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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5일장의 효시는 성종 초에 전라도 무안과 나주에서부터였다. 오랜 재해를 견디지 못했던 적탈민들이 집에 있던 곡식과 채소를 비석거리에 가지고 나와 필요한 물건과 바꾸어 연명하기 시작하면서 장시를 이루게 되었고, 여러 세궁민들이 그에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폐농하고 장거리로 나선 도부꾼들의 수효도 늘어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저자가 번성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저자가 번성하면 농투성이들이 문전옥답을 버리고 모두 장시로 몰릴 것이고, 더불어 시겟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널뛰듯 해 무뢰배와 사기꾼 들이 횡행하여 풍속이 더럽혀질 것이었다. 농사라는 것은, 몸은 땀으로 절고, 손발은 흙과 똥으로 범벅이 되기 마련이었다. 비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벌레 잡기에 잠깐의 말미를 내어 쉴 수도 없어 고단하기 그지없다. 밭뙈기 크기에 따라 부역을 감당해야 하므로 그 괴로움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장사치들은 농간을 부려 보잘것없는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존귀한 것으로 바꾸고는 그 이익을 챙겨 혼자서 방긋 웃고, 모리를 취하고도 시치미를 딱 잡아뗀다. 이를테면, 백동(白銅)을 가리켜 은(銀)이라 속이고, 염소 뿔을 내밀고 대모(玳瑁)라 하고 개가죽을 담비 가죽으로 꾸며 억매흥정으로 몰아붙인다. 어느 눈썰미 있는 자가 그 속임수를 적발하면 도리어 부아통을 터뜨리며 멱살을 뒤틀어잡고 협잡꾼이 나타났다 고함을 지른다. 그러면, 근처에서 장꾼 행세하며 배회하던 패거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애매한 사람을 개 잡듯 두드린다. 그런가 하면, 장시에는 들치기, 날치기, 소매치기는 물론이고 온갖 구메 도적이 난무한다. 어리석은 농투성이가 집에서 치던 닭 한 마리를 들고 나와 흥정을 할라치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떠꺼머리총각이란 놈이 불쑥 나타나 닭을 가로챈다. 농투성이가 뒤따라가면 쫓기는 놈은 고샅길 속으로 몸을 숨기고 쏜살같이 달아난다. 요행으로 뒤따라잡아 뒷덜미를 낚아챌 만하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 다른 사내가 농투성이 앞을 엎어지듯 가로막으며 방구리 사려 채독 사려 하고 외치며 훼방을 놓아 종국에는 뒤쫓던 놈을 놓치게 만든다. 그들은 농투성이들처럼 배당된 부역도 없어 한껏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농사짓는 사람은 그 수효가 나날이 줄어들어, 한 사람이 경작하여 열 사람이 배를 채우니 나라의 창고는 늙은이 뱃가죽처럼 쭈그러들고 말았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은 그래서 한낱 허언에 불과하게 되었다. 지방 군수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고 조정에 장계를 올려 저잣거리의 작폐를 저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조정에서 이를 엄중히 단속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수수방관하는 사이에 저자의 규모는 점점 커져 활기를 띠었고, 종사하는 행상인들의 수효 역시 불어나 세력화되었다. 조정에서는 할 수 없이 한 달에 두 번의 장문이 열리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다 그 다음에는 열흘의 터울로, 나중에는 닷새마다 저자가 열리도록 묵인하게 되었다. 이튿날이었다. 신새벽에 일어나 발행을 서두르던 일행은 예상치 못했던 악천후와 마주쳤다.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난밤 잠들 때까지 날씨가 여전히 차갑긴 했어도 구름 낀 하늘은 아니었다. 비라도 내릴 양이면, 행중 식구들 중 대여섯쯤이 어깨나 허리가 결린다거나 굴뚝 연기가 낮게 깔리는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전혀 그런 징조가 없었는데, 느닷없이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진눈깨비가 푹푹 내려붓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허, 좋기만 하던 날씨가 행장 꾸리자마자, 웬 심통이여.” “비알진 벼랑길에 나동그라져 다리나 작신 부러뜨리지 않으려면 감발치고 들메끈들 단단히 조여매시요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중에는 객지를 말똥같이 굴러다녀도 떠나온 고향을 꿈에도 잊지 않으려고 배고령(裵高靈), 최상주(崔尙州), 장안동(張安東), 박원산(朴元山), 권영동(權永同)같이 자신의 태생지를 이름으로 부르는 행중도 없지 않았으나, 곽개천만은 소년 시절에 만났던 포수가 지어준 이름으로 행세하였다. 행수와 곽개천이 겨끔내기로 주고받는 말을 행중은 그다지 귀여겨듣지 않고 술추렴에만 이마를 곤두박고 있었다. 귀틀집 풀막 지붕을 핧고 지나는 해질녘의 바람 소리가 울적할수록 뱃속은 더욱 허전하여 숨바꿈으로 술 사발을 돌리고 있었다. 만기가 지어준 새웅밥으로 얼추 끼니를 때운 정한조는 이웃 숫막에 사처 잡은 조기출을 찾아갔다. 그는 아직 선비 시절 때를 벗지 못해서 자리를 잡고 좌정하였다하면 행탁에 넣고 다니는 필사본을 꺼내 읽곤 하였다. 정한조가 쪽문 바라지를 열고 봉노로 들어서자, 그는 끝동이 너덜너덜하게 해진 저고리를 얼른 수습하면서 정한조에게 아랫목을 내주고 한쪽으로 썩 비켜 앉았다. 손위 손아래의 경계를 구분하는 처신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저녁 요기는 하였소?”  “조밥에 소금국으로 얼추 허기증은 모면했습니다. 마땅한 찬반이 없어 쩔쩔매는 늙은 주모를 보다 못한 행중 식구들이 산에 올라가 눈 속을 헤치고 이제 막 움이 돋는 수리취나 참취 같은 나물을 뜯어 삶아 소금물에 찍어먹은 게 고작이었습니다.”  “이번 행로에는 안동, 상주 거쳐서 상무사 임소가 있는 고령까지 갔다가 회정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면 얼추 달포는 걸리겠습니다. 행중이 모두 동행입니까?”  건어물 행상들은 보통 흥부장에서 발행하여 말래를 거쳐 샛재를 지나고 곧은재 아래에 있는 검은돌 마을이나 현동 저자, 그리고 내성장에서 물화를 처분하고 회정하는데 보통 팔구 일이 걸렸다. 그들 행중에는 울진 포구 근처에 가솔을 거느린 행상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대여섯은 현동저자나 내성에서 회정할 것입니다.”  “고령까지 다녀오자면 이래저래 달포가 지나야 할 텐데, 그때쯤이면 십이령에도 봄빛이 완연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드릅이나 고비나물 삽주나물이 비석거리에 지천이겠지요. 이번 행보에는 우리 행중과 내성까지 동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별일은 없습니다만, 나귀들도 있고 해동머리라서 비알진 길을 건너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우린 먼동 트기 전에 발행하려 하였습니다.”  “동행으로 고개를 넘읍시다.”  그런 제안을 받기는 오랜만이었으나 그럴만한 내막이 없지 않겠기로 그리하자고 승낙을 하였다. 그렇다면 당장 내일 샛재에서 발행하는 상단의 수효가 20여 명을 헤아릴 것이었다.  “초행일 텐데, 내륙의 저잣거리를 섭렵하다보면, 무뢰배들이나 협잡꾼들과 여러 번 마주칠 것입니다. 그들은 여간한 행내기들이 아닙니다. 삭은 바자에 노란 개 주둥이라고 말참견 잘하는 놈에 농간만을 일삼는 놈들을 만나 맹랑한 지경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피가 뜨겁고 세력이 다부지다 한들 그 패거리들을 따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니,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장시의 폐단이 나날이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멀리까지 가서 기러기가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일행을 닦달하시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러기가 되어: 손해보지 말라는 뜻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 땡추가 주모가 수절 과부라는 것을 진작 눈치채고 언젠가 소리개 뱁새 덮치듯 날탕으로 삼키려고 주막거리 어름을 정탐하려 들렀는지도 모르지 않겠소.” 월천댁이 입귀를 치켜들고 흔들비쭉하더니, 정한조의 농을 되받아쳤다. “쥐똥 같은 소리 그만하시지요. 개짐 벗어던진 게 까마득한 옛날이네요. 군동내 나는 육고기 탐하는 스님이 있단 소리는 못 들어봤습니다.” “혹간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괴나리봇짐조차 가진 게 없었다면 그게 사칭하는 무뢰배나 난봉꾼 아니겠소.” 정한조는 농으로 얼버무리고 봉노로 들고 말았다. 행중이 한결같이 땀에 절은 짚신과 행전을 풀어 횟대와 시렁에 걸어 말리고 있었다. 몽근 짐들을 지고 벼랑 중턱을 까낸 고개치 길만 걸었으니 두께살이 앉은 어깨는 좀 쑤실까만, 먼길 행보 만리 행역도 대수롭지 않은 듯 술방구리 하나와 두루거리 밥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곤댓질들 해가며 시답잖은 농들을 건네고 있었다. 원상들이건 차인꾼들이건 미장가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여럿이 모여 앉아도 상투 튼 위인들은 한두 사람 정도이고 대부분이 머리를 땋아내린 엄지머리들이거나 외자상투였다. 정한조만 하더라도 상투를 틀고 있었으나 나이든 거간들을 상종해야 할 처지여서 외자로 튼 상투였다. 행중이 방안에서 시구문 차례로 술사발을 돌리고 있거나 목침 차지하기 투전 놀음을 하고 있는 사이 만기는 양식 전대를 풀어 울바자 밑에 새옹을 걸어놓고 쭈그리고 앉아 밥을 짓고 있었다. 숫막에서 내놓는 요깃거리란 끽해야 장떡이나 도토리묵이어서 그것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됐기 때문에 뱃구레가 큰 축들은 새옹으로 지은 밥을 안다미로 퍼서 배를 채워야 든든했다. 봉노에 있는 동무들 가운데 행수 정한조가 소금섬을 물로 끌라면 군소리 한마디 없이 끌고 갈 만치 매사에 행수를 따르는 곽개천(郭介天)이 방 귀퉁이에 끼어 앉아 부들자리 위에 산가지를 널어놓고 무슨 셈을 하다 말고 행수를 힐끗 쳐다보며 풀쑥 질렀다. “성님 왜 그러십니까.” “혼자 사는 까막과부 하소연이나 들었네.” “얼른 보아도 하소연이 아니던데요?” “눈치 하구선… 우리 행중 등 뒤를 개호주 한 마리가 줄곧 미행하고 있으니 호식을 당하기 전에 방비하란 말이더군.” “개호주도 영물이라 적선한 사람에겐 얼씬도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여기서 내성장까지 갔다가 회정하자면 140리 내왕길을 일순*이 넘도록 눈보라에 시달림을 받아야 할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개치 길마다 개호주와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면, 그 또한 곡경이 아니겠나.” “만기가 밥을 짓고 있으니 요기는 나중에 하시고 우선 목이나 축이시지요.” 곽개천의 태생은 빛내골 산골이라 하였으나 소년 시절부터 말래 숫막거리에 진출하여 퇴개꾼*이건 중노미 노릇이건 닥치는 대로 연명하며 잔뼈가 굵었다. 일찍이 조실부모해서 서발막대 휘둘러보았자 거칠 것이 없는 사고무친이었기 때문이었다. 중노미 노릇으로 남의 대궁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소년 시절을 보내는 중에, 백두대간을 발서슴하며 풍상을 겪는 늙은 포수의 곁꾼이 되었다. 그 포수가 어느 해 한겨울 노루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멧돼지에게 뱃구레가 찢겨 죽고 난 뒤, 그 화승총을 차지하고 명색 소년 포수로 연명하다가 말래 접소에서 정한조를 만나 상단의 차인꾼으로 입문하여 원상이 된 사람이었다. 역시 미장가였으나 장시에 가면 눈치가 멀쩡한 거간들과의 흥정에 밀리지 않으려고 외자 상투로 행세하였다. 늙은 포수를 따라 백두대간의 비알지고 험악한 기슭을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했으므로 십이령 내왕길쯤은 눈감고도 넘을 만큼 이력이 나 있었다. 십이령길 말고도 그만 알고 있는 지름길이 여럿이어서 부상들 가운데서는 그가 축지를 한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일순: 열흘 *퇴개꾼: 구운 숯을 운반하는 짐꾼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아니 술어미… 우선 행리부터 풀고 봅시다. 나귀들도 작도간(斫刀間)에 들여 매야지요.” “나귀들 수발이야 수하 행중이나 차인꾼 들이 잘 돌보지 않겠습니까. 걱정 붙들어매시고 여기 앉아보시지요.” “시생이 본래부터 물색에는 뜻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소매를 당기는 게 아닙니다. 어디 켕기는 구석이 있소?” 봉당 쪽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행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평소 거동에 흐트러짐이 없었던 월천댁이 조급하게 구는 것이 적잖이 의아했다. “그날 병구완했던 사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행중 사람이 되돌아와서 말래 숫막촌까지 업어간다기에 그냥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만.” “지금 말래 도방에서 구완을 받고 있소. 다리가 부러져서 온전히 걷자면 달포는 꼼짝 못 하고 구완을 받아야 할 것이오.” “그런데 그 사람의 행방을 눈이 시뻘게져서 수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월천댁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지 상반신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군불을 때다가 별안간 밖으로 뛰어나온 것을 깨닫고 다시 정주간으로 달려가서 잉걸불을 수습하고 나왔다. 소생인 구월이나 늙은 중노미는 이웃에 방아품을 팔러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누구였소?” 곁에서 누가 엿듣는 사람도 없건만 월천댁은 행수에게 귀엣말을 하였다. 행수가 더욱 의아하여 되물었다. “탁발하는 운수였단 말이오? 나물 먹고 푸른 똥 싸는 절간 중놈이 비석거리에는 무슨 소간사가 있어 나타났단 말이오?” 월천댁이 소스라쳐 행수 정한조의 무릎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에그… 그 목소리 좀 낮추시오. 누가 듣겠습니다.” “행색이 어땠소? 주모더러 살보시하라고 눈알을 부라립디까?” “에그머니나… 그런 음탕한 소리 그만둬요…. 스님이란 사람이 목자가 온화하지 못했지요. 목탁은 두드리고 있었지만, 힐끗 보아도 두 눈이 얼음에 자빠진 쇠눈깔처럼 번들거려서 소름이 끼칩디다. 염불을 외우면서도 눈자위를 가만두지 않고 정주간이며 봉노를 서캐 잡듯 뒤집디다. 누굴 찾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소매를 내저으면서도 집 앞뒤를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요. 쇤네가 도대체 누굴 찾느냐고 파고들었더니 그제사 요지간에 벼랑길에서 실족한 사내가 혹시 이 숫막에서 묵어간 적이 있느냐고 묻습디다. 나이가 이팔인 딸 소생을 둔 어미 심정이 어떠한지 짐작하시겠지요? 중이든 속이든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가슴부터 두근거린답니다.” “그래서?”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만, 스님의 목자가 하도 불량해 보이고 제가 안다 하고 섣불리 입을 나불댔다간 큰 동티라도 입을 것 같아 우리집에서는 잔술이나 팔지 객주는 치지 않는다하고 둘러대며 모르쇠로 딱 잡아떼고 말았지요. 정말 모르느냐고 되반들거리는 낯짝을 모잽이로 쳐들고 하냥다짐을 하는데, 데면데면하게 굴었다간 당장 이웃을 불러 무릎맞춤이라도 할 것 같아 쇤네 등골이 오싹합디다. 그 유들유들한 스님이 내 속내를 속속들이 꿰고 있을 것 같아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디다. 외정도 없는 집에 계집사람 혼자서 과년한 여식을 두고 숫막을 경영한답시고 천방지축 요량없이 날뛰다가 언제 된불을 맞게 될지 조마조마하답니다. 언제 어떤 곡경을 치를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이웃에 방아 품앗이 간다고 핑계대고 다른 데로 가보라고 방색하고 말았습니다만, 다시 찾아와서 지분거리면 그땐 또 뭐라고 둘러댈지 생각이 올지갈지 하답니다.” “봄 얼음 건너듯 언행에 조심만 한다면 별 탈 있을라구…. 그 땡추는 어디로 갔을까?” “방색하고 나서 힐끗힐끗 훔쳐보았더니 저진터재 쪽으로 휑하니 되돌아갑디다.” “저진터재라면 내성 쪽이 아니오?” “그야 알 수 없지요.” “바랑은 지고 있었소?” “이제 보니 그렇네요. 탁발한다는 스님이 짊어진 바랑도 보이지 않습디다.” “속담에… 배를 타는 손님 중에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십중팔구 무뢰배라 했습니다. 궐자가 중의 가사를 입고 있었으나 본색은 부랑배였을 거요.” 정한조는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십이령을 넘나드는 원상들 중에는 정한조가 행수 노릇하고 있는 소금장수 행수 상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곽전(藿田)에서 매수한 미역이나 건어물을 지고 십이령을 넘는 건어물 상단이 있었는데, 15~16명을 헤아리는 그 상단의 행수는 울진 토박이로 조기출(趙基出)이란 사람이었다. 그 역시 사십대 중반의 나이로 정한조와 같은 접소의 공원이었다. 울진 봉화 보부상 관할 지역은 대개 삼척부 울진현의 흥부장과 매야장, 안동부 내성현(奈城縣)의 내성장과 현동장, 장동장을 손꼽았다. 조기출을 행수로 하는 건어물 상대는 이들 장시에서 고포 미역과 김 그리고 건어물로 거래를 트고 있었다. 조기출은 원래 명색이 책상물림으로 궁반 출신이었다. 그는 임오년에 있었던 군란 이후에 반명을 하는 선비들도 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 후부터 과감히 투필하고 늦깎이로 원상의 신표를 받았다. 수하에 거느린 행중들 역시 가근방 출신들이 많았다. 선비 출신답게 길미를 노리는 수완이 출중하고 시세를 읽는 안목도 탁월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허우대는 책상물림답게 금방 씻은 배추같이 멀쑥하게 생겼으나, 괴이하게도 목소리는 왕방울로 퉁노구를 가시는 듯 요란스럽고 시끄러워 듣기에 거북했다. 원래는 언사가 순박하고 조근조근했으나 장시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대접받는다는 어떤 쓸개 빠진 구실아치의 조언을 듣고 그를 좇은 까닭이었다. 글줄깨나 읽은 이력이 있어 원상들이 관아에서 쟁송이라도 생기면 앞장서길 인색하지 않았으나, 장시의 우락부락한 무뢰배들과 대치라도 할라치면 일찌감치 가위가 질려 대차게 헤집고 나가는 담대함이 모자랐다. 아직 큰 풍상을 겪지 못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술도 배움술이라 많이 먹어야 두 잔이었다. 그도 임방에선 공원의 직책을 얻어 행세하지만 곧잘 도감인 정한조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성품도 무던해서 행중 식구들로부터 걸핏하면 양반 행티 너무 마시라는 핀잔을 들었지만,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좀먹은 탕건에 책상다리하고 뼈빠지게 글을 읽어도 오직 허황될 뿐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던 궁반 시절과 견주어 보면, 만리 행역 눈보라에 부대껴 육신은 더없이 고단하지만, 마음은 편해서 일찌감치 신표를 얻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임오년 난리 이듬해인 계미년(1883년)부터 조정에서는 경상, 전라, 강원, 함경도 연안의 조업권을 일본에 허가해 버렸다. 그런 연유로 연안 어업이 위축되고부터 덩달아 건어물의 수확도 줄어들었다. 생업을 걸었던 상대들도 하나둘 내륙의 상대로 이탈하고 말았다. 야거리배만으로는 종선까지 몰고 다니는 일본 선단의 위세당당한 조업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해촌의 어부들은 끽해야 팔을 뻗으면 손이 육지에 닿을 것 같은 연안을 맴돌면서 생선 몇 뭇* 낚아 말리거나, 곽전에서 수심곽*과 오들곽*을 걷어 내는 일에 생계를 의존했다. 고포리 해안선을 따라 10여 리에 형성된 바위 밭의 돌곽 미역은 얕은 수심에서 햇볕을 보고 자라 검푸른 색을 띠고 잡벌레가 없을뿐더러 국을 끓이면 그 향기가 온 방안에 퍼졌다. 동짓달에 시작해서 이듬해 4월 사이에 채취한 미역은 크기도 일반 미역이 따르지 못해 고려시대부터 진상품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1월부터 4월까지는 정어리나 청어, 오징어, 임연수어 같은 어종들이 잡혀 그나마 내륙으로 가져가면 길미가 쏠쏠하였다. 꼭두새벽에 말래 도방에서 발행한 소금 행상들이 샛재에 당도한 것은 산기슭에 서 있는 마른 자작나무 가지들이 우수수 설레는 그날 해거름 무렵이었다. 말래부터 바릿재를 넘어 샛재까지 노정에는 벼룻길과 잔도와 치받이길이 계속되었다. 때문에 발새 익은 길이라지만 욕심껏 걸어도 노정 줄이기가 수월치 않았다. 당도하고 보니 미역 짐과 건어물 짐을 진 조기출 행중들이 먼저 당도해서 맞은편 숫막의 봉노를 지키고 있었다. 숫막이 세 군데나 있어 20여 명의 행중이 한꺼번에 들이닥쳐도 봉노가 비좁은 경우는 없었다. 비좁다 하더라도 서로 빗장거리하듯 어슥버슥 누우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서로 막역한 사이인 두 떨거지들이 왁자하게 떠들어 대는 와중에, 정주간에서 뒤트레방석을 깔고 앉아 군불을 지피던 월천댁이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 상단 행중이 당도한 것을 얼른 알아채고 봉당 쪽마루에 널린 도깨그릇들을 서둘러 치우고 나서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뭇: 열 마리가 한 뭇. *수심곽: 잠녀들이 깊은 물에 들어가서 채취한 미역. *오들곽: 얕은 물에서 낫대로 건진 미역.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샛재로 되짚어 갔다는 만기 일행이 말래 도방으로 되돌아온 것은 술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월천댁은 병자의 부러진 다리에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지지대를 붙이고 감발로 싸 동여 놓았다. 만기 일행은 어찌나 황망히 길을 줄였던지 그 한절에도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하였다. 그들은 행수가 누울 아랫목 자리에 병자를 뉘었다. 월천댁의 알뜰한 구완에 병자는 얼추 기신을 차린 듯하였으나 어찌 된 셈인지 감긴 눈은 제출물로 뜨지 못했다. 얼굴이 죽장같이 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다시 옷깃을 차근차근 뒤져 보았으나 역시 본색을 알아차릴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동무하는 행중이 푸념하였다. “기필코 궐자의 본색을 알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정신 차리고 일어나면, 제 가던 길을 찾아가겠지요. 우리도 그만하면 도리를 할 만치 했지 않습니까.” “생선과 나그네는 사흘만 되면 냄새가 나는 법인데… 이 위인은 우리들이 업어 온 날짜만 되어도 사흘이나 되는데 도무지 본색을 모르겠네요.” “활인했으면 되었지, 구태여 본색은 알아서 뭣하겠나.” 모두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거드는 말을 가만히 듣던 행수가 손사래치며 나직하게 말했다. “구완했다는 생색내려 하지 말고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게 도리일세.” 부기가 얼추 가라앉아 어섯눈을 뜨고 묻는 말에 대꾸할 만하게 된 것은, 의원이 당도하여 꼬박 뜬눈으로 구완하며 밤을 새운 그 이튿날 해질 무렵이었다. “이제 기신을 차릴 만하오?” 병자는 알아들었다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십이령 비알진 기슭에서 노형을 발견하였소. 함자는 무엇이고 생업은 무엇으로 연명하오?” 위인이 내키지 않는 듯 한동안 대답을 주저하는 기색이더니 끙 하고 반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몸뚱이를 일으키고는 입을 열었다. “남행하는… 길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자 초행길이라 조바심 나서 용수 걸린 집을 찾아 천방지축으로 헤매던 중에 험구를 만나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비알진 기슭에서 어찌나 곤두박질하였던지. 정신이 올지갈지해서 다른 것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초행길이라 하더라도 어째서 이곳으로 노정을 고쳐 잡게 되었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습니다… 신세를 졌습니다. 필경 길송장이 되어 개호주에게 물어뜯기거나 까마귀밥이 될 초개 같은 목숨을 성의를 바쳐 활인하여 주셨으니 그 은공 평생 잊지 않으리다….” “낯을 내자고 활인한 것은 아니오만, 입성이며 온몸에 어혈 자국이 낭자하니, 노형의 처지가 범상치 않음이오. 몸에서 누린내까지 나는 걸 보면 실족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싸다듬이로 된불조차 맞은 듯한데, 산속 길을 헤매던 중에 적변을 당했거나, 악소 패거리들을 만나 대판 시비가 붙었던 것은 아니오?” “….” “우리들은 울진 포구에서 검은 돌 마을 거쳐 현동 저자나 내성으로 가는 십이령길을 수시로 넘나드는 원상들이오. 댁의 본색을 알려고 아득바득 파고드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이 십이령길에서 어떤 작폐가 일어나든, 그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할 처지가 아니겠소. 적변이 있었다면, 그 패당들을 소탕해야 할 것이고, 무뢰배들이 숨어 있다가 길손들을 등쳐 먹고 행리를 탈취한다면, 그 작폐 또한 저지시켜야 할 것입니다.” “시생은 원상도 아니고 농투성이도 아닙니다… 남도 쪽에 시생의 인척이 있어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도중에 이런 환난을 겪게 되었으나, 박이 터진 것처럼 도무지 기억이 희미할 뿐입니다.” 위인의 말투는 조근조근했으나 겪은 사연이란 내막이 허황되고 동에 닿지 않아 본색을 숨기려 한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굳이 기억에 없다고 모르쇠로 버틴다면, 더이상 파고들 빌미가 없었다. 박을 다쳐 기억상실이 되었다면, 사매질로 다스리지 못하는 이상 그대로 믿는 수밖에 용뺄 재간이 없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는 줄곧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말래 도방 거리에 당도해 보았자, 호들갑스럽게 맞이해줄 호박 갈보가 있다거나 갈롱을 떨며 육허기를 채워줄 동자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뜨끈뜨끈하게 군불을 지핀 구들장에 허리를 굽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더라고, 10냥짜리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얻게 된 것도 걸음을 빨리하게 만들었다. 그가 향도하는 행중 식구들은 흉·풍년에 따라서 들쭉날쭉하였지만 대개 4, 50여 명을 헤아렸다. 그 동사하는 식구들을 탈없이 영솔하기 위해선 어떤 경난에도 자신을 지체없이 던지는 희생이 필요했다. 소년 시절부터 행상들에게 익히 보아온 범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시에서 억매흥정으로 뜸베질하는 떠돌이 행상을 부상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징치하고, 신표 없이 부상 행세를 하며 눈먼 돈을 노리는 자들을 찾아내 장시에서 내쫓는 일도 모두 그가 앞장서서 해온 일이었다. 그랬기에 언문밖에 모르는 그가 내성 행상에서 도감의 직책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날씨는 차가워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으나 저녁거미가 내려올 무렵 그는 장대 끝에 내걸린 용수들이 바람에 시달리는 말래 숫막거리에 당도하였다. 거느린 식솔도 없고 정처도 없는 부상들이 묵을 처소라면 조선 팔도 어디서나 숫막뿐이었다. 이토록 스산하게 해질 무렵에는 필경 객회가 쓸쓸하기로, 가랑이 벌리고 앉아 지분이나 다스리는 동자치라도 있다면 먼발치에서 힐끗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심란함을 달랠 수 있으련만, 도방 봉노에는 고린내 등천하는 사내들만 우글거리고 있었다. 마침 문틈으로 조용조용 읊조리는 배고령(裵高靈)의 신세타령이 가만가만 새어나왔다. 주인 주인 나오소 좌사 손님 들어가오 서해안에 사는 사람 서로서로 형제인데 고을 백민끼리 남남 보듯 할 수 있소 산토끼가 죽어가면 여우도 슬퍼하네 금수도 그러한데 한심하다 우리 세상 무거운 등짐 지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아침에는 동녘 하늘 저녁에는 서녘 땅 어쩌다 병이 나면 구완할 이 전혀 없네 사람에게 짓밟히고 텃세한테 괄시 받고 언제나 숨겨두면 까마귀의 밥이 되고 슬프다 우리 인생 이럴 수가 어찌 있소 우리네 산다 한들 몇만 년을 살 것이오 한데 묶어 단결하고 기율로써 다스리면 형도 좋고 아우 좋고 서로서로 도울제면 동네방네 좋을시고 우리 고을 좋을시고…… 문 닫은 봉노에서 살담배들을 어찌나 피워댔는지 매캐한 연기가 샛재 잔허리에 아침 안개 끼듯 하였다. 봉노 한쪽에는 저녁거미 내리는 것을 보고 켜둔 산초 기름등잔이 타고 있었으나 담배 연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도 분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행수가 들어서자, 호박고누를 두고 있던 축들이나 술푼주를 가운데 놓고 추렴을 하던 동배간들이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두었던 술푼주와 섞박지 그릇을 치우고 윗목으로 썩 비켜 앉았다. 어슥버슥 누웠던 동무들도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았다. 봉노 안에는 쉰내와 고린내가 등천하여 코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였으나 그것을 가지고 고약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무 하나가 벌떡 일어나 시렁에서 목침을 내려 행수에게 건넸다. 내왕 길목에 있는 숫막에는 행수만 차지하는 목침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제법 결기가 있다는 길손도 얼떨결에 행수의 목침을 범접했다간 귀싸대기를 얻어맞는 봉변을 당할 수 있었다. “포주인은 만나보았습니까?” “몇십 년째 염막에 틀어박혀 울 밖 출입도 않는 사람이 어딜 가겠나.” “흥정은 아퀴를 지었습니까?” “소문이 자자한 자린고비가 값을 눅게 잡아줄 리가 없지… 대신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얻었네.”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임자들 요기는 하였나?” “장떡에 술국으로 얼요기를 하였습니다.” “만기는 어디 갔나?” “아침 선반머리에 곁꾼 둘을 데리고 샛재로 되짚어 갔습니다. 얼추 올 때가 되었는데요……” “그 숫막에 눕혀 두어도 월천댁이 아금받게 구완을 해줄 텐데?” “만기가 의원이 가까운 말래로 업어 와야 하겠다고 아득바득 우기는 통에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구억터 소동에서 나귀조차 놓아버리는 실수에 미련하게 굴었던 것이 제깐엔 부담이 되었던가 봅니다.” “국에 덴 놈 물 보고 분다더니… 그럴 테지…” “위인이 뉘집 행랑것이나 장물림 같아 보였지만, 얼추 기신을 차리고 나면 그만한 허우대도 찾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인즉슨 언중유골이었으나 행수는 귀여겨듣지 않고 슬쩍 넘겼다. “경황중이라 난 간색도 해보지 못했다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포주인의 비위짱이 뒤틀리지 않게 적당히 구슬러 놓았더니 수전노 행세대로 값을 눅게 잡아 주지는 않았으나,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건네기로 약조해 주었다. 하긴 그들이 아니라면 울진 포구 염막에서 생산된 토염은 팔아치울 곳도 마땅치 않았다. 간혹 떠돌이 장돌림들이 울진 포구 토산염 좋다는 소문만 듣고 섣불리 염호들을 찾아와 흥정해 간 사례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십이령을 채 반도 넘기 전에 천도나 잔도(棧道)를 건너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평생 동안 돌이킬 수 없는 포병객이 되거나 열명길에 들어서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장수 상단 아니면 고헐간에 소금섬을 넘겨줄 부상들도 흔치 않았다. 내성에서 가져온 무명짐을 넘겨주기로 약조하고 흥정을 여축없이 성사시킨 행수는 해거름에 염막을 나섰다. 염창의 지붕에서 벗겨진 이엉들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쉴 새 없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모래펄에 씻기는 파도 소리는 오늘따라 스산했다. 염전이 있는 수산천을 발행하여 도방이 있는 말래의 숫막까지는 등짐 없이 열불나게 걸어도 한식경이나 걸렸다. 포구에서 발행하여 구만리와 외고개를 지나거나 흥부에서 발행하면 쇠치재나 세 고개재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소금섬을 지고 걷는다면 아침 선반에 발행해서 말래 도방 거리에서 하룻밤을 유숙해야 할 상거였다. 그리고 십이령으로 접어들어 사흘이나 나흘이 되어야 허위단심 현동 저자나 내성 장시 어름에 당도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등에 짐바리가 없는 단출한 몸으로 걷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시절로 보아 칼바람이라고 부르는 동남풍이 불어야 할 때였다. 오금 밑을 지악스럽게 파고드는 한기는 뼈에 사무치도록 차가웠다. 그러나 등짐을 지지 않고 반나절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었다. 기분은 날아갈 것 같은데, 바람 때문에 길이 줄어들지 않았다. 소년 시절부터 사십 평생까지 등에 진 쪽지게를 벗을 날이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장을 모른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자신을 낳아준 아비와 어미의 얼굴조차 기억에 없다. 소년 시절은 구걸로 한둔하면서 숱한 고초를 겪은 것만 기억에 선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울진 포구의 염전에서 내성 장시를 오가는 소금행상에서 작은 쪽지게를 지고 담꾼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이 사십 초반에 이르렀다는 것도 내성 태생이라는 것도 작반하던 늙은 부상들이 귀뜸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때까지 그의 생애는 오직 길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는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등 뒤 쪽지게에 얹은 소금짐은 바위를 지고 있는 것처럼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짓누르는 무게로 말미암아 허리는 자꾸만 아래로 구부러지고 찬 서리 머금은 된비알 치받이 벼룻길을 스친 흙냄새가 콧등에서 폐부에까지 진동한다. 모가지를 잔뜩 빼올리니 5리 길도 걷지 않아 뒷덜미가 둔기로 얻어맞은 듯 뻐근하게 울려온다. 걸음을 한 발짝씩 옮겨놓을 때마다 오금은 자꾸만 오그라들고, 천도에서 튀어 올라온 돌니를 밟을 때마다 등짐을 진 채로 기우뚱거려 수십 길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만 같아 가슴 졸인다. 오줌은 마려워 하복부가 팽팽하게 당겨오는데, 일행은 전혀 쉴 참을 주지 않는다. 쪽지게를 벼랑길에 세워두고 속시원하게 배설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그렇게 되면 일행은 벌써 저만치 앞장서버려 도무지 뒤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물미장을 겨드랑이에 끼고 오지랖을 움켜쥐고 걷노라면 등골에는 어느새 진땀이 흐르고, 발뒤축에서 흘러나온 피가 짚신을 적신다. 치받이길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다지만, 내리받이길은 더욱 고통스럽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걷지 않으면 높이 쌓아올린 등짐이 머리 위에서 곧장 쏟아질 듯 위협하여 물미장으로 발부리 앞을 버텨주지 않으면 그대로 벼랑길로 곤두박질쳐 순식간에 어육이 되고 말았다. 5리만 내려가도 두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허리는 쥐어짜듯 저려온다. 십이령길 주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 모두가 내리받이 벼랑길을 내려가던 행상들이 실족하여 열명길에 오른 연고 없는 무덤들이었다. 소금장수들의 허우대가 한결같이 껑충한 것은 모두 그러한 고통과 질곡을 참아내기 위함 때문일 것이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머쓱해서 말구멍이 막힐 줄 알았는데, 정한조는 웃지도 않고 되받았다. “어림없는 얘깁니다. 시생과 같이 한둔으로만 지새우며 연명하는 장물림에게 육허기에 시달리는 동자치인들 좋다 하겠습니까.” “갈매기 떼 있는 곳에 고기 떼 있더라고, 사람 많이 모이는 저잣거리에 출입이 잦다 보면 언젠가 육덕 푸짐한 아낙네가 눈에 띄지 않겠나. 마음먹기 달린 게지. 김 날 때 후루룩 들여 마시는 게 임자라지 않던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가합한 혼처를 찾아 가솔을 거느리게.” “잘못 덧들였다가 제가 도리어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포주인께서나 저나 동병상련입니다….” “누가 아니라나… 하긴 그뿐만 아닐세. 어제도 질청의 호장이 찾아와서 나를 윽박지르고 돌아갔다네. 그래서 내가 시방 좌불안석이야.” “또 무슨 일입니까?” “어느 놈의 사주를 받았는지… 조만간 염전을 내놓으라고 으름장 놓고 갔네.” “척매(斥賣)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것들의 속내야 뻔하지 않은가. 방매(放賣)하고 나면, 구전이나 톡톡히 뜯겠다는 수작이겠지. 그들이 노리는 것은 염전뿐만 아닐세. 듣자 하니 고포에서 곽전을 가진 물주들도 질청 것들의 농간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네.” 그로써 어장은 궁가(宮家)나 토호들의 소유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곽전도 진상(進上)과 공상(供上)의 주요 물품인 미역과 김으로 사유화가 진작부터 진행되었다. 미역이 생산되는 터전인 지름 10여 무 정도의 바윗덩이가 200냥이나 400냥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는데, 거기에 질청의 구실살이들이 끼어들어 농간을 하였다. 특히 곽전인 바위는 매우 정확하게 위치 표기가 가능할 뿐더러 어떤 경우도 변형이 되거나 유실되는 염려가 없는 만큼 가장 확실한 매매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하늘만 쳐다보는 천둥지기 다랑논이나 비탈진 산기슭에 매달리듯 붙어 있는 따비밭 따위 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토지 이상의 가치를 가진 재산으로 인정되었다. 어촌 사회는 중앙의 관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외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나라에서 내리는 혜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가지기 어려웠다. 때문에 무능력한 백성들이 모여 살기에 가장 알맞은 지역이었다. 도망한 노비들이 해안가 염전이나 곽전으로 숨어들어 보잘것없는 삯전으로 가까스로 연명하였다. 그들 역시 거둬들이는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전, 군교는 물론 심지어 관노(官奴), 관예(官隸)까지도 그들 위에 군림하여 가리틀거나 착복을 자행하였다. 수령의 가친(家親) 생신이나 혹은 그들의 빈객을 빙자하여 물품을 강징하고는 그것을 수령에게 상납하는 것이 아니라, 하속 예리들이 빼돌려 착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에 어민들은 저항할 결집력이 없었다. 신분 자체가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패 관리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탐학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한조의 입에서도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는 그들의 탐학과 농간을 저지시킬 날이 오겠지요.” “힘에 부치지만,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야지. 반수와 도감의 훈수만 믿고 있다네.” “농이겠지요.” 겨끔내기로 농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속내로는 벌써 흥정이 무르익고 있었다. 포주인이 농을 부드럽게 주고받으면 흥정은 거의 담판이 난 셈이었다. 속셈으로 점치고 있었듯이 새재 눈밭 사이에 노란 복수초가 얼굴을 내밀더란 봄소식에 포주인 송석호도 한결 마음에 위로를 받아 가벼워졌으니 이번 행보에도 값은 눅게 해서 소금 바리를 넘겨주기로 하였다. 포주인도 등 두드리고 배 문질러 주는 수완이 출중한 행수에게 어느새 희미한 정리를 느꼈다. 정한조가 농담 끝에 불쑥 한마디 던졌다. “가난뱅이 구들장에 물난리가 겹친다더니, 이번 길에는 짐승 한 마리가 절음 나서 내왕길에 경난깨나 겪었습니다. 발새 익은 길이라지만, 십이령 고갯길 10리는 평지 길 20리 맞잡이가 아닙니까… 사정이 그러했으니 이번 파수에는 박하게 그러지 말고 좀 눅게 잡아 주시지요. 원님과 급창의 흥정에도 에누리가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피아말 엉덩이 둘러대듯 잘도 둘러대는구만. 하긴 절음 난 짐승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한고를 겪었다니 숙객*인 임자에게 박절하게 굴 수야 없지.” *숙객: 단골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는 마침 내성 장시에 들렀다가 회정해서 찾아온 행수를 맞이하며 앉은자리에서 굽도 떼지 않고 엉덩이를 들썩하는 시늉만 하였다. 정한조가 내성 장시 일대를 휘어잡고 있을 정도로 면목이 단단하고 배짱이 드센 위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나마 예의를 차린다는 것이 그 모양이었다. 그는 우선 시절부터 물었다. “시절은 봄이라 하는데… 십이령길은 아직도 한절이나 다름없을 테지?” “아닙니다. 회정하는 샛재길에서 눈밭을 헤적여 보았더니… 눈밭 속에 노란 복수초가 빼식하게 웃으며 꽃잎을 틔우고 있었지요.” 침울하던 안색이 갑자기 밝아진 송석호가 혼잣소리로 푸념하였다. “평생을 젓국내만 등천하는 포구에만 틀어박혀 엉덩이에 두께살이 앉다 보니, 시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가늠할 방도가 없다네.” “만에 하나 누가 염전을 떠메고 줄행랑을 놓을까 심기가 불편한 게지요?” 반은 농인 것을 알아차린 포주인은 배시시 웃음 띠고 나서 말했다. 그 나이에 볼따구니에 가뭇가뭇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평소 섭생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정한조가 해야 할 흥정은 않고 객담부터 늘어놓았다. “적잖이 식산하였는데… 출타를 삼가시니 입성을 고쳐 가지는 것은 내키지 않더라도 섭생이나 제대로 하시지요. 이제 그만하시면, 냉골을 지키고 앉아 기한에 떨고 누추한 입성으로 신산을 겪지 않아도 될성부른데요.” “홀몸으로 살아가자니, 그게 어디 손쉬운가.” “그 연세에 걸맞은 수절 과수댁이라도 얻어 살면, 얼굴에 검버섯 피는 것은 모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홀아비로 사는 게 여간 골몰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 하였네. 임자 알다시피 이 나이에 섣불리 계집 얻어 살송곳 박아보겠다고 진땀 흘려가며 몸부림치다가 일만 그르치고 불알에 똥칠만 할 게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성깔 사나운 계집에게 귀싸대기나 얻어맞는 환난을 겪게 될 게야.” 온당한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못 들은 척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찾아보면 용모도 가무잡잡하고 삭신도 노골노골한 까막과부도 없지 않습니다. 아무리 콧등이 센 계집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내 행세 서툴다 해서 언감생심 하늘 같은 남편에게 손찌검을 하겠습니까.” “여색을 멀리한 지 오래되었다네. 뿐만 아니라, 숨이 턱에 와닿은 내 나이를 몰라서 그러나? 삶은 팥에서 싹이 날 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도깨비 방귀를 잡겠다고 설치는 것과 다름 아닐세.” “여색을 밝히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남정네란 가솔을 갖추고 살아야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 길고 긴 겨울밤에 질화로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조근조근 얘기할 상대라도 있어야 일찍 늙지 않습니다.” “그 말 듣고 보니 눈물이 나려 하네…. 그러나 임자 하는 말을 다시 씹어 보면 내가 측은해서 하는 말인지 임자 스스로 심기를 달래려는 말인지 분간을 못 하겠네. 내 걱정은 말고 임자 오지랖이나 챙기게.” “혹시 이 말은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그게 뭔데?” “털은 있고 이빨은 없으되 곶감 씨를 빼물고 있는 짐승이 있는데 그게 무슨 짐승인지 아십니까?” 또 무슨 흰소리인가 해서 귀를 기울였던 포주인은 안색이 돌변하며 이죽거렸다. “예끼 이 사람, 버르장머리하구선. 묵어서 쉰내나는 그 소리 벌써 몇번째인가. 고얀 사람. 임자 오지랖부터 챙기라니깐 농지거리가 기탄이 없네 그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 외에도 울진 포구 여기저기에는 60여 호를 헤아리는 크고 작은 염전이 있고 소금 도가 포주인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는 그런 동사 간에도 내왕 없이 지냈기 때문에 해포이웃이라곤 없었다. 천성이 도무지 분잡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울타리 밖의 사정을 모르고 살면서 엉덩이에 두께살이 앉도록 출입이 없었다. 괴팍한 처신 때문에 같은 염호나 소금 도가 포주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송석호는 그런 처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밭에 개똥도 줍지 않는 꼬장꼬장한 성품에 내 것이라면 고뿔도 남에게 주지 않을 만큼 인색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차인이나 염간(鹽干) 들에게 새경이나 용채를 후하게 쥐여주어 그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처신이 그처럼 데데하지 않은 것에도 알고 보면 까닭이 있었다. 염전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토호나 벼슬아치들이 질청의 아전이나 관노들을 사주하여 염전을 싼값으로 사들이려 끊임없이 협박과 농간을 자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농간에 송석호는 염부들과 힘을 합쳐 염전을 지키려 했다. 그런 저항에 부딪히면 아전들은 문서에도 없는 염세를 강징하여 그를 괴롭혔다. 삼척, 울진을 비롯하여 통천,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영해, 평해와 같은 고을은 예부터 땅이 매우 척박하고 자갈이 많아 농사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들 고을에서는 고기를 잡고, 미역 따거나 소금 굽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땅은 비록 메말랐어도 부유한 자가 많다고 하지만, 서쪽으로 고개가 너무 높아서 이역과도 같아 한때 유람하기는 좋겠으나 오래 살 곳은 못 되었다. 소금 전매하는 일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오랜 세월 그대로 고치지 못하네 우리나라 법이 크게 엄하여, 해마다 내는 세금 일 년 농사보다 많다네 나도 관동으로 나온 뒤에 해안을 다니며 몸소 독려했다네 백성들 누추한 거처는 오두막집, 쑥 엮어 만든 문에 자리조차 걸 수 없어 늙은이가 자식 손자 데리고, 한 치의 시간도 쉴 수가 없네 혹한에도 바닷물 길어 오기에, 짐 무거워 어깻등이 휠 대로 휘고 열기와 연기 그을음, 끓이는 훈기에 눈썹마저 타버렸네 문 앞의 열 수레나 되는 나무도, 하룻저녁 땔감이 되지 못하네 하루종일 백 말의 물을 끓여도 소금 한 섬 채울 수 없네 만약 기한 내에 대지 못하면 혹독한 관리는 꾸짖고 성내어 운송하는 관리는 소금을 산처럼 쌓아놓고, 전매하여 비단으로 바꾸지 임금은 공신을 중하게 여겨 상을 주는 데 아끼지 않네 한 사람 몸에 입은 옷가지, 만백성 괴로움 깊이 쌓이네 슬프다 저 소금 굽는 사람들이여, 옷은 해어져 등조차 가릴 수 없고 이 괴로움 견디지 못하여 급히 도망하여 자취를 감추네 고려시대 안축이 소금 굽는 일을 보고 충격받아 이렇게 묘사할만치 염한들이 겪는 고초를, 그는 몸소 눈으로 보고 있었다. 평생 염막만을 지키고 앉은 터에 이제 막 육십 줄에 들어섰건만, 구루병 걸린 당나귀처럼 허우대가 찌그러진 행색은 애꾸눈이 보아도 열 살은 더 먹어 보였다. 남들이 그의 인색함을 허물하면 언제나 그는 부자로 살았던 어떤 역관의 얘기를 사례로 들었다. 그 역관은 일찍이 부자 소리를 들었으나 의복은 매우 검소하였다. 찢어진 모자에 칼은 나무로 만들어 썼다. 그러한 연고를 물었더니 역관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가진 물건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면, 힘있는 관리와 선비들이 너도나도 모두 가지고 싶어 침을 삼키게 될 것이다. 그때 선뜻 건네주지 않으면 환심을 잃게 될 것이고 골고루 나누어주자면, 숫자가 모자랄 것이다. 이어서 송석호는 내가 외관이 의젓하고 치장이 화려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필경 화를 부르게 될 것이므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두고 십이령을 넘나든 이력과 간담을 가진 부상들도 벼랑길에서 실족하여 열 길 계곡 아래로 나동그라져 졸지에 열명길에 들거나, 평생 고질을 얻어 신세를 망친 사례도 허다하였다. 길이 얼마나 험했으면 샛재의 성황사를 비롯해서 고개치마다 성황단을 두고 내왕길의 안녕을 빌기까지 했을까. 울진 포구의 염부들과 내성의 보행객주들이나 포주인들이 정한조 행수 일행을 “소금 장수 행수 상단”으로 부르게 된 것은 오래전부터의 일이었다. 이들의 우두머리인 반수 권재만과 도감 정한조를 제외한 행중의 수하 원상들 20여 명과 담꾼 40여 명은 모두 삼십대 나이를 크게 넘지 않았다. 심지어 황구의 소년도 둘이나 있었다. 이십대이거나 십대이거나 모두 혈기 방장하고 강단 있는 장한들이어서 흥부 장시나 현동 저자와 내성 장시의 협잡꾼들이 섣불리 덧들이지 못했다. 원상들이 돈독한 결속력을 가지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이르는 십이령은 오래전 흥부와 내성의 부상들이 개척한 것이고, 그 쇳덩어리나 다름없는 소금섬을 지고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근력을 가진 부상들도 이들뿐이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 울진 포구 염전에서 거둬들인 소금은 전매품처럼 이들이 독차지해서 내륙의 장시와 거래하게 되었다. 이들이 다른 소소한 병문친구나 횡행하는 무뢰배들과 다른 점은 보기 드물게 부상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금 상단 행중은 십이령에서 실족한 길손을 만나면 지체 없이 구완하고, 보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행려병자를 구급하였다. 샛재를 떠나 숫막이 여럿인 말래의 도방 거리*에서 한숨을 돌린 정한조 일행은 곧장 염호들이 즐비한 수산천 어름의 염막을 찾았다. 그곳에는 육십 줄에 접어든 소금 도가 포주인 송석호가 삽살개 한 마리를 기르며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소싯적부터 염전에 종사하여 반평생을 오직 토염 생산에만 종사한 사람이었다. 염막을 경영하며 적지 않게 화식하여 거관(巨款)을 거두어 부호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오래전 상배를 당했는데도 재취를 하지 않고 홀아비로 늙어 가고 있었다. 수산천이나 흥부 염전에 종사하는 어느 누구도 그가 돈꿰미를 헤아리는 꼴을 엿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색하였다. 적잖이 식산한 것은 틀림없겠는데, 언제 보아도 입성은 하방 천인처럼 꾀죄죄하였고, 한겨울에도 풍창파벽에 군불조차 지피지 않은 냉골에 부들만 깔고 기숙하였다. 방에는 거처하는 사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털 빠진 개가죽과 구멍 뚫린 부들자리, 휘장도 없고, 이불도 없고, 모포도 없고, 평풍도 없고, 등잔조차 보이지 않았다. 깨진 화로에 불씨도 없었다. 그가 사시사철을 막론하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된추위가 맴도는 냉골에서 떠나지 않고 기거하는 것은 숨겨 둔 엽전 꿰미에 혹여 녹이 슬까 염려하기 때문이란 소문들이 염전 일대에 파다하였다. 그러나 다른 소문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수하에 거느린 염부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놋쇠 대야를 갖다 놓고 숨겨 두었던 엽전 꿰미를 꺼내 엽전 하나하나를 대야에 떨어뜨려서 그 쨍그랑쨍그랑하는 소리를 혼자서 즐긴다는 것이다. *도방 거리:임소나 접소처럼 보부상을 통제하던 기관이 아니다. 각도에 왕래하던 보부상들의 숙박 처소였다. 부상은 부상 도방, 보상은 보상 도방이 있었는데 대개 장시나 포구 주변에 있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소금을 구우려면 먼저 염전 바닥에 왕피천에서 가져온 뻘을 넣고 평평하게 다진다. 그 위에 산에서 채취한 마사토를 깐 뒤 바닷물을 퍼붓고 말린 다음 써레질을 해서 뒤집는 작업을 7, 8일 동안 반복한다. 그다음에는 마사토와 함께 응축된 소금을 긁어모아 다시 바닷물을 부어 표면 아래 뻘로 만들어 웅덩이에 흘러내리게 하여 마사토와 소금물을 분리한다. 염부 두 사람이 한 열흘 동안 작업을 하면 소금물 200초롱을 얻게 되는데, 이 소금물을 솥에 부어 주야로 쉬지 않고 달이면 소금 80말을 얻어 낸다. 이런 토염이 햇볕에 의존하여 수분을 증발시켜 얻는 천일염이나 바닷물을 끓여서 얻어 내는 화염에 비하여 맛이 달다. 이 토염이 워낙 고품질이기 때문에 이웃 고을뿐만 아니라, 십이령을 넘어 경상도 안동과 상주, 강원도 내륙 영월과 태백에, 고초령을 넘어 영양, 진보, 청송, 심지어 고령 개포(開浦) 장시의 원상들까지 내성에 있는 어물 객주에 눈치 빠른 거간을 넣어 거래를 틀 만큼 천세난 물화였다. 고령뿐만 아니었다. 낙동강에서 손꼽히는 나루터 장시로는 고령 외에도 밀양의 삼량진(三梁津), 의령의 박진, 초계의 율지(栗旨), 현풍의 세암(洗巖), 성주의 명덕진, 대구의 사문진, 안동의 외관, 선산의 비산, 상주의 낙동과 같은 포구들이 있었다. 이런 포구에서 열리는 최고의 갯벌장에서도 울산 포구 염막에서 나온 토산염이 거래될 정도였다. 이들 갯벌장을 드나드는 부상들도 울진 포구의 염전이나 해물 저자까지 오면, 좀 더 값이 눅은 물화를 매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십이령을 넘자면, 섶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경난을 겪기 마련이어서 쓸개 빠진 위인이 아니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낙동강 하구에서도 소금이 생산되었다. 이들은 배에 소금을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각 포구에 도착하여 소금을 팔았다. 그러나 사공들이 직접 팔 수는 없었고, 수산 도방, 남지 도방 등 각 포구에 있는 도방의 객주가 물건을 중매해 그곳에서 쌀, 보리, 채소, 과일 같은 낙동강 유역에서 재배되는 곡물과 상품을 바꾼 뒤 다시 강을 내려갔다. 그러나 그 품질이나 맛에 있어 울진 포구의 염호에서 생산되는 토염을 따르지 못했다. 토염이든 자염이든 소금의 수요가 이처럼 많았던 것은 소금으로 열두 가지 반찬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너무나 깊숙하게 소용되기 때문이었다. 소금은 부정을 씻어 주고 병을 낫게 하며 재액까지 막아 준다고 했다. 사람이 죽으면 배꼽에 소금을 수북하게 놓고 마당에 차리는 상에도 소금 사발을 두었다. 배꼽의 소금은 바람이 배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주고 소금을 먹은 저승사자가 목이 말라 쉬어 가게 되므로 죽은 자도 힘들이지 않고 저승까지 당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초상집에 갔던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소금을 뿌려 악귀를 쫓았다. 나쁜 병으로 사람이 죽으면 집 안에 소금을 뿌렸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낙네는 성주 단지 안에 있는 소금을 먹으면 아이를 낳게 된다고 믿기도 하였다. 울진 포구 소금 장시에서 내륙으로 왕래하는 길목은 통틀어 세 곳이었다. 남쪽으로는 온정에서 구슬령을 넘어 영양과 안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고, 중로에는 원남 갈면에서 고초령(高草嶺)을 넘어서 영양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북으로는 흥부장에서 십이령을 넘어 내성과 영주로 넘어가는 길이 있었다. 흥부장에서 내성으로 넘어가는 십이령길은 강원도 해안에서 경상도 북부 내륙 장시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 고개는 험준하고 가파르기가 마치 낙타 열두 마리를 세워 둔 것과 방불하여 정한조가 향도하는 원상과 그를 따르는 담꾼들 외에는 언감생심 넘을 엄두조차 못 내는 험준한 산길이었다. 그들 고개 중에서 코치비재나 곧은재는 그 가파르기가 사람의 콧등이 땅에 닿을 정도였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불각시에 들이닥친 병자를 맞이하여 월천댁과 딸아이 구월이가 정주간과 봉놋방을 부지런히 오가며 간병을 하고 있었으나, 병자는 좀처럼 기신을 차리지 못했다. 귀조차 먹었는지 큰 소리로 물어도 도무지 기척이 없었다. 걱정이 태산 같기는 궐자를 업어온 두 사람보다 숫막질하는 월천댁이 더 컸다. 평소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여서 병자 수발을 아낙네에게 맡긴 두 사람은 왔던 길을 황급히 되짚어갔다. 그들을 뒤쫓아오는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처럼 되짚어갔던 행수가 동행들을 이끌고 숫막으로 돌아온 것은 중화 때를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분주를 떠느라 모두 파김치가 되어 있었고, 나귀들 또한 지쳐서 회초리를 내려도 고개만 내저을 뿐 고집을 부리며 도무지 발굽을 떼려들지 않았다. “어허… 이 무슨 낭패인가. 혼쭐을 내는데도 짐승들이 도무지 발굽을 떼려 하지 않아. 콧방귀도 안 뀌어.” “콧방귀도 안 뀌는 것은 나귀들뿐만 아니네. 우리가 업어온 행려병자도 전혀 차도가 없어. 아무래도 의원이 가까운 말내 도방까지는 업어가야 할 형편인걸.” “명줄이 붙어 있으면서 말문을 열지 못한다면 그 위인 태생부터 귀머거리가 아닌가.” “글쎄, 말문을 딱 닫아걸고 입도 뻥긋하지 않으니 속내를 알 수가 있어야지.” “어쨌든 환난을 만나 혼백이 떠버린 듯하니 지금 당장 병구완은 잠시 월천댁에 맡기고 우리 상단은 염전까지 당도해서 내성의 여각과 약조한 날짜는 지켜줘야 하겠네. 회정길에 다시 숫막에 들러 차도가 있는가 없는가 알아보는 게 좋겠네.” “본색을 알 수 없는 위인을 숫막에 맡겨두는 것도 내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굴신을 못 하는 사람을 푸대접해서 숫막에서 내쫓으란 말인가. 필경 부질없는 죽음을 당할 것이네. 그런 짓은 명색 환난상구(患難相救)한다는 원상들이 저질러선 안 될 일이지 않은가. 우리 행중도 언제 어디서 그런 횡액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다음 파수에는 또다시 소금섬과 미역짐을 지고 십이령을 넘어야 했다. 그것이 내성에 있는 소금 도가 포주인과 약조된 일이었다. 울진의 흥부포구에는 토염전을 일군 80여 호의 염호(鹽戶)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곳은 삼척 부중의 벼슬아치들이나 질청의 아전들 소유였다. 토염은 청정 해역에서 끌어올린 고포 해안의 곽전(藿田)에서 생산되는 돌곽 미역과 같이 울진 포구의 소문난 토산품으로 손꼽혔다. 염전 한 꼭지는 150평이고 두 꼭지를 한 자리로 불렀는데, 그 한 자리를 가꾸는 데는 염부 두 사람이 종사하였다. 흥부포구의 두 염막에서 소금을 굽는 염부들만 하더라도 90여명을 헤아렸다. 토염은 ‘염전에서 마사토와 함께 응축시킨 뒤 우려내어 굽는 방식인데, 그 소금을 한 번 굽는 데는 얼추 달포가 걸렸다. 날씨가 좋으면 한 자리에서 한 번에 소금 70, 80말을 거두는데, 값어치로 따져 그 소금 한 섬이 30냥이라면, 조 한 섬은 20냥에 거래되었던 시절도 있을 정도였다. 소금은 현동이나 내성장까지만 나가도 쌀 반 섬과 바꿀 수 있었고, 콩이나 잡곡일 경우는 맞바꿀 수 있었다. 비가 잦아 토염 생산이 줄어든 흉년에는 쌀 한 섬이 소금 한 섬이었다. 가마솥을 걸어 솔잎과 장작불을 지펴 소금을 굽는 자염(煮鹽)에 비해서 토염이 그토록 천세나는 것은 고등어에 염장을 지르거나 겨울철 김장을 담글 때 넣으면 그 시원한 맛을 자염이 감히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다 가까이 거주하는 민초들도 소금 먹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바다에서 수백 리 떨어진 내륙의 산골 백성들은 소금 배가 나루 가까운 곳에 이르렀다는 소문만 들어도 다투어 곡식과 피륙을 가지고 달려가 빼앗듯 흥정하려 들었다. 그래서 울진 흥부포구의 염호들은 소금만 팔아서 축재한 소문난 부호들이었다. 덩달아 소금장수를 배장수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선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문이 배가 남는다 해서 지어진 별호였다. 자염이라 하더라도 비가 잦아 소금이 줄어든 흉년에는 쌀값에 버금갈 정도였고, 소금 기근으로 구황염이 필요한 봄철과 비가 잦은 칠팔월에는 그나마 저잣거리에서 손쉽게 소금을 찾아볼 수 없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두 사람이 사타구니가 쓰리도록 열불 나게 걸어 당도한 곳은 샛재 턱밑인 비석거리였다. 이름하여 선정비나 공덕비란 것들은 길손들의 내왕이 번다한 길목에 즐비하게 세워두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번화한 곳을 가리켜 비석거리로 불러온 것이었다. 그런 곳에 숫막이 들어서고 간혹 들병이들도 술 단지를 끌어안고 길손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춘궁기를 앞두고 있는 시절이어서 내왕도 뜸하고, 숫막 경영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석거리에는 숫막 세 집이 나란하게 문을 열고 있었고,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돌을 쌓아 바람막이를 한 마방도 갖추고 있었다. 마방이 딸린 숫막에는 어림잡아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낙네가 나이가 이팔인 구월이라는 여식과 사팔뜨기에 밤이나 낮이나 눈에 눈곱을 달고 사는 늙은 중노미 한 사람을 데리고 숫막질을 하고 있었는데, 택호가 난데없는 월천댁이었다. 그것은 6, 7년 전에 역병으로 열명길에 오른 남편이 이곳에서 한식경 거리에 있는 말내(두천) 물가에 움집을 짓고 살며 사람을 업어 내를 건네주는 월천꾼이자 길라잡이로 연명했기에 붙여진 택호였다. 월천댁은 여식 하나를 남기고 졸지에 명줄을 놓아버린 아비를 이곳 비석거리 언덕에 묻고 시묘살이를 하더니, 아예 이곳에 숫막을 열어 자리잡고 말았다. 죽은 남편의 무덤을 떠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으니, 한미한 집 자손이지만 심덕 한 가지는 열녀의 반열에 올려둘 만하였다. 궐녀는 샛재를 오가는 길손들 중에 반명하는 위인이든 상것들이든 층하를 두지 않고 상종하였다. 선비라고 호들갑스럽게 아양 떨며 납죽거리지 않았고, 상것이라고 체면을 깎고 홀대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간혹 도포 입고 행세한다는 표객이 궐녀의 숫막에 식주인을 정하고 객고나 풀자 하고 지분거리기도 하였다. “여보게, 술어미. 그냥 두면 곰팡이만 슬고 젓국 냄새만 등천을 한다네. 더러는 뒷물할 일도 생겨야 쓸모가 있는 게 바로 임자 불두덩 아래 붙어 있는 가죽방아가 아닌가. 어떤가? 내 말의 깊은 이치를 알아듣겠지? 임자가 살보시만 질탕하게 해준다면 먼 길 행보, 만리 행역이 싹 가시지 않겠는가. 해우채는 섭섭하지 않게 헤아려줌세.” “길거리에 나와 앉은 본데없는 계집이라고 깔보고, 실없는 언사가 낭자하시구려. 공규를 지키는 하찮은 계집을 상종하여 양반 행티 너무 마시오. 댁이 남행* 부스러기로 벼슬길 맛을 보았는지… 작둣간에서 풀무질이나 하다가 공명첩으로 양반의 직첩을 얻었는지 어느 개 아들놈이 알겠소. 말본새하며 행티 하는 거조가 댁이 겉보기와는 달리 가문 있는 집 자손이 아닌 것은 분명하오. 육허기가 목젖까지 차올랐거든 나보고 지분거리지 말고 봉놋방 외짝문 닫아걸고 혼자 실컷 용두질이나 해서 육허기를 채우시지요. 그러나 해보았자 허망하긴 마찬가질 것이오.” “술어미… 내 잠깐 실언을 했기로서니 면박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집구석이 망하려면 제석 항아리에 말 좆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요. 제가 간구하게 살다보니 댁과 같이 비위짱 사나운 꼴을 보아도 주리 참듯 참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가련하네요.” 그런 꼴같잖은 위인에겐 가차없이 면박을 주지만, 평소에는 범절이 더없이 무던한 아낙네여서 병자를 샛재까지 한달음으로 업고 온 것이었다. 병자를 좁은 툇마루에 내려놓자 파랗게 질린 월천댁은 불당그래를 손에 든 채로 부엌의 널쪽문을 밀치고 엎어질 듯 내달았다. 봉당 쪽마루에 사지를 늘어뜨리고 누운 병자를 이리저리 살피던 월천댁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장독을 입었는지 오장육부를 다쳤는지 알 수 없으나, 우선은 된장밖에 약이 없네요.” 정주간으로 달려가더니 된장을 한 바가지나 떠왔다. 우선 병자를 바로 눕힌 다음 서둘러 된장을 발랐다. 정한조가 말했다. “어성초나 소리쟁이 뿌리 말려둔 것은 없소? 어혈을 풀어주는 데 그만한 갈약*이 없소.” “쑥이나 명아주 말린 것은 있습니다.” “지네 말린 것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마시게 하면 그것도 효험이 좋소. 타박상에는 광대나물이 제격이오.” “지네나 광대나물 말린 것은 말내 도방에 당도하면 돌팔이를 불러 구처하시고 우선 된장이나 바릅시다. 된장도 만병통치라 하지 않습니까.” 부러진 다리와 상처에는 쑥을 두드려 발라준 다음, 소나무 껍질을 벗겨 지지대로 싸매주고, 경황중에 끓인 미음을 떠먹였다. 그러나 병자는 미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병증이 뼈에 사무친 것이었다. 발을 싼 감발을 벗겨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동상까지 앓았던 듯 두 발등이 죽장같이 부어올라 있었다. 구완 않고 오래 방치하면 화농되어 썩어들어갈 것이 뻔했다. “어허 이런 야단이 없군.” “한군데도 성한 구석이 없네요. 말린 쑥은 있으니, 싸매주어야 하겠소.” *남행: 음직을 낮추어 부르는 말 *갈약: 상비약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행수는 불문곡직 사내를 들쳐 업었다. 부러진 한쪽 다리가 하반신 아래로 축 늘어졌다. 아래쪽 자드락길에서 무명짐과 시겟짐을 수습하고 있던 동무들은 시신이나 다름없는 사내를 업고 가파른 기슭을 내려오는 행수의 거동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고샅길 어귀에 똥 본 개 새끼들처럼 우르르 모여들었다. “행수님, 명줄은 붙어 있습니까?” “당장은 붙어 있네만 서둘러 따뜻한 봉노에 안동하지 않으면 당장 저승사자가 업어가겠구먼. 추운 날씨에 기한인들 오죽했겠나. 우리가 조금만 늦게 당도했어도 그대로 강시 날 뻔했네.” “이런 변고가 있나…. 적변을 당한 것입니까. 짐승을 만난 것입니까. 떠돌이 왈패들에게 걸려들어 매타작을 당한 것입니까? 어떤 육시랄 놈의 소행인가.” “어떤 무뢰배나 산적의 소행인지, 짐승을 만난 것인지 알 수 없네만, 냉큼 조처하지 않으면 이런 혹한에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 없네.” “실족을 했다면 자드락길이긴 하나 가근방 길목이 그다지 험하지 않고… 매타작을 당했다면, 봇짐 털려던 무뢰배나 산적이었겠지요.” “그런 말 할 경황 없네.” 난감한 일이었다. 명색 신표(信標)를 지닌 원상으로 자처하는 행상이라면 노상에서 마주친 행려병자나 실족한 동배간을 구완하지 않고 지나친 사례는 없었다. 사람에 따라 구급에 인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실이 나중에 들통나면, 임소나 접소에 끌려가서 혹독한 징치를 당하는 것이 예로부터 원상들이 지켜온 엄중한 기강이었다. 그러나 정한조 일행이 구완해야 할 이 길손은 본색조차 알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을 잠시 망설이게 했다. 행수 정한조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일행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초주검이 된 포병객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견마 잡았던 만기와 동행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뒤에 남은 일행들은 그 자리에 있다가 나귀와 등짐 들을 다시 수습하여 뒤따르도록 하였다. 샛재를 겨냥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종종걸음하는 행수의 뒤를 따르던 만기가 물었다. “이 사람이 우리와 같은 원상이라면, 신표를 지녔거나 추수전(秋收錢)에 바친 척문(尺文, 영수증)을 지니고 있을 텐데요?” “사추리 밑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찾지 못했네….” “갓 쓰고 박치기를 해도 제멋이라지만 이 작자가 원상도 아니라면, 무슨 배포로 이 험한 산길에 대중없이 뛰어들었을까요. 횡액을 당할 것을 진작에 예견했을 만한데요.” “요사이는 접소에 적을 둔 원상이 아니라도 행세하는 잠상배나 부랑꾼 들이 많아서 신표를 지녔다 해도 도무지 본색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네. 조정에서는 지난 임오년 난리를 겪고부터 서북인이며 송도인이며 서얼이나 역관, 서리, 군졸 할 것 없이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조처하고, 장시에까지 양반의 직첩이 흘러나와 거래될 뿐만 아니라, 절집을 중수한답시고 공명첩까지 내돌리고 있지 않은가. 굶어 죽지 못해 명줄만 겨우 지탱해 오던 하찮은 궁반들도 보부상 노릇 한답시고 장시에서 물화를 사고팔도록 조처하여 어느덧 반상의 구별이 없어진 수상한 시절이 되고 말았네. 빈부귀천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가 되었다는 말은 바로 그걸 빗대어 하는 말일세. 요사이 들어선 장시에 창궐하는 무뢰배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약초 캐어 연명한다는 산척(山尺)이며 난데없는 협잡꾼들까지 지난 신분을 숨기고 장시 어귀에서 사사로이 다듬은 물미장을 내저으며 행세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허욕이 난무하고, 완악하고 거만한 작자들이 장시를 주름잡고 있어 은혜와 의리는 이제 우리와 거리가 멀게 되었다네. 그것은 자네도 익히 경험해서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 대원위대감이 청나라로 붙들려간 뒤 나라의 제도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뀌고 있어. 우리 부상들도 덩달아 갈피를 못 잡고 있다네. 그건 그렇구 서두르게.” “시세가 글렀습니다.” “그렇다 해서 우리 원상들이 지켜오던 정리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는 없네. 만약 그렇게 되면 이보다 더 혹독한 환난을 겪게 될 것이야. 더욱이 우리 소금 상단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선 안 되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얼마 가지 않아서 만기가 두고 온 벼랑길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러나 잡도리해 두었다는 네 필의 당나귀는 만기가 버리고 온 장소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이 시겟짐을 등에 붙인 채로 한가롭게 서 있었다. 한 마리는 비게질을 한답시고 나뭇등걸에 엉덩이를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절음 난 나귀 역시 무사했다. 다만 어마지두 놀란 만기가 경황 중에 벗어던진 쪽지게만 벼랑길에 곤두박여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 해서 무작정 달려가서 나귀들의 고삐를 낚아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매복한 산적들이 나귀들을 미끼로 유인하여 순식간에 일행을 덮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나귀들을 코앞에 두고 사위의 정황을 살피기로 하였다. 계곡 아래로 몸을 납작 엎드려 매복하면서 숨을 죽였다. 까치 서너 마리가 소나무 가지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면서 소리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경솔하게 뛰어들었다가 놀란 나귀들이 혼비백산하여 뒤죽박죽 뛰기라도 한다면, 시겟바리가 계곡 아래로 굴러 일이 커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나귀들조차 부상을 입을 가망도 없지 않았다. 산적이 매복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든, 나귀들이 놀라지 않게 시간을 끌며 지켜보든, 모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기와 마주칠 수 있었다. 지루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제야 행수가 잡목숲에서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일어서긴 했지만 한동안 미동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산적이 지켜보고 있었다면 그 모습을 드러낼 차례였고, 나귀들이 놀라지 않았다면 저들의 주인이 나타났다는 것을 깨닫고 뛰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한 사태들을 예견할 수 있는 안목이 행수인 그에겐 있었다. 그는 드디어 천천히 다가가 나귀들의 고삐를 잡아채는 데 성공했다. 뒤따르던 수하 동무들 역시 다가와 길바닥에 곤두박인 지게를 수습하였다. 소란을 피우던 까치 소리도 가까스로 멎었다. 그렇다면 만기와 마주쳤다는 길손은 도대체 본색이 무엇인가. 달아난 노비를 추쇄하던 작자인가. 아니면 육로행상으로 자처하고 나선 적탈민인가. 아니면 관아의 재물에 포흠을 저지르고 도망하던 구실아치인가. 그렇지 않으면 만기가 낮도깨비를 보았다는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푼전의 삯전을 받고 발품을 팔던 보행꾼인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으나 도무지 이렇다 할 짐작이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행수는 만기가 보았다는 사람의 형용이 이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고삐를 수하 동무에게 건네고 난 뒤 벼랑길 위쪽에 있는 바위 아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직 녹지 않은 눈 위로 낙엽과 눈이 서로 엉켜 어수선하게 흩어진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차가운 눈 위에 코를 박고 쓰러진 채로 혼절한 한 사내를 발견하였다. 위인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볼기짝을 드러낸 채 코를 박고 널부러져 있었다. 굴뚝에서 빼놓은 족제비 꼴인 사내를 발견하는 순간, 동무들을 부를까 하다가 그만두고 앞으로 엎어진 사람을 바로 눕힌 다음 진맥부터 해보았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손바닥에 가느다란 맥박이 가물가물 집혀왔다. 그때까지 명줄이 붙어 있다는 것은 천행이었으나, 강시나 다름없는 사람의 행색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염하다가 내다버린 사람처럼 형용이 흉칙하였다. 입성이란 것을 걸치고 있긴 하였으나, 콧등이 베어나갈 듯한 혹한에 배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시뻘건 동저고리 바람인데 그 또한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누더기가 겨우 거웃을 가리고 있을 뿐 사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긁히고, 찍히고, 파이고, 멍들어서 전신에 앵혈 같은 자국투성이인 것으로 보아 그가 이 산속에서 겪은 경난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괴나리봇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호랑이나 개호주를 만나 욕을 당한 것인지도 몰랐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 소동이 벌어진 것은 일행이 구억터의 자드락길로 몰아치는 바람을 안고 숨차게 오르고 있을 무렵이었다. 문득 기척을 느끼고, 지게를 진 채로 멈추어 선 것은 일행의 선머리에 섰던 도감 정한조였다. 뒤돌아보자 하니, 나귀를 견마 잡고 뒤따라야 할 만기가 바람에 날리는 부들솜을 잡기라도 하듯 두 팔을 허공으로 내저으며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나귀들도 보이지 않았고, 지게조차 벗어던진 난삽한 행색이었다. 잠자리에서나 일할 때나 옷매무새가 허술치 않은 사람으로 소문난 만기가 배자 자락을 대중없이 펄럭이며 숭어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필유곡절이었다. “멈추게들….”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행수의 말에 모두 걸음을 멈추고 지게를 내렸다. 그리고 황망히 달려오는 만기에게 시선을 곤두박았다. “만기가 제사상에 뛰어든 두꺼비처럼 갈팡질팡 왜 저러나?” “그러게요.” “어허…. 만기가 넋은 어디 가고 바지저고리만 남아 학춤을 추고 있네.” 천둥불에 검둥개 날뛰듯 곤두박질을 하며 달려오는 만기에게 일행은 가슴이 뜨끔하도록 놀랐다. 그러나 행수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 불상사에도 섣불리 동요하지 않았다. 나이로 보아선 하잘것없는 사십대 초반을 살고 있었지만, 그의 짧은 생애의 밑바닥에는 그런 부질없는 일 따위로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놀라지 말라는 송진같이 진한 이력이 간직되어 있었다. 그는 달려오는 만기를 향하여 달려나가며 같이 소리를 지르려는 동무들을 제지하였다. 일행들에게 다가온 만기는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몰골로 풀어진 누비배자 섶을 수습하며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그에게 행수가 물었다. “적변을 당한 겐가?” “아… 아닙니다.” “아니라니? 아침나절에 난데없는 저승사자라도 만났다는 겐가?” “아닙니다.” “그럼 뭔가 이 사람아. 딱 부러지게 말을 하게. 이런 꼭두새벽에 난데없는 도깨비에 놀라 이 지경이 된 게야?” “도깨비가 아닌 사람입니다.” “이런 첩첩산중 험고한 곳에서 사람과 마주쳤다면 필경 적변이 아닌가?” “산적은 아닙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자네가 그 꼴 되었네. 길손을 보고 놀라다니…. 자네가 연소하다지만 간담이 그것밖에 안 되나?” “얼른 가보아야 합니다.” “나귀들은 어찌되었나?” “잡도리해 두었습니다.” 그만 한 일에 넋이 나간 만기를 탐탁잖게 여긴 행수가 나귀들에 빗대어 한마디 쥐어박았다. “자네가 무던한 것은 좋으나 모질고 다부지지 못한 게 병통일세. 얼빠진 꼴은 말 못 하는 짐승들보다 못하군.” 날샌 부엉이 꼴로 머쓱해진 만기는 숨 돌리도록 그 자리에 주질러 앉히고 두 사람만을 데리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길손들의 행리 탈취는 예사이고 때로는 부상들의 목숨까지 요절낸다는 산적은 아니라고 장담했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만기가 일행을 붙잡으려고 달려오는 사이 묶어둔 나귀까지 몰고 줄행랑을 놓았을지도 모를 일, 되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허공에 뜬 것처럼 황망했다. 물미장을 단단히 꼬나든 손에는 순식간에 땀이 흠뻑 배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등짐을 정리한 다음 행수 역시 곰방대를 꺼내 한 대 달아 물었다. 그는 지금 막 동이 트려는 동쪽 하늘로 시선을 던지면서 견마 잡았던 만기에게 일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앞장설 테니 자네는 뒤따르게….” “절음난 나귀 때문입니까?” “그렇다네.” 절뚝거리는 나귀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견마 잡는 대신 비교적 가벼운 등짐을 진 것이 거북했었던 만기가 공치사를 하였다. “빛내골 마방에 있는 대장간에 맡기고 올걸 그랬습니다.” “그 마방의 대장장이 심보가 실로 고얀 놈이 아니던가. 여간한 말에는 대꾸조차 않는 그 뻣뻣한 행동거지에 비위가 뒤틀려서 무리를 한 것이야…시절이 수상해서 빈부귀천이 어느덧 물레방아가 된 세상이라지만, 그놈 역시 말구종 주제에 구실아치들처럼 평소에 생트집은 왜 그렇게 많던가. 말도 못 하고 눈망울만 굴리는 짐승을 다루는데도 걸핏하면 매질이고 욕지거리를 퍼붓는 게 아닌가. 그런 몹쓸 위인에게 식솔이나 다름없는 짐승을 맡겨 두고 차마 돌아설 수가 없었네. 그게 이런 무리를 한 단초가 되었네.” 그렇게 말하자, 벼랑길에 쪼그리고 앉아 쇄골이 깊숙하게 파이도록 담배 연기를 들이켜고 있던 동무 하나가 벌떡 일어서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놈 풀무꾼은 어떻구요. 아직 황구의 나이인데도 버릇없이 가탈을 부리고 방자하게 행세하는 꼴을 볼 때마다 배알이 뒤틀립디다…엽전 한두 닢 길미를 바라고 매기 잔등같이 미끄러운 십이령길을 사흘이 멀다 하고 넘나드는 우리들에겐 숫막거리에서 마시는 한 주발 막걸리가 불편한 심기를 달래줄 뿐이지요.” “풀무꾼을 험담하다가 난데없는 막걸리 타령인가. 벌써 속이 출출한 게군. 목이 콩가루 삼킨 듯 칼칼해도 길참을 먹으려면 샛재 주막에 당도해야 하네….” “목젖이 타들어가는 것은 임자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지?” “물귀신처럼 나를 왜 끌고 드나?” “하긴 빛내골 발행할 적에 나귀만 해장술을 마시지 않았나.” “나귀들이 막걸리를 좋아하는 대신 물 마시기는 좋아하지 않으니, 우리와 동행하기는 소나 말보다 낫지. 게다가 소나 말보다 귀와 좆이 홍두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크고, 무거운 짐을 져도 참고 견디는 힘이 사람을 앞지를 정도이니 우리네 행상들과 동행하기는 딱일세.” “행상들뿐만 아니고 행세한다는 선다님들도 나귀를 좋아하지 않나. 좆이 커서 좋아할까.” “잘도 주워섬기는군. 저것들이 한결같이 고집 센 것은 잊어버렸나. 동고동락하려면, 다음부턴 막걸리부터 나눠 마셔야 하네.” 분위기가 거북해질 것을 걱정했던지 성품이 무던한 만기가 얼른 끼어들어 말머리를 돌렸다. “하긴 성냥일 하는 위인들이 오죽 못났으면, 짐승을 상종하여 거드름을 피울까요. 부담을 내려주었으니 샛재까지는 그럭저럭 대겠지요.” “자, 얼추 땀들 들였거든 또 발행일세. 이제 몇 행보 남지 않았네.” 그토록 큰 등짐을 진 행수 정한조가 앞장을 섰다. 샛재까지는 내리받이길보다 치받이길이 많은 데다가 단출하지 못한 등짐 때문에 길 줄이기가 손쉽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 동녘이 훤하게 밝아오고, 콧등을 스치는 바람은 차갑지만 한결 상쾌했다. 늘어지게 쉬었으니 발걸음도 가벼워진 터라, 일행들은 가벼운 농까지 주고받으며 또다시 구억터의 산협길로 접어들었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사계절을 언제나 똑같은 얼굴들과 어울려 똑같은 길을 걷고 있었으나, 나누는 농담과 대화는 언제나 새로웠다. 저잣거리에 당도하면 그곳에서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들과 마주치기 일쑤였고, 그곳에서 만나는 닳고 닳은 거간들이며 말감고며 장주릅들과 물화를 두고 입씨름하고 흥정하면서 듣고 본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다시 모여서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따끈따끈한 것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는 사이, 네 필의 나귀를 혼자서 몰고 있는 만기는 자꾸만 일행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절음난 나귀에게 회초리를 내리지 말라는 행수의 분부가 있었을 때, 십이령길에서 태어나 나이 먹어가는 눈치 빠른 나귀들이 먼저 알아채고, 그때부터 오뉴월 쇠불알 늘어지듯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선머리에서 걷는 행수 일행과 당나귀를 뒤따르는 만기는 먼발치로 멀어지게 되었다. 선머리의 행중들이 산코숭이를 돌아설 때는 뒤따르는 나귀들의 요령 소리가 귀를 모아야 할 정도로 먼 뒤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선머리의 일행은 자주 쉬면서 만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쪽지게를 내렸다가 다시 발행하는 사이에 겪어야 하는 구차스러움이 뼈에 사무치도록 고통스러워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뒤처진 만기를 배려하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멀고 먼 십이령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멀고 먼 십이령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섶다리 아래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여울물 소리가 그윽하고 오묘했다. 그래서 호음교라 부르기도 하는 빛내골(小光里 혹은 召造院) 계곡 위를 가로지르는 행상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갑신년 2월 하순, 시절은 봄빛이라지만 아직은 여우도 눈물을 짜낼 만큼 맵고 짠 추위는 가실 줄 모른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의 벼랑을 정이나 자귀로 찍어 겨우 발 디딜 길을 낸 벼룻길(遷道) 역시 꽁꽁 얼어붙었고, 산기슭에 쌓인 눈도 녹지 않아 계곡을 가르는 여울물 소리 듣기는 이른 시절이었다. 눈밭 속으로 바라보이는 소나무둥치는 붓으로 찍어낸 듯 먹빛이었고, 방울나귀들이 벼룻길을 박차고 걸을 때마다, 눈의 무게로 휘어진 나뭇가지들에서 눈덩이들이 떨어져 벼랑 아래로 흩어졌다. 잎을 모두 떨궈 앙상한 활엽수 가지는 새벽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남쪽 산등성이에 남아 있는 잔설들을 바라보노라면, 흡사 은갈치떼가 산기슭을 따라 서 있는 소나무 가지들 사이를 요리조리 비켜가며 헤엄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겨울철에는 산속에 떨어진 열매나 갈잎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 산양떼가 협곡을 가로질러 계곡으로 내려와 눈 속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는데, 까마귀떼들은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를 요리조리 옮겨다니며 산양떼를 보고 지악스럽게 짖고 있었다. 일행은 밤마다 호랑이가 내려와 판자문을 긁는다는 빛내골 마방집에서 노루잠으로 눈을 붙이는 시늉만 하고 축시말(丑時末)에 일어나 채비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나귀들을 선머리에 세우고 발행한 지 한식경 남짓, 이마에 와닿을 듯 가파른 자드락길을 피가 짚신을 적시도록 걸음을 재촉하였다. 열서넛을 헤아리는 상단 일행들은 그래서 숨소리만 거칠 뿐 농을 건네는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행은 신표를 지닌 부상들이 향도하고 있었지만, 짐바리를 장시까지 져다주고 삯전을 받는 차인꾼들도 섞여 있었다. 울진 해안에 흩어진 염전이나 흥부장에서 내륙의 현동 저잣거리를 거쳐 내성장시까지는 줄잡아 160여 리 상거에 내왕 행보에는 눅게 잡아도 8, 9일이 걸린다. 북에서 남으로 뻗은 백두대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십이령 내왕길에는 관원들의 숙소인 원집도 여럿이었다. 일행의 숙소참이었던 그곳 빛내골 숫막거리는 십이령 중에서도 가장 깊은 산속에 자리잡았다. 관원들이 묵는 원집이 있다지만, 일 년 열두 달에 도임하는 현령 일행이 한두 번 지나다닐 뿐 울적하리만큼 적막한 편이었고, 울진 포구 염전에서 현동과 내성장을 오가는 소금짐들과 고포 미역, 그리고 연안에서 거둔 염장품과 건어물 들이 열두 고개로 이름난 이 산협길을 분주하게 오갈 뿐이다. 십이령 고갯길 여기저기에는 샘수골, 시치재, 말래, 샛재, 저진터, 빛내골과 같은 숫막촌이 여럿이지만, 어느 숫막을 막론하고 해 질 녘에 찾아든 길손들에겐 끼니 값만 받을 뿐 봉놋방은 공짜로 내준다. 그래서 일행들 역시 숫막 울바자 곁에서 써늘하게 식은 새웅밥으로 겨우 허기만 모면하고 봉노에 끼어들어 노루잠으로 때운 것이었다. 외양은 잔망스러워 보잘것없었으나 걸음은 잽싼 네 필의 방울나귀 등에는 꽁꽁 묶어 잡도리한 시겟바리와 무명짐이 거북스럽도록 높이 실려 있다. 나귀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자지러지는 듯한 워낭 소리가 가파른 벼랑길 아래로 따뜻한 봄날 나비떼처럼 흩어졌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걸음을 재촉하고 있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길은 예상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내장조차 얼려놓을 듯 사정없이 옥죄고 드는 된추위가 너무나 혹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상단 일행은 나귀들과 더불어 쉴 참도 두지 않고 걷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등성이를 타고 몰아치는 삭풍 속으로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갈개치는 눈발이 귓불을 할퀴고 볼따구니를 때릴 때마다 깊고 깊은 오한이 오장육부를 타고 핏속까지 파고들어 뼈마디를 얼어붙게 한다. 고개를 쇄골 깊숙이 박고 시선을 내리깔고 발걸음을 옮겨놓지만, 옷깃 속으로 파고드는 서럽고 매서운 설한풍은 막을 길이 없다. 갈 길은 여명 속에 희뿌옇게 깔려 이수(里數)조차 짐작하기 어려운데, 감발 속에 감춘 발은 언제부턴가 돌덩이처럼 얼어붙었다. 그런데 맨 뒤를 따르는 나귀 등에는 작은 부담농 하나만 달랑 얹혀 있다. 자세히 보니 그 나귀는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절뚝거리고 있는 절음난 나귀였다. 등에 짐을 실은 채로 앞장 선 암놈 궁둥이에 올라타려 하다가 앞굽 하나를 돌덩이에 짓찧긴 모양인데, 아주 으스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트기 전에 서둘러 발행할 만큼 여정이 다급한데 나귀 한 마리가 굽통을 다쳐 일행 모두의 심기가 불편하다.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숨죽이고 부지런히 걷는다면, 성황사와 비석거리가 있는 샛재까지 산길 30여 리는 아침 선반머리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샛재 들머리에 들어서면 깊은 산속인데도 여름에는 자지러질 정도로 차갑고,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오를 정도로 뜨거운 샘이 있어, 고갯길을 넘나드는 상단들이 부담을 풀고 요기를 하거나 유숙하고 떠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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