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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변 떠도는 북한탈출 ‘난민’(김정일의 북한:7)

    ◎탈북자 2천여명 추정… ‘한국행 밀항 꿈’/배고픔에 강도짓… 여성은 식당일·매춘도/북한서 파견 체포조·조교감시 피해 은신 중국땅을 밟은 탈북자들의 생활은 참으로 고달프다.목숨을 걸고 ‘먹을 거리가 많은’중국으로 건너왔지만,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은 없고 차가운 감시의 눈초리만 기다리고 있다.생존을 위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북한 특무(탈북 체포조)나 조교(북한국적의 조선족),중국 공안원의 감시 눈초리를 피해 다니느라 늘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개산둔에서 만난 조선족 박모씨(28)는 “중국으로 건너온 탈북자들이 먼저 부닥치는 문제는 편안하고 안전한 일자리와 잠자리를 구하는 일”이라며 “여름철에는 공원이나 역대합실 등에서 노숙이라도 할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날씨가 추워 이마저도 어렵다”고 말한다. ○역대합실 등서 노숙 현재 중국땅을 전전하는 탈북자들은 적게는 500∼600명선,많게는 2천명선으로 추정된다.탈북자들은 한국과 가까운 중국 대련 등에서 한국행 밀항을 시도하거나,‘북한의 감시권’인 연변을 떠나 중국내륙의 농촌이나 북경·심양 등 대도시에서 날품팔이를 하며 한국에 갈 꿈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밀항도,날품팔이 자리도 구하지 못한 탈북자들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를 지어 강도짓을 한다고 한다.낮에 산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 마을로 내려와 양식을 털어가는 ‘탈북자 산적’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장백에서 만난 조선족 한모씨(56)는 “탈북자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쌀과 옥수수를 훔쳐간 것이 올들어서만도 10여차례나 된다”며 “중국 공안당국이 몇차례 토벌작전을 벌였으나 번번이 허탕쳤다”고 전한다. ○쌀·옥수수 등 식량 훔쳐 탈북여성들은 식당 및 유흥가로 숨어들어가거나 중국 총각들과 결혼해 은신하고 있다.북한과 가까운 중국 동북3성에서는 식당 보조일을 하거나 가라오케 등에서 ‘술시중’을 드는 탈북여성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심양에서 만난 탈북자 강모씨(25·여)는 “지난 95년 탈북한 뒤 북경·대련의 술집·가라오케 등 7∼8곳을 거쳐 심양까지 오게 됐다”며 “배불리 먹을수 있어괜찮은 편이지만 쫓기고 있는 몸이어서 3∼4개월마다 일자리를 옮긴다”고 말한다. ○농촌총각과 결혼도 탈북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중국의 총각들과 결혼하는 탈북처녀들도 늘어나고 있다.급속한 경제개발 붐을 타고 있는 중국 농촌 역시 처녀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가 버리고 조선족 처녀들도 한국 농촌총각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 처녀들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단동에서 만난 조선족 류모씨(42·여)는 “중국 농촌총각들은 ‘쌀밥에 고깃국’을 먹도록 돌봐주면 되고,탈북여성들은 배불리 먹을수 있는 데다 은신하기도 편해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며 “하지만 조교들의 신고로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북한에 송환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탈북여성들은 ‘최후의 무기’인 몸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쉽게 돈을 벌수 있다’는 조선족 사기꾼들의 유혹에 넘어가 절망의 늪으로 빠지고 있는 것이다.연길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26)는 “연길 시내에만도 ‘탈북처녀 매춘조직’이 2∼3개나 된다”며 “100∼200원(약 1만∼2만원)만 주면 하루밤을 같이 지낸다”고 귀띔한다. 탈북자들이 중국 땅에서 겪는 또다른 어려움은 북한 특무와 조교,중국 공안원들의 감시 눈초리를 피하는 일이다.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중국 전역에 깔려 있는 조교.5천5백명으로 추정되는 조교는 북한 영사관이 있는 중국 심양 총본부를 중심으로 정보망이 거미줄처럼 짜여져 있다.일반 조선족과 구별할 수 없어 자칫 말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곧바로 붙잡혀 북한에 송환된다.임강에서 만난 탈북자 이모씨(36)는 “언제,어디서 잡힐지 몰라 한곳에 정착할 수 없다”며 “연변에서는 도와주는 조선족이 많은 대신 조교들도 많은 탓에 조교들이 적고 안전한 내몽고 등 중국 내륙지방으로 떠나는 탈북자들이 많다”고 털어놓는다.그는 ‘고달픈 이국생활이지만 북한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처벌도 처벌이지만,배고픔만 기다리고 있는 북한으로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북한의 탈북미수자 수용소/오지 계곡 막아 토굴형태…도마다 5∼6곳씩/1명씩 격리수용… 하루 강냉이죽 한끼로 연명 체제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북한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주민들의 국경탈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북한 주민들의 공포심을 불러 일으켜 탈북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탈북자 수용소.중국이나 러시아 등에서 체포한 탈북자들을 넘겨받아 수용하는 이 탈북자 수용소는 산간오지의 산골짜기를 막아 반토굴 형태로 만들어졌다.수용소의 관리는 도·시 보위부가 맡고 있다. 탈북자 수용소는 1명씩 격리 수용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수용소 내부는 한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의 크기로 돼 있다.식사 등을 집어넣을 작은 문 외에는 창문 등의 일체 다른 시설물이 없다.있으나마나한 전등도 자살을 우려,접근이 어렵도록 벽속에 넣어두고 있다.잠을 잘때 담요는 가슴까지만 덮고 반듯하게 누워서 자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살할 의도가 있다고 보고 처벌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용된 탈북자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식사는 강냉이등을 섞은 죽이 전부다.그나마도 하루에 한끼 먹기가 쉽지 않으며,용변도 하루 한번씩 5∼10분만 허용되고 있을 정도다. 탈북자 수용소는 현재 1개도에 5∼6개씩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함경북도 금덕,원산시 덕원,양강도 혜산·백암,강원도 용담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특히 원산시 덕원에는 일반 정치범을 포함해 4천∼5천명이 수용돼 있으며,평안남도 중산 수용소는 여성들만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연길에서 만난 탈북자 이모씨(27)는 “탈북했다가 잡히면 종신형을 선고받고 정치범으로 분류돼 수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가족들의 면회는 꿈도 못꾼다”고 말한다. “탈북자 수용소에는 탈북자 이외에도 간첩혐의자·정치범 등도 같이 수용돼 있다”며 “탈북자 수용소에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들다”고 그는 덧붙인다.
  • 지하철 단상/조남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굄돌)

    서울의 지하철은 교통체증도 상관없고 목적지에 신속하게 도착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그러나 문제는 요사이 같이 찌는 듯한 무더운 날이다.차내의 냉방시설은 어느 정도(노선마다 차이가 있지만) 되어 있으나 지하출입구에서부터 승차하기까지의 지하갱도는 냉방시설이 아예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지열과 열차가 뿜어대는 열기가 합쳐져 온몸이 흠뻑 젖기 십상이다.냉방시설을 한다든지 환풍장치를 잘 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쾌적하게 지하철을 이용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에너지 특히 전력에너지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력수요 증가율은 선진국에 비해 높다.미국등 선진국의 경우는 연 1∼2% 증가에 머무르는 반면 우리나라는 약 10%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물론 선진국형 전력소비 형태인 여름철 냉방수요의 증가가 큰 요인중의 하나이다(그러나 1인당 전력소비량은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친다). 전력수급을 관장하는 정부의 관련부처와 한국전력의 고충은 충분히 알고 있다.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발전설비를 확장하고 전력계통 운용을 현대화하여 효율을 극대화하여야 한다.운전중인 발전소는 고장정지·불시정지를 줄여 이용률을 높이고 송·배전 손실률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또한 피크부하관리를 위해서 계절별·시간대별 차등요금제,빙축열 냉방설비,양수발전,축전지 개발에 힘쓰면 좋을 것이다. 에너지 특히 전력의 사용량은 삶의 질의 척도이다.따라서 발전설비의 확장은 불가피하다.이를 위해서는 석탄·석유·천연가스 사용으로 인하여 이산화탄소 같은 환경파괴 물질을 발생시키는 화력발전보다는 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자력발전이 훨씬 유리하다. 서울역 대합실의 에스컬레이터가 단지 전시물이 아니고 항상 운행되어 노약자나 무거운 짐을 가진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때,쾌적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 “박찬호 10승” 폭염도 날렸다

    ◎미 메이저리그서 연승행진… 전국민 환호/역·터미널·피서지 등서 더위 잊고 열띤 응원/청소년에 ‘찬호 신드롬’… T셔츠·모자 등 불티/국위선양 큰몫… 고향집엔격려전화 잇따라 태평양을 건너온 ‘코리아 특급’의 승전보가 한여름 무더위를 송두리째 날려 버리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 선수(24)의 무적 연승행진으로 비롯된 ‘박찬호 열풍’은 어린이와 청소년에서부터 40∼50대 중년층과 가정주부,할아버지,할머니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는 ‘찬호불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박선수의 투구폼을 흉내낸 춤까지 등장했다.또 박찬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직장인들의 출근길 발걸음은 설레임속에 더욱 바빠질 정도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박찬호 상품’이 대인기다.그의 등번호인 61번과 영문표기인 ‘PARK’가 적힌 모자와 T셔츠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박찬호의 전속 모델계약사인 N스포츠용품사 의류영업팀 남기흥 과장(38)은 “박찬호 투수에 대비해 T셔츠와 모자를 각각 1만6천장과 8천개씩 만들었지만 주문이 밀려 소매점에 제때 공급을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스포츠용품점 직원 김미란씨(28·여)는 “박찬호가 5승에서 맴돌때만해도 박찬호 관련상품이 하루에 5점 정도만이 판매됐지만 내리 승리를 따내고 있는 후반기 들어서는 3∼4배에 이르는 15∼20점이 팔려나가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최근들어 공항과 시내 백화점 등에서는 응원용·장식용 태극기가 외국인들에게 날개돋친듯 팔려나가고 있다.‘민간 외교관’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박찬호가 10승을 따낸 1일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에서는 태극기 50개가 모두 동이 났다.직원 김귀순씨(23·여)는 “박찬호가 올들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내외국인 상대로 한 태극기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시카고 커브스팀을 상대로 대망의 10승째를 따내자 TV를 통해 이를 지켜본 대부분의 시민들은 올여름 더위를 식혀준 최고의 청량제라며 환호했다. 박찬호가 2회말부터‘퍼펙트게임’에 가까운 완봉 행진을 계속하는 동안 TV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해 직장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의 화제도 단연 ‘박찬호’였다.언론사에는 박찬호의 현재 성적과 순위를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김포공항 대합실의 TV앞은 박찬호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탑승시간보다 2∼3시간씩 서둘러 나온 여행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전국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의 대합실은 물론,해수욕장과 각종 유원지에서도 피서객들의 눈과 귀가 시합에 집중됐다. 한편 충남 공주시 산성동 박찬호의 고향 집은 잇따라 걸려오는 축하전화를 받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아버지 박재근씨(54)는 경기가 끝난뒤 “승수와 관계없이 찬호가 경기를 잘 치뤄 기쁘고 한없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 “3김시대 마감” 대쪽신화 막오른다/이회창 후보 선출­누구인가

    ◎정계입문 18개월만에 집권당 평정/소신·원칙 앞세워 정계 새바람 기대 ‘대쪽총리’ 이회창이 신한국당 차기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오랜 공직생활 동안 원칙과 소신으로 일관한 이후보는 3김정치의 청산을 기치로 새로운 정치 한마당을 펼쳐 나갈 전망이다.그것은 21세기 선진대국을 향한 화합과 통합의 정치로 요약된다.그의 일대기와 정치철학,국가관 등을 2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죽룡(대쪽 용)의 승천­.‘정치인 이회창’신화의 막이 올랐다. 지난해 1월 정계 입문 이후 불과 18개월만에 그는 집권 여당의 차기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그를 선택하기 위해 21일 열린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인물위주의 새로운 정치마당을 마련하려는 ‘이회창식 정치 실험’을 선언했다.파벌과 지역주의로 대변되던 ‘3김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이대통령후보는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평생의 애독서로 삼고 있다.그는 전쟁터를 옮겨 다니던 마르쿠스 황제를 “위태로운 권력 암투 속에서도 맑은 샘물처럼깨끗하게 자신을 지켜내고자 노력했다”고 평가한다.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소신과 초심을 지켜 나갈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회창식 정치실험 선언 이후보의 호는 경사­‘곧은 역사’다.호에 걸맞게 그는 타협해서는 안될 것과 타협하지 않고 굴복하지 말아야 할 것에 당당했다.때문에 60년 25세의 나이로 인천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후 30년이 넘는 공직생활 기간동안 항상 ‘대쪽’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서슬퍼런 5공시절 대법관으로서 주심을 맡은 전원합의체 사건 16건중 10건에 ‘소수의견’을 낼 정도로 소신과 원칙이 뚜렷했다. 문민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으로 발탁된 그는 ‘소신 감사’를 밀어붙이다 청와대와 갈등끝에 백의종군한다.당시 그는 청와대 비서실,감사원,안기부 등 ‘성역’을 감사의 도마에 올렸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도 평화의 댐,율곡감사와 관련해 서면조사를 받아야 했다.93년 국무총리로 기용된 뒤에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운영 등 헌법상 총리의 역할과 대통령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마찰을 일으켜 4개월7일만에 다시 사표를 던진다. 그러나 그의 강성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은 그를 “가슴이 따뜻한 사람” “만나면 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아랫사람에게 결코 화내는 일이 없고 무슨 말이든 경청하는 습관이 있어 그를 상관으로 모신 사람들은 그를 후하게 평가한다. 판사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도 유명사건이 아니라 배추장사를 하던 어느 청년의 절도혐의를 벗긴 것이었다.경찰서장 집 도난사건과 관련,혐의를 받던 젊은이에게 당시 이판사는 “범인이 아니라면 진실을 제대로 밝힌 재판제도에 감사해야 하지만 범인이라면 판사를 용케 속였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항상 약자를 눈여겨 보고 약자가 부당하게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틈만나면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충고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불의와 타협않는 성품 이후보는 35년 6월2일 황해도 서흥에서 아버지 이홍규옹(93)과 어머니 김사순씨(86)의 4남1녀중 2남으로 태어났다.고향은 선영이 있는 충남 예산이다.본관은 전주이며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안사공의 셋째형 영습공을 중시조로 분파되었다. 이후보의 큰 아버지 이태규 박사(1902∼1992)는 우리나라 자연과학계의 태두이며 아버지 이옹은 서울법대의 전신인 경성법전 출신으로 검찰지청 사무원으로 일하다 해방후 광주지검검사로 특임,20년간 봉직했다.이옹은 충북도지사 구호물자 횡령사건,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등을 담당하면서 강직한 소신을 보였고 이승만 대통령과 친한 충북지사를 구속하는 바람에 괘씸죄에 걸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조사받기도 했다. ○노부모와 매주말 식사 어머니 김사순씨(86)는 전남 담양의 천석꾼 집에서 태어났다.외삼촌 3명이 모두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뼈대있는 가문이다.형 회정씨(65)는 삼성의료원 병리학과장이고 서울대 상대를 나온 동생 회성씨(52)는 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이다.막내동생 회경씨(48)는 연세대와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를 거쳐 현재 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중이다.형제들은 요즘도 매주 토요일 저녁 혜화동성당에서 노부모와 함께 미사를 드리고 식사도 같이 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다. ○부인과 슬하에 2남1녀 어린 시절 이후보는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이사를 자주 다녔다.그는 광주 서석초등학교에 입학,5학년때 월반해 광주서중학교에 진학했다가 곧바로 청주중학교로 전학했다.그리고 경기중학 2학년에 편입,경기고를 거치게 된다.그는 청주중학 시절 가출경험을 자주 회고한다.60점 만점의 수학시험에서 20점을 받고 그 길로 조치원역 대합실에서 밤을 새우다 헌병에게 발견됐다.헌병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버지가 아무 말없이 자신을 가슴에 안았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크고 넓고 따뜻한 가슴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이후보는 부인 한인옥씨(59)와 2남1녀를 두고 있다.큰 아들 정연씨(35)는 서울대 수학과를 거쳐 대외경제연구원에서 근무중이며 둘째아들 수연씨(32)는 동국대를 졸업,유학준비중이다.딸 연희씨(34)는 출가했다. 이후보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당내 지지위원장이 10명 미만이었다.그러나 그 숫자는 불과 6∼7개월만에 1백40여명으로 불어났다.쿠데타나 민중봉기가 아니면 이처럼 단기간에 집권당을 ‘접수’한 사례는 세계 정치사에 유례가 없다고 한다. 정가에서는 이를 이후보의 독특한 퍼스낼리티와 정치권의 기대심리가 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해석한다.이후보가 단기필마로 당에 몸을 담긴 했지만 이미 ‘대쪽’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각인돼 있었고 정치권내에서도 3김정치에 대한 염증으로 새로운 정치구도의 등장에 대한 컨센서스가 물밑에서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요 고비마다 운도 따라 특히 주요 고비마다 시운은 이후보의 편에 섰다.대표 임명 과정이나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와의 마찰때도 그랬고 경선후보간 전선이 ‘이대 반이’로 단순화되는 바람에 한결 승부가 쉬웠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김심의 중립도 이후보에게는 큰 힘이 됐다.지금까지 이후보의 정치역정은 김대통령과 묘한 공조관계를 유지해 왔다.김대통령은 민주계와 이후보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하면서도 정치고비때마다 ‘대쪽’에게 중책을 맡겼고 4·11총선 이후 대망을 품은 이후보도 김대통령에게서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지 않았다. 이후보가 문민정부 초대 감사원장으로 발탁되면서 시작된 두사람의 인연은 93년 쌀파동과 대형사고 등 곤혹스런 정치상황 속에서 이후보가 총리에 전격 기용되면서 계속 이어졌다.6·27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김대통령은 4·11 총선직전 삼고초려끝에 ‘대쪽’을 당 선대위의장으로 영입했고 지난 3월 노동법사태와 한보사건으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김대통령은 예상을 뒤엎고 그를 당 대표에 앉혔다. 이후보는 학창시절 체구가 작아 권투와 당수를 배웠다.골프와 테니스,탁구실력은 수준급이다.독실한 천주교도인 그의 세례명은 ‘올라프’.노르웨이 수호성인 이름이다.정치 고비때마다 “사람이 못하면 하느님이 할 것”이라며 앞날을 낙관하는 것도 깊은 신앙심때문으로 여겨진다.
  • 지하건물 환기시설 의무화/내년부터

    ◎지하철역·상가 등… 위반때 과태료 내년부터 지하철 역사와 지하상가,통로,터널 등 지상건물이 없는 지하생활공간에도 일정한 환기시설과 공기 정화시설의 설치가 의무화된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한국환경기술연구원에 의뢰한 「지하공기질 관리 대상과 공기질 권고기준」의 용역 결과가 나오는대로 관련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지하공기의 질 관리 대상은 우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역사의 출입통로와 대합실,승강장과 지하상가,통로,터널 등으로 꼽고 있다. 지하생활 공기질 관리 대상장소로 선정되면 환기시설 및 공기정화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며 환경부장관이 정하는 공기질 권고기준을 지켜야 한다. 지금까지 지상건물이 있는 지하시설은 공중위생법,지하주차장은 건축법과 주차장법에 따라 규제를 받아 왔으나 지상건물이 없는 이들 지하생활공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리규정이 없었다. 환경부는 내년부터 이들 지하생활공간에 환기시설을 설치하지 않거나 개선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1년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방침이다. 또 공기질의 기준을 지키지 않을때는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관련 공무원의 출입을 저지하거나 검사를 거부하면 3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 서울지하철 노사 단체협상 결렬돼/23일 쟁의발생 결의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지하철공사 노조가 23일 대의원대회를 열어 쟁의발생을 결의키로 해 파업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하철공사 노조는 20일 시청역 대합실에서 조합원 총회를 갖고 지난 4월부터 진행된 공사측과의 임금 단체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서울시가 직접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노조는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23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 화가 이종상(이세기의 인물탐구:124)

    ◎학·예 두루갖춘 화단의 「선사」/수묵채화서 판화­벽화까지 장르 경계 초월/번뜩이는 직관으로 세밀·대담한 화풍 일궈 일낭은 곧잘 「용광로의 불길같은 정열」에 비유된다. 또는 한치의 빈틈없이 「하고자하는 일을 완벽하게 성취해낸 실천자」이기도 하다. 소설가 최인호는 『한국에 두 사람의 선사가 있다고 한다면 그 하나는 바둑의 조훈현이고 다른 한사람은 일랑 이종상화백』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지칠줄 모르는 탐구력과 천재성, 여기에 자존심에 비견되는 욕심마저 겸비하고 있다. 나이 26세때 국전추천작가, 36세에 심사위원을 지냈고 「한국회화」라는 명제아래 심원한 수묵담채와 변화무궁한 구성, 세밀한 필치와 단아대담한 설채로 판화 벽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광활하게 석권하고 있다. 전 국립박물관장이며 예술의 안목이 드높던 최순우씨는 「일랑은 추상이니 구상이니 하는 한계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을뿐 아니라 작품의 폭이나 타고난 화재로 보아 그대로 화가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한 말은 옳다. 이른바 수묵채색을 통합한 「현대진경」에서는 지금까지의 구투를 활짝 벗고 고압전선주나 터널, 쇠를 녹이고 달구는 노동현장을 등장시켜 박진감있는 결집을 펼치는가 하면 산수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원형상에서는 「돌기와 억제, 확산과 응축, 끊임없는 생성의 열기」로 조화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격정적으로 일구어놓는다. 평론가 오광수는 「이는 필력과 소묘력, 전통과 맥을 연결시키는 지성의 뒷받침없이는 이루어질수 없는 결과이며 견고한 아카데니즘과 다채로운 실험정신에서 구축된 것」임을 찬탄한바 있다. 그리고 「다방면에 걸쳐 일총한 재주를 보이는 탓에 그의 그림에서는 항상 섬광이 빛난다」고 덧붙인다. ○26세 국전추천 작가로 프랑스의 저명한 레스타니도 그의 「질료에 대한 묵시적 동작성은 마그마속에서 녹아내리는 근원적 생동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먹으로 그린 유려한 수묵화와 대지의 소묘, 이런 선묘를 구성해내는 격랑과도 같은 화면은 그가 회화적 질료표현의 대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직관의 샘물이 마를줄 모르는 이종상」이란 인물은 「드믈게 만나지는 강인한 거인」으로서 「그를 두고 번뜩인다고 표현하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다. 외화대신 의경을 존중하는 원형상의 특징은 현란한 칠보작업에서도 거침없이 나타난다. 그때의 화면은 「중앙으로부터 꽃처럼 피어나는 구조」「마치 분화구에서 분출되는 에너지」가 날카로운 금속성의 파장으로 사방에 흩어지는 형국이다. 굵은 붓자국이 자유로운 선영을 이루는 가운데 그가 창출한 동판유약화는 장엄한 「천지창조」의 선율이 물결치고 작품이 뿜어내는 결연한 함성에 보는이들은 압도당하고야 만다. ○지칠줄 모르는 실험정신 멜방이 달린 진바지를 입고 7백도가 넘는 불가마(로)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일랑의 모습은 62년 국전에 출품했던 바로 「작업」의 주인공이며 오늘의 그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것이 아님을 경외심으로 응시하게 된다. 동문민의 「만권서를 읽지 않고 만리고행으로 흉중의 진탁을 씻어버리지 않으면 화가가 될수 없다」는 문구에 공감하여 그는 문기와 서권기가 충만한 「화중유시」를 구사해 내었고 화론이 출중한 것도 화단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한동안 지필묵을 둘러메고 강산만리를 돌면서 각지역의 산세나 풍광의 특징을 꿰뚫어 한때는 「지리학자」란 별명을 듣기도 했다. 역사의 내구성과 자연의 미래를 농묵으로 그린 「독도」「남산」시리즈들이 그때의 산물이다. 자연을 그릴때도 자연의 외관을 그리지 않고 자연의 내면의 정기에 파고들어 자연스러운 질서와 형태를 마음속으로 읽어낸다. 생명의 원질을 포착한 기운생동은 「정신주의 향상성」과 현실에 감추어진 정신의 실체로써 「동양의 기사상과 기운론」에 바탕을둔 최근의 「기시리즈」가 이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그의 최근의 작품은 더욱 방대하여 세로 9미터 가로 18미터의 포항문화예술회관의 무대막을 제작하는가 하면 그가 빚은 마리아조각상은 금빛의 장미장식과 함께 눈부신 화사의 극치를 과시해 보인다. 후리후리한 키에 강인한 기상이 특징인 일랑은 소탈하면서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사치를 위해서는 넥타이 하나도 사지 않지만 그림과 관계되는 것은 붓한자루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함부로 전시회를 열지 않을뿐 더러 웬만한 화랑에서 그의 그림을 구입하기란 어렵다. 그와 절친한 시인 김형영은 그의 예술가적 면모를 「미시적 치밀성과 거시적 대담성」으로 요약하고 있다. 「잠잘때도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하나의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 몇날 며칠을 방황하고 모색하다가도 한밤중에 갑자기 일어나 3,4백호 화면을 힘찬 윤필과 비백의 삽필로 일도양단하듯 단숨에 그려나간다.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무슨 일을 하던 기개와 열정이 넘친다는 점에서 그의 후학들도 「섬모심」을 금치못한다. ○“잠잘때도 그림 그린다” 원예학을 전공한 부친 이간재씨와 현윤옥씨 사이의 아들 형제중 차남,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고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서울대미대 입학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면서 어려운 고학생활로 대학을 졸업했다. 월전 장우성의 마지막 제자에다 산정 남정에 이은 「학예를 겸전한 화가」로 한학자 홍진표씨가 「큰 물결일수록 널리 퍼진다」는 뜻의 아호 「일낭」을 지어주었다. 이대 미대 출신인 성순득씨와의 사이에 남매, 5년전 차녀를 잃고 순명의 진리를 깨달아 가톨릭에 귀의했다. 눈코뜰새 없이 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언제나 바쁘다. 낙성대와 중계동, 벽제의 벽화연구소와 평창동 자택 등 네군데의 작업장을 돌면서 성격이 서로 다른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를 만나기란 좀체로 쉽지않다. 자신의 일에 치열하게 매달리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근원이 수화를 두고 「예술을 먹고 예술을 입고 예술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한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는 손끝이나 머리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그래서 사람들이 눈이나 머리로 보는 그림이 아닌,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보는, 의재필선에 다다르고 일체공성의 무위신품을 성취하는 일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보 ▲1938년 충남 예산출생 ▲61년 제10회국전 「장」특선 ▲62년 제1회 신인예술상전 최고특상·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상· 제11회 국전 무감사특선· 문교부장관상수상·최연소 국전추천작가 ▲64년 대한민국국민미술전람회 추천작가초대출품·도쿄국제미술전 초대출품 ▲67년부터 서울대 출강 ▲65­80년 국전 초대출품 ▲74년 국전초대작가·심사위원 ▲75년 미댈러스주립대초대 개인전 ▲77년 동산방화랑초대 이종상진경전 ▲78년 동국대대학원 철학과석사과정 ▲81년 미부룩클린박물관 드로잉초대전·제1회 한국현대수묵화전 추진위원 ▲83년 문공부해외공보관주관 새한국화단면전초대 출품(뉴욕 LA 런던) ▲86년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 ▲88년 현대한국회화전초대작가 준비위원·대전엑스포 문화예술위원·88서울미술대전초대작가 추진위원 ▲89년 동국대대학원서 철학박사학위·호암갤러리초대 이종상회화전 「한국화의 새도전 새벽화」 ▲90년 가나화랑초대 90,FIAC(미술견본시장) 그랑팔레 파리 ▲91년 제1회 서울국제미술제 부이사장·현대미술초대전 운영위원·대전엑스포 문화예술위원·가나화랑초대개인전 ▲93년 현대화랑주최 「기호와 상형전」및 현대미술 100년의 열정전 ▲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주최 한중미술교류전 및 파리한국현대미술제·베니스비엔날레·한국현대회화특별전,서울미술대전 운영위원장·중앙비엔날레운영위원장·이종상 회향전(대전한림갤러리)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 〈저서〉 「화실의 창을 열고」「솔바람 먹내음」
  • 북한의 식량난(흔들리는 동토 북한:2)

    ◎94년 배급사정 악화… 작년부터 “감감”/풀·산나물 끼니 연명… 무뿌리 건지면 “행운”/가축 밀도살 성행… 먹을 것 찾아 유랑 일쑤 『북한에서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변에 훔칠 것이 없나,집어갈 것은 없나,주워갈 것은 없나를 연구합니다.하다못해 자기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라도 하지요』 김경호씨의 셋째 사위 박수철씨(40)는 북한의 식량난과 이로인해 피폐해진 사회상을 이렇게 요약한다. ○80년대까지는 무난 북한의 식량사정은 80년대까지는 괜찮았다.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루 700g,직장 없는 사람은 300g씩 보름마다 배급이 나왔다.비축미,도정미 등 명목으로 일부를 떼이더라도 각각 560g,250g씩은 됐다. 그러나 지난 92년부터 배급이 며칠씩 늦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때만해도 나중에 그동안 밀린 배급분을 다 받을 수 있었다.파탄지경에 이른 것은 94년도부터였다.점차 밀린 배급을 주지않더니 지난해 1월부터는 배급 자체가 완전히 끊겼다. 주민들은 쌀이 없어 옥수수죽이나 풀죽,산나물 등으로 끼니를 대신할 때가 많다.옥수수를 그냥 쪄서 먹으면 금방 동이 나기 때문에 옥수수 알갱이를 떼내 물과 함께 솥에 붓고 끓여 먹는다.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지만 양은 풍족하기 때문이다. 풀죽은 먹기도 어렵지만 소화도 되지 않아 영양실조·위염 등 갖가지 부작용을 낳는다.김씨 가족은 『굶어죽은 사람은 본 적 없으나 결핵,간염,영양실조 등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질병으로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집단농장에서는 옥수수나 벼가 여물기도 전에 주민들이 몰래 뜯어다 먹기 때문에 수확기가 돼도 쭉정이밖에 남지 않는다.회령시의 한 농장에서는 1정보당 강냉이가 평균 280㎏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논·밭을 지나가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일단 손으로 땅을 이곳저곳 파본다.어쩌다 캐지 않은 무뿌리 하나라도 발견하면 큰 행운이다. 육류섭취를 위해 산간이나 농촌 등지에서는 가축 밀도살이 성행한다.돼지고기 1㎏에 노동자 평균월급의 3배가량인 150원이나 된다.식량사정이 그리 나쁘지않았던 김씨가족도 1년에 잘해야 2번 정도 먹을수 있었다. ○비렁뱅이 가족 흔해 식량난 때문에 집을 팔고 유랑민이 되는 주민들도 크게 늘고 있다.처음에는 당국에서도 국가소유인 집을 팔지 못하게 통제를 했지만 지금은 묵인하고 있다.상황이 너무 안 좋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시가지에 번듯한 집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가재도구를 하나둘씩 팔아치우다가 결국은 집까지 내놓고 집값이 싼 농촌으로 간다.거기서도 먹을 것이 없어지면 모든 것을 다 내놓은 뒤 유랑생활에 나선다.역 대합실이나 강변 등지에는 비렁뱅이 생활을 하는 일가족들을 쉽게 만날수 있다. 최현실씨는 『다른 도시보다 비교적 생활수준이 나은 회령에서도 풀죽조차 먹지 못한 채 강기슭에 비닐천막을 치고 떠돌이생활을 하는 가족을 6가구나 봤다』며 『식량걱정을 안하고 사는 가구는 30%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풀죽,산나물 등으로 연명하거나 시장에 가재도구를 내다팔아서 끼니를 이어간다』고 전했다. ○양잿물로 비누 사용 강원도 원산에 사는 큰 딸 명희씨(40)가같이 오지 못한 것도 집을 팔고 유랑생활을 하고 있어 연락을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은 식량만이 아니다.비누는 생선기름이나 양잿물로 만들고,치약은 소금으로 대신한다. 석유나 땔감나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기히터 코일이 큰 인기다.전기가 통하면 붉게 발열하는 철선만을 사다가 진흙과 반죽해서 「사제난로」를 만들어 난방과 취사에 쓴다.전력난에 허덕이는 당국은 전력소모가 많은 전기코일을 단속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많은 주민들은 장사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다.일반 서민들은 쌀이나 옥수수로 떡이나 술을 빚어 장마당에 내다 팔고 장사밑천이 두둑한 사람들은 외지에서 물건을 사들여와 되판다.이들 중에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하루 100∼200원을 버는 사람도 있다.장마당에는 도둑이 많다.그래서 물건을 한쪽은 내놓고 한쪽은 천 등으로 가리고 판다. 중국과의 밀무역도 극성이다.조선시대부터 중국과의 교역지로 유명했던 회령의 밀무역 규모는 북한에서도 몇 손가락안에 꼽힌다.중국으로 나가는 물품은 주로 청자 백자 고서화병풍 등 골동품,아편,금 은 동,분말로 만든 뱀독(사독),송이버섯,금강석 분말 등 특수광물이다.때로는 중앙국가창고에서 나오는 기계장비도 있다.
  • 대낮 지진/전국이 깜짝 놀랐다

    ◎대형건물 “흔들”… 아파트주민 대피소동/“무슨 일이냐” 언론사 등에 문의 빗발/진앙지 인근 건물 수십채 파손·균열 13일 대낮에 발생한 지진은 전국을 한동안 술렁이게 만들었다.대형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강도가 높아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한바탕 대피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진앙지인 강원도 영월·정선군에서는 건물 수십채가 파손 또는 금이 가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를 입었다. 지진이 발생한 뒤 언론사를 비롯,기상청·소방서·경찰서에는 시민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기상청은 『진도가 4.5이면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고 꽃병이 넘어지고 그릇에 담긴 물이 넘치는 중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지진으로 서울 여의도의 63빌딩에서는 85년 건립 이후 처음으로 지진계 기록장치가 작동되면서 비상벨이 울렸다.이 빌딩 지하 1층 「63 시월드」에서는 수족관이 갑자기 흔들려 관람중이던 시민 500여명이 잠시 소동을 빚었다. 진앙지인 영월군 하동면사무소와 중동면 석항출장소의 벽은 각각 20∼10m나 금이 갔고,석항리 석항연쇄점의 유리창 3장도 깨졌다. 정선군 남면 무릉리 묵산아파트에서는 변압기가 파손돼 50가구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동면 북동리의 가옥 2채가 일부 부서졌고 많은 건물의 벽과 천정에 금이 가고 타일·석고보드 등이 떨어졌다. 정선군 신동읍사무소 직원 김석진씨(40)는 『읍사무소 건물 내벽 타일 10여개가 떨어지고 보일러실 벽 10여군데에 금이 갔다』고 밝혔다. 김포공항의 국제선 1·2청사와 국내선 대합실에서는 건물이 한순간 좌우로 크게 흔들리자 당황한 일부 시민들은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김현수씨(32·회사원)는 『느닷없이 밥상위에 놓여 있던 밥그릇과 숟가락 등이 흔들려 순간적으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떠올랐다』고 지진 발생 순간을 설명했다.
  • 제6회 교통봉사상 영광의 얼굴들

    □본상 ◎도로부문­박문렬씨〈한국도로공사〉/사고다발지역 시설 개선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다발지점을 집중분석,교통안전시설을 보완했다.남해고속도로 12곳에 미끄럼방지포장을 설치해 사고를 예방하는데 기여했다. ◎철도부문­정장봉씨〈서울지방철도청〉/건널목 안전관리에 만전 덕정역 북부건널목 사고방지를 위해 과속방지요철설비 및 보수공사로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했다.적극적인 영업활동으로 올해에는 계획대비 138%,전년동기대비 183%의 수익을 올렸다.역 대합실에 은행을 유치하고 냉난방기기를 설치해 고객서비스를 높였다. ◎육운부문­이종섭씨〈부산교통공단〉/외자부품의 국산화 기여 새로 만든 차량에 대한 편리한 검수·운영방법을 연구·보급하고 외자부품의 국산화를 추진했다.용역정비를 자체정비로 바꿔 예산절감에 힘썼고 기지구내 및 본선구간에 완벽한 신호·통신시설을 설치해 안전사고예방에 기여했다.「하나로」카드 상용시스템을 구축,역무를 자동화했다. ◎안전부문­전상덕씨〈충북지방경찰청〉/자동차 등록서류간소화 직접 고안해 제안한 「자동차등록번호표 재봉인신청서류간소화」가 행정쇄신위원회에서 채택돼 서류간소화로 민원인의 불편을 크게 줄였다.「교통안전시설의 설치허가제」「교통시설중 노면표시의 일시정지선의 개선」「교통관련 민원행정제」 등 교통안전과 관련한 연구·제안으로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장려상 ◎도로부문­전동호씨〈전남도청〉/굴곡위험도로 정비 힘써 지방도의 도로망정비와 과적차량단속에 힘썼다.위험교량에 대해 연도별 정비계획을 수립,시행했다.굴곡위험도로개선을 추진했다. ◎도로부문­문정식씨〈건교부〉/도로표지판 보기쉽게 고쳐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의 제정으로 교통사고줄이기에 기여했다.도로표지판을 누구나 보기 쉽게 하기 위해 문제점을 보완한 도로표지규칙개선방안을 마련했다.교통량변화에 따른 신호주기의 자동조정,통행료자동징수,무인운전 등 첨단도로교통체계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철도부문­김충기씨〈서울지방철도청〉/전철 기관사 교육교재 펴내 과천선 개통준비요원으로 참여,「VVVF제어 전동차구조설명」「안산·과천,4호선 운전에 필요한 운전선도와 취약관리」란 책을 펴내 기관사교육에 활용했다. ◎철도부문­이정수씨〈대전지방철도청〉/건널목 주변 사고예방 기여 충북선 관내 건널목주변 마을주민과 통행자에게 사고사례 및 예방홍보활동을 벌였다.교통량이 적은 건널목을 없애고 우회도로를 신설,철도건널목안전에 기여했다. ◎육운부문­엄일옥씨〈강원흥업〉/차량 철저한 안전점검 솔선 차량운행전후 철저한 일상점검으로 사고를 방지했다.노조 간부로 노사화합에 힘썼다.지난해 1월에는 운행중 교통사고현장에서 위급환자를 긴급후송,생명을 구했다. ◎육운부문­안종우씨〈고속버스운송조합〉/100일 무사고운동 앞장 고속버스의 시속 100㎞ 준수운동,차간거리 100m 유지,상·하반기별 100일 무사고운동에 앞장서 교통사고감소와 연료비·보험료 등 운송원가를 매년 50억원씩 줄였다. ◎안전부문­박정관씨〈교통안전공단〉/교육안전의식 교육 실시 방송기자재를 활용해 전북 전지역의 초·중·고생 6만여명에게 교통안전의식교육을 실시했다.운전자·공무원·단체회원 등에게도 교통교육을 통해 안전의식을 갖게 했다. ◎안전부문­김현강씨〈화물자동차운송조합〉/화물차 운전자에 안전 교육 월례사고예방활동을 적극 벌이고 이동상담소 및 야간캠페인을 실시했다.화물차 운전자에 대한 안전교육에 힘쓰고 이들을 위한 격려행사를 기획·실시했다. ◎항공부문­박평우씨〈대한항공〉/1만7천시간 안전비행 기록 20여년간 비행사생활을 통해 1만7천시간 안전비행기록을 갖고 있다.MD­82,B­747의 학술교관으로 재임하면서 우수한 조종사육성에 기여했다. ◎항공부문­김수동씨〈아시아나항공〉/항공기 성능향상 노력 항공전자계통의 주요직책을 거치면서 항공기 유지보수 및 성능향상에 힘썼다.꾸준한 기술개발을 통해 「항공기 충돌방지장치」 등을 개발,외국기술의 일방적인 도입에서 우리 기술로 자립하도록 했다. □특별상 ◎김정태씨〈한국방송공사〉/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 지난 한햇동안 라디오를 통해 연중기획 교통사고 줄이기 스파트캠페인을 제작,방송했다.연중기획 「교통사고 사망자 반으로 줄입시다」「교통안전 캠페인특집」 등을 2시간 특집생방송으로 10회 제작,방송했고 휴가철·명절 등에는 특별기획시리즈를 방송했다.
  • 기습한파·폭설/전국이 얼어 붙었다

    ◎오산∼송탄 하행산 21㎝ 동파… 열차 연착소동/빙판길 곳곳 사고… 채소수습 비상 초겨울 기습 한파는 1일에도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지난달 30일 쏟아진 폭설은 이날도 충남·호남지방 등에 계속 내렸다. 이날 하오 경부선 하행선 오산∼송탄간 철로가 추위에 동파돼 하행선의 운행이 1시간가까이 중단됐으며 호남지방의 폭설로 서울로 향하던 귀경열차의 대부분이 연착했다. 빙판길로 변한 고속도로와 국도는 교통사고로 얼룩졌다.공항과 항만 대합실은 이·착륙금지 및 결항으로 인적이 끊겨 한산했다. 또 채소류가 제대로 반입되지 않아 서울 등 수도권의 김장철 채소류의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남대문 시장 등 재래시장과 백화점·상가에는 난방용품을 구입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교통사고◁ 지난달 30일에 내린 폭설로 전국 곳곳의 도로와 철도가 막히고 사고도 잇따랐다. 특히 이날 하오 7시20분쯤 서울역 기점 61.6㎞지점 경부선 하행선 오산∼송탄간 철로가 맹추위에 21㎝ 동파됐다.이때문에 하행선 열차 6대가 40분∼1시간가량 지연 운행됐다.또 하오4시42분에 순천을 출발한 서울행 3256호 무궁화열차가 50분 연착하는 등 호남선 열차 16대도 폭설로 20분∼1시간 연착했다. 고속도로는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차량으로 1일 밤늦게까지 정체가 이어졌다.서울에서는 30일 밤과 1일 새벽 사이 모두 12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146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여수·목포·군산·제주·강릉 등 5개 공항의 국내선 이·착륙이 금지됐으며 59개 항로의 연안여객선 70척이 결항했다. ▷겨울상품 매상 급증◁ 난방용품과 모피 등 겨울 상품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시민들로 백화점 및 시장은 하루 종일 붐볐다.서울 신촌 G백화점 난방용품점은 1일 하루동안 15∼20대의 가정용 전기스토브와 업소용 가스난로가 팔려나갔다. ▷농산물 수급 비상◁ 배추와 무 등 김장용 채소류의 주산지인 호남 및 충청지방에 내린 폭설로 채집작업과 수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이에 따라 김장채소의 가격 폭등도 우려되고 있다. 수도권과 강원지역에서 소비되는 채소류의 60%를 공급하는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의 채소 반입량은 평소 3천500t보다 20∼30% 가량 줄었다.
  • 하얼빈과 안중근(송화강 5천리:10)

    ◎「그날의 총성」 기념사업 활발/“만세의 의인” 추모공연·장학재단 등 설립/「연구회」 주축 의거현장 성역화·기념관 “시동”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는 인구 3백91만1천명을 포용한 중국 8대 도시의 하나다.100년전만 해도 송화강가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그러다 1896년 러시아가 동북철도 부설권을 얻어 동청철도 중심지로 만들면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하얼빈이라는 도시 이름은 1898년에 가서 얻었는데,하얼빈 지명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가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발음과 비슷하게 달아 하얼빈이 되었다는 것이다.그러나 하얼빈시 정치협상회의가 여러 해를 두고 조사한 바를 따르면 여진족때의 어촌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되어있다.여진족 어촌 시절에 호칭되었던 이름 아라진(아늑금)이 하라빈이라는 변음으로 번역되었다가 하얼빈으로 다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하얼빈은 1899년에 발행한 「흑룡강여지도」에 처음 올랐다. 여진어의 아라진은 명예,영예,영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그토록 좋은 뜻을 가졌음에도 불구,하얼빈은 반세기동안이나 외세의 말발굽에 짓밟혔다.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의 청나라는 열강의 핍박을 받았다.그래서 러시아는 동청철도 부설권을 얻었다.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가 차지한 철도부설권을 빼앗아 손아귀에 넣었다.동북아시아 침략의 신호이기도 했다. ○어촌마을이 철도 중심지로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09년 10월26일 상오9시 일본 추밀원의장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가 하얼빈 기차 정거장에 내렸다.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안중근의 브로닝 권총이 불을 뿜어냈다.쌀쌀한 대륙의 아침 공기를 뒤흔드는 총소리와 함께 이토는 쓰러지고 말았다.자신의 운명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하얼빈 역두에 내린 이토를 쓰러뜨리고 만 안중근.그는 민족이 추앙하는 의인이 되었다. 하얼빈을 찾을 때마다 그랬듯이 길림을 떠나 열차가 홈에 닿고나서 흐르는 여객인파를 부러 피했다.이토가 총에 맞고 쓰러진 자리에 서보기 위함이었는데,만감이 교차했다.87년전 그날도 지나가 버리고 이제 겨울이 찾아들었따.의사가 외쳐댔던 『대한독립만세!』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우리 민족은 물론 타민족들까지도 추앙해 마지않았던 안중근이야말로 절세의 의인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항일운동의 서막을 열어놓았다.당시 천진 남개중학에서 공부를 했던 등영초는 안의사의 스토리를 무대에 올렸다.그녀는 주은래의 부인이 되었다.등영초 이후 꼭 85년이 되던 1995년에는 가극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다시 무대에 올랐다.그 가극 공연은 하얼빈시 문화국장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문화국장이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는 길에 만난 조선동포들이 안중근 의사를 너무 흠모하는 것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공연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얼빈공업대학에서는 안중근장학금을 설립했다.흑룡강성 과학기술자문센터 주임을 맡은 김성배 교수(62)는 필생의 사업으로 안중근연구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조선족기술개발센터와 국외사업까지 담당해온 그는 강원도 양양 태생으로,독립운동 가문에서 자랐다.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란 탓도 있겠지만,그가 안중근연구회를설립한데는 다른 사연이 내포되었다.그는 연구회 설립동기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1980년 교환교수로 일본에 가서 2년을 머물다 돌아와서 나름대로 여러가지 일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성에서 과학기술위원회 정보처장 자리를 맡겨 와서 조선족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댔습니다.그래서 조선족 교수 20명을 모아 흑룡강성 조선족경제기술연합회를 만들었습니다.성 정부에서도 20만원의 자금을 대주고 문화궁 청사의 일부를 사무실로 내주었지요.그런데 돈이 좀 들어오자 내분이 생겼습니다.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듭디다.그 무렵 안중근 의사를 다시 생각하고 안중근 의사의 희생정신으로 민족사회를 재건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반세기 외세침략에 시달려 그렇다고 곧바로 안중근연구회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중국의 정치적 현실 때문에 오랫동안 먼 길을 우회하여 1992년 3월9일에 가서 설립되었다. 중국 정책을 무시한 해외의 거동으로 시간을 허비했지만,의사의 거사날과 순국날만큼은 잊지 않고 기념사업을 펴왔다.학술회의와 연구도서출판을 해온 안중근연구회는 본격적인 기념사업 발판을 이제야 만들었다.웨이맥스전자회사는 하얼빈시에 가지고 있는 땅 5만㎡를 기념관 건립부지로 내놓았다.하얼빈시정부는 5층으로 설계된 기념관건립을 비준했다. 건물이 완공되면 1층은 안중근의사기념관,2층은 연구회사무실 및 세미나장으로 사용하고 3층은 조선족기업연합회 등 14개 단체가 입주하기로 되어 있다. 안중근연구회는 유명한 복건성 옥돌을 들여와 「안중근의사 의거현장」이라는 글씨를 새겨두었다.1.3m나 되는 이 기념비를 의거현장 플랫폼에 묻고,땅과 수평이 되게 두꺼운 판유리를 올릴 계획이다.그리고 의거 전날밤을 보낸 김성백의 집자리와 이토가 도착하기를 일각여삼추로 기다렸던 역구내 카페 자리에 표지판을 세우기로 했다.카페 자리는 지금 1등 대합실로 되어 있다.
  • 천장서 비 새고 화장실 배수 안돼/일산선 전철 마두역 “물난리”

    지난해 7월 개통된 고양시 일산선 전철 마두역사 승강장과 대합실·화장실 등에서 물이 새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21일 마두역과 이용객들에 따르면 이달초부터 일산선 전철 마두역사 승강장 홍익매점 위 천장 여러 군데서 물이 떨어지고 대합실·화장실은 배수시설이 제기능을 못해 바닥에 물이 고이고 있다. 이때문에 이 역을 이용하는 하루 1만5천여명의 일산신도시 주민들은 낙수를 피해 다니는가 하면 화장실사용을 제대로 못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마두역 관계자는 『벽 등의 배수로방수공사가 제대로 안돼 벽체로 물이 스며들면서 승강장 천장으로 새어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한국은 요란한 빈수레인가/안병준 특집기획부장(데스크 시각)

    한국(인)은 빈수레인가.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밖에서 구해졌다. 지난 5일 저녁 스위스 취리히공항 대합실.최근 유행하는 덤핑 그룹관광을 마친 140여명의 한국인들로 시끌버끌하다.백인들도 50여명 있었으나,한국인들은 개의치 않는다.외국인들은 탑승시간을 기다리며,대부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한국인들은 꽤나 잘사는 사람들이다.윤기도는 얼굴빛과 옷차림들이 그걸 말해준다.여자들은 가죽옷과 핸드백 등 쇼핑한 물건들을 놓고 깔깔거리고,고급위스키를 사든 남자들은 호탕하게 웃어제낀다.요란하다.어떤 중년은 양말을 벗어 차례차례 발가락 사이사이를 닦는다.그리고 맨발을 운동화에 담은 채,외국인들과 섞여 탑승을 한다. 『떼로 몰려다니며 시끄럽기는,한국인과 중국인들이 금·은메달을 다투죠』 EU(유럽연합) 여러 도시에서 한국인들을 상대하는 가이드들이 여출일구로 하는 말이다.그런 작태가 어디 공항대합실 뿐이겠는가.거리와 식당,관광명소 등 모든 곳에서 마찬가지로 시끄럽다. 우리의 국력은 크게 신장되어 거의 모든 국제기구의 형성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88년에 올림픽을 치른 나라이고,2002년에는 월드컵 대회를 개최한다.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비상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WTO에 최초로 사무차장을 배출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을 결정,비준절차를 밟고 있다.최근에는 유엔의 중요기관중의 하나인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 임기 3년의 이사국으로 선출되기도 했다.모두 사실이다.한국인이라면 모두 긍지를 가질만한 사실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우리의 노력과 정성으로 그러한 「쾌거」를 이룩했을 때,우리가 얼마나 요란했는가를….현란한 구호와 현수막,그리고 언론의 흥분. 「미래여행과 선진도약」을 내세웠던 93년의 대전EXPO를 예로 들어보자.그곳은 지금 무엇으로 이용되고 있는가.잊혀진 EXPO지만 남은 것은 무엇인가.우리가 챙긴 실속은 얼마나 되는가.상징물이었던 한빛탑은 아직도 빛을 내뿜고 있으며,그아래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는가. 파리의 에펠탑은 1889년 만국박람회때,상징물로 건립되었다.당시 설계자인 귀스타브 에펠은 『이제 프랑스는 높이 300m의 깃대에 국기를 게양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라고 말했다.에펠탑은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으며,그 깃발 아래로 100년 넘게 외국관광객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다. 국제기구와 관련해 가입만으로 만족하고,잔치판을 벌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물론 우리가 후발 개발국이긴 하지만,번듯한 국제기구 본부나 사무국 하나 가진 게 없다. 로마의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본부건물은 지난 13일부터 개최된 세계식량 정상회의를 요란한 현수막 없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170개 회원국 대표들이 몰려오는데도 말이다. 국제기구 본부나 사무국이 소재한 곳은 모두 국제사회의 「기득권층」이랄 수 있는 선진국 도시들이다.우리는 실속없이 떠드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조용한 선진국사람들처럼 우리도 성숙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내실을 갖추는 노력이 그 어느때보다 긴요하다. 우리는 아직 떠들 때가 아니다.
  • 여권 분실사고 급증/발급쉬워 2년새 2배

    ◎허위신고후 기존것 위조범에 팔기도 여권을 발급받기가 수월해지면서 여권 분실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여권을 잃어버린 것처럼 속여 새 여권을 발급받고 기존의 여권을 외국에서 여권위조범 등에게 파는 사례까지 나타난다. 3일 김포공항경찰대에 따르면 올들어 접수된 여권 분실 사고는 1천815건이다.한달 평균 180여건으로 겨울철을 맞아 해외여행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연말까지 2천건이 넘을 전망이다. 지난 94년 분실 사고는 1천200여건,95년은 1천600여건이었다.2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시기적으로는 해외 여행 성수기인 1·7·8·12월이 가장 많고,연령 별로는 20∼40대가 전체의 80%를 차지했다.입국심사대와 대합실에서 분실사고가 잦았다. 여권 분실 사고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해외 여행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구청에서 여권을 발급해주는 등 발급절차가 간편해짐에 따라 여권 분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주요 요인이다. 경찰은 분실 여권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컴퓨터 전산망에 입력해 수소문하지만 여권 뒷면에 주소와 연락처를 제대로 적는 사람이 거의 없어 헛수고를 하기 일쑤다. 김포공항경찰대 김정 수사관은 『경찰이 연락하더라도 찾아가는 사람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여권을 분실했다고 신고하고 새로 여권을 만든 뒤 기존 여권을 외국에 나가 파는 사례도 늘고 있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서양화가 이만익(이세기의 인물탐구:108)

    ◎내면세계 귀기울이는 「문학적 화가」/중학때 국전입선… 「출품자격」 논란 일으켜/매서운 절제력으로 격조있는 개성 표출 「냉철한 지성의 화가」로 지칭되는 화가 이만익,그는 하나의 정해진 틀과 격식에 얽매이기보다 새로운 것을 향해 달리고 변모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투철하게 이룬 완벽주의라고 할수 있다.그가 지난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말하는 그림,소리없는 시」란 부제로 「40년 회고전」을 열었을때 화단 일각에서는 그의 나이가 「40년전」을 열기에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의아심을 갖는 이들도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림 40년전을 여는 뜻」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충만한 침묵」 머물러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에 매달리고 미술반활동을 시작한 것은 효제국민학교 2학년때부터고 그 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이는 실로 50년에 이르는 세월』이며 「철없이 어린 날에 끄적거린 것이 어찌 그림이겠는가 웃을지도 모르지만」 「철모르고 순진하게 바쳤던 지난날의 시간들에 더없이 애정이 간다」고 했다.그래서 「한걸음멈추어 서서 지나온 나를 돌아다보고 맞이할 시간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 그가 겪은 「좌절감의 흔적」들을 한자리에 모아 펼쳐보이기로 한 것이다.전시에는 52년 그가 경기중 2학년때 그린 스케치에서 95년 신작에 이르는 2백40여점의 대작 소품이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이만익의 그림은 우리 역사의 삶속에 깃들인 인물들을 하나같이 관조하는 분위기다.잔잔하게 미소띤 얼굴에는 기다림이나 그리움,슬픔과 기쁨이 엇갈리고 기다림과 그리움의 연민 위에는 「충만한 침묵」이 초연히 머물러 있다.그가 정물이나 풍경이 아닌 인물에 유달리 집착하는 것은 화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하나의 생명에 보다 적극적으로 표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선은 굵고 힘찬 유기적인 곡선에다 색채는 원시적인 원색이면서도 미술적인 녹청 군청 산호색이 정제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른바 선과 색은 표현적 차원이 아닌 상징적 의미이며 정교하게 계산된 필치와 「긍정적 시각」으로 선명한 회화효과를 추구해내고 있다.삶을 찬미하는 마음에서 나온 장식성 또한 「정감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정돈시킨 것」으로 이는 그의 최근의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크게 세가지 시기로 분류된다.50년대와 60년대는 주로 역 대합실이나 아기를 등에 업은 노인,생활에 지치고 고단한 청계천일대의 풍경 등을 대상으로 삼고있고 프랑스 유학 이후 어둡고 탁한 색채 대신 색채의 순도와 강도를 살린 장식적 화면을 조성하게 되었다.이른바 포만과 방출을 통과하여 마음속에 붓을 담가 그리는 「독자적 양식」을 구축하게 된 셈이다. 그는 『그림이 어렵고 모호해져서 공허한 논리로 옹호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래서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해 문학적 주제와 소재를 선택하게 되었고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주몽을 장대한 기상으로 정립하거나 「정읍사」 「삼국유사」속의 민족적 정서와 순수한 심성,민화·민담·탈춤에 이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 판소리에서 서민의 정취와 시와 해학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풍경보다 인물에 집착 이에대해 오병남 교수는 그의인물들은 「지워도 지워지지않는 우리의 한 자화상」이며 작가는 『인생의 애환과 정한에 직접 가담하지 자기 감정의 통로를 차단하여 그림속의 사연을 노출시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즉 그의 특기인 「무심한 방관자로서 작품에서의 작가의 감정을 매섭게 절제·생략하고 있다」는 평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는 것처럼 그도 어릴때부터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운명이 결정지어졌다.그리고 남들보다 배이상의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냈다 하더라도 그때마다 「풍운이 있는 곳엔 항상 서조」가 깃들이고 있음을 예감하여 비통과 고통마저도 「우주의 상서로운 빛,자연의 은총,인간의 따스한 정」으로 극복해왔고 그로인한 여유와 사유의 차원에서 「무념」의 경지를 맞게 됐는지도 모른다. 황해도 해주 상동에서 그는 배재고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부친과 경기고녀 출신인 지식인 부모밑에서 태어났다.부친은 해방전 타계하고 46년 어머니 이경숙 여사를 따라 6남매가 월남,53년 경기중 3년때 그린 「정동의 가을」과 「골목」등 2점이 제2회 국전에 입선하기도 했으나 중학생의 국전입선이 논란되면서 국전출품자격을 「대학 3년 이상」으로 규정시켜놓은 바로 그 장본인이기도 하다. 서울대 미대 재학중 국전 특선으로 다시 한번 야심에 찬 경력을 쌓았고 졸업후에는 대학때의 스승인 이봉상의 안국동 화실에 드나들면서 앙가주망 동인 활동으로 「의식있는 그림」을 발표하여 그때마다 화단의 기대를 모았다.66년부터 국전 3년연속 특선,이후 4년간은 「맹랑한 낙선」의 고배를 거듭 마신 끝에 그는 「미술계라는 제도권」과 국전의 불합리성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언제나 자신감 넘쳐 이만익의 세계에는 러시아 해빙시대의 기수이던 예프투셴코의 분위기가 언뜻 풍겨난다.혹은 혁명적 이미지의 르페브르나 실존적인 야스퍼스같은 프로필이 엿보일 수도 있다.어쩔수 없이 예술가의 면모를 굳건하게 지닌 그는 「회화의 문학성」을 끝내 고집하여,미술평론가 원동석에 의하면 그는 「이 시대 걸출한 문학적 화가」에 틀림없다.「그림속의 잔물결같은 미소와 슬픔을아련하게 깔면서 음영이 없는 원색의 대비,모나지 않은 형태의 균형감각,원근법을 무시한 평행적 구성등은 마치 영원을 향해 정지하고 있는 옛 벽화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그의 평이다. 당당한 눈빛과 언제나 자신감에 넘치는 명쾌한 실천적 행동은 어느 장소에서나 그늘이나 복안이나 위선이 없어보인다.평소 술을 즐기고 친구를 좋아해서 폭넓은 층과 친분을 트면서 사적인 모임에는 미인 부인인 김대화씨를 대동하기도 한다.자녀는 남매.지난 6월에는 시카고에 체류중인 여장부같은 어머니 이경숙여사가 92세의 나이로 그림전을 열어 집안의 기세를 한껏 과시해보였다. 이만익은 「항상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들은 것을 마음속에다 솔직하게 기록할줄 아는 명철을 지닌 작가」다.격조있는 개성과 군더더기가 없는 단순한 평면성으로 누가 봐도 「이만익의 것」임을 알게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했으나 그는 끊임없이 불뿜는 활화산인 듯 특유의 암자색을 분출하려는 정열로 또한번의 용틀임과 비약을 꾀하는 시기다. □연보 ▲1938년 황해도 해주 출생 ▲1953년 경기중 3년때 국전입선 ▲1959년 서울대 재학중 국전특선 ▲1961년 서울대 미대졸업 ▲1966∼68년 국전 연속3회 특선 ▲1962∼94년 앙가주망 동인전 ▲1973년 제1회 개인전겸 도불전 ▲1973∼74년 프랑스 아카데미 괴츠연수,르살롱전(은상) ▲1975년 귀국개인전(서울미술회관) ▲1977년 서울미술관 개인전 ▲1978년 서울미술관 개인전 ▲1979년 동덕미술관 개인전 ▲1980년 파리 개인전 ▲1981∼84년 「현대문학」지에 「그림으로 보는 삼국유사」 연재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신세계미술관및 광주개인전 ▲1983년 이탈리아 한국현대미술전(밀라노),국제조형작가회의(IAA) 한국대표단참석(헬싱키) ▲1984년 문예진흥원미술회관 개인전 ▲1985년 「그림으로 본 삼국유사」출판기념전(선화랑) ▲1986년 현대화랑초대 판화전, 파리 그랑팔레·독일 브레멘개인전 ▲1987년 ’87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현대화랑초대 개인전 ▲1989년 서울갤러리·부산일보화랑·라디오프랑스초대 개인전(파리) ▲1988년 서울올림픽 및 장애자올림픽미술감독 ▲1990년 도쿄 아트엑스포 개인전 ▲1991년 현대화랑·부산금화랑 개인전 ▲1992년 강남현대화랑·쥴리아나 아트갤러리 개인전 ▲1994년 제5회 이중섭미술상수상기념전(조선일보미술관),춤과 음악의 미술전(한가람미술관),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95년 이만익 그림 40년회고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수상〉이중섭미술상(93년)
  • 조선족 문예지(송화강 5천리:6)

    ◎사무실 한칸없이 창간… 겨우 명맥만/「장백산」·「송화강」·「도라지」 3종 심각한 재정난/조선족 구독률도 저조… 외부지원으로 지탱 송화강유적 조선족문단에서 내는 문예지로 「장백산」 「송화강」 「도라지」가 있다.「장백산」은 길림성 장춘시 남관구 서사도가 16에,「송화강」은 흑룡강성 하얼빈시 건국가 210에,「도라지」는 길림시 통담대로(통담대로) 1에 사무실을 두었다.이 세 문예지를 일러 「장백산(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도도히 흐르는 송화강가에 아름답게 피어난 도라지꽃」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그렇듯 기대를 모으던 문예지들이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장백산는 헐벗어 송화강물은 메말라가고,도라지꽃은 시들어가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그 가운데서도 「장백산」은 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하얼빈시와 길림시에서 격월간 「송화강」과 「도라지」를 창간하자,12만 조선족을 가진 통화지역에서 자극을 받고 1980년5월에 창간된 것이 「장백산」이다.그리고 나서 1990년에 본거지를 통화에서 장춘으로 옮겼다. ○성 정부서 자금등 지원얻어 장춘시에 있는 장백산 편집실을 찾아갔을때 사무실분위기는 한마디로 썰렁했다.「장백산」을 창간한 실제의 주역 김택원 선생은 이미 세상을 떴고,편집자 한 분인 소설가 이여철(42)씨는 한국에 가느라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마침 자리를 지키고 있던 주필 남영전 선생과 편집인 김영수 선생이 느닷없이 찾아간 손님이 반가웠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이 들려주는 「장백산」 창간무렵의 사정은 어려웠다.지금도 어렵지만 당시를 회상하면서 연신 「가방편집부」라는 말을 썼다.말이 편집부지 사무실 한칸은 고사하고 책상 하나 없이 원고보따리를 들고 천리 밖 심양으로 인쇄하러 다니던 시절을 그런 말로 표현했다.통화에서 심양까지 가면서 대합실·찻간·여관 등을 전전하면서 「장백산」을 편집해서 독자 앞에 내놓았던 것이다. 「장백산」 창간에는 다섯명의 문인이 참가했다.정확히 1980년5월에 창간호가 나왔는데,창졸간에 나온 터라 그 질이 높지는 못했다는 것이다.인쇄·장정·삽화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러나 병신이라도 제자식이 귀엽다고 「장백산」 창간호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독자의 관심도 높아 지금의 백산시인 당시 혼강에 살던 김영철노인은 일흔두살인데도 통화까지 걸어와서 「장백산」을 구독하고 춤까지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폐간위기는 곧바로 몰려왔다.1982년 5월 운남성에서 열린 전국소수민족작가필회에 참가하고 있던 남영전에게 한통의 전보가 날아왔다.김택원선생이 보낸 전보는 비보였다.「잡지가 폐간될 처지니 만사 접어두고 돌아오라」는 전보를 받은 남영전은 한동안 망연자실했다.처음에는 돌아갈 생각도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한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한 밀사의 심정으로 회의장에 나가 호소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필회에 참가한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윤해산처장을 먼저 찾아가 「장백산」 폐간위기를 알렸다.그리고 필회에서 소수민족의 작은 잡지 하나가 살림을 꾸리지 못하고 쓰러져야 하는 현실을 개탄했다.그의 발언은 많은 동정과 함께 「장백산」을 살려야 한다는 성원을 받았다.그후 윤해산처장은 중앙에 필회결과를 보고하면서 「장백산」의 딱한 처지를 알렸다.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길이 열렸다. 국가중앙판공실과 길림성 당위원회는 우선 등소평동지가 길림성 방문 때 「장백산」이라고 써준 휘호와 그의 백두산 등정모습을 담은 사진을 잡지에 싣도록 했다.그러고 나서 자금도 길림성정부가 해결해주었다.또 1983년 3월에는 공식간행물로 등록하는 한편 중국작가협회 길림분회 기관지로 비준받는 행운을 잡았다.중국에서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격려도 잇따라 들어왔다. 그렇다고 「장백산」이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장백산」을 살려내기 위해 중국을 백방으로 뛰었던 남영전 선생은 오늘의 「장백산」 현실을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지금은 길림성 민족사무위원회서 해마다 14만원을 대줍네다.그 돈으로 잡지를 꾸려나가기는 사실상 어렵디요.통화에서 장춘으로 이사를 오면서리 편집일꾼들의 집을 사느라 30만원의 빚까지 졌습네다.기리고 종이값과 인쇄비가 해마다 올라 더 어렵디요.올해는 길림성재정청에서 8만원을 부조해주어 숨을 돌리긴 했수다.창업시기에 대면 화수분이긴 합네다만…』 ○조선족 구독 14명당 1권 불과 지난 1994년 전국적으로 출판물이 불황을 겪을 때도 전국 판매량은 62억2천4백만권에 달했다.12억인구가 1인당 5권의 책을 산 셈이다.그런데 한글도서는 2백만 조선족인구 모두에게 1권씩도 채 못 돌아갔다.중국에서 발행되는 잡지는 모두 7천92종인데 한글잡지는 겨우 14종뿐이다.더욱 한심한 일은 조선족 잡지구독률이 전국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이다.전국 평균치는 1인당 2권인 데 비해 조선족의 한글잡지구독은 14명당 1권을 넘기지 못했다.한글잡지는 80년대만 해도 저마다 찍었다 하면 1만부였는데,지금은 고작 5천∼6천부를 발행하고 있다. 독서와 관련한 우스운 이야기 한토막.어느 회사사장이 수하의 과장들을 불러 자기가 한턱을 내겠다면서 모두 차에 태웠다.그러나 차가 당도한 곳은 요리집이 아니라 서점이었다는 것이다.『돈은 내가 낼 터이니 2백원어치씩 책을 골라가라』는 사장의 권유에 따라 과장들은 책을한보따리씩 들고 나올 수밖에….그것도 한글도서였는데,사장이 한족이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도라지 문학상」 제정 시상도 길림시에서 나오는 「도라지」는 한국의 월간 「아동문학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아동문학사의 지원금으로 「도라지문학상」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만나식품의 후원금으로는 조선족작가자제장학금을 마련해놓았다.한국 아동문학사의 지원은 지난 1991년 김철수(46) 사장과 「도라지」부주필 고신일 선생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그들의 만남은 북경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이루어졌는데,김사장은 우리말과 글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조선족의 삶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했을때 우리 말과 글을 까많게 모르는 동포처녀들이 작별인사 대신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던 정경이 슬펐다는 김철수 사장.그는 중국동포만이라도 자신들의 뿌리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에서 「도라지」 지원을 약속하고,또 실천에 옮겼다.그래서 지난해 제1회 「도라지문학상」 시상식을 가졌다.이 시상식에는 김사장과 동행한만나식품 김영록사장도 참석했다.동포작가 자제를 위한 장학기금지원제의는 시상식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 “지금이 어느땐데…” 북 도발에 분노/북 잠수함 침투­시민반응

    ◎언제든지 침투가능 “재확인”/“철저한 경계태세” 한목소리/체제위기에 최후 발악… 경각심 높여야 18일 상오 동해안에서 무장간첩이 침투한 것으로 알려지자 시민과 북한 관련 각 단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시대착오적인 북한의 행위에 분노를 나타냈다. 이들은 아침 일찍 집과 직장 등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군·경의 대간첩 작전 상황을 지켜보며 한결같이 북한의 도발행위를 비난하며 철저한 안보태세 확립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강릉 등 동해안 지방에 고향을 둔 사람의 경우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상오 서울역 대합실에서 대형 텔레비전을 지겨보던 정재훈씨(29·회사원)는 『그간 고정간첩 깐수교수 등을 통해 보듯 정부의 대공정보력에 구멍이 났음을 알 수 있었다.대도시 근처까지 간첩선이 왔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한총련사태로 온통 학생들에 신경쓰고 있는동안 이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정부는 대공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사원 이혜영씨(31·여))도 『최근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려워 귀순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몇년새 간첩도 많이 침투된 상황에서 간첩선까지 내려왔다니 놀랍고 불안하다』며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나 외국과의 경제협력 등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주부 이광연씨(45)는 『지금이 어느때인데 무장간첩을 내려 보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들이 서울로 잠입할 것이 걱정돼 출근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최대한 일찍 귀가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사무소 조동영 사무총장(72)은 『북한이 체제위기에 봉착하니까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듯 하다』며 『우리의 대북 경계체제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우려했다. 유네스코 서울협회 조철화 회장(65)은 『동해안 경비초소가 없어지면서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북한은 늘 도발을 해 올 가능성이 있는 집단이니 늘 체크를 해왔어야 했다』며 『정부·정치인·국민 모두가 이번 계기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국민 전체적으로 국방에 대해 해이해 진 것이 사실이다.평화가 온 것처럼 생각하지만 준비없이 평화가 오지는 않는다.「진정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준비를 하라」는 말도 있다.국방이 다 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걸 입증해 주었다』고 강조했다. 국방연구원 김구섭 박사(49)는 『북한의 이같은 행동은 지난 4월부터 이어진 비무장지대 불인정선언·판문점지역내에 무장병력 투입,휴전선 침범 등을 통해 미국과 한국정부를 압박해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또 대남도발을 통해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조장해 내부결속을 강화하려는 행위』로 분석했다. 이날 북한 관련 단체의 비난 성명도 잇따라 한국자유총연맹은 『북한은 기회있을때마다 우리를 교란해 붕괴시키려는 책동을 일삼아왔다』며 이럴때일수록 우리 민·관·군 모두는 철통같은 안보태세와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기영 서울시의회 부의장 구속

    ◎서울지검/신문가판대 운영… 공금 9억 가로채 서울지검 특수3부(안대희 부장검사)는 5일 서울 지하철역 등에서 신문 가판대를 운영하면서 9억6천여만원의 공금을 가로챈 서울시 의회 김기영부의장(53)을 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했다. 재단법인 경우장학회 상임이사 양완식씨(67)와 김씨의 동생 기웅(48·한국신문판매 주식회사 대표)·기호씨(40·경우장학회 사업부장) 등 3명은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신문판매대금 3천만원을 빼돌린 한국보훈복지공단 직원 이숭인씨(56)에 대해서도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지난 3월부터 6개월동안 매출액 1억9천5백만원 가운데 1억8천만원을 가로채 부당 이득을 취하고 경우장학회에는 재산상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우장학회가 갖고 있던 지하철 신문가판권을 장학회에 매달 2백50만원씩을 주기로 하고 넘겨받았다. 공익재단의 수익사업은 일반인이 전대받을 수 없다. 김씨는 또 지난 94년부터 지난 8월까지 한국신문판매주식회사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대합실의 가판대 수익금 등 회사공금 7억8천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 온 국민이 숨죽인 “133분 레이스”/이봉주 마라톤 은 따던 날

    ◎땀 쥔 4천만 함께 달렸다/막판 치열한 선두 다툼땐 주먹 “불끈”/“아쉽지만 2위도 장하다” 박수 갈채 「아쉽지만 은메달도 장하다」 올림픽 마라톤 2연패의 신화창조를 꿈꾸며 한여름 밤을 뜨겁게 달구었던 남자 마라톤에서 한국의 이봉주 선수(25·코오롱)가 막판 불같은 질주에도 불구하고 4초차로 은메달에 그치자 TV를 통해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아쉬워 하면서도 이선수의 투혼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선수가 결승 테이프 5㎞를 남기고 우승자인 남아프리카의 투그와네 선수와 손에 땀을 쥐게하는 레이스를 펼치자 온 국민은 숨을 죽인채 TV중계를 지켜봤다. 애틀랜타 현지 마라톤 코스 곳곳에 교민들이 태극기의 물결을 이루며 이선수를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도 눈물겨웠다. 국민들은 비록 이선수가 92년 바르셀로나 몬주익에서 황영조 선수가 이루었던 영광을 4년만에 애틀랜타에서 재현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에는 못미쳤지만 온갖 악조건을 이기고 「올림픽의 꽃」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선두그룹을 이루며 탐색전을 벌이던 이선수가 36㎞지점에서 스퍼트,케냐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선수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자 온 국민들은 연신 『으샤 으샤』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올림픽경기장 트랙안에 들어서면서 펼친 추격전은 숨가빴다. 경기가 열리는 시간 서울역 대합실 TV 앞에는 피서길에 나서던 많은 시민들이 모여 이선수의 선전을 지켜봤다. 무더운 날씨 속에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응원하던 시민들은 이선수가 은메달에 머물자 믿기지 않는 듯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TV 화면 앞을 떠나지 못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홍욱제씨(28·회사원)는 『마라톤을 보기위해 휴가지에서 예정보다 일찍 왔다』며 『지난 92년 몬주익 언덕을 오르던 황영조 선수의 뒤를 이어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이뤄줄 것으로 생각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정자씨(50·대전시 중구 은행동)는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마라톤 한국」의 자존심을 살려준 멋진 한판이었다』면서 『폭염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이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격려했다.〈박준석 기자〉 ◎천안 가족 표정/“기어이 큰일 해냈구나…”/꽹과리·북치며 끝까지 열띤 응원/“우리집 효자가 나라의 효자” 감격 『깝박이 만세…우리동네 효자 최고』 4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남자 마라톤에서 아깝게 은메달을 딴 이봉주 선수(26)의 충남 천안시 성거읍 소우리 3의 16 집은 아쉽지만 만족하는 분위기. 마을 주민들은 이선수가 올림픽 2연패의 영광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마라톤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높였다며 축하했다. 이선수의 어머니 공옥희씨(59)는 『내 생애에서 가장 기쁜 날이 오늘』이라며 『우리 집 효자가 한국 효자가 됐다』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 이해구씨(66)는 『근성이 있어 꼭 일을 해낼 줄 알았다』며 『운동을 하면서 힘들어 할 때는 못내 안쓰러워 말리고 싶었지만 봉주가 좋아해 꾹 참았는데 기어이 장한 일을 해냈다』고 감격해 했다. 2남2녀중 막내인 이선수의 고향 집에는 서울 등에서 살고있는 형과 누나들이 마라톤이 열리기 전 주말에 찾아와 부모와 함께 TV를 보며 응원했다. 마라톤이 시작되기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씩 꽹과리와 북 등을 들고 이선수의 집으로 모여 들었다. 가족들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들자 TV를 아예 마루에 내놓고 마당에 술과 고기 등을 내며 술판을 마련했다. 가족과 주민들은 처음에 이선수가 선두그룹에서 보이지 않자 초초한 듯 담배를 피우며 조용히 TV만 지켜봤다. 그러나 이선수가 서서히 선두그룹에 합류하면서 내달리기 시작하자 꽹과리와 북을 치며 열심히 응원전을 펼쳤다. 이선수가 다른 선수들과 숨막히는 레이스를 펼치며 선두에 나설 때는 한껏 목청을 돋우며 열을 올렸다. 이선수가 은메달을 따내는 순간에는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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