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대파
    2026-04-27
    검색기록 지우기
  • 코디
    2026-04-27
    검색기록 지우기
  • 월가
    2026-04-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425
  • [KCC프로농구] 김승현 ‘매직 쇼’

    183㎝의 작은 키로 미국프로농구(NBA) 톱클래스에 우뚝 선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득점기계’ 앨런 아이버슨(30)은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란 말로 팬들을 감동시켰다. 9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매직핸드’ 김승현(27·178㎝·16점 13어시스트 5스틸)의 아름다운 플레이도 아이버슨이 준 감동에 견줘 그리 모자라지 않을 듯싶었다. 김승현은 오른발 아킬레스건염 탓에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지만,1쿼터 초반 13-17로 팀이 끌려가자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아팠냐는 듯 날다람쥐처럼 빠른 발로 상대진영을 휘젓기 시작한 김승현의 마술 같은 패스는 김병철(20점·3점슛 4개 7리바운드 6어시스트)의 3점포로, 때로는 아이라 클라크(35점·덩크슛 4개 11리바운드)-안드레 브라운(23점·덩크숫 6개 17리바운드)의 호쾌한 슬램덩크로 이어졌고, 오리온스의 득점 랠리도 계속됐다. 오리온스가 9일 열린 05∼06프로농구에서 김승현의 마법 같은 패스와 김병철-클라크-브라운 ‘삼각편대’의 융단폭격에 힘입어 SK를 118-94로 대파했다.118점은 올시즌 최다득점 타이며,24점차는 시즌 최다 점수차.SK전 홈경기 10연승으로 ‘안방불패’를 이어간 오리온스는 공동 4위(4승3패)로 올라섰지만,SK는 3연패에 빠지며 8위(3승5패)까지 추락했다. 1쿼터까지 박빙이던 경기는 2쿼터부터 오리온스로 무게추가 기울었다.33-26으로 앞선 채 2쿼터를 출발한 오리온스는 김승현의 속공과 영리한 ‘3점플레이’로 점수차를 야금야금 벌려갔다. 여기에 올시즌 들어 전성기 슛감각을 회복한 김병철의 3점포가 연신 그물을 가르자 점수는 순식간에 20점 안팎까지 벌어졌다. SK는 3쿼터 초반 루크 화이트헤드(24점 13리바운드)와 전희철(12점), 조상현(19점)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김승현을 막던 주전 포인트가드 임재현과 센터 웨슬리 윌슨이 3쿼터 중반 앞서거니 뒤서거니 5반칙으로 퇴장당하면서 추격할 힘을 잃어버렸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정조7년(1783) 1월15일, 인정전에 모인 신하들은 ‘정감록’을 되뇌이던 역적들을 일망타진하게 된 사실을 기뻐하며 국왕에게 축하인사를 올렸다. 난리가 토벌되면 되풀이되는 하나의 관습이었다. 이날 정조는 전국에 사면령을 반포하였다. 웬만한 죄인은 다 풀어주라는 것으로, 이 역시 뒤숭숭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한 상투적인 조치였다. 왕은 포고문에서 문제의 정감록 사건을 일으킨 문인방과 이경래 등 주범들의 죄상을 간단히 요약했다. 사면령을 내리는 동시에, 역모사건의 전모를 백성들에게 간단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실록, 정조 7년 1월15일 정미) 먼저 사건의 중심에 있던 문인방의 죄를 성토한다. 문인방은 삿된 술수를 써 백성들을 현혹하였다고 했다. 그가 역모를 꾸민 것은 고대 중국에서 일어난 황건적의 난과 비슷하다고 했다. 매우 심한 과장이었다. 그 옛날 장각이 이끈 황건적은 중국 한나라를 기우뚱거리게 만들었다. 문인방 사건이 미수에 그친 것과는 천양지차다. 정조는 문인방이 각지를 떠돌며 힘센 장사를 모으려 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명종 때 유명한 도적 임꺽정 사건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역시 과장된 표현이다. 문인방은 백천식, 김훈 등과 짜고 상주의 백학산 아래 만든 소굴에 머물렀다. 이 사건이 발각된 것은 그들과 한통속이던 박서집이 밀고했기 때문이었다. 전라도에서 체포된 문인방은 전주 감영에서 취조를 받았고, 곧이어 서울로 붙들려가 본격적인 신문을 받았다. 그는 역모 사실을 모두 실토했다. 군량을 담당할 사람, 난리를 일으킬 때 선봉장을 맡을 사람 등 가담자들의 역할은 이미 정확히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 가운데는 도원수도 있었고, 대선생(大先生)으로 불리는 선비까지 존재했다. 문인방 사건 때 도원수로 내정된 이는 이경래였다. 이 사건이 뒷날의 여러 정감록 사건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송덕상(宋德相)이란 유학자를 ‘대선생’이라 떠받들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했다는 점이다. 정조 즉위 초 산림(山林·재야에 묻혀 있던 큰선비)의 중심인물로 천거돼 조정에서 크게 활약한 송덕상이 정감록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각별히 주목된다. ●산림 송덕상과 권신 홍국영 문인방 사건으로 조정이 한 차례 홍역을 겪기 5년 전이었다. 대대로 충청도 회덕에 살고 있던 성리학자 송덕상은 산림으로 천거되었다. 정조는 송덕상의 학덕(學德)에 크게 감복한 듯, 그의 건의라면 무엇이든 대체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른바 산림이란 명목으로 향리에 묻혀 지내던 큰선비들이 일시에 높은 벼슬에 등용되곤 했다. 그런데 영조 이후로는 산림이란 카드가 집권세력인 노론에 의해 정국수습용 임시방편으로 활용되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다. 마치 1970∼80년대 한국의 국무총리 자리가 그러했듯, 산림은 일종의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가끔 예외도 있었다. 효종 때 북벌론(北伐論)을 내세우며 정국을 홀로 이끌던 송시열(宋時烈)의 경우다. 그는 산림으로서 노론의 명실상부한 우두머리였다. 산림 송덕상은 바로 송시열의 자손이었으나 그 처지는 자기 조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송덕상은 정조 즉위에 공을 세운 홍국영 일파의 추천으로 조정에 등용된 만큼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했다. 정조 3년(1779), 이조참판 송덕상은 홍국영 등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김구주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 적이 있다.(실록, 정조 3년 6월18일 경오) 알 사람은 이미 다 알지만 홍국영은 정조의 외척이었다. 그는 영조 말기 세손(世孫·정조)의 집권을 반대하던 벽파 정후겸, 홍인한, 김구주 등을 물리치고 정조를 즉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 홍국영은 수년간 반대파를 모두 내쫓는 데 부심하였다. 그는 정조의 신변보호를 구실로 숙위소를 창설해 직접 그 책임을 도맡으면서 더욱더 세도를 부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홍국영의 권력은 날로 비대해졌고, 과거에 그의 정적이었던 정후겸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홍국영을 ‘대후겸(大厚謙)’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홍국영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자기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내 장차 외척으로 세력을 굳히려 했다. 하지만 일년 만에 누이 원빈이 병사하고 말았다. 홍국영은 꾀를 내어 왕제(王弟) 은언군 인의 아들 담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 훗날 세자로 정할 생각을 가졌다.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담에게 역모죄를 씌워 죽였다. 정조4년(1780)에는 왕비 김씨를 살해하려고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그 일로 홍국영은 실각했고 그 여파는 송덕상에게도 미쳤다. 송덕상은 재빨리 상소를 올려 홍국영과 자기의 사이가 별것 아님을 애써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홍문관 교리 서유성 등 홍국영의 반대파들은 송덕상이 겉으론 산림으로 행세하면서 실제는 홍국영에게 아부를 일삼아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왕세자 책봉 건에 관여하는 등 수많은 죄를 저질렀다고 맹렬히 규탄했다.(실록, 정조 5년 4월28일 신미) 결국 송덕상 역시 조정에서 물러나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로선 억울한 점이 있었을 테지만, 이런 식의 정계 개편은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늘 되풀이되어 온 일이다. ●송덕상의 제자 문인방 뜻하지 않은 스승의 정치적 몰락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왔다. 스승이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미래 역시 어두웠다. 보통 스승이 중벌을 받으면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미래를 기약하게 된다. 일단 죽림으로 들어간 젊은 선비들은 시서(詩書)를 연마하며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운이 좋아 언젠가 관리로 등용되기만 하면 왕에게 스승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종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개혁정치가 조광조의 복권과정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송덕상의 제자들 가운데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문인방 등이 바로 그러하다. 그들은 ‘정감록’을 빙자해 난리를 꾸몄다. 과연 제자들이 스승 송덕상을 위해 역모를 꾀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송덕상과 역적들 사이에 사제관계가 형성돼 있었던 것인지, 쉽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여하튼 송덕상의 몇몇 제자들은 군사적 행동을 준비하다 발각돼 역적으로 처형되었고, 그 여파로 송덕상 역시 옥에 갇힌 것이 사실이다. 노론들 사이에서 박학다식한 큰선비로 통했던 송덕상은 여러 달 동안 영어(囹圄)의 몸으로 고통을 받다 드디어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실록, 정조 7년 1월7일 기해) 다른 역모사건들도 그렇지만 이 사건 역시 피의자들이 자기들의 처지를 변호하며 남긴 기록은 찾아볼 길이 없다. 있다면 취조문서가 전부다. 사건을 수사한 국가의 입장에서 사건을 완전히 왜곡하였을 가능성마저 적지 않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문인방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겠다. 송덕상의 제자 신형하는 황해도 평산 사람이다. 그는 송덕상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며 스승을 변호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한다. 그것이 문제로 부각되어 신형하는 마침내 전라도의 한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송덕상을 추종하던 황해도 해주의 선비 박서집은 시를 지어 신형하의 절의를 기렸다. 그 시가 또 문제되어 박서집도 섬으로 귀양을 갔다. 박서집은 유배지에서 우연히 문인방이란 사람과 동거하게 되었다. 평안도 출신인 문인방은 놀랍게도 본심을 털어놓았다. 그는 송덕상의 억울한 처지를 생각해서 장차 군사를 일으켜 서울로 쳐들어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물론 박서집은 그에 찬동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박서집은 겁이 났다. 그는 섬에 파견돼 유배자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문인방의 역모사건을 밀고하였다. 그 섬은 전라도 관할이어서 깜짝 놀란 전라관찰사는 급히 영을 내려 관련자 전원을 체포하였다. 전주와 서울에서 혹독한 신문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인방은 자기가 역모를 꾸민 사실을 시인하였다. 함께 붙들려온 백천식도 반란혐의를 인정하였다. 그들은 밀고자 박서집과 함께 일의 성사를 기원하며 하늘에 축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평민지식인으로 술사이기도 했던 문인방은 ‘정감록’의 한 구절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때 ‘여섯 글자’의 흉악한 예언이 문제로 부각되었으나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그 구절은 문인방이 소지했던 ‘경험록’이란 예언서에도 나와 있다고 하였다. 현재 ‘경험록’이란 책자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사건 당시 문인방은 모두 4종류나 되는 예언서를 소지하고 있었다. 평소 그가 이른바 비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당류 이경래는 강원도 양양 임천리에 살며, 도창국은 평안도 영원 내락림에 있고, 김정언과 오성현은 함경도 안변에 거주하고, 곽종대는 평안도 순안에 살며, 이밖에 김훈과 백천식이 또 있습니다. 만일 난이 성공하게 되면 대선생으로 청계 선생을 모시려 하는데, 이는 송덕상이며 그 손자 송계유는 지금 나이 28세로 저와 마음을 합해 역모를 꾀했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문인방처럼 고향이 평안도인 사람도 있지만 함경도 출신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이밖에 강원도 출신도 역모에 참여했다. 아울러 송덕상의 집안사람들도 일부 포섭돼 있던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송덕상 일가가 역모사건에 참여하였을지는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회덕에 세거하던 송씨 집안은 조선사회에서 손꼽히는 명문 양반이었다. 설사 그들이 송덕상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일이었다. 조선사회에서 그들이 향유한 특권적인 지위는 이런 정도의 일로는 무너질 리가 없었다. 따라서 송덕상의 손자가 모의에 참여했다는 문인방의 진술은 신문과정에서 억지로 강요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송덕상의 제자는 주로 서울과 충청도에 거주했을 텐데, 하필 조선사회의 변경인 서북지방과 강원도 해안지방의 몇몇 제자들만 스승을 위해 난리를 꾸몄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양반과 평민지식인들의 역적모의 사건의 주모자로 분류된 문인방은 힘세고 날랜 평안도 출신의 장사 도창국과 함께 강원도 양양의 선비 이경래와 친했다. 이경래 역시 송덕상의 제자였는데 정조5년(1781) 9월 문인방 등이 이경래를 찾아갔을 때 이경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스승님 송덕상이 조정에 죄를 얻어 뜻밖에 멀리 귀양을 가 계시므로 지금 사태가 급해졌다. 빨리 일을 도모하는 게 좋겠다. 문인방 그대가 인재를 잘만 모집하면 일이 성사된 다음 장수든 정승이든 여하튼 높이 등용하겠다.” 문인방 등은 그 말에 기뻐하며 이경래를 도원수로 삼고, 도창국을 선봉장으로 정했다. 이경래는 양양에 일가친척이 많은 데다가 노복도 숫자가 많으므로, 일단 유사시에 난을 일으켜 양양군수를 잡아 죽이고 무기와 병사를 확보하는 것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이웃 고을인 간성을 공격하고 강릉으로 밀고 들어간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 뒤 반란군은 원주를 함락시키고 곧이어 서울로 진격해 동대문을 거쳐 대궐을 점령하기로 하였다. 거사가 성공한 다음 그들은 송덕상을 ‘대선생’으로 책봉하기로 뜻을 모았다. 반란을 일으킬 시기는 갑진년(1784) 7월과 9월 사이로 정해졌다. 이경래의 집안은 강원도 양양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였다. 이경래의 친척 공조참의 이택징은 우선적인 포섭대상으로 떠올랐다. 이택징은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에 반대해 규장각 운영을 강도 높게 비난한 적이 있다.“규장각은 전하의 사적인 관서에 지나지 않고, 규장각의 관리들은 전하의 사사로운 신하일 뿐입니다.” 이처럼 정조의 정책적 고려에 날카롭게 맞선 인물이었다. 문인방 등은 이런 이택징을 서둘러 합류시키고, 그들을 지렛대 삼아 서울의 여러 양반들을 역모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당시 서울에는 몇 해 전에 거세된 홍국영 일파를 비롯해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에 반대하며 울분을 삭이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던 양반들이 많았다. 조선은 양반의 국가라, 양반들이 국가에 반기를 들 거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영조 초년 삼남지방에서 일어난 무신란(1728)을 비롯해 몰락한 양반들이 반란을 꾀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정적(政敵)들에 의해 완전히 조작된 역모사건도 없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17세기 초에 일어난 인조반정(1622)은 양반들이 반란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 본보기였다. 그런 점에서 문인방과 이경래 등이 무력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소망을 품게 된 것도 전혀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문인방 사건의 경우 역모사건이 새롭게 달라진 측면도 있다. 권좌에서 밀려난 제일급의 양반들이 서북지방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평민지식인들 또는 술객(術客)들과 합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모의과정에서 평민지식인들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었다는 점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볼 때 이경래나 이택징과 같은 일급 양반들보다 평민지식인 문인방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또 한 가지 강조할 사항은 ‘정감록’을 포함한 각종 예언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문인방은 양양과 서울은 일단 이경래에게 부탁해 놓고 자신은 삼남지방으로 내려갔다. 힘이 센 장사들을 다수 모집해 거사를 성공으로 이끌 생각이었다. 그가 관헌에 체포되기 직전 충청도 진천에 머물고 있던 것도 장사를 모으기 위해서였다.(실록, 정조 6년 11월20일 계축) ●평민지식인이 송덕상 같은 양반과 결탁하다니 억울하게 멸시받던 평민지식인들로서야 송덕상과 같은 명문가 출신의 양반과 사귀고 싶어도 도저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짐작은 매우 합리적으로 들리지만,18세기 조선사회의 실상과는 더 이상 부합되지 않는다. 문인방 사건 때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용케 법망을 빠져나간 평민지식인들 중에 이규운이란 사람이 있다. 전국 각지를 떠돌며 훈장노릇을 하던 평민지식인이었다. 그런 이규운이 산림 송덕상과 서로 가까워진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 비롯되었다. 정조 초년 이규운은 강원도 통천에 있었다. 통천은 송시열이 함경도로 귀양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머물던 곳이라 송시열의 기념비가 있었다. 이 비석을 다시 세우는 일로 이규운은 송덕상을 몇 차례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강원도 김화 수령으로 재임하던 송덕상의 아들까지도 사귀게 된다. 어렵게 대갓집과 연줄을 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규운에게 돌아올 몫은 아무 것도 없었다. 쥐꼬리만 한 벼슬 한 개도 차지할 운이 아니었다. 이규운은 본래 평안도 선천 사람이었고 진짜 이름은 오도하라고 했다. 이규운은 고향을 떠나 강원도를 떠돌았다. 그는 서울 양반 이찬이란 사람을 대신해 과거시험 답안지를 써주었는데 그 덕에 이찬은 진사가 되었다. 제 이름을 걸면 아예 과거시험장 출입이 불가능한 이규운이었으나 그가 대필해준 글로 다른 사람은 진사가 되었다.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허탈과 공황 속에서 이규운은 ‘정감록’을 읽었고, 반란을 꿈꾸었다. 이규운은 송덕상 같은 양반을 위해 피를 흘릴 사람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술객에게 송덕상의 명예회복은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현대차그룹 수시인사 ‘왜’

    현대차그룹이 지난 7일 또한번의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올들어 부사장급 이상 사장단 인사만 10번째를 채웠다. 사임한 부사장급 이상만 7명이다. 최근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지난 9월20일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에서 현대파워텍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불과 48일 만에 다이모스 부회장으로 또 옮긴 전천수 부회장. 전 부회장은 10월 5일 현대파워텍 등기이사로 등재됐으니 등재된 지 한달 만에 소속을 옮긴 셈이다. 부회장급이 ‘단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상기 전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현대하이스코 부회장에서 현대차 부회장으로 발령난 뒤 지난 4월 현대모비스 부회장으로 옮겼지만 4개월을 못 버티고 회사를 떠났다. 현대차 관계자는 “수시 인사는 확실한 신상필벌과 스피드 경영,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정몽구 회장 특유의 인사방침으로 지금까지 좋은 성과를 내왔다.”면서 “인사 수요가 있는데도 연말 정기인사까지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수시 인사는 책임경영에 한계가 있는 데다 주주총회와 이사회 결의를 통해 선임된 등기이사와 대표이사를 그룹 고위층의 의중에 따라 너무 쉽게 바꾼다는 지적이다. 기아차는 1월7일,1월19일,3월11일 세 차례나 대표이사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두달가량 대표이사를 지낸 구태환 부사장은 지난 8월 말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하면서 등기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현대차그룹은 또 박정인 전 회장과 전천수 부회장이 ‘본인 의사로 사임했다.’는 이유로 대표이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결의나 주총 승인을 받지 않았다. 특히 전천수 부회장은 현대차 대표이사를 사임하면서 등기이사직은 유지한다고 공시됐지만 회사측은 이후 등기이사직도 내놓았다고 밝혔다. 등기이사인 대표이사를 해임하려면 이사회 결의와 주총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사임을 하면 나머지 절차가 생략되는 현행법을 준용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에서 인사를 했기 때문에 이들이 물러난 것일 뿐 실제 본인 스스로 그만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평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인사에 대해 반발한 사장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선웅 변호사는 “본인이 사임했다면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겠지만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 오너나 그룹에서 인사를 결정하기보다 각 계열사 이사회를 통해 적합한 인사를 선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현대차 올해 임원 인사 현황 ▲1월4일 이전갑 현대차 부사장 사장 승진 등 2명 ▲1월7일 윤국진 기아차 사장 사임, 김익환 기아차 부사장 사장 승진 ▲2월 이재완 기아차 부사장 사임 ▲2월25일 김원갑 현대하이스코 사장 부회장 승진, 정의선 기아차 부사장 사장 승진 등 4명 ▲3월11일 서병기 현대차 부사장 사장 승진 ▲4월28일 이상기 현대차 부회장 현대모비스 부회장 전보, 채양기 현대차기획총괄 부본부장 본부장 전보 ▲5월27일 김상권 현대차 사장 부회장 승진 등 6명 ▲8월11일 최한영 현대차 사장 전보, 이재완 부사장(전략조정실장)복귀 ▲8월 이상기 현대모비스 부회장·구태환 기아차 부사장 사임▲9월20일 한규환 현대모비스 사장 부회장 승진 등 6명,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 사임 ▲11월2일 채양기 현대차 부사장 사장 승진 등 2명 ▲11월7일 전천수 현대파워텍 부회장 다이모스 부회장 전보, 이중우 다이모스 사장·주영섭 본텍 사장 사임
  • [경제플러스] 현대 다이모스 부회장 전천수씨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7일 전천수 현대파워텍 부회장을 다이모스 부회장으로, 카네스 양웅철 부사장을 본텍 부사장(대표이사)으로 겸직 임명하는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다이모스 이중우 사장과 본텍 주영섭 사장은 각각 고문으로 위촉됐다. 전천수 부회장은 기아차 광주 및 화성공장장, 현대차 울산공장장 등을 역임한 노무전문가로 지난 9월 말 현대차 사장(대표이사)에서 파워텍 부회장으로 옮긴지 불과 48일만에 또다시 짐을 싸게 됐다. 양웅철 본텍 부사장은 이달 초 출범한 현대차와 지멘스의 전장부품 합작법인 카네스의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전장부문 전문가라고 현대차는 소개했다. 이중우 고문은 현대정공 출신으로 현대차 경영지원본부장을 역임했고 정몽구 회장의 관심이 큰 대한양궁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지만 지난 5월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양궁협회 회장직을 물려준 뒤 이번에 경영일선에서도 물러나게 됐다.
  • [아침해결 이곳에서] 여의도(上)

    [아침해결 이곳에서] 여의도(上)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캠페인에서 지역별로 아침 먹을 곳을 소개한다. 저렴한 가격에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직장인의 발길을 유혹한다. 첫번째 탐방지역은 여의도. 여의도공원을 중심으로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서여의도를 먼저 훑어봤다. 서여의도에서 아침 맛집이 몰려있는 건물은 LG에클라트다.1층과 지하1층 음식점들이 오전 7∼8시면 오픈한다. 샌드위치 전문점인 리틀 제이콥스(761-2208)는 오전 7시30분에 문을 연다. 샌드위치 속을 맘대로 골라먹는 게 특징. 가격은 2900∼4300원. 음료는 1800∼3900원. 모닝세트(3500원)는 햄에그 크라상이나 야채클럽 샌드위치에다 커피·우유·음료수를 골라먹는 것. 서여의도는 3개 이상, 동여의도는 10개 이상이면 배달해준다. 한집건너 종로김밥(782-4440)이 자리하고 있다.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아침손님이 많지 않다. 직장인들이 짬을 내서 허기진 속을 라면(2000∼2500원)으로 채우러 온단다. 김밥 2000∼3000원. 지하 1층에선 전철우 고향국밥(786-6039)이 오전 9시부터 영업한다. 오전에는 육개장(3500원)북어해장국(3500원)우거지갈비탕(4000원)내장탕(4000원)이 잘 나간다. 대표음식인 황해도 콩비지(2900원)는 저렴한데다 맛도 깔끔하다. 황태요리전문점 자린고비(769-1379)는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아침식사로 황태국(3500원)시래기국(3500원)을 내놓는다. LG에클라트 바로 옆에 위치한 장덕빌딩 지하에는 우래분식과 할머니보쌈 송후순대국이 유명하다. 오전 6시30분이면 영업을 시작하는 우래분식(786-8627)은 맛깔스러운 안주인 손맛이 일품. 제육볶음밥(4000원)불고기볶음밥(4000원)오뎅백반(4000원)만두국(4000원)이 잘 팔린다. 특히 만두는 직접 만들어 단백하고 쫄깃하다. 배달은 안 된다. 안쪽에 자리한 송후순대국(761-7750)도 7시30분부터 손님을 맞는다. 순대국물을 사골로 우려 진하다.5000원.10년 역사만큼이나 단골이 많다. 점심에 제공되는 보쌈정식(7000원)이 인기메뉴. 맞은편 신동해빌딩 지하1층에는 남도한정식 은혜정(780-2414)이 오전 8시부터 콩나물 굴국밥(4000원)과 호박죽(4000원)을 내놓는다. 예약하면 한정식(9000원)을 준다. 신동해 빌딩 대각선에 자리한 한양빌딩 지하 1층에는 포석정(780-4353)이란 음식점이 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며 전북 고창에서 고춧가루 등 양념을 가져와 음식을 만든다. 순두부 3500원, 부대찌개 4000원. 렉싱턴호텔 맞은편 난중빌딩에는 유명한 너섬家(785-6660)가 있다. 잡지,TV에 여러차례 나온 맛집.6시30분부터 따로국밥(5000원)과 속풀이국(4000원)을 판다. 따로국밥은 소고기에 무 대파를 넣어 시원하고 단백한다. 속풀이국은 시래기국으로 구수하다.13년 전통을 자랑한다. 겉절이와 깍두기를 매일 담가서 내놓는다. 맨하탄21에는 죽전문점 다화(多和·784-9810)가 오전 7시에 문을 연다. 버섯굴죽 9000원, 전복죽 1만 2000원으로 비싸지만 고급스러워 손님과 함께가기 좋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의사당로를 건너 아시아원빌딩 1층에 위치한 탐앤탐스(Tom N Toms·780-7805)에선 오전 8∼10시에 커피를 주문하고 1000원을 내면 플레즐을 무제한으로 준다. 단 매장에서 먹어야 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하프타임] 클리블랜드, 뉴올리언스 대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3일 미국프로농구(NBA) 뉴올리언스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31점을 쏟아부은 르브론 제임스의 활약으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109-87로 낙승했다. 개막일 새크라멘토 킹스를 대파한 뒤 2연승을 노리던 뉴올리언스는 골밑에서 밀린 데다 야투 성공률에서도 처졌다.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저메인 오닐(19점 7리바운드) 등이 고른 활약을 펼쳐 올랜도 매직을 90-78로 꺾었다.
  • [주간 물가 동향] 양송이등 버섯 가격 강세

    [주간 물가 동향] 양송이등 버섯 가격 강세

    배추, 무 등 김장 재료값의 오름세가 한풀 꺾였다. 배추(포기)는 충청지역의 출하량 증가 등으로 폭등세가 주춤, 소폭의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보다 30원 내린 3300원선이지만 지난해에 비해 여전히 3배(1000원), 예년(1700원)에 비해서는 2배 이상 비싼 가격대를 보이고 있다. 대파(단)는 210원 내린 1780원, 무(개)는 120원 내린 199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김장철을 앞두고 동치미무와 순무도 출하가 시작돼 한단에 4120원,436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감자(1㎏)는 출하량이 크게 늘면서 200원이나 내려 850원의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주는 버섯류의 강세가 눈에 띈다. 느타리(100g)는 지난주보다 110원(12%) 오른 990원, 양송이(100g)는 160원(22%) 오른 890원, 팽이버섯(봉)은 80원(27%) 오른 37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사과(5㎏ 후지)는 3600원 내린 2만 900원, 배(7.5㎏ 신고)는 지난주와 같은 2만 3500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계절의 맛을 더하는 단감(100g)은 270원, 토마토(100g)는 340원, 포도(5㎏)는 1만 5500원선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농산물과 달리 축산물은 여전히 변동없는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삼겹살(100g) 1660원, 닭고기(851g) 3540원, 한우 등심(100g) 6610원 등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돼지고기로 다이어트 요리

    돼지고기로 다이어트 요리

    매해 가을이면 느낀다.“아, 가을에 살찌는 건 말(馬)뿐만이 아니구나.” 식욕이 솟는 가을에는 대부분 다이어트에 실패한다. 더운 날씨에 확 떨어졌던 식욕은 가을이 오면 높은 하늘만큼 솟아 오른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데다 옷도 점점 두꺼워지니 팔뚝이 조금 굵어져도, 배가 조금 나와도 옷으로 가리면 된다는 생각에 조금씩 조금씩 먹는 양이 늘어난다. 날씨가 추워지면 몸은 피부 아래에 지방층을 축적해 체온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능을 발휘한다. 또 먹을거리가 줄어드는 겨울을 앞두고 충분히 몸 속에 영양분을 저장하려고 한다. 사람도 이같은 본능을 지닌 동물인지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식욕이 늘어 다이어트를 향한 의지가 무너져버린다. 그렇다고 굶을 텐가.‘고기를 먹으면 살이 찐다.’고 걱정하면서 육류 섭취를 소홀히 할 것인가. 오히려 단백질 부족으로 면역력이 약해져 병에 잘 걸리고 빈혈이나 골다공증을 일으키기 쉽다. 웰빙 3총사로 만들 수 있는 간편한 돼지고기 요리를 통해 건강과 다이어트를 동시에 챙기는 센스를 발휘해 보자. ■ 도움말 양돈자조금관리위원회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다릿살·등심·안심 다이어트 도우미? 다이어트의 대가들은 ‘금식’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면서 살이 찌는 걱정을 덜기 위해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 조절을 강조한다. 대부분 육류보다는 청국장, 된장찌개 등 콩으로 만든 음식이나 삼치, 꽁치, 고등어 등 가을 생선을 권한다. 원래 육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상관없겠지만 평소 고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식욕이 올라갈수록 고기를 향한 그리움과 살에 대한 고민은 커져만 간다. 고민하지 말고 과감하게 돼지고기로 다이어트하자. 살에 대한 대비책은 재료에서 찾으면 된다. 돼지고기 뒷다리는 비타민 B1이 많고, 지방이 적어 씹는 맛이 좋다. 살집이 많은 덩어리를 그대로 요리하거나 얇게 썰어 구이, 튀김, 찌개, 불고기, 장조림 등에 이용할 수 있다. 허리부분 안쪽인 안심은 돼지고기 중에서 가장 결이 가늘고 연하며 칼로리가 낮은 부위다. 가장 지방이 적기도 해 탕수육, 구이, 로스, 스테이크 등 기름을 사용한 요리에 적합하다. 등심도 안심과 함께 최상의 부위로 꼽힌다. 보다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겉지방을 제거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돼지고기 섭취로 생기는 ‘세로토닌’과 ‘아난다마이드’가 뇌의 만복중추를 자극해 식욕을 억제해 다이어트에도 일조한다. ■ 맛좋고 웰빙도 추천 요리조리 태국식당에서 눈에 띄는 메뉴 중 하나는 돼지고기 양상추쌈이다. 곁들여 나온 양상추에 볶은 고기를 원하는 만큼 살포시 얹어 먹으면 되는, 의외로 간단한 요리인 만큼 만드는 법도 어렵지 않다. 기름기가 적은 뒷다리살을 이용하고, 야채와 함께 먹으면 몸매 걱정은 끝. ●아삭아삭 돼지고기 양상추쌈 재료:돼지고기 300g, 닭고기 육수 3큰술, 피시소스 2큰술, 레몬주스 3큰술, 양파 1/2개, 다진실파 1큰술, 고수(코리엔더) 1뿌리, 후추 약간, 양상추 1/2통 만드는 법:(1)돼지고기, 양파는 각각 다지고, 고수도 깨끗이 씻어서 약간 다진다.(2)달군 팬에 육수를 넣고 고기를 넣어 중간 불에서 5분 정도 볶는다.(3) (2)에 다진 양파와 실파, 고수를 넣고 잘 섞은 후 피시소스와 레몬주스를 넣어 볶는다.(4)기호에 따라 피시소스를 넣어 간을 맞추고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볶아 후추를 뿌리고 접시에 담는다.(5)양상추는 한 잎씩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고기와 함께 곁들여 낸다. Tip:닭고기 육수는 대형마트에서 파는 ‘치킨스탁’을 이용하면 된다. 고수를 넣어 고기 자체에 강한 향을 풍기므로 상추나 깻잎보다는 양상추에 담아 먹는 것이 좋다. ●속이든든 돼지고기 피망잡채 재료:돼지고기 100g, 생강 1쪽, 청피망 1/2개, 홍피망 1/2개, 대파 5㎝,녹말물, 꽃빵 5개,고기양념(간장 1작은술, 맛술 1/2큰술, 설탕, 후추) 만들기:(1)청피망, 홍피망을 반으로 갈라 씨를 빼고, 채를 썬다. 대파와 돼지고기도 같은 길이로 채 썬다.(2)돼지고기는 고기양념에 재워둔다.(3)달군 팬에 기름 넣고 돼지고기를 볶다가 생강즙, 피망, 대파를 넣어 다시 볶는다.(4) (3)에 소금, 후추간을 한 후에 녹말물 넣어 재빨리 뒤섞고 참기름을 둘러 불을 끈다.(5)꽃빵은 한 김 오른 찜기에 넣어 찐 후 고기와 함께 곁들여낸다. ● 쫀득쫀득 돼지고기 찹쌀탕수육 재료:돼지안심 300g, 소금, 후추 약간, 생강즙 1큰술, 녹말 1/4컵,찹쌀가루 1/2컵, 물 1컵, 튀김기름 적당량, 올리브오일 약간,소스(물 1/2컵, 맛술 1큰술, 건고추 1/2개, 마늘 1개, 케첩 2큰술,설탕 1큰술, 레몬즙 1큰술, 물녹말 1큰술, 소금, 참기름 약간 만드는 법:(1)돼지고기는 1㎝ 두께로 넓적하게 썰어 칼등으로 두드려 편 후 소금, 후추, 생강즙으로 밑간 한다.(2)고기에 찹쌀가루를 묻히고, 여분의 가루는 털어낸다.(3)녹말, 찹쌀가루, 물을 걸쭉하게 섞어 (2)에 입힌후 180℃ 온도의 기름에서 튀긴다. 기름을 빼 고 먹기 전에 한번 더 바삭하게 튀긴다.(4)팬에 편으로썬 마늘, 홍고추와 알맞은 분량의 소스재료를 넣어 끓인 후 마지막에 녹말물을 넣어 농도를 조절하고 참기름을 약간 둘러 소스를 만든다.(5) (3)의 고기에 끼얹어 낸다. ●향긋한 목심대파구이재료:돼지목심 200g,양념(청주 1/4컵, 맛술 1/4컵, 저민마늘 1쪽, 생강즙 1작은술, 소금, 통후추), 대파 1/2, 소금, 후추,초고추장(고추장·식초·다시물 1/2큰술씩, 설탕 1/2큰술, 물엿 1/2큰술, 소금, 통깨 약간) 만드는 법:(1)목심은 한 입 크기로 썰고 소금, 후추를 뿌려 밑간을 한 뒤 양념 속에 재워둔다.(2)대파는 채를 썰어 찬물에 담가 아린 맛을 제거한 후 물기를 뺀다.(3)달군 팬에 고기와 대파를 같이 넣고 노릇하게 익힌다.(4)초고추장을 만들어 (3)과 곁들여낸다 ■ 신동주씨는 요리와 테이블세팅에서 자신만의 감각을 뽐내며 방송·광고·잡지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기 푸드스타일리스트.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요리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해찬들 된장 광고와 CJ홈쇼핑 광고 ‘가든파티’편 등 다양한 광고에 등장한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그녀의 솜씨다.
  • 결혼하면 아이 못낳게 수술도

    “70년대 후반까지 정착촌이 아닌 마을에 들어가면 붙잡아서 소록도로 보냈다. 심지어 80년대 초에도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단종수술을 했다.” “정부는 한센협동회를 조직해 한센인을 지원했지만, 이들은 한센인들을 못살게 굴었다. 정부가 지원한 것은 선거 때 여당표가 필요해서였다.” ●인권침해 사례를 정리하는 데 의미 지난 3월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은 서울대 정근식 교수팀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한센인에게서 과거의 인권침해 사례를 기록으로 정리한 구증들이다. 정 교수팀이 수집한 증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나 국군이 마을을 점령하면 마을 사람들이 점령군에게 막걸리를 사주며 정착촌에 있는 한센인을 반대파로 몰아 학살하는 ‘막걸리 학살’이 만연했다. 이 기간 동안 한센인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좌익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학살당했다. 실태조사에서 밝혀진 ‘경남 함안의 물문리 학살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센인들은 1950년 7월 하순쯤 관동교 다리 밑에서 국방경비대, 경찰, 지방청년단 등에 의해 29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좌익”이라는 마을 사람의 제보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한센인 대부분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좌익사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센인 인권침해 3대 사건의 하나인 비토리섬 학살 사건의 경우,1962년 섬을 개간하러 들어간 한센인 26명을 살해한 가해자 3명에 대해 법원은 징역1∼2년의 형을 선고했을 뿐이다. ●60년대 주민에 의한 인권침해 국가가 눈감아 독재정권 시절에는 분열한 한센인들이 서로를 탄압하기도 했다. 일본이 한센인간 격리정책을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온 반면, 우리나라는 60년대부터 격리수용을 포기하며 사실상 이들을 방치했다. 한 곳에 사는 일반인과 한센인간에 분쟁이 생기면 한센인들 대부분은 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당연히 챙겨야 할 권리마저 빼앗겼다.5·16 이후 소록도에 남아 있던 한센인들이 한 오마도 간척사업 때도 그랬다. 한센인들은 개간된 땅을 불하받는 조건으로 일했지만, 인근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한 마지기의 땅도 받지 못했다. 이들에게 개간한 땅을 나눠주면 주변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떠나겠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센인에 대한 재산권 침해 등이 공권력에 의해 일어났지만, 오랫동안 격리된 탓에 이들에 대한 자료나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근식 교수는 “오마도 간척사업에 대해 한센인들이 공사의 40%를 진행했는지,60%를 진행했는지에 대해 당국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실태조사에서 한센인들에 대한 인권침해 대부분이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한센인들을 차별한 주체가 일반 주민들이었던 경우에도 차별을 묵인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주간 물가 동향] ‘김치 파동’ 불구 배추 소폭 하락

    [주간 물가 동향] ‘김치 파동’ 불구 배추 소폭 하락

    주요 농산물의 시세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특히 납김치, 기생충 김치 등으로 급등하고 있던 배추값도 소폭 내렸다. 배추(포기)는 충청지역의 배추가 출하되면서 지난주보다 80원 내린 3330원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같은 기간 1000원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시세다. 대파(단)는 지난주와 같은 1990원, 무(개)는 10원 내린 211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상추(100g)는 소비 부진으로 200원(33%) 내린 400원에, 애호박(개)도 400원 내린 900원의 시세를 보이고 있다. 감자(1㎏)는 160원 내린 1050원에 거래되고 있다. 사과(5㎏, 감홍)는 품질이 좋은 사과가 출하되면서 4000원 오른 2만 4500원의 시세를 보였고 배(7.5㎏ 신고)는 오히려 2000원 내린 2만 3500원선으로 하락세에 있다. 단감(100g)은 50원 내린 230원, 토마토(100g)는 30원 내린 270원, 포도(5㎏)는 1600원이 오른 1만 790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조류독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닭고기값은 지난주와 같은 3540원의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계란(30개)은 470원 내린 2640원에 판매되고 있다. 돼지고기 삼겹살(100g)과 목심(100g)은 70원,40원씩 내린 1660원,145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한우는 등심(100g) 6610원, 안심(100g) 6010원, 양지(100g) 4560원, 갈비(100g) 5760원 등 가격 변동이 없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박용성회장 60개대외직함 ‘위태’

    검찰의 두산그룹 수사가 마무리국면에 접어들면서 박용성 회장의 사법처리 강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회장의 사법처리는 개인 박용성에 대한 처벌 차원을 넘어 경제·스포츠 외교에도 파장을 몰고 오게 된다. 26일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 회장이 맡고 있는 대외직함은 무려 60개에 달한다. 박 회장의 사법처리 정도에 따라 이 가운데 상당수 ‘명함’이 사라질 수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말 세계 최대의 민간경제기구인 ICC(국제상업회의소) 회장에 취임했다.85년 ICC 역사상 두번째 아시아인 회장이다. 또 도하개발어젠다(DDA) 민관합동포럼 공동의장, 한·일FTA 비즈니스포럼 위원장, 주한상공회의소협의회 위원장, 한·중민간경제협의회 회장, 태평양경제협력회의 한국대표 등 굵직굵직한 타이틀을 갖고 있다. 박 회장은 경제외교력을 인정받아 2010년 세계박람회 여수 유치전에서 대통령 특사로 활동했다. 첫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2012년 유치를 위해 다시 뛰고 있다. 박 회장은 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기반으로 국제노동재단 이사장, 환경보전협회 이사장, 한국디자인진흥원 이사장, 한국유통물류진흥원 이사장, 재경부 세제발전심의원회 위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 국내 경제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체육계에서는 한 표가 아쉬운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도 박 회장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직이 꼭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관계자는 “김운용 전 부위원장의 위원직 사퇴로 국내 IOC위원이 2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박 회장마저 물러나면 국제 체육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최근 출국금지에서 잠시 풀려나 스위스 IOC총회에 참석한 것도 이번 총회에서 2009년 IOC총회의 부산 유치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국가적’ 주문이 작용했다. IOC는 IOC위원이 올림픽헌장이나 윤리규범을 위배했다고 판단될 경우 집행위원회에서 제명권고안을 채택, 총회 참석위원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제명을 결정한다.KOC측은 “올림픽헌장이나 윤리규범의 조항들이 워낙 추상적이어서 박 회장의 사법처리가 곧바로 제명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IOC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실제 박 회장은 ‘두산사태’가 불거진 것 만으로도 국제 체육계에서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았다. 비록 3선에 성공하긴 했지만 지난 9월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선거에서 반대파들이 두산사태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日왕실 대끊길라” 여성 승계 인정키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에서도 다시 ‘여성 일왕’이 나올까. 일본 역사상 지금까지 8명의 여성 일왕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왕위가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남성·남계(男系)에 한정했던 왕위계승 자격을 여성·여계(女系)로 확대하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이와 동시에 남성 일왕을 고집하는 반대파의 움직임도 활발해지면서 막판 진통이 예상된다. 아울러 여성 일왕을 채택할 경우 ‘배우자 선정’이나 형제자매간의 순위 결정, 왕족범위 등 세부 내용 결정에도 진통이 예상된다. 일본 총리 자문기구인 ‘왕실전범에 관한 전문가회의’는 25일 모임을 갖고 여성 일왕 및 여성 일왕의 자녀도 일왕에 즉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다음 달 발표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이 보고서를 제출받아 내년 1월 개회되는 정기국회에서 왕실전범을 개정할 계획이다. 전문가회의는 “현행 왕실전범에서 안정적 왕위계승이 가능할지 여부를 논의한 결과, 향후 후계자 부족문제가 발생할 것이 확실했다.”며 “왕위 세습을 지키기 위해 여성·여계로 확대키로 했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이날 밤 기자들과 만나 내년 정기국회에서 개정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일본에서 ‘왕위 계승’ 자격 확대여부가 큰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왕실에서 후미히토(40) 왕자 이후 40년간 남자가 태어나지 않아 이 상태가 지속되면 왕실전범에 따라 126대인 나루히토 왕세자 이후 왕위가 끊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회의가 구성돼 왕위계승 자격을 현실에 맞게 고치는 방안이 논의됐다.현행대로 남자·남계에 국한하면서 패전 후 왕실을 이탈한 옛 왕족을 복귀시키는 방안, 양자를 인정하는 방안 등이 떠올랐으나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해 결국 배제됐다. 여성·여계가 인정되면 앞으로 일왕직계의 남아가 태어나지 않는 한 나루히토 왕세자의 딸인 아이코(4)가 127대 일왕에 오르게 된다. 다만 남녀를 불문하고 출생순으로 계승순위가 결정되는 장자(長子) 우선으로 할지, 남매간의 경우 남자를 우선할지는 의견이 엇갈려 있다. 왕위계승 순위는 ‘일왕’ 직계를 우선으로 하는 것으로 합의됐다.taein@seoul.co.kr
  • [하프타임] 이승엽 3연속 홈런 무산

    한국인 최초의 일본프로야구 재팬시리즈 3연속 홈런을 노리던 이승엽(28·롯데 마린스)이 25일 오사카 고시엔구장에서 벌어진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선발에서 제외된 뒤 9회초 2사 후 대타로 나섰지만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롯데는 한신을 10-1로 또 대파하고 3연승, 챔피언 등극에 단 1승만을 남겨 놓았다. 롯데는 4차전에서 이기면 지난 1974년 이후 31년 만에 3번째 재팬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리게 된다.
  • 청소년축구 화끈했다

    ‘영건’ 신영록(수원)과 이상호(현대고)가 골 폭죽을 터뜨린 한국이 일본을 5-2로 대파했다. 이광종 감독이 임시로 이끄는 한국청소년(18세 이하)축구대표팀은 25일 경주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김홍일(금호고)의 선제골과 신영록의 추가골에 이어 이상호가 연속 2골을 몰아치고 상대 자책골까지 묶어 5-2의 큰 점수차로 승리했다.국가대표팀 간의 A매치는 아니었지만 이날의 대승은 한·일축구 역대전적에서 ‘기록’으로 남을 만한 사건. 국가대표팀간 역대 전적에서는 38승18무12패로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3골차 이상의 승리는 지난 1982년 한·일정기전에서 강신우 최순호 이강조의 골로 3-0 완승을 거둔 이후 23년 동안 한번도 없었다.5골을 터뜨린 건 54년 스위스월드컵 예선(5-1승)으로 아주 먼 옛날.90년대 이후엔 승패 대부분이 한 골차였다. 19·20세 이하 대표팀의 경우 1970년 필리핀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의 5-0이 가장 큰 점수차였지만 올림픽대표팀(23세 이하)은 3골차 이상 승리를 거둔 적은 없고, 오히려 99년 도쿄에서는 1-4로 참패했다. 후반에만 7골이 터졌다. 한국은 후반 1분 김홍일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가볍게 차넣어 신호탄을 올리고 상대 자책골로 2-0으로 앞서 나가다 1골을 만회한 일본의 추격을 신영록의 추가골로 뿌리친 뒤 이상호가 15분 간격을 두고 연속골을 퍼부어 쐐기를 박았다. 일본은 43분 1골을 만회했지만 이미 갈라진 승부였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배추 ‘錢爭’

    “산지 배추값이 매일 올라요. 요즘은 8월보다 두배 넘게 올랐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뛸지 모르겠습니다.” 23일 롯데마트 야채 바이어 조정욱(33)씨는 전북 고창군의 한 배추밭을 둘러본 뒤 “지난 8월엔 평당 4000∼5000원만 주어도 널려 있던 배추가 1만원을 준대도 사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중국산 ‘납김치’와 ‘기생충 김치’ 파동으로 배추값이 치솟고 있다. 시중에서 파는 김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까닭에 김치를 직접 담가 먹으려는 가정이 늘어난 까닭이다. 조씨는 지난 8월부터 몇 차례 전남 영암·나주와 전북 고창에서 배추밭 15만평을 확보했다.100만포기로 지난해 롯데마트가 확보한 물량보다 무려 8배 많다. 무는 50만개가량을 확보했다. 전북 고창군 성재리의 배추농부 송영복(63)씨는 “배추를 밭떼기로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올해 배추 작황도 좋은데 이런 호황은 몇십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한몫을 노리는 산지 수집상이 대부분”이라며 “농가들은 보통 3만평에서 5만평 정도의 배추 농사를 짓는다.”고 덧붙였다. 유통업체의 배추 확보전도 치열하다.E마트는 처음 90만 포기 배추를 확보했다가 최근 급히 10만 포기를 더 늘렸다. 그랜드마트는 지난해보다 20%가 증가한 6만 5000포기를 확보했다가 급히 7000포기를 추가했다. 홈플러스는 역시 지난해보다 40%가 많은 70만통의 배추를 확보한 데 이어 5만∼10만통의 배추를 추가로 확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산지 배추 가격이 치솟고, 야채 수집상이 밭떼기로 사는 바람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할인점 업계는 다음달 초부터 배추를 시세보다 싼 80∼90%의 가격에 내놓을 방침이다. 홈플러스는 다음달 17일부터 열흘간 무·배추·쪽파·대파 등을 시중가보다 30% 싸게 팔기로 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프로농구 2005] 김승현 맹활약 동부에 85-62 대승

    길고 긴 방학을 끝내고 6개월 간의 대장정에 돌입한 05∼06시즌 프로농구 첫 승의 영광은 오리온스에 돌아갔다. 오리온스는 21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05∼06시즌 KCC프로농구 개막전에서 트리플더블급 활약을 한 ‘매직핸드’ 김승현(27·15점 9리바운드 9어시스트)을 앞세워 ‘디펜딩 챔프’ 동부를 85-62로 대파, 산뜻한 출발을 했다. 지난시즌 TG삼보(동부의 전신)에 1승5패로 열세를 보인 것을 비롯,2002년 12월28일 이후 치악체육관에서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했던 오리온스는 지긋지긋한 원정 7연패의 사슬을 끊고 달콤한 복수를 했다. 경기전 예상처럼 승부는 포인트가드 싸움에서 갈렸다. 오리온스가 김승현의 감각적인 킬패스로 골밑에서 손쉬운 득점을 차곡차곡 쌓아나간 반면, 동부는 KTF로 옮긴 지난시즌 최우수선수(MVP) 신기성의 공백을 절감해야 했다. 전창진 동부 감독은 이적생 김상영과 강기중, 외국인선수 마크 데이비스를 번갈아 세웠지만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공배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리그 최강의 ‘더블포스트’ 김주성(18점 7리바운드·205㎝)과 자밀 와킨스(204㎝)도 빛을 잃었다. 공을 받기 위해 페인트존을 벗어나다 보니 골밑은 오리온스의 ‘용병듀오’ 아이라 클라크(23점·195㎝)와 안드레 브라운(28점 15리바운드·200㎝)의 세상이 됐다. 리바운드 수 43-27로 오리온스의 압도적 우위. 오리온스는 ‘매직핸드’ 김승현을 중심으로 짜임새있는 조직력을 선보이며 초반부터 동부를 압박했다.2쿼터 중반 김주성에게 연속득점을 허용해 30-27로 쫓겼지만, 이내 브라운의 골밑득점으로 점수차를 벌렸다. 오리온스는 4쿼터 중반 양경민(11점)과 이상준에게 연속 3점포를 두들겨 맞아 66-55까지 추격당했지만, 이후 4분여 동안 연속 11점을 몰아쳐 22점차로 벌리며 승부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동부는 설상가상으로 종료 2분여를 남기고 ‘대들보’ 김주성이 목부상으로 쓰러져 그늘을 드리웠다. 원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최·강·동·부’ 염원… 타오르는 원주 ‘대한민국 농구수도 원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05∼06시즌 KCC프로농구 개막전이 열린 21일 치악체육관에 걸려 있던 대형 플래카드에는 프로농구 최고 명문팀 동부를 지역에 품고 있다는 원주시민들의 자부심이 역력히 묻어났다. 늦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3400석의 치악체육관은 2시간 전에 일찌감치 매진됐고, 통로까지 가득 메운 3500여명의 관중들은 목이 찢어질 듯 “최강 동부”를 외쳐댔다. 지난시즌 평균관중 2671명을 훌쩍 뛰어넘는 뜨거운 열기. 김지우 동부 사무국장은 “3600명까지 입장이 가능하지만, 사고를 우려해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수백명의 농구팬들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린 것은 물론이다. 바깥의 스산한 날씨와는 달리 치악체육관의 수은주가 치솟은 것은 6개월여 동안 농구에 목말랐던 것도 있지만,TG삼보(동부의 전신)의 매각이 지연되면서 연고지팀의 경기를 볼 수 없다는 우려가 많았던 탓. 지지부진한 매각 탓에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사채까지 쓰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던 동부 프로미 선수들이 팬들의 염원대로 ‘최·강·동·부’로 거듭날지 궁금하다. 원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간 물가 동향] ‘조류독감 공포’ 불구 닭고기 보합세

    [주간 물가 동향] ‘조류독감 공포’ 불구 닭고기 보합세

    납김치 파동으로 배추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19일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 따르면 배추는 준고랭지 산 출하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출하량이 감소, 지난주 시세보다 80원 오른 3410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00원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대파도 안성 등 중부 일부지역의 출하가 끝나면서 시세는 1990원대로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무는 460원 내린 2120원선, 상추(100g)는 200원(25%) 내린 600원선에서 각각 거래되고 있다. 애호박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찌개류 소비가 늘어 가격이 지난주보다 290원 오른 1300원대. 당분간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사과(5㎏, 감홍)는 재고 물량을 소진한 터라 거래가 활기를 찾아 600원 오른 2만 500원에, 배(7.5㎏, 신고)는 소비가 줄어들어 400원 내린 2만 550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단감(100g)은 30원 내린 280원, 토마토(100g)는 40원 오른 300원, 포도(5㎏)는 1000원 오른 1만 9500원 등으로 소폭의 등락을 보였다. 조류독감 우려 등에도 닭고기를 비롯해 삼겹살, 한우 등 육류는 가격변동이 없었다. 돼지고기 삼겹살(100g)은 1730원, 목심(100g)은 1490원, 닭고기(851g)는 지난주와 같은 354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한우도 등심(100g) 6610원, 안심(100g) 6010원, 양지(100g) 4560원, 갈비(100g) 5760원 등으로 지난주와 같은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지난 60년은 그만두고 양류목운(楊柳木運)의 해에는 갑자기 군대가 소요를 일으켜 여(女)군주가 도망을 칠 것이다. 만일 동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하게 되리라. 나라의 태공은 푸른 바다에 외로운 그림자가 되어 신세가 처량해질 것이나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백성들은 달아나 숨기 바쁘니, 삼강오륜이 끊어지도다. 하늘 재앙 혹독해 벌레의 독을 무어라 형언하랴. 부자가 먼저 죽나니 후회해도 소용없도다.”(경주이선생 가장결) ‘정감록’의 일부로 돼 있는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이다. 정치적 격변을 알리는 끔찍한 예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 내용을 일일이 살피기에 앞서 우선 거기에 보이는 연도 표기방식이 특이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양류목운’이라고 했다.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임오년과 계미년의 운세를 말한 것이다.‘경주이선생’은 조선 후기에 정착된 편년체 예언이 분명한데, 특히나 음양오행설로 육십갑자를 푼 셈이다. ●한국의 운세를 나무에 빗대는 이유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운세는 나무 운세(木運)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그랬다. 다들 우리나라를 나무(木)로 상정했다. 그 기원은 지금부터 약 650년 전인 고려 공민왕 6년(135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음양오행에 달통해 사천소감 벼슬에 있던 우천흥이란 일관(日官)이 있었다. 그는 공민왕에게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도선국사가 지은 ‘옥룡기’(玉龍記)란 예언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 지세가 물(북쪽)은 뿌리요, 나무(남쪽)는 줄기가 됩니다.” 우천흥은 도선이 한 말이라며 자신의 견해에 권위를 부여하려 애쓴다. 과연 이 주장이 도선에게서 비롯됐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백두산을 뿌리로 삼아 지리산까지 줄기가 뻗친 한 그루의 나무로 이해된 사실만은 틀림없다. 역사 기록을 좀 더 살펴보면 그보다 200년쯤 앞서 고려 인종 때도 비슷한 인식이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알다시피 묘청은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는데, 그 역시 고려란 나라를 한 그루 나무로 보았다. 묘청이 서경에 새 궁궐터로 잡은 곳이 ‘대화세’(大華勢), 즉 큰 꽃봉오리 형상의 명당이었다. 그는 나라 전체를 커다란 나무로 인식했고, 그 중에서 지세가 강한 여러 명당을 꽃으로 간주했다. 대화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꽃 즉, 최고의 길지를 뜻했다. 한국이 음양오행으로 보면 나무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반도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는데, 나무가 바로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동국(東國)’ 또는 ‘진단(震檀)’이라 불렀다. 동쪽 나라를 뜻하는 ‘동국’이야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진단’의 진(震) 역시 팔괘의 하나로 동쪽을 가리킨다. 단(檀)은 우리나라의 시조가 단군이라서 덧붙여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라 하고 그래서 나무 운세로 보는 것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표현된 것이다. 지구가 둥근데 하필 우리나라를 동쪽으로 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약용이나 홍대용과 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마침내 지구가 둥글다든가 자전하는 줄을 알게 돼 중국적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인습의 뿌리는 정말 끈질기다.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역시 ‘고려사’에 실려 전한다. 한국 고대 풍수지리의 아버지라 할 도선국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정할 때의 전설이다. 그 때도 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과 함께 곡령 고갯 마루에 올라 지맥을 두루 살폈다. 위로 천문을 보고 아래로는 시수(時數)를 살핀 다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곳 지맥은 임방(壬方:북쪽)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물을 어머니(水母)로 삼은 나무(동쪽)가 줄기인데, 말머리 명당에 이르러 멈춰선 형세입니다. 공 역시 물의 운명이오니 마땅히 물의 대수(大數·물의 수는 1과 6으로 6이 대수다)에 따라 집을 지어야 합니다. 대수인 6에 6을 곱하면 36구가 되는데 이것이 천지의 대수에 부응합니다. 제 말대로 하시면 내년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아들(미래의 임금)을 낳게 될 것이오니 이름을 부디 왕건이라 하십시오.”(고려사 세계 7) 도선은 태조 왕건의 운세를 나무로 보고, 그 아버지는 나무를 살리는 물이라 여겼다. 마찬가지로 송악 명당이 있게 한 뿌리는 백두산인데 북쪽의 임방에 위치하므로, 오행으로 풀이해 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송악 명당을 낳은 금강산과 태백산 등 백두대간은 송악에서 바라보면 동쪽에 위치해 나무로 간주됐다. 따지고 보면 송악 역시 그 나무의 꽃 또는 열매에 해당해 근본적으로는 나무로 파악됐다. 도선의 머릿속에서 송악과 고려 태조 왕건은 나무로 동일시되었다. 나무인 왕건이 태어나서 자랄 집은 당연히 물이라야 하므로 대수 36구가 길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며, 송악에는 푸른 소나무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도선의 처방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의 운세는 늘 나무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壬午와 癸未가 楊柳木이 되는 이유 오행상생설로 보면 나무를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물(水), 죽이는 것은 불(火)이다. 따라서 나무인 한국에게 물의 해는 길하고 불의 해는 흉하다는 식의 운세 풀이가 나오게 된다. 흉한 해 즉, 불(火)로 정의되는 해는 말(午)의 해요, 그 뒤를 이은 양(未)의 해도 좋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런데 한국의 운세는 말과 양 등 십이간지(十二干支)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육십갑자를 구성하는 열 개의 천간(天干)이 또 있어서다. 나무에 해로운 불은 병정(丙丁) 둘이며, 이로운 물이 또 두 가지이다. 임(壬)과 계(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임과 계년이라면 나라 운세가 보통은 아주 좋다. 하지만 십이간지인 말과 양의 해가 나무와 상극인 관계로 임오년과 갑신년의 운세는 상생과 상극이 맞부딪쳐 어정쩡해진다. 비유하자면 어린 나무(柔木)다. 역술가들은 임오년과 계미년의 국운을 흔히 양류목(버드나무) 운세라 부른다.‘경주이선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버드나무 운세라는 말로 두 해의 운세풀이를 시작한다. 하고 많은 나무 가운데서 버드나무란 또 무엇일까? 옛 사람들은 버드나무라면 으레 생명력이 끈질기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명유(名儒) 하서 김인후는 귀양 가는 친구에게 뜰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기도 했는데, 버드나무가 정든 임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버드나무는 가늘고 긴 가지가 특별하다. 축 늘어진 모양은 마치 미인이 긴 머리를 풀어헤친 듯도 하려니와 하늘하늘한 여인의 허리를 연상케 한다. 낙락장송의 꼿꼿한 기개는 아닐지라도 유려함과 생명의 활기가 느껴지는 나무다. 버드나무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물이 올라 푸르름을 선사하기도 한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양류목’ 운세는 다소 불리한 가운데도 끝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을 가진다. 말과 양의 해라면 나무가 죽을 수이고, 특히 큰나무가 해를 많이 입을 운이다. 다행히 임과 계년이라서 다 죽지는 않는다. 산불 때 그렇듯 큰 나무는 힘없이 쓰러지되 작은 나무는 도리어 살아남을 운세다. ●임오군란과 양류목운 다시 맨 앞에서 인용한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을 상기해보자. 고종19년(1882) 임오년의 정세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참 많다. 첫째, 군대의 소요가 일어난다는 예언이 있는데 그 해에는 실제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당시 정국은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가 개화파와 대립하는 형세였다. 개화파는 사실상 국왕 고종과 명성황후가 손수 이끌다시피 했다. 왕이 개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개화파 관료가 점차 조정에 많이 임용되었다. 고종18년(1881)에는 신식군대인 별기군까지 창설되었는데, 소외감을 느낀 구식 군인들은 그것을 왜별기(倭別技)라 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절만 해도 구식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았다. 하지만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져 그들은 봉급이 13개월치나 밀리는 등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재정을 담당하는 선혜청 당상이자 병조판서였던 민겸호야말로 이런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 구식 군인들의 믿음이었다. 마침 그해 6월, 전라도에서 올라온 세미(稅米)가 서울에 도착하자 구식 군인들에게도 1개월분의 급료가 지불되었다. 그런데 선혜청 담당 관리들의 농간으로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이 지급되자 구식 군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평소 불신하던 민겸호의 집에 난입했고, 장차 민씨 일파의 보복이 있을까 염려한 나머지 반대파인 대원군에게 의지했다. 대원군은 몰래 심복을 보내 구식 군인들을 통솔했고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자신의 재집권을 꾀했다. 그 바람에 구식 군인들의 폭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군인들은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강화한 뒤 명성황후의 측근들과 개화파 주요 관리들의 집을 차례로 습격했다. 대원군의 밀명에 의해 그들은 친왕적이고 개화정책에 우호적이던 대신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부자가 먼저 목숨을 잃는다.”는 ‘경주이선생’의 예언처럼 부와 권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상해를 입었다. 개화파의 군사적 기반인 별기군 병영도 무사하지 못했다. 구식 군인들은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살해했고, 일본 대사관에도 침입해 13명의 일본인 목숨을 빼앗았다. 둘째, 예언서 ‘경주이선생’에는 여 군주가 도망친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실권을 행사하던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피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구식 군인들은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 궐내로 난입했다. 그들은 개화파의 우두머리라며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수구파의 우두머리인 대원군의 조종을 받은 것이었다. 목숨이 위급해진 왕후는 무예별감 홍재희의 도움을 얻어 충주 장호원에 있던 친척집으로 피신했다. 셋째, 국태공이 납치된다는 예언도 적중해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었다. 국왕인 고종은 임오군란으로 벌어진 정치적 난맥상을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단 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대원군은 왕의 의지에 상반된 조치를 연달아 취했다. 대원군은 그동안 실시돼온 개화정책을 거의 모두 파기했다. 별기군을 혁파하고 구식 군대인 5군영을 복구하였으며, 신식 정부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을 없애고 3군부를 설치했다. 대원군은 최대의 정적인 명성황후의 실종을 서둘러 사망으로 단정하고 국상을 치렀다. 개화파로서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자 개화파는 톈진(天津)에 주재하던 영선사 김윤식을 통해 청나라에 군사적 후원을 부탁했다. 청나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오장경(吳長慶)이 이끈 청나라 군대 4500명이 서울로 급파됐다. 그는 군대를 앞세워 한국의 내정에 직·간접으로 간섭하였고, 자신을 찾아온 대원군을 불법 체포해 톈진으로 압송했다. 한국 내에서 청나라의 입지를 강화시킬 방안에서였다. 이로써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하던 ‘호랑이’ 대원군은 권좌에서 영원히 축출되었다. 예언대로 되고 만 것이다. 이밖에도 ‘양류목운’의 예언은 적중했다.“손님이 주인행세를 할 것”이라 했는데 과연 오장경이 지휘하는 청나라 군대가 멋대로 주인행세를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임오년은 ‘경주이선생’이 말하듯 숱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라가 아주 망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충주로 피난한 명성황후도 무사했고, 불시에 청나라로 붙잡혀간 대원군도 다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갑신정변까지 ‘경주이선생’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경주이선생’에는 고종21년(1884)에 일어난 갑신정변도 정확히 예측돼 있다.“정중수운(井中水運)은 자미(북두성) 자리에 저녁 무지개가 뜬 형국이다. 그러다 다시 동쪽으로 달아나리라.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 죽음이 참혹하구나. 남북 군사들이 부딪쳐 화가 점차 심한 불길처럼 번져나갈 것이다.”자미성이라면 천자 또는 임금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 무지개가 뜨는 것은 무척 흉하다. 무지개는 하늘에 보이는 벌레로 해석되기 때문에 변란이 일어난다는 예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고 한 것도 불길하며, 변란의 주체가 동쪽으로 달아난다고 한 것도 심상치 않다. 더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남과 북의 세력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대립한다고도 했으므로 후환이 두렵다. 이 예언대로 한 해가 흘러갔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김옥균과 박영효를 비롯한 개화파 청년 인사들이 그 해 10월17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의 정변은 일단 성공했으나 지지기반이 미약했던 탓에 정권이 오래 가지 못했다. 겨우 사흘밖에 집권하지 못해 ‘삼일천하’란 다소 비웃는 듯한 표현까지 등장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위로부터의 근대적인 개혁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김옥균 등 정변의 주체세력은 그들 스스로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양반 출신이었지만, 오랜 사회적 악습으로 남아 있던 문벌 타파를 실천하고자 했다. 개화당 인사들은 능력 본위로 인재를 등용하자며 평등권을 부르짖었다. 아쉽게도 정변은 실패로 돌아갔고 후유증도 심각했다. 서울에 와 있던 청나라 장수 위안스카이의 무력 공세에 밀린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후일을 기약하며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은 일본과 청나라의 세력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불쌍한 처지에 놓인다. 청·일 양국은 그 이듬해인 1885년 4월 18일, 톈진조약을 체결해 장차 한국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두 나라가 동시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른다. 과연 갑신정변이 일어 난지 정확히 10년 뒤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청·일 두 나라는 톈진조약에 의거해 한국에 동시 출병했고, 마침내 한국을 독점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일본은 장차 한국을 병합할 기초를 다진다. 불행의 씨앗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맞는 ‘경주이선생’ 갑신정변을 분기점으로 잘 맞아 들어가던 ‘경주이선생’도 틀리기 시작해, 고종 23년(1886) 이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맞고 틀리고는 ‘경주이선생’이 저술된 시기와 직접 관계가 있다. 나는 이 예언서가 1884년 갑신정변이 끝나자마자 쓰였다고 본다. 이미 다 알고 쓴 것이라서 1880년대 초반의 일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1886년 이후를 무슨 수로 맞히겠는가? 맞는 예언서는 이미 예언서가 아니다. 그것은 술사를 비롯한 민중의 역사적 인식이 기록된 일종의 역사서일 뿐이다. 그 때 있었던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주된 관심사만을 한데 주워 담은 역사 말이다. 예언은 사실 미래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뜻밖에도 거기에 민중의 역사적 기억이 집적돼 있다.‘경주이선생’에는 특히 민중이 바라본 정치와 경제 이야기가 많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권력과 돈의 향방을 따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2집이 맛있대] 서울 전농동 ‘종로본가 찜갈비’

    [2집이 맛있대] 서울 전농동 ‘종로본가 찜갈비’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음식.’ 돼지를 이용한 모든 요리에 이런 헌사를 바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형편이 넉넉지 못한 서민에게나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나 영원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돼지만큼 친숙한 이름은 달리 없다. 돼지고기 음식 하면 우리는 흔히 삼겹살이나 돼지갈비구이, 돼지머리편육, 족발 등을 떠올린다. 전문으로 하는 곳이 적어서 그런지 돼지갈비찜은 늘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제대로 된 돼지갈비찜을 한번 먹어 보면 왜 우리가 굳이 비싼 소갈비찜을 먹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소갈비찜보다 더욱 부드럽고 깊은 맛을 지니고 있는 게 돼지갈비찜 아닌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종로본가찜갈비는 돼지갈비찜에 관한 한 ‘원조’인 셈이다. 이 곳의 주메뉴는 매운 고추장 찜갈비. 경북 의성에서 직접 담가 가져온 토종 고추장을 풀고 대파와 고추, 참기름 등 열 다섯가지 양념을 넣어 뭉근한 불에 끓여낸 갈비찜은 전체적으로 매콤달콤해 전혀 느끼하지 않다. 굵직한 가래떡 가락이 듬뿍 들어 있어 ‘갈비 떡볶기’를 먹는 색다른 경험도 제공한다. 갈비찜 재료는 모두 국내산 암퇘지만을 쓴다는 게 이 집의 자랑. 종로본가찜갈비 대표 김성제(45)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마장동 시장에 직접 가 신선한 갈비를 골라 사온다.“언제나 내 식구 먹는 것처럼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게 주인장 김씨의 영업철학. 그런 만큼 음식에 ‘거품’이 없고 정갈하다. 갈비찜을 다 먹은 다음에는 양념에 밥을 볶아 먹을 수 있다. 시원한 미역국 한 그릇이 갈비찜에 딸려 나와 얼얼한 혀끝을 달래준다. 갈비찜과 별도로 엄청 매운 화(火)냉면을 시켜 먹는 것도 별미. 화냉면에는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이 들어 있어 매운 맛을 좀 덜어준다. 녹차 성분이 들어간 쫄깃쫄깃한 면발이 입에 착착 감긴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2집이 맛있대] 경북 경산 ‘부일추어탕’

    [2집이 맛있대] 경북 경산 ‘부일추어탕’

    추어탕이 맛있는 계절이다. 수확의 계절인 요즘 살이 누렇게 오른 미꾸라지의 맛과 영양이 그만이다. 경북 경산역에서 걸어서 5분여 거리에 있는 ‘부일추어탕’에 가면 추어탕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이 집은 남도 추어탕과는 달리 운문댐에서 잡은 자연산 미꾸라지 외에 쏘가리와 꺽지, 메기, 떡붕어 등 민물 잡어 7∼8가지가 더 들어간다. 예부터 경산지역 민간에서 전해지는 전통방식이다. 여기다 조리방식이 독특해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주인 서분옥(60)씨는 자연산 미꾸라지 등을 사다가 산 채로 소금을 뿌려 아가미의 모래 등을 제거하고 껍질을 깨끗하게 한 뒤 통째로 가마솥에 넣어 1시간 이상 푹 끓인다. 푹 끓인 미꾸라지 등은 손으로 으깨서 고운 얼개미에 뼈를 받쳐낸다. 뼈를 믹서에 갈면 가루가 되어 제 맛이 안 나기 때문에 일일이 수작업을 고집한다. 뼈와 속살을 분리해 가마솥에서 2시간 정도 다시 한번 푹 삶는다. 여기에 대파와 고랭지 배추를 넣고 다시 함께 끓여 낸다. 다진 풋고추, 마늘, 산초를 곁들이면 맛이 진하면서도 담백한 추어탕이 된다. 반찬도 ‘촌맛’ 그대로이다. 전통 간장·된장과 국내산 참기름·고춧가루를 양념으로 한 콩잎, 시금치 무침 등 토속반찬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 배추나 상추 겉절이는 즉석에서 양념을 해 나온다. 아삭아삭한 맛이 추어탕과 찰떡궁합이다. 여기에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서글서글한 주인의 인상과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져 한번 찾은 사람이면 거의 단골이 된다. 주인 서씨는 “돈을 벌기보다는 전통 추어탕 맛을 지켜간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