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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년만에 우측보행 복귀

    88년만에 우측보행 복귀

    일제시대 이후 88년간 이어져 온 보행자 좌측통행 문화가 바뀐다. 빠르면 2011년부터 교차로의 4색 신호등이 없어지고 3색 신호체계로 바뀌는 등 교통신호체계도 전면 개편된다. 대통령직속 국가경쟁력위원회는 29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2차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교통운영체계 선진화방안’을 보고했다. 현행 좌측통행 문화는 1905년 대한제국 시절의 우측통행 규정을 1921년 조선총독부가 일본과 똑같이 차량과 보행 모두 좌측통행으로 바꾸면서 88년간 지속돼 왔다. 1946년 미군정이 차량은 우측으로 바꿨지만, 보행자 좌측통행은 그대로 유지해 혼란을 겪어 왔다. 국토해양부와 경찰청이 마련한 개선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작은 도로에서만 가능했던 비보호 좌회전이 앞으로는 3차로 이하 교차로에선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비보호 좌회전을 허용하려는 것은 기존 신호주기가 교통흐름 개선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 때문이다. 비보호 좌회전을 허용하는 선진국은 신호등을 남북직진→동서직진 2현시(顯示)로 운영해 신호주기가 60~120초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좌회전 신호가 더해져 남북직진→동서좌회전→동서직진→남북좌회전의 4현시로 운영해 주기가 140~150초로 늘어난다. 경찰은 비보호 좌회전 허용에 따른 대책으로 좌회전 차량과 반대편의 직진 차량이 충돌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도심 제한 속도를 시속 50㎞로 낮출 계획이다. 또 현행 신호체계로는 사거리에서 차량이 우회전한 직후 보행자가 건너는 건널목과 만날 때 보행자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점을 감안, 우회전 차량 전용 신호등도 도입하기로 했다. 경찰은 특히 좌회전 또는 직진·좌회전 동시신호를 직진신호보다 먼저 주는 신호등 운영 방식을 변경해 직진신호를 다른 신호보다 우선시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정연구원은 교통체계가 개편되면 신호대기시간 절약에 따른 경제적 효과 2조 9000억원, 에너지 절감효과 1조 3000억원, 이산화탄소 감축효과 2800억원, 사고감소 효과 4800억원 등의 편익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거대한 기계같은 다듬이질 소리… 가엾은 아낙네 밤낮없이 힘든 일”

    “거대한 기계같은 다듬이질 소리… 가엾은 아낙네 밤낮없이 힘든 일”

    “조선에서 지내는 첫날 밤은 여행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땅이나 이웃집에서 울려나오는 듯싶다가 이윽고 다른 초가지붕 밑으로 멀어지는가 하면 또다시 돌아와 사방에서 울려퍼진다.”(62쪽) 벽안의 이방인에게 구한말 조선은 집집마다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의 강렬한 청각적 자극으로 먼저 다가왔다.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듯”한 소음에 불과했던 다듬이질 소리는 그러나 수년간 체류하면서 조선 여성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실감케 하는 안타까움의 소리로 바뀌었다. “그칠 줄 모르는 맹렬한 발굽 소리 같다. 나는 이 가엾은 아낙네들이 밤낮없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해야 하는 현실에 얼마나 못마땅해 했던가.”(261쪽) 프랑스 고고학자 에밀 부르다레가 1904년 출간한 조선 체류기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정진국 옮김, 글항아리 펴냄)이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원제가 ‘대한제국에서(En Coree)’인 이 책은 20세기 프랑스에서 출판된 조선 관련서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으로 꼽힌다. ●잔칫날 풍경·죄수 이송 등 생생히 묘사 에밀 부르다레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 광산 및 철도 개발과 관련한 기술 자문역으로 대한제국에 머물면서 구한말 문화와 풍속, 일상생활 등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밤마다 도시 전체에 퍼지는 다듬이질 소리를 비롯해 전차를 타고 교외로 놀러 나가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 잔칫날 풍경, 죄수 이송, 술 마시고 취한 사람들의 모습 등 비극적 격동기에서도 각자의 일상을 사는 각계각층 조선인들의 현실을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했다. 협률사 내부 구조와 공연 레퍼토리에 관한 글과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한 대목은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낯선 타국의 관찰기 성격이 강하지만 고고학자로서의 학구적 열의가 느껴지는 내용도 상당수 있다. 북방의 고인돌에 관심이 많아서 개성을 여행할 때 가는 마을마다 고인돌에 대해 묻고, 강화도 전등사에선 귀중한 고문서들이 허술하게 관리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식탐 강한 민족·시어머니의 나라 폄하 외국인이 쓴 조선에 관한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조선을 근대화의 대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적지 않다. ‘민중을 지배하는 귀신들’이란 표현으로 무속 신앙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는가 하면, 조선인을 식탐이 강한 민족으로 묘사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위세를 떨치는 ‘시어머니의 나라’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그가 책 말미에 적은 결론은 조선에 대한 애정과 반제국주의적 시각을 보여준다. “지금 모든 사람에게 진보에 대한 욕구가 있다. 최근 몇 년간 황제께서 보여준 기백 덕분이기도 하다. 이 풍부한 자연에서 행복과 독립을 보장받아야 하고, 그 민중의 따뜻한 정과 선의는 모든 이의 공감을 얻을 테니까.” (373쪽) 1만 6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황제어새’ 보물 지정 예고

    최근 입수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시민들에게 7월 15일까지 공개되고 있는 고종의 비밀 ‘황제어새’(皇帝御璽)가 국가지정문화재(보물)가 된다. 문화재청은 22일 “대한제국황제어새(大韓帝國皇帝御璽)와 조선시대 선조가 문신 이헌국에게 내린 교서(敎書)인 ‘이헌국 호성공신교서’(李憲國 扈聖功臣敎書) 등 중요 문화재 2건을 보물로 지정예고했다.”고 발표했다. 고종이 일제의 눈을 피해 러시아· 독일 황제 등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한 대한제국 황제어새는 일제 강점기를 전후한 당시의 위태로운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판단돼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독립군가·겨레의 노래 함께 불러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겨레의 노래뎐’이 열린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9년째 이어온 ‘겨레의 노래뎐’은 독립운동선열의 뜻을 기리고 한민족이 사랑하는 겨레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자리로, 올해는 임정수립 9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로 꾸몄다.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고 서울신문이 후원하는 이날 공연에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를 비롯해 많은 우리의 음악을 새롭게 편곡해 선보이고, 오랫동안 잊혀졌거나 기록으로만 전해진 많은 노래를 발굴해 재현한다.1부는 역사적 의의를 담은 겨레의 노래들로 채워진다.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지며 연주회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 일제에 항전하여 부르던 독립군가와 항일가요, 광복군가를 연주한다. ‘새야새야’, ‘쾌지나 칭칭나네’, ‘담바귀 타령’으로 엮은 의병가, ‘국기가’, ‘자주독립가’, ‘독립군가’, ‘거국행’, ‘압록강 행진곡’, ‘앞으로 행진곡’ 등으로 구성된 임시정부군가 연곡을 관현악과 합창으로 들려준다.2부에는 어린이 합창단인 ‘노래패 예쁜 아이들’이 ‘파란마음 하얀마음’, ‘노을’, ‘그날을 위해’, ‘참 좋은 말’ 등 동요를 맑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애국심과 선행으로 사랑 받는 가수 김장훈이 출연해 자신의 히트곡인 ‘난 남자다’, ‘나와 같다면’, ‘오페라’, ‘사노라면’ 등을 부른다. 이날 연주회는 방송인 김병찬의 사회로 진행된다. 2만~5만원. (02)2280-4115~6.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우리 역사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라가 거꾸로 갈 수 밖에 없어”

    “우리 역사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라가 거꾸로 갈 수 밖에 없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린 지난 10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주제발표가 한창이었지만, 청중은 아무리 넉넉하게 헤아려도 50명이 넘을 것 같지 않았다. 행사를 준비한 김자동(81)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그래도 90주년인데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면서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들었으면 했는데….”라고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김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임시정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물으면 대부분 김구 선생이 주석이었다는 것 정도”라면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교육이 문제”라고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정의로운 선조들에 관한 교육을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닌데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사법시험은 법률 조목과 판례를 다 외워야 한다지만 컴퓨터로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시대 아니냐.”면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 제대로 재판도 할 수 있는데, 법조인의 태반이 그걸 모르니 출세와 돈만을 지향하고, 현실에 아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의 가족사는 임시정부의 역사이다. 그의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 선생은 한일합병 이후 국내에서 항일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이끌다 임정이 있던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제국 시절 병조참판과 공조판서를 지낸 동농 같은 거물이 임정에 참여함에 따라 일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동농은 당시 맏아들인 김의한 선생을 데리고 망명했고, 김 회장은 1928년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나 김구·이동녕·이시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품에서 자랐다. 김 회장은 2006년부터 임시정부기념관 건립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중국여행을 해보니 남경학살박물관이 있더라.”면서 “일인들이 중국 사람 수십만명을 학살한 사건을 설명해놓았는데, 가장 열심히 박물관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일본 관광객들이었다. 우리도 그런 장소를 만들어 일본의 후세들이 보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일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도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써달라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성금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기념관 건립과는 거리가 먼 액수라고 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1946년 국내에 들어온 뒤 조선일보와 민족일보 기자 등 언론인으로 일했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로 범위가 넓어지기 이전에는 무려 50~60명이 일제에 붙잡혀 징역살이를 한 조선민족대동단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그때 ‘항일투쟁하면 3대가 못살고, 친일하면 대대로 잘 산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한다. 일년에 한 차례쯤 모여 식사라도 같이하는 조촐한 모임을 생각했지만, 대동단의 후손 가운데 회비라도 낼 수 있는 중산층으로 분류할만한 후손은 단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 기념일. 지난해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과의 ‘건국 60주년’ 논쟁과 관련해 김 회장에게 정부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정부도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 같다.”면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나라의 역사쯤은 알아야 한다. 잘된 점이든, 잘못된 점이든 자기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거꾸로 가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만나보세요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만나보세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회가 열린다. 사단법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서울신문이 주최하는 전국 순회전시회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포스터)’는 임시정부가 27년간 국내외에서 펼쳤던 독립운동의 사료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다. 오는 11일 서울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 야외전시장에서 시작해 부산과 광주로 이어진다. ●젊은 세대와 되새기는 임시정부의 의미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는 자주독립운동의 토대가 되고,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새로운 국가를 수립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고자 기획됐다. 90년 전 일곱 차례나 청사를 옮겨다니면서도 자주독립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한 발자취를 임시정부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와 함께 돌아보고자 하는 의미도 들어있다. 전시는 임시정부가 국내외에서 펼친 독립운동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료를 중심으로 구성한다. 초·중·고생들에게 무겁고 가슴 아픈 역사가 아닌 독립선열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역사 체험의 장으로 기획됐다. 임시정부를 비롯해 역사속 독립선열들의 활동과 그들이 꿈꾸던 국가상을 일러스트와 사진 등 이미지 자료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또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하는 전시가 아닌, 몸으로 습득할 수 있는 전시로 꾸민다. 전시는 ‘독립-꿈을 품다’, ‘주권-꿈을 엮다’, ‘미래-꿈을 향하다’ 등 3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독립-꿈을 품다’에선 1919년 3·1운동을 발판으로 수립돼 1945년까지 활동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투쟁사를 연대별로 소개한다. 독립운동이 일어난 시대적 상황과 임시정부 수립배경 등이 일목요연하게 구성돼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독립운동 활동 장면과 역사적 공간의 이미지를 이용한 퍼즐 맞추기와 ‘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의 모습일까’를 알아보는 체험 코너도 마련된다. ●애국선열의 숨결 느끼는 체험장으로 ‘주권-꿈을 엮다’에선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선열들을 만난다. 신분과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독립이란 같은 꿈을 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 애국의 의미를 되새긴다. ‘미래-꿈을 향하다’에선 독립운동가들과 임시정부 인사들이 남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진정으로 염원했던 나라의 모습을 알아본다. 독립군과 임시정부 인사들의 사진 속 장면을 재현하는 포토존이 마련된다. 21일 서울 전시가 끝나면 25일~5월5일 부산역광장, 5월9~19일 광주 시립민속박물관 야외광장에서 시민들과 만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료는 없다. (02)332-8823.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5월 서울은 고궁에 빠진다

    서울시의 대표 축제인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봄축제가 5월2일부터 9일 동안 열린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을 주관하는 서울문화재단은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축제는 ‘궁(宮)’을 주제로 서울의 5대 궁궐(경복궁·경희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과 서울광장, 청계천 일대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축제기간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용이 승천해 하늘을 뒤덮은 모습을 형상화한 ‘오월의 궁’이 상징물로 세워진다. 오월의 궁은 광장에 궁궐의 전통 장막인 ‘용봉차일(龍鳳遮日)’을 드리워 축제의 왕인 시민을 모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오월의 궁에서는 축제 개막식과 폐막식을 비롯해 팔색무도회 등 주요 행사들이 펼쳐진다. 또 5대 궁궐에서는 궁궐별로 ‘세종대왕 이야기’, ‘고종, 근대를 꿈꾸다’, ‘궁궐의 일상’, ‘고궁뮤지컬 대장금’, ‘대한제국 모단음악회’ 등을 주제로 ‘600년 서울 역사’를 느껴볼 수 있는 행사가 마련된다.청계천에서는 ‘나눔 청계천’이라는 주제로 광복 이후 서울의 일상과 소망을 담아내는 ‘나의 살던 서울은’과 ‘꽃분홍 나눔 장터’, ‘여러분 콘서트’ 행사가 펼쳐진다.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맨주먹으로 전 세계에 유례없는 경제 대국의 기적을 일궈 낸 우리의 저력을 상기하며 1000만 서울시민이 다시 한 번 일어서는 희망의 축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서울시는 최근 경제 위기 상황을 감안해 축제 비용을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줄이기로 했다. 올해부터는 하이서울페스티벌 개최 시기가 매년 5월 첫째 주로 정례화된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그림자살인’ 감독 “흥행하면 속편도…”

    ‘그림자살인’ 감독 “흥행하면 속편도…”

    박대민 감독이 영화 ‘그림자 살인’의 속편 제작을 시사했다. 박대민 감독은 23일 서울 CGV 왕십리에서 열린 ‘그림자 살인’ 언론시사회에서 고종 황제가 헤이그 특사 시 잃어버린 편지 찾기를 의뢰하는 마지막 장면과 관련 “영화가 잘되면 2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 탐정이 편지를 찾기 위해) 헤이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엄지원 역시 “2편에는 순덕이가 미국에서 돌아와 주인공이 된다고 해서 1편에 출연했다.”면서 “분량이 적지만 좋은 영화가 마음에 들었고 다른 주인공들의 탄탄한 거름이 될 수 있는 역할이기에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극중 라스트신에 고종 황제가 등장해 탐정 홍진호와 그의 파트너 의사 광수에게 잃어버린 편지 찾기를 의뢰하는 장면은 실제 있었던 헤이그 특사(밀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대한제국 광무 11년(1907)에 고종이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주장하려던 사건이다. 이상설, 이준 등이 파견돼 갔으나 일본과 영국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준은 몸을 바쳐 조국이 처한 어려움을 알렸다. 황정민ㆍ류덕환ㆍ엄지원 주연 ‘그림자 살인’은 조선을 긴장시킨 미궁의 살인사건을 사설 탐정 홍진호(황정민)와 열혈 의학도 광수(류덕환), 여류발명가 순덕(엄지원)이 5개의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의 비밀과 음모를 파헤치는 탐정추리극이다. 오는 4월2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종황제 ‘비밀 국새’ 찾았다

    고종황제 ‘비밀 국새’ 찾았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비밀 국새(國璽)’가 발견됐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립고궁박물관이 국외로 반출됐던 중요 문화재인 국새를 지난해 12월 재미동포로부터 구입했다.”면서 실물을 공개했다. 이 청장은 “이 국새는 고종 황제가 독일, 이탈리아 황제 등에게 보낸 친서에 쓴 것으로 그동안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유리원판 사진으로만 알려졌던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새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한 1897년 ‘대례의궤(大禮儀軌)’에 기록된 국새 13과(科:도장을 헤아리는 단위)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열강의 압박 속에서 비밀스럽게 제작한 뒤 고종이 몸에 지니고 다니며 대외적으로 비밀이 요구되는 외교문서에 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고종이 1906년 이 국새를 찍어 독일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는 일본을 지칭하며 “이웃 강대국의 공격과 강압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면서 독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대례의궤’에 기록된 국새 가운데 3과를 소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례용 국새인 어보(御寶)는 종묘신실에서, 실무용 국새는 궁내부에서 보관하는 것이 관례다. 실제로 어보가 9.6×9.8×9.8㎝(높이, 가로, 세로)로 제법 크고 무게가 3.75㎏에 이르는 데 비해 이번에 공개된 국새는 높이 4.8㎝에 가로, 세로 각 5.3㎝로 크기가 작고 무게도 794g으로 가볍다.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이다. 정사각형 인장면에 ‘황제어새(皇帝御璽)’라고 돋을새김된 이 국새는 겉상자(寶?·보록)는 없어진 채로 속상자(寶筒·보통)만 남아 있다. 이 청장은 “이 국새를 갖고 있던 사람이 누구이고, 고궁박물관이 어떻게 입수할 수 있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면서 “이 국새는 앞으로 국보 지정 절차를 밟은 뒤 덕수궁 석조전이 복원되면 고종 관련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강병철기자 youngtan@seoul.co.kr
  • 은밀히 새긴 ‘황제어새’ 고종황제의 혼 오롯이

    은밀히 새긴 ‘황제어새’ 고종황제의 혼 오롯이

    ■ 되찾은 ‘대한제국 국새’ 의미 1897년 10월12일 조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다. 하지만 황제국에 걸맞은 지위와 화려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2년 전 황비(명성황후)가 시해되는 비극을 겪었음에도 고종은 여전히 러시아와 일본, 중국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경국(傾國)의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고종은 나라를 사실상 빼앗긴 1905년 을사조약을 전후해 열강의 황제·군주에게 적지않은 친서를 보냈는데 대부분 품에 지니고 있던 ‘황제어새(皇帝御璽)’를 찍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17일 공개한 국새가 바로 이 ‘황제어새’다. 따라서 고궁박물관이 이 국새를 되찾은 것은 단순히 조선시대 국새를 하나 더 갖게 된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즉위 후 만든 13개에 포함 안돼 고종 13년(1876년) 11월4일 경복궁 교태전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이곳에 보관하던 국새도 대부분 녹아버리거나 손상됐다. 이에 따라 고종은 소실된 옥새와 인장을 새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때의 상세한 제작 과정은 장서각이 소장한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에 보인다. 시명지보(施命之寶)를 비롯한 새로운 보인은 그해 12월27일까지 모두 11과(科·개)가 제작됐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뒤에는 각종 도장 또한 황제의 위상에 걸맞게 새로 만들어야 했다. 대한제국의 선포과정을 기록한 ‘대례의궤(大禮儀軌)’에는 이때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시명지보(施明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 원수지보(元帥之寶) 등 13과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외교문서에 쓴 비밀국새는 2개? 하지만 황제어새는 이 기록에 들어 있지 않다. 국새의 제작과 관련된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채 은밀히 추진해야 했던 고종의 위기의식과 절박함을 황제어새는 보여주고 있다. 비밀로 남았던 황제어새는 이처럼 제작 관련 기록이 없는 것은 물론 누가, 언제, 어떻게 해외로 반출했는지조차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고궁박물관이 고종의 친서에 사용한 국새를 판별한 결과 두 종류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을 박물관은 ‘제1유형 국새’(1903~1906년 사용)와 ‘제2유형 국새’(1905~1906년 사용)로 구별했다. 활자체의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두 국새에는 모두 ‘황제어새’라는 문구를 새겼다. 이번에 발견된 국새는 ‘제1유형 국새’로 확인됐다. 두 과의 비밀 어새가 존재했던 셈이다. 고궁박물관은 이번에 공개한 비밀 국새가 만들어진 시기와 관련해서는 ‘문화각(文華閣)의 옥새와 책문(冊文) 등을 보수하도록 하다.’라는 고종실록의 기록(광무 5년 11월16일)으로 미루어 1901~190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위감정 절차와 환수의 의미 문화재청은 이번에 전각, 금속공예, 서체, 매듭 등 각 분야별로 10명에 이르는 평가위원을 따로따로 불러서 국새의 진위를 감정했다. 일반적으로 중요문화재라 하더라도 3명 정도의 평가위원회를 구성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국새의 재질 분석, 활자 비교, 국사편찬위의 유리원판 사진 비교 등의 과정을 거쳤다. 국새의 제작 관련 문헌이 없는 상황인 만큼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국새 구입의 실무를 추진한 정계옥 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10명의 위원 중 매듭을 감정한 분만 상중하에서 ‘하’ 판정을 내렸을 뿐 나머지 위원은 모두 틀림없는 진품으로 감정했다.”고 말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원수보(국방 관련용 국새), 제고지보(고급 관리 인사 때 쓰는 국새), 칙명지보(칙령을 내릴 때 쓰는 국새) 등 3과의 국새는 관련 제작 문헌(대례의궤)이 존재하지만 사용된 문서가 없는 데 반해 고종의 비밀 국새는 제작 관련 문헌은 없지만 사용된 문서가 존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이 국새는 앞으로 국보 지정 절차를 밟은 뒤 덕수궁 석조전이 복원되면 고종 관련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라면서 “환수된 국새는 대한제국기의 정치, 사회, 왕실상 등 학술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록삼 강병철기자 youngtan@seoul.co.kr
  • 옛 서대문 형무소 최초 건축도면 발견

    옛 서대문 형무소 최초 건축도면 발견

    서대문형무소가 최초 건축도면에 따라 원형대로 복원된다. 이는 지난달 서대문형무소의 건축도면이 발견된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진행됐던 서대문형무소 보수 공사가 복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달 15일 발견된 건축도면은 서대문형무소의 1936년도 원형 도면이다. 격벽장(수감자 체육시설), 구치감(미결수 수용소) 등의 모든 시설현황이 나와 있다. 형무소로서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도면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대문·서울시·문화재청 747억원 들여 복원 추진 서대문구는 24일 “서울시, 문화재청과 함께 이 도면을 토대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도면은 구가 형무소역사관 종합발전계획을 수립, 추진하던 중 국가기록원에서 발견됐다. 구는 서대문형무소 보수사업을 위해 지난해 10월 자연환경연구소에 학술용역을 맡겼다. 연구소가 국가기록물을 검토하던 중 이 도면을 찾은 것이다. 문화재청이 523억원, 서울시가 224억원을 투입하고 서대문구가 총괄 공사를 맡아 원형 그대로 되살리기로 했다. 사적 324호인 서대문형무소는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 탄압기관이다. 서대문구 의주로 247(현저동 101번지)에 있다. 지난 한해 57만여명이 이곳을 찾아 독립투사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다. 구는 이달부터 설계에 들어가 2020년까지 복원사업을 마칠 예정이다. 형무소역사관 원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대한제국 관보(국가의 공고 기관지)와 조선 총독부 관보, 국가기록원 총독부 기록물 등 각종 사료와 도면 문헌조사에 역점을 두었다. 또 광복회와 독립운동 관련단체,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고증절차를 진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3·1절 맞이 체험행사도 마련 복원사업은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추진된다. 1단계 사업은 2011년까지 시행된다. 구는 총 144억원을 들여 청사 외벽 백색타일을 없애고, 벽돌을 이용해 원형대로 재구성한다. 현재 역사관에 소장된 무쇠솥 등을 이용해 취사장을 복원한다. 수용자들의 운동시설인 격벽장을 다시 만들어 체험시설로 활용한다. 또 독립운동가 유족과 유품 기증자 증언을 토대로 영상물도 제작한다. 2015년까지 진행될 2단계 사업에서는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에 공장터, 담장, 망루 등을 다시 설치한다. 2020년 마무리될 3단계 사업에서는 전시시설뿐 아니라 교육, 학술세미나 공간을 확대한다. 구는 이와 함께 제90주년 3·1절을 맞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다음달 1일 오후 1시30분, 오후 3시30분에 독립만세 재현 체험행사가 준비돼 있다. 예약하면 독립운동가 복장으로 독립선언서 낭독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밖에 OX 문제 풀기, 음악회, 얼굴에 태극기 그려넣기, 태극기 그리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신상영 서대문구 문화체육과 팀장은 “형무소 복원사업이 끝나면 서대문구가 역사·문화 관광 명소로 한층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국순당, 조선시대 ‘송절주’ 복원

    조선시대 선비와 중인들이 즐겼다는 ‘송절주(松節酒)’를 복원했다고 주류업체 국순당이 3일 밝혔다. 송절주는 말 그대로 소나무 마디를 삶은 물과 쌀로 빚은 전통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 말기까지 서울 부근에 사는 선비들과 중인들이 즐겨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국순당은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전통주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송절주를 올해 첫 작품으로 복원했다.”고 밝히고 “조선조 말 문헌인 ‘규합총서(閨閤叢書)’의 기록을 바탕으로 소나무 마디를 삶은 물에 멥쌀과 찹쌀을 넣어 찐 지에밥을 멥쌀 죽과 누룩가루, 밀가루 등에 첨가, 송절주 특유의 향과 깔끔함을 더했다.”고 덧붙였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우리 역사 소중함 알자” 42년만에 음반 내는 황손 이석씨

    “우리 역사 소중함 알자” 42년만에 음반 내는 황손 이석씨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이자 가요 ‘비둘기 집’을 부른 가수로 유명한 이석(68)씨가 이달 말 세번째 음반을 내고 다시 가수 활동에 나선다. 1967년 ‘비둘기 집’이 실린 두번째 앨범을 낸 이후 42년 만이다. 이씨는 새 앨범에서 불탄 숭례문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 ‘아! 숭례문’과 함께 자신의 히트곡 ‘비둘기 집’, ‘두 마음’, ‘외로운 조약돌’을 다시 불렀다. 오래전부터 역사를 주제로 한 노래를 하고 싶었다는 이씨는 숭례문 소실 이후 사람들이 숭례문의 소중함을 너무 쉽게 잊어간다는 생각에 지난해 여름 ‘아! 숭례문’을 녹음하고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이후 서울과 전주를 바삐 오가며 만든 세번째 앨범이 반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이씨는 역사학자들과 함께 학회를 만들어 황실 복원 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학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궁궐 방문 기행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씨는 “사람들이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알고 관심을 좀 더 가졌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도 역사의식을 북돋울 수 있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국사학계 거목’ 이태진 서울대 교수 새달 정년퇴임 “외계충격설 완성할 계획”

    ‘국사학계의 거목’ 이태진(66)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교수가 30여년 정든 강단을 떠난다. 이 교수는 지난 1977년 모교 강단에 섰다. 역사학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고종시대의 재조명’ 등 저서와 논문도 남겼다. 이 교수는 특히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맺은 조약의 불법성을 파헤치는 데 주력해 왔다. 대한제국을 통감부 체제로 만든 문서에서 순종 황제의 결재 서명 필체가 원래 필체와 다른 점을 발견했고, 1905년에 체결된 ‘을사조약’에 고종의 서명이 빠져 무효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역사학자 대부분은 근대사를 연구할 때 일본 역사학자들이 심어 놓은 식민 역사관에 지배를 받기 쉬운데 그러면 조선의 저항 역사를 놓치기 쉽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을 역임한 그는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과정을 밝혀내고 환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대학 행정가로서도 빛났다. 지난해까지 2년 동안 서울대 인문대학장을 맡으면서 캠퍼스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켰다. 외부 기관에 인문대의 종합 진단을 맡겼고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FP)도 개설했다. ‘인문학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시도다. 퇴임 후 그는 못했던 연구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외계 충격이 백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외계충격설’을 완성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그는 “유성이 떨어지고 금성이 낮에 출현하는 등 자연이상이 발생하면서 조선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동료 서울대 교수 25명과 함께 다음달 27일 교내 문화관 중강당에서 열리는 정년퇴임식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선박 밤길 안전안내 100년

    선박 밤길 안전안내 100년

    동해를 오가는 선박들의 밤길을 안내해주는 경북 포항 호미곶등대가 20일 ‘점등 100돌’을 맞는다. 18일 포항지방해양항만청에 따르면 동해안 영일만의 호미곶 끝단에 있는 이 등대는 1908년 12월20일 첫 불을 밝혔다. 호미곶등대는 프랑스인이 설계를,중국인이 건축을 맡았다.1908년 4월 착공해 같은해 11월 준공됐다.등대는 높이 26m에 벽돌로만 지어졌으며,각층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오얏꽃이 새겨져 있다.출입문과 창문은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의 박공양식으로 장식돼 있다. 12초 간격으로 깜박거리는 등대 불빛은 50여㎞까지 도달하며 건립 이후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경상북도 기념물(제39호)과 등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포항해양항만청은 점등 100돌을 맞아 ‘100년의 빛,호미곶!’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기념행사를 연다. 19일 등대 옆 해맞이 광장에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김관용 경북도지사,박승호 포항시장 등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점등 100돌 기념식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해병의장대 시범 ▲포항시립합창단 공연 ▲난타·가요공연 ▲등대지킴이 화합의 한마당 등을 마련한다. 특히 호랑이 형상인 우리 국토를 의미해 호랑이 꼬리로 감싼 모습의 상징 조형물을 제작해 제막식을 갖는다. 등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호미곶등대와 포항시의 지난 100년 변천사를 담은 ‘100돌 기념 특별전’이 열리며 ▲구룡포 과메기와 돌문어 직거래장터 ▲독도주민에게 사랑의 엽서 보내기 ▲수중스쿠버 바다청소 등 행사도 열린다. 또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선 호미곶등대 100돌을 기념해 ‘등대,아름다운 세상을 밝히다.’를 주제로 기념음악회도 연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이념 넘어 전통적 선비정신 필요한 때”

    원로 국사학자인 한영우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10일 “좌파는 계급투쟁과 민주화만 강조하고 북한에 우호적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냈고,우파는 1980년대까지 민족만 강조하는 단순함을 나타냈다.”면서 양 진영 모두에 쓴소리를 했다. 한 교수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광화문 문화포럼’ 조찬강연회에서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좌파나 우파의 편향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전통적인 선비정신과 현대적 서구가치의 결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일제 때 경제가 발전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뉴라이트의 주장에는 “일제가 아니더라도 대한제국이 경제발전을 이끌었을 것이다.왜 우리는 못했을 거라 전제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좌·우 개념은 결국 서양에서 빌려온 이념에 불과해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서양이 아닌 우리의 전통 속에서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한 교수는 대안으로 ‘선비정신’의 부활을 내세웠다. 그는 “지난 100년 동안 서구화를 진행하면서 얻은 건 물질적 풍부함이다.반면 정신적 자신감은 상실했다.이 때문에 우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주 흔들리며 모방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전통적 문화 가치인 선비정신을 통해 정신적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도운 英외교관 헨리 코번 손자 내한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도운 英외교관 헨리 코번 손자 내한

    “외교관으로서 할아버지는 영국 정부의 정책을 따라야 했지만, 일본에 고문당하다가 탈출한 양기탁을 넘기면 다시 고문 당할 것이 너무 뻔했지요. 그래서 인간적·도덕적 이유로 양기탁의 인도를 3개월이나 거부한 것입니다.” 해외문화홍보원 초청으로 한국에 온 영국 일간신문 인디펜던트의 외교담당 대기자인 패트릭 코번(58)은 17일 주한영국 총영사를 지낸 할아버지 헨리 코번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며 “몹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는 전혀 정치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조용한 분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물로 할아버지가 놀랍기만 했다는 것이다. 패트릭 코번은 지난해 12월6일 인디펜던트에 ‘헨리의 전쟁-강제인도에 대한 반대 투쟁’이라는 제목의 5장짜리 장문의 기사를 썼다.100년 전 일제 통감부가 한국 언론인 양기탁(1871∼1938) 선생을 고문하는 등 탄압한 사료를 찾아내 생생하게 반영했다. 영국 외무부와 한국과 일본, 중국의 총영사관 사이에서 오간 전문을 찾기 위해 영국 국가기록원을 뒤졌다. 때문에 이 기사는 당시 상황을 보도한 어떤 자료보다 정확하게 국제 정세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헨리 코번은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상실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3일 뒤인 11월20일 주한 영국대리공사로 부임해 1908년 9월15일 귀국할 때까지 3년 남짓 한국에 머물렀다. 이 기간, 그는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한국명 배설)이 발행인 겸 사장으로 있는 대한매일신보의 일제에 대한 저항과, 일제의 탄압을 목도하게 된다. 특히 1908년 7월 대한매일신보 총무 양기탁 선생이 일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영국이 관할하는 치외법권지역이었던 대한매일신보 건물로 피신하자 일본과 인도적 싸움을 시작한다. 일본 경찰은 양기탁 선생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지만, 코번 총영사는 고문의 흔적을 내세우며 “고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거절했다. 영·일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 외무부 고위 관계자들도 양 선생을 넘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코번 총영사는 무려 3개월 동안 인도하지 않았다. 패트릭 코번은 “할아버지는 본국에 보내는 전문에서 ‘만일 우리가 양기탁을 일본에 넘겨준 것이 알려지면 외교상 최악의 불명예를 만드는 것’이라고 외무부를 설득했다.”고 밝혔다. 당시 코번 총영사의 양 선생 인도 거부가 장기화됨에 따라 일제의 언론탄압과 고문 등 만행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마찰로 코번 총영사는 49세의 젊은 나이에 외교관에서 은퇴해야 했다. 코번은 “지금도 이라크를 비롯해 외국군이 점령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지만, 점령국의 피정복국민에 대한 고문 등 탄압에 저항한 제3국 외교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 사례 말고는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코번 총영사가 대단히 드문 일을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캐릭터뷰] ‘별순검’ 진무영, 요즘 검·경에 ‘일침’

     대한제국시절 수사기관 ‘별순검’을 이끌었던 진무영이 이 시대의 검찰·경찰에 일침을 가했다.  지금의 수사기관들이 ‘중립성을 잃었다’는 평을 듣는 경우도 많다는 말에 진무영 경무관은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쌀쌀한 바람이 제법 날을 세우던 가을날, 서슬 퍼런 눈빛의 진무영 경무관을 만났다. 진 경무관은 대한제국판 CSI인 ‘별순검’의 리더로서 수많은 강력 사건들을 해결한 공로로 후세까지 이름이 남겨진 인물이다.  그의 활약상이 최근 케이블TV MBC DRAMA에서 ‘별순검 시즌2’란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 진 경무관 역할을 맡은 배우 이종혁을 만나 진무영의 전언을 들어봤다.  진무영은 현대의 수사기관이 ‘강자에 영합하고 약자를 배려하지 못한다’는 질타를 받기도 한다는 말에 매우 안타까워하며 “수사기관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중립성과 객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도 외압은 존재했었다며 “압력에는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수사를 진행할 때 외부의 압력이 가해진다면 옷을 벗을 각오로 항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등 열강이 한반도 내에 세력을 확장시키며 정세를 어지럽히는 상황에서, 수사관이자 대한제국민으로서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굳은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다음은 진무영과의 일문일답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것인가요.  -사람을 여럿 죽여 거꾸로 매달았던 사건을 잊을 수가 없소. (별순검 시즌2 - 1화에서 소개된 ‘그림자’ 편을 말한다.)  당시 용의자는 시체에 글자를 새겨 어떤 뜻을 전하려고 했소. 더구나 이 사건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다루셨던 것과 비슷했지요.  또 유력한 용의자였던 김진규가 자살 전 나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말을 했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소이다.  ▶아버님 얘기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자살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목을 맨 장면을 직접 봤지요. 아버님께서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풀어주셨던 적이 있지요. 그런데 그 놈이 풀려난 뒤에 어떻게 했는지 아시오? 목격자들을 살해했소. 아버님께서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시고….  어찌 보면 내가 이 곳에 몸을 담은 연유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겠소.  ▶ 당신은 감정 표현을 좀처럼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사건에 영향을 받은 탓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 이후로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이 꺼려지더이다. 하지만 사건을 냉정하게 보려고 나 자신을 채찍질한 결과일 수도 있지요.  ▶ 냉철한 성격 때문에 오해를 사거나, 오히려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을 닫고 사는 걸 수도 있겠지요. 어차피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거 아니겠소.  ▶그래도 사건 수사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하고 있는데요.  -그건 그렇죠. 자랑스럽고 든든한 사람들입니다. 때론 가족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전부 나보다 훌륭한 인물이란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그런 말은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오.  ▶선우현이라는 대원도 해당이 되는 건가요.  -처음에는 나이도 어린 놈이 중간에 끼어들어와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것만 같았소. 하지만 같이 지내다 보니 녀석도 나름대로 생각이 깊더이다.  ▶아직 미혼인데, 주위 사람 중에 여자로 느껴지는 사람은 없나요.  -전혀 없소.  ▶혼자 사는 한다경의 집에 순찰들을 보낸 것은 무슨 뜻인가요.  -전에 (그의 양친이 안 계시다는 것을 몰랐을 때) ‘깨워줄 가족도 없느냐’고 막말을 했던 것이 미안했을 뿐이오. 아무리 한 순검이 무예가 뛰어나다 한들, 그도 나약한 여자가 아니겠소…. 또 그간 대원들의 사생활에 너무 무심했나 싶기도 해서 그런 것이오.  이 대화를 끝으로 진 경무관과의 인터뷰를 마쳤다. 지대한 순검이 다급하게 뛰어오며 ‘한 여인이 은당골 숲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알렸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 놓이게 된 또 다른 살인사건. 그의 말대로 객관성을 철저히 지키는 수사로 억울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남겨두고 진무영과 작별했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캐릭터뷰] ‘별순검’ 진무영, 요즘 검·경에 ‘일침’

    [캐릭터뷰] ‘별순검’ 진무영, 요즘 검·경에 ‘일침’

     대한제국시절 수사기관 ‘별순검’을 이끌었던 진무영이 이 시대의 검찰·경찰에 일침을 가했다.  지금의 수사기관들이 ‘중립성을 잃었다’는 평을 듣는 경우도 많다는 말에 진무영 경무관은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쌀쌀한 바람이 제법 날을 세우던 가을날, 서슬 퍼런 눈빛의 진무영 경무관을 만났다. 진 경무관은 대한제국판 CSI인 ‘별순검’의 리더로서 수많은 강력 사건들을 해결한 공로로 후세까지 이름이 남겨진 인물이다.  그의 활약상이 최근 케이블TV MBC DRAMA에서 ‘별순검 시즌2’란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 진 경무관 역할을 맡은 배우 이종혁을 만나 진무영의 전언을 들어봤다.  진무영은 현대의 수사기관이 ‘강자에 영합하고 약자를 배려하지 못한다’는 질타를 받기도 한다는 말에 매우 안타까워하며 “수사기관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중립성과 객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도 외압은 존재했었다며 “압력에는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수사를 진행할 때 외부의 압력이 가해진다면 옷을 벗을 각오로 항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등 열강이 한반도 내에 세력을 확장시키며 정세를 어지럽히는 상황에서, 수사관이자 대한제국민으로서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굳은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다음은 진무영과의 일문일답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것인가요.  -사람을 여럿 죽여 거꾸로 매달았던 사건을 잊을 수가 없소. (별순검 시즌2 - 1화에서 소개된 ‘그림자’ 편을 말한다.)  당시 용의자는 시체에 글자를 새겨 어떤 뜻을 전하려고 했소. 더구나 이 사건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다루셨던 것과 비슷했지요.  또 유력한 용의자였던 김진규가 자살 전 나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말을 했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소이다.  ▶아버님 얘기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자살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목을 맨 장면을 직접 봤지요. 아버님께서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풀어주셨던 적이 있지요. 그런데 그 놈이 풀려난 뒤에 어떻게 했는지 아시오? 목격자들을 살해했소. 아버님께서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시고….  어찌 보면 내가 이 곳에 몸을 담은 연유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겠소.  ▶ 당신은 감정 표현을 좀처럼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사건에 영향을 받은 탓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 이후로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이 꺼려지더이다. 하지만 사건을 냉정하게 보려고 나 자신을 채찍질한 결과일 수도 있지요.  ▶ 냉철한 성격 때문에 오해를 사거나, 오히려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을 닫고 사는 걸 수도 있겠지요. 어차피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거 아니겠소.  ▶그래도 사건 수사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하고 있는데요.  -그건 그렇죠. 자랑스럽고 든든한 사람들입니다. 때론 가족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전부 나보다 훌륭한 인물이란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그런 말은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오.  ▶선우현이라는 대원도 해당이 되는 건가요.  -처음에는 나이도 어린 놈이 중간에 끼어들어와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것만 같았소. 하지만 같이 지내다 보니 녀석도 나름대로 생각이 깊더이다.  ▶아직 미혼인데, 주위 사람 중에 여자로 느껴지는 사람은 없나요.  -전혀 없소.  ▶혼자 사는 한다경의 집에 순찰들을 보낸 것은 무슨 뜻인가요.  -전에 (그의 양친이 안 계시다는 것을 몰랐을 때) ‘깨워줄 가족도 없느냐’고 막말을 했던 것이 미안했을 뿐이오. 아무리 한 순검이 무예가 뛰어나다 한들, 그도 나약한 여자가 아니겠소…. 또 그간 대원들의 사생활에 너무 무심했나 싶기도 해서 그런 것이오.    이 대화를 끝으로 진 경무관과의 인터뷰를 마쳤다. 지대한 순검이 다급하게 뛰어오며 ‘한 여인이 은당골 숲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알렸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 놓이게 된 또 다른 살인사건. 그의 말대로 객관성을 철저히 지키는 수사로 억울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남겨두고 진무영과 작별했다. 글·사진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사설] 역사교과서, 국사편찬위 수정지침 존중해야

    좌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6종의 고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사료편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수정지침을 제시했다. 국편은 ‘한국 근현대사 검토 및 서술방향’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은 정통성있는 국가이며 북한과 관련해서는 유일체제의 문제점 등을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제로 지적됐던 표현에 대해 구체적인 팩트의 잘잘못을 언급하기보다는 서술방향의 큰 틀을 제시했다. 국편이 제시한 수정지침은 개관 12개항, 단원별 서술방향 37개항 등 모두 49개항이다. 보수와 진보가 갈등을 빚는 핵심사항인 광복 이후의 현대사 부분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을 계승한 정통성있는 국가’‘이승만정부가 정부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북한의 주체사상 및 수령유일 체제의 문제점’‘6·25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 등등의 서술방향을 제시했다. 대체로 옳은 방향설정이라고 본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를 달리하는 사안이 많고, 이미 검증을 통과한 내용을 국가기관이 조목조목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의 다양성과 학문의 개방 차원에서 서로 다른 시각에서 서술한 책을 교과서로 채택하는 검인정교과서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국편의 지침을 바탕으로 교과서 수정안을 마련하되 지나친 밀어붙이기는 삼갈 것을 권고한다. 좌편향을 바로잡으려다 우편향을 초래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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