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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회담 20회… 하루 135㎞ 출장/통계로 본 김 대통령의 1년

    ◎각종행사 참석 4,343차례… 105,255명 만나/조찬 등 456… 식사시간도 거의 국정 할애 김영삼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1년을 그야말로 일속에 묻혀 보냈다. 청와대가 문민정부 출범 1주년에 즈음하여 24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김대통령이 지난 한해 참석한 행사는 모두 4천3백43회.이들 행사에서 만난 각계인사 또한 10만5천2백55명에 이르렀다.하루평균 12차례의 행사를 갖고 2백88명을 만난 셈이다. 김대통령이 이들 행사에 들인 시간은 보고청취 9백97시간을 포함,2천39시간으로 하루 평균 5시간30분.행사별 횟수는 보고청취가 3천2백6회로 전체의 74%를 차지하고 있으며 각종 회의 80회,정상회담 20회,임명장수여등 의전행사 91회,현장방문 55회,회견 59회,조찬·오찬·만찬행사 4백65회,접견·다과등 2백53회등이다. 김대통령이 행사에서 만난 인사는 행정부소속 1만6천8백18명,농어민과 근로자 1만4천9백12명,경제인 9천5백57명,청와대인사 7천9백4명등이다.이어 언론인 4천8백59명,문화예술인 1천1백37명,외국인 2천8백12명으로 공직자를 제외하고는 농어민과 근로자 그리고 경제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김대통령이 지난해 11월의 미국방문을 포함,각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한 거리는 4만9천3백41㎞로 하루평균 1백35㎞ 꼴이었다.그 가운데 국내행사 참석을 위해서는 차량 4천8백6㎞,헬기 7천8백7㎞,전용기 7천7백40㎞,열차 2백60㎞등 모두 2만6백13㎞를 이동,「발로 뛰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줬다. 3천2백6회로 김대통령이 치른 행사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보고청취는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당과 공공기관인사들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고참석 인사는 1만9백3명에 이르고 있다.김대통령은 또 국무회의와 신경제추진회의를 비롯,80차례의 각종 회의를 주재하고 국정의 주요과제들을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지난 한해 행사 가운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각계인사와의 조찬·오찬·만찬.김대통령은 연인원 1만9천7백2명을 청와대로 초청,조찬 1백17회,오찬2백78회,만찬 70회를 가져 식사시간 대부분을 국정운영에 할애했다. 또 지난해 6월 취임 1백일 회견과 지난달 연두기자회견등 내외신합동회견 2차례와 함께 개별회견은 57회(내신 25회·외신 32회)를 가졌다. 이는 매주평균 1회이상으로 문민시대를 맞아 대통령과 언론의 접촉기회를 대폭 확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과거사 정리·북핵 중점논의/한·일정상/무역문제 등 관계증진 협의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는 6일 하오 경주에서 양국 새정부 출범후 첫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과거사 정리와 북한 핵문제등 두나라 공동관심사에 관해 집중 논의한다. 두 정상은 경주회담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새로 정립,이를 토대로 두나라간의 호혜적 관계증진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은 특히 러시아의 핵폐기물 동해투기와 관련,이 문제에 관한 양국간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하는 한편,한·미·일 3국간 공동대응체제 구축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그결과가 주목된다. 양국 정상은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마감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감안,쌀시장개방요구에 대한 입장조율도 할 것으로 보이며 두나라간 무역문제등 경제현안에 대해서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정상은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선언」 발표없이 공동기자회견으로 회담내용을 설명하며 두정상간 우의증진과 양국 공동관심사에 대한 실질논의에 초점을 맞추게된다. 두 정상은 단독·확대 정상회담외에 6일 저녁의 공식만찬,7일 아침의 양국 정상내외 조찬,7일 상오의 경주관광등 모두 7시간 정도 자리를 함께하게 된다.
  • 시민의식 실종과 쓰레기(사설)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린 5일의 잠실구장은 라이벌인 LG와 OB의 숙명적인 대결로 흥분의 도가니를 이루었다.두팀의 연고지가 모두 서울인데다 준플레이오프 전적도 1승1패여서 최종일인 이날 경기에 대한 야구팬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청명하고 드높은 가을하늘아래 펼쳐지는 백구의 향연은 또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인가.그러나 밤 9시가 지나서 끝난 야구장 관중석은 그야말로 거대한 쓰레기 집하장이었다.빈 깡통·도시락 용기·음식찌꺼기·종이컵·비닐봉지·담배꽁초 등 온갖 쓰레기가 통로마다 가득히 널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시민의식의 완전실종을 보여주는 삭막하고 눈살 찌푸려지는 현장이었다. 이날 입장객 3만1천여명이 버린 쓰레기는 50여t,8t 트럭 6대분이 넘는다.65명의 청소원들이 새벽5시까지 7시간동안이나 치워야 했다고 한다.이것이 우리 국민들의 시민의식인가.그리고 공중도덕에 관한 자화상인가 싶어 부끄러움이 앞선다. 잠실구장내에는 1백50개의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다.또 2년전에는 입장객에게 쓰레기 수거용 비닐봉지를나누어 준적도 있었으나 아무런 효과를 보지못해 지금은 폐지하고 있다는게 관리사무실측 설명이다.프로야구가 창설된지 올해로 12년째,그러나 경기장의 쓰레기 공해는 조금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지난 추석연휴때 고속도로변이나 국도변에 무작정 버려졌던 쓰레기더미를 보면서 우리는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탄식을 마지 않았다.김영삼대통령이 어제 제창한 쓰레기수거등 「국토대청결운동」도 사라진 시민의식의 복원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훌륭하게 치러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그 당시 국민들은 경기장에서 질서를 지키며 수준높은관전태도 로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크게 기여했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겠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서울올림픽에서 보여준 국민의 선진의식은 그뒤 불행하게도 우리 생활속에 침윤·계승되지 못한채 증발하고 말았다. 일본은 64년 도쿄올림픽을 치르고 난뒤 국민의 질서와 공중의식이 확연히 높아졌다고 한다.질서와 공중도덕이란 점에서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얻은 것을 허무하게 잃어버린 셈이다.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다 해서 응원도구나 심지어 소주병까지 그라운드에 내던지는 관전태도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관전에도 절도와 세련된 매너가 필요한 법이다.경기장의 넘치는 쓰레기­그것은 서울올림픽 정신의 재현으로 충분히 해결될것이다.
  • 구소련(세계의 우주로켓발사기지:2)

    ◎「우리별2호」계기로 살펴본 현장/바이코누르등 3곳… 철저히 “대외비”/바이코누르/최초 유주인 가가린 61년 등정한 곳/발사대 80개… 34년간 728기 하늘로/플레제스크기지·카프스틴야르발사장은 군사위성 전용 ○75년엔 미·소가 합작 구소련은 바이코누르우주기지를 비롯해 플레제크발사장,카푸스티야르발사장등 3개 우주행 출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구소련의 우주전진기지들은 외부에는 극비리로 붙여져 있다.일부 발사장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가명을 사용한 곳까지 있다.모든 우주출발 또한 비밀리에 이루어졌다.완강히 베일에 가린 구소련의 우주기지를 가본다. ▷바이코누르우주기지◁ 중앙사이아의 불모건조지인 카자흐공화국령으로서 미국의 케이프카내베랄과 맞먹는 구소련의 최대위성발사장이다.위치는 정확히 표시해 동경 63.3도,북위 45.6도다. 총면적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동부우주전진기지인 미사일센터(ESMC)의 약9배로 추정되고 있다.환산하자면 약3천6백㎦.이 자료는 인공위성이 포착한 사진자료를 추적한 계산이다. 바이코누르우주기지는 1955년 건설되었다.약80개의 발사대가 있는 이곳에서는 각종 미사일과 로켓 발사시험이 이뤄지고 있다.1989년2월 현재 인공위성용 로켓을 쏘아올린 횟수는 7백28회로 추정되고 있다. 바이코누르우주기지는 스푸트니크1호와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유인우주비행을 시도해 성공한 곳으로도 유명하다.한편 구소련의 모든 유인우주선은 이곳에서 출발하였다. 바이코누르우주기지가 가진 구소련 인공위성발사 역사 가운데 잊지 못할 기록이 있다.미국과 구소련이 우주의 평화적인 개척이라는 기상천외한 합동작전을 개시하기로 합의한바 있다.아폴로와 소유즈시험계획(ASTP)이라고 불리는 미·소공동우주사업이다.즉 미국의 아폴로 유인우주선과 구소련의 소유즈 유인우주선이 우주공간에서 데이트를 시도하는 것이다(전문용어로 표현하자면 도킹을 말한다). 이 계획은 계속되는 위성발사의 실패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미국의 위성과 로켓기술을 습득하기를 원하고 있던 구소련의 입장과 정치적인 현안및 구소련의 우주기술수준을확인해야만 했던 미국측의 꿍꿍이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1972년5월24일 미국의 닉슨대통령과 구소련의 코시긴서기장 사이에 양국 우주공동사업이 합의됐다. 이 공동선언에 따라 1975년7월15일 우주개발 역사상 유래없이 1만6천㎞ 떨어진 두 우주기지에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소유즈는 계획대로 A­2 로켓을 타고 바이코누르발사장을 출발했다.이때 우주행버스로 사용된 A­2로켓은 무게가 3백17t이고,소유즈에 실린 위성무게는 6.7t이었다.미국의 아폴로우주선은 발사예정시간보다 7시간30분 늦게 케이프카내베럴우주센터를 떠났다.아폴로는 소유즈보다 기동성이 더 우수하고 덩치 또한 큰편이었다.따라서 소유즈가 다소곳이 대기하고 있으면 아폴로가 다가가 도킹하는 데 필요한 궤도와 자세조정을 하는데 극적으로 성공했다.인류역사상 처음 있었던 이 환상적인 우주밀애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초대형사건이었다. 구소련의 자존심이 달린 바이코누르우주기지는 이 발사장의 위치를 혼돈시키기 위해 엉뚱한 도시의 이름을 붙인 동명이지의 곳이다.바이코누르우주기지는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섭씨 영하40도를 오르내리는 기후지대로서 극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삭막한 고장에 자리자고 있다.구소련 우주계획의 독특한 스타일을 엿보게 하는 상징적인 우주기지이기도 하다.그러나 이와 같이 극심한 기후조건에서도 발사에 지장이 없다는 점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전천후우주출구를 과시하고 있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미국측의 입장에서는 소련의 이 실력이 얼마나 부러운 일이지 모른다. 바이코누르우주기지 근처에 있는 레닌스크와 티우라탐시는 1950년대 중반이후 주로 우주발사장 직원과 그들의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레닌스크는 모스크바의 남동쪽 2천1백㎞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다.가혹한 겨울과 사막같은 여름날씨속에서도 정성으로 가꾸어진 이곳의 울창한 숲은 인간의 솜씨를 자랑한다.숙소가 있는 레닌스크로부터 발사체 생산공장까지는 자동차로 30∼40분 거리이며 발사장까지는 약2시간이 걸린다. 우주발사장은 동쪽끝에서 서쪽끝까지의 길이가 1백60㎞에 이른다.1969년 플레제스크발사장이 설립된 이래 바이코누르는 우주행 로켓기지로서 선두자리를 물러서게 되었다. ○극궤도위성이 주류 ▷플레제스크우주센터◁ 플레제스크라는 도시 근처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짙은 녹색의 숲이 우거진 이 도시는 모스크바에서 아르한겔스크로 가는 철로변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동경 40.1도,북위 62.8도. 총면적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1957년 A계열 로켓발사용으로 공사를 시작했는데 2년뒤인 1959년12월 완공되었다. 초창기에는 주로 대륙간탄도탄 발사계획이 실시됐다.1989년2월 현재 1천1백12기의 인공위성용 로켓을 우주로 출발시켜 세계의 모든 발사장에서 우주로 떠난 위성을 합친 숫자보다 더 많은 양을 차지한다.이 분야에서는 단연 1위를 기록하고 있다.지구촌에서 가장 바쁜 우주출발대다.인공위성 사진분석에 따르면 이 센터는 지대공미사일로 철저히 무장돼 있다. 플레제스크에서 발사된 인공위성은 극궤도군사위성이 주류를 차지한다.그래서 관계자들은 이곳을 「소련의 반덴버그공군기지」라고 부를 정도다.미국 반덴버그공군기지가 주로군사위성만을 발사한 데서 붙인 별명이다. 플레제스크발사장에서 발사되는 위성들의 궤도경사각은 62∼83도범위를 가지고 있다.발사방향은 동쪽. ○코스모스위성 발사 ▷카프스틴야르발사장◁ 모스크바의 남동쪽 볼가강변에 위치해 있다.동경 45.8도,북위 48.4도. 이 발사장은 구소련의 초창기 탄도미사일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건설되었다.첫번째 미사일발사는 1947년에 실시되었다.카프스틴야르는 1962년이후 코스모스발사체를 사용한 구소련의 군사위성 전용발사장으로 1년에 딱 한번씩 사용하고 있다.코스모스위성을 싣고 가는 우주화물운송수단은 B­1계열 로켓과 코스모스발사체가 담당한다.그러나 B­1로켓은 지금은 사용이 중단되었다. 구소련의 우주발사체 역시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제원과 성능이 발표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카프스틴야르기지에서 주로 사용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B­1계열 로켓은 샌들미사일에 연료기관을 추가한 것으로서 지하발사대에서 우주로 출발한다.총길이는 32m,지름은 1.65m이며 무게는 6백㎏이다.1989년2월 현재 82기의 인공위성용 로켓발사가 여기서 진행되었다. 이 발사장은 미국의 버지니아주에 있는 왈롭스발사장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발사방향은 구소련의 발사장들이 다 그렇듯이 이곳도 동쪽이다.여기 또한 거의 모든 시설과 발사등이 서방자유세계에는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 세르비아계의회,평화안 부결/서방,무력개입 가능성 고조

    ◎러 부총리,세르비아 방문/클린턴 오늘 중대발표 【팔레(보스니아)·워싱턴 외신 종합】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의회는 5일(이하 현지 시간) 보스니아를 10개 준자치 지역으로 분할하는 내용의 유엔 평화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회는 이와함께 평화안 수용 여부를 확정할 주민투표를 오는 15·16일 이틀간 실시키로 했다.세르비아계 의회는 무려 17시간여에 걸친 마라톤 심리를 끝으로 이날 평화안을 표결에 부쳐 참석 의원 65명중 단 2명이 찬성하고 51명이 반대해 이를 압도적으로 부결시켰다. 【워싱턴·파리 로이터 외신 종합 연합】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의회가 5일 유엔 평화안의 비준을 거부함에 따라 미국을 위시한 서방권의 무력 개입 가능성이 가일층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은 6일 이같은 사태 발전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무력제재가 불가피하게 됐음을 강력히 경고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세르비아계 의회의 이같은 결정에 『실망했다』는 반응과 함께 서방동맹국들에게 미국과 함께 보스니아내전 종식을 위해 「보다 강력한 수단」을 사용할 것을 촉구했다고 디 디 마이어 백악관 대변인이 이날 말했다.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하오(현지시간) 모종의 중대 성명을 발표할 것임을 아울러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브뤼셀에서 니엘 페터슨 덴마크 외무장관 등 EC 지도층과 회동한 후 기자들에게 세르비아 세력을 보다 강력히 응징할 필요가 있으며 이와 관련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이와 때를 같이해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부총리는 세르비아계 의회의 평화안 비준 거부로 또다시 악화된 보스니아 사태 수습을 위해 6일 베오그라드를 긴급 방문한다고 밝혔다.
  • “돈없는 후보” 자랑하는 분위기/보선채비 부산… 민자·민주 움직임

    ◎의원들 개편대회 대거 참석… 열기 후끈/민자/“우여곡절” 공천과정 등 당력소모 큰짐/민주 정국의 기류가 오는 23일 실시되는 부산의 동래갑·사하·경기 광명시등 3개 지역의 보궐선거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민자당은 3일 부산 동래갑과 경기 광명등 2개지역 지구당개편대회를 갖고 보선에서의 필승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사하지역은 박종웅전민정비서관이 후보로 확정된데 대한 대의원들의 반발로 대회가 연기됐다. 진통 끝에 2일 하오 3개지역후보를 내정한 민주당은 이번주초 지구당개편대회를 갖기로 하는등 본격화될 보선정국에 대비하고 있다. ▷민자당◁ ○…이날 하오 부산시 동래구 민방위교육장에서 열린 동래갑지구당개편대회는 8백여명의 대의원들이 참석,시종 열기가 넘치는 가운데 필승을 다짐,김영삼대통령의 「텃밭」임을 입증. 위원장이던 박관용대통령비서실장의 사퇴에 따라 치러진 이날 대회는 강경식 전재무부장관을 만장일치 박수로 신임위원장에 선출,본격적인 선거전에 대비한 조직정비작업을 일찌감치 완료. 대회에는 최형우사무총장을 비롯,문정수시지부위원장·신상우·김종하의원·권해옥제1사무부총장등 20여명의 동료의원들이 참석해 축하. 한편 지구당개편대회가 연기되는등 진통을 겪었던 사하의 조직분규는 최총장과 서석재 전의원·서전의원및 박종웅위원장내정자간의 연쇄접촉으로 「정리단계」에 돌입한 느낌. ○…이날 상오 11시 광명시 시민회관에서 열린 광명시 지구당 개편대회는 새로 위원장으로 선출된 손학규후보가 학자출신이어서 그런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속에 진행. 이날 행사에는 김종필최고대표위원을 비롯,김덕용정무장관,김종호정책위의장,정재철상무위원장 등 당직자 9명과 서울·경기지역 현직의원 26명을 포함해 당원 6백여명이 참석. 김대표최고위원은 격려사를 통해 『손후보는 강단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스스로 민주화투쟁의 현장에서 몸소 실천했던 새시대에 맞는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수준 높은 광명시민이 손후보를 국회로 보내는데 동참해달라』고 당부. 김대표최고위원은 『깨끗한 선거의 실현은 돈 안드는 선거에 달려 있다』면서 『손후보는 돈이 없어 다행』이라고 조크를 던져 웃음을 사기도. 이날 대회에서 손후보는 재적대의원 5백명가운데 참석한 4백93명의 만장일치로 지구당위원장에 선출. 대회장에는 한국정치학회장인 길승흠서울대교수가 비당원으로는 유일하게 단상에 나와 『훌륭한 후배교수일 뿐만아니라 민주화 투쟁의 맹장인 손후보는 개혁의 일꾼』이라며 지지를 호소해 눈길. ▷민주당◁ ○…보궐선거에 출마할 인물난으로 홍역을 치렀으나 2일 밤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산 사하 김정길전최고위원,동래갑 정인조위원장,광명 최정택위원장을 내정함으로써 격전을 위한 채비에 본격착수.한때 수락여부가 불투명했던 김전최고위원도 당명에 승복,이날 하오 부산 사하 출마를 결심. 김전최고는 3일 하오 마포당사에서 이기택대표와 만나 『그동안 고민을 많이 했으나 이제는 당명에 따라 당당하게 싸우겠다』고 필승의지를 다졌다. 이에 이대표도 『부산시민들의 민주양식을 믿고 김전최고를 내보냈으니 부산에서 민주당에 한자리는 만들어달라』고독려하는등 갑자기 고무된 분위기. 장을 맡기로 함으로써 홍역은 일단락되었다. 김전최고는 내정사실을 통보받고도 꼭 17시간동안 고민을 한 끝에 『이제 홀가분하게 시작할 것이다』는 출마의 변으로 민주당의 공천진통을 마무리. 그러나 문민정부의 개혁정책으로 주변상황이 여의치않은 데다 공천과정에서 많은 당력을 소모한 민주당이 벅찬 싸움을 피하긴 어려울 전망.
  • 노벨평화상 수상 7명 아웅산수지 구명운동

    ◎어제부터 5일간 태국서 석방시위/투투대주교·달라이 라마 등 참가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지난 89년부터 군부에 의해 연금돼있는 미얀마의 민주화지도자이자 91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의 석방을 위해 16일부터 닷새동안 일정으로 태국에서 평화시위에 나서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다른 수상자의 인권을 위해 한데 모이는 것은 이번이 역사상 처음이다. 이번 평화시위 참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대주교(84년 수상)를 비롯,메이리드 맥가이어,베티 윌리엄스(76년 공동수상·북아일랜드)로스 다니엘스(77년 수상·국제사면위원회대표),아돌프 페레스 에스키벨(80년 〃·아르헨티나),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87년 〃·코스타리카),달라이 라마(89년 〃·티베트)등 7명이나 된다. 이밖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90년 수상)과 인도의 테레사 수녀(79년 〃),과테말라의 원주민 인권운동가 멘추(92년 〃)등 3명의 수상자들도 참석은 못했지만 대신 자필편지를 보내 이들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행사를 하게 된것은 미얀마 군사독재정부에 항거하면서 4년째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수지여사를 측면지원하는 것은 물론 이 기회에 미얀마의 인권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데 뜻을 두고 있다. 이들은 이번 행사기간동안 태국의 미얀마접경지역인 매소트마을을 돌아보고 그곳에 머물고 있는 7만명의 난민들로부터 인권침해사례등도 조사해 오는 21일 제네바의 유엔 인권위원회에 그 결과를 보고할 계획이다. 그러나 태국정부는 캐나다의 국제인권민주발전센터가 주관하는 이번행사에 인도에 망명하고 있는 티베트의 세계적인 불교지도자 달라이 라마등에게 입국비자를 발급해 줬다가 중국과 미얀마당국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분위기때문에 16일 밤 방콕에 도착하는 달라이 라마는 27시간동안 방콕에 머문뒤 서둘러 인도로 가며 태국의 채널 5 TV「모닝쇼」에 출연하려던 일정도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개표종사원 최광재교사(인터뷰)

    ◎“착오 없도록 검표 또 검표… 공명일조 기뻐” 『국가에 봉사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주어진 개표업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울 강남갑 개표종사원이었던 최원재교사(37·숙명여중)는 19일 상오10시 철야개표작업을 끝내고 개표소안 영동고 체육관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최교사는 『18일 하오6시부터 줄곧 17시간 남짓 긴장속에 투표지에 눈을 떼지 않다보니 피곤하지만 나름대로 공명선거가 정착되는데 일조를 했다는 보람을 느꼈다』면서 『무엇보다 개표업무가 별다른 불상사없이 끝나 다행』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선거개표업무를 맡아 유·무효표를 가려낸 뒤 후보자별로 표를 분류하는 개함 점검부에서 일한 최교사는 『잇단 표분류 작업으로 눈이 침침하기도 했지만 나하나의 조그만 실수가 자칫 잘못하면 부정선거의 시비로 번지지 않을까해 신중한 자세로 개표업무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않아 개표업무를 맡은 모두가 오들오들 추위에 떨면서 업무를 보아야 했던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최교사는 일부 젊은이들이 투표도 하지않고 여행등 자기일에만 신경쓰는 것은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라면서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지역감정을 봄눈 녹이듯이 없애 밝은 한국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 “경륜우선”“세대교체” 치열한 유세전/민주 전당대회 첫날 이모저모

    ◎김·이 두대표 재추대 “일사천리” 진행/최고위원후보,장내외서 “한표호소”/농악놀이로 분위기 고조… 외교사절 28명 참관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정기전당대회가 이틀동안의 일정으로 25일 서울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개최됐다. 이날 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나선 김대중·이기택공동대표를 비롯,14명의 최고위원 후보들은 각각 합동연설회를 갖고 뜨거운 유설전을 벌였다.특히 최고위원 후보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대회장 주변의 전국 대의원 숙소를 돌며 「한표」를 호소했다. ○박수횟수도 똑같아 ○…이날 대회는 전국 대의원 2천4백26명 가운데 2천4백3명,참관인·내빈·취재진등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7시간여동안 진행. 대회장 안팎에는 대통령후보로 출마한 김대표의 「경제대통령·통일대통령」,이대표의 「세대교체·도덕정치」등 자신의 캐치프레이즈를 담은 플래카드를 비롯,14명 최고위원후보들의 현수막이 가득 메워져 치열한 경선분위기를 반영. 또 민자당의 김영삼대통령후보를 위시한 정주영국민당대표,박찬종신정당대표등대권주자들이 화환을 보내 대회를 축하했으며 라울 카살 파라과이대사를 비롯한 외교사절 28명이 참석해 눈길. 이날 대회는 무대 좌우에 멀티 대형스크린으로 진행과정이 방영돼 입체감을 보였으며 대회시작에 앞서 30여분동안 고적대·농악대 등이 흥겨운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조. ○30여분간 식전행사 ○…이날 대회는 김·이대표가 참석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상오 9시30분쯤 대회장에 입장한 것을 시작으로 당헌개정안통과,김·이대표에 대한 공동대표 재추대등 요식절차를 일사천리로 완료. 이어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대통령후보경선출마자 합동연설은 상오 10시50분쯤 추첨순서에 따라 김·이대표순으로 각각 30분씩 진행. 김대표는 환호속에 등단,자신이 후보가 돼야하는 8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하며 지지를 당부한 뒤 『나와 이대표는 하나가 되어야 하며 끝까지 공생공사할 것』이라며 신민·민주계 화합을 강조. ○공생공사 거듭강조 김대표는 또 경제대통령논과 관련,『실물경제만 아는 사람은 나무만 보는 사람』이라고 정국민당대표를 겨냥하고 『또 나무도 숲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며 자신이 경제를 살릴수 있는 적임자임을 부각. 이어 등단한 이대표는 『새시대·새정치를 열망하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섰다』며 『민주당의 과제인 지역당적인 한계와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할수 있는지 여부가 바로 대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며 지지를 당부. 이날 김·이대표의 연설도중 대의원들로부터 나온 박수는 공교롭게도 똑같이 12회씩. ○…하오2시 속개된 대회는 14명의 최고위원 후보들이 추첨순서에 따라 10분씩의 정견발표를 했는데 연설에 앞서 각 후보들이 대의원석을 돌며 선거운동을 할때는 후보 지지자들이 외치는 환호소리로 대회장 분위기는 대통령후보 정견발표 때보다 더욱 고조.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당내민주주의실현과 대선승리의 선봉장임을 자임하는 가운데 고참그룹들은 『윗분을 잘모시고 한길을 걸어왔다』(김령배), 『선친(정일형박사)때부터 정권교체노력을 기울여 왔다』(정대철),「화려한 야당 경력」(김상현·김원기후보),「능력」(조세형후보)등을 내세워 지지를 호소. 반면 재야출신인 이부영후보는 『20∼30대 젊은 층과 재야 민주세력의 교량역』을 내세웠고 장기욱후보는 『TK에 빌붙기 싫어 정치에 뛰어든 「후진정치중견인사」가 바로 나』라고 자처,대의원들로부터 웃음섞인 박수를 받기도. 특히 김정길후보는 『부산에서의 낙선우려에도 불구,지난해 야통에 앞장섰다』면서 『부산시민의 심판이 잘못됐다면 대의원여러분이 이번에 올바로 심판해달라』고 호소,기립박수까지 받았다. 연설회에선 『기호1번은 하늘의 뜻』 『다음을 준비하는 차세대 지도자가 되겠다』 『여성후보 단일화 압력에 부응치 못해 죄송하다』는 등 갖가지 구호와 말이 쏟아지기도. 민주계의 조순형 김현규후보가 『특정인당 지역당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은근히 신민계측을 겨냥한데 대해 박영록후보는 『통합야당에서 지분보장을 요구하는 비민주적 작태』라고 민주계를 비판하는등 신경전.여기에 『여성후보단일화를 못이뤄 죄송하다』(이우정),『왜 여성후보만 단일화해야 하는가』(박영숙후보)는 등 두 여성후보간의 신경전도 가세해 연설회의 흥미가 한층 고조. ○한밤까지 막후접촉 ○…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들의 합동연설도중 이석용 비서실장을 무대뒤로 불러 신민·민주계 최고위원 4대4 지분유지를 위한 최후협상을 지시. 이에따라 이실장은 한광옥의원,조승형비서실장등 김대표측근들과 밤늦게까지 접촉을 갖고 선신민계 4명,후민주계 4명을 선출하는 시차제투표방안을 집중협의.
  • 대선후보·최고위원/분리선출 요구/민주지구당위장 96명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를 비롯한 민주계 지구당위원장 96명은 20일 하오 시내 Y음식점에서 긴급모임을 갖고 오는 25,26일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와 최고위원은 각각 분리선출되어야한다는 등 5개항을 결의하고 이같은 요구들이 오는 22일 낮12시까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전당대회 불참 등의 중대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들은 또 7시간여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전당대회이후 대통령후보와 당권을 분리하는 작업을 본격 전개키로 하고 대통령후보와 최고위원분리선출 주장에 대해 신민계측이 기무사공작이라고 주장한 것의 사실규명및 관계자처벌을 촉구했다.
  • 「무자헤딘 평의회」 구성 합의/아프간반군,평화적 정권인수 논의

    ◎군·정치인 1명씩 참여… 유엔도 지지/강경 회교원리주의단체선 부인/하티프,대통령서리에 【카불·이슬라마바드 AP AFP 연합】 축출된 나지불라 대통령의 뒤를 이어 19일 비공산계 출신 압둘 라힘 하티프 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대행에 임명된 가운데 반군들간에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위한「무자헤딘 평의회」를 구성하기로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파키스탄 외무부의 한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각 정파의 지도자들과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18일밤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7시간에 걸쳐 회담을 갖고 군사령관 1명과 정치인 1명을 새로 구성될 평의회의 대표로 임명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전하고 이같은 구상은 유엔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변인은 아프간의 권력을 평화적으로 이양하기 위한 유엔 평화안에 『일부 변화가 있었다』고 전하고 현재 카불에 있는 베논 세반 유엔 특사가 권력이양과정에서의 중개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굴부딘 헤크마티아르가 이끄는 강경파 회교원리주의 단체인헤즈비 이슬라미의 한 대변인은 이번 회담에서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아메드 샤 마수드는 기자들에게 자신은 반군들과 정부군,민병대 지도자들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 민자 대권후보레이스… 부산한 가닥잡기

    ◎「TJ거취」가 경선판도의 분기점/「YS추대위」 구성,관망파흡수 본격화/김대표계/“사분오열땐 공멸” 막바지 단일화 모색/7인 모임/“후보난입은 막아야”… JP,본격 중재 선언 민자당 차기대통령후보경선구도확정을 앞두고 여권수뇌부간 주말·주초 연쇄회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주 중반까지는 경선 참여인사의 윤곽이 드러나리란 예상속에 후보난립을 막기위한 중재역을 자청하고 나선 김종필최고위원의 움직임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공정한 경쟁 이뤄져야”/특정인 지지표명 안해 ○…노태우대통령은 일요일인 12일 남성대골프장에서 김영삼대표,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및 당3역등 민자당 수뇌부와 이원경 대통령후보선거관리위원장,청와대참모들과 7시간동안 골프회동을 갖고 후보경선을 둘러싸고 일부 갈등상을 보이는 여권내 단합을 도모. 노대통령은 이날 자유경선원칙을 재확인하면서 공정한 경쟁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정인에 대한 지지의사표명은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 이날 골프회동은 상오 10시에 시작,하오3시께 끝났으며 간단한 음료를 함께 한 뒤 5시께 해산. 손주환청와대정무수석은 『이날 골프모임은 지난번 총선에서 고생한 3최고위원과 당직자들을 위로,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참석자들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고 분위기도 좋았다』고 소개. 노대통령은 식사를 끝내며 전당대회와 관련,『당이 분열되지 않고 단합된 모습으로 순리대로 전당대회가 치러져야 할 것이며 당도 개인도 상처를 입지않고 정책대결의 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 노대통령의 이같은 당부에 대해 김종필최고위원이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총재께서는 심려하지 말라』고 말했으며 김대표와 박최고위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를 표시했다고 손수석은 설명. 손수석은 박최고위원의 경선출마여부문제가 거론됐느냐는 질문에 『자유경선원칙이 서 있는데 왜 쓸데없는 말이 나도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하고 『모든 것은 당에서 협상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부연. 그러나 이날 모임에서 3최고위원은 노대통령과 장시간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나름대로 대통령의 의중을 탐색했을 것이라는 관측. 노대통령은 골프회동에 이어 13일에는 박준규국회의장,김재순·유학성·김정례 당고문,전국구당선자인 노재봉·권익현·이만섭씨등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치,원만한 경선및 경선후유증 최소화방안에 대한 자문을 구할 예정. ○…김대표진영은 휴일 골프회동을 통해 후보사전조정의 큰 줄기가 잡혔다고 기대하면서 이번주부터 민주계및 민정계내 김대표계가 본격활동에 나서 전당대회 표몰이를 위한 관망파 흡수작전을 벌일 계획. 김대표측은 이에따라 이번주중 범계파적 대규모 모임을 통해 김대표후보 추대위를 구성할 방침. ○“7인모임 결론 못낼것”/민주계 대세몰이 돌입 김대표측은 12일의 노대통령주재 골프 모임이 성공적이란 판단아래 앞으로의 행보는 자유경선과 결과승복원칙에 따라 대의원확보책에 중점을 둔다는 것.민주계는 김대표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후보사전조정에 반대하며 완전경선의 실현을 주장하고 나서자 이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대세는우리것』『후보선출의 큰 흐름이 이미 잡혔다』며 「순이」를 자신. 김대표의 한 측근은 『민정계내에서 당의 화합을 위한 사전후보조정에 대해 반발을 보이고 있지만 민정계의 구도자체가 후보단일화를 이루어낼수 없는 상황인만큼 13일로 예정된 7인중진모임도 가시적 결론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 그는 또 『노대통령이 결심을 늦추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한 만큼 일요골프회동을 시발로 대통령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순차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 이에따라 김대표측은 주초부터 김윤환전총장을 중심으로 김대표지지그룹의 움직임을 본격화,관망파를 최대한 흡수하는 한편 「범계파적 김대표후보추대위」도 주내에 구성한다는 계획. 김대표측은 이와함께 앞으로 본격화될 JP의 중재역할에 큰 기대를 걸면서 박태준최고위원의 「용단」을 위해 「외곽공세」도 병행할 방침. ○민정계 휴일 연쇄접촉/「사전조정」 대응책 모색 ○…김대표에 반대하는 민정계 인사들은 휴일인 12일에도 연쇄접촉을 갖고 김대표측의 후보사전조정움직임에 대한 대응책을논의. 특히 이종찬의원은 이날 상오 박태준최고위원의 북아현동자택을 방문,김대표측이 박최고위원의 불출마를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공동대처하는 방안을 숙의. 이의원은 박최고위원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정도를 걸어달라』고 건의했다는 후문 박최고위원측은 김대표측의 외압에 기분이 상한듯 『민주계측이 그렇게 나오면 오히려 박최고위원의 출마의지가 강해질수도 있다』고 분개. 박최고위원비서실장인 최재욱의원은 『박최고위원이 민정계 의원들로부터 출마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속에 만약 자신이 출마치 않을 경우 「제한경선」이라는 여론의 비난이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13일 7인 중진모임에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 이와 관련,박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이종찬의원이 끝내 출마뜻을 굽히지 않을 경우 7인멤버중 박최고위원과 이의원을 제외한 5명을 중심으로 민정계 다수의 추대를 받아 민정계 공식후보로 출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 박최고위원은 지난 11일 저녁에는 박철언의원과 단독회동했는데 박의원은 『더이상 시간이 없으니 민정계후보 단일화문제등을 빨리 결론내자』는 입장을 보였다는것. 민정계 중진들 사이에는 박의원과 같은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으며 한 중진은 『김대표측이 다시 대세론으로 몰아붙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정계가 사분오렬모습만을 보이고 있어선 안된다』며 ,『후보단일화가 되면 좋고 안되더라도 각자 분명한 입장을 밝힐 시기가 됐다』고 강조. 이에따라 13일 하오로 예정된 6차 7인중진협의체모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이날 모임을 기점으로 박최고위원,이종찬·이한동의원등의 거취표명이 잇따를 전망. 한편 이종찬의원은 이날 공화계 핵심인사와 접촉,김최고위원의 진의를 탐색했으며 박철언의원관도 회동. ○김·박최고위원 회동설/「사전조정」 논의 가능성 ○…거중조정역을 자임하고 나선 김종필최고위원은 이날 골프회동이 끝난뒤 밤 10시25분쯤 귀가,박최고위원과 상당시간 단독심야회동한 것으로 관측됐으나 청구동자택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개인적 볼일을 봤다』고 연막. 김최고위원은 박최고위원과 후보조정문제를 논의했느냐는 물음에 『모르겠다』로 일관했으며 김대표 지지를 결정했느냐는 질문에도 『그런 얘기 들었다.그러나 마음대로 전제해상정하지 말아달라』고 당부. 이와함께 이날 골프회동시 김·박최고위원 두사람이 이동카트를 함께 타고 다닌 점등을 감안할 때 장시간 단독대화가 있었으리란 추측.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편강열의사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의성단 조직,만주벌 항일무장투쟁/장춘 일 영사관 습격,7명이 일경 60명 사살/하얼빈역 광장서 포위된채 치열한 총격전/중과부적으로 피체… 옥중고문 후유증으로 37세에 순국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애사 편강열의사가 선정됐다.황해도 연백에서 출생,2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은 편강열열사는 만주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의성단을 조직,장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등 항일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 일제의 고문으로 얻은 척수염으로 29년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편의사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일제하인 1924년8월 만주 하얼빈역 광장에서 완전무장한 일본경찰들이 무장항일독립운동가 편강렬의사를 체포하기 위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만주일대에서 3백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던 편의사는 군자금과 무기를 조달한뒤 길림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왔다가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의 포위망에 들게 되었다. 편의사는 길가 상점에 뛰어들어 장시간 총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왜경에 체포됐다. ○만철병원도 습격 편의사는 1924년 대원 5명을 데리고 봉천의 만철병원을 습격한뒤 같은해 대원 6명과 함께 장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7시간에 걸친 격전끝에 적 60여명을 사살해 일본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일경에 체포된 편의사는 25년 평양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중 고문으로 인해 생긴 지병으로 29년1월16일 안동현 적십자병원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편의사는 병상에서 『내가 죽거든 유골을 내가 활동하던 만주땅에 묻고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겼다. 편의사는 1892년 2월2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씨의 4남중 3남으로 태어났다. 편의사는 어려서부터 애국심과 충의심이 깊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의분에 떨어 1주일간 항의 금식했다. 1907년 전국 각지에서 일본에 복수를 주장하며 의병이 봉기하자 경상·충청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대장 이강년대장을 방문,이대장 휘하에 들어가 소집장 및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의병을 인솔하고 경기도 양주에서 3일간 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은 편의사는 190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편의사는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항일운동에 정진하다 1911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5년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뒤에는 의병동지들과 무장결사대 광복회를 조직,친일파·민족반역자·일본경찰을 처단하는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일대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동생 덕렬씨를 상해임시정부에 파견,국내조직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그해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최명식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한뒤 항일무장투쟁을 할 거점을 마련키위해 군사준비단을 조직하자 편의사는 황해도 대표로 활동했다. ○밀고자 즉결처분 1919년 9월 다시 일본경찰에 체포된 편의사는 징역1년을 선고받고 21년에 출옥했다. 23년1월 편의사는 동지 김경배·김태규·조종호등과 함께 중국의 독립운동상황을 살피기위해 북경으로 가 상해·만주등지를 전전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편의사의 눈에는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논쟁만 일삼던 임시정부의 무력함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23년 10월 만주로 돌아와 강진지·양기탁·남정동지들과 무장항일투쟁비밀결사인 의성단을 조직,단장에 피선됐다. 의성단의 활동무대는 길림성과 장춘일대의 넓은 평야지역이었다. 편의사는 이 지역에 이주한 동포들에게 『조선인단체를 조직해 이민족에게 억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민족적 공감대를 넓혀갔다. 재만동포들의 물적 인적지원을 받은 편의사는 2백50명의 의성단원을 무장시켜 장춘·봉천일대의 일본인 병원·영사관·우체국·경찰서·철도·군수기지를 습격,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은 경찰력과 헌병·밀정등을 총동원해 편의사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신출귀몰하는 그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사는 의성단활동을 하는 한편 만주지방의 각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전만통일의회를 조직했다. 편의사는 만주지역의 비밀항일무장단체들을 통합해서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만드는 공작을 하던중 24년8월 하얼빈역에서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포위됐다. 당시 이범석장군은 비분함을 참을 수 없어 밀고자 김을 즉결처분했다. 편의사가 체포되자 의성단활동은 위축되고 2∼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원들도 뿔뿔이 헤어져 소멸됐다. 옥고를 치르는동안 편의사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으로 척수염을 얻어 불구의 몸이 됐다. ○왜놈치료는 싫다 혼자 일어설 수도,앉을 수도 없는 지경이된 편의사는 병보석을 얻어 28년 선천의 미동병원에 입원했으나 별효과가 없었다. 친지와 가족들이 의료시설이 구비된 일본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으나 『죽어도 왜놈에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28년9월 동생이 있는 만주의 안동으로 옮겼으나 4개월만인 1929년1월16일 순국했다. 편의사의 묘소는 중국 요령성 단동시 원보구 인충가 진강산 장군봉 뒤편에 있었으나매장후 6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지역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비석은 커녕 묘소의 흔적조차 남지않게 됐다. 지난해 가을 국가보훈처와 편강렬의사 탄신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편의사유해봉환반」을 구성,현지답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편의사는 후사가 없어 동생 덕렬씨의 2남인 충무씨를 양자로 입양했으나 충무씨도 지난 80년대초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에서는 62년 편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마지막 의병장” 불굴의 절개 빛나/17세때 13도창의군의 서울탈환대작전 참가 편강렬의사에게는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편의사의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고 역사적 평가도 높지 못한 실정이다. 구한말의 의병전쟁에서 20연대 중반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큰 운동에 참가해 청춘을 불살라버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이때문에 편의사는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고 무덤마저 정확한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편의사는 중국단동 공동묘지 어디인가에서 압록강과 강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며 조국통일을 애타게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편의사가 13도 창의군의 서울대탈환 작전에 참가한 것은 17세때이다.여기서 그는 부상을 입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독립운동가로 치부될 수 있다.그러나 이 부상은 37세로 순국할때까지 20여년간의 항일투쟁의 시작일 뿐이었다.1910년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던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으로 연루되어 최초의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은 나머지 그의 투쟁사와 기묘한 일치를 보여준다. 「양양한 압록강물은 흘러서 어드메로 가는가」라는 그의 옥중시에서 보듯 편의사의 일생은 압록강과 숙명의 관계를 맺고있다. 3·1운동후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압록강을 건넜을 뿐아니라 세번째 마지막 옥고를 치를때도 압록강을 건느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한국인의 성품 가운데 끈기를 제일로 드는 이가 많다. 편의사야말로 독립운동 하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끈기의 대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는 것은 불요불굴의 절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7년 징역형이 내려졌을때 파안대소했는데 이는 그가 의병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의병정신이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의사는 한국의 마지막 의병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편의사의 탄신 1백주년이기도한 2월을 맞아 새삼 조국통일로서 망국한을 달래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 중동회의 2차회담/시리아,참가 시사

    【카이로 연합】 시리아는 형식절차를 밟지 않고 직접 본론으로 들어간다는 조건으로 다음달 4일로 예정된 중동평화회담의 제2단계인 쌍무협상에 참가할 용의를 표명했다. 이집트관영 알 아흐람지는 26일 시리아가 쌍무협상 참가의사를 표시하면서 협상개막및 종료장소를 워싱턴으로 고정시킬 것과 절차문제로 협상을 지연시키지 말고 직접 필수문제로 들어가 신속히 마무리짓도록 해야 한다는 두가지 조건을 달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대통령이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과 회담한 자리에서 그같이 밝혔다고 전했다. 두 나라 대통령은 25일 7시간여에 걸쳐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워싱턴 쌍무협상 준비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8·끝

    ◎“철군 반대” 인터뷰로 워싱턴 “발칵”/이틀뒤 배시사령관,“본국 소환” 통보/카터,경위 설명 불구 끝내 해직 명령/“한국내 전술핵 제거땐 위험” 하원 군사소위 증언서 강조 배시사령관의 민간인 특별고문인 짐 하우스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그해(77년) 5월18일 수요일 이었다.그는 1946년이래 한미 양국군의 고문역으로 서울에서 근무해온 베테랑 한국통이었다.그가 주한미군 철군관계를 취재하러온 워싱턴포스트 도쿄특파원 존 사르와 함께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르는 도쿄의 한국 망명 좌익인사들과 친하며 스나이더대사가 그에게는 어떠한 브리핑도 하지말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들은바 있어 그를 만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그러나 하우스만은 유엔사령부가 이미 존 번부사령관의 인터뷰를 허가했으며 나에게는 2사단의 역할에 관한 간단한 질문 몇가지만을 하게될 것이라며 만날 것을 간청했다. ○한국군 장성 견해 어필 결국 「20분간만」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그는 좀 야위었지만 저돌적으로 보이는 30대의 젊은이였다.몇가지 질문을 받는동안 그가 군사문제에는 별지식이 없음을 알게 됐다.마지막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찬반견해를 물었다.『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김일성이 전쟁도발의 충동을 받게될 것이라는 한국군 장성들의 견해를 순수한 군사적 견지에서 동의한다』면서『그러나 일단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우리는 최대한 열심히 수행해나갈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다음날인 19일 밤10시쯤 배시사령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조지 브라운합참의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워싱턴포스트지 1면에 실린 존 사르의 기사 때문에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르에게 크게 문제될만한 얘기는 하지 않았고 또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얘기했기 때문에 문제된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커터 게획 도전” 보도 자정이 막 지나서 배시사령관으로부터 또한차례 전화가 왔다.가능한한 빠른 비행기편으로 워싱턴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경위설명을 하라는 본국 정부의 소환령을 전했다.한국전쟁때 맥아더사령관이 트루만대통령에 의해 소환된 이래 대통령이 해외주둔 장성을 소환한 일은 두번째였다. 문제의 워싱턴포스트지 복사본을 구한 것은 다음날 새벽 6시였다.「위험한 결정­주한미군장성들,카터 철군계획 신랄한 비판」이라는 제목의 1면박스로 내가 카터대통령의 미군철군계획을 「실책」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돼 있었다.또 철군이 전쟁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한국군장성들의 견해가 내 견해로 나타나 있었으며 『많은 군관계자들이 카터의 철군 구상에 도전하고 있다』는 인용도 있었다.더욱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대통령 발표 정책에 대해 일선 장군들이 공공연히 이견을 나타내는 이례적인 현상들이 정책수행 직전에 나타나고 있다』는 인용구였다. 다음날 도쿄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우연히 가족들과 함께 탄 짐 하우스만을 만났다.딸인듯한 젊은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던 그가 내옆에 와서 앉자 그 여자도 함께와 뒷자리에 앉았다.우리는 사르의 보도내용들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얼마후 그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을때 그녀가 옆에 앉아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몇가지 질문에 답하다보니 그녀는 하우스만의 딸이 아니었다.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그녀는 어깨에서 테이프 리코더가 든 백을 내려놓으며 『멜린다 닉스,CBS기자에요』라고 답했다.나중에 온 하우스만은 그녀가 사르의 부인이라고 보충설명을 해줬다. 그녀는 「특종」을 하기 위해 도쿄에서 내렸고 나는 극성스러운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피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 안에서는 내내 브라운 합참의장에게 제출할 경위서를 작성했다.워싱턴에 도착해서 안 일이지만 이 철군계획은 이미 지난 5월5일께 최종결정됐으며 유엔사에는 이에앞서 4월말 버나드 로저스육참총장이 방한했을때 이미 통보한 것으로 돼있었다. 해럴드 브라운국방장관과 카터대통령을 만난 것은 5월21일 대통령집무실에서 였다.카터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들어왔다.『싱글로브장군,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익숙해 있소.8년동안의 해군생활에서도 그랬고 조지아주지사를 맡으면서도 그랬소』 대통령은 또 철군에 대해 합참의장과 국방장관도 동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내가 듣기로는 합참은 철군의 3개방안을 분석하라는 지시만 받았지 철군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지시받은 것은 아니었다.합참은 결국 가장 지연된 방안을 건의하면서 그것이 미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브라운장관이 그 대목을 삭제했었다.나는 장관을 쳐다봤다.그는 창밖의 로즈 가든을 내다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또 『장군의 직속상관인 배시대장의 우려도 결정전에 충분히 참고를 했소』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최종결정을 내리기전 배시와 상의하겠다고한 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이어서 그는 『당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않아 국방장관에게 해직을 명령했소』라고 말했다. 나는 존 사르기자와 인터뷰한 경위를 설명했다.철군계획이 확정된 사실을 모르고 그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으나 일단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는 최선을 다해 그를 수행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한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해직 결정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그러나 대통령은 단호히 거절했다.누군가가 대통령이 나를 군법회의에 회부시키든가 아니면 강등시키려했다고 한말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싱글로브소장 참모장직 해임」이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장관의 말을 인용,1면 톱으로 보도했다. 25일에는 하원군사소위원회에서 증언이 있었다.방청석은 초만원이었다.나는 질의에 앞선 진술에서 ▲결코 민간의 군통치원칙을 무시하지 않았다 ▲헌법을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신문을 이용 군통수권자에게 도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점등을 강조했다.여러가지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미 지상군과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이다.만일 우리가 이들 지상의 수단들을 제거해버린다면 우리의 억지력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은 오전 오후 7시간동안 진행됐고 마지막에 스트래튼위원장은 북한군의 군사적 우위와 명백한 침략의도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카터대통령의 고집스런 주한미군철수결정은 의회의 반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미 지원사령부로영전 다음날 워싱턴포스트는 역시 1면 머리기사로 「카터의 대한정책 정면 비난」이라고 스트래튼위원장의 말을 인용,보도했다.백악관은 즉시 반격에 나서 브라운국방은 내셔날 프레스클럽에서 로저스육참총장이 이미 나에게 결정사실을 통보했었으며 주한미군 지휘관들도 철군에 동의했다는등 변명을 늘어놓았다.그러나 나에게는 주한미군정책에 관하여 일체 함구령이 떨어져 있었다. 27일 로저스총장이 새보직을 통보했다.조지아주 맥퍼슨에 있는 미육군지원사령부 참모장이었다.참모부인원만도 2천여명에 달하는 미육군의 12개사령부중 가장 큰부대로의 영전이었다. 결국 카터대통령은 철군정책과 관련 대외적인 대통령의 권위를 확인했고 나의 영전조치로 군내부의 불만을 무마한 셈이었다. 다음해 4월27일 나는 조지아공대 ROTC생도들을 대상으로한 연설에서 카터대통령의 중성자탄 생산연기및 파나마운하정책에 대해 내견해를 밝혔다.소련의 상응조치를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의 중성자탄 생산의 일방중단은 군사적으로 어리석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파나마운하의 관할권 이양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이같은 견해가 또 AP통신을 타고 보도됐다. 다음날 나는 국방성으로 소환됐을때 알렉산더 육군장관과 로저스 육참총장에게 사의를 밝혔다.35년간의 군생활이 이렇게 마감됐다.마침내 위험한 임무는 끝난 것이다.
  • 미 국방 정보국이 분석한 「3일정변」

    ◎“쿠데타 D데이는 원래 20일이었다”/고르비가 눈치채자 하루 앞당겨 단행/군부 이견 극심… 옐친 체포·거점장악 지연/야조프등 일부는 작전스케줄 몰라 소련강경파들의 쿠데타는 사전에 치밀한 준비없이 다급하게 진행된데다 정보가 미리 새나가 예정시간을 하루 앞당겨 진행케 됨에 따라 주동자들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 실패했다고 미국방정보국(DIA)은 분석하고 있다. 미외교정책위원회의 피터 슈바이저연구위원은 22일 뉴욕타임스에의 기고문에서 소련 쿠데타의 실패원인을 두명의 DIA 고위소식통을 인용,이같이 밝혔다. DIA의 분석에 따르면 이 쿠데타는 적어도 초기단계에서는 성공이 틀림없었다는 것이다.소련 내무부와 KGB·군부등 쿠데타 주동세력들은 원래 하루 늦은 20일로 거사일을 계획했으며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시간계획을 변경하도록 강요당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났으리라는 것이다. 슈바이저는 이들의 거사과정에서 있었던 의문점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왜 군인들이 19일 고르바초프 구금후 4시간이 지나도록까지모스크바로 향하지 않았는가.왜 쿠데타세력에 심각한 위협이된 옐친을 체포하지 않았는가.왜 모스크바 주요지역에 쿠데타세력에 충성하는 부대 대신에 옐친에게 동정심을 가진 지휘관들의 부대가 동원됐는가.왜 쿠데타지도부가 그렇게 빠르게 와해됐는가. DIA의 분석은 고르바초프가 아마도 크리미아에 있는 동안 쿠데타를 경고받았으며 그 사태를 막기위해 원래 역사적인 신연방조약을 체결키로한 20일까지는 크렘린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던 그가 19일 갑자기 모스크바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부득이 거사날이 하루 당겨지게 됐다는 것이다. 쿠데타 공모자들은 이때문에 서둘러 거사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옐친 추종자들에 의해 지휘되는 것으로 알려진 모스크바 인근 주둔부대들을 러시아공화국 건물을 경비케하는등 주요작전에 투입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것이다. 이사실은 또 고르바초프의 구금과 모스크바에서의 첫군사작전 사이에 왜 4시간의 갭이 있었는가에 대한 설명도 될것이다.내무부와 KGB에 소속된 충성스러운 정예부대들이 출동하는데는그로부터도 10시간이 더 걸렸다. 주동자들의 결속은 쿠데타가 계획보다 빨리 시작되면서 와해되기 시작했다.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을 비롯한 다른 군지휘관들은 아마 이미 작전이 개시된 후까지도 앞당겨진 시간계획을 알지 못했던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야조프 국방장관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쿠데타가 시작된것을 알고는 몹시 화를 냈는데 이는 그가 국가비상사태위의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축출을 발표한 20일의 기자회견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과 이어서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비상위 위원직을 사퇴했다는 발표에 대한 설명이 될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거사계획을 미리 귀띔해준 사람이 바로 주동 핵심인 야조프장관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모스크바로 돌아가려고 시도하기 불과 몇시간 전에 크리미아에서 두사람이 만났다는 것이다. 또 주동자들의 군사작전이 제멋대로 진행됐다는 사실도 지적되고 있다.군대들은 고르바초프 구금 이후 7시간이 지나도록까지 러시아공화국의사당 주변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여 옐친이 자유롭게 지지자들을 규합하고 용기를 불어넣을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더욱이 옐친의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파견된 군부대 가운데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지휘되는 부대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쿠데타 주동자들이 얼마나 치밀하지 못했는가를 알수 있다.막상 옐친을 구금할수 있는 군대들은 10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고 그들이 도착했을때는 이미 의사당빌딩이 수천명의 옐친 지지시민들에 둘러싸여 손을 쓸수가 없었다. 얼마전부터 쿠데타가 임박했다는 경고가 과거 고르바초프의 오른팔이었던 전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와 전보좌관 야코블레프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KGB와 내무부·군부의 합동훈련이 실시되고 있다는 명백한 근거를 토대로한 것이었다.그러나 그 부대중 이번 쿠데타에 참여한 부대는 거의 없었으며 그들이 참여치 못한 것은 분명 계획된 것이 아니고 주동자들의 혼선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소련의 쿠데타는 사전에 잘 계획된 거사가 아니고 성급하게 급조된 것이었으며 진행과정에서 주동자들의 결속이 와해,실패하게 됐다는 것이다.
  • 소 연방­러시아공 징세권 합의/공화국서 거둬 연방에 일부 출연

    ◎새연방조약 마지막 장애 제거 【모스크바AP연합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30일 신연방조약안 서명에 마지막 장애물로 남아 있던 징세권에 대해 합의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7시간이 넘는 회담끝에 각 공화국이 세금을 징수하고 이중 얼마간을 국방을 포함한 전국적 사업에 충당하도록 중앙정부에 출연한다는 옐친의 제안을 고르바초프가 받아들임으로써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서방국들은 소련에 경제지원을 하기 전에 신연방조약안이 서명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날 합의가 이뤄졌다 해도 언제 각 공화국 의회의 비준을 받을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 “야간회담 곤란”에 “제주1박” 급선회/고르비 일정연장 안팎

    ◎우리측의 끈질긴 요청 주효/북한의식,막바지통보 관측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19일 상오 갑자기 제주에서 1박 하기로 방한일정을 변경하겠다고 제의,우리측이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이날 저녁 가질 예정이던 한소정상회담이 20일로 순연됐다. 당초 3∼4시간 동안 체한하겠다는 일정을 바꿔 1박과 함께 17시간 남짓 체류케 돼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인상이었던 제주정상회담이 다소 여유를 찾음으로써 제주회담의 모양새는 갖춰진 셈이 됐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체한일정 변경은 이날 상오 3시쯤 도쿄에 머무르고 있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측근이 제주 신라호텔로 소콜로프 주한 소 대사에게 긴급 타전을 보내와 대통령 일행의 1박과 20일 상오 정상회담 개최를 우리측에 제의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시작. 소콜로프 대사는 곧바로 이를 호텔내 외무부 의전상황실(CP)로 통보해왔으며 우리측은 장선섭 외무부 의전장이 상오 4시40분쯤 서울의 이병기 대통령의전수석에게 이를 통보하는 등 제주와 서울간 긴밀한 협의를 개시. 청와대측은 이에 따라 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김종휘 외교안보·이 의전수석 등이 참석한 조찬회의를 열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정 연장문제를 검토,상오 8시쯤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노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 우리측은 이어 제주의 소련선발대를 통해 노 대통령의 수락의사를 소측에 통보한 뒤 이수정 공보수석이 상오 8시30분쯤 고르바초프 대통령 일정연장을 공식 발표. 이날 상오 제주에 내려온 이 의전수석은 『지난 17일 제주에 내려와 지난해 샌프란시스코·모스크바회담 이후 업무협조관계로 잘 아는 소측 선발대 의전팀장인 타쉐프의 전관에게 손님이 저녁에 와서 새벽에 떠나는 것은 우리 국민 관습에 비추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체류연장의사를 타진했다』고 소개. 타쉐프 의전관은 이에 대해 『한국의 제주는 소련의 크리미아(휴양지)라고들 하던데 우리도 금방 떠나기가 아쉽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 한소 양국의 의전·경호관계자들은 상오와 하오에 걸쳐 거듭 회의를 갖고 고르바초프 대통령 일정연장에 따른 준비조정문제를 협의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같이 제주도착 17시간을 앞두고 일정변경을 결심한 것은 우리측이 그 동안 빨리 도착하거나 체류를 연장할 것을 꾸준히 소측에 비공식 요청한 점도 작용하겠지만 소련측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관측. 우선 고르바초프 대통령 일행의 바쁜 일본 일정을 들 수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가이후(해부) 일 총리와 3차례의 정상회담(4·5·6차)을 가졌으며 하오 11시30분쯤 공동선언문에 서명,회담을 모두 마친 데 이어 일 기자들과 회견을 19일 사용 2시까지 강행했다. 소련측은 또 당초 예정대로 상오 1시쯤 이한하게 되면 시차 및 비행시간을 감안,상오 5시쯤 모스크바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 경우 이른 시간에 출영나올 소 고위급 인사들 입장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열흘 전 방한의사를 우리측에 통보했을 때부터 제주에서 1박 할 것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다만 되도록 북한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방한을좋게 보지 않는 일본을 의식해 19일 마지막 일본일정이 확정된 뒤 이를 우리측에 알렸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어쨌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20일 이한,보다 자유롭고 느긋한 회담을 갖게 됨으로써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확실한 것 같다. 한편 한소 양측은 노 대통령이 제주공항까지 직접 나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영접,함께 차를 타고 신라호텔로 오면서 「차내회담」을 갖는 방안도 한때 검토했으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박을 하기로 함에 따라 노 대통령의 공항영접은 않기로 결정.
  • 모스배커 “한미통상 항로 순탄”/개방의지 확인 방한 이모저모

    ◎새 현안 제기없이 “호혜적 관계” 강조/“신뢰회복의 디딤돌 마련” 긍정 평가 5∼6일 양일간에 걸친 모스배커 미 상무장관의 한국방문은 27시간 동안의 짧은 체류일정에도 불구,그가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해 최각규 부총리와 이봉서 장관 등 경제각료,그리고 박태준 포철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정세영 현대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과 두루 접촉했다는 점에서 올해 한미통상관계를 점칠 수 있는 풍향계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모스배커 장관의 이번 방한은 그가 일본에 왔던 길에 잠시 들러갔다는 성격과 우리측 경제각료들과의 회동이 매우 우호적 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이 새로이 대한통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장개방 약속 등 한국측의 개방의지를 확인하고 최근 재개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한국의 협조를 받아내려는 의도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스배커 장관의 이한 직전인 6일낮 힐튼호텔에서 열린 이 상공장관 주최 오찬은 한미통상관계의 회복을 알리는 유례없는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 이 상공장관은 오찬에 앞서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과소비운동을 둘러싼 양국 통상마찰을 의식한 듯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지난해 한미통상관계가 어려웠으나 올해에는 잘 될 것』이라며 건배를 제의. 이에 모스배커 장관도 『지난해에는 양국통상관계가 「딸꾹질」을 할 정도로 불편했지만 올해는 올바른 길을 달리고 있다』고 말한 뒤 오는 20일부터 시작되는 이 장관의 방미를 계기로 동반적이고 호혜적인 한미통상관계의 발전을 기대한다고 답사. 상공부 관계자들은 모스배커 장관의 방한을 결산하는 성격의 이날 오찬에서 『미국측이 대한 경고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답사를 한 것은 신뢰회복의 좋은 디딤돌이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 ○…5일 하오 과천 정부청사에서의 한미 통상장관회담에서 모스배커 장관은 한국의 금융·유통시장의 개방을 강력히 촉구. 그는 또 한국의 통신위성 개발과 신공항건설·고속전철 건설 등에 미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측이 조치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새로운 현안 제기가 아니라 기존의 요구사항을 확인하는데 그쳤다는 점에서 상공부측은 한미통상 관계의 장래를 낙관하는 분위기. 모스배커 장관은 이날밤 지난해 초까지 상공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막역한 친구사이」가 된 한승수 의원(민자)과 개별면담을 가졌는데 한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UR대책 특위 등의 활동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모스배커 장관의 대한 일정 가운데 관심을 끄는 대목은 박 포철 회장과 김 대우그룹 회장·정 현대그룹 회장 등 국내의 대표적인 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난 것. 이들 재계 인사들과의 회동은 미 대사관저나 모스배커의 숙소인 힐튼호텔에서 은밀히 이루어져 면담내용이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국내 기업인들의 국제경제를 보는 시각과 정부정책에 대한 평가를 듣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상공부 관계자들은 한미통상장관회담이 상견례 였음에도 대단히 성공적이었던데 대해 『이 상공장관이 미국을 잘 아는 미 하버드대 박사인데다 이필석 국제화재해상보험 회장의 장남으로 국내 업계 사정에도 밝은 면이 일조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 유엔결의 따른 중동평화 합의/베이커­시리아대통령

    【다마스쿠스 로이터 AFP 연합】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14일 하페즈 아사드 시리아대통령과 7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담을 마친후 중동평화의 「창문」을 보았다고 말했다. 베이커국무장관은 시리아방문을 끝내고 모스크바로 떠나기전 다마스쿠스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진지한 열망을 보았다. 유엔 결의 242호와 338호를 토대로 아랍­이스라엘 분쟁을 해결하려는 포괄적인 해결방안을 추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유엔의 두 결의는 아랍국들이 이스라엘과의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이스라엘이 아랍 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베이커장관은 43년에 걸친 아랍­이스라엘 분쟁을 해결하는데 2중기준이 적용돼서는 안된다고 전제하고 『미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영향력 및 이스라엘과의 선린관계를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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