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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1)

    목소리 속의 또 다른 목소리.‘열두 냥짜리 인생’,‘즐거운 잔칫날’,‘엄마야 누나야’,‘정든 그 노래’ 등으로 밝고 깊은 화음을 들려주던 남성4중창단 블루벨즈(Blue Bells). 이들이 곧 우리나라 최초(最初)이자 최장(最長)의 쿼텟(Quartet)이다. 편한 호흡처럼 느껴지면서도 그 호흡을 태우는 듯한 ‘깊은 울림’을 듣고 있노라면 1960년대 궁핍했던 시절, 대중가요가 지닌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당시 우리 가요계의 큰 특징 중 하나로 오디오의 급성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SP(축음기) 음반 시대에서 본격적인 LP 레코드 시대로 전환하는 새로운 장도 이 즈음에 열린다. 즉 하이파이 음색에서 스테레오 입체 음향의 개발과 함께 방송에서 띄우는 전파 역시 AM에서 FM이라는 보다 좋은 음질로 전환하듯 가요 역시 단시율(單施律)적인 소리에서 화성으로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블루벨즈의 등장은 이러한 소리의 변화를 담고 있는 1960년대의 상징이다. 우리나라 가요계 최초로 쿼텟, 즉 남성4중창단 블루벨즈가 첫 선을 보인 것은 영화 ‘심야의 블루스’를 통해서였다. 노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작곡가 손석우씨가 음악을 맡은 이 영화 ‘심야의 블루스’에서 남성 4중창단 ‘블루벨즈’가 극중 인물로 설정돼 등장한다.1960년도의 일이다. 이 스크린을 통해 설정된 ‘블루벨즈’ 멤버는 손시향, 박일호, 현양 그리고 김성배씨. 말하자면 솔로가수로 이미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이들이 전혀 낯선 쿼텟으로 분장해 등장한 것이다. 가수 손시향씨는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등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미남·미성의 가수였고 박일호(본명 박응호)씨는 1958년 ‘메아리 사랑’으로 데뷔, 역시 ‘비 내리는 일요일’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아울러 서울대 음대 출신 현양(본명 정운화)씨 역시 당시 솔로로 극장무대 등에 나서며 작곡가 손석우씨를 본격적으로 사사하고 있는 중이었고 드러머 출신 김성배씨 또한 ‘서울의 에드란제’ 라는 곡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인물.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행된 야간촬영에서 가수 현인의 노래‘꿈속의 사랑’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마지막 촬영을 끝낸 바로 그날 아침, 손시향씨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삼천만의 가슴에 현대인의 우수(憂愁)를 울려주는 종’이란 뜻으로 이름 지어진 블루벨즈. 이렇게 첫 선을 보인 이들 쿼텟이 실제로 결성되어 대중들 앞에 등장하는 건 이 영화 촬영 직후 KBS 라디오 연속극 ‘시계 없는 대합실’의 주제가를 부르면서.1960년 10월, 남성4중창단의 결성을 오랫동안 꿈꿔왔던 작곡가 손석우씨의 제의에 의해서였다. 이들 멤버는 각각 멜로디 박일호씨, 당시 KBS 전속가수 2기생이었던 서양훈(바리톤)씨, 그리고 현양(베이스)씨와 김천악(하이테너·본명 김영완)씨. 이 둘은 대구 계성고 동창으로 블루벨즈 팀에 합류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멤버는 모두 1935년생 동갑내기들이다. LP시대의 서막, 즉 1960년대 들어 본격적인 방송 활동과 음반 취입을 시작한 남성 4중창단 블루벨즈의 인기는 계속해서 스왈로 남성4중창단, 멜로톤, 쟈니브라더스, 봉봉 등을 잇달아 탄생시키며 우리 가요계에도 비로소 남성보컬 전성시대가 개막된다. 블루벨즈의 첫 히트곡은 ‘열두 냥짜리 인생’. 당시 노동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불리어지고 있던 이 노래는 처음 극작가 김희창씨가 채보, 개사해 본인의 드라마 주제가로 사용했다.1960년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이 노래 ‘열두 냥짜리 인생’은 블루벨즈에 의해 무반주로 취입했다. 이를테면 아카펠라의 원조인 셈이다. 블루벨즈는 특히 1960년대 서민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와 CM송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당시 전 국민이 귀를 모았던 라디오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즐거운 잔칫날’,‘고생도 달가와’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특히 정전이 자주 되던 1960∼70년대, 이들의 노래는 우리네 삶의 그늘을 밝게 해주는 빛이었다. 수신기 하나만으로도 노래와 드라마를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오락매체, 라디오가 국민들에게 큰 위안과 함께 영향력이 매우 컸던 시절, 블루벨즈는 이름 그대로 스스로는 ‘우수(憂愁)의 종(鍾)’이었으되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푸른빛의 종소리’였던 것이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지하철1~4호선 ‘석면 지도’ 작성

    서울메트로는 지하철 1∼4호선 모든 역사의 석면 전수조사를 실시해 ‘석면 지도’를 작성하기로 했다. 또 석면 검출이 확인된 방배역 등 17개역은 특별관리 역사로 관리한다. 서울메트로는 14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과 근무 직원의 생활 안전을 위해 ‘석면관리 강화 종합대책’을 마련해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현재 대합실(3곳), 승강장(18곳), 터널(3곳), 노반(1곳), 기능실(178곳), 설비(74곳) 등 1∼4호선 지하철 내 277곳에 석면 함유 자재가 설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하철 전 역사를 대상으로 석면 함유 자재 사용 여부를 재조사해 역사와 차량기지 내 석면 함유 자재 사용내역을 담은 ‘석면 지도’를 작성할 방침이다. 또 연 1회 이상 전역사의 석면농도를 측정하고, 특히 방배역 등 석면함유 자재 사용이 확인된 17개역은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매월 석면농도를 측정, 관리할 계획이다. 특히 지하철 역사의 냉방공사와 시설물 교체 공사가 이뤄지면 해당 역사의 석면함유 자재를 전면 제거하고, 공사는 ‘석면 관리 매뉴얼’에 따라 시행할 계획이다. 공사 기간에는 시민 안전을 위해 공사기간 또는 석면물질 제거 기간 동안 역사를 폐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불량 노숙인’ 오죽했으면…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 대합실 일부가 심야시간대에 폐쇄된다. 한국철도공사 부산지사는 23일 최근 ‘불량 노숙인’들이 야간에 대합실을 점령해 음주소란, 고성 방가, 구걸 행위등을 일삼아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1층과 3층 대합실 일부를 오는 28일부터 폐쇄 조치한다고 밝혔다. 폐쇄 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5시간 동안이다. 철도공사측은 지난해 절도·폭력·기물파손 등 노숙인들이 일으킨 형사사건이 41건, 역사 내 소란 흡연 등 행정사건이 1600여건에 달해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부산역 노숙인 수는 남성 200여 명, 여성 10여명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졌다. 철도공사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7월1일 ‘노숙인 없는 부산역’을 선포할 계획이며 부산 동부경찰서의 협조를 통해 노숙인들의 범법행위를 강력단속해 나갈 방침이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대합실이 폐쇄되더라도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1번 매표창구는 상시 개방한다.”며 “부산역을 쾌적하게 만들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Local] 광주 지하철 2구간 새달 시운전

    광주지하철 1호선 2구간(상무역∼옥동차량기지,8.14㎞) 선로공사가 완공되면서 다음달 초 시운전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현재 운행중인 1구간(상무역∼용산차량기지,11.96㎞)과 연결되며, 내년 3월 전체 구간이 개통된다. 21일 광주지하철건설본부에 따르면 현재 1호선 2구간 공정률은 89%로 최근 선로공사가 끝나면서 다음달 초 종합 시운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하철 1호선은 지난 1996년 8월 1구간 공사에 들어가 2004년 4월 준공됐다. 서구 마륵동∼광산구 옥동까지 2구간은 지하 30m에서 영산강을 가로지르는 난공사 구간으로 최근 마무리됐다. 대합실과 외부시설 등 운행시스템 공사는 오는 11월 말까지 준공할 예정이다. 시운전은 국산 전동차 2편성(1편성당 4량 단위)으로 한 뒤,5월 말부터는 10편성(40량)을 모두 투입한다.2구간 운행 차량은 불연재 내장재를 사용하고 방독면·산소 호흡기 등 비상용품과 화재감지기·화상정보장치 등 의 첨단 시설도 갖췄다. 1·2구간 총연장 20.1㎞ 건설에는 모두 1조 6444억원이 투입되며, 소요 시간은 33분으로 시내버스 80분보다 47분이 더 빠르다. 시 관계자는 “1호선이 완전 개통되면 도로교통 혼잡완화효과 1316억원과 생산성 향상 2조원 등 모두 2조 3000여억원의 경제적 효과와 2만 5000여명의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고객님… 여기는 부산’

    “고객님의 행복이 우리의 기쁨, 여기는 부산역…” 1일부터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승객들은 부산역 도착 방송 이후 이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철도공사 부산지사의 직원들이 직접 제작한 ‘CM’송이다. 가사는 부산지사 인사노무팀 김필종 과장, 작곡은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김익현씨의 도움을 받았다. 부산역 역무원 박해경 대리와 밀양역 역무원 김호정 대리,KTX 승무원 문금조 대리가 직접 가수로 참여했다. 부산지사는 6개월의 노력 끝에 완성된 노래를 오전 9∼10시 8회에 걸쳐 부산역 대합실에서 방송한 결과 호응이 좋자 열차내 시행을 결정했다. 지사 CM송을 일반열차에 이어 KTX와 승차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김필종 과장은 “고객 서비스 향상 차원에서 시도하게 됐다.”면서 “승객들의 반응뿐 아니라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문화가 있는 놀이터Ⅱ’ 개최

    서울문화재단은 1일부터 6일까지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대합실 혜화전시관에서 놀이기구 디자인 모델 전시회인 ‘문화가 있는 놀이터Ⅱ’를 개최한다고 31일 밝혔다. 문화가 있는 놀이터를 만들자는 모토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지난해 놀이기구 디자인공모전을 통해 개발된 5개의 놀이기구 모델이 공개된다.
  • ‘환상선’ 눈꽃열차 594.6 km

    ‘환상선’ 눈꽃열차 594.6 km

    환상선 눈꽃 순환열차!겨울 눈꽃을 소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5m의 태백선 추전역, 하늘도 땅도 세평이라는 오지 중 오지 영동선 승부역, 그리고 우리나라 인삼 일번지 중앙선 풍기역 등을 돌아볼 수 있는 겨울철 대표적인 기차여행 상품이다. 연계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수한 기차여행이라 부를 만하다. 왜 하필 이름이 환상선일까. 차창 밖의 눈꽃이 환상적이어서가 아니라, 열차 운행코스가 둥근 고리모양처럼 보여 환상선(環狀線)이라고 한다. 총 594.6㎞를 운행하는 동안 통과하는 터널은 210여개, 지나가는 교량은 500여개, 그리고 총 140개의 역과 만나게 된다. 경부선(서울~용산), 경원선(용산~청량리), 중앙선(청량리~제천~북영주), 태백선(제천~백산), 영동선(백산~북영주) 등 이용하는 철길만도 다섯개에 이른다. 글 사진 태백·영동·풍기 박준규 철도여행가 서울역 플랫폼. 여행사의 플래카드앞에 집결해 일정표와 좌석표를 배부받았다. 07시40분 개찰구를 나와 무궁화호 열차에 탑승. 오늘은 사람이 많은지 무려 12량(카페객차 1량 포함)이나 연결되어 있다. 맨앞에 디젤기관차 2량을 붙여 놓았지만, 과연 열차가 움직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버거워 보인다. 07시50분 열차가 천천히 승강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잠시 한강을 따라 달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청량리역이다. 08시14분 청량리역을 출발한 열차 창 밖으로 시골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모습이 볼 만하다. 마술사들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마술쇼를 벌이는 가 하면, 이벤트 담당자들이 게임으로 승객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열차 탑승시간이 긴 편이어서-거의 하루 종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다소 힘든 여정인 듯하다. 객실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에 참가하거나, 카페객차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잡아보기도 하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여행지를 구경하면 더욱 즐겁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기차 안에서 밖으로 보이는 설경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함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지나온 시간을 돌이킬 수 있는 여유, 순백의 순수함을 느끼게 한다. 꿩과 구렁이의 전설이 서려 있는 상원사가 떠오르는 원주역, 뱀이 똬리를 틀 듯 한 바퀴를 돌아 나오게 되는 루프형 터널(금대2터널), 월악산국립공원, 역사 문화의 교육장 청풍문화재단지, 선비 박달과 금봉 처녀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는 ‘울고 넘는 박달재’로 알려진 제천역 등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부터는 태백선 구간. 열차의 속도가 더욱 느려지며, 창 밖으로 멋진 경치가 펼쳐졌다. 연당역을 지나 영월역에 들어서기 전, 왼편에 비운의 왕 단종이 기거하던 청령포가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서강(평창강)과 동강이 만나 남한강이 되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미원역을 지날 때는 높이 올라와서 그런지, 마치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왼쪽 아래로는 증산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운행하는 정선선 철길. 정선 아리랑과 함께 기차여행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강원랜드 카지노와 새로 개장한 하이원 스키장이 있는 고한역을 지나면 정암터널과 만난다. 길이 4505m.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이다. 터널을 통과하는 데만 무려 8분 정도 소요된다. # 여름에도 역무실에 난로 피워 정암터널을 빠져 나오면 드디어 첫번째 정차역인 추전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5m에 위치해 있다. 정차시간은 20분정도. 여름에도 선풍기나 에어컨이 필요없고, 연중 난로를 피워야 할 정도로 평균기온이 낮은 곳이다. 몇해 전 여름에 추전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역무실 안에서 난로를 피우는 신기한 모습을 보기도 했다. 대합실에는 열차 시각표와 운임표와 함께 멋진 기차사진,100주년 기념 고무인 날인 책과 방명록(방명록에 한마디 적고 가시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쉼 없이 물을 뿜고 있는 추룡소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대합실 밖에는 석탄을 연료로 이용하던 시절 열심히 탄을 날랐던 광차, 추전역 기념석 등이 있다. 저 멀리 7기의 매봉산 풍력발전기는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두어명의 시골사람들이 도시인을 상대로 먹거리를 팔고 있다. 너무도 달아 쓴 맛을 못느끼는 당귀동동주와 각종 나물, 그리고 취나물로 만든 취떡 등이다. 특히, 한 할아버지가 만든 취떡은 어찌나 맛이 좋던지, 잠깐 사이에 금방 동이 나 버렸다. 12시39분 추전역을 뒤로 한 열차는 두번째 정차역인 승부역을 향했다. 13시30분. 상하행 통틀어 하루 6회만 기차가 서는 승부역에 도착했다. 하늘도 세 평, 땅도 세평, 마당도 세평이라 불릴 정도로 열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외진 곳. 첩첩산중의 지형으로 알려진 봉화군에서도 험준한 영동선 철길에 자리잡은 시골 오지역이다. 승강장 앞 쉼터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 있다. “작은꽃밭 애처로워 / 세평하늘 되었는지 작은꽃밭 넘친정에 / 세평하늘 되었는지 세평꽃밭 님의마음 / 하늘만큼 넓었으니 님의마음 승부역은 / 하늘꽃밭 만들어서 님과함께 정을주네” 오른쪽으로 뒤뚱거리며 냇가를 건너갈 수 있는 흔들다리가 놓여져 있다. 태풍과 수해를 겪으며 3번째 다시 태어난 사연을 간직한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청아하게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계곡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오솔길 코스, 옛 선조의 생활상을 표현한 농기구 전시관 등이 있다. 냇가쪽으로는 마을 아낙네들이 직접 경작한 산나물, 콩, 꽈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깎아 달라는 도시인과 안된다는 시골 아낙네간 흥정을 보노라니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듯하다. # “멋지다” 감탄사 연발 승부역을 나서면 이제 국내에서 가장 험준한 산악, 협곡지역을 지난다. 창 밖의 경치가 멋지다 못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설경을 편안한 열차 안에서 실컷 볼 수 있으니, 영화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렇게 설경을 보며, 오순도순 정겨운 이야기를 하고, 계란을 까먹으며 부모님은 옛 추억을, 자녀들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차여행. 얼마나 좋은 것인가? 눈 덮인 고요한 산과 들을 굽이굽이 돌고,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간이역과 시골풍경을 바라보면 눈이 즐거워진다. 17시00분 한눈 팔 시간이 없을 정도로 계속되는 멋진 경치에 “우와! 멋지다∼”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동안 열차는 세번째 정차역인 중앙선 풍기역에 도착했다. 인삼으로 유명한 곳. 인삼향에 취해 역앞 인삼시장에서 인삼을 사기도 하고, 재래시장에서 사과, 고추, 참깨, 무, 파 등 신선한 농산물을 사기도 했다. 풍기역 앞 인삼모형에 얼굴을 대고 사진을 찍으면, 아쉽지만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 18시00분 풍기역을 떠난 기차는 단양팔경과 고수동굴, 구인사, 남한강 물줄기가 보이는 단양역으로 향했다. 19시00분 카페객차에서 오늘의 마지막 이벤트 디스코 타임이 벌어졌다. 그동안 객실에서 조용히 여행을 했다면, 이곳에서 신나는 음악과 함께 잠시 몸을 흔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디스코음악도 멈추고 열차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피곤한 하루를 정리하기 좋은 시간. 원주, 양평 등을 지나 21시 53분 서울역에 도착한 열차는 긴 한숨을 내쉬며 14시간에 걸친 기차여행을 마무리했다. # 여행정보 청량리역에서 다음달 11일까지 매일 출발한다. 주관여행사는 경인관광여행사(www.ktx7788.co.kr)(032)343-7788,(080)343-7788. 주중에 어른 3만 6000원, 어린이 3만 3000원. 주말에 어른 3만 9000원, 어린이 3만 6000원. 회원 가입 후 인터넷 예매시 2000원 할인(주중 출발에 한함). http:///www.traintrip.wo.to http:///cafe.daum.net/traintripwrite 참조
  • 곡성 기차마을로의 초대

    곡성 기차마을로의 초대

    눈꽃 기차여행을 빼고, 겨울여행에 대해 논하지 말라!지난 17일 전국에 폭설이 내리면서 진정한 겨울이 찾아왔다. 며칠 전 친구와 함께 전라남도 곡성군의 기차마을을 다녀왔다. 설경이 너무 아름다워 이 겨울에 그 곳으로 초대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여수행 열차를 타고 곡성역에서 내렸다. 안내판을 따라 700m 정도 걸어가니 흰눈에 쌓인 기차마을이 보였다.1933년에 지어진 구 곡성역(기차마을)부터 가정역(청소년 야영장 입구)까지 약 10㎞ 구간에 전국 유일의 관광용 증기기관차를 운행하고 있다. 또한 구 곡성역 일대에 기차모형과 조형물, 그리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사용된 증기기관차 등으로 철도공원을 조성해 가족나들이에 안성맞춤의 장소로 변모해 있다. 글 사진 곡성 박준규 철도여행가 현재 운행중인 증기기관차는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운행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는 디젤 기관차. 어렸을 적 기차를 타고 다녔던 추억과 고향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외형은 미카형 증기기관차를 본뜬 듯하다.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위로 하얀 증기가 나오고, 특유의 기적을 울리기도 한다. 속도는 시속 30∼40㎞. 기관차 2량에 객차 3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312명이 탑승할 수 있다. 기차마을에서 가정역까지 25분 정도 소요되며,20여분을 머문 다음 되돌아 간다. 운행은 하루 2∼4회. 자, 기차표도 샀으니, 출발해 볼까. 역명판과 대합실 등이 온통 나무로 만들어져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다. 영화촬영장으로 쓰였던 각종 도구들도 잘 보존되어 있다. 기차는 정확히 오후 2시에 힘찬 기적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건널목을 지날 때, 차단기에서 주의를 알리는 ‘땡땡∼’ 하는 소리며, 빨간색의 철교 등 구 전라선 철길을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해 놓았다. 이런 원시적인 철길에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설국, 바로 옆으로는 17번 국도와 섬진강이 나란히 달리니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멋진 풍경을 정신없이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게다가 위의 창문이 열리니 시원하기까지 하다. 만약 입석으로 탄다면? 객실에서 서서 가도 되지만, 시원하고 상쾌한 강바람을 맞으며, 객차와 객차 사이의 통로에 앉아서 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단, 안전사고에는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열차는 완충장치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철길 이음매를 달릴 때 엉덩이가 조금은 아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기차에 대한 어렸을 적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 레일바이크도 탈 수 있어요 천천히 25분여를 달려 가정역에 도착했다. 아래로 대칭미가 뛰어난 두가현수교가 보인다. 사람만 다닐 수 있어 사진을 찍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눈 쌓인 두가현수교를 뒤뚱뒤뚱 건너면 청소년야영장과 폐교를 손질한 녹색 농촌체험학교를 볼 수 있다. 다리 왼쪽에는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전통마을을 조성중이다. 다시 기차에 올랐다. 정차시간 20분 동안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기차 앞이 온통 눈천지로 변했다. 증기기관차를 타보았으니, 이제 철로 자전거체험을 해볼 차례. 일명 레일바이크다. 한 대에 4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1회 이용요금은 2000원. 내년엔 3000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곡성 레일바이크의 거리는 약 510m. 정선 레일바이크나 문경 레일바이크에 비해 거리가 다소 짧다. 레일바이크 외에도 하늘자전거,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랜드가 설치되어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을 위해 1960년대의 증기기관차와 2004년 3월31일까지 운행되었던 추억의 통일호, 그리고 영화 ‘아이스케키(2006년 개봉)’ 세트장 등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구경도 다 했으니 이제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볼까. 철도공원 내의 기차카페나 초가에서 토속음식도 좋지만, 시간을 내 곡성읍내의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곡성역 앞 식당에서는 증기기관차 승차권을 소지한 사람에게 10% 할인혜택을 준다. 곡성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참게.23년 전 개업한 이래 남도요리명장대회에서 8번이나 상을 탄 새수궁가든(061-363-4633)은 게장으로 유명한 집. 너무 짜지도 맵지도 않은 게장맛이 신기하기만 하다. 새송이 버섯도 별미. 대표 메뉴는 6만원짜리 ‘닭잡아먹는 참게탕’. 은어조림(소)은 2만 5000원, 참게+메기탕(대)은 3만 5000원을 받는다. # 가는 길 용산, 영등포역에서 평일은 12회(새마을호 3회, 무궁화호 9회), 주말엔 총 13회 운행. 무궁화호 4시간20분 소요. 요금은 무궁화호 2만1000원, 새마을호 3만 900원(편도). # 증기기관차 인터넷(www.gstrain.co.kr)으로도 좌석예약이 가능하다. 하루 3회 운행. 어른은 왕복 5000원, 어린이는 왕복 4000원을 받는다.20명 이상 단체, 국가유공자, 청소년 등은 할인해 준다.23일∼내년 1월1일까지 50% 특별할인행사도 벌인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061)360-8850,8378. ■ “여기도 좋아요” 눈꽃 여행지 5곳 # 태백산 도립공원(강원 태백) 눈꽃여행 하면 태백산! 천제단의 장엄한 일출, 천년의 세월에도 끄떡없이 서있는 주목 등이 장관이다. 당골광장에서는 내년 1월26일∼2월4일까지 눈축제도 열린다. 충북 제천에서 태백까지 태백선 열차 차창으로 펼쳐지는 눈꽃세상도 볼 만하다. 무궁화호가 청량리역에서 태백역까지 하루 7회 운행한다.1만 5200원.4시간 소요. 태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33번 버스를 타면 당골광장까지 갈 수 있다. 태백시 문화관광과(festival.taebaek.go.kr) 033-550-2081∼5. # 승부역(경북 봉화)과 추전역(강원 태백)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5m에 위치한 역.‘하늘도 세 평, 마당도 세 평’으로 알려진 승부역은 오지중 오지다. 두 곳 모두 서울에서 한번에 가는 열차가 없어, 패키지 여행이 적합하다. 환상선 열차(당일)가 1월13일∼2월11일까지 매일 출발한다. 요금은 주중 성인 3만 6000원, 어린이 3만 3000원. 주말엔 성인 3만 9000원, 어린이 3만 6000원. 인터넷 예매시 2000원 할인. 경인관광여행사(www.ktx7788.co.kr)032-343-7788,080-343-7788. # 덕유산 국립공원(전북 무주) 설경 하면 빠지지 않는 곳. 무주리조트(063-322-9000)에서 곤돌라를 타고 해발 1522m의 설천봉에 가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까지 20분 만에 오를 수 있다. 등산을 할 경우,5∼6시간 정도 소용된다.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부산·마산행 등의 열차를 타고 영동역에서 내려, 영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무주구천동행 버스(하루 9회,1시간30분 소요)를 이용하면 된다. 덕유산국립공원(www.npa.or.kr/gyu)063-322-3174. # 대관령(강원 평창) 대관령 삼양목장(033-336-0885,1234)과 양떼목장(033-335-1966)이 대표 관광지. 삼양목장은 동해가 한눈에 보이는 동해전망대,‘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촬영지 등 볼거리가 많은 곳. 산악오토바이(ATV)체험도 가능하다. 양떼목장은 눈덮인 드넓은 초지가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엉덩이 썰매 등의 놀이도 할 수 있다. 이곳 역시 경인관광여행사 등에서 운영하는 패키지 여행상품이 적합하다. # 소백산 부석사(경북 풍기) 영남의 대표절집 부석사. 무량수전 등 뛰어난 건축물들을 자랑한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소백산맥이 부석사를 향해 숭배하는 듯한 형상. 흰눈에 쌓인 소백산을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부석사 관광 후 풍기온천에서 목욕을 하며 여행의 피로를 달래는 것도 좋다. 청량리역에서 안동행 열차를 타고 풍기역에서 내린 다음, 부석사행 버스에 오르면 된다. 약 50분 소요. 풍기온천은 20분 정도 걸린다. 박준규의 기차여행기(www.traintrip.wo.to)와 기차여행기를 적는 사람들(cafe.daum.net/traintripwrite)참조.
  • “탤런트 되려면 미쳐야해요”

    “탤런트 되려면 미쳐야해요”

    TV「탤런트」를 모집할 때마다 그야말로 구름처럼 모여드는 지망생들- 웬만큼 자신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탤런트」의 꿈을 키워보지만 막상 병아리「탤런트」들이 당해야 하는 설움을 맛보면 너무「탤런트」좋아하지 마시오다. 지난해 봄에 부푼 꿈을 안고「탤런트」의 문을 두드렸던 J양은 1년이 지난 지금 완전 실의에 빠져있다. 처음 그렸던「브라운」관 주인공에의 화려한 꿈이 산산조각이 난 것은 옛날이고 뒤숭숭한 대합실 같은「탤런트」실의 한구석에서 조그마한 단역이라도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가냘픈 희망에 얽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리고 있다.『「탤런트」가 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점심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고. 각 TV 방송국에서는 해마다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전속「탤런트」교육생을 모집하고 있다. 모집인원은 대개 20명 정도. 이 20명안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모여드는 지망생이 2천여명이 넘는다. 1백대1의 치열한 경쟁율이다. 이렇게 바늘구멍을 뚫고 합격한 사람들은『이제는 왔구나!』하는 감격을 안고 부푼 가슴으로 6개월의 교육에 들어가게 된다. 선배「탤런트」들의 눈부신 모습, 연출가들의 고맙기만 한 격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방송국 안의 신기한 물건들…. 그러나 이런 부푼 꿈을 안고 교육에 들어간지 채 한달도 안되어서부터 그들의 마음 속에는『이게 아닌데…』하는 회의와 함께 깨져 흩어지는 화려한「탤런트」의 꿈을 가눌 수없게 된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엄청난 실망만이 회오리바람처럼 그들의 가슴을 스치고 갈 뿐이다. 그들에 대한 방송국의 무관심 때문이다. 월급은 7천원부터 시작 2년되어야 1만5천원 6개월의 교육기간이 지나고 나면 벌써 성급한 낙오자들이 상당수 나온다. 20명중 실제로 남는 사람은 10명 정도. 나머지는 이름만 걸어 놓은 채 뿔뿔이 흩어져 거의 방송국에는 나오지 않게 되고 만다. 교육이 끝나면 일단 그들은 방송국과 전속계약을 맺게 된다.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정식「탤런트」대접을 받는 셈이다. 6개월간의 전속계약을 맺는데 월급제와 출연료제의 두가지가 있다. TBC는 월급제이고 KBS와 MBC는 출연료제다. 월급제의 경우 초봉이 7천원. 6개월마다 승급을 하게 되는데 1만원, 1만2천원, 1만5천원으로 올라 간다. 1만5천원을 받으려면 2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출연료제의 경우 교육이 끝나면 1천원 고정. MBC는 3개월 뒤 부터 A B C급으로 등급을 두어 1회출연에 A급 2천5백원, B급 2천원, C급 1천5백원을 준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이 출연하는, 횟수는 1주에 평균 2편이 넘지 못하는 실정. 따라서 1개월 수입이 고작 2만원을 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그것도 1년이 넘은 A급의 얘기고 보면 그밖의 사람들은 월급제의 경우와 별로 차이가 없다. 동기(同期)인데도 등급을 두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경쟁심과 의욕을 북돋우자는 뜻에서라고 한다. 그래서 6개월 후 재계약 할 때에 C급이던 사람이 A급으로 뛰어 오를 수도있고 A급이 C급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A급이나 C급이나 수입면에 있어서는 턱도 없는 액수이기 때문에 사기에만 영향을 줄 따름이라는 그들의 불평이다. 「프리」가 될 때까지 2년 넘어 그렇게 지내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도중하차」해버리고 만다. 배정된 역할도 없이 매일「탤런트」실에 나와서 빈둥거린다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이나 끈기로는 견딜 수없는 노릇이다. 장기나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다가 혹 재수가 좋아서 단역이라도 걸리면 다행이지만 그런 기회도 역시 가뭄에 콩나기 정도. 따라서 느지막에 얼굴만 비치고는 사라져버리는 명색만의「탤런트」가 대다수다. 끈기있게 견디는 사람은 20명중에서 2,3명정도 이렇게 해를 거듭하다가 보면 결국 남는 인원은 극소수. 1기에 2,3명 정도가 마지막까지「탤런트」의 자리를 지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MBC-TV의 이기하(李基夏) 제작국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방송국 실정으로 보아서 교육시킬 만한 여력이 없다. 민방(民放)의 경우에는 더욱 곤란한 형편이다. 교육에 투자를 했다면 그만큼 건져야 되는 것인데 과연 그게 가능할는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외국에서는 극단이나 조합이 있어 거기에서「탤런트」를 양성하고 있다. 그래서 극단이나 조합과 방송국이 직접 계약을 해서 완전한「탤런트」로서의 「상품가치」를 구하고 있다. 「탤런트」들에 대한 시청자의 식상 역시「탤런트」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루 아침에「스타」의 자리에 앉기를 꿈꾸는 망상이 그것이다. 『「탤런트」는 뭣보다 끈기와 인내 그리고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선배들이 하는 것을 부지런히 쫓아 다니며 배우고 혼자 연습해 보는, 말하자면 완전히 미쳐야 하는 것이다. 얼굴만 가지고 머리만 가지고 연기가 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역시 이기하씨의 말이다. 그러나「탤런트」들의 불만에도 충분한 근거는 있다. 『교육을 받는 동안 벌써 우리들은 꿈을 버린거예요. 모두가 다 실망하는 거죠. 뽑아 놓았다면 그만한 책임있는 교육이 있어야 할게 아니겠읍니까? 자기가 무슨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 누구나 의심스러워 하고 있어요. 또 보수 문제도 그래요. 의상비는 커녕 교통비도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이에요』『』「탤런트」경력 2년인 K양의 불만이다. 어쨌든 안방극장의 화려한 주역을 꿈꾸며 하늘의 별따기로 합격한「탤런트」라는 직업은 바깥에서 생각하고 있듯이 그렇게 화려한 직업만도 아닌 모양이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주말탐방] 세밑 녹이는 구세군 3인

    [주말탐방] 세밑 녹이는 구세군 3인

    ‘땡그렁∼, 땡그렁∼’8일 밤 서울 명동 거리에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지자 팔짱을 낀 커플이 자선냄비 앞에 발길을 멈췄다. 남녀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지갑을 꺼내 들었다. 자신들의 행복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싶었을까. 자선냄비로 향하는 그들의 아름다운 손길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2006년 겨울. 차가운 잿빛 도심에 올해도 어김없이 붉은 자선냄비가 등장해 거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바쁜 일상에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던 각박한 도시민들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매서운 추위를 훈훈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종소리. 빨간 사랑을 전하는 구세군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31년째 종소리를 울리는 양웅철(75)옹 “춥긴요, 더운데요?” 찬바람이 계단을 타고 밀려 들어오는 서울 영등포역 지하 대합실.31년째 겨울마다 종을 울리는 양씨는 코트도 걸치지 않은채 짙푸른 제복만 입고 있었다. 춥지 않으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예나 지금이나 여기 서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경제가 나빠지면 사람들 마음마저 각박해진다고 하는데, 자선냄비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나날이 늘어가는 것 같다.”면서 “어제는 한 남자분이 300만원이 든 봉투를 넣고 갔다.”고 말했다. 사실 그에게는 300만원이나 3000원이나 금액 상관없이 똑같이 소중하다.10년 전 시각장애인이 손에 쥐어주었던 돈처럼. “먼 발치에서 ‘여기 자선냄비 어딨냐.’고 소리를 치고 있더군요.‘저 여기있습니다.’라면서 다가갔더니 주머니에서 3000원을 꺼내 ‘이것 좀 냄비에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머리에 과일 바구니를 이고 ‘앞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가라.’던 과일행상 아주머니, 크리스마스에 아이들 주려 샀다는 케이크를 냄비 옆에 놓고 가던 아저씨도 있었다.30년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자선냄비 앞으로 나오고, 퇴직을 한 뒤 다시 구세군 모자를 쓴 것도 그 ‘꼬깃꼬깃한 돈’ 때문이었을 게다. 그는 사람들의 훈훈한 마음은 여전하다고 한다. 살기가 좋아졌기 때문인지, 냄비쪽으로 와 ‘이거 날 달라.’며 떼쓰는 사람들이 없어졌을 뿐이다. 적으나마 자선냄비에 모금액을 넣는 사람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느낀다. “어떤 분들은 적은 돈을 넣으면서 미안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돈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심이 점점 늘고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의 곁에는 빨간 자선냄비와 함께 버스 무인요금 계산기를 변형시킨 ‘디지털 자선냄비’가 있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최근 새로 나온 자선냄비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평생 여기 서있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 연봉 4000만원 접고 구세군된 김기석(33)씨 “연봉이 딱 4분의1로 줄었지만 직장다닐 때 느끼지 못했던 기쁨이 있어 행복합니다.” 김 사관후보생은 지난해만 해도 한해 4000만원을 버는 촉망받는 대기업 사원이었다.‘배고파도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결심에 구세군의 길로 들어섰다.“허름한 옷차림의 할아버지가 주머니에 구겨넣은 돈을 통째로 털어 냄비에 넣었습니다. 그러더니 폐지가 잔뜩 쌓여있는 리어커를 끌고 가는 거예요. 그게 아마 저녁 값이었을 텐데….” 명동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쥐고 진지하게 모금을 하는 젊은 구세군도 그럴 때면 ‘울컥’한다고 한다.“직장인일 때는 노숙자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는 그는 “밑바닥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희망인데 우리는 그것을 주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대 구세군답게 그는 모금에 적극적이다.‘오른손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보다는 더 많이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왜 여름에는 자선냄비가 나오지 않느냐, 연초에도 구세군이 나와있으면 신년 분위기가 더 좋지 않겠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요. 기본을 지키되 시대의 흐름에 맞게 모금 형태는 다양화해야겠죠.”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기본을 지키는 구세군이 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외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을 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자선냄비가 밑바닥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라고 자신했다. # 3대째 자선냄비 지키는 여성사관 박은영(38)씨 사당역 자선냄비 옆에 선 박 사관에게 양복을 잘 차려입은 남성이 걸어왔다.“백화점이 어느 쪽이죠?”생긋 웃으며 길을 가르쳐준 박 사관에게 또 누군가가 다가와 “11번 출구가 어디냐.”고 묻는다.“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그만큼 구세군을 믿기 때문 아닐까요.”15살때부터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는 박 사관이 이 길에 들어선 것은 같은 일을 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종로2가로 아버지를 따라가 모금 활동을 하면서 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취객들이 와서 행패를 부릴 때가 제일 힘들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때는 자정까지 한 시간동안 앞에 서서 주정을 하는 통에 혼이 났죠.”종소리가 시끄럽다는 상인들, “내가 불우이웃”이라면서 모금함을 통째로 들고 가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감동적인 순간이 훨씬 많았단다. “올 들어 처음 모금을 시작한 지난 2일, 목발을 짚고 힘겹게 걸어와 돈을 넣고 가는 장애인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어요. 택시를 타고 가다가 잠깜 멈춘 뒤 돈을 넣고 가기도 하고, 어떤 분은 따듯한 차와 귤을 건네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에 이어 3대째 구세군 활동을 하고 있는 박씨는 자녀들이 ‘구세군이 되겠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는 “큰아들이 이미 사관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자랑스럽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너무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105년 역사 구세군 변천사 매서운 겨울 추위를 녹이는 빨간 사랑을 담은 구세군 냄비가 첫 종소리를 울린 지 105년이 흘렀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은은한 종소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도심 곳곳에서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올해는 지난 2일 오전 11시 시종식을 시작으로 오는 24일 자정까지 전국 76개 지역 230개 장소에서 사랑의 손길을 기다린다. 올해의 목표액은 30억원이다. 빨간 자선냄비가 종소리를 울린 것은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당시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해 슬픈 성탄을 맞게 된 1000여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던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 정위가 난민을 구제할 방법을 고심하다가 떠올린 게 바로 쇠솥이었다. “쇠솥을 끓게 합시다.”란 구호와 함께 오클랜드 부두에 내걸린 주방용 쇠솥은 바로 불우한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으로 가득찼다. 현재 전세계 107개국으로 확산된 자선냄비의 시작은 이렇게 작고도 옹골찼다. 자선냄비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28년 12월15일 명동거리다. 당시 한국 사령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스웨덴 선교사 조셉 바이(한국명 박준섭) 사관이 구세군 운영자금과 불우 이웃돕기의 활성화를 위해 들여왔다. 그 해 명동, 충정로, 종로 등 서울시내에 20여개의 자선냄비를 설치해 당시 화폐로 812원을 모았다. 그 시절엔 나무막대 지지대에 가마솥을 매달았다고 한다. 이어 자선냄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빠르게 변모해 왔다.10년 전부터 톨게이트 모금, 소형 자선냄비를 통한 모금이 등장했고, 최근 들어서는 ARS, 휴대전화, 신용카드, 교통카드, 인터넷뱅킹 등에 의한 결제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에 따라 기부금 형태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현금 위주였으나 지금은 현금, 수표, 금반지를 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로또복권도 종종 보인다. 온라인상에서는 신용카드 포인트, 싸이월드의 사이버머니인 ‘도토리’도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기부금이다. 이렇게 한푼 두푼 모아진 모금액은 기초생활보호자 지원, 심장병·백혈병 환자 치료지원,AIDS예방 및 말기암 환자 지원 등 여러가지 사회구호 사업에 쓰여진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구세군이 되려면? 구세군 하면 자선냄비 모금원을 떠올리기 쉽지만 구세군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교회다. 구세군 사관학교가 있는데, 신학대학이 목사를 배출하듯 목회자인 사관을 배출한다.2년 기숙사 생활을 이수하면 사관 자격이 생기고, 이후 2년 통신 과정과 대학원 3년 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 구세군은? 1865년 윌리엄 부스가 런던 슬럼가에서 창립했고,1908년 11월에 한국 첫 교회인 서울 제일영이 개영됐다. 현재 우리나라 구세군 규모는 교회 241개, 교인 10만명 정도다. # 구세군은 왜 제복을 입나? 구세군이 준군대식 조직이기 때문이다. 일반 구세군 신도는 ‘병사’로, 성직자들은 다양한 계급으로 나눠진 ‘사관’으로 불린다.
  • [OUR STORY] 눈내리는 플롯폼에 서보셨나요

    [OUR STORY] 눈내리는 플롯폼에 서보셨나요

    7년 동안 330여 차례나 기차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1주일에 최소한 한번 이상은 기차를 타야만 가능한 숫자다. 거리로는 22만 2000여㎞. 지구를 다섯바퀴 돌고도 남는 거리를 국내선 기차로만 여행한 셈이다.1999년 이후 모아온 기차표가 1200여장에 달하고, 기차역 주변 음식점 명함만 600여장이다. 가슴에 KTX 1호 승객이란 ‘훈장’도 달고 있다. 이만하면 우리나라에서 기차여행 좀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 이런 건 어떨까. 의자 하나만 달랑 놓인 간이역을 비롯해, 경전선과 영동선 일부를 제외한 국내의 모든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 보기도 했다. 폐선이 된 기차역을 찾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축구를 워낙 좋아해 전북 현대의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불원천리, 기차를 타고 찾아 간다. 홈구장인 전주까지는 461호 첫 열차부터 마지막 열차인 489호까지 시간대별로 모두 타보았다. 직업상(그의 현재 직업은 기차여행 가이드다) 다녀온 것을 제외하더라도, 강원도 정동진역에 내린 것만 무려 80여회에 달한다. 32세의 청년 박준규. 우리나라 기차여행의 대표선수다. 그와 함께 강원도 북부의 고원도시 태백시를 다녀왔다. 글 사진 태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준규씨와 떠난 기차여행 아침 8시. 배낭하나 멘 단출한 차림의 박준규씨와 함께 청량리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가는 무궁화 열차에 올랐다. 갑자기 추워진 바깥 날씨와는 달리 열차 안은 포근하고 안락했다. “기차를 처음 탄 것은 유치원 때였어요. 지금은 레일 바이크로 유명한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외가에 가기 위해서였죠. 초등학교 시절에는 혼자서 문경까지 다녀오곤 했어요.” 당시 기차는 그에게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가 오롯이 기차여행을 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진주행 통일호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5박6일 동안 지리산 종주를 한 것이 그의 첫번째 기차여행이었다. 이후 기차는 그에게 따로 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는다. 왜 그렇게 기차여행이 좋은지 궁금했다.“내 집은 기차라고 할 만큼 기차여행이 편하고 즐겁기 때문이죠. 기차여행은 세상사의 축소판인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과 일들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죠. 어떤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될지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도 있고요. 의자를 돌려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산과 들, 강 등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참 좋아요.” 양평역에서 단체관광에 나선 촌로 10여명을 태운 기차는 다시 강원도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노인들이 열차에 오르면서 조용하던 객실 분위기가 한순간 왁자지껄해졌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들뜬 모습이다. 승객이 별로 없어, 맞은편 의자에 다리를 뻗은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차여행을 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취미가 직업이 될 만큼 빠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대학 3학년때는 기차로만 4박5일 동안 여행한 적도 있어요. 거리로는 5000㎞ 정도 됐고요. 군대를 제대한 다음 그야말로 기차여행에 굶주렸던 때였죠.‘한붓 그리기’처럼 청량리에서 출발해 강릉, 부산, 목포를 돌아 대전, 천안까지 간 다음 다시 장항, 군산을 거쳐 서울로 오는 코스였어요. 중앙선과 태백선, 경전선, 동해남부선, 호남선, 장항선 등 거의 전 노선을 한번에 돌았던 거죠.” 원주를 지난 기차는 어느덧 태백준령을 향하고 있다. 금교 신호장과 치악역 중간에 있는 ‘금대 2터널´은 루프식 터널. 일명 ‘또아리 굴´로 불린다. 경사가 급해 직선으로는 오르지 못하고, 용수철처럼 빙글빙글 돌아서 가야 한다.‘유령굴’로도 불리는 치악터널을 지날 때는 괴기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왠지모를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태백-영동선. 청량리역까지 오는 1640호 열차의 경우, 강릉역 등 이 구간에 있는 모든 역에서 출발해 보기도 했다.“우리나라의 원초적인 지형을 지나는 코스예요. 평균속도가 60㎞ 이하여서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죠. 이 코스의 백미는 흥전에서 나한정 구간이에요. 경사가 급하고 고도차가 400m에 달해 열차가 스위치 백으로 운행해야 하죠. 내년 하반기에는 루프식 터널로 바뀐다고 하니, 아쉽네요. 영동선은 정동진역 다음부터가 정말 좋아요. 열차가 바다와 나란히 달리죠. 안인역의 해돋이도 좋고요.” 두번째로 좋아하는 코스는 정선선.“‘느림의 미학’을 한껏 맛볼 수 있는 구간이죠. 구불구불한 조양강을 따라 증산에서 아우라지까지 1시간 정도 가는데, 역마다 펼쳐지는 시골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어요. 자그마한 간이역과 북한강의 경치가 이어지는 중앙선도 둘째가라면 서럽죠. 특히 경북 의성역에서는 반드시 자장면을 먹어봐야 해요. 맛이 정말 일품이에요. 기차에서 어떻게 자장면을 시켜 먹냐고요? 제 홈페이지(www.traintrip.wo.to)에 오시면 알려 드릴게요.” 기차가 가뿐 숨을 내쉬며 강원도 영월땅으로 접어 들었다. 옛날 큰 물난리 때 삼척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척산과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등 수려한 풍광이 차창 밖으로 잇달아 펼쳐졌다. 서강에서는 큰고니 4∼5마리가 물위에 뜬 채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가다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했어요. 지금은 없지만요. 여자친구보다 기차가 훨씬 좋아요. 수학공식으로 표현하자면 ‘여친 기차’죠. 축구와 비교하자면 ‘여친 축구’쯤 될까요.”이렇게 얘기했던 그도 기차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였던 함백을 지나자 아련한 눈망울로 ‘새비재’오르는 길을 바라보았다. 새비재는 ‘그녀’와 견우가 타임캡슐을 묻은 소나무가 있는 곳. 그는 정말로 여자친구보다 기차가 좋은 걸까. ● 기차여행 고수되기 첫째: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라. 열차나 버스 등의 출발정보가 담긴 ‘월간 시각표’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팸플릿 등을 반드시 챙길 것. 둘째:각종 할인혜택을 꼼꼼히 챙겨라. 철도회원에 가입해 일정 포인트를 적립하면 무료여행도 가능하다.KTX의 경우 비즈니스 카드 할인(주중 30%, 주말 15%), 역방향 할인(5%), 자동발매기 할인(1%) 등을 합치면 최대 36%까지 싸게 여행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사전예매 할인, 철도회원 카드 할인, 얼리 버드(early bird)할인 등 다양한 할인혜택이 있다. 셋째:장시간 여행에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챙겨라. 물 등 간단한 먹거리와 디지털 카메라, 각종 충전기 등을 가져갈 것. 밤열차는 춥기 때문에 작은 담요 등도 가져가면 좋다. 충분한 수면을 위해선 안대가 필수다. ■ ‘문화재급’ 추억의 간이역 10곳 간이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굵직한 사건들로 점철된 20세기의 역사이자, 그 시기를 살아간 세대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번듯하지는 않지만, 허술한 겉모습에서 외려 푸근함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간이역의 사전적 의미는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 철도법에서는 역원배치 간이역과 무배치 간이역 이하 등급의 철도역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국 650여개의 기차역 중 400여곳이 간이역이다. 다음은 박준규씨가 추천한 가볼 만한 간이역들이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언론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진 곳은 제외하고, 아직 소개가 덜 된 ‘문화재급’ 간이역으로만 선정했다. 1. 구 전라선 서도역 한 문학가의 작품이 역사(驛舍)를 살려낸 특이한 경우에 해당된다. 고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주요 배경지. 혼불문학관이 인근에 위치하면서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1930년대 지어진 목조역사를 최근 대대적으로 보수해 예전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주변 풍경이 수려하고, 현 서도역에서 도보로 5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어서 접근하기도 수월하다. ▲가는 길 용산이나 영등포역→여수행 열차→남원역→75번 버스→서도역. 무궁화가 하루 10회, 새마을호는 3회 운행하고 있다. 현재 서도역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2. 구 전라선 오수역 붉은 벽돌로 지어진 1950년대 중반의 전형적인 간이역. 지금은 기차가 새로 지은 오수역으로 다니고 있다. 주인을 구한 개 이야기로 유명한 이곳은 지역이름 또한 오수(獒樹·개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의 무덤에 꽂아 놓은 지팡이에서 싹이나 커다란 나무가 되자, 이 나무를 오수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영화 ‘광복절특사’에서 주인공들이 탈출하기 위해 이용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가는 길 용산, 영등포역→여수행 열차→오수역. 무궁화호가 하루 9회 운행. 오수역에서 구오수역까지는 도보로 이동해도 될 만큼 가깝다. 3. 중앙선 문수역 1941년 7월1일 현재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작은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과 철길이 어우러진 풍경이 좋다.65년 된 역사도 아름답지만, 역사 옆에 있는 보선반 건물도 비슷한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옛 건물이다.30년 전 폐역된 승문역까지 철길을 따라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는 트레킹하기에도 좋다. 경북 영주시에서 가까워, 부석사 등 관광후 들러볼 만하다.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문수역. 무궁화호가 하루 1회 운행. 4. 영동선 하고사리역 강원도 삼척시 골짜기에 위치한 곳으로, 하루 단 한번 열차가 선다. 상상속으로만 그리던 그림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두평 남짓한 맞이방(대합실)과 무인 간이역, 그리고 역사앞에 가지를 내린 채 서있는 수양버들이 하고사리역의 전부지만, 철도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어쩌면 철거될지도 모르는 곳이어서 더욱 더 아쉬운 곳이다.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영주역→강릉행 열차로 환승→하고사리역. 무궁화열차가 하루 1회 운행. 영주발 강릉행 열차는 아침 6시5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영주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영주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5. 구 수인선 송도역 10년 전 운행을 중단한 협궤철도 수인선의 종착역. 어천역과 소래역 등과 함께 아직까지 남아 있는 수인선의 3대 역사 중 한 곳이다. 현재는 일반기업체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인천 도심에 있어 경관이나 운치는 다른 간이역에 비해 덜하지만, 과거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협궤 꼬마열차의 추억이 어려있는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동인천역→6-1번,46번 버스→송도역 삼거리. 6. 정선선 나전역 꼬마열차로 유명한 정선선의 4대 간이역 중 한 곳. 과거 석탄을 나르던 정선선이 이제는 관광객을 나르는 철길로 바뀌었고, 그 중심에 나전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목조역사인데다, 성신여대 미대 학생들이 그린 도깨비그림이 인상적이어서 철도마니아뿐 아니라,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가는 길 청량리역→강릉행 열차→증산역 →아우라지행 통근열차로 환승→나전역. 증산과 아우라지를 오가는 통근열차는 하루 2회 운행. 청량리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증산역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통근열차와 연결된다. 7. 경원선 서빙고역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서울시내에 남은 역사 중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다.1958년에 지어졌다. 전철 서빙고역과 맞붙어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서빙고역 하차. 8. 동해남부선 거제역 1940년대에 지어진 일제시대 간이역. 철도역사가 플랫폼 위에 서있는 몇 안되는 역사 중 한 곳이다. 부산광역시 거제동에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 동해남부선 이설 및 광역 복선전철화 작업과 함께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동해남부선 철길과 맞닿은 벽화도 볼거리다. 철도에 관한 시와 귀여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가는 길 서울역, 영등포역→포항, 울산행 열차 →경주역 하차→거제역. 무궁화 열차가 하루 3회 운행. 9. 중앙선 우보역 중앙선에는 유난히 1940년대 초반에 지어진 역사가 많이 남아 있다. 그중 경북 군위군에 위치한 우보역과 화본역이 추천할 만하다. 두 곳 모두 시골 한적한 마을을 감싸안은 모양으로, 하루 4∼5회 열차가 선다. 기차가 아니면 접근이 쉽지 않은 깊은 산 속 간이역이다. 아담한 간이역사 외에도 오래 된 화물홈의 모습과 역장의 친절함이 인상적인 곳.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안동역 하차→부전행 열차→우보역. 무궁화 열차가 하루 1회 운행. 10. 구 문경선 진남역 석탄산업이 한창이던 1960년대 문경선과 가은선의 분기점이자 신호장역으로 개업한 곳이다.60년대 지어진 곳으로는 보기 드물게 목조역사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레일바이크 매표소로 쓰이고 있다. 문경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서는 가은선 가은역 앞 가은농공단지, 또는 문경선 진남역을 이용하면 된다. 진남교반과 그 아래를 흐르는 영강의 경치가 일품인 곳. 여행과 레저를 겸할 수 있는 멋진 간이역이다. ▲가는 길 서울역→김천역 하차→영주행 열차(하루 3회 운행)→점촌역→가은, 문경행 시내버스→진남휴게소.
  • 反FTA 게릴라식 시위

    反FTA 게릴라식 시위

    29일 서울 도심에서 한·미 FTA 저지 궐기대회가 기습적으로 열려 극심한 교통정체를 빚었다. 당초 서울광장에서 2만여명 규모의 집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본집회 장소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원천 봉쇄하자 시위대들이 을지로·명동 일대 도로를 점거하고 기습 시위를 벌였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시위 참가자 1500여명은 오후 4시쯤부터 6시30분까지 을지로1가 롯데백화점∼신세계백화점 일대 8차선도로 100여m를 점거하고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차도에 배추를 쏟아부으며 피폐한 농촌 현실을 고발하고 식량주권을 수호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때문에 일대 차량들이 혼잡을 이루면서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경찰이 1700여명의 전·의경을 배치해 해산을 유도하자 시위대 중 절반가량은 현장에서 흩어졌으며 나머지 700여명은 명동성당 앞으로 가 촛불문화제를 연 뒤 8시쯤 자진 해산했다. 이에 앞서 시위자들은 옥인동 국민은행 청운지점 앞, 서울역 역사 구내,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동대문로터리 등 도심 곳곳에서 흩어져 게릴라식 집회를 벌였다. 농민연합 등 500여명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약 1시간30분 동안 서울역 대합실 및 광장에서 ‘한·미 FTA 중단 평화 시위 보장’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민주노총은 오후 3시부터 청와대 인근 옥인동에서 열겠다고 집회신고한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도 경찰의 금지 방침에도 불구하고 개최했다. 같은 시간대 충정로 농협중앙회 앞 진출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에 막힌 농민 150여명은 인근 이화여자외국어고 앞으로 옮겨 집회를 열었다. 앞서 경찰은 380여개 중대 5만여명의 전·의경 부대를 전국에 배치해 시위대의 이동을 차단했다. 이 때문에 농민 2900여명이 서울행에 실패했지만 개별적으로 상경한 농민 등이 시위에 합류했다. 지방의 경우 부산, 대구, 울산, 광주, 제주, 전북 전주, 경남 창원, 경북 포항·경주 등 11곳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등 7920명이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으며 오후 6시를 전후해 집회가 마무리됐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이날 오후 4시부터 열린우리당 당사에 진입하려고 경찰과 2시간30분 동안 대치하다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청은 이날 하루 동안 폭력을 휘두르는 등 불법행위에 적극 가담한 16명을 연행해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주말탐방] 대전역 어제와 오늘

    [주말탐방] 대전역 어제와 오늘

    KTX가 104편 운행되고, 역 이용객만 주말 5만명. 역사내 회의실이 생기고, 새달 철도빌딩을 신축하며 철도 메카 위용을 뽐내지만 때론 아이들의 놀이터… 때론 노인들의 휴식처… 때론 학생들이 시위하던 광장, 그 희미한 옛추억의 블루스가 그립다. ‘역’은 ‘이별’을 연상케 한다. 만남과 새로운 출발의 의미도 있지만 대중가요에 실린 기차역은 아쉬움의 상징으로 표현돼 있다. 3남지방의 관문이었던 대전역.1959년 발표된 ‘대전부르스’의 무대이면서 전국에서 가장 넓은 광장(3500평)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전설(?)이 돼 버렸다. 정치와 시위·집회로 들끓었던 광장은 국내 최초의 대중교통 환승시설로 탈바꿈했다. 대전부르스는 기념비만으로 그 존재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고속열차 개통과 전국 곳곳에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서는 시대의 변화속에 교통의 중심지인 대전역을 뒷배경으로 위풍을 자랑하던 중앙시장도 그 위세가 크게 꺾였다.1905년 역사 신축 이후 100년 가까이 모습을 지켜 오던 대전역사는 2004년 지상 4층의 초현대식 건물로 단장하면서 과거와 완전 단절됐다. ●민족의 아픔 간직한 대전역 대전역과 사라진 광장은 일제시대 수탈 물자의 집산지, 광복 뒤에는 교통의 요충지, 6·25전쟁 당시는 피란민들의 이별 현장이라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만큼 넓은 장소가 없다 보니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 후보의 옥외연설회가 금지되기 전까지는 각종 정치행사장으로 유명세를 탔다.80년대에는 대학생과 노동계의 시위장소가 됐고 낮에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저녁에는 노인들의 휴식처로도 애용됐다. “잘있거라 나는 간다….”로 시작되는 불멸의 히트곡 ‘대전부르스’의 배경인 대전발 0시50분 목포행 완행열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는 호남선도 대전역을 거쳐 서대전역으로 향했지만 회덕 분기점이 생기면서 필요성이 없어졌다.0시 50분 열차는 1960년 03시 05분 열차로 변경됐지만 수명은 오래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오전 6시 20분 대전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가 목포행 완행열차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소재가 된 새벽녘 역에서의 남녀간 이별은 이젠 영화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추억이 됐다. 대전역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앙시장이다. 삼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한 대전역 주변 중앙시장은 삼남지역에 생활물자를 공급하는 도매상 역할을 했다. 전국에서 상인과 손님이 몰리면서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과 견줄 만큼 위세를 날렸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오전 6시30분부터 9시까지는 남쪽 택시 진입로를 중심으로 인근 도시에서 보따리를 이고 모여든 노점상들이 좌판을 벌여 과거 화려했던 상권의 현장을 기억하게 만든다. 광장을 가득 메웠던 비둘기도 대부분 사라졌다. 옛 정취라야 홍합과 어묵, 가락국수 등을 파는 역 광장 입구의 포장마차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역을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는 정도다. 대전역의 명물 가락국수의 정취도 많이 달라졌다. 열차 정차시간이 짧아지면서 극적인 ‘국수넘기기’가 불가능해졌고 인스턴트화되고 먹을거리가 다양해지면서 국수를 찾는 이들도 중장년층이 주고객이다. 역 구내에 다양한 편의시설이 생기고 교통시설이 역에 가까워지면서 역 주변 상권도 크게 위축됐다.30여년간 역전에서 가게를 열고 있는 낙원다방 여주인은 “열차를 기다리거나 친구를 만나기 위한 손님이 북적거리던 때가 눈에 선하다.”면서 “요즘은 예약이 활성화되고 역 안에 커피숍 등이 생기면서 역 손님보다는 단골 손님들만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철도의 허브…현대화의 고통도 대전역은 KTX 104편 등 하루 평균 260여대의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10개의 선로 중 2개만 화물선로이고 나머지 8개는 여객열차가 운행된다. 역 이용객은 평일 3만 5000명, 주말에는 5만명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전역 지하 동서관통도로가 개통되고 택시와 자가용 진입로가 들어서면서 대전역 광장은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과거 시내방향인 동쪽에서만 역으로 진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 양쪽이 모두 오픈됐다. 대전역에서는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 대전 사람조차 호남선은 서대전역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지만 대전역에서도 하루 2차례 호남선이 시발·종착한다. 오전 6시20분 목포행과 오후 4시40분 광주행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하고 오후 4시5분, 오전 5시45분 각각 도착한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 역사내 회의실을 빌려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국토의 중심, 교통의 요충지로서 장점을 한껏 살린 사업으로 회의에 필요한 이동거리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들어 11월 현재 1억 6600만원의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 대전역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듯하다.2010년 경부고속철도가 완전 개통돼 열차수 증가가 예상되고 특히 다음달 철도빌딩 신축을 계기로 역세권 개발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철도의 축인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동거는 대전을 명실공히 철도의 메카가 되는 것이고 대전역은 그 관문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장흥진(54) 대전역장은 “대전역의 중요성을 감안해 현재 1만 1417㎡인 역사를 2010년까지 1만 4264㎡로 증축할 계획”이라며 “이용객 편의를 위한 편의 확대뿐 아니라 소규모 공원과 공연장 등도 조성될 예정이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대전역의 개발은 현대화의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 시설이 좋아지면서 노숙자가 크게 증가했다.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오전 3∼5시까지만 역을 폐쇄하다 보니 노숙자 관리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겨울철이 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대전역이 동서로 오픈되면서 역이 시민들의 이동 통로가 됐다. 당연한 서비스로 생각하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대합실이 만남의 장소로, 대화의 장으로 돌변하다 보니 간혹 열차 이용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노점상 문제는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 도로가에 노점이 펼쳐지다 보니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데다 주변 시장 상인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구청에서는 관할권이 철도공사에 있다며 단속을 미루고 있지만 백발이 성성한, 하루 몇천원을 벌겠다며 집을 나선 이들을 대책없이 무작정 쫓아낼 수만도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장 역장은 “아무리 현대화되고 첨단화되더라도 역의 애환과 정취는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가락국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열차 정차시간이 대부분 2분이어서 후다닥 내려 가락국수를 먹는다는 것이 불가능해요.” 대전역 하행선 매점에서 16년째 국수를 판매하는 박선자(53·여)씨는 운행중인 열차에 탑승한 승객은 대전역에서 가락국수를 먹을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고 야박하게도 경고했다. 대전역과 연상되는 것 중 대표적인 하나가 ‘가락국수’다. 특히 요즘 같이 찬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모락모락 따사로운 김이 올라오고, 새빨간 고춧가루가 면발 위에 내려앉은 가락국수는 생각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한다. 그래서 ‘삼순이’마저 가락국수를 먹으러 대전역을 찾았다. 완행열차가 사라지고 최고급 열차가 새마을호에서 KTX로 바뀌었듯 대전역 가락국수의 역사도 변화됐다. 봉지면에 양념, 육수까지 인스턴트화되면서 이론적으론 전국 역내 매점의 국수맛은 동일해졌다. 가락국수라는 이름도 사라지고 우동으로 통일됐다. 유부·튀김 등 삽입 재료에 따라 이름만 다르다. 대전역에는 상·하행선에 각각 1곳씩 우동집이 영업중이다. “여기 유명한 가락국수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상행선 우동집 주인마저 박씨집을 추천한다. 4평 남짓한 작달막한 박씨의 가게안은 의자가 4개뿐이지만 앉고, 선 사람들이 우동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연신 ‘호호’ 불어내느라 밖에서 보면 새벽 안개 낀 들판처럼 희뿌연하다.3000원의 행복가치는 충분하다. 손님도 변했다. 통일호와 무궁화호, 새마을호가 운행될 적엔 열차 탑승객이 주 고객이었다. 열차가 정차하자마자 뛰어내리는 손님이 많아 항상 ‘5분’대기조였지만 지금은 열차를 기다리는 손님이 고객이다. 박씨는 “같은 반죽이라도 끊이는 시간이나 불꽃크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면서 “옛날처럼 퉁퉁 부은 면은 없지만 국물맛을 잊지 못해 손님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을철 주말에는 하루에 700여그릇을 팔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150∼200그릇이 최고지만 그래도 매출은 KTX 개통 이후 나아지고 있다. 가락국수 손님은 뜨내기가 없다고 했다. 먹어본 고객이 잊지 않고 다시 찾는다. 며칠, 몇달, 몇년 만에 방문한 고객이라도 기억나는 얼굴이 수백명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녀만의 영업 노하우. 플랫폼 영업은 초단위로 움직이기에 계산기나 영수증 사용이 불가능하다. 고객이 1만원이나 5000원을 낼 것을 대비해 항상 잔돈을 준비해 놔야 한다.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독자의 소리] 소풍 단골장소마다 혼잡 짜증/박동현

    소풍갈 곳이 놀이공원밖에 없을까? 요즘 소풍철을 맞아 각급 학교가 단체로 아침 시간 지하철을 이용하는 탓에 승객들이 많은 불편을 겪는다. 대합실 입구부터 밀려드는 학생들로 혼잡과 소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들은 대합실 내에서 뛰고 소란을 피울 뿐 아니라 큰 소리로 떠들기 일쑤다. 전동차 역시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몇 개 학교가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소풍을 갈 경우 지하철 대합실에서부터 전동차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미어터지는 것이다. 게다가 서로 먼저 자리에 앉으려 하고 어른에게 양보하는 법도 없다. 소풍은 교육의 연장이다. 오가는 길에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체 이동을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서로가 불편이 없도록 조금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의 경우에 중간고사를 치르고 하루 놀이공원으로 간다고 했다. 지하철내 번잡을 피하기 위해 개별로 출발한다고 했다. 또 공원에서 늦게까지 더 놀 경우 부모 동의를 얻어오라는 쪽지까지 갖고 왔다. 문제는 서울 주변에 소풍 장소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몇몇 이름있는 대공원과 놀이공원이 전부이다. 몇몇 체험 장소 등이 있지만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들어 더욱 혼잡을 이루고 제대로 된 소풍의 취지가 반감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자치구마다 제대로 된 현장체험 학습장 등을 만들어 어린 학생들이 늘상 가던 놀이 공원이 아니라 주변 체험학습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소풍 대신 진정한 현장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박동현<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 ‘붉은지옥’ 다녀왔어요

    ‘붉은지옥’ 다녀왔어요

    납북되었던 KAL기 승객중 39명이 붉은 지옥 65일만에 다시 자유를 되찾았다. 악몽처럼 지긋지긋하던 공포의 65일을 지낸 귀환승객들은 입을 모아 북괴의 만행을 규탄했다. 낯선 연포비행장에 내린 KAL기 탑승객들은 곧 함흥시 교외 함곡역 대합실에 끌려 갔다. 저녁 7시까지 영하 20도의 강추위속에서 승객들은 불안·공포에 떨어야 했다. 7시가 조금 지나 처음으로 승객앞에서 공식으로 입을 연 것은 별 3개를 단 북괴군 장교.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25년간 떨어져 있다 만나니 반갑수다. 그렇게 시무룩하게만 있지말고 웃읍시다』하며 『귀한 손님이니 좋은「호텔」로 모시겠다』고 했다. 그 괴뢰군의 인솔 아래 승객들이 끌려간 곳은 함흥 역전의 어느 여관. 북괴군들은 승객을 한 사람에 한 방씩 따로 떼어놓더니 일절 서로의 접촉을 막았다. 승객들은 북한서의 첫날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다음날인 12일 하루도 꼬박 공포에 떨며 보냈다. 13일밤 12시쯤 북괴군들은 평양으로 간다면서 한 사람씩 방에서 끌어 내었다. 평양에 도착한 것은 14일 낮 12시쯤. 승객들은 대동강 여관과 평양 여관에 나누어 수용되었다. 식사가 끝나자 북괴군들은 최초의 신문을 시작, 『함흥에 처음 와서 어떻게 느꼈느냐?』『평양 경치가 어떠냐?』『남쪽 실정은 어떠냐?』는 등 15일까지 이틀동안 계속 승객들의 집, 가족 상황과 먼 친척까지 캐어묻고 교우관계, 재산, 출신성분, 현재의 성분 등을 철저히 조사했다. 계속 승객들은 격리 수용된 채 소위 교양강좌라는 것을 받았는데 교양강좌의 내용이라는게 판에 박은 듯 상투적인 거짓말투성이. 일례로 국군파월을 강제적인 것이라고 허위조작하는가 하면 김일성의 증조부가 옛날 대동강에 온 「셔먼」 호를 격퇴시켰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거짓말 일색. 이런 교양강좌 때 승객중에서 소신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반발하고 나서면 그 사람은 그 다음날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이번에 돌아오지 못한 승객의 대부분이 젊은 지식층인 것도 바로 이 때문. 귀환승객 가운데도 박명원(朴明源)여인 같은 이는 국군파월이 지원제라고 말하자 『당신은 정부의 앞잡이냐? 남편을 잡아와야 정신을 차리겠느냐』고 협박. 또 손호길(孫鎬吉)씨는 평양에 간 뒤 며칠 안되어 갑자기 일행중에서 없어졌다. 약 20일뒤 다시 돌아온 손씨는 『날 살려달라』면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 얼굴이 상한 것은 물론 말할 수 없는 병자가 되어 있었다. 손씨의 말을 따르면 북괴쪽은 『당신에겐 이상한 점이 있으니 고쳐주겠다』면서 끌고 가더니 약을 먹이고 전깃불이 번쩍 하더니 그만 정신을 잃었다는 것. 깨어보니 자신도 모르게 주사를 맞았는데 말도 제대로 못할 정신이상자가 되어 버렸다. 또 돌아오지 못한 황원(黃元) 기자는 정월 초하룻날 『가고파』를 선창했는데 며칠뒤 어디론지 사라졌다. 붉은 지옥 65일은 이래서 살아있다기보단 오히려 죽어 지내는 편이었다. 승객들은 거의가 매를 맞고 고문을 당했는데 승객들은 한 자리에 모이는 교양강좌 시간을 이용, 서로 쪽지를 교환하며 서로가 당한 사정 얘기를 나누었다. 괴뢰군들은 항상 승객들을 감시했기때문에 한시도 마음놓고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평양에 끌려온지 며칠뒤 TV를 보여주었는데 이 때 조종사 유병하(柳炳夏)씨와 부조종사 최석만(崔石滿)씨가 TV에 끌려나와 소위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사전조작에 의한 것임이 분명했다. 이 TV 기자회견 시청은 그 뒤 또 한 번 있었다. 65일 동안 마음대로 밖에 나가 볼 시간은 물론 한 번도 없었다. 기껏 보는 것이라야 북괴가 전시효과를 노려 만들어 놓은 평양시내의 이른바 혁명박물관, 예술관, 만경대, 농장등. 이런 곳들은 평양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해 전시효과를 노려 마련된 것. 이번 귀환승객 중 유일한 부부 송환자인 권오집(權五執) 씨의 부인 최돈숙(崔燉淑) 여인은 부모없이 서울에 남겨져 있는 4남매 생각에 신음도 전폐, 울기만 했다. 그러자 북괴 안내원들은 『왜 울고 불고 행패를 부리느냐?』면서 위협, 그러자 최여인은 지지않고 『난 여기서 안죽겠다. 자식이 있는 대한민국에 가서 죽겠다』고 강경히 버티어 욕을 먹으며 고초를 겪기도. 연금되어 있는 여관에서 담당 안내원들과 이론으로 따지고 들면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 공식. 이들이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은 귀환 하루 전인 13일 저녁. 북괴안내원들이 『내일이면 돌아간다』고 말했다. 14일 하오 개성을 거쳐 4시 44분 판문점에 도착, 자칫하면 못 건널 뻔했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거쳐 다시 자유대한의 품으로 돌아왔다. [선데이서울 70년 2월 22일호 제3권 8호 통권 제 73호]
  • 방화셔터에 눌려 숨져

    30일 오전 3시10분쯤 서울 영등포역 3층 통로에서 잠을 자던 노숙자 김모(38)씨와 윤모(42)씨가 대합실과 통로 사이에 설치된 방화셔터에 목과 어깨 등이 눌려 “살려 달라.”고 하는 것을 다른 노숙자가 발견, 병원에 옮겼으나 숨졌다. 경찰은 기계 오작동으로 셔터가 내려온 것으로 보고 시설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철도산업개발 관계자를 불러 사고 경위와 점검여부 등을 조사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산 지하철 구서동역 저소득층 무료 이발소

    부산 지하철역에 불우한 노인과 장애인 등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주는 이발소가 문을 연다. 부산교통공사는 24일 부산 지하철 1호선 구서동역에서 오는 26일 ‘아름다운 이발소’ 개소식을 갖고 역 주변 무료급식소 노인들과 기초생활 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무료 이발 봉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이발소는 지하철 구서동역 역장이 명예이발소장을 맡아 역 대합실 통로 10여평 공간을 활용해 달마다 넷째주 화요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운영한다.부산지역 이·미용 자원봉사 모임인 한사랑회 회원들이 이발 자원봉사를 한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

    글 김성동 | 사진 이승희 길이 끝나는 곳에는 공항이 있었다. 가없고 위 모를 하늘길 좇아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오는 하늘 밑에 벌레들로 공항 기다림방(대합실)은 저자바닥이었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 오박육일 동안 필사적으로 곡차만 마셨으므로 화두가 자꾸 끊어졌다. 금방이라도 무엇이 넘어올 듯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면서 라리라라리 삼삼은 구요 구구는 팔십일로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빠개지듯 골치는 또 쑤셔오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쇠붙이로 애를 훑어내리는 것 같은 속쓰림을 달래기 위해서는 다시 또 곡차를 마셔야 할 것이었는데, 사바하. 주막은 보이지 않았고 향고양(담배) 또한 올릴 수 없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풀솜할머니(외할머니)가 원앙금침에 넣어주셨다는 햇솜처럼 희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만다라꽃잎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네 둘레는 온통 깨끗하게 빨아 넌 옥양목 호청 빛깔이었는데 뿡빵뿡빵 자동차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동구권에는 눈이 드물다는데, 손뼉 소리인가. 알제리 바닷가에서 비롯될 토굴생활을 북돋워주는 축하의 박수 소리. 길게 내어뿜는 망상번뇌 너머로 보이는 것은 비행기였고, 나는 숨을 삼키었다. 길라잡이하는 번역원 사람은 내가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차례를 밟고 있지만, 미안하다. 나는 알제리 보살과 뫼르소 바닷가로 갈 것이었다. 우리는 남몰래 짬짜미(밀약)를 하였고 이제 그 처녀보살 마하살만 나타나면 된다. 길라잡이한테 인생 노선이 바뀐 것을 말하고 알제리 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된다. 나는 바지 속에 손을 넣어 강연료가 담긴 봉투를 만져보았다. 청춘의 한 시절이 빗살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눈을 감으셔요.” “눈을 감으라구요?” “얼르응.” 나는 눈을 감았고 여자사람이 말하였다. “꼭 감으셔야 돼요.” “꼬오옥.” “꼬옥.” 감고 있던 두 눈을 힘주어 더욱 감던 나는 “아” 하고 숨을 삼키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내 입술에 와 닿는 내 것이 아닌 입술의 느낌을 똑똑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뫼르소 바닷가로 갑니다.” 다식판으로 박아낸 것처럼 선이 뚜렷한 입술을 떠올리며 나는 몸을 돌리었지. 그리고 옆허구리(옆구리) 서늘한 산죽山竹 밭 틈서리로 희미한 치받이(오르막)를 도두밟아(발끝에 무게를 두어 힘들게 밟아) 올라가는데, 아흐. 귀여운 처녀였지. 어여쁜 여자였지. 사랑스러운 보살이었지. 오도독오도독 소리가 나게 이빨로 꼭꼭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너무도 귀엽고 너무도 어여쁘며 너무도 사랑홉아서(사랑스러워서) 아흐 숨 한 번 쉬는 동안에도 팔만사천 번씩 입 주기를 하여주고 싶은 사람이었지. “우우-” 퍼부어내리는 눈발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는데, 대답이 없다. “우우-”는 그 여자사람과 짬짜미한 군호(암호)였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물론하고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 주기를 하고 싶을 때면 쓰기로 한 비밀주였다. “알제리이이-” 산속 아닌 바닷가라서 거시기하기는 하지만 그곳 또한 중생들 사는 사바세계리니. 무엇을 하든 두 사람 밥이야 굶겠는가. 유럽·아프리카 중생들하고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고 바둑도 두다가 안 되면 진서도 가르치고 붓글씨도 가르치고 정 안 되면 콩트라도 쓰고 에세이라도 써서 알제리보살이 번역해서 원고료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지아비는 씨 뿌리고 지어미는 밭 매면 되지 않겠는가. 땀 흘려 일하는 틈틈새새로 본디 성품자리 들여다보면 되지 않겠는가. 나날 삶이 이와 같을진대 서방정토로 가지 않고 또 어디로 가겠는가. 알제리여, 횃불을 밝히지 말라. 우리 함께 어둠 속을 걷자. 그렇다. 집시가 되자. 나는 염불을 때릴 테니 너는 알제리와 불가리아 민요를 불러라. 알제리는 오지 않는데,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진실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또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얼을 기울여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짜장(정말) 무엇이란 말인가. 부처를 이루기 위한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인가. 한뉘(한평생)를 던져서라도 오직 한 장 그림으로 건지고 싶은 관음보살 미소인가. 영육을 던져 한 자루 뼈로 합쳐질 수 있는 오롯한 여인인가. 넋의 문학인가. 죽음인가. “전화 좀 받아보세요.” 길라잡이한테 잡혀 기다림방으로 들어가는데 손전화기를 건네준다. 알제리였다. “나는 알제리를 못갑니다.” “그런 법이….” “부모님한테 들켰어요.” 서쪽에서 왔다가 동쪽으로 갔고 동쪽에서 왔다가 서쪽으로 갔다니 우습구나 달마 찾는 중생이여 동쪽에서 오면 서쪽이 되고 서쪽에서 오면 동쪽이 되니 온 곳은 어디요 간 곳은 또 그 어드메더란 말이뇨. 내 마음 김성동_열여덟에 고등학교를 자퇴, 출가하였고 스물아홉에 운명처럼 환속했습니다. 하산 이태 후에 대표작 <만다라>(1978)를 세상에 냈고, 그때 평단은 “우리 문학계도 드디어 순도 높은 구도소설 한 점을 얻었다”며 그의 비범한 역량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간 작가는 소설 <풍적風笛> <피안의 새> <꿈> <길>,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행> 등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보여주었습니다. 월간<샘터>2006.09
  • [세이프 코리아] 지하철역사 스크린도어

    [세이프 코리아] 지하철역사 스크린도어

    “지하철 안전사고가 나면 기관사들은 한동안 운전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스크린도어가 생기면서 운전석에 앉는 게 한결 편해졌어요. 사고의 중압감이 많이 사라졌거든요.”23년째 지하철 기관사로 일하는 박광홍(48)씨. 요즘은 승무사무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그가 매일 오가는 2호선 역사에 속속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고 있는 덕분이다. 그 역시 안전사고를 겪었다.1998년 11월 이대역에서 전동차에 50대 남성이 뛰어들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발이 절단됐다. 박씨는 “일단 철로에서 사고가 나면 중상이나 사망으로 연결된다.”면서 “스크린도어가 더 많이 설치되면 승객들에게 더욱 안전한 지하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크린도어 전국 50곳 운영중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스크린도어(PSD·Platform Screen Door)는 싱가포르 등 몇몇 나라에서나 볼 수 있었다. 승객의 안전사고와 열차풍(風)을 막는 스크린도어는 ‘안전 선진국’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10월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과 용두역에 설치되면서 ‘스크린도어 시대’가 열렸다. 이후 새롭게 세워지는 역을 중심으로 스크린도어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현재 스크린도어를 운영하고 있는 역사는 모두 50곳이다. 지역적으로는 ▲서울이 지하철 2호선 선릉역과 을지로입구역 등 16곳 ▲부산이 지하철 3호선 수영역, 대저역 등 17곳 ▲대구가 지하철 2호선 대실역 등 2곳 ▲광주가 지하철 1구간 도청역 등 2곳 ▲대전이 지하철 1구간 정부대전청사, 중앙로역 등 12곳이다. 수도권 전철 가운데는 신길역이 유일하다. ●승강장 미세먼지 35%나 감소 스크린도어의 가장 큰 장점은 자살 등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지하철이 승강장에 들어오면 열차문과 함께 열리고 닫힌다. 사람이 선로에 뛰어들 여지가 없다. 지하철 사상사고 통계도 스크린도어의 안전성을 말해준다.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와 강변역에서는 각각 3건씩의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기간 2호선 평균인 0.79건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그러나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지난 6월부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스크린도어를 갖춘 다른 서울 지하철을 비롯해 스크린도어가 들어선 전국의 모든 역에서 사상사고가 없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한백수(51) 사당역장은 “신체 절단이 잦은 지하철 사상 사고를 겪고 뒷수습을 하고 나면 며칠동안 일도 제대로 못한다.”면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것이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뒤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직장인 이지혜(26)씨는 “승강장의 폭이 3m 정도에 불과한 삼성역에서는 사람에게 밀려 선로로 떨어질까봐 종종 불안했지만 스크린도어가 생긴 뒤 한결 마음을 놓게 됐다.”고 말했다. 스크린도어는 승강장의 공기질과 소음을 개선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메트로가 사당역에서 조사한 결과 미세먼지는 승강장에서 85㎍/㎡, 대합실에서 58.8㎍/㎡가 검출됐다. 스크린도어 설치 전보다 각각 35.3%,26.9% 줄어든 수치다. 소음도 8% 가까이 감소했다. 스크린도어가 승객들에게 더욱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설치는 해야겠는데 돈이 문제” 스크린도어는 앞으로 더욱 확충된다. 서울시는 오는 2010년까지 242개 지하역사 전체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예산은 4000억원 가량 필요할 전망이다. 그러나 지하철을 운영하는 다른 지역은 망설이고 있다. 기존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억원 정도. 최근 관련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기술도 발전하면서 10억원 후반으로 비용이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지방자치단체로서는 한 해에 서너개 역에 설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서울 등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스크린도어도 상당수는 민간 투자로 만들어졌다. 대가로 20여년 동안 광고권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방도시는 ‘그림의 떡’이다. 승객이 서울보다 적다 보니 광고 효과가 떨어지고, 민간 투자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대다수 지역에서는 설치 계획이 초반부터 차질을 빚거나 아예 계획 자체를 수립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당초 스크린도어가 없는 1,2호선 71개 역사에 올해부터 2019년까지 해마다 5개씩 설치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전면 보류된 상태다. 인천지하철공사도 내년부터 2013년까지 부평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역부터 스크린도어를 순차적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지만 내년 예산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대구와 광주는 계획조차 없다. 이에 따라 서울을 제외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의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지하철공사 관계자는 “적은 돈이나마 국가에서 지원한다면 스크린도어를 점진적으로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하철 안전의 ‘균형 확충’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화재로 자동문 고장땐 질식등 대형참사 위험 지하철역의 스크린도어는 추락 등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승강장의 공기질을 개선하며, 냉난방 효율을 높이는 등 다양한 순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결과 보완도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승강장의 공기질이 개선된 것과 같은 이유로 전동차 내부의 공기질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승무원들은 입을 모은다. 또 스크린도어의 구조상 승강장 화재 등 비상상황에서는 오히려 대피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비상문 아는 시민 거의 없어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지하철 승강장에서 화재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지상으로 통하는 출입구는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다. 열차가 다니는 선로로 대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크린도어는 고정벽과 문으로 이뤄져 있다. 전동차가 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화재가 났다면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는 만큼 탈출구는 스크린도어 양쪽 끝에 있는 수동식 비상문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시민은 거의 없다. 대전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역사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승강장 화재 때는 터널로 대피하도록 돼 있다.”면서 “비상시에 시민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스크린도어 관련 교육 강화와 시설 보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스크린도어를 뒤덮고 있는 광고판의 재질은 불에 잘 타지 않는 불연 폴리에틸렌이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잉크를 사용하고 있는 만큼 광고판이 대형 화재 때 유독가스를 내뿜을 수 있다. ●“터널 안 공기 질 악화” 목소리도 전동차가 다니는 터널의 공기질도 문제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정연수 위원장은 “대부분의 기관사들이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뒤 차장석의 공기가 더 나빠졌다고 말한다.”면서 “터널 공기는 승객이 탄 전동차 안으로 계속 유입되는 만큼, 터널 공기를 정화하는 지상 도크 높이를 현재보다 높이고 터널을 물청소 할 수 있는 노즐을 선로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주요한 이유가 ‘자살예방용’이라면 전국의 모든 역사로 확대하는 동시에 자살이 증가하는 사회적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하철 안전사고의 대부분은 자살 시도로, 복잡한 시가지 역보다는 한가한 지상역에서 많이 일어난다. 이런 역의 스크린도어는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유도할 뿐 다른 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스크린도어 설치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면서 “한정된 예산으로 어떻게 전국의 모든 지하철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부산항 국제해상관광 허브 뜬다

    부산항 국제해상관광 허브 뜬다

    빠르면 올 연말쯤 부산에 대형 크루즈선(호화여객선)정박이 가능한 부두와 전용터미널이 완공돼 부산항이 명실상부한 국제 해상관광 중심항으로 발돋움하게 될 전망이다. 부산항만공사(BPA)는 3일 오후 부산 영도구 동삼동 현장에서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 이권상 부산시 행정부시장,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항 국제크루즈 터미널 건립 기공식’ 가졌다. 올해말 완공 예정인 이 터미널은 지상 2층, 연면적 670평 규모로 총 53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건물안 1층에는 입·출국 대합실 등 여객 및 편의시설이,2층에는 다목적 홀과 선사 사무실 등이 각각 들어선다. 또 친수공간과 주차장도 설치된다. 또한 크루즈선이 접안하는 부두는 대부분의 공사가 끝나고 현재 배수로 공사 등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크루즈터미널 건립은 부산아시안게임과APEC 개최이후 부산이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면서 크루즈선 기항이 급증하고 있으나 전용부두와 터미널이 없어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부산항 건설사무소는 지난 2003년이곳에 10만t급 초대형 크루즈선이 접안할 수 있는 길이 360m, 너비 50m, 수심 11.5m의 전용부두 공사에 들어가 올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부산에 입항하는 외국의 대형 크루즈선들은 현재 일반 하역부두인 부산항 2부두를 이용하고 있다. BPA측은 동삼동 크루즈 터미널에는 외국의 크루즈선뿐만 아니라 부산항 연안 크루즈선인 팬스타 드림호를 접안시킬 예정이다. 내년에 부산항에 입항할 크루즈선은 모두 38척이며, 팬스타 드림호는 연간 52차례 동삼동 부두를 이용하게 된다. 팬스타 드림호는 평일에는 부산과 일본 오사카를 운항하다 주말에는 다대포와 해운대를 오가는 주말 크루즈선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난 2004년 부산에는 크루즈선 22척(관광객 9,930명)이 입항했으며,APEC이 개최된 지난해에는 29척(관광객 2만 4,852명)이 찾는 등 크루즈선의 입항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BPA 김재일 홍보팀장은 “부산항에는 전용터미널이 없어 크루즈 관광객들이 하역작업을 하는 일반부두를 통해 배를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면서 “동삼동 크루즈 전용부두가 완공되면 이같은 불편이 말끔히 해소돼 크루즈 유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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