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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효의 귀거래(秘錄 南柯夢:25)

    ◎고종 “日本있는 박영효 불러들여라”/갑오경장으로 쫓겨났다가 하루 아침에 ‘구국재상’ 귀국/장안 환영물결 가시기도전에 며칠만에 日로 줄행랑/3년뒤엔 친일파되어…/‘헤이그’에 허찔린 이토 분통속에 잠 못이루다 이완용 내각 음모세우고/대책 고심하던 황제는 “꿩대신 닭격… 그래도 매국노보다 역적이 낫겠다” 헤이그 특사사건이 터지자 서울 남산아래 있던 통감부에서 야단이 났다.을사오조약을 늑약(勒約)하고 스스로 통감자리에 앉아 청주잔을 기울이던 이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여간첩 배정자(裵貞子)와 양아버지라 하면서 공공연히 잠자리를 같이하던 이토는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대책을 구상하는데 급급하였다. 고종황제에게 또다시 급소를 찔린 것이니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고종은 본시 을사오조약을 무효로 봤기 때문에 외교권은 아직 황제 자신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을사오조약을 강제체결한 이토로서는 헤이그사건 하나로 자신의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가는 판이었다.명치유신의 원로로서 후배에게 무안할 뿐 아니라 일왕 명치에게는 더이상 부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을 역습의 호기로 이용하기로 했다.이토는 고종을 황제 자리에서 몰아낼 음모를 꾸민 것이다.일단계 조치가 박제순(朴齊純) 내각을 해산하고 말 잘듣는,이완용(李完用)을 내각수반으로 하는 새 내각을 구성하는 일이었다.박제순보다 이완용이 훨씬 더 적극적인 매국노였기 때문에 그를 시켜 고종의 양위를 강박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음모였다. 그러나 고종 황제 역시 호락호락 넘어갈 분이 아니었다.이토의 음모를 예상하고 이것을 미연에 막을 인물이 누구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금능위 박영효의 이름이 떠올랐다.박영효(朴泳孝)는 철종의 부마(사위)였으나 일찍부터 개화사상에 심취,1884년 갑신정변,1894년 갑오개혁에 참여했던 친일 개화당의 거두였다. 그는 갑신정변후 역적으로 몰려 일본에 망명한 뒤 12년동안 돌아오지 못한 유랑객이었다.그러나 1907년 5월 어느날 박영효의 부하 신철희(申哲熙)가 정환덕에게 접근,복권운동을 벌였다.요즈음 같으면 각종 정치범이 미국으로 도주하지만 그때는일본으로 도주하여 기회를 노렸다.그런 인물이 일본에는 우굴우굴했다.박영효 역시 그런 기회주의자의 한 사람이었다. 신철희는 문경사람이다.갑오경장(甲午更張 1894)때 아문주사(衙門主事)로 있다가 박영효의 덕분에 문경군수로 임명받았던 사람이다.그가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서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이제 우리 한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으나 각부 대신들은 작록만 탐내고 자리를 지키는데만 연연합니다.이럴 때 일본에 망명해있는 금능위(錦陵尉)박영효와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바라건대 대감께서 황상께 아뢰 그를 소환해 귀국토록 하시고 내각을 다시 조직해 국가증흥을 꾀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고 했다.이에 나는 그 말에 동의하고 황상께 아뢰니 “금능위에게 빨리 전보를 쳐 귀국토록 하라”는 분부가 계셨다 오죽했으면 고종황제가 박영효같은 인물에게 매달리게 되었을까.재위 44년만에 아무도 믿을 놈이 없게 됐기 때문이다.충신은 죽고 측근에 친일 매국노만 득실거리니 박영효는 꿩 대신 닭격이었다. 황상께서 직접 전화를 거시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듯이 났는데 박영효에게서 온 전화였다.부르심을 받은 박영효는 급히 행장을 정돈한 뒤 윤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부두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 그를 환영했는데 이튿날 아침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서울역 대합실에는 높은 벼슬아치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안부를 물은 뒤 박영효를 앞뒤에서 가려주듯 동행하여 회퇴루(回退樓)에 들어갔다.이때가 밤12시였다.날이 밝기를 기다려 조반을 든 뒤 곧바로 대궐에 나아가 승후방(承候房)에서 대령하였다 박영효는 과거에 두차례나 역모를 꾸민 인물이다.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해 갑신오역(甲申五逆)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망명하였고 10년 뒤 돌아와서 다시 갑오경장(1894년)에 가담,역모에 몰려 두번째로 일본에 망명했다.그후 12년만인 1907년에 귀국하였으니 감개무량하였을 것이다.부산에 도착하자 그는 땅에 엎드려 고종황제에게 예를 올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고종으로서는 비록 박영효가 과거에 역적이라 하더라도 이완용같은 매국노와 다르다는 사실을 믿고 그를 궁내부 대신으로 맞아들였으니 황실을 보호하는데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따라서 고종황제와 박영효는 서로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상감부자분께서 아침 수라진지를 드시고 난 뒤 박영효를 부르니 오전 11시경이었다.문안인사가 끝난 뒤 황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러 해를 해외에서 풍상을 겪었으니 고생이 많았을 터인데 어떻게 감내 하였소”라고 물으셨다.이에 대답하여 아뢰기를 “성상(聖上)의 은총이 융성하시어 이와같이 다시 해를 우러러보게 되오니 참으로 황송하여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릅니다”고 하였다. 이에 황상께서 말씀하시기를 “근년이래로 나라에 어려움이 많은데 우선 경이 내각을 조직해 정치가 잘되고 백성이 화평하게 되면 나라의 위세가 만회될 것이니 이것이 일본의 ‘유신정치’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하시었다.박영효가 대답하기를 “신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황상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마음을 다하여 나라 일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하였다. 이에 황상께서는 특별히 비취옥술잔(翡翠玉圈) 남색전포(藍色戰袍) 도홍띠(桃紅帶) 오사모(烏紗帽) 분홍조복(粉紅朝服)등을 각각 한벌씩 하사해 입게 하시므로 그 경황이 찬란하였다 역적 박영효가 하루아침에 구국의 재상으로 돌변한 것도 그렇거니와 장안 사람들이 그가 대궐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기쁨으로 지화자를 부른 것도 괴이한 일이었다. 박영효가 마침내 황제에게 사은숙배하고 물러 나와 장안 대로상을 걸어가는데 구경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갈채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모두들 말하기를 “오늘에서야 한관(漢官=옛 관료)의 위의(威儀)가 되살아났다”고 격찬하였다.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산두박첨지(山頭朴僉知)’라는 희극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늦어도 한참 늦었다.그런데도 1907년 6월30일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박영효 환영대회가 열렸다.장소는 북서(北署) 농상소(農桑所)였는데 왕년의 개화당 동지들이 부부동반하여 모여들었다.환영회장 유성준,위원 정운복이 축사를 낭독하고 연회에 들어가려 할때 돌연 총성이 울렸다. 알고 보니 정재홍(鄭在洪)이라는 분이 권총자살을 시도한 것인데,원래 이토가 모임에 나타나면 그 권총으로 사살하려 했던 것이다.박영효가 이날 환영회에 병을 핑계하고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토도 나타날 리가 없었다.정재홍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갈때 혼미한 가운데 유언하기를 “나는 평생 품었던 우국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습니다.그러나 대감(박영효)은 더욱 분발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고 국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그는 또 유서를 남기고 노래를 지었다.“살아서 욕되니 죽어서 영화를 보자”(生辱死榮)는 제목의 노래였다.그러나 박영효는 고종의 양위를 막지 못하고 궁내부 대신이 된지 며칠만에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고 3년 뒤 친일파가 되어 돌아왔다.한국근대사에는 이렇게 지조없는 인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지금도 그 후배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며칠을 지나지 않아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하면서 박영효는 제주도 유람길에 올랐으나 실은 일본으로 망명하는 것이었다.그러니 개각(改閣) 따위의 얘기는 풀이 우거진 울타리가에 버려두고 도망을 갈 것이다.옛말에 “운이 가면 영웅이라도 자유롭지 못하다”(運去英雄不自由)는 말이 있으니 개탄한들 무얼 하겠는가.
  • 혈육도 모르는 소녀

    ◎할머니집서 돈 훔치다 들켜 흉기 찌른뒤 묶어놓고 도주 전북 남원경찰서는 10일 존속 살인미수 혐의로 趙모양(15·남원시 하정동)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趙양은 지난 4일 하오 4시쯤 남원시 하정동 친할머니 金모씨(66)의 집에서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현금 35만원을 훔쳐 나오던중 발각되자 흉기로 할머니의 가슴과 등을 찌른뒤 신고를 못하게 양발을 묶고 달아났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다. 趙양은 범행 5일만인 지난 9일 남원역 대합실에서 경찰에 붙잡혔다.趙양은 지난해 막노동하는 부모를 따라 상경,서울의 모 여고에 진학했으나 중도에 그만두고 최근 혼자 고향 할머니집에 내려와 지냈다.
  • ‘행복의 나라’ 한대수(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5)

    ◎“물좀 주소 물좀 주소 목마르오/시대의 갈증 노래했는데…”/68년부터 명동·대학가 활동/통기타·청바지 문화 선도/2집 앨범 “체제전복” 낙인찍혀/75년 渡美… 음악활동 계속/지난달 일시 귀국 에세이 출간/“개인무대 갖는게 작은 소망” 1975년 한 해를 마감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인 12월 어느날 김포공항 대합실.긴 머리에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한국 가요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청년문화를 주도하던 가수 韓大洙(50)였다.미국 유학후 숨가쁘게 살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땅의 분위기가 한스럽기만 했다.채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진 꽃처럼 자신의 음악을 가슴에 묻은 채 한대수는 그렇게 훌쩍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긴 이색적인 경력의 싱어 송라이터.통기타와 자유의 청년문화를 생겨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당시 트로트와 사랑타령 일색이던 대중가요를 뿌리째 뒤흔들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던 가수 韓大洙.그는 왜 한국을 떠나야만 했을까.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굴곡이 많은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핵 물리학자인 아버지의 실종으로 7살때부터 줄곧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10살때 미국으로 이주해 3년간 미국생활을 한뒤 돌아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쳤다.17세때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돼 다시 미국으로 옮겨 고교를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한채 방황의 10대를 보냈다.韓씨의 재능은 이때 발견된다.상담교사의 도움으로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나중에 국내에서 히트했던 ‘행복의 나라’‘그날까지’‘옥의 슬픔’같은 노래들이 모두 이때 쓴 것이다.고교졸업후 뉴햄프셔 대학 축산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이 맞지않아 중퇴,뉴욕 사진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귀국한 게 1968년 초.이때 한국의 가요사는 다시 쓰이게 된다.당시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가 지배하던 시기.국내에선 처음으로 싱어 송라이터로 데뷔한뒤 발로뛰는 음악인의 생활로 접어든다.서울 무교동의 ‘세시봉’과 명동의 ‘오비스캐빈’에서 청바지,가죽장화 차림에 통기타 하나들고 포크록을 소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이듬해인 69년 이렇다할 공연무대에 서기엔 아직 무명가수였던만큼 대학가를 돌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의뢰해 축제기간중 이화여대와 서울대,서강대,부산대 강당공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이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게 됐다.그리고 그해 겨울 그 유명한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그때만해도 드라마센터는 고상한 장르의 유명인들에게만 공연이 허용되던 곳.무명의 대중가수가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화제거리였다.평소 韓씨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이 어렵게 마련한 데뷔 콘서트였다. 벼르고 별렀던 무대였던 만큼 혼신을 다한 공연이었다.이틀 공연 모두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대성공이었다. 74년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자신이 곡을 쓰고 金敏基가 부른 ‘바람과 나’,楊姬銀이 부른 ‘행복의 나라’가 인기곡으로 불려지고 있었다.신세계레코드사에서 앨범제작 의뢰가 들어왔다.그래서 만든 첫 앨범이 ‘멀고 먼 길’이다.너무나도 반가운 제의라 하루만에 녹음을 모두 마쳤다.‘물좀 주소’‘행복의 나라’‘바람과 나’등 수록곡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그리고 1년도 채 안돼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다. 75년 가을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다.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재직중일 때였다. 기자로 일하면서 오후엔 남모르게 레코드 취입을 하느라 코피를 쏟기가 일쑤였다.마침내 레코드가 나왔다.이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는 뿌듯함에 마냥 들떠 있었다.기쁨은 채 2주가 못돼 좌절로 바뀌었다.당시 문공부에서 레코드 수거령이 떨어졌다.체제전복적 음악이란 낙인이 찍혔다.첫 앨범 ‘멀고 먼 길’도 함께 묶였다. “‘물좀 주소’등 히트곡들이 대학생들 사이에 번져가면서 정치·사회상 황에 맞물려 당국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당국이 ‘물좀 주소’에선 물고문을 연상했던 것 같아요.두번째 앨범은 표지가 문제였지요.녹슬은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려있는 모습인데 한국적 정서와 민중을 상징한 것이지요.죄수(철조망)가 흰 고무신을 신으니 박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동양방송과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출연도 막혔다.어쩔 수 없이 명륜동 자취방에서 직접 노래하고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매장에 내다 팔았다.테이프는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이 테이프는 첫 앨범 취입 전부터 하나 둘씩 만들었던 것으로 이렇게 만든 테이프만도 100여개가 넘는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감시망이 좁혀지면서 테이프 제작도 할 수 없게 됐고 더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마침내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면서 시·사진·음악활동을 계속했다.89년 ‘무한대’,90년 ‘기억상실’,91년 ‘천사들의 담화’ 등 레코드도 세 집을 냈다.종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들이다.지난해 가을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록그룹 10개가 참가한 록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80년 일시 귀국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약식 공연을 가진지 17년만의 무대였다.그리고 지난달 잠시 귀국해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기록이다. 75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韓씨는 이렇게말한다.“그 시대 정책 자체에 반감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어느 나라나 국가정책과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엇갈리기 쉽지요.당시 정부의 목적의식을 흐리는 활동이 제재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문화예술인들이 심한 갈증을 느끼는건 당연했구요. 오랫동안 나를 못봐온 팬들을 위해 개인무대를 갖고 싶습니다” ◎사연들/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철조망 유신압제 상징 이유/‘고무신’·‘첫 앨범 잇따라 판금/‘행복의나라’ 희망 메시지 가득한데 68년 귀국후 세시봉과 오비스캐빈에서 시작된 韓大洙의 국내 음악활동은 불과 7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귀국전 미국 생활에서 반문화운동(카운터 컬쳐 무브먼트) 경향의 포크록에 심취했던 만큼 국내에서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이 음악으로 시작됐다.미국 고교시절 답답한 생활을 노래에 담은 노래들이 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금지곡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대학가를 돌면서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고 금지문화의 한 주역이 된 것도 사실상 노래말의 상징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좀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는 그의 대표적인 노래.“물좀 주소 물 좀 주소/목마르요 물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놀리면서 밖에 보내네/아 가겠소 난 가겠소/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여행도중에 그 님 만나 본다면/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물좀 주소).“장막을 걷어라/나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 위로/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듣고싶고 울고 웃고 싶소/내마음을 만져줘/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행복의 나라로) 유신정권의 압제 아래서 자연스럽게 현실 비유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대학가에선 더욱 인기가 좋았다.물은 갈증을 해결하는 그 무엇이며 행복의 나라는 답답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과 희망의 의지가 역력한 상징임에 틀림없다.특히 金敏基 楊姬銀 등 사회성짙은 노래를 주로 불렀던 이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화살이겨냥됐고 마침내 철조망과 흰 고무신을 표지 사진으로 쓴 ‘고무신’ 앨범으로 피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자유의 길’‘병든 고아’‘술 취한 여자’‘물좀 주소’ 등 노래마다 일일이 검열을 당했고 레코딩까지 허락됐던 앨범 몰수는 韓씨를 떠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의 길 ▲48년 부산출생. ▲64년 부산 경남고교 입학. ▲65년 미국 롱아일랜드 고교로 전학. ▲66년 뉴햄프셔 대학 수의학과 입학. ▲67년 뉴욕 사진학교에서 사진 전공. ▲68년 귀국.작사·작곡가·가수로 데뷔. ▲69년 드라마센터 공연. ▲70년 군입대. ▲74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두번째 앨범 ‘고무신’ 발표,금지.미국으로 돌아감. ▲89년 ‘무한대’ 발표. ▲90년 ‘기억상실’ 발표. ▲91년 ‘천사들의 담화’ 발표. ▲98년 현재 뉴욕에서 사진작가및 창작활동중.자전적 에세이 출간.
  • 열차좌석 중복땐 요금전액 환불/철도청 ‘서비스헌장’ 선포

    ◎새달부터/연착 보상기준도 1시간서 50분으로 오는 8월부터 철도 발권업무의 착오로 열차좌석이 중복된 경우 열차 요금전액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지금까지는 대체좌석이 없을 때만 요금을 환불 받을 수 있었다.이와 함께 요금을 환불받을 수 있는 열차 도착지연 기준시간도 현행 1시간에서 50분으로 10분 줄어 든다. 철도청은 이같은 내용의 ‘철도고객서비스 헌장’을 마련,15일 서울역에서 선포식을 가졌다. 철도청은 이날 발표한 헌장에서 장애인 승객을 위한 도우미를 운영하고,매표소를 예매창구와 당일창구로 나눠 대기시간을 크게 줄여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또 서울역 대합실에 종합관광안내센터를 설치하는 한편 대합실안에 유아놀이방과 마중객을 위한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 피서철 특별수송대책 마련/건교부 17일∼새달 9일

    건설교통부는 오는 17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24일동안을 피서철 특별 수송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임시열차 8,952량,고속버스 428대를 긴급 투입키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특별수송 기간 중 이동인원과 이동차량은 각각 9,614만명과 5,143만대로 지난해보다 4.4%,4.8%씩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철도=임시열차 1,055개 8,952량을 늘려 총 850만명을 수송할 계획이다. 피서지 인근 24개 역에 노천대합실을 설치하고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17일부터 8월16일까지 임시매표소를 운영한다. ▲고속버스=이 기간에 예비차 428대를 투입해 총 8,417회를 추가 운행함으로써 368만여명을 수송한다. 소통정보 홍보를 위해 안내전화(02­537­2760,2761)를 운영한다. ▲시외·전세버스=시외버스는 노선별 수요량에 9,021대를 추가 배정한다. ▲해운=연안 여객선을 4,300회 늘려 164만명을 수송한다. ▲항공=국내선 항공은 1일 평균 19회를 늘린다. 평소보다 수송력을 4% 증강해 모두 166만명을 수송한다. ▲고속도로=교통취약 구간인 신갈·호법·남이·회덕분기점,대관령·기흥·안성·망향·천안·옥산·죽암휴게소,병목구간인 원주·천안·청원인터체인지를 집중 관리한다. 혼잡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원주∼강릉,청원∼회덕 등의 구간은 우회도로를 이용토록 홍보한다.
  • “지하철 7호선 9개 역사 라돈 기준치 2∼9배 검출”

    ◎경희대 金東述 교수 조사 지하철 7호선에서 방사능 물질 라돈(Rn)이 검출됐다는 주장에 따라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실태 조사에 나섰다. 경희대 金東述 교수(환경학과)팀은 8일 “지난 5월말부터 지하철 7호선 노원∼면목역 구간 9개 역사의 대합실과 승강장에서 실내공기의 라돈 농도를 측정한 결과 모두 환경기준치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특히 공릉역은 ℓ당 최고 35.6pCi(피코큐리)가 검출돼 미국 환경보호국이 일반지역의 기준치로 삼는 4pCi를 무려 9배나 초과했다”고 말했다. 측정결과 공릉역 외에도 태릉입구역 33.2,상봉역 16.1,먹골역 14.6,하계역 13.7,중화역 13.4,면목역 11.6,노원역 9.6,중계역 8.5pCi 등으로 나타났다는 것. 라돈은 무색·무취·무미를 특징으로 하는 자연 방사능물질의 하나로 기체 가운데 가장 무거워 지하공간에서는 오염상태가 지속되며 반복 흡입할 경우 폐암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로 알려져 있다. 지하철 7호선 구간에서 라돈이 많이 검출된 것은 지난 5월 2일부터 10일 사이 중랑천 범람으로 지하철역이 침수됐을 때 지하 암반의 지하수가 대량 흘러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어느 실직 노숙자의 어버이 날/金煥龍 사회부 기자(현장)

    “어버이날이건만 노모와 아이들이 있는 집에도 가지 못하는 심정을 누가 헤아리겠습니까” IMF 한파가 몰아치면서 실직자들의 집단숙소가 된 서울역 부근. 회사의 경영난으로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李모씨(44·강원도 태백시 황지동)는 8일 일생에서 가장 참담한 어버이날을 맞아야 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근무하던 李씨는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부도 회오리에 휩싸이면서 지난해 10월 직장을 잃었다. 17년동안 잔업과 특근을 가리지 않고 어렵게 번 돈을 조금이라도 불려 보려고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빌려줬으나 이마저 날리고 집을 차압당했다. 아내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했다. 李씨는 결국 채무자들의 빚독촉을 견디지 못하고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칠순 노모에게 맡겨둔 채 이리저리 떠돌다 서울역에까지 밀려 왔다. 노숙생활 6일째인 李씨는 “부모와 생이별해 어버이날을 보낼 아이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죽고 싶다”면서 “오늘 아침 전화에서 딸이 ‘아빠 보고 싶어요’라고 한 말이 귓전을 맴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예년 어버이날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따로 사는 노모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불효의 날’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서울역 대합실과 광장 주변에는 숱한 ‘또 다른 李씨’들이 고향의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며 시름을 달래고 있었다. 힘없이 의자에 기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반백의 실직자 가슴에는 붉은 카네이션 대신 때절은 고통만이 매달려 있었다. 서울역 주변에는 자원봉사단체가 제공하는 급식으로 배를 채우며 하루를 지내는 실직자가 어림잡아 1천명에 이른다. “번듯한 직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몇푼이라도 벌 수 있는 잡일거리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라는 李씨는 “어버이 날 만큼은 애비 노릇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 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 훈 할머니 異國 생활 53년 청산/어제 캄보디아서 영구 귀국

    훈할머니 李男伊씨(73)가 1일 상오 7시10분 싱가포르발 베트남항공 938편으로 영구히 귀국했다.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캄보디아에 끌려간 지 53년만이다. 훈할머니는 이날 외손녀 닉 잔니양(18)과 ‘훈할머니 돕기 불교후원회’부회장 姜仁盛씨(42)의 손을 잡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국장을 걸어나왔다.지난해 8월 처음 방문했을 때와 달리 건강한 모습이었다. 노란색 투피스 차림의 李씨는 마중나온 정신대할머니 등 10여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흘렸다.훈할머니를 알아본 대합실의 시민들이 환영의 뜻으로 뜨거운 박수로 보내자 손을 들어 답례했다. 李씨는 서울시내 호텔에서 잠시 머문 뒤 이날 하오 경북 경산시 ‘나눔의 집’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이 마련한 환영잔치에 참석했다. 훈할머니는 앞으로 잔니양과 함께 경북 경산시 계양동 계양아파트에 사는 올케 曺선애씨(64)의 집에 당분간 머물 예정이다.
  • IMF 한파와 안식처/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굄돌)

    아침저녁으로 아직도 쌀쌀한 날씨에 지하철 대합실이 가정을 등진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간다고 한다.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일당이라도 해야할 형편이기에 어린 자식을 데리고 보육원을 찾는 이도 많아졌다 한다.이들은 그래도 막연하나마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이다.아예 세상을 영원히 등지거나 처자까지 데리고 가는 경우가 하루에 30여명이나 된다는데,이러한 현상이이제 시작이라니 어디까지 언제까지 갈런지 상상하면 두렵기만 하다. 우리의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의 뇌리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좌절과 분노의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또 어찌할꼬. 우리 삶을 이 지경까지 몰고온 IMF한파의 주범은 과연 누구인가?혹자는 자업자득이라 말하는가 하면,돈을 벌 수만 있다면 지옥에라도 간다는 자본주의의 일면인 금융제국주의자들의 계략이라는 이도 있으며,세계를 지배하려는 집단이나 국가의 음모라고 하는 이도 있다.주범이 누구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국가부도를 우선 막아야 하지만,한편으로 한파에 떠는 우리의 부모와 형제자매,그리고 자녀들에게방한복을 입히는 것이 화급한 일이다. 지하철에서 신문지를 이불삼은 저 눈물도 마른 웅크린 군상을 보라.저들의 안식처가 저세상이나 지하철이나 보육원이 되거나,가정과 인격이 파괴된 채 방황하는 무리를 옆에 두고 못본 척 지나간다면 우리는 제사장이나 레위人이 아닌가!丁丑國恥(정축국치)라고도 부르는 이 난국에도 권력과 명예와 돈방석에 앉은 양반네들이나,아직은 배부르고 등더운 중산층은 구두선이나 보신에 급급하여 이 한파를 체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가난과 전쟁의 고난을 이겨낸 향약과 村契(촌계)의 患難相恤(환난상휼)정신을 살려 동네마다 가정과 세상을 등진 자들을 구제함이 어떨까.그렇다,우리 착한 서민들이여!다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돌아가자! 진정한 안식처를 위하여.
  • ‘사병 감봉’은 국난타개 동참 취지/安永夫(공직자의 소리)

    IMF 관리체제에 들어간지 4개월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경제실상은 심각하다. 매일 1만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해 거리로 내몰리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부랑자 신세가 되어 역대합실로,지하철역 구내로 이리저리 쫑겨다니는 참담한 현상이 벌이지고 있다.가히 6·25이후 최대의 국난임을 실감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싫든 좋든 이웃의 고통을 함께해야하는 시대가 됐다.거리로 내몰린 가장과 그들을 가족들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해서는 안된다.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유달리 인정이 많은 민족이 아니었던가.그 참담했던 보리고개를 초근목피로 해결하면서도 콩 반쪽이라도 나누어먹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의 민족성을 되살려야 한다.빗방울이 모여 큰내를 이루듯이 십시일반의 작은 정성이 국난극복의 초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실업기금 마련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직업공무원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봉급도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말수당에서 삭감하기로 했다.이러한 결정에 대해 세간에서는 나라를 지킨다는 긍지하나로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병사들의 몇푼 안되는 월급까지 깎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물론 그러한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병사들의 봉급까지 실직자 구제대책에 쓰여진다는 데 의미를 찾아야한다고 본다.국민의 국대로써 국민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겠다는 애국애족 정신이 아니겠는가.고사리손에 들려온 돼지저금통속의 동전 몇푼의 가치만큼이나 우리 병사들의 뜻이 소중하다는 사실이 널리 인식됐으면 한다. 병사들의 작은 정성이 보탬이 되어 실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IMF 고통’도 나누면 줄어듭니다/시민단체 실직자 돕기 확산

    ◎무료급식·진료·취업상담 등 활동 다양/노숙자에 음식 나눠주며 고통체험도 ‘고통은 나눌수록 적어집니다’ IMF 체제의 감원태풍으로 거리로 내몰린 실직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시민단체 등이 점차 늘고 있다. 실직자 돕기 모금운동과 더불어 무료급식 및 무료진료,취업·창업상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한 교회 신도들은 노숙자들을 위로하려고 지하도에서 함께 밤을 새웠다. 서울 YMCA는 구인업체와 구직자를 연결해 주기 위해 이 달 말쯤 서울 종로2가 YMCA 건물에 ‘고용지원센터’를 개소할 예정이다.전문상담원 3명이 상주하면서 고용보험 등 실직자들의 관심분야에 대해 상담도 한다. 다음달에는 ‘실직자 전문소식지’를 발간,법률상담과 심리상담을 해줄 계획이다. ‘좋은사회 시민연합’‘한국녹색교육협회’‘안양 시민의 모임’ 등 23개 시민단체는 오는 14일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경제난 극복을 위한 시민연대’을 발족,‘실직자 돕기 통장만들기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시민연대가 개설한 통장에후원금 형태로 돈을 부치도록 한다는 것이다.후원대상은 퇴직금도 받지 못해 생계에 위협을 받는 실직자들이다. 이들의 취업활동도 병행하면서 전국에 산재한 유휴농지 등에서 농민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경실련 산하 ‘이웃을 돕는 사람들’은 서울 중구청의 지원을 받아 실직자를 위한 긴급구호센터를 중구 남대문로 5가에 건립하고 다음달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가기로 했다.실직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과 무료진료 등 긴급구호활동과 함께 전문상담활동,일자리 찾아주기 활동 등을 펼친다. 무의탁노인 등을 위한 봉사단체인 다일공동체(대표 崔一道 목사) 소속 신도 2백여명은 지난 7일 저녁 서울역 대합실과 지하도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밤을 보내는 행사를 가졌다.이들은 노숙자들에게 라면과 김밥을 나눠주고 차가운 바닥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면서 노숙의 고통을 체험했다. 崔목사는 “집이 없거나,있어도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희망을 잃은 우리의 자화상”이라면서 “시대상황이 빚어낸 노숙자들의 아픔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공동체 의식개혁 국민운동협의회는 지난 2월부터 ‘사랑나누기 운동’을 실시,지금까지 10억원을 모금했다. 협의회는 모금한 돈으로 5백∼1천명에게 한달에 50만원씩 6개월동안 지원할 계획이다.또 3억5천여만원을 들여 서울 근교에 5백여명을 수용하는 ‘실직자합숙소’를 건립,실직자들이 낮에는 공공사업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재취업 교육을 받도록 할 계획이다.
  • IMF시름 떨치고 열광… 환호…/한국 축구,일본 꺾던 날

    ◎한밤 집집마다 만세 함성/역·터미널 TV앞 인산인해 쓰디 쓴 IMF한파 속에 달디 단 환호성이 터졌다. 1일 박빙의 승부로 치러진 한·일 축구전을 지켜본 국민들은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지켜낸 승리의 기쁨에 모처럼 IMF시름을 떨쳐내며 환호했다. 서울 잠실축구경기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을 비롯,텔레비전 중계방송을 통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IMF한파 만큼이나 긴부상의 터널을 벗어나 결승골을 뽑아낸 黃善洪 선수의 멋진 발리 슛에 너나없이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장대비 같은 봄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잠실벌은 경기시작 두시간 전부터 후끈 달아 올랐다.비를 맞으며 전광판 아래에 자리한 ‘붉은악마들’를 비롯,7만여명의 관중들은 ‘우리는 챔피언’ 등 응원가를 부르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 우리 선수들의 절묘한 슈팅이나 패스가 나올 때마다 파도타기와 종이가루를 뿌리는 등 폭발적인 응원을 보내던 우리 응원단은 전반 5분을 남기고 먼저 1골을 넣자 ‘이상윤’을 연호하며 축제분위기. 경기장을 붉은색으로 뒤덮은 ‘붉은 악마들’이 ‘대한민국’을 외치자 맞은 편에 앉은 일본응원팀 ‘울트라 니폰’도 ‘니폰’을 외치며 응수. ○…이날 경기장에는 ‘월드컵을 잘치뤄야 IMF를 이겨낸다’는 우리 응원단의 플래카드가 내걸려 눈길. ○…우리 응원단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30여분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승리를 자축. 반면 일본응원단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관중들은 경기 종료후 주위에 흩어진 쓰레기를 주워 미리 준비한 쓰레기봉투에 담아 나오는 등 높은 시민의식을 발휘. ○…승리의 함성은 서울 광화문 네거리과 서울역 대합실 등에서도 터졌다.이날 시내 곳곳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전 앞 도로에는 교복 차림의 중·고생 등 시민들이 모여 열띤 응원을 펼쳤다.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2대의 대형TV 앞에도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 및 실직 노숙자 4백여명이 몰려 골이 터질 때마다 환호.
  • 김포공항/취임식 참석 VIP 입국 러시

    ◎국가 원수급 7명 포함 150명 예상/입국장·의전실에 환영 영어 입간판 설치/테러발생 가능성 대비 취약지 순찰 강하 25일 열리는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거물급 외국 귀빈들이 속속 입국하고 있다. 초청 외국 귀빈은 줄잡아 1백50여명.국가 원수급은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나카소네 야스히로·다케시타 노보루 전 일본 총리,모루아 전 프랑스 총리,도이 다카코 일본 사민당당수,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등 7명이다. 대부분의 귀빈들이 취임식 하루 전인 24일 서울에 도착한다.22일에는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전용기로 입국,신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23일에도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와 와타나베 게이타로 일본 우정대신 등이 들어왔다. 김포공항의 상주 기관들도 귀빈을 안전하고 친절하게 맞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한국공항공단은 국제선 1·2청사 입국장과 의전실에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외빈을 환영합니다’라는 가로 40㎝세로 60㎝ 크기의 영어 입간판 20개를 설치했다. 김포세관은 입국 검색대에 귀빈(VIP)전용 통로와 검색대를 마련,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휴대품 검사 등을 생략하고 있다. 법무부 김포출입국관리소는 1·2청사에 각각 4개의 전용 심사대를 마련,심사관들에게 영어로 ‘안녕하십니까.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등의 인사를 하도록 했다. 경찰과 공안당국은 초청인사를 가장한 불순분자의 입국과 테러 가능성에 대비,입국장과 대합실에 사복경찰관을 집중 배치하는 등 보안 검색과 화장실 등 취약 지점에 대한 순찰을 강화했다.
  • 법률 용어 쉬워진다/대법,‘법원 맞춤법 자료집’ 배포

    ◎일본식 어투·한자 투성이 한글로/‘금일→오늘’ ‘일응→신체’ 등으로 일본어투가 많고 한자어 투성이인 판결문 등 법원의 공문서가 쉬운 우리말로 바뀐다. 대법원은 25일 일제시대 법률문장의 잔재 등을 우리말로 쉽게 바꾼 ‘법원 맞춤법 자료집’을 전국 법원에 내려보내 판결문·결정문 등을 쓸 때 반드시 참고토록 했다. 우선 습관적으로 사용해 온 일본식 용어를 고쳤다.거래선은 거래처로,금일은 오늘,논지는 말하는 취지,대합실은 기다리는 곳,매장은 점포나 가게 등으로 바꿨다.수순은 순서나 절차,신병은 신체,일응은 우선·일단,지분은 몫,행선은 갈 곳으로 각각 고쳐 쓰도록 했다. 또 ‘∼라고 보여진다’는 ‘∼라고 보인다’로,‘이유없다 할 것이다’는‘이유없다’로 고쳤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 법률용어도 쉬운 말로 바꾸었다.간석지는 개펄,가액은 값,개거는 도랑,개호는 간호,고지는 알림 등을 선택해 쓰기로 했다. 이밖에 ‘개전의 정이 현저한’은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으로,‘용에 공하기 위하여’는 ‘쓰임에 제공하기 위하여’로 쉽게 풀이하도록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의 판결문 등 법원문장은 일제시대의 영향이 남아있던 50∼60년대에 제정된 것”이라며 “앞으로도 각종 공용문서의 맞춤법 오용사례 등을 모아 올바른 우리글로 꾸준히 바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 “내조일정 빡빡…우리가 더 바빠요”/후보 부인 24시간 밀착취재

    3당 후보들도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이들을 내조 하는 후보부인들의 24시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이들 후보부인들의 하루를 르포식으로 밀착 취재,소개한다. ◎한인옥/유권자들 악수공세에 손등마저 퍼렇게 변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는 휴일인 14일 구기동 자택에서 새벽 5시30분에 눈을 떴다.닷새만에 집에서 맞는 아침이었다.지난 9일부터 4박5일간 폭설과 혹한속에 지방유세를 다녀온 뒤끝이라 온몸이 나른했다.전날 TV 찬조연설을 촬영한 일이 꿈결 같았다. 한여사는 유세일정표와 전국 유권자들이 보낸 격려성 편지부터 훑었다.“서민들의 소박한 바람들을 읽다보면 힘이 절로 난다”고 한다.식사는 이후보보다 먼저 했다.상오 9시로 잡힌 우이동 도선사 방문 일정에 맞추려면 늦어도 8시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평소 가볍게 해결하던 아침 식사이지만 이날은 영양보충을 위해 곰국에다 밥한그릇을 말아 ‘뚝딱’ 해치웠다. 상오 10시45분쯤 한여사는 혜화동 카톨릭신학대학원 성당에 도착했다.이동중 시내에서 만난 이후보와 함께였다.국내 카톨릭단체 주선의 국내 입양 1천명을 기념하는 감사 미사를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한 자리였다. 이후보와 헤어진 한여사는 청량리역으로 직행했다.하오 1시35분쯤 역광장에는 이명박 노승우 의원 등 ‘새물결유세단’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소개를 받은 한여사는 유세차량에 올라 “잘 부탁한다”며 두손을 흔들었다.광장과 대합실을 한바퀴 돌며 악수를 나눈 승객·시민들만 2백여명이 넘었다. 20여분뒤 한여사는 청량리발 원주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하오 3시40분 원주에 도착한 뒤 시장 몇곳을 돌다보니 어느새 어스름.하오 7시10분 원주발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한여사는 수행비서 이미경씨가 건네준 다음날 일정을 받아든채 선잠에 빠졌다.일정표에는 부산 자갈치시장과 자유시장,개금 골목시장 등 9시간의 ‘땀’과 ‘입김’이 한여사를 기다리고있었다. 즐겨 입는 청보라빛 두루마기 한복 사이로 퍼래진 손등과 두볼이 언뜻 내비쳤다. ◎이희호/울산·포항 등 지방유세… 조간신문 모니터까지 김대중 후보 부인인이희호 여사는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1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자택.이날도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자리에 일어나 조용히 손을 모은다.앞으로 3일,김후보의 건강과 그의 마지막 승리를 간절히 기원한다. 5시20분쯤 현관문을 나서 수북히 쌓인 조간신문을 챙긴다.아직도 신문 모니터는 이여사의 몫이다.지난 40여년간 시민운동에 참여했던 감각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정치적 동지(?)라는 주위의 귀띔이다. 지난 12일 기자는 김후보의 ‘내조유세’로 정신이 없던 이여사를 찾았다.이날은 울산·포항 방문.신정·죽도 시장방문,거리유세,여성단체 간담회,기자 간담회,경북도지부 당직자 격려….개인비서 윤세나씨(28)는 “젊은 사람도 따라다니기 힘든 일정을 이여사께서 무리없이 소화하고 있다”며 정신력에 혀를 내두른다. 상오 7시20분쯤 김은주씨(신기남 의원 부인) 등 5명의 수행원들과 김포공항으로 향했다.울산에 도착,4건의 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포항 죽도시장을 찾았다.하오 2시50분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속에서 대기중이던 엄삼탁선대위고문과 박태준 자민련 총재측 사람들과 합류,본격적인 유세를 시작했다.좌판을 펼친 할머니와 손수레를 끄는 아주머니들,시장을 찾은 주부들의 손을 꼭 잡는다.이어 대왕예식장과 시그너스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여성단체와 기자간담회에 참석,여성운동가 답게 여성의 평등권과 사회참여를 주제로 차분하게 풀어갔다.“적극적인 자세로 도전에 응전하는 태도를 갖고 여성들의 능력을 펼쳐야 합니다.국민회의는 여러분들에게 많은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라며 간곡한 부탁을 이어갔다. 하오 9시가 넘어 일산자택으로 돌아온 이여사는 기다리던 여성·사회단체 관계자들을 접대해야 했다.“이번에는 반드시 당선되리라 믿습니다.다섯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은 언젠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시라는 뜻이겠지요”.김후보 곁에서 3번의 좌절을 고스란히 지켜봤던 이여사로서 이번 대선을 지켜보는 비장함이 배여있다. ◎김은숙/버스투어 14일째… 저녁엔 집지키는 딸에 전화 지난 13일 상오6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현대아파트11동 601호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자택.이른 새벽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가않다. 오늘은 이인제 후보의 청와대 회동이 있는 날.이후보가 상기된 표정으로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고교3년생인 큰 딸 명주와 연년생인 작은 딸 진화는 등교준비에 여념이 없다.이 부산함속에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가 눈에 띄었다.바로 이후보의 부인 김은숙 여사. 전날 제주도 유세를 다녀와 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무렵.다음날 일정을 준비하랴 이후보 일정을 챙기랴 수면 시간은 불과 3시간.잠이 모자라지만 새벽부터 두 딸과 이후보를 신경쓰지 않을수 없다.더욱이 이후보와 별도로 하루도 빠짐없이 지방을 돌고 있는 터라 자신의 일정도 준비해야 한다.오늘의 유세지역은 강원도.식구들 뒷바라지를 마치고 집을 나선 시간은 7시30분.속초비행장에서 유세팀과 10시에 조인트해야 한다.수행원과 특별 보좌관역을 맡고 있는 김씨의 친 여동생 혜숙씨,자원봉사자,사진기사를 대동하고 속초행 비행기에 올랐다.옆 자리에는 혜숙씨가 앉아 오늘 일정을 챙겨준다.잠깐 눈을 붙일만도하지만 잠잘 시간이 없다.김씨가 지방 유세에 나선 것은 지난달 30일부터.경기도 일원을 시작으로 대구 경북·부산·경남·충남북·제주를 도는 ‘동가숙 서가식’이 벌써 14일째다.버스투어를 하는 틈틈이 이후보와 연락을 하며 유세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물론이후보의 안부를 묻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저녁엔 집을 지키고 있는 딸들에게도 꼭꼭 전화를 해왔다. 속초 비행장에서 버스 유세팀과 합류,한복 차림에 허리끈을 질끈 동여매고 곧바로 동명항을 찾았다.항구에 내리자마자 어판장 상인들의 손을 잡고 “이인제 후보 안사람입니다.잘 부탁합니다”를 연신 외친다.한 상인이 선거에 보태쓰라며 3만원을 찔러준다.김씨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고인다.갓 잡아올린 양미리를 다듬는 주민들의 언 손을 놓고 속초 중앙시장으로 향한다.버스안 김씨의 자리는 운전기사 바로 옆 안내양 좌석.버스가 이동하는 동안은 줄곧 이 자리에 앉아 지나치는 행인들에게 손가락 3개를 펴보이며 버스속 유세를 계속한다.마지막 방문지인 태백 중앙병원 진폐병동을 찾아 환자들을격려한뒤 귀가길에 올랐다.안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40분.수행원 1명을 대동하고 집에 도착,딸 들의 반가운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일정은 끝이 났다.
  • 완공뒤의 모습/4㎞급 활주로 5개 ‘위용’ 과시(인천신공항)

    ◎대형계류장 항공기 153대 동시수용/미래 대륙철도 연계… 국제물류 중심 2020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인천국제공항은 미래형 초음속 초대형 항공기의 취항이 가능한 시설을 구비한다.또 기존의 인천항 및 전용 항구와의 기능적 보완을 통해 항공화물을 해상으로 고속 연결하는 체제를 갖춘다.미래의 대륙횡단철도와 연계됨으로써 새로운 국제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다. ○업무지역 5만평 조성 신공항에는 여객터미널을 중심으로 양쪽에 2개씩,그리고 영종도쪽에 1개 등 모두 5개의 4천m급 활주로가 들어선다.활주로간 거리가 2천75m로 대형 항공기의 동시 이·착륙이 가능하다.계류장에는 153대의 항공기가 동시에 주기할 수 있으며 안쪽 활주로 사이에 2동의 여객터미널과 4동의 탑승동이 설치된다. 터미널 남쪽 5만여평의 부지에는 국제무역과 업무시설,그리고 쇼핑·숙박·위락·휴양시설이 들어서는 국제업무지역에 조성된다.또 공항 동쪽 소음권 밖으로는 유통·상업·주거기능을 갖춘 배후지원단지가 위치한다. 화물터미널은 활주로 동쪽에 근접해 배치되며,활주로 북쪽에는 항공기 정비시설이 설치된다.이밖에 기내식 시설,급유시설,열병합발전소와 장기 주차하는 차량 및 버스 등이 주차하는 교통중추지역 및 철도차량기지가 상호 기능적 연관성에 따라 배치된다.제1·2여객터미널 사이에는 공항내 모든 교통시설과 항공기 및 차량의 이동을 통합 조정하는 복합교통센터가 설치된다. 총 1천7백만평의 부지에 항공수요에 따라 단계적으로 건설되는 신공항은 우선 1단계로 2000년까지 활주로 2개를 완성,연 17만 회의 항공기 운항과 2천7백만여명의 여객,1백70여만 t의 화물을 처리한다.2020년 건설이 모두 끝나면 연간 5만 회의 항공기 운항과 1억여명의 승객,7백여만 t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게 돼 동북아 항공수송의 중추적 기능을 맡게 된다. 여객터미널은 총 10만8천평 규모의 전천후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만들어진다.실용성과 우리 전통적 아름다움이 잘 조화된 여객터미널은 폭주하는 여객도 감당할 수 있도록 체크인 카운터를 섬(Island)방식으로 설계했다.2000년까지 1단계로 32개씩의 카운터를 갖춘 8개의 Island에 총 256개의 체크인 카운터가 설치돼 시간당 6천400명을 처리할 수 있다.여객터미널의 모든 시설은 승객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여객터미널은 터미널1과 터미널2,그리고 4개의 탑승동으로 구성된 총면적 33만8천800평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1단계로 건설되는 터미널1은 길이 1천60m,너비 149m,높이 33m의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로 총면적은 10만8천평.지상 4층에는 여객을 위한 레스토랑 전망실 구내매점 등 편의시설이 들어선다.지상 3층은 국제선 출발여객을 위한 구역으로 체크인 카운터,대합실,보안 검색 및 출발 심사,탑승라운지 등이 배치되고 매점 등의 각종 편의시설과 항공사 및 행정업무용 사무실 등이 배치된다.지상 2층은 국제선 도착과 국내선 도착·출발이 이루어지는 도착 중간층으로 입국 심사 및 검역시설,도착승객을 위한 편의시설 등이 배치된다.지상 1층은 국제선 도착층으로 국제선 도착 중간층인 2층에서 내려와 입국절차를 밟는 지역이다.지상 1층에는 도착 수하물의 수취장과 세관검사대,기계실 등의 지원시설이 배치된다.지하 1층에는 자동여객수송시스템(IAT)과 수하물 처리시설 및 지원시설이 설치된다. ○체크인 카운터 256개 여객의 수하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분류해 항공기로 운반하는 수하물 처리시설은 공항의 서비스 수준을 가늠하는 핵심시설.신공항은 1단계에서부터 중앙집중식 자동분류방식을 채택했다.2단계 이후에는 원거리 목적지까지 고속 운반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춰 효율을 극대화할 방침이다.수하물 처리시설은 출발여객용,조기수속여객용,대형 수하물용,도착여객용,환승여객용,단체여객용 등 여객 유형별로 구분 운영된다.도착수하물은 도착 5분 이내,환승수하물은 10분 이내에 처리된다.또 출발 3시간 이전의 조기수속수하물은 별도의 저장시설에 보관된 뒤 항공기 출발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분류되고 항공기에 탑재된다.신공항의 1단계 수하물 처리능력은 시간당 약 1만8천개. ○모든 수하물 자동분류 화물터미널은 총 47개의 건물로 연면적이 24만3천8백여평에 이른다.이 가운데 15개 동은 일반화물동이며 32개 동은 항공사 대리점,동물보호소,위험물 저장창고 및 기타 지원시설로 사용된다.규모별로 3가지 타입으로 설계돼 화물 운반과 시스템 변경이 쉽도록 돼 있다.여객터미널 계류장과 화물터미널은 지하 수송통로를 통해 화물이 이송된다.화물터미널에는 자동 운송장치와 자동적재,분류선반 등 시설과 함께 첨단 통신시설이 설치된다. 여객터미널 남쪽 5만여평에 조성되는 국제업무지역은 국제교역과 문화교류를 위한 각종 전용시설을 갖추고 있다.24시간 깨어있는 국제도시로 기능한다.이곳에는 공항과 연계된 국제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각종 시설이 들어선다.
  • 몽골 어느 탈북자의 삶과 고백(흑룡강 7천리:9)

    ◎노동·농사·목부… 고독한 이방인/“자본주의가 나쁘다는 말만 듣고 살아서리 눈으로 보겠다는 생각에 고향을 뛰쳐 나왔디요 외몽골·소련을 거쳐 구라파로갈 타산으로…” 중국으로 넘어오는 북한 동포들이 꽤나 되는 모양이다.탈북자라고 부르는 북한 동포들의 중국 월경은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다.식량난으로 허덕이는 북한의 현실을 고려하면 요즘의 탈북은 설득력을 갖는다.그런데 중국 보다 살기가 좀 나아서 밥술이나 먹던 시대에도 탈북자가 있었다.금을 캐는 노구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이한우씨(62·가명)가 그런 장본인이다.그것도 두차례에 걸친 탈북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역마살이 끼었는지 지금도 떠돌아 다니는 신세다.내몽골에 처자가 산다고 얼버무릴뿐 가족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았다.다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대륙에서 살아온 힘겨운 시절만을 털어놓는 것으로 일관했다.그러면서도 연신 주변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목소리를 낮추었다.그가 살아온 처지를 생각하면 그럴수 밖에 없겠지만,신분노출을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선땅이 가까운데서 온 작가선생이라 내레 믿고 얘기합네다.내 이름을 구태여 알라고는 하지 마소.수소문만 하면 형제들이 조선에 살지 않갔수.어디 살던 아무개가 중국에 산다는 것이 소문나면 좋지 않을 것입네다.내레 처음 압록강을 건너 단동에서 화물차를 탔으니까,고향이 어디쯤이라는 것은 짐작하실 거우다.선생도 그쪽 사람들 다 굶어 죽게 되었다는 소리 들었디요.내 가족들은 죽지나 않았는지…” 그는 1961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단동에서 무작정 화물열차를 탔다.화물차에 숨어 꼬박 이틀을 달려 어느 역에 닿았다.지금 생각하면 아성이었다는 것이다.중국말을 모르는 지라 벙어리 흉내를 내면서 밥을 빌어 먹었다.그리고 걸어서 하얼빈에 온 그는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화물차에 올랐다.열차는 쉬지도 않고 하루낮 하루밤을 달린 끝에 내몽골 하이라얼(해라이)에 도착했다. 중국은 당시 살기가 어려웠다.나무껍질과 같은 먹을수 있는 것이라면 다 먹었던 이른바 대식품시대라서 빌어먹기도 어려운 때였다.주린 배를 움켜 쥐고 역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잘 수 밖에….그러다 경찰에 잡혔다.조선인민군 정찰병으로 권투에도 능했던 그였지만,석탄차를 타고온 주제 꼴은 말이 아니었다.자신이 보아도 의심을 받기 딱 좋았다.붙잡히고 나서 곧바로 수용소로 직행했다.그러나 수용소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식량난이 극심해서 죄수가 도망가도 찾지 않았다.그는 수용소에서 만난 몽골족과 함께 탈출한 뒤 말을 훔쳐타고 외몽골로 들어갔다.조선인(북한인)넷에 몽골족 둘을 합해 일행은 여섯이었는데,몽골족 도움으로 조선족들도 모두 몽골족 차림을 했다.중국에는 당시 먹을 것이 없어서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떼지어 들어가던 시절,그는 왜 탈북자가 되었는가.그의 말을 들어보면 탈출 목적지는 중국이 아니었다. ○“가족들 죽지나 않았는지…” “외몽골과 소련을 거쳐 서구라파로 들어갈 타산을 댔디요.자본주의가 하도 나쁘다는 말만 듣고 살아서리 눈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네다.지금은 부자로 사는 남한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네다.여하간 호기심이 많아서리 고향을 뛰쳐나왔디요.중국과 몽골공화국은 다 같은 공산국가고 우호 인방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내몽골 들어가기가 쉬웠드랬습네다.순라병은 그림자도 없고 철조망 서너 가닥을 늘여 놓았더라 이겁네다.” 그는 일행과 초원 풀더미속에서 잠을 청하다 또 붙잡히고 말았다. 하이라얼 감옥에서 꼬박 두달을 살았다.그리고 나서 추방을 당했다.그를 기다린 곳은 함경도 아오지탄광이었다.그래도 하루 쌀 300g을 배급받았다. 북한은 당시 중국에 비해 사정이 좋아 노동개조를 받는 죄수에게도 쌀을 주었다.요즘 북한과는 천양지판이었으나 그는 또 탈북을 꿈꾸었다.1961년이 돌아오고 음력 설날을 며칠 앞둔 어느날 아오지를 탈출했다.두만강을 건너 도문에 와서 화물열차를 탔다.그래도 있던데가 좋았는지,다시 하이라얼에서 내렸다. ○아오지탄광서 또 탈출 그는 배가 무척 고팠다.자신도 모르게 식당 앞을 서성거리다 식사를 하던 노년의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손짓 발짓으로 식사를 구걸했다.여인은 측은한 눈길을 주면서 얼결에 말을 걸었다.조선말이었다.내몽골에서 조선말을듣는 것은 엄동설한에 불을 만나는 것과 같았다.모든 사연을 실토하고 밥 한 그릇을 얻어먹었다.그 여인은 당시 쉰 살의 조선족이었는데,몽골족 남편과 산다고 했다.이름은 이영숙,슬하에는 자식이 없었다. “내 딱한 사정을 듣고 자기를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묻습데다.내 거절할 이유가 없었디요.하이라얼에서 90리가 떨어진 그 집을 따라 갔더니,몽골족 남편이 양자를 삼겠다고 제의를 해왔디요.그분은 자기 이름을 투린자라고 소개합데다.촌의 당서기고 해서 사는 것도 그만했디요.몽골 초원에서 당서기 양아들로 사니끼니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모처럼 좌정을 하게 되었다 이겁네다.” ○넓은 초원서 3년을 목부로 몽골 유목민들은 양자를 두거나 데릴사위를 들이는 일을 해운으로 여기기 일쑤다.그래서 여남은 살을 먹은 소년을 소나 말,양 따위와 바꾸어 데려다 키우는 경우도 있다.이는 초원에서 노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의 하나인데,온정을 베푼다는 의미도 지녔다.‘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속담처럼 양쪽 모두가 손해볼 것이 없는 양속인지도 모른다.어떻든 초원에서 석 삼년을 목부로 살았다.그러는 동안 몽골말도 배우고 짐승을 방목하는 일에도 이골이 났다.이웃에는 28가구가 사는 조선족 마을이 있었으나 가난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초원에 겨울이 오면 유목민들은 정거생활에 들어간다.그 때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은 우물이다.그래서 이한우씨는 목축을 하면서 우물을 파는 일에 매달렸다.우물을 파서 돈도 제법 번 일이 있다는 그는 노다지 소문을 듣고 흑룡강상류로 들어왔다고 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고독한 이방인으로 초원을 잊지 않았다. “몽골 노래가 왜 음이 길고 높은지 아오? 망망한 초원엔서 방목을 하다 보면 고독할 때가 많디요.그 고독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길고 구성지게 부르는 겁네다.”
  • 선로전환기 콘덴서 불타/수동으로 작동하다 실수

    ◎대구지하철 시운전 사고 지난 5일 시운전중 발생한 대구지하철 1호선 전동차 정지사고는 선로전환기를 통제하는 신호장치의 콘덴서가 불에 타 일어난 것으로 최종 밝혀졌다. 대구지하철공사는 8일 하오 중구 남일동 지하철1호선 중앙로역 대합실에서 설명회를 갖고 “사고는 선로전환기에 신호를 보내는 신호장치부품의 콘덴서가 타면서 작동이 안돼 부역장 권기순씨(37)가 수동으로 선로전환기를 작동하다가 레버를 끝까지 돌리지 않아 선로와 선로전환기 사이에 생긴틈에 전동차 바퀴가 끼여 일어났다”고 밝혔다.
  • “잘싸웠다” 시민들 뜨거운 환영/월드컵축구대표 귀국 하던 날

    ◎500여명 공항에 마중나와 사인 공세/TV시청률 57%… 스포츠 중계사상 최고 일본에 통쾌한 역전승을 거둔 월드컵 축구선수단이 29일 하오 김포공항에 도착,가족들과 체육관계자,시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선수단이 입국장에 들어서자 환영객들은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일부 열성팬들은 ‘올레 올레’라며 축구 응원가를 불렀다. 선수단들은 이날 곧바로 모호텔로 직행해 마음을 다잡으며 다음 경기에 대비했다. ○…이민성선수의 아버지 이지형씨(56)는 이날 “민성아”라며 도쿄전 최고의 ‘영웅’에게 달려가 부둥켜 안고 등을 두드리며 기쁨을 나눴다.서정원 선수의 부인 윤효진씨(26)도 아들 동훈군(2)을 안고 있다가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활짝 웃으며 “걱정했는데 잘했어요”라며 포옹했다.윤씨는 남편으로부터 곧바로 합숙소로 가야 한다는 얘기를 전해듣자 “집에 좋아하는 삼겹살을 준비했는데…”라며 아쉬워하면서도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범근 감독은 “아직 전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수 없다”면서“다음달 4일 아랍 에미리트연합(UAE)과의 경기에서 선전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내 방송사들도 입국 장면을 생중계하느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대합실에 있던 5백여명의 시민들과 사인을 받으려는 열성팬들도 선수단과 뒤엉켰다. ○…MBC­TV가 28일 생중계한 월드컵축구예선 한일전의 시청률은 56.9%로 스포츠경기 단일채널 중계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 지하역­상가 먼지오염 위험수위

    ◎유동인구 많은데 배기·흡입시설 부족/거의 기준치 육박… 신촌역 등 2곳은 초과/서울시 연내 143억 들여 대폭 시설 개선 서울시내 지하철역,지하상가,백화점 지하매장 등 지하생활공간의 먼지오염도가 위험수위에 달했다. 서울시는 지하공간에 대한 공기오염원 및 시설관리실태에 대한 조사를 전문기관인 한국환경기술연구소에 의뢰,지난해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10개월동안 실시한 결과,지하철 2호선 신촌역 대합실과 영등포구 현우지하상가 등이 환경기준치를 각각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22일 밝혔다. 지하철역 대합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낸 신촌역 대합실의 경우,㎥당 321㎍로 환경기준치(300㎍)를 넘었다.지하상가로는 현우상가가 310㎍로 기준치를 초과했으며 회현(287.5㎍),종각(273㎍),강남(242.3㎍)은 기준치에 거의 육박했다.이는 유동인구가 많고 차량통행이 빈번한데도 먼지흡입장치나,배기시설 등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지하철 호선별 먼지오염도는 1호선이 243㎍으로 가장 높았고 2호선(228㎍),4호선(205㎍),3호선(186㎍) 순이었다.아황산가스의 경우,1호선이 0.017,2호선 0.016,4호선 0.011,3호선 0.010의 순으로 기준치인 0.15ppm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계속 방치할 경우 오염확산이 우려된다.대형 백화점 지하매장의 경우,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이 ㎥당 107.5㎍으로 가장 높았고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101.4㎍),미도파백화점 상계점(97.4㎍)으로 조사돼 대체로 양호했다. 시는 연말까지 지하철 선로나 터널의 먼지를 흡입 정화하는 먼지흡입열차를 구입해 운영하는 한편 급기구 167곳을 지상 1m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연 1회 이상 송풍관 청소를 실시하는 등 올해안으로 모두 143억원을 투입,지하생할공간의 오염을 줄여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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