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대한문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부양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오기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휴직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삿포로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20
  •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장윤석 의원은 2013년 제 21대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김기종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기종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실려가는 과정에 “아파, 아파”라고 외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 대표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 대표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 대표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지난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찰, ‘비정규직 철폐’ 오체투지 행진단 해산

    경찰, ‘비정규직 철폐’ 오체투지 행진단 해산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정리해고-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행진단’이 11일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하던 중 경찰에 의해 해산되고 있다. 이들은 대한문에서 청와대 인근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할 예정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주최 측이 (교통체증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횡단보도는 걸어서 건너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불법으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팽목항 편지(김강호 지음, 시산맥사 펴냄) ‘세월호 참사’ 사건을 잊을 수 없었던 시인이 아픈 계절을 견뎌내며 써내려간 단시조 114편을 엮었다. 엄청난 절망과 충격 속에서 아이들의 애비가 된 심정으로 시를 토해냈다. 시대와의 불화와 분노를 다독이며 그만의 언어를 통해 결곡한 사유의 세계를 풀어놓고 있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142쪽. 8000원. 에프(다니엘 켈만 지음, 민음사 펴냄) 신을 믿지 않는 성직자 ‘마틴’, 거액의 투자금을 잃고도 이를 묵인하는 금융 전문가 ‘에릭’, 모작을 그리며 돈을 버는 ‘이반’. 이들 삼형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간다. 저자는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를 헛된 이상을 좇는 인간 삶을 개성 있는 필체로 그려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후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다. 360쪽. 1만 3000원. 별꽃 이희헌의 눈물 꽃 편지(이희헌 지음, 이가서 펴냄)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를 모았다. 사랑만을 위한 기도, 뜨거운 사랑의 고백, 꿈속에 붉게 물든 사랑, 따듯한 사랑이 그리운 시간, 풀꽃에 사랑의 이름을 새긴 순간을 주제로 5부로 이뤄져 있다. 메마른 정서와 지친 영혼을 촉촉하게 적시는 시들로 가득하다. 지난해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200쪽. 9500원.
  • “2000일의 고통을 외면했다”

    “2000일의 고통을 외면했다”

    “원심을 파기한다.” 권순일 대법관이 주문을 짧게 읽어 내려가자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2호 법정은 칼바람이 몰아치는 바깥보다 더 차갑게 식어 버렸다. 지난 2월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항소심 판결 이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품었던 희망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해고 노동자들은 법정을 나선 뒤 애써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삼삼오오 모여 결과를 기다리던 동료들과 가족들은 “졌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다. 이들을 도왔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수녀들도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김득중(44)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의 정리해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랐지만 재판부가 사측 손을 들어줘 안타깝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이 노동자들에게 대못을 박았지만 반드시 일터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는 판결에 노동계와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박성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은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도 “이번 판결은 대량 해고가 노동자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에 미치는 사회적 충격과 갈등, 비용과 희생을 외면하고 사측의 경영권만을 앞세운 판단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4월 사측의 대규모 정리해고 발표에 맞서 77일간 경기 평택공장 점거 농성을 시작으로 2000일 넘게 지난한 싸움을 이어 왔다. 2012년 4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세상을 뜬 동료들을 위한 합동분향소를 차리고 단식을 했는가 하면 같은 해 11월 평택공장 인근 송전탑에서 116일간 고공 농성을 하며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렸다. 하지만 분향소는 철거됐고, 고공 농성을 통해 줄기차게 요구했던 국정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해고 노동자들은 끝내 고개를 떨궈야 했다. 앞으로도 산 넘어 산이다. 지난해 11월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와 경찰 측에 46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파업 참여를 이유로 징계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점거 농성 당시 발생한 원인 미상의 공장 화재를 이유로 메리츠화재보험이 110억원의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실종자 기다리러…” 팽목항行 버스 오른 시민들

    세월호 참사 171일째인 3일, 바닷속에 남겨진 실종자 10명의 귀환과 철저한 수색·구조작업을 촉구하는 ‘기다림의 버스’가 서울과 경기 안산 등 전국 각지에서 진도 팽목항으로 출발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이태호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두 달 넘게 실종자 추가 수습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가족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여당은 선체 인양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정부에 단 한 명의 실종자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휴를 맞아 서울에서만 시민 450여명이 ‘무박 2일’ 일정에 동승한 것을 비롯해 전남·대전·부산 등 29곳에서 시민 900여명이 ‘기다림의 버스’에 올랐다. 소설가 김훈, 김애란과 시인 송경동 등 문인 20여명도 광화문광장에서 ‘작가들의 버스’에 올라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기다림의 버스’에 탑승한 회사원 김모(35·여)씨는 “실종자 가족이 ‘차라리 유가족이고 싶다’는 말까지 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면서 “이들의 간절한 호소를 정치권은 정쟁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팽목항에 도착한 시민과 유족, 문인들은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까지 왕복 3㎞를 걷는 ‘기다림과 진실의 행진’을 마친 뒤 오후 9시쯤 풍등마다 실종자 이름과 실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적어 그들의 귀환을 기원하며 팽목항 방파제에서 날려 보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與 ‘광화문 집회’ 금지 추진 논란

    새누리당이 사실상 세월호 참사 유가족 집회를 원천 봉쇄하는 법안을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4일 국회에 따르면 새누리당 의원 10명은 심재철 의원의 대표발의로 지난 2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냈다. 개정안은 같은 장소에서 연속해서 30일을 넘어 집회·시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문화재로부터 100m 이내 장소는 집회·시위 금지 구역으로 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집회·시위 후 현수막 등을 철거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광화문광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집회·시위가 불가능해진다. 도로 바로 건너편에 사적 171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가 서 있기 때문이다. 또 법 시행 후부터 한 달 넘게 같은 자리에서 집회를 벌이면 경찰이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심 의원이 유가족의 행동을 제약하는 법안을 낸 셈이라 야당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논의할 가치도 없는 법안”이라며 “유가족을 막는 법을 국조 특위 위원장 출신이 낸 것도 적절치 않다”고 비난했다. 심 의원은 지난 1월에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집회를 금지한 경찰 조치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하려다 미뤘다. 대한문 앞에 설치됐던 쌍용차 정리해고 희생자 분향소 문제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 의원은 통화에서 “세월호 사고 발생 전부터 준비했던 법안”이라며 “유가족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광화문 시복식]교황 광화문 미사 준비로 15일 교통통제…세월호 유족(유가족) 시복식 참석 예정

    [광화문 시복식]교황 광화문 미사 준비로 15일 교통통제…세월호 유족(유가족) 시복식 참석 예정

    ‘광화문 시복식’ ‘교황 광화문 미사’ ‘15일 교통통제’ ‘교황 세월호 유족’ 광화문 시복식 및 교황 광화문 미사 준비로 15일 교통통제가 이뤄질 전망이다. 교황 세월호 유족 위로에 이어 세월호 유족들이 광화문 시복식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이틀째인 15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을 하루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교통통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광화문광장 북쪽에 시복식 제단과 시설물이 설치됨에 따라 이날 정오부터 정부중앙청사 사거리→경복궁사거리 전 차로가 통제된다. 경찰은 이 방향으로 차량이 갈 수 있도록 가변차로를 운용하고 유턴도 가급적 허용할 방침이지만 시설물 설치 상황에 따라 상황은 유동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날 오전부터 시복 미사 행사장을 감싸는 높이 90㎝의 방호벽 설치 작업이 시작됨에 따라 광화문 삼거리↔세종대로 사거리 상위 2개 차로, 시청→세종대로 사거리 상위 2개 차로가 통제된다. 이날 오후 7시부터는 광장 주변 도로도 단계적으로 통제될 전망이다. 오후 7시에 광화문 삼거리↔세종대로 사거리, 중앙청사 사거리↔경복궁 사거리 차로가 막히고 오후 8시에는 중앙지하차도가 봉쇄된다. 오후 9시에는 세종대로 사거리↔시청 앞, 시청 삼거리→대한문 구간이 통제되고 오후 11시에는 오피시아빌딩 앞↔종로구청 입구 구간이 막힌다. 시복식 당일인 16일 오전 2시부터는 경복궁역에서 안국동, 종로1가, 광교, 을지로1가, 한국은행, 숭례문, 염천교, 경찰청앞, 서대문역, 구세군회관을 돌아 다시 경복궁역을 잇는 구간의 교통이 통제된다. 시복 미사에 참석하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 통제 구간 바깥까지 와서 입구까지 걸어가야 한다. 한편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 6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허영엽 대변인은 14일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서 연 브리핑에서 “전날 세월호 유족 측에서 600명이 시복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허 대변인은 이어 “이미 (시복식의) 자리 배치가 끝났지만 신도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조금씩 좁혀서 앉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공항에 내린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영단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다 세월호 가족을 소개받자 왼손을 가슴에 얹고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세월호 유가족 시복식 참석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유가족 시복식 참석,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 “세월호 유가족 시복식 참석, 상당히 기대된다”, “세월호 유가족 시복식 참석, 뭔가 가슴이 뭉클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촉구 100만명 서명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난 주말 전국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1000만명을 목표로 돌입한 서명운동에는 8일 현재 101만여명이 동참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유가족과 국민이 함께하는 세월호 특별법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고 서울시내 15곳에서 서명을 받았다. 지난달 중순 800여개 시민단체 연대기구인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1000만명을 목표로 돌입한 서명운동에 유가족들도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국민대책회의는 전국에서 시민 101만 60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에는 1만여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25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4차 세월호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희생자인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한정우 학생의 아버지는 이날 집회에서 “사고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다면 평생 멍으로 남고 억울해서 죽을 것 같다”며 “국민 여러분이 성원해 주고 생명과 같은 서명을 받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을 찾은 가족대책위는 ‘세월호 침몰 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와 함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국조특위 여야 간사인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과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선진국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획기적인 수준으로 특별법을 제정해 재난 대응과 사후 지원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세월호 촛불집회 서울 청계광장서 열려…서명운동 발대식에 김장훈도 참여

    세월호 촛불집회 서울 청계광장서 열려…서명운동 발대식에 김장훈도 참여

    ‘세월호 촛불집회’ ‘세월호 김장훈’ 주말 서울 도심에서 세월호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주말인 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다. 61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와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는 이날 오후 7시 청계광장에서 시민 8000여명(경찰 예상 4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 4차 범국민 촛불행동’을 공동 개최한다. 집회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족 일부가 참여해 발언할 예정이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오후 8시 30분부터 청계광장에서 광교→보신각→종로2가→을지로2가→서울광장까지 행진한다. 가족대책위는 앞서 이날 오전 10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유가족과 국민들이 함께하는 세월호 특별법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었다. 발대식에는 가수 김장훈이 참여해 “나도 앞으로 도울 부분이 있다면 유가족을 돕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후 5시까지 서울역과 홍대입구, 강남역 등 서울 시내 16곳에서 거리 서명운동을 할 예정이다. 서명운동은 서울 외에도 인천, 대전, 광주, 제주 등 전국 9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촛불집회 앞서 특별법 제정 촉구 거리 서명운동 진행돼

    세월호 촛불집회 앞서 특별법 제정 촉구 거리 서명운동 진행돼

    ‘세월호 촛불집회’ 세월호 촛불집회에 앞서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이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주말인 7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거리 서명운동을 벌였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 소속 150명은 이날 오전 10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유가족과 국민이 함께하는 세월호 특별법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고 서울역과 홍대입구, 강남역 등 서울 시내 16곳에서 시민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지난달 중순께 시작된 서명운동에는 5일 기준 시민 924만여 명이 동참했다. 서명운동은 이날 서울 외에도 인천, 대전, 광주, 제주 등 전국 9곳에서 진행됐다. 서명 목표 인원은 1천만 명이다. 발대식에 참가한 가수 김장훈은 “정부는 세월호 피해자에 대해 진정 따뜻한 부모 같은 마음으로 대해 달라”며 시민 동참을 호소했다. 가족대책위는 8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와 함께 오후 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시민 8천여 명(경찰 예상 4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 4차 범국민 촛불행동’을 공동 개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촛불집회 서울 도심서 진행…보수단체 맞불집회

    세월호 촛불집회 서울 도심서 진행…보수단체 맞불집회

    세월호 촛불집회 서울 도심서 진행…보수단체 맞불집회 주말인 24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와 행진이 잇따라 열렸다. 61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는 오후 6시부터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한다. 경찰은 이날 집회에 1만 명 가량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은 집회에 이어 광교→보신각→종로2가→퇴계로→을지로→서울광장까지 3.7㎞를 행진한다. 집회에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의 유족도 일부 자리를 함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 소속 300여 명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세월호 추모 시민실천단 도보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광명대교 북단→구로IC→도림로터리→금융감독원→마포역까지는 인도로, 마포역→충정로역→염천교→서울역까지는 1개 차로를 이용해 행진한 뒤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금속노조 소속 1200여 명도 오후 2시 쯤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도부 구속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진 뒤 청계광장의 민주노총 집회에 합류했다. 소규모 집회들도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열렸다. 청년네트워크는 단체로 검은 티셔츠를 차려입은 채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실종자들이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오후 6시를 전후해서는 세월호청년모임의 침묵행진(인권위→영풍문고)과 민족문제연구청년모임의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청년행진(감신대→정동로터리→대한문→서울광장→청계광장)도 예정돼 있다. 이들 대다수는 행사 후 청계광장 촛불 집회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 단체들의 ‘맞불집회’도 열렸다. 경우회와 고엽제전우회, 국민행동본부 등 단체 회원 2500여 명은 오후 5시 30분부터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의 촛불집회가 열리는 청계광장 맞은편 동화면세점 앞에서 ‘세월호 참사 애도분위기 악용세력 규탄 2차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도심 곳곳에선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경찰은 교통경찰 3개 중대와 여경 3개 중대 등 192개 중대 1만 3천여 명을 시내 곳곳에 배치한 상태다.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종교계 한마음으로 세월호 아픔 보듬는다

    종교계 한마음으로 세월호 아픔 보듬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와 수습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하고 국민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종교계의 추모행사가 잇따를 전망이다. 불교 조계종이 종단 차원의 대규모 추모재를 열 예정인 가운데 천주교도 5·18 기념행사를 추모제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등 연합기관·단체들도 추모행사를 앞다퉈 열 예정이다. 이 가운데 조계종이 20일 오후 7시 서울 조계사 대웅전 마당에서 진행하는 ‘추모재’는 참사 이후 열리는 종단 차원의 첫 추모행사다. 철저히 세월호 희생자의 극락왕생과 유가족·국민들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스님과 신도 등 20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의식과 추모문화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천도의식은 지난달 27일 연등회 때 열린 불교 전통방식의 ‘국민기원의 장’으로, 추모문화제는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세월호 참사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공업(共業) 중생’으로서 스스로 참회와 발원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추모재에는 세월호 유가족 가운데 불교 신자들도 초청된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남전 스님은 행사와 관련, “종단 차원에서 진행해 온 부처님오신날 공식 행사가 마무리된 만큼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했다”며 “추모재 이후에도 유가족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노력을 계속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주교도 올해 5·18 민주화운동 34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희생자 추모의 장’으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일 오후 4시부터 광주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기념 미사와 세월호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열린다. 광주대교구 총대리 옥현진 주교의 주례로 기념 미사를 봉헌하며, 주먹밥 나눔과 추모 리본 달기에 이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친다. 천주교는 2005년 5·18 민주화운동 25주기부터 매년 5월 18일을 광주교구 기념일로 지정해 기념 미사를 봉헌해 왔다. NCCK는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족들에 대한 위로를 표한 한국교회 공동기도·설교문을 배포한 데 이어 오는 20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참사 희생자 추모 기도회를 연다. NCCK는 공동설교문을 통해 “우리 모든 어른은 죄인이 되었고, 가족의 심정을 모두 헤아려 주지 못하는 나쁜 이웃이 되었다”며 “오히려 가족들은 우리더러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 아픔을 내내 같이해야 한다”고 호소한 바 있다. 20일 추모 기도회는 그 연장선에서 ‘미안합니다.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주제의 기도회와 침묵행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 7대 종단의 모임인 KCRP가 2012년부터 해마다 열어 온 올해 ‘이웃종교화합주간’도 추모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이웃종교화합주간’ 행사는 21일 오전 11시 서울 장충동 앰배서더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7∼8월 중 각 종단 시설에서 이웃 종교를 체험하는 ‘이웃종교스테이’, 10월 초 전국 종교인이 모두 모여 화합과 소통을 다지는 ‘전국종교인화합대회’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개막식에서 각 종교 지도자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공동 기도식을 열 계획이다. 변진흥 KCRP 사무총장은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지금이야말로 종교 간 대화와 화합이 필요하다”며 “이웃종교화합주간 행사도 소통과 치유를 통해 희생자 유족과 국민들의 아픔을 보듬는 마당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작가회의, 10일 세월호 희생자 추모문예제

    국내 대표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10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2시간 동안 추모 문예제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작가회의는 성명을 통해 “작가들이 하늘에 바치며 세상에 전하는 글들이 세월호와 함께 차가운 바다에 잠긴 고혼들을 달래고,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하는 이 나라를 지키는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해야 할 국가기관의 무능함과 책임의 최종 당사자인 정부가 애도의 물결에 몸을 숨기고, 책임을 전가하기 급급한 현실을 엄중히 지적한다”고 덧붙였다. 추모 문예제에는 민영, 정우영, 이상국, 이재무, 함민복, 강신애, 송경동, 정원도, 박일환, 임성용, 문동만, 허은실, 휘민, 이승철, 김일영, 김성규, 최명진, 양은숙, 김자흔, 김이하, 박찬세(이상 시인), 이시백, 송지현, 유채림(이상 소설가), 장순향 교수, 신기용 명상음악가, 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 외 다수의 작가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 청계광장 등 서울 곳곳서 세월호 추모집회

    청계광장 등 서울 곳곳서 세월호 추모집회

    청계광장 등 서울 곳곳서 세월호 추모집회 연휴 첫날인 3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린다. 국정원시국회의는 오후 5시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명동성당과 을지로입구를 거쳐 다시 청계광장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할 예정이다. 약 4000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실현시민운동본부 회원 100명은 같은 시각 대한문 앞에서 ‘세월호 실종자 무사생환을 위한 촛불 희망기원’ 집회를 열고 서울광장까지 행진한 뒤 대한문 앞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나눔연대는 나눔연대는 오후 6시 길음역 앞, 통합진보당 은평구위원회는 오후 7시 연신내 물빛공원, 오후 7시 통합진보당 서대문구위원회는 증산2교 교량 인도에서 각각 세월호 관련 집회를 갖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은지 부대표 사망, 9살 아들이 현장발견+신고 ‘자살 이유는?’

    박은지 부대표 사망, 9살 아들이 현장발견+신고 ‘자살 이유는?’

    ‘박은지 부대표 사망’ 노동당 소속 박은지 부대표가 8일 오전 4시 30분 쯤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특히 9살 된 아들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 한 매체에 의하면 박은지 부대표가 개인사 때문에 우울증을 앓아오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졌다. 노동당은 10일 오전 8시 중앙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故박은지 부대표의 발인을 한 후 오전 10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영결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인에 참석한 노동당 대표 이용길은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정오에 노동당 당사에서 노제를 진행한 후 오후 2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을 진행한다. 한편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 사망’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박은지 부대표 사망..아이는 어떡하나?”, “박은지 부대표 사망..35살 너무 젊은 나이에 안타깝네요”, “박은지 부대표 사망..우울증 무서운 질병이네”, “박은지 사망..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은지 부대표 사망..아이는 무슨 죄지?”, “박은지 부대표 사망..아무리 우울증이 심해도 그렇지 아이 앞에서” 등의 반응을 보였다. 1979년생인 박은지 부대표는 서울 국사봉중학교 교사출신으로 서울지역 사범대학학생협의회(서사협) 의장과 전국학생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노동당 전신인 진보신당 서울 동작구당원협의회 부위원장, 언론국장, 부대변인, 대변인을 맡았다. 사진 = 박은지 페이스북 (박은지 부대표 사망)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이성한 경찰청장 “폭력시위 현장 연행…정치인도 예외없어” 왜?

    이성한 경찰청장 “폭력시위 현장 연행…정치인도 예외없어” 왜?

    이성한 경찰청장 “폭력시위 현장 연행…정치인도 예외없어” 왜? 이성한 경찰청장이 도심에서 벌어지는 불법 집회에 대해 강경한 대응 기조를 밝혔다. 이성한 청장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명백한 불법 폭력 시위가 발생하면 가담자를 현장에서 검거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한 청장은 “정치인 등 주요 인사도 시위 현장에서 주로 보호를 해 주는 방식이었지만 법질서를 위반하면 현장에서 연행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 시위를 하면 주동자 등을 현장에서 검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까지는 집회를 일단 끝내놓고 추후에 채증자료를 분석해 사법처리해 왔다”며 “그러나 이런 대응이 되풀이되다 보니 경찰의 법 집행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앞으로 시위 장소에서 위법을 저지르면 바로 책임을 물어 연행함으로써 불법 집회 분위기를 현장에서 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5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때에도 경찰이 주최 측에 4번에 걸쳐 소음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이후 집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됐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성한 청장은 “당시 집회 상황을 상황실에서 봤는데, 경찰관에게 자꾸 깃대 등을 휘두르거나 방패를 뺏으려 하는 시위자가 있었다”며 “이런 경우 뺏기지 않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현장에서 연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지난달 25일 총파업 집회를 주도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등 5명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현장 채증자료를 토대로 경찰의 해산 명령에 응하지 않는 등 불법 행위에 가담한 42명의 신원도 파악해 냈으며, 경찰은 이들에 대해 소환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당시 보수단체도 곳곳에서 집회했는데 경찰의 대응이 보수단체에는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배석한 한 경찰관은 “25일 집회 당시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 소속 회원이 대한문에서 폭력을 쓴 혐의가 있어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11월까지 경찰이 대응한 집회·시위는 8703건으로 전년에 비해 12.5% 증가했다. 작년 불법 폭력 시위는 39건이 발생해 전년(51건)보다 15.2% 줄었지만 집회 대응 과정에서 부상한 경찰관은 작년 72명으로 전년(57명)에 비해 30.9% 증가했다. 네티즌들은 “폭력시위 현장 연행, 역시 그렇게 해야지”, “폭력시위 현장 연행, 제대로 될까”, 폭력시위 현장 연행, 공권력 강화에만 치중하는 것 아닌가”, “폭력시위 현장 연행, 이것 만큼은 제대로 만든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치관 다르다고 때리고 남들과 다르다고 욕하고

    가치관 다르다고 때리고 남들과 다르다고 욕하고

    지난 25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인근의 한 종교단체 입주 건물 앞. 경찰에 따르면 피켓을 들고 이 종교단체에 반대하는 1인 묵언 시위를 벌이던 A(31)씨를 신도 10여명이 둘러쌌다. 이들은 욕설이 섞인 협박과 함께 폭력을 행사했고 이 가운데 신도 최모(32)씨가 폭행 혐의로 동대문경찰서에 입건됐다. 같은 날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보수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수석지부장 이모(79)씨가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 집회를 하고 있던 쌍용차 노조원 문모(52)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일이 발생했다. 정치·종교적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폭행하는 등 폭력적인 수단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담론을 이끌어 내는 평화적 수단인 대자보나 현수막을 훼손하거나 1인 시위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대화와 타협, 소통이 부재한 세태에서 비롯된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뿐 아니라 대학가에서도 이런 일들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학생회관에서는 성소수자 동아리인 ‘사람과 사람’이 졸업·입학 시즌을 맞아 내건 ‘게이, 레즈비언, 바이, 트랜스젠더의 졸업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무단으로 철거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동아리 대표인 이모(25) 학생은 26일 “서로 다른 가치나 의견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교내에 자리 잡히는 것 같아 우려된다”면서 “총학생회와 함께 성북경찰서를 찾아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인 이 학교 학생은 대학생 모임 ‘안녕들하십니까’의 대자보를 찢어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지난달에는 교내에서 농성을 벌여 온 시간강사의 텐트와 현수막이 훼손되기도 했다. 사회적 갈등이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세태와 관련해 사회갈등연구소의 조성배 박사는 “종교, 이념, 성 정체성 등에 대한 갈등은 열린 토론을 통해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해야 하는 문제인데 우리 사회는 이 부분이 숙련되지 않아 일방적인 폭력이 앞서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문화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배타적 이기주의를 바꿔 나가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토론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면서 “가정에서도 자녀를 무조건 감싸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박찬구의 시시콜콜] ‘거리의 사회학자’가 쓰는 우리시대 연대기

    [박찬구의 시시콜콜] ‘거리의 사회학자’가 쓰는 우리시대 연대기

    1980년대 일선에서 뛰었던 기자들은 당시 우리 사회를 ‘민주화의 시대’로 정의한다. 최루탄과 화염병의 중간 지대에서 기자들은 물 묻힌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아가며 현장을 기록했다. 시위대와 전경 사이에 끼여 골목길에 갇히기도 했다. 민주화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도, 이들을 막아선 전경도 목마름을 호소하긴 마찬가지였다. 현장 기사가 톤다운되거나 주어가 시위대에서 경찰로 뒤바뀌는 아픈 기억도 남아 있다. 1990년대는 ‘붕괴의 시대’로 기록된다. 하늘과 땅, 지하에서 모든 게 무너지고 떨어졌다. 압축성장기에 쌓아올린 부실과 부정, 부패의 탑들이 한순간에 허망한 최후를 맞는 듯했다. 청주 우암상가 붕괴(1993년 1월), 부산 구포역 열차 전복(1993년 3월), 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1993년 7월), 성수대교 붕괴(1994년 10월),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1994년 12월),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1995년 4월),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6월), 씨랜드 화재 참사(1999년 6월)…. 사고 현장에서 취재 수첩에 기록한 사망자만 1000명을 훨씬 넘는다.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로 희생된 초등학생의 영결식장에서는 눈물로 취재수첩이 젖었다. 연이은 사고 현장에서 생긴 트라우마는 지금도 아물지 않는다. 지하 음식점은 가능한 피하고, 가스밸브는 병적으로 잠가댄다. 구급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등골이 서늘해지고, 항공기나 고속버스·열차를 탈 때면 안전벨트를 매는 양손에 힘이 들어간다. 2010년대는 ‘불통의 시대’로 각인되고 있다. 불통의 경계는 이념과 세대를 갈라놓고, 소통의 공백으로 대립과 불신이 스며든다. 1980년대 시위의 화두가 민주화였다면, 지금 거리 시위는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서울광장이나 대한문 앞, 청계천 등에서 시민들은 소통을 갈구한다. 민주의 시대 거리 시위에서 독재의 그늘을 주시했다면, 붕괴의 시대 사고 현장에서는 고속성장의 역설을 실감했다. 불통의 시대 서울광장에서는 소통 부재로 인한 공동체의 분열을 직시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아프리카 민주화의 촉매제가 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지구촌 사람들이 분초단위로 안부를 묻는 세상에, 소통이 사회의 의제로 떠오른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소통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타협으로 균형과 공존을 모색하는 일이다. 혹자는 소통은 권력이며 소통을 위해서는 가진 자, 권력을 쥔 자가 먼저 양보하고 상대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들 사회부 현장 기자를 ‘거리의 사회학자’라고 부른다. 민주화와 붕괴의 현장을 돌이켜보면 폭정과 부패의 희생자는 언제나 평범한 시민이었고, 이를 극복하는 것 또한 거리에서든 투표장에서든 대다수 시민의 몫이었다. 과거 민주화와 붕괴의 교훈을 되새기고 불통의 시대를 넘어설 대안을 공동체 속에서, 또 거리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