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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바랜 8·15 61주년] 대학은 日극우 장학금

    고려대가 일본 극우단체 기금으로 운영해 온 장학금을 폐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비슷한 성격의 연세대 장학기금도 교수 연구사업 지원 등 편법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려대는 일본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극우단체 ‘일본재단’이 1989년 제공한 미화 100만달러(약 9억 6000만원)로 ‘사사카와 영-리더 장학금’을 운영해 온 사실이 지난해 불거지자 장학금을 폐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장학기금 100만달러를 일본재단에 반환하지 않았고 장학금 운영 중단 의사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재단 관계자는 15일 “장학금 종자돈에 해당하는 100만달러에 대한 이자가 매년 발생하는데 이 수익을 고려대가 알아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리더 장학금을 사용해 온 고려대 대학원 관계자는 “최근 실무자가 바뀌어 집행 내용 등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고려대와 마찬가지로 일본재단에서 지원받은 75억원으로 ‘아시아연구기금’을 운영해 온 사실이 드러났던 연세대는 문제의 기금을 대학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시아연구기금은 연세대에서 분리된 지난해 9월 이후 대학교수와 연구소 연구원을 대상으로 아시아 지역 관련 연구과제를 공모받아 지원대상 20편을 선정, 지원 사업을 계속하고 있어 편법 운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40년만에 햇빛 본 독립투사 김두화선생

    한 대학교수의 노력으로 잊혀졌던 독립투사의 항일운동이 40여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새롭게 조명된 애국지사는 일제 시절 신민회 구국운동에 참여하고 ‘105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해암(海庵) 김두화(金斗和) 선생으로 작고한 지 40년 만인 지난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김 선생은 1908년 숭실중학교 대학과를 졸업한 뒤 도산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평양 대성학교를 설립, 교사로 활동했으며 항일구국단체인 신민회에도 반장(班長)으로 참여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11년 9월에 발생한 ‘105인 사건’으로 투옥돼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김 선생은 이때 고문을 받아 오른팔이 심하게 골절돼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석방된 김 선생은 만주로 망명해 이시영 등과 대종교 활동에 참여하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많은 항일독립투사들처럼 그 역시 정치권 등에 편입하지 못한 채 대전의 평안도 실향민 집성촌 등에 기거하며 명멸해갔다. 한때 충남대 명예교수인 충남 연기군 남면의 성주탁 교수의 집에서 살면서 학생 계몽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김 선생은 1957년 상경해 서울 영락교회 경로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1967년 쓸쓸히 작고해 영락교회 공원묘지에 묻혔다. 김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이 새롭게 빛을 보게 된 것은 충남대 국사학과 김상기 교수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지난 2002년 4월 성 명예교수로부터 김두화 선생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접하게 된 김 교수가 김 선생이 졸업한 숭실중학교 대학과의 후신인 숭실대와 영락교회 등을 직접 방문해 증언을 확보하는 등 1년이 넘도록 사료추적 작업을 벌인 것. 김 교수는 모은 사료를 토대로 2003년 국가에 독립유공자 지정 신청을 냈다. 결국 2년여 만인 지난해 8월, 김 선생은 어렵사리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남한에 유가족이 없는 김 선생의 묘소는 다음달 21일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으로 옮겨지게 됐다. 김 교수는 “김 선생의 사진이 남한 내에는 수십년전 숭실대 대학신문에 실린 흑백사진이 전부일 정도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분”이라면서 “이 같은 분이 더 이상 없도록 국가와 사회가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왼손잡이가 더 번다”

    ‘왼손잡이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대학을 최소한 1년 이상 다닌 왼손잡이 남성들이 오른손잡이 동급생보다 돈을 13% 더 많이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라파예트대의 크리스토퍼 루벡 교수 등이 지난달 국가경제조사국(NBER)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교육을 받은 왼손잡이 남성은 13%,4년제 대학을 졸업한 경우에는 21%나 오른손잡이보다 소득이 높았다. 조사 결과는 1979년 전미 청년 장기 연구소에 등록된 14∼21세의 남녀 5000명에 관한 신상 정보를 이들이 28∼35세가 된 1993년 다시 추적 조사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게서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간에 소득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도 왜 여성들에게는 남성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지 갸우뚱해 했다. 보고서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9일(현지시간) “대학교수, 천재학생, 예술가, 음악가들 중에 왼손잡이가 많다.”고 부연했다. 루벡 교수는 “왼손잡이 남성과 오른손잡이 남성간의 소득격차 원인은 명백하지 않으며 생물학적 뇌 기능의 차이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 결과로 말띠 여성들은 팔자가 드세다는 속담이 한국에서 사라지지 않았음을 입증한 논문이 소개됐다.아칸소대 이정민 교수와 텍사스대 대학원생 백명호씨가 인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은 말띠 해인 1978년,1990년,2002년에 한국 출산율이 평균 8.9% 떨어진 사실을 지적했다. 특히 2002년에는 2만 9900명의 여자아이들이 태어나지 못했는데 이 중 86%는 출산시기 조절,3%는 출생신고 조작,11%는 낙태에 의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긍정적인 것은 1990년 20%였던 낙태율이 2002년 11%로 떨어진 것이라고 논문 저자들은 결론지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교장자격증 없이도 공립高교장 첫 임용

    교장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공립고 교장으로 처음 임용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다음달부터 운영할 교장초빙·공모제 시범 적용 대상 51개 학교 가운데 대전 전자디자인고와 전북 부안의 줄포자동차고 등 특성화고 2곳에 교장자격증이 없는 사람을 임용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그동안 교장자격증 없는 사람이 사립고 교장으로 임용된 적은 있었지만 공립고에서 제도적으로 임용되기는 처음이다. 경남교육청이 지난 3월 김해외국어고를 개교하면서 공모를 통해 교장자격증 없는 사람을 교장으로 임용했지만, 교육청 차원의 시도였다. 교육부에 따르면 교장초빙·공모제 시범적용 대상 학교인 51곳 가운데 특성화고 4개교에 대해 교장자격증이 없는 최고경영자(CEO) 등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결과, 학교당 3∼4명이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반면 교장자격증 소지자로 지원 자격을 제한한 47개교에서는 지원자가 학교당 1∼2명에 불과해 차이를 보였다. 교장자격증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특성화고에는 대학교수와 미술학원장, 사립학교 교장, 장학사, 평교사 등 관련 분야의 전문성과 경력을 갖춘 다양한 사람들이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 전자디자인고와 줄포자동차고의 경우 대전의 한 중학교 교감과 전북교육청의 장학사가 각각 임용될 예정이다. 충남인터넷고와 경남정보고 등 특성화고 두 곳에는 심사를 통해 교장자격증 소지자를 임용한다. 교육부는 시범학교로 선정된 51개교를 모두 자율학교로 지정, 초빙·공모교장에게 교사의 50%를 초빙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하는 등 학교운영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내년 3월과 9월 교장초빙·공모제 시범학교를 각 50개씩 추가 선정할 계획이다. 교원정책과 마소정 사무관은 “공모 과정에서 유능한 인사들이 지원하고, 임용추천 심사과정이 보다 강화되는 등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김병준 부총리 사의] “도덕성 겸비한 교육전문가” “교수출신 교육수장 힘들것”

    “도덕성과 윤리성을 갖춘 교육전문가”,“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 교육단체에서 꼽는 교육수장이 갖춰야 할 요건이다.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낙마하는 것을 감안하면 후임 교육수장의 요건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육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최우선 자질은 ‘교육 전문가’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교육현안을 잘 조정해 나가려면 교육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교조나 한국교총에서는 김 부총리 내정단계에서부터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김 부총리가 비교육 전문가라며 부정적이었다. 전교조 이민숙 대변인은 2일 후임 교육수장이 갖춰야 할 요건으로 “교육전문성과 공공성에 대한 교육철학을 가진 분”을 꼽았다. 한국교총 한재갑 대변인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갖추고 교육에 대한 식견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와 관련, 대학교수들은 더 이상 교육수장으로 일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적지 않다. 김 부총리 사태를 계기로 제기된 논문 표절이나 중복게재, 논문실적 부풀리기 등의 이른바 ‘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교수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강명구 아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색안경을 낀 사람들에게는 그쪽 세상만 보일 것”이라면서 “훌륭한 교수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총의 한재갑 대변인도 “정치권 인사보다는 학계인사가 그나마 교육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동조했다. 한편 교육단체에서는 김 부총리 사의표명 소식에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전교조나 한국교총,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등의 반응이었다.이런 가운데 “사퇴를 철회하라.”는 목소리도 나와 주목됐다.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연대는 “교육부총리 사퇴를 둘러싼 정쟁, 교육시민단체와 언론, 정치권의 한심한 마녀사냥식 도덕 불감증을 개탄하며, 교육부총리 사퇴를 반대한다.”고 밝혔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잘못된 관행 이젠 깨자] (1) 부조리한 연구풍토

    [잘못된 관행 이젠 깨자] (1) 부조리한 연구풍토

    관행을 깨자!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논문 표절 의혹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 새삼 주목되고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관행상 그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사안마다 흔히 따라오는 변명이 ‘관행’이라는 꼬리표다. 비도덕적인 학계의 연구관행에서부터 인권을 침해하는 검·경의 수사 관행, 끊이지 않는 법조계의 부패 관행 등 원칙과 기준을 도외시한 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가 적지 않다. 사회 각 분야에서 자행되고 있는 잘못된 관행의 실태, 원인과 대책을 6회에 걸쳐 살펴본다. #1 “행정학회나 정치학회, 경제학회 등 덩치가 큰 학회는 관행이 이상하다. 지명도를 높이려고 학술대회를 크게 열려 한다. 그러려면 자금이 들게 마련이다. 이를 위해 용역을 받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발주자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이런 악순환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다 보니 진정한 사람은 학회장 등을 하지 않으려 한다.” 현직 행정학회 교수가 지적하는 잘못된 학계 풍토다. #2 “그 대학은 교수로 계속 일하기가 힘들다던데 어떤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수들은 다 놀고먹는 중소기업 사장 같아요. 미국에서 일하던 것의 10분의1 정도만 일하면 우수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습니다.” 미국 유명 주립대에서 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다 지난해 국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한 대학교수가 국내 대학교수들의 안이한 연구풍토를 지적하면서 귀띔한 말이다. #3 서울 K대 체육교육대학원생 A씨는 지난해 한 학기에 4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고도 정작 자기 공부는 거의 못 했다. 박사과정 학생인 한 운동선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대신 써주느라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논문 쓰는 것 좀 도와주라.”는 지도교수 ‘지시’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선배 요구는 한도 끝도 없었다. 실험연구 방법조차 모르는 선배를 대신해 실험까지 했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도교수에게 밉보이기 싫어 가슴앓이만 했다. 결국 이 선배는 A씨가 써준 논문으로 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생 연구비는 교수 용돈? 논문표절이나 베끼기 등의 엉터리 관행 이외에 금전과 관련해 지적할 수 있는 부조리 관행은 엉성한 연구비 관리라 할 수 있다. BK21사업 등 대학원 육성사업 연구비를 담당 교수가 빼돌린다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하지도 않은 대학원생 제자들을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시킨 것처럼 가짜로 서류를 꾸민 뒤 연구비를 담당 교수가 챙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대학원생들의 전언이다. ●부풀린 연구비에 카드깡까지 허위 세금계산서 작성도 있다. 연구비를 받은 뒤 전혀 쓰지도 않은 곳에 쓴 것으로 가짜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해당 부처나 기관 등에 보고한다는 것이다.C대학 박사과정생인 B씨는 “연구회의를 하지 않고 식사비를 청구해 해당 교수가 다른 용도로 쓰는가 하면, 쓰지도 않은 인쇄·복사비 명목으로 보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양심 없는 일부 교수들은 카드깡도 한다. 예를 들어 자주 가는 식당에서 30만원을 카드깡한 뒤 수수료와 세금 등 5만∼6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현금으로 받아 챙기는 식이다.K대 S교수는 지난해 이런 식으로 카드깡한 사실이 제자들에게 알려지면서 톡톡히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오히려 특강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교수들은 사후관리가 엄격한 연구용역을 수행하기보다 특강을 선호한다. 수도권대학의 한 교수는 “용역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교수가 쓸 돈이 없다. 대학원생 월급줘야 하고 (발주처)요구조건에 맞추려면 페이퍼 워크도 많다.”고 지적했다. 박현갑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법조비리 감시 외부인 참여

    대법원은 법조비리를 예방하고 법관들의 비리·비위를 조기 적발하기 위해 대법원 차원의 감찰 활동에 외부인사들을 참여토록 할 방침이다.대법원 관계자는 31일 “고위법관의 재산변동 사항을 등록·공개하는 역할을 해온 현행 공직자윤리위원회에 감찰기능을 추가하는 방안과 대법원장 직속 위원회에 법관에 대한 감찰 및 윤리심의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외부인사와 부위원장 등 4명의 법관 및 법원공무원으로 구성돼 있다.대법원은 대법원장 직속위원회에도 시민단체 관계자나 대학교수 등 외부 인사를 대거 포함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또 법관들의 비리·비위나 일탈행위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금까지 ‘사법부의 독립’을 중시하는 차원에서 감찰·윤리심의에 외부인사를 참여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잇단 비리에 법관들이 연루되고 국민들의 신뢰가 추락한 데는 ‘솜방망이 감찰’도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 일자 외부에 개방키로 한 것이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한국최초 섹스 문학재판

    한국최초 섹스 문학재판

    「섹스」재판이 열렸다. 지난 11월21일 상오11시 서울지법 114호 법정. 피고인은 저서 속에서「섹스」를 남달리 분명히 다룬 박승훈(朴承薰)씨. 한국「에로스」의 사제(司祭)가 제단(祭壇) 아닌 법정에 선 셈이다. 그는 음란문서제조 및 판매죄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어 있었던 것이다. 박승훈씨는 신문학도로 자처하고 있다. 중앙(中央)대학에서『미국의 신문학』이라는 강의를 맡고 있고 한국신문(韓國新聞)연구소의 이사이며 건국(建國)대학교에서는 교수로서 『미국의 현대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르포」작가로서 더 알려져 있다. 『零點下(영점하)의 새끼들』『零年(영년)구멍과 뱀의 대화(對話)』『서울의 밤』『어느 때 까지니이까』『한 줌 흙은 말한다』등 일련의「에세이」를 썼다. 이 저서들에서「섹스」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저자에 의하면『「비트」문학의 현장 검증주의』라는 것이다. 이 날은 제1회 공판. 하(河)경철판사의 단독심, 인(印)정헌검사 관여로 열렸다. 피고인의 변호사는 정춘용(鄭春溶)씨. 애독자이기 때문에 무료변호를 맡고 나섰다고 한다. “비난을 받지 않았는가” 엔 “후배가 알 것을 알려 줬다” 서기가 『피고인 박승훈씨!』하고 크게 이름을 부르자 방청객 사이에서 『예…예…』하는 대답과 함께 도수높은 안경을 낀 박씨의 헌칠한 모습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다음은 이날의 공판 방청기. 판사-피고인의 직업은? 박씨-(즉석에서) 대학교수입니다. 검사가 기소장을 읽었다. 그의 저서 중에서 『零年구멍과 뱀의 對話』『서울의 밤』이 문제가 됐다. 이 2권 중 『零年구멍과 뱀의 對話』에서는「카메라•아이」라는 장(章•1백30~2백45「페이지」사이 1백35「페이지」)이 걸렸다. 이 대목은 박씨가 어느 중국음식점의 벽에 뚫린 조그만 구멍을 통해 옆 방에서 벌어지는 각계 각층 남녀의 성교장면을 세밀하게 관찰, 그 느낌을 묘사한 글이다. 또『서울의 밤』에서는「어디선가 보고 있다」라는 장(章•1백77~2백27「페이지」사이의 50「페이지」)과 「노래하는 공동변소」라는 장(章•13~65「페이지」사이 52「페이지」)이 문제됐다.「어디선가 보고 있다」는 필자가 도색(桃色)영화를 보고 난 뒤의 독백과 영탄이 씌어져 있는 부분이다.「노래하는 공동변소」는 대학교수인 필자가 서울역 앞 공동변소에 들어 앉아 그 낙서들을 음미하면서 느낀 점을 썼다. 검사-「카메라•아이」로 외설물을 제조, 판매케 했는가? 박씨-제조라는 것은 형이하학적인 것을 만들 때의 이야기고 글을 쓴다는 것은 청탁을 받아 집필한다는 것이다. 검사-하여간 제조했지? 박씨-제조는 출판사에서 한 것이고 이쪽은 오랜 진통기를 지난「아이디어」를 붓을 통해 집필했을 뿐이다. 검사-「어디선가 보고 있다」의 「필름」을 만들었는가? 박씨-아까 말한대로 책을 저술했고 그 한 章에 문화영화를 본 사실을 기록한 바 있다. 검사-「필름」을 보았는가? 박씨-보았다. 변호사-쓴 것은 죄다 사실에 입각한 것인가? 박씨-「비트」문학의 원리와 본질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다. 변호사-쓴 동기는? 박씨-「저널리스트」로서의 사회적인 책임이다. 내가 안쓰면 누군가가 썼을 것이다. 나는 태만하지 않았다. 변호사-자기 글이 음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박씨-그러한 대목은 한군데도 없다. 활자「미디어」에서는 성욕을 느끼되 수치심이나 혐오증과는 다른 미적 감동을 주는 법이다. 변호사-비난을 받지 않았는가? 박씨-후배대학생들로부터 알아야 할 것을 알려 주어서 감사하다는 찬사의 말은 들었지만 비난을 받은 일은 없다. “왜 다루었나” 엔 “인간문제 추궁하려고” 판사-사회적인 책임이란 무엇인가? 박씨-「엘리트」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붓을 든「엘리트」로서 태만하지 않은 것이 죄라면 죄다. 나는 진실을 썼다. 시종일관 사회성 예술성 사상성을 담아 책임을 다했을 뿐이다. 판사-왜 「섹스」문제를 다루었는가? 박씨-성적행위는 예술 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예술도 신비하기 때문에 둘다 어떠한 답을 내리기 힘들다.「아담」과「이브」이후 하느님도 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섹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예수•그리스도」도 간통한 여자에게 돌을 던지지 못했다. 이 거창한 인간의 문제를 끝까지 추궁해 보려고 했다. 판사-그 답이 나왔는가? 박씨-아직 추궁 중에 있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키게 된 것도 그 점에 있고 저 작품이 미완성품이라는 점에 있겠다. 제1회 공판에서는 문제된 3가지 章들 중에서 어느 구절이 검찰측 견해로 음란 혹은 외설스러운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지적되지 않았다. 이 점은 오는 12월6일에 예정된 제2회 공판에서 심리되리라고 한다. 박승훈씨는 만일 유죄판결이 내린다면 대법원까지 올라갈 기세다. 그렇게 되면 작품속의 음란, 외설에 대한 정의가 내려질 것 같다. 이웃 일본의 경우 최고재판소(대법원)가「D•H•로렌스」의 작품『차털리 부인의 사랑』재판에서 내린 판례를 보면 음문서란『함부로 성욕을 자극하고 수치심과 혐오의 정을 불러 일으키도록 노골적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변호사 정춘용씨에 의하면 미국과「유럽」등 선진제국의 판례에서는 더 폭 넓은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데이서울 69년 11/30 제2권 48호 통권 제 62호]
  • [부고]

    ●임익성(남서울대학교 교수)양희(이화내과의원 원장)씨 모친상 송윤섭(순천향의대 비뇨기과 교수)강희철(재미 변호사)씨 빙모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02)3410-6911●김영수(전 대림콘크리트 상무)씨 모친상 박달복(사업)김영민(사업)조재인(사업)심규선(전 연합뉴스 부장)한광전(대림혼다서부점 대표)씨 빙모상 28일 동국대학 일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 (031)961-9403●김진형(KAIST 교수)진묵(음악평론가)씨 부친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02)3410-6915●김병화(올산투자정보 대표)씨 부친상 한승욱(외환은행 반월공단지점장)안판석(영화감독)씨 빙부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3410-6919●민영준(㈜쓰리에스포유 부장)영석(㈜LG생활건강 차장)씨 부친상 신동원(㈜농심 부회장)씨 빙부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3410-6914●설종진(프로야구 현대유니콘스 2군매니저)씨 빙부상 27일 서울 혜민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 (02)447-4099●채희성(삼성증권 강북지역사업부 법인파트장)씨 부친상 27일 부평 세림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32)508-1340
  • 교수단체들 김부총리 사퇴 요구

    교수단체들 김부총리 사퇴 요구

    28일 정치권에 이어 교육계와 시민단체까지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전교련)는 28일 성명에서 “김 부총리가 논문을 중복 발표하고 논문 실적을 이중보고, 연구 윤리와 학자의 양심을 저버림으로써 연구 윤리를 지도·감독할 교육부총리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면서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도 이날 성명을 내고 “동일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중복 발표해 두 개의 연구실적으로 만든 행위는 올 초 교육부가 발간한 ‘연구윤리 소개’의 ‘기만행위’에 해당하는 명백한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도 “연구비가 걸린 과제를 제목까지 바꿔 가면서 보고한 것이 제자의 단순 실수였다는 해명을 믿을 수 없다.”면서 사퇴를 요구했다. 참여연대도 성명에서 “계속되는 논문 시비로 김 부총리가 교육자로서의 자질에 심각한 흠이 있음이 드러났다.”면서 “김 부총리는 교육의 미래를 위해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단체에서도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이날 오전 9시40분쯤 교육부 집무실로 출근,“사퇴를 고민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자 “부총리 부임 이전에 약속된 개인 조찬모임에 참석했을 뿐”이라면서 “사퇴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대 교수시절 두뇌한국21(BK21) 사업비를 받고 과거 논문을 연구실적으로 보고한 데 이어 1989년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때도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논문을 실적으로 제출한 사실이 새로 드러나 사퇴촉구 움직임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 부총리는 1998년 8월 국민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지방정치학회보에 ‘공익적 시민단체의 정책적 영향력에 관한 연구:지방자치제도 관련 활동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2000년 2월에는 이 논문 제목을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시민단체의 영향력:지방자치 관련 제도개혁을 중심으로’로 바꿔 교내 학회지인 사회과학연구에 실었다. 두번째 논문은 BK21사업 지원금을 받기 전인 1998년 논문과 같은 내용이지만 BK21 사업실적으로 보고됐다. 김 부총리는 이와 관련,“실무자가 BK21 지원비를 받기 이전에 작성한 논문과 같은지 모르고 실적으로 보고했다.”며 시인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황금박쥐’ 수난시대

    ‘황금박쥐 수난시대?’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대학교수 시절 제자논문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리면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지원하는 정치권의 비공식적인 친목모임인 이른바 ‘황금박쥐’의 부침이 시선을 끈다. 이 모임은 지난해 초 당시 김병준 대통령 정책실장, 박기영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 참여정부 실력자들의 황 교수 후원모임이다.‘황-김(金)-박-진’인 이들의 성을 하나씩 따 ‘황금박쥐’ 모임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모두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황 전교수는 줄기세포 연구과정과 결과 자체를 조작해 엉터리 결과를 사이언스에 게재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현재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재판을 받고 있다. 황 교수의 열렬한 지지자이던 박기영 당시 청와대 보좌관은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작성에 기여한 바 없이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서울대가 발표하면서 결국 올 초 물러났다.순천대 생물학과 교수로 복귀한 그는 현재 한 달 일정으로 방문연구 교수자격으로 미국에 체류중이다. 진대제 전정보통신부 장관도 황 교수 연구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경기지사 후보로 나섰다가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게 패함으로써 좌절을 맛봤다. 한국정보통신대와 광운대 석좌교수로 이름을 올려놓았으나 강의는 하지 않고 있다. 측근은 “황 전교수 위로방문 등 일체의 두드러진 행보는 없다.”고 밝혔다.김병준 당시 정책실장은 여전히 굳건하나 위기에 놓이긴 마찬가지다. 그는 당시 박 보좌관과 함께 황 교수의 줄기세포 오염 사실을 알고도 은밀히 수습하려다 은폐 의혹까지 촉발시키며 사퇴압력을 받았었다. 하지만 교육부총리로 입각함으로써 “황금박쥐가 불사조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입각 후 제자 논문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려 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명문대 교육혁명](14)싱가포르 국립대

    [명문대 교육혁명](14)싱가포르 국립대

    |싱가포르 윤창수특파원|‘세계적 지식 기업’. 국제화와 과감한 투자로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한 싱가포르국립대(NUS)의 모토다. NUS의 국제화는 교수진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고, 학부생은 20%, 대학원생은 절반이 유학생이란 점에서 알 수 있다. 의대는 존스 홉킨스대, 공대는 MIT, 음대는 피바디음대 등 각 단과대학별로 해외 명문대와 교류를 맺고 공동연구와 강의를 진행한다. ●교수 절반 외국인… 대학원생 절반 유학생 미국, 중국, 유럽, 인도 등 해외에도 5곳의 캠퍼스가 있다. 실리콘밸리에 가까운 스탠퍼드대, 바이오밸리가 인근에 있는 펜실베이니아대, 상하이(上海)의 푸단(復旦)대, 스톡홀름의 스웨덴 왕립공과대학, 방갈로르의 인도과학대학원에 캠퍼스가 있다. 이곳에서 공동강의를 들으며 현지 기업에서 인턴경험도 쌓는다. 매년 해외 캠퍼스별로 50∼100명의 학생을 뽑는다. MIT와의 제휴는 NUS 국제화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인공위성과 화상강의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MIT교수의 강의를 듣는다. 지역의 장애를 넘어 최고의 교육환경을 제공하겠다는 NUS의 욕심을 읽을 수 있다. 리 라이 토 국제협력처장은 “현재 학부생의 30%가 교환학생 등을 통해 해외경험을 하고 있다.”면서 “학부생의 해외경험 비율을 50%로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NUS가 활발한 해외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싱가포르가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덕도 크다. 이런 점에서 서양인들이 적응하기에 가장 편한 아시아 국가가 바로 싱가포르다. 한국의 대학이 교환학생이나 유학생을 유치하고 국제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영어강의를 늘리고 외국인 교수를 많이 뽑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존스 홉킨스大·MIT와 제휴 영어에 능통하다 보니 NUS 교수진은 각 분야별로 저명한 학회지의 편집자로 많이 활동한다.NUS가 한해 학회에서 발표하는 논문 수는 1700편에 이를 정도로 탁월한 연구 역량을 발휘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교수들이 열심히 연구활동을 하는 것은 학과별로 연봉이 다르고 같은 과 내에서 정교수 1년차끼리도 월급차이가 날 정도로 확실한 평가와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공대의 조병진 교수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지 않고 의사, 변호사 등으로 일하거나 회사에서 근무할 경우에 받을 수 있는 시장 가치를 조사해 때로는 다른 세계 명문대보다 많은 연봉을 준다.”며 “대략 공대는 문과대보다 2배, 의대는 공대보다 2배쯤 연봉 수준이 높다.”고 설명했다. ●영어 공용어 덕… 명문대보다 교수 연봉 높아 NUS에 유학생이 많은 것은 싱가포르가 이미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증표이기도 하다.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서면 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대폭 줄어든다. 굳이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취업할 기회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NUS의 교수들은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한다. 중국 상위권 10개 대학에는 1년에 두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학교 설명회를 열고, 장학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현장에서 면접을 보고 학생도 선발한다. 중국 상위권 5개 대학에는 대학원 입학자격시험(GRE)이나 토플같은 영어시험을 면제해준다. 인도출신 교수들은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정기적으로 모국을 찾는다. 5년여 전만 해도 NUS 역시 국립대여서 연공서열 시스템이었다. 교수들은 논문이나 연구는 신경쓰지 않고 학생들에게 강의나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영국적 전통으로 설립된 대학에 미국대학의 경쟁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교수 정년을 1년 전 55세에서 65세로 확대한 것은 외국의 석학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NUS가 세계적 명문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가 이뤄진 데에는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라는 특수한 여건도 있다. 경영대의 이인무 교수는 “경쟁의 원리를 아는 싱가포르 관료들이 대학에 자율을 주면서 경쟁을 유도해 대학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교육의 질은 향상됐고, 싱가포르인들은 NUS가 배출하는 인재들의 경쟁력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geo@seoul.co.kr ■ 싱가포르 국립대의 역사 싱가포르국립대(NUS)는 1905년 입학생 23명의 조그마한 의과대학으로 시작했다. 이후 킹 에드워드 7세 의과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싱가포르 정부가 1980년 킹 에드워드 7세 의대와 래플스대, 말라야대, 난양대를 통합하면서 NUS를 설립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영국식 교육 전통을 이어받았다. 학생들을 작은 그룹별로 가르치는 ‘튜토리얼 클래스’가 있다. 국제화를 진행하면서 미국 하버드대의 시스템을 적극 도입했다. NUS의 모태였던 의대는 싱가포르 의료 허브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의대는 매년 250명의 신입생을 받는다. 고등학교 성적이 전과목 모두 A인 학생만 3000여명 지원한다.95개 연구소가 의대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인 사망원인 1위인 암퇴치를 위해서 암연구센터(TCI)를 세웠다.TCI에서는 컴퓨터 과학자든 의사든 따지지 않고 병을 치료할 의지와 기술만 있다면 모두 함께 일한다. 의대 학장인 유리 왕 교수는 “좋은 시스템이라면 전통을 따지지 않고 받아들인다. 유럽, 북미, 호주의 대학 및 연구소와 파트너 관계에 있다.”고 소개했다. TCI에서는 한국의 연세암센터 등과 공동연구를 진행한다. 한달에 한번씩 전화회의를 갖는다. ■ 시춘풍 총장 인터뷰 |싱가포르 윤창수특파원|“우리가 NUS에 오는 모든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는 바로 경쟁력입니다.” 시춘퐁(60) 총장은 온화한 인상에 유려한 영어를 구사한다. 자그마하고 날렵한 그는 “방학이 오히려 더 바쁘다.”며 전세계를 돌아다닌다. 밤낮없이 일하는 중국인 지도자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시 총장은 한국의 국립대보다도 독점적이고 우월한 지위를 누리던 NUS에 경쟁적인 연구환경을 주도적으로 조성했다. 지난 5년여동안 강의 중심의 대학을 연구 중심으로 바꿨다. 교수진 절반 이상을 외국인으로 구성했다. 교수들은 정년이 보장되는 부교수로 승진하기까지 3년마다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65세까지의 정년을 보장받으려면 전세계 유명 대학의 같은 분야에 있는 저명한 교수 4명 이상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조교수에서 부교수가 되기까지의 계약기간은 최고 3년씩이다. 최장 9년 안에 부교수로 승진해 정년보장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정년이 보장된 부교수도 정교수로 승진하려면 부교수 승진때보다 더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매년 교수평가에서는 강의, 연구, 서비스가 가장 중요한 3가지 항목이다. 평가결과가 좋으면 보너스도 받는다. ‘아시아의 교육 허브’를 꿈꾸는 싱가포르의 똑똑한 관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NUS에 이처럼 혁신의 바람이 불었다. 관료들은 자원이 없는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경쟁력은 해외의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 총장은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공대인 싱가포르 폴리테크닉을 졸업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국립대지만 NUS는 1년 전 법인화했다. 그래서 대학의 정책이 교육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받은 것이다. 하지만 교육에 관심이 많은 싱가포르 정부는 NUS에 대한 지원금을 줄이지 않았다. “대학은 항상 펀딩(기금 적립)의 압력을 받습니다. 정부의 지원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외국과 개인으로부터 지원금을 얻기 위해 시 총장은 발로 뛰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기업이 아니며 존재 이유의 핵심은 교육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시 총장이 꼽는 이상적인 대학 총장은 지도력, 비전, 에너지를 갖춘 학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이상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과거에 대학 총장은 학자였으나 이제 그런 과거는 끝났습니다. 바쁘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항상 대학을 새롭게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지요.” 시 총장은 학생들이 흥미있어 하는 ‘질 높은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항상 강조한다. 고려대, 상하이 푸단(復旦)대와 함께 ‘아시아 MBA’ 과정을 신설한 것도 세 대학이 결합해 학생들의 경쟁력과 경험을 3배로 늘려주겠다는 소신의 결과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증권시장에 가야지 대학교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교수는 철저히 시장과 경쟁해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다문화 시대에 선두 기관은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속에 NUS의 국제화를 이끈 시 총장은 그가 제시한 이상적인 총장상과 닮았다. geo@seoul.co.kr ■ 공대 전자공학과 박사과정 황완식씨 |싱가포르 윤창수특파원|“박사과정생이 40여명인 실험실에 행정 및 연구직원이 10명이나 되니 대학원생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어 좋습니다.” NUS 공대 전자공학과의 실리콘 나노 디바이스 랩에서 연구중인 박사과정 3년차의 황완식(31)씨는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싱가포르 유학을 결심했다. 황씨가 공부하는 반도체 부문은 사회에서 요구가 많은 분야인 만큼 지난해 실험실 연구비 예산은 160억원이나 됐다. 실험실 총 인원은 교수 7명을 포함해 50여명이다. 그는 학교로부터 매달 장학금을 제외한 생활보조금으로 2000싱가포르달러(약 120만원)를 받는다.1년에 공식적인 휴가만 3주. “한국에서는 실험장비 관리나 조교로서 학부생을 지도하는 등 연구 외에 신경쓸 일이 많았어요.NUS는 연구비와 연구장비가 풍족한데다 반도체 회사 수준과 대등하게 장비도 최첨단인 점도 만족스럽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할 때에는 직접 청계천에서 재료를 사다 이것저것 끼우거나 직접 만들다 보니 사고를 당하거나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NUS는 구입한 고가의 장비가 고장이 나면 학생이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업체 직원이 와서 고쳐준다.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보니 창의력을 발휘해 직접 고치는 응용력을 기르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지만,NUS학생들은 너무 획일적이고 의존적인 경향이 있다고 황씨는 지적했다. 그가 한국의 연구문화 가운데 한가지 그리운 것이 있다면 실험실 동료들과 즐기던 야식과 점심 후의 족구.NUS내에서는 흡연과 음주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노는 문화도 달라 대학생들이 술래잡기를 하거나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한국노래를 따라 부른다.”면서 웃었다. geo@seoul.co.kr ■ 의대 생화학과 특별연구원 이충영씨 |싱가포르 윤창수특파원|이충영(37) 생화학과 특별원구원은 NUS 의대 내의 유일한 한국인이다.NUS에는 30여명의 한국인 교수가 있는데 주로 경영대와 공대에 있다. 이 박사는 홍콩에서 태어난 홍콩 교포다. 홍콩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식품공학과에서 학사와 박사후 과정을 밟아 홍콩, 한국, 싱가포르 아시아 3국의 연구환경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됐다. 그가 NUS에서 연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최고의 연구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일단 연구비 규모가 한국의 10배 이상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연구 프로젝트인 BK21의 연간 예산은 2900억원이다. 하지만 NUS 의대의 연간 예산만 6300억원에 이른다.BK21의 한 대형사업단에 10억∼20억원이 지원된다면,NUS에서는 한 과에 그만한 자금이 있어 뛰어난 연구진을 유치할 수 있다. “한국은 연구비가 너무 부족합니다. 한국에서는 일회용 기구도 재활용해 써야 했고, 장학금이 없으니 연구할 사람도 없었지요.” 싱가포르 국가 자체가 해외 인력과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다.NUS도 인재유치에 매우 적극적이다. 학제간 연구도 활발하다. 이 박사가 일하는 생화학과 활성산소 그룹에만도 물리, 해부병리, 내과, 생화학 전공 교수가 함께 연구한다. 현재는 2명의 대학원생을 지도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무려 13명을 가르쳐야 했다. 이 박사는 당시 스스로를 ‘슈퍼마켓’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한국처럼 지도교수가 한꺼번에 많은 대학원생을 지도하는 경우는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젊은 과학도들이 모국을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동기부여를 해야 합니다.”싱가포르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 박사가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다. geo@seoul.co.kr
  • [중계석] “재산권-경영권 상속 동일시 안된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

    장하성 고려대학교 교수는 기업 경영권이 시장경쟁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경영권의 상속과 증여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20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최고경영자대학’에서 ‘기업가 정신과 기업지배 구조’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개인 재산 상속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나 기업경영권을 상속하거나 증여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대주주가 절대지분을 갖지 않고 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배구조를 갖춰야 하는 상장기업은 경영권이 사유물이 될 수 없다.”면서 “사유재산의 이전은 당연하나 경영권 세습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장 교수의 이런 지적은 최근 삼성, 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들이 경영권을 세습하려다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을 겨냥한 것으로 대주주들의 재산 상속과 경영권 상속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장 교수는 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기업발전과 시장경제의 동력인 경영권은 경쟁의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창업자나 우리나라 사람만 경영권을 가져야 하고 외국인 투자자나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받아야 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장 교수는 국내 재벌그룹의 ‘오너’ 경영 체제와 관련,“중소기업이나 초기 창업기업은 오너가 많으나 대기업은 지분구조상 오너라고 불릴 만한 재벌총수가 없다.”면서 “그런데도 총수들이 오너처럼 행동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이 그룹들이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이 기업들의 오너들이 자신에 대한 도전이나 경영권 경쟁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경영권에 대해서는 시장경제원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외국자본으로 인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것은 국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사고”라면서 “기업 경영권도 시장 경쟁의 대상이 돼야 하기 때문에 이런 폐쇄적이고 아전인수격 시장경제 인식으로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외국 자본으로부터 보호하려면 지분을 가져야 하는데 기관투자가들을 포함해 정작 우리는 우리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아울러 “외국인의 직접 투자는 선이고 주식 투자는 악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제한된 수요를 갖는 국내 시장에 외국기업이 들어오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고 기업들에 돈만 주고 경영을 맡기는 주식투자가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소버린의 SK㈜ 주식 투자를 예로 들며 “소버린이 SK 주식을 2년 4개월 보유했다.”면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주식 보유기간이 평균 6개월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소버린의 투자를 투기라고 비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경제 관료조차 기득권화돼 있는 등 기득권 세력의 개혁 저항이 만만치 않다.”면서 “경쟁을 제한하고 폐쇄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기득권 보호로는 선진 시장 경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
  •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 쟁점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 쟁점

    국회 교육위원회는 18일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어 외국어고 지역별 제한모집, 사학법 재개정 여부, 한·미 교육시장 개방 여부 등 교육 현안에 대한 입장을 집중 검증했다. 여야 의원들은 또 ‘코드 인사’ ‘비전문가 발탁’ 등 김 내정자의 정책전문성과 병역문제, 자녀들의 외고 편입학 특혜 의혹 등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물고늘어졌다. ●교육 현안에 대한 입장 추궁 여야 의원들은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사학법 재개정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교육시장 개방 여부 ▲입시자율권 ▲외고 지역제한 입학 ▲고교 평준화 폐지 논란 ▲대학 구조개혁 등 교육 현안에 대한 김 내정자의 입장을 집중 추궁했다. 김 내정자는 교육시장 개방 여부와 관련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의 질의에 대해 “정부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쉽게 개방할 수 없는 분야”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대학 구조개혁과 관련해서는 국립대 법인화와 지방국립대 통폐합, 학과 통폐합 등 정부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사학법 재개정 여부를 묻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서는 “위헌적 요소가 있는지,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겠다.”며 일부 개정 가능성을 내비쳤으며,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부여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율에 앞서 부작용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책능력 및 ‘코드 인사’ 논란 김 내정자의 정책능력을 둘러싼 질의가 줄을 이었고,‘코드 인사’ 논란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공방도 뜨거웠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교육정책에 문외한인 김 내정자를 교육부장관에 내정한 것은 ‘전형적인 코드 인사’”라고 몰아세웠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은 개각이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코드 인사’를 들고 나온다.”며 “20년간 대학교수로 재직한 사람이 교육 전문가가 아니면 누가 교육전문가냐.”고 반박했다. 앞서 김 내정자는 서면답변을 통해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알고 있다.”며 “내가 교육부총리 적임자”라고 답했다. ●도덕성 집중 추궁 여야 의원들은 김 내정자 자녀의 외고 편입학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물고늘어졌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 내정자가 두 딸을 모두 외고에 편입학시켰다는 점을 집중 거론하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외고의 학생모집 지역제한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은 “내정자의 장녀는 6개월 이상 외국에 거주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특례로 시험을 볼 수 있었느냐.”고 따진 뒤 “특히 일본에 체류했던 99년 8월에서 12월까지는 불법 조기유학”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김 내정자의) 한 자녀는 일본에서도 어렵다는 자격증을 갖고 있는 데다 해외에 체류했던 학생이 외고에 들어갈 때는 편입이 용이한 방법이 있었다.”고 김 내정자를 두둔했다. 이에 대해 김 내정자는 “두 딸이 외국생활을 하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편입학시켰다.”며 절차상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전광삼 구혜영기자 hisam@seoul.co.kr
  •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이 겪은 정치적 격랑은 100년 역사의 신문이 쌓아온 문화적 의미마저 짓눌러왔다.‘총독부 기관지’‘군사정권 선전도구’라는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 가려 서울신문이 한 세기 역사속에 남긴 문화사적 족적마저 축소되고 폄하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초 대한매일신보 시절은 물론 일제 강점기 매일신보, 광복 후 서울신문으로 신문의 맥을 이어오면서 한국 근현대문화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신춘문예 효시가 된 소설 현상공모를 처음 도입했는가 하면 춘원 이광수의 ‘무정’, 정비석의 ‘자유부인’, 김주영의 ‘객주’ 등 연재소설들은 한국문학사의 자양분이 되었다. 또 한글판 서울신문 발간과 한글전용 단행, 최초의 시사종합 월간지인 ‘신천지’와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 등을 창간하며 한국 언론역사에 다양성을 부여했다.1904년 창간 이후 격동의 한 세기를 넘기며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보, 서울신문이 우리 근현대 문화사에 남긴 족적과 의미를 살펴본다. 매일신보는 광복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란 굴레를 벗고 민족의 공기(公器) 서울신문으로 거듭태어나게 된다. 한국 전쟁 발발전까지 특히 눈에 띄는 행보는 ‘신천지’와 ‘주간서울’ 창간이다. 훗날 한국 잡지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로 남게 되는 신천지는 서울신문과 짝을 이루는 월간 종합시사지로 1946년 2월 창간됐다. 신천지는 창간이래 좌우익 논쟁과 정부수립을 전후한 혼란기에서 6·25 및 휴전 이후에 이르기까지 만 9년동안 통권 68호를 기록했다. 광복 후 6개월동안 100여종의 잡지가 쏟아져나왔으나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거나 기껏해야 5호를 넘기기 어려웠던 당시에 신천지는 ‘잡지 전장(戰場)의 유일한 생존자’로 불렸다. 신천지가 선택한 국판 크기는 뒷날 우리나라 월간지의 대표적 판형이 되며,200여쪽에 이르는 분량도 100쪽 안팎의 다른 잡지를 압도했다. 1948년 10월엔 국내 최초의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을 창간했다. 빈약한 타블로이드 판형의 지면에 정치 기사 일변도였던 일간지들이 일반 독자의 수요를 고루 충족시켜주지 못하던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의 관심거리를 다루었던 주간서울은 창간 즉시 큰 인기를 모았다. 악화일로를 걷던 식량사정을 파헤친 ‘국민의 식생활은 안도되는가’, 반민특위 재판으로 서리를 맞은 육당과 춘원의 저서 회수 소동, 국내 음악계 동향과 각종 취미오락 등 각계 각층의 독자 취향을 염두에 두었다. 서울신문은 이후에도 연예주간지 시대를 연 ‘선데이서울’ 창간, 고급 지성지 ‘서울평론 창간’, 최초의 TV연예주간지 ‘TV가이드’, 계간 예술비평 전문지 ‘예술과 비평’ 등 대중과 고급을 아우르며 잡지 트렌드 메이커로서 역할을 해냈다. 잡지 발간과 함께 단행본 출판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광복과 전쟁의 혼란기 전단지 수준의 정치선전물이 주류를 이루었던 상황에서 서울신문 출판물은 단연 돋보였다. 신채호의 ‘단재저작집’과 ‘조선사’, 정인보의 ‘조선사연구’(상하)와 ‘오천년간 조선의 얼’, 홍기문의 ‘훈민정음 발달사’와 ‘조선문법연구’ 등이 대표적이며, 박은식의 역사서도 여러권 출판했다. 연재소설의 맥은 서울신문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다.1940년대의 암울한 생활고를 그린 주요섭의 ‘대학교수와 모리배’, 무능한 지식인 남편과 자유분방한 아내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그린 최상덕의 ‘새벽’ 등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54년 1월1일부터 8월6일까지 연재됐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전무후무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완고한 학자 남편과 가정에 권태를 느껴 뭇남성들과 다방, 댄스홀을 드나드는 여주인공의 대담한 행태는 장안의 화제로 번져갔고, 자유부인이란 단어는 곧 바람난 주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회적 파장도 컸다. 특히 교수사회가 발끈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는 대학신문에 ‘작가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우자 작가는 서울신문을 통해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황 교수 또한 서울신문 기고를 통해 재반박했다. 서울신문은 논쟁의 당사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황 교수의 재반박 기고를 실어 독자들과 문화계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홍순엽 변호사의 ‘자유부인 작가를 변호함’이란 글, 문학평론가 백철의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자유부인 논의와 관련하여’란 평론이 나오는 등 ‘자유부인’발 문화적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까지 연재한 김주영의 ‘객주’는 서울신문 최장기 연재소설로 ‘자유부인’이래 가장 많은 독자를 모았다. 이 소설은 신문소설사뿐 아니라 한국 문단에 있어서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후기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보부상을 비롯한 백정·기생·천민의 사랑과 애환이 장강처럼 굽이쳐 흐르는 소설이다. 문학 분야와 함께 서울신문이 특히 높은 비중을 두었던 게 한글문화 보급이었다.1956년 10월18일 나온 ‘한글판 서울신문’은 언론사 및 국어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기존의 서울신문과 병행, 석간으로 선보인 한글 전용 지면은 외솔 최현배를 중심으로 한 한글학계는 물론 독자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한글신문 탄생의 기쁨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글판 신문을 별도로 발행했던 서울신문은 1968년 11월22일 전지면의 한글 전용을 단행했다. 국내 일간지로는 유일한 한글 전용이었다. 이후 1970년 1월1일 ‘온국민이 모든 분야에서 한글만 쓰도록 하라’는 대통령 담화가 발표되었고, 국한문 혼용체와 문어체를 고수하던 각 신문사도 한글 전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신문협회도 한글 전용을 위한 연구기구를 설치, 운영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신문은 신문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한글문화 보급과 정착에 촉매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경북도 ‘뉴-새마을운동’ 깃발

    ‘뉴-새마을운동, 어게인(again) 100년’ 새마을운동 발상지이자 중흥지인 경북도가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차원의 새마을운동을 국·내외에 확산시키기로 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3일 경북도에 따르면 새마을운동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국제 영향력 강화 등을 위해 ‘뉴-새마을운동’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도는 이달 중에 대구·경북지역 지역개발·새마을 관련 대학교수 10명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한 뒤 향후 새사회 100년을 이끌어 나갈 ‘뉴-새마을운동’ 이론 및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도는 올해 하반기 중 이 사업의 실천 방안 등이 마련되는 대로 도내 23개 시·군과 새마을지회를 중심으로 본격 확산시킬 계획이다. 또 중국을 비롯한 캄보디아ㆍ베트남 등 동남아 개발 도상국가에도 적극 보급할 계획이다. 이들 개발국가에는 우리의 지난 70,80년대 새마을운동 방식도 곁들여진다. 새마을운동의 수출을 위해 외국의 새마을연수생 유치도 적극 추진한다. 도는 우선 오는 18일부터 10일간 베트남 타이응우옌성 공무원과 마을 지도자 등 20명을 초청해 새마을교육을 실시한다.9월부터는 중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연수도 계획돼 있다. 이를 위해 도는 최근 경북에서 유일하게 새마을연구소를 두고 있는 경운대(총장 김향자)와 ‘새마을 교육업무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 이와 함께 관·학 협동으로 지역 대학생들을 동남아 개발국가들에 파견, 새마을정신 교육과 마을환경 정비·위생지도 등의 자원봉사 활동에 나서도록 할 계획이다. 또 도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부 1500여명을 상대로 새마을교육을 실시해 새마을지도자로 육성할 방침이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ㅇ.kr
  • [서울의 문화재(15)] 신익희 선생의 옛집

    [서울의 문화재(15)] 신익희 선생의 옛집

    지난 7일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고 광복 뒤 우리나라 헌법 제정에 큰 기여를 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옛집을 찾았다. 종로구 효자동 164의2에 위치한, 지난해 2월 서울시 기념물 23호로 지정된 이 집은 신익희 선생이 1954년 8월부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호남 지역 유세를 가던 중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1956년 5월5일까지 거주하던 곳이다. 서울시는 제헌절이 있는 7월을 맞아 신익희 선생의 옛집을 이달의 문화재로 선정했다. 떠나기 전 서울시 문화재과에 전화해 길을 물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빈 집이다. 앞으로 잘 꾸미겠다.”고 답했다.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떠났다. 해공이 살던 집은 1930년대 평범한 도시형 가옥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 연결통로가 있고 안채는‘ㄷ’자형이다. 기둥엔 신익희 선생이 쓴 주련이 50년 넘게 달려 있다. 미닫이문을 여니 안채엔 방 4개가 있고 각각 ‘유물과 동상’‘독립운동가 신익희’‘정치인 신익희’‘서거, 추모 물결’이란 주제로 사진들이 전시돼 예상과 달리 해공의 일생을 단번에 볼 수 있었다. 이는 해공 서거 뒤 반 평생 ‘신익희선생 기념 사업회’에서 활동한 이용곤(75·11대 국회의원) 회장의 숨은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큰 숲처럼 넓은 해공의 마음 이날 만난 이용곤 회장은 1955년부터 민주당 조직부 간사로 신익희 선생을 6개월 동안 직접 모셨다. 간사로 직접 여러 차례 보고를 했다고 한다. 그는 해공과 와세다 대학 동창인 황석우 국민대학교 교수의 추천으로 해공과 함께 일했다. 그와 황 교수는 사제지간이다. 그는 “시골 촌놈인 날 믿고 써 준 해공 선생 덕분에 정치에 입문해 국회의원도 했다.”면서 “그분한테 진 신세를 갚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신익희 선생의 됨됨이를 상세히 들려주었다. 4·19의거 때의 총상 후유증으로 다리를 저는 그는 지팡이를 짚으며 해공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해공을 ‘거목’‘태산’이라 한다. 하지만 난 ‘큰 숲’이라 본다. 숲엔 아름다운 꽃은 물론 포악한 짐승, 독을 품은 해충도 있다. 그는 이를 모두 포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일화를 소개했다.“신익희 선생을 모략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쌀 한 가마를 주며 ‘나 욕한다는데 고생 많다. 가족 부양도 힘써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자신을 모함하는 사람에 대해 “왕도 자리에 없으면 사람들이 욕하는데 그럴 수 있다.”고 웃었다고 한다. 해공의 정적 중엔 그의 성품에 반해 해공의 사람이 된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그를 두고 일부에선 “그의 주변엔 공산주의자 출신도 있다.”“그는 아무나 좋아하는 팔방미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해공이 중국에서 왔을 때 미군이 고생했다고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장이 살던 집을 주자, 그는 ‘난 일본인이 살던 집 받으려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다.’면서 버럭 화를 냈다.”면서 ‘단호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그는 국회의장 시절 공관에서 머물던 때를 빼면 평생 하숙을 하다 1953년 이름을 알 수 없는 독지가로부터 이 집을 받았고 이것이 그의 명의로 된 최초의 집이었다. ●이완용 후손이 살던 집 이 회장은 1980년부터 이 집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신익희 선생 밑에서 함께 일했던 민한당 총재 유치송(작고)에게 최모씨가 찾아와 “신익희 선생의 옛집을 사주겠다.”고 했다. 이 회장은 “받아주자.”고 했지만 유 총재는 “공천을 받기 위한 술수일 수 있다.”면서 거절했다. 그 뒤 2003년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해공이 살던 집을 샀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문화재 등록을 위한 증빙자료를 요구하자 3일 동안 효자동사무소에서 모두 11권 정도 되는 1950년대 동적부를 모두 뒤져 해공의 이름을 찾았다. 그는 이 집을 사기 직전 살던 사람은 이완용의 후손 이모씨라고 전했다. 이 회장이 이씨와 만난 자리에서 “집을 꼭 사야 한다.”고 부탁하자, 이씨는 “난 이완용의 후손이다. 해공의 집에서 사는 게 평소 죄스러웠다. 팔겠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포용력 있는 정치인 나오길 요즘도 그는 가끔 정치인으로부터 “해공의 대인관계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요즘 정치인은 그의 포용력을 닮아야 한다.”면서 “현재 해공 같은 인물이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떠나기 전 양극으로 치닫는 요즘 정치인들이 반대 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해공의 포용력을 닮길 기대해 보았다. 만일 해공 같은 지도자가 나오면 국민의 삶이 훨씬 편해질 것 같다. 그들은 민초들이 해공 같은 지도자를 원하다는 걸 왜 모를까? 글 사진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20분) 오는 9월에 열리는 고양국제어린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영화배우 장미희와 함께 영화제 의미와 준비사항을 알아본다. 한 때 은막의 스타였던 장미희는 대학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면서 여러 분야에서 폭넓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스크린쿼터에 대한 견해와 우리나라 영화계가 나아갈 방향 등을 들어본다.   ●아시아의 교육(EBS 오후 11시20분) 길거리의 걸인과 혼자 사는 노인에게 관심을 가져 그들의 끼니와 안전을 보살피는 샹게이와 친구들. 그리고 미래에 ‘교육받은 농부’가 되어 자연의 귀중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는 잠초. 부탄의 왕뒤 소학교에서 만난 이들의 꿈은 소박하지만, 그 꿈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마음은 누구보다 넉넉하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15분) 8살 경석이는 오늘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하루 종일 비디오만 보고 있다. 장난감 바퀴만 돌리는 7살 아이. 길을 가다가도 자동차 바퀴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처럼 영유아 교육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비디오증후군’과 ‘장난감증후군’등의 실태를 추적, 올바른 영유아 교육의 방향과 대안을 살펴본다.   ●어느 멋진 날(MBC 오후 9시55분) 건은 하늘이 태원의 친동생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어 충격에 휩싸인 채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운전한다. 하늘은 아무 연락없이 출근하지 않는 동하를 찾아 나선다. 호숫가에 쓸쓸히 앉아 있던 동하는 하늘이 다가오자 깜짝 놀라고, 하늘은 동하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추적 60분(KBS2 오후 11시5분) 아시아를 매혹시킨 국가 브랜드 파워의 새로운 아이콘, 한류. 지난해 그 열풍을 타고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60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질 낮은 국내 저가 관광 때문에 그 열풍이 사그라질 위험에 처했다. 한국관광의 어떤 모습이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동경을 깨버린 것일까?   ●열아홉 순정(KBS1 오후 8시25분) 윤정을 찾아낸 명혜는 모든 것이 다 자기 잘못이라고 울부짖는다. 약혼준비를 하는 신형은 무슨 일에든 시큰둥한 윤후가 섭섭기만 하다. 홍영감은 온종일 엄지분식에서 흐르는 풍구의 노래를 듣기 힘들어한다. 순구의 백일탈상을 앞두고 심란해하는 국화에게 우경은 이제 그만 삼촌을 잊으라고 말한다.
  • [옴부즈맨 칼럼] ‘정밀보도’가 필요한 이유/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월드컵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한 요즈음 그러나 필자가 가장 충격을 받은 서울신문의 기사는 ‘미 유학생의 절반이 마약경험이 있다.’는 증언을 한 한영호 목사의 인터뷰 기사다.‘마약퇴치의 날’을 맞아 서울신문이 이례적으로 6월26일 1면 머릿기사로 올려놓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청소년 마약중독자 재활센터인 ‘나눔선교회’를 운영하는 한목사의 인터뷰는 그만큼 놀랍고 염려스럽다. 하긴 클린턴 전 대통령조차도 대학시절에 대마초를 ‘피우기는 하였지만, 들여마시지는 않았다.’고 할 정도이니 미국의 마약남용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그렇더라도 유학생의 절반이 마약을 경험하고, 재미교포 2세는 70% 이상이 마약을 경험한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행여 미국에 자녀를 보낸 기러기 부모라면 그러한 걱정과 염려는 필자가 느끼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인터뷰 당사자의 상담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러한 수치에 대한 정확한 소스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인터뷰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한 목사의 발언만을 인용하였고 다른 소스나 통계수치를 확인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우선 가장 최근 자료인 2005년 청소년과 대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한 ‘미래를 모니터링한다(Monitoring the Future)’는 제목의 ‘전미마약복용실태조사’를 살펴보자. 우리의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 학생이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불법마약을 경험한 비율은 2005년도에 50.4%이다. 이 수치는 한목사가 언급한 ‘절반이상이 마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는 것’과 일견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12학년 학생 중 지난 1년간 마약을 복용한 학생의 비율은 38.4%이고 한 달 사이에 복용한 비율은 23.1%로 떨어진다. 비슷한 시점에 남자 대학생의 연간 마약경험률은 40.0%이고 여대생의 경우 이 비율은 35.3%이다. 한 목사가 활동하는 지역이 대도시인 로스앤젤레스라는 점을 고려할 수는 있으나 한국계 소수민족의 마약복용률이 백인이나 흑인의 평균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마약복용률은 여전히 심각할 정도로 높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미 유학생 절반 마약경험’이라는 제목과 ‘재미교포 청소년의 70% 이상이 마약 경험이 있다.’는 증언과는 차이가 난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주제에 관한 기사를 작성할 경우에는 설령 인터뷰 기사라 하더라도 정확한 사실의 확인과 전달이 원칙이다.LA지역의 재미교포나 유학생의 마약남용실태에 대한 좀더 정확한 데이터를 인용하기 위하여 현지의 대학교수나 주정부, 시정부의 담당자에게 확인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교회도 아이들이 마약을 접하는 대표적인 장소다.’는 기사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현지의 교회관계자의 의견을 구했더라면 기사의 신빙성이 더했을 것이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탐사보도의 경우 동일한 사안을 복수의 취재원에게 확인하는 취재와 보도의 원칙을 지키고 정확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다. 인터넷시대에 신문 보도의 방향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는 탐사보도와 그러한 이슈에 대한 사회적 고발뿐 아니라 사회적 해결방안도 같이 제시하는 공공저널리즘(public journalism),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과학적인 방법과 데이터를 활용하여 이슈와 쟁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정밀보도, 이 세가지가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고교 평준화 이전과 이후의 고시출신 공직자의 분포에 대한 6월27일자 1면 머릿기사나 작년에 급식 식중독사고가 발생한 19개 학교의 사후조치를 파고 들어간 6월29일자 1면 기사는 기사 내용도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없는 ‘특종감’으로 ‘탐사보도’와 ‘정밀보도’,‘공공저널리즘’의 세 가지 요소를 골고루 갖춘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 大法 “주민상대 대입설명회 선거법 위반”

    대법원 2부(주심 이강국 대법관)는 7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압두고 지역구민을 상대로 입시설명회를 여는 등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모 대학교수 김모(50)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대입면접특강과 대입설명회를 개최한 것은 시기, 동기, 행사 대상자 등에 비춰 상대방에 비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또 “행사 중 선거에 대한 언급이나 피고인에 대한 홍보가 없었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며 만약 선거에 관한 언급이나 홍보가 있었다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정도를 넘어 직접적인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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