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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공격] “포탄 비오듯… 삽시간에 온동네 불바다” 공포에 떨어

    [北 연평도 공격] “포탄 비오듯… 삽시간에 온동네 불바다” 공포에 떨어

    23일 오후 2시 34분쯤 인천 연평도에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이 중심가에 쉴새 없이 떨어지면서 집이 날아가고 일부 가옥과 산이 불바다로 변하는 등 평온하던 마을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1300여명의 주민들은 “실제상황, 실제상황긴급대피하라.”라는 긴급 안내방송을 듣고 방공호와 연평중고등학교 등에 마련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을 전체가 연기로 휩싸였고, 희생자도 속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주민은 어선으로 연평도를 떠나 인천으로 피신했다. ▲ ‘포격’ 연평면사무소… 주민들 “어디로 대피해야 하나” <중앙일보 제공> 피격으로 전력 선로가 끊겨 민가 절반 가량이 정전된 탓에 밤이 되자 칠흙같은 어둠만 연평도를 감쌌다. 이동전화 기지국도 피해를 입어 휴대전화도 불통됐다. 주민들은 촛불 등을 켜고 추위를 견디면서 두려움에 밤을 지샜다.  김운한 인천해경 연평출장소장은 “산과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연기로 휩싸였다. 사람들 모두 대피소로 대피하고 있어서 누가 불을 끄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35)씨는 “집 안에 있다가 갑자기 쾅 소리가 나서 밖에 나와 봤더니 온 동네가 불바다가 됐다.”고 말했다. 주민 이모씨는 “포탄이 떨어진 뒤 안개가 낀 것처럼 사방이 뿌옇고 어둡다.”고 말했다. 또다른 이모씨는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10여가구 이상의 민가가 불타고 있는 걸 봤다.”며 “산불도 났고 실전상황이니까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집밖으로 뛰쳐나가 인근 중학교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은 “마을이 초토화 됐다. 암흑천지다.”면서 “마을 전체가 불에 타고 있고 주민들이 모두 대피소나 다리 밑에 숨어있다.”고 말했다. 주민 안모씨(57)는 “6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마을에 포탄이 비 오듯이 떨어져 전쟁이 난 줄 알았다.”며 “안내방송을 듣고 학교 등으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 대피소에서도 끝나지 않은 대낮 ‘포격 공포’ <김준휘 군 제공>  대피소로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은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방향인 당섬으로 대피했고, 일부 주민은 가까운 군 진지로 피하기도 했다. 연평도에는 13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나 꽃게 조업철을 맞아 외지 선원들이 들어와 사람들이 평상시보다 많았다.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오후 3시 50분 이후 포성이 가라앉았지만 주민들은 혹시 추가 포격이 있을지 몰라 대피소에 계속 머물렀으며, 일부 주민들은 당섬 부두로 달려가 상황을 지켜봤다. 박모(46)씨는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연평해전 당시에도 우왕좌왕하지 않았던 주민들이지만 이번에는 포탄이 마을로 직접 떨어져 무척 놀랐다.”면서 “북한이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민간마을에 포탄을 퍼부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최부경 연평파출소장은 “저녁때가 돼서야 순찰을 돌면서 주민 피해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를 탈출한 김옥순(57·여)씨는 “백령도에 소방차가 한대밖에 없어 불 끄기 힘들 것이다. 가뜩이나 건조한 날씨라 민가와 산이 모두 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해경은 연평도로 향하는 모든 항로를 통제했다. 백령도·연평도를 오가는 여객선 3척은 경비함정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항으로 되돌아왔다. 해경은 또 서해상에서 조업 중인 어선 87척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인근 백령도 주민들도 연평도 사태에 귀를 기울이며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김학준·이민영기자 kimhj@seoul.co.kr ●“하도 정신없이 뛰어 양말만 신고 배에 탔다”  23일 북한의 인천 연평도 해안포 공격을 목격한 연평도 방문객들은 “민가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라고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이날 연평교회 목사 위임식 참석차 동료 신도 16명과 함께 섬을 찾은 인천제일교회 김영남(66) 장로는 “오후 2시30분께 배가 연평도에 닿을 즈음에 마을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로 불길이 치솟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두에서 400∼500m 떨어진 마을의 3∼5군데에서 불이 났으며 육안으로 뚜렷하게 보았다”라고 덧붙였다.  남편 우두재(52)씨와 함께 연평도 해병 부대에 근무 중인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던 한미순(52.여.경기도 포천)씨는 “남편,아들,내가 민박집 승합차로 부두로 오는데 갑자기 차 위로 ‘빠바빡’하는 소리를 내며 폭탄이 날아가 차에서 내려 차 밑으로 엎드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훈련인줄 알았는데 포탄이 많이 떨어지고 집집마다 시커먼 연기가 나니까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이것은 실제 상황”이라면서 ’방공호로 대피하라‘고 말하고 자기들은 군부대로 서둘러 돌아갔다“면서 ”하도 정신없이 뛰어 양쪽 구두를 모두 잃어버리고 양말만 신은채 배를 탔다“라며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 씨는 ”부두에 도착했을때 배가 5∼10m가량 부두를 떠났는데 부두에 있던 다른 사람 20여명과 함께 다시 와달라고 손짓해 배를 타고 인천에 오게 됐다“면서 ”아들을 떼 놓고 오는 마음이 무척 무거웠지만 아들과 군인,주민들이 모두 평안하기를 몇번이나 기도했다“라고 말했다.  연평도 친정집을 남편과 함께 다녀온 전옥순(62.인천)씨는 ”뱃터에 왔는데 쾅쾅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이 나기 시작했고 불길이 치솟아 북한에서 쏜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86세인 어머니 혼자 놔두고 와 마음이 불안하다“라고 밝혔다.  사업차 연평도에 갔다 발길을 돌린 김순식(53.수원)씨는 ”연평도에 도착했는데 배에서 방송으로 ’훈련 중인 것 같으니 배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잠시 뒤 ’실제 상황인지 알 수 없다면서 배에 다시 타라‘고 했다“면서 ”마을에서 검은 연기가 나고 산에서 불이 났다“라고 설명했다.  이들 연평도 방문객 200여명은 고려고속훼리㈜의 코리아익스프레스 쾌속선으로 연평도에서 오후 3시께 출발,오후 5시9분께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 [北 연평도 공격] 천안함 교훈 벌써 잊었나… 피격에서 대응 13분 ‘공백’

    [北 연평도 공격] 천안함 교훈 벌써 잊었나… 피격에서 대응 13분 ‘공백’

    합동참모본부는 23일 “북한이 14시 34분쯤 연평도 인근 해상 및 내륙에 해안포 사격을 해왔고, 우리 군은 14시 47분쯤 대응 사격했다.”고 밝혔다. 군은 “교전규칙에 따른 강력한 대응 사격”이라고 했지만 피격과 대응 사이에 ‘13분’간의 공백이 있었다. ▲ ‘포격’ 연평면사무소… 주민들 “어디로 대피해야 하나” <중앙일보 제공> ●“포준비 시간 걸렸다” 해명 옹색 군은 천안함 사태 등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강력 대응’, ‘응징’, ‘정밀 타격’이라는 용어들을 쏟아냈지만, 이번에도 기대 이하였다.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인 이홍기 육군 중장은 이날 오후 국방부 공식브리핑에서 군의 대응이 13분이나 늦은 이유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자 “현지 부대에서 즉각 대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재차 질문을 쏟아내자 “현재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니다. 추가적으로 궁금한 사안이 많을 텐데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말하겠다.”며 기자회견장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이와 관련, 군 당국자는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포사격은 대응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당시 상황은 적 포탄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력의 안전을 취한 다음에 대응한 것이라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 대피소에서도 끝나지 않은 대낮 ‘포격 공포’ <김준휘 군 제공> ●평소 ‘강력대응’ 호언장담 무색 그러나 오전부터 북한과 전통문을 주고받으며 대응사격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던 군의 해명치고는 옹색하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북한이 우리 군의 정례 포사격 훈련에 대해 대응 사격을 경고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태세를 갖추지 않고 방심했다는 사실을 군 스스로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군의 대응 시각을 놓고도 오락가락했다.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인 정홍용 육군 중장은 북한의 포격 직후 국회에서 각당 대표들에게 포격 내용을 설명하며 우리 군의 대응 시각을 ‘14시 49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군의 공식 확인 시간은 이보다 2분이나 앞선 ‘2시 47분’이었다. 군은 단순 실수라며 정정했지만, 지난 3월 천안함 사태 당시 피격 시간을 놓고 우왕좌왕했던 군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시간대별 대응 이번에도 숨겨 군은 또 북한의 포격 이유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했다. 포격 직후만 해도 “우리 군의 호국훈련에 대한 불만”이라고 밝혔다가, 오후에는 “호국훈련과는 무관한 포 사격훈련에 대한 불만”이라고 정정했다. 군은 이번 사태와 관련, 국방부와 합참의 시간대별 대응 시간을 밝히지 않았다. 천안함 사태 당시 부적절 대응으로 감사원 감사까지 자초했던 군이 그때의 교훈으로 논란거리를 애써 감추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가 적지 않다. 우왕좌왕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오후 6시 5분 북한의 도발과 관련한 정부의 공식성명을 발표하면서 “대통령은 단호히 대응하라는 말만 했지 ‘확전되지 않게 하라.’는 취지의 말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 상황을 보고 받으면서 “확전이 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확전이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단호히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라고 밝혔다고 계속 말을 바꿨다. 지하벙커에서 안보관계 수석비서관회의 등을 주재하며 나온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언론에 전달됐다. 방송 보도나 신문 가판에도 그대로 보도됐다. 그러나 홍 수석은 정부 입장을 발표하면서는 “이 대통령은 초지일관 교전수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면서 “‘확전되지 않게 관리를 잘하라’는 말은 와전된 듯하다.”고 정정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이 실제로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전달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의 대응 강도를 짐작케 하는 가장 큰 잣대인 대통령의 발언까지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김성수·홍성규기자 sskim@seoul.co.kr
  • [北 연평도 공격] 인천경찰 ‘갑호비상’… 서해 5도 학교 휴업

    [北 연평도 공격] 인천경찰 ‘갑호비상’… 서해 5도 학교 휴업

    북한 해안포의 연평도 포격 직후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즉각 공무원 비상동원령을 내리고 주요시설 점검을 지시하는 등 긴박하게 대응했다. 행정안전부는 23일 북한의 도발이 있은 지 2시간여 만인 4시 30분쯤 전 공무원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리고 이날 밤까지 주요 공무원은 정위치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경찰청은 오후 3시 15분을 기해 인천지방경찰청에 ‘갑호 비상’을 발령했다. 경찰청은 또 인천경찰청을 제외한 나머지 경찰관서에는 중요시설 등의 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 대피소에서도 끝나지 않은 대낮 ‘포격 공포’<동영상 연평고교 김승규(18)군 제공> 소방방재청도 전국 소방관서에 비상 1단계근무령(인천 2단계령)을 내렸다. 중앙119구조대원 등 86명과 소방차 21대는 이날 밤 해군 함정 호위 속에 바지선을 이용해 연평도로 들어가 인명 구조, 화재 진압을 지원했다.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연평면과 백령면 등 인천 옹진군 일대에는 민방위 비상 동원령이 발령돼 이 지역 민방위 대원들이 연평도 주민 대피 및 화재 진압을 도왔다. 연평도를 관할하는 인천시는 북한의 추가 이상 움직임에 대비해 인근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주민 5570여명에 대해 확대 대피령을 내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인천광역시교육청에 긴급 공문을 보내 연평도 및 인근 지역의 학생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휴교 등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5도에 소재한 11개 학교(학생 총 973명)는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당분간 휴업하도록 했다.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도 종합상황실을 가동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지경부는 최경환 장관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석유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비상상황 시 즉각 보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국토부도 종합상황실을 가동하고 항공 및 지상교통 상황, 해상안전을 집중점검했다. 연평도 인근 해역에 선박과 헬기, 경비행기 운항도 즉각 금지조치됐다. 전국종합 김효섭·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배야 꼭 떠라” 말년휴가 코앞에 두고 참변

    “배야 꼭 떠라” 말년휴가 코앞에 두고 참변

    북한의 해안포 사격으로 숨진 서정우(22) 병장(24일자로 하사로 특진)이 남긴 마지막 일기가 많은 이들을 울리고 있다. 사망 전날인 22일 미니홈피에 올린 이 일기에는 “드디어 이사가 끝났다. 내 군 생활에도 말년에 침대를 써 보는군. 내일 날씨 안 좋다던데 배 꼭 뜨길 기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법학과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던 서 병장은 말년 휴가를 앞두고 뜻하지 않은 죽음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지난 3일 적은 일기에는 “3주만 버티다가 13박 14일 말년휴가 나가자.”라고 써 휴가를 기다리는 병사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미니홈피 초기 화면 제목도 ‘배야 꼭 떠라 휴가 좀 나가자’였다. 서 병장의 미니홈피 방문자는 23일 오후 8시 20분 현재 8만 5000명을 넘어섰으며 접속자 폭주로 한때 접속이 제한되기도 했다. 아들이 해병이라고 밝힌 홍성욱씨는 “며칠만 기다렸으면 그리워하던 사회인이 됐을 텐데 안타깝다.”며 “다툼 없고 평화로운 곳에서 태어날 거다. 이런 나라 만든 우리 또래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방명록에 적었다. 네티즌들은 서 병장의 게시물마다 근조 리본과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며 조의를 표시하거나 “미안하다.”는 댓글을 잇달아 달았다. 백기범씨는 “서정우 병장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면서 “이 땅에 더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인으로 보이는 김혜미씨는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랐는데, 매일 전화했었는데, 이제 못하는 거냐.”며 “좋은 곳으로 가기를 항상 기도할게.”라고 적었다.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서 병장이 살던 광주시 남구 진월동 한 아파트는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비보를 듣고 몰려온 이웃 주민들은 주변에서 아연실색했다. 아파트 상가의 한 업주는“서 병장이 어린 시절부터 크는 것을 지켜봤다.”며 “지난여름 건강한 모습으로 포상 휴가를 나온 모습이 선명한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 ‘포격’ 연평면사무소… 주민들 “어디로 대피해야 하나” <중앙일보 제공> ▲ 대피소에서도 끝나지 않은 대낮 ‘포격 공포’ <김준휘 군 제공> 서 병장과 함께 숨진 문광욱(20) 이병의 아버지가 해병대 홈페이지에 올린 애틋한 자식 사랑의 글도 네티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다. 문 이병의 아버지 영조(47)씨는 입대 보름여 만인 지난 9월 7일 ‘해병대 신병 1124기 소대별 사진’ 아래 “문광욱 울(우리) 아들 든든하고 멋지다. 멋진 해병이 되기까지 파이팅….”이라는 댓글을 달며 아들을 응원했다. 9월 19일에는 “4주차가 끝났는데 어떻게 변해 있을까. 구릿빛 얼굴에 눈빛은 강렬하게 빛이 나겠지. 잘 버텨 다오 문광욱. 힘내라. 파이팅”이라며 애틋한 부성애를 나타냈다. 신병 교육을 무사히 마친 뒤인 지난달 9일에 올라온 ‘1124기 수료식 사진’에 “광욱아, 무더운 여름 날씨에 훈련 무사히 마치느라 고생했다. 푸른 제복에 빨간 명찰 멋지게 폼나는구나. 앞으로 해병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면서 건강하게 군 복무 무사히 마치길 아빠는 기도할게. 장하다 울(우리) 아들. 수고했다. 내 아들”이라고 글을 띄워 읽는 이들의 코끝까지 찡하게 만들었다. 군산 임송학·서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학교에서도 北 사격연습 소문 돌았다”

    “학교에서도 北 사격연습 소문 돌았다”

     ‘11.23 연평도 포격 사건’의 와중에 있었던 김준휘(사진·16·연평고 1년)군은 24일 오후 1시30분쯤 인천 해경 전용부두에 도착하면서 그제서야 22시간 쌓였던 긴장의 끈이 풀렸다.“이제야 살았구나.”는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언제 돌아갈 지 모르는 고향 땅 연평도쪽 바다를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김군은 23일 밤 연평도 대피소를 찍은 동영상을 서울신문에 보내 단독으로 보도하게 한 장본인이다.다음은 1박2일간 그와의 통화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북한군 사격연습한다는 소문 돌아”  23일 오후 3시쯤 연평고등학교 교실에서 모의고사를 보던 김군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 창문이 깨지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학교 뒷산에 포탄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떨어진 것이다.  김군은 “아침에 학교에 나왔는데 북한군이 사격 연습을 할 것이란 소문이 있었다”고 증언했다.사격 연습을 한다는 소문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닥친 것이었다.뒷산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태가 즉각 북한군에 의한 포격이라고 직감했다.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김군을 비롯한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교 교문 앞 대피소로 급히 피신했다.“태어나서 지금까지 딱 한번 대피훈련을 받아봤다.”는 김군이었지만 급박한 상황인데도 비교적 신속하고 차분하게 학생과 선생님이 대피했다고 전했다.  ●“대피소엔 음식 없고 촛불만”  원룸형 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는 대피소는 교실 2개쯤 크기였다.잠시 있으니 연평중∙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그리고 마을 주민 50여명이 모였다.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격려해 가며 시간을 보냈다.전쟁이 난 것 아닌가 하는 공포와 불안이 엄습했다.더 이상의 포격은 없었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공포감은 극대화 됐다.  가족들 안부도 걱정됐다.형 귀휘(18.연평고 3년)군은 함께 대피했으나 부모님의 소재는 몰랐던 것이다.다행히도 휴대전화가 통했다.부모님은 김군이 있는 대피소에서 걸어서 5분쯤 거리에 있는 연평농협 앞 대피소에 무사히 피신해 있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공포와 불안은 더욱 커졌다. 대피소 안에는 전기는 고사하고 랜턴도 없었다.간신히 촛불 8개를 켜놓고 50여명이 불안을 달랬다. 그들에게 지급된 것은 바닥에 깔 스티로폼 몇 장과 침낭이 전부였다. ▲ 대피소에서도 끝나지 않은 대낮 ‘포격 공포’ <김준휘 군 제공>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밤사이 인천으로 나간다는 소식 들어”…밤 9시 넘어 라면 공급  그런 가운데 간간이 바깥소식도 들려왔다. 마을 주민 일부는 개인 어선을 이용하여 인천으로 나가고 있고, 오후 7시쯤 마을에 번진 불은 진압이 되었지만 산불은 아직 번지고 있는 것 같다는 등 여러 소식을 바깥에 나갔던 어른들이 알려주었다. 어두컴컴한 대피소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 떨다 오후 9시쯤 외부에서 누군가가 가져온 라면과 빵,물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컴컴한 밤길을 걸어 부모님이 있는 농협 앞 대피소로 가봤다.김군의 아버지(55)와 어머니(51)는 김군 형제를 보자마자 울먹거렸다.그렇게 가족 4명이 무사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울컥했다.부모님과 합류하고 싶었지만 농협 앞 대피소는 김군 형제까지 있기엔 너무 비좁았다.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비록 몇시간이지만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그 와중에도 대피소 상황을 외부에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었다. 이 동영상(23일 서울신문 홈페이지 보도)을 서울신문 기자에게 보냈는데 국내외 TV와 인터넷 등에 널리 보도됐다는 얘기를 인천항에 도착하고서 알게돼 깜짝 놀랐다.  ●“밤 10시 지나자 통신마저 두절”  일단 학교 대피소로 돌아왔지만 외부와의 소식은 두절된 상태였다.게다가 언제까지 이런 대피소 생활이 계속 될 지 모른다는 상황이 김군을 더욱 답답하게 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휴대전화로 서울신문 기자와 연락을 주고받다가 이마저도 오후 10시 이후로는 통신두절이 됐다.  대피소에는 학생 10여명,선생님 10여명만 남았다.나머지는 부모님과 합류하거나 집 근처 대피소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추위가 엄습했다.침낭에 몸을 넣었지만 추위와 함께 공포가 가시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정든 고향 등졌으나 다시 돌아오는 건 두려워”  24일 오전 6시쯤,면사무소 직원이 “곧 인천으로 나갈 것”이라고 통보를 했다.몇가지 옷가지와 세면도구만 챙긴 김군 가족들은 아침을 거른 상태에서 오전 6시30분쯤 면사무소 앞에 모였다.이들이 해경 선박에 오른 것은 1시간쯤 뒤.이웃과 함께 악몽 같은 하루밤을 지낸 연평도를 출발할 수 있었다.  안산에 있는 친척이 인천항으로 마중을 나왔다.뜻하지 않은 북한의 포격으로 고향을 떠난 김군은 “모든 것이 정상화 되더라도 무서워서 연평도에 돌아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민수 영상콘텐츠부 PD globalsms@seoul.co.kr
  • [北 연평도 공격] “15m 앞서 포탄 터져… 주민들 노렸구나 직감”

    [北 연평도 공격] “15m 앞서 포탄 터져… 주민들 노렸구나 직감”

    23일 오후 8시 30분 인천 연안부두. 28명의 연평도 주민과 함께 9.7t 유자망어선 ‘신복호’에서 내린 윤희종(48·선원)씨는 충혈된 눈과 쉰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윤씨는 “집은 불타고 대피소에는 전기와 구호품, 물조차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현지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섬을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군 통제소가 허락을 하지 않았으나 여기 앉아서 포탄 맞아 죽을 순 없지 않느냐고 항의한 뒤 통제소 제지를 무시하고 나왔다.”면서 “다른 배들과 무선교신을 해보니 7~8척 빠져나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밤 11시 넘어서까지 10여척 넘는 배에 수백명이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윤씨는 “대피소나 밖에서 무서웠던 것이 (북한군이) 일반 민간인들을 노렸다는 점”이라며 “공포에 질린 주민들이 다들 바닥에 엎드리고, 소리를 지르고 말 그대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고 당시 상황에 치를 떨었다. 포탄이 터지면서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15m 거리에서도 포탄이 터져 차가 크게 들썩일 정도였다고 전했다. 윤씨는 “3분 거리에 있는 대피소로 걸어서 이동했으나 대피소란 게 말만 그럴듯하고 가져다 놓은 것 하나 없이 열악했다.”면서 “현재 연평도의 주민 부상자도 파악이 안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피소에 들어간 뒤 잠잠해져서 3~4m 나와서 둘러보는데 다시 포탄이 쾅쾅 떨어졌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해 오후 4시 30분쯤 인천으로 나가는 것을 결정해 28명이 배를 타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인명피해는 크지 않을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했다. 윤씨는 “김장철이라 마을 사람들이 몰려 있어 대피가 쉬웠을 것”이라면서 “70% 이상은 집이 비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탄이 떨어질 때 이거 공포탄 아니구나, 실화구나. 주민들만 일부러 노렸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며 “연평해전도 있고 해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진짜로 내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윤씨는 “포탄은 면소재지 부근에만 20~30발 정도 떨어졌는데 북한군이 연평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이곳을 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평도를 빠져나온 배는 오후 10시쯤 3척이 더 들어왔다. 글 사진 인천 연안부두 백민경 김양진기자 white@seoul.co.kr
  • 마약조직 보복 경고에 멕시코 피난민 속출

    멕시코에서 때아닌 피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미 피난민이 수백 가정에 이른다고 전했다. 미국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도시 미에르. 지난 12일 이 도시에선 ‘폭풍의 토니’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던 거물급 멕시코 마약카르텔 두목이 마약조직 소탕작전에 나선 군에 사살됐다. 그의 죽음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마약조직들이 원한을 갚겠다면서 피의 복수를 예고한 것. 멕시코 현지 언론에서 “마약조직의 무차별 공격을 경고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자 주민들은 허겁지겁 짐을 꾸려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웃도시 미겔 알레만의 시장 세르반도 로페스는 “라이온스클럽에 대피소를 만들어 피난민 100가정을 수용하고 있다.”면서 “집을 얻거나 친척을 찾아 피난을 온 사람은 훨씬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 언론은 “군이 군용차량을 동원해 최소한 350가정을 대피시켰다.”면서 “미에르와 인접한 고을 카마르고에서도 피난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중남미 언론은 “마약 조직의 경고에 도시가 유령도시로 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일간지 레포르마에 따르면 올해 멕시코에선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지금까지 3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멈추지 않는 印尼 화산폭발 사망 122명· 이재민 10만명

    인도네시아 자바섬 므라피 화산이 지난달 26일 이후 지속적으로 대폭발을 일으켜 5일 현재 122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상을 입은 주민도 60여명이며 대부분 중상이다. 현지 재난관리당국이 화산 주변의 출입 금지 구역을 반경 15㎞에서 20㎞로 넓히면서 이재민도 1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1930년 1300명의 생명을 앗아간 폭발 이래 최악의 폭발로 기록됐다. 광물에너지부 산하 지질연구소 측은 “5일 대폭발로 적어도 78명이 숨졌다.”면서 “화산 폭발 양상이 과거와 다르다. 화산 아래 마그마가 생성돼 있어 거대한 폭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최악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산재는 10㎞ 높이 상공까지 치솟고 폭발 굉음은 25㎞ 밖에서도 들리는 데다 화산 주변 지역은 대낮에도 가시거리가 1m도 안 될 정도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화산 폭발 규모가 커짐에 따라 대피소도 계속 외곽으로 이전, 이재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현지 주민은 “6살짜리 딸이 화산을 쳐다보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면서 “밤마다 잠도 못 자고 울기만 한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CEO 칼럼] 리더십은 흐트러진 시선을 한데 모으는 것/박종원 코리안리재보험 대표이사 사장

    [CEO 칼럼] 리더십은 흐트러진 시선을 한데 모으는 것/박종원 코리안리재보험 대표이사 사장

    얼마 전에 TV를 보며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한 프로그램에서 박칼린이란 뮤지컬 감독이 합창단을 급조하여 거제합창대회에 도전하는 과정을 소개한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합창단원 대부분은 경험 없는 아마추어였다. 그뿐 아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단원, 장난기 가득한 개그맨 등 한마디로 각양각색의 오합지졸이었지만 그녀는 프로답게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하나로 묶어 마음을 열게 하고 도전 의지를 자극해 결국 하모니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단원들은 해냈다는 감격으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리더는 냉정한 이성과 뜨거운 감성을 겸비해야 한다. 조직에 대한 희생은 기본이고,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려는 반대 세력과 싸워서라도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당연히 외롭고, 곳곳에서 따가운 비난의 화살도 날아온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감수하고 무리 속에 파고들어 전체를 하나로 모아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열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철저하고 정확해야 한다. 조직이 나아갈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각자에게 조금 버거운 듯한 미션을 부여하여 동기를 유발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개개인의 특성과 자질을 면밀히 관찰하고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소통하여 절대적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조직에는 네 부류의 구성원이 있다. 우직하게 자기 중심을 지키는 바위형(型), 중심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부평초형(型), 서로가 가시로 찔러 상처를 주는 고슴도치형(型), 다가가서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양형(陽型) 등이다. 이런 성격을 잘 파악하고 아울러서 큰 힘을 내도록 만들려면 리더가 먼저 마음을 열고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주변에 믿고 따를 만한 리더가 없는 것은 리더십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은 닫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조직을 ‘장악’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요구되는 리더십은 수직적·지시적인 리더십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솔선수범을 할 때 생겨나는 부드러운 리더십이다. 투명성을 통해 믿음을 얻고, 감성적으로 호소하여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감동의 리더십이다. 또한 잘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칭찬이야말로 마음을 열게 하는 최고의 리더십이다. 리더는 말로만 해서도 안 된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여름 직원들과 설악산 35㎞를 종주할 때의 일이다. 빗속에서 공룡 능선을 넘느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희운각에서 중청까지 가파른 계단을 두 시간 동안 올라갔다. 지금껏 가장 힘든 구간이었고 당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나를 따르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직원들을 생각하며 올랐고, 직원들은 나를 믿고 따라왔다. 그런 마음은 조직에 확산된다. 직원들은 힘든 몸을 이끌고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뒤에 도착할 동료들을 위해 밥을 짓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들이 아무리 젊다 한들 왜 힘들지 않겠는가. 그들은 땡볕 속에서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까지 동료에게 양보하고, 빗속에서는 빗물 섞인 밥을 먹으면서도 즐겁게 웃는 신세대 리더들이다. 리더는 때로는 불같은 카리스마를 내뿜어 흐트러진 조직을 다잡아 전체가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딱딱한 권위주의가 아니라 믿음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와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려는 노력, 궂은일이나 생색나지 않는 일도 솔선수범하는 자세, 후배를 동생처럼 보살피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인정미가 모두 리더십의 근본이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흩어진 눈동자들을 한군데로 모으는 것이다. 리더의 지휘에 따라 한군데로 초점을 맞춰서 힘을 합치면 조직이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상대와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려는 노력, 궂은일이나 생색나지 않는 일도 솔선수범하는 자세, 후배를 동생처럼 보살피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인정미가 모두 리더십의 근본이다.
  • [칠레광부 33인 전원구조] 매몰~구조 3대 관전포인트

    [칠레광부 33인 전원구조] 매몰~구조 3대 관전포인트

    ■ 지상의 리더십 - 33번의 환호 피녜라 대통령 ‘감동 100배’ 극비 프로젝트 “와, 이것 좀 보세요. 광산 밑으로 내려간 구조 캡슐 동영상이군요. 정말 특별한 순간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네요.” 칠레 광부 구출 작업이 시작된 13일(현지시간) 땅 밑으로 내려간 구조 캡슐이 화면으로 긴급 전송되자 CNN방송의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는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입을 닫았다. 지하 622m로 내려간 캡슐 동영상이 느닷없이 공개됐을 때 생방송 중이던 세계 뉴스 앵커들은 하나같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수천명의 취재진에 칠레 당국은 지하 상황을 생중계할 비디오 카메라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덕분에 세계 언론은 칠레가 기획한 ‘감동 시나리오’에 그대로 허가 찔렸다. CNN방송은 “(사전 예고 없이 전 세계에 공개된 지하 동영상은) 달 착륙이나 걸프전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방송 이벤트였다.”고 흥분했다. ‘광부들의 생환 스토리’를 생중계하면서 칠레가 거둔 마케팅 효과는 과연 얼마나 될까. CNN 등 전 세계 네트워크를 갖춘 방송이 시종 구조장면을 생중계한 데 따른 국가 브랜드의 광고효과는 돈으로 환산하기조차 힘들다. 69일 만의 생환이 안겨 주는 감동의 이면에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기획력’으로 무장한 리더십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광부들의 생존 사실을 알리는 쪽지가 탐침봉에 매달려 올라온 것은 지난 8월 22일. 광부들이 쓴 쪽지를 보여주며 “포기하지 않겠다.”고 세계에 약속한 그날 이후 피녜라 대통령은 코피아포 광산을 국가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는 깜짝 카드를 줄기차게 내밀었다. 맨처음 크리스마스 이전으로 잡았던 구출 시기를 11월 초, 이달 말에 이어 다시 최초 예상일보다 두달여 빠른 지난 12일로 앞당기면서 세계 언론들이 연일 코피아포발 속보를 싣게 만들었다. 지구촌 언론을 의식한 흔적도 역력했다. 지상으로 구출된 광부들이 말쑥하게 면도까지 끝내고 나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69일 생환 드라마의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썼던 ‘피녜라호(號)’의 위기관리 능력은 그래서 더욱 뜨겁게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는 셈. 이날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칠레 억만장자 대통령의 3대 성취’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제난, 8개월 전의 대지진에 이어 이번 구출작전까지 취임 이후 맞닥뜨린 3가지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잘 마무리했다고 평가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지하의 리더십 - 69일간의 희망 영웅 우르수아 “가족을 위한 위대한 싸움” 33명의 매몰 광부 가운데 자청해 마지막에야 ‘죽음의 막장’에서 나온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54). 절망 속에 있던 매몰 광부들 사이에 유대와 단결을 이끌어낸 그의 지도력은 33인이 비극의 그림자를 떨쳐내고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광명의 동아줄을 놓치지 않게 했던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매몰 광부들의 생존이 알려지지 않아 바깥 세상과 완전히 단절됐던 최초 매몰 17일 동안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동료 광부들에게 희망을 일깨우며 질서와 절제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을 감내하게 했다. 그는 동료들이 48시간에 한 번씩 스푼 2개 분량의 참치와 쿠키 반 조각, 우유 반 컵을 나눠 먹으며 버티도록 했다. 구조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에 대비한 것이다. 안전모에 달린 전등 사용도 엄격히 제한했다. 식수 확보를 제외하고는 불도저 등 중장비 사용도 못하게 했다. 대피소의 부족한 산소를 고갈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광부들의 다양한 이력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고 팀을 나눠 경계와 휴식을 번갈아 하도록 해 체력을 아꼈다. 한 팀이 잠자리에 들면 다른 팀은 갱도 추가 붕괴나 지하수 유출 등의 유사시에 대비토록 ‘불침번’을 세웠다. 주변 청결을 위한 청소와 건강유지를 위한 운동도 규칙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시켰다. 우물 세 개를 파서 식수를 조달하기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열광팬이자 노래를 잘 부르는 동료에게는 다른 동료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쾌한 노래를 부르고 합창하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간호사로 일했던 동료에게는 다른 동료의 치료와 심리 건강 유지를 살피도록 했다. 우르수아는 13일(현지시간) 구출 캡슐에서 나온 직후 “우리는 힘과 정신력을 갖고 있었고 싸우길 원했다. 가족을 위해 버텼다.”면서 “이는 위대한 일이었다.”고 벅찬 표정으로 말했다고 AFP가 전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효과적인 대응 - 22시간의 환희 광부 심리안정 배려속 굴착 경쟁시켜 급물살 ‘우리는 모두 살아 있다.’ 칠레의 산호세 광산 붕괴 17일 만에 매몰 광부들이 전해온 쪽지에서 기적은 시작됐다. ‘희망의 끈’을 발견하자 칠레와 국제사회는 저력을 발휘하며 기적에 한 걸음씩 다가갔다. 칠레 국민이 남미인 특유의 흥분을 절제하며 침착하게 대응할 때 세계는 69일간 구조 작업을 도우며 기적의 조각을 함께 맞춰갔다. 칠레의 초기 대응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광부의 심리 안정을 유도하고자 세심한 배려를 했다는 점이다. 땅 위와 아래를 잇는 유일한 보급 통로를 통해 화상 카메라를 내려 보낸 뒤 지상의 소식을 수시로 전하며 광부들을 위로했다. 특히 사고 발생 41일째인 지난달 14일에는 매몰 광부인 아리엘 티코나의 아내가 출산하는 장면을 녹화 영상을 통해 전했다.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며 광부들은 생에 대한 집념을 이어갔다. 또 전화와 영상장치를 통해 가족들과 자주 연락을 취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4개월로 예상됐던 구조기간을 두 달 가까이 줄인 것도 평가받을 만하다. 칠레 정부는 각국에서 온 토건 기술자에게 3개의 구출 통로를 동시에 파내도록 경쟁시켰다. 이 가운데 미국 굴착기 기사인 제프 하트(40)가 작업한 ‘플랜 B’ 통로가 가장 빨리 완성돼 신속하게 구출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국경을 초월한 지원 또한 구조 작업에 큰 보탬이 됐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은 앞선 기술을 전수해 구조캡슐 ‘피닉스’ 고안에 도움을 줬고 일본 역시 특수 제작된 우주복을 칠레에 보내는 등 온정을 나눴다. 스티브 잡스가 보내온 아이팟이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전달한 묵주 등도 광부들에게 힘이 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작업반장 우르수아 ‘질서유지’…최고령 고메스 ‘정신적 지주’

    작업반장 우르수아 ‘질서유지’…최고령 고메스 ‘정신적 지주’

    69일 동안 지하 700m에 갇혀 있던 칠레 광부들이 속속 구조되면서 이들이 지닌 사연도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작업반장이자 마지막 구출 예정자인 루이스 알베르토 우르수아 이리바렌은 매 순간 과단성과 지혜를 발휘해 자칫 혼란과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지하 700m 대피소를 인간애와 규율이 갖춰진 곳으로 만들었다. 특히 매몰 직후 부족한 음식 배분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고 지상에서 캡슐을 통해 음식이 내려왔을 때에는 무리한 영양섭취를 자제시키는 등 광부들이 건강을 유지하도록 힘썼다. ●아발로스 ‘갱도 속 카메라맨’ 12세 때부터 광부 일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마리오 니콜루스 고메스 에레디아는 다른 광부들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했다. 고메스는 광부들이 3명씩 한 조를 이뤄 서로 보살피도록 하는 ‘3인조’ 규칙을 만드는 등 다른 광부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다독였다. 올해 63세로 최고령자인 그는 올해 19세로 ‘막내’인 히미 산체스 라게스와 44살이나 나이 차이가 난다. 33명 가운데 가장 먼저 생환한 플로렌시오 아발로스는 지하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동료들의 모습을 담아냈던 ‘갱도 속 카메라맨’이었다. 그는 구조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돌발상황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침착성을 인정받아 첫 번째 구출자로 뽑혔다. 그의 동생 레난 안셀모는 ‘갱도 속 의사’ 역할을 했다. 아리엘 티코나 야네스는 갱도 속에서 아빠가 됐다. 스페인어로 희망을 뜻하는 딸 에스페란사가 태어나는 장면을 친척이 촬영해준 덕분에 티코나는 동료들과 함께 동영상으로나마 득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아발로스 동생은 ‘의사’ 역할 라울 엔리케스 부스토스 이바네스는 ‘늑대를 피하다 호랑이를 만난’ 경우다. 부스토스는 애초 지난 2월까지 중장비를 다루던 기술자였지만 칠레를 강타한 규모 8.8 지진과 뒤이은 쓰나미로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아내와 두 아이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4월 가족과 1125㎞나 떨어진 산호세 광산에 취업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비디오로 아내 출산 보고…독립기념일엔 자축행사…

    비디오로 아내 출산 보고…독립기념일엔 자축행사…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지하 700m 어둠 속에서 68일간 이어진 불사조 33인의 생존기는 지난 8월 5일 밤(현지시간) 시작됐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834㎞ 떨어진 코피아포시 인근 산호세 구리 광산 갱도가 무너지면서 광부 33명이 매몰됐다. 보름이 넘도록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자 광부들이 모두 사망한 것 아니냐며 포기하는 분위기가 퍼져 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사고 발생 17일 만인 8월 22일 드라마가 시작됐다. 혹시나 하며 수백 미터 지하 붕괴현장으로 기약 없이 찔러 보던 탐침봉에 하얀 종이쪽지가 매달려 나왔다. ‘대피소에 모두 33명이 있다. 우리는 무사하다.’ 막장이 붕괴되자 서둘러 갱도를 통해 아래쪽 대피소로 달려가 목숨을 건진 광부들이 지상에 희망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 ☞[사진] 칠레 광부들 구조되기까지 이들은 작업반장인 루이스 우르수아 지도 아래 48시간마다 한 번씩 스푼 2개 분량의 참치와 쿠키 반 조각, 우유 반 컵으로 버티며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17일을 버텼다. 붉은 글씨로 적힌 쪽지는 이후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8월 26일 구조팀은 대피소로 연결한 구멍을 통해 소형 카메라를 내려보냈다. 광부들은 이 카메라로 피신처 곳곳을 보여 주며 자신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후 ‘비둘기’라는 별명이 붙은 지름 12㎝ 금속 캡슐을 통해 광부들에게 물과 음식, 의약품이 공급됐다. 광부들은 가족과 편지 교환도 할 수 있게 됐다. 칠레 독립기념일인 9월 18일에는 갱도를 꽃으로 장식하고 국기를 게양한 뒤 국가를 부르며 고기와 생선, 채소로 만든 성찬도 즐겼다. 지상에 있는 의료진은 광부들이 지나치게 살이 찔 경우 구조용 통로를 통과할 수 없을까 우려했다. 광부들은 하루 2200㎉로 열량을 제한한 규칙적인 식사로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해야 했다. 아울러 구조 과정을 견딜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고안한 운동 계획에 따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체력과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눈길을 끈 것은 비디오게임기와 캠코더, 소형 홈시어터, DVD, MP3가 포함됐다는 것이었다. 언제 구출될지 모르는 밀폐된 공간에서 자칫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매몰 광부 가운데 한 명인 아리엘 티코나는 9월 15일 친척이 녹화해준 비디오 영상을 통해 부인이 딸 에스페란사를 낳는 장면을 동료들과 함께 지켜보며 희망을 키울 수 있었다. 에스페란사란 스페인어로 희망이란 뜻이다. 갑론을박 끝에 담배도 공급됐다. 당초 칠레 정부는 구출 예상 시기를 크리스마스 즈음이라고 했다가 곧 11월로, 다시 10월 중순으로 앞당겼다. 구조가 임박하자 광부들은 구조순서를 정하는 데서도 서로 동료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이런 끈끈한 동료애야말로 이들이 함께 생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작업조장을 뽑고 전체를 둘로 나눠 한 조가 잠을 잘 때 다른 조는 일을 하거나 여가활동을 했다. 간호사 출신 광부가 동료들을 돌보고,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광부는 오락 활동을 맡는 분업체계를 구축했다. 마침내 지난 9일 구조용 드릴이 매몰 지점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12일 밤 11시 20분(한국시간 13일 오전 11시 20분) ‘불사조’라는 이름이 붙은 구명 캡슐이 칠레 국영 구리 회사 코델코 소속 광산구조 전문가를 태우고 지하로 향했다. 17분 만에 광부들이 캡슐을 기다리는 갱도 지하 622m 지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13일 0시 11분 첫 번째 구조 대상자인 플로렌시오 아발로스가 구명 캡슐을 타고 지상에 올라왔다. 69일 만의 생환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숫자로 보는 칠레 매몰사고

    숫자로 보는 칠레 매몰사고

    칠레에서 33이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광산 붕괴사고로 매몰된 광부들은 모두 33명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8월 5일은 올해 33번째 주였고, 구조 터널을 뚫은 T-130 굴착기가 광부들한테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도 작업을 시작한 지 33일 만이다. 우연히도 광부들이 자신들이 살아 있다고 전한 쪽지도 띄어쓰기를 포함하면 모두 33글자다. 첫 구조자가 나온 연월일을 여섯 자리로 늘려 쓴 10(연도), 10(월), 13(일)을 모두 합한 숫자도 33이다. 심지어 구조 막바지 희망캠프에 등록한 외신 기자들도 모두 33개국 출신이다. 33 말고도 칠레 광부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숫자들을 모아 봤다. ●19 지하 700m에 매몰된 칠레 광부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히미 산체스 라게스는 올해 19살이다. 산체스는 어린 딸을 부양하기 위해 사고 몇 달 전에 광부 일을 시작했다. 그는 편지에서 하루빨리 어머니가 해주는 요리를 먹고 싶다고 썼다. ●29.5 매몰광부 33명이 갇혀 있던 대피소의 평균 온도다. ●39.4 매몰광부 33명의 평균 연령이다. ●63 매몰 광부들 중 최고령자는 올해 63세인 마리오 니콜루스 고메스 에레디아다. CNN에 따르면 고메스는 12세 때부터 광부 일을 시작한 51년차 베테랑이다. ●69 지난 8월 5일 밤 광산 붕괴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첫 번째 구출자가 나온 13일 0시 11분까지 모두 69일이 걸렸다. ●700 광부들이 갇혀 있던 곳은 지하 700m 깊이다. ●9700000 칠레 정부는 광산 소유주인 산 에스테반 그룹을 상대로 970만달러에 이르는 모든 자산을 동결해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12000000 매몰 광부 33인 중 29명의 가족들이 지난달 30일 광산 소유주를 상대로 1200만 달러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서울광장]지리산과 사람의 공생 모색하자/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지리산과 사람의 공생 모색하자/이춘규 논설위원

    추석 징검다리 연휴 끝무렵의 한낮. 남도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m)은 인파로 북적였다. 내륙 최고봉인데도 기념사진 찍기에만 20분 이상 걸릴 정도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표지석 글귀대로 팔도 사람들이 다투어 정기를 받으려는 듯했다. 쾌청한 날씨에 지리산은 숨겨 둔 경관을 다 보여줬다. 품고 있는 물길과 도시들, 멀리 남해바다까지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켜켜이 포개진 계곡과 능선들은 끝없이 이어졌다. 지리산 주능선길은 매력을 물씬 뿜어냈다. 둥근달은 길을 훤히 비추었다. 연하천대피소 부근 능선에서 본 일출은 입이 떡 벌어지게 장관이었다. 거대한 태양은 도심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을 발산했다. 돌길 주능선은 거칠면서도 한없이 넓은 어머니 품 같았다. 기화요초들은 낙화를 앞두고 절정으로 내달렸다. 곳에 따라 다른 가을 숲 향기는 코를 호사시켰다. 하지만 웅대한 주능선 길은 지리산이 시나브로 병들어가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렸다. 20년 전부터 생각나면 지리산을 찾아 간다. 최근 들어 지리산의 이상 신호를 자주 감지하게 된다. 도로·등산로 정비로 등산객이 급증, 지리산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지리산 등산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는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1988년 성삼재 일주도로가 개통된 뒤 종주등산객이 폭증, 이후 종주길 생태계가 훼손되고 있다. 성삼재 도로 폐쇄 논쟁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이유다. 2000년대 들어 등산 붐은 지리산 등산객을 다시 한 번 급증하게 했다. 주말이면 지리산은 수도권 명산들과 다름없이 엄청난 사람이 몰려든다. 제석봉 부근 화석 자원들이 무심하게 짓밟힐 정도다. 경남 산청군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5.4㎞ 가파른 등산로는 천왕봉에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지름길. 이 길의 나무와 돌 계단이 정비되며 천왕봉의 인파도 급증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정비하면서 노약자들까지 천왕봉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안전성을 높이니 오르는 사람이 늘고, 인파로 사고 위험이 증가하니 역설적이다. 천왕봉 서쪽 주변을 평평하게 정비, 휴식처가 늘어나자 등산객이 적정선 이상 찾아 순식간에 비좁아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지리산 주능선 등산로 주변의 훼손이 심각하다. 주말이면 주능선 등산로 곳곳은 사람이 넘쳐 장터를 방불케 한다. 한쪽 방향 사람이 지나는 것을 한참 기다려야 나아갈 수 있다. 새벽에도 사람이 몰려 지체·정체를 감수해야 한다. 사람이 넘쳐나다 보니 상대를 배려하는 여유도 사라지고 있다. 종주 등산객들의 목표가 되는 천왕봉 주변 암벽은 곳곳이 언제 파괴될지 모를 정도로 불안정하다. 극한의 기온과 비바람에 풍화침식이 진행된 데다, 엄청난 사람의 발길에 짓밟히면서다. 자연 태고의 신비도 퇴색했다. 음식물쓰레기가 등산로 주변에서 썩어간다. 천왕봉 부근에서도 음식을 해먹어 고기 냄새가 저잣거리를 방불케 한다. “지리산에서 길 잃을 일은 없다.”고 할 정도로 안내판·홍보물 홍수다. 주능선에서 뛰듯이 종주하는 등산객들이 많은 것도 문제다. 전날 밤 서울, 부산, 광주 등지를 출발해 다음날 새벽 성삼재에서 주능선 종주를 시작, 13시간 안팎에 중산리까지 경주하듯 한다. 주능선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긴다. 법규가 개정되며 노고단, 장터목의 케이블카 설치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주변 지자체들은 케이블카를 설치, 많은 사람이 지리산에 올라 즐길 수 있게 하자고 한다. 환경단체들은 생태계 파괴가 심화된다며 반대한다. 지리산이 사람에 치이고, 개발논쟁에 시름이 깊어간다. 지리산은 한 번 훼손되면 회복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우리나라 최대의 생물자원 보고 지리산의 자연성, 원시성을 지켜내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지리산에 더 이상의 상처를 남기는 것은 위험하다. 지리산과 사람이 조화롭게 공생할 방안을 모색해 보자. taein@seoul.co.kr
  • [열린세상]“살아 있어 행복합니다”/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세상]“살아 있어 행복합니다”/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나무 한 포기 없는 삭막한 칠레 북부의 산호세 광산. 이곳에서 감동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 8월22일 지하 700m 밑에서 “우리는 모두 대피소에 잘 있다. 33인”이라는 쪽지가 올라왔다. 탄광 매몰 17일 만이었다. 절망과 비탄의 산호세 광산은 ‘희망의 캠프’로 바뀌었다. 시추공의 작은 구멍으로 음식·약품 등을 공급하고 있지만, 지금도 광부들은 암흑·더위·습기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다행히 신속한 굴착작업으로 이르면 이달에, 늦어도 다음 달엔 구조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놀라운 일은 그들이 어떻게 외부와 접촉이 완전히 끊긴 채 17일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생존의 필수조건인 비상식량과 물이 있었고, 독성가스가 거의 없었다는 매몰 환경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큰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깥 세상과 연락이 두절돼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17일간의 사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막장의 혼란과 불안을 희망과 질서로 바꾼 리더십이었다. 리더로 나선 인물은 최연장자인 예순두 살의 마리오 고메스였다. 그를 도운 또 다른 2명의 리더는 작업반장 우루주아(54)와 건강담당 배리오(50)였다. 이들 모두 광부 집안 출신이다. 그들이 탄광에서 일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90년이 넘는 베테랑 광부들이다. 열여섯 살 때부터 광부로 일한 고메스는 젊은 나이에 수직갱도에서 손가락이 끊어지는 끔찍한 사고 이후, 작은 성경책에서 위안을 찾았다고 한다. 삶의 역경을 헤치고 살아온 고메스였기 때문에 매몰 광부들에게 정신적 리더가 될 수 있었다. 33인의 광부들은 3명씩 팀을 짜 조직적으로 생활했다. 혼자서는 쉽게 무너져도, 단결하면 강해질 수 있다. 모두를 위해 각각 맡은 역할과 책임이 있을 때 살아갈 이유와 힘이 생긴다. 바로 하모니의 힘이다. 이틀에 참치 두 스푼과 비스킷 한 개씩을 나눠 먹는 극한 상황에서도 광부들은 단합했다. 각각 맡은 음역 파트를 책임지듯이, 33인의 광부들은 각각 맡은 소임을 다하며 희망과 상생의 하모니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역경 속에서 광부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은 바로 평범한 일상의 리듬과 소소한 삶의 즐거움이다. 광부들의 생존은 확인되었지만, 3000~4000t의 돌더미 밑에서 그들을 구조하는 일은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르는 어려운 작업이다. 전문가들이 가장 염려한 것은 낮과 밤이 없는 어둠 속에서 인간이 겪는 정신적·신체적 외상이다. 매일 해가 뜨고 지고, 여기에 맞춰 24시간의 사이클로 살아가는 일상이 인간 생존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가장 먼저 요구했던 것은 바로 ‘칫솔’이었다. 이어 담배, 레드와인, 심지어 아이팟 충전 등을 원했다. 축구경기 TV 중계, 도미노 카드게임 등 일상적 오락 역시 그들을 견디게 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가족과의 편지와 통화도 중요했다. 가슴 찡한 사랑 메시지도 있지만 집안 일, 청구서 대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등 일상의 소소한 걱정과 대화가 오히려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위안이 되었다. 재난과 역경 속에서 우리가 꼭 부여잡는 희망의 동아줄이 평범한 일상 그 자체라는 게 칠레 광부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도 살아 있는 일상을 감사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33인의 칠레 광부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도, 그들을 살아남게 만드는 것도 모두 그들이 바로 ‘광부’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낮과 밤을 바꾸는 고된 노동, 어둠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체력, 늘 생사고락과 죽음의 공포를 같이한 동료들의 연대감, 그리고 어떤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강인한 삶의 의지…. 고된 삶에서 체득한 위기 극복의 DNA가 역경 속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가장 평범한 인간이 고난 속에서 오히려 가장 위대한 영웅이 되는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유이다. “살아 있어 엄청 행복하다.”는 칠레 광부들 모두가 하루빨리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의 기적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 [CEO 칼럼] 백두대간 종주로 찾은 ‘야성 경영’/박종원 코리안리재보험 사장

    [CEO 칼럼] 백두대간 종주로 찾은 ‘야성 경영’/박종원 코리안리재보험 사장

    지난주에 직원들과 설악산에 다녀왔다. 3일 동안 비를 맞으며 100리 산길을 행군한 것이다. 지난 2004년부터 백두대간 종주 계획을 세워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을 종주한 후 드디어 지난해에 설악산을 지나 휴전선 아래 진부령까지, 전 임직원이 6년간 백두대간 300㎞ 종주의 대장정을 끝마쳤다. 그런데 그 종착점인 진부령에서 올해 다시 지리산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우리 회사의 야성과 도전의 기업문화가 발원한 곳이 바로 백두대간이고, 그 도전의 정신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온 길을 다시 그대로 왕복해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첫날부터 비가 주룩주룩 오기 시작했다. 취재차 동행한 기자들이 물었다. “출발부터 이래서 산행이 가능합니까?” 그러나 직원들은 태연하다. 우리는 시작하기도 전에 갖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마음이 혁신을 방해하고 현실에 안주토록 한다는 것을 지난 6년간의 종주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출발 후 5분이면 온몸은 젖을 것이고, 한번 젖은 몸은 다시는 젖지 않는다.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내 스스로의 긍정적인 마음이다. 진부령을 출발하여 대관령에 이르는 곳곳에 폭우로 길이 유실되고 아찔한 낭떠러지 길도 있었지만 조심조심 지나며 산길 16㎞를 걸었다. 둘째 날 새벽, 텐트 밖으로 굵은 빗소리가 계속되자 외부 인사들은 또다시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오늘도 갑니까?” 이튿날 코스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험준한 구간이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세 시간가량 수직으로 치고 올라가 다섯 시간에 걸쳐 공룡능선을 넘어야 한다. 공룡능선은 설악산을 남북으로 가르는 척추 격으로, 마치 공룡 등의 돌기처럼 능선에 다시금 높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어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코스로 통한다. 일행은 날카로운 바윗길과 미끄러운 흙길을 지나고, 밧줄을 잡고 까마득한 암벽을 내려가기도 하며 악전고투 속에 빗속의 공룡능선을 넘어 희운각에 도착했다. 그렇게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중청까지 2㎞의 급경사 계단 길을 두 시간 반 동안 기어오르다시피 했다. 물론 나도 막막할 정도로 힘이 들고 다리는 마비된 것처럼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러나 묵묵히 따라오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주저앉을 수 없었다. 결국 사투 끝에 직원 모두 개선장군이 되어 월출(月出)을 보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특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첫 종주에 성공한 신입사원들이 가엾기도 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은 인생 전체를 지탱할 야성을 찾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믿음과 사랑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불과 7년 전, 종주계획을 발표했을 때 외부에서는 ‘홍보성 이벤트’로 여겼고, 내부 반응은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의심과 ‘여기가 군대냐’는 불만이 반반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텐트나 대피소에서 비좁은 칼잠을 자고, 직접 밥을 해먹으며 100리 길을 함께 걷고 나면 ‘동료’를 넘어 ‘전우’가 된다. 또한 부정적인 생각도 벗어던지게 된다. 온몸의 에너지가 소진된 채 가도 가도 끝없는 길을 걸으며 ‘나는 왜 여기 있는가’를 생각하면 자기 존재의 밑바닥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런 고통 속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시작하기도 전에 지레 겁 먹고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백두대간에서 ‘야성 경영’을 찾았다. 사람이 야성을 잃으면 위기에 처하듯이 기업도 야성을 잃으면 무너진다. 종주를 통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승부근성으로 한계에 도전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되었고, 이를 통해 회사의 경영실적도 크게 향상되었다. 직원들도 야성을 되찾았다. 빗속에서 빗물 섞인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즐겁게 웃고, 안경이 날아갈 정도인 초속 30m의 강풍 속에서도 바위를 붙잡고 정상에 기어오르며, 뙤약볕 속에서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까지 동료에게 양보한다. 이런 큰 변화의 선물을 안겨준 백두대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 부천서 실내경마장 ‘흔들’… 수천명 대피소동

    경기 부천시 한 실내경마장 건물이 흔들리면서 수천명의 이용객과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9일 부천시와 오정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45분쯤 원종동 실내경마장 건물이 흔들리고 지하 3층 기둥에는 심한 균열이 생겼다. 이에 경마장 운영 주체인 한국마사회는 지하 3층, 지상 7층의 실내경마장과 볼링장 등을 찾은 손님 3000여명을 긴급 대피시킨 뒤 건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경마장 인근 빌라에 거주하는 20가구의 주민도 대피했다. 시 관계자는 “건물 지하 2층 주차장의 하중을 이기지 못해 지하 3층 기둥에 금이 생긴 것 같지만 왜 건물이 흔들렸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마사회에서 건물 안전진단을 하기로 했다.”면서 “안전진단 뒤 건물 계속 사용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길섶에서] 노고단 기행/함혜리 논설위원

    지리산 천은사에서 2박3일간 템플스테이를 했다. 예불에 참석하고 식사 및 취침시간을 지키는 것 말고는 자유로운 휴식형이었다. 절 앞에서 성삼재 가는 버스를 타면 오전 시간을 이용해 노고단을 다녀올 수 있다기에 둘째 날 시간을 냈다. 버스를 타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저 아래로 뭉게구름이 솜이불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잘 정돈된 탐방로를 따라 노고단에 올랐다. 쉬엄쉬엄 가다 보니 한 시간 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눈앞에 고지가 보였다. 하지만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좀 빠듯하다. 햇볕은 뜨겁고 올라가 봐야 별것 있겠나 싶었다. 15년 만에 오른 노고단인지라 그냥 내려가는 게 좀 서운했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노고단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스님께서는 “야생화 군락이랑, 내려다 보는 경치가 너무 좋지요?” 하신다. 아차 싶었다. 바로 코앞에서 우리는 꼭 봐야 할 걸 놓쳤던 거다. 그렇다고 크게 아쉽지도 않았다. 천은사에 다시 올 좋은 핑곗거리를 찾았으니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사이버전쟁 야전사령부’ 정부통합전산센터 24시

    ‘사이버전쟁 야전사령부’ 정부통합전산센터 24시

    16일 오후 대전 정부통합전산센터 통합보안관제실. 20여명의 직원들이 중앙모니터와 개인별 모니터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다. 4월23일 시작된 비상근무체제는 지난 8일 해제됐지만 이곳은 항상 긴장감이 흐른다. ‘7·7분산서비스 거부공격(DDos)사태’ 1주년인 올 지난 7일 청와대 등 정부기관에 DDoS 공격이 이어지는 등 사이버 위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면에 위치한 대형 모니터에는 정부기관 전산망의 정상가동 및 해킹 발생 여부 등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이상 트래픽이 감지되면 공격받은 기관의 아이콘이 빨간색으로 깜박인다. 직원들은 즉시 유해 트래픽을 선별해 걷어 내고, 그래도 공격이 멈추지 않으면 공격자 IP를 직접 찾아내 이를 차단한다. 장광수 통합전산센터장은 “6월 중국발 반한류 네티즌 공격과 미처 치료되지 않은 좀비PC공격 등 정부기관 전산망을 향한 사이버 위협이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면서 “미리 대처한 덕분에 올해는 피해 없이 공격기도들을 차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통합전산센터는 우리나라 전자정부의 심장이다. 총 48개의 정부기관 전산망이 대전 26개, 광주 22개 등 두 곳의 센터에 통합돼 있다. 271명의 직원들은 이를 유지·관리하기 위해 연일 구슬땀을 흘린다. 각 기관의 전산망을 통합관리하는 데 따르는 이점은 상당하다. 운영 수준이 제각각인 정부기관들의 전산 시스템을 표준화해 각종 사이버 위협을 일시에 차단하고, 장비당 장애 시간도 획기적으로 낮췄다. 출범 이듬해인 2006년 3.58분이던 월평균 장비당 장애시간은 지난해 0.11분으로 줄었다. 정보자원 통합으로 인한 예산 절감액도 연간 850억원에 이른다. 국가전산망의 핵심인 만큼 보안도 엄격하다. 모두 157개의 폐쇄회로(CC)TV가 주요시설을 24시간 감시한다. 모든 인원은 각 실을 출입할 때마다 직원카드 인식, 정맥 인식(사람마다 다른 손등·손목 등의 혈관 패턴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방식)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외부인에겐 사진촬영도 허용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나 사진기를 모두 내려놓고서야 모습을 둘러볼 수 있었다. 주민등록정보, 특허·세금 관련 전산정보 등 절대 노출돼서는 안될 정보들을 다루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정부기관 서버와 저장장치들이 위치한 전산실의 일부 구간은 이에 더해 출입자 체중감지센서도 부착돼 있다. 누군가 출입인가자를 위협해 진입을 시도하더라도 설정기준 체중을 초과하기 때문에 출입이 불가능한 구조다. 센터 관계자는 “특히 정맥인식 방식은 현재 구축된 신원확인 절차 가운데 가장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통합전산센터는 사이버위협 분석 대응 시스템 보강을 통한 한 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DDos 대피소를 설치해 공격시도를 사전에 무용화한다는 구상이다. 보호를 요청한 기관들의 홈페이지를 안전한 서버로 옮겨 정상 접속신호만을 선별해 연결하는 방식이다. 장광수 센터장은 “인체의 심장처럼 정부기관 전산망은 한시도 멈춰서는 안 된다.”면서 “국가 정보자원을 안전하게 관리해 세계 최고의 정보 허브기관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남상헌기자 kize@seoul.co.kr
  • 참 더운 무더위 쉼터

    이모(75) 할아버지는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야. 너무 더울 땐 운현궁 나무그늘에 가 있음 돼.” 13일 오후 서울 경운동 A노인복지센터, 실내 온도는 27도로 바깥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노인들은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거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덥나 싶어 실내로 들어서니 후끈 열기가 느껴졌다. 문래동에 위치한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도 마찬가지였다. 정모(83)씨는 “건물 안이 찜통이라 바깥에 나와있곤 한다.”면서 “무더위 쉼터면 최소한 바깥보다는 시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가 노약자를 위해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지정한 무더위 쉼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전국 무더위 쉼터는 3만 9379개로, 지난해보다 1827개소가 늘었다. 서울시에만 3106곳이 설치돼 있다. 정부는 지난 2006년 폭염대책의 일환으로 폭염대피소(무더위 쉼터)를 지정했다. 그러나 숫자만 늘었을 뿐 제대로 된 홍보도, 안내판도 없다. B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신모(84)씨는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건 몰랐다. 안내도 없었다.”면서 갸우뚱했다. 서울시, 구청, 주민센터 등에 확인해 봤지만 공무원마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안내판을 붙이는 것은 강제사항이 아니다.”면서 “관련 실내온도 규정이나 장비·시설에 대한 지시가 없어 에너지절약 권고 온도인 26~28도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주말에는 사용할 수 없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주민센터·복지관·마을회관·은행 등이 대부분 주말에는 문을 닫기 때문이다. 소방방재청은 홍보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번주 중 각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홍보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그것도 못마땅하다. 한 이용자는 “홍보보다 급한게 관리대책인데, 그건 빼놓고 홍보한다고 난리”라고 꼬집었다. 이민영·김양진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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