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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일본대지진 때 실종된 아내 찾아 10년째 바다 뒤지는 남편

    동일본대지진 때 실종된 아내 찾아 10년째 바다 뒤지는 남편

    10년 전 오늘, 동일본대지진으로 아내를 잃은 남편은 아내의 흔적을 찾아 매주 바다로 뛰어든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힘에 부칠 법도 한데 한주도 거르는 법이 없다. 일본 미야기현 오시카군 오나가와정에 사는 다카마쓰 야스오(64)의 얘기다. 3일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지역 석간 '이시노마키 일일신문'은 2011년 3월 11일 대지진 당시 실종된 아내를 찾아다니는 다카마쓰의 사연을 소개했다. 대지진이 있던 날, 다카마쓰의 아내 유코(당시 47)는 미야기현 77은행 오나가와지점에서 근무하다 쓰나미에 휩쓸렸다.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은행 옥상으로 대피했지만, 20m 높이 해일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다카마쓰는 "그날 옥상으로 대피한 은행 직원 13명 중 12명이 쓰나미로 숨지거나 실종됐다. 아내도 그중 한 명이었다"고 밝혔다.얼마 후 은행 근처에서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실종 직전 아내가 남편에게 쓴 마지막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3월 11일 오후 3시 25분, 옥상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물을 보며 아내는 "괜찮아? 집에 가고 싶다"는 문자를 전송하고 쓰나미와 함께 사라졌다. 남편은 가슴이 미어졌다. 다카마쓰는 "아내 휴대전화 전원을 켰는데, 나에게 미처 도착하지 않은 마지막 문자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얼마나 집에 오고 싶었겠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은 어떻게든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워 직접 바닷속을 뒤졌다. 2014년 4월 자격증 취득 후 현재까지 일주일에 최소 한 번씩 470여 차례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심 40m 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닷속까지 들어가 아내를 찾아 헤맸다. 다카마쓰는 "바다에 몸을 담그면 마치 아내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내 시신이라도 찾아 좋아하는 침대에서 재우고 편안히 묻어주고 싶다"고 말했다.작은 유류품 하나조차 발견하지 못했지만 남편은 수색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다카마쓰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영정사진 속 아내를 바라보며 "몇 년이 걸리더라도 아내를 찾을 때까지 잠수를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아내를 꼭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 내 체력이 다해 잠수할 수 없는 날이 오면 그때가 끝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아내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다카마쓰의 곁에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26살 외동딸을 잃은 나리타 히로미(60)가 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히로미의 딸 역시 대지진 때 은행 옥상으로 대피했다가 쓰나미에 휩쓸려 행방불명됐다. 그 후로 다카마쓰와 함께 다이빙을 배운 히로미 역시 딸을 찾아서 온 바다를 뒤졌다.지난달 11일 대지진 10주년을 한 달 앞두고 일본 해상보안청이 실종자 수색 작전을 펼쳤을 때도 두 사람은 함께 오나가와만을 찾았다. 일본 지지통신은 이날 다카마쓰와 히로미 등 대지진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향해 손을 모으고 초조하게 수색 작업을 지켜봤다고 보도했다. 작업에 투입된 잠수부 8명이 주인을 알 수 없는 유류품을 일부 수거했으나 수색에 진척은 없었다. 해상보안청 관계자는 "아직도 많은 실종자가 바다에 있다. 단 한 명이라도 가족 곁으로 돌려 보내주고 싶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수색을 지켜본 히로미는 "이 바다 어딘가에 딸이 있다. 찾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포기할 수 없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다카마쓰 역시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면서 "유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유류품이라도 찾으면 좋겠다"며 애끊는 심정을 전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일본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 대지진으로 일본에서는 1만5894명이 숨지고 2561명이 실종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아동학대 ‘원스톱 센터’가 먼저다”…학대업무 최일선 경찰관의 제안

    “아동학대 ‘원스톱 센터’가 먼저다”…학대업무 최일선 경찰관의 제안

    “아이를 고치고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이해하고 소통해주세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바람직한 훈육방법’ 리플릿을 제작한 학대예방경찰관 김종수(54.전북 전주 완산경찰서) 경위는 11일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훈육은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말했다. 김 경위가 제작한 리플릿에서는 ▲정중한 요청 ▲나를 전달하는 법 ▲보상 ▲타당한 논리 등 학대 예방과 자녀 훈육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을 간결하면서 이해하기 쉽도록 소개하고 있다. 1998년 3월 경찰에 첫발을 디딘 김 경위는 23년 동안 수사와 학교전담 경찰관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한 베테랑.학대피해 최일선에서 일하는 그는 1남 1녀를 키우면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매월 아동학대 예방 뉴스레터를 제작, 관내 각급 학교에 배포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김 경위가 배포한 뉴스레터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학부모·학생들과 공유하고 있다. 그가 리플릿과 뉴스레터를 제작하게 된 동기는 현장에 출동한 젊은 상담원과 가해자들간에 소통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이를 해결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기 위해서다. “학대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 상담을 하다 보면 안타까운 가정이 너무 많습니다. 성학대 피해가정을 방문할 때가 가장 곤혹스럽지요” 2019년부터 학대예방 업무를 맡고 있는 김 경위는 “요즘 혼기가 늦어지다 보니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세대·인식 차이가 상대적으로 커져 학대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아동이 분노조절장애나 자해습성이 있는 경우 부모에 의한 학대가 자주 발생한다며 “아동을 통제하기 위해 강압적인 언행을 사용하기 보다 정확히 진단하고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학대피해 가정에 출동하면 자신의 자녀 양육 경험을 얘기하며 가해자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는데 주력해 상담 효과를 극대화 한다. 사후 방문 모니터링을 할 때는 사비를 털어 간식거리를 사들고 찾아가는게 기본이다. 친근감을 높여 마음을 터놓고 얘기해야 재발방지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해야 하지만 보호시설이 여의치 않을 때는 내 가족의 일처럼 유관 기관에 일일이 연락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주기도 한다. “학대신고가 들어오면 경찰, 지자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동행 출동합니다. 하지만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위해서는 원스톱 센터(One-stop Center) 설치가 시급합니다” 김 경위는 “아동학대는 재발방지가 가장 중요한 만큼 유관기관이 1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게 중요하다”며 “학대 가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려면 기관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기관은 학대피해 학생을 상담하려 할 경우 학부모 동의를 받아오라고 요청합니다. 피해자 조사에 가해자 동의를 받아오라는 상황이 발생하지요” 그는 학대피해는 학생이 많은 만큼 교육기관도 학대 전담부서와 직원을 배치하고 적극 협조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햐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발 방지 사례관리를 위해 가정을 방문할 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 가해자들이 교묘히 기피할 경우가 많습니다. 사건 초기와 같이 강제성을 수반할 수 있어야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김 경위는 “학대업무에는 미혼이나 젊은 층 보다 자녀 양육과 사회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직원을 배치하고 학대피해 장애 아동 보호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인권과 직결된 학대피해 예방과 재발방지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거듭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일본 이어…중국어선 모리셔스서 좌초, 기름유출 우려에 화들짝

    일본 이어…중국어선 모리셔스서 좌초, 기름유출 우려에 화들짝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 해역에서 참치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좌초됐다. 8일 AFP통신은 모리셔스 뿌엥뜨 오 사블뤼 앞바다에서 357t급 중국 선박이 좌초돼 관련 당국이 사고 수습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열대폭풍 아이만 영향으로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 7일 중국 선박 루롱위안 588호(鲁荣远渔 588)가 조난 호출을 울렸다. 해양경비대가 구조선을 급파했지만 거친 파도에 접근이 어려웠다. 현지 어민도 손을 보탰으나 역부족이었다. 즉각 구조 헬기를 띄운 모리셔스 경찰은 선박에 타고 있던 중국인 14명, 인도네시아인 1명, 필리핀인 1명 등 선원 16명을 대피시켰다. 선원들은 현재 코로나19 지침에 따로 모처에 격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연료용 기름 130t이 유출될 우려가 있었다. 이에 모리셔스 당국은 예인선을 동원해 좌초 선박을 이동시키려 했으나 악천후로 작업에 애를 먹었다. 수드히르 마우두 모리셔스 어업부 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기름 유출에 대비해 일단 선박 310m 주변으로 부유식 붐을 띄워 통제 중”이라고 밝혔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잠수부들이 수중 조사 벌인 결과 사고 선박에 이렇다 할 손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양 전 기름을 퍼내는 데는 앞으로 나흘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좌초 지점이 수심 2.5~4m 얕은 바다라 수습 선박을 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프랑스국제라디오방송(RFI)는 전했다. 선체 제거를 위한 인양 작업은 일단 기름 펌핑 작업이 끝난 4~5일 뒤 이뤄진다. 조만간 그리스 인양회사 전문가들이 상황을 점거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사고 선박은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룽청 소재의 룽청시용진수산유한회사 소속으로 모항은 시다오항이다. 길이 40.22m, 총톤수 357t의 대형 쌍끌이 저인망어선(트롤선)으로 2013년 건조됐다. 주로 오징어나 참치잡이에 동원됐다. 불법조업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일본 선박이 좌초된 뿌엥뜨 데스니 해안과 정반대편에서 벌어졌다. 하마터면 섬 양쪽 바다가 모두 기름 범벅이 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모리셔스는 지난해 7월 일본 3대 해운사인 쇼센미쓰이의 화물선 ‘MV 와카시오호’ 좌초로 큰 피해를 봤다. 선체가 갈라지면서 약 1000t의 원유가 새어 나와 천혜의 자연환경이 훼손됐다. 사고 이후 돌고래 떼죽음도 관찰돼 환경운동가 사이에 우려가 번지기도 했다. 7개월이 지난 지금도 현지 해양 오염과 어업 활동은 원상복구되지 않았다. 중국 어선 좌초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에서는 일본 선박 사고 때와 같은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왔으나 다행히 현재까지는 큰 피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아동학대 늘어나는데 전담 콘트롤타워가 없다

    아동학대 늘어나는데 전담 콘트롤타워가 없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들이 합동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전담 콘트롤타워나 ‘원스톱 센터(One-Stop Center)’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9일 전북도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 지자체,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이 동행 출동 하고 있으나 업무처리 방식이 각기 다르고 정보 공유 절차도 복잡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아동학대 사건이 112에 접수되면 경찰에서는 여성청소년 수사팀과 아동학대예방 담당 경찰관이 함께 현장에 긴급 출동해 신고자와 상담을 하고 가해자를 조사한다. 또 지자체에서는 시·군·구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아동보호전담기관 직원도 경찰과 함께 현장에 나간다. 이들 기관은 현장에 동행 출동하지만 사건을 파악하고 처리하는 시각과 방식은 각기 다르다. 경찰은 일단 피해자와 가해자 신원 확인, 실제 학대 여부, 학대 정도를 확인한 다음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판단하는데 주력한다. 반면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아동의 입장에서 학대 여부, 가해자와 분리 필요성을 판단해 아보전으로 사건을 이관한다. 사건을 넘겨 받은 아보전은 피해 아동에 대한 전문가 심층 상담, 치료, 보호, 재발 방지를 위한 사례 관리 등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현장에서 철수한 이후에는 업무처리 상황이나 사례 관리 상태가 유기적으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유관 기관끼리도 특정 사건에 대해 시스템 상에서 확인이 불가능해 일일이 문의를 해야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특히, 학대 피해 아동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재학생이 많지만 교육기관은 학대피해 사건 처리 유관기관에서 빠져 있어 협조가 되지 않는 실정이다. 실제로 일선 경찰서와 지자체, 아보전이 학교를 방문해 학대피해 상황을 조사하려 면 학부모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거부당하기 일쑤다. 이때문에 아동학대 가해자가 부모일 경우 조사 전에 보안이 누설돼 담당 공무원들이 난감한 상황에 빠지거나 사건이 묻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경찰이 학대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해 가정을 방문하면 “왜 자꾸 찾아오느냐”, “어떤 근거로 귀찮게 하느냐”며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조사를 거부당하기도 한다. 이는 경찰이 내부적으로 사례관리를 하도록 지시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는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아동학대사건을 종합적으로 처리하고 사후 관리를 하며 재발 방지 업무를 전담하는 원스톱 센터 설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신고, 검사, 치료, 법률 지원까지 한 자리에서 모두 지원되는 원스톱 센터를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에대해 전북도 관계자는 “아동학대 업무는 예전에는 민간 위탁 기관인 아보전에서 도맡아 했는데 공공의 영역으로 이관돼 처리되는 과도기여서 현장에서 매끄럽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신속·정확한 정보 공유와 최선의 대응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일관된 체제 구축이 아쉽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전통치마 밑 지나면 불행… 미얀마 군부 막는 ‘타메인 시위’

    전통치마 밑 지나면 불행… 미얀마 군부 막는 ‘타메인 시위’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38일째인 8일까지 군경에 의해 50여명이 희생된 가운데 양곤의 시위 현장 곳곳에 미얀마 여성들의 전통 통치마인 ‘타메인’(Htamain)이 높게 맨 빨랫줄에 걸렸다.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한 이날 시위대는 타메인과 관련된 미얀마 고유의 ‘여성 비하적 미신’을 저항 수단으로 적극 채택했다. 미신에 따르면 타메인을 걸어 놓은 빨랫줄 아래를 통과하는 남성은 ‘분’(Bhun)을 잃는다. 미얀마어로 분이란 행운, 영향력, 권력, 영광 등을 뜻한다. 시위대가 마을 어귀에 쳐둔 타메인 앞에서 미신을 믿는 군경이 불행해질까 두려워 진입을 주저하면, 타메인을 치우는 시간만큼 군경 진입 시간이 지연된다. 이처럼 군경의 폭력진압 강도가 세지는 가운데 미얀마 여성들이 짜낸 묘책이 시위대 보호 역할을 해내고 있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군부에 대항해 파업하는 즉시 국가에서 받던 월급이 끊기는 공무원들도 국내외 도움에 힘입어 시민불복종 운동(CDM) 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군부가 복직 서약서에 서명한 공무원들에게만 월급을 지급하겠다고 압박을 가하자, 파업 중인 공무원들의 CDM을 응원하는 지원이 답지했다. 미얀마의 ‘영웅을 지원한다’라는 이름의 시민단체는 파업 중인 공무원들에게 음식과 쉼터를 지원하고 있다. 해외 거주 미얀마인들은 후원 단체를 만들어 모금한 외화를 미얀마 주재 사기업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 중이다.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은 6600만원가량을 모금했고 일본에서도 8000만원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6700만원을 모금했다. 한편 미얀마 군부의 시위 진압은 날로 강경해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북부 카친주 미치나시에서 시위 참여자 2명이 군경의 총격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현지 매체인 미얀마 나우는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수만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군경의 과격한 진압으로 최소 6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중 10대 한 명을 포함한 2명은 중상으로 전해졌다. 또 군경은 심야에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관계자들을 체포하면서 주택가에서도 총기를 발포해 시민들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한국전 예수’ 에밀 카폰 신부 유해 70년 만에 찾았다

    ‘한국전 예수’ 에밀 카폰 신부 유해 70년 만에 찾았다

    “날 위해 울지 마시오. 난 내가 항상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갈 것이니. 그곳에 도착하면 당신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소.” 한국전쟁 당시 자신을 희생해 전쟁터와 포로수용소 등지에서 아군·적군을 가리지 않고 돌본 뒤, 세상을 떠날 때마저 이런 말을 남겼던 ‘한국전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70년 만에 발견됐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지난 5일(현지시간) 카폰의 유해를 70년 만에 하와이주의 국립태평양 묘지에 안장된 신원미상의 참전용사 유해 중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캔자스주의 가난한 농가 태생인 카폰은 1950년 7월 군종 신부로 한국전에 파견됐다. 그가 소속된 미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제3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원산까지 진격했지만 중공군의 반격으로 평안북도 운산에서 포위됐고, 곧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카폰은 탈출하지 않고 전선에 남아 부상병들을 대피시켰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결국 11월 2일 중공군에게 생포됐지만, 부상병을 사살하려는 중공군의 총구를 밀어내 부상병을 지켰고, 전쟁 중 다친 중공군 장교까지 돌보기도 했다. 이후 끌려간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에서도 카폰은 거동이 불편한 부상병의 옷을 대신 빨았고, 적군 저장고에서 음식과 약을 훔쳐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정작 자신은 이질과 폐렴으로 1951년 5월 23일 35세에 사망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이 전쟁 후 카폰에 대한 얘기를 퍼뜨려 1954년 그에 대한 책이 출간됐다. 1993년 로마 교황청은 성인으로 추앙하는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카폰에게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주었다. 포로수용소에서 카폰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전쟁 생존자 마이크 도우는 NBC방송에 “당시 생존자 중 최소한 절반은 카폰에게 생명을 빚졌다”고 말했다. CNN은 “시신을 찾을 희망을 버렸던 카폰 일가가 충격을 받았다”며 아직 묘소를 정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새 역사 뒤 ‘100m 방사능 포대’… 후쿠시마 상처 숨기고 있었다

    새 역사 뒤 ‘100m 방사능 포대’… 후쿠시마 상처 숨기고 있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지진과 거대 쓰나미가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등 도호쿠 지역을 중심으로 열도의 동부를 강타했다. 1만 8000여명이 사망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생활기반이 무너져내린 지 10년. 동일본대지진의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건물과 도로는 시간의 흐름 속에 또 다른 형태로 모양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치유되지 않은 비극의 트라우마는 사람들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속에는 피해지역의 고통을 무시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도 섞여 있었다. ‘부흥 올림픽’을 선전하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그대로 방류하려는 정부를 향한 원망도 전해졌다. 지난 6일 아침 도호쿠 지역 최대 도시 센다이를 출발한 히타치 특급열차가 1시간 10여분을 달려 오전 11시 30분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에 도착했다. “방사능 오염지역이니 최대한 빨리 취재를 끝내고 그곳을 떠나라”, “모자와 장갑은 필수. 방사능 먼지가 날릴 수 있으니 비포장도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 등 피폭 예방을 위한 조언은 첫발을 들이는 기자의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주말 오전 시간대였지만, 10량짜리 열차에서 내린 사람은 기자 외에는 한 명도 없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이튿날부터 순차적으로 수소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4㎞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은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주민 숫자가 ‘0명’인 전면봉쇄 지역이다. 그나마 지난해 3월 새로 단장한 후타바역이 재개통되면서 역 주변 지역 출입이 제한적으로 풀렸다. 역사 뒤쪽에 조성되고 있는 택지 공간에는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걷어낸 대형 검정 포대들이 3중, 4중으로 쌓인 채 100m 이상 행렬을 이뤘다. 역 정면에 위치한 과거 최대의 번화가 신잔 지역은 슈퍼, 약국, 관공서 건물들이 무너지고 뜯겨지고 기울어진 상태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외벽에 걸린 시계들은 정지된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3시간가량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같은 후쿠시마현 남부 이와키시에서 현장을 둘러보러 온 야마네 마이코(44·작가)와 그의 친구들 등 단 3명뿐이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거리를 둘러보는 관광버스가 딱 1대 지나갔다.한때 이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야마네는 “지난해 3월 전까지는 옛 주민들도 당국의 통행허가를 받아야 마을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나마 지금은 제한이 약간 풀렸다”면서 “그러나 10년 만에 고향에 와 본 그들이 예전의 집을 둘러보며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복구나 부흥 성과에 대해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 같다”면서도 “다만 도쿄 중앙정부가 피해지역 주민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좀더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후타바마치는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을 보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여름이면 유명한 지역축제가 벌어지는 곳이었다. 후타바 해수욕장은 인근에서 손꼽히는 명소였다. 후타바 장미정원도 후쿠시마현을 대표하는 유명한 주말 나들이 장소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죽은 마을’이 되면서 10년 전 2584가구, 6963명 주민들은 모두 열도의 최남단 오키나와에서부터 최북단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로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이곳 출신으로 유튜버 활동을 하는 슈이치로(27)는 대지진 10주년을 맞은 올해 주요 피해지역을 돌며 취재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기성 미디어가 아니라 우리 젊은 세대의 시선으로 현실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해 복구의 방향이 피해 지역 주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고 우선순위도 잘못됐다”며 일본 정부가 ‘부흥 올림픽’으로 포장해 올여름 강행하려는 도쿄올림픽을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했다. “후타바 신역사는 근사하게 지어 놨지만 이곳에서 2~3㎞ 떨어진 곳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실제로는 아닌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복구가 거의 된 것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속사정을 모르는 도쿄 등 대도시 사람들은 ‘저 정도로까지 정상화됐는데 왜 후쿠시마는 계속해서 우는소리를 하느냐’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향후 제대로 지원받기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후타바마치가 방사능의 비극을 안고 있는 곳이라면 전날인 5일 찾았던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하마 지구는 지역 전체 삶의 기반이 바닷물과 함께 송두리째 휩쓸려 간 곳이었다. 대지진 직전에는 약 800가구, 2100여명이 살고 있었지만 쓰나미로 9%에 해당하는 186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곳을 덮친 10m 높이 바닷물은 해안가 평야 지역에 들이닥친 쓰나미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예전에 집들이 즐비했던 지역은 잡초가 우거진 공터가 돼 있었다. 당시 폐허가 된 집들은 대부분 철거됐으나 일부 잔해들은 당시 참상을 전하기 위한 전시공간으로 원래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바다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아라하마초등학교는 1층부터 옥상까지 전시공간으로 일반에 개방돼 있었다. 학교는 2016년 3월 공식적으로 폐교했으나, 다른 지역의 폐허가 된 학교들과 달리 보존 대상으로 지정됐다. 대지진 발생일부터 다음날까지 320명의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대피해 목숨을 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최근 도호쿠 해안에는 쓰나미를 막기 위한 총 400㎞ 길이의 방조제가 지어졌다. 주민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방조제 근처를 산책하던 60대 여성은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 “돈만 억수로 들였지 지난번처럼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오히려 높이 쌓아올린 방조제 때문에 수면과 파도의 상황 등 바다의 형세가 가려져 더 위험하게 됐어요. 쓰나미가 닥치더라도 쉽게 보이지 않으니 대피가 늦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후쿠시마현의 농민들이 불쌍해서 현지에서 나온 채소나 과일은 먹고 있지만 그곳에서 잡힌 생선은 절대로 사지도 먹지도 않는다”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이쪽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강행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쿠시마·미야기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긴급한 재난 때 집단보다 각자도생” 10년 전 지진이 日인식도 흔들었다

    “긴급한 재난 때 집단보다 각자도생” 10년 전 지진이 日인식도 흔들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집단의 규칙과 매뉴얼에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을 통해 유사시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윤영수(52) 일본 도호쿠복지대 교수는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에서 재난대피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꿔 놓은 전기가 됐다”고 말했다. 행정학 전문가인 그는 10년 전 당시 학교가 소재한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참사 현장에서 직접 상황수습과 피해자 지원을 담당했던 경험이 있다. 재난 대응과 복구는 그의 커다란 관심 분야다. -동일본대지진이 일본인들의 의식구조에 미친 영향이라면. “일본인의 삶에 대한 의식이 2011년 3월 이후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쓰나미 발생 당시 이시노마키시의 오카와초등학교에서 교사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피신한 아이들은 살아남았고, 교사의 지시에 순응했던 아이들은 모두 희생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 나를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개념은 재난대응을 넘어서 인생관이나 일상생활에도 파급됐다. -참사 발생 10년이 지났어도 피해지역의 상처는 여전한 듯하다. “물리적인 복구 못지않게 지금 절실한 것은 정신적인 치유다. 당시의 피해자들은 아직도 숨쉴 공간이 부족하다. 재난 이후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떠난 사람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출신인지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후쿠시마, 미야기 등 도호쿠 지방에서 이주한 게 알려졌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을 차별과 따돌림이 두렵기 때문이다. 재해 직후인 2012~2013년 후쿠시마현에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급격히 뛰었는데, 상당수가 일부러 달리는 차에 몸을 던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이 한국에 일러 주는 시사점이 있다면. “재난은 언제 어디에서 닥칠지 모른다는 인식 아래 비상시 대응책을 보다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코로나19에서는 엉망인 모습을 보였지만 지진, 화재 등 재난에 대한 대응 시스템은 매우 잘돼 있다. 필요한 부분은 한국도 도입해야 한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면. “잘 짜여진 자원봉사 체계다. 동일본대지진 피해 복구 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중장비로 안 되고 사람의 손이 필요한 부분에는 어김없이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진흙탕에 파묻힌 가족사진을 깨끗하게 세척·복원하는 일, 피난생활을 하는 어린이들과 놀아 주는 것은 언뜻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 있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아, 누군가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구나’ 하는 심리적 안정을 줌으로써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된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화려한 건물 뒤 ‘방사능 포대’… 후쿠시마 상처 숨기고 있었다

    화려한 건물 뒤 ‘방사능 포대’… 후쿠시마 상처 숨기고 있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지진과 거대 쓰나미가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등 도호쿠 지역을 중심으로 열도의 동부를 강타했다. 1만 8000여명이 사망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생활기반이 무너져내린 지 10년. 동일본대지진의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건물과 도로는 시간의 흐름 속에 또 다른 형태로 모양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치유되지 않은 비극의 트라우마는 사람들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속에는 피해지역의 고통을 무시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도 섞여 있었다. ‘부흥 올림픽’을 선전하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그대로 방류하려는 정부를 향한 원망도 전해졌다.지난 6일 아침 도호쿠 지역 최대 도시 센다이를 출발한 히타치 특급열차가 1시간 10여분을 달려 오전 11시 30분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에 도착했다. “방사능 오염지역이니 최대한 빨리 취재를 끝내고 그곳을 떠나라”, “모자와 장갑은 필수. 방사능 먼지가 날릴 수 있으니 비포장도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 등 피폭 예방을 위한 조언은 첫발을 들이는 기자의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주말 오전 시간대였지만, 10량짜리 열차에서 내린 사람은 기자 외에는 한 명도 없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이튿날부터 순차적으로 수소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4㎞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은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주민 숫자가 ‘0명’인 전면봉쇄 지역이다. 그나마 지난해 3월 새로 단장한 후타바역이 재개통되면서 역 주변 지역 출입이 제한적으로 풀렸다. 역사 뒤쪽에 조성되고 있는 택지 공간에는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걷어낸 대형 검정 포대들이 3중, 4중으로 쌓인 채 100m 이상 행렬을 이뤘다. 역 정면에 위치한 과거 최대의 번화가 신잔 지역은 슈퍼, 약국, 관공서 건물들이 무너지고 뜯겨지고 기울어진 상태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외벽에 걸린 시계들은 정지된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3시간가량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같은 후쿠시마현 남부 이와키시에서 현장을 둘러보러 온 야마네 마이코(44·작가)와 그의 친구들 등 단 3명뿐이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거리를 둘러보는 관광버스가 딱 1대 지나갔다. 한때 이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야마네는 “지난해 3월 전까지는 옛 주민들도 당국의 통행허가를 받아야 마을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나마 지금은 제한이 약간 풀렸다”면서 “그러나 10년 만에 고향에 와 본 그들이 예전의 집을 둘러보며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복구나 부흥 성과에 대해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 같다”면서도 “다만 도쿄 중앙정부가 피해지역 주민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좀더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후타바마치는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을 보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여름이면 유명한 지역축제가 벌어지는 곳이었다. 후타바 해수욕장은 인근에서 손꼽히는 명소였다. 후타바 장미정원도 후쿠시마현을 대표하는 유명한 주말 나들이 장소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죽은 마을’이 되면서 10년 전 2584가구, 6963명 주민들은 모두 열도의 최남단 오키나와에서부터 최북단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로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이곳 출신으로 유튜버 활동을 하는 슈이치로(27)는 대지진 10주년을 맞은 올해 주요 피해지역을 돌며 취재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기성 미디어가 아니라 우리 젊은 세대의 시선으로 현실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해 복구의 방향이 피해 지역 주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고 우선순위도 잘못됐다”며 일본 정부가 ‘부흥 올림픽’으로 포장해 올여름 강행하려는 도쿄올림픽을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했다. “후타바 신역사는 근사하게 지어 놨지만 이곳에서 2~3㎞ 떨어진 곳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실제로는 아닌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복구가 거의 된 것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속사정을 모르는 도쿄 등 대도시 사람들은 ‘저 정도로까지 정상화됐는데 왜 후쿠시마는 계속해서 우는소리를 하느냐’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향후 제대로 지원받기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후타마바치가 방사능의 비극을 안고 있는 곳이라면 전날인 5일 찾았던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하마 지구는 지역 전체 삶의 기반이 바닷물과 함께 송두리째 휩쓸려 간 곳이었다. 대지진 직전에는 약 800가구, 2100여명이 살고 있었지만 쓰나미로 9%에 해당하는 186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곳을 덮친 10m 높이 바닷물은 해안가 평야 지역에 들이닥친 쓰나미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집들이 즐비했던 지역은 잡초가 우거진 공터가 돼 있었다. 당시 폐허가 된 집들은 대부분 철거됐으나 일부 잔해들은 당시 참상을 전하기 위한 전시공간으로 원래 상태 보존돼 있었다. 바다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아라하마초등학교는 1층부터 옥상까지 전시공간으로 일반에 개방돼 있었다. 학교는 2016년 3월 공식적으로 폐교했으나, 다른 지역의 폐허가 된 학교들과 달리 보존 대상으로 지정됐다. 대지진 발생일부터 다음날까지 320명의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대피해 목숨을 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최근 이곳에는 쓰나미를 막기 위한 400㎞ 길이의 방조제가 지어졌다. 주민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방조제 근처를 산책하던 60대 여성은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 “돈만 억수로 들였지 지난번처럼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오히려 높이 쌓아올린 방조제 때문에 수면과 파도의 상황 등 바다의 형세가 가려져 더 위험하게 됐어요. 쓰나미가 닥치더라도 쉽게 보이지 않으니 대피가 늦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후쿠시마현의 농민들이 불쌍해서 현지에서 나온 채소나 과일은 먹고 있지만 그곳에서 잡힌 생선은 절대로 사지도 먹지도 않는다”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이쪽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강행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쿠시마·미야기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방사능 폐기물 그때 그대로… 기차역 내린 사람은 기자뿐

    방사능 폐기물 그때 그대로… 기차역 내린 사람은 기자뿐

    동일본대지진 10년… 후쿠시마 ‘제1원전’ 4㎞ 떨어진 후타바마치 가보니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지진과 거대 쓰나미가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등 도호쿠 지역을 중심으로 열도의 동부를 강타했다. 1만 8000여명이 사망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생활기반이 무너져내린 지 10년. 동일본대지진의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건물과 도로는 시간의 흐름 속에 또 다른 형태로 모양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치유되지 않은 비극의 트라우마는 사람들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속에는 피해지역의 고통을 무시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도 섞여 있었다. ‘부흥 올림픽’을 선전하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그대로 방류하려는 정부를 향한 원망도 전해졌다. 지난 6일 아침 도호쿠 지역 최대 도시 센다이를 출발한 히타치 특급열차가 1시간 10여분을 달려 오전 11시 30분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에 도착했다. “방사능 오염지역이니 최대한 빨리 취재를 끝내고 그곳을 떠나라”, “모자와 장갑은 필수. 방사능 먼지가 날릴 수 있으니 비포장도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 등 피폭 예방을 위한 조언은 첫발을 들이는 기자의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주말 오전 시간대였지만, 10량짜리 열차에서 내린 사람은 기자 외에는 한 명도 없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이튿날부터 순차적으로 수소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4㎞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은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주민 숫자가 ‘0명’인 전면봉쇄 지역이다. 그나마 지난해 3월 새로 단장한 후타바역이 재개통되면서 역 주변 지역 출입이 제한적으로 풀렸다. 역사 뒤쪽에 조성되고 있는 택지 공간에는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걷어낸 대형 검정 포대들이 3중, 4중으로 쌓인 채 100m 이상 행렬을 이뤘다. 역 정면에 위치한 과거 최대의 번화가 신잔 지역은 슈퍼, 약국, 관공서 건물들이 무너지고 뜯겨지고 기울어진 상태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외벽에 걸린 시계들은 정지된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3시간가량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같은 후쿠시마현 남부 이와키시에서 현장을 둘러보러 온 야마네 마이코(44·작가)와 그의 친구들 등 단 3명뿐이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거리를 둘러보는 관광버스가 딱 1대 지나갔다.한때 이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야마네는 “지난해 3월 전까지는 옛 주민들도 당국의 통행허가를 받아야 마을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제한이 약간 풀렸다”면서 “그러나 1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예전의 마을을 둘러보며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복구나 부흥 성과에 대해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 같다”면서도 “다만 도쿄 중앙정부가 피해지역 주민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좀더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후타바마치는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을 보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여름이면 유명한 지역축제가 벌어지는 곳이었다. 후타바 해수욕장은 인근에서 손꼽히는 명소였다. 후타바 장미정원도 후쿠시마현을 대표하는 유명한 주말 나들이 장소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죽은 마을’이 되면서 10년 전 2584가구, 6963명 주민들은 모두 열도의 최남단 오키나와에서부터 최북단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로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이곳 출신으로 유튜버 활동을 하는 슈이치로(27)는 대지진 10주년을 맞은 올해 주요 피해지역을 돌며 취재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기성 미디어가 아니라 우리 젊은 세대의 시선으로 현실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해 복구의 방향이 피해 지역 주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고 우선순위도 잘못됐다”며 일본 정부가 ‘부흥 올림픽’으로 포장해 올여름 강행하려는 도쿄올림픽을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했다. “후타바 신역사는 근사하게 지어 놨지만 이곳에서 2~3㎞ 떨어진 곳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실제로는 아닌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복구가 거의 된 것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속사정을 모르는 도쿄 등 대도시 사람들은 ‘저 정도로까지 정상화됐는데 왜 후쿠시마는 계속해서 우는소리를 하느냐’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향후 제대로 지원받기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후타바마치가 방사능의 비극을 안고 있는 곳이라면 전날인 5일 찾았던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하마 지구는 지역 전체 삶의 기반이 바닷물과 함께 송두리째 휩쓸려 간 곳이었다. 대지진 직전에는 약 800가구, 2100여명이 살고 있었지만 쓰나미로 9%에 해당하는 186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곳을 덮친 10m 높이 바닷물은 해안가 평야 지역에 들이닥친 쓰나미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예전에 집들이 즐비했던 지역은 잡초가 우거진 공터가 돼 있었다. 당시 폐허가 된 집들은 대부분 철거됐으나 일부 잔해들은 당시 참상을 전하기 위한 전시공간으로 원래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바다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아라하마초등학교는 1층부터 옥상까지 전시공간으로 일반에 개방돼 있었다. 학교는 2016년 3월 공식적으로 폐교했으나, 다른 지역의 폐허가 된 학교들과 달리 보존 대상으로 지정됐다. 대지진 발생일부터 다음날까지 320명의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옥상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최근 도호쿠 해안에는 쓰나미를 막기 위한 총 400㎞ 길이의 방조제가 지어졌다. 주민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방조제 근처를 산책하던 60대 여성은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 “돈만 억수로 들였지 지난번처럼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오히려 높이 쌓아올린 방조제 때문에 수면과 파도의 상황 등 바다의 형세가 가려져 더 위험하게 됐어요. 쓰나미가 닥치더라도 쉽게 보이지 않으니 대피가 늦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후쿠시마현의 농민들이 불쌍해서 현지에서 나온 채소나 과일은 먹고 있지만 그곳에서 잡힌 생선은 절대로 사지도 먹지도 않는다”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이쪽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강행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쿠시마·미야기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지프가 제단’ 아군도 적군도 돌본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 70년 만에 확인

    ‘지프가 제단’ 아군도 적군도 돌본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 70년 만에 확인

    한국전쟁 때 군용 지프 위에 제단을 차려 미사를 집전했고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박애를 실천하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70년 만에 확인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5일(현지시간) 캔자스주 출신의 군종 신부 카폰의 유해를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국립태평양묘지의 신원 미상 장병(652구) 묘역에서 확인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치과 기록과 유전자도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조카 레이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삼촌의 시신을 거의 온전한 상태로 찾아 화장해 하와이에 안장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전했다. 레이는 묘역에 안장된 것이 1956년쯤이라고 기억하지만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삼촌의 시신을 찾았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존 휘틀리 육군장관 대행은 성명을 내 세상을 떠난 지 70년 만에 그의 유해를 확인했다며 “카폰 신부의 영웅적인 행동과 불굴의 정신은 용기와 사심 없는 봉사라는 우리 군의 가치를 나타내는 본보기”라고 밝혔다. 캔자스주 필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카폰 신부는 1950년 7월 군종 신부로 한국에 파견됐다. 그가 소속된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제3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원산까지 진격했지만, 같은 해 11월 한국전에 참전한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얼마 안돼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카폰 신부는 중공군 포위를 뚫고 탈출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전선에 남았다. 그는 통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을 대피시켰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중공군이 부상병을 사살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총구를 밀어내 부상병을 지켰고, 교전 중 다친 중공군 장교까지 돌봤다. 그는 지프 위에 담요를 덮어 제단을 만든 뒤 미사를 집전했고 고해성사를 받았다. 포탄이 빗발치는데도 주검들 사이에 숨어 마지막 숨을 내쉬는 병사들의 임종 기도를 올렸다. 결국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로 끌려간 카폰 신부는 그곳에서도 포로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는 삶을 실천했다. 거동이 불편한 부상병의 옷을 대신 빨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을 구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음식과 약을 적군의 저장고에서 훔쳐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자신보다 병사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던 그는 이질과 폐렴에 걸려 서른다섯 살이던 1951년 5월 23일 세상을 떴다. 전장에서 피어난 카폰 신부의 박애 정신은 살아남은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고, 1954년 책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가 발간됐다. 캔자스주 위치토 가톨릭 교구는 카폰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운동을 펼쳤고, 1993년 로마 교황청은 성인으로 추앙하는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했지만 웬일인지 시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3년 4월 카폰 신부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해 조카 레이가 받았다. 레이는 “이런 날이 올지 상상도 못했다. 정말 믿기 힘들다. 삼촌과 함께 수용소에 있던 어르신 가운데 몇몇 분은 지금도 삼촌의 헌신을 기억하며 감사해 한다. 유해가 (고향인 캔자스주에) 돌아오면 장례식을 제대로 치를 생각인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작 한국인들은 그의 생애를 모르다 1956년 신학생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종군 신부 카폰’ 번역판을 내 알려졌다. ‘한국전의 예수’, ‘6·25 전쟁의 성인’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은 것은 물론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일흔 넘어 새끼 본 라이산 알바트로스 ‘위즈덤’

    일흔 넘어 새끼 본 라이산 알바트로스 ‘위즈덤’

    야생 조류가 일흔 살까지 산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2세까지 낳았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미국 하와이 제도의 섬 중 하나인 라이산 섬에 서식해 라이산 알바트로스로 불리는 ‘위즈덤’은 지난 1956년 연구자들이 처음 발견했는데 지난달 1일(이하 현지시간) 북태평양의 미국령 미드웨이 환초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새끼를 낳아 돌보는 것을 확인했다고 미국 어류 및 야생 공단(USFWS)이 밝혔다고 영국 BBC가 5일 전했다. 보통 라이산 알바트로스는 12년 정도, 길어야 40년 정도 사는데 위즈덤은 곱절 가까이 장수하고 있다. 또 이 종은 짝을 지어 생활하는데 이 새는 수컷을 먼저 보내고 혼자 지내왔다. 이번에 낳은 새끼의 아빠는 아케아카마이로 2012년부터 보호센터에서 살고 있다. 이 대피소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알바트로스를 돌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알을 품고 있는 위즈덤을 발견해 돌봐왔다. 라이산 알바트로스는 보통 몇년에 한 번씩, 알을 딱 하나만 낳는다. 수컷도 알을 부화하는 데 돕고 양육도 거든다. 아케아카마이도 위즈덤이 먹이를 찾아 바다로 나가면 알을 품었다. 위즈덤은 일평생 30~36 마리 정도를 낳아 길렀다고 USFWS는 보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여보 거긴 어때?” 바람만이 답하는 日 이와테현의 공중전화

    “여보 거긴 어때?” 바람만이 답하는 日 이와테현의 공중전화

    “여보세요. 나야 여보. 거긴 어때?” “ ” 애초에 전화선도 연결 안돼 있어 답을 들을 수 있다고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수화기를 든 것이 아니었다. 바닷가라 거친 바람 소리만 돌아올 뿐이다. 그저 다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하늘로 떠난 지 10년이 된 아내에게 속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마음껏 울고 그리워할 수 있어서다. 일본 이와테현 오츠치 마을의 구지라 산 중턱 벚나무 정원 가운데 흰색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참사 10주기를 맞아 못다 나눈 얘기를 실컷 해보라고 지난달 27일 첫 선을 보인 ‘바람의 전화’를 로이터 통신이 5일 소개했다.사사키 가즈요시(67)는 쓰나미에 세상을 등진 아내 미와코의 핸드폰 번호를 조심조심 눌렀다. 그는 얼마나 많은 날 아내의 행적을 찾기 위해 헤맸는지부터 설명했다. 대피센터와 시신안치소들을 샅샅이 뒤졌다. 밤에 집에 돌아오면 쓰레기들로 엉망이었다. “모든 게 한 순간 일어났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벌써 훌쩍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곳을 알리는 메시지를 당신에게 보냈는데 보지 않았더군. 집에 돌아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천 개의 별이 내려다보고 있었어. 마치 보석함을 보는 것 같았지. 난 울고 또 울었어. 그때 쯤에야 난 수많은 이들이 스러졌다는 것을 알았어.” 이때 목숨을 잃은 사람과 실종자는 2만명이 넘는다. 오가와 사치코(76)는 44년 동안 부부의 연을 쌓고 속절없이 먼저 떠난 남편 도이치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무얼하고 지냈지부터 남편에게 물었다. “외로워요.” 결국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남편에게 가족들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끊어요. 나도 곧 갈게요.” 오가와는 남편이 저쪽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끼니 조금 낫더라”고도 했다. 그녀는 친구들로부터 언덕 정원에 이런 전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알게 됐다며 가끔은 두 손자도 데려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게 한다고 했다. 그의 손자 다이나(12)는 “할아버지, 벌써 10년이 됐네요. 이제 곧 중학교 들어갈 거에요”라고 자랑했다. 할머니와 두 손자 모두 부스 안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새 바이러스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유죠.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도쿄에서 북동쪽으로 500㎞ 떨어진 이 마을의 공중전화 부스를 만든 이는 정원 주인 사사키 이타루(76)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몇달 전 암으로 사촌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을 것이란 점을 알았다면 많은 가족들이 무슨 말이라도 건넬 걸 그랬다고 후회하곤 한다”고 ‘바람의 전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는 공중전화 부스가 많이 알려져 일본 전역에서 찾아온다. 쓰나미 생존자들만 아니라 질병과 극단적 선택으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사람들까지 찾는다.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몇달 전 사사키에게는 영국과 폴란드에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고 했다. 사사키는 “참사처럼 팬데믹도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죽음이 갑작스럽게 닥치면 가족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한층 길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사키 가즈요시는 아내 미와코를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사랑한다고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고 10년 뒤 다시 사귀자고 해 첫 데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 뒤 결혼해 네 자녀를 뒀다. 그는 최근에 임시 주택을 나와 막내아들이 지은 새 집으로 이사해 손주들과 지내고 있다고 아내에게 전했다. 전화를 끊기 전 최근 체중이 빠졌더라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약속할게. 우리가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어. 고마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어. 응, 빨리 말해봐.” 밖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10년 전 쓰나미로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 바람만이 답할 뿐

    10년 전 쓰나미로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 바람만이 답할 뿐

    “여보세요. 나야 여보. 거긴 어때?” “ ” 바람 소리만 들린다. 애초에 전화선도 연결 안돼 있어 답을 들을 수 있다고 전화를 건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하늘로 떠난 지 10년이 된 아내에게 웅숭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마음껏 울고 그리워할 수 있어서다. 일본 이와테현 오츠치 마을의 구지라 산 중턱 벚나무 정원 가운데 흰색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참사 10주기를 맞아 못다한 얘기를 실컷 해보라고 지난달 27일 첫 선을 보인, 이른바 ‘가제 노 덴와’(바람의 전화)다.사사키 가즈요시(67)는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미와코의 핸드폰 번호를 조심조심 눌렀다. 그는 얼마나 많은 날 아내의 행적을 찾기 위해 헤맸는지 설명했다. 대피센터와 시신안치소들을 샅샅이 뒤졌다. 밤에 집에 돌아오면 쓰레기들로 엉망이었다. “모든 게 한 순간 일어났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벌써 훌쩍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곳을 알리는 메시지를 당신에게 보냈는데 보지 않았더군. 집에 돌아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천 개의 별이 내려다보고 있었어. 마치 보석함을 보는 것 같았지. 난 울고 또 울었어. 그때 쯤에야 난 수많은 이들이 스러졌다는 것을 알았어.” 이때 목숨을 잃은 사람은 2만명 가까이 된다. 오가와 사치코(76)는 44년 동안 부부의 연을 쌓고 속절없이 먼저 떠난 남편 도이치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무얼하고 지냈지부터 남편에게 물었다. “외로워요.” 결국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남편에게 가족들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끊어요. 나도 곧 갈게요.” 오가와는 남편이 저쪽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끼니 조금 낫더라”고도 했다. 그녀는 친구들로부터 언덕 정원에 이런 전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알게 됐다며 가끔은 두 손자도 데려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게 한다고 했다. 그의 손자 다이나(12)는 “할아버지, 벌써 10년이 됐네요. 이제 곧 중학교 들어갈 거에요”라고 자랑했다. 할머니와 두 손자 모두 부스 안에 들어간 채였다. “이번에는 새 바이러스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유죠.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도쿄에서 북동쪽으로 500㎞ 떨어진 이 마을의 공중전화 부스를 만든 이는 정원 주인 사사키 이타루(76)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몇달 전 암으로 사촌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을 것이란 점을 알았다면 많은 가족들이 무슨 말이라도 건넬 걸 그랬다고 후회하곤 한다”고 ‘바람의 전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는 공중전화 부스의 존재가 많이 알려져 일본 전역에서 찾아온다. 쓰나미 생존자들만 아니라 질병과 극단적 선택으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사람들까지 찾는다. 같은 제목의 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5일 전했다. 몇달 전 사사키에게는 영국과 폴란드에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고 했다. 사사키는 “참사처럼 팬데믹도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죽음이 갑작스럽게 닥치면 가족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한층 길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사키 가즈요시는 아내 미와코를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사랑한다고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고 10년 뒤 다시 사귀자고 해 첫 데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 뒤 결혼해 네 자녀를 뒀다. 그는 최근에 임시 주택을 나와 막내아들이 지은 새 집으로 이사해 손주들과 지내고 있다고 아내에게 전했다. 전화를 끊기 전 최근 체중이 빠졌더라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약속할게. 우리가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어. 고마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어. 응 빨리 말해봐.” 밖에는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곳곳 들썩, 뉴질랜드 강진에 쓰나미 경보…긴박했던 순간 (영상)

    곳곳 들썩, 뉴질랜드 강진에 쓰나미 경보…긴박했던 순간 (영상)

    5일 강진으로 한때 쓰나미 경보까지 내려졌던 뉴질랜드의 긴박했던 순간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뉴질랜드 국립물대기연구소(NIWA)는 이날 뉴질랜드 동북해역에서 발생한 13시간 동안의 지진을 13초짜리 영상으로 압축해 공개했다. 영상을 보면 북섬 곳곳에서 수십 차례의 흔들림이 동시다발적으로 관측된 것을 알 수 있다. 뉴질랜드 매체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27분쯤 북섬 동해안 테아라로아로부터 105㎞ 떨어진 바다 90㎞ 깊이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규모는 측정 기관에 따라 7.3, 7.2 등으로 분류됐으나, 뉴질랜드 지질 활동 관측기구 지오넷은 7.1로 측정했다.진동은 웰링턴, 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등 뉴질랜드 남북섬 대부분의 지역에서 감지됐다. 지오넷에 접수된 진동 감지 신고도 6만 건이 넘었다. 한 가정집 홈카메라에는 집 전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진 발생 직후 뉴질랜드 당국은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뉴질랜드 국가비상관리국(NEMA)은 “뉴질랜드 연안에 강력하고 비정상적인 조류가 발생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없는 큰 파도가 해안으로 몰려올 수도 있다”며 수영이나 낚시 서핑 등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그런 활동을 중지하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후 경보가 해제되면서 상황은 종료되는 듯싶었지만, 4시간 만인 오전 6시 41분과 8시 30분에 뉴질랜드 북섬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0㎞ 떨어진 케르마덱 제도 인근 해역에서 또다시 규모 7.4와 8.1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뉴질랜드 북섬 동해안 지역에 쓰나미 경보가 재차 발령돼 고지대로 대피하는 주민 발길이 속속 이어졌다.뉴질랜드 북섬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한 황아레이시의 한 주민은 “흔들림이 매우 오래 지속됐다. 집들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마을 전체가 대피했다”고 밝혔다. 대피 행렬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평소 5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35분 만에 갈 수 있었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주민 모두 침착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직원과 학생을 고지대로 대피시킨 와난키학교 교장 숀 테파니아는 “초현실적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테파니아교장은 “고지대에서 바다를 내려다봤다. 파도가 심상치 않았었다. 무서울 만 했지만 우리가 모두 대비해온 상황이라 괜찮았다”고 말했다. 총 3차례에 걸친 강진에도 다행히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쓰나미 경보도 현재는 모두 해제된 상태다. 뉴질랜드는 ‘불의 고리’로 알려진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정신의료기관 1인실 넓어지고, 다인실 병상 수 축소

    앞으로 정신의료기관의 1인실 공간이 넓어지고, 다인실 병상 수는 최대 6병상 이하로 축소한다. 의료기관 종별 분류에 ‘정신병원’이 신설돼 그간 요양병원으로 신고된 정신의료기관 중 정신질환자 병상이 50% 이상이면 정신병원으로 분류된다. 보건복지부는 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감염 취약 시설인 정신병동의 감염 예방·관리를 위한 시설 기준 및 의료기관 재분류에 따른 진료 환경 구축을 위해 마련됐다. 신규 정신의료기관의 1인실은 그동안 6.3㎡에서 10㎡로, 다인실은 환자 1인당 4.3㎡에서 6.3㎡로 입원실 면적 기준이 적용된다. 입원실 당 병상 수는 최대 10병상에서 6병상 이하로 줄이고, 병상 사이 간격도 1.5m 이상 거리를 유지토록 했다. 또 입원실 내에 화장실과 손 씻기 시설·환기 시설을 설치하고, 300병상 이상 운영 시설에는 ‘격리병실’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기존 정신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상황이나 시설 공사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변경된 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다.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 신규·기존 정신의료기관 모두 진료실 내 긴급 대피가 가능한 비상문이나 대피공간을 마련하고, 비상경보장치를 설치토록 했다. 100병상 이상을 운영하는 모든 정신의료기관은 1명 이상의 보안전담인력도 둬야 한다. 한편 정부는 향후 정신의료기관의 시설 기준과 치료 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정신건강증진시설 환경개선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날 1차 회의를 열었다. 협의체는 다음 달부터 실시되는 정신의료기관 및 정신요양시설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정신질환자에게 적합한 치료 환경을 구축을 논의하게 된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뉴질랜드 동부 연안 주민 수백명 높은 곳으로 피신, 쓰나미 밀려올까봐

    뉴질랜드 동부 연안 주민 수백명 높은 곳으로 피신, 쓰나미 밀려올까봐

    뉴질랜드 북섬 동해안과 케르마덱 제도에 5일 오전 세 차례 강진이 발생, 그 여파로 쓰나미(지진해일)가 덮칠지 모른다는 경보에 따라 수백명 주민들이 높은 지대로 대피하는 등 한때 소란이 빚어졌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뉴질랜드 매체들은 이날 오전 2시 27분(현지시간)쯤 북섬 동해안 테아라로아에서 105㎞ 떨어진 바닷속 90㎞ 깊이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했으나 큰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지질 활동 관측기구 지오넷은 지진의 규모가 측정 기관에 따라 7.3, 7.2 등으로 분류됐지만 지오넷은 7.1로 측정했다며 이는 굉장한 강진으로 진동이 웰링턴, 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등 뉴질랜드 남북섬 대다수 지역에서 감지됐다고 밝혔다. 지오넷은 지진 직후 사이트에 접수된 진동 감지 신고가 6만건이 넘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6시 41분과 8시 30분에는 뉴질랜드 북섬에서 동북쪽으로 1000여㎞가까이 떨어진 케르마덱 제도 인근 해역에서 규모 7.4와 8.1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또다시 뉴질랜드 북섬 동해안에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다. 이에 따라 일부 마을 주민들은 너도나도 높은 곳으로 피신한다며 차를 몰아 체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 큰 쓰나미는 발생하지 않아 경보는 몇 시간 뒤 해제됐다. 그러나 뉴질랜드 국가비상관리국(NEMA)은 “연안에 강력하고 비정상적인 조류가 발생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없는 큰 파도가 해안으로 몰려올 수도 있다”며 수영이나 낚시 서핑 등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그런 활동을 중지하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저녁쯤에는 집에 돌아가도 좋겠지만 해안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인스타그램에 “모두 아무 일 없길 기원한다”고 적었다. 마침 지난주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 규모 6.3의 지진이 덮쳐 185명이 희생된 지 10주기를 지낸 뒤였다. 뉴질랜드 뿐만아니라 뉴칼레도니아와 바누아투의 남태평양 여러 섬들도 최고 높이 3m의 위험한 파도가 밀려올 수 있다고 경보를 발령받았다. 남미 대륙의 페루, 에콰도르, 칠레 등도 1m 높이의 파도가 해안에 밀려올 수 있는 것으로 우려됐다. 미국 하와이의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는 “쓰나미가 관측되긴 했으나” 아직 어떤 피해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속보] 아파트 빨래 건조기서 불…주민 60여명 대피

    [속보] 아파트 빨래 건조기서 불…주민 60여명 대피

    4일 오후 11시 49분쯤 부산 사상구 한 아파트에 있던 건조기에서 불이 났다. 불은 건조기 등을 태워 3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10여 분만에 꺼졌다. 이 사고로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고, 주민 6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한편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하천 홍수위험지역 표시 지도 공개

    하천 홍수위험지역 표시 지도 공개

    전국 하천 주변의 침수위험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공개된다. 환경부는 4일 생활권 주변 홍수위험지역을 손쉽게 확인가능한 ‘홍수위험지도’를 5일부터 홍수위험지도정보시스템(www.floodmap.go.kr)에서 제공한다고 밝혔다. 기후위기로 집중, 돌발호우가 빈번해지는 등 홍수위험성이 높아지면서 국민이 홍수위험지역을 파악하고 대피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려는 취지다. 그동안 홍수위험지도는 지방자치단체의 효율적 방재업무 지원을 목적으로 환경부(홍수통제소)가 제작·배포했는 데 국민들은 각 지자체를 방문해야 열람이 가능했다. 제공되는 홍수위험지도는 전국 국가하천(2892㎞)과 한강·낙동강·금강권역 지방하천(1만 8795㎞) 구간이다. 홍수시나리오별(국가하천 100년·200년·500년 빈도, 지방하천 50년·80년·100년·200년 빈도) 하천 주변지역 침수위험 범위와 깊이를 확인할 수 있고 침수깊이는 0.5m 이하부터 5m 이상까지 5단계로 나눠 색상별로 표시했다. 침수위험 범위 등은 홍수시나리오를 토대로 제방 붕괴 및 월류의 극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상의 분석 결과로 실제 하천제방의 안정성과 무관하다. 지자체는 홍수위험지도를 토대로 자연재해저감종합계획을 수립하고 홍수 시 대피경로 등을 담고 있는 재해지도를 제작하는 등 홍수 범람 등 위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영산강과 섬진강권역 등은 용역을 거쳐 내년에 공개할 예정이다. 또 기후변화로 증가하는 홍수량을 홍수방어시설 설계 등에 반영하고, 다목적댐 재평가를 통한 홍수조절용량 확대와 하류 주민들의 대비를 위한 댐 수문방류예고제 도입 등도 추진한다. 2025년까지 하천의 홍수특보지점을 현재 65곳에서 218곳으로 늘리고 국지성 돌발홍수 예측을 위한 도시지의 소형 강우레이더를 2기에서 9기로 확대해 예보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김동진 환경부 수자원정책국장은 “기후위기시대 홍수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위협요소에 대한 사전 인지가 중요하다”며 “실효성 있는 홍수대책 수립에 활용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3월4일 트럼프 재취임?… 일상의 위협이 된 ‘음모론’

    3월4일 트럼프 재취임?… 일상의 위협이 된 ‘음모론’

    극단주의자들 온라인 논의에 의회 경비 강화하원은 4일 회기 취소, 상원은 4일 논의 연기의회난입참사 재연 우려vs실체없는 논의일뿐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할 거라는 극단주의자들의 음모론 때문에 워싱턴DC 연방의회에 대한 경비가 크게 강화됐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미 의회경찰이 3일 성명을 내고 “민병대 그룹이 4일 의사당을 침범하려는 음모를 보여주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의회 경비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의사당 경비 인력을 늘리고, 의회 직원들에게는 차량 파손을 우려해 도로에 주차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는 것이다. 특히 하원은 4일 열려던 회기를 취소하고 3일까지 마무리했으며, 상원은 본래 4일 진행하려던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안 논의를 연기했다.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의 정보에 따르면 극우파 민병대 조직 ‘스리 퍼센터스’(Three Percenters) 회원 등을 포함해 극단주의자들 사이에 ‘3월 4일 트럼프 취임 음모론’ 논의가 증가했다고 CNN 등이 전했다. 3월 4일은 본래 미 의회가 정했던 대통령 취임일이다. 1933년 비준된 수정헌법에 따라 1월 20일로 변경됐다. 즉, 극우주의자들은 과거의 취임식에 다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논의를 벌인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리처드 더빈 상원 법사위원장은 WP에 “1월 6일에 (의회난입참사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1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다시 모이자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FBI가 심각한 내용으로 의원들에게 보고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의회 난입참사로 7명이 사망하고 의원들이 대피해 겁에 질렸던 것을 감안하면 “우려가 이해된다”고 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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