 시비가 해소되고 국민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거두어진만큼 민정당은 적어도 지난 8년보다는 한결 나은 가능성의 언덕위에 서 있는 셈이다. 반대로 민정당의 내부상태는 가장 나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적 위기를 극복해 온 원동력이었던 여권의 무조건적인 결속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소야대 환경에서의 새로운 생존논리 도입과 5공 청산 과정을 통해 당내외의 연대의식이 심각할 정도로 훼손됐다는 점을 민정당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내부의 위기는 세가지 정도의 방향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통치권자의 수직적인 당 장악력이 민주화와 여수야대 현상으로 약화된 데 비해 이를 대체할만한 수평적 힘의 연결고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두번째는 5공 청산과정ㆍ중평연기 결정에서 나타난대로 당내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잦은 당권행사가 당내의 연대의식을 훼손했다는 점일 것이다. 중집위에서 결정한 당론과 당 핵심부의 실제당론이 자주 다르고 이같은 방법으로 큰일을 치러옴으로써 당권 행사의 도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의문은 5공 청산이 야당과 국민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과 이해의 결실로서가 아니라 자기팔 자르기를 통한 달래기로 끝남으로써 증폭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세번째는 정권 재창출과 이에 따른 권력이동 과정에서 많은 소외그룹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낙천자 그룹,원내에 늘어가고 있는 많은 무관심 그룹이 민정당의 제2의 도약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정당이 차지한 새로운 가능성의 언덕은 내부의 단결과 연대의식의 희생 위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결과로 외부의 도전으로부터 벗어난 민정당은 내부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 새 도전 앞에 놓여있다 할 것이다. 민정당은 이날의 창당 기념대회에서 단합을 강조하는 것으로 내부 상처의 치유에 착수했음을 시사했다. 당 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결속해 민족적 과업을 수행해 나가자고 역설했다. 노대통령이 일요일인 14일 신구 핵심당직자들을 불러 골프모임을 가진것이나 이례적으로 창당기념대회에 권익현 전대표위원을 초청,단상에 자리를 마련한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민정당은 당 총재의 친정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분열을 치유하고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박태준대표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당의 최고 책임자는 역시 총재이다.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좋다』며 총재 친정체제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단임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가 당 분열의 항구적인 치유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당내 의견은 엇갈리는 추세다. 이에 찬성하는 그룹은 당내 민주화를 통한 구조적인 당분열 해소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지만 여권의 속성상 실제로는 당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당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을 든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통치권 차원에서 친정체제로 당을 관리하면서 시간이 상채기를 아물게 하는 도리밖에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반해 더 많은 당내 인사들은 당내 경선체제의 조기확대 도입을 통한 자생력 강화만이 당의 정권 재창출을 가능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임대통령의 친정강화나 대증요법식의 당분열 해소책은 일시적으로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지자제선거나 정계개편같은 당의 명운을 좌우할 큰 정치행사에 대응할 효과적인 방안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당내 민주화에 대한 이같은 상반된 시각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또 하나의 분열원인이 되고 있다. 지자제선거 역시 한정된 당의 추천권을 놓고 당의 하부조직력이 시험받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계개편은 어느 당이나 마찬가지지만 민정당의 향후 위상을 가름하는 결정적 전기일 수 밖에 없다. 민정당,더 좁게 당 핵심부가 생각하는 정계개편은 기존이익의 확대수호라는 단기목표보다는 다음 정권구성과 관련,민정당의 독자적인 정권 재창출이 어려울 상황에 대비,사전에 안전장치를 강구하는 방어적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출발점을 갖기 때문에 정계개편의 최종 목적지도 야권의 부분적 흡수통합을 통한 원내 과반수 획득이나단순한 보ㆍ혁 구도로의 개편보다는 일본 자민당식의 자유민주 세력 대연합의 형태에 비중이 두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같은 여권 핵심부의 생각은 지난주 청와대회담에서 이미 민주ㆍ공화당총재들과 교감이 이루어진 것으로 들리고 있다. 이같은 자민당식 대연합을 상정할 때 당연히 「헤쳐모여」가 이루어지게 되고 신당의 지분배분이 정계개편의 가장 큰 과제가 된다. 당 지도부가 부총재 조기경선에 굳이 반대하는 것도 자민당식 헤쳐모여 과정에서의 일사분란함으로 현 지도부가 신당의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하기 위한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당 내분과 정계개편은 불가피하게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를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민정당의 현안인 셈이다.〈김영만기자〉
  • 세찬 여론에 “좌초”… 「골프장 해프닝」/재벌의 “자진취소”시말

    ◎한땐 「재산권 침해」들어 “제소하겠다” 반발/직원 명의 땅매입 드러나 증여세 “새 불씨”/재무부,재발방지 위해 소관부서에 신중인가 요청도 그동안 세찬 여론의 비판속에 논란이 되어온 삼성ㆍ럭키금성ㆍ코오롱ㆍ한국화약ㆍ동아그룹등 5개 재벌기업의 골프장건설은 이들 재벌들이 스스로 골프장 건설계획을 취소함으로써 일단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대기업 여신관리강화방안 발표이래 한달만에 골프장건설을 위한 토지매입승인 방침을 굳혔던 재무부와 은행감독원은 적지않은 상처를 입었고 여론에 밀려 본의 아니게 골프장 건설계획을 백지화한 재벌들은 기업의 도덕성에 큰 훼손을 초래했다. ○…재무부와 은행감독원은 때아닌 재벌의 골프장건설 파동으로 큰 사회적 물의를 빚다가 재벌 스스로 건설계획을 거둬들이자 크게 안도하면서도 『이번 일로 연초부터 대단한 홍역을 치렀다』고 푸념. 은행감독원 관계자들은 『재벌들이 은행돈을 빌려 부동산투기를 일삼고 있다는 비난도 들을 만큼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일을 계기로재벌기업 일부로부터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갈 소지가 있다는 근거없는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해 큰 곤경을 겪었다』고 토로. 그러나 이들 실무자들은 『지난해 12월2일 여신관리대상 재벌기업들의 골프장 신규진출을 규제하는 새로운 여신관리규정이 발표됐을때 이 조치의 경과규정에 대한 명백한 언급은 없었지만 어떠한 입법조치나 행정조치에서도 소급적용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정책당국의 고충을 설명. ○…5대재벌의 골프장건설계획 취소는 정부당국이 해당재벌들에게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며 종용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과정에서 일부재벌들은 「사유재산침해」를 명분으로 제소가능성을 비치는등 강력히 반발했다는 후문. 거센 여론에 밀려 가장 먼저 순응한 곳은 삼성그룹. 경기도 용인군에 계열사인 중앙개발을 통해 18홀의 호암골프장을 건설하려고 했던 삼성은 이미 2개의 골프장을 갖고 있는데다 「건설후 2년내 매각」이라는 각서를 쓰면서까지 골프장건설을 강행할 실익이 없다는 판단아래 일찍이 그룹지도부에서 철회를 결정했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그동안 골프장을 하나도 보유하지 않고 있어 이번 골프장건설사업에 전력투구했던 럭키금성그룹은 『다른 재벌들과 달리 바이어접대를 위해 골프장건설이 불가피했는데 여론재판 때문에 싸잡아 피해를 입었다』며 퍽 아쉬운 눈초리. 그러나 럭키금성은 경기도 광주에 건설 예정인 36홀짜리 골프장부지 가운데 18홀은 이미 지난해 3월8일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으로부터 골프장용지매입승인을 받아 18홀짜리 골프장 하나를 처음으로 갖게됨에 따라 『불행중 다행』이라는 반응. 코오롱그룹은 경북 월성군에 갖고있던 72만평규모의 목장이 지난해 11월 축산관리법에 의해 재벌들의 목장소유가 제한받자 발빠르게 골프장으로 용도변경신청을 냈으나 이마저 불가능하게 됐다. 이밖에 동아그룹은 지난해 11월24일 여신관리제도개편직전에 경기도 안성에 36홀짜리 골프장건설사업승인을 신청,막판에 「무임승차」식 골프장건설을 추진했으나 이 또한 좌절됐고 한국화약은 사업신청을 낸 태평양건설이 지난 87년4월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된데다 비주력기업으로 부동산 취득이 불가능해 당초부터 골프장건설승인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5대재벌에 대한 증여세 추징여부. 국세청은 이들 재벌들이 각각 60만∼80만평에 이르는 골프장부지매입과정에서 회사의 공금을 유용,임ㆍ직원명의로 땅을 사들인 사실이 드러나면 상속세법규정에 따라 증여세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관계자는 『이들 재벌이 임ㆍ직원등 제3자명의로 토지를 취득했다고 하더라도 장부에 대금지급과 토지매입 사실을 기록하는등 기업이 직접 취득한 것이 명백하면 증여세를 물릴수 없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제3자명의신탁에 따른 의제증여로 보아 증여세과세대상』이라고 못박았다. 현재 삼성의 경우 골프장부지를 지난 70년대에 계열사 대주주의 명의로 구입,과세대상이 되지 않지만 그밖의 일부재벌들은 부지구입시 제3자 명의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증여세추징문제가 새불씨가 될 가능성이 없지않다. 재벌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밖에 골프장건설에 사용하려고 계획했던 토지를 놀릴 수밖에 없는 큰재정적 부담을 안게됐다. ○…이에따라 재무부는 앞으로 재벌기업들의 골프장건설물의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10일 소관부서인 체육부에 공문을 보내 47개 여신관리재벌기업들에 대한 골프장 사업승인에 신중을 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골프장파동은 골프인구급증을 틈타 재벌들이 회원모집만을 통해서도 골프장건설비용을 충당할수 있다는 「입도선매」식 골프장건설붐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평가된다.
  • 수도권대ㆍ지방캠퍼스 강세/후기대 원서 마감

    ◎지방대 인기학과 눈치작전 극심/평균경쟁률 4.58대1/작년보다 높아져… 분할모집대는 하락/인천대 체육학과 18.8대1로 최고 올해 전국 61개 후기대학(20개 분할모집대 포함)이 6일 하오5시 입학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5만6천3백36명 모집정원에 25만7천9백96명(본사 잠정집계)이 지원,지난해의 4.17대1보다 조금높은 4.58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처럼 후기대 입시경쟁률이 다소 높아진 것은 지난해에 비해 수험생수가 9만여명이 늘어났는데도 대학정원은 지난해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원서접수결과 중상위건 이상의 전기대 탈락자들이 몰리는 서울소재 분할모집대학인 성균관대ㆍ한양대ㆍ한국외국어대ㆍ경희대 등을 비롯,12개대학은 수험생들의 안전하향지원이 두드러져 전체경쟁률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평균경쟁률 4대1보다 낮은 3.5대1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서울소재 대학의 야간학과와 지방캠퍼스 그리고 경원대ㆍ인천대 등 수도권지역 대학이 지난해처럼 계속 높은 경쟁률을 나타내는 지방 역류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서울소재 분할모집대학 가운데 전기대 합격선이 2백60점대 이상인 경희대 한의예과와 한양대 의예과 및 공과계열 성균관대와 한국외국어대 상ㆍ법정계열은 평균 4대1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보여 대학전체 경쟁률을 웃돌았다. 그러나 이들 대학이 나머지 학과들과 지방대 인기학과는 중하위권 학생들의 극심한 눈치작전으로 마감 직전인 5시쯤 지원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입시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전기대입시에서 탈락한 고득점 재학생들의 상당수가 후기지원을 포기하고 재수에 들어감으로써 상위권 지원자의 절대수가 줄어들었고 고득점지원자는 물론 하위권학생들도 안전합격을 노려 하향지원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 중앙대,동국대 등이 올해 분할모집을 처음 실시해 중상위권학생들을 분산시키는 구실을 함으로써 서울소재 대학의 지원율을 더욱 떨어뜨렸다. 당초 경쟁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던 동덕ㆍ덕성ㆍ서울여대 등 여자대학도 지난해와 비슷한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번 입시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나타낸대학은 인천대로 1천5백70명 모집에 1만4천3백84명이 지원,9.16대1을 기록했으며 역시 수도권대학인 경기대가 2천3백명 정원에 1만9천5백45명이 지원해 8.49대1,그리고 경주 관광대가 2백90명 모집에 2천83명이 지원 7.18대1로 경쟁률이 높았다. 학과별로는 인천대 체육학과가 30명모집에 5백63명이 지원,18.8대1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으며 경원대 한의예과가 17.2대1,경기대 서울캠퍼스 야간강좌 건축공학과가 17.9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모집정원 1천60명인 한양대는 4천2백92명이 지원,지난해의 4.27대1보다 조금 낮은 4.05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으나 처음 분할모집을 한 공과대 8개학과는 상위권학생들이 대거 몰려 평균경쟁률이 7.5대1이나 됐다. 성균관대도 1천1백명 모집에 2천8백49명이 지원,지난해 3.3대1보다 낮은 2.59대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올해 첫 후기분할모집을 실시한 중앙대 동국대는 각각 3.7대1,4.64대1로 서울소재 다른 대학과 경쟁률이 비슷했다.
  • 전 전대통령의 국회증언을 듣고/“「역사적인과」매듭,화해시대 열자”

    ◎김정휴 구룡사주지 경오년 찬란한 햇빛과 더불어 대망의 90년대 첫 아침이 밝았다. 따지고 보면 새날과 헌날이 따로 있겠는가­. 한 생각 속에 무량한 세계가 있고 그 한량없는 세계 역시 마음 속에서 되풀이된다. 우리는 역사의 발빠른 변화는 체험하면서도 일념만년거 섭리를 깨닫지 못하며 살고 있다. 한 생각 속에 만년이 지나듯이 21세기 역사의 첫 장을 여는 새 아침에 희망과 새로운 결의로 자기혁신의 첫 출범을 할지언정 지난 역사에 머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일념돈탕제의 정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모든 죄업과 행위를 한 생각으로 버리고 제거하는 자세를 가질 때 90년대의 희망찬 설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시간 전만 해도 과거청산을 위해 전임대통령이 국회에서 역사적 증언을 했고 이로 인해 5공 당시 통치권으로 야기되었던 모든 문제는 만족하지는 못하지마는 80년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회 양 특위가 사전에 작성한 질문에 전임대통령은 답변을 했다. 그러나 국민이 기대했던 만큼 진실규명에 미흡했고 논란이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이 문제를 재론하여 추궁하기보다는 국가발전을 위해 역사적 교훈으로 남겨두어 다시는 이러한 정치적 부도덕성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5공 당시 정치적 부도덕성에 협조한 다수 정치인들을 비롯해 언론들은 이런 역사적 비리를 보고도 진실을 규명치 않은 점을 뼈 아프게 자성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럴듯한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이웃을 더불어 감싸고 진실을 말할 때 이루어진다. 옛말에도 위정자가 국민 앞에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기 허물을 뉘우칠 때 올바른 정치는 이루어진다고 했다. 권력형 비리와 광주사태,12ㆍ7법란으로 인해 많은 국민이 상처를 입고 있지만 이제 역사적 인과를 매듭짓고 용서와 화해의 시대를 열어 참다운 인간화시대를 조성해야 되겠다. 역사는 언제나 인과를 되풀이 한다. 역사적 인과와 업보가 있었기 때문에 전임대통령이 자신의 통치행위에 대해서 국회에서 증언을 했고,그 업보에 의해 백담사로 은둔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80년대의 역사적 인과를 더 이상 되풀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국민이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원한을 갖고 있더라도 이 세상의 원한은 원한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다. 덕행으로 원한을 갚을 때 만이 인과는 마무리된다. 이제 관찰해인의 인욕정신을 새 아침에 가져야 하겠다. 우리를 해롭게 하는 자들의 악행을 참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만이 과거집착에서 벗어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적 가해자는 참회로써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참회란 지은 허물을 뉘우쳐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맹세이다. 만약 인욕과 참회로써 지난날 역사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역사는 퇴보하고 말 것이다. 정치란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며,대립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대립과 반목을 일삼아 왔지 계층간의 갈등을 좁히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왔다. 90년대 당면한 과제 가운데 시급한 현안문제는 정치와 사회안정이다. 정치적 안정 없이는 사회발전과 경제성장도 기약할 수 없다. 지금 인류는 새로운 역사의 변혁을 맞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변혁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할 때 지난날 우리가 체험했던 혼란은 되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맞는 90년대는 한국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정치민주화는 말할 것도 없이 경제ㆍ사회의 성숙과 남북간의 관계개선에 있어서도 90년대는 우리에게 전진과 후퇴,성장과 실패를 가름하는 결단의 10년으로 봐야 한다. 20세기를 10년 남겨놓고 21세기를 열어가는 세계사는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 등 대변화의 시대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변혁은 첫째 인간화에 있으며 사회를 민주적으로 재편성 하는 데 있다. 인간정신을 병들게 하는 폭력ㆍ마약ㆍ사치와 향락을 추방하고 고통과 슬픔을 같이 나누어야 하는 요익중생의 공동체를 우리는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90년대는 인간의 자유와 정의가 사회 속에 구현되고 중생을 유익케 하기 위해서는 위정자는 국민을 진실로써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고 실천하기는 실로 어렵다. 전임 대통령의 증언을 통해 나타났듯이 진실을 말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모두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은폐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역사는 스스로 진실을 증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전임대통령의 국회증언을 부끄러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자유스러워지는 진실의 지혜를 찾아 보자.
  • 김재순 국회의장(국회의장ㆍ대법원장ㆍ4당대표 신년사)

    ◎반목 청산,위대한 세기를 열자 지금 우리는 나라 안팎으로 엄청난 변화와 격동의 소용돌이에 처해 있다. 대립과 반목,분열의 과거를 청산하고 90년대는 창조와 발전,화합의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해 위대한 우리 세기를 여는 데 튼튼한 초석을 놓는 일이 가장 절실하다. 이러한 일의 시작은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미래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을 함께하는 데서 가능하며 공동체의 기본가치는 인간화와 도덕성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존엄확보와 도덕성회복의 바탕 위에서 합심해 「강한 나라」를 만들어가야겠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