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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9회)

    ■배우·연출가 김명곤 ‘광대와 투사’ 연극·영화배우이자 연출가인 김명곤(47)을 따라다니는 두가지 이미지다.좀더 정확히 짚어보자면 거친 시대상황 때문에 ‘영원한 광대’가 꿈인 그의이름앞에 ‘투사’라는 꾸밈말이 붙었다고 봐야 한다. 72년 우연히 연극반(서울사대)에 들렀다가 ‘대타 배우’로 나서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교내공연이 불허돼 이화여대 옆 가톨릭회관에서 ‘선우교수댁’(김국태 작·연출)을 띄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셔터를 내린 것이다. “연극과의 첫 경험이 ‘금지’였습니다.이후 당국과 주류 연극계의 곱지않은 시선과 맞서는 아웃사이드 인생이 이어진거죠” 애초 그에게 연극반은 투쟁이나 이념의 공간이 아니었다.좋은 선배가 있었기에 발길이 잦았고 그곳에 술과 토론이 있어 좋았던 것이다.무엇보다 잘 곳이 없고 끼니 떼우는 게 힘들던 그에겐 라면을 먹을 수 있었고 잠자리를 해결해 주었던 ‘천국’이었다. 공연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걸 보면서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여기서 그의 삶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한번 고개를 든 의문은 교사극단 ‘상황’시절증폭된다.‘아벨만 이야기’(이근삼 작·연출)와 ‘뻐꾹 뻐 뻐꾹’ 공연을이어가던 중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극단이 와해된다.함께 활동하던 이재오(현재 한나라당 의원)등이 연루되면서 ‘빨갱이 극단’으로 둔갑한 것이다.‘왜’라는 관념이 질곡과의 싸움으로,광대가 투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예술이 정치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은 내면으로 가라앉았다.그 자리에 이어지는 탄압에 대한 공연으로서의 대항이 싹을 틔웠다.김지하 황석영 임진택 채희완 김민기 등과 ‘놀이패 한두레’를 이끌어 갔다.연우무대패들과도 어울렸던 이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노동극 ‘밤하늘의 별처럼’을 연출했는데 역시 공연 허가가 나지 않더군요.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 30여명을 몰래 불러 수색 근처 야산에서 공연하기도 했지요.연우무대 시절엔 ‘나의 살던 고향은’(임진택 연출)을 공연하는데 한 대학생이 삐라를 뿌려 공연이 6개월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장산곶매’(80년 이상우 연출)‘장사의 꿈’(81년 황석영 작·임진택 연출) ‘민달팽이’(82년 김명곤 작·연출)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없다더냐’(82년 김민기 연출) ‘나눔굿’(85년 이애주 안무) 등 주옥같은작품으로 연기 인생을 꽃피웠다.특히 ‘장사의 꿈’에선 10여명의 배역을 혼자 소화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민중문화운동의 초창기였고 제가 젊고 도전적이던 때라 사회개혁과 우리것 찾기에 대한 열정을 맘껏 터뜨릴 수 있었습니다.대학생이나 노동자를 대상으로 연극과 민요도 가르쳤습니다.물론 공연도 병행했지요.대본 심사가 워낙 엄격해서 ‘통과용 따로 공연용 따로’ 만들어야 했던,그야말로 연극 1편만드는 게 투쟁이라는 심정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숨가쁜 발길은 문화운동으로서 연극운동의 방법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목도하면서 ‘제3의 길’로 돌아선다.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고 소극장 한마당을 세워 이론보다는 ‘연극 현장’을 열었다. “예술이냐 사회운동이냐는 이분법적인 논쟁보다 중도적 입장을 택하고 싶었습니다.무엇보다 무대가 좋았구요.이 시절 장산곶매가 만든 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하자 ‘닭장차’가 집결하기도 했습니다.결국 극장은 영업정지,극단은 등록취소의 운명을 맞았죠.물론 법정투쟁 끝에 승소했죠” 87년 민주화 열기로 직접적인 금지가 완화되었다.하지만 김명곤에겐 또 다른 ‘금지’가 가로놓여 있었다.연극계 내부의 보수적인 인식과 ‘고리타분한’ 잣대가 그것.91년 서울연극제에 참가하기로 예정됐던 ‘격정만리’(김명곤 작)에 당시 연극협회 원로들이 ‘친북’의 올가미를 씌웠다. “‘격정만리’는 한 연극배우의 일제시대에서 6.25전쟁까지의 삶을 다룬작품이었죠.그런데 극중극 형태로 삽입한 친일 배우의 삶이 ‘연극계의 치부를 건드렸다’고 신경이 곤두선 거죠.물론 대외적인 참가불허 이유는 월북배우의 삶을 다루었다고 해서 ‘빨갱이 연극’이라는 거였죠” 연극협회와의 이 갈등을 토론을 제의해 ‘연극논쟁’을 전개함으로써 해결했다. 김명곤은 이분법적 사고를 싫어한다.‘투사’보다 ‘광대’를 더 좋아하는것도 여기서 비롯한다.쉼표없는 ‘광대살이’의여정에서 무대극과 마당극의 논란을 거부한 것이나 영화냐 연극이냐를 둘러싼 ‘한우물 지조론’에 관심이 없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그저 그가 지향하는 예술적 목표를 이루면 족한 것이다. “내용 면에선 인간의 원초적 문제를 시대상황과 공감대를 이뤄내면서 그것을 담는 그릇인 형식은 다양하고 유연성을 담보해야 합니다.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발전과 새로운 시도를 찾아가야 합니다” 지난 90년 펴낸 수필집 ‘꿈꾸는 퉁소쟁이’(고려원)에서 김명곤은 시대상황에 몰두한 나머지 예술로서의 본질적 주제를 소홀히 했다는 자성을 토로한 적이 있다. “어릴적 내성적이고 늘 혼자 놀곤해서 ‘방안퉁소’라는 별명이 붙었는데70∼80년대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민중과 반독재 투쟁을 향한 ‘바깥퉁소’로 바뀌었다.그런데 처음엔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니 언제부턴가 ‘바깥퉁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방안퉁소’에 소홀한 탓이다”안팎 퉁소의 통일을 꿈꾸는 그는 ‘천상 광대’이다.이 길에 남겨진 두가지 과제를들려주면서 ‘과천 마당극잔치 비상대책위원회’모임으로 향했다. “내용면에서 간섭과 금지는 간접적이고 최소화 되었지만 관 주도 문화행정이 주는 제도적 구속은 아직 남아있습니다.그리고 더 무서운 ‘금지’는 타성에 젖어가는 저의 모습이죠.그놈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나태해져,열정이 사위어 가는 추한 얼굴로 변해가고 있습니다”■그의 길▒52년 전주 출생.▒71년 서울사대 독어교육과 입학 ▒77년 ‘뿌리깊은 나무’기자 ▒78년 배화여고 교사 ▒79년 ‘밤하늘의 별처럼’출연·연출 ▒82∼83년 영화 ‘일송정 푸른 솔은’‘바보선언’‘과부춤’ 등 출연 ▒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 이후 ‘갑오세 가보세’‘점아 점아 콩점아’‘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등 작·연출 ▒93년 영화 ‘서편제’각색·출연 이후 영화 ‘태백산맥’‘영원한 제국’등 출연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현대연극상 최우수작품상·연출상 수상 ▒ 97년 전국마당극협의회 의장. 李鍾壽 vielee@
  • 현대家 ‘영토분할’ 가속화

    ‘현대패밀리’의 분가(分家)가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올들어 현대해상화재와 현대정유를 계열분리한데 이어 다음달 10일쯤 금강개발산업 관련 5개사도 분리하기로 했다.지난 8일 발표한 구조조정계획에서 2001년까지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포함)를 그룹에서 독립시키고 2005년까지 전자·중화학·건설·금융·서비스 부문을 순차적으로 소그룹화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는 ‘대한민국 1대 재벌’ 현대호의 해체와 함께 鄭周永명예회장을 축으로 한 현대패밀리의 형제분가를 위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같은 구도대로라면 자동차는 夢九(61·鄭명예회장의 2남),금강개발은 夢根(57·3남),현대해상화재 夢允(44·7남),현대정유 夢爀(38·鄭명예회장의다섯째 동생인 鄭信永씨의 외아들),조흥 및 강원은행과 합병하는 현대종합금융 夢一씨(40·8남)로 지분이 정리되는 셈이다. 현대자동차 이사회의장인 鄭世永(71·鄭회장의 세째동생)·자동차 부회장인 鄭夢奎(37·鄭世永회장의 외아들)부자의 몫을 어떻게 정리할 지는 아직 미지수.현대·기아자동차의 부품부분을 따로 떼어내 분가시킨다는 설이 있다.따라서 5개 소그룹의 한축인 중공업은 夢準(48·6남)씨가 갖고 나머지는 夢憲(51·4남)회장이 직영하는 식으로 후계·분가구도가 정리될 전망이다. 현대는 우선 夢根씨가 최대주주인 금강개발의 계열사인 한무쇼핑(현대백화점무역센터점) 현대쇼핑 한국물류 울산방송 울산주리원백화점 등 6개사에 대해 다음달 10일쯤 공정위에 계열분리를 신청할 계획이다.夢根씨는 상장사인금강개발산업의 지분 24.31%와 울산주리원백화점의 지분 43%를 갖고 있다.유통·관광전문그룹으로 키운다는 복안이다. 이들 회사의 계열분리 신청이 이뤄지면 현대는 자산규모 5조4,653억원,매출규모 4조4,660억원,종업원수 1만2,400명이 줄어든다. 재계 관계자는 鄭명예회장이 동생인 鄭仁永(79·한라그룹),鄭順永(77·성우그룹),鄭熙永(74·한국프랜지),鄭相永(63·KCC그룹)씨를 각각 독립시킨 것이 아들 7명 분가의 모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魯柱碩 joo@
  • 풍전등화의 대한제국과 창간(다시 태어난 ‘대한매일’:2)

    ◎‘排日護國’ 민족혼 일깨운 횃불/여론조작 친일紙 득세하던 1904년/치외법권 혜택 裴說 발행인 내세워/첫호부터 日 야욕 고발한 민족지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이하 대한매일)가 한국사 무대에 등장한 1904년은 일본의 한반도 병탄 야욕이 막바지에 달한 때였다.그해 2월8일 일제는 인천항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 2척을 격침해 러일전쟁을 도발한다. 이를 빌미로 서울을 점령한 일본군은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하는 권한을 획득한다.이어 7월20일에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해 ‘집회나 신문이 치안을 방해한다고 인정할 때는 그 정지를 명령하고 관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한다. 배일(排日)민족언론의 숨통을 죌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올가미가 드러나기 이틀 전인 7월18일 대한매일은 그 거대한 족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당시 국내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발행하는 신문이 뒤섞여 있었다.한국인 신문(민족지)으로는 ‘황성신문’‘제국신문’이,일본인 신문(친일지)으로는 ‘한성신보’‘대한일보’‘대동신보’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민족지들은 일본군 주둔 이후 갖가지 탄압에 시달려 활기를 잃은 반면 수적으로도 우세한 친일지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일제는 19세기 말 한반도 침략을 시작하면서 여론 조작수단으로 일본인 경영의 신문을 많이 발간했다.1881년 이래 한반도 전역에서 발간한 한글·일본어·영자 신문이 총 30여종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매일 창간은 한민족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을 주었다.발행인인 배설(裴說)이 치외법권을 누리는 영국인이어서 일제의 검열을 피할수 있을 뿐더러 발간 즉시 ‘한민족과 대한제국의 편에 서서 일제침략에 맞서는’태도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매일의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는 당시 유일한 일간 영자지여서 한반도 정세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크게 작용했다. 대한매일 창간 무렵 한민족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였다.일본은 6월6일 ‘한국인이 명백하게이용·경작하는 토지를 제외한 전국토’를 개간해 50년 동안 경영하는 권리를 달라고 대한제국 정부에 요구했다.표면상 개간권을 요청한 자는 일본 각료 출신인 나가모리(長森藤吉郞)였지만 실제로는 일제의 치밀한 ‘식민지화’ 계획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다. 이 일이 알려지자 한반도는 당연히 들끓었다.요구를 받아들이면 적어도 국토의 6분의 1(당시 일본 외상의 발언)에서 많게는 3분의 2(윤치호 주장)까지 일본에 넘어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아울러 황무지 개간을 내세워 일본인들이 떼지어 한반도로 몰려올 것도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민족지들은 일제히 일본의 야욕을 비난했고 농광회사(農鑛會社),보안회(保安會)등의 단체가 생겨나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시작했다.이같은 상황에 제동을 걸고자 일제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한매일도 당연히 ‘황무지 개간’건 보도의 일선에 나섰다.현재 대한매일의 창간호부터 15호까지는 남아 있지 않고 제16호(1904년 8월4일자)가 가장 오래된 지면이다. 그 날짜 영문판 톱기사는일본의 영자지 ‘고베 크로니클’의 논설 ‘프로텍팅 코리아(Protecting Korea)’를 절반 가까이 전재했다.‘일본 정부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코리아에는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기사를 자세히 소개한 뒤 대한매일은 ‘이같은 고발에 대해 일본 정부는 무슨 말로 대답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이어 16일자에도 ‘나가모리 어게인(Nagamori Again)’(18일자 한글판 제목 ‘장삼씨의 문제 갱론이라’)이란 톱기사로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한다. 대한매일이 배일 논조를 뚜렷이 하자 친일지들은 즉각 대한매일과 배설(裴說)을 비방하는 기사를 실었다.대한일보 10월5일자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이 신문은 ‘영국인 배설이 경성에서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는…번번이 일본이 패전한다는 설을 논하고,러시아의 제2군이 이미 일본군의 후방을 차단하여 포위했으므로 머잖아 일본군이 대패하리라는 등의 거짓말을 싣고 있다’고 비난했다.이어 ‘이 영국인은 (일본)고베에서 장사꾼으로 생활하던 천인(賤人)이기로 전국(戰局)을 알 리가 없다’고 인신공격을 달았다. 이 신문은 이밖에도 11월10일자,12월23일자 등에서 대한매일을 ‘일본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거나 심지어 ‘친러시아 기관지’라는 등의 악의에 찬 비난을 거듭 퍼부었다. 창간하자마자 민족지의 대표로 떠오른 대한매일신보.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두 어깨에 짊어진 대한매일이 6년여 동안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벌인 대전쟁은 이처럼 막을 올렸다. ◎대한매일신보 발행 체제/영문·순한글 6면 합쇄/타블로이드판으로 출발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는 6년여 동안 4가지 체제로 발행됐다.창간시에는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 4면과 순한글판인 대한매일신보 2면 등 모두 6면을 합쇄 형태로 냈다.지면 비율로는 2대1일이지만 영문판 4면 가운데 2면은 광고였으므로 처음부터 한글·영문 기사의 비중은 같게 출발했다.판형은 타블로이드판이다. 그즈음 영문으로 나온 정기간행물은 미국인 헐버트(Homer B.Hulbert)가 내는 월간지 ‘코리아 리뷰(Korea Review)’뿐이어서 일간지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처음부터 널리 주목받았다. 영문·한글판 합쇄 체제는 다음해 5월10까지 이어졌으나 인쇄시설에 문제가 생겨 다섯달 동안 휴간한다.1905년 8월11일 속간하면서는 영문판과 국한문혼용판을 분리해 발행했다.2년쯤 뒤인 1907년 5월23일에는 한글판을 부활해 영문판·국한문혼용판·한글판 세 가지가 동시에 나왔다.우리 언론 사상 유일한 사례다. 裴說이 영국인 만함(Alfred Weekly Marnham)에게 신문사를 넘긴 며칠 뒤 영문판 발행이 중단돼 1908년 6월1일부터는 국한문판과 한글판 2종만을 내었다.영문판은 이듬해 복간되지만 곧 사라진다. 이같은 발행체제의 흐름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독자층이 넓어지면서 국한문판·한글판으로 점차 확대하다가 후기에는 일제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영문판이 사라짐을 알 수 있다.1900년대 초 시대요구에 부응해 다양한 독자층의 욕구를 수용한 대한매일의 발행체제는 진실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대한매일신보 연구 현황/韓末 담아낸 시대그릇/각 분야별 연구 활발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연구는 100여년 한국 언론사 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가 이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첫째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언론의 소임을 다한,우리 언론사에 거의 유일한 신문이었다는 원론적 의미에서다.둘째는 한말 우리의 사회상과 국제정세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한매일에 대한 지금까지 연구는 우리 언론사 연구에서 항일과 관련,독립적으로 다뤄져온 부분도 많다.언론 자체 문제뿐 아니라 한말 우리의 시가(詩歌),한글,산업진흥,광고,자주의식,국제 외교사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 영역이 확대돼왔고 특히 80년대와 90년대 들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매일신보만을 독립적으로 다룬 단행본은 △‘제국주의와 언론­배설·대한매일신보 및 한·영·일 관계’(구대열·이화여대출판부 1986) △‘대한매일신보 연구’(이광린 유재천 김학동 공저·서강대출판부 1986)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정진석·나남 1987) 등이 있다. 한말 저항시가연구서는 가장 많아 ‘대한매일신보 가사연구’(조현경·전남대 석사논문 1995),‘대한매일신보소재 가사문학연구’(유정선·이화여대 〃 1990),‘개화기의 저항시가연구’(박을수·경희대 박사논문 1984),‘우국가사 연구­대한매일을 중심으로’(김준태·고려대 석사논문 1980) 등이 있다.한글 신문에 대한 연구로는 ‘대한매일신보 국문판 연구’(오선화·이화여대 〃 1988)가 있다. 한말 대한매일신보가 산업진흥을 역설한 논설들에 대한 연구로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에 나타난 실업진흥론’(이윤정·서울시립대 〃 1997)이,당시의 신문광고에 대한 연구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나타난 광고에 관한 연구’(김영희·효성여대 〃)가 있다. 그밖에 ‘대한매일신보의 항일 자주의식연구’(김영애·성신여대 〃 1979),‘대한매일보에 나타난 의병 동향’(윤경숙·인하대 〃 1988),‘대한매일신보의 항일 언론활동’(권만용·건국대 〃 1993) 등이 있다. 또한 한말 국제관계를 다루는 논문들에는 특히 영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을 다루고 있다.
  • 대자연속에서 즐기는 연극·무용 2題

    ◎화성 국제연극·무용제­‘자연,성,인간’ 주제 국내외 13개팀 참가/거창 국제연극제­지리산 찾는 피서객 천막극장·누각서 관람 국제연극축제가 각 지역에서 피서철 상품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제2회 수원 화성(華城)국제연극·무용제와 제10회 거창국제연극제가 무더위를 뚫고 8월1일 나란히 막을 올린다. 8월31일부터 한달반 남짓 이어지는 서울국제연극제와 9월의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까지 어느때보다 지역별 국제연극제가 풍년이다. 화성국제연극·무용제(9일까지)는 지난 96년 연극제로 출범,올해부터 무용까지 끌어안는다. ‘자연,성(城),인간’을 주제로 걸고 모든 공연이 화성 화홍문 앞 잔디밭에서 펼쳐질 예정. 이번에는 해외 8팀,국내 5팀 등 총 13팀의 연극·무용단을 초청했다. 중국 희곡학원 경극단의 경극 ‘패왕별희’·‘요천궁’,호주 뱅가라 무용단의 ‘물고기’ 등이 관심을 모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오정은씨의 인형극 ‘로미오와 줄리엣’도 참가한다. 이밖에 폴란드 플로비소리움 극단,러시아 몽플레지르 극단,뉴질랜드 풋노트무용단,일본 라반의 정원 무용단 등이 가세한다. 한국 팀은 극단 성,수원도립극단,김영실 무용단,송수남 무용단,김현숙 무용단 등.(0331)45­4587. 거창국제연극제(15일까지)는 지리산·덕유산 등을 찾은 피서객들을 겨냥한 잔치. 거창군의 상설극장 몇군데를 비롯,천막극장,전통 누각·정자·한옥을 배경삼은 무대,야외무대 등을 고루 활용한다. 해외 참가팀은 프랑스 오디세이 극단,캐나다 테리프레스 극단,일본 지다이 극단,러시아 유고자파드 극단 등 네단체. 국내팀으로는 연희단거리패,수레무대,극단 민예,창원,뿌리,현장 등을 비롯,고성오광대패,조승미발레단이 공연한다.(0598)944­4738.
  • 우리 축구계 왜 이모양인가/李相哲 한국체육대학 총장(기고)

    스포츠가 전국민의 자긍심과 단결력을 고양시키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새삼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차범근 발언’ 파문 충격 최근에 막을 내린 프랑스 월드컵이나 미국에서 코리아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박세리,박찬호 선수의 세계 정상급 경기 모습에서 보듯 스포츠에 쏠린 국민적 호응과 관심을 다시 한번 확인할수 있었다. 지금 우리 스포츠계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추진되고 있는 개혁에 동참하고 있다. 스포츠 기관 및 단체의 기구 개편,재정 자립의 구축과 함께 스포츠 지도자들의 자질 형성 등의 구조 조정을 통해 혼신의 자구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 와중에 최근 프랑스월드컵축구 대표팀의 감독을 지낸 차범근 감독의 엉뚱한 발언과 이를 받아 들이는 축구협회의 일련의 대응들은 스포츠를 사랑하는 국민들 가슴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차 감독은 한때 우리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던 훌륭한 스포츠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전폭적인 애정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로축구가 서로 승부를 조작하고 있다” “음성적으로 뒷거래가 성행하고 있다”에서부터 심지어 “내가 중국 대표팀을 맡으면 한국에서 무서워 할 것이다”는 등 상식밖의 발언으로 국민들에게 심한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더구나 중국 언론에서는 차 감독의 데뷔전을 보고 지난 월드컵때 네덜란드전과 같은 작전으로 나서 대패를 했다는 식으로 차 감독을 평가절하해 우리의 자존심마저 구겨 놓고 말았다. ○파벌·인맥형성 배제를 이런 차 감독에 대해 흐지부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축구협회는 더욱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심지어 체육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일부 인사들이 축구협회의 안일한 대응을 보고 “정말 뒷거래가 있느냐”고 물을 때는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충격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차 감독을 사랑했던 많은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이제 이를 다시 원상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안겨준 실망감을 회복시키는 책임도 체육인들이 져야 한다. 무엇보다 스포츠 지도자들의 깊은 자기 성찰과 각성이 요구되는 시기다. 전성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 스포츠 문화를 꾸준히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스포츠 지도자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체육계는 진취적 발전을 막아온 각종 파벌·인맥 형성을 과감히 배제하고 소수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하여 집단내 화합을 도모,확고한 구심점을 형성하여야 한다. 또한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대다수의 공통된 의견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구체적으로 추진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동참 의지가 요구된다. ○국민통합 지혜 모아야 스포츠 지도자들은 지금의 어려운 국가적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스포츠의 전정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국민의식의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 하시모토정권 퇴진 불가피/自民 참의원선거 과반 확보 실패

    ◎출구조사 결과 제1야당 민주·공산당 약진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자민당이 12일 실시된 참의원 제18회 선거에서 참패했다. 이에 따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정권은 금명간 퇴진이 불가피하게 됐다. 일본 메스컴들의 출구조사 결과 일본 자민당 의석수는 하오 8시 현재 49∼58석 사이로 집계됐다. 자민당의 주류파 고위 간부는 개표가 시작되기 전 “대패가 불가피하며 하시모토총리가 13일까지는 사표를 제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시모토 총리가 퇴진하더라도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과반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차기정권은 자민당 단독 또는 자민당이 주도하는 연립 정권으로 구성 될 것으로 보인다. 후임 총리로서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으며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외상 등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제1야당인 민주당과 공산당이 의석수를 크게 늘리는데 성공했다. 선거결과는 일본 국민들이 하시모토정권으로서는 경제 회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 변화를 희망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선거 막바지에 들어서서 하시모토 총리가 감세 방침을 전격적으로 발표했으나 시장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 결정적인 타격이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관련 이익단체 등의 조직표 동원에 힘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투표율이 3년전 참의원 선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 자민당 패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 참의원 선거는 6년 임기의 정원 252석 가운데 3년마다 절반인 126석(지역구 76명,비례구 50명)을 개선한다. 자민당은 선거전 119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개선 대상 의석은 지역구 44석과 비례구 17석을 합쳐 61석이었다.
  • 張炳珠 대우 무역부문 사장 고려대 강연

    ◎대우 세계경영은 경쟁력 강화 모델 대우의 세계경영은 무엇인가.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자 경쟁력 강화의 모델이 될 것인가.張炳珠 (주)대우 사장은 28일 고려대 경영대학에서 ‘IMF체제 극복과 세계경영’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과감히 ‘그렇다’고 답했다.다음은 강연요지. ○타이타닉號와 한국 경제 우리나라는 지난 30년 동안 경제성장의 모범국가로 기록될 만한 괄목할 만한 성공을 이룩했지만 자만과 안이한 현실인식을 키운 탓에 선진국 도약의 문턱에서 급변하는 세계 경제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주저앉았다.마치 화제의 영화인 ‘타이타닉’에 나오는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와 같다고 하겠다.이 여객선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 배’라는 믿음을 갖고 빙산을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무시했다고 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국민소득(GNP) 1만달러 시대라는 환상에 젖어 정부,기업,국민 모두가 은연중에 ‘설마 한국경제가 잘못 되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그 결과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한번 실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다.한국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하에서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위기 극복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각 경제주체들은 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냈던 그 때 그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각오로 일치 단결해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첫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이 수출이다.수출확대는 연 이자만 1백50억달러인 외채를 빠른 시일 안에 줄이고 기업의 부도와 그에 따른 은행부실을 막고 국내산업의 가동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필수조건이다.대규모 해외자본유치도 방안이다.대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와 다국적 기업인 ABB로부터 대규모 자본을 유치했고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와 합작을 위한 상담을 진행중이다. 아울러 중후장대(重厚長大)형의 산업과 경박단소(輕薄短小)형 산업의 조화도 필요하다.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번성도 필수적이다.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도 있어야 하겠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구축,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신흥시장 수출 극대화 초점 대우의 세계경영은 현 경제위기 극복의 방안이자 우리 기업이 세계경제환경에서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며 미래전략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삼국지(三國志)의 ‘적벽대전’편에는 조조(曹操)가 함대를 쇠사슬로 묶었다 대패하는 대목이 있다.오늘날 급변하는 세계경제환경은 굽이치는 바다와 같다.좁은 내수시장에서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을 일으키고 저효율 구조를 심화시키는 일은 쇠사슬로 배를 묶어 기능을 잃게 하는 것과 같다. 세계경영은 글로벌 경영자원을 최적으로 조합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한국기업의 국가경쟁력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이다.짧은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역사로 기술과 자본이 선진국 기업에 뒤지는 한국 기업이 개방된 세계경제 환경에서 생존하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영이 꼭 필요하다. ○한국기업 생존전략으로 적절 세계경영의 특장점은 ‘이머징 마켓(신흥시장) 진출전략’‘경제적 효율적 투자전략’‘글로벌 경영자원의 최적 조합과 수출극대화’‘중소기업 협력강화’로 요약된다.대우는 세계경영을 추진하기에 앞서 세계 시장의 판세와 대우의 장단점을 분석,이머징 마켓으로 먼저 진출하는 우회전략을 택해 선진국 시장 진출의 힘을 축적했다.해외투자때 현지기업과 합작형태를 취하고 각종 금융기법을 활용,투자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략도 취했다.글로벌 경영자원의 최적조합과 수출의 극대화는 세계경영이 가진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이다.신형 경차인 ‘마티즈’는 세계 각지의 R&D 거점에서 기술력을 모아 탄생됐으며 글로벌 판매망을 통해 전세계로 수출된다.연내에 대우의 해외 공장에서 생산된다.이같은 시스템은 대우의 모든 생산품에 적용된다.요컨대 대우의 세계경영은 현 경제위기 극복과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의 방안으로 효과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 절제는 권력을 보호한다/이경자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장(시론)

    ○성공적인 전직 대통령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꼽히지는 않지만,가장 성공적인 전직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이것은 카터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에 그가 보여준 생활과 역할에 대한 미국 언론의 평가이다.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인 조지아주로 돌아가 청바지 차림에 손수 대패와 톱을 들고 집안의 목공일을 하는 등 소박하고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다.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대통령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분쟁지역이나 인권 문제의 현장에서 성공적인 민간외교 활동을 펼쳐 국제적 지도자의 역할을 조용히 그러나 위엄있게 수행하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의 민간외교 활동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비록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되긴 하였지만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한 가교역할을 한 것도 바로 그였다.미국 국민들은 이런 카터 전 대통령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가 대통령직에 있을 때보다 더 큰 사랑과 존경심을 보이는 듯 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재직시에는 그의 친근감있는 외모와 특출한 화술로 국민의 인기를 차지한 대통령이었다.그러나 퇴임후 거액의 모델료을 받고 일본의 다국적 기업인 모 전자회사의 광고 모델로 등장한다 하여 일본돈에 팔려간 전직 대통령이란 따가운 여론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우리는 일곱 분의 대통령을 맞았다.지난 2월 25일에 있었던 제 15대 대통령 취임식은 여덟 번째의 대통령을 맞는 자리였다.그 자리에는 현존하는 네 분의 전직대통령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 하였다.텔레비전 화면에 비추어진 이들 전·현직 대통령들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식이라는 축제에 어울리는 환하고 밝은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서로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표정이 어색하고 경직되어 있었다고 느낀 것은 단지 보는 이들의 상상 이었을까? ○‘한국의 카터’는 없는가 우리가 직접 선택하였든 그렇지 않았든간에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물러 나거나,혹은 불행한 퇴임후를 맞는 것을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왜냐하면 한나라의 지도자의 모습은 바로 그나라 국민의 자화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존경받는 전·현직 대통령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국민들로 부터 외면당하는 그들 개인의 불행이고 비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우리 국민 모두의 불행이자 비극이다.신임대통령 취임식장의 어색하고 경직된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는 우리국민도 자랑스러운 전직대통령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사실 우리 국민은 최근 몇년 동안 전직 대통령들과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그런가하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법정에 서는 모습도 보아야 했다.그들이 개입되었다는 부정부패의 내용은 듣기에도 실망스럽고 민망스러웠다.권력층의 그같은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길 기대했다면 그것은 국가경영이 아니라 요행수를 바라는 도박을 한 셈이다. ○유리처럼 깨지기 쉬워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며,대통령 가까이에서 그를 도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통령이란 자리와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자리는 보통사람들로서는 그저 멀리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나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위치이다.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그만큼 그자리는 명예로운 자리이다.명예로운 자리일 뿐 아니라 권력의 자리이기도 하다.명예와 권력이 동시에 주어지는 그 자리에는 보통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많은 특권이 부여되지만 동시에 의무가 요구된다.그 의무란 바로 스스로를 견제하고 통제하는 절제의 의무이다. ○욕심과 무능 경계해야 명예와 권력은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을 통해 확인하였다.명예와 권력은 유리그릇과 닮은 점이 많다.화려한 것도 그렇고,깨지기 쉬운 것도 그렇다.그래서 명예와 권력은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루었을 때만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그 조심스러움이란 바로 스스로를 견제하고 통제하는 절제력을 의미한다.그런 절제력이 없는 사람은 권력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왜냐하면 그렇게하는 것이 개인의 비극은 물론 국가의 비극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절제력을 상실한 권력은 폭력이 될 수도 있고,부정부패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비싼 댓가를 치루고 우리가 배운 역사의 교훈이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인사의 계절이 시작되었다.권력주변에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권력을 가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절제한 욕심과 무능이라는 경고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음미해볼 계절이기도 하다.
  • DJT와 정치개혁(김호준 정치평론)

    ○구조조정·체질개선 불가피 정치권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이 불가피해졌다.아니 강요당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야당에 의한 정권교체로 여야의 위상이 뒤바뀐데다가 ‘IMF 한파’가 몰아닥치면서 정치권이 예전만한 ‘경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돈 백만원 만들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는 한 유력 정치인의 토로는 요즘 정치권의 썰렁한 자금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헌정사상 최초로 이룩한 정권교체의 여파도 간단치 않다.정권이란 주고 받는 것,이제는 영원한 여당도 영원한 야당도 없다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공동집권에 성공한 소수파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책임있는 여당으로 변신해야 하고,야당으로 전락한 다수파 한나라당은 조직과 자금에서 엄청난 감량을 요구받고 있다.정권교체가 여야의 위상뿐 아니라 체질까지도 변하게 만들었다면 IMF 한파는 ‘저비용 정치’의 구현을 앞당기도록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고 하겠다. 차기정권을 이끌 트로이카,DJT(김대중 김종필 박태준)가 지방선거 이전에 정치구조를 개혁키로 단안을 내린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본다.만일 이 결단이 없었다면 ‘게으른 정치권’은 아마 지금까지도 “구조조정은 우리와 무관하다”는 식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을 것이다. DJT의 정치개혁 선언은 과거정치에 대한 ‘정치 9단’들의 자기반성이자 신여권의 세 불리기를 겨냥한 정계개편의 신호일 수 있다.원내 안정의석의 확보가 절실한 과제인 소수 여당으로서는 개혁의 궤도 위에서 세를 늘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명분있는 방법일 것이다.정계개편이 이루어진다면 대선 패배후 사실상 표류중인 거대야당 한나라당이 ‘대패질’의 표적이 될 것은 자명하다.‘정치권 구조개혁’ 소리가 나오자 한나라당이 바싹 긴장하고 있는 까닭을 이해할 법하다. 우리는 과거에도 정권이 바뀌거나 선거를 앞두고 정치개혁이 외쳐지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또 그때마다 제도개선이 이루어진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바로 지난 11월에도 여야는 국회에서 일련의 정치개혁법을 통과시켰다.그런데 불과 2,3개월만에 또 정치개혁을 논하고 있다.이유는 간단하다.개혁이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대선을 목전에 두고 시간에 쫓긴 정치협상에서 개혁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정파간 이해가 일치하는 범위내의 땜질식 보완에 그쳤던 것이다.지금은 6월 지방선거를 제외한다면 총선·대선이 모두 멀리 떨어져 있다.정치적 이해관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시간적 여유속에 합리적 개혁안을 만들기에 적기라는 이야기다. ○합리적 개혁안 창출에 적기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정치권 구조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 정수 축소 △선거구제 개편 △중앙당 축소 및 지구당 폐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모두 우리가 공략해야 할 과제들이다.사실 돈 안드는 선거·깨끗한 정치를 구현하자면 정당살림과 의원 수부터 줄이는 것이 손쉬운 방안일 것이다.또 현행 소선거구 대신에 중대선거구의 도입도 고려해 봄직하다.그러나 제도는 운영이 중요하지 절대선이 없다는 것도 아울러 유념할 필요가 있다.공연히 제도만 탓하며 이리저리 뜯어고치기 보다는 정치권의 의식개혁,즉 잘못된 관행과 행태를 고치는 노력을 더 중시해야 한다.문제는누가 이를 선도하느냐다. 정치권의 의식개혁은 보스들이 수범해야 한다.정치자금을 만져도 보스들이 더 큰 뭉치를 만졌고 영향력을 행사해도 보스들이 더 막강하게 행사했기 때문이다.한국정치의 왜곡과 비리는 사실 이들에게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들의 독선과 패거리주의가 발전을 방해했던 것이 한국정치의 이면사다.그들을 놔둔채 다른 정치인에게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나는 ‘바담 풍’하지만 너는 ‘바람 풍’하라”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치개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DJT가 담당해야 할 몫이 커야 한다고 본다.우선 핵심과제인 정당운영의 감량문제부터 보자.지금까지의 표적은 비대한 여당이었지 찬밥 먹는 야당이 아니었다.이번도 마찬가지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여당으로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DJT의 구상과 결단이 ‘저비용 여당형’이냐 아니냐에 따라 개혁의 물길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정당 민주화도 DJT 몫이다.국민회의 자민련은 하의상달의 당내민주주의보다는 가부장적 상의하달이 많았고,당총재가 국민과의 대화는 가져도 당원과의 진지한 대화는 없었던 정당이었다.DJT는 이제 집권의 꿈을 이뤘으니 마음을 비우고 후진에게 선진 정치기반을 남겨 주는데 힘써야 한다.그것이 바로 개혁이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을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공당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지명권·공천권을 과감하게 당원에게 넘겨주어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보스들 수범이 성공 관건 끝으로,정치개혁을 정착시키려면 정치권에 대한 감시와 관리가 필수적이다.대통령 혼자 칼국수를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김영삼정부가 잘 보여 주었다.지도자가 챙겨야 한다.정치권 비리를 사법처리에만 맡겨 사후에 법석을 떨 일이 아니라 사전 검색·차단장치를 강구해야 한다.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인과 고위관료를 상대로 사용했던 ‘경고친서’ 같은 것은 다시 살릴만 하다.‘777 DJT’의 정치개혁은 신선하지는 않더라도 그 경륜만큼이나 원숙하고 치밀한 것이어야 한다.
  • 민주주의 전도사 에이브러햄 링컨:하(미국의 대통령 문화:7)

    ◎남북 대화합 이룬 ‘정직의 대명사’/“연방통일이 헌법보다 우선” 주독립 불가 역설/국민에 전쟁 수행 독려… 당대엔 인기 못 얻어/최악의 상황 유일한 탈출구는 일상화된 유머감각 【스프링필드(미 일리노이주)〓나윤도 특파원】 1861년 2월11일 일리노이주 주도 스프링필드의 중앙역인 그레이트 웨스턴역.취임식 참석차 워싱턴으로 떠나기 전,플래트홈에 마련된 연단에 오른 링컨 대통령 당선자는 군중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자못 침통한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친구 여러분,내 입장에 있지 않은 여러분 어느 누구도 이 이별의 순간에 솟구쳐 오르는 나의 슬픈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나는 4반세기를 이곳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빚진 채 지금 고향을 떠납니다.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 것인지 혹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나에게는 워싱턴에 부여된 일보다도 더욱 무거운 일들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 역사자리에 선 ‘링컨 디폿 뮤지엄’에서 상영하는 링컨의 24년동안 스프링필드에서의 생애를 담은 30분짜리 비디오는그가 비장한 연설을 남긴 후 그의 일행을 태운 기차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죽음으로 국가 구해 이미 6개주가 연방을 탈퇴해서 독자 정부를 수립한 최악의 상황에서 연방대통령직 수행은 그 자체가 엄청난 형극의 길임을 링컨은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자신의 우려대로 살아서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그러나 자신의 죽음으로 국가를 구했다.주검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는 시가지 북부 오크리지 묘지 중앙에 우뚝 서 스프링필드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프링필드는 링컨이 변호사로,주의원,연방하원의원 등 공직생활을 하며 정치적 입지를 키운 곳이다.시 중심지 연방청사에서 5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의 사저일대가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돼 있으며,그의 변호사 사무실인 링컨­헌돈 로 오피스(law office),그가 출석하던 제일장로교회에는 그의 가족들이 즐겨 앉던 자리가 보존돼 있는 등 미 전역 10여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링컨 사적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돼 있다. 특히 링컨이 연방분열을 경고한 ‘분열된 집안’이라는 연설로 유명한 옛 주의사당인 올드 스테이트 캐피틀에는 오늘날 미국내 최대의 링컨자료실이있는 일리노이 주립박물관이 들어서 있다.헨리­호너 링컨 콜렉션이라 이름지어진 이 박물관 내의 링컨 자료실은 소장하고 있는 관련 자료의 방대함은 물론 희귀자료를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어 미국내 링컨니아나(링컨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취임 37일만에 전쟁 발발 대통령 취임후 불과 37일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함으로써 링컨은 임기 내내 전쟁을 이끌어야 했다.이 기간중 링컨은 줄곧 참모들로부터 또는 많은 북부의 국민들로부터도 전쟁종식의 압력을 받았다.그러나 링컨의 신념은 확실했다.전쟁의 종식은 연방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미합중국의 존립 이유를 뿌리채 흔드는 것이었다.링컨은 기회있을 때마다 미 건국역사에서 ‘연방’은 ‘헌법’보다도 앞선 것임을 주장했다.그리고 몇몇 주의 영원한 분리는 불가능함을 강조하며 남부측에 타협을 호소했다. 그러나 미시시피 상원의원 출신의 남부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특히 그는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멕시코전쟁에서 지휘관을 역임한 바 있는 전략가였다. 당초에는 남부의 여러가지 수치상 열세로 전쟁이 수개월내 끝날 것으로 예측됐다.그러나 초기 ‘불 런’전투에서 북부군의 대패는 전쟁의 장기화를 예고했다.전쟁 내내 링컨은 남북 양측 군대의 주전선이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경계의 포토맥강을 중심으로 형성됨에 따라 야전군 지휘소처럼 변해 버린 워싱턴에서 북부군의 전략수립과 지휘관 찾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쟁관련 도서 탐독 미시시피강을 서쪽 경계로 해 동쪽으로 애팔래치아산맥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전선에서 서부에는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과 티컴셰 셔만 장군 등이 있었지만 동부전선에는 남부군의 용장,로버트 리 장군과 스톤월 잭슨 장군에 맞설만한 지휘관이 없었던 것이다.그는 또 군사전략 수립을 위해 의회도서관에서 전쟁의 기술에 관련된 책들을 빌려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링컨은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게 됐다.전쟁의 시작은 노예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그 목표설정에 관한 것이었다.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궁극적으로 노예해방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민주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분위기는 연방회복으로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노예제도가 남부의 경제적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남부를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노예제 폐지를 선결과제로 간주했다.62년 여름,그가 내각에서 노예해방 선언의사를 밝혔을 때 많은 각료들이 반대했다.그러나 링컨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해 9월 앤티담 전투에서 북부군이 승기를 잡자 바로 이튿날 준비했던 노예해방선언을 감행했다. ○노예해방 북부도 반대 노예해방선언은 그러나 남부는 물론 북부의 반대도 불러 일으켰다.북부 공업지대의 많은 근로자들이 노예들의 해방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또한 북부의 승리가 확실시 되면서 남부주들을 포용하기 위해 내놓은 링컨의 온건한 화합정책들은 응징과 처벌을 요구하는 북부 과격파들의 건센 반발 가져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가정의 연이은 비극은 링컨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부인 메리 토드 여사와의 사이에 둔 네아들중 한 아들은 일찍 죽었고 백악관에서만 두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되자 메리 여사는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할 정도였다.오직 한 아들 로버트만이 성장하여 후에 가필드 행정부에서 전쟁장관을 지냈다. 링컨이 이같은 암담한 안팎의 불행을 이기고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정열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탈출구는 일상화된 그의 유머감각 이었다고 역사가들은 지적한다.그는 아무리 심각한 회의도 조크와 유머로 시작했으며 순간적인 재치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그가 엄숙하게 노예해방선언의 의사를 물었던 각료회의도 유머 한토막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링컨은 당대에는 국민들에게 그리 인기있는 대통령은 아니었다.전쟁 수행을 위해 끊임없이 국민을 독려하고 재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정직한 에이브’라고 그의 이름이 정직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그는 국민에게 솔직했으며 결국 그는 192㎝의키에서 뿐 아니라 미 역대 대통령중 가장 우뚝 선 대통령으로 남게 된 것이다. ◎킴 바우어 미 일리노이 주립박물관 헨리­호너 링컨자료 실장/링컨의 인간평등 정신 역사에 우뚝/학자 800명·기관 50개 링컨학회 결성/“대통령학 가장 흥미있고 미래 지향적” 【스프링필드(미 일리노이주)=나윤도 특파원】 미국내 최대 링컨 관련자료 소장 도서관으로 알려진 일리노이 주립박물관의 링컨자료실장 킴 바우어 박사는 “링컨 대통령은 많은 학자들의 새로운 연구를 통해 해가 갈수록 그 업적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다며 대통령학이야말로 가장 흥미진진하고 미래지향적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조사에서 링컨 대통령이 미국 역대 대통령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부동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끝내 연방을 지켜낸 그의 소신과 노예해방을 가져온 그의 투철한 인간평등 정신 때문으로 볼 수 있다.더우기 그의 어려운 성장환경과 정직한 성품은 누구에게든 자신감과 신뢰감을 안겨 준다. ­미국내 링컨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링컨은 켄터키의 통나무집 시절서부터 인디애나를 거쳐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성장했다.그리고 백악관 생활과 남북전쟁 당시 여러차례의 전장 방문 등 많은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학자들의 상호보완 연구가 중요하다.현재 800여명의 학자와 50개 소장기관으로 에이브러햄 링컨 학회가 결성돼 있고 매년 심포지움과 학회지 등을 통해 200편 이상의 논문과 책들이 나오고 있다. ­헨리­호너 링컨자료실은 어떤 곳인가. ▲모든 분야의 링컨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만 링컨의 대통령 이전 자료는 최대의 소장처로 알려져 있다.현재도 개인적인 링컨 자료 소장자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로부터의 기증이나 구매 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지난해만 해도 일리노이의 기업가 클레망 스톤씨로부터 200여점,미니애폴리스 공공도서관으로부터 200여점,최대 여성 수장가인 제인 하만드 여사로부터 링컨의 어린시절유품 수십점을 기증받는 등 계속 소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대통령학은 과거지향적 학문이 아닌가. ▲과거 대통령에 대한 철저하고 정확한 연구는 현재와 미래의 국민과 대통령에게 과거의 경험을 부여해 준다는 측면에서 미래지향적 학문으로 볼 수 있다.
  • 충북 수양개유적 10만평 사적지 지정

    ◎국내 최대규모… 중기 구석기∼초기 철기 망라/현재도 발굴 계속… ‘한반도 선사문화의 보고’ 충북 단양군 적성면 매곡리 수양개유적이 최대규모의 사적으로 떠올랐다.문체부 문화재위원회가 지난 22일 사적으로 의결한 수양개유적은 모두 10만평.지금까지 규모가 가장 컸던 충남 부여군 송국리유적 4만평에 비해 2.5배가 더 넓다.이처럼 수양개유적을 대단위로 넓게 잡아놓은 이유는 점단위 유적에서 경험한 문화재보호의 한계성을 극복하기위한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유적은 중기구석기를 비롯 후기구석기,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를 망라했다.선사문화(의 보고로 평가받는 보기드문 복합유적이다.지난 1983년 충북대 이융조 교수(고고학) 팀이 중기구석기유적을 발굴하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유적은 지금까지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그만큼 여러 시대에 걸친 선사문화유적이 수양개 곳곳에 분포되어 이번에 문화재위원회가 사적지로 의결한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의 긁개,찌르개,주먹대패 따위의 석기가 출토되었다.약 2만년전에 수양개로 들어온 중기구석기인들은 강가 자갈층 위에 삶의 흔적을 남겼다.그 다음 단계에 수양개에 자리잡았던 후기구석기인들의 유적에서는 주먹도끼,찍개,좀돌날몸돌과 슴베찌르개 등의 석기류가 쏟아져 나왔다.특히 슴베찌르개는 약 1만7천년전의 수양개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검증한 바 있다. 수양개에서 나온 석기류의 소재는 거의가 판암,수양개유적은 다른 구석기유적과는 달리 석기제작 흔적을 뚜렷이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돌망치와 모룻돌 같은 석기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이 나온 석기제작소만도 자그마치 50군데를 찾아냈다.이는 구석기인들의 석기제작행위를 복원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야생동물 젖소(원우) 정강이뼈에 물고기모양을 새긴 조각품이 나와 당시 구석기인들이 지닌 사유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 토기조각을 포함한 신석기시대 유물과 청동기시대 유물이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다.더구나 지난해는 한반도에서 역사의 새벽을 연 초기철기시대의 삼한사회유적을 찾아냈다.이는 고고학계와 더불어 고대사학계가 수양개유적을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모두 5만평에 이르는 삼한시대 마을유적으로 1차 발굴에서 집자리 26군데를 찾고 많은 유물을 거두었다.유물은 청동의기,철제 무기류와 생활용구,토기,옥제 치레걸이 등으로 되어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이루어진 수양개유적은 남한강 상류의 강가유적.지금은 충주댐을 막아 유람선이 닿는다.이와 더불어 중앙선철도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간다.또 다른 구석기 동굴유적인 금굴,구낭굴,상시가 수양개와 이웃했다.그래서 이 기회에 남한강상류 선사골화를 한눈에 바라볼 ‘수양개 선사유적발굴관’을 세워 국민교육장으로 활용하자는 여론도 높게 일고 있다.
  • 버릴음식 삶아 말려 감량/대전 윤필수 주부 모범사례

    ◎분량 5분의1로… 퇴비재료로 농가에 대전에 사는 주부 윤필수씨(57·동구 가양1동 174)의 음식물쓰레기 처리 방식은 독특하다. 음식쓰레기를 작은 냄비에 모아 물을 조금 붓고 끓인다.이렇게해야 균이 모두 죽어 썩지 않기 때문이다.다음에는 수동건조기에 넣어 물기를 빼낸 뒤 햇볕에 말린다.1차로 물기를 없앴기 때문에 빨리 마른다.수박껍질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 청색부분만 남아 대패밥처럼 돌돌 말린다. 말린 음식물쓰레기는 80㎏들이 포대에 담아 집안에 보관한다.지난 1년동안 모은 쓰레기는 한 포대 가량.본래 양보다 5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냄새가 나지 않아 파리 모기 등 해충도 꾀지 않는다. 고사리나 고구마 줄기를 삶아 말리면 양이 크게 줄어드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그동안 모은 음식물쓰레기는 퇴비로 사용하도록 농가에 건네줄 계획이다. 윤씨는 “범국민적으로 음식쓰레기를 줄이려면 정부가 음식쓰레기 건조·분쇄공장을 지역별로 설립하고 일정 기간동안 이를 보관하는 공동수집장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알바니아 대통령 사임/“집권당 총선패배 책임”

    【티라나 AP AFP 연합】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 대통령(52)이 23일 조기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당의 정국수습 길을 열어주기 위해 총선전에 약속한대로 사임을 발표했다. 베리샤 대통령은 이날 사회당이 장악한 의회 개원을 1시간 남겨두고 TV와 라디오방송을 통해 국가수반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는 “알바니아 현실에 대한 유감을 갖고 대통령직을 떠나지만 조국의 민주주의 장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있다”고 말했다. 베리샤는 그러나 총선 패배로 집권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의 당수직은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피라미드식 예금사기 사건으로 촉발된 5개월여의 소요를 끝맺기 위해 실시된 조기총선에서 155석 중 27석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대패를 했다.
  • “3김시대 마감” 대쪽신화 막오른다/이회창 후보 선출­누구인가

    ◎정계입문 18개월만에 집권당 평정/소신·원칙 앞세워 정계 새바람 기대 ‘대쪽총리’ 이회창이 신한국당 차기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오랜 공직생활 동안 원칙과 소신으로 일관한 이후보는 3김정치의 청산을 기치로 새로운 정치 한마당을 펼쳐 나갈 전망이다.그것은 21세기 선진대국을 향한 화합과 통합의 정치로 요약된다.그의 일대기와 정치철학,국가관 등을 2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죽룡(대쪽 용)의 승천­.‘정치인 이회창’신화의 막이 올랐다. 지난해 1월 정계 입문 이후 불과 18개월만에 그는 집권 여당의 차기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그를 선택하기 위해 21일 열린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인물위주의 새로운 정치마당을 마련하려는 ‘이회창식 정치 실험’을 선언했다.파벌과 지역주의로 대변되던 ‘3김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이대통령후보는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평생의 애독서로 삼고 있다.그는 전쟁터를 옮겨 다니던 마르쿠스 황제를 “위태로운 권력 암투 속에서도 맑은 샘물처럼깨끗하게 자신을 지켜내고자 노력했다”고 평가한다.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소신과 초심을 지켜 나갈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회창식 정치실험 선언 이후보의 호는 경사­‘곧은 역사’다.호에 걸맞게 그는 타협해서는 안될 것과 타협하지 않고 굴복하지 말아야 할 것에 당당했다.때문에 60년 25세의 나이로 인천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후 30년이 넘는 공직생활 기간동안 항상 ‘대쪽’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서슬퍼런 5공시절 대법관으로서 주심을 맡은 전원합의체 사건 16건중 10건에 ‘소수의견’을 낼 정도로 소신과 원칙이 뚜렷했다. 문민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으로 발탁된 그는 ‘소신 감사’를 밀어붙이다 청와대와 갈등끝에 백의종군한다.당시 그는 청와대 비서실,감사원,안기부 등 ‘성역’을 감사의 도마에 올렸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도 평화의 댐,율곡감사와 관련해 서면조사를 받아야 했다.93년 국무총리로 기용된 뒤에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운영 등 헌법상 총리의 역할과 대통령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마찰을 일으켜 4개월7일만에 다시 사표를 던진다. 그러나 그의 강성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은 그를 “가슴이 따뜻한 사람” “만나면 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아랫사람에게 결코 화내는 일이 없고 무슨 말이든 경청하는 습관이 있어 그를 상관으로 모신 사람들은 그를 후하게 평가한다. 판사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도 유명사건이 아니라 배추장사를 하던 어느 청년의 절도혐의를 벗긴 것이었다.경찰서장 집 도난사건과 관련,혐의를 받던 젊은이에게 당시 이판사는 “범인이 아니라면 진실을 제대로 밝힌 재판제도에 감사해야 하지만 범인이라면 판사를 용케 속였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항상 약자를 눈여겨 보고 약자가 부당하게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틈만나면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충고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불의와 타협않는 성품 이후보는 35년 6월2일 황해도 서흥에서 아버지 이홍규옹(93)과 어머니 김사순씨(86)의 4남1녀중 2남으로 태어났다.고향은 선영이 있는 충남 예산이다.본관은 전주이며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안사공의 셋째형 영습공을 중시조로 분파되었다. 이후보의 큰 아버지 이태규 박사(1902∼1992)는 우리나라 자연과학계의 태두이며 아버지 이옹은 서울법대의 전신인 경성법전 출신으로 검찰지청 사무원으로 일하다 해방후 광주지검검사로 특임,20년간 봉직했다.이옹은 충북도지사 구호물자 횡령사건,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등을 담당하면서 강직한 소신을 보였고 이승만 대통령과 친한 충북지사를 구속하는 바람에 괘씸죄에 걸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조사받기도 했다. ○노부모와 매주말 식사 어머니 김사순씨(86)는 전남 담양의 천석꾼 집에서 태어났다.외삼촌 3명이 모두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뼈대있는 가문이다.형 회정씨(65)는 삼성의료원 병리학과장이고 서울대 상대를 나온 동생 회성씨(52)는 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이다.막내동생 회경씨(48)는 연세대와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를 거쳐 현재 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중이다.형제들은 요즘도 매주 토요일 저녁 혜화동성당에서 노부모와 함께 미사를 드리고 식사도 같이 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다. ○부인과 슬하에 2남1녀 어린 시절 이후보는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이사를 자주 다녔다.그는 광주 서석초등학교에 입학,5학년때 월반해 광주서중학교에 진학했다가 곧바로 청주중학교로 전학했다.그리고 경기중학 2학년에 편입,경기고를 거치게 된다.그는 청주중학 시절 가출경험을 자주 회고한다.60점 만점의 수학시험에서 20점을 받고 그 길로 조치원역 대합실에서 밤을 새우다 헌병에게 발견됐다.헌병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버지가 아무 말없이 자신을 가슴에 안았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크고 넓고 따뜻한 가슴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이후보는 부인 한인옥씨(59)와 2남1녀를 두고 있다.큰 아들 정연씨(35)는 서울대 수학과를 거쳐 대외경제연구원에서 근무중이며 둘째아들 수연씨(32)는 동국대를 졸업,유학준비중이다.딸 연희씨(34)는 출가했다. 이후보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당내 지지위원장이 10명 미만이었다.그러나 그 숫자는 불과 6∼7개월만에 1백40여명으로 불어났다.쿠데타나 민중봉기가 아니면 이처럼 단기간에 집권당을 ‘접수’한 사례는 세계 정치사에 유례가 없다고 한다. 정가에서는 이를 이후보의 독특한 퍼스낼리티와 정치권의 기대심리가 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해석한다.이후보가 단기필마로 당에 몸을 담긴 했지만 이미 ‘대쪽’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각인돼 있었고 정치권내에서도 3김정치에 대한 염증으로 새로운 정치구도의 등장에 대한 컨센서스가 물밑에서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요 고비마다 운도 따라 특히 주요 고비마다 시운은 이후보의 편에 섰다.대표 임명 과정이나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와의 마찰때도 그랬고 경선후보간 전선이 ‘이대 반이’로 단순화되는 바람에 한결 승부가 쉬웠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김심의 중립도 이후보에게는 큰 힘이 됐다.지금까지 이후보의 정치역정은 김대통령과 묘한 공조관계를 유지해 왔다.김대통령은 민주계와 이후보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하면서도 정치고비때마다 ‘대쪽’에게 중책을 맡겼고 4·11총선 이후 대망을 품은 이후보도 김대통령에게서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지 않았다. 이후보가 문민정부 초대 감사원장으로 발탁되면서 시작된 두사람의 인연은 93년 쌀파동과 대형사고 등 곤혹스런 정치상황 속에서 이후보가 총리에 전격 기용되면서 계속 이어졌다.6·27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김대통령은 4·11 총선직전 삼고초려끝에 ‘대쪽’을 당 선대위의장으로 영입했고 지난 3월 노동법사태와 한보사건으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김대통령은 예상을 뒤엎고 그를 당 대표에 앉혔다. 이후보는 학창시절 체구가 작아 권투와 당수를 배웠다.골프와 테니스,탁구실력은 수준급이다.독실한 천주교도인 그의 세례명은 ‘올라프’.노르웨이 수호성인 이름이다.정치 고비때마다 “사람이 못하면 하느님이 할 것”이라며 앞날을 낙관하는 것도 깊은 신앙심때문으로 여겨진다.
  • 베리샤 대통령 사임 표명/총선패배 시인

    ◎알바니아 야당 2차투표도 승리 【티라나(알바니아) AFP AP 연합】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 대통령은 7일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민주당이 대패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민주당 당수직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리샤 대통령은 AFP통신 기자와 만나 “민주당원으로서 다음번 총선에서 당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전하면서 하야 시기는 정부내 법률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총선 2차 투표에서 압승을 거둔 사회당과의 연정구성 가능성 문제에 대해 현재의 알바니아 분위기상 너무 “불안정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알바니아 제1야당인 사회당은 지난달의 총선 1차 투표에 이어 6일 실시된 2차 투표에서도 승리를 거둬 파토스 나노 당수의 집권이 확실시되고 있다.사회당은 32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2차 투표의 비공식 집계 결과 지금까지 확인된 32개 선거구중 16곳에서 승리했다.
  • 영국 총선/노동당 “샴페인 파티만 남았다”

    ◎투표율 65% 비공개집계/“IRA서 테러” 수색소동 ○…북아일랜드해방군(IRA)의 테러공격이 있을 것을 우려한 영국경찰은 각 투표소마다 감춰진 폭탄은 없는지 수색을 벌이는 등 부산한 모습과 함께 투표하러 나온 유권자들의 몸을 수색하는 등 삼엄한 경계를 폈다.이는 총선을 앞두고 지난 며칠간 IRA가 자신들의 존재를 일깨우기 위해 몇차례의 폭탄공격 위협을 가해온데 따른 것이었으나 정작 선거일에는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영국 국회의사당의 유명한 시계 「빅 벤」이 총선을 하루 앞둔 30일 정오를 11분 지났을 무렵 잠시 멈췄다가 긴급출동한 기술자들에 의해 27분 만에 복구되는 사고가 발생.기술자들은 「빅 벤」이 멈출 만한 특별한 이유를 찾을수 없다고 밝혔는데 이에 대해 「변화의 시기」를 선거구호로 내세운 노동당쪽에서는 런던의 상징물중 하나인 「빅 벤」마저도 변화를 위해 멈췄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며 희희낙락.반면 보수당쪽에서는 18년의 보수당 집권기간이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지만 그동안 이룩한 보수당의 업적은 인정해야 할 것이라면서 「빅 벤」이 잠시 멈춘 것은 그저 우연한 사고일 뿐이라고 애써 일축하려는 모습. ○…이번 총선의 최대패배자는 누구일까? 승패에 관계없이 토니 블레어 노동당당수는 아닐 것이라는게 이곳의 일관된 지적이다.이는 그동안 영국의 여론조사기관들이 한결같이 노동당의 압승을 점쳐왔기 때문에 이같은 예측들이 맞는다면 최대패배자는 당연히 메이저 총리가 되겠지만,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최대의 패배자는 바로 이들 여론조사기관들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날 비공식으로 집게된 투표율은 약 65%로 나타났다. ○…승리가 확실시되는 노동당은 당락의 윤관이 드러나는 2일 상오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열기 위해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을 이미 예약해 놓았다는 미확인 보도가 나돌기도. ○…노동당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기업 등 경제전문가들은 『블레어씨가 당선되더라도 경제에는 아직 많은 문제점이 있다』면서 과연 노동당의 집권후 이들 문제점이 해결될 것이냐에 의구심을 갖는 모습.
  • 클린턴2기 무엇을 남길 것인가(해외사설)

    클린턴 대통령의 2기 집권이 시작된다.1기때의 주요 업적들은 실질적이라기 보단 정치적이었다.중간선거에서 대패한 뒤에 공화당 정책들을 일부는 극단으로 몰아붙이고 나머지 상당부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활용전략에 힘입어 패배를 만회했다. 이제 선거하곤 상관없게된 상황에서 클린턴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고 어떤 업적을 후세에게 남길 것인가.지난해의 입법 성과들은 따지고 보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복지개혁이란 명분 아래 빈곤층을 팔아넘겼다고 할 수 있다. 국내문제에서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실천을 향한 제안을 내놓고 있으나 별로 설득력있어 보이지 않는다.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은 별로 생각이 깊다고 할수 없다.그리고 자잘한 다수 공약들은 치장 성격이 강하다.미국은 국내적으로 외형상 잘 되어가고 있는 듯 싶으나 조만간 여러 대통령들이 맞부딪히지 않으면 안될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 국민은퇴연금,의료보조 등을 통한 연방정부의 노령지원은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곧 도래함에 따라 재정기반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전국민의 7분의 1이 무 의료보험 상태에 놓여있고 빈곤층은 경제성장 혜택 영향을 받지 못하며 선거자금법은 부패를 자극한다. 1기때 클린턴 대통령은 외교를 늦게 깨우쳤다.모든 현안에 자신감있게 대응했다고 볼 수 없었다.하지만 중국문제는 잘 다루지 못했으나 러시아,유럽,핵확산통제 등의 사안에선 초점을 잘 지켰다.후반에 끈질김과 운 덕분에 한반도와 중동에서 2기때 적극적으로 밀고갈 바탕을 마련했다.의회나 공화당이나 접근법이 그와 별로 다른 것 같지 않다.초기엔 냉전이후의 분명하고 포괄적인 「비전」이 요구되었으나 지금은 세계변화에 잘 대처하고 미국의 가치관과 국익을 잘 지켜주라는 간단한 주문으로 바꿔졌으며 이는 상황으로 보아 바람직한 변화이다. 문제의 핵심은 국내든 국외든 보다 어렵고 근본적인 이슈들과 맞싸우기 위해 클린턴이 미국을 얼마나 결집시킬수 있느냐다.
  • 「코린도」와 승은호 회장:6(테마가 있는 경제기행:44)

    ◎불황모르는 사세 확장/신문용지 인니시장 80% 점유/고부가 제품 「배터리 세퍼레이터」 아시아선 첫 착공/신발 OEM주문 급증… 패넬·팜트리사업에도 의욕 코린도그룹은 노(NO)불황이다.기세가 완연하다. 자카르타 서부 54㎞ 지점에 있는 코린도 이글(EAGLE) 신발공장은 「HIDUP EAGLE」운동이 한창이다.히둡(HIDUP)은 「파이팅」이란 인도네시아말.이 공장 직원은 현재 한국인 50명을 포함,8천4백54명으로 1년새 1천명이 늘었다.퇴근시간이면 8천여명 직원들이 일제히 정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장관」이 펼쳐진다. 월 70만켤레를 생산,이중 20만켤레를 내수로 팔고 나머지는 나이키에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수출한다.OEM주문증가로 이글공장은 계속 즐거운 비명이다.지난해 9천2백만달러였던 매출이 올해엔 1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물량으로 20%,금액으로 30%가 늘고있다. 보고르 찔릉시에 있는 아스펙스 신문용지 공장에서도 활황냄새가 물씬 난다.연산 20만t의 1공장은 연 3백50일 이상 3교대로 풀가동할 정도.코린도는 미국 등지에서 고지를 수입해 신문용지로 만들어 인도네시아 유수의 언론매체(꼼빠스 뽀스꼬따)에 공급하고 있다.내수시장에 연 15만∼16만t씩 공급,시장점유율은 무려 80%.지난해 신문용지의 국제가격 상승과 내수호황에 힘입어 1억5천만달러 매출,2천만달러의 순익을 냈다. 현지인 1천6백50명과 한국인 60명이 일하는 이 공장은 2억달러를 들여 40만t으로 늘리는 증설작업이 한창이다.공장장 홍백희씨는 『자본 회수기간이 10년 이상인 대규모 장치산업을 어떻게 개도국에 투자할 수 있느냐고 현지 기업들이 반문한다』고 했다.신문용지 공장증설은 사실 코린도로선 도박이다.내수신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증설물량은 모두 수출할 생각이다.시황이 괜찮으면 4∼5년이면 자본을 회수할 수 있다』 승은호 회장은 자신에 차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환경보호 문제에 매우 예민해있다.자의라기보다 타의로 그렇게 됐다.세계 환경보호기구와 단체들은 지구상 마지막 산소공급원인 인도네시아 거대밀림의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이 때문에 코린도는 신문용지사업에 진출하면서 고지사용이라는 환경친화적 방법을 현지 정부에 제시했다.현지정부로서 반대할 명분이 있을 리없다.물론 증설중인 설비는 고지난에 대비,펄프도 사용할 수 있게 고안됐다. 신문용지 공장 바로 옆에는 세파린도 인더스트리라는 신설법인이 공장을 짓고 있다.고부가가치제품인 「배터리 세퍼레이터」(이온만 통과시키는 절연체)의 생산공장으로 아시아에서 코린도가 최초다.펄프공장과 「대패밥처럼 무늬가 듬성듬성있게 만드는」 패넬사업(투자비 1억6천만달러),이리안자야 지역의 팜(식물성 튀김기름)트리사업도 구상에서 계획단계로 접어들었다.1천5백만평에 팜트리를 심어 4년후부터 수출하게 되며 8년 뒤에는 연 매출 1억5천만달러에 이르리란게 코린도의 계산이다.불황이라는 단어는 아직 코린도에 낯설다.
  • 불경기속 자격증이라도…/전문학원 “문전성시”

    ◎컴퓨터·요리·패션 등 수강생 몰려/감량경영 등 여파 작년비 20% 늘어 컴퓨터학원·요리학원·패션학원·토플학원 등 취업전문기관들이 취업예비생들로 붐비고 있다.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본격적인 감량경영에 돌입한 가운데 고용에 불안감을 느낀 취업예비생 또는 직장인들이 이들 전문기관으로 몰리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취업관문을 통과하고 취업 후 생존경쟁에서 이겨내려면 기업들이 가점을 부여하는 자격증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의 신입사원 선발 또는 승진심사방식이 필기시험 위주에서 인성·적성검사나 면접 등 종합적인 기준으로 바뀐 것도 이들을 학교 외 기관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 코오롱 패션산업연구원(서울 신사동)의 경우 이달 들어 수강생 모집공고가 나가자마자 정원 90명이 쇄도했다.수강생 대부분이 소위 「취업재수생」인 대학졸업자고,절반정도는 취업을 위해 찾아든 비전공자다. 서울 종로 등 전국 5개 지역에 분원을 둔 시대패션디자인 아카데미는수강생 1천여명 가운데 대학졸업예정자 또는 졸업생이 지난 해에 비해 20%정도 늘었다.특히 화학과·교육학과·가정학과 등 비전공자가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패션을 배우기 위해 1년코스의 강의를 수강하는 경우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서울의 강북과 강남 등지에 본원과 분원을 둔 중앙정보처리학원 역시 수강생 5백여명 중 절반 가량이 취업을 위해 컴퓨터 자격증을 따려는 비전공자들이다. 서울 신촌의 수도요리학원에도 예전에는 신부수업 준비를 하는 여자 수강생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에는 수강생의 3분의 2가량이 취업을 위해 찾아든다.남자 수강생도 40%나 된다.
  • 심권호 은메달 확보/레슬링 그레코로만 48㎏급

    ◎그루지아 파파시빌리에 폴승/한국 여자구기 스타트 쾌조/배구 일 완파… 하키 영에 압승 【애틀랜타=올림픽특별취재단】 레슬링의 심권호(24·주택공사)가 한국에 올림픽 첫 메달을 선사했다. 이로써 심권호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첫 출전한 48년 런던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딴 이후 1백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심권호는 21일 밤(이하 한국시간) 조지아월드콩그레스 센터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48㎏급 승자 준결승전에서 그루지아의 파파시빌리에 테크니컬 폴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최소한 은메달을 확보했다. 심권호는 이날 경기 시작부터 잇따른 옆굴리기를 성공,경기종료 47초를 남기고 11­0,통쾌한 테크니컬폴승을 거두었다. 심권호는 결승전에서 예상을 깨고 쿠바의 산체스를 연장전끝에 누른 벨로루시의 파블로프와 금메달을 다툰다.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첫 동메달을 땄던 여자배구는 조지아대 콜로세움경기장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3­0으로 완승,구기종목 첫 승전보를 보내왔다.한국은 22일 하오 목표인 4강진출의 고비가 될 난적 중국과 예선 2차전을 갖는다. 금메달이 유력한 여자하키도 모리스브라운대 경기장에서 우승후보의 하나인 강적 영국을 5­0으로 가볍게 물리치쳤다. 또 알렉산더 메모리얼콜로세움에서 벌어진 복싱경기에서 54㎏급의 배기웅(22·한체대)과 67㎏급의 배호조(19·한체대)가 필리핀과 아르헨티나선수를 각각 8­4,11­7판정으로 꺾고 2회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남자농구는 예선 1차전에서 호주에 88­1백11로 대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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